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화여대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상한가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호기심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피부과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마을 주민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563
  • 아름다운 이화인상에 박진숙씨

    이화여대 총동창회(회장 윤순희)는 23일 ‘아름다운 이화인상’의 첫 번째 수상자로 박진숙 부산 매실보육원장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6시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 “사이버세계 민주주의 있나”

    사이버 민주주의는 존재하는가. 정보통신기술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전망만 무수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가능성에 점수를 주는 쪽이 있는 반면, 우려에 무게를 싣는 쪽도 있다. 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협의회(회장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는 이 주제로 26일 오후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학술대회를 연다. 1부는 이대 이인화 교수와 상지대 홍성태 교수가 맞붙는다. 이 교수는 알려졌듯이 최근 온라인 게임스토리 개발에 나설 정도로 디지털 기술에 친화적이다. 반면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홍 교수는 디지털 세상이 새로운 ‘감시사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둔다. 2부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포퓰리즘’을 논의한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의 사회로 중앙대 진중권 교수는 인터넷시대의 글쓰기가 일종의 귄위해체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도래라고 평가한다. 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과연 지금의 인터넷 문화가 사이버민주주의라 불릴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유학중 뉴욕서 교통사고 이건희회장 셋째딸 사망

    유학중 뉴욕서 교통사고 이건희회장 셋째딸 사망

    미국 뉴욕대에 다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3녀 윤형(26)씨가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 삼성 관계자는 “윤형씨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치명상을 입은 뒤 다음날 새벽 숨을 거뒀다.”면서 “21일 오후에 직계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현지에서 불교식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고 22일 밝혔다. 삼성측은 “윤형씨 사망 이후 외부의 조문은 일절 받지 않았다.”면서 “이 회장과 홍 여사는 결혼하지 않고 죽은 자식의 장례에 부모가 참가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장례식에는 참석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올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윤형씨는 다른 자녀들과 달리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활달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말끔해진 ‘이대 찾고싶은 거리’

    이화여대 주변 거리가 말끔해졌다. 홍익대 서울대 한양대 등 서울시내 대학가 거리도 내년부터 깨끗해진다. 서울시는 22일 이화여대 전철역∼이대 정문∼신촌 전철역 500m 구간을 보행 위주의 거리로 만드는 ‘이화여대 주변 찾고싶은 거리’ 조성 사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서울신문 4월7일자 9면 보도)시는 29억 5000만원을 들여 ▲통행로 및 도로 정비 ▲전신주와 분전반 제거 ▲건물 간판 정리 및 외관 개선 사업을 벌였다.●이대앞 보도 넓히고, 간판 정리 우선 2차선 도로를 폭 3.5m의 일방 통행 도로로 줄이고 보도를 대폭 넓혔다. 벤치와 볼라드(돌 말뚝)을 설치해 불법 주·정차를 못하도록 막는 동시에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가로등을 바꾸면서 보도 조명도 새로 설치했다. 지저분하게 늘어져 있던 전깃줄과 전신주(33개)는 지하로 묻었다. 분전반(31개소)은 건물 안이나 인근 학교, 공공부지 안으로 옮겼다. 주변 건물주들을 설득해 낡은 건물의 외관과 광고물도 스스로 깨끗하게 바꾸도록 했다. 이를 유도하기 위해 정비에 참여한 건물에 건폐율과 용적률을 완화시켜 주는 도시계획 인센티브를 줬다. 이같은 인센티브제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김영걸 도시계획국장은 “대학가에 교육·문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도서관 극장 학원을 세우면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라면서 “시 조례가 법령보다 엄격해 법령이 제한하는 한도내에서 용적률 등을 완화시켜 줄 수 있다.”고 말했다.●대학가에 도서관, 극장 건립시 인센티브 적용 이에 따라 앞으로 대학가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된 지역의 경우 ▲문화·교육 관련 권장 용도 수용시 용적률 완화 ▲건물 외관 정비 또는 분전반 수용시 건폐율 5∼10% 완화 ▲주차장 설치 비용 절반 또는 전액 감액을 적용하게 된다. 시는 이화여대에 이어 경희대 앞 정비 사업을 내년 초까지 마칠 계획이다. 또 홍익대 서울대 한양대 숙명여대 성균관대 등 5개 대학을 1단계 사업 대상으로 선정해 내년 중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통학로 환경 정비사업을 벌인다. 김효수 도시관리과장은 “무질서했던 이대 주변 가로가 활력이 넘치는 보행 위주의 거리로 바뀌었다.”면서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도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불도저 장점이 얼마나 많은데…”

    이명박 서울시장이 자신을 ‘불도저 시장’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불도저 옹호론’을 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이같은 말을 들으면 “아니다.”며 반론을 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시장은 21일 고려대 경영대 대강당에서 열린 대학교 학보사 편집국장 모임 초청 강연회에서 “나에 대해 ‘불도저’ 운운하는데 불도저의 장점이 많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강연이 끝난 뒤 질의·응답시간에서 한 학생이 ‘불도저, 신개발주의자’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자 이 시장은 “불도저는 고도로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기계”라고 응수했다. 그는 이어 “불도저 시장이란 비판은 불도저의 성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잘못된 비판일 뿐 오히려 칭찬”이라고 덧붙였다. 또 “내가 추진한 사업들은 친환경적이거나 자연친화적인 것들이었다.”면서 “그런 것들을 신개발이라고 부른다면 기꺼이 ‘신개발론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등 토론회 내내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 시장은 그동안 청계천 복원사업과 서울시내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 각종 사업을 둘러싸고 ‘불도저, 토목가적 사고방식’이라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해 “미리 치밀하고도 꼼꼼하게 준비를 거쳐 시행했으며, 이같은 부정적 평가는 60∼70년대나 가능한 것”이라며 ‘불도저’라는 말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된 경부운하 건설에 대해서도 “청계천 복원에 비해서도 쉬운 일”이라는 등 특유의 강단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번 토론회는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학보사 편집국장들의 요청으로 이뤄졌다.송한수 김기용기자 onekor@seoul.co.kr
  • 테크노폴리스 25일 첫삽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172번지 일대에 첨단산업기술단지 ‘서울 테크노폴리스’조성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서울시는 21일 서울산업대·한국전력·원자력의학원 등이 기부한 5만여평에 2014년까지 나노기술(NT)과 정보기술(IT) 등의 중심지 역할을 할 ‘서울 테크노폴리스’를 건립하기로 하고 25일 오후 3시 기공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이곳에는 2014년까지 현금과 현물 총 4951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나노·정보기술 결합한 ‘NIT’집중육성 ‘서울 테크노폴리스’는 서울산업대(2만6000평)와 원자력의학원(9000평), 한국전력연수원(5000평)의 땅을 하나로 묶어 조성된다. 이 사업에는 서울시와 정부를 비롯 서울산업대·고려대·경희대·이화여대·연세대·육군사관학교·광운대·국민대·단국대·삼육대·서울시립대·서울여대·한성대·한양대 등 서울 강북지역에 위치한 14개 대학이 참여한다. 이외에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국방품질관리소·한국기계연구원 등 연구기관과 삼성전자·LG필립스·삼성SDS·주성엔지니어링 등 여러 기업이 동참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NIT’(나노기술과 정보기술을 조합한 말)가 집중 육성되며 이를 위해 건물 12개 동과 대학 연구실, 기업 실험실 등이 들어서게 된다. 이에 따라 ‘서울 테크노폴리스’는 대학과 연구소·기업 등 산학연 연계를 통해 ‘NIT’를 비롯, 생명공학(BT) 등 첨단산업 분야의 신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이를 산업화하는 거점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2007년까지 ‘스마트하우스’건설 역점 사업으로는 ▲초소형 복합시스템 구장(構裝)기술(Micro System Packaging) 산업화 ▲‘NIT’분야 부품과 제조장비 국산화 ▲전력 및 바이오 분야 첨단장비 연구개발 ▲첨단산업 엘리트 배출을 위한 NIT 연합대학 프로그램(NITU) 운영 등이 꼽히고 있다. 먼저 1단계로는 ‘서울 테크노폴리스’의 본부 역할을 하면서 연구와 생산·교육을 모두 담당할 ‘스마트하우스’가 2007년 8월까지 서울산업대 안에 들어선다. 지하 1층·지상 12층에 연면적 9250평 규모로 반도체·LCD 장비업체 등 100개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2단계로 한국전력 연수원과 원자력의학원 땅에 기업연구동이 건립돼 전력·바이오 산업 분야의 기업연구소들이 입주한다. ‘서울 테크노폴리스’는 서울시 세계도시화 프로젝트의 하나이며 지난 6월 말 국가균형발전 과제로 지정됐다. 이 사업의 시행과 운영은 재단법인 ‘서울 테크노파크’가 맡는다.서울시 장석명 산업지원과장은 “사업이 끝나는 2014년이면 서울 테크노폴리스가 간접 매출을 포함, 연간 2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연 40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첨단산업의 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대상그룹 후계자는 차녀?

    대상그룹의 후계자는 차녀 임상민(25)씨? 이런 관측은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 일가가 최근 계열사의 지분을 정리과정에서 대두됐다. 21일 대상그룹측에 따르면 임 회장은 차녀인 상민씨의 대상홀딩스 지분율을 기존의 14.42%에서 29.86%로 높였다고 밝혔다. 평가액만도 52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대상그룹의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의 지분구조는 상민씨를 비롯해 언니인 세령(21.39%)씨, 임 회장(6.72%), 대상 등 특수관계인(6.04%), 기타(35.99%) 등으로 재편됐다. 이처럼 상민씨가 대상홀딩스의 최대 주주가 되자 재계 일각에서는 대상그룹의 후계구도가 상민씨로 마무리됐다는 관측이 흘러 나왔다. 상민씨의 언니인 세령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부인으로 삼성가(家)에 시집간 ‘출가외인’이어서 동생이 대상그룹을 책임지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임 회장은 비자금 조성혐의로 현재 수감중이어서 2세로의 체제구축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심심찮게 제기됐다. 임 회장이 지난 9월 부인인 박현주 상암커뮤니케이션 부회장을 대상홀딩스의 등기 이사로 선임한 것도 ‘경영권 이양’ 수순을 밟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석됐다. 그러나 대상그룹측은 “이번 주식교환은 지주회사 요건을 갖추기 위한 것이어서 후계구도가 가시화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대상측은 상민씨가 최대주주가 된 것은 이미 지난 2001년으로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임 회장은 2001년 보유중인 주식 800만주를 세령씨에게 300만주, 상민씨에게 500만주씩을 증여했다. 이때 상민씨의 지분율은 2.35%에서 13.19%로 늘어나 대상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는 주장이다. 상민씨가 그룹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지목되기에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린 점도 후계체제를 구축하기에는 섣부른 관측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상민씨는 현재 미국 뉴욕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등 아직 경영참여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전언이다. 임 회장이 아직 56세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점도 고려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임 회장이 현재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라 대상홀딩스를 지주회사로 변모시킨 뒤 적당한 시점에 다시 경영전면에 복귀하는 수순을 밟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파산자의 희망찾기] (5) 韓·美 파산학자 대담

