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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靑·일부 진보 진영 불붙는 ‘이념 논쟁’

    靑·일부 진보 진영 불붙는 ‘이념 논쟁’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세력 비판’에 참여정부의 전·현직 참모들까지 가세함에 따라 청와대와 진보세력 일각간 일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20일 브리핑을 통해,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인터넷매체의 기고를 통해 진보학자들의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 논거를 각각 거칠게 반박하고 나섰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지식·진보사회에서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라면서 “건전한 사회적 담론으로 다뤄졌으면 하는 게 청와대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논쟁의 핵심 당사자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비롯,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등 진보 진영 학자들은 청와대의 비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윤승용 홍보수석 “건전한 사회적 담론 기대” 김 처장은 이날 국무회의 브리핑이 끝난 뒤 “대통령의 말씀은 담론유형에 대한 비판이지 특정학자에 대한 비판으로 보면 말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며 노 대통령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진보세력은 일부 관념적 좌파, 살롱좌파와 결별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진보의 핵심은 유연성인데 유연성을 상실한 진보는 자기가치를 실현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진보세력의 비판에 대해 “관념적 좌파가 범하고 있는 의도적인 범주의 오류”라고 규정한 뒤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더 가까운 사회세력에 대해서는 더 너그럽거나 옹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사실과 주관적 감정을 혼돈하고 있다.”고도 비꼬았다. ●조 전 수석,“이회창씨가 집권했다면 나아졌을까.” 조 전 수석은 오마이뉴스에 ‘참여정부 실패, 정당한 평가입니까.’라는 기고를 통해 최장집 교수에게 공개 질의를 했다. 조 전 수석은 “이회창 후보가 집권했다면 나아졌을까.”라고 물은 뒤 “상대적 평가로, 이회창 후보가 집권했으면 이보다 더 잘했으리라는 근거가 있다면 참여정부가 실패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절대적 평가는 선거공약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전제,“이 두가지 기준으로 볼때 참여정부는 매우 성공했다.”면서 “적어도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회창 후보가 집권했다면 분명한 것은 차떼기는 절대로 밝혀지지 않고 정경유착도 그대로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의 글에 대한 파장과 관련,“일과성에 그치면 안된다.”면서 “담론이 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논쟁이 계속돼야 한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진보세력의 참여정부 비판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 아래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분명하게 짚고 나가 참여정부의 성과를 드러낸다는 심산이다. 물론 지지층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도 노리고 있음직하다. 그러나 진보세력들의 맞대응이 없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담론까지 이끌어가기 위해 ‘어떤 카드’를 쓸지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박홍기 윤설영기자 hkpark@seoul.co.kr
  • [서울광장] 정치보복의 씨앗/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치보복의 씨앗/육철수 논설위원

    태권도·유도는 도(道)를 연마하는 무술이다. 강인한 신체단련과 끊임없는 정신수양이 동반되어도 무도(武道)의 경지에 이를까 말까다. 무도가 아닌 ‘싸움의 기술’을 배운 사람들은 괜히 약한 사람을 집적거리고 싶고, 상대가 물리적으로 굴복하는 모습을 즐기곤 한다. 무술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게 곧잘 나타나는 심리현상이나, 이런 유치한 행태가 어른이라고 해서 다를까. 포용력 없고 수양이 덜 된 국가 지도자들을 보자. 과거 경험상 권력을 무기로 반대자를 거꾸러뜨리고 감옥에 보내 굴욕을 준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최고 권력을 쥐면 반대자가 가만히 있어도 알게 모르게 건드리고 싶을 텐데, 하물며 미운털 박힌 사람을 그냥 놔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래서야 안 되겠지만, 누군가 대통령이 되면 예수님 같은 사랑이나 부처님처럼 자비를 베풀 것으로 기대하면 그것도 오산이다. 대통령도 인간이고 감정을 가졌다. 때론 법이 안중에 없다는 것쯤은 전·현직 대통령들이 잘 보여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감옥에 갔다 온 뒤 ‘손볼 사람’을 들먹인 걸 기억해 보라. 이빨 빠진 전직이었기에 망정이지 현직이었다면 서슬로 미루어 손볼 대상은 뼈도 못 추렸을 게다. 14대 대선 때 김영삼(YS) 후보를 “대통령감이 아니다.”라고 공격했던 박철언씨는 슬롯머신 사건에 얽혀 감옥에 갔다. 박씨는 480여일만에 감옥에서 풀려나고 특별복권됐지만 최고 권력 앞에선 무력했다. 대선 경쟁자였던 고 정주영씨도 선거과정에서 YS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가 고생 참 많이 했다.15대 때는 김홍신씨가 김대중(DJ) 후보를 향해 ‘공업용 미싱’ 발언을 했다가 물의를 일으켰다. 보복은 없었지만, 김씨는 DJ집권 내내 조마조마했을 것이다.16대 때는 김대업씨가 ‘병풍사건’을 일으켜 이회창 후보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하늘이 두쪽 나도 집권하겠다던 이 후보측에 정권이 갔다면 김씨는 죗값을 혹독하게 치르고 이민을 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대통령 권위가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그의 말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여느 대통령보다 소탈하다는 노 대통령이라지만, 공식회의에서 눈을 부릅뜨거나 표정만 근엄하게 지어도 국무총리 이하는 고양이 앞에 쥐나 다름없다. 누구도 감히 면전에서 대들거나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게 바로 대통령이란 직책에 붙은 권위요 권력이다. 대선 예비경쟁이 한창인 요즘, 대선주자들끼리 가시돋친 말이 스스럼 없이 오간다. 여론조사 1·2위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감정싸움이 예사롭지 않다.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를 겨냥한 듯 ‘아이 낳아 보지 않은 사람’을 거론했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군대 안 갔다 온 사람’으로 응수했다. 서로 화해했지만, 박 전 대표 캠프의 정인봉씨가 이 전 시장을 공격하는 ‘X파일 소동’을 일으켜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15대 국회때 이 전 시장의 비서관이었던 김유찬씨가 선거비용 위증 대가로 이 전 시장한테 돈을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대통령은 결국 한 사람만 된다. 그래서 복구 불능의 감정싸움에 휘말렸다간 낙선자와 그 추종자들이 다음 정권에서 어떤 곤욕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검증은 신사적으로 해야 한다. 모시는 대선주자에게 충성한답시고 근거 없거나 끝난 일로 정치보복의 씨앗을 뿌려대서 좋을 게 없지 않은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박근혜·이명박측 ‘검증공방’ 재연

