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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하루라도 빨리 공원화…국민 건강 최우선 과제”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하루라도 빨리 공원화…국민 건강 최우선 과제”

    “막힌 실내보다 옥외 활동을 선호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만큼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공원화 사업도 하루빨리 진행되는 게 바람직합니다.” 건축가 출신인 3선의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최근 서울시가 밀어붙이는 한진그룹 소유의 송현동 땅인 일명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공원화 사업을 맨 처음 제안한 주인공이다. 그는 구청장에 처음 취임한 해인 지난 2010년 11월 대한항공 측에 송현동 부지를 종로구청사 땅과 맞바꾸자고 제안했다. 당시 그 땅에 7성급 호텔을 짓겠다는 한진의 계획이 학교 인근에 호텔을 짓지 못하도록 규정한 학교보건법 등을 이유로 당국에 의해 거부당하자 환지 아이디어를 내 부지를 광화문광장과 연계할 수 있는 대형 숲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김 구청장은 지난 1일 민선 7기 취임 2주년, 구청장 취임 10년차를 맞아 지난 6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임기 내 완수해야 할 대표 사업으로 송현동 부지 숲공원 조성을 꼽았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막기 위해 지방정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고 녹지와 공원을 최대한 많이 조성해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라면서 “3선 연임 마지막 임기 내에 송현동 부지 공원화 조성 사업이 반드시 궤도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미 10년 전부터 송현동 부지 숲공원 조성 아이디어를 내놓고 구체화 작업을 시도했는데. “송현동 땅은 특별계획구역으로 도시설계된 규제 지역이어서 용적률이 낮다. (한진그룹 측이) 원래부터 호텔 부지가 아닌 땅을 사서 호텔을 지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공간이 돼야지 상업 공간이 돼선 안 된다고 봤다. 우리가 너무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살다가 보니까 당장 효율성만 따지는데 국민 건강을 위해 녹지를 확보하고 도시인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보듯 국민 건강이 위협받으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세금이 들더라도 송현동 부지를 시가 매입해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진그룹 측은 서울시가 제시한 가격(4670억원)이 낮다며 거부하는데. “국민 세금으로 내는 것인 만큼 (송현동 부지 인수비는) 과도해선 안 되겠지만 코로나 사태에서도 보았듯 국민 건강 사후약방문은 의미가 없다. 국민 건강이 달렸는데 돈이 문제인가. 다만 기업 입장에서 볼 때 투자는 성공적일 때 이득이 남는 것이다. 잘못된 투자로는 이득을 남길 수 없다. 지난 2008년 이뤄진 한진의 매입가(2900억원)를 감안하면 밑지는 것도 아니다. 송현동 부지는 역사와 문화가 서린 땅인 만큼 본연의 성격에 맞게 상업시설이 아닌 시민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게 마땅하다.”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 사이 지역 경로당을 중심으로 나온 어르신 확진자가 5명에 그친 것은 선제대응의 결과라는 평인데. “관내 한 교회에서 설 연휴 사흘 뒤인 지난 1월 30일 첫 어르신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이 어르신께서 이화동 복지관과 숭의1동 경로당을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5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종로구 인구가 15만명으로 서울 자치구 가운데 인구수는 두 번째로 적지만 노인비율은 세 번째로 많아 신속한 대처를 하지 않으면 어르신 집단감염 사태로 확산될 위험이 있었다. 이에 구는 첫 확진자와 관련된 접촉자들을 능동적으로 찾아 검사하는 한편 긴급하게 관내 노인 복지관을 전면 폐쇄하고 동 신년인사회, 윷놀이 행사 등을 취소해 추가 확산을 막았다. 며칠만 늦었다면 큰 사태로 번졌을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유흥시설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져 상당수 업소들이 벌써 2개월이나 영업을 못하고 있는데. “단란주점이나 콜라텍 등 유흥업소의 영업을 봉쇄하는 집합금지 명령은 서울시의 방침이다. 다만 지난 1일부터 고위험시설에 전자출입명부 제도가 도입됐다. 이용자는 QR코드를 찍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고 위반 사업자는 벌금형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이 같은 생활방역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는 만큼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 영업을 허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방역 수칙이 철저히 지켜진다는 조건 아래 일부 업소들이 영업을 재개하도록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영업을 막을 수만은 없다. 