    [파산자의 희망찾기] (5) 韓·美 파산학자 대담

    서울신문은 탐사보도 ‘파산자의 희망찾기’를 마무리하며 한국과 미국 파산 학자의 이메일 대담을 마련했다. 세계에서 파산에 가장 관대하다는 미국과 이제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파산을 보는 사회의 시각, 파산자를 대하는 법적·제도적 차이를 통해 우리의 파산 제도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미국 텍사스대의 제이 로런스 웨스트브룩 교수와 이화여대 오수근 교수가 대담했다. ●파산을 보는 한·미의 시각 오수근 교수 미국이 채무자에게 관대한 파산법을 갖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 제이 로런스 웨스트브룩 교수 미국은 건국 후 지금까지 줄곧 ‘새 출발’의 나라였다. 대다수 미국인의 종교인 기독교 정신과 신분에 따른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개척정신이 그 바탕이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에게 파산 면책으로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됐다. 오 교수 미국과 비교하면 파산을 보는 한국인의 정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은 미국의 개척정신과 같이 파산 면책을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과 종교적인 바탕이 없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사람을 파산상태로 두면 이들이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어진다. 버는 것의 대부분을 채권자가 가진다면 열심히 일해도 빚을 갚을 수 없다.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국민총생산은 줄게 되고 그만큼 누군가는 더 일을 해야 한다. 면책을 받은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사회 전체적으로 유익하다. 웨스트브룩 교수 미국에서도 1800년에 파산법이 처음 만들어진 뒤 논란이 계속됐다.3차례나 폐지하고 제정하는 일을 되풀이했다.1898년에서야 지금의 안정적인 법이 만들어졌다. 오 교수 한 사회가 파산 면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게 오래 기다릴 형편이 못된다. 신용불량자가 전체 국민의 7.5%인 350만명 정도로 어림된다. 경제활동인구로 따지자면 14%에 해당된다. 많은 국민이 장래 소망을 갖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쟁을 하면 승자도 나오고 패자도 나온다. 경쟁이 심할수록 승자보다는 패자가 더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회가 패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으면 사회 전체의 동력이 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경제의 어려움과 신용불량자의 문제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파산 면책 문제가 나오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이다. 미국에서도 논란이 있나. ●파산자의 도덕성 논란 웨스트브룩 교수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 팀이나 다른 연구자들의 조사 결과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산을 신청할 때는 이미 엄청난 빚에 허덕인다. 그들이 결코 가볍게 파산신청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또 이들이 파산하는 주요 원인은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가족들의 사고·질병 또는 이혼이다. 파산 면책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 교수 한국은 사회 안전망이 탄탄하지 않아서 파산하는 사례가 많다. 가족이나 본인의 교통사고, 갑작스러운 질병, 사기, 실직 등 단 한번의 실패나 불운이 결국 멀쩡한 사람을 파산으로 가게 한다. 갚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빚이라면 속히 파산신청을 하면 좋은데, 대부분의 파산 신청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빚을 갚으려고 애쓰다 다시 빚을 지는 일이 허다하다. 도덕적 해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지나치게 자존심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그런데 관대한 파산 면책이 금융기관의 부실을 초래하고 신용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웨스트브룩 교수 파산 면책제도와 금융산업의 관계는 미국의 현실을 보면 한번에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채무자에게 가장 관대한 파산 면책 제도를 갖고 있는 동시에 규모가 가장 크고 질적으로 가장 단단한 금융산업과 소비자 신용 제도를 갖고 있다. 파산법이 신용질서나 금융제도에 악영향을 준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금융산업 내부를 들여다 보면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소비자 금융, 특히 신용카드에서 많은 수익을 얻고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파산 신청은 계속 늘었지만 소비자 금융 역시 계속 증가했다. 파산 면책이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은 다른 영업 부문보다는 소비자 금융에서 분명히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오 교수 한국도 마찬가지다. 은행은 계속해서 가계대출을 늘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0∼2001년 한국의 신용카드 회사들은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나눠줬다. 카드회사 스스로 신용평가 없이 빚을 권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 쓸 일이 있는 개인이 돈 빌려 주겠다는 제안을 무시하기 어렵다. 반면 파산 면책이 활성화되면 금융기관이 신용평가를 엄격히 해서 신용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돈 빌리기가 어렵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긴 하다. 웨스트브룩 교수 정반대다. 미국의 은행이나 카드회사들은 지속적으로 신용공여의 기준을 낮추고 있다. 신용상태가 나쁜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주고 있어 가난한 사람들이 전보다 더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은행이나 카드 회사가 신용이 나쁜 사람에게도 돈을 빌려 주려는 것은 그만큼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이다. ●파산자의 재기 오 교수 이야기를 파산 면책을 받은 채무자로 옮겨보자. 회사가 파산을 하면 남은 재산으로 빚을 갚고 회사를 접지만 개인은 파산한 뒤에도 계속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파산 면책 후에 채무자가 생활할 수 있도록 파산제도가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채무자가 받는 임금의 절반까지 채권자가 압류할 수 있다. 월급의 액수에 관계없이 절반을 압류하기 때문에 나머지 절반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국은 파산자의 임금은 어떻게 처리하나. 웨스트브룩 교수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파산자는 전 재산을 포기하는 대신 현재 임금은 모두 갖게 하는 방식이다. 다만 올해 개정된 파산법은 고액 임금자인 경우 일정한 제한을 가했다. 둘째, 채무자의 가용소득을 모두 변제에 사용하는 것이다. 매달 소득에서 필요한 생활비를 제외하고 모든 소득을 변제에 사용한다. 집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방법이다. 변제기간은 보통 3∼5년이다. 오 교수 한국에서는 채무자들이 파산면책을 받은 뒤 취업이나 금융거래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산자의 자격을 박탈하기도 하고, 파산을 해고 사유로 규정하기도 하며, 파산자를 고용하길 꺼리는 경우도 많다. 채권자였던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다른 금융기관에서도 금융거래를 거절한다. 금융기관에서 신용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사설 신용평가회사들이 개인의 신용정보를 팔고 있다. 파산자의 신용 정보가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사회적·경제적 차별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웨스트브룩 교수 미국은 파산법에서 파산자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정부는 파산자에게 어떠한 종류의 면허증이나 허가증을 발급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또 기업에서는 파산자에게 취업상 불이익을 주어서도 안된다. 더 중요한 것은 파산자들을 위한 금융시장도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오 교수 미국의 파산자들은 특화된 금융시장에서 새롭게 신용을 쌓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에 비해 금융산업 기반이 약해서 금융기관이 파산자를 상대로 영업을 시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염려된다. 올해 개정된 미국 파산법이 채무자의 권리를 다시 제한하고 있다고 들었다. 웨스트브룩 교수 유감스럽게도 대출업계가 의회의 다수를 설득해서 미국에서 파산제도가 남용된다고 믿게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연구는 그런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리 안동환 이효연기자 sunstory@seoul.co.kr
  • [지역플러스] 이명박시장·대학신문국장 토론