    박근혜·이명박측 ‘검증공방’ 재연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간 검증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강재섭 대표 등 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양측간 검증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박 전 대표 캠프 법률특보인 정인봉 변호사는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 시장의 도덕성 문제를 3월 말쯤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그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이 전 시장 측이 지난 11일 이후 ‘공세적 방어 모드’로 전환한 상태여서 논란은 갈수록 증폭될 전망이다. 정 변호사는 당초 이날 회견에서 이 전 시장의 도덕성 문제를 폭로할 계획이었지만 당 안팎의 비난 여론에 따라 공개시기를 늦추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그는 이른바 ‘이명박 X파일’을 자신이 직접 공개하지 않고, 가급적 당의 경선준비기구인 ‘국민승리위원회’에 모든 내용을 넘겨주겠다고 ‘예고’했다. 정 변호사는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증이)흠집을 낸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고 전제,“흠집을 낸다는 것은 멀쩡한 물건을 긁어서 만드는 것인데 제가 하려는 검증은 그저 눈가림으로 자신의 흠을 감추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실상을 밝힌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기자회견을 하려던 내용이 만일 거짓이거나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정치의 한 구석에 몸담고 있는 제가 스스로 자살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다. 누가 봐도 확신할 수 있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강제로라도 정 변호사에게 (폭로)기자회견을 시키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정 변호사는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병역비리를 폭로한) 김대업보다 저질이다.”며 격하게 반응했다. 주호영 비서실장도 “욕하면서 배운다고 하더니 전형적인 ‘김대업 수법’”이라고 비판한 뒤 “문제가 있다면 예정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그에 대한 모든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라.”고 받아쳤다. 이어 “정 변호사가 캠프 법률특보인 만큼 그의 주장이 근거 없는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로 밝혀질 경우 박 전 대표도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 박 전 대표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한편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 전 시장측 이재오 최고위원과 박 전 대표측 전여옥 최고위원이 입씨름을 벌이는 등 검증론이 당내외에서 더욱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서울광장] 강재섭과 서청원/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강재섭과 서청원/이목희 논설위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5년 전 서청원 전 대표가 떠올랐다. 제1야당이자 다수당의 대표. 잘 나가는 대선주자가 포진한 정당의 대표. 여권의 지리멸렬. 서청원씨가 한나라당을 이끌었을 때와 어찌 그리 닮은꼴인지. 강재섭·서청원은 개인적으로도 유사점이 많다.2002년 대표 당시 서청원은 59세로 5선 의원. 지금 강재섭과 같다. 진주 강씨, 대구 서씨 등 명문가 출신으로 정치입문 후 대변인, 원내총무를 비롯해 친화력이 요구되는 직을 주로 거쳤다. 소속당이 이름을 고친 적은 있으나 스스로 당적을 바꾼 일은 없다. 무엇보다 성품이 비슷하다. 온화, 소탈, 신사풍…. 그에 더해 프로필의 단점까지 빼다 박았다.“우유부단하다는 지적을 종종 받는 게 흠.” 한걸음 더 나가 한나라당 속을 뒤집어보면 두 사람의 공통단어가 드러난다. 외화내빈(外華內貧), 빛 좋은 개살구다. 서청원은 얼마전 토론회에서 “이회창 후보만 있었지, 당은 없었다.”고 대선 패배 원인을 분석했다. 후보의 약점을 덮느라 전전긍긍한 것이 당 역할의 전부였다고 했다. 한나라당 후보가 여론조사 1위를 질주할 때 서청원의 환한 얼굴 밑에 5년 뒤 한(恨)서린 얼굴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힘빠진 노 대통령을 향해 큰소리 치는 강재섭의 당내 사정도 나아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으로 당사령탑에 올랐지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지도에서 잘 나가니 딜레마다. 양쪽 눈치를 봐가며 적당히 한 당직 인선. 소속 의원들은 유력 대선주자 캠프만 기웃거린다.“당대표는 어디 갔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강재섭의 좌우명은 ‘대해불택세류(大海不擇細流)’. 작은 물줄기를 가려받지 않는 큰 바다의 포용력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은 포용력이 이명박·박근혜 사이의 눈치보기로 비친다. 이런 식이라면 “좋은 게 좋다.”는 분위기가 서청원보다 심해질 수 있다. 강재섭·서청원이 부드러운 성품이긴 하지만 강재섭에게는 가끔 독기가 느껴진다.1992년 가을 밤 박철언씨의 황당해하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후보확정에 반발해 탈당한 박철언.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청와대와 국회로 끌어준 강재섭은 따라올 줄 믿었다. 하지만 그날 낮 강재섭은 당잔류를 선언했다.6공의 황태자 박철언은 강재섭의 마지막 못질에 속절없이 스러져 갔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몇몇 기자들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었다.“강재섭은 대세를 따라간 기회주의자.” “민주화 세력의 명분에 합류한 결단력의 소유자.” 당시는 배반자라는 비난을 들었을지언정 강재섭의 결정은 옳았다고 본다. 2007년 대선판, 강재섭의 독기가 발휘되길 바란다. 대선후보에 들러리서는 대표가 되어선 안 된다. 대선주자 진영의 자잘한 이해를 물리치고, 당을 국정의 큰 판에서 이끌어야 한다. 참여정부 남은 1년 국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감시하고, 도울 건 돕는다는 자세가 우선이어야 한다. 이번 청와대회담처럼 정부·여당과 자주 만나야 할 것이다. 당의 목소리를 확실히 내기 위해 당직개편 때 억지로라도 ‘대표 계보’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당 소속원들이 대선후보에게 눈도장이나 찍으려고 난리칠 때 대표로서 외쳐보라.“두번이나 혼쭐나고 정신 못 차렸느냐. 국회에서 정책을 열심히 챙기고, 민생현장을 훑고 나서 후보를 넘어 한나라당 이름으로 민심의 심판을 당당히 받아보자.”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열린세상] MS와 애플,그리고 대통령 선거/문인철 정치경제평론가

    경제학에서 기업이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가설로 설명된다. 이윤 극대화 가설과 판매량 극대화 가설이다. 이윤 극대화 가설에서 기업은 이윤 극대화가 목표이므로 무조건 판매만 많이 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윤을 적게 하면서 많이 팔고자 하는 박리다매(薄利多賣)는 이 가설에 부합하는 행위가 아니며, 제 값에 물건을 파는 것이 가설에 따른 판매전략이 된다. 반면 판매량극대화 가설은 일단 판매를 많이 하여 시장점유율을 높이자는 박리다매 전략을 뒷받침한다. 이 두 가지 전략 중 어느 것이 더 우수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두 전략 중 어떤 전략을 택했는가에 따라 기업의 향배가 바뀐 경우가 있다.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컴퓨터시장은 애플사가 주도하고 있었다. 최근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 ‘스티브 잡스’로 대표되는 바로 그 회사다. 애플의 기술력은 매킨토시로 통했는데 경쟁력이 매우 높았다. 이들은 이윤극대화 전략을 채택했고 높은 가격을 유지했다. 당시에 컴퓨터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이었는데,80년대 후반 애플의 컴퓨터 가격은 400만 원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이 전략은 컴퓨터 시장에서 애플사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 주었다. 경쟁자인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다른 전략을 썼다. 애플과의 경쟁에 자신이 없었던 그는 판매량극대화 전략을 채택했던 것이다. 기술은 떨어지지만 가격을 낮춤으로써 100만원대의 컴퓨터를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시장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후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컴퓨터 시장에서 확실한 주도권과 독점력을 갖게 되었고, 빌 게이츠는 세계 제1의 거부가 되었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위 두 전략으로 설명되는 현상들이 있다. 예컨대, 대선정국에서 특정인이 아닌 당 소속 후보 전체의 지지도를 높이는 전략은 판매량극대화 전략에 비견되는 반면, 당의 인기보다는 후보 개인의 인기에 치중하는 것은 이윤극대화 전략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동안 열린우리당의 전략은 이윤극대화 쪽이었다. 대선주자들 중심으로 정치가 이루어졌고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데 열중했다. 여기에 대통령까지 강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실패했다. 개인도 뜨지 못하고 당은 해체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중심전략도 지난 대선까지는 ‘이회창 후보’ 특정인물 중심의 정치를 한, 이윤극대화 전략이었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특정인 띄우기보다는 정권교체에 더 힘을 실음으로써 판매량극대화 전략으로 선회했다. 특정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보다는 중도우파로 정권을 교체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이 전략은 순항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후보경선에 들어가면 후보들은 모두 이윤극대화 전략을 쓰게 된다. 판매량극대화 전략에서는 정권교체 차원에서 모두 동의했지만, 이윤극대화 전략으로 전환되면 본인의 승패에만 전념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예측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컴퓨터 시장에서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판매량극대화 전략으로 시장을 독점한 후 이제는 이윤극대화 전략으로 선회하여 시장을 움직인다. 우리나라 대선이 경제라면 이 수순에 따라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될 것이나, 정치는 경제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기 때문에 변수가 너무 많다. 결국은 마지막 단계인 이윤극대화 전략에서 현 구도대로 갈지, 역전의 빌미가 되는 사건이 일어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한마디로 ‘시계제로’이다. 문인철 정치경제평론가
  • ‘여론조사의 힘’

