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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女談餘談] 솔메이트/이재연 사회부 기자

    [女談餘談] 솔메이트/이재연 사회부 기자

    또다시 찾아온 청첩장의 계절, 결혼 소식을 알리는 지인들에게 농반 진반 질문을 건넨다. “솔메이트(soulmate) 찾은 게야?” 우리말로 옮기자면 솔메이트는 ‘영혼의 동반자’쯤 되겠다. 주례자 앞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를 맹세하던 부부들, 그러나 갈라설 땐 매몰차다. 최근 우리나라 이혼 건수는 10년 만에 3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올해 가정법원 국정감사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부부 가운데 20년 이상 산 장수 커플도 30%를 차지할 정도다. 부부는 단순한 ‘룸메이트’가 아니라 ‘솔메이트’여야 한다는데. 사랑과 동지의식이 버무려져 영혼을 나누는 관계 말이다. 이혼하는 부부들은 솔메이트가 아니어서 그런 건지 궁금해졌다. 아니 전체 부부 중 이 명제를 충족하는 커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올 들어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현장을 취재하면서 평생 동고동락했던 아내들의 망부가를 지켜봤다. 빈소를 지키며 기자로서 감정선이 무너진 지점은 바로 부인들의 마지막 연서(戀書)였다. 이희호 여사는 남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관식 길, 차 안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권양숙 여사는 7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쓴 격려 편지가 망부가가 되고 말았다. “당신을 보면서 정치는 결국 사람을 사랑하고 희망을 주는 일이기에 힘들어도 그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편지가 공개되던 순간, 두 번 다 주책맞게 눈물을 훔쳤다. 남편이 묵묵히 시련을 견딘 세월, 무엇이 지아비의 신념까지 평생토록 끌어안고 사랑하게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청와대 안주인 5년’이란 보상으론 어림도 없었을 터다. 하지만 당신들은 지아비의 솔메이트였다. 정인(情人)이 목숨처럼 지키려 했던 가치도 껴안고 사랑한 동지였던 게다. 이 가을,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이렇게 축복하련다. “저분들처럼만 평생 사랑하시라.”고. 이재연 사회부 기자 oscal@seoul.co.kr
  • 목포 DJ노벨상 기념관 2012년 완공

    전남 목포 삼학도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는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목포시는 29일 시청 회의실에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정종득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 전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 보고대회를 열고 삼학도 복원화 사업지구의 1만 6500㎡ 부지에 총면적 6600㎡, 지상 2층 규모로 건립하기로 했다.
  • 봉하 찾은 이희호여사 盧 전대통령 묘소 참배

    봉하 찾은 이희호여사 盧 전대통령 묘소 참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21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은 고 김 전 대통령 추모비 제막식이 끝난 뒤 첫 외부 행사였다. 이 여사는 마중나온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노 전 대통령의 묘역으로 걸어가 헌화하고 분향했다. 이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긴 묵상을 하다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 여사와 권 여사는 손을 잡고 묘역 주변과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바위, 사저 쪽을 둘러보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에는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박지원 의원 내외를 비롯해 김대중평화센터 윤철구 사무총장, 최경환 공보실장 등이 동행했다. 박 의원은 “이 여사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권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위로를 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인접한 양산시 등의 재·보궐 선거를 앞둔 시기에 봉하마을을 찾은 이유에 대해 “날짜는 내가 직접 잡았고 국정감사가 없는 날을 택하다 보니 오늘로 잡힌 것”이라면서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으며 두 분의 순수한 뜻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치적인 해석을 경계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밀양 간 이재오위원장 영남서 지방민생 탐방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21일 경남 밀양 방문을 시작으로 지방 민생 탐방에 나섰다. 권익위에서 시행하는 지역현장 고충민원 상담제도인 ‘이동신문고’의 일환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위원장이 취임한 뒤 첫번째로 방문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경남 양산과 인접한 밀양인 점을 지적하며 “선거를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였다. 이 위원장은 이날 밀양시청에 차려진 상담장에서 “민원을 직접 들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꼭 해결하고 차선책이라도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은 ‘관권 선거’라며 발끈했다. 김현 부대변인은 “하필이면 선거가 치러지는 양산의 옆동네 밀양에 갔다.”면서 “이 위원장의 행보는 관권 선거 의혹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사설] 10·28 재·보선 과열 도 넘었다

    28일 실시될 5개 선거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과열을 넘어 혼탁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재·보선 지역에 살다시피하며 선거 과열을 앞장서 부추기는 후진적 행태야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어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현 정권의 실세와 전직 대통령의 부인들까지 사실상 선거전에 가세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박희태 후보가 출마한 경남 양산의 옆 고장인 밀양을 찾았다. 오늘과 내일 경북 청도와 경산을 방문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부인 권양숙 여사를 위로했다. 권익위 측이나 이 여사 측 모두 재·보선과 무관한 일정이라지만 곧이들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녕 무관하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일정을 변경했어야 옳다. 재·보선 지역 주변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이들의 정치적 무게다. 이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무차별 폭로와 근거 없는 비방, 인신공격 등 혼탁 선거의 단골 메뉴도 난무하고 있다. 어제는 한나라당이 이명박 대통령 특별당비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지도부 3명을 고발하면서 고소고발전의 심지를 돋웠다.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의 정치인생과 계파간 권력구도를 걸었고, 친노진영은 정치적 재기의 가능성을 찾느라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야당의 기세에 한나라당은 집권 중반의 국정 동력을 잃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과열 선거판의 한 축에 섰다. 비어 있는 5개 국회 의석을 지역 주민의 뜻에 따라 채워 넣는 선거다. 지난 두 정부와 현 정부가 정권을 놓고 싸우는 선거가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여야가 얻을 것은 의석이 아니라 국민의 냉소와 불신이다. 민심을 호도하지 말기 바란다.
  • “내 직업을 바꾼 한국어… 한국 알리는 보람 커”