    이명박 서울시장이 서울시내 대학 학보사 편집국장들과 한 판 토론을 벌인다. 미니 관훈 토론회인 셈이다. 이번 토론회는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학보사 편집국장들의 요청을 이 시장이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이뤄지게 됐다. 토론회는 ‘대학언론인이 이명박 시장에게 묻는다-시대와 공감하는 리더와 대학생’이란 제목으로 21일 오후 2시 고려대 LG-POSCO 경영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엄마, 걱정마. 이 앞에서 학생들 상대로 뽑기장사하면 되잖아!”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실의에 빠져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자기도 잘 먹던 뽑기장사해서 먹고 살면 되니 엄마보고 걱정 말란 것이다. 너무나 대견하고 안쓰러워 큰아들을 끌어안고 그때 처음 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울지 않는 엄마, 강한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자식들로 키울 것을 결심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아버지의 유업을 잘 지키고 있다가 성년이 되면 물려주리라. 이렇게 생각을 발전시켜 애경을 내가 맡아 아이들과 똑같이 건실하게 성장시키기로 다짐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장영신(69) 회장이 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남편이 죽고 회사를 떠맡게 된 이야기를 이렇듯 생생하게 되짚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강한 모성, 남편의 유업을 버려둘 수 없다는 아내로서의 의리, 애경 종업원들에 대한 책임감이 경영참여 이유라고 덧붙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장 회장은 1970년 막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을 심장마비로 잃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3남1녀의 어머니로 살림만 하며 지내던 12년차 주부가 국내 대표 생활용품 브랜드의 수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애경 창립 17년 만의 일이다. 장 회장은 1971년 남편 타계 1주기가 끝나자마자 경리학원에서 복식과 부기를 배웠고 이듬해인 1972년 8월1일부터 출근했다.1954년 6월 남편 고 채몽인씨가 5000만환으로 세운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가 현재 LG그룹의 모태인 비누제조사 락희화학과 경쟁을 벌이며 사업확대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다. 장 회장이 경영참여를 선언하자 시댁과 친정 가족은 물론 회사 임원들까지 반대하고 나섰다.“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부터 “그만두겠다.”고 협박하는 임원들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애경이 얼마 가지 않아 망하겠다.”는 말도 했다. 남편이 죽은 뒤 사장 자리를 맡고 있던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장 회장이 취임하자 회사를 나가버리기도 했다. 당시의 심경에 대해 장 회장은 “잠자리에 들면서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매일 일감을 집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공부했고, 관청에선 담당공무원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다는 이유로 동행했던 회사 임원으로부터 책상 밑으로 구둣발에 차이기도 했다. 경제인 모임에서는 홀로 여자라는 자격지심에 기둥 뒤에 숨어 몇시간이나 서 있다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잘해보겠다는 일념으로 겁없이 뛰어들었지만 기업환경도 나쁜 것뿐이었다. 경영에 참여한 1972년 말부터 오일쇼크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그러나 장 회장은 더욱 힘을 냈다. ‘불황에 투자하라.’를 모토로 공장을 지방으로 확대 이전하는 한편 남편이 계획만 했던 석유화학 원료제조 분야를 애경의 미래 지표로 삼아 애경유화·애경화학·애경PNC(전 애경공업)·애경정밀화학·코스파 등 관련 회사를 속속 설립했다. 비누 산업에는 한계가 있지만 본격적인 화학공업은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는 지금까지도 애경에서 매출 비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군이다. 남편이 설립한 비누회사도 소홀하지 않았다. 제품을 고도화시키는 데 집중했던 만큼 히트 상품도 꾸준히 내놓았다.1975년에는 분말 합성세제인 ‘크린업’을, 이듬해에는 액체세제 ‘써니’를,1980년 들어서는 세제 ‘스파크’를,90년 들어서는 클렌징 화장품인 ‘포인트’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트리오도 이름은 같지만 세척력을 높이고 공해도를 낮춰 지금까지도 1등 주방 세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줍은 소녀…‘터프우먼 마담 장(張)’으로 장 회장은 어머니 고 문금조씨와 아버지 고 장회근씨의 4남4녀중 막내딸이다.1936년 7월22일 서울에서 태어나 종로구 명륜동 1가 등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당시 일본 와세다대에서 영문과를 졸업한 대지주의 아들. 어머니 문 여사도 당시 일본 귀족학교인 쓰다여대 영문과를 나온 재원이다. 장 회장은 혜화동성당 유치원을 나온 뒤 혜화국민학교를 다녔다. 노래를 잘해 전국 콩쿠르에서 상도 자주 받았다. 건강하고 공부도 잘해 반장을 도맡기도 했다. 부모님의 학구열이 강한 덕에 형제들 모두 공부를 잘했다. 큰오빠 고 장윤옥씨는 일본대 전문부 상과를 졸업한 뒤 감사원에 들어가 5국장(부이사관)까지 지냈고, 미국으로 이민간 큰언니 장영옥(81)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애경유지 사장을 지낸 바 있고, 서울대 정외과 출신의 셋째 오빠 고 장위돈씨는 서울대 정외과 교수,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치담당특별보좌관, 이집트 총영사, 에콰도르 대사를 지내는 등 이력이 화려하다. 애경유지 이사를 지낸 넷째 오빠 장기돈(75)씨는 성균관대 상대 출신이다. 장 회장의 집안은 일제시대 유학을 갔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광복 후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6·25가 터지자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경기여중을 졸업하고 경기여고에 재학중이던 그는 돈 안들이고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마침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어 재능을 인정받아 교장선생님이 일찌감치 유학을 준비시켰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1955년 미국 필라델피아 체스넛 힐 대학 화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에도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당시 교내에서 오페라 하우스와 협연한 나비부인의 프리마돈나를 맡기도 했다. 애경이 쉘, 유니레버 등 다국적기업과의 합작을 무리없이 진행했던 배경에는 유학 생활로 다져진 영어실력과 당시 익혔던 외국 풍습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피란시절 여고생 신분으로 부산에서 사과장사를 한 적도 있다. 좌판을 벌여놓고 사과를 예쁘게 쌓아놓았지만 막상 손님이 와서 얼마냐고 물어보면 먼산 바라보기 일쑤였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탓에 장사꾼이 아닌 척한 것이다. 그러나 애경을 경영하면서 그에게는 ‘호랑이’‘터프우먼’‘마담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80년대 들어 새로운 돌파구로 외국계와 합작에 집중했을 당시 그쪽에서 공동대표를 요구하면 그는 “여기는 한국 회사다. 너희가 한국에 대해 뭘 아느냐. 한국 문화를 이해할 때까지 너희들은 뒤에서 지켜봐라.”고 충고했다. 합작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달지 말라고 요구받으면 애국가 봉창,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 순서대로 진행했다. 당시 외국인들은 이런 장 회장을 놓고 ‘마담장 터프우먼’이라고 외쳤다. 사내에서는 ‘호랑이’로 통했다. 화가 나면 직설적으로 퍼붓는 성격과 한번 결정하면 매몰차게 추진해 나가는 돌파력 때문이란 설명이다. 물론 풀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래서 ‘너그러우면서도 불같다.’는 평을 받는다. ●남편과는 어릴적 이웃사촌 장 회장과 남편 채몽인씨는 이웃사촌으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고 채씨는 장 회장이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부터 애정 공세를 퍼붓다 미국까지 따라가 무려 3년11개월 동안 구애 공세를 펼쳤다. 공개청혼으로 남편의 존재는 대학내에도 다 알려져 수녀 교수들로부터 “왜 저 좋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느냐, 이해를 못하겠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졸업후 약속대로 서울로 돌아와 23세이던 1959년 6월 신당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자식들(3남1녀)의 혼사는 장 회장보다 더 빠르다. 대부분이 대학시절에 결혼을 모두 끝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연애 결혼이다. 큰아들인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45)은 198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재학 당시 학교에서 만난 홍미경(43)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친구로부터 소개받아 교제 1년 만에 결혼했다. 당시 부인은 1학년에 재학중인 생활미술학과 새내기. 채 부회장은 1983년 졸업후 미국 보스턴대에 MBA를 받은 뒤 1985년 애경산업 생산부 마케팅부 등을 섭렵했다. 부인 홍씨도 함께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홍씨는 전공을 살려 현재 종로에서 갤러리 ‘사간’을 운영 중이다. 불혹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중한 미모가 인상적이다. 장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평소 “우리 큰애(큰며느리)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정말 착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한다. 인천교대 음대 교수를 지낸 장인 고 홍종수옹은 서울시립교향악단,KBS교향악단 등에서도 활약한 음악가다. 장 회장의 맞손녀이자 큰아들인 채 부회장의 딸 문선(19)양은 할머니의 성악 실력과 외할아버지의 음악 재능을 모두 물려받아 현재 미국 맨해튼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다. 유통부문을 맡고 있는 둘째 아들 채동석(41) 애경백화점 사장은 성균관대 철학과 3학년 때 미팅으로 만난 동갑내기 이정은(41)씨와 결혼해 졸업하기 전 1년 동안 학생 부부로 지내기도 했다. 채 사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국제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91년 애경에 합류했다. 현재 애경백화점,AK면세점, 수원애경역사, 평택역사 등 애경의 유통부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씨는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프랜치 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의 아버지 이병문(75)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예편한 4성 해병대 사령관 출신으로 아세아시멘트 회장을 지냈다. 큰딸 채은정(42)씨는 외숙모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안용찬(46) 애경 사장을 소개해줘 결혼한 경우다. 안 사장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과정 재학 당시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채씨 외숙모의 권유로 은정씨를 만났다. 은정씨도 대학 3학년때 결혼했다. 은정씨는 이화여대 조소학과를 나와 미국 애크리하트대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뒤 1998년 애경산업에 들어왔다. 애경 마케팅지원부문 상무를 맡고 있다. 채 부회장과 연세대 경영학과 77학번 출신인 안 사장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채 부회장은 “안 사장이 나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친구 사이여서 이미 대학시절부터 안 사장을 알고 지냈다.”면서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되어 있었고 유학을 끝낸 뒤 애경으로 꼭 와줄 것을 내가 청했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1987년 애경산업 마케팅부에 입사하기 이전 유학을 마치고 미국 폰즈사에서도 마케팅 담당 업무를 맡았다. 통역 장교 1기 출신인 안 사장의 아버지 안상호(76)씨는 육군 참모총장 수석 보좌관, 미국 엔지니어링 회사 플로 코리아의 한국 대표 등을 지냈다. 막내 아들 채승석(35) 애경개발 부사장은 50만평 18홀 규모의 경기도 광주시 중부 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애경개발을 맡고 있다. 애경개발은 1987년 출발 당시부터 애경의 계열사중 유일하게 주력인 세제·화학과 동떨어진 업종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한때 SBS아나운서로도 활동했던 한성주(31)씨와 99년 6월 결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단국대 사학과 89학번인 채 부사장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어머니를 닮아 노래를 잘한다. 당초 친정에서 장 회장의 경영참여를 반대했지만 앙금은 남아 있지 않다. 조카들도 여럿 애경에 몸담고 있다. 둘째 오빠인 고 장성돈 전 애경유지 사장의 큰아들인 장인규(53)씨는 과거 애경PNT(전 경신산업) 사장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이민갔고, 둘째 아들 장인원(49)씨는 계열사인 코스파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장 회장의 셋째 오빠인 고 장위돈씨가 낳은 3형제 중 큰아들인 우영(37)씨는 애경 화장품사업부장으로 있다. ●애경백화점에 남다른 애착 장 회장은 회사를 맡은 이후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큰아들 채 부회장이 1993년 9월10일 애경백화점 개점식 인사말에서 “이 백화점을 돌아가신 아버님께 바칩니다.”라고 말한 순간 ‘마음이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됐다.’고 회고했다. 애경백화점 본점인 서울 구로구점은 창업자인 남편 고 채몽인씨가 타계하는 순간까지 비누를 만들었던 창업 터전이다.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 비누인 ‘미향’을 만든 곳으로 70년대까지 ‘트리오’ 등 세제를 만들다 공장이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계속 창고로 써왔다.“아버지가 물려준 땅이니 잘 연구해서 활용해보라.”고 맡긴 지 3년 만에 1만평 부지가 백화점으로 거듭났다. 장 회장은 애경백화점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지금도 두 아들이 사이좋게 이 백화점 5층에서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다. 장 회장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백화점을 다녀갈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이유다. 장 회장은 즐기는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채 부회장은 장 회장에 대해 “희생하는 삶만 사신 분”이라면서 “항상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아왔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여름휴가를 가본 적이 없고 남들이 취미를 물으면 ‘빨래’라고 대답할 정도로 아직도 집안 일을 혼자 한다. 말년에 잠시 정치에 참여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크게 어긋나는 길은 아니란 평이다.1997년 고사해 오던 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여성들이 기업하기 불편한 환경을 고쳐야 한다고 마음먹었다.1999년 민주당 신당창당 준비위원 공동대표로 영입된 뒤 백화점이 있는 구로를 텃밭삼아 16대 국회의원으로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왜 정치를 하느냐. 이미지 버린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여성경제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더이상 정치에 참여할 뜻은 없다. ●가족간 우애는 애경의 힘 장 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뗐다. 애경 창사 5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04년 구로동 본사 회장실을 비웠고 결재도 큰아들에게 모두 맡기고 보고도 받지 않는다. 애경복지재단 일에 관여하며 무역협회 부회장직만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취미삼아 중국어를 배우고 있고, 순환기계통이 안 좋은 탓에 홍콩에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다.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된 일로는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간 볼썽사나운 재산 분쟁이 많은 재계에서 애경가문 형제들은 함께 회사를 키워가며 우애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채 부회장과 동생 채동석 사장은 10년 넘게 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채 부회장은 “인맥이랄 만한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고 술을 먹거나 함께 어울리는 대상이 모두 형제들이다.”면서 “네 남자가 모여 술을 자주 먹는다.”고 말했다. 며느리들도 친하다. 큰동서와 작은 동서도 단짝 친구 같다. 형제들이 화목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이란 지적이다. 채 부회장은 1985년 입사한 뒤 점차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1993년 애경백화점 구로점을 열며 유통업계에 뛰어든 뒤 AK면세점(2001년) 애경 2호점인 수원애경역사(2003년)로 확대했고 3호점 평택역사는 2009년 완공된다. 제주도와 함께 설립한 ㈜제주항공을 통해 2006년 6월부터 민간항공 사업도 벌인다. 채 부회장은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동생 채동석 사장은 유통부문을, 처남인 안용찬 사장이 생활용품 부문을 키우고 있다.2세대에 와서 생활용품과 기초화학의 양축을 키워가는 한편 유통과 항공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채 부회장은 고혈압이 있어 거의 매주 등산을 즐기고 있다. 유아세례를 받고 결혼식도 명동성당에서 올린 천주교 신자이지만 산을 자주 찾는 탓에 항상 절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산사를 찾을 때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에 항상 감사드린다는 내용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면서 “애경의 힘은 형제간의 우애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장회장 ‘유별난 시간개념’ 애경가(家)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유별나다. 장영신 회장은 약속 시간보다 최소한 10분 먼저 도착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나는 사업상으로나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면 꼭 10분 전에 나가 상대방을 기다린다. 약속 시간보다 단 5분이라도 늦는 사람은 첫 대면부터 뭔가 부족한 사람이란 평가를 하게 된다. 나는 부하 직원들을 평가할 때도 시간관념을 하나의 척도로 삼는다. 시간 하나 제대로 못지키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시간은 비즈니스를 포함한 모든 인간 관계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첫 관문이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작은 사실 하나가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을 대변한다.”(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그가 경영일선에 있을 때는 ‘나인 투 파이브’ 원칙을 지켰다.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게 아니라 늦어도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면 기상하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조간 신문을 읽고 그날의 주요 업무를 점검하고 계획했다. 새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도 아침 시간을 이용한다. 회의도 결재도 오전에 처리한다. 관청과 은행이 문을 여는 아침 9시 이전에는 하루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일을 놓은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은 그대로다. 그래서 애경에는 오전 8시만 되면 결재를 받기 위한 줄이 이어지고, 오전 9시면 그날 결재받는 것은 포기해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철저한 시간관념은 애경가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배어 있다. 아들 딸은 물론 며느리 사위 모두 새벽형 인간이다. 채형석 부회장은 한술 더 떠 새벽 4시면 일어나 아침밥을 꼭 챙겨먹고 출근한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구들끼리 밥을 먹기로 하거나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모일 때는 아예 30분 먼저 나갈 정도다. 채 부회장은 “식사 시간을 통해 가족 모임이 주로 이뤄지는데 식당 문을 여는 시간이 바로 우리 가족이 만나는 시간”이라면서 “예컨대 6시에 모이기로 해도 식당이 문을 여는 오후 5시 30분이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 있다.”고 전했다. 급한 성격 탓에 식사를 시작하면 1시간내에 모두 끝내고 일어선다. 한 번은 막내인 채승석 부사장이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약속한 정시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이미 식구들이 모두 제사를 지낸 뒤 산에서 내려오고 있더라는 일화도 있다. jhj@seoul.co.kr ■ 장영신 회장과 제주와의 인연 장영신 회장의 ‘제주 사랑’은 남다르다. 그의 제주 인연은 1970년 창업주인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이 타계하면서 더 각별해졌다. 장 회장은 남편의 조의금 전액을 제주도 재경장학회에 기증했다. 장학회는 이 돈으로 지금까지 매년 30명, 모두 1300여명의 제주 출신 대학생을 후원했다. 제주도는 고 채 사장의 고향이다. 큰아들 채형석 부회장도 최소한 1년에 세차례 이상 제주도에 간다. 선산이 모두 중문 색달동에 있다. 꼭 성묘가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가끔 간다. 채 부회장은 “제주는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저도 국민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 제주도에 요양을 가셨을 때 동행했기 때문에 한동안 지낸 기억이 있어 친근하다.”면서 “할아버지가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현감을 지내기도 했다는데 증조 할아버지까지만 기록이 있어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 회장도 제주에서 지낸 시절이 있다. 경기여고 재학시절 6·25때 제주로 피란가 1년간 지냈다. 장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제주도 여성들을 보면서 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달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애경은 제주도와 손잡고 내년 6월부터 도민의 숙원인 저가항공 시대 대열에 동참한다. 애경은 제주도와 합작해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을 만들었다.㈜제주항공의 왕복 비용은 기존 항공비용의 70% 수준인 11만원선.㈜제주항공의 애경 지분은 75%다. 채 부회장은 “이윤이 크게 나는 사업은 아니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영역이라고 보고 사업을 결심했다.”고 말하지만 주변에서는 “장 회장의 제주 사랑과 무관치 않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학부·학과 올가이드] (9) 약학과