현재 종로구 관내 230여개 공공시설은 폐쇄 중인데 코로나19를 억제하기 위한 철저한 방역 실시와 함께 박물관, 미술관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비교적 잘 준수되는 공공시설부터 개방하려고 검토 중이다.” -공공기관이 다 문을 닫으면 취약계층 폭염 대책은. “작년에 이어 올 들어 취약계층 가정에 에어컨 179대를 설치하는 에어컨 지원 사업을 해오고 있다. 물론 이 사업으로 전체 저소득층 폭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일단 폭염 대비는 우리 동주민센터나 복지관을 활용해야 한다. 방역을 철저하게 하면서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언제든지 바로 문을 열 수 있도록 점검을 하고 있다.” -민선 7기 하반기 중점 사업은. “코로나19 이후 실내 활동보다는 실외 활동이 늘어날 것이다. 이에 따라 낙후된 어린이 놀이터나 지역 공원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가족끼리 함께 보낼 수 있는 야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놀이터 및 공원 개선 공사를 실시하겠다. 추가 건립도 한다. 남은 임기 동안 어린이공원과 생태공원 11곳을 더 짓겠다. 미세먼지를 없애기 위해 녹지 가꾸기도 속도를 내겠다. 8m 높이 나무 한 그루가 200명이 숨쉴 수 있는 양의 산소를 만든다. 종로 내 교통섬을 녹지화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나무 이외에 농산물도 심을 계획이다. 농사를 지어서도 얼마든지 좋은 경관을 만들 수 있다.” 진행 주현진 사회2부장 jhj@seoul.co.kr정리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김영종 구청장 ▲1953년 전남 곡성 출생 ▲조선대병설공업전문학교(1973),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1990),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환경설계학 석사 수료(1993), 한양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2010) ▲서울시공무원 7급 근무(1973~1984) ▲건축사 자격 취득(1983) ▲김영종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2001~2010) ▲세계문화유산도시협의회 회장(2012~2014) ▲지속가능발전지방정부협의회 회장(2018~2019) ▲대한민국건강도시협의회 의장(2019~2020 현재)▲민선 5·6·7기 종로구청장(2010~2020 현재), 김영자씨와의 사이에 1녀
  • “李, 약해 보여… 박력 있는 사람 뽑아야” “黃, 상식에 안 맞아… 반대만 해선 안 돼”

    “李, 약해 보여… 박력 있는 사람 뽑아야” “黃, 상식에 안 맞아… 반대만 해선 안 돼”

    “누가 돼도 똑같다. 보이는 것만 신경쓰지 서민들이 불편한 일에는 관심이 없어. 막말로 그놈이 그놈이여.”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입구의 한 미용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미용실 주인 이모(63·여)씨와 주민 오모(60·여)씨는 4·15 총선 얘기가 나오자 “20~30년을 이곳에서 살았지만 공약이 지켜지는 것을 별로 못 봤다”며 “둘 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두 유권자는 “투표는 프라이버시”라면서도 오씨는 “좀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좀 물렁하다”며 현 정권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고, 이씨는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하는데 (야당이) 너무 반대만 하니까 그것도 좀 싫더라”며 옹호했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와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의 빅매치가 성사된 지 두 달,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의 표심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종로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반반이다”, “좀더 지켜봐야 안다”며 표심을 잘 드러내지 않았는데, 현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경제 문제, 조국 논란 등을 두고 의견이 교차됐다. 창신동에서 거주하고 있는 프리랜서 작가 은보람(34·여)씨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은씨는 “최근 N번방 사건과 관련해 황 후보의 발언을 듣고는 화가 났다”면서 “지금 우리 세대가 느끼는 상식이 현 시대의 상식이라는 점을 통합당은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회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문모(53)씨는 “경제문제를 떠나서 탄핵을 당했으면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통합당에선 그런 게 전혀 안 보인다. 황 후보도 탄핵 때 국무총리 하던 분 아니냐”며 “반성도 책임도 없이 헐뜯고 반대하는 모습이 싫다”고 꼬집었다. 반면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만난 이화동 주민 김모(79)씨는 황 후보를 뽑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좀 박력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나. 