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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미 “한국당 비대위원장, 제 이름 안 나왔으면”…최장집 “농담이죠?”

    이정미 “한국당 비대위원장, 제 이름 안 나왔으면”…최장집 “농담이죠?”

    자유한국당이 당 쇄신을 위한 혁신 비상대책위원장 후보로 수많은 인물들을 언급하고 있는 가운데 그 중 하나로 거론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정미 전 재판관은 3일 국민일보의 취재에 문자 메시지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면서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제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정미 전 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으로 당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직접 읽었던 바 있다. 이 때문에 국정농단 사건과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몰락해 온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역발상의 차원에서 당을 재건할 인물로 이정미 전 재판관이 거론됐다. 그러나 대표적인 친박계인 김진태 의원이 “당의 문을 닫을 것이 아니라면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는 등 친박계의 거센 반발도 예상됐다. 결국 당사자가 거부의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 ‘이정미 카드’는 쓸 수 없게 됐다. 문제는 이정미 전 재판관 외에도 여러 인사가 잇따라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다. 농담이겠지. 자유한국당과 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면서 “제의가 와도 수락할 생각이 없다”고 여러 매체에 밝혔다. 최장집 교수는 정당 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정치학계 거두로, 정치적 성향은 중도진보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두번이나 나섰던 이회창 전 총재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데 대해 측근을 통해 불쾌감을 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된 인사들에 대해 본인의 의사 타진도 없이 마구잡이로 이름만 흘러나와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외에도 도올 김용옥 교수,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 김황식 전 국무총리, 소설가 이문열, 전원책 변호사,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 박관용·김형오·정의화 등 자유한국당 출신 전 국회의장, 심지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떨어진 김태호 전 최고위원,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그리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까지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비대위원장 후보군을 줄여가는 기준이 있냐는 질문에 안상수 비대위 준비위원장은 “아직은 없다”면서 “참신한 분을 찾고 있지만 당 현실을 감안했을 때 통합을 추진할 인사가 먼저”라고 말했다. 안상수 위원장은 “주말까지 인터넷 등을 통해 국민공모로 받은 의견까지 고려해 5~6명 선으로 압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JP 받는 ‘무궁화훈장’, 반기문·이회창도 받아

    JP 받는 ‘무궁화훈장’, 반기문·이회창도 받아

    지난 23일 세상을 떠난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게 훈장 추서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25일 고인에게 한 때 정부를 책임졌던 국무총리로서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김 전 총리가 5·16쿠데타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훈장 추서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포상(褒賞)은 상훈(賞勳)과 같은 의미로 서훈(敍勳)에 표창을 포함해 이르는 말이다. 서훈은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 대해 공적의 내용, 그 공적이 국가와 사회에 미친 효과의 정도 및 지위, 그 밖의 사항을 고려해 훈장과 표장을 수여하는 것을 뜻한다. 또 서훈은 훈장과 포장을 합친 의미를 지닌다. 정부포상 훈장의 종류는 크게 12가지다. 단계별로 △무궁화대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이 있다. 처음 발표 당시 혼란이 일었던 무궁화대훈장(실제 JP는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은 대통령 및 그 배우자,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 또는 우리나라의 발전과 안전보장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 주어진다. 지난해 기준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등 133명에게 무궁화대훈장이 수여됐다. 상훈법 제12조(국민훈장)에 따르면 이번에 고 김 전 총리에게 추서된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무궁화장은 국민훈장 가운데 대통령을 제외한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이다. 단계별로 △무궁화장 △모란장 △동백장 △목련장 △석류장으로 구분이 된다. 다만 국무총리라고 무궁화장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윤영, 이회창, 정원식 전 총리 등은 받았지만 이해찬, 한명숙, 황교안 전 총리 등은 받지 못했다. 국무총리 외에도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고 김수환 추기경 등도 무궁화장을 받았다. 2017년말 기준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여자는 총 809명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훈장의 경우 당시 상황이나 여러 복합적인 판단에 따라 수여가 된다. 일정 자격을 갖췄다고 자격증처럼 곧바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통상 훈장이 추서된 뒤 한 달 내로 차관회의,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 절차가 마무리 된다. 김 전 총리도 이르면 7월 안으로 정부가 수여하는 무궁화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직무수행으로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주어지는 무공훈장, 공무원(군인·군무원 제외) 및 사립학교 교원으로서 직무에 정려해 공적인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근정훈장, 국가안전보장에 두렷한 공을 세운자에게 주는 보국훈장 등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DJP연합으로 정권교체 이뤄” “명암 엇갈리지만 큰 족적”

    “DJP연합으로 정권교체 이뤄” “명암 엇갈리지만 큰 족적”

    JP 영정 좌우 文대통령·MB 조화 2007년 틀어진 박근혜 조화는 없어 靑 “文대통령 조문 여부 안 정해져” 충청 출신 반기문·이회창 등 찾아 與도 “선배 정치인 떠나는 길 지원” 27일 발인… 자택서 노제 뒤 화장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24일에도 각계각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빈소를 정면으로 가장 왼쪽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를 시작으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 황교안·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조화가 줄지어 놓였다. 오른쪽에는 이명박·노태우 전 대통령의 조화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병상에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조화도 눈길을 끌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화는 보이지 않았다. 김 전 총리의 부인 고 박영옥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형 박상희씨의 장녀다.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의 사촌 형부다. 두 사람은 2007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이가 틀어졌다. 빈소에는 박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부부가 발걸음했다.여권 인사들은 공과에 관계없이 ‘선배 정치인’인 김 전 총리가 평안히 떠날 수 있도록 장례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빈소를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는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후대에 도저히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거인이시라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고 말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 전 총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DJP 연합으로) 정권교체라는 큰 시대적 책무를 다한 어르신”이라고 했다. DJP 연합 당시 정치적 동지였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명암이 엇갈리지만 족적이 크다”고 평가했다. 문희상 의원,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날 낮 러시아에서 귀국한 문 대통령이 발인(27일) 전에 빈소를 찾을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동시에 우리 현대사에 짙은 그늘과도 작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조문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조문 행렬도 이어졌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을 비롯해 홍준표 전 대표와 정우택·이명수·홍문표·성일종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 김무성·나경원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한동 전 총리도 빈소를 지켰다. 김 권한대행은 “대한민국 경제가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토대를 세운 업적을 기려 저희가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박주선·유승민 전 공동대표, 손학규 지방선거 상임선거대책위원장, 김동철 비대위원장 등도 일제히 고인의 넋을 기렸다. 한승수 전 총리, 이철우 경북지사 당선자, 남경필 경기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용채 전 국회의원, 한갑수 전 농수산부 장관,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이태섭 전 과기부 장관, 이긍규·김종학 전 국회의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도 조문했다. 충청 대망론을 업고 지난 대선에 도전했다가 포기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빈소를 찾아 “우리 민주 정치의 발전과 산업화 과정에서 참 큰 공적을 이뤘다”고 했다. 생전 고인과 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JP가 현역으로 있을 때 서운한 점도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과거의 일이고 상가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JP와 함께 3김 시대를 이끌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들도 조문했다. DJ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은 “찾아뵙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YS의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는 “아버지와 김 전 총리는 오랜 정치생활 동안 정치적 견해가 많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인간적으로 두 분이 정말 각별한 사이라 애석하다”고 했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방송인 송해, 가수 하춘화·김추자씨, 배우 정혜선, 성우 고은정씨도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준상주 역할을 맡은 정진석 한국당 의원은 장례 일정에 대해 “27일 오전 6시 30분에 빈소에서 발인제를 간단하게 지내고 영결식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27일 오전 9시 김 전 총리의 자택이었던 청구동에서 노제를 지내고서 오전 11시 서초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할 예정이다. 이후 고향인 부여의 가족 묘원으로 가는 길에 고인이 다녔던 공주고 교정을 잠시 들를 계획이다. 장례위원장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와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부위원장은 정우택·정진석 의원과 심대평 전 충남지사 등이 맡았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조윤선, ‘국정원 특활비 뇌물’에 “사제지간에 받은 격려금”

