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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버 마비 ‘대입 大亂’

    서버 마비 ‘대입 大亂’

    2006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마감일인 28일 원서접수 대행 사이트에 수험생이 몰리면서 서버가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날 원서접수를 마감하는 대학들의 마감 시한을 하루 연장해 29일까지 대학별로 사정에 따라 원서접수 마감 시간을 대학 홈페이지 등에 공지하고, 필요하면 창구접수도 받도록 각 대학에 긴급 지시했다. 서버 마비로 원서접수 기간이 연장된 것은 처음이다. 원서접수를 이날 마감하려던 대학들은 원서접수 시한을 29일까지로 하루 더 연장했다.29일 낮 12시까지 마감하는 대학은 건국대 고려대 덕성여대 명지대 서강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다.29일 오후 2시까지는 홍익대며 오후 3시까지 연장한 대학은 서울여대 숙명여대다. 한편 사태가 확산되자 교육부에는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문의 및 항의전화가 폭주해 업무가 마비됐다. 김재천 이효연기자 patrick@seoul.co.kr
  • [생각나눔] ‘수시 1학기 폐지’ 그들만의 리그?

    “내가 강력히 폐지하자고 주장했는데 정작 자기네들만 했어요. 기분 나쁘죠. 좋은 대학들이라고 그러는 모양이죠….” 27일 기자와 통화를 한 숭실대 이정진 교무처장은 다소 흥분해 있었다. 전날 고려대 등 7개 사립대학들이 수시 1학기 모집 폐지를 담은 2008학년도 전형안을 발표하는 자리에 숭실대는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숭실대는 애초 수시 1학기 모집폐지를 제안한 대학의 하나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 사무총장도 “대학이 200여개나 되는데 자기들이 전체 대학인양 행동해 격앙된 대학들이 많다.”고 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본 교육부는 이날 오후 “대입전형은 대학이 특성에 따라 개별적으로 발표하게 돼 있는데도 7개 대학이 공동 발표함으로써 상당수 대학이 의견을 같이하는 것으로 오해가 일어나 매우 유감”이라는 보도자료까지 냈다.●대학가 ‘7공자 시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 이들 7개 대학의 공동 기자회견을 두고 대학가에선 “수험생들에게 일류 대학은 7개 대학이라는 ‘7공자’ 시대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얘기가 돌고 있다. 실제로 이들 7개 대학은 전국 공동입시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끈끈한 단결력을 보이고 있다. 서울·경기지역 45개 대학이 회원인 ‘서울지역 대학입학관리처장 협의회’회장을 맡고 있는 현선해 성균관대 입학처장은 이에 대해 “7개 대학 모임을 세력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7개 대학에 다른 대학들이 들어오려고 할 경우, 받아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7개 대학간에 협의를 해야겠으나 현 상태가 유지될 것 같다.”고 말했다.●“충분한 사전검토와 의견수렴 됐어야” 이들 7개 대학을 바라보는 나머지 대학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다른 대학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은 이해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입시가 한국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학생들의 서열화 의식을 은연중 조장한다는 비판이다.‘그들만의 리그’라고도 비난한다.경희대 관계자는 “수시폐지 문제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 문제로 충분한 사전검토 및 의견수렴이 됐어야 했다.”고 비판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용감한 고교생 ‘제야의 종’ 친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어린이를 목숨 걸고 구출한 고교생이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의 역할을 맡아 화제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서울디지텍고 2년 김대현(17)군은 오는 31일 밤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서 유명 인사들과 나란히 서게 된다. 김군은 지난달 3일 오후 8시쯤 6호선 안암역에서 목숨을 건 위험을 무릎쓰고 5세쯤 된 아이를 구해냈다. 봉화산 방면으로 가는 전동차가 들어온다는 구내방송이 울려퍼지는 순간이었다. 길어야 20∼30초 만에 열차가 도착하는 때 철로 아래로 몸을 내던진 일이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김군이 선행하는 장면은 한때 인터넷사이트 등을 통해 돌아 ‘온라인 스타’로 떠올랐다. 초등학생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에 뽑히기도 했다. 서울시로부터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김군은 ‘제야의 종’ 타종식에서 이명박 시장, 황병기(69) 이화여대 교수, 배우 윤석화(49)씨와 나란히 참가해 사회를 빛낸 인물로 새해 첫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김군은 “열차진입 방송이 들리는데 빨리 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스쳤을 뿐”이라면서 “부모님도 처음에는 그런 위험한 상황에 무조건 뛰어들면 어쩌냐고 걱정하셨다가 곧 칭찬해 주셨다.”며 활짝 웃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대학별고사 비중 10~20%로 높여

    고려대 등 7개 대학이 26일 발표한 2008학년도 대입전형 기본계획은 수시 1학기 모집폐지와 대학별 고사 비중확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음은 대학별 주요 내용이다.●고려대 수시모집의 경우 학생부 30%, 대학별고사 70%를 반영하며 수능성적은 최저학력 기준을 적용한다. 정시모집 반영비율(학생부 40%·수능 50%·대학별고사 10%)과 모집 시기별 선발 비율(수시 40%·정시 60%)은 지금과 같다.●서강대 수시 1학기 모집 인원을 2학기에 뽑기 위해 학생부와 면접으로만 선발하는 ‘학교생활 우수자 특별전형’을 신설한다. 수시모집 선발비율은 현재 56%에서 2008학년도에 66%로 10% 늘어난다. 정시모집의 반영비율은 학생부 20%·수능 60%·대학별고사 20%로 바뀐다.●성균관대 수시 1학기 특기자 전형을 수시2-1에서 실시하고 동일계 특별전형을 확대하는 한편 수시2-2에서 소년소녀가장 등을 위한 저소득층 배려전형을 만든다. 정시모집의 반영비율은 인문계, 자연계 모두 학생부 40%·수능 50%·논술 10%로 바꾼다.●연세대 수시 1학기 전형을 폐지하면서 수시 2학기에 ‘교과성적 우수자 전형’을 신설한다. 모집시기별 선발비율(수시 50%·정시 50%)은 현행대로 유지한다. 정시모집의 반영비율은 인문계·자연계 모두 학생부 40%·수능 50%·대학별고사 10%로 전환된다. 학생부 성적은 전 교과목을 반영한다.●이화여대 수시모집 선발비율을 50%에서 60%로 늘린다. 정시모집 반영비율은 인문계·자연계 모두 학생부 40%·수능 40%·대학별고사 20%로 바뀐다.●중앙대 수시 2학기 모집 비율을 35%에서 50% 정도로 늘리고 서류와 면접을 이용한 전형방식을 적극 도입, 지원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증빙하고 인재를 찾아내는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정시모집의 반영비율은 학생부 40%·수능 40%·대학별 고사(학업적성 논술고사 형태) 20%로 바뀐다.●한양대 수시 1학기 모집인원을 수시 2학기의 ‘21세기 한양인’전형으로 통합하고 수능 최저기준을 강화한다. 수시모집 인원을 전체 학생의 40%에서 50%로 확대하고 정시모집의 반영비율은 학생부 40%·수능 50%·대학별고사 10%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1학기 수시모집 2007년 폐지

    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한양대(가나다 순) 등 7개 사립대학이 2008학년도부터 수시 1학기 모집을 폐지한다. 고교 교육정상화를 위해서다. 현재 고교 1년생부터 해당된다. 그동안 수시 1학기 모집은 수험생들에게 대학입학 기회를 한 차례 더 준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2학기 전에 실시되는 관계로 합격생들에 대한 교육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나머지 수험생들의 학습 분위기를 해친다는 비판도 많았다. 이들 대학은 26일 오전 이화여대 LG컨벤션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08학년도 입학전형안을 발표했다. 7개 대학 입학처장은 “수시 1학기 전형이 선발방식의 다양화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각 고교가 1년 내내 진학지도에 매달리고 학습 분위기가 흐려지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아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시 1학기 전형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들 대학은 2008학년도 입시부터 3학년 1학기 수업과 성적산출이 모두 끝나는 8월 말부터 수시모집을 위한 원서접수에 나선다. 이번 수시 1차 폐지는 건국대 등 수시 1학기를 하고 있는 다른 대학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이와 관련,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는 교육인적자원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전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시도교육감협의회 등과 대입 수시모집 1학기 개선 전담팀(TF)을 구성,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한편 고려대를 제외한 6개 대학은 정시모집에서 학생부 성적과 수능 반영비율을 줄이고 논술·면접 등 대학별고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고교별 과다경쟁으로 학생부를 신뢰할 수 없는 데다 2008학년도부터 수능성적이 등급화되면 변별력 저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7개 대학은 앞으로 학생부 성적을 부풀리는 고교는 올바르게 기재할 것을 권고하고 이러한 부풀리기 사례를 교환하는 등 학생부 내용이 충실해지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또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 지원을 늘리고 특수목적고와 자립형 사립고, 대안고등학교 졸업생들의 권리도 충분히 인정하는 전형방안을 찾기로 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최상위권 학생 정시모집 선호도

    2006학년도 정시모집 가군에서 최상위권 인문계 학생들은 연세대를, 자연계는 고려대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일교육컨설팅은 25일 수능성적 발표 뒤 대학·학과 지원전략 유료서비스를 이용한 수험생 2만 6172명의 지원 성향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표준점수 800점 만점에 540점대(인문 언·외·탐 398점대, 자연 수·외·탐 416점대) 이상인 최상위권 인문계 학생들은 정시모집 가군에서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순의 선호를 보였다. 자연계 최상위권은 고려대-연세대-가톨릭대 의대를 가장 선호했다. 나군에서는 인문계와 자연계 모두 서울대가 1위였고, 인문계는 서강대와 서울교대, 자연계는 중앙대 의대와 단국대(천안) 치의예과가 뒤를 이었다. 다군에서는 인문계는 한양대-한국외대-상지대 한의예과, 자연계는 경희대 한의예과-인하대 의예과-경원대 한의예과 순이었다.530점대 인문계는 가군 고려대, 나군 서강대, 다군 한양대를, 자연계는 가군 성균관대, 나군 서울대, 다군 원광대 한의예과·의예과가 가장 인기였다. 김영일 원장은 “군마다 비슷한 점수대의 학생들이 몰리는 학교가 있는데, 이들 선호대학을 피해 지원하는 것도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천리그룹-이만득·유상덕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천리그룹-이만득·유상덕 회장家