이낙연은 윗사람한테는 잘할 것 같은데 약해 보인다”며 “경제문제, 북한문제, 안보문제 다 너무 끌려만 다녀서 이제는 바꿔 봐야겠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모(64)씨 역시 “내 고향은 전북 익산인데 이번에는 정당도, 인물도 2번을 찍겠다”고 말했다. 그는 “월 200만원 벌이하던 게 지금은 100만원도 안 나온다. 지난달 사납금으로 꼴아박은 돈만 19만원”이라며 “코로나 영향도 있겠지만 민주당은 죄다 운동권 출신이다 보니 전문성이 없다. 한국당(통합당을 의미)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나마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지지하던 정당이 있음에도 특정 이슈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회동 주민 조모(60·여)씨는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조국 사태 이후 관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청동에서 음료 가게를 운영하는 정찬용(49)씨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정치 아마추어 같은 모습에 실망을 많이 했다. 그렇다고 야당 쪽에서 대신할 만한 인물이 안 보인다”며 “이럴 거면 선거를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이낙연, 물렁해”vs“황교안, 상식 밖”…종로 민심 탐방해보니

    “이낙연, 물렁해”vs“황교안, 상식 밖”…종로 민심 탐방해보니

    ‘정치 1번지’ 서울 종로, 숨은 민심 르포 “누가 돼도 똑같다. 보이는 것만 신경쓰지 서민들이 불편한 일에는 관심이 없어. 막말로 그놈이 그놈이여.”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초입의 한 미용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미용실 주인 이모(63·여) 씨와 주민 오모(60·여) 씨는 4·15 총선 얘기가 나오자 “20~30년을 이곳에서 살았지만 공약이 지켜지는 것을 별로 못봤다”며 “둘 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두 유권자는 “투표는 프라이버시”라면서도 오씨는 “좀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좀 물렁하다”며 현 정권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고, 이씨는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하는데 (야당이) 너무 반대만 하니까 그것도 좀 싫더라”며 옹호했다.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와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의 빅매치가 성사된 지 두 달, 여야 대권주자들이 나선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의 표심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종로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반반이다”, “좀 더 지켜봐야 안다”며 표심을 잘 드러내지 않았는데, 현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경제 문제, 조국 논란 등을 두고 의견이 교차됐다. 창신동에서 거주하고 있는 프리랜서 작가 은보람(34·여)씨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은씨는 “최근 N번방 사건과 관련해 황교안 후보의 발언을 듣고는 화가 났다”면서 “지금 우리 세대가 느끼는 상식이 현 시대의 상식이라는 점을 통합당은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회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문모(53) 씨는 “경제 문제를 떠나서 탄핵을 당했으면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통합당에선 그런 게 전혀 안 보인다. 황 후보도 탄핵 때 국무총리 하던 분 아니냐”며 “반성도 책임도 없이 헐뜯고 반대하는 모습이 싫다”고 꼬집었다.반면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만난 이화동 주민 김모(79)씨는 황 후보를 뽑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좀 박력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나. 이낙연은 윗 사람한테는 잘할 것 같은데 약해 보인다”며 “경제문제, 북한문제, 안보문제 다 너무 끌려만 다녀서 이제는 바꿔봐야겠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모(64)씨 역시 “내 고향은 전북 익산인데 이번에는 정당도, 인물도 2번을 찍겠다”고 말했다. 그는 “월 200만원 벌이하던 게 지금은 100만원도 안 나온다. 지난달 사납금으로 꼴아박은 돈만 19만원”이라며 “코로나 영향도 있겠지만 민주당은 죄다 운동권 출신이다 보니 전문성이 없다. 한국당(통합당을 의미)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나마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 설명했다.원래 지지하던 정당이 있음에도 특정 이슈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회동 주민 조모(60·여)씨는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조국 사태 이후 관망하고 있다”며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런 공정성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돼야 하는데 이낙연 후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를 확실하게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청동에서 음료 가게를 운영하는 정찬용(49)씨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정치 아마추어 같은 모습에 실망을 많이 했다. 부동산이며 정책들이 전문적이지도 않고 인기몰이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그렇다고 야당 쪽에서 대신할 만한 인물이 안 보인다”며 “이럴 거면 투표를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과부하 걸린 질본, 확진자 공개 지연… 방역 골든타임 놓칠라

