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간다운 삶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삼성서울병원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3
  •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안규철 ‘2.6 평방미터의 집’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안규철 ‘2.6 평방미터의 집’

    삶은 딜레마의 연속이다. 무엇이 정답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큰 부를 얻고 싶기도 하고 무소유의 삶을 살고 싶기도 하다. 보란 듯이 좋은 차를 몰고 싶기도 하고 환경을 생각해 자전거를 타거나 걷고 싶기도 하다. 열심히 아이의 경쟁력을 키워 특목고와 명문대에 보내고 싶기도 하고 그보다는 성적은 처지더라도 아이가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돕고 싶기도 하다. 이런 딜레마 앞에서 우리는 이도저도 아닌 태도를 취할 때가 많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모순은 증폭되고 우리는 결국 대세를 추종하며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삶을 살게 된다. 안규철의 개인전 ‘2.6 평방미터의 집’은 그런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필요와 만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4월26일까지, 공간화랑). 그는 이번 전시에 자신이 만든 집들과 집에 대한 드로잉들을 선보인다. 미술가가 집을 만들었다니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뭔가 공교하고 장식이 풍부한 집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안규철의 집들은 매우 단순하다. 철저히 기능에만 초점을 맞췄다. 게다가 집의 크기가 매우 작다. 대표작이 2.6평방미터짜리니 평수로 따져 한 평이 채 되지 않는 사이즈다.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찾아 나온 게 그 규모다. 이 집을 보노라면 살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게 그리 크거나 많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이 작업이 모든 개인에게 던져지는 보편적인 질문이 되기를 바란다. 소박한 책상 하나,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별이 뜨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는 창문 하나, 몸을 눕힐 수 있는 침대 하나면 충분한, 최소화된 삶을 공간을 통해 구현하는 데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은둔자, 기도하는 사람, 참선 수행하는 사람,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작은 방들을 제안한다. 꿈꾸는 방, 시공간을 넘어 여행하는 방, 현실로부터 가상으로 넘어가기 위한 비상대피소. 그것은 요람이면서 무덤이기도 하다.” 너도나도 앞서 나가려 하는 세상은 갈수록 큰 거품이 끼게 마련이다. 높은 지위, 큰 집, 큰 차를 소유하려는 강박에 싸이다 보면 진정한 필요, 그리고 이를 맞춤하게 충족시켰을 때 얻게 되는 진정한 행복에 무감각해지기 쉽다. 안규철의 작은 집은 후퇴하는 삶에 대한 권고를 담고 있다. 욕망의 최전선으로부터 후퇴하는 것, 그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욕망을 최소화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지키고 이를 위해 투쟁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나와 우주의 균형을 가장 완벽하게 맞추는 일일 터이니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삶은 딜레마의 연속이다. 딜레마에 처했을 때 양단간에 결정을 내리기 어려우면 이렇듯 일단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아 보면 어떨까. 욕망의 최소화까지 가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삶이 한결 가뿐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미술평론가>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참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같았던 분”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교황님과 교황청과 각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또 언젠가 “나는 그저 당신 양떼에게 비천한 종일 뿐”이라고 저에게 하신 말씀과는 달리 사제요, 영적 지도자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 충실하고도 선견지명을 갖춘 훌륭한 목자셨습니다. 교구장 지위에서 물러난 후에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항상 낙천적이고 기쁜 모습을 보여줬던 참 신앙인이셨으며, 당신의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무르실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주님께서 김 추기경님을 영원히 사랑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강우일 주교 온 국민이 마음으로 의지하던 아버지 같은 분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명동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제주에서조차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세상살이가 너무 어렵고 희망은 안 보이고 어디를 봐도 의지할 데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연세가 많아지신 다음에는 도저히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 요모양 요꼴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에게 ‘바보야’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뤘다.’ 편안히 가십시오. 주님 나라 들어가시면 평소 불쌍히 여기시던 백성을 위해 주님께 간구해 주십시오. ●최승룡 전 가톨릭대학 총장 추기경께서 돌아가시면서 각막을 기증하셨습니다. 이 기증으로 누군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빛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장기기증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다섯 배 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어떤 장관도 본받아서 기증서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의 배려와 사랑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돼 기증자와 수혜자가 늘게 되고 5000명이 빛을 보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각막 이식 대기자가 모두 빛을 보려면 5년 9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1년 혹은 6개월로 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 마음의 눈이 멀었습니다. 추기경을 모범으로 이 눈을 열게 되면 이는 더 큰 기적이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홍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저희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그러나 동시에 기쁜 희망과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 국민이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는 것을 보며 저희는 평생을 착한 목자의 삶을 사신 추기경님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그리고 이런 목자를 우리 민족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죽음까지도 도구 삼아 우리와 모든 이를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사제요, 선교사이십니다. 저희도 하느님께, 나아가 추기경님을 다시 뵈올 때까지 가르침을 따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 같은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기로 다짐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이 남긴 가르침

    ● 다툼·갈등의 세상 묵묵히 품어 내-김지길 목사 김수환 추기경은 그저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 속의 친구처럼, 때로는 듬직한 동지처럼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는 1923년생이고 김 추기경은 1922년생이니 나이도 비슷했고, 비록 교파는 달랐어도 신을 섬긴다는 입장에서도 그러했다. 게다가 민주화에 대한 열망 하나로 그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헤쳐온 연대 의식도 컸을 것이다. 참 말없고 묵묵한 분이었다.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이야기하기보다는 늘 남의 이야기를 듣는 축이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른 이도, 기대에 못미침을 불평하는 이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도 모두 한 품에 넉넉히 안아냈다. 그날도 그랬다. 그날 나는 명동성당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과 마주 앉았다. 아마도 1986년 남짓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개신교도 천주교도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운동을 펴나가던 상황이었다. 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으로서 김 추기경을 만나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내자고 제안했다. 당시 개신교와 천주교 모두 몇 차례씩 성명서를 내며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을 때였지만 각자의 영역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단결과 연대가 절실했다. 우리의 힘과 목소리를 더욱 키우기 위해 같은 목소리를, 같이 담아서 내보자는 취지로 명동성당을 찾은 것이고 김 추기경에게 이같이 제안한 것이었다. 이날 김 추기경은 묵묵히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화한 표정으로 긍정의 미소를 보내며 공동성명을 함께 내자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국, 공동성명을 내지는 못했다. 비슷한 목소리로 각자 성명서를 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당시 추기경 비서실에서 공동 성명의 형식을 반대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화가 나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다. 이미 김 추기경에게 충분히 마음이 전달됐고, 김 추기경의 마음을 전달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그이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1987년 6월 들불처럼 번졌던 뜨거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도, 투쟁의 방향을 고민하는 회의석상에서도 김 추기경은 없었다. 여기저기 나다니는 것이 아니라 든든한 어른의 역할이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이자 동지로서 늘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TV를 통해 선종 소식을 들었다. ‘아, 먼저 갔구나.’하는 생각이 맨먼저 들었다. 병상에서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 편안하게 갔으니 다행스럽다. 다툼과 갈등, 미움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몸으로 보여줬던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가 새삼 다시 울려퍼질 수 있게 된 점도 다행스럽다. 참 존경스러운 분을 이제는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돼 울적하다. 나중에 다른 세상에서 만나게 되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 KNCC 회장> ● 낮은 곳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유시춘 작가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과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가위눌려 지내던 이 척박한 우리 현대사의 한가운데 늘 계셨다. 부끄러운 ‘유신’왕정 시대에 민주공화국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가, 그 아름다운 헌법의 가치가 한낱 휴지처럼 구겨박혔을 때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사제들은 ‘진리와 양심을 외면하고 거역하는 집권자의 죄악’을 직시하고자 분연히 일어났다. 그때부터 명동은 민주 회복과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이땅의 가장 낮은 곳에 거주하는 가난한 이들의 등대이자 구난처가 되었다. 그러다가 ‘폭도’의 누명을 쓴 채 거처할 곳 없이 황량한 거리를 배회하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과 그 가족들이 처음으로 기댄 곳도 김 추기경이었다. 80년대 들어 군사정권의 압정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캠퍼스마다 성난 물결이 넘치고 감옥이 양심수들로 그득했을 때, 우리는 명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크나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민주화의 들불로 타오르기까지 수많은 회의와 집회와 농성은 명동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명동의 어르신인 당신의 허락을 얻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으므로 그곳은 바로 우리의 ‘진지’라고 지레 믿었다. 1986년 찌는 듯한 어느 더운 날에 우리는 ‘부천서 성고문사건 규탄연대집회’의 장소를 구하기 위해 김 추기경을 찾았다. 그때 동석한 한 야당 지도자를 향해 김 추기경께서는 ‘국민이 선출해 주었으면 국회에서 잘해야지.’하시며 마뜩잖아하셨다. 우리는 그 말씀조차도 암묵적 동의와 격려로 알고 집회를 강행했고 그곳은 수라장이 되었다. 하여, 드디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 그 ‘명동농성’이 있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명동은 김 추기경이 있어 어두운 시대의 지친 영혼들이 쉴 수 있었다.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라고 절절한 소망을 외치던 그 수많은 수녀님과 신부님들의 행진을 우리 역사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던 예수의 가르침이 교회의 견고한 벽을 뚫고 중생의 번뇌로 출렁이는 사바세계로 현현한 순간이었다. 그때 교회는 진실로 화려하고 장중한 교회건물로부터 그리고 성탄절마다 소리내는 자선냄비로부터 해방되어 이땅의 고난 속에서 스스로 거듭난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이 땅의 모든 양심, 고해에 허덕이며 내일에의 꿈을 잃지 않은 고달픈 중생들에게 이제 김수환 추기경은 영원한 ‘이데아’요, ‘역사’요, ‘대중의 의지를 대표하는 위인’이었다. 우리 시대는 아직 위인을 부르고 있다. 빈자의 절규는 하늘을 찌르는데 권력은 자꾸 뒷걸음치려 한다. 바라건대 부디 생전처럼 높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고 ‘아무 곳에나 잘자라는 앉은뱅이 민들레로 돋아/ 타는 마음으로 이 땅을 지켜보다/ 꽃 다하면 풀씨로 산천 떠돌며’ 이 땅을 굽어 살피시기를. <전 국가인권위원>
  • [씨줄날줄] 인권위 7돌/황진선 논설위원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꿈꾼다.그러기 위해서는 인권,즉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인권은 인간다운 삶의 전제 조건이다.인권 없는 행복한 삶은 없다.국가 통치의 목적도 구성원들이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1948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으로 불린다.인류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범죄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58개 회원국들이 정치 경제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망을 담았다.국가인권위원회가 어제로 7돌을 맞았다.독립된 국가기관인 인권위는 ‘인권대통령’을 자임한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인권위는 그동안 인권개선에 기여했다.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2005년 사형제 폐지 등 국가적 주요 사안뿐 아니라 이주노동자,장애인,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인권 보장과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 끊임없이 의견을 표명했다.인권위에 따르면 국가기관 등의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시정 권고 가운데 1200여건이 수용돼 수용률이 90%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인권위원회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통상 8월에 해오던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도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다.정부와 여당이 인사권과 예산을 무기로 인권위를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최근 촛불시위에 대해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인권위 결정이 정부를 자극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아울러 시대 상황에 따라 새롭게 조명하고 보호하고 증진해야 할 인권이 있게 마련이다.아동·노인의 인권,다문화사회의 인권 등이 그 예다.과거에는 군사력·경제력이 국력의 징표였다면 이제는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와 함께 인권 보호 수준이 국가의 품격과 위상을 결정하는 시대다.인권위의 역할과 기능은 항구적이어야 한다.여당과 정부의 시각대로 그동안 인권위원들이 지나치게 좌편향이었다면 후속 인사를 통해 공정한 인물을 선정하면 될 일이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특파원 칼럼] ‘가니코센’과 일본의 그늘