    조윤선, ‘국정원 특활비 뇌물’에 “사제지간에 받은 격려금”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받은 특수활동비에 대해 “사제지간에 받은 격려금”이라고 주장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병철)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조윤선 전 수석 측 변호인은 이같이 주장하며 뇌물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조윤선 전 수석과 이병기 전 원장은 서울대 외교학과 선후배 사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조윤선 전 수석이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했을 때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병기 전 원장은 정치특보였다. 두 사람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다시 만났다. 이들은 대학 선후배를 넘어서 정치적 스승과 제자 사이로 발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전 수석 변호인 측은 “세월호 참사 이후 힘든 정국에 부딪쳤을 때 이병기 전 원장이 제자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금품을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병기 전 원장 측도 지난 2월 “(돈을 준) 사실 관계는 인정하지만 뇌물인지에 대해서는 다투겠다”면서 “2002년에 알게 된 이후 친분·학연 관계로 챙겨준 격려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조윤선 전 수석 변호인은 “연배나 의전 서열이나 권한으로 봤을 때 조윤선 전 수석과 비교할 수 없는 위치인 국정원장이 준 돈을 뇌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김부겸은 안희정의 대체재가 될까/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김부겸은 안희정의 대체재가 될까/이종락 논설위원

    좀 섣부른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년이 막 넘은 지금으로선. 하지만 역대 정권은 늘 정권 이후를 생각했다. 9년 넘게 보수정권을 겪은 진보 세력은 최소 10년 집권을 기대하고 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오는 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기관에서 발표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의 압승을 예상하는 보도가 연일 나온다. 여권은 2020년 21대 총선은 물론 2022년 20대 대선까지 이런 기세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일 게다. 현 정권은 문 대통령의 재임 기간을 두 시기로 나눠 국정 운영을 계획할 것으로 보인다. 정권 초기는 과거 보수정권 때 쌓여 온 적폐를 청산하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정권 중반기부터는 보수 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 정치를 펴 외연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은 통합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기인한다. 지방선거에서 보수 세력이 참패한 이후에 이뤄질 정치 지형 재편 과정에서 중도보수 세력을 견인할 적임자가 절실하다. 그런 인물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손꼽혔다. 충청도의 대표 주자로 보수와의 대연정을 주장하는 등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며 협치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봤다. 하지만 안 전 지사의 불명예 퇴진으로 ‘포스트 문’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일부 친문(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세력 내에서는 안희정을 대체할 인물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거론한다. 진보 세력의 취약 지대인 대구·경북(TK) 출신인 데다 원만한 대인관계가 최대 장점이다. 김 장관의 심성을 볼 때 문 대통령 이후에도 ‘배신의 정치’를 하지 않을 인물로 여겨 왔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정부 부처 각료 임명 시 그에게 행정안전부를 맡긴 것도 이런 시각들로 분석되기도 한다. 김 장관은 8월에 있을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도 유력한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KTX 진상 손님을 제지한 일화는 ‘김부겸 대망론’에 플러스 요인이다. 그럼에도 김 장관은 대표 출마 선언 여부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아끼고 있다. 김 장관 측은 “지금 장관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상황에서 당권 관련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면서 “장관직 수행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모범 답안만 되풀이했다. 김 장관의 역할론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김 장관은 1997년 조순ㆍ이회창이 연대한 한나라당에 합류해 2003년 7월까지 함께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당시 ‘독수리 5형제’라며 민주당으로 이적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적을 바꿨으나 ‘불쏘시개’로 활용됐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뒤를 밟을 것이란 시각도 만만찮다. 김 장관은 자서전 ‘나는 민주당이다’에서 “한나라당 입당은 권위주의 정치문화를 청산하고 합리적, 상식적 지도자를 배출해 제도적 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해명한다. 자서전 곳곳에 민주화 투쟁에 전념하고 민주당 정체성에 맞게 살았다는 그의 고백이 배어 있다. 둘째, 민주당에 건너온 이후 역할이 미약했다는 지적이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 이외에는 치적이 없다는 얘기다. 당대표나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을 맡아 본 게 없다는 약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출마를 끝내 고사한 점도 감점 요인에 속한다. 셋째, 김 장관이 지역주의 타파 이외에 통합, 협치를 위한 어떤 노력과 성과가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장관은 상생의 정치와 공존의 공화국이라는 만델라의 리더십이 있다”면서 “민주당의 확장성과 역동성, 민주진보 세력의 통합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장관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출마하면 이해찬 의원은 물론 전해철, 송영길, 김영춘, 이종걸, 이인영, 박영선 의원, 최재성 전 의원 등과 경쟁해야 한다. 친문 세력이 그를 밀어준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지방선거 이후에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도전할 때 대망론도 꿈꿀 수 있다. jrlee@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아르코예술극장·학림다방… 역사·미래문화가 공존하는 곳

    지난 19일 참가자들이 둘러본 서울사방 동촌 대학로 일대의 서울미래유산은 모두 10개였다. 동촌은 조선 500년과 근대 이후 100년 등 600여년 동안 서울의 핵심 지역으로 군림했기에 역사문화와 미래문화의 숨결이 더불어 살아 있는 흔치 않은 지역이다. 동숭동에 마로니에공원, 아르코미술관과 아르코예술극장이 있고 또 혜화동에 림스치킨, 동양서림, 문화이용원, 혜화동주민센터가 있다. 명륜동에는 학림다방, 진아춘과 한무숙문학관이 각각 사연을 품고 깃들어 있다. 1929년 당시 경성제국대 캠퍼스에 심은 마로니에는 동숭동이라는 지명을 뛰어넘어 공원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아르코미술관과 아르코예술극장은 붉은 벽돌 건물 시리즈의 원조로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학림다방은 1960년 4·19 혁명, 1964년 한·일 회담 반대, 1974년 유신 철폐 등 학생운동 주도자들의 사랑방이었다. 림스치킨은 1977년 국내 최초로 치킨 프랜차이즈를 선보인 점을 인정받았다. 옛날 시장치킨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나 대학로 소극장에서 활동 중인 연극배우들이 주로 찾아온다고 한다. 림스치킨 옆에 빽스커피가 간판을 나란히 달고 영업 중이다. 혜화동로터리 동양서림은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한 화가 장욱진의 부인 이순경(98)씨가 1953년에 문을 연 이래 65년째 운영 중이다. 술과 그림에 빠져 가사를 돌보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부인이 가게를 꾸렸다. 종업원 출신 최주보씨에게 1980년 가게를 넘겼다. 서점이 없는 동네로 만들지 말라는 주민들의 압력 아닌 압력에 적자투성이 서점을 꾸려 나가고 있다고 한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70년대 풍경으로 들어간 듯한 문화이용원은 서울에 두 개뿐인 서울미래유산 지정 이발소 중 한 곳이다. 이발사 경력 53년을 자랑하는 지덕용(81)씨는 1956년부터 이발사로 일했다. 이회창, 이수성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두병 전 두산그룹 회장, 조홍제 전 효성그룹 회장이 단골이었고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요즘도 한 달에 두 번꼴로 찾는다.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배현진 출마 유력 ‘송파 을’…옥새파동의 진앙지