    과부하 걸린 질본, 확진자 공개 지연… 방역 골든타임 놓칠라

    성동 29시간 뒤 공개해 방역 무차별 살포 종로도 동선 무관한 곳 방역한 경우 허다 일각 “지자체가 자체 동선 공개” 주장도 “민간분야 역학조사관 등 외부수혈 필요”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중앙방역대책본부를 맡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질본)의 확진자 동선 공개가 늦어 지방자치단체가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질본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환자는 국내 602명, 서울지역만 25명 등에 달한다. 확진환자의 동선 공개는 질본과 지자체의 역학조사가 진행된 뒤 질본에서 발표한다. 동선 공개는 대부분 24시간이 지난 뒤에 이뤄지고 있다. 확진환자의 동선 공개가 늦어지면 지자체의 방역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지난 19일 성동구에서 오전 7시 55분 확진 판정을 받은 40번 확진환자의 동선은 29시간 뒤인 다음날인 오후 2시 공개됐다. 이 기간 동안 구는 40번 환자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방역에 나섰지만 정확한 동선을 알지 못해 확진자의 아파트 내외부와 주변을 광범위하게 소독할 수 밖에 없었다. 구 관계자는 “확진환자를 격리한 직후 동선 파악이 바로 실시돼 최대한 빨리 공개됐다면 확진환자가 방문했던 곳을 즉각 방역 또는 폐쇄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같은 날 여섯 번째 추가 확진환자가 발생한 종로구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전 9시쯤 확진 판단을 받은 부암동 거주 환자 역시 폐렴 증상으로 방문한 관내 A이비인후과를 제외하고는 방문 정보가 구청에 제공되지 않았다. 이후 27시간 뒤인 20일 오후 2시 확진환자가 관내 경로당 등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방역에 나서기도 했다. 첫 지역사회 감염으로 의심을 받았던 29번(82) 환자의 감염 고리도 뒤늦게 풀렸다. 종로구 확진자 중 29번, 56번(75), 83번(76), 136번(84) 환자는 지난달 28~31일 나흘 동안 이화동 종로노인복지관을 동일 시간대에 방문했다. 발단은 지난달 20일 중국 우한에서 귀국한 3번 환자(54)였다. 이 환자는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의 유명식당 한일관에서 6번 환자(56)와 식사를 했다. 83번 환자는 지난달 26일 같은 시간대에 6번 환자와 종로구 명륜동 명륜교회를 방문했다. 방역 당국은 83번 환자가 6번 환자로부터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확진환자의 동선 공개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질본은 “역학조사의 신중성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들어 확진환자가 늘어나면서 질본 내 역학조사를 위한 인력이 부족한 것도 동선 공개가 지연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각에서는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동선 공개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박근혜 정부의 보건복지부와 상의 없이 ‘시민의 알권리와 안전’을 내세우며 확진자의 동선을 일방적으로 공개,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질본에 앞서 서울시가 동선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전문가들은 질본이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황에서 역학조사를 위한 특단의 대책 강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염 전문가는 “질본에서도 자체 인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민간 분야의 역학조사 인력을 충원하는 등 능동적이며 다각도의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서울포토] 눈 오는 길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한 시민

    [서울포토] 눈 오는 길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한 시민