    [특파원 칼럼] ‘가니코센’과 일본의 그늘

    올해 일본 출판계의 화제는 단연 ‘가니코센(蟹工船·게 가공선)’이다. 지난 1929년 6월 고바야시 다카시가 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고전이다.80년이 지난 올해 재조명과 함께 무려 60만권이나 팔렸다. 만화로 그려졌는가 하면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 가니코센의 붐이다. 소설은 “어이, 지옥으로 들어가나.”로 시작된다. 엄동의 오호츠크해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만드는 배인 ‘히로미쓰마루’ 선원들의 참혹한 삶과 분노, 투쟁의 과정을 담았다. 영양 실조와 질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산량의 그래프에만 신경쓰는 선주 측의 무자비한 폭력과 착취, 인내의 한계를 넘은 노동자들의 파업 시도, 국가로 상징되는 해군에 의한 강제 진압…. 소설은 “그리고, 그들은 일어섰다. 한번 더”로 끝을 맺는다. 일본에서 가니코센의 재출현은 사건이나 다름없다. 과거의 역사에나 머무를 법한 내용인 까닭에서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연구자나 관심있는 독자들의 몫으로만 여겨졌던 터다.1980년대 ‘1억 총인구=중류층’이라고 자랑하던 경제대국, 일본에서 ‘빈곤’이나 ‘궁핍’이라는 단어 자체는 사어(死語)에 가까웠다. 하지만 일본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가니코센을 찾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가니코센의 내용에 “공감한다.”는 답변이 51%에 달했다. 열악한 고용의 현실에다 양극화 즉,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일본의 비정규직 실태는 심각하다.2007년 취업구조 기본조사 통계에 따르면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파견사원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35.5%다.1737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다. 젊은 층의 신규 인력은 대부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처지다. 때문에 일하는 빈곤층인 워킹푸어를 비롯,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저임금의 프리터,PC방을 드나드는 젊은 층의 홈리스인 ‘넷카페 난민’ 등 격차 사회를 빗댄 용어들도 범람하고 있다. 격차 문제의 진단은 쉽지 않다. 다만 대체로 시장의 역할을 중시한 ‘고이즈미 개혁 ’의 후유증 탓에 가속화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뒤 기업의 실적 회복을 위해 인건비 삭감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도 노동자파견법 등의 규제완화로 호응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저임금과 해고의 유연성에 대한 보장이다.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의 지향속에 고용·사회보험·공적지원 등의 안전망은 느슨해졌다.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 않다.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자기책임론’에 짓눌려 할 말을 제대로 못하던 젊은 층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자기책임만이 아닌 정치·사회구조의 희생양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니코센에의 자기 투영이다. 지난달 19일 도쿄 시내에서 열린 ‘반(反)빈곤’ 집회에 참가한 비정규직들은 “인간다운 생활과 노동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외쳤다. 중의원 선거에 격차 문제를 쟁점화할 만큼 조직화되고 있다. 최근 1년간 일본 공산당에 가입한 신규 당원은 1만명을 넘었다. 물론 ‘가니코센 현상’을 일본 사회 전체의 움직임인 양 과대 평가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나 기업도 격차 문제의 해소를 위한 처방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생활 제일’,‘생활자 중시’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이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시행하고 있다. 또 일용직 파견을 금지하는 법안도 추진중이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감원 바람에 비정규직들이 내몰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보다 구체적인 안전망의 재구축, 안정된 노동환경의 조성이다. 지금 경제대국, 일본에 가니코센을 탄 듯한 젊은이들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시각장애인용 책 녹음 저작권 정부가 해결을”

    사법시험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를 딛고 2차시험에 합격한 최영(27)씨의 뒤에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복지재단과 시각장애인이 개발한 문서 음성화 프로그램이 있었다. ‘리더를 키운다.’는 비전으로 공부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지원하고 있는 정인욱 복지재단은 1993년 국민들에게 장작 대신 연탄을 연료로 공급해 삼림의 황폐화를 막은 고(故) 정인욱(1999년 별세) 강원산업 회장이 설립했다. 지금은 고인의 맏딸인 정영자(68)씨가 이사장을 맡아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맹학교 앞에 살았던 고 정 회장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20여년간 책 녹음봉사를 했고, 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그 뜻을 이어받아 2004년부터 법전 및 관련 서적을 텍스트 파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저작권 문제로 출판사에서 파일을 넘겨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각종 서적의 글씨 하나하나를 모두 컴퓨터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재단은 엘리트 지원사업뿐만 아니라 맹학교 지원과 점자번역사업, 문화예술, 복지 등 시각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전반의 사업을 펼쳐 가고 있다. 또 매년 시각장애 고등학생 10명, 대학생 3명을 선발해 해외로 어학연수를 보내기도 한다. 재단의 지원을 받는 김정호(37·서울대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씨는 동료 3명과 함께 텍스트 파일 음성화 프로그램인 ‘스크린 리더’를 개발했고, 이 프로그램은 최영씨가 합격의 영광을 안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김씨는 22일 최씨의 합격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면서 “기술의 발전을 통해 장애인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상징적인 계기”라면서 “정부가 나서 저작권 문제만 해결해 준다면 제2, 제3의 최씨가 줄이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지방시대] 부산, 그리고 스포츠 가치의 재발견/ 홍완식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 사무총장

    [지방시대] 부산, 그리고 스포츠 가치의 재발견/ 홍완식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 사무총장

    요즘처럼 세상 경제가 뒤숭숭할 때는 스포츠가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에 제격이다. 롯데야구단의 열성팬인 속칭‘ 부산갈매기’들이 야구표를 구하기 위해 경기 전날부터 매표소 앞에서 노숙까지 한 것을 보면 과연 그러하다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08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가 얼마전 끝이 났다. 세계 101개국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주일간 펼쳐진 이번 대회에서는 올림픽이나 전국체전에서 볼 수 없는 전통스포츠 종목이 대거 선을 보여 흥미를 더했다. 해운대에서 개최된 연날리기 대회에는 10만명이 넘는 관중이 운집해 각국의 연을 감상했다. 양궁과 사뭇 다른 국궁대회에서는 각국의 전통 복장을 한 궁사들이 출전, 자웅을 겨뤘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은 자신만의 전통스포츠를 마음껏 뽐냈다. 그들은 부산의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온천천에서 수많은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류가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무형의 문화유산을 보여 줬다. 시민들과 참가자 모두는 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스포츠의 아름다움과 열정에 물들었다. 이번 스포츠문화축제에서는 스포츠의 가치를 경쟁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스포츠는 육체적인 활동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보편적 수단이며, 나아가 행복 추구의 기본권임을 확인하였고 국경과 세대를 넘어 스포츠가 가지는 문화적, 교육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였다. 부산대회와 함께 열린 ‘제6차 IOC 스포츠·교육·문화포럼´에서도 스포츠의 근본적 가치 실현과 올림픽 정신을 교육하고 실천하는 스포츠대회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2010년 제1회 청소년 올림픽의 이론적인 바탕을 논의했다. 이들 두 대회에서 재발견된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는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도시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핵심은 젊은 세대에 대한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를 현실화´ 시키는 시스템의 구축이다.IOC 보고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정부와 베이징올림픽위원회는 40만개의 학교에서 무려 4억명에 달하는 학생들에게 올림픽 교육과정을 편성해 지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평화와 우정에 기여하는 올림픽운동과 그것이 가진 페어플레이 정신, 인간존중의 정신 등을 젊은 세대들이 배우고 경험함으로써 건강한 미래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우리의 현 세대들은 얼마만큼 스포츠를 통해서 인간적 가치를 배우고 상호 존중 정신과 국제적인 인류애를 배우고 있을까 하는 질문에 교육당국이나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부산시를 포함한 지방정부 그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답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스포츠에 대한 가치평가를 메달 수나 점수로 계산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부산대회는 스포츠의 문화적 가치를 잘 보여준 행사였다.IOC포럼에는 많은 IOC위원들과 세계 스포츠계 인사들이 참가해 스포츠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실천 방안들을 발표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대회가 어떠냐고 물으면 연방 ‘원더풀’이라고 하면서 부산은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알고 싶어 했던 것은 부산의 스포츠 환경이나 도시의 아름다움 그리고 체육 시설이 아니라 스포츠 교육, 문화적 가치에 대한 부산시의 인식 및 실천의지다. 부산시가 앞으로 ‘2020하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가장 필요한 정책은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를 실천하는 방안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이다. 홍완식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 사무총장
  • [지방시대] 지역의 문화력이 발전 동력이다/홍완식 2008부산 세계사회체육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지방시대] 지역의 문화력이 발전 동력이다/홍완식 2008부산 세계사회체육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여기에서 문화란 소비적 문화가 아니라 인간의 슬기와 지혜를 살찌우고 인간다운 삶을 북돋우는 생산적, 창조적 문화를 말한다. 문화는 힘을 가진다. 선진적 문화는 경제력을 증강하는 힘, 즉 ‘문화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 일류 도시들은 이러한 문화의 힘을 일찍 알고 문화력을 키우는 데 많은 공을 들여왔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방콕이 그렇고 최근에는 두바이가 그렇다. 얼마전 서울에서 열렸던 ‘글로벌 서울 포럼’에 참가한 세계 석학들은 문화의 경제 가치를 평가하고 도시 경쟁력과 시민의 행복도를 증진시키는 길을 문화력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컬처 노믹스(CULTURE NOMICS)’다. 이 포럼에 참가한 프랑스 미래학자 기 소르망은 한국이 목표로 하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산업발전 이외에 문화, 창의, 혁신 활동 등이 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잘 아는 그는 서울이 국제화 수준만 갖춘다면 문화적인 경쟁력을 가진 도시가 될 것이라는 진단도 내렸다. 서울은 상호 작용이 잘되는 민주화된 도시여서 조금만 노력하면 세계적인 문화도시가 될 수 있고 그만큼 경제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학자들이 내세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경제력과 문화 발전의 잠재력을 가진 서울뿐만 아니라 어떤 지역이건 문화가 지역 발전의 동력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지역에 맞는 문화력을 기른다면 지역 경제와 주민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력과 경제와의 함수 관계는 바로 ‘함평의 나비축제’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함평은 나비 하나로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세계 나비곤충엑스포’로 이름표를 바꿨다. 조직위는 나비축제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경제 효과는 직접 수입 300억원과 간접 효과가 2000억원에 이른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창조적 아이디어 하나로 생산적인 문화력을 키울 때 얼마나 놀라운 부가가치가 창출되는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문화력이 지역 경제산업 발전과 연결돼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문화력이 독창적인 창조성을 가지는 일이다. 지방이 문화 행사를 통해 일정한 지역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지역 고유의 특성에 맞는 문화력을 길러야 한다. 모방적 문화력은 힘이 없어 다른 문화력에 흡수되거나 스스로 소멸될 위험이 있다. 함평은 남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력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함평이라는 곳의 특성에 걸맞은 문화를 창안하였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더욱더 성장하고 확대되고 있다. 두번째로 각 지역은 문화력의 생산기지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창조적 문화가 생산되고 발신되는 중심이 지역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21세기는 지방시대, 지역시대이다. 지방마다 문화 생산의 주체가 돼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갈 때 문화의 경제적 가치가 실현된다.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은 세계의 포도주 문화를 선도하는 생산 기지이며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세계 패션문화의 생산 기지이고 남미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탱고 문화의 생산지이다. 이들 지역은 모두 창의적 문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셋째, 문화력을 가진 지역에서 생산되는 문화 상품이 시장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시대의 수준에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한 국가의 문화력은 결국 ‘지역 문화력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곧 국가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어떻게 하면 지역문화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여 나갈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정책을 발굴해 적극 시행해야 할 것이다. 홍완식 2008부산 세계사회체육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 [이명박대통령 취임] 17대 대통령 취임사