    ‘여론조사의 힘’

    32.7→20.8→9.6…. 사랑의 크기를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비현실적인 상상이라고? 그렇지 않다. 정치인들, 특히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국민의 사랑’을 끊임없이 숫자로 확인하면서 울고 웃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제 여론조사 지지율은 유력 대선주자를 한 방에 날려버릴 만큼의 엄청난 위력을 행사한다. 지난달 갑자기 출마를 포기해 버린 고건 전 국무총리가 단적인 예다. 한때 1위까지 갔다가 하향세로 돌아선 지지율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면승부’ 이후 더 떨어진 것으로 확인되자 그는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맨 윗줄의 숫자들은 2005년 3월∼2006년 12월 고 전 총리의 지지율(%) 추이다. 곤두박질치는 ‘사랑의 성적표’를 받아든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국민들은 그의 퇴장 후 전해 들었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대해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직후 수년간 대세론을 구가해온 이인제 후보가 순식간에 ‘녹다운’된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올해 고 전 총리 낙마(落馬) 사태까지 겹치자 대선주자들에게 여론조사는 두려움의 차원으로 격상됐다. 여론조사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본선에 이르기도 전에 고배를 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이제 가설의 차원을 뛰어넘은 듯하다. 고 전 총리 퇴장 이후 정치권에서는 “다음 차례는 누구냐.”란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지경이다. 열린우리당의 대선주자인 정동영·김근태 전·현직 의장이 ‘2선 퇴진론’에 몰려 있는 것도, 이와 맞물려 ‘외부인사 영입론’이 만연한 것도 다 여론조사란 ‘변주곡’의 마력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검증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여론조사의 위력이나 다름없다. 언론은 이제 가나다 순도 아니고, 여야(與野) 순도 아니고,CT촬영처럼 적나라한 여론조사 지지율 순으로 대선주자들을 줄 세운다. 그래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대선주자들은 무표정한 아라비아 숫자와 ‘%’란 기호 앞에서 매일매일 ‘수능’을 치르는 셈이다. 그러니 대선주자들의 전략은 여론조사로 시작해서 여론조사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유권자라면 대선주자들의 행보 뒤에 어김없이 여론조사의 마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야 하고, 여론조사에 애써 무관심한 척하는 정치인의 표정을 반대로 해석할 줄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 측면에선 “나도 한때 지지율이 50%가 넘은 때가 있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이 차라리 솔직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말 역시 여론조사라는 메커니즘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역설이 아닐까.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탈당의 궤변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탈당의 궤변

    열린우리당의 탈당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수준 이하의 정치권이라 해도 최소한의 도의(道義)나 금도(襟度)는 있게 마련.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이번에는 그런 게 영 보이지 않는다. 탈당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진정 모르는 것인지….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최측근 인사마저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 천정배·염동연 의원이다. 이들의 탈당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천 의원은 어떤 인물인가.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유일하게 현역 의원으로서 노무현 후보 편에 섰던, 그리고 대선 승리 후엔 가장 먼저 신당(지금의 열린우리당) 창당을 역설했던 사람이다. 노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와 법무부 장관을 지내 여권 후보군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수십년, 아니 수백년간 민초들이 피흘리고 싸우고 희생해서 가까스로 만든 정부”라고까지 했던 그다. 염 의원은 어떤가.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던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감으로 생각,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 된 인물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노 대통령의 생각을 전하는 역할까지 맡았던 그다. 그런 그들이 헌신짝 버리듯 당을 떠났다. 그래서 두 의원의 탈당은 노 대통령에 대한 배신으로 비쳐진다.1992년 박철언·이종찬 의원의 민자당 탈당과 1997년 이인제 의원의 신한국당 탈당과는 궤를 달리한다. 세 사람의 탈당은 당 대선후보(김영삼, 이회창)와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이들은 민생개혁세력의 대통합과 통합신당의 정권 재창출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국민들은 이면에 숨겨져 있는 속뜻을 웬만큼은 알고 있다. 대권후보가 되기 위한 입지 확대용이거나 적어도 차기 총선에서 다시 한번 금배지를 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생명 연장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본다. 특히 염 의원의 탈당의 변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는 “부여를 떠나 졸본으로 간다.”며 “흩어진 옛 조선의 유민들을 모아 한나라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망해가는 부여의 금와왕이고 국민들은 부여 백성이란 말인가. 또 졸본 백성은 누구이며,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은 다른 나라 백성이란 말인가. 지도층 인사의 발언치고는 참으로 한심하다.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점에서 탈당파들이 청와대와 정부에 일방적으로 이끌려간, 그래서 국민 지지를 잃어버린 열린우리당의 환골탈태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고 싶다. 국민들의 불만을 외면한 채 청와대의 독주를 숨죽이고 방관했다면 그들에게도 분명 공동책임이 있다. 탈당을 준비 중인 의원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얘기다. 탈당파들은 타이타닉호를 자주 언급한다. 문제의 본질은 침몰하게끔 만든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마지막까지 한명의 승객이라도 구출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탄생 과정과 과반의석을 차지한 배경을 이해한다면 더욱 그렇다. 결국 탈당 사태는 수요자 중심의 정치가 되지 못한 탓이다. 국민 입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함에도 여전히 자기들만의 세계, 즉 여야 개념에서만 보고 있다. 제발 이제는 국민들의 생각이 어떤지 조금이라도 알고 하는 정치를 해줬으면 한다. 더 이상 “꼬라지하곤…”이란 개그 유행어가 되뇌이지 않도록 말이다. jthan@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임기말 대통령과 탈당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임기말 대통령과 탈당