    사업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동업’ 얘기를 꺼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사업 과정에서 동업자와 합의로 꾸려가기란 득보다 실이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업가들은 형제나 친척과도 동업을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동업은 제대로 하면 혼자 때보다 훨씬 많은 경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중견 그룹인 삼천리는 동업 관계로 사세를 확장시킨 대표적 기업이다. 창업 선대(先代)부터 반세기 이상 ‘동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혈육보다 진한 동업정신 삼천리의 그룹 역사는 1955년 10월1일 고 유성연ㆍ이장균 명예회장이 공동으로 ‘삼천리연탄기업사’를 설립하면서 시작했다. 지금은 도시가스 및 해외자원 개발에 전념하면서 국내 도시가스 1위 업체로 부상한 것은 물론 세계 7위 규모의 유연탄광을 경영하는 세계 굴지의 자원개발회사를 보유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형제보다 가까웠던 두 선대 회장의 관계를 유상덕(46) ㈜삼탄 회장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이장균 회장님 댁과 우리 집안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웃에서 살았고 서로 큰 집, 작은 집이라 부르며 지내 와 서로 남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우리 집안은 유(劉)가인데 왜 작은아버님의 성은 이(李)가인지 궁금했던 적도 있었다.” ●세 번에 걸친 운명적인 만남 두 창업주는 창업을 하기 전까지 모두 세번의 의미있는 만남을 가졌다. 첫번째는 해방 직후 함흥에서 소련군을 상대로 식료품 장사를 하다가 8인계 멤버로 만났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후 피란 시절에는 각자 경남 거제와 경북 포항에서 생활하다가 조우했다. 세 번째는 1955년 삼천리 창업을 통한 만남이었다. 창업 당시엔 두 가정이 단칸방에서 이불 칸막이만 쳐놓고 동고동락하며 사업을 일궜다. 연탄가루를 가져와 기계틀에 넣고 찍어 말린 뒤 배달도 직접했다. 네 사람이 연탄 수레를 ‘끌고 밀면서’ 삼천리의 그룹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유성연 명예회장은 1917년 함남 삼평면 부흥리에서 아버지 유봉주씨와 어머니 김씨의 2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곤궁한 삶을 살아야 했다. 유 명예회장은 어린 시절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공부하고 11세가 되던 해에 4년제 삼평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남보다 늦은 학업이었지만 유 명예회장은 보통학교 4년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함흥 시내에 있던 함흥제일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평양사범학교에 관비(官費)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평양사범 입학시험에는 함경도에서 200여명이 응시해 9명만 합격했을 만큼 어려운 관문이었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유 명예회장은 함흥 부근에 있는 삼호보통학교에서 첫 교편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1년간의 교사생활을 거친 뒤 함흥시내의 영정보통학교로 전근했다. 영정보통학교에서의 교직생활이 3년 지났을 무렵인 1943년 유 명예회장은 일본 유학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태평양전쟁이 2년째로 접어들면서 생활이 힘들어져 유학의 꿈을 포기하고 함남 피복조합 사무원으로 취직했다. 이후에도 징용 위협이 다가오자 징용 대상에서 제외됐던 교사직을 다시 선택했다. 1944년 함흥 외곽에 있는 주북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해방 이후 유 명예회장은 경제활동에 투신해 나라 경제를 위해 큰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사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는 함흥 선덕비행장에 주둔한 소련 공군을 상대로 미군 군수물자, 초콜릿, 통조림, 담배, 술 등 식료품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유 명예회장은 한국전쟁 발발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우여곡절끝에 남한으로 가는 LST함정에 겨우 올라 타 피란민 대열에 합류했다. 거제도 난민수용소에 잠시 수용됐지만 수용소를 빠져 나와 미군을 상대로 토산 기념품을 팔기 시작했다. 이만득(49) 삼천리그룹 회장의 부친인 이장균 명예회장은 1922년 6월27일 함남 함주군 상기천면에서 아버지 이황주씨와 어머니 윤윤옥씨 슬하의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때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 전답을 모두 차압당했다. 이후 몇해동안 움집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이 명예회장은 7∼8세 무렵부터 ‘소년 지게꾼’이 돼 공사장에서 자갈을 짊어져 날라야 했다. 힘든 와중에도 그는 낮에는 지게꾼으로, 밤이 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학에 나가 공부를 했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거둬 주북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할 수 있었다. 이후 4년간의 학창생활은 이 명예회장이 경험한 유일한 정규 학업이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이 명예회장은 유담보통학교에서 촉탁 직원으로 잠시 일하다 21세에 흥남질소비료공장의 사원을 거쳐 토목건설 현장의 서기로 옮겼다. 이후 함남토목회사의 하청업자로 변신해 사업가로서 첫 길을 걷게 된다. 어느 정도의 사업 성공도 이룬다. 소련군이 함흥에 진군하자 시내에서 ‘민흥상회’라는 가게를 열어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그러다가 소련군이 좋아하는 통조림 제품을 구하려 수소문하던 중에 유 명예회장과의 ‘운명의 만남’을 갖게 됐다. 곧바로 의형제 이상의 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8인계를 조직해 더욱 가까워졌다. 유 명예회장보다 보름 앞서 흥남에서 국군이 철수하는 배를 타고 포항으로 내려온 이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원산 출신인 김성숙(73) 여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 회장 부부는 포항 죽도시장 중심부에 ‘흥성상점’을 열어 시멘트, 밀가루, 설탕, 비료, 무연탄을 취급해 큰 돈을 벌었다. 특히 이 명예회장은 서민들의 연료인 신탄(숯)을 제조해 팔면서 장차 무연탄이 가정연료로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고 판단해 1953년부터 연탄사업에 손을 댔다. ●연탄사업으로 시작된 동업 이 명예회장은 1955년 서울에 있는 단성사로부터 원탄을 대량 매입하겠다는 제의를 받고 직접 강원도에 가서 560t의 원탄을 구매, 서울로 수송했다. 그러나 장기간의 운반 과정에서 원탄 가격이 하락하면서 단성사가 매입을 거부하자 탄을 저탄장에 쌓아 놓아야만 했다. 이 명예회장은 이때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유 명예회장을 만나 같이 연탄사업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이 날은 삼천리그룹의 창립일인 1955년 10월1일로 유 명예회장이 박옥순(78)여사와 결혼한 날이기도 하다. 이후 아예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 두 사람은 중구 신당동에 터를 잡아 호적에 본적지로 등록했다. 유 회장이 신당동 248-1, 이 회장은 건너편의 신당동 304-211에 안착했다. 이때 5세 위인 유 명예회장은 연탄 제조와 판매를 담당하는 사장을 맡고, 이 명예회장은 원탄 구매와 자금을 담당하는 부사장 형태로 역할 분담을 했다. 그러나 이는 명목상 구분일 뿐 두 사람은 이후 어떤 일을 하든지 상의하고 양보하면서 삼천리의 역사를 일구기 시작했다. ●2세에게 동업 각서 물려줘 이들은 각각 회장실 금고에 동업각서를 보관해 오다 두 집안의 2세도 간직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두 창업회장은 5개 조항의 동업서약서를 쓴 뒤 가족보다 끈끈한 관계를 50년째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동업서약서에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다른 사람이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투자 비율이 다르더라도 수익은 절반씩 나눈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등 5개 조항이 담겨 있다. 재계 주위에서는 두 집안의 경영 스타일이 다른 점도 동업에 큰 도움이 됐다. 유 선대 회장 부자는 과묵하고 꼼꼼하고 심사숙고하는 성향인데 비해 이 선대 회장 부자는 직설적이고 외향적이며 공격적이어서 서로 보완이 됐다는 것이다.25년 전 코크스(용광로 연료) 사업에 진출할 때 이 명예회장과 유 명예회장은 공개 석상에서 한 시간 넘게 싸우는 등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이 명예회장이 유 명예회장을 17번 찾아 설득한 끝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룹의 명운을 가름할 중요한 고비마다 두 창업자는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일단 합의를 이루면 상대방의 뜻에 따랐다. ●선대와 버금가는 2세들의 동업경영 두 집안은 이렇듯 탄탄한 동업경영을 기반으로 두 창업주의 아들인 이만득, 유상덕 공동회장에 이르기까지 2대에 걸쳐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2세 회장은 선대 회장들과 같이 서울 방배동 한 동네에 살면서 3세 자녀들이 2세 회장에게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1993년 이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인 이만득 회장은 유 명예회장의 외아들 유상덕 회장과 함께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 회장이 그룹회장으로 취임하며 경영권을 물려받았지만 한번도 경영권 분쟁이 없었다. 유 회장은 삼천리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이만득 회장과 동일하게 갖고 있지만 삼천리 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7개 계열사 지분까지 50대50의 똑같은 비율로 2대에 걸쳐 공동경영을 하며 연간 2조 5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회장이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천리(도시가스회사)와 삼천리ES(천연가스 냉난방기 판매), 삼천리ENG(도시가스 배관설비)를 맡고 있다. 유 회장은 해외에너지 자원 개발을 하는 ㈜삼탄(유연탄)과 삼천리제약을 책임지고 있다. ●월남민 출신 창업주들, 소박한 혼맥 가꿔 창업주들은 대부분의 친인척을 북한에 두고 내려와 화려한 집안을 꾸리지는 못했다. 이 명예회장은 2남2녀를 두었지만 자식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집안이나 배경보다는 며느리와 사위들의 개인 능력을 최우선으로 봤다. 며느리는 단출한 집안을 꾸릴 수 있는 ‘성품’을 위주로 봤고, 사위들은 ‘능력’을 중심으로 간택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들에 비해 요란한 혼맥을 이루지 않았다. 이 명예회장의 큰아들인 이천득씨는 삼천리 부사장으로 있던 1987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평범한 집안의 유계정(55)씨와 사이에 은백(32)·은아(30)·은미(29)씨 등 2남1녀를 두었다. 이만득 회장은 이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가발 수출을 하는 삼천리의 계열사인 미성상사에 입사, 경영에 참여했다. 형이 작고하자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이 회장은 1977년 전혜연(50)씨를 배필로 맞아 은희(27)·은남(26)·은선(23) 등 3녀를 낳았다. 전씨의 부친은 예비역 대령 출신으로 같은 이북 출신 실향민이다. 이 회장과 부인 전씨의 결혼 스토리는 부친 이 명예회장의 성격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이 회장은 친구의 소개로 부인을 만나다가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이 명예회장은 아들이 군 복무중에도 열애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두 사람을 불렀다. 이때는 5월5일 부인 전씨의 생일이어서 휴가나온 이 회장이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을 집으로 급히 호출한 것이다. 영문을 모르고 집으로 달려간 두 사람은 이 명예회장이 전씨를 꼼꼼히 뜯어 보더니 “됐다. 결혼해라. 결혼식은 10일 후인 5월15일 오후 5시로 잡자.”고 말해 너무 놀랐다. 두 사람은 귀를 의심했지만 “며느리가 착실하고 몸 건강하기만 하면 됐지, 뭘 바라겠느냐. 혼수는 일절 없이 식을 올리자.”며 두 사람을 독려했다. 혈혈단신 월남한 이 명예회장은 아들을 빨리 결혼시키고 싶은 생각에 혼례를 서둘렀다고 이 회장은 회고한다. 이 회장의 큰 딸 은희씨는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현재 플로리스트(화훼장식가)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딸 은남씨는 미국 UC어바인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셋째딸 은선씨는 UC버클리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장녀 이란(51)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후 서울대 자연과학대 통계학과 교수인 조신섭(53)씨와 결혼했다. 조 교수는 서울대 응용 분석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통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86년부터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2녀인 이단(47)씨는 진주화(52)씨와 혼인했다. 진씨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페퍼딘대에서 MBA를 취득했고,2002년 ㈜삼천리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그리니치 투자자문㈜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유 명예회장은 박옥순 여사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유 명예회장도 사위들을 고르는 기준으로 이 명예회장과 같이 집안 배경보다는 능력을 중요시했다. 외아들인 유상덕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9년 삼척탄좌개발㈜ 상무이사로 재직하다 1993년에 ㈜삼탄회장에 올랐다. 고등학생인 용훈(18)·용욱(17) 등 두 아들을 두었다. 장녀인 명옥(55)씨는 이태성(59)씨와 결혼했다. 이씨는 미국의 스티븐스대 기계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삼천리USA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명옥씨는 이 사장과 사이에 준영(30)·찬영(28) 등 두 아들이 있다. 차녀인 혜숙(49)씨는 이민엽(53)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혜숙씨는 미성상사를 맡고 있는 남편 이씨와의 슬하에 규빈(25)·규환(21)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jrlee@seoul.co.kr■ 이만득 회장의 ‘골프경영론’ 이만득 삼천리그룹 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매일 오후 헬스클럽에서 1시간동안 땀을 흘리고 주말이면 골프를 치며 경영 전략을 가다듬는다. 핸디캡 5 수준으로 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두 차례나 우승컵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 회장은 골프에서 기업 경영의 원리를 배울 수 있다며 ‘골프경영론’을 설파하고 있다. 이 회장은 “골프를 치면서 기업 경영에 필요한 많은 영감을 받는다.”면서 “골프와 경영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또 골프의 고수는 14개의 클럽을 고루 잘 쓸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기업가들도 다양한 경영 요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골프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그는 “경영자는 인사, 자금, 기획, 홍보 등 다양한 요소를 잘 활용해야 기본적 조건에 맞는 조화로운 경영을 할 수 있고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골프의 코스 전략과 경영의 코디네이션이 ‘닮은 꼴’이라는 점도 지적한다.“골프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코스와, 그렇지 못한 코스의 전략이 다르듯이 경영에서도 각각의 사업 분야마다 특징을 고려해 사업부문을 코디네이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골프 경영론의 핵심이다. 골프 고수들은 아무리 쉬운 코스라도 티샷을 하기전에 머릿속에 자신만의 전략을 수립하고, 특히 어려운 코스는 더 복잡한 전략을 세우게 된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이번 코스에서는 파(PAR·기준 타수)가 힘들겠다고 판단되면 보기(기준 타수보다 1타 더 치는 것)를 위한 전략을 세우게 된다.”면서 “그리고 다음 코스에서는 버디를 잡아야겠다는 전체적인 전략을 짜게 된다.”고 말했다. 경영도 사업분야마다 이익이 많이 날 때와 적게 날 때가 있지만 모든 부분을 고려해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작은 곳에 집착하지 않고 사업 전체를 크게 바라보고 전략 수립과 투자를 감행해야 성공적인 경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끝으로 “골프공은 같은 자리에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 매번 새로운 위치에서 플레이를 해야 한다.”면서 “기업도 마찬가지로 매년 같은 환경에서 경영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한다.”고 말했다. 경영 환영은 수시로 변하는 만큼 새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jrlee@seoul.co.kr ■ 전권 받은 전문경영인 ‘삼천리호’ 지휘 고 유성연·이장균 명예회장이 회사 이름을 ‘삼천리´라고 정한 것은 우리나라 제품으로 삼천리반도 전체를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포부에서 비롯됐다. 함경남도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식료품 장사를 해야 했던 창업주들의 ‘한(恨)´이 서려 있는 셈이다. 50년 만에 연탄 회사에서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천리호´에는 베테랑 CEO들이 승선해 있다. 이만득·유상덕 회장은 일선 CEO들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스타일이다. 이영복(61) ㈜삼천리 사장은 엔지니어링 출신의 CEO로 국내 최대 도시가스기업을 이끌고 있다. 도시가스 업계의 산증인으로 안전을 중요시하는 업계 특성상 꼼꼼하게 일을 살피는 경영스타일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 비효율적 경영 개선을 위해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윤리경영 선포식을 이끄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부산고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천리 도시가스사업본부 영업이사를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김경이(59) 삼천리ENG 사장은 재무관리 전문가로 관리형 CEO다. 재무 전문가답게 업무 프로세스를 중히 여기며 원리와 원칙에 따른 업무를 진행한다. 대구상고를 졸업한 이후 줄곧 ㈜삼천리에서 경리부문에서 재직하며 경리담당 이사대우, 부사장을 거쳐 2003년에 사장에 취임했다. 강태환(57) ㈜삼탄 사장은 글로벌 에너지기업을 이끄는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해외자원개발 전문기업으로서 연구·개발(R&D) 투자는 물론 인력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삼천리 기술투자 상무이사를 거쳐 2001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이찬의(51) KIDECO 사장은 인도네시아 파시르 광산을 세계 7대 유연탄광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2002년부터 사장을 맡아 업무별 소사장제를 도입하는 등 철저한 공정 관리와 치밀한 원가관리를 진두지휘해 왔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고,㈜삼천리 기획실 이사를 역임하는 등 ‘기획통´으로 정평이 나있다. 김용수(53) 삼천리열처리 사장은 무결함 경영을 지론으로 삼고 법적 기준에 따른 프로세스를 강조하고 있다.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천리 기계 상무이사, 기술연구소 상무이사를 거쳐 1997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김태성(60) 삼천리제약 사장은 삼성그룹에 입사해 홍콩 샹그릴라호텔 한국 대표를 역임하는 등 ‘외부영입´ 케이스로 삼천리호에 승선했다. 의사 결정과정에서 다양한 정보채널을 활용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고 1994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이민엽(53) 미성상사 사장은 직원들에게 업무를 믿고 맡기는 ‘보스형´ CEO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시카고대에서 MBA를 취득한 뒤 삼척탄좌 상무이사를 거쳐 1993년부터 대표이사에 재직 중이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대학입시도 ‘황우석 쇼크’