    [이명박대통령 취임] 17대 대통령 취임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해외동포 여러분, 이 자리에 참석하신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엥흐바야르 남바르 몽골 대통령, 삼덱 훈센 캄보디아 총리, 후쿠다 야스오 일본 내각총리대신, 빅토르 줍코프 러시아 연방 총리, 무하마드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을 비롯한 각국 경축사절과 내외 귀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한없이 자랑스러운 나라, 한없이 위대한 국민 앞에 엄숙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며 제게 주어진 역사적, 시대적 사명에 신명을 바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습니다. 문화를 창달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겠습니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지겠습니다.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겠습니다.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잃었던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업을 동시에 이루어 내었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힘으로 일구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베푸는 나라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신화’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입니다.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진실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 전선에서 산화한 장병들, 뙤약볕, 비바람 속에 땅을 일군 농민들, 밤낮없이 산업현장을 지켜낸 근로자들, 젊음을 바쳐 민주화를 일구어낸 청년들의 눈물겹도록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롱속 금붙이를 들고 나와 외환위기에 맞섰던 시민들, 겨울 바닷가에서 기름을 걷고 닦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사회 각 영역에서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온 수많은 직장인들과 공직자들, 이들 모두가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주역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내놓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떳떳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자부심이 미래를 여는 대한민국의 힘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로 가는 길을 찾아 열어가고자 합니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의 제약을 여유롭게 바라보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함께 전진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소중하게 가꾸고, 각자가 스스로 자기 몫을 다하며, 공공의 복리를 위해 협력하는 사회, 풍요와 배려와 품격이 넘치는 나라를 향한 장엄한 출발을 선언합니다. 지난 10년, 더러는 멈칫거리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제 성취의 기쁨은 물론 실패의 아픔까지도 자산으로 삼아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실용정신은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합리적 원리이자, 세계화 물결을 헤쳐 나가는 데에 유효한 실천적 지혜입니다.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을 구현하는 시대정신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이룩하는 데에 나와 너가 따로 없고, 우리와 그들의 차별이 없습니다. 협력과 조화를 향한 실용정신으로 계층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고자 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는 나라,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가고 노사가 한마음 되어, 소수와 약자를 따뜻이 배려하는 나라, 훌륭한 인재를 길러 세계로 보내고, 세계의 인재를 불러들이는 나라, 바로 제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룩하고자 하는 선진 일류국가의 꿈입니다. 기적은 계속될 것입니다. 신화는 이어질 것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발전의 엔진에 다시 불을 붙여 더욱 힘차게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고 국민 여러분이 하나 되어 나서면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 시점에서 우리 함께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세계는 우리를 저만치 앞질러가고 있습니다. 후발국들도 바짝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국가경쟁력은 떨어지고 자원과 금융시장의 불안이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내 사정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중산층은 위축되고 서민생활은 어려워졌습니다. 계층간, 집단간의 관계는 여전히 갈등과 투쟁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권리주장이 책임의식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오고 있습니다. 분단국으로서 지고 있는 짐도 무겁습니다. 다음 60년의 국운을 좌우할 갈림길에서, 이 역사적 고비를 너끈히 넘어가기 위해서 저는 국민 여러분이 더 적극적으로 변화에 나서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변화를 소홀히 하면 낙오합니다. 변화를 거스르면 휩쓸리고 맙니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더 빨리 변해야 합니다. 불합리하거나 시대에 맞지 않으면 익숙한 것들과 과감히 헤어져야 합니다. 방향은 개방과 자율, 그리고 창의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경제 살리기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여 더 활기차게 성장하고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부부터 유능한 조직으로 바꾸고자 합니다.‘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잘 하는 곳은 더 잘 하게 해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힘이 되는 역할을 맡겠습니다. 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민간에 이양하겠습니다. 공공부문에도 경쟁을 도입하겠습니다. 세금도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투자와 소비가 살아납니다. 공무원 수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빠른 시일 내에 혁파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머지않아 새 정부가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업은 국부의 원천이요, 일자리 창출의 주역입니다. 누구나 쉽게 창업하고 공장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인이 나서서 투자하고 신바람 나서 세계 시장을 누비도록 시장과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겠습니다.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중소기업들이 활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해서 대기업들과 협력하고 경쟁하도록 돕겠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영하는 기업인들이 존경받고,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이 사랑받아야 합니다. 노(勞)와 사(使)는 기업이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두 바퀴입니다. 어느 하나가 제 몫을 못 하면 수레가 넘어집니다. 선진국에서는 노사분규가 현격히 줄어들었습니다.“과격한 투쟁은 결국 자멸을 가져온다.”는 인식을 노사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노사문화의 자율적 개선은 선진화의 필수요건입니다. 이제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기업도, 노조도 서로 양보하고 한걸음씩 다가서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이 힘을 내야 합니다. 기업이 먼저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으로 노동자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이런 때 노동자도 더 열심히 일해 주어야 합니다. 불법투쟁은 지양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노사관계가 건강해집니다. 정부도 원칙과 성의를 가지고 노력하겠습니다. 시장개방은 피할 수 없는 큰 흐름입니다. 수출산업이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부를 늘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개방에 취약한 부문에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특히 농어민들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 모두가 농어민의 아들딸입니다. 농업, 농촌, 농민 걱정이 곧 나라 걱정입니다.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정부가 함께하겠습니다. 농림수산업이 더 이상 1차 산업으로 머물러선 안 됩니다. 첨단 생산기술을 접목하고 유통 서비스 경영과 결합시켜 경쟁력 있는 2차,3차 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농어민과 정부가 뜻을 합치고 지혜를 모으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고, 다 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국가가 보살펴야 합니다. 시혜적, 사후적 복지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능동적, 예방적 복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낙오자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됩니다. 여성은 시민사회와 국가발전의 당당한 주역입니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사회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서 시민권과 사회권의 확장에 힘쓰겠습니다.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늘리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생애주기와 생활형편에 따른 수요에 맞추어 맞춤형 보육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정부가 보육의 짐을 덜어주면 저출산 문제가 개선될 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청년세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국내외에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젊은이들의 사회 진출을 돕겠습니다. 주거생활을 안정시킴으로써 개인 생활은 물론 사회의 안정 기반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복지대책도 시급합니다. 노령연금을 현실화하고, 공공복지를 개선하겠습니다. 고령자를 위한 의료혜택과 시설을 늘리고, 근로의욕이 있는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힘쓰겠습니다. 장애인들에게도 더 따뜻한 배려와 함께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피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선진화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얼마나 훌륭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청소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꿈과 활력의 발전기입니다. 청소년들의 적성과 잠재력을 개발하고 디지털,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교육개혁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획일적 관치교육, 폐쇄적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교육현장에 자율과 창의, 그리고 경쟁의 숨결을 불어 넣어야 합니다. 학교 유형을 다양화하고 교사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주력하겠습니다. 그래야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 열풍이 잦아들게 됩니다. 학생들의 적성과 창의력이 살아납니다. 대학의 자율화는 국가경쟁력뿐 아니라 한국 사회 선진화의 관건입니다. 교육과 연구의 역량을 늘려서 세계의 대학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지식기반사회의 전선에 서야 합니다. 교육의 기회를 질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복지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습니다. 과학이 사회를 합리적으로 바꾸고 선진화시킵니다. 한국의 몇몇 과학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20년,30년을 내다보면서 과학기술의 창의적 역량을 키워 가겠습니다. 우수한 과학도를 길러내고, 과학자를 존경하고 우대하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과학기술이 미래로 가는 문을 열어줍니다.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거대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국가가 장기계획을 가지고 밀어 주어야 합니다. 대학과 기업과 정부의 연구개발 협력체제도 보다 실질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주택은 재산이 아니라 생활의 인프라입니다. 주거생활의 수준을 높이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주거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나가겠습니다. 국토의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고자 합니다. 해양지향, 광역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미래의 생활양식에 필요한 공간 활용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친환경, 친문화적 기조를 유지하여 국토의 건강성과 품격을 높여나가겠습니다. 환경보전은 삶의 질을 개선하고 환경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냅니다. 지구 환경 변화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기상재해가 잦아지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이에 적응하려면 당장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참고 창의적으로 적응해야만 합니다. 식량, 환경, 물, 자원, 에너지 등과 관련된 정책 전반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국가입니다. 최근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한류는 그런 전통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전통문화의 현대화와 문화예술의 선진화가 함께 가야 경제적 풍요도 빛이 날 것입니다. 이제는 문화도 산업입니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문화강국의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문화수준이 높아지면 삶의 격조가 올라갑니다. 문화로 즐기고, 문화로 화합하며, 문화로 발전해야 합니다. 정부는 우리 문화의 저력이 21세기의 열린 공간에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더 넓은 시야, 더 능동적 자세로 국제사회와 더불어 함께하고 교류하는 글로벌 외교를 펼칠 것입니다. 우리는 인종과 종교, 빈부의 차이를 넘어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겠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 공동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지구촌의 평화와 발전에 동참하겠습니다. 미국과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미래지향적 동맹관계로 발전, 강화시키겠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형성된 역사적 신뢰를 바탕으로 전략적 동맹관계를 굳건히 해 나가겠습니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일본, 중국, 러시아와 고루 협력관계를 강화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모색하겠습니다. 우리 경제의 엔진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해 자원과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에도 힘쓸 것입니다. 아울러 평화와 환경을 위한 국제협력에도 앞장서겠습니다. 우리의 경제규모와 외교역량에 걸맞게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는 기여외교를 펴겠습니다.UN 평화유지군(PKO)에 적극 참여하고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하겠습니다. 문화외교에 역점을 두어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더 원활히 하겠습니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이 어우러지면 한국의 매력을 세계로 내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7000만 국민의 염원입니다. 남북관계는 이제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습니다.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비핵. 개방 3000 구상’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10년 안에 북한 주민 소득이 3000 달러에 이르도록 돕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족을 위하는 길이고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의 정치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7000만 국민을 잘 살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서로 존중하면서 통일의 문을 열 수 있는가 하는 생각들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라면,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정치의 근본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변하지 않고는 선진일류국가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발전 방향과 실천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합니다. 민생고를 덜어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실용정치의 기본입니다. 길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 봅시다. 소모적인 정치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합시다.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생산적인 일을 챙겨 합시다. 여와 야를 넘어 대화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국회와 협력하고, 사법부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대한민국 지도를 세계로 넓히겠습니다. 세계의 문물이 거침없이 들어와서 이 땅에서 새로운 가치로 창조되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내보내는 나라, 선진 일류국가가 되게 하겠습니다. 선대의 기원이고, 당대의 희망이며, 후대와의 약속입니다. 저, 이명박이 앞장서겠습니다. 정부만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나서 주셔야 합니다. 각자가 스스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더 튼튼하게 길러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기업인과 노동자들은 손잡고 더 진취적으로 매진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자기 개발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군인과 경찰은 국가와 사회를 더 성실히 지켜야 합니다. 종교인, 시민운동가, 언론인도 더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공직자들은 더 성심껏 국민을 섬겨야 합니다. 대통령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시대적 과제,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한 대전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향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갑시다. 저, 이명박이 앞장서겠습니다. 국민이 합심하여 떨치고 나서면 해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2월2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
  • [기고] 도서관 정보정책의 실종을 우려한다/윤희윤 대구대학교 교수·한국문헌정보학회 부회장

    [기고] 도서관 정보정책의 실종을 우려한다/윤희윤 대구대학교 교수·한국문헌정보학회 부회장

    한 나라의 경제와 문화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을 견인하는 수레바퀴이다. 경제발전이 국가경쟁력과 물질적 풍요를 보증한다면 문화는 인간다운 삶과 정신적 성숙과 직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민생경제 회복, 공공부문 개혁과 정부조직 개편, 해외투자 유치 및 국내투자 활성화, 교육개혁, 부동산 안정화, 부패척결, 청년실업 해소, 보육 및 노인복지 대책’을 국정운영의 8대 어젠다로 설정하였다. 요컨대 개혁부문을 제외하면 ‘경제 살리기’에 집중되어 있다. 새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모든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면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려면 문화적 역량과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 요체가 도서관 중심의 지식정보정책이기 때문에 지난해 6월 도서관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수립·심의·조정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의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발족하여 중장기 로드맵을 준비하여 왔다. 그런데 인수위원회는 발족한 지 7개월에 불과한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를 ‘실효성 부재’라는 이유를 들어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이 1970년 ‘공법 91-345’에 근거하여 대통령 소속의 정책자문기구로 설치한 국가도서관정보학위원회(NCLIS)를 여전히 존속시키고 있음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 다른 위원회와 달리,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에는 정치적 지형과 색깔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요 선진국의 도서관 및 문화계가 가장 부러워하고 주목하는 위원회이다. 그동안 도서관 발전종합계획 수립, 전문인력 양성제도 연구, 표준업무 및 운영절차의 마련, 도서관 사례평가, 법령개정과 정비 등에 몰두하여 왔다. 따라서 새 정부에서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반드시 존속되어야 한다. 첫째, 부존자원이 절대 부족한 한국은 지식기반의 경제와 사회를 구현해야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다. 대다수 선진국은 도서관이 자국의 문화수준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지식사회를 선도할 거점으로 판단하여 인프라 확충과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주도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1위권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인프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처해 있다.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도서관 진흥이 지식문화수준의 향상과 직결된다는 공리를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를 존속시켜 경제력과 문화력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셋째, 도서관은 한국의 문화기반시설을 대표하며 지식문화수준을 평가하는 최적의 대용지표이다. 유네스코, 경제협력개발기구, 유럽연합 등이 문화수준을 측정할 때 도서관당 봉사대상인구, 국민 1인당 장서수와 이용책수 등을 지표에 포함시키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는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를 통하여 도서관 지표를 높이는 방향으로 지식문화의 후진성을 극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공공도서관 행정체계는 문화선진국과 달리,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정책기능은 문화관광부가, 감독기능은 행정자치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일선의 관할 및 운영주체는 자치단체와 교육청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소모성 행정체계를 개선하고 지방자치 및 분권패러다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혁신하려면 거중조정 기능을 수행할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윤희윤 대구대학교 교수·한국문헌정보학회 부회장
  • 李 “통일 염두에 두고 정부 개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7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기자회견에서 “통일을 염두에 두고 정부조직을 개편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대통령 취임식)경축사절단이 온다면 환영한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나 자신은 성숙된 한·일관계를 위해 ‘사과하라’‘반성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점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당선인의 ‘비핵·개방·3000 구상’은 대북 당근정책이다. 채찍은 뭔가.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간 화해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더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과 북의 주민이 핵 위협 속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는 핵을 포기하고 인간다운 삶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양국 지도자들은 알아야 한다. ▶북한 인권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고 했는데, 경제협력이나 인도적 지원을 인권과 연계한다는 의미인가. -도전적 발언은 아니다. 남북간에 보다 솔직한,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북한에 대한 관심은 첫째가 핵이고 또 북한 주민의 삶이다. 우선 이산가족 1세대들이 만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 다음에 국군포로, 어민 납북 문제의 해결이 깊은 관심이다. ▶대일외교에서 실용주의란 어떤 구상인가. 역대 대통령은 일본에 사과하라, 보상하라는 등 과거를 강조했는데. -형식을 걷어내고 실질적으로 잘하자는 것이다. 일본이 매우 형식적으로 사과한 것이 사실이며 그래서 한국민에게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했다. 나 자신은 성숙된 한·일관계를 위해서 사과나 반성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일본도 그런 말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외교를 할 것으로 본다.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겠다고 했는데, 많은 외국기업은 론스타 회장에 대한 조사를 보면서 회의적이다. -일반적으로 한국기업이 외국에 가서 투자하더라도, 또 외국기업이 한국에서 투자하더라도 그 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참고로 말한다. 노사문제 등 여러 불편한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많이 개선하겠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준하는 정도로 하겠다. ▶통일부 통폐합 방침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차기 정부가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통일부가 없어진 게 아니고 외교부와 합쳐진 것이다. 과거엔 통일부 한 부서, 북측도 특정한 한 부서 등 두 부서가 협상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기엔 너무 규모가 커졌다. 핵 문제가 해결되고 경협이 적극적으로 된다면 모든 부서가 관여해야 한다. 농업이 관련됐다면 북한 농업부와 우리 농수산부가 얘기해야 할 것이다. 남북간 확대된 교류를 대비하는 입장에서, 통일의 단계까지 염두에 두면서 조직개편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문화마당] 서울에 내리는 눈/이윤택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극작·연출가