    15대 대통령선거가 있던 1997년 10월쯤인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는 김영삼(YS)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안기부장 인사권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 YS는 이후 사석에서 “그 사람(이 후보를 지칭)이 그럴 줄 몰랐어.”라며 배신감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진다.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당한 이 후보 진영은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후보의 비자금 의혹을 회심의 반전(反轉)카드로 꺼내든다. 하지만 도와줄 것으로 기대했던 YS는 공정한 대선관리를 들어 임기중 수사 불가 방침을 천명했다. 이에 반발한 이 후보는 YS와 건건이 갈등을 빚다 끝내는 YS의 탈당을 요구하게 되는데, 안기부장 인사권 요구도 이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YS도 결국 대선을 한 달가량 앞둔 11월7일 신한국당을 탈당한다. 선거 불개입 원칙을 겉으로 내세웠지만 이 후보의 승리를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 배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YS의 탈당은 이 후보 패인의 여러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YS도 민자당 대통령후보 시절이던 1992년 9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관권선거 개입의 폐습을 청산하겠다.”며 전격 탈당하는 바람에 뜻밖의 타격을 입은 바 있다. 현직 대통령의 여당 탈당은 그때가 처음이다.YS는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선거자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YS는 2박3일이나 3박4일간의 지방유세 중에도 매일 저녁 서울로 급히 올라와 지인들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다음날 새벽에 유세단과 합류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다행히 11월부터는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금문제는 해소됐으나 YS 측근들은 그때 일만 떠올리면 몹시 불쾌해한다.YS 본인도 나중에 “노 대통령이 나를 대통령에 당선시키지 않기 위해 탈당했다.”고 밝힐 정도였다. DJ는 대선을 7개월여 앞두고 일찌감치 민주당을 탈당했다. 세 아들의 비리가 기폭제였지만 노무현 후보를 배려하는 차원이었다는 게 중론이다.DJ의 이른 탈당으로 민주당과 노 후보는 검찰 수사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물론 대선가도에도 한층 탄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두 케이스와는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탈당 얘기를 꺼냈다.“대통령 때문에 탈당한다면 차라리 그 사람들이 나가는 것보다 내가 나가는 것이 당을 위해서도 좋은 일 아니겠느냐.” 깨질 위기에 처한 열린우리당을 살려보겠다는 간곡함이 깃들어 있다. 난파선과 같은 우리당의 상황이 변수이지만 노 대통령의 탈당은 이제 상수(常數)다. 대략 하반기쯤으로 점치는 추론이 대체적이었던 만큼 이번에 탈당하면 시기는 무척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전 세번의 직선 대통령의 경우 전부 여당 후보가 결정돼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 오리무중이다. 탈당 시기는 노 대통령의 의중에 달렸지만 정쟁을 야기하는 탈당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정파적 이해에 얽힌 탈당, 정치 개입을 위한 탈당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탈당 즉시 중립 선거관리내각을 출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임기말 대통령의 의무라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정치 개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하지 않았다. 지금 봐도 잘한 결정이다.” jthan@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대선과 후보검증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대선과 후보검증

    1997년 7월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전국 순회 유세전이 중반을 넘어설 즈음 이한동·이수성 후보 캠프에서는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병역 문제를 공식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대세론으로 1위를 질주하는 이회창 후보를 꺾기 위한 승부수였던 셈이다. 그러나 정작 두 후보는 후보 연설회에서 이 문제에 관해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결국 이회창 후보는 다른 후보들이 ‘반(反)이 전선’을 펼쳤음에도 여유 있게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설훈 의원을 얼마 후 만났다. 설 의원은 알다시피 김대중(DJ) 국민회의 총재의 핵심 측근. 그는 “이번 대선은 DJ가 반드시 이긴다.”고 큰소리쳤다. 이회창 후보가 신한국당 후보군 중에서 약점이 많은 편이어서 오히려 전투가 수월하다는 주장이었다.“우리는 이회창 후보가 되기를 정말 바랐다.”면서 X파일까지 준비해 놨다고 그는 덧붙였다. 처음엔 설 의원의 희망사항이겠거니 하고 웃어 넘겼지만 이후 전개과정은 그게 아니었다. 국민회의 측이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를 전방위적으로 터트리면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40%대에서 10%대까지 급전 직하, 결과적으로 설 의원의 얘기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만약 이한동·이수성 후보가 먼저 병역 문제를 제기했다면, 다시 말해 예선에서 검증이 이뤄졌다면 대선 결과는 달라졌을까. 당내에서 한번 걸러지면 본선에선 그만큼 파괴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법. 이인제 의원의 탈당이 이뤄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성공한 사람은 남들이 던지는 벽돌로 든든한 기초를 쌓는다고 한다. 검증은 필요하다. 그것도 정책과 이념, 후보의 됨됨이 등 가급적 많은 분야에서 철저하게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정책분야만 해도 현실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물론이요, 후보의 지식과 콘텐츠 내용, 실천·추진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 후보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지금 한창 유력후보 진영 간에 검증 공방을 벌이는 한나라당이나 범여권 모두 해당되는 사항이다. 당내 경선에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본선에서 힘 한번 못써 보고 패배의 쓴잔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검증에는 순기능적인 것과 역기능적인 것이 있다. 후보간 진흙탕 싸움으로 비치는 인신공격이나 흑색선전은 후자에 해당한다.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후보간 검증 공방이 이런 쪽으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두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반면 순기능의 검증은 구체적이고 공개적이다. 검증 주체도 후보가 아니라 제3의 객관적 기관이다. 예선과 본선을 통해 다양하게 이뤄질 후보간 TV토론회나 시민단체 등의 정책토론회, 세미나 등은 나라를 제대로 이끌 인물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면 예전처럼 ‘깜짝 스타’의 출현 가능성도 줄어들지 않을까.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증 탓에 단순히 신선하다는 이유로 그 인물이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 나라를 이끌 제대로 된 비전은 갖고 있는지 따져 보지 않고 덜커덕 표를 몰아주는 일은 이제는 말아야 할 것이다. 검증은 후보에게도 유권자에게도 업그레이드의 기회다. jthan@seoul.co.kr
  • 이회창후보 대변인 지낸 조윤선 변호사 한국씨티銀 부행장으로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대변인을 지낸 조윤선(41) 변호사가 이번에는 뱅커로 변신했다.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녀는 15일부터 한국씨티은행 법무본부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조 부행장은 앞서 김앤장에서 13년 동안 전략적인 법률자문, 민형사소송 등에 대한 기업자문을 해왔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컬럼비아 법대에서 법학석사를 취득했으며 사법시험에는 1991년 합격했다. 졸업 이후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김앤장 변호사로서 무역위원회 위원, 법제처 산하 법령 해석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녀는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중앙선대위 공동 대변인으로 발탁돼 이미 유명세를 치른 바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박근혜 경제자문단 남덕우씨등 참여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12일 경제 자문단을 공개했다. 정책 자문단 공개는 지난 5일 외교·안보그룹 공개에 이어 두번째다. 경제 자문단은 3공 시절 ‘서강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졌던 남덕우 전 총리가 좌장을 맡았고, 이회창 대선후보 당시 경제 정책을 조언했던 차동세 전 KDI 원장, 안종범 교수(성균관대), 이종훈 교수(명지대)가 참여했다. 또 박 전 대표가 국회의원이 될 당시부터 정책 조언을 해왔던 신세돈 교수와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의 남편인 김영세 교수(연세대)를 비롯해 김광두(서강대), 표학길 방석현(서울대), 김인규 교수(한림대) 등 학계 인사가 포함됐다.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석패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도 경제 브레인으로 참여했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이날 당 소속 한선교 의원을 캠프 대변인으로, 정인봉 전 의원과 곽영훈 전 중랑갑 당협위원장을 각각 법률 특보와 국토환경정책 특보로 임명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여의도in] “헌법이 동네가게 만화책이냐”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11일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제안과 관련,“정말 개헌을 의도하고 내놨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점에서 생각이 짧은 것이고, 만일 판을 흔들려고 내놨다면 정말 무책임한, 지도자로 할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KBS라디오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데 (개헌을) 밀고 나가겠다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면서 “정치판을 뒤흔드는 효과도 있고, 야당이 반대해 통과가 안됐다고 하며 ‘나 못하겠다.’고 내던지면 조기 선거를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헌법이 무슨 동네 만화 가게 만화책도 아니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한 장면만 지우자고 해서 지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대통령이 말하는 문제점은 국정운영의 미숙과 무경험에서 오는 것이지,(단임제라는) 제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대선주자 베이스캠프 대해부] (2) 박근혜 한나라당 前대표