    대학입시도 ‘황우석 쇼크’

    ‘황우석 쇼크’가 대학 입시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생명공학 전공 계열에 지원하겠다는 수험생이 크게 줄어든 한편, 황 교수가 소속된 서울대 수의대 수시모집 합격자들은 4명 가운데 1명꼴로 등록을 포기했다. 25일 입시정보업체 ‘입시타임스’에 따르면, 전국 생명공학과군의 가상 지원율이 수능 성적 발표일이자 황 교수가 기자회견을 통해 논문 조작 ‘실수’를 인정한 16일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점수를 입력해 3개 대학을 가상 지원해 볼 수 있는 ‘점수닷컴(jumsu.com)’에서 전국 180여개 생명공학과군 모집단위의 지원자 수는 지난 16일 396명에서 18일 336명으로 크게 떨어졌고,20일에는 226명,22일에는 114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논문 조작 논란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12월 초까지는 자연계열 지원자 가운데 생명공학과군 지원자의 비율이 지난해보다 최고 27%까지 증가했었다. 경쟁이 줄어든 만큼 지원자들의 성적도 낮아졌다. 가상 지원자들의 수능 백분위 평균은 16일 60.5였던 것이 18일 59.89,20일 58.84,22일은 56.9로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입시타임스 박유미 콘텐츠팀장은 “논문 조작으로 국제적 위신이 추락했고, 더 이상 생명공학에의 비전을 보지 못하겠다는 수험생들의 실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23일 마감된 서울대 수시 2학기 등록 결과, 수의대 합격생 12명 가운데 3명이 등록을 포기해 미등록률이 25%나 됐다. 서울대 전체 미등록률 8.3%와 농생대의 8.9%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공대는 11%, 자연과학대 13%, 인문대는 3.7%가 등록을 포기했으며, 의대와 법대는 등록포기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밖에 서울 주요대학 등록률은 연세대 80.4%, 이화여대 84%, 서강대 91.4% 등이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문화마당] 선진국 진입과 문화의 힘/최준식 이화여대 교수

    지금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 공방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기 짝이 없다. 결과가 어떻든 이미 국가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받은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일 때문에 우리 국민들도 많이 의기소침해 있다.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한국은 우울증에 빠졌다는 외신보도도 들려온다.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것 같았던 영웅 같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마구 흔들리는 것을 보니 우리 국민들이 받은 타격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차에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세계 경제보고서를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주장이 있었다. 세계 170개국의 장기 성장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2050년에는 한국이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 잘 사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의 1인당 소득이 8만 달러가 되어 일본이나 독일 등을 모두 제치고 세계 2위의 국가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의 평가는 이른바 ‘성장환경지수’를 토대로 만든 것인데 물가상승률과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의 재정적자 비율, 대외부채, 투자율, 경제의 개방도, 전화와 PC 인터넷 보급률, 고등교육, 예상 수명, 정치적 안정도, 부패수준 등을 고려해 작성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렇게 나라가 힘든데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미래가 이렇게 밝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혹 여당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만든 보고서라면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을 테지만 이건 세계적으로 꽤 명망 있는 은행에서 만든 보고서이니 소가 닭 보듯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곧 ‘문명의 충돌’을 써서 인구에 회자되었던 헌팅턴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그 다음 책으로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책을 편저하면서 서문에서 이런 말을 한다.1960년대 초에 한국과 가나는 국민소득이 같았다. 그러나 90년대 초반이 되면 한국이 가나를 15배 앞질러 버린다. 그는 이 사실을 목도하고 깜짝 놀란 끝에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한국의 문화는 가나와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저 다르다고만 했지만 속으로는 한국의 문화 수준이 가나보다 훨씬 높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우리는 세상에서 보기 힘든 훌륭한 문자를 갖고 있고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으며 세계 최초의 인쇄본(다라니 경문)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게다가 가장 앞선 기술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도자기(청자나 백자)를 만든 나라이다. 청자를 만드는 기술은 지금으로 치면 최첨단 ‘하이테크’라 말할 수 있다. 이런 문화가 있었기에 그 손기술 가지고 반도체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예는 너무 많아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런 높은 문화 덕분에 한국은 한국전쟁 직후 최빈국 처지에서 여기까지 내달려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온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우리 조상들이 남겨주신 훌륭한 문화 덕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저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세계 문명 4대 발상지다운 훌륭한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앞으로도 결코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문화는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선생이 진즉 예언한 한국의 미래는 경청할 만하다. 그는 ‘Korea’란 이름이 세계지도 상에 없는 일제 때 한국은 진급기의 나라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은 어변성룡, 즉 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은 세계 선진국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신을 인도할 도덕문명국이 된다고 했다. 당시 그 암울한 시기에 이런 예언을 했을 때 누가 이를 믿었겠는가? 그런데 한국의 경제 성장을 보면 그의 예언은 벌써 반은 적중한 셈이다. 그러던 차에 골드만삭스 은행의 보고서가 나왔다. 여기저기서 자꾸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2050년까지는 살지 못할 터이니 우리나라의 멋있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
  • [부고]