    “내 직업을 바꾼 한국어… 한국 알리는 보람 커”

    │도쿄 박홍기특파원│‘한국어가 나의 직업을 바꿨다.’ 한국어전문번역가 요네즈 도쿠야(50)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최근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삶을 그린 소설 ‘바람의 화원’을 번역했다. 본격적으로 번역에 뛰어든 이래 7년 동안 일본어로 옮긴 작품은 황진이·대장금·서동요·주몽 등 20여권에 달한다. 한류붐을 탄 역사물이 많다. 요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을 번역하고 있다. ●한국 알고 싶어 한국어 배우기 시작 “한국을 알기 위해 한국어를 배웠는데 직업이 될 줄은…. 책으로 한국을 알리고 있다는 데 보람과 재미를 느낍니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와세다대 정치학과 3학년 재학 때 기숙사에서 TV뉴스를 통해 ‘광주사건’과 또래 젊은이들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죽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죠. 그리고 이웃나라인데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그 후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학원에도 다니고 한국관련 모임에 참여하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1980년대만 해도 지하철에서 한국 신문을 읽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절이었습니다. 한국 책도 많지 않았고요.” 아사히신문 영업부에 근무하던 1996년 홍세화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혼자 보기에는 너무 재미있고 아깝다는 생각에 번역을 결심했다. 이듬해 번역본을 냈다. 첫 작품이다. 출판기념회 땐 프랑스에 체류하던 홍씨도 참석했다. 당시 재일한국인 등으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언론의 관심도 컸다. 2003년 신문사를 그만뒀다. 번역이 직업이 됐다. 소설 황진이의 경우 김택환씨의 황진이와 북한 작가 홍석중의 황진이를 모두 일본어로 옮겼다. “홍석중 소설은 사투리도 많고 한시도 많아 적잖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북한에서 사온 3권짜리 조선말대사전의 도움이 컸죠.” ●“기회 된다면 송두율교수 책 번역” 기회가 된다면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책을 번역하고 싶어했다. 일본도 한반도의 분단에 책임이 큰 만큼 분단의 역사와 아픔, 통일의 노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번역은 상대의 언어를 확실히 읽고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가장 알기 쉬운 문장으로 쓰는 일입니다. 특히 누구보다 먼저 작품을 깊이 파고들 수 있고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랍니다.” 글 사진 hkpark@seoul.co.kr
  • 못으로 쓴 DJ 옥중서신 원본 첫 공개

    못으로 쓴 DJ 옥중서신 원본 첫 공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으로 수감된 후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못으로 몰래 쓴 편지 원본이 처음 공개됐다.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은 8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1층에서 김 전 대통령이 못으로 쓴 편지 8통을 포함한 옥중서신 44통과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709통을 공개하고 설명회를 가졌다.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된 김 전 대통령은 건강 악화로 서울대병원 감옥병동으로 이감된 후 편지도 못 쓰게 하는 등 정부의 감시와 탄압의 강도가 높아지자 이 여사에게 껌 종이나 과자 포장지에 못으로 눌러 쓴 편지를 몰래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도서관의 장신기 연구원은 “김 전 대통령이 못으로 눌러 쓴 비밀 편지를 화장실 쓰레기통이나 화분 밑에 숨겨 놓으면 면회를 간 이 여사가 속옷에 감춰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편지에 나오는 이름은 영문 이니셜로 표기됐다. 실제 1978년 8월31일 쓴 편지에는 “UAM은 당신 보고 접촉하라는 것이 아니라 M, P, L 같은 분들에게 전하라는 것이오.”라고 적혀 있다. 장 연구원은 UAM은 주한미국대사관, M은 문익환 목사, P는 박형규 목사, L은 이택돈 변호사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해 9월12일 편지에는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이번에 내는 서신은 비공개로 하시오’, ‘단식으로도 해결되지 않아 대통령께 호소한다’, ‘지금의 병원 수감은 불법이며 국고 낭비라는 것 등 자세히 써서 선처를 바라는 요지면 될 것이오’라는 내용도 있어 박 전 대통령에게 비공개로 편지를 보낸 정황도 확인됐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DJ 옥중서신 8일 공개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김성재 관장)은 8일 오전 11시 도서관 1층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옥중서신 원본 등의 자료를 공개하고 설명회를 갖는다고 7일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이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이후 건강 악화로 서울대병원 ‘감옥병동’에 수감됐을 당시 몰래 못으로 쓴 편지 36통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649통이 공개된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권력욕심 커지면 죄 짓기 마련”