    [대선주자 베이스캠프 대해부] (2) 박근혜 한나라당 前대표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 캠프는 최근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착수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의 지지율이 두배 정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각계 자문그룹의 면면을 공개하고 전문가 영입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 가속도 내는 캠프 리노베이션 그러나 박 전 대표측은 최근의 지지율과 상관없이 한나라당 경선 승리를 자신한다. 현행 당헌에 따라 전당대회 대의원 20%, 일반당원 30%, 공모선거인단 30%, 여론조사 20%를 반영해 경선을 치르면 결코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전 대표의 당내 영향력은 최근의 지지율에 상관없이 막강하다. 지난 3일 사실상 ‘대선출정식’으로 치러진 신년인사회에 46명의 당 소속 의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박 전 대표측은 한나라당 127명의 국회의원 중 현재 최소한 54명을 확실한 지지파로 자체 분류한다. 박 전 대표의 원내 그룹은 핵심 측근인 허태열 김무성 의원이 이끌고 있다. 김기춘 의원도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3선 이상 의원 모임의 좌장으로 지휘부에 포진해 있다. 유정복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캠프 살림을 도맡는다. 박 전 대표의 의중을 궤뚫고 있는 ‘박심’(朴心)으로 통한다. 유승민 의원은 8개 자문그룹을 사실상 이끌며 그룹별 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최경환 의원은 상황실장으로 캠프의 전략·기획 분야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원내와 원외 전문가 조직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박 전 대표 밑에서 당직을 맡았던 맹형규·서병수 전 정책위의장, 전여옥 전 대변인, 김재원 전 기획위원장, 김정훈 전 전략위원장, 심재엽 전 지방자치위원장 등도 측근 의원으로 분류된다. 여기에다 곽성문·김태환·박종근·서상기·유기준·최경환 의원 등 영남권 의원과 김영선·한선교·이혜훈·이경재 의원 등 수도권 의원들이 추가된다. 자민련 출신의 김학원 전국위원회 의장도 친박 성향 의원으로 분류된다. 박 전 대표측은 여의도에 있는 캠프 사무실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당내 경선 전략을 진두 지휘할 명실상부한 ‘컨트롤 타워’로 바꾸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직접 영입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이 캠프를 총괄하는 본부장을 맡고 이병기 여의도연구소 고문이 안 본부장을 돕는다. 본부장 밑으로 일정, 홍보기획, 메시지, 공보, 사이버, 정책, 조직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배치돼 각종 기획이나 전략을 수립한다. 일정 관리는 김선동 전 대표실 부실장을 비롯해 경호와 수행담당인 안봉근 보좌관과 류길호·장성철 보좌역이 맡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이미지와 홍보관리는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가 담당한다. 메시지팀은 박 전 대표의 대표 시절부터 원고를 담당해 온 조인근 팀장, 코미디 작가 출신 최진웅 보좌역, 정호성 비서관으로 짜여졌다. 공보는 이정현·구상찬·신동철 특보가 맡는다. 사이버는 이춘상 보좌관이 인터넷과 팬클럽을 관리하고, 전문가 정책조율은 이재만 보좌관의 몫이다. 이성헌 전 한나라당 사무부총장은 원외 당원협의회 위원장들을 챙기는 등 조직을 책임진다. 캠프내 공식 조직에는 속해 있지 않지만 외연 확대 작업에는 연세대 총학생회 간부 출신 홍윤식씨와 당 중앙위에서 오래 일해온 이정기씨, 언론인 출신 이연홍씨가 힘을 보태고 있다. 이밖에 남덕우·신현확 전 국무총리, 김용환 전 자민련 부총재, 김만제 전 부총리,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등이 개별적으로 박 전 대표에게 조언하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속속 공개되는 비선정책라인 정책·자문그룹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외에는 누구도 실체를 알지 못할 정도로 얼마전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책 부재라는 지적을 일축하고 정책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자문그룹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현재 박 전 대표의 자문그룹은 8개 팀이 활동중이다. 이들 자문그룹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박 전 대표와 인연을 맺으면서 ‘싱크탱크’로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박 전 대표의 캠프에서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유승민 의원조차 각 팀의 대표자급만 알고 있을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현재 박 전 대표는 각 자문그룹의 소속원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동의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어서 1월말쯤 자문그룹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를 보좌하는 자문단은 경제·교육 분야는 많지만 외교·안보 분야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을 의식한듯 박 캠프측은 지난 5일 ‘신외교안보포럼’의 멤버들을 공개했다. 공로명 홍순영 전 외교부 장관,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 이재춘 전 러시아 대사, 이상우 한림대 총장,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박승춘 전 국방부 국방정보본부장, 이병호 전 말레이시아 대사, 구본학 한림대 교수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방석현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마포팀’은 자문단 그룹중 가장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유종하 전 외교부장관과 최광 외대교수, 이건영 중부대총장 등이 소속돼 있다. 홍윤식씨가 리더로 있는 ‘정책팀’도 최근 마포팀에서 분리돼 별도팀을 조직중이다. 이혜훈 의원의 남편인 김영세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최강식 연세대 교수,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 곽진영 건국대 교수 등도 참여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개인 자문그룹도 활발하게 ‘싱크탱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박 전 대표가 지난 97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개인적으로 정책 도움을 받던 경제·경영, 교육, 국토개발 전문가들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경부 운하’에 맞서 ‘한·중 열차페리’ 구상을 내놨던 ‘대구·서울 그룹’도 박 전 대표를 측근에서 보좌하며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책통인 유승민 의원이 별도로 이끄는 팀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출신의 차동세 경희대 교수 등이 포진돼 있다. 소장파그룹에는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 이종훈 명지대 교수를 비롯해 외교·안보, 과학기술 분야의 소장파 학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도덕성·지도자 경륜 겸비” 우리는 불과 4년 전과 9년 전에 있었던 두 차례의 대선 참패 이유를 벌써부터 잊고 있다. 가장 지지율이 높고 국가지도자로서 신망이 높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상대방이 제기한 흑색선전 등 기만 전술에 참담하게 무너져 버려 지금 온 국민이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일이 이번 대선에선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의 상황은 두 번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보통 수준의 상식을 뛰어 넘는 거대한 구조가 있는데 이를 꿰뚫어 봐야 한다. 정계와 무관하게 살았던 내가 최근 정국의 흐름을 봐도 안타까운 상황이 재연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달 반 전 박 전 대표의 영입제의를 받고 많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이제는 10년 좌파정권이 더이상 연장되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으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박 전 대표의 캠프에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좌파 정권을 반드시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지금 후보로 거론되는 네 분들 모두 훌륭하지만 그 중에서 본선 경쟁력이 가장 높은 분은 박근혜 전 대표다. 지난 98년부터 3선의 국회의원과 5년간의 퍼스트 레이디,2년 3개월간 당 대표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경륜과 정책, 도덕성 시비검증을 오랫동안 거친 사람은 박 전 대표가 유일하다. 안병훈 캠프 본부장
  • 이회창 “현실정치 참여 않겠다”