    근년에 눈 내리는 풍경을 보기 힘들었다.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겨울시즌에도 좀체로 눈을 보기 힘들었고, 눈이 온다 하더라도 질척거리는 겨울비를 동반하든지 때 아닌 진눈깨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눈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잊어 버렸다. 지상 위 모든 색상을 압도하는 강렬한 백색,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평화로운 은총이 쏟아지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구르몽의 시에 노래를 붙인 샹송을 흥얼거리거나 식민지 시대의 시인 오장환의 시를 떠올릴 수도 있다. 어서 내려라 갈매빛 바다와 짙은 회색의 도시 위에 퍽퍽 내려다오 태양이 또 그 위에 빛나리라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 올해 첫달 열흘 밤부터 내린 눈은 열하룻날 새벽에 이르러 서울 시가지 풍경을 완전한 백색으로 지워 버렸다. 게릴라소극장 이층방에서 잠들었던 배우들은 “눈이다!” 소리치며 반갑게 골목길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눈을 맞이하러 극장을 뛰쳐 나간 배우들은 눈밭을 뒹굴지 못하고 변변한 눈사람 하나 만들지 못하고 곧장 극장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오장환의 시처럼 태양이 그 위에 빛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매연 때문인지 을씨년스러운 세상 기운 탓인지 무척 추웠고 칼바람까지 불었다. 서울 시가지는 오히려 인적이 끊어지고 심하게 질척거렸다. 우리가 눈을 그리워하던 마음은 이런 게 아니었다. 지난 시대 깊게 파인 골을 메우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연의 영약(靈藥)이기를 바랐다. 구차한 변명, 파렴치한 구설수, 소모적인 불화 따위 온갖 세상의 어두운 그늘을 지우면서 희망이란 단어가 눈송이처럼 내려주기를 바랐다. 그 위로 태양이 떠올라 말끔하게 씻긴 서울이 다시 평화로운 풍경으로 회복되기를 바랐다. 현실은 추악하고 인생은 너덜난다. 우리는 매번 개혁이란 이름으로 누각을 짓고 새로운 세계라고 믿으며 부패한다. 명색 세상의 짐을 지겠다고 나선 정치가들이 이것이 시대정의요 살 만한 세상이요 떠들면서 현실을 부분적으로 짜깁기한들 언젠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외로워진다. 그 점에서 정치는 계속되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의 문명사(文明史)다. 정치적 의도나 문명의 힘으로 인간은 결코 인간다운 삶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오히려 저 눈 내리는 풍경이다. 덕수궁 돌담 길 나무 위에서 여전히 재잘대는 새들의 지저귐이다. 이것이 자연의 재생력이다. 우리가 눈 내리는 풍경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현실의 모든 추악함을 견딜 수 있고, 덕수궁 돌담길을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기에 서울은 여전히 살 만한 도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내리는 눈조차 현실의 난기류(亂氣流)에 뒤섞여 질척거린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운 그늘을 드리울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지난 시대를 통과하면서 너무 많은 주장들이 뒤섞이고 악의적인 싸움으로 골이 파이면서 집단적인 트라우마(trauma:우울, 무기력, 환멸 등으로 드러나는 신경증세)에 빠져 있다. 이제 현실로부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서울 하늘에 드리워진 회색 구름을 걷어내고 어떻게 맑은 해를 띄울 수 있을 것인가, 순결한 눈을 내리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할 시간이다. 눈을 녹이려면 뜨거운 키스 내 마음을 울리려면 이별의 키스…. 시몬, 내 동생 눈은 뜰에 잠들었다 시몬, 너는 나의 눈 나의 사랑 (구르몽의 시에서) 이윤택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극작·연출가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당선작] ‘여수’에서 식물성의 세계로, 그 타자 찾기 - 한강론/주지영