    배현진 출마 유력 ‘송파 을’…옥새파동의 진앙지

    역대 전적, 진보 대 보수 4승4패 ‘팽팽’방송사 앵커 출신들의 정계 진출 발판20대 총선서 ‘진박’ 유영하 출마 좌절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가 오는 9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한다. 배 전 아나운서는 오는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질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송파구 을’에 전략 공천될 가능성이 크다.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왜 하필 ‘송파 을’이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송파 을은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3구의 집값 상승과 인구 증가로 지역구 변동이 심했던 곳이다. 이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희비가 엇갈린 지역구이기도 하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이후 2016년 20대 총선까지 8번의 선거에서 진보 계열 후보가 4번, 보수 후보가 4번 당선됐다. 전적으로만 보면 우위를 논하기 어려운 접전지다. 송파 을은 방송사 앵커 출신 언론인이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은 지역구로도 유명하다. 배 전 아나운서와 송파 을에서 맞붙을 박종진 바른미래당 서울 송파을 공동 지역위원장도 MBN, 채널A 등 종편채널 앵커 출신이다.송파 을이 처음으로 선거구로 확정된 13대 총선에서는 고 김종완 평화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김 후보는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계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민주헌정연구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14대 총선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1996년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송파 인구가 증가하면서 송파구 선거구가 갑·을·병 등 3개로 분구됐다. DJ가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는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쓴 김진명 작가를 송파 을에 공천했다. 그러나 초선에 도전한 SBS 앵커 출신 맹형규 신한국당 후보가 39.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2000년 16대에서 송파구 선거구는 다시 갑과 을로 나뉘었고 맹 의원은 갑구로 지역구를 옮겼다. 송파 을에서는 송파구청장을 4번 지낸 김성순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KBS 기자 출신 최한수 한나라당 후보가 경합을 벌였다. 최 후보는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의 정무특보, 이명박 캠프 특보, 박근혜 대선후보 특보 등을 지내고 훗날 이회창 의원이 자유선진당을 창당할 때 합류했다. 개표 결과 지역 기반을 잘 다진 김 후보가 48.4%의 득표율로 최 후보(41.6%)를 누르고 당선됐다.2004년 17대 총선에서 송파구는 다시 3개 선거구로 분리된다. 보수 성향이 강한 송파 갑에 속했던 잠실 지역(잠실본동, 잠실 1·2·3·5·7동)이 송파 을로 편입됐다. 진보 성향의 석촌동과 삼전동이 여전히 송파 을에 남았지만 판세를 쉽게 점치기 힘든 지역구로 분석됐다. 이에 김성순 의원은 송파 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 사실상 새 선거구나 마찬가지가 된 송파 을에서 박계동 한나라당 후보와 김영술 열린우리당 후보가 경쟁을 벌였다. 당시 지상파 3사 출구조사는 김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예측했으나, 잠실동 개표가 시작되면서 박 후보에 몰표가 쏟아졌다. 결국 박 후보가 49.3%의 득표율로 김 후보(43.5%)를 제쳤다.18대(2008년)와 19대 총선(2012년)에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조세연구원장 출신의 유일호 한나라당 후보가 연이어 당선되면서 송파 을은 ‘보수 텃밭’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18대 총선에서 송파 을의 이슈는 ‘제2롯데월드 건축 추진’이었는데, 유 후보가 62.0%의 득표율로 약사 출신의 장복심 후보(35.8%)를 압도적으로 이겼다.19대 총선에서는 천정배 민주통합당 의원이 유일호 의원의 대항마로 전략 공천됐으나 46.0%의 득표율에 그쳐 유 의원(49.4%)에 근소한 차로 패했다. 20대 총선에서 송파 을은 이른바 ‘김무성 옥새파동’의 중심에 놓인다. 유일호 의원이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송파 을 지역구가 무주공산이 됐다. 이 지역을 노리는 새누리당 예비 후보만 8명이었는데,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진박’ 유영하 변호사를 단수후보로 공천한다.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반발이 컸다. 유 변호사는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의 법률 참모로 이명박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BBK 게이트의 핵심인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공천 후보 추천장에 서명을 안 하겠다고 선언한 뒤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로 내려가버린다. 결국 새누리당은 송파 을에 아무 후보도 내보내지 못하게 됐다.그 결과 MBC 앵커 출신인 최명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2년 만에 송파 을에 ‘진보’ 깃발을 꽂았다. 그러나 최 의원은 지난해 12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받은 재판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잃고 말았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홍준표 “서청원·최경환 의원 자동소멸절차…MB 혐의 있으면 조사하라”