    [학부·학과 올가이드] (9) 약학과

    사회여건 변화에 관계없고 정년이 없어 늘 인기있는 직업이 약사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지고 있어 약사는 앞으로도 수험생들이 계속 선호하는 직업이 될 전망이다. 약학계열 진학을 고려하는 수험생들이 참고할 학과내용과 적성, 최근 학제개편 내용 등을 소개한다. 약학은 국민들의 질병치료 및 예방에 필요한 의약품을 만들고 적절히 사용하는 데 필요한 학술적 이론과 기술을 연구개발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응용과학이다. 또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화장품, 식품첨가물 등의 안전성도 연구한다. 관련 학과로는 약학과, 제약학과, 한약학과 등이 있다. 약학과나 제약학과는 질병치료 및 예방을 위한 의약품의 구조, 물성 및 생체내 작용 등을 배운다. 저학년 때에는 물리 화학 생물 등 약학 전공을 위한 기초 자연과학 관련 교과목을 배운다. 고학년이 되면 약물학 약제학 등 본격적인 약학공부를 하게 된다. 한약학과는 양약을 연구하는 약학과·제약학과와 달리 약물로서의 한약을 연구한다. 한의학 개론, 한약 한문, 약용식물학, 본초학, 유기화학, 미생물학 등을 배운다. ●꼼꼼하고 신뢰성 있어야 약대 진학은 약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학계열을 전공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우선 꼼꼼하고 침착한 태도가 중요하다. 약은 잘 쓰면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도 치료할 수 있으나 잘못 복용하면 오히려 질병을 악화시키는 등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약물 사용에 대해 궁금해하는 환자나 고객에게 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는 상담은 약물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 교과목 차원에서는 사물에 대한 과학적 분석력에다 물리, 화학, 생물에 대한 기초지식과 소질도 갖춰야 한다. 한약학과의 경우, 한문 실력도 있어야 한다. 한문으로 된 교재가 많다. 신체적으로는 색맹이거나 색약자나 공장 등에서의 현장실습에 지장이 있는 신체 장애자는 부적합하다. 개업 이후 문제이긴 하지만 약국 업무가 전산화됨에 따라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개업 약사의 경우, 재정관리 업무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4만여명 활동… 50대 이상도 37.5% 이러한 자질과 교과목에 대한 자신이 있는 수험생들이라면 약대 진학을 고려하는 게 좋을 수 있다. 특히 약사는 정년이 따로 없는 만큼 늙어서도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직업개발원에 따르면 약사나 한약사로 활동하는 사람은 모두 4만여명이 넘는다. 퇴직 나이가 따로 없어 50대 이상 약사도 37.5%나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월평균 임금은 273만원이고, 하위 25%는 200만원, 상위 25%는 3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약사 수요가 향후 5년간 계속될 전망이라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고 고령화 사회로 되면서 약을 사용하는 노인 인구가 증가, 약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약국은 최근 들어 점차 대형화 추세다. 자본이 없어도 약사로 일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는 셈이다. 동네 길 모퉁이나 상가에 입주해 있던 ‘1인 약국’이 점차 2명 이상이 근무하는 대형 약국으로 바뀌면서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보다는 임금을 받으며 근무하는 약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진로는? 약학대학 졸업 뒤, 약사로 일할 수 있다. 물론 약사로 일하려면 약사 면허시험에 합격,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취득해야 된다. 한약사는 경희대·원광대·우석대 등 3개 대학의 한약학과를 전공하고 한약사 면허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약사로 일하는 것 이외에도 약학분야 지식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의약 산업 및 생명공학 관련 산업체와 연구소에서 일하는 선배들도 많다. 식품 제조업체, 화장품 제조업체 등의 기업체에서 일할 수 있다. 이밖에 법무부의 마약관련 부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보건복지부나 환경부를 비롯한 보건 행정관련 부처에서 공무원으로도 일할 수 있다. 한약학과를 졸업하고 전통약재 가공 및 제조업체에서 일할 수도 있다. ●2009학년도부터 약대 신입생 안 뽑아 현재 중 3학년생부터는 곧바로 약대로 진학할 수 없게 된다. 오는 2009학년도부터 4년제 약대 교과과정이 ‘2(학부 2년)+4(약대 4년) 체제’로 바뀌기 때문이다. 석사 학위를 받게 되는 8년제 의학전문대학원과 달리 6년제로 학사학위를 받는다. 하지만 한약학과는 현재처럼 4년제로 그대로 운영한다. 약학전문 대학원은 대학 2년 이상을 수료하고 일정 학점을 따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선발은 약학입문자격시험(PCAT : Pharmacy College Admission Test)에 합격해야 한다, 물론 이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현재처럼 약사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정식 약사가 된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약학계열 지원전략 약대와 한약학과 모두 자격증과 연계돼 있어 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전통적으로 인기가 많은 전공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특징은 약대 경쟁률이 올라가고 있는 반면, 한약학과는 인기가 주춤하고 있다는 점이다. 약대의 경우 합격가능한 수능점수대가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서울 지역 약대의 경우 지방 의대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의대와 약대의 수능 점수 차이가 20점 정도 났지만 최근에는 10점 정도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간격이 좁혀졌다. 약대의 또다른 특징은 이화여대와 숙명여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등 여대에 많이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진학이 어려운 남학생들의 경쟁이 더 치열하다. 게다가 의대를 진학하지 못하는 남학생들이 차선책으로 약대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남녀공학 대학에서는 점수 인플레 현상까지 나타나고, 그 결과 지방 의대보다 합격권 점수가 더 올라가기도 한다. 지방국립대인 부산대나 전남대 등은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의대에 몰릴 학생들이 약대에 지원하는 등 인기가 치솟고 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지원가능한 수능점수대도 최상위권이다. 서울 지역 대학의 경우 상위 1%, 지방은 최소 5% 안에는 들어야 합격을 노릴 수 있다. 심층면접을 실시하는 서울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학들은 수능과 내신만을 반영한다. 서울대와 성균관대는 언어·수리(‘가’형)·외국어·과학탐구 전 영역을 반영한다. 반면 이밖의 대학은 언어를 제외한 3영역 성적만 반영한다. 한가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내신의 반영 방법. 사립대의 경우 수우미양가 등 평어를 반영하는 반면, 국립대의 경우 석차를 반영하기 때문에 내신의 변별력이 크다는 점이다. 때문에 약대를 지원할 때는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한약학과는 약대에 비해 수능 점수로 따져 10점 이상 낮다고 보면 된다. 합격가능한 수능점수대는 서울은 7∼8%, 지방은 15% 안에 들어야 한다. 한약학과는 사립대에만 설치돼 있다. 때문에 수능 성적이 중요하고 내신은 평어로만 반영한다. 논술·면접 등 대학별고사도 치르지 않는다. ■ 도움말 종로학원 평가연구실 남윤곤 팀장 ■ 개업한 선배들의 조언 “생각보다 기초과학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합니다.” 약사와 한약사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은 약학·제약학·한약학과를 지망하는 수험생들에게 제일 필요한 적성으로 기초과학에 대한 흥미를 꼽았다. 약국을 개업해 활동하고 있는 약사와 한약사 선배들의 조언을 소개한다. ●개업 약사 김영숙(29)씨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1년 동안 관리약사로 근무한 뒤 친구들과 개업했다. 약사라고 하면 병이나 약에 대해서만 공부한다고 생각하지만 생물이나 화학, 무기화학, 약의 합성과정 등 기초과학을 더 많이 공부한다. 특히 1·2학년 때는 자연계 전공 학생들처럼 기초과목을 많이 배운다. 생각보다 공부가 만만치 않다. 기초과학에 적성이 맞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하고 나중에 약사가 되어서도 즐겁게 일하기 어렵다. 직업으로서 최대 장점은 개인 사정에 따라 진로를 융통성있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약사고시를 통해 자격증을 따면 당장 개업을 하지 않아도 취업이 가능하다. 여성의 경우 결혼 후 아이를 낳아 기른 뒤 천천히 개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졸업후 2∼4년 안에 개업을 한다.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이면서 전문직으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것 같다. 약대에 간다고 하면 대부분 개업 약사나 병원 약사로 활동하는 것만 알고 있지만 최근에는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거나 마케팅 업무를 맡기도 한다. 그만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진출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개업 한약사 신범영(30)씨 경희대 한약학과 졸업 후 한약국을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 한약학과를 지원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한약학과가 한약에 대한 것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약의 발전을 위해 과학적인 접근과 실험, 분석적 방법 등 양방에 대한 지식도 많이 배운다. 특히 한방은 물론 화학이나 생물 등 기초과학도 공부해야 한다. 공부는 대부분 이론과 실습을 겸한다. 거의 대부분의 과목이 실험과목과 연계해 개설돼 있을 정도다. 경희대의 경우 4학년 때 병원에 가서 직접 조제와 처방을 해보는 실습을 한다. 졸업하면 한약사고시를 쳐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졸업후 진로는 대부분 한약국을 개업한다. 경희대의 경우 10명 가운데 4명꼴이다. 한약국에서는 아직까지 의약분업을 실시하지 않고 있어 직접 처방·조제가 가능하다. 이밖에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제약회사의 연구직이나 마케팅 분야, 또는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같은 공직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예전과는 달리 제약회사들이 한방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방과 양방이 섞인 다양한 약이 나오고 있다. 멀리 내다보고 한방의 과학화를 위해 도전해볼 만하다. 정리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황창규 사장·러플린 총장 이대서 강연

    “미래의 인재는 판사와 검사 등 제너럴리스트와 히딩크가 강조한 멀티형 인재를 거쳐 창조적 지식인이 차지할 것입니다.” 14일 이화여대 음악관 김영의홀에서 열린 제5회 김옥길 기념강좌 ‘미래 과학기술의 새틀과 인재육성’에서 삼성전자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은 차세대 인재 육성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황 사장은 ‘반도체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으로 삼성 반도체 신화를 일궈낸 주인공이다. 황 사장은 강당을 빼곡하게 채운 여대생들에게 “디지털 시대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면서 “‘디지털 노마디즘(유목민 정신)’으로 무장해 시대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창조적인 시각으로 미래 과학시대를 앞서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산업에서 보여주는 각국의 특색에 대해서는 미국은 창의력이 뛰어나며 일본은 장인정신, 중국은 기초과학, 한국은 무모할 정도로 상용화 기술에서 앞선다고 설명했다. 여성인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전했다. 황 사장은 “현재는 시간과 목적을 정해놓고 움직이는 조직적 문화보다는 개인과 소프트웨어, 기술을 엮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남성보다 창의성이 더 뛰어난 여성인재들의 경우 IT 분야에서 그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또 남자들은 자기영역을 고수하는 경향이 짙은데 반해 여자들은 주위에 경계를 짓지 않아 외부와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강좌에서는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카이스트 총장도 강연자로 나서 학생들에게 미래 과학기술에 대한 비전을 설명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평양그룹-창업주 故서성환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평양그룹-창업주 故서성환 회장家