    1.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서 우리네 일상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경계의 반복적인 명멸과 대면하는 자리에 인간을 위치시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들에 의해 일상의 공간은 구획되고 짜여진다. 주어진 공간의 구획을 넘어서는 순간에도 경계 짓기는 끝없이 지속된다. 안주와 일탈의 길항은 일상의 작은 균열들 속에서 내파되고, 일탈의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새로움을 향한 갈망조차 이미 기획된 미시적인 욕망의 파편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기에 ‘가지 않은 길’을 향한 욕망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일상을 전복시킬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은 것, 그것이 소설의 운명이 아닐까?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는 루카치의 명제는 소설의 발생론적 배경을 논하는 자리에서 도출된 것이지만, 그것은 현대의 소설이 처한 위상을 거론할 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소설의 문법 속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비추는 작가의 ‘별빛’이 있어야 하고, 또한 현실사회의 고해를 건너는 ‘모험’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모험을 통한 별빛 찾기, 이를 달리 잃어버린 타자 찾기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인식이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 인간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 같은 불구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끊임없이 벌판을 방황한다. 그 벌판은 근대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화된 불모지이다. 그곳은 산업사회일 수도 있고, 후기산업사회일 수도 있다. 동그라미는 그런 삭막한 곳에서 자신의 반쪽인 타자(the other)를 찾아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쪽을 찾지 못하는 한 동그라미는 영원한 불구자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나서는 고독한 탐험가, 그가 작가이다. 잃어버린 타자는 인간이 황폐화시킨 자연일 수도, 남성에 의해 도구화되어 억압받는 여성일 수도, 도시에 의해 황폐화된 농촌일 수도,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일 수도, 이성에 의해 감금된 비이성일 수도 있다. 소설은 잃어버린 타자를 되찾고 타자와의 합일을 이뤄내고자 하지만, 당연히 그러한 지향은 실패한다. 그러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 세계를 강렬하게 지향한다.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황폐한가,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고,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깨우쳐 주는 것, 그것이 소설이 짊어져야 할 비극적 운명이다. 어떤 타자를, 어떻게 지향하는가, 바로 그 점에서 소설의 색채와 작가가 이뤄내고자 하는 세계는 다른 빛깔을 띠게 된다. 소설사적 흐름에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들은 바로 이 잃어버린 타자를 찾기 위해 모험을 시도했고, 그 모험의 결과로 산출된 별빛들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빛을 밝혀준다. 인간에게 불을 내어 준 프로메테우스가 그 대가로 자신의 심장을 독수리에게 내맡기듯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를 밝혀 줄 소설을 쓰기 위해 벌판을 고독하게 방황한다. 그렇다면 최근 소설에서 프로메테우스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천형으로 짊어지고 가는 작가는 얼마나 되는가.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소설의 운명을 포기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고 있지는 않은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매스미디어적 메시지들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소설의 고독한 운명을 방기하고 현상적이고 피상적이며 찰나적인 것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는 작품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결여한 채 일상에 안주하여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쾌락들을 경탄해마지 않는 그런 소설들을 대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프로메테우스의 천형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짊어지고 고독한 방랑의 길을 떠나는 작가가 더욱 고귀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강은 ‘모험을 통한 타자 찾기’에 충실한 작가이다. 한강의 ‘모험’은 현실사회 모순의 해부보다는 그 현실사회에서 불구자로 전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작품은 죽음과 광기, 소통의 법칙을 뒤집는 침묵이나 몸짓, 욕망의 금기를 위반하는 근친상간, 동물성에 대비되는 식물성 같은 언표들을 공적인 영역 속에서 가시화한다. 뼛속부터 밝음의 영역에 속해있던 기획된 욕망들을 삭제하려는 충동질로 가득한 그의 소설에서 인위적인 모든 것들은 부정된다. 제도나 관습 일반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획일화된 것들을 거부한다. 먹고 마시는,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들조차 깡그리 부정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인간존재의 진정한 의미들을 힘겹게 터득해 나간다. 폭력적인 일상에 휘둘릴수록 본래의 육체에 깃들이고 있었을 법한 영혼에 대한 갈급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가라앉았던 감정의 앙금들을 분출하고, 토해낼 때 비로소 영혼의 정화는 일단락된다. 의식(儀式)과도 같은 파토스가 지나가고 난 빈 자리에 ‘타자’를 향한 존재의 갈망이 채워진다. 그렇다면 한강 작품에 나타나는 ‘모험’은 무엇이며, 그 모험을 통해 찾고자 하는 ‘타자’는 무엇인가. 초기 작품에서는 죽음의 기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가 설정된다. 타자의 자리가 설정된 이후 그 타자와의 합일 방법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가면벗기와 맨얼굴 찾기’에서부터 출발하여 ‘언외언과 관의 사유’를 거쳐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이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1995)에서부터 ‘내 여자의 열매’(창작과비평사,2000)를 거쳐,‘채식주의자’(창비,2007)로 전개되는 바, 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한강 작품의 의의를 탐색하고, 나아가 ‘지금 여기’에 대해 고민하는 소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지평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2. 관념으로서의 여수(旅愁), 행(行)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일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병적 징후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자살 같은 극단적 행위를 통해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한강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죽음은 인간의 육체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생물학적 의미의 죽음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죽음은 그 기억 속에 유폐된 인물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인물들이 삶의 영역으로 나오도록 이끄는 통로이다. 그 통로의 끝에서 인물은 좌절과 절망 같은 심리의 장막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타자와 조우한다. 그런데 여기서 작중 인물의 병적 증후나 자살 등을 유발하는 가족의 죽음을 두고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음으로써 현실에 내재한 모순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죽음의 기억은 인물의 내면에 일상에 적응할 수 없을 만큼의 정신적 상흔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어린 시절 농약을 먹고 자살한 아버지와 동네 아이들에게 매맞아 죽은 동생 진규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질주’의 인규, 생모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저녁빛’의 제헌,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동반 자살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심각한 결벽증을 앓는 ‘여수의 사랑’의 정선 등을 보면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이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부적응이라는 요인을 촉발하는 정신적 상흔으로서 작동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인식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조건을 문제 삼는 쪽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말하자면 한강의 관심은 불행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드러내는 측면에 놓인다. 따라서 작가는 가족의 죽음을 인물의 기억 속에 저장해 두고,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용서와 증오 등과 같은 보편적 주제와 연결시킴으로써 특정 시대, 특정한 상황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을 탐색하려 한다.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 그러한 정신적 상흔으로 인한 병적 징후, 죽음과 같은 음울한 기운이 만연한 일상에의 부적응, 기억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등으로 구성된 서사가 ‘여수의 사랑’ 전편을 관통한다. 이러한 서사구조를 깔고 작가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둡고 침울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설정된 타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 안에 오롯이 담긴다. 가령,‘여수의 사랑’을 보자. 이 작품에서는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먼저, 정선의 경우. 여수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술에 찌들어 살다가 결국 정선과 어린 동생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꾀한다. 혼자 살아남은 정선은 서울에 살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정선은 서울을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이 만연하고, 온갖 병균이 득실한 곳으로 여긴다. 그곳에서 정선은 ‘결벽증’과 같은 병적 증세에 시달린다. 다음 자흔의 경우. 그녀는 두 살 때 서울역에 버려져 고아가 된 뒤 보육원 생활을 거쳐 입양이 된다. 돈에 대한 욕심도, 행동거지에 조심성도 없다.‘모든 것을 생각 없이’ 다루는 그녀는 아무 희망도 없이 도시를 옮겨 다닌다. 자흔은 일상의 ‘나’와 또 다른 ‘나’의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핏기가 없는 데다가 입가와 뺨에 온통 하얗게 버짐이 피어 흡사 분가루를 뒤집어쓴 광대 인형’ 같은 것이 일상의 ‘나’이고, 늘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사에 무관한 채 ‘견고한 평화가 어른거리는 얼굴’,‘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천진한 영혼’을 가진 것이 또 다른 ‘나’이다. 또 다른 ‘나’는 여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고향도 모르는 자흔은 성인이 되어 문득 찾게 된 여수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수를 고향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상의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로 거듭 태어나고자 한다. 그녀에게 여수는 풍경이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품은 공간으로 인식된다.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 온갖 병균으로 득실한 ‘서울’에 대비되는 여수란 과연 어떤 곳인가. 길 여기저기에 소들이 쟁반만 한 똥을 갈겨놓은 진짜 시골이었어요.(중략) 그냥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마을 앞 버려진 부두에는 누더기 같은 천막이며 더러운 판자때기들이 뒹굴고, 검푸른 물결은 갯벌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가 밀려가고……염소 울음 소리, 새소리, 바람, 두엄 냄새, 일하는 아낙네들……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낯익은 것이 없었는데도 마치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품속에 돌아와 있는 것 같았어요.(‘여수의 사랑’,50∼51쪽) 따뜻한 산수화 한 폭을 보고 있는 듯한 여수의 풍경은 자흔에게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으로 각인된다.‘푸른 실 하나하나를 촘촘히 엮어 놓은 것같이 잔잔한 만’에 염소 울음소리와 새소리가 있고, 바람이 불고, 두엄 냄새가 나며, 그런 자연적인 것들과 어우러져 백발 성성한 노인과 머릿수건을 쓴 아낙네, 상고머리 소년들이 일을 하는 곳,‘무덤’마저 ‘착하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곳, 그곳이 바로 자흔의 기억 속에 자리한 ‘여수’이다. 고향도 모른 채 고아로 자란 그녀에게 여수는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의 고향으로 살아 숨쉰다. 여수로 표상되는 이 세계야말로 자흔에게 인간다운 삶을 가능토록 하는 타자이다. 그녀가 여수를 갈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도시의 삶을 견디기 위해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녀가 물고기 키우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까닭은 자신이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이다.“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서 물고기가 되고자 하는 일이란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로 흘러들어 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일상의 ‘나’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와 일체가 되고자 하는 또 다른 ‘나’를 지향하는 자흔을 통해, 정선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상흔으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정선에게 죽음의 기억이 서린 여수는 병적 증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자흔은 그런 정선에게 여수를 이야기하고, 그럴 때마다 정선의 결벽증은 심해진다. 그러다가 정선은 차츰 자흔을 통해 환기되는 여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자흔이 그녀의 곁을 떠나자 정선 역시 여수행 기차를 탄다. 정선의 여수행은 자흔처럼 일상의 ‘나’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여수를 사랑하는 ‘나’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여행이다. ‘여수의 사랑’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타자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작가가 천착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인간은 불행한 존재다.’라는 관념의 영역에서 설정된 것이어서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리얼리티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여수’라는 타자가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몸피를 얻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천착이 심화되어야 하며, 더불어 그렇게 얻어진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탐구해 들어가야 한다. 3. 맨얼굴에 담긴 관(觀)의 사유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타자’가 되기 위해 작가의 인식이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어둠의 사육제’와 ‘아기부처’에서 이뤄진다. 이들 작품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향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데 주력한다. 그 방법은 ‘가면 벗기를 통한 맨얼굴 찾기’와, 용서라는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하는 ‘관’의 사유로 구체화된다. ‘어둠의 사육제’를 보자. 먼저 주목할 것은 ‘서울’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이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여전히 ‘어둠’이자,‘인간들의 더러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무덤’으로 인식한다. 죽음의 기억이 이러한 인식을 이끌어내었던 초기작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서울의 구체적 현실에 천착하여 그 속에 내재된 동물적 폭력성을 감지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인식이 현실에 밀착해 있음을 보여준다. 얼마나 세상에 밟히고 뒤둥그러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을, 번들거리는 눈과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를, 그 이상 철면피할 수 없을 되바라진 억양을 묵묵히 관찰하며 나는 연민이나 환멸이라고만은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슬픔에 사로잡히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0쪽) 중년 여자는 자신의 얼굴을 실수로 때린 여대생에게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전철에서 뻔뻔스럽게 자리 양보를 요구한다. 비단 중년 여자뿐만이 아닌 이 작품의 여러 인물들에게서 모두 감지되는 동물적 폭력성은 이후 전개되는 한강의 소설에서 현실 인식의 한 증좌가 된다. 나(영진)와 인숙 언니는 같은 고향 사람으로 둘 다 서울로 상경한다. 영진은 ‘세상에 대해 좋은 것만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인숙 언니는 ‘커다랗고 감정이 풍부했던 눈이며 부드럽기만 했던 입매’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로 올라와 변화한다. 여직공이던 인숙은 ‘거친’ 말씨를 내뱉고 ‘나쁜 쪽만 생각’하는 ‘독한 사람’으로 변한다. 무역회사 경리를 하면서 돈을 모아 대학 영문과에 진학할 생각을 하던 영진은 인숙이 전세금을 빼들고 도망가자,‘악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품고 ‘인간에게 살의를 느끼는 사람’으로 변한다. 명환 역시 ‘본래 선한 사람’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고 ‘모든 인간들에게 살의’를 품는다. 간암을 치료하기 위해 전세금을 갖고 도망간 인숙이나, 그 인숙으로 인해 ‘독기’를 품은 ‘나’나, 돈으로 용서를 구해온 가해자에게 복수를 꾀하는 명환이나, 모두 중년 여인처럼 동물적 분노와 보복심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어둠 속에 꼿꼿이 네 발을 세운 채로, 경련하는 암고양이의 모습을 소리없이 주시하고 있는 검은 수고양이의 모습은 흡사 악령 같았다.(‘여수의 사랑’,223쪽) 쥐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고양이를 냉혹하게 주시하는 악령 같은 수고양이는 동물적 폭력성이 난무하는 현실을 환유하는 장치이다. 영진과 인숙, 명환 등은 바로 이 동물적 폭력성에 길들여진다. 이러한 동물적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가면을 벗음으로써 맨얼굴을 찾는 것이 그 첫 번째 방법이다. 동물적 복수심으로 남을 괴롭혀 온 명환이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빈손’,‘완전한 빈 몸뚱이’가 되기 위해 자살하는 모습을 보고, 영진 역시 그런 복수심을 버리고 간암 치료를 받는 인숙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가면 벗기와 맨얼굴 찾기가 이뤄진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객실의 음산한 풍경 속에 내 얼굴은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나는 그 가면 같은 얼굴을 뒤집어쓴 사람이 더 이상 눈물 따위를 흘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1쪽)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상에 길들여진 자들의 뻔뻔스러운 얼굴을 표상하는 ‘가면 같은 얼굴’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은폐한다. 그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인 동물성을 표상하는 수고양이의 것에 가깝다. 작가는 가면을 쓴 비정한 일상의 인간들에게서 발견한 물질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 가족이기주의와 같은 현실의 모순을 비판의 목록에 등재한다. 동물적 폭력과 복수심에 길들여진 일상의 가면을 벗고 또 다른 ‘나’의 맨얼굴을 획득할 때 비로소 용서와 화해를 품을 수 있고, 또한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하다. 요컨대, 맨얼굴 찾기가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일차적 방법인 셈이다. 맨얼굴로 도심의 일상에 나서는 영진에게서 현실을 향한 적극적인 대응 의지가 엿보인다. ‘어둠의 사육제´가 동물적 폭력성이 길들여진 가면을 벗고 그것에 오염되지 않는 맨얼굴을 되찾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아기부처´는 그 맨얼굴이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를 ‘언외언(言外言)´과 ‘관(觀)´의 사유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 주인공 선희는 프라임타임의 앵커인 남편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한다. 남편은 어릴 적에 입은 화상 흉터를 감추려고 철저하게 긴 옷을 입는다. 선희가 감기에 들자 자신에게 감기를 옮길까봐 병원에 가보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그는 말실수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고, 독단적인 인물로서 출세를 위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선희는 처음엔 남편의 흉터를 보고 고됐을 그의 삶을 연상하지만, 결혼 후 이기적이고 권위적이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남편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남편의 화상 흉터를 싫어하게 된다. 자신의 흉터를 보듬어 줄 사랑을 찾아 남편은 외도를 하고 선희는 남편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나는 한갓 짐승이었다. 땀에 젖어 산비탈에 엎드린, 누더기 같은 한겹 가죽만 남은 병약한 짐승이었다. 그 가죽 안에서 악취나는 거품처럼 부글거리고 있는 것은 오래 묵은 분노와 후회와 증오, 억울함과 자책감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것들이 내 살을 속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식시켜 왔다(‘내 여자의 열매’,111쪽) 현실의 동물적인 폭력성에 선희는 철저히 희생당한다. 그 결과 남편과 세상을 향해 분노와 증오를 쌓아간다. 그렇지만 분노와 증오는 앞서 ‘어둠의 사육제’의 인물들처럼 스스로를 동물적 존재로 만들 뿐이다. 그런 동물적 삶으로 인해 선희는 황폐해져 간다. 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선희의 모습은 꿈 속 아기부처의 얼굴에 비춰진다. 아기부처가 짓는 표정들은, 음흉한 입꼬리와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거나, 차갑게 빈정대는 눈꼬리를 한 그녀의 내면과, 진흙이 끈적이며 달라붙기도 하고, 모래가 되어 부서지기도 하는 남편과의 현재 관계를 거울처럼 되비친다. 아기부처의 얼굴은 선희가 병약해가는 것이 “마음속에 맺힌 악취 나는 감정들” 때문임을 깨닫게 하는 경고의 스크린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기부처로부터, 동물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나 몸짓’ 속에 현현하는 ‘언외언’에 있다.‘몸짓’으로서의 ‘언외언’은 ‘말’이 야기하는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남편, 어머니, 아기부처와 선희는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소통함으로써 화해한다. 어머니의 불화 그리기, 아기부처의 얼굴 빚기, 혹은 언어 장애 아동을 위한 삽화 그리기 등이 ‘언외언’의 도정에 가로놓인다. 아이, 까르르 웃는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외친다. ‘가자!’ (중략) 아이의 손을 번쩍 들게 하고 엉덩이도 약간 띄워서 아이가 펄쩍 날아오르는 것처럼 해야겠다. 아빠의 몸까지 함께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해야겠다.(‘내 여자의 열매’,102쪽) 언어장애아동처럼 언어를 거부하는 것은 말의 논리와 체계, 즉 말을 배우면서 사회로 편입되는 사회화과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일상 현실의 ‘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아버지의 노력에 힘입어 자기 안의 성벽을 허물고 드디어 입을 연다. 선희는 그들이 느꼈을 법한 기쁜 감정을 몸짓에 담아 삽화로 그려내야 한다. 아이와 아버지의 “날아오르는” 듯한 몸짓에 ‘기쁘다’는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이 담긴다. 삽화를 그리며 깨닫게 된 ‘언외언’은 남편의 흉터를 어루만지는 몸짓에 담긴다. 남편이 다른 여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머리를 짓찧을 때 선희가 남편의 머리를 감싸안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몸짓’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말’ 그 자체에는 은폐된 ‘무엇’이며,‘침묵’의 빈 공간에, 말없이 이루어지는 ‘몸짓’ 속에 실재한다. 결국 언표화 되지 않는 마음을 환기시키는 방법은 ‘언외언’에 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인가. 이 작품에서 ‘언외언’의 심층을 ‘관(觀)’의 사유가 가로지른다.‘말’의 폭력성 때문에 갇혀 있던 용서와 화해의 마음은 ‘관’의 사유에서 풀려난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나누는 구분 자체를 초월한 곳에, 그리고 속물적인 욕망을 넘어선 자리에 “관”의 사유가 존재한다. 일상을 지배하는 논리규범에는 담길 수 없는 진정한 마음이 “관”의 사유 속에서 우러나온다. (i)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내 여자의 열매’,104쪽) (ii) 관음의 입술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귀가 퍽이나 예민한 이인가 보았다. 빗소리를 듣다가 깨달음을 얻었고, 늘 세상사람들의 소리를 관(觀)하고 있어 괴로이 부르는 음성을 듣는 즉시 곧 구제해 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내 여자의 열매’,105쪽) 삶의 고통을 인내하고, 마음속에 관세음보살을 잉태하듯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마음을 잉태하는 것, 그럼으로써 일종의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관’의 사유이다. 선희는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부부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깨닫는다. 자신이 그동안 봐왔던 남편의 모습은 실은 화상을 입은 그의 껍질에 지나지 않음을, 정작 남편의 마음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 밑에 고통스럽게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 목련(木蓮)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올려다보자, 하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 봉오리들은 마치 꽃잎 안에 흰 등불들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117쪽)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겨울 나무에서 봄의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겨울부터 저 날카로운 솔잎들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같은 푸른색이지만 분명히 달랐다. 방금 나온 어린 싹 같은 연푸른빛이 생생하게 차올라 있었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내 여자의 열매’,125쪽) ‘아기부처’의 마지막 장면이다. 겨울 지나 봄으로 가는 문턱에서 자연을 보고 느낀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같은’ 푸름에서 ‘다른’을 간취하고, 겨울부터 ‘지속’되는 것들 가운데 ‘방금 나온’ 생명의 시작을 발견한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진다는 획일적인 공식이 아닌, 한 나무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색의 잎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긍정하는 사유, 앙상한 겨울나무에서도 미세한 생명의 떨림과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그것이 바로 ‘관’의 사유이다. 이 관의 사유를 마음속에 지닐 때,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의 삶을 극복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지향할 수 있다.‘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잠언과 같은 감탄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4. 식물성을 향한 욕망의 존재론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서의 맨얼굴과 ‘관’의 사유는 작가가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 현실의 삶에 뿌리내리면서 발견한 중간 경유지이다. 이 방식들은 의식의 층위, 마음의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층위는 평면의 동심원에서, 외원을 이루는 동물적 폭력성이 강렬한 외파로 밀고 들어올 때 위태롭게 흔들리는 내원과도 같다. 그 어떤 외파도 견딜 수 있기 위해서는 의식과 마음이라는 동심원의 평면 저 아래 깊은 심연에 자리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그것을 심화시켜야 한다. 요컨대 타자와의 합일을 향한 무의식의 강렬한 욕망이 있다면, 그래서 의식의 수면을 꿰뚫을 정도로 강렬하다면, 그럴 때 현실의 외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한강은 ‘내 여자의 열매’를 거쳐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연작에 이르는 도정에서 욕망의 영역으로 작가 인식을 심화시킨다.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이 순간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 무의식의 심연에 자리한 욕망의 영역이 설정되고, 그 결과 관념에 지나지 않았던 ‘여수’ 대신 ‘식물성’의 세계가 새로운 타자의 자리에 위치한다. 이 타자는 여수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현실 저 너머의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자,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한 타자이다. ‘내 여자의 열매’는 식물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식물적 상상력이 길어내는 삶의 진실은 그 힘이 아직 미약하다. 현실도피의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일상이 싫어서, 도심의 똑같은 아파트가 싫어서, 지긋지긋한 피를 갈고 싶어서, 어머니처럼 되기 싫어서, 어디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없어서 결국 식물이 된다는 가정이 단순한 현실도피를 방증한다. 그리고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인물의 욕망 역시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식물성의 세계를 강렬히 욕망하는 인물에 의해 식물성의 세계가 온전히 개화하는 작품은 ‘몽고반점’이다. 이 작품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와, 몽고반점을 가진 처제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근친상간을 예술적 시선과 현실 윤리의 시선 속에서 포착해낸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처제의 욕망과 그의 욕망이다. 우선 처제의 욕망을 보자. 그 욕망은 그의 눈에 포착된 몽고반점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채식주의자’,101쪽) 처제의 몽고반점은 ‘순수성’ 혹은 ‘순수한 영혼’을 표상한다. 곧 ‘어린아이’처럼 처제는 일상의 폭력성에 물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붓칠에 의해 ‘순수한 영혼’이 육체에 새겨진 ‘몽고반점’으로 가시화된다. 꽃을 그려 넣는 행위는 폭력적인 일상에 의해 상처받은 인간의 몸에 ‘순수한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식물성을 부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처제는 “뱃속의 얼굴”에 대한 무서움을 이겨낸다.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은 그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진정한 욕망을 의미한다. 뱃속의 얼굴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진 까닭은 일상의 질서에 자신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날 때 그 얼굴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처제는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가시화한 꽃 그림에 힘입고, 그녀 자신에게 내재해 있던 진정한 욕망을 발견함으로써,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로 풍겨 나오는 처제의 “배냇내”는 타자와의 합일이 뿜어내는 식물성의 ‘향기’인 셈이다. 몽고반점, 즉 꽃잎 그림자로서의 순수한 영혼과, 몸 혹은 꽃으로서의 진정한 욕망이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세계, 그것이 ‘색채의 세계’로서의 식물성의 세계이다.“색채의 세계”는 “격렬한 세계”이자,“마술적” 세계이고,“전혀 다른 세계”이다. 식물성에 대비되는 동물성의 세계는 일상에 만연해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함축한다. 그것은 육식성, 적자생존, 약육강식 등으로 점철된 일상이자 문명의 세계를 표상한다. 반면에 식물성은 순수성과 공존의 세계이자, 가족의 윤리마저 붕괴되는 탈일상이자 탈문명의 세계로 압축된다. 인간의 몸과 꽃, 그리고 짐승이 뒤섞인 교합에서도 드러나듯, 식물성의 세계는 “추악하면서도 아름답고” 동시에 “삶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고,“모든 것이 담겨 있는”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곳”이기도 한, 차별상을 가진 일체의 것이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인 것이다. 하기에 처제가 욕망하는 식물성의 세계는 처제와 형부의 불륜관계처럼 제도의 금기마저 초월한 곳에 있다. 현실 제도의 금기를 위반하는 욕망이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은 오로지 ‘죽음’과 ‘광기’의 영역 안에서이다. 곧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은 금기의 위반에서 맛본 죽음과도 같은 향유(jouissance)를 안은 채 죽음을 향해 돌진할 것인가, 아니면 ‘광기’로 내몰려 사회로부터 배제당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건 모두 일상에서의 ‘죽음’과도 같은 귀결로 치닫는다. 처제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치열하게 표출한다. 그렇다면 그의 욕망은 어떠한가. 그의 욕망은 육체적 욕망과 예술적 욕망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유동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모되고 찢긴 인간의 일상”을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강직한 성직자”로 불릴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러다가 처제의 자해사건을 겪으면서 그가 작업했던 것들 역시 일상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그가 찾았던 “더 고요한 것, 더 은밀한 것, 더 매혹적이며 깊은 것”으로서의 실재를 현현하고 있었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에게 이미지가 갖는 재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그는 지금까지 작업해 온 일상의 폭력성을 담은 이미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했든 간에 상관없이, 실재의 고통과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한계는 삶의 여러 국면에서 용솟음치는 욕망과 대면할 때마다 현실과 욕망의 경계 선상에서 그가 느꼈을 법한 환멸과도 같다. 그는 근친상간이라는, 현실의 금기를 위반하며 욕망의 극단에 잠시 도취된 결과, 잡으려 했던 욕망의 실재가 허망하게 스크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의 욕망은 처제가 보여주었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욕망의 시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욕망은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자신의 육체적 쾌락 앞에 예술적 욕망을 무릎 꿇린 결과를 낳고 만다. 여기서 ‘그’의 욕망을 작가 한강의 글쓰기의 욕망과 연결시킬 수 있다. 처제와의 근친상간을 통한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애초의 글쓰기의 의도이다. 이 의도대로라면, 작중 인물은 ‘그’와 처제만으로 충분하다. 두 인물의 근친상간을 담은 캠코더의 화면처럼, 근친상간 그 자체만을 다루면서 식물성의 세계를 오롯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본래 기획이고,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밀실에서나 가능하다. 그것이 공적인 장으로 나올 때(발표될 때), 현실로부터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로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비난을 피하고, 작가가 생각한 본래의 의도를 어느 정도 형상화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내’이다.‘아내’는 현실 사회의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윤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아내’의 등장에 의해 ‘그’와 ‘처제’의 근친상간은 작품 속에서 불륜으로 비판된다. 작가는 ‘아내’를 작품 결말 부분에 등장시켜 이 작품이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이라는 비판을 비껴나가게 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본래 지향하는 예술(식물성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의 측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한편으로는 작가 한강의 영민한 균형 감각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화한 예술을 공적 영역으로 드러내기에는 아직도 현실의 억압과 금기가 완강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작가의 비판 의식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본래적 욕망과 안전장치가 균형을 이루면서,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으로 이어지는 연작이다. 이들 소설에서 영혜라는 인물은 그녀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 속에서 포착된다. 세 인물은 각각 독특한 인물형을 표상하며, 그 인물형이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드러낸다.‘채식주의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나)은 속물을,‘몽고반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부(그)는 예술가를, 그리고 ‘나무불꽃’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언니(그녀)는 일상에 함몰되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을 표상한다. 그들은 모두 길들여진 욕망에 사로잡힌 채 진정한 욕망을 추구하려는 영혜를 경계 밖으로 일탈한 인물로 취급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광인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영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욕망을 지켜내려 한다. 연작에서 교직된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인식하는가. 혹시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욕망이란 ‘광기’와도 같은 것, 정상의 영역을 벗어난 것, 그래서 죽음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영혜는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런 영혜에게 작가 한강의 깊고 고통스러운 숨결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한강의 고민이 바로 진정한 욕망의 탐구 위에 있음을 방증한다. 5. 텍스트의 독법, 타자를 향하여 한강의 소설은 탄탄한 서사구성으로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 텍스트 간의 긴장관계까지도 탄탄하게 조여 낸다. 그런 까닭에 한강의 소설 전체를 하나의 텍스트로서 파악하는 독법이 필요하다. 일종의 텍스트 간 소통의 재구성 방식이다. 그 하나로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내밀하게 파헤치는 방식.‘여수의 사랑’에서 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둘, 둘 이상의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마주 보기.‘저녁빛’이나 ‘진달래능선’,‘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서로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듬어주는 중층적인 시선들이 교직된다.‘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식물 되기를 꿈꾸는 인물의 내면을 편지 형식으로 삽입하고 지켜보는 시선에 남편을 배치한다. 셋, 동일한 사건을 겪는 인물들의 다중초점화.‘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이 만드는 연작 형식.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채식주의자’는 그녀의 남편의 시선에,‘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선에,‘나무불꽃’은 언니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영혜를 바라보는 중층적인 시선들을 세 작품에 나누어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식물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영혜의 욕망을 보여주고, 그녀의 욕망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부각시킨다. 더불어 텍스트마다 화자를 바꾸어 조명함으로써 각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 결과 각 인물들은 세 텍스트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선에 의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 ‘지금, 이곳’의 리얼리티를 무수히 직조한다. ‘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 꿈꾸는 ‘여수’에서부터 출발하여 ‘채식주의자’ 연작에서 영혜가 꿈꾸는 ‘나무 인간의 세계’로 나아가는 한강의 소설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게 결여된 빈 공간이자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가는 지난한 행보를 보인다. 한강은 그러한 타자와의 합일을 지향함으로써 폭력적인 일상 속에서 위협당하는 나약한 인간 존재를 보듬고자 한다. 작가 한강이 어두움의 세계, 즉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들에 은폐되어 있는 죽음, 성, 욕망 등을 공론화의 장으로 내어 놓고, 그럼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더욱 값진 의미를 갖는다.
  • “콜롬비아 인질석방 다큐에 담는다”