    이희호 여사가 1970∼80년대 수감 중이던 남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책 ‘옥중서신 2’(시대의창 펴냄)가 29일 출간됐다. 이 책은 김 전 대통령이 교도소에 있을 때 이 여사에게 보낸 편지와 메모를 묶어 최근 증보·출간한 ‘옥중서신 1’에 이은 것으로, 이 여사의 미공개 편지들을 묶었다. 2권 1장에는 이 여사가 1972∼73년 미국과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들이, 2장에는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1977년 진주교도소에 갇힌 남편에게 보낸 내용들이 담겼다. 3장은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 있던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1981년의 편지들이다. 1, 2장의 편지 대부분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3장 편지들은 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책에 실린 편지들에는 남편인 김 전 대통령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가족 근황과 마당의 화초 이야기를 전하고, 국내외 정세 등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담아 현실 정치인으로서 감각을 잃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동지이자 후원자, 조언자로서 이 여사의 철학과 사상, 종교적 신념도 담겨 있다. 1973년 4월10일자 편지에서 이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은 요새도 술을 마시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합니다.”라며 “권력 욕심이 커지면 역시 죄를 짓게 마련이고 죄가 커지면 망한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과도 같아서 오늘의 권력자들이 불쌍해요.”라고 썼다. 2만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 현대사의 증인… 만화로 만나는 DJ

    한국 현대사의 증인… 만화로 만나는 DJ

    정치인의 생애를 만화로 다룬다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특히 전·현직 대통령의 경우 더욱 그렇다. 살아 있건, 고인이 됐건 잘못하다간 명예를 건드릴 수 있는 데다가, 또 자칫 찬양 일변도일 경우 작가 자신에 쏟아지는 눈총과 ‘찍힘’을 감내하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하여 웬만한 작가적 통찰력과 냉정한 용기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선뜻 펜을 들기가 쉽지 않다. ●TV프로그램 ‘동물의 왕국’ 가장 즐겨 서울신문에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시사만평’의 작가 백무현(46) 화백. 그는 2005년 전직 대통령을 정면으로 다룬 ‘만화 박정희’(전2권)를 펴내 주목을 끌었다. 뒤이어 2007년에는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을 다룬 ‘만화 전두환’(전2권)을 발간,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1979년 12·12 하극상 반란부터 구속되기까지 굴곡의 15년 현대사를 거침없이 다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이번에는 ‘만화 김대중’(시대와 창 펴냄)을 펴냈다. 3년여의 작업끝에 한국현대사의 증인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만화로 엮은 것. 앞의 두 저서에도 그렇지만 작가 특유의 치밀한 자료조사와 고증을 거쳐 역사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곳곳에 베어난다. ‘만화 김대중’에서 저자는 ‘인간 김대중’ ‘경천애인’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등 크게 네가지 분야로 접근하고 있다. 정치적 거물이었던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가장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이었다는 사실과, 귀여운 강아지를 혼낸 것에 단단히 화가나 국회에서 집으로 득달같이 달려와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따졌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휴머니스트로서의 인본주의적 성정을 부각시켰다. ●‘선생님’ ‘빨갱이’ 호칭 동시에 얻어 그는 ‘행동하는 양심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서문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빨갱이’와 ‘선생님’이란 호칭을 동시에 얻은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빼놓고 정치와 경제·사회·문화 등 한국의 현대사를 말할 수 없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또 집필 내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치와 정신 만큼은 빠뜨리지 않으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인간 김대중·정치인 김대중 등 4분야로 원래 5권으로 계획된 ‘만화 김대중’은 이번에 우선 2권이 출간됐다. 1권 ‘하의도에 핀 인동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의 풍경을 펼치면서 하의도에서 겁쟁이었던 어린 시절과 목포상고를 나와 해운사업으로 성공하고, 6·25 전란 속에서 첫 번째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정계에 입문하기까지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권 ‘행동하는 양심’에는 첫 부인 차용애씨의 죽음과 새로운 정치적 후원자 이희호 여사와의 결혼, 5·16군사쿠데타를 통해 악연으로 만난 박정희 정권과의 투쟁을 담았다. 이후 1971년 대선, 김대중 납치사건 등도 만화적 기법으로 흥미롭게 접근했다. 나머지 3, 4, 5권도 이달 안으로 모두 출간될 예정이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홍업씨 일행 “조문 감사” YS “당연히 해야 할 일”

    홍업씨 일행 “조문 감사” YS “당연히 해야 할 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가 26일 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을 각각 상도동과 연희동 자택으로 방문했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의원과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동행했다. 고인의 서거를 조문한 데 대한 감사 차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권 전 의원이 “문병은 물론 가장 먼저 영안실에 오셔서 조문해주시고, 국장 치를 때도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시종 지켜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하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답했다. 마침 이날은 김 전 대통령이 국장 직후 제안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만찬 회동이 예정된 날이었다. 하지만 권 전 의원은 완곡하게 연기를 요청했다. 그는 “초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지만, 애도 기간인 데다 이희호 여사가 슬픔에 잠겨 있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했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도 “새로 날을 받아서 하자.”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향후 만찬 일정은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만찬 회동이 이뤄진다면, 과거 민주화를 이끌던 두 세력이 ‘용서와 화해’라는 고인의 유지(遺志)를 실천하는 첫 행보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양쪽은 1980년대 초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함께 결성했으나, 1987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반목을 거듭했다. 이와 관련, 동교동계인 한화갑 전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민추협은 군사정권 시절 민주 회복을 위해 투쟁했던 단체이고, 이미 우리는 소임을 끝냈다.”면서 “추억을 함께 나눠가지는 것은 좋지만, 다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전 대통령의 화해 행보에 대해서도 “두 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무슨 말씀만 하시면 김영삼 대통령이 공박을 했는데 앞으로는 김영삼 대통령께서 김대중 대통령을 공박하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 전 대통령은 홍업씨 일행에게 이 여사의 건강을 염려하며 “건강하게 잘 모시라.”고 당부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딴따라 자존심 키워주신 아버지께 감사”