    태평양그룹 창업주 고 서성환(1924∼2003) 회장은 화장품업계의 신화가 됐다.‘미와 향을 파는 마케팅의 귀재’인 서 창업주는 어려서부터 개성에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후 기업경영에서 개성상인의 맥이 면면히 흘렀다. 서 창업주는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기업가의 사회적 책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태평양이 직접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이 3개이며 후원 단체는 셀 수없이 많다. 신용과 근검절약을 가장 큰 밑천으로 삼는 개성상인의 기질,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기업윤리는 2세 경영으로 넘어온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가업 태평양은 1945년 9월5일 창립됐지만 연원은 좀 더 거슬러올라간다. 태평양의 역사를 알려면 서성환 회장의 가족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서 회장은 1924년 7월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에서 부친 서대근(1890∼1973)씨와 모친 윤독정(1891∼1959)씨의 3남3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서 창업주 가족은 소학교 시절인 1930년 좀 더 나은 생활을 찾아 개성으로 이사를 했다. 개성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인 동현동에 정착했다.‘상인의 도시’ 개성 생활은 소년 서성환에게 이후 기업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개성에 정착한 가족들의 생계는 어머니 윤 여사가 책임졌다. 전 재산을 털어 조그마한 상점을 열고 잡화를 취급하다가 화장품 제조에 눈을 돌렸다. 윤 여사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비상한 머리를 지녔다. 이웃으로부터 ‘여중군자’라고 불릴 만큼 활동적이고 사교적이었다. 인삼 매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개성지방은 소득수준이 높아 우수한 품질의 동백기름이 잘 팔린다는 것을 간파한 윤 여사는 직접 동백기름을 짜 만든 머릿기름을 팔았다. 당시 서민들은 피마자 기름을 썼지만 상류층은 고가의 동백기름을 애용했다. 참빗으로 곱게 빗어 쪽진 머리에 머릿기름을 자르르 바른 모습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이도록 하는데 필수적이었다. ●태평양 모체는 어머니의 ‘창성상점’ 동백기름에서 자신을 얻은 윤 여사는 차츰 사업영역을 확대했다.1932년부터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던 미안수를 자가 제조법으로 만들어 판매를 시도했다. 또 구리무(크림), 가루분(백분) 등으로 화장품 제조의 종류와 품목을 넓혔다. 소년 서성환도 물건을 도매상에 배달해주는 등 잔심부름을 하며 가업에 참여했다. 당시 제조방식은 물론 가내 수공업이었다. 솥을 걸어놓고 그안에 물과 기름을 섞어 손으로 직접 젓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품질은 우수하다는 평을 얻어 수요를 따르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자신감을 얻은 윤 여사는 ‘창성상점(昌盛商店)’이라는 생산자 명칭을 표기했다.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 상품에 ‘창성당제품’‘오리지날’ 등을 표기했다. 가업에 참여한 소년 서성환의 경영 수업은 계속됐다. 보통학교시절부터 소년 서성환은 하루 끼니인 도시락 세개를 자전거에 싣고 해뜨기 전에 개성을 출발, 화장품 제조에 필요한 물건을 사오곤 했다. 중경보통학교를 졸업한 1939년부터 화장품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거래 도매상에게 물건을 납품하거나 예성강 20리를 따라 형성된 상로(商路)를 따라 직접 팔기도 했다. 자전거로 화장품을 팔러 다니면서 유통에도 눈을 떴다.10대 소년 서성환은 개성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글리세린과 향료, 빈 병을 사는 일을 도맡았다. 창성상점의 제품은 1941년 개성 최초의 백화점인 3층 양옥의 김재현백화점에도 들어갔다. 백화점에 작은 코너를 개설, 자사의 제품뿐만 아니라 인기가 높던 다른 회사의 제품도 위탁 판매했다. 제조와 판매를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제품도 함께 판다는 서성환의 생각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면서 화장품 제조법도 어머니 윤 여사로부터 직접 배웠다. 물과 기름의 혼합비율, 열을 가하는 강약 정도,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의 비율 등에 따라 화장품의 품질은 천차만별이었다. 화장품 유통에 이어 제조까지 현장 경험을 쌓았지만 스물한살이던 1944년 강제징용되면서 그의 화장품 수업은 중단됐다. ●‘블루오션’ 태평양으로 광복을 맞아 다시 개성으로 돌아온 청년 서성환은 화장품에 집중했다. 어머니가 세운 창성상점을 ‘태평양상회’로 이름을 바꿨다. 태평양만큼이나 큰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웅지와 태평양을 건너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도전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광복정국의 혼란속에서 서성환은 1947년 개성을 떠났다. 서울로 이주, 회현동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청년 서성환은 당시 누님 한분이 내려오지 못한 이산가족의 한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야 했다. 이 즈음 부인 변금주(77) 여사를 만나 결혼했다. 모조품과 위조 화장품이 기승을 부리던 50년대 서성환은 “남보다 월등한 제품을 만들어야 제 값에 팔 수 있다.”며 시종일관 품질을 강조했다. 이때 내놓은 메로디크림은 태평양 1호 제품의 영예를 안았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했지만 6·25가 터졌다. 그는 피란길에도 화장품 원료를 싣고 부산으로 내려갈 정도의 집념을 보여줬다. 임시수도 부산에서 1951년 순식물성의 ABC포마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대단한 인기를 끌며 화장품 시장을 석권했다. 당시 멋쟁이들의 필수품이었다. 서성환 회장이 직접 작명한 ABC포마드는 60년대까지 대히트 브랜드로서 태평양의 성장 기틀이 됐다. 청년 서성환은 환도 이후 1954년 후암동시대를 열면서 기술력에 대한 갈증에서 장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만들었다.1953년 처음 열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등을 통해 화장문화가 태동한 것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향기나는 밥, 그리고 최초의 연속… 서성환은 후암동 시절 잘 팔리던 화장품을 구해 직원들과 함께 실험을 거듭했다. 생산직 여종업원들과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가내 수공업에 실험기구가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 향료가 밴 솥과 물바가지를 이용해서 밥을 하면 향내 나는 밥이 되고, 크림을 만들었던 도구를 쓰면 구리무 향밥이 됐다고 한다. 56년 용산으로 이전한 이후 성장가도에 들어섰다. 서성환은 57년부터 해마다 기술자들을 독일과 일본에 유학시켰고,58년엔 동양 최초로 고성능 미분기를 도입했다.59년 주식회사 체제로 출범했고 프랑스 코티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장업사의 새 장을 열었다.60년 장업계 최초의 해외방문,64년 오스카 브랜드로 최초의 화장품 수출, 당시 획기적인 방문판매제와 아모레화장품 개발 등에 힘입어 급신장했다.68년 매출이 14억 2800만원으로 창업 이후 처음 10억원대를 돌파했다. 당시 태평양의 품질은 어느 정도였을까?지난 71년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화장품 콘테스트에서 3개의 금상을 수상했다. 화장품 제조 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74년 장업계 최초의 소비자과를 신설, 정부의 소비자 기본법안보다 3년 빨리 소비자 중심을 지향했다. 순항하던 태평양은 90년대 들어 무한경쟁시대를 맞았다. 서 창업주는 창업 50년을 맞은 95년을 ‘세계화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다짐했다. ●태평양에 순항중인 2세 경영 서 창업주는 개성상인 특유 기질을 두 아들에게 물려줬다. 서 창업주는 지난 82년 장남 영배(49)씨를,87년 차남 경배(42)씨를 입사시키면서 2세들에게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영배씨는 태평양화학에 입사해 도쿄 및 뉴욕 지사를 거쳐 태평양증권 부사장 태평양종합산업의 회장을 지냈다. 지금은 태평양개발 회장으로 기업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 영배씨는 태평양개발을 연매출 1000억원대의 중견 건설업체로 키웠다. 차남인 경배씨는 재경본부를 시작으로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과감한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태평양증권·태평양패션·프로야구단 돌핀스·여자농구단 등 계열사를 정리했다.97년 3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태평양에 2세 경영의 배를 띄웠다. 지난해 매출은 1조 1053억원. 후계작업이 부드럽게 진행되던 2003년 1월 장원 서성환 회장은 영면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기업가 태평양은 해마다 50억원 가량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여성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여성에게 되돌려준다.’는 취지에서 주로 여성의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이윤의 사회환원은 기업윤리 이전에 창업주 서성환 회장의 소신이라는 게 한 측근의 설명이다. 그는 “창업주는 ‘사회에 기여하면서 돈을 버는 게 바로 우량기업’이라고 자주 언급했다.”고 말했다.‘불쌍한 사람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후덕함도 있었다. 그러나 창업주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는 개성상인의 ‘짠돌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서 창업주는 지난 63년 중앙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성환 장학금’을 만들었다. 중앙대 최초의 외부장학금이다. 당시의 기업가치고는 사회적 책무를 빨리 깨달은 편이었다. 첫 수혜자는 리대룡(64)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이후 75년부터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학업 성적이 좋은 여고생 9700여명에게 17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지난 9월부터 태평양학술문화재단으로 이름을 바꿔 학술연구사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성들에게 유방은 모성의 상징이자 여성답게 해주는 상징적인 기관이다. 여성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태평양은 2000년 9월 한국유방건강재단을 만들었다. 태평양이 전액 출자한 재단은 국내 최초의 유방암 전문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지금까지 1만 2000여명의 여성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하거나 무료로 검진받을 수 있도록 했다. 사회 환원은 태평양이 출연한 재단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003년 6월 서 창업주가 타계한 다음 태평양 주식 7만 4000주와 이익배당금 전액 등 50억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전달했다.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은 아들 서경배 사장으로 이어졌다. 서 사장은 선친의 고향이 북한인 것을 감안, 북한 어린이와 여성을 돕기 위해 유니세프에 지난해와 올해 각각 1억원을 기부했다. ■ 오늘의 태평양 일군 3인방 오늘날의 태평양을 일군 데는 창업주 서성환 회장을 그림자처럼 보필한 3인방이 있다. 태평양의 사사에 남을 정도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들은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재인식시키고, 국민 생활양식을 한층 높인 신화 창조의 주역이다. 오원식(69)전 부사장은 40년이 넘게 입에 오르내리는 브랜드 ‘아모레’를 1961년 작명했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끌었던 이탈리아 가곡 ‘아모레미오(난 당신을 사랑합니다)’에서 따왔다. 상금으로 당시 거금인 1만원(당시 월급 7000원)을 받았다. 오 전 부사장은 1967년부터 한방미용법을 연구, 지난 73년 인삼 사포닌을 이용한 화장품 아모레 진생삼미를 탄생시켰다. 진생삼미는 브랜드 진화를 거듭하다가 가장 한국적인 명품 ‘설화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설화수는 단일 브랜드로 매출이 2000년 1000억원을 달성했으며, 지난해에는 국내 최초로 3000억원을 돌파했다. 화장품 사상 유래가 없는 기염을 토했던 브랜드다.82년 대한화장품학회 회장을 지낸 오 부사장은 87년 기술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아 기술개발에 힘썼다. 이후 90년대 초까지 연구부문을 총괄하면서 태평양 40년 연구와 생산 분야의 산증인으로서 화장품 기술의 과학화에 큰 획을 그었다. 그 어렵던 50년대의 태평양 생존 기틀을 닦은 데는 구용섭(81)초대 연구실장의 공을 빠뜨릴 수가 없다. 좋은 원료 확보를 위해 암거래 시장에서 발품을 팔았다. 서울 환도이후 후암동의 가내 수공업 시절의 ‘향기나는 밥’과 ‘구리무밥’을 먹으면서도 제품개발을 진두 지휘했다. 이같은 노력 덕분에 태평양은 독자적인 기술 개발과 화장품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발판을 마련했다.68년 한국화장품 화학자회 창립회장에 취임,80년까지 회장을 지내면서 한국의 화장품 발전에도 공이 크다. 머리를 감을 때 비누에서 샴푸로 바꾸게 한 사람이 김창규(66) 고문이다. 프랑스 파리 이과대학 연구소의 실장으로 재직중 태평양에 스카우트됐다. 그가 73년 개발한 브랜드 ‘타미나’는 7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 상품이 됐다.78년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화장품학회 국제회의에서 인삼사포닌이 모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김 고문은 80년대 태평양의 생활용품 사업을 일궜다.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리도 푸로틴 샴푸는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비누로 머리를 감던 국민들의 생활양식을 샴푸로 머리를 감게 바꿨다.88년 가정용품을 연구하는 기술연구소장과 92년 태평양중앙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냈다.91년부터 대한화장품학회장을 연임하면서 화장품학계 발전을 위해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chuli@seoul.co.kr ●정·관·재계로 연결된 화려한 혼맥 창업주 서성환 회장은 1947년 변금주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2남 4녀, 송숙(58), 혜숙(55), 은숙(52), 영배(49), 미숙(47), 경배(42)를 두고 모두 성혼시켰다. 서 창업주의 사돈가는 한마디로 쟁쟁한 집안들이다. 정·관계를 비롯해 기업인과 언론인으로 인연이 이어진다. 방우영(77) 조선일보 명예회장을 비롯해 신춘호(73) 농심그룹 회장, 최두고(84) 전 국회의원 등의 기업인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을유문화사 정진숙(93) 회장, 최주호(작고) 전 우성그룹 회장, 박세정(88)대선제분 회장과는 혼맥을 쌓았다가 끊어졌다. 서 창업주는 또 사돈가의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을 통해 정재문(69) 대양산업 회장(전 의원), 신춘호 농심 회장을 통해 서봉균(79) 전 재무장관과는 ‘사돈의 사돈’으로 간접 혼맥을 이루고 있다. 김치열(84) 에이오에스 회장(전 법무·내무장관)과는 신춘호 농심 회장을 거쳐 박남규(85)조양상선 회장을 통해 연결된다. 서 창업주는 이같은 순환 혼맥을 통해 김일환(작고) 전 내무장관, 정운갑(작고) 전 농림부 장관, 김영생(작고) 전 의원, 김도창(작고) 전 법제처장 등 정·관계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이같은 현상은 서 창업주 특유의 신중함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는 자녀 혼사를 사람됨됨이를 중시하여 중매 형식을 택한 서 창업주의 성격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돈가의 ‘유명세’와 관련해 정략적이라는 세인의 오해를 받기 쉬우나 태평양측은 이를 극구 부인한다. 정관계의 발판을 만들 필요도 없었거니와 ‘정경유착’의 시선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는 게 서 창업주 측근의 설명이다. 관계(官界)의 집안과는 모두 현직에서 물러난 뒤 맺어졌고, 재계 인사들과는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대부분 양쪽 집안 가장들의 친분으로 혼사가 이뤄졌다고 전한다. 혜숙씨는 이화여대 사회생활과 출신으로 김일환씨의 3남인 의광(56)씨와 지난 74년 결혼했다. 김일환씨는 6·25전쟁 당시 국방차관을 역임한 전형적인 무관 출신으로 상공·내무·교통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의광씨는 연세대 정외과 출신으로 태평양 계열사의 장원산업 회장으로 활동하다 물러났다.4명의 사위 가운데 유일하게 장인 회사의 경영에 참여했다가 서울 인사동에서 목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공부하고 있는 근종(29)씨와 LG전자에 다니는 우종(27)씨를 두고 있다. 3녀 은숙씨는 국회 건설위원장을 지낸 최두고씨의 차남인 상용(53)씨와 지난 77년 결혼했다. 상용씨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은숙씨와 결혼, 미국에서 7년간 수련의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현재 고려대 의과대학장으로 재직중이다. 부부에겐 ㈜태평양에서 사원으로 근무하는 환석(27)씨와 미국에서 학업중인 양희(23)씨 등 1남1녀가 있다. 서 창업주의 두 아들인 영배씨와 경배씨의 혼사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장남인 영배씨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기 직전에 이미 그룹경영에 참가했다.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을 수료한 후 증권회사로 자리를 옮겨 90년도 태평양증권 부사장을 거쳐 태평양개발 회장을 맡고있다. 영배씨는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의 1남3녀 가운데 장녀인 혜성(45)씨와 지난 83년에 결혼했다.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재원인 혜성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마친 후 조선일보에 입사,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서씨 집안의 맏며느리가 됐다. 혜성씨는 태평양학원(성덕여중·성덕여상)의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영배씨 부부는 2남1녀를 두고 있는데 모두 학생이다. 차남인 경배씨는 지난 90년 11월, 농심 신춘호 회장의 막내딸인 윤경(37)씨와 화촉을 밝혔다. 서 창업주와 신춘호씨는 같은 용산구 관내에서 평소 자주 만나 인사를 나누던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이러한 인연이 훗날 사돈으로 연결된 것. 경배씨는 경성고·연세대 경영학과를 마친 뒤 미국 코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수재로 87년 태평양화학 과장으로 그룹에 첫발을 내디뎠다.90년 태평양그룹 기획조정실 실장을 지내는 등 태평양 대표이사 사장 및 대한화장품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경배씨는 학생인 두딸 민정(14), 호정(10)을 두고 있다. chuli@seoul.co.kr ■ 故서성환 회장의 차사랑 “기다리는 시간의 맛도 있고, 잔의 맛도 있고, 차 맛도 있다.” 창업주 고 서성환 회장을 모신 회의에서 손수 차를 우려드렸던 서경배 사장의 회고담이다. 요즘 차는 단순한 기호식품이나 전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상상력을 뛰어넘는 초스피드 시대에서 여유를 찾아주는 음료이다. 철학이 담긴 고급 문화로 이해된다. 이런 차가 화장품 회사 태평양과 어떻게 이어졌을까? 서 창업주는 60년대 일본 등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 나라 고유의 차를 대접받았다. 일본 거래처를 찾았을 때 가루차가 늘 나왔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커피가 고작이었다. 특히 서 창업주는 일본 거래처 사람들이 고려·조선왕조의 다구(茶具)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에 차에 관심을 기울여 70년대 후반부터 녹차사업을 시작했다. “차밭을 조성하되 반드시 불모지를 개간해야 한다.”80년 녹차밭을 구상하면서 서 창업주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당시 차밭 개간은 무모한 사업으로 비쳐졌다. 80년대 초 우리나라는 차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부족한 전문인력과 제주도 땅의 척박함 등 그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았다. 골프장을 짓는다거나 땅투기를 한다는 등의 오해까지 받았다. 축적된 기술과 자료도 없었다. 주위에서는 회사 전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모두 만류했다. 그러나 서 창업주는 뚝심을 발휘해 밀어붙였다. 대한농구협회 회장 시절인 80년 중국을 방문, 공안(公安)을 설득해 황제차로 유명한 용정차(龍井茶)의 고향 항저우를 둘러봤다. 차가 거대한 산업임을 확인했지만 차 박물관은 그저 형식만 갖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히 풀렸다.90년대 초 사업을 위해 찾았던 그는 미국 하와이의 파인애플농장 안에 있는 돌(Dole)사의 파인애플하우스, 즉 파인애플박물관에 들렀을 때 무릎을 탁 쳤다. 그러나 겨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할까말까 하던 차사업을 차박물관으로 견인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차박물관은 가슴에 고스란히 묻어두었다. 말년, 몸이 쇠약해진 서 창업주는 휴양을 위해 하와이에 머물면서 파인애플하우스를 가보곤했다. 지난 99년 아들 서경배 사장이 부친 문병을 위해 하와이에 들르자 그는 짐을 풀던 아들을 다짜고짜 차에 태우고 돌사의 파인애플농장으로 데려갔다.“바로 이거야, 이렇게 만들어봐라.”와병중이던 아버지의 말은 그게 전부였다. 이렇게 해서 설록차박물관 오’설록이 탄생했다. 지난 2001년 9월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에 문을 연 오’설록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찻잔 등 다구가 잘 진열되어 있다. 차에 관한 명상의 최적 공간으로 소문나면서 연간 30여만명이 찾는다. 장원 서성환의 정성과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곳이다. chul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부고]