    “콜롬비아 인질석방 다큐에 담는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인질석방 과정을 지켜볼 국제감시단에 참여한 미국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이 인질석방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다룰 예정이다. 영화 ‘플래툰´ ‘7월4일생´ 등을 만든 스톤 감독은 인질석방 현장에 대한 독점 촬영권을 확보했다. 스톤 감독은 30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비야비센치오에서 AP통신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FARC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싸우는 농민군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요청으로 감시단에 합류한 스톤 감독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 9명으로 구성된 국제감시단과 함께 콜롬비아 인질 3명의 석방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스톤 감독은 또 “이번 인질석방 과정은 현재 제작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에 삽입될 것”이라며 “거기에서는 남미 현황과 차베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 다른 인물들도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악명 높은 마약 밀매업자로 1993년 사살된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한편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온 콜롬비아 좌익게릴라 인질 석방은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다.AP 등에 따르면 인질을 억류중인 FARC는 30일까지 최종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인질들이 언제 석방될지 불투명하다. 사회주의를 꿈꾸며 1966년 결성한 FARC는 미국 마약감시단원 3명 등 수백명을 인질로 붙잡고 있으며,2002년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에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클라라 로하스와 아들, 콘수엘로 곤살레스 전 하원의원 등 3명을 이번에 풀어주겠다고 밝혔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외교·안보·통일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외교·안보·통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는 28일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선 경선 후보의 외교·안보·통일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외교·안보·통일 분야 공약은 기본적으로 DJ정부와 참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원칙 없는 퍼주기로 인한 실패’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때문에 두 후보 모두 한·미 안보협력체제를 강화·발전시켜 ‘힘에 바탕을 둔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두 후보는 북핵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북방한계선(NLL) 양보는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 후보는 지난 11일 열린 3차 TV토론회에서 “주한미군 철수 등을 양보한다면 차기 정권에 굉장한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 역시 “헌법에 위배되는 통일방안에는 합의하면 안 된다.”면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까지 언급했다. 하지만 힘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은 여전히 냉전과 남북대결구도라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이철기 교수는 “정전체제 종식과 북·미 간의 대사급 수교가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 두 후보의 통일분야 공약과 정세 인식은 뭔가 한참 부족해 보인다.”면서 “보수적 지지층의 눈치를 봐야 하고 햇볕정책의 성과를 인정할 수도 없는 양 후보의 딜레마가 공약에 그대로 베어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수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냉전적 정체성’을 고집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명박의 안보·통일 공약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대북 정책의 기본 골자는 ‘경제 줄게, 평화 다오’식의 경제와 평화 교환 전략이다.‘비핵·개방·3000’ 공약은 북핵을 제거하고 북한의 경제를 수출 주도형으로 전환해 현재 500달러 수준인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뒤 3000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 측은 ▲300만달러 이상 수출기업 100개 육성 ▲30만 산업인력 양성 ▲400억달러 상당 국제협력자금 조성 ▲신경의고속도로 건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지원 등 ‘5대 분야 패키지 지원’을 수단으로 제시한다. 한강 하구의 하중도에 여의도 10배 크기인 900만평 규모의 남북경제협력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나들섬’ 구상도 북한에 제시할 당근 중 하나이다. 남측의 기술·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된 신도시 형태로 해외이탈 중소기업도 유턴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후보의 ‘북한 부흥안’은 통일을 위해 북한 경제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 후보의 대북 정책은 한국판 ‘마셜 플랜(2차대전 이후 유럽에 대한 미국의 원조 정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판-“남한에 흡수통일 되지 않으면 불가능”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이철기 교수는 “국민소득 3000달러 달성을 위해 필요한 북한의 연간 17% 고도성장의 현실성도 의문이지만, 더 큰 문제점은 남한식의 개발독재형 경제정책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이라면서 “이 구상은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돼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지 않는 한 불가능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제시하면서도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구체적인 정책은 없다.”면서 “개발지상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북한을 경제 식민지화하려 든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보측 재반박-협상 테이블 유인책 이 후보 측은 “비핵·개방·3000 공약은 북한이 체제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당근 내지는 미끼”라면서 “북한에서도 공약 내용에 관심을 보이며 자세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비공식 제안했다.”고 밝혔다. ■박근혜의 안보·통일 공약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대북 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핵 폐기 뒤 지원’이라는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박 후보는 ‘북핵 폐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박 후보는 ▲평화 정착 ▲경제 통일(작은 통일) ▲정치 통일(큰 통일)이라는 ‘3단계 평화통일론’을 내세운다. 전제조건은 북핵 제거와 군사적 대립구조 해소다. 박 후보 측은 “정치적 통일에 성급하게 매달린다면 혼란을 초래하고 통일 비용만 커질 뿐”이라며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박 후보 측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선군정치를 폐기하고 선민정치로 나와야 대화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면 보상하고, 합의를 깨면 불이익을 주는 ‘변화의 인센티브’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6자회담 당사국들과의 철저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후보 측은 “시간을 끌 수록 북한의 핵보유는 기정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비판-“당근과 채찍 조화 쉽지 않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박 후보의 대북정책은 소신과 힘이 있어 보이지만, 북한이 그 뜻을 전혀 따라주지 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사실이 이런 대북정책의 성공을 의심스럽게 한다.”면서 “당근과 채찍 정책을 조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로 부시 행정부의 힘있는 초기 대북정책도 결국 북한의 핵무기 수준만 더 높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박 후보의 공약은 당근과 채찍론,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 불가 등의 내용에 있어 ‘실패한 부시의 대북정책론’과 거의 같다.”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부시가 결국 북·미 양자 대화와 확실한 인센티브 제시를 통해 2·13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후보측 재반박-행동바탕 신뢰 구축해야 박 후보 측은 “2·13 합의의 핵심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으로 국제사회가 북측의 행동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북핵을 폐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핵을 가진 북한과는 결코 평화공존할 수 없으며, 의구심이 남는 결과는 수용 불가”라고 밝혔다. ■홍준표·원희룡의 외교·통일 공약 홍준표·원희룡 후보는 햇볕정책의 수정을 주장하는 이명박·박근혜 후보와 달리 ‘햇볕정책 계승’을 외교·안보정책의 큰 틀로 잡고 있다. 홍 후보는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통한 통일’을 지향한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야 핵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남북 경제공동체를 구성하고, 남북 상주대표부를 교환설치해 민족동질성 회복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 남북 경협에 정부예산 1% 지원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북한이 핵폐기를 완료하면 북한 경제재건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두 후보 모두 ‘실용주의적 노선’을 표방한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차이가 난다. 홍 후보는 대미 자주노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원 후보는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오히려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념 중심의 친미-반미 논쟁을 털고 서로 이기는 ‘윈윈(Win-Win)’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후보 모두 동북아 중심의 다자적 외교관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데는 입장을 같이 한다. 눈에 띄는 공약은 홍 후보의 ‘무장 평화’와 원 후보의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공약이다. 홍 후보는 통일이 될 때까지 ‘무장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후보의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는 재외국민의 온·오프라인 공동체를 강화하고, 약 300만명의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겠다는 공약이다. 재외국민과 동포의 원어민교사 임용 확대도 약속했다. 두 후보 모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체성 부족’이다. 홍 후보의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공약은 추상적이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특구 등 기존 정책과의 차별성도 모호하다. 원 후보도 핵 폐기 후의 북한경제 재건 프로그램의 방향이나 규모, 시행 시기 등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특별취재팀 이창구 유지혜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정치꾼과 정치인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정치꾼과 정치인