    이회창 “현실정치 참여 않겠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새해 첫날인 1일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인 지난해 말부터 ‘강연 정치’에 나서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던 상황에서 공식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배경에 대한 갖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서울 서빙고동 자택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요즘 강연을 몇 차례 하니까 정계에 복귀하는 것이냐는 억측과 비판이 있었다.”고 전제한 뒤 “그동안 말씀드린 대로 정치를 떠난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재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 속에 다 들어가 있다.”고 말해 사실상 불출마 의사를 거듭 강조했다. 새해 벽두에 나온 이 전 총재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놓고 정치권의 관측은 다소 엇갈린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원칙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분”이라며 “그 분이 ‘현실정치 불참’을 선언했다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당과 국가를 위한 마지막 충정을 보여주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다른 의원은 “강연정치 등을 통해 정계 복귀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당 안팎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 같다.”면서 “최근 각종 언론매체가 실시한 여론조사도 이 전 총재에겐 적잖은 충격을 줬으리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 전 총재는 그러나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라의 현실에 눈을 감고 수수방관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면서 “다시는 이러한 좌파정권이 출현하지 않도록 막는 일이 제가 이 나라와 시대에 진 소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몇 차례 강연은 오로지 이런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현실정치의 차원을 넘어선 구국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 저의 신념”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활동은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총재는 올 대선에서 좌파 정권의 재출현을 막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비좌파연합 결성 등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서울신문-KSDC 공동 여론조사(상)] 이명박 개인실적·경제성장 기대감 작용 ‘高高’

    이번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상승, 박근혜 전 대표와 고건 전 국무총리 동반하락’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이 전 시장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내년 대선 때까지 지속될 것인가.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대선 1년 전에 여론지지율 1위를 달리던 후보들이 대선국면 이후 초반 대세를 유지하지 못한 채 무릎을 꿇고 말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 전 시장의 지지율도 쉽사리 등락을 예측키는 어렵다. 15대 대선을 1년여 앞둔 1996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찬종 후보는 21∼33%의 지지율로 부동의 1위를 지켰다. 하지만, 박찬종 후보의 지지율 1위의 요인은 조직과 능력보다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또 2001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30%대의 지지율로 1위를 고수했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초반 강세는 자신의 비전이나 능력보다는 한나라당이라는 조직의 힘과 김대중 정부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 성격이 강했다. 반면,2006년 말 현재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전 시장의 경우는 조직이나 이미지보다는 자신의 실적과 시급한 국가 과제인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북한 핵 실험 이후 국가안보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여성인 박근혜 전 대표보다는 오히려 이 전 시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실제로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강력한 리더십’을 지적한 사람들의 대선후보 지지도를 살펴 보면, 이 전 시장이 27.2%로 박 전 대표(14.9%)와 고 전 총리(8.2%)를 압도하고 있다. 게다가 여권 유력 후보들의 지지도가 전체적으로 5%를 넘지 못하는데다 여당이 정국 주도권을 단기간에 장악하는 것도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시장의 지지율 1위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정리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대선주자들 새해 첫날 ‘자택정치’ NO

    SECT TEXT 해마다 1월1일이면 연례행사처럼 이뤄지던 주요 정치인들의 ‘신년 자택 개방’ 관례가 사라지고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17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새해 첫날 자택 개방 대신 등산이나 고향·민생현장 방문 등을 통해 대선 의지를 다진다. 신년 하례를 받더라도 자기 집이 아닌 사무실 등에서 손님을 맞을 계획이다. 여야 당 지도부 역시 자택 개방은 없다. 한 대선주자측 인사는 주요 정치인들의 자택 개방 관례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새해 첫날 자택에서 손님을 맞는 관행이 국민들에게 ‘권위주의적인 문안정치’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1일 영등포 당사에서 단배식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현충원 참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임채정 국회의장 예방 등의 일정을 소화한다. 정동영 전 의장은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찾아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용광로처럼 우리 사회의 갈등을 녹여 새로운 결정체를 만들어내자고 역설할 예정이다. 이어 주부·학부모 간담회를 갖는 등 첫날부터 활발한 ‘대권행보’를 펼친다. 고건 전 총리도 자택 개방을 하지 않고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을 잇따라 찾아 신년하례를 한 뒤 자택에 머물며 정국 구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동작동 국립현충원과 남산에서 열리는 당 단배식에 참석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고 자택에서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대표 시절에도 새해 첫날 자택 대문을 걸어 잠갔던 그는 오는 3일에 여의도캠프에서 손님들을 맞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자택 개방 대신 행주산성에서 캠프 관계자 및 지지자들과 해돋이를 지켜 보며 필승의 각오를 다진다. 그는 첫째·둘째 주 안국동 사무실에서 손님을 맞고 외부의 신년 하례회에도 참석, 인사를 할 예정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동작동 국립현충원 참배와 당 단배식 참석 후 강화도 마니산 등반에 나서고, 원희룡 의원은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대선 승리를 위한 결의를 다진 뒤 지역기자 간담회를 갖는다. 반면 원로 정치인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자택을 개방키로 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각각 상도동·동교동 자택을 개방, 신년하례를 받기로 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일부 측근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자택을 개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복귀설이 나도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서빙고동 자택을 개방한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열린세상] 다음 대통령의 요건/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2002년 대선이 있기 전에 학생들에게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 재미삼아 묻곤 했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많은 학생이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를 선호했다. 이회창 후보보다는 노무현 후보를 좋아하는 학생이 많았고, 노무현 후보보다는 정몽준 후보를 택하는 학생이 많았다. 아마 정몽준 후보가 여권의 단일 후보가 되었다면 정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더 많은 차로 이겼을지 모른다. 최소한 젊은층 정서는 그때 그랬다. 학생들은 왜 이회창 후보보다 노무현 후보를, 노무현 후보보다 정몽준 후보를 좋아했을까? 그들이 든 이유야 다양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움이었다. 그들에게는 이회창 후보보다는 노무현 후보가 새로워 보였고 노무현 후보보다는 정몽준 후보가 더 새로워 보였다. 생물학적인 나이도 그렇지만 이미지는 더 그랬다. 어른들은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대선 결과를 보고 젊은층이 모두 빨갱이가 되어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고 한탄했다. 기성세대에게는 이회창 후보가 낙선하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한 사실은 젊은층이 좌경화했다는 확실한 방증이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 이전에 노무현 후보보다 정몽준 후보를 선호한 학생이 많았던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사실 이회창 후보의 보수주의보다는 노무현 후보의 진보주의가 덜 낡아 보이지만, 진보주의 역시 그것이 냉전 이데올로기를 바탕 삼은 것이라면 낡은 것이긴 마찬가지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젊은층은 냉전시대의 사고 틀 자체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변화를 원했다. 그래서 정당다운 정당의 지원을 받지 못한 정몽준 후보의 약점은 젊은층에게는 오히려 희망의 싹이었다. 학생들이 새로운 후보, 젊은 후보를 좋아한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학생들과 만나면서 내가 얻은 답은 간단하다.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김영삼 직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서 대통령이 될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분들이다. 그러나 두 분 다 한 십년쯤 전에 대통령이 됐어야 한다. 독재가 무너진 이후 세상은 무섭게 변해 민주화 시대의 이미지, 민주화 시대의 어젠다로는 젊은층을 끌어모을 수 없었다. 젊은층은 더 참신한 리더십을 바랐다. 이제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어떤 후보가 뽑힐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야당의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여권 후보군을 따돌리고 멀찌감치 앞서 가고 있다. 그러나 두 분에게는 좀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하는 여론조사는 별 의미가 없다. 여권 후보가 안개에 묻혀 있는 상황에서 야권 후보가 독주하기는 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회창 후보는 몇년 동안 부동의 대통령 후보였지만 마지막 두어 주를 남겨놓고 대세는 반전했다. 누가 차기 대통령에 뽑힐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확언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젊은 층이 후보를 고를 때 이번에는 어떤 요인을 중시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쉽게 내놓을 수 있다. 틀림없이 젊은층은 후보의 어떤 자질보다도 품격을 중시할 것이다. 특히 말을 가려 하지 않는 후보는 된서리를 맞을 것이다. 4년 전에 젊은층이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는데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좋은 반면교사 역할을 했다면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은 1년 뒤에 젊은층이 또다른 요인을 중시하도록 반면교사 역할을 어김없이 수행하고 있다. 사실 노무현 시대의 담론은 거칠어도 너무 거칠다. 여·야, 위아래 할 것 없이 경쟁하듯이 내뱉는 막말 때문에 차라리 귀를 막고 살고 싶을 때가 많다. 눈치 빠른 후보는 이 점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하여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 2006년 말… 말… 말