    ●박창호(아세아항공화물 감사)씨 상배 길성(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씨 모친상 양옥경(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씨 시모상 12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2)921-1499●정필성(자영업)영필(육군 원사)대필(한국언론재단 차장)씨 부친상 이민호(전 KT&G 과장)권태홍(육군 원사)씨 빙부상 12일 옥천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7시 (043)732-2341●박보현(프로야구 두산 1군매니저)씨 조모상 13일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하장안동 51-2 자택, 발인 15일 오전 8시 (051)727-8048●심영섭(한경닷컴 마케팅팀 부장)생섭(현대증권 대구서지점 과장)씨 부친상 12일 청송의료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54)873-7801●황선경(우성해운 전무)선우(SMT KOREA 대표)씨 모친상 장순덕(신상중 교사)김용일(한섬 상무)김칠수(전 평화은행 지점장)박일경(한성기업 경영관리 본부장)씨 빙모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3010-2238●김영근(KTNet 대표)씨 모친상 13일 경북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53)420-6152●엄규종(서울시 상수도본부 과장)규동(후평성심의원 원장)규진(사업)씨 모친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95●강종철(전 KT전남본부 국장)씨 모친상 현석(남도일보 기자)형국(디-오피스 대표)광진(우성전공 과장)씨 조모상 13일 전남 보성 우리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10시 (061)852-4445●천정기(LG화학울산공장 총무차장)한기(사업)씨 부친상 12일 울산 남구 중앙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52)226-1410●곽형근(국립수의과학검역원 축산물안전과장)정근(자영업)재근(샬롬치과 원장)효근(약사)혜근(〃)씨 모친상 유한길(전 뉴록 대표)씨 빙모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6시30분 (02)3410-6918
  • 결혼 빨리할 생각 없어요 - 5분 데이트 (26)

    결혼 빨리할 생각 없어요 - 5분 데이트 (26)

    보기 드물게 큰 눈이 퍽 인상적이어서 좀처럼 기억에서 떠나질 것 같지가 않다. 앳된 경상도 사투리가 차라리 애교스럽다. 부산이 고향이고 부산여고를 졸업했다. 지금은 이화여대 법정대학 4학년 장경숙양. 48년생. 『결혼은 빨리 안하겠어예』- 결혼은 남들이나 하는 것쯤으로 알만큼 그렇게 자기 생활에 분주하고 자기 자신에 충실하다.「캠퍼스」생활 뿐 아니라 한가한 자기 시간은 없다. 따라서「루스」한 것을 혐오한다. 항상 팽팽하게 보람으로 꽉 찬 생을 노력으로 만들어 간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온갖「콜렉션」을 하고. 이 모든 보람을 위한 노력은 사치를 위한 취미 정도에서 그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림 그리기는 따로 선생님을 모시고 배울 정도. 사진 찍기를 위해서는「라이카」를 골고루 몇 개 가지고 있을 정도. 아직도「하셀브라드」를 탐내고 있다.「콜렉션」은 방안에 가득 인형과「카드」등이 쌓여있을 정도다. 그래도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게 남아 있다. 공예부문. 웬만한「인테리어」와 자기가 달「액세서리」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 장식하고 싶어서다. 웬만큼 견학을 끝내고 가장 좋은 선생님을 선택할 단계에 이르렀단다. 결혼이 늦어질 것이라는 자신의 관망이 이래서 어디 하나 비집고 들어가 볼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벽이 되어 느껴진다. 아무거나 잘 먹는 식성이 맑은 피부와 균형 잡힌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일까. 158cm, 50kg. ※ 뽑히기까지 겨울방학 동안이었다. 그 많은 사람 틈에 끼여 있는 장양을 처음 만난 것은. 커다란 눈 때문이었을까, 짙은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대로 표지를 삼았으면 하는 강렬한 충동. 열심히 권해 보았다. 그러니까「선데이서울」이 뽑은「미스·이대」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미인이 장경숙양인 셈. [ 선데이서울 69년 3/30 제2권 13호 통권 제27호 ]
  • ‘개혁적 보수’ 정치세력화 첫발

    ‘개혁적 보수’ 정치세력화 첫발

    “공동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실용적 우파를 지향한다.”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한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내건 슬로건이다. 건전 보수, 합리적 보수, 개혁된 보수 등 신보수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초대 상임의장에는 지난 1970년대 빈민운동에 앞장섰던 김진홍 두레교회 담임목사가 선출됐다. 공동대표단에는 강혜련·최병일(이화여대), 김진영(강원대), 유석춘(연세대) 교수와 김성이 사회복지사협회 회장 등이 참여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지난 6월30일 발기인 대회를 치른 뒤 이날 창립대회에서 전국 44개 지역과 미국과 일본, 중국 등 해외 10개국에 지부를 둔 거대 조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공동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실용적 우파를 지향한다.”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한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내건 슬로건이다. 건전 보수, 합리적 보수, 개혁된 보수 등 신보수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초대 상임의장에는 지난 1970년대 빈민운동에 앞장섰던 김진홍 두레교회 담임목사가 선출됐다. 공동대표단에는 강혜련·최병일(이화여대), 김진영(강원대), 유석춘(연세대) 교수와 김성이 사회복지사협회 회장 등이 참여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지난 6월30일 발기인 대회를 치른 뒤 이날 창립대회에서 전국 44개 지역과 미국과 일본, 중국 등 해외 10개국에 지부를 둔 거대 조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건강한 보수 토양” “한나라 홍위병” ‘개혁적 보수’vs‘덧칠한 보수주의’,‘건강한 보수정당의 토양’vs‘보수 정치계의 전위부대’. 이들의 출범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의 단면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창립 선언문을 통해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연이은 좌파의 집권으로 대한민국 우파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왔다.”고 진단했다. 외세 의존·수구 부패·권위주의 세력이라는 오명이 뒤따랐다는 자기 고백도 내놨다. 김 상임의장은 “냉전적인 이념대결에서 벗어나 실용적 차원의 국익이 최우선 가치”라고 강조했다. ●“한나라에 실망… 특정정당 지지안해” 김 상임의장은 한나라당과 함께 정권 교체를 꿈꾸는 운동이라는 의견에 대해 “한나라당의 지지부진한 자기 혁신에 대한 실망에서 출범하게 됐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제 대변인도 “이념은 한나라당과 비슷하지만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활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세력화 가능성을 조심스레 내다보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한나라당의 홍위병”이라고 주장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정치권이 합종연횡하는 과정에서 정치세력화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내부에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고 뉴라이트 세력을 포괄하겠다고 한 만큼 집단적으로 정치세력과 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나라 빅3 한자리에 ‘러브콜´ 행사에는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한나라당 빅3’와 한화갑 민주당 대표, 신국환 국민중심당 공동대표 등이 대거 참석해 직·간접적인 연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한나라당에선 특히 이강두 최고위원과 임태희·맹형규·박진·공성진·유승민·정진섭 의원 등도 자리했다. 박 대표는 “뉴라이트 운동과 한나라당이 가는 길은 다르지 않다.”면서 “통합과 경제회생, 미래 지향적인 길에서 동반자가 되자.”며 적극적인 연대 의사를 밝혔다. 이 시장은 “소모적인 이념논쟁은 지양하고 보수세력의 실패한 역사를 이어가면서도 약자 편에서 함께 나가자.”고 인사를 건넸다. 손 지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지키고 이념·지역갈등을 극복하는 데 뉴라이트가 새 지평을 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당에서 창립식에 가지 말라고 했지만 생활·실용주의 정치를 표방하는 뉴라이트운동이 중도개혁을 지향하면 우리도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부고]