    “딴따라 자존심 키워주신 아버지께 감사”

    “대중음악 하는 사람들을 천시하고 ‘딴따라’로 폄하하던 시절에 아버지는 꿋꿋한 자존심으로 자식의 타고난 재능을 키워 주는 게 진정한 교육이고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셨죠. 그래서 오늘날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가수 하춘화(54)가 26일 자전적인 에세이집 ‘아버지의 선물’(중앙북스)을 펴내고 서울 홍익대 인근 ‘더 갤러리’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책에서 구십 세를 앞둔 아버지에게 ‘사부곡’을 바치는 한편, 자신의 반세기 음악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 2006년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3년 동안 책 쓰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과의 숨은 인연 담아 6살 때인 1961년에 데뷔해 ‘국민 소녀’에서 ‘국민 가수’가 되기까지 아버지의 힘이 컸다. 올곧게 가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늘 도전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다른 사람을 보는 눈과 가슴을 얻는 방법 등 세상 사는 지혜를 아버지를 통해 배웠기 때문. 하춘화는 이날 “아버지는 앞장서서 보여 주며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습득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면서 “자식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진·나훈아가 주름잡던 1970~80년대에 홍일점이었던 그는 못말리는 인기 덕택에 한 해에 11장의 앨범을 내기도 했다. 133장의 음반을 통해 취입한 2500여곡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첫 히트곡이었던 ‘물새 한 마리’를 꼽았다. 중학교 3학년 때 노래로 지금까지 300만장이 넘게 팔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딸이 가수로서 시험대에 올랐던 데뷔 앨범을 지금도 보물처럼 아낀다고 덧붙였다. 열일곱 살 때의 ‘잘했군 잘했어’는 부모뻘 되는 고(故) 고봉산 선생을 ‘영감’이라고 부르기에는 감정이 제대로 살지 않아 녹음 과정에서 야단 맞으며 울다시피 불렀다고 돌이켰다. 가장 힘들었던 노래이기에 요즘도 콘서트에선 정식으로 잘 부르지 않지만 보물처럼 소중한 곡이라고 했다. 이번 에세이집은 하춘화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이야기가 주로 담겼지만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서부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과의 숨은 인연도 실려 있어 흥미를 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통령으로 박 전 대통령을 꼽은 그는 특히 육영수 여사의 자선행사에 단골 손님으로 초대돼 살가운 인연을 맺은 사연도 털어놨다. 그는 또 40주년 기념 공연으로 이희호 여사가 꾸리던 자선단체를 도우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한 디너쇼에서 김 전 대통령이 즉석에서 ‘목포의 눈물’을 신청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부르게 됐던 일화도 들려줬다. 하춘화는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던 분이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애도하는 게 예의일 것 같아 이번 장례 때 조문을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30일까지 ‘더 갤러리’서 소장품 전시회 이밖에 에세이집에는 수많은 공연을 함께한 코미디언 고 이주일과의 에피소드, 그리고 후배 김제동, 강호동, 유재석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곁들여 졌다. 가수로서 장수하는 비결을 ‘자기 절제’라고 강조한 하춘화는 “앞으로 50주년 기념 공연 등을 새로운 노래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아 대중예술 발전에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변함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30일까지 하춘화의 소장품 전시회가 ‘더 갤러리’에서 열린다. 48년 동안 발매한 음반들과 수상한 각종 트로피, 기사 스크랩, 팬들로부터 받은 선물, 리사이틀 포스터 사진 등이 전시된다. 특히 LP의 재킷 디자인 변화에 따라 국내 가요사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중가요사를 엿볼 수 있는 이 자료들은 국립도서관 등에 기증될 예정이다. 글ㆍ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하의도 간 丁대표

    하의도 간 丁대표

    민주당 정세균(얼굴) 대표가 25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를 찾아 추모식을 가졌다. 당 지도부와 전남 지역 의원 등 20여명이 동행했다. 이날은 고인의 발인 사흘째로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삼우제를 올렸다. 정 대표의 하의도행(行)은 추모 성격을 넘어 김 전 대통령의 적통 계승을 의식한 행보라는 시각이 많다. 조문 정국 이후 정 대표를 비롯해 무소속 정동영 의원,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박지원 당 정책위의장 등을 놓고 적통 계승의 적임자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정 대표가 추모사를 통해 “민주당이 이 시점에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실한 방향을 설정하고자 이 자리를 찾았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철학과 정신, 정책을 고스란히 이어받을 것”이라고 강조한 점도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그는 “민주개혁 진영을 하나로 통합하는 노력을 적극 전개해 김 전 대통령의 철학을 계승하고 실천하겠다.”며 민주당 대표로서 구심점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정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도 “민주개혁 진영의 대표 정당인 민주당이 김 전 대통령의 말씀을 실천할 책무가 있다.”며 민주당 중심의 대연합을 주장했다. 이와 관련, 정 대표는 이번 주중 ‘통합과 혁신 추진을 위한 뉴민주당추진위’(가칭)를 발족해 당의 정치노선을 정비하고, 대연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민주정부 10년 계승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 대표의 ‘적통 계승 구상’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무소속 정 의원만 해도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다음달 18일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프레스클럽(NPC)에서 초청 연설을 갖는 등 동선을 넓히고 있다. 주제도 당초 김 전 대통령의 연설 주제와 같은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와 6자회담 전망’이다. NPC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한반도 평화와 화해에 관한 철학과 정책을 이어받은 인물로 정 의원을 꼽아 대신 연설할 것을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씨줄날줄] 순애보/노주석 논설위원