    홍준표 “서청원·최경환 의원 자동소멸절차…MB 혐의 있으면 조사하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사 청산 문제에 대해 “서청원·최경환 의원 두 분은 자연소멸 절차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홍 대표는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두 의원의 제명 여부에 관한 질문에 대해 “국회의원들한테 동료의원을 제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홍 대표는 또 적폐청산 수사의 칼끝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누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혐의가 있으면 한번 불러서 조사하시라”며 “‘망나니 칼춤’을 추는 데 막을 방법이 어딨겠나. 수사를 막을 생각도, 방법도 없다”고 답했다. 다음은 홍 대표의 관훈토론회 일문일답.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 임박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당에서 수사를 막아야 하나.→혐의가 있으면 한번 불러보시라. 불러서 조사하시라. ‘망나니 칼춤’을 추는데 어떻게 막겠나, 양식을 믿어야겠다. 대통령이 할 일이 없어서 사이버 댓글 달라고 지시했겠나. 국가를 흔드는 범죄도 아니고 댓글 몇 개 가지고 전직 대통령을 소환한다는 것을 듣고 기가 막혔다. 수사를 막을 생각은 추호도 없고, 막을 방법도 없다. -적폐청산 이야기 나왔을 때 최종대상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예상했나.→칼자루를 쥐고 이놈을 칠지, 저놈을 칠지 아무도 모른다. 그 칼자루가 나한테 올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예상하고 정치하지 않는다. -특수활동비와 관련한 특검법안을 제출했는데.→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의 특활비도 문제 삼아야 한다. 바로 직전 정부만 문제 삼으면 옳지 않다. (국정원 특활비와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는) 최경환 의원(수사를) 물타기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언어습관이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란 지적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지금 한국당이 품격을 논할 때인가. 한국 보수정당에서 가장 품격 있던 분은 이회창 총재, 품격으로 가장 논란이 됐던 분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논란만 될 뿐, (품격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할 일 없는 분들의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을 신봉한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암’이나 ‘고름덩어리’는 특정 계파를 겨냥해 한 말 아닌가.→암 덩어리가 맞다. 암 덩어리를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겠나. 누가 나보고 암 덩어리라고 하면 받아들이겠다. 품격 있게 어떻게 하나. ‘암덩어리님’이라고 하면 되겠나.(웃음) -언어표현을 바꿀 생각은 없나.→사람이 죽을 때가 됐을 때 본질을 숨긴다. 나는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7개월에 대한 평가는.→아직 총체적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 물론 잘못이 있으면 단죄해야 하지만, 도를 넘으면 정권이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원인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두고 있다. 감정적으로 전직 대통령과 전전(前前)직 대통령까지 포토라인에 세우려고 한다. -현 정권을 친북 주사파 정권이라고 계속 비판하는데.→북한은 핵무기를 만들고 세계는 경제제재를 하는데, 우리 정부는 북한을 도와주겠다고 하면 친북 아닌가? 주사파를 주사파라고 한 것이다. 주사파를 주사파가 아니라고 할까? -한국당은 반북우파 정당인가.→한국당은 반북(反北)이 아니다. 북을 반대할 이유가 없고 북은 통일의 대상이다. 한국당은 그냥 보수우파 정당이다. -지방선거와 개헌의 동시 투표에 반대한다고 했는데.→앞으로 30년 이상을 내다보고 헌법을 만들어야 옳다. 지방선거에 붙인 곁다리 국민투표는 옳지 않다. 문재인 정부 재임 중 개헌하자고 말씀드린다. 개헌 내용은 어차피 여야 합의가 돼야 한다. -2020년 총선 때 개헌 국민투표도 같이하면 어떤가.→개헌투표는 선거에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국민의 열의가 있다. 현재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니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자고 하면 국민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축소된 권한이 국회의원들에게 간다고 하면 국민들이 동의하겠나. 지금 국회의원들은 권력을 많이 가지려고 개헌을 서두르는 것밖에 안 된다. 기본권, 헌법 전문, 지방자치, 통일 이후 양원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에서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전국 동시선거의 승패는 조직이 아니라 바람이다.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지, 민주당 쪽으로 불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가 신선한 인물을 내고, 바람이 불면 이길 수 있다고 본다. -예산안 표결과 관련한 원내대책을 말해 달라.→원내 일에는 다음 원내대표가 뽑히고 나면 관여하겠다. ‘한국당 패싱’ 지적은 제가 원내 일에 관여하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연말까지는 탄핵과 대선 패배 후 붕괴된 조직을 재건하는 데 집중하겠다. -다음 원내대표 때부터 개입한다면, 누구를 염두에 둔 건가.→싸움 나니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 (웃음) ‘친홍’(친홍준표)이라고들 한다. 지난 대선이나 당 대표 선거를 거치면서 최근까지도 나하고 안 친한 사람은 10% 정도 있다. 나머지 90%는 개인적으로 아주 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소위 계파라고 할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당 장악력을 높이려고 친박청산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인가.→그 말은 듣기가 좀 그렇다. 이 당은 2011년도 때처럼 나를 쫓아낼 명분이 없다. 책임당원의 74% 지지를 받아 당 대표에 당선됐다. 인적청산, 조직혁신을 거친 뒤 연말에는 신보수주의를 선언하면서 정책혁신을 하겠다. -대선 때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인상한다고 공약했었는데.→최저임금 대상이 알바생과 저소득층이라고 보고 5년 내 1만원까지 점차적으로 올려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인상할 때 정부보전을 얘기한 바는 없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에 동의하나.→선제타격에도 예방전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가 오기 때문이다. -본인의 정치적 미래는 어떤가. 계속 직접 뛰는 것인지, 아니면 후배를 키우는 것인지 궁금하다.→둘 다 추진하는 게 맞다고 본다. 반대 진영에서는 인물을 키우는데 보수우파 진영은 인물을 키운 적이 없다. 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그랬다. 새 인물도 키우고 같이 경쟁하면서 보수우파를 재건하는 것이 내 할 일이라 생각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뜨겁던 입맞춤… 뼈아픈 이별

    뜨겁던 입맞춤… 뼈아픈 이별

    ‘개혁보수’라는 기치 아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떠나 ‘풍찬노숙’을 함께해 온 김무성·유승민 의원이 1년도 안 돼 결국 결별을 택했다.불과 2년 전 비박(박근혜)의 싹을 틔우며 당 지도부로 의기투합했던 두 사람은 그간 극한 갈등과 화합을 반복하며 긴장의 공생 관계를 유지해 왔다. 김 의원과 유 의원의 인연은 2000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체제에서 원내수석부총무와 여의도연구소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이들은 2002년 대선 캠프에서도 함께했다. 김 의원은 이회창 캠프에서 미디어대책본부장을 맡으며 미디어 관련 업무를 총괄했다. 유 의원도 정치특보를 지내며 연설과 정책 업무를 도맡아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보탰다.2005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체제에서 김 의원은 사무총장, 유 의원은 비서실장을 각각 지냈다. 김 의원은 당의 살림살이를 총괄했고 유 의원은 박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며 연을 이어 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김 의원과 유 의원은 각각 박근혜 캠프의 조직총괄부장과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을 맡았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이들은 2015년 2월 새누리당 대표와 원내대표로 만나 ‘비박 지도부’로 함께 손발을 맞춘다. 이들의 관계는 2015년 청와대의 ‘유승민 찍어 내기’에 김 의원이 청와대의 손을 들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국회법 개정안에 박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유 의원과 충돌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김 의원은 의원총회를 소집하고 유 의원에게 원내대표 자진 사퇴를 권고했다. 하지만 2016년 새누리당 공천 파동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친박과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며 다시 의기투합한다. 지난 1월 이들은 ‘새로운 보수’를 표방하며 둥지를 버리고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5% 안팎에 머무른 낮은 지지율로 당의 진로를 두고 마찰을 빚어 왔다. 대선 이후 김 의원을 필두로 한 통합파 의원은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을 주장했던 반면 유 의원은 줄곧 자강론을 내세우며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어 왔다. 유 의원은 6일 바른정당 내 ‘통합파’를 이끌고 탈당 선언을 한 김 의원에게 “지난해 같이 탈당할 때 저는 끝까지 새누리당에 남아 개혁을 해 보려고 했고 지금 탈당하신 분들은 제일 먼저 탈당을 했다”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개혁보수의 길이라는 초심을 지키지 못해 대단히 안타깝고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20년 인연’ 朴·한국당 결별… 바른정당 8~10명 탈당 초읽기