    ●황환채 前세계일보 사장 황환채 전 세계일보 사장이 19일 오후 1시 일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4세. 강원도 춘천 출신인 황 전 사장은 춘천고-연희대를 나와 1977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장,1988년 우창홍업 사장,1994년 일본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총연합회장 등을 지냈다.1995년부터 2년여 동안은 세계일보 사장으로 일했다. 유족은 아들 진수(박사과정)씨와 사위 이인표(이화여대 교수)씨 등이 있다. 장례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3일 오전 7시. 일산병원.(031)900-0444. ●이성복(건국대 행정학과 교수)씨 별세 18일 건국대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2030-7906 ●유구환(전 경남경찰청장)광수(신천통상 대표)씨 모친상 영창(환경부 상하수도국장)씨 조모상 19일 서산의료원, 발인 21일 오전 (041)668-6197 ●이주섭(부영 재무본부 경리부 상무)씨 모친상 19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590-2576 ●이영환(성원피그먼트 대표)씨 모친상 1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10시 (02)3010-2261 ●안병기(현대의원 원무부장)병철(KB신용정보 특수영업 지점장)씨 모친상 1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6시 (02)3010-2294 ●강춘성(전 강경산업 부사장)씨 별세 윤모(강경산업 대표)씨 부친상 1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9시 (02)3010-2238 ●김명식(JB인터프라이즈 이사)씨 모친상 김상식(부산일보 서울지사 논설위원)씨 빙모상 19일 일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31)902-3899 ●양춘근(성북구청)성근(자영업)동근(우리투자증권 부장)씨 부친상 허준식(자영업)씨 빙부상 17일 을지병원, 발인 21일 오전 9시 (02)972-8099 ●이성수(국세청 상담실)창수(에버화학 이사)씨 모친상 성재연(메트로신문 편집국)씨 시모상 18일 건국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11시 (02)2030-7907 ●박창남(노벨 특허사무소 소장)씨 모친상 정훈(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씨 조모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37 ●오상일(현대엔지니어링 차장)씨 모친상 고현진(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씨 빙모상 19일 서울대병원, 발인 21일 오전 9시 (02)2072-2014 ●권인혁(전 주택은행 상무)중혁(전 대동리스 대표)윤혁(신우산업 〃)우혁(자영업)성혁(미래산업 대표)씨 모친상 19일 대구 모레아장례식장, 발인 21일 오전 8시 (053)813-5961 ●이규은(전 경향신문 상무)씨 별세 19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2)2001-1096 ●최대치(사업)병목(〃)병천(경안농원 대표)송치(대성컨설팅 〃)병무(사업)병대(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씨 모친상 김일기(사업)씨 빙모상 19일 경북 경산 신동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53)812-3912 ●황보백(대구 황보외과 원장)중(창원지검 형사1부장)숙(유니콤 대표)씨 조모상 19일 경북대병원, 발인 21일 오전 9시 (053)420-6141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대한전선과 대한방직, 대한제당은 모두 한뿌리 기업들이다.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설립했던 회사들로 장남인 설원식(83) 전 회장이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의 경영권을 승계해 가장 먼저 계열분리했다.3남인 설원량(작고) 회장은 1972년 인송의 실질적인 ‘경영 후계자’로서 당시 대한그룹의 주력사인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고 설원량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한때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기도 했지만 오일쇼크의 충격과 가전사업 매각 등으로 사세가 크게 줄었다. 또 동생인 설원봉(57) 회장이 88년 대한제당을 갖고 분가하면서 옛 대한그룹은 사실상 대한전선만 남게 됐다. 지금은 고 설원량 회장의 부인인 양귀애(58) 고문이 오너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임종욱(57) 사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고 설 회장의 장남인 윤석(24)씨는 대한전선 경영전략팀 과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이처럼 1950년대 재계 서열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던 대한전선그룹은 오늘날보다 과거가 더 화려한 기업이다. 혼맥도도 이와 비슷하다. 창업주인 설경동 회장가(家)는 지금은 흔적만 남은 옛 재벌가(家)와 적지 않은 인연으로 엮여 있다.4남2녀를 뒀던 인송은 1970∼80년대 욱일승천했던 국제그룹 창업주 양태진 회장가(家)와 대농그룹 박용학 회장가(家)와 사돈지간이다. 관계에서는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과 임송본 전 대한석탄공사 총재가 사돈들이다. ●50년대 재벌가 인송 인송은 1901년 평안북도 철산군 인송리에서 부친 설흥업옹과 모친 조성녀 여사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정동(鄭童)이었지만 서당 스승께서 ‘큰 인물로 대성하라.’는 뜻에서 경동(卿東)으로 지어줬다. 인송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는 부친을 세살 때 여의고, 모친을 따라 함경북도 부령으로 이사해 무산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3년간 허드렛일을 하며 집안을 돌보던 인송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어렵게 오쿠라 고등상업학교에 입학했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중도에 귀국해야 했다. 인송은 이후 부령 군청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1921년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판매사업을 벌였다.1936년에는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청진 앞바다에서 정어리를 잡아 이를 가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1940년대 초에는 어선 70척에 비행기로 고기를 탐지할 정도의 함경도 거부로 성장했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북측에 공산군이 진주하면서 월남한 인송은 무역회사인 대한산업과 부동산 회사인 원동흥업을 세워 남쪽에서도 곧 거부 대열에 올라섰다.6·25전까지 그가 수원에 세운 성냥공장은 남한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인송은 53년 재벌의 터전이 된 대한방직을 인수해 근대적인 경영을 시작했다.55년엔 대한전선 인수,56년에는 대동제당(현 대한제당)을 세워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가로 올라섰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인송은 54년 자유당 재정부장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갔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는 60년대 초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인송은 4·19 의거와 5·16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 내로라하는 그룹 창업주들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몰려 험난한 시기를 보냈다. 특히 인송은 강제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부동산도 몰수당했다. 부친의 이같은 시련을 지켜봤던 설씨가(家) 4형제는 훗날 정치와 담을 쌓은 것은 물론 부동산 투자도 꺼렸다. 인송은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이라도 소홀히 버리지 않았다. 편지가 오면 칼로 봉투의 한 귀퉁이를 잘 도려내고, 그 뒷면을 이용해 한번 더 사용했을 정도였다. 인송이 송인상 효성 고문(당시 부흥부장관)에게 보낸 편지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하던 대로 송 장관에게 소식지 ‘무역통신’ 뒷면을 이용해 서신을 보냈다. 이를 받은 송 장관은 대기업 사장의 검소함에 탄복해 서신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수년간이나 회의석상이나 강연회에서 이를 소개했다고 한다. ●옛 영화가 가득한 혼맥 인송은 두번 결혼했다. 그는 첫번째 부인 이태하(작고)씨 사이에 원식과 원철(68)씨 등 2남을 뒀다. 두번째 부인 유인순(작고)씨 사이엔 원량과 명옥(59), 원봉, 영자(53)씨 등 2남2녀를 뒀다.4남2녀 가운데 여자 형제는 중매로, 남자 형제는 연애 결혼했지만 당시 재벌가의 통혼이 그러하듯 인송은 관·재계의 명문가를 사돈으로 맞았다. 장남인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은 일제시대 식산은행(현 산업은행) 총재와 대한석탄공사 5대 총재를 지낸 임송본씨의 딸 희숙(75)씨와 연애결혼했다. 당시 원식씨는 희숙씨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에서 유학할 대학을 바꿀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설 전 회장 부부는 설범(47) 대한방직 회장과 설경화(46)씨 등 1남1녀를 뒀다. 차남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은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의 딸 보경(66)씨를 미국 유학중에 만나 인연을 맺었다. 보경씨는 코리아헤럴드 출신의 언론인이다. 설한(39), 설훈(35), 설혜선(34) 등 2남1녀를 뒀다. 3남 설원량 회장은 1969년 동생인 명옥씨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양귀애 고문과 결혼했다. 명옥씨와 양 고문은 친구 사이다. 양 고문은 국제그룹 양태진 창업주의 막내딸이며,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누이 동생이다. 윤석(24), 윤성(21)씨 등 2남을 두고 있다. 4남 설원봉 회장은 박용학 전 대농 명예회장의 장녀인 선영(56)씨와 혼례를 치렀다. 선영씨는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를 다녔던 설 회장과 선영씨는 학창시절부터 오랜기간 만남을 가졌다. 윤호(30)와 혜정(25)씨 등 1남1녀를 뒀다. 장녀 명옥씨는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 가문의 소개로 71년 김우기(63) 서울대 의대 교수와 결혼했다. 동철(33)과 승철(31)씨 등 2남을 뒀으며 장남은 의사, 차남은 대한제당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영자씨는 고 설원량 회장의 친구인 정근모 명지대 총장의 중매로 차동완(58)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진영(28)씨와 종현(25)씨 1남1녀를 두고 있다. 3세들도 속속 가정을 꾸리고 있다.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의 장남인 설범 회장은 한연나씨와 결혼했으며, 장녀 경화씨도 차정하씨와 혼인을 치렀다. 양 고문의 장남 윤석씨는 지난해 6월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생인 심현진(24)씨와 연애 결혼했다. 현진씨의 부친은 심광일(52)씨로 중견 건설업체인 석미건설을 경영하고 있다. 양 고문은 “오랫동안 연애를 한 데다 아들의 판단을 믿었다.”면서 “설 회장도 생전에 둘의 결혼을 허락한 만큼 일찍 결혼을 시켰다.”고 말했다. 설영자-차동완 교수 부부의 장녀 진영씨는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조 부사장은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손자로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이다. 진영씨는 대한전선 3세 가운데 유일하게 재벌가(家)와 통혼했다. ●일찍 시작한 분가 설경동 가문의 기업 분가는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일찍 시작됐다. 창업주 사후에 2세들의 분가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송은 생전에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등을 계열분리시켰다.1960년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가정불화마저 겹치면서 인송은 어쩔 수 없이 대한산업과 대한방직 등을 장남 원식에게 맡겨 2세 경영을 펼치도록 했다. 인송은 이후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중심으로 경영을 해오다가 72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3남인 당시 설원량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토록 했다.74년 인송이 결국 타계하자 설 회장이 대한전선그룹을 이끌게 됐다. 대한전선은 88년에 또 한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창업주 인송의 유지를 받들어 설원량 회장이 계열사인 대한제당을 분가시킨 것이다. 설 회장은 동생인 설원봉 회장이 대한제당에 입사한 이래 경영수업을 충실히 받아왔다고 보고, 대한제당 관련 주식을 설원봉 회장에게 모두 양도해 대한전선에서 완전 분리시켰다. 대한제당은 현재 식품소재사업과 레저, 외식업 등에 진출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송의 후계자 설원량 회장 고 설원량 회장 유족들은 지난해 9월 135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상속세를 신고했다. 매출 2조원이 안되는 중견기업이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자진 신고하자 고 설 회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상속이나 증여세를 덜 내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다른 재벌가(家)와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대단했다. 그는 평소 “기업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손님이 되어야지, 불청객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 한토막. 대한전선 본사와 각 공장 구내식당에서 제공되는 한 끼 밥값은 80원이다. 공짜로 주는 것이 낫겠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설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같이 정해졌다. 설 회장이 내 돈을 내고 밥을 먹어야 음식이 혹시라도 부실해지면 회사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서 내린 조치였다. 설 회장 본인도 줄곧 구내식당을 이용했는데, 이 역시 회장이 자주 이용하면 음식에 좀 더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낸 것과 달리 설 회장은 부친인 설경동 회장 못지않은 ‘구두쇠’였다. 그는 양복을 한 벌 사면 소맷단이 해질 정도로 입었다. 식당에서 사용한 휴지는 잘 접어두었다가 화장실에서 다시 사용했다. 쉽게 쓰는 휴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휴지라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같은 성품 때문일까. 그는 4형제 가운데 부친으로부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설 회장이 미국 텍사스주립대로 유학갔을 때, 인송의 커다란 기쁨 가운데 하나가 아들의 편지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인송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설 회장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설 회장은 67년 대한전선 총무부장으로 입사했다. 인송은 설 회장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호된 경영자수업을 받도록 했다. 설 회장은 68년에 상무,70년엔 전무 등 주요 사업부 수장을 거치면서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72년 사실상 경영 대권을 이어받은 설 회장은 견실한 전선사업과 가전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70년대 중반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로 대한전선을 키웠다. 후계자로서 연착륙했다는 주변의 평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대한전선과 금성사(현 LG전자)가 선점한 가전시장에 삼성전자가 후발업체로 뛰어들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70년대 후반부터 덩치에 밀린 대한전선은 자금난으로 갈수록 어려워졌다. 설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고 토로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친의 유업을 일순간에 포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기업가로서 그간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고 했다. 대한전선 가전사업에 관심이 컸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당시 “가전사업이 어려우면 언제라도 대우에 협력제의를 해달라.”는 의중을 넌지시 전해왔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며, 혼자서 시간을 보내던 설 회장은 83년 3월 그룹 임직원들에게 가전부문 매각을 발표했다, 매각 금액은 2억달러 규모로 당시엔 그야말로 빅딜이었다. 가전사업과 생산직원 모두 대우로 넘어갔다. 대우그룹으로 바꿔타는 직원이 무려 6000여명. 대한전선에 남는 인원은 3000명 남짓이었다.24개 계열사 중 10개사가 대우에 속하게 됐으며, 남은 계열사는 통폐합 절차를 거쳐 7개사로 줄었다. ●‘풍운아’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 설원식 전 대한방직 명예회장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50년대 국내 대표적인 재벌가(家)의 장남이었지만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뒤,55년부터 5년간 중앙대 문과대에서 강사(서양학)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는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전선 사장직에 갑자기 취임했다. 이후 3년간이나 부친인 인송과 재산 다툼을 벌였지만 그는 결국 법적으로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옛 대한그룹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설 전 회장은 70년대 대한종합개발을 설립해 건설업에 진출했으며, 아세아종합금융을 세워 금융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업 진출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는 아세아종금 주가가 폭락하면서 퇴출위기에 몰리자 주식시세를 조종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세아종금은 이후 진승현씨에게 인수돼 한스종금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훗날 ‘진승현 게이트’로 불거졌다. 설 전 명예회장은 98년 장남인 설범 회장에게 대한방직 경영권을 물려주며 현장에서 물러났다. 차남인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의 이력도 형에 못지않다. 그는 일본 게이오대 법대와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그는 부친의 기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쳤다. 그는 대한무역진흥공사에 입사해 조사부 부장과 샌프란시스코 무역관 관장을 거쳤다.91년엔 형인 설원식 전 회장에 이어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사장에 올랐다.2년 후에 고문직으로 물러났다. ●‘3무 경영’ 설원봉 회장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은 연세대 법대와 미국 브루클린 공대대학원을 거쳐 1976년 대한전선 종합조정실 이사로 경영에 첫 발을 내디뎠다.83년 대한제당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88년엔 형으로부터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그는 형과 달리 부드럽다는 평이다. 그러나 나서기를 꺼려하는 것은 다른 형들과 똑같다. 재계에서 친한 인사로는 경기고 동기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설 회장은 현장과 인재 관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외환위기 극복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국제 원자재값 급등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설 회장은 직원들의 신뢰속에 감원과 임금 삭감, 노사분규 없이 힘든 시기를 헤쳐왔다.‘무감원, 무감봉, 무분규’라는 대한제당 특유의 ‘3무(無) 경영’은 이렇게 나오게 됐다. 대한제당은 현재 의약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그룹 나침반 임종욱 사장 대한전선의 대표 최고경영자(CEO)인 임종욱(57) 사장은 서울생으로 선린상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95년 회장 비서실장에 임명된 이후 9년간 설원량 회장의 경영 방침과 철학을 받들어 회사경영 전반에 대해 실무관리를 해오고 있다.97년 외환위기 때에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3배 이상 끌어올렸다. 무주리조트와 쌍방울 인수, 진로채권 투자에 나서는 등 사업다각화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임 사장은 설 회장이 타계한 이후 회사 경영의 나침반으로서 차세대 ‘먹을 거리’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미망인이 본 故설원량 회장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예요.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어요. 자제심도 대단했고요. 남편을 사회와 일에 빼앗겼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평생 일만 하다 간 분이에요. 그림이나 음악에도 대단히 조예가 깊었는데….” 양귀애 고문은 남편인 고 설원량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는 듯 설 회장을 언급할 때는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설 회장은 지난해 3월 뇌출혈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아직도 설 회장 사진을 안봐요.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남편 사진들을 다 치웠어요. 감정이 많이 정리가 됐다고 해도 가끔은 가슴이 휑해요. 유품을 정리하는데 옷가지들이 너무 낡았더라고요. 대기업 회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와이셔츠 소매는 다 헐었고, 구두는 신기 민망한 수준이었어요.” 그는 일만 했던 남편이 썩 재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둘만의 데이트는 자주 했다고 했다.“설 회장은 사업이 꼬이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면 어김없이 저를 불러요. 옆에 있어달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한동안 생각만 해요. 그 때는 옆에서 말 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그래서 저를 불렀던 것 같아요. 덕분에 둘이서 남산을 자주 산책했고, 가끔은 골프도 둘이서만 치고 다녔답니다.” 그는 불임으로 꽤 고생했다. 장남인 설윤석 과장을 결혼 12년차에 가질 정도였다.“시댁식구들 눈치 많이 봤죠. 재벌가(家)로 시집와서 12년간 애기가 없었으니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어요. 그때마다 남편이 바람막이가 돼 줬습니다. 참 고마웠죠.” 양 고문은 시아버지인 인송 설경동 회장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아버님이 저를 특히 예쁘게 보셨어요. 항상 자신 옆에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외출을 하면 꼭 저를 데리고 다니며,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한복입은 모습이 예쁘다고 해서 신혼 초에는 한복만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설 회장은 자식을 엄하게 대했다고 한다.“남편은 아들들에게 절대 용돈을 풍족하게 주지 않았습니다. 수입도 없는 애들이 돈 쓰는 버릇부터 들이면 안된다는 것이었죠. 비행기를 탈 때도 애들은 항상 이코노미석이었습니다.” 양 고문은 지금까지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자신의 전부를 쏟았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시아버지와 남편이 일군 대한전선을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한편 그는 큰 오빠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근황과 관련,“건강하시고 친구들을 만나 소일하신다.”면서 “(국제그룹 해체로) 당시엔 심리적인 타격이 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잊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golders@seoul.co.kr ■ 막오른 3세 경영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창업한 대한전선과 대한제당, 대한방직 등은 모두 3세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3세가 최고경영자(CEO)로 전면에 나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제 실무부서에 배치돼 첫 걸음마를 시작한 곳도 있다. 가장 빨리 ‘세대교체’가 이뤄진 곳은 대한방직. 설경동가(家)의 장손인 설범(47) 회장이 1998년 대한방직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설씨가(家)의 3세 경영을 알렸다. 그는 85년 대한방직 이사로 출발해 91년 상무,95년 부사장,96년 대표이사 사장 등을 맡으며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설 회장은 2001년 한스종금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만두라.’는 소액주주들과 주총에서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등 한차례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주변에선 설 회장을 소탈하고 온화하다고 평한다. 집안 가풍대로 보수적이며, 사업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업계에서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하다. 배재고와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더 뷰크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지난해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학업과 경영수업을 동시에 했던 장남 설윤석(24)씨는 올 들어 경영전략팀 과장으로서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쌓고 있다. 그는 대한전선의 최대주주인 삼양금속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선 설 과장의 나이가 아직 어린 데다 모친인 양귀애 고문이 후견인으로 나서는 만큼 급하게 경영 대권을 잇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종욱 대한전선 사장이 전문경영인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어 후계자 교육에 더욱 치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 고문은 “설 과장의 진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승진이나 유학 등은 상황에 따라 이뤄질 것이에요.”라고 했다. 동생인 윤성(21)씨는 중학교 3년때 미국으로 유학가 현재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다니고 있다.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의 장남인 윤호(30)씨는 경영 대권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는 2000년 6월에 입사해 현재 제당식품사업부를 책임지는 전무로 일하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설 전무는 경기고와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부고]