    ● 원로 동양화가 박원수 화백 원로 동양화가 설전(雪田) 박원수 씨가 5일 오후 1시 삼성서울병원에서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37년 선전(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초특선상을 수상하며 화단에 등단한 고인은 한국서화연구회 고문, 한국미술대전 등의 심사위원장을 역임하며 화단 발전을 위해 애썼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학신 여사와 제백(한전 원자력 연구소소장), 제훈(전 신성무역 전무, 제혁(전 기아차사장)씨 등 5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 발인은 8일 오전 8시.(02)3410-6917. ● ‘은방울 자매’ 박애경씨 ‘마포종점’으로 유명한 가수 은방울자매의 박애경(본명 박세말)씨가 위암으로 향년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지난 1월 병원에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박씨는 10개월간의 투병 끝에 지난 4일 밤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1955년 부산 KBS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 김향미 씨와 은방울자매를 결성한 뒤 ‘마포종점’,‘삼천포 아가씨’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남편 권혁두 씨와 2남(권준현, 권준범). 빈소는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 발인은 7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안성시 우성공원묘원.(02)590-2538. ●이상민(리얼시스템 과장)씨 부친상 6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30분 (02)2001-1092 ●황인경(서울대 생활과학대학장)씨 모친상 김순자(고려대 명예교수)씨 시부상 최운열(서강대 대외부총장)임창주(상명대 명예교수)씨 빙모상 5일 서울대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2072-2022 ●김기동(전 영남대 총장)씨 상배 주현(한국은행 물가조사팀장)상현(영남대 경영학부 교수)석현(SLS캐피탈 영업부 차장)씨 모친상 5일 영남대의료원, 발인 8일 오전 8시 (053)620-4231 ●소주영(금융감독원 팀장)씨 모친상 윤상기(사업)씨 빙모상 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410-6915 ●권홍기(전 현대건설 상무)씨 모친상 이정숙(가천의대길병원 영양실장)씨 시모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010-2265 ●지세근(삼성전자 인사팀 차장)씨 부친상 홍형욱(서울 종암경찰서 경장)최경호(동양제철화학 관리팀)씨 빙부상 6일 부천 순천향대학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 (032)327-4004 ●김호권(전 영남대 교수)씨 별세 정환(삼성화재 부장)은미(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민한(군복무)씨 부친상 전경수(서울공대 교수)씨 빙부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410-6919 ●김상수(KM경영전략연구소장)보수(쌍용자동차)씨 부친상 이기용(신한플랜트엔지니어링 대표)이준원(유림엔지니어링 〃)성복현(스포츠서울 사진부장)씨 빙부상 5일 충남 청양군 정산면 대방리 569호 자택, 발인 7일 오전 11시 (041)942-9986 ●양동출(헤럴드경제 사진부 차장)동훈(자영업)동천(〃)씨 모친상 정종수(자영업)한상욱(현대자동차 차장)씨 빙모상 5일 한일병원, 발인 7일 오전 6시 016-9509-6509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코오롱의 역사는 한국 섬유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땅에 가장 먼저 나일론을 들여와 의생활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한때는 수출 한국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성숙산업에 따른 한계로 인해 코오롱은 재계서열이 점점 밀려났다. 섬유산업의 위상이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코오롱의 3세 경영이 닻을 올린지 올해로 10년째. 이웅열(49) 회장은 올해를 그룹경영의 ‘터닝포인트’로 만들기 위해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제2의 도약을 위해 노후화된 주력 사업에 다시 기름을 칠하고, 쪼이고, 닦고 있는 것이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거치며 체질을 바꾼 코오롱이 재도약을 위한 또 한번의 체질 개선 시험을 치르고 있다. ●풍운아 이원만 창업주 코오롱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과 이동찬(83) 명예회장은 부자간이면서도 사업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창업주가 그룹의 외연을 넓히고 사업의 ‘바람막이’가 돼 줬다면, 이 명예회장은 그룹의 안살림을 챙겼다. 부자는 동업자로서 40년 가까이 함께 일하며 코오롱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 명예회장이 2세이면서 창업 1.5세대로 불렸던 까닭이다. 부자는 사업 파트너로서 환상의 듀엣이었지만 가정적으론 한때 애증의 관계였다. 기업가보다 정치가로서 더 알려진 이 창업주는 워낙 풍류를 즐기는 성격인 데다 이 명예회장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남은 전답마저 처분하고, 사업을 위해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어린 나이에 모친과 누이동생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선친은 이 명예회장에게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선친의 호방한 성품과 능숙한 화술 등은 당시 정·재계에서 유명했다. 이 창업주는 술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술자리에선 재담으로 좌석을 압도했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는 ‘문화재’로 불리울 정도였다. 이 창업주는 193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 기반을 닦았으며, 해방 후에는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들여와 국내 섬유산업을 개척했다.1957년엔 국내 첫 나일론사 제조 공장인 한국나일론(현 ㈜코오롱)을 설립했으며,63년엔 나일론 원사 공장을 지었다. 그는 또 한국산업수출공단 창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오늘의 구로공단과 구미공단을 조성하는 산파역할을 했다. 이 창업주는 정계에도 발을 들여 대한민국 초대 참의원과 6,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인맥 만들기에 탁월한 수단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이 창업주는 1960∼70년대 정·재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1.5세대 창업주 이동찬 명예회장 “이 명예회장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항상 비서와 한 방에서 잡니다. 비서들에게 해외 출장은 그야말로 곤욕이었죠. 회장이 바로 옆에서 주무시는데 잠이 편히 옵니까. 출장에서 돌아오면 몸무게가 3∼4㎏은 그냥 빠져요. 그렇다고 1달러가 아쉬운 나라에서 잠자는 곳에 돈낭비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씀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요.” 코오롱 비서 출신의 한 임원 얘기다. ‘가장의 짐’을 일찍 떠안은 탓에 이 명예회장은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한 번은 이 명예회장이 1947년부터 50여년 이상 신었던 슬리퍼를 비서실에서 새 것으로 바꿨다가 된통 야단을 맞고, 쓰레기통을 뒤져 간신히 찾았던 적도 있다. 또 이 명예회장의 점심 메뉴는 주로 된장찌개와 칼국수, 수제비 등이었으며, 삼복 더위도 부채와 선풍기로 보냈다. 그는 15세 때 경리사원으로 부친의 사업을 도운 지 35년 만인 1977년 코오롱 회장에 올랐다. 그는 등산식, 마라톤식으로 표현되는 꾸준한 내실 경영으로 그룹의 체질을 다져놓은 이후 섬유와 무역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건설과 화학으로 확대했다.1980년대는 전자소재와 합성섬유 등 신업종으로 영역을 더욱 넓혔다. 이 명예회장은 과외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7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직을 맡은 이후 1975년 농구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등으로 다양한 단체에서 활약했다.1980년에는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서 스포츠 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경총 회장은 82년부터 무려 14년간이나 했다. 1996년 1월 이 명예회장은 10년 이상 경영수업을 받은 장남인 이웅열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고 선친처럼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3박4일’ 이웅열 회장 이웅열 회장은 5명의 누이들 속에서 컸지만 성격은 대단히 남성스럽다. 특히 스포츠를 좋아해서 축구와 야구, 테니스, 탁구, 당구, 골프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또 시작하면 프로(?)수준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별명이 ‘3박4일’로 불린 이유는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이다. 그의 학창 시절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다. 부친인 이 명예회장이 박하지 않을 정도의 용돈만 줬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재벌 아들이 ‘짜다’는 소리를 수시로 들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이 회장은 활달하고 사교적이다. 전경련 e비즈니스 위원장을 맡아 재계 2∼3세의 리더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류진 풍산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가깝게 지낸다. 그의 이같은 사교적인 성격은 조부인 이원만 창업주의 성품과 닮았다. 호방하고 풍류를 즐겼던 이 창업주는 사업가보다 정치인으로 이름이 더 잘 알려졌다. 1989년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한 이 회장은 이동통신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그룹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파고로 계열사 매각과 신세기통신(현 SK텔레콤) 지분(1조 700억원어치)을 팔아야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회장은 당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래를 팔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침통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오롱의 어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섬산업이 고유가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올해를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수익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권 장자 승계 코오롱 가문은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아들이 귀한 집안이다.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은 슬하에 2남4녀를 뒀지만 이 명예회장은 1남5녀, 이웅열 회장도 1남2녀다. 그룹 경영은 장남만 참여하고, 딸들과 사돈가의 경영참여는 철저히 배제한다. 장자일계(長子一系)의 경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코오롱가의 특징이다. 다른 그룹들이 사돈을 비롯한 친인척들로 방대한 족벌 경영체제를 이룬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명예회장과 숙부인 이원천 전 사장간의 경영권 분쟁이 친인척 배제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창업주가 그룹경영을 맡고 있을 때는 사위들의 경영 참여가 적지 않았지만, 이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이같은 장자 승계의 원칙이 정해졌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에서 “우리 집 여자들은 아버지 사업이나 남편이 하는 일에 개입하는 법이 없다. 사위들이 처가 덕을 보고 한자리 하겠다면 득보다 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문경영인에게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잘 해내는 경우에도 열등감이 생긴다. 능력이 없다고 ‘백년손님’이라 쫓아낼 수는 없는 일이니 난처해질 것이고, 훗날 내가 일선에서 물러날 땐 조용해지기 어렵다.”고 했을 정도로 철저히 장자일계의 경영구조를 갖춰 경영권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다툼을 미리 차단했다. ●김종필 전 총재와 한때 사돈 이원만가(家)의 혼맥은 국내 재벌가의 최정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화려하다. 이 창업주의 넓은 정계 인맥과 국내 굴지의 섬유그룹인 코오롱을 기반으로 정·관·재계 곳곳에 혈연 관계를 맺었다. 이 창업주와 이위문(작고) 여사는 2남4녀를 뒀다. 이 창업주의 영향력이 정·재계에 미치기 전에는 자녀들을 평범한 집안과 통혼시켰지만, 사업 성공에 이어 정치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던 시기엔 국내 내로라하는 집안을 사돈으로 맞았다. 이 때문에 정략 결혼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장남 이동찬 명예회장은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장가부터 들라.’는 부친의 강요로 맞선을 본 지 1주일 만에 평산 신씨가(家)의 무남독녀 덕진(82)씨와 결혼했다. 이 명예회장 부부는 지난해 1월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장녀 봉필(72)씨는 54년 고향 인근 임병진씨의 아들 승엽(작고)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승엽씨는 삼경물산 사장을 거쳐 그룹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차녀 애란(63)씨는 노영태(63)씨와 혼인을 치렀다. 3녀 미자(61)씨는 포항지주인 박문학가(家)의 장남 성기(66)씨와 결혼했다. 성기씨는 한국바이린 사장을 역임했다. 차남 이동보(56) 전 코오롱TNS 회장과 막내딸 미향(51)씨의 결혼으로 코오롱가는 재계 혼맥도의 핵심으로 올라선다. 이 전 회장은 74년 제3공화국의 2인자였던 김종필 전 총재의 장녀 예리(54)씨와 결혼했다. 이를 통해 코오롱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으며, 최고 권력가와 혈연의 끈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결혼은 육영수 여사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 이동보 전 회장은 1988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분가했지만 부도와 구설수에 휘말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막내 미향씨는 삼립식품 창업자인 허창성 집안으로 출가했다. 식품종합그룹인 SPC의 허영인(56) 회장이 그의 남편이다. ●정략결혼과 3세 혼맥 코오롱가의 혼맥은 3세로 내려가면 더욱 빛이 난다. 이 창업주가 자신의 입지와 뜻을 펼치기 위해 손주들을 정략 결혼시킨 경우가 있어서다. 이 명예회장과 신 여사는 슬하에 경숙, 상희, 혜숙, 은주, 웅열, 경주씨 등 1남5녀를 뒀다. 장녀인 경숙(59)씨는 1969년 당시 공화당 의장 서리였던 고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3남 문조(65)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 전 국회의장은 도쿄대를 나와 경북대 교수로 있다가 1960년 정치에 투신해 5선 의원을 지냈다. 정계에선 대구·경북(TK) 인맥의 대부로 통했다. 국회의장을 비롯해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문조씨는 현재 영남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차녀인 상희(56)씨는 국내 대표적 ‘송상(松商)’으로 불렸던 고홍명 한국빠이롯드 회장 집안으로 출가했다.1973년 고 회장의 장남 석진(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진씨는 코오롱제약(옛 삼영신약) 사장을 거쳐 빠이롯드전자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부도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98년 별세했다. 3녀인 혜숙(53)씨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58)씨와 결혼했다. 현재 고려해운 회장인 동혁씨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학 석사 출신이다. 해운선사로서는 처음으로 타이완과 홍콩 등 동남아 항로에 진출해 해운업계의 프런티어 경영인으로 이름이 높다. 4녀인 은주(51)씨는 테니스 인연으로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장남 영철(55·의사)씨와 결혼했다. 신 전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이들 부부 결혼식은 신 전 총재가 직접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웅열 회장은 큰 누이 경숙씨의 소개로 1983년 황해도 출신인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장녀 창희(45)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서 회장은 1962년 고급벽지의 대명사인 갈포벽지를 만들어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부인 창희씨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이 회장 부부는 규호(21)와 소윤(18), 소민(16) 등 1남2녀를 두고 있으며, 규호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5녀인 경주(46)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최윤석(46)씨와 결혼했다. ●딸·며느리 모두 이대 동문 장자 경영과 친인척 경영 배제의 원칙 때문인지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대외 활동보다 가정주부로서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애쓴다. 이 명예회장의 부인인 신 여사는 지금껏 바깥 사교모임에 한번도 참석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 여사는 집안에서 살림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3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이 명예회장의 모친인 고 이위문 여사가 남편인 이 창업주의 호방한 성격과 바깥 활동으로 마음 고생이 매우 심했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고, 자식들을 바르게 키운 선례 때문이다.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들은 또 모두 이화여대 동문들이다. 장녀 경숙씨가 생활미술과를 나왔으며, 상희씨는 기악과, 혜숙씨는 가정학과, 은주씨는 도서관학과를 나왔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에 딸들을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장녀는 걷는 모양부터 급한 성격까지 나를 제일 많이 닮았으며, 둘째는 시댁에서 살림만 하는 편이지만, 항상 밝고 착한 데다 쓸데없이 친정에 오는 일이 없다. 셋째는 공부도 제일 잘했고, 바른 소리도 잘했다. 악바리면서 의리가 강하다. 넷째는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덜렁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며느리 창희씨도 코오롱가의 여자답게 대외 활동보다 조용히 집에서 자녀 교육과 남편 내조에 열심인 한국적인 주부다. 사교 모임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창희씨지만 코오롱그룹 간부 부인들로 구성된 ‘코오롱가족사회봉사단’ 활동엔 적극 나서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의 ‘李트리오’ 지금의 코오롱그룹 토대를 쌓은 주역 가운데 한 명이 고 이원천 전 한국나일론(현 ㈜코오롱) 사장이다.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의 동생이며, 이동찬 명예회장에겐 숙부가 된다. 이 전 사장은 일제시대 때부터 일본에서 형님인 이 창업주의 사업을 도왔다.1957년에는 한국나일론 사장직에 추대돼 코오롱의 ‘섬유시대’를 이끌었다. 당시 이원만-이원천-이동찬 3인은 코오롱에서 ‘이 트리오’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은 조카인 이 명예회장과 회사 분할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면서 나중엔 경영권 분쟁에 빠졌다. 이 전 사장은 결국 1976년 한국나일론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지분을 챙겨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년만에 쓰러졌다. 이 창업주는 이후 장남인 이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겼고, 회장에 오른 이 명예회장은 동생인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을 분가시켰으며, 매제들도 계열사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숙부에 대한 회한이 커지는 요즘에도 회사 분할에 반대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닌가 싶다…. 숙부와의 경영권 분쟁은 결국 조카가 숙부의 세력을 완전히 퇴치해 버린 것 아니냐는 평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그룹을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이라면 나는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사업엔 실패했지만 이원천가(家)의 혼맥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형님인 이원만 창업주가 제3공화국의 실력자 김종필 전 총재와 인연을 만들었다면, 이 전 사장은 또다른 실세였던 정일권 전 총리와 혈연관계를 맺었다. 이원천가(家)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 집안과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딸 희경씨가 이 전 사장의 아들과 결혼했다. 또 이원천가(家)와 영풍그룹은 한 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장남인 세훈씨가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의 딸 현주씨와 인연을 맺었다. 영풍그룹은 또 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김세련씨 가문과도 연이 이어진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 이끄는 전문경영인들 ‘코오롱호’를 이끄는 대표 최고경영자(CEO)는 누가 있을까. 한광희(56) ㈜코오롱 대표는 코오롱그룹의 간판 CEO다. 그는 요즘 한계사업 정리와 차세대 먹을거리 준비에 분주하다.1976년 코오롱에 입사한 이후 기획관리 등 주요 사업부를 두루 거쳤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한 대표는 책상에 앉아 숫자놀이를 하는 것보다 현장 영업을 더 즐기는 실물형 CEO에 속한다. 민경조(62) 코오롱건설 대표는 23년간 건설에서만 근무한 전문경영인으로 위기관리가 뛰어나다는 평이다. 사내에선 따뜻한 집안의 가장 같은 CEO로 불린다. 수시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막내 직원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상하간 의사소통을 중시한다.“똑똑… 민경조입니다, 야근 힘들죠, 문제되는 게 뭔가요, 오늘 팀원들과 저녁 같이 합시다.”로 유명해 먼저 다가서는 CEO로 통한다. 논어를 1000번 이상 읽을 정도로 고전에 관심이 많다. 제환석(59) FnC코오롱 대표는 현장주의자다.2003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800개에 이르는 매장을 서울에서 제주까지 하나하나 찾았다. 지금도 주말을 이용해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 제 대표는 또 CEO 명함 외에 ‘열사모’의 방장 직책을 갖고 있다. 열사모는 제 대표가 만든 모임으로 오프라인의 단체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사원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가상의 모임이다.“스스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원 모두가 열사모의 열사”라고 말하는 제 대표는 열사모 방장의 이름으로 직원들과 곧잘 의견을 교환한다. 배영호(61) 코오롱유화 대표는 엔지니어로서는 드물게 미국 뉴욕지사 근무를 했다.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 해외 영업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죽기살기로 부딪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배 대표는 당시 직원 가운데 한국으로 되돌아온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첫 직장에 대한 그의 신의와 열정은 특유의 사업감각과 합쳐져 코오롱유화를 종합화학 회사로 도약시켰다. 김종근(55) 코오롱글로텍 대표는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직원 이름을 기억하고, 애로와 고충을 들어주며, 중요한 정보는 경영에 곧바로 반영한다. 또 직원들에게 책상에 앉아있지 말고 현장을 돌면서 문제와 해결방안을 찾으라고 한다.“사장님은 오늘도 지방사업장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표와 직원들간의 간담회 때문이죠. 간담회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61개 사업장인데 올해만 해도 벌써 세번째 라운딩입니다. 연초에 전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쁜 일정에도 사업장을 순회하고 계십니다.”한 직원의 이러한 설명에서 올 상반기에 비상장 5개사를 합병, 덩치가 커진 코오롱글로텍을 외형만큼이나 건실하게 키우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학부·학과 올 가이드](8)자연과학