    ‘20년 인연’ 朴·한국당 결별… 바른정당 8~10명 탈당 초읽기

    홍대표 페북에 “자르지 못하면 훗날 재앙” 김태흠 “제명 위임 안해” 법적 대응 시사 서청원·최경환 제명은 사실상 힘들 듯 바른정당 통합파 “트럼프 방한 후 복당” 유승민 “보수통합과 다른 길 가는 것”자유한국당이 3일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매듭지으면서 당의 상징이었던 박 전 대통령과 한국당의 ‘20년 인연’도 막을 내리게 됐다. 홍준표 대표가 지난 8월 16일 대구 토크콘서트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지 80일 만이며, 당 윤리위원회가 ‘탈당 권유’ 징계를 내린 지 15일 만이다. 탄핵 과정에서 한국당을 탈당한 바른정당 통합파는 복당의 명분을 얻게 되면서 보수 야권 진영의 재편이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를 지지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대구 달성 보궐 선거에 당선돼 국회에 입성, 2004년 3월 당 대표로 추대됐다. 이후 천막당사를 설치해 위기의 한나라당을 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다. 2011년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며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수십년간 이어 온 당의 상징색(파란색)을 빨간색으로 바꾸기도 했다. 홍 대표가 ‘보수의 상징’인 박 전 대통령과 ‘절연’을 선택한 배경에는 당이 ‘박근혜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지지율 회복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출당을 발표하기에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其亂)이라는 글을 올렸다. ‘마땅히 잘라야 할 것을 자르지 못하면 훗날 재앙이 온다’는 의미다. 홍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저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일관되게 탄핵 재판의 부당성을 주장해 왔고 탄핵당한 대통령을 구속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한 정치재판이라고도 주장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고 가혹했다”며 “한국당을 ‘국정 농단 박근혜당’으로 계속 낙인찍어 한국 보수우파 세력들을 모두 궤멸시키고 있다”며 박 전 대통령 출당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한국당은 이날 박 전 대통령 제명을 최종 확정하기까지 긴박한 하루를 보냈다. 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회를 열고 1시간 20여분 동안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논의했다. 최고위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제명 조치가 ‘보고 사항’인지, ‘표결 사항’인지를 놓고 홍 대표 측과 김태흠 최고위원이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최고위는 논쟁 끝에 홍 대표에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 문제를 일임했다. 이어 홍 대표는 7시간여의 숙고 끝에 기자간담회를 열고 박 전 대통령 제명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한국당의 당원 명부에서 완전히 지워지게 됐다. 친박계는 박 전 대통령의 제명에 일제히 반발했다. 최경환 의원은 “당헌·당규를 위반한 행위로 원천무효며 취소돼야 마땅하다”고, 김 최고위원은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친박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한 향후 징계 절차도 내홍을 불러일으킬 변수로 남아 있다. 최고위원회에서 당 지도부는 서·최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국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제명은 의원총회에서 재적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확정된다. 하지만 의총 소집 권한을 가진 정우택 원내대표가 징계안을 상정하지 않으면 이들에 대한 제명 여부 역시 불투명해진다. 홍 대표는 “오늘 그것(서·최 의원 제명 문제)까지 논의하면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안 했다”며 “지금 의총에 펜딩(계류)돼 있어 시간을 두고 원내대표와 의논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바른정당 통합파의 탈당 및 한국당 복당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박 전 대통령 출당 확정, 5일 바른정당 의총, 6일 바른정당 탈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야권 재편 ‘시간표’가 회자되고 있다. 바른정당 통합파는 5일 예정된 의총에서 일부 자강파가 제시한 ‘통합전대론’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이르면 6일 집단 탈당을 강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8~10명 가까이가 오는 6일 (바른정당 11·13 전당대회 출마자들의) 방송 3사 TV토론 중계 전에 탈당하기로 결심을 굳힌 것 같다”고 밝혔다. 통합파는 6일 탈당을 선언한 뒤 9일쯤 한국당에 합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통합파 의원은 “7일과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복당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11·13 전당대회 이후 주 원내대표 등을 중심으로 ‘2차 탈당’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자강파의 대표격인 유승민 의원은 서울대 강연 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바른정당을 떠나 한국당으로 가겠다는 분은 제가 말한 보수 통합과는 너무 다른 길로 가는 것”이라며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한국당, ‘1호 당원’ 박근혜 출당…홍준표 “朴 당적은 사라지지만”(종합)

    한국당, ‘1호 당원’ 박근혜 출당…홍준표 “朴 당적은 사라지지만”(종합)

    자유한국당이 결국 ‘정치적 1호 당원’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강제로 출당시켰다. 박 전 대통령과 한국당의 20년 인연도 끝났다.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3일 오후 여의도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박 전 대통령 ‘제명’을 공식 발표했다. 당 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0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수감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물어 ‘탈당 권유’ 징계를 내렸고, 홍 대표는 이날 현행 당규상 윤리위 규정에 의거해 박 전 대통령 제명을 직권으로 결정했다. 이는 ‘탈당 권유 징계의결을 받은 자가 탈당 권유 의결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아니할 때는 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아니하고 지체 없이 제명 처분한다’는 윤리위 규정 21조 3항에 따른 것이다. 홍 대표는 “한국당이 보수우파의 본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국정농단 박근혜당’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박 전 대통령 당적은 사라지지만, 앞으로 부당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법률적, 정치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지금 안보는 백척간두에 와있고 경제는 좌파사회주의 정책으로 대혼란에 빠졌으며 사회는 좌파 완장부대가 세상을 접수한 양 설치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보수우파가 허물어진 것을 철저히 반성하고 깨끗하고 유능하고 책임지는 신보수주의 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굳게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基亂, 마땅히 잘라야 할 것을 자르지 못하면 훗날 재앙이 온다)라는 고사를 올려 박 전 대통령 출당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로써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을 당원 명부에서 삭제하며, 박 전 대통령과의 20년 관계도 청산하게 됐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약 8개월 만에 박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연을 선언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입당했고, 이후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지만,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강제로 출당조치되는 운명을 맞았다. 일부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 출당 결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어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기자간담회를 자청, “(홍 대표의) 독단적인 결정은 무효”라며 “당내 갈등과 법적인 분쟁만 남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 일각에서는 친박계가 박 전 대통령 출당 조치에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지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상납 문제가 게이트로 번질 조짐이고, 국정원의 돈 일부가 지난 총선 당시 친박후보 여론조사에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친박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질 공산이 있어서다. 다만 한국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당 윤리위원회의 ‘탈당 권유’ 징계를 받은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출당 문제는 별도로 논의하지 않았다. 현직의원인 이들의 출당 조치는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확정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당내 일각에선 친박, 비박간 표 대결로 내홍이 격화될 수 있는 만큼 두 의원에 대한 출당 논의는 당분간 잠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 대표는 “(서,최 의원 출당은) 의총 대상”이라며 “시간을 두고 원내대표와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 전 대통령 출당으로 보수정당 부분 재편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소속 의원 8∼9명이 6일쯤 바른정당을 탈당해 한국당에 복당할 경우 바른정당은 교섭단체 지위가 무너진다.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 자강파는 국민의당과의 정책연대를 비롯해 새 돌파구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보] 한국당,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홍준표 “朴 당적 사라졌다”