    ●최우성(성지교회 담임목사)우정(디앤샵·다음온켓 대표)씨 부친상 1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30분 (02)392-0299●김형철(전 오로라무역 상무)씨 별세 동설(삼성중공업 국제금융부장)동찬(사업)씨 부친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30분 (02)3410-6915●홍성도(전 이화여대 서무과장)씨 별세 영기(전 중소기업협동조합 전무)창기(전 서울아산병원장)인기(전 대림산업 총무부장)정기(포항공대 교수)숙자(전 성동기계공고 교사)영자(전 상지고 교사)명의(전 도봉중 〃)씨 부친상 이정엽(신영기업 대표)현태섭(전 대관령고 교장)유시영(전 대상식품 사장)씨 빙부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02)3010-2230●김관치(전 SK가스 감사)씨 별세 재원(싱글로골프 대표)경태(SK네트웍스 과장)씨 부친상 고성환(딜로이트 한국부 대표)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5시 (02)3010-2263 ●홍정우(미래산업 부장)석우(창성프라자 대표)씨 모친상 윤제숭(미래산업 대표)씨 빙모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30분 (02)3010-2261●박영제(사업)두제(〃)경제(가야기계설비 대표)씨 모친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02)3010-2264●최경석(장흥환경운동연합 의장)씨 부친상 문영창(부산 한국신경외과 원장)박장섭(부산 네이트가구 대표)이중흠(동아건설 자산관리팀 차장)씨 빙부상 15일 전남 장흥 우리병원, 발인 17일 오전 10시 (061)863-7032●이태영(운보원장)복영(신학원장)씨 모친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낮 12시 (02)3010-2237
  • 정다운 음악회로 送舊迎新

    정다운 음악회로 送舊迎新

    ‘정다운 음악회로 올해를 보내세요.’ 북적거리는 연말연시. 달력에 빼곡히 찬 송년회 일정을 쫓아다니다 보면 술기운에 연말을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다. 차분히 한해를 되돌아보는 건 공염불에 그치곤 한다. 서울 동작구와 서초구 등 자치구에서 준비하고 있는 송년음악회로 ‘가족 망년회’를 대신하는 건 어떨까. 흘러간 옛 노래와 가곡, 클래식 등의 감미로운 선율로 2005년을 마무리하고 새해 병술년을 기쁘게 맞자. ●정겨운 옛가요로 마무리 동작구(구청장 김우중)는 22일 오후 6시30분 상도2동 동작문화복지센터 대강당에서 ‘송년 가요무대’를 개최한다. 시끄러운 노래가 아니라 정겨운 옛가요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무료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에는 ‘백마야 우지마라’로 유명한 명국환을 비롯해 ‘오동잎’의 최헌,‘달타령’의 김세레나,‘사랑이 메아리칠때’의 안다성 등 한때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추억 속의 명곡들을 부르면서 차분한 송년 분위기를 높인다. 또한 색소폰 연주자 강진한은 ‘클라리넷 폴카’ ‘사랑을 위하여’ 등을 연주한다. 구로구(구청장 양대웅)도 16일 오후 7시 구로5동 구로구민회관에서 겨울밤을 훈훈하게 하는 송년음악회를 연다. 이번 공연은 가요와 국악, 가곡, 연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가수 권인하와 테너 가수 조현춘, 바이올린·첼로·비올라로 구성된 일렉트릭 연주팀 벨라트릭스가 무대를 아름답게 꾸민다. 또한 신미림초등학교 합창단과 구립합창단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경복궁 타령’ 등을 들려준다. 뿌리패의 타악 퍼포먼스도 즐길 수 있다. ●클래식 선율로 새해맞이 풍성한 클래식의 향연도 펼쳐진다. 16일 오후 7시30분 서초구(구청장 조남호) 주최로 양재동 서초구민회관에서 열리는 송년특집 피아노 연주회가 그 현장이다. 이날 연주회는 1993년부터 계속된 금요음악회의 특별 공연이다. 예술의 전당 김용배 사장과 피아니스트 신수정 교수가 초청됐다. 김 사장은 추계예대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5월 연주자 출신으로는 처음 예술의 전당 사장에 올랐다. 예술의 전당 오전 11시 콘서트 ‘브런치’의 해설을 맡아 선풍을 일으킨 음악해설의 1인자이기도 하다. 서울대 음대학장인 피아니스트 신 교수는 그동안 런던·도쿄 필, 베를린·뮌헨 체임버 등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과 협연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다. 김 사장과 신 교수는 예술의 전당 음악예술감독인 이화여대 이택주 교수가 이끄는 현악 앙상블 ‘네쌍스’와 협연을 펼친다. 이들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과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5중주’, 슈베르트의 ‘송어’ 등 주옥같은 정통 클래식 명곡들을 겨울 밤하늘에 수놓는다. 이어 23일은 라우스데오합창단의 ‘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캐럴 축제’,30일에는 월드비전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의 ‘천사들과 나누는 한겨울밤의 꿈’ 등이 계속 열리면서 연말을 포근하게 감싼다. 이밖에 용산구(구청장 박장규)도 23일 오후 3시 한강로3가 용산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송년음악회를 연다. 한국무용단 ‘천지창조’와 난파소년소녀합창단, 힙합그룹 카사앤노바, 가수 이자연 등이 출연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대입 정시모집 지원 전략] 전문가에 듣는 논술·구술·면접