    정치(政治)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행위다. 정치의 구성원인 정치인들은 따라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 즉 삶의 질 향상에 가장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정치꾼들만 득실거리고 진정한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에겐 오로지 금배지만 보이는 것 같다. 금도를 넘어선 네거티브 공세에 혈안인 한나라당이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 급조 정당을 만든 범여권이나 매한가지다.17대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여의도 정가는 과거 어느 때보다 혼탁하고 어지럽다. 몇개월 사이에 당적을 바꾼 의원들은 수십명이다. 보따리 풀기 무섭게 다시 싸는 형국이다. 이들 의원의 지역구민들은 어느 당 소속인지조차 헷갈린다. 분당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한나라당의 심각한 내홍 양상은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주자 주변에 이러한 정치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줄 선 후보가 이기면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당선은 떼어논 당상이란 생각에 같은 당 식구라는 동료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밖에 있지 않다. 듣기에도 민망한 정치공작이니 프락치니 하는 말들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툭하면 상대방 후보의 후보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두 진영이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것을 방증한다. 범여권의 움직임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85명의 의원으로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은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올드보이부터 몇 달 사이에 여러 번 당적을 바꾼 철새 의원들까지 정치꾼들이 주력 부대다. 여기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도 평소 정치적 성향을 뚜렷이 해온 터라 ‘순수(純粹)’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구성원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 ‘미래창조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미래창조를 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명을 급히 바꾼 것은 물론 열린우리당의 당헌과 강령을 베끼다시피 한 일, 창당 전당대회 몇시간 전까지 대표를 정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최고위원 명단을 바꾸는 웃지 못할 일은 급조 날림 정당, 잡탕 정당이란 비판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하드웨어도 그렇지만 소프트웨어도 문제다. 대부분이 열린우리당 출신인 만큼 그간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온 것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내부 쇄신을 바탕으로, 어떤 이념과 노선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필수적임에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반(反)한나라당 구호와 기치만 내걸고 정권 재창출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자고로 정당은 이념과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소신과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결코 다른 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대선이나 총선 패배시 사라지고 마는 포말정당에 지나지 않는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이나 이인제의 국민신당이 다 그런 경우다. 김성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통합신당은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라 별로 참신할 것도 없는 일부 시민사회 인사들을 들러리로 내세워 마치 새로운 정치세력인 양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정치상인연합회’라는 표현까지 썼다. 국고보조금이나 받으려고 부랴부랴 창당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치를 어지럽히는 정치꾼들이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민이다. 표의 심판을 말한다.12월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이 중요한 이유다. 진정한 정치인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jthan@seoul.co.kr
  • [문화마당] 나의 쇼핑문화 변천사/김수이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문화’라는 말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문화강국, 교육문화, 한류문화, 거리문화, 여가문화, 쇼핑문화, 차(茶)문화, 문화체험, 문화산업, 문화주권…. 우리 삶의 A에서 Z까지 모두 문화로 승화되고 재정비되고 있는 느낌이다. 현대인의 삶 전반을 관장하고,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은 ‘문화’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간단하다. 문화란 ‘인간’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다. 문화는 인간답게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을 말한다. 비인간적인 것, 인간의 숨결과 온기가 빠져 있는 것은 문화가 될 수 없다. 문화는 즐거움이 되고, 감동이 되고, 추억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 바탕에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물건을 사고 파는 인간의 경제적 거래행위도 훌륭한 문화가 될 수 있다. 어렸을 때 시골 장터나 읍내 재래시장에서 나물과 두부, 돼지고기 반근, 기차표, 운동화 등속을 산 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경제적 기억이 아니라 문화적 기억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 기억은 이미 그 사람의 존재와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 실제로 시골 장터나 재래시장은 재화의 유통을 위한 경제공간이자, 인간을 위한 문화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질박한 웃음과 푸짐한 덤, 단골과 소문과 정보, 뚝배기문화와 도시의 새로운 물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배추 한단이나 양말 몇켤레를 사러 가서도 시장을 몇바퀴나 돌았던 것은 단지 싸고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흥미진진하고 정겨운 문화를 한껏 누리기 위해서였다. 미당 서정주의 시구를 빌리면,“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뻐”(‘해일’)서 말이다. 그랬던 우리가 백화점과 할인마트로 발길을 돌린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백화점에서 쇼핑백을 몇개씩 채우고, 할인마트에서 대형카트 수북이 거의 ‘미친 듯이’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훗날 어떤 추억을 갖게 될까. 무표정한 얼굴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이 첨단의 문화적(?) 공간에 대해서. 이것이 ‘쇼핑문화의 진화(進化)’인지는 두고볼 일인데, 나만 해도 백화점과 할인마트의 시절을 지나 인터넷쇼핑 시대에 돌입했으니 이 진화의 대열에 열심히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엔 화면을 보고 물건을 사는 일이 어색했지만, 값도 싸고 시간도 절약된다는 점 때문에 금세 나는 인터넷쇼핑 마니아가 되었다. 지난 몇년 간 내가 단골인 S몰에 지불한 돈은 족히 차 한대 값이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인터넷쇼핑이 디지털시대에 맞는 세련된 문화행위라는 자족감까지 갖게 되었는데, 그 자족감은 최근 산산이 깨어졌다. 의자를 산 것이 화근이었다. 직업상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 많은 나는 척추가 휘었다는 진단을 받고 체형맞춤형 고급의자를 샀다. 인체공학 디자인을 채택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의자였다. 제품 안내에는 의자의 전체 크기만 표기되어 있을 뿐, 체형조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배달된 의자는 가장 낮게 조절한 목받침이 내 머리 중간부분에 닿았다. 대략 키 170cm 이상의 남성에게 맞는 의자였던 것이다. 반품이나 교환을 요청했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들은 대답은 이랬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 고객이 전적으로 감수할 일이다. 바꿔줄 수도 반품해 줄 수도 없다.” 그 의자를 옆에 두고,20년 된 기우뚱한 의자에 앉아 나는 세가지 생각을 한다. 첫째, 문화는 인간과 인간적인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나의 인터넷 쇼핑문화는 길을 잃었다. 셋째, 이 최신식 의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나의 답은 이렇다. “‘문화’를 아는 나의 지인들이여, 연락하시라. 가능한 빨리!” 김수이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 [씨줄날줄] 희망의 인문학/함혜리 논설위원