    다사다난했던 병술년도 수많은 말이 명멸했다. 언어의 성찬이 아니라 막말과 가시돋친 말이 많았다. 서울신문은 그 가운데 16개를 선정했다.‘개도 짖지 않았다.’ 등 청와대가 진원지인 것이 7개,‘세금폭탄’ 등 부동산과 관련된 것들이 4개나 돼 올 한해 세태를 가늠케 했다. 국민 사이에서 회자된 말들을 통해 2006년을 되짚어본다. ●고건총리는 실패한 인사 “고건총리 임명은 하여튼 실패한 인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1일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에 참석, 결기에 찬 모습으로 연설을 하던 중 고 전 총리를 거론했다.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를 겨냥한 이 말은 대선 정국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고 전 총리가 다음날 “자가당착, 자기부정”이라며 노 대통령을 비판했고, 청와대 측은 “고 전 총리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한 게 아니다.”며 해명했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정계개편 및 대선 구도와 맞물려 정치권에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세금폭탄 종합부동산세 도입, 양도소득세 강화 등으로 부동산관련 세금부담이 늘어난 것을 일부 언론이 ‘세금폭탄’으로 빗댄 것이 발단이 됐다. 지난 5월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이 이에 반발,“오늘 신문에 ‘종합부동산세가 8배 올랐다.’며 세금폭탄이라고 하는데 아직 멀었다.”는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널리 퍼졌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는 참여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집값이 계속 올라 서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판교로또 올해 분양시장의 키워드였던 판교에 당첨되면 엄청난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다고 해 ‘로또’라는 이름이 붙었다.3월 1차 동시분양에선 9428가구 모집에 46만 5791명이 몰려 평균 50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가운데 풍성주택 신미주 33평형이 2073대 1의 최고경쟁률을 기록, 복권당첨을 실감케 했다. 판교는 주변 집값도 덩달아 오르는 부작용을 낳았다. ●된장녀 ‘된장’은 한국토종을 뜻하는 대명사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유행하게 된 된장녀의 의미는 전혀 딴판이다. 된장녀는 유명 배우가 광고하는 상품만 이용하고, 명품에 집착하고 뉴요커의 삶을 지향하며 남성을 ‘수단’으로 여기는 미혼여성을 일컫는다. 어원에 대해서는 설(說)이 많지만 ‘젠장녀→덴장녀→된장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스타벅스 커피값을 놓고 왈가왈부하던 사이버 논쟁에 “스타벅스에 집착하는 여성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남성 네티즌들의 의견이 모아지면서 된장녀란 말이 탄생하게 됐다. ●꼭짓점 댄스 올 1월 영화배우 김수로가 KBS 2TV ‘상상플러스’에 출연해 처음 선보인 뒤2006 월드컵 응원 열풍으로 이어졌다. 춤은 피라미드 대열의 맨앞(꼭짓점)에 선 리더를 따라 흔들기·걷기·찍기·돌기 등 단순동작을 반복한다. 전문가들은 꼭짓점 댄스의 열풍을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검찰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이용훈 대법원장이 9월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방법원들을 순시하면서 “밀실에서 비공개로 만들어진 검찰의 수사기록을 던져 버려라.”라고 해 법·검 갈등을 촉발시켰다. 이 대법원장은 일선 판사들에게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법원과 검찰은 이 발언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게 됐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등 법·검 갈등은 한층 고조됐다. ●신이 내린 직장 감사원은 9월26일 한국은행 등 국책은행의 청원경찰·운전기사 연봉이 최고 9100만원이라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직원들의 평균 연봉도 웬만한 기업 임원보다 많았다. 한은은 8218만원, 산은은 7781만원에 달했다. 실직 불안과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근근이 버텨나가는 직장인들에겐 고용과 상당한 처우가 보장되는 공기업은 ‘신이 내린 직장’일 수밖에 없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모럴 해저드가 민초들의 삶의 의욕까지 빼앗아버릴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임기 못마치는 대통령 노 대통령은 취임 3개월도 안 돼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하는 등 정치적 고비 때마다 ‘임기 문제’를 이슈화했다. 노 대통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지명철회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중도 하야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제 임기 문제는 노 대통령 이외에 아무도 모를 정도로 시한폭탄이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뉴라이트 2005년 11월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출범하면서 공식화한 ‘뉴라이트’는 올 들어 보수·진보 논쟁을 가열시키면서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진홍 목사는 창립취지문에서 “‘뉴라이트’는 글자 그대로 새로운 보수주의를 일컫는다.”면서 “특히 종래의 보수주의와 차별화하기 위해 ‘뉴(new)’를 붙였다.”고 강조했다. 뉴라이트는 지난 반세기 동안 기득권에 길들여져 자기 혁신을 게을리한 ‘올드(old)라이트’에 대해 비판의 강도를 높였으며,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양극화 노 대통령은 연초 신년특별연설을 통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등 양극화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말해 양극화가 사회적 어젠다로 자리잡았다. 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의 교육안전망 구축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했으나 이에 대한 재원 마련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지속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각 부문의 양극화가 사회병리 현상으로 공동체를 짓누르고 있는 만큼 정치적 공방에서 벗어나 진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먹튀 로비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헐값에 기업을 인수한 뒤, 단기간에 시세 차익이나 배당금 등 잇속을 챙기고 뜨는 외국 투기자본을 말한다. 론스타는 지난 2003년 1조 4000억원에 사들였던 외환은행을 올해 국민은행에 매각,4조 5000억여원의 수익을 내고 빠지려 했지만 검찰 수사의 벽에 부딪혔다. 금융계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지금 집사지 마라 지난달 10일 청와대브리핑에 홍보수석실 명의로 ‘정부, 양질의 값싼 주택, 대량 공급’이라는 글이 게재됐다.‘지금 집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서민들은 조금 기다렸다가,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비싼 값에 지금 집을 샀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 말은 현실과 괴리된 탓에 집없는 서민들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다. ●버블세븐 청와대가 만들어낸 대표적 신조어 가운데 하나다. 청와대는 정부의 잇단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잡히지 않자 5월15일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목동, 경기도 분당, 평촌, 용인 등 집값이 폭등한 7개 지역을 ‘버블세븐(bubble seven)’으로 지목했다. 정부는 버블세븐의 집값을 잡는데 부동산 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지만 ‘투기광풍’을 잡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미국 하자는 대로 해야 하나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코드는 ‘자주’다. 지난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 하길 국민이 바라는가.”라는 발언도 ‘자주외교’ ‘자주국방’의 연장선상이다.“한·미관계가 100년 이상된 역사”라고 전제,“약간의 입씨름 한다고 파탄되는 관계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관계”라는 발언 뒤에 나온 말이다. 한미 관계,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보수세력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황제 골프·황제 테니스 지난 3월 고위 공직자들의 특권 의식과 운동 파트너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3·1절에 입장료를 내지 않고, 앞뒤 팀의 간격을 여유있게 잡는 이른바 ‘황제골프’방식으로 골프를 즐기다가 옷을 벗었다. 또 같은 달 사용료를 내지 않고, 일반인의 출입을 원천봉쇄한 채 테니스 라켓을 휘두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황제테니스’의 주인공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운동 종목만 달랐을 뿐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공분을 샀다. ●순신불사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지난 13일 대학 특강에서 “아직 배가 12척 남아 있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다.”(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고 말해 연말 정가를 달궜다. 그는 이날 “후회할 바에야 차라리 한 번 더 맞는 것이 맞다.”며 정계복귀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이회창씨는 불패의 군대를 이끌고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했다.”면서 “이회창씨는 충무공이 아니라 원균에 가깝다.”며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 의사에 직격탄을 날렸다. 각부 종합
  • 고건 ‘정면충돌’ 藥될까 毒될까