    중학교 때 집 서가에 꽂혀 있던 박계주의 ‘순애보(殉愛譜)’를 몰래 읽고 주인공 윤명희의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법에 푹 빠진 적이 있다. 1939년 매일신보에 연재되는 동안 장안의 지가를 올린 소설이다. 얽히고설킨 삼각관계 통속소설이지만 여주인공의 목숨을 건 사랑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훔쳐가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유치찬란하지만, 장년이 된 지금도 순애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마음이 설렌다. 순애보는 동명의 연극, 영화, 노래, 만화의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소설은 1941년 극단 성군(星群)에 의해 극화돼 1950년대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8년 김수용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윤명희 역을 맡은 윤정희의 열연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2000년에는 이재용 감독이 ‘순애보(純愛譜)’라는 ‘한글 종씨’ 영화를 선보였다. ‘목숨을 거는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으로 시대에 맞게 진화했다. 유리상자의 노래 순애보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인기 순정만화 작가들이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그린 연작 단편만화집 순애보 시리즈도 지난 6월 3편이 출간됐다. 순애보(殉愛譜)적인 순애보(純愛譜)라고나 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원과 서거, 그리고 국장을 치르는 동안 우리는 ‘살아있는 순애보’에 눈시울을 적셨다. 김 전 대통령의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이희호 여사의 헌신적인 사랑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병실과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던 단아한 모습에서, 국장이 엄수되는 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에서, 서울광장 연단에 서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전하던 꼿꼿한 대국민 인사에서…. 김 전 대통령의 일기장은 47년 동안 반려자이자 동지로 함께 했던 이 여사의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김 전 대통령은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이래 최상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라고 썼다. 순애보는 그저 소설이나 영화, 노래가사 속에 존재하는 낭만주의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 곁에 온전히 살아 있다. 이 여사의 존재가 커보인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국민 존경한 님이여… 이제 그 존경 당신께 드립니다”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국민 존경한 님이여… 이제 그 존경 당신께 드립니다”

    ■영결식 시종 장중하고 엄숙했다. 볕이 뜨거운 늦여름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위해 헌신한 ‘인동초 김대중’은 국회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23일 오후 1시55분 국회 본청 앞. 영결식 사회를 맡은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신 영구차가 입장하고 있다.”고 말하자 조곡이 울려 퍼졌다. 고인의 대형 영정이 운구차 앞에 섰고, 무궁화대훈장과 노벨평화상 상장이 뒤따랐다. 운구차 뒤로 비통한 표정의 이희호 여사와 유가족이 영결식장에 입장했다. 이어 역대 국장·국민장 사상 최대 규모인 2만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결식은 조악대의 애국가 연주와 묵념,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약력보고,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의 조사, 김 전 대통령 내외와 각별한 관계인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의 추도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한 총리는 조사를 통해 “대통령님의 높은 위업을 어찌 몇 마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라면서 “온 국민이 슬픔 속에 대통령님을 추모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님, 이제 그 존경과 사랑을 당신께 드립니다.”라면서 “지난날은 진정 고단했으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목이 멘 채 추도사를 낭독했다. 이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김 전 대통령이 천주교 신자였던 만큼 최창무 광주대교구장이 집전하는 천주교의 제례가 먼저 이뤄졌다. 불교에서는 조계사 주지인 세민 스님이, 기독교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삼환 회장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엄신형 대표회장이, 원불교에서는 김혜봉 대전충남 교구장이 각각 집전했다. 종교의식이 끝나고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동영상 ‘대통령 김대중’이 상영되자 유가족과 조문객들은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1998년 2월 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 전 대통령이 “우리 모두는 땀과 눈물과…”라며 울먹이는 모습이 비치자 이들은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다. 동영상 상영 직후 이 여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부축을 받으며 영정에 헌화했다. 이 여사는 울음을 참으려 입을 꼭 다물었다. 아들 홍일·홍업·홍걸씨 등 유가족이 헌화하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꼭 다물던 이 여사는 헌화를 마친 뒤 뒤돌아서면서 그제서야 울먹이기 시작했다. 유족들의 분향이 끝난 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제단에 오르자 영결식장 VIP석 뒤쪽에 있던 한 40대 남성이 “위선자”라고 소리쳐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이 남성은 곧 퇴장해 버렸다. 이어 전두환·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헌화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영원한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고인과의 과거를 회고하듯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권 여사는 고개 숙여 영면을 기원한 뒤 눈을 꼭 감고 울먹였다. 앞서 이 대통령은 영구차가 영결식장에 도착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한 뒤 식장 정면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계속 응시했다. 유가족이 들어오자 고개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주요 인사들의 헌화와 분향이 끝나자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성악가 김영미씨, 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른 추모곡 ‘그대 있음에’와 ‘우리의 소원’이 영결식장에 울려 퍼졌다. 3군 조총대가 3발의 조총을 발사했고, 이어 “이제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을 보내드려야 할 시간”이라는 손 전 장관의 울먹임 속에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고인을 실은 운구차는 1시간10분 남짓 걸린 영결식이 끝나자 오후 3시12분쯤 국회를 나가기 위해 서서히 움직였다. 국회 본청 앞과 의원회관 앞을 지나 3시29분쯤 국회를 떠났다. 운구차는 국회를 나가던 도중 이 여사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이 여사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의회주의자 김대중’은 국회를 뒤로하고 멀어져 갔다. 김지훈 김민희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정의·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되게 하소서”