    [대입 정시모집 지원 전략] 전문가에 듣는 논술·구술·면접

    올해 정시모집에서도 대학별고사인 논술과 구술·면접시험은 당락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비슷한 성적대의 수험생들끼리 경쟁하는 현실에서 논술과 구술·면접 성적의 변별력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논술과 구술·면접 전형까지 남은 기간은 20여일. 입시 전문기관 전문가들에게 남은 기간 논술과 구술·면접 대비요령을 들었다. ■ 지원대학 출제경향 파악 필수 ●논술 대비 이렇게 논술고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지원하려는 대학의 출제 경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정시모집에서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고전을 자료로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 그 속에 산재해 있는 여러 문제들을 파악하여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형태의 문제들을 출제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이를 통해 자료에 대한 이해 능력과 분석 능력, 사고력, 창의력, 표현 능력 등을 평가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고전에 대한 독해 능력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논리적인 표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대학별로 건학 이념이나 학풍에 따라 선호하는 주제나 제재가 있고, 독특한 형식의 문제를 출제하기도 한다. 대학의 채점 기준에 대해 정확히 알아두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논술 점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제의 요구에 부합하는 내용을 전개하였는가의 여부에 있다. 반드시 주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내용을 전개해야 하며 문제에서 요구한 주제에 맞는 글을 써야만 한다. 최근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비판적 사고 능력과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내용 전개에 특히 많은 배점을 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논제에 대한 단편적인 암기 위주의 서술보다는 자료의 내용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얼마나 논리적이고 충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독창성, 창의성이 결코 남들이 생각해 내지 못하는 기발하고 엉뚱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논술고사에서 독창성, 창의성은 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구체적이고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참신하게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형식적 문장이나 진부한 사례를 제시하기보다 좀더 많이 생각하고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논술고사가 지식적인 측면보다는 깊이 있는 사고력과 비판력,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 설득력 있는 의견 개진 능력 등을 평가하는 시험임을 고려한다면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실제로 많이 써 보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 된다. 논술고사에서 자료로 활용되는 글들은 대부분 동서고금의 고전이다. 이러한 글들을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많은 독서량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과 연관지어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시사적인 현안에 대한 배경 지식이 유리한 요소가 될 수 있는데 이 또한 많은 독서량을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논술고사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배경 지식을 넓히는 데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은 좋지 않다. 지금 시점에서는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서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쟁점들을 정리하는 정도로 준비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많이 생각하는 것도 좋은 논술문을 작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논술문은 결국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글이므로,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지 않다면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글을 쓰기는 어렵다. 현재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꼼꼼하게 살펴보고 잘못된 점은 무엇인지 비판해 보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도 모색해 본다. 찬반 토론이 벌어질 수 있는 화제에 대해서는 양쪽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고, 어떤 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고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정리해 둔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답안은 결국 많은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많은 생각이 없다면 구체적인 글을 전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곧 창의력과 독창성의 부재로 평가받게 된다. 실제로 글을 써 보는 것 역시 무엇보다 중요하다. 머릿속에 쓸 말은 준비가 되어 있는데 실제로 쓰려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수험생들이 많이 있다. 이는 실제로 쓰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렵고 잘 안 되더라도 몇 번 연습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제시문을 분석하고 의도에 맞는 글을 쓰는 것, 문단을 구성하는 것, 주장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는 것, 개요를 작성하는 것, 일관성 있는 글을 전개하는 것, 어법에 맞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구사하는 것, 원고지 사용법에 맞게 답안을 작성하는 것, 주어진 시간 내에서 논술문을 완성하는 것, 분량을 조절하는 것 등 실제로 써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고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실제로 글을 써 보고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를 평가받는다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글을 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많이 쓰고 많이 평가받는 방법이 쓰기 능력 신장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장필규 대성학원 논술팀장 ■ 매일 10분씩 말하기 연습하라 ●출제 경향 면접·구술고사는 최근 들어 학문적인 기초 소양, 시사 관련 지식을 묻는 단계에 그치지 않고 심화적인 교과 지식이나 실생활과 연결시키는 응용 문제를 출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연계는 특히 그렇다. 대체로 서울대, 연세대, 전남대, 건국대, 중앙대 등 중상위권 이상의 수험생들이 지원하는 대학에서 실시하는 면접·구술고사는 심층면접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릴 만큼 깊이 있는 심화학습을 요구한다. 특히 올해는 논술고사의 기준이 강화돼 면접·구술고사의 영향력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 확실하다. 얼마전 발표된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으로 논술고사에 출제 자체가 금지된 영어 제시문이나, 수학·과학 풀이과정은 면접·구술고사의 평가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만큼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심층면접뿐만 아니라 일반 면접에서도 자기소개서나 학업계획서 등을 통한 영어실력 테스트가 예상된다. 계열별로 살펴보면, 인문계열 수험생은 10∼20분 정도의 제한된 시간에 300∼500단어 정도의 영어 지문을 해석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간추려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자연계열의 경우는 과학 과목도 중요하지만, 특히 수학 성적이 당락을 좌우한다. 대학들은 대부분 간단한 문제 풀이부터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도를 측정하는 정의와 용어에 대한 설명, 증명 문제, 응용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출제하고 있다. 여기서 수학은 결과뿐만 아니라 풀이 과정, 구술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기출 문제를 꼼꼼히 정리하고 핵심 개념과 공식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 함수, 행렬, 미분, 적분, 기하(이차곡선, 공간도형, 벡터) 등은 단골 출제 문제이다. 그렇다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설사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출제됐더라도 면접관들은 수험생의 논리적 사고력, 이해·분석력, 종합적 문제해결 능력과 응용 능력을 평가해 부분 점수를 준다. 때문에 답을 완전히 모르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임하면 질문에서 힌트를 얻는 경우도 있다. 기초소양평가는 수험생들이 예상할 수 있는 시사 문제나 자기소개서와 추천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질문이 주를 이룬다. 수험생들은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추천서 내용을 정확하게 소화해둬야 한다. 또한 정치·경제·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초 개념 등을 활용해 답변하는 것을 연습해두는 것이 좋다. 전공능력평가 시험에서는 인문계의 경우 영어 원문을 제시하고 소리를 내어 읽게 하여 독해력을 측정하거나,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하게 하여 실제적인 영어 구사력을 측정하기도 한다. 수학이나 과학은 시험 문제를 현장에서 제시하고 면접관이 보는 앞에서 풀게 하는 대학이 대부분인데 수험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영어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면접·구술고사의 가장 보편화된 문제로 자리잡았다. 예년의 경우 인문계에서는 문화적 대립이나 교류 등 사회적 문제와 연결된 영어 지문이 많았다. 이화여대와 고려대에서는 평등과 관련된 지문이 출제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자연계 문제로는 역시 과학 현상이나 법칙, 생명과학과 관련된 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자연계열에서는 대부분 3∼4개 정도의 수학 문제가 서술형 주관식이나 단답형으로 출제되고 있다. ●대비 전략 교과서는 물론 수능 지문, 영자신문이나 시사주간지 등 다양한 영어지문을 활용해 정확한 독해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자연계열의 경우 수학이나 물리, 화학 등의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의 원리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응용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한다. 또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갖추어 시사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 대학 홈페이지에 공개되고 있는 기출 문제들을 찾아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의 출제 경향과 유형을 파악해야 한다. 시험 시간과 동일하게 시간을 제한하여 실제상황과 똑같은 조건에서 풀어보고 예시 답안을 마련해 본다. 그러나 시험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답변하기 위해서는 예시 답안을 무조건 외우기보다는 다양한 배경지식을 충분히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야 한다. 면접·구술고사는 말로 하는 시험이므로 평소 5∼10분이라도 거울을 보며 자신의 말하는 습관과 태도를 점검하고 연습하면 실전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미리 문제를 공개하고 20분 정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대학이 늘고 있다. 15분 정도는 문제를 꼼꼼하게 읽어 핵심을 파악하고, 나머지 5분은 어떻게 답변할지 구상해야 한다. 이 때 개요를 정리해두면 일관성을 지키며 답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준섭 종로학원 면접구술고사 위원
  • [대입 정시모집 지원 전략] 수능 점수별 지원 이렇게

    [대입 정시모집 지원 전략] 수능 점수별 지원 이렇게

    2006학년도 정시모집 일정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16일 수능시험 성적표 공개에 이어 원서접수는 24일부터다. 이 기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우선 성적표를 받게 되면 자신의 영역별·선택과목별 표준점수, 백분위 점수, 등급 등을 확인한다. 2006 대입 정시 전형에서 각 대학들은 표준점수나 백분위 점수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영역별로 변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형요소로 활용한다. 이 때문에 자신이 지원하려는 대학이 어떤 전형방법을 택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예를 들어 성균관대 연세대 경북대 등은 표준점수를,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은 백분위 점수를 활용한다. 또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등은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은 표준점수를 활용하나 탐구 영역은 백분위 점수를 활용한다. ①표준 점수-어려운 과목 잘봤다면수험생이 100점 만점 시험에서 영어에서 80점, 수학에서 60점을 얻었을 경우 원점수로만 보면 영어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균점수가 영어가 80점이고 수학이 50점으로 영어보다 수학이 어려웠다면 이 학생은 영어에서 수학보다 좋은 점수를 얻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표준점수란 이처럼 상대 비교가 불가능한 원점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는 점수다. 성적 분포(평균 및 표준편차)에 따라 상대평가로 점수가 매겨지기 때문에 평균 점수가 낮은 영역의 표준점수가 높으며, 어려운 영역 및 과목에서는 상위권 점수대의 표준점수 변별력이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수험생으로서는 특정 영역을 잘못 보았더라도 표준점수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짤 필요도 있다. 대부분 어렵다고 예상했던 탐구영역을 잘 보았다면 표준점수가 예상외로 좋게 나올 수 있는 만큼 이 영역 비중이 높은 대학을 눈여겨보는 것도 요령이다. ②백분위 점수-중·상위권 학생은 백분위 점수는 한 수험생이 받은 표준점수보다 낮은 표준점수를 받은 수험생이 전체 수험생 가운데 몇 %가 있는지를 나타내주는 표시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 수험생의 언어영역 표준점수가 120점이고 백분위 점수가 88점이라 함은 120점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수험생 비율이 계열별 전체 응시자의 88%임을 뜻한다. 즉 모든 응시자를 0-100점으로 환산해 개별 수험생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영역에 걸쳐 백분위는 중위권 변별력이 높게 나타나고, 상위권은 어려운 영역 및 과목일수록 백분위 점수차가 적어서 변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③등급 점수-지원자격 요건 활용 다음으로 이 점수를 확인했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점수를 활용할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편 등급은 일반적으로 지원자격 요건으로 활용된다.1등급은 표준점수 상위 4%,2등급은 상위 11%까지,3등급은 상위 23%까지 순으로 9등급은 하위 4%가 해당된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차붐, 할아버지 됐다

    ‘차붐’ 차범근(52) 수원 감독이 첫 손자를 봤다. 프로축구 K-리그 수원은 13일 “차 감독의 장녀인 하나(27)씨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 산부인과에서 3.7㎏의 아들을 순산했다.”고 밝혔다. 차 감독은 “할아버지가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차 감독과 오은미씨 부부는 하나씨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있는 두리, 학업중인 막내아들 세찌 등 2남1녀를 두고 있다. 하나씨는 지난 2002년 이화여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계 항공사 루프트한자 한국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결혼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남자대학생 40% “전업主夫 좋아”

    남자대학생 40% “전업主夫 좋아”