    고건 전 총리는 과연 10년 전 이회창씨의 전철을 밟을까, 아니면 징크스를 깨고 화려한 도약을 할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과 고 전 총리의 정면충돌 양상은 문민정부 당시 김영삼(YS) 대통령과 이회창씨의 대립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고건-이회창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총리로 임명해준 대통령과 부딪쳐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회창씨는 여당 대선후보였음에도, 결국 YS의 외면을 받았다. 당시 YS가 이인제 후보를 민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부산·경남(PK)표가 분산됐고, 이것이 이회창씨의 패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당시 신한국당에서 대선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YS가 한보사건과 아들 비리로 PK지역에서 인기가 낮았지만 그래도 고정 지지층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와 맞물려 최근 고 전 총리가 보여주고 있는 보수적 행보에 노 대통령의 ‘거부권’이 겹치면서 진보성향의 PK표가 이탈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1997년에 이어 2002년 대선에서도 PK에서 30% 이상의 반(反)한나라당 표가 나온 것을 보면, 고 전 총리에게 불리한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PK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지역기반이 YS보다 약하다는 점, 지금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워낙 낮다는 점, 그리고 10년 전에 비해 대통령이 가용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제한돼 있다는 점 때문에 고 전 총리에게 불리할 게 없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공격은 오히려 지지율 하락세에 있던 고 전 총리를 도와주는 꼴”이라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정운찬과 이수성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정운찬과 이수성

    1997년 7월2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여당 사상 첫 대통령후보 자유경선이 실시되고 있었다.6명의 후보들이 마지막 사자후를 토하며 지지를 호소한 뒤 이어진 2시간가량의 자유시간. 부동의 1위였던 이회창 후보는 물론 2위 그룹의 이인제 이한동 김덕룡 후보 등도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대의원들을 찾아 다니며 막바지 현장 득표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유독 별천지에 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후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수성이었다. 경기장 주변을 산책하며 사색을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 필자는 ‘이 양반이 경선에 나선 후보가 맞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다른 후보들과 정반대의 모습에서 현실 정치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그를 안타깝게 바라본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는 꼭 필요한 인물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수단도 부족했던 것 같다.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데다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몇 만명 된다는 그이지만 정작 선거운동에 큰 도움을 줄 만한 의원이나 인물에게 자신의 뜻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오히려 그 쪽에서 “제가 어떻게 도와야 됩니까.”라고 물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괜찮아.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하지 뭐.”라고 했단다. 그러니 측근들의 푸념이 늘 수밖에…. 사실 그는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견제할 만한 블루칩이었다. 한때 김심(金心·김영삼 대통령의 의중)까지 보태졌고 연장선상에서 범민주계(정치발전협의회)의 지원도 한몸에 받았었다. 물론 강력한 후원자였던 최형우 의원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이회창 후보의 반발로 김 대통령이 발을 빼고 정발협이 해체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 여건상 이회창 대항마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고작 4위에 그친 게 경선 성적표다. 평생 학자로 지낸 탓에 총리와 같은 임명직은 잘 해내지만, 대통령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권력 의지는 약했던 게 아닌가 싶다.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가 가진 개혁성향에다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경제학자로서의 경제 전문성, 거기다 충청도 출신과 노무현 대통령과의 차별성 등이 여권에선 매력으로 작용한 것 같다. 필자 기억으로도 정 전 총장은 명석한 두뇌와 정확한 판단력, 소탈하면서도 만만찮은 뚝심을 가진 인물이다. 총장 재직 시절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역균형선발제를 밀어붙인 것은 그의 업적이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아이비리그 대학의 높은 연봉과 교수직을 마다하고 서울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그의 인간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가 현실정치에 진입하기에는 벽이 높아도 너무 높다. 조직과 자금을 말한다. 바람으로 대선에서 이길 수는 없다. 바람은 상대 역시 바람일 때만 승산이 있는 법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의 승리가 강금실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그에게서 물씬 풍기는 엘리트주의도 그가 넘어야 할 산이다. 설령 여권의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하더라도 김근태와 정동영이 물러서지 않는다면 그는 한낱 흥행용 보조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 전 총장이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그것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인지 치열한 고민 끝에 신중한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 그리고 그때까진 이랬다 저랬다 혼동을 주는 발언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잘못된 결정은 그가 학계에서 쌓아온 명성을 한순간에 날릴 수도 있다. 이수성 선배 총장의 실패가 그에겐 귀감이다. jth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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