    “정의·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되게 하소서”

    여의도의 하늘은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님은 맑고 깨끗했습니다. 소외자에게는 한없는 배려의 햇빛이었습니다. 다시 불러 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 님은 절절한 사랑의 마음으로 국민들에게 늘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랬기에 더욱 서럽고 억울합니다. 남들은 쉽게 가는 길도 님은 늘 어렵고 힘들게 가시고, 넘어지고 만신창이가 되시면서도 끝내 목표에 도달하고 기적을 이루어 내시는 걸 저희들은 여러 번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한때는 무서운 세상에 겁먹어 당신을 사랑한다, 존경한다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늘 주눅들어 살아온 게 이제야 죄송해서 너무너무 눈물이 납니다. 그 마음을 담아 정희성 시인의 시에서 한 구절을 골라 가시는 길에 감히 뿌려 봅니다. ‘그대는 처음 죽는 사람도 아니고/이 더러운 현대사 속에서/이미 여러 번 살해 당한 사람./그대여/이 경박 천박한 세상 말고/개벽 세상에 나가 거듭나시라.’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님! 당신은 참으로 정 많고 문화를 사랑하고, 여성을 존중하는 멋진 분이셨습니다. 오래전 일로 기억합니다. 이희호 여사님과 공연을 보러 오셨던 당신이 공연이 끝나자 저를 차에 태우고 댁으로 가셨습니다. 잠시 응접실에 앉아 있는데 이 여사님이 봉투 하나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공연을 보시면서 내내 걱정을 하셨어요. 너무 여위었다고.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꼭 맛있는 것 사 먹고 몸 좀 추스르라고 하셨어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는 내내 울었습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 만날 때마다 누구에겐 따뜻한 밥 한 끼를, 누구에겐 작은 선물 하나를 잊지 않고 쥐여 주며 등 두드려 주시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 보면 그냥 눈물 글썽거리는 그렇게 정에 무른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춥고 바람 부는 벌판에서 힘없고 가난한 백성을 위해 온몸으로 싸워 주셨던 당신. 내가 그렇게 국민을 절절하게 사랑하는데 국민들은 왜 날 사랑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짝사랑의 비애를 호소하시던 당신이셨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오늘 저희는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너무나도 늦었지만 진심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그 절절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시는 길을 막고 울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용서하시고 혹 섭섭함이 계셨더라도 모두 풀고 떠나십시오. 그 무거운 짐 모두 내려 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고이 가십시오. 저희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당신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남은 자의 몫으로 살겠습니다. 정의로운 세상,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드는 데 밀알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흔적을 우리 땅의 화해와 평화, 통합을 위한 밑거름으로 받들어 영원히 꽃을 피우겠습니다. 손숙 연극인·前환경부장관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하의도 생가터 흙 한줌 뿌리며… 유족들 눈물로 작별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하의도 생가터 흙 한줌 뿌리며… 유족들 눈물로 작별