    인문학이라는 개념은 라틴어의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됐다. 후마니타스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도덕적 선, 예술적 아름다움, 학문적 진리의 성취를 추구하는 인문학이 실용성과 효율성,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인문학의 본령을 요즘 인문학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실의 삶과 유리된 채 학문의 세계만 고집하는 탓에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빈민교육 활동가인 얼 쇼리스는 인문학을 현실의 세계로 가져옴으로써 인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는 절대빈곤에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찰적 사고능력이 필요하며, 그 능력은 인문학 교육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희망의 인문학’이다. 그는 1995년 뉴욕 맨해튼에서 노숙인, 마약중독자, 전과자, 최하층 빈민 등 시설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을 실시했다. 강의장소였던 클레멘트홀의 이름을 따서 강좌 이름이 클레멘트 코스라고 불리는데 현재 4개 대륙에서 50여개의 강좌가 열릴 정도로 전세계에 확산됐다. 대한성공회 임영인 신부가 소장을 맡고 있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의 노숙자 인문학 강좌인 성프란시스대학은 2005년 9월 문을 열어 현재 2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노숙인들은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가꿀 계기를 갖지 못했거나 그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 강좌가 그들에게 성찰을 통해 인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게 해준다고 한다. 오는 13일부터는 법무부와 인권실천 시민연대가 의정부교도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수용자를 위한 인문학 과정을 개설한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앞선다. 이렇듯 희망의 인문학 강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인문학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위기를 맞고 있는 인문학 그 자체에도 큰 희망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중도,실체가 무엇인가/강지원 변호사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공동대표

    테니스코트에는 왼쪽 코트와 오른쪽 코트가 있다. 그 가운데 중간코트라는 것은 없다. 선수에겐 좌(左)면 좌, 우(右)면 우지, 중(中)이란 것은 없는 것이다. 중이란 것이 있다면 중간 네트밖에 없는데, 그곳은 선수가 아니라 심판이 서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최근 중도(中道)논쟁이 치열하다. 중도란 무엇이냐에서부터 시작해 위장중도 등등 적대적 담론이 끝이 없다. 심지어 여론조사기관에서까지 당신의 이념성향은 보수인가, 중도인가, 진보인가라고 묻는 경우도 흔하게 있다. 대선주자들의 성향을 묻는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의 이념성향을 ‘보수-중도-진보’로 3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중도가 공간적인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왼쪽과 오른쪽의 중간지대의 범위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테니스선수는 왼쪽 코트면 왼쪽, 오른쪽 코트면 오른쪽, 어느 한쪽 코트에서 경기를 한다. 심판이 아닌 선수가 한가운데 네트 위에 서 있는 법은 없다. 이처럼 사람은 그 시대상황을 보는 시각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어느 한쪽에 서 있게 된다. 파도 위의 배가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고 판단되면 다른 한쪽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념은 보수-중도-진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보수-진보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다만 그 어느 쪽이든 이념의 강도에는 차이가 있고 양측에서 중앙에 좀 더 가까운 지점이 있으므로 이를 중도라고 지칭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중도좌파, 중도우파다. 굳이 세분하자면 강한(strong) 좌파-중도 좌파, 중도 우파-강한 우파로 구분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한데 묶어 중도세력, 나아가 중도정당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있다. 얼핏 듣기에는 매우 그럴 듯하게 들리는 발상인데, 분명한 사실은 이런 시도는 반드시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양쪽 코트의 가운데 일부씩을 묶어놓았으므로 그들 사이에서는 늘 게임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정당사에서 드러난 ‘잡탕정당사’가 바로 그것이다. 또그동안 우리 한반도에서는 좌우의 이념논쟁이 치열하게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착각이다. 치열함이 있었던 것은 기실 좌우논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반민주적 극좌파나 극우파와의 싸움이 있었을 뿐이다. 북쪽에는 아직도 극좌파 적색독재가 지배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북쪽 극좌파의 침공과 극우파 회색독재에 대항해 민주시민들의 고통스러운 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좌파나 우파의 구별도 없었다. 너나없이 힘을 합해 함께 싸웠던 것이다. 저들 극좌파나 극우파는 테니스코트에 비유하면 코트 밖 존재들이다. 그들은 규칙 내 존재들이 아니다. 도덕적으로는 악(惡)의 무리들이고 실정법으로는 반인륜적 범법자로 처단되는 자들이다. 이런 규칙파괴자들은 논쟁의 상대가 아니다. 그저 소탕하거나 참회할 것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남쪽에서 그들은 소탕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코트 안에서 진정한 좌우논쟁을 시작하는 일이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서로 상대를 존중하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념지형에서 중도란 어디까지나 지향점일 뿐 폭이나 범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굳이 폭을 가진 중도라는 의미로 사용하려면 중도좌파인지, 중도우파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마당에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싸잡아 묶으려고 하거나, 애매모호한 중도란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좌우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선진국형 좌우논쟁에 나서야 한다. 국민들을 헷갈리게 해서는 안된다. 강지원 변호사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공동대표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문단의 어른으로서 뜻하지 않게 후배들의 반발에 밀려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상황을 맞게 된다. 오직 한길로 35년을 봉직하던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한다.’이런 상황이라면 시인이 아니라도 섭섭하거나 아쉽거나, 혹은 착잡해지거나 감회에 젖어 많은 말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정희성(62)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이사장은 그러지 않았다. 작가회의 명칭 변경이 무산된 데나, 평생을 지켜온 일터를 떠나게 된 데 대해서 시인은 의외로 평화롭고 담담했다. 맑은 얼굴에 자분자분한 말투. 서울 아현동, 난방도 잘 되지 않는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정 이사장은 과작(寡作) 시인답게 말수도 적었다. ▶정관 개정이 무산됐는데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무산이 아니라 찬반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걸려 결정을 못한 것이지요.24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명칭개정 소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결론을 내겠습니다. ▶작년 1월 이사장에 취임했을 때는 ‘민족문학’이란 용어를 떼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셨는데 그 사이 생각이 변한 겁니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분단 상황에 있기 때문에 민족문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 측면에서 보자면 오랫동안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해 온 결과, 작년 10월 금강산에서 남북한과 해외문학인들을 포괄하는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됐습니다. 민족문학에 분명한 전기가 마련된 셈이지요. 그래서 민족문학은 이 틀에서 다루게 두고, 우리는 명실공히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단체인 만큼 포용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침 젊은 작가들도 그런 생각을 해왔던 모양입니다. ▶‘민족문학’이란 이름으로는 전체를 포용할 수 없을까요. -작가회의는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했고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된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해 온 이미지 때문에 국내에서는 ‘강성’‘좌파’로 몰리는 반면,‘세계작가와의 대화’ 등 국제교류를 할 때는 ‘내셔널’이란 명칭 때문에 극우 민족주의단체로 오해받아요. 또한 요즘 젊은 작가들은 ‘민족문학’개념으론 포섭될 수 없는, 너무도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수용해야 합니다. 총회 석상에서는 ‘문학은 포기해도 민족은 포기 못한다.’는 발언이 나왔지만, 문학이 민족문제만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또 문학을 버리고 어떻게 민족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민족문학론’을 주창했던 백낙청 상임고문이 명칭개정에 찬동하고 있는 이때, 일부 후세대 작가들이 이에 집착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백 교수는 군사독재 시절 민족적 위기의식의 소산으로서 ‘민족문학론’을 전개했다. 민주주의 쟁취와 민족통일을 양대과제로 내세운 한시적 개념이었다. 백 교수는 이제 진영개념으로서 민족문학론은 내실을 잃었다고 보고 새롭게 ‘한국문학론’을 제시한다. 민주화는 완수됐고,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으로 분단체제도 극복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진정한 국민문학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잠시 귀국했던 작가 황석영은 작가회의에 대해 “조직이든 집이든 사람이 만든 것은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친목회 정도의 기능만 남았다면 ‘해소’하는 것도 하나의 역사적 과업”이라고 일갈하고,“분단체제는 남북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라는 확장된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작가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고 절차상의 문제도 있었던 만큼 심도있는 논의와 우편투표 등의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 가겠다고 했다. ▶정든 교직을 떠나시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교직 35년, 문단 37년이니 두 경력이 비슷합니다. 그동안 제자 1만명, 시집 4권에 결혼하여 아이 둘을 길렀으니 행복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엄혹한 시기에 용의주도하게 살았다고도 생각됩니다.70∼80년대 주목받던 저항시인으로 1979년 세계시인대회 시위,1980년 지식인선언 등에 참여하거나 잡혀갔는데도 자신은 훈방되거나 해직되지 않았다. 아마 대학교수가 아니라 고교교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자신이 쓴 시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고무돼 시위에 나서고, 한 여고교사는 시 ‘아버님 말씀’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가 선동죄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괴로움이었다. 용의주도하게 살았다는 말은 이런 책임의식 때문인 듯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도 고교교사로 남겠다며 학위논문을 내지 않았다면서요. -대학교수가 희망이기는 했어요. 그러나 1972년 논문만을 남기고 상아탑에서 나왔을 때는 가파른 유신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직장에서 쫓겨났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학적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달라졌고, 이런 관심에 대한 해답이 아닌 다른 논문은 쓰고 싶지 않아 포기한 거지, 그렇게 깊은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문예창작과가 많이 생기면서 기회가 또 있었지만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후회되지 않느냐니까 “대학교수가 되면 시가 안 좋아지더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사장의 시에는 그 시대의 현실과 급소가 생생하게 표출됩니다. 그런데 요즘의 시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무뎌지신 건가요, 생각이 달라지신 건가요. -가파른 시대에는 쓰지 못했던 사랑에 관한 시들이 많아졌습니다.2000년대 9·11테러 이후에는 평화에 대한 염원을 많이 담고 있지요. 무뎌진 점도 있겠지만 관심의 확장으로 봐 주기 바랍니다. 독자들도 옛날 독재정치에 항거할 때처럼 주먹 쥐고 하는 얘기들은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또한 현실 문제는 그 시대의 가장 젊은 문인들에 의해 잘 포착될 것입니다. 퇴임식 때 다섯번째 시집을 내 동료교사들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결국 편수를 못메워 싱거운 기념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백령도를 다녀와 40행이나 되는 시 ‘몽유백령도’를 썼다. 짧아지던 시가 예전의 호흡을 다시 회복해가는 듯한 느낌이라 기쁘다. 문학은 인간다운 삶을 살자는 데에 그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 이사장이 저항의 시를 썼던 것도, 이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것도, 작가회의가 명칭 변경을 논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히 진행되는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희성 그는… 1945년 경남 창원 출생(만 62세). 공무원인 부친을 따라 충남, 대전, 이리, 여수를 다니며 살았다. 용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국문과를 나왔다.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탁목조’가 당선돼 등단했다.1972년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로 부임해 35년간 재직하고 그제 정년퇴임했다. 글을 쓸 생각이면서 국문과에 입학한 것은 고전문학을 공부해 전통의 바탕에서 창작을 하리라는 계획에서였다. 첫 시집 ‘답청’(1974)’은 그의 생각대로 ‘고전적인 전아함’을 갖춘 시들로 꾸몄다. 그러나 1972년 유신체제에 접어들고 친구들의 해직과 투옥을 접하면서 완전히 다른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나온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에는 칼칼한 저항의 목소리가 담겼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로 시작되는 시 ‘저문강에 삽을 씻고’는 어두운 현실을 처절한 서정에 담아 형상화한 대표작이다.“증오에 대해서/나도 알 만큼은 안다/이곳에 살기 위해/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싸우다 죽은 내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란 시구처럼 ‘공격적이고 거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자신은 시대가 현실주의자를 만들었지 본질적으로는 천진한 낭만주의자라는 생각이다. 네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2001년)는 이런 면모를 엿보게 한다. 김수영문학상, 시와시학상 수상.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시절부터 반독재 문학단체에 몸담아 2006년 1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다. ysh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