    이틀째 눈이 내리고 있는 17일 서울 이화동 인근 제설이 덜 된 길을 한 시민이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2020.2.17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 보기 싫어… 커리어 위해 볼모 잡아”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 보기 싫어… 커리어 위해 볼모 잡아”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 보기 싫어요. 이번엔 투표소 안 가려고요.”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는 이번 4·15 총선에서도 이름값을 톡톡히 하게 됐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한 달여 동안 고심 끝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총리와의 빅매치가 성사됐기 때문이다. 종로 밖 정치평론가들은 대선 전초전이 될 종로 선거를 예측하고 후폭풍을 가늠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막상 투표권을 쥐고 있는 유권자들은 싸늘했다. 정권도 심판해야 하고, 야당도 심판해야 하는 복잡한 심사가 고스란히 감지됐다. 종로에서 30여년을 살면서 선거 때마다 꼬박꼬박 투표하는 것으로 종로 주민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진덕수(65)씨는 9일 민심을 들으러 온 서울신문 기자에게 “두 후보 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면서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 선거에선 유난히 마음을 정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총선 때마다 여야 정치 싸움의 격전지로 종로가 오르내리는 데 불만을 토해 내는 목소리도 많았다. 종로 이화동 거주 5년차 직장인 진모(31)씨는 “종로의 주목도가 큰 것은 이해하지만, 지역 사회와 밀접한 인물이 출마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면서 “솔직히 본인들 정치 커리어를 위해 종로 유권자를 볼모로 잡는 것 아니냐”며 양측 후보를 모두 비판했다. 선거철마다 시끄럽기만 할 뿐 지역 주민들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싸늘한 민심 속에선 승자를 예측하기 어려워 보였다. 40년간 평창동에서 살았다는 김상학(67)씨는 “요즘 종로 가게들이 워낙 문을 많이 닫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꼽힌다”면서 “아무래도 정권을 심판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황 대표가 근소한 차이로 역전승을 이루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나 관철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59)씨는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지금 한국이 보릿고개를 넘는 수준이 아니지 않으냐”면서 “문재인 정부가 남은 기간 동안 안정감 있게 개혁을 추진하려면 이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미래 비전과 지역 공약을 제시하며 정권 심판론의 예봉을 피하려 했다. 그는 이날 사직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4·15 총선을 종로와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출발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용산~고양 삼송 구간 신분당선 연장 추진 등 첫 번째 지역 발전 공약을 내놓았다. 이 전 총리는 “청년이 돌아오는 종로로 바꾸려면 교육, 보육, 주거환경, 산업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서 “광화문광장 조성 문제는 교통문제 해결이 선결된 뒤에 공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대표가 종로를 ‘정권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고 한 것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다른 후보들의 선거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추가 언급을 삼갔다. 지난 7일 황 대표가 출사표를 던졌을 때 이 전 총리는 “미래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기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뒤늦게 종로에 뛰어든 황 대표는 이날 첫 행보로 지하철1호선 종각역 ‘젊음의 거리’를 찾았다. 높은 공실률로 붕괴된 종로 상권을 잘 드러내는 곳이다. 정권심판론을 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했다. 한때 인파가 끊이지 않았던 젊음의 거리는 초입 양측 첫 건물부터 ‘임대’라고 큼지막히 쓰인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그 뒤로도 텅 빈 가게가 즐비했다. 한 상인은 “1년 넘게 빈 상가도 꽤 많다”고 귀띔했다. 황 대표는 상인들을 만나면서 “제가 알던 종로는 경제·정치 중심지였는데 지금은 옛날의 활력은 없어지고 참담한 상황”이라면서 “잘못된 정책으로 망가진 종로 경제를 반드시 살려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소속 이정현 의원의 거취도 변수다. 보수 진영에서는 표 분산을 우려해 이 의원과 황 대표의 단일화를 바라는 분위기다. 이 의원 측은 “이번 주 내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로는 15대 총선 이후 6번의 총선에서 보수 진영이 4번, 진보 진영이 2번 승리했다. 지난 20대 선거에서는 당시 민주당 정세균(52.6%) 후보가 새누리당 오세훈(39.7%) 후보를 크게 이겼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보기 싫어…이번엔 투표소 안 가요”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보기 싫어…이번엔 투표소 안 가요”