    남자 대학생 10명 중 4명은 아내가 직업이 있다면 스스로 전업주부가 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을 잃고 나서 재취업을 할 때까지 기꺼이 살림을 맡아할 생각이 있다는 남자 대학생은 10명 중 9명에 이른다. 하지만 남자가 평생 전업주부로 사는 데 대해서는 3분의2가 ‘그건 아니다.’고 했다. ‘살림하는 남편’은 올 7월 기준 11만 1000명(통계청)으로 2년 전보다 4만명이나 늘어나는 등 증가세가 가파르다. 여성주부 508만 6000명과 비교하면 2.2%에 불과하지만 취업난과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로 전통적인 성 역할이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서울신문은 남녀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살림하는 남편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학생의 70% “남편이 집안일 할 수도” 대학생 10명 중 7명은 아내와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실직을 했다면 남편이 집안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고 육아나 가사를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이 20대에게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다. 집안에 들어 앉아 살림하는 남편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다. 남자 대학생의 40%는 아내가 직업이 있다면 전업주부로 일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남자 대학생의 87%는 직장을 잃었을 때 재취업하기까지는 기꺼이 살림을 맡아서 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고려대 불문과 A(23)씨는 “능력있는 아내를 맞아 내가 살림을 해야 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남성상’에 대한 인식은 여전했다. 남자가 살림을 하는 것은 아내의 가사부담을 덜어주거나 직업을 잃었을 때 일시적으로 하는 것이지 평생토록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남자가 살림만 해서야…” 인식은 강해 남자가 평생 주부로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학생이 63%였다. 전업주부 남편을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31%였다. 전업주부 남편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도 44%였다. 전업주부 남편은 여성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은 31%였다. 전업주부 남편은 경제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비율도 절반에 가까운 48%였다. 가사 노동의 남녀 분담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들도 집안 일을 생산적인 노동활동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 이화여대 인문학부 L(20)씨는 “남편이 살림을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살림만 하는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호감이 안 간다.”고 했다. 남학생보다 여학생들이 전업주부 남편에 대해 더욱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전체의 3분의2가 넘는 71%의 여학생들이 전업주부 남편과 결혼할 수 없다고 답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남편이 집안 일을 도맡아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먹고 살 길이 없어도 남자가 전업주부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답한 여학생은 27%이지만 남학생은 16%로 여학생의 반대 비율이 더 높았다. 남자가 전업주부를 꿈꾸고 결혼하는 시대가 왔는가라는 질문에도 남학생은 31%가 여학생은 12%가 ‘그렇다.’고 답했다. 단국대 중문과 C(21·여)씨는 “살림하겠다는 남편을 어떻게 믿고 결혼할 수 있겠느냐.”면서 “남자의 경제력은 중요한 고려사항”이라고 말했다. ●그저 편하게만 살고 싶은 생각도 바탕에 깔려 심리연구소 슈레21의 최창호 박사는 “성 역할의 고정 관념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은 바람직하지만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최 박사는 “젊은 남성들이 전업주부 역할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됐지만 이면에는 누군가 돈을 벌어준다면 집에서 살림하며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심해지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자기의 꿈이나 욕구를 아내를 통해서 실현해 보겠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심리도 함께 읽을 수 있다.”면서 “이런 현상이 한 가정에서 경제적 활동의 책임을 남녀가 서로 떠넘기는 모습으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예술위 ‘올해의 예술상’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위원장 김병익)는 제2회 `2005 올해의 예술상´수상작으로 최하림의 시집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를 비롯해 7개 분야 32개 작품을 선정,13일 발표했다. 수상자와 단체는 `최우수상´ 각 5000만원,`올해의 예술상´ 각 3000만원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19일 오후 6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다.◇문학▲최우수상=최하림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올해의 예술상=공선옥 `유랑가족´, 윤성희 `거기, 당신?´, 서영채 `문학의 윤리´, 남찬숙 `받은편지함´◇미술▲최우수상=함양아 `함양아전´▲올해의 예술상=김주현 `확장형 조각´, 강수미(기획)`번역에 저항한다´, 이영철(기획)`당신은 나의 태양:한국현대미술 1960´, 이화여대박물관 `시간을 넘어선 울림:전통과 현대´◇연극▲최우수상=극단 백수광부 `그린벤치´▲올해의 예술상=극단 골목길 `선착장에서´, 극단 물리 `죽도록 달린다´, 극단 미추ㆍPMC프로덕션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Labo C.J.K `바다와 양산´◇무용▲최우수상=안성수 픽업그룹 `선택´▲올해의 예술상=김영희무트댄스 `마음을 멈추고´, 손인영NOW무용단 `안팎´, 이경옥 무용단 `2005 춘향 사랑놀음´, 서울발레시어터 `봄, 시냇물´◇음악▲최우수상=화음쳄버오케스트라 `화음쳄버오케스트라 10주년 기념음악회´▲올해의 예술상=김대진 `김대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시리즈Ⅷ´, 서울바로크합주단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40주년 특별정기연주회´, 최희연 `최희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 서경선(작곡) `2005서울국제음악제 KBS교향악단 특별연주-교향시 시월´◇전통예술▲최우수상=남북전통공예교류전 운영위원회 `남북전통공예 교류전´▲올해의 예술상=강은일 `강은일의 해금플러스V-일상과 회상´, 민속악회 메나리 `그 빛깔 그대로´, 타루 `밥만큼만 사랑해´, 박은영무용단 `박은영 궁중무용발표회´◇다원예술▲최우수상=없음 ▲올해의 예술상=머리에 꽃을 거리예술제 준비위원회 `2005 제주 머리에 꽃을 거리예술제´, 홍성민·김은영 `토탈씨어터 앨리스´.
  • [대입 정시모집 지원 전략] 사례로 본 점수 활용

    [대입 정시모집 지원 전략] 사례로 본 점수 활용

    청솔교육평가연구소에서 제공한 다음 사례를 보자. 수험생 A는 지난해 수능에서 언어 표준점수 120점(백분위 84), 수리가 135점(98), 외국어 131점(98), 탐구영역 상위 3과목 환산 126점(90)을 받아 표준점수로는 512점, 백분위는 367점을 받았다. 반면 수험생 B는 언어 표준점수 128점(백분위 96), 수리 129점(94), 외국어 127점(92), 탐구영역 상위3과목 환산 125점(90)으로 표준점수 총점 509점, 백분위 총점 372점이다. 결국 표준점수로는 수험생 A가 3점 앞서고, 백분위로는 오히려 수험생 B가 4점 이상 높은 셈이다. 이같은 분석을 토대로 A 수험생은 표준점수로 유리한 연세대 가군 이학계열에 지원하여 합격했다.B 수험생은 백분위로 유리한 이화여대 가군 수학교육과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만일 두 학생이 엇갈린 상황으로 지원하였다면, 수험생 B는 추가합격 점수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으로 불합격하였을 것이고, 수험생 A도 커트라인 근방에서 가슴을 졸이는 상황을 맞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생기는 것은 영역별, 과목별 표준점수와 백분위 차이가 일정한 값으로 일치하지 않아 점수대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백분위가 유리할 수도 있고, 표준점수가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를 보면 언어에서는 수험생 B가 수험생 A에 비하여 표준점수로는 8점 앞서지만 백분위로는 12점이나 앞선다. 거꾸로 수험생 A는 수험생 B에 비하여 수리에서 표준점수로는 6점 차, 백분위로는 4점 차가 발생하여 점수를 조합하면 수험생 A는 표준점수에서, 수험생 B는 백분위에서 유리한 점수가 나온 것이다. 오종운 청솔교육평가연구소 소장은 이와 관련,“수험생들은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표준점수, 백분위 반영 방법에 따라 자신이 받은 수능 성적을 비교하여 대입 지원 전략을 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림산업-이준용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림산업-이준용 회장家