    [속보] 한국당,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홍준표 “朴 당적 사라졌다”

    자유한국당이 3일 ‘정치적 1호 당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강제로 출당시켰다.출당 조치로 한국당과 박 전 대통령의 20년 인연도 끝났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날 오후 여의도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박 전 대통령 ‘제명’을 공식 발표했다. 홍 대표는 “오늘로써 박근혜 전 대통령 당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당 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0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수감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물어 ‘탈당 권유’ 징계를 내렸고, 홍 대표는 이날 현행 당규상 윤리위 규정에 의거해 박 전 대통령 제명을 직권으로 결정했다. 이는 ‘탈당 권유 징계의결을 받은 자가 탈당 권유 의결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아니할 때는 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아니하고 지체 없이 제명 처분한다’는 윤리위 규정 21조 3항에 따른 것이다. 한국당은 앞서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박 전 대통령 출당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고, 일부 최고위원들이 최고위 차원의 출당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자 홍 대표는 직권으로 박 전 대통령 출당을 매듭지었다. 이로써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을 당원 명부에서 삭제할 예정이며, 박 전 대통령과의 20년 관계도 청산하게 됐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약 8개월 만에 박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연을 선언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입당했고, 이후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지만,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자진 탈당이 아니라 강제로 출당조치되는 운명을 맞았다. 다만, 한국당은 이날 최고위에서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윤리위의 ‘탈당권유’ 징계를 받은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출당 문제는 별도로 논의하지 않았다. 현직의원인 이들에 대한 출당은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확정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관급 면담없이… 홍준표, 초라한 방미 일정

    장관급 면담없이… 홍준표, 초라한 방미 일정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오는 23일부터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지만, 장관급 등 인사와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한국당은 홍 대표의 방미 이튿날인 24일(현지시간) 토머스 섀넌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의 면담을 조율 중인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정무차관은 미 국무부의 장관과 부장관 다음 세 번째 고위직이다. 홍 대표는 4박 5일 일정 중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 폴 라이언 하원의장, 맥 손베리 하원 군사위원장 등 의회 관계자들을 집중적으로 만난다. 그동안 보수진영의 제1야당 대표는 방미 일정을 수행하면서 미국의 부통령이나 장관급 인사와 만났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미국을 방문해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과 면담했다.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만나 환담을 나눴다. 다만 2015년 여당인 새누리당 대표로 미국을 방문한 김무성 의원은 존 케리 국무장관 대신 로버트 워크 국방부 부장관을 만났다. 이에 대해 한국당 관계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전 세계의 어떤 야당 대표와도 만나지 않는다는 일종의 프로토콜(규칙과 약속)이 있다”면서 “대신 북핵 및 정치 문제를 담당하는 섀넌 정무차관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사건(7)박상은씨 피살/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사건(7)박상은씨 피살/손성진 논설주간

    1981년은 두 살인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서울 원효로 ‘윤노파 피살 사건’과 ‘여대생 박상은씨 피살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수사기관의 강압 수사와 증거 부족으로 피고인들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두 사건 중에서도 윤 노파 피살 사건의 두 달 후 발생한 박씨 피살 사건에 사회적 이목이 더 집중됐다. 1981년 9월 18일 부산 S대 3학년 학생이던 박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인조석 야적장에서 목을 졸린 시신으로 발견됐다. 해외여행을 꿈도 못 꾸던 시절, 외국 연수를 보내 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던 박씨는 대학 미전에 입선해 상을 받으려고 서울로 온 길이었다. 용의자는 4명이나 됐다. 3명은 연수를 같이 간 학생이었고 1명은 사업가였다. 먼저 경찰에 연행된 J씨는 그의 치흔이 박씨의 귀에 난 치흔과 일치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살인의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단지 애무하다가 난 상처일 뿐이었다. 강압 수사에 자백을 했지만 곧 그는 무죄를 주장했고 검찰은 치흔이 직접적인 살인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며 석방했다.경찰은 치흔이 박씨가 숨지기 직전에 난 것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를 통보받고 J씨를 계속 수사하려 했으나 검찰은 또 다른 용의자를 지목, 체포했다. 박씨 친구의 제보로 박씨가 J씨를 사귀기 전에 사귄 또 다른 J씨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왔고 증거를 13가지나 찾아냈다며 검찰은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모두 정황증거였다. J씨의 승용차 뒷좌석에서 혈흔이 발견됐는데 박씨의 것과 같은 O형인 점 등이었다. 박씨 옷의 혈흔과 승용차의 혈흔이 비슷한 시기에 생겼다는 국과수의 분석도 있었다. 거기에다 검찰은 또 다른 J씨가 임의 자백을 했다며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J씨는 공판 과정에서 강압에 못 이겨 허위 자백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결국 정황 증거밖에 없었던 또 다른 J씨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 형사1부(주심 이회창 대법관)는 “가장 중요한 증거인 검사 앞 자백이 임의성은 있으나 객관적 정황에 비추어 신빙할 수 없으며 기타 직접적인 범행 증거도 없어 피고인을 범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 사건의 공소시효는 끝이 났고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박씨 사건은 수사에서 큰 획을 그었다. 전까지는 검사 앞의 임의 자백은 증거로 인정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비록 강압이 없었다고 해도 수사 분위기 때문에 한 자백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음을 법원이 보여줬다. 확실한 물증만이 증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이 사건으로 자백수사 시대가 끝났다고 보도한 1982년 11월 20일 자 동아일보.
  • “신임 주한 미국 대사에 빅터 차 내정”

    “신임 주한 미국 대사에 빅터 차 내정”

    신임 주한 미국 대사로 빅터 차(56) 조지타운대 교수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로이터통신은 29일(현지시간)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빅터 차 교수를 차기 주한 미 대사로 임명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곧 이같은 사실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빅터 차 내정에 대해 “이는 오랜 협의의 결과”라면서 “북한 핵 미사일의 미 본토 타격 위협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의 임명이 이뤄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빅터 차는 이날 통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무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 인터뷰를 허락받지 않았다”며 시종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외교가 소식통은 “이미 연방수사국(FBI)의 신원 검증 절차가 끝났고 공식 발표만 남긴 상태”라고 전했다. 한국계 미국인 주미대사는 성 김 대사(현 필리핀 대사)이후 두 번째다. 이로서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공석으로 있던 주한 미 대사 자리가 7개월 여만에 채워지게 됐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국석좌도 맡고 있는 빅터 차는 지난 6월 같은 CSIS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추천으로 주한대사 후보로 물망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빅터 차는 한국전쟁 후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1959년 출생했고, 83년 컬럼비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경기고 49회 출신인 선친 차문영 씨는 뉴욕에서 동양 램프 등 문화상품 사업을 벌였고 고교 동기로는 이회창·이홍구 씨 등이 있다. 2004년까지 조지타운대에서 교편을 잡던 빅터 차는 같은 해 12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으로 발탁돼 조지 W 부시 정권의 아시아 외교정책을 보좌했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강경한 압박정책을 주장하며 워싱턴 외교가에선 ‘매파’로 분류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회창 “내가 20년 전 박근혜 정계 입문시켜”