    ‘정치 1번지’ 서울 종로 빅매치 르포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 보기 싫어요. 이번엔 투표소 안 가려고.”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는 이번 4·15 총선에서도 이름값을 톡톡히 하게 됐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한 달여 동안 고심 끝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총리와의 빅매치가 성사된 탓이다. 종로 밖 정치 평론가들은 대선 전초전이 될 종로 선거를 예측하고 후폭풍을 가늠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막상 투표권을 쥐고 있는 유권자들은 싸늘했다. 정권도 심판해야 하고 야당도 심판해야 하는 복잡한 심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종로에서 30여년을 살면서 선거 때마다 꼬박꼬박 투표하는 것으로서 종로 주민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진덕수(65)씨는 9일 민심을 들으러 온 서울신문 기자에게 “두 후보 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면서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 선거에선 유난히 마음을 정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총선 때마다 여야 정치싸움의 격전지로 종로가 오르내리는 데 불만을 토해내는 목소리도 많았다. 종로 이화동 거주 5년차 직장인 진모(31)씨는 “종로의 주목도가 큰 것은 이해하지만, 지역 사회와 밀접한 인물이 출마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면서 “솔직히 본인들 정치 커리어를 위해 종로 유권자를 볼모로 잡는 것 아니냐”며 양측 후보를 모두 비판했다. 선거철마다 시끄럽기만 할 뿐 지역 주민들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싸늘한 민심 속에선 승자를 예측하기 어려워보였다. 40년간 평창동에서 살았다는 김상학(67)씨는 “요즘 종로 가게들이 워낙 문을 많이 닫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꼽힌다”면서 “아무래도 정권을 심판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황 대표가 근소한 차이로 역전승을 이루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나 관철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59)씨는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지금 한국이 보릿고개를 넘는 수준이 아니지 않느냐”면서 “문재인 정부가 남은 기간 동안 안정감 있게 개혁을 추진하려면 이낙연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전 총리는 미래 비전과 지역 공약을 제시하며 정권 심판론의 예봉을 피하려 했다. 그는 이날 사직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4·15 총선을 종로와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출발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용산-고양 삼송 구간 신분당선 연장 추진 등 첫 번째 지역 발전 공약을 내놓았다. 이 전 총리는 “청년이 돌아오는 종로로 바꾸려면 교육, 보육, 주거환경, 산업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서 “광화문 광장 조성 문제는 교통문제 해결이 선결된 뒤에 공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대표가 종로를 ‘정권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고 한 것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다른 후보들의 선거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추가 언급을 삼갔다. 지난 7일 황 대표가 출사표를 던졌을 때 이 전 총리는 “미래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기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뒤늦게 종로에 뛰어든 황 대표는 이날 첫 행보로 종각역 ‘젊음의 거리’를 찾았다. 높은 공실률로 붕괴된 종로 상권을 잘 드러내는 곳이다. 정권심판론을 펴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기도 했다. 한때 인파가 끊이지 않았던 젊음의 거리는 초입 양측 첫 건물부터 ‘임대’라고 큼지막히 쓰인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그 뒤로도 텅 빈 가게가 즐비했다. 한 상인은 “1년 넘게 빈 상가도 꽤 많다”고 귀띔했다.황 대표는 상인들을 만나면서 “제가 알던 종로는 경제·정치 중심지였는데 지금은 옛날의 활력은 없어지고 참담한 상황”이라면서 “잘못된 정책으로 망가진 종로 경제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황 대표가 젊은 시민들과 대화를 시도하자 이를 거부하며 줄행랑치는 모습도 보였다.무소속 이정현 의원의 거취도 변수다. 보수진영에서는 표 분산을 우려해 이 의원과 황 대표의 단일화를 바라는 분위기다. 이 의원은 “이번주 내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로는 15대 총선 이후 6번의 총선에서 보수 진영이 4번, 진보 진영이 2번 승리했다. 지난 20대 선거에서는 당시 민주당 정세균(52.6%) 후보가 새누리당 오세훈(39.7%) 후보를 크게 이겼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왕의 기운’ 서린 낙산서 넉넉한 품·뛰어난 풍광을 보다