    ■안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오후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파란만장한 이승에서의 삶을 접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인동초(忍冬草)의 ‘후회 없는 삶’이 산 자들에게는 새로운 과제로 남겨지는 순간이었다.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한 참석자들은 이별의 아쉬움과 유지(遺志) 계승의 각오를 눈물로 대신했다. 고인을 실은 영구차는 당초 예정 시간인 오후 5시 직전 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안장식은 고인을 태운 운구 차량이 국가원수 묘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진행됐다. 장엄하고 차분했지만, 고인을 보내는 이들은 한결같이 안타깝고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희호 여사와 직계가족, 장의위원, 민주당 및 동교동계 인사, 국민의 정부 관계자, 전직 비서관,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 일반 시민 등 3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국군 의장대의 조악 연주와 함께 고인과 이별하는 마지막 의식이 시작됐다. 고인에 대한 경례와 종교의식에 이어 헌화 및 분향, 하관,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의식이 순서대로 이뤄졌다. 종교의식은 천주교에 이어 기독교, 불교, 원불교 순으로 치러졌다. 천주교 의식은 고인과 각별한 사이인 함세웅 신부가 집전했다. 불교는 조계사 주지 세민 스님, 기독교는 이해동 목사, 원불교는 이선종 서울교구장이 집전했다. 하관식을 위해 고인이 이동하자 이 여사를 비롯해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참았던 울음을 조금씩 토해냈다. 고인을 실은 향나무관이 아래로 내려가자 유족들의 울음 소리는 높아졌다. 이어 허토 의식이 진행되자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오열하며 고인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허토 의식은 이 여사가 먼저 흙을 뿌리며 시작됐다. 이어 홍일·홍업·홍걸씨, 친인척, 고인의 전직 비서관, 장의위원 관계자, 민주당 인사, 국민의 정부 인사, 현 비서실 인사, 일반 조문객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관에 흙이 뿌려질 때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영면을 기원했다. 고인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 터에서 가져온 흙 한 줌도 고인과 함께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임하던 이 여사도 허토 의식을 마친 뒤 꾹꾹 눌러 왔던 감정이 터진 듯 눈물을 쏟아냈다.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으면서도 이 여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 한참 동안 오열했다. 홍걸씨가 옆에서 이 여사의 등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나눴다. 이어 군악대의 진혼곡과 조악 연주를 뒤로한 채 고인은 이승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정치권의 한 참석자는 안장식을 마친 뒤 “국장 기간 내내 고인의 생전 말씀과 인연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버텼지만, 끝내 이렇게 가시고 나니 이제야 ‘김대중’과 함께 ‘한 시대’를 보냈다는 사실이 엄청난 중압감으로 밀려온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참석자는 “그분의 마지막 길이 헛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의 과제를 엄중히 이어 가겠다.”면서 “그것이 ‘김대중’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김민희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김 前대통령 서울현충원에 영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서거 엿새째인 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장(國葬)으로 엄수됐다. 1979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30년 만에 국장이 거행된 이날 각급 공공기관을 비롯해 전국에 조기가 게양됐다.영결식은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 김영삼 전 대통령, 3부 요인과 헌법기관장,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남짓 진행됐다. 외국에서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 탕자쉬안(唐家璇)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 등 11개국의 조문사절단이 참석했다.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영결식 사회를 맡았고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약력을 보고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조사를,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은 추도사를 각각 낭독했다. 1987년 김 전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평화민주당의 부총재를 지낸 박 이사장은 추도사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마지막 말씀을 새기겠다.”면서 “우리가 깨어 있으면 당신이 곁에 계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영결식은 종교 의식에 이어 영상 상영, 헌화·분향, 추모공연, 의장대의 조총 발사 등의 순으로 이뤄졌다. 영결식이 끝난 뒤 김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여의도 민주당사와 동교동 사저에 들른 뒤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서울광장~서울역 광장~동작대교 등을 거쳐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운구 구간에는 수십만명의 추도 인파가 운집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묘역은 국립서울현충원의 국가유공자 제1묘역 하단부에 봉분과 비석, 상석, 추모비 등을 합해 264㎡(80여평) 규모로 조성됐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3김(金)정치’가 막을 내림에 따라 여야 정치권에서는 후속 정치구도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홍일씨 “끝까지 옆에서 모시겠다” 울부짖어

    평생의 동지이자 반려자를 잃은 이희호 여사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내내 고개를 떨군 채 흐느꼈다. 외로움보다는 평생을 함께 걸어온 동지를 홀로 떠나보내는 미안함이 묻어났다. 그래서인지 이 여사는 이날 영정 속 남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추도사 들으며 굵은 탄식 87세의 고령에도 36일간 이어진 투병 간호, 그리고 6일간의 국장 내내 남편 곁을 지킨 이 여사는 영결식장에서 부축을 받고서야 거동할 정도로 심신이 피로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혼신의 기운을 녹여내는 듯한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이 여사는 특히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이 영결식 추도사 끝부분에서 “지난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매일 밤 이 여사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시면서 목이 메어 말씀을 한참 잇지 못했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회고한 대목에선 참기 힘든 듯 굵은 탄식을 쏟아냈다. 앞서 이 여사는 이날 오전 8시쯤 동교동 사저에서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10분 남짓 전화 통화를 나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친구이자 동료로 생각했다. 아내와 함께 조의를 표한다.”고 위로하자, 이 여사는 “지난 18일 보내준 메시지는 저뿐 아니라 한국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됐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 여사는 이어 “이번에 용기있는 북한 방문을 통해 대단한 성과를 올리신 데 대해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이 누워 계실 때였지만 방북 소식을 알려드렸다.”고 전했다. 이에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께서 늘 하셨던 일을 발판삼아 했을 뿐이고, 그 일을 제가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영광”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을 평생의 친구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계속 수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3형제, 아버지 대형영정서 눈 못떼 이날 홍일·홍걸·홍업 3형제는 단상 위 국화 꽃 속에 놓여진 아버지의 대형 영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몸이 불편한 홍일씨는 ‘끝까지 옆에서 모시겠다.’며 울부짖어 주위를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주변에서는 홍일씨에게 건강을 고려해 ‘영결식과 서울현충원 안장식만 참관하고 운구행렬에는 참석하지 말라.’고 말리기도 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최경환 비서관은 “투병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고 전했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이날 마지막 순간까지 김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권노갑·한화갑·한광옥·김옥두 전 의원 등 동교동계 가신그룹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고인의 의중을 잘 알아 ‘DJ의 입’으로 불렸던 박 의원은 고인의 투병과 국상 기간에도 대언론 창구 역할을 의연하게 치러냈다. 정치권에서는 박 의원의 이같은 모습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후에 문재인 비서실장이 보인 차분하고 절제된 언동과 비교하기도 한다. 이날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한 박 이사장은 이 여사의 대학후배로 고인과 이 여사가 결혼하기 전부터 각각 알고 지낸 지인이다. 1988년 여성으로는 처음 비례대표 1번을 평민당에서 배정받았다. 여성 지위 향상에 앞장선 고인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뜻도 박 이사장의 추도사 낭독에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성규 허백윤기자 cool@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유지 어떻게 받드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따르는 다양한 계승 사업이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김대중평화센터 최경환 비서관은 23일 유지 계승 사업과 관련, “지금까지 영결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구체적인 계획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사료 연구 등을 계속해온 김대중도서관을 중심으로 추모사업 등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재 김대중도서관장은 “김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저를) 다시 불러 김대중도서관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각종 사업을 추진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대중도서관 쪽은 ‘민주화 운동과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고인의 생전 업적과 ‘민주주의, 평화, 빈곤퇴치’라는 도서관 설립취지에 초점을 맞춰 유지계승 및 추모 사업을 벌여갈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사료 연구와 출간·교육 사업이 집중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김대중도서관 쪽은 김 전 대통령이 생전 깊은 애정을 쏟았던 ‘김대중 평화아카데미’ 활성화를 기획하고 있다. 10월부터 8주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직접 ‘한반도 통일, 평화해법’을 주제로 강의할 예정이다. 또 박상진·김상근·서광선 목사, 오재식 아시아사회교육원 원장, 이상열 교수 등도 ‘한반도 통일과 평화, 기독교 세계종교단일화(애큐매니컬) 운동의 역사’를 강의한다. 이와 함께 어린이와 청소년, 교사를 위한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내년 봄 개설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삶과 난관극복기 등을 교육할 계획이다. 김대중도서관은 또 김 전 대통령이 1977년 유신체제에서 진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쓴 미공개 옥중서신과 78년 서울대병원 연금 당시 못으로 우유갑에 글씨를 써 이희호 여사와 주고받은 서신 등을 정리한 책을 10월초 발간할 예정이다. 내년 초에는 대통령 연보도 정리해 출간할 계획이다. 김 전 대통령이 2005년부터 입원 직전까지 초고를 정리하고 감수했던 자서전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일반에 알려 국민 생활 속에서 발현되도록 하는 사업 자체가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잇고 추모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정부 10년 계승 사업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도 유가족과 협의해 유지 계승 사업에 동참할 계획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우리의 소원~” 울려 퍼진 서울광장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우리의 소원~” 울려 퍼진 서울광장