    이회창 “내가 20년 전 박근혜 정계 입문시켜”

    “DJP ‘야합’ 대선 승리의 묘수… 文정부, 홍보 치중·즉흥적 측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계에 입문시킨 것은 자신이며 대통령이 될지 몰랐다고 소개했다.이 전 총재는 최근 출간된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같이 밝히고 박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과정과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에 대한 평가를 기술했다. 이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1997년 12월 박 전 대통령이 사람을 보내 자신과 만나자고 제안해 비공개로 만났다고 밝혔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첫인상은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인상이었으며 어두운 이미지는 없었다고 소개했다. 이 전 총재는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입당 의사를 먼저 밝혔다고 전했다.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흔쾌히 응낙했다”며 “그를 정치에 입문시킨 사람은 나”라고 기술했다. 이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자신을 정치에 발 담그게 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비롯해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솔직한 감정도 드러냈다. 그는 “나는 때때로 그(김영삼 전 대통령)와 충돌했고 총리직을 사퇴하기까지 했으며 여당 대표로 있을 때는 당 총재인 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사퇴 이후 청와대 및 민자당 측에서는 (중략) 별의별 유치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일제히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중략) 그때의 비방,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는 쓰레기 같은 모략중상이었다”고 적었다. 이 전 총재는 15대 대선에서 자신에게 1.6% 포인트 차 석패를 안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DJ 정권은 결코 성공한 정권으로 볼 수 없다”며 “DJP연합은 야합이지만 선거에 이기는 신묘한 수임은 틀림없고 나는 완벽하게 패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 전 총재는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 이른바 진보정권·좌파정권의 잘못된 남북 관계 설정으로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고 꼬집었다. 이 전 총재는 또 회고록 출간을 맞아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출판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보여 주기식’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문 정부가 너무 홍보하는 데만 치중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100일이 조금 지난 만큼 본격적인 평가를 하기엔 이르고 기다려 주는 게 좋다”면서 “처음 하는 일이니까 어설프고 서툴게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전과 같은 장기적인 국가정책을 즉흥적으로 발표하고 나중에 말을 바꾸는 것도 문제”라면서 “이런 부분이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이회창 “문 대통령, 서툴러 보이는 게 사실”[일문일답]

    이회창 “문 대통령, 서툴러 보이는 게 사실”[일문일답]

    최근 회고록을 출간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서툴러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이 전 총재는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록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제 100일이 지났으니 본격 평가는 아직 이르지만, 너무 홍보하는 데만 치중해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재는 “원전과 같은 장기적인 국가정책을 즉흥적으로 발표하고 나중에 말 바꾸는 것도 문제”라면서 “(원전 폐기를) 바로 시행할 것처럼 했다가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꿔 국민이 굉장히 불안해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정치 편향성 논란에 대해 “과거 활동 경력을 가지고 찬반양론이 나오는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평가를 해야 한다”며 “좌파 편향적인 조직의 소속원이었다고 해서 그렇게 (판결을) 하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전 총재와의 일문일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슬로건을 썼다. 이는 이 전 총재가 예전 대선 때 사용한 슬로건과 비슷한데.→내 창고에서 막 갖다 쓰더라. 그렇게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내 창고에서 다 가져다 써도 좋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100일이 갓 지났다. 평가한다면.→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서툴러 보이는 게 사실이다. 본격 평가는 아직 이르고 조금 기다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힘들 것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대목은 너무 홍보하는 데 치중하는 거 아닌가 싶다. 취임 100여 일 지났는데 벌써 국정보고회를 했다. 장기적인 국가정책을 즉흥적으로 발표하고 나중에 말을 바꾸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원전 문제도 바로 시행할 것처럼 하다가 말을 바꾸면 국민이 굉장히 불안해한다. 얼마 전 간접민주주의에 국민이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직접민주주의를 안 하고 간접민주주의를 해서 잘못됐다는 견해는 독단이라고 생각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정치 편향성 논란에 대한 생각은.→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편향됐다, 좌파다 우파다하면서 찬반양론이 나오는데 조심스럽게 평가를 했으면 좋겠다. 우리법연구회라는 게 실제로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그 조직이 약간 좌파적으로 편향된 활동을 했다고 해서 그리고 그 소속원이라고 해서 그렇게 (판결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제일 중요한 것은 법관이든 대법관이든 보편타당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분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회고록 쓰려다 망설인 계기가 있다고 했는데.→회고록을 쓰려고 하다 보니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까발리는 건데. ‘훼예’라는 말이 있다. 훼손과 명예다. 상반된 판단과 논쟁이 많았던 만큼 자연히 내 변명과 해명을 하는 쪽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했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쓰겠는데 실패한 사람이라서 안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제가 있던 한나라당, 야당으로서의 역사가 잊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지들과 야당의 역사를 남길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고, 내가 아니면 누가 이걸 쓰겠느냐고 생각했다. -현재 보수정당이 많이 위축돼 있다. 앞으로 어떻게 보는지.→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정당 관련 부분은 내가 말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본다. 지금 두 당은 그야말로 서로 싸움 투성이가 돼서 열심히 하고 있다. 보는 나도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 정치라는 건 스스로 뒹굴고 부딪히고 하면서 열어가는 거다. 진심으로 가고 정도로 간다는 방향성만 가지고 모색하고 부딪히다 보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회고록에서 과거 DJP연합에 대해 혹평을 했는데.→대통령에 당선되려면 그야말로 묘수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다만 DJP연합이 당선 이후 부정적인 측면, 족쇄가 된 걸 생각하면 정치권의 합종연횡은 눈앞에 이익만 보면 안 된다는 의미도 있다. 내년 지방선거가 닥치면 요란스럽게 (정치세력끼리 합치자고) 나올 거다. 그러나 지금 당장 표가 된다고 해서 어느 쪽을 끌어다 붙이고, 또 가서 붙고 하는 것이 정치공학적으로는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절대로 거기에 함몰되거나 속아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손해 보더라도 일관되게 가는 것이 오히려 나중에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을 수 있다. -보수가 위기인데 구체적 해법은.→왜 보수에 대해서 국민이 실망하고 눈에 차지 않아 하는가를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은 정말 신뢰할 수 있고 가령 포퓰리즘에 좌우되지 않고 고집스럽게 한길로 가는구나 하는 인상을 줘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좌파, 우파는 남북관계와 연계될 수밖에 없는데 남북관계에서 때마다 입장을 바꾸지 않고 진솔하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면 국민도 ‘이래서 보수구나’ 할 것이다. -보수통합의 구심점이 될 만한 정치인이 있다면.→그건 말하기 어렵다. 열심히들 하고 있으니 지혜를 발휘해서 좋은 방향으로 했으면 한다. 다만 큰 선거를 앞두고 보수도 통합할 것이다. 합칠 때가 올 거고 나는 또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원 수만 생각해서 합치거나 땜질해서 합치고 해선 안 된다. 합칠 때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토론해야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상태에서 합쳐야만 성공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말한 레드라인의 적절성과 한미동맹 우려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김정은은 핵을 더 고도화, 첨단화하려고 하지 절대 포기 안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대화와 협상을 꺼낼 때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서 있는 상태다. 괌이나 미국본토 포격을 레드라인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잘못된 것이다. 다만 나는 문 대통령이 가장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한미동맹은 우리의 울타리와 마찬가지다. 절대 친미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나라든 큰 나라든 동맹은 자유의 울타리가 된다. 북핵 하나 없앴다고 한미동맹을 떼어 버리자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회창 “朴 정치 입문 시킨 사람은 나…대통령 될 줄 몰랐다”