    ‘왕의 기운’ 서린 낙산서 넉넉한 품·뛰어난 풍광을 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6차 서울의 영화4’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 편이 지난 19일 종로구 연건동과 명륜동, 이화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혜화역 3번 출구에서 집결, 서울대학교병원 안 옛 대한의원(의학박물관)을 향해 출발했다. 대한의원은 1907년에 준공된 서울대병원의 뿌리다. 새로 건립된 암병원 4층 옥상은 창경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 명소로 떠올랐다. 옛 창경원을 무대로 촬영된 영화를 되새김질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명륜동 한옥밀집거리를 지나 건축가 김수근의 붉은 벽돌건물 감상길에 올랐다. 김수근이 누이 김순자와 자형 박고석을 위해 설계한 명륜동4가 ‘고석공간’을 거쳐 샘터사옥~아르코 예술극장~아르코 미술관이 줄줄이 이어졌다. 박길룡이 설계한 옛 경성제국대학 본관(예술가의 집) 현관 앞 두 그루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불타고 있었다. 내년 1월 중 수리가 끝난다는 이화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본 뒤 1897년 탑골공원 대문기둥을 가져다 세운 옛 서울법대(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일정을 파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무형유산인 영화 ‘수학여행’과 유형유산인 대한의원, 명륜동 한옥밀집거리, 샘터사옥, 마로니에공원, 아르코 예술극장, 아르코 미술관 등 모두 7개였다. 참석자들은 “영화를 꼭 보고 싶어졌다”, “50년 전 수학여행을 다녀온 기분”, “알뜰한 설명을 해준 해설사가 담임선생님으로 출연해도 좋을 듯…” 등등의 답사 후기를 남겼다. 해설을 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참석자들을 50년 전 꿈의 서울 수학여행으로 인도했다.서울의 좌청룡 낙산(해발 126m)은 비록 낮지만 품이 넉넉하고 풍광이 뛰어난 산이었다. 종로구 이화동·동숭동·창신동을 끼고 있고 동대문구 신설동과 성북구 보문동·삼선동 등 3개 자치구까지 길게 이어진다. 낙산은 풍수도참설의 피해자였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장자(맏아들)와 친가를 뜻하는 좌청룡 낙산이 차자(작은아들)와 처가를 뜻하는 우백호 인왕산(338m)보다 낮아 장자와 친가가 차자와 처가에 기울어진다는 변고설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들이 주장한 ‘백악 주산론’과 무학대사를 중심한 불교세력의 ‘인왕산 주산론’이 팽팽하게 맞선 까닭이다. 태종 때 하륜의 ‘무악 주산론’까지 등장해 치열한 삼파전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백악산이 최후의 승리를 거둬 경복궁이 법궁이 되면서 조선은 장자 승계의 원칙이 어그러졌다. 조선 27명의 왕 중 장자는 5대 문종, 6대 단종, 10대 연산군, 12대 인종, 18대 현종, 19대 숙종, 20대 경종, 27대 순종 등 8명에 불과했다. 42년 동안 재위하면서 최악의 여난에 시달린 숙종을 제외하면 대부분 병약하거나 재위 기간이 짧거나 존재감이 없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재건하지 않고 296년 동안 창덕궁을 법궁으로 사용한 것도 기가 센 인왕산과 거리를 둔 결과다.낙산 기슭에는 제17대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봉림대군 시절에 살던 잠저 용흥궁과 손아래 동생 인평대군의 석양루가 사이좋게 마주 보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이 인평대군의 7대손이므로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인평대군의 직계후손이다. 공과를 떠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탄생시킨 이화장은 인평대군의 왕기가 서린 석양루를 품고 있다. 조선 한문 4대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문장가 장유는 “집터를 물색하며 거북이에 물어보니 저 낙산 언덕을 점지했다. 냇물이 반으로 나뉘어 두 갈래로 흐르는 이곳이야말로 평소 낙양(한양) 동촌의 승지(명승지)로 일컬어져 온 곳이다. 금원(창경궁)과 가까워 북극성(왕)의 존엄한 처소를 우러러볼 수 있어 더욱 좋다”라고 ‘인평대군의 새 저택에 대한 상량문’에서 석양루의 땅기운을 치켜세웠다. 냇물이 반으로 나뉘어 흐른다는 얘기는 성균관 위 옛 흥덕사에서 흘러내린 흥덕천의 흐름을 말한다. 성균관 또한 반궁이라 해 반수의 상류를 지칭하고 하류는 성균관 노비들이 사는 반촌이라고 일컬었다. 석양루는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의 옛 집터에 세워졌다. 신광한은 “나는 집 이름을 기재라고 했다. 우리 집은 동쪽 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산을 보려면 발꿈치를 들어 바라보면 되고. 우리 집 서쪽 길이 평평하고 곧은데 그 길을 가려면 발꿈치를 들고 가면 된다. 우리 집 앞에는 하천이 콸콸 흘러가는데 물이 흘러가서 쉬지 않는 것을 보면 발꿈치를 들어 감탄하게 된다. 우리 집 뒤쪽에는 소나무가 무성하게 서 있는데 겨울철에도 시들지 않는 것을 보면 발꿈치를 들어 바라보게 된다…”고 자택을 자화자찬했다. 사람들은 이 집이 있는 언덕을 신대라고 불렀다. 왕을 6명이나 섬겼고, 영의정을 2번 지내면서 국방과 외교에 공을 세웠던 신숙주의 음덕이었다. 조선 말 역사가 김택영이 지은 역사책 ‘한사경’에 따르면 “좌의정 신숙주가 노산군(단종)의 부인(정순왕후)을 노비로 삼고자 주청했으나 왕(세조)이 윤허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신숙주가 단종 부인을 노비로 삼겠다고 청한 것은 매우 간사하고 악한 것”이라고 평했다. 