    ■운구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23일 오후. 막바지 여름햇볕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열기만큼이나 뜨거웠다. 영결식이 치러진 국회 주변과 운구행렬이 지나간 서울 동교동 사저, 서울광장, 서울역은 오전부터 김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배웅하기 위한 추모 인파로 가득 찼다. ●동교동 사저 도착 사저 주변에서는 시민들이 모여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오후 3시47분쯤 운구차가 사저에 도착하자 고인이 평소에 다녔던 서교동성당 성가대 20여명이 ‘고통도 없으리라’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등 15곡의 성가를 이어 부르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안숙선 명창은 사저 정원에서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편지를 토대로 만든 추도창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사저 옆집에 살고 있는 주부 황영이(59)씨는 30년 이웃사촌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황씨는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집 아저씨와 같은 이발소에, 나는 이희호 여사와 같은 동네 미용실에 다녔다.”면서 “소박하고 겸손한 이웃이었고 모든 동네 사람들이 존경했는데 이제 영영 떠나신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대중·이희호라는 부부 공동문패가 붙은 대문이 열리며 손자 김종대씨가 영정을 들고 사저 안으로 들어가 고인이 주로 시간을 보냈던 1층 거실과 3만여권의 장서로 채워진 2층 서재, 투석치료실 등을 차례로 들렀다. 서재에는 ‘윤집궐중’(允執厥中·진실로 그 가운데를 취하라)이라는 백범 김구의 친필 휘호가 적힌 족자가 유리 액자로 걸려 있었다. 밖으로 나온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사저 정원을 돌아 조금 떨어진 김대중도서관으로 향했다. 김대중도서관에는 고인의 파란만장한 85년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과 친필 원고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영정은 도서관 5층 집무실과 2층 전시실을 일일이 돌아본 뒤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서울광장 도착 운구행렬은 오후 4시25분쯤 추모문화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이희호 여사는 국장 기간 내내 분향소를 찾아준 국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 여사는 눈물 젖은 얼굴로 연단에 올라 “남편은 일생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회유와 압력이 있었지만 한번도 굴하지 않았다.”면서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며 살겠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말했다. 약 1분간의 이 여사 인사말이 끝나자 시민들은 김 전 대통령의 평생 숙원이었던 남북통일의 마음을 담은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김 전 대통령을 기렸다. 시민들은 운구차량이 서울광장을 떠나자 노란색 풍선을 일제히 날려 보냈다. ●국립현충원 도착 서울광장 분향소의 방명록이 놓여진 곳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시민들이 달아 놓고 간 검은 근조 리본과 메모지에 적힌 추모 글귀가 빽빽이 달려 있었다. 이날 오후 5시 현재 서울광장 추모객은 누계 8만 6870명을 기록했고 방명록 700여권이 동났다. 서울역은 특히 고인이 야당 시절 여의도광장, 효창운동장과 함께 즐겨 찾았던 연설장소여서 각별한 추억이 서린 곳이다. 운구행렬이 별도 정차하지 않고 서울역을 그냥 지나치자 지켜 서 있던 시민들은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부 정윤순(56)씨는 “72년 대선후보 연설 때 형형한 눈빛으로 서민 가슴을 적셔 주던 연설에 ‘김대중’ 석 자를 연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김 전 대통령 운구행렬은 동작대교를 건너 오후 4시57분쯤 영면 장소인 국립현충원에 도착했다. 이재연 오달란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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