    이회창 “朴 정치 입문 시킨 사람은 나…대통령 될 줄 몰랐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 시킨 사람은 본인이라고 주장했다.이 전 총재는 회고록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소개하며 “곡절이 많았다”고 말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1997년 12월 2일 이 전 총재에게 사람을 보내 만나자고 요청해 양측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이 전 총재는 당시 박 전 대통령 첫인상에 대해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부모님이 모두 비명에 가신 참담한 일을 겪었는데도 어두운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나라가 경제난국에 처한 것을 보고 아버님 생각에 목이 멜 때가 있다”며 “이럴 때 정치에 참여해 국가를 위해 기여하는 게 국가와 부모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이 전 총재는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어 “이왕이면 깨끗한 정치를 내세우는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흔쾌히 응낙했다”며 “그를 정치에 입문시킨 사람은 나”라고 기술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대선 선거 유세 등에 열심히 참여했다고 한다. 이 전 총재는 “(박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지방유세를 다니는 등 열심히 선거운동에 참여했다”며 “당시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고맙게 기억해서 2012년 대선 당시 그가 나를 찾아와 지지를 부탁했을 때 흔쾌히 응낙했다”고 술회했다. 이 전 총재는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맡아 천막당사로 옮겨 당의 재기를 이루는 것을 보고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에는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입당해 전국적인 지원유세까지 다니면서 그를 도왔다”며 “소통과 화합의 정치를 한다면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지원유세도 자발적으로 열심히 다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 전 총재는 “겉으로 알려진 것 외에 그를 자세히 몰랐다”며 “한나라당 총재로 있던 시절 다른 의원들과 섞이지 않고 홀로 움직이면서도 당내 민주화나 개혁 같은 주제를 선점해 당내 입지와 존재감을 키우는 독특한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이어 “대통령이 된 후 국정운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고 기대도 접었다”며 박 전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를 압박한 것에 대해 “소신을 지키고자 한 것이 왜 배신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것에 대해 이 전 총재는 “그의 실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원하는 대로 대통령이 됐지만 대통령의 일에 대한 정열과 책임감, 판단력은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최순실의 국정농단 게이트 발생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처신을 비판했다. 이 전 총재는 “박 전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을 때 더 이상 대통령직에 있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회창 “탄핵 주된 책임자 朴 그다음 책임자는 새누리당”

    이회창 “탄핵 주된 책임자 朴 그다음 책임자는 새누리당”

    “보수, 끊임없이 자기 혁신 필요 사회 양극화 해소 과제 삼아야” “이번 탄핵 사태의 주된 책임자는 누구인가? 바로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본인의 말대로 억울한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그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다음의 책임자는 새누리당이다.”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출간하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새누리당 지도부는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당 관리 체제에 유유낙낙 순응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직언하지 못하는 나약한 행태로 최순실 일당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국정을 농단하는 기막힌 일을 가능케 했다”며 “그래놓고도 친박·비박으로 갈려 싸우면서 탄핵에 찬성한 비박들에게 탈당하라고 강박하다가 비박계 의원들이 탈당하여 신당 창당을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고 비난했다. 이어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창당했던 나로서는 이런 사태를 보면서 침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면서 “그렇다고 이번 사태가 보수주의의 책임인 것처럼 야당이나 일부 시민세력이 보수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말로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보수주의 가치에 배반한 행동을 한 정치인들이지 보수주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세 번의 대선 패배 후 오랜 침묵을 지켜 온 이 전 총재가 3800여쪽에 달하는 ‘이회창 회고록’(김영사)을 세상에 내놨다. 출생부터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국무총리를 지내기까지 공직 인생을 정리한 ‘나의 삶 나의 신념’, 정치 입문 후를 회고한 ‘정치인의 길’ 등 모두 2권이다. 이 전 총재는 “보수는 끊임없이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개혁을 위해 고루한 기득권 의식이나 틀에 박힌 사고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면서 “과거 좌파가 선호해 온 정책이라도 그것이 정의에 반하지 않고 보수의 이념과 정체성에 저촉되지 않으며 국민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과감하게 도입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 양극화의 문제는 보수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며 “사회 양극화는 단순한 구휼이나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적 가치인 정의의 문제, 공동체 존립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회고록에는 학창 시절 농담으로 수업 시간을 보내던 선생님에게 항의한 일, 젊은 남녀를 희롱하던 깡패에 맞서 싸우다가 코뼈가 부러진 일화 등이 담겨 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정치에 입문한 뒤 잇따른 대선 패배, 절치부심으로 자유선진당을 창당하기까지 정치인으로서 파란만장했던 삶, 유력 대선 후보 시절 그의 발목을 잡았던 ‘이회창 3대 의혹 사건’의 전말 등도 함께 소개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이회창 “탄핵 책임, 박근혜와 직언 못한 한국당에 있다”

    이회창 “탄핵 책임, 박근혜와 직언 못한 한국당에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총재가 22일 발간되는 ‘이회창 회고록’을 통해 “탄핵 사태의 주된 책임자는 탄핵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이라고 밝혔다.이 전 총재는 회고록 중 ‘보수가 가야 할 길’에서 “그 다음의 책임자는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그동안 박 대통령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당 관리 체제에 유유낙낙 순응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직언하지 못하는 나약한 행태로 최순실 일당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국정을 농단하는 기막힌 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래놓고도 친박·비박으로 갈려 싸우면서 탄핵에 찬성한 비박들에게 탈당하라고 강박하다가 비박계 의원들이 탈당하여 신당(현 바른정당) 창당을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며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창당했던 나로서는 이런 사태를 보면서 침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정말로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보수주의의 가치에 배반한 행동을 한 정치인들이지 보수주의가 아니다”고 했다. 회고록은 출생부터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국무총리를 지내기까지 공직 인생을 정리한 ‘나의 삶 나의 인생’, 그리고 정치 입문 이후를 회고한 ‘정치인의 길’ 등 총 2권으로 이뤄졌다. 이 전 총재는 3년 여간 손수 회고록을 집필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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