    대림산업은 지난 1976년 상장 이후 주주들에게 기업 이익을 돌려주고 있다. 건설업체 가운데 오랫동안 빠지지 않고 배당을 한 기업을 찾기란 여간 쉽지 않다.30여년 동안 배당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은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대림이 오랜 전통을 지켜온 명실상부한 전문 건설업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업종으로 출발했던 현대건설이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늘린 것과 사뭇 다르다. 특히 단순 제조업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대림산업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기업 이미지를 떠올린다. 대림 스스로도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는 아니다. 단지 정통 건설 기업에서 벗어나지 않고 조용하게 기업을 일구겠다는 것이 대림산업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1세대, 정미소에서 건설 명가로 성장 고 이재준(수암) 대림산업 창업주는 경기도 시흥(현재 산본 신도시 일대)에서 부친 이규응 옹과 모친 양남옥 여사의 5남4녀 가운데 차남(넷째)으로 태어났다. 고 이재형 전 국회의장이 이 창업주의 바로 손위 형이며 이재연(74) 아시안스타 회장이 막내 동생이다. 부친은 장남에게는 공부를 시켰지만, 사업 기질이 보였던 차남에게는 장사를 배우라면서 보통학교만 졸업시킨 뒤 자기 밑에 두었다. 수암은 이 때부터 부친이 경영하던 서울 서대문 한일정미소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것이 오늘날의 대림을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 대림의 태동은 1939년 부평에서 목재와 건자재상으로 문을 연 부림(富林)상회에서 출발했다. 초기 부림상회를 이끈 주인공은 3명. 이재준 창업주와 그의 고종 사촌형인 이석구 전 대림산업 사장, 이석구의 매제 원장희로 알려졌다. 사촌지간은 각각 1만 5000원씩 출자했고, 원장희씨는 1만원을 출자했다는 것이다. 이석구는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의 부친. 결국 대림과 풍림의 뿌리는 부림상회로 같다. 부림상회는 원목을 개발, 사세를 키웠고 광복 이후 군정청으로부터 원목을 값싸게 인수해 교실을 짓는데 들어가는 목재 등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이후 사업이 번창해 1947년 건설업에 진출하면서 상호를 대림산업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평경찰서 신축 공사 수주는 건설업체로서 첫 걸음을 내딛는 계기였다. 주한미군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이즈음부터 우리나라 건설업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당시 국내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는 대림산업·현대건설·삼환기업 등이었다. 49년부터는 건설업이 목재업을 앞질러 주력업종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란민 수용소를 짓는 등 군 시설 공사를 맡았고, 한국경제 재건기를 거치면서 굵직한 공사를 따냈다.58년 시작된 청계천 복구공사와 청계고가도로 건설,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건설 등 굵직한 사회간접자본시설 현장마다 대림의 깃발이 나부꼈다. 60년에는 풍림산업을 인수, 자회사 형태로 두었다. 서울 영동·잠실·반포지구 개발과 광진교, 영동대교, 양화교 등 한강 다리 공사에도 대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지하철 시대를 여는데도 대림은 처음부터 참여했다. 동시에 해외공사 수주를 늘리는 등 사세를 키웠다. 54년에 설립한 서울증권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99년 구조조정차원에서 소로스에 매각했다. 지금은 지분을 전혀 소유하지 않고 있다. 대림통상은 아예 동생 재우씨에게 떼어줘 형제간 사업 분리를 마무리지었다. 대림요업 역시 98년 매각하면서 지분을 대림통상에 넘겼다. 창업주가 생전 계열 분리를 통해 경영권 분쟁의 씨앗을 남기지 않았다. ●난형난제(難兄難弟)…운경 이재형 대림산업을 말할 때 흔히 고 운경 이재형 전 국회의장을 끌어들인다. 수암 이재준 창업자와 비교하기도 한다. 정계와 재계에서 각각 독특한 개성으로 주목받으며 거목으로 우뚝 섰던 인물이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러운 면모,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말을 아끼는 점에서 같았다. 운경은 자유당·공화당 시절 내내 골수 야당을 했다. 그래서 동생이 운영하는 대림은 자주 곤욕을 치렀다. 대림에서 정치자금을 대주지 않나 하는 의심과 함께 야당 정치인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대림은 수시로 세무사찰을 받아야 했다. 민정당 시절에도 운경과 수암, 그리고 이준용(67) 회장은 형과 동생, 백부와 조카라는 혈연 빼고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았다. 운경이 정치한다고 자금을 요구하지 않았고, 대림 역시 운경에게 베풀거나 받지도 않았다. 서로 철저하게 독립된 길을 걸어온 것이다. ●2세대, 건설업에 유화부문 키워 양대축 형성 수암 이재준은 열아홉 되던 해 수원지역 대지주의 딸인 이경숙과 결혼했다. 이 여사는 그러나 장남 준용(현 대림산업 회장)을 낳은지 4년만에 세상을 떴다. 창업주는 박영복 여사와 재혼, 차남 부용(전 대림산업 부회장·61)을 얻었다. 단출하게 두 아들만 두어 경영권 이양 등에서 큰 불협화음이 없었다. 이 회장은 부친과 달리 정규 교육 혜택을 입고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았다. 경기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미국 덴버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에도 영남대와 숭실대에서 잠시 강의를 맡는 등 학자풍의 엘리트였다. 그러면서 한경진 여사와 결혼하고 66년부터 대림산업 사무실에 출근했다. 경영 참여와 관련, 이 회장은 “본격적으로 해외 건설시장을 개척할 시기였는데 해외감각과 국제업무에 정통한 사람이 필요했고, 명예 회장의 강력한 요청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국내외 공사를 막론하고 창업주를 도왔다. 유창한 영어는 해외공사 수주는 물론 각종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 국내에서는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했다.78년 당시 부사장이었던 그는 건설업계 최초로 업무 전산화 작업을 추진하는 등 경영정보시스템 구축에 앞장섰다. 업계는 이 회장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79년에는 사장에 오르면서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동생 부용씨는 상무로 승진했다. 건설과 양대 축을 이루는 유화부문의 틀도 이때 마련됐다. 창업주가 목재상을 건설업으로 키웠다면, 이 회장은 여기에 유화부문을 더해 건설과 석유화학의 양대 사업을 구축해 안정과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대림산업은 66년 베트남 진출로 국내 최초 해외건설시장을 개척한 이래 중동건설붐의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지금까지 해외건설 맥을 유지하고 있다.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포항제철 3,4호기 건설공사 등도 대림의 손을 거친 건축물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대림은 국내외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이미지가 실추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86년 개관 11일을 앞두고 독립기념관에서 화재가 발생,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87년 8월까지 당초보다 더 완벽한 복구공사로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88년에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란 캉간가스정제공장 현장에서 이라크 공군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13명이 죽고 19명이 부상을 당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대림이었다. 그런데도 대림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속죄양으로 몰리기도 했다. 대림 역사상 최대 위기였다. 대림은 그 뒤 국내 아파트 공사, 관공서 건물, 평화의 댐공사 등 굵직한 일감을 따내면서 덩치를 키웠으나, 사업 다각화 등으로 몸집을 불린 다른 업체와 달리 한 우물만 고집, 업계 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밀렸다. ●3세대, 건설·유화 오가면서 경영 보폭 확대중 이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37) 대림산업 부사장은 건설과 유화부문을 오가면서 경영 수업을 쌓고 지난 7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미국 덴버대 경제학과를 나와 부친과 동문을 이룬다.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95년 대림엔지니어링에 입사했다.2000년 건설부문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04년부터 전무를 맡았다. 지난 5월에는 대림산업 지분의 21%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지주회사인 대림코퍼레이션의 공동 대표이사에도 취임했다. 대림산업은 계열사 12개를 거느린 재계 27위 규모의 대림그룹 모기업이다. 이 부사장은 현재 대림산업 0.47%, 삼호 1.85%, 비상장 종합물류 회사 대림H&L의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분 움직임이 없어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라기보다 다양한 경험 축적 과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혼맥 1세대는 평범,2·3세대는 화려 이재준 창업자는 조선 선조대왕 7번째 왕자인 인성군(仁城君)의 9대손이다. 가문이 번창했기 때문에 수암의 집안은 늘 북적댔다. 생가가 서울로 향하는 길목이라서 오고 가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500여섬지기 자작농 겸 지주였고 서울에서 큰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경영의 덕목을 키워나갔다. 창업주 세대는 대부분 평범한 가정과 연을 맺었다. 큰 누이는 평범한 가정으로 출가했고, 둘째 누이도 작은 사업가에 시집을 갔다. 형님 이재형 전 국회의장 역시 평범한 집안의 류갑경 여사를 아내로 맞았다. 수암도 예외는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배필을 맞았다. 아래 동생들도 일반적인 가문과 결혼을 올렸다. 하지만 막내 이재연 아시안스타 회장의 결혼에서는 국내 굴지의 재계와 혼인을 맺는다.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차녀 구자혜(68)여사와 결혼하면서 대림과 LG는 사돈의 연을 맺는다. 이를 계기로 이 회장은 줄곧 LG그룹 경영에만 참여하고 있다. 자녀들도 명문가문과 연을 맺었다.LG카드 부회장을 지냈으며 LG그룹 고문으로 활동했다. 이 회장은 장인이 강세원 전 희성금속 사장과, 박동복 전 금호전기 회장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어 이들과는 한다리 건너 사돈지간이다. 이준용 회장의 형제로 이어진 2세부터는 본격적으로 정·관계, 재계 혼맥이 형성된다. 이 회장은 1965년 연애끝에 이화여대 출신의 한경진 여사와 혼인했다. 장인인 한순성씨는 천안 사업가 집안 출신이었다. 처음에 양가에서 두 사람의 연애결혼을 반대하는 바람에 결혼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남 이부용 전 대림산업부회장도 경희대 출신의 이선희 여사와 결혼, 재계 인맥을 쌓는다.1970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만났으며 장인이 서울주철회장과 헌정회 이사를 지낸 이종수씨다. 이 회장의 백부인 이재형 전 국회의장은 은행간부 출신인 배상준씨 집안에서 큰 며느리를 맞았다. 이어 큰 딸은 원용덕 전 헌병사령관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작은 사업가와 결혼했던 둘째 고모 고 이임출의 딸은 윤용구 일동제약 회장 아들과 혼인을 맺었다. 숙부 이재연 아시안스타회장은 오세중 세방회장과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장관 집안에서 며느리를 얻었다. 3세에 들어서 재계 혼맥은 더욱 두터워진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사장은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김선혜(34) 여사와 결혼했다. 장모가 구자경 회장의 큰 딸 구훤미 여사, 장인은 희성금속 회장을 지낸 고김화중씨다. 이들은 친지의 소개로 만나 연애결혼했다. 이로써 대림산업은 LG가와 두번째 혼맥을 만들었다. 차남 이해승씨의 부인 김경애 여사는 전 미국 미주리대 김현영 박사의 딸이다. 3남 이해창(34)씨의 부인 최영윤(30) 여사는 같은 건설업종인 삼환기업 최용권 회장의 큰딸이다. 초창기 우리나라 토목 건설산업을 일군 두 집안이 사돈을 맺게 된 것이다. 아는 사람이 소개해 연애결혼했다. 결혼 당시 양가 부모들은 청첩장에 결혼 일자만 표시하고 장소, 시간은 넣지 않았다. 친지들에게 두 사람의 결혼 사실만 알리고 식장 참석과 축의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막내딸 윤영(33)씨 남편은 외국계 금융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이다. 가족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요일마다 이 회장 집에서 모인다. 이 회장은 손자들이 보고 싶을 땐 아침 일찍 자식들 집을 찾곤 한다. ●전문 경영인, 업계 최장수 베테랑 대림산업㈜ 이용구(59) 사장은 6년 가까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71년 대림에 입사, 해외·주택 영업 담당 임원, 기획조정실장, 행정본부장, 사우디 사업본부장, 공사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친 정통 건설맨. 몇 안되는 해외건설 전문가로, 국제감각이 탁월한 국제신사로 알려져 있다.35년간 이 회장과 함께 하면서 임직원들의 맏형 역할을 하는 등 이 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대림산업의 한 축인 유화사업부문을 이끌고 있는 CEO는 한주희(53) 대표이사 부사장.80년 입사해 관리, 기술기획 및 영업 핵심 업무를 맡았다. 대림 코퍼레이션 기획 담당 임원, 대림 H&L초대 대표이사를 지냈다. 중국 전문가로 바이어 협상에 있어 귀재로 평가받는다. 고려개발㈜ 오풍영(63) 사장은 95년 관리인 사장으로 임명돼 10년 넘게 장수하는 최고경영자.ROTC중앙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대림산업에 근무하다가 8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로 옮겨 기획·재무부문을 담당했다. 관리인 취임과 동시에 경영혁신에 드라이브를 거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 당초 2007년까지 계획됐던 법정관리를 9년 앞당겼다. ㈜삼호 신일철(56) 사장은 현장중심 경영자.2001년부터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81년 입사하기 전 금융기관과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기획, 예산, 재경 등을 담당하다가 임원 승진 이후 인사, 자재, 안전 등 전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업계 최상위 수준의 안전경영을 하고 있다. ㈜대림코퍼레이션과 대림 H&L을 동시에 맡고있는 박준형(53) 사장은 76년 대림 석유화학에 입사한 여천 석유화학단지 건설의 역군. 유화 부문 공장장, 구조조정 담당 임원, 석유화학사업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대림코퍼레이션은 석유화학 주력 무역회사, 대림H&L은 유화 부문 물류 회사. 석유화학 산업 위기를 구조조정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했다. 대림콩크리트공업㈜ 서봉삼(61) 사장도 장수 CEO.2000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70년 대림산업 입사 이후 주요 건설 현장을 누볐다. 상·하 구분없이 조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합리적인 경영을 하는 CEO로 평가받는다. 지시와 통제보다 자율과 협력을 강조한다. 오라관광㈜ 김부경(57) 사장은 국내 최대 관광지인 제주에서 512실 규모의 특급호텔과 국제적 수준인 36홀 규모의 골프장을 운영하는 최고경영자.83년 오라관광에 입사, 국내·외 판촉, 객실 운영 등 회사의 주요 업무를 두루 거쳤다. 제주도 관광업계의 산증인. 제주관광협회 부회장, 제주지역골프협회장으로 활동중이다. 대림 I&S 김영복(46) 사장은 38세에 임원,40세 대표이사 등 대림그룹내 최연소 기록을 두루 갖고 있다. 늘 새로운 발상으로 주위를 놀라게 해 ‘아이디어 뱅크’로 소문났다.81년 대림산업에 입사,4년 6개월간 쿠웨이트 현장에서 전산업무를 담당한 것이 인연이 돼 대림그룹의 디지털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 대림자동차공업㈜ 박노균(57) 사장도 2000년부터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73년 대림산업에 입사, 사우디아라비아 현장과 대림엔지니어링 재무담당 이사 및 행정본부장을 역임했다. 현장경영을 중시해 수시로 지방 사업장을 둘러본다. 외환위기 이후 이륜차 산업의 극심한 침체로 인한 경영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냈다. 웹텍 창업투자 이대영(50) 사장은 금융 전문가.79년부터 94년까지 은행, 레이니어은행, 한미은행,JP모건, 한국신용정보에서 근무하고 화동창업투자 대표이사를 지내기도 했다.95년 대림엔지니어링 국제금융 이사로 인연을 맺어 대림산업 구조조정 담당 상무로 있다가 99년부터 웹텍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chani@seoul.co.kr ■ ’닮은꼴’ 창업주 父子 대림산업 창업주 이재준 명예회장과 이준용 회장은 여러 면에서 닮은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곁눈질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고집쟁이라는 점에서 같다.66년 된 회사지만 건설에서 벗어난 적이 한번도 없다. 건설이 제자리를 잡을 즈음해서 확장한 분야라고 해봤자 유화 부문 정도다. 덩치를 키우는 것을 자제한 것도 닮았다.‘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라.’는 말이 있지만 대림은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회사다. 하지만 옳다싶으면 금방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정도로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장점도 지녔다. 청탁을 하지도 않고 받을 줄도 몰랐다. 창업주는 인사 청탁에 있어서는 매우 완곡해 부모님이 살아 돌아와 청탁해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빽’이나 동창생을 찾아다니면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고 박정희 대통령 생전에 청와대에서 들어온 인사 청탁을 거절한 일화도 있다. 그는 대통령의 부탁을 감히 거절할 수는 없겠지만, 본인이 경영일선에서 물러서 있을 때면 몰라도 당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명예회장과 현 회장 모두 쉽게 권력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사업가로서 자기 일에만 매달렸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져 형제간 독립된 사업을 일구거나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친인척이 배제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움직인다. 그래서 친인척들로부터는 ‘남남만도 못한 회사’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이 회장은 “대림은 대주주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본인의 의지와 그에 합당한 능력이 뒤따라야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친인척 경영에 있어서 창업주와 똑같은 모습이다. 이 회장의 동생 부용씨는 대림산업 부회장을 지냈지만 지금은 대림산업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이 전 부회장은 대림통상 지분을 놓고 숙부와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chani@seoul.co.kr ■ 李회장 부부 ‘남다른 문화사랑’ 서울 종로구 통의동 경복궁 옆에 위치한 대림미술관. 화려하지 않지만 멋스러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대림미술관은 유난히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대림산업 임직원들은 물론 점심 때는 주변 사무실 직장인과 공무원들이 단골 관람객이다. 대림 관련 업체들은 단체로 다녀간다.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문화활동을 적극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림이 문화예술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이준용 회장 부부가 문화예술에 갖는 관심의 크기와 비례한다. 이 회장은 94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탄생할 때부터 부회장으로서 활발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대외 직함을 좀처럼 갖지 않으려는 이 회장이지만 10년넘게 이 단체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문화예술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한경진 여사의 역할도 크다. 한 여사는 대림미술관을 맡아 대림의 문화공헌 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대림미술관은 대림이 120억여원을 출연해 문을 연 사진매체 전문 미술관.93년부터 대전에서 운영해 온 한림미술관이 모태인데 2003년 서울로 옮겨 한 단계 발전시켰다. 이 미술관은 프랑스의 미술관 전문 건축가인 뱅상 코르뉘와 루브르 미술학교의 장 폴 미당 교수가 설계했다. 대지 253평에 지상4층, 연면적 366평 규모다. 대부분의 기업은 미술관 설립 때 한번 출연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대림은 운영에도 적극적이다. 문화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현실에서 미술관이 자립운영을 해나가기에는 아직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대림은 전시가 바뀔 때마다 직원들에게 전시를 관람토록 장려하고 경영전략회의나 송년회 등 사내 각종 모임을 미술관에서 열기도 한다. 예술에 대한 친숙도는 직원들의 창의적 사고를 키워주고 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대림이 개발한 아파트 외벽 디자인은 미술저작권 등록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건축조형물들이 건축분야의 저작권에 등록되는데 비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술분야의 저작권을 얻기는 쉽지 않다. 이 외벽디자인이 적용된 역삼 e-편한세상의 경우 외관의 차별화로 주변 다른 아파트들에 비해 가격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직원들은 문화적 소양과 미적 안목이 결국 다른 업체와 다른 품질 경쟁력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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