    [학부·학과 올 가이드](8)자연과학

    미래과학 기술인력의 산실이 자연과학계열 관련 학과들이다. 국가에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기초 자연과학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들어 황우석 교수 신드롬이 불면서 일반인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 산업 종사자들도 이러한 자연과학계열 전공자들이 주축이다. 자연과학계열 전공 특성 등을 정리한다. 자연과학계열은 산업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학문을 배우는 이공계열과 달리 순수 기초과학을 배우는 곳이다. 우주와 물질의 기원부터 생명현상까지 다양한 물질세계의 원리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한다. 물리, 화학, 수학, 동·식물학, 자원학, 환경학, 통계학, 천문기상학, 지구지리학과 등이 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려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지적 호기심과 창의력이 왕성하면 좋다. 자연과학을 택하기 전에 자신에게 어떠한 적성이 있는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리학과 서울대 물리학과의 학과 소개에 따르면 물리학은 우주의 궁극적인 기본원리를 찾고, 그를 바탕으로 자연현상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추구하며 새로운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연결시키는 학문이다. 물리학은 미세한 소립자의 세계에서 무한한 우주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연현상의 본질을 다루는 한편 반도체를 포함한 응집물질, 레이저, 입자 가속장치 등과 같이 첨단과학기술과 밀접한 분야들도 포함한다. ●생물학과 생명의 탄생, 발달, 유전, 진화 등 생명체를 연구하는 분야다. 모든 응용분야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첨단 과학의 기초가 되는 순수학문이다. 최근 들어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 문제나 이에 따른 생태학적 연구, 유전자 공학에 따른 생명체의 연구 등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분야다. 일반생물학, 일반화학, 동물분류학, 식물분류학, 동물해부학, 식물형태학, 일반생리학, 세포학, 조직학, 유전학 등을 배운다. 생물학 전공 졸업생들은 대학원에 진학, 식물·동물·미생물·유전·분자생물학 등 관련 전공분야를 연구, 교수로 진출하거나 생명과학과 관련된 식품, 제약회사 연구원 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원자력 연구소, 환경문제 연구소, 국립보건연구원 등의 국·공립 기관의 연구원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 ●화학과 화학 분야는 물질의 성질, 조성 및 구조 그리고 그들 사이의 상호변환인 화학 반응 등을 연구하고 나아가 현대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물질의 합성이나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는 학문이다. 첨단산업의 바탕이 되는 기초과학의 중요한 분야다. 화학을 전공하려면 화합물의 조성이나 구조, 화학반응의 과정들을 눈으로 관찰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밝혀내기 위한 실험과 관찰, 많은 생각과 창의력이 요구된다. ●미생물 미생물(육안의 가시한계를 넘어선 0.1㎜이하의 크기인 미세한 동물)학은 단세포로 되어 있는 세균, 바이러스 등 미생물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단세포로 되어 있는 미생물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현상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기초학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미생물을 이용하여 유용한 물질을 합성하거나 공장에서 폐기되는 물질을 분해하는 환경보존 분야까지 다룬다. 졸업생들은 각종 연구소는 물론, 제약회사, 주류 생산업체, 우유가공업체, 효소 생산업체, 식품 첨가물 제조업체, 화장품 제조업체 등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 ●수학과 수학은 수와 함수, 공간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엄격한 논리체계 및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모든 과학의 언어로서 자연과학, 공학은 물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응용된다. 불과 50년 전에는 응용될 수 없는 것 같아 보이던 순수수학 이론들도 오늘날에는 자동화된 구조의 제어, 위성으로부터의 데이터 전달, 재무기록의 보호, 계산을 위한 효율적인 알고리즘 등과 같은 응용 분야에 꼭 필요하게 됐다.(경희대 수학과 홈페이지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자연계 유리 선배들의 전공선택 노하우도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고려해볼 만한 방법이다. 자연과학 계열 전공의 최근 두드러지는 특징은 생물·화학과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이다. 이들 학과전공이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진학시험인 미트(MEET)나 디트(DEET)시험 준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경영학도가 의·치의학 전문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이들 과목을 따로 학원에서 배우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이들 학과진학이 상대적으로 유리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는 자연과학 계열 관련 학과를 학부 단위로 뽑는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돼 다른 전공들도 덩달아 강세를 보이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학부 단위로 신입생을 뽑는 서울 지역 대부분의 주요 대학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울시립대와 중앙대 등 학과별로 신입생을 뽑는 대학들의 경우 지난해 생물학과와 화학과의 성적이 다른 자연과학 계열 전공에 비해 수능점수가 10점 이상 높았다. 또 다른 특징은 교사가 되기 위해 지원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범대에 비해 당장 입학하기 쉬운데다 교직과목을 이수한 뒤 교원임용고사를 치러 교사로 진출하는 코스를 노리는 것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자연과학계열 합격 전략 자연과학 계열 전공도 다른 계열처럼 정시모집에서는 수능 성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요한 것은 대학별로 반영 영역과 비율이 큰 차이가 나 꼼꼼히 살펴서 미리 지원 대학을 정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내신과 수능을 반영한다. 논술을 치르는 대학은 거의 없으며, 서울대만 심층면접을 실시한다. 결국 수능이 당락의 변수가 된다. 수능 성적은 대학별로 반영 영역이 다르다.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의 경우 언어와 수리, 외국어, 과학탐구 등 네 영역을 반영한다. 중위권 이하 대학들은 언어를 제외한 세 영역을 반영하는 추세다. 수리에서는 상위권은 ‘가’형을, 중위권 이하는 ‘나’형을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학탐구 영역 반영 방법도 대학별로 다르므로 주의해야 한다. 서울대는 과탐 8과목 가운데 Ⅰ과목 세 개를 마음대로 선택하되, 이미 선택한 Ⅰ과목과 연관된 Ⅱ과목 하나를 반드시 선택하도록 하는 ‘3+1방식’으로 반영한다. 연세대와 고려대, 한양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 서울 지역 중상위권 대학의 경우 대부분 과탐 8과목 가운데 마음대로 3과목을 고르도록 하고 있다. 중위권 이하 대학들은 주로 두 과목만 반영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대학별로 수능 영역별 반영 비율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마다 반영 비율과 영역이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성균관대의 경우 언어와 수리, 외국어는 각 30%씩 반영하지만 과학탐구는 10%만 반영한다. 과탐은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반면 숙명여대는 언어와 외국어는 각 10%씩만 반영하지만 수리와 과탐은 각 40%씩 반영, 수리와 과탐 성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때문에 남은 기간 수능에 대비할 때도 어느 대학에 지원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해당 대학에서 중요시하는 영역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집중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진로와 적성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다. 어느 정도 향후 진로의 윤곽이나 목표는 정해놓고 지원하는 것이 나중에 취업이나 진학에 도움이 된다.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을 염두에 두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당장 전문대학원 진학에 유리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겠지만 대학 졸업 이후 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교직과목을 이수해 교직으로 진출하려고 생각한 수험생들도 신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과 성적이 상위 10% 안에 들어야 교직과목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교직과목을 들은 뒤에는 교원임용고사에 응시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도움말:종로학원 평가연구실 남윤곤 팀장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사회진출 선배들의 조언 “스스로 좋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면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이 자연과학 계열을 지망하는 수험생들에게 주는 공통적인 조언이다. 현재 기업체와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LG필립스 엔지니어 이동우(27)씨 구미 공장에서 LCD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전체적인 공정을 관리하고 있다. 성균관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는데 공부를 하면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공부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웬만큼 공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이 많다. 기초과목이 많다 보니 대학 다닐 때는 ‘이런 것 배워서 어디에 쓰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실제 기업에 입사해보니 큰 도움이 되더라. 기초학문의 장점은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응용력이 뛰어나고 기술 이해도 빠르다는 점이다. 나는 학사만 마쳤지만 기업체의 경우 석사까지는 대우가 거의 비슷하다. 기업체에서 전문가로서 대우를 받으려면 박사학위를 마쳐야 한다. 물리학과의 경우 졸업 후 진로는 반도체나 LCD 등 첨단기술 분야가 많다. 요즘에는 계속 공부를 하는 경우보다는 빨리 취업하려는 경향이 많은 편이다. 특히 화학이나 생물학 전공자의 경우 기업의 수요가 많다. 자연과학 계열 전공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초학문의 경우 첨단산업에 발을 들여놓기 쉬워 일하면서 보람도 적지 않게 느낀다. 물리나 화학·생물 등 기초과학에 관심이 많고 재미를 느낀다면 도전을 권하고 싶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위성관제기술연구팀 이병선(42) 책임연구원 연세대 천문우주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쳤다. 우리나라 다목적위성인 아리랑위성 1호의 관제 기술을 국산화했고, 오는 2008년 말 쏘아올리는 통신해양기상위성 관제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자기가 좋아하면 하라.’는 것이다. 다른 분야는 억지로 하면 돈이라도 벌 수 있지만 이 분야는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려면 최소한 석사 이상은 마쳐야 가능하다. 석사 2년에 박사는 3∼6년이 걸린다. 특히 과학 분야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계속 새로운 이론과 기술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연구가 불가능하다. 늙어서도 공부할 수 있을 만큼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석사 과정 때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석사 10명 가운데 3∼4명은 유학을 선택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직장까지 잡아 경력까지 쌓은 뒤 국내에 들어오거나, 아예 현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리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민족공동체 새 패러다임 세미나

    사단법인 남북문화교류협회(회장 이배영)는 3일 오후 연세대 동문회관 대회의장에서 ‘민족공동체 형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제하의 제9차 통일문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서울신문이 후원한 이번 세미나는 육덕희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의 사회로 김석향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교수의 ‘남북한 언어의 동질성과 이질성 논의’, 대전대 박광기 교수의 ‘차세대를 위한 통일의식 제고방안’ 등의 주제발표와 함께 진행됐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