한때 주군으로 모셨던 왕의 부인을 첩으로 삼고자 한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조카를 죽인 비정한 세조였지만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조카며느리를 범하지 못하도록 낙산 동망봉 정업원에 비구니로 출가시켜 버렸다. 신대로 상징되는 신숙주 가문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종~문종~단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세조의 편에 서면서 영화를 누렸으나 조선 후기 집권한 사림파가 사육신을 추앙하면서 변절자로 낙인찍었기 때문이다. 대신 ‘숙주나물’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서울을 중심으로 저술한 인문지리서 ‘동국여지비고’에 “인평대군 집을 석양루라고 불렀다. 기와와 벽 등에 그림이 새겨져 있고 규모가 크고 화려해서 서울 장안에서도 으뜸가는 집이었다. 지금은 장생전(궁중 장례식에 쓰일 관을 제작하던 관아)이 됐다”고 기록했다. 낙산 아래 신대와 용흥궁, 낙양루, 장생전의 옛 땅에서 조선의 효종, 고종, 순종 등 3명의 왕과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나왔다. 현재 이화장 뒤뜰은 신대요, 대문 앞 주차장은 저녁볕이 좋은 낙양루이며, 마주 보는 곳에 효종의 잠저인 용흥궁이 있었다. 또 이곳에는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도 기거했다. 18세기 문인화의 대가 표암이 낙양루 바위에 남긴 ‘紅泉翠壁’(홍천취벽)이라는 글씨가 이화장을 짓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1960년대까지도 남아 있었지만 계곡에 집이 들어서면서 어딘가 묻혀 버렸다고 한다. 이화장은 1945년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이승만이 돈암장과 마포장을 전전하자 지지자 30여명이 모금운동을 펼쳐 구입해준 집이다. 마포장에서 백주테러의 위기를 넘긴 이승만에게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경비에 용이한 이 집이 적격이었다. 마당에는 이승만 동상이 서 있고, 이승만기념관이 있다. 산사의 칠성당을 연상시키는 숲속의 별채가 조각당이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이곳으로 내각 후보자를 불러 면담한 뒤 국무총리와 12부 장관을 뽑은 정부 수립의 산실이다. 4·19 혁명으로 하야한 뒤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길 원했지만 미국 하와이로 쫓겨났다. 1965년 사후 국내로 운구된 시신이 잠시 봉안됐고, 미망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1970년 귀국해서 1992년까지 살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7차 관악산 아랫마을 ■집결 장소 : 10월 26일(토) 오전 10시 사당역 6번 출구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한옥·한복·한글은 종로 상징어… 전통문화 계승은 나의 소명”

    “한옥·한복·한글은 종로 상징어… 전통문화 계승은 나의 소명”

    ‘역사·문화 숨쉬는 현대화된 도시’ 중점 전통가옥 복원은 종로만의 도시재생법 무계원·윤동주문학관·상촌재 등 대표적 청운문학도서관 한옥공모전 대상 영예 한복 입기 활성화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제4회 한복축제 21~22일 대학로서 개최 셔틀버스 추진 등 고질적 교통문제 해소 전통문화·현대적인 발전 위해 항상 최선한복, 한옥, 한식, 한글, 한지.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종로가 600년 고도(古都)라는 점에 착안해 역사·문화를 보존하면서도 현대화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면서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나아가 역사와 문화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론이다. 한복, 한옥, 한식, 한글, 한지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문화 콘텐츠 보호에 초점을 맞춰 온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종로 익선동에 191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출발해 1970~80년대 3대 요정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린 오진암을 2014년 3월 종로가 이축, 복원해 개관한 무계원에서 지난 3일 그를 만났다. 무계원이란 무계정사의 분위기를 옮겨 온 정원이란 의미로 종로구가 붙인 이름이다. -이곳 무계원은 어떤 곳인가. “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집이었다가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인 오진암으로 사용됐고 2000년 들어서는 호텔 건립으로 사라질 뻔했던 곳이다. 종로구는 안평대군의 숨결이 깃든 무계정사지 인근에 부지를 확보하고 오진암 철거 자재가 팔린 강원 인제 등으로 직접 찾아가 자재를 되찾아왔다. 숭례문 복원에 참여했던 건축기술자들이 기와, 서까래, 기둥 등 큰 자재는 물론 창호와 같은 부수 자재까지 옮겨와 오진암을 복원해 2014년 3월 개관했다. 각종 행사 등이 가능한 도심 속 전통문화 체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전통 가옥 복원은 역사 문화 도시인 종로만의 도시재생법이다.”-무계원 이외에도 2010년 민선 5기 취임 이후 서촌(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에 복원한 역사·문화 건축이 많은데. “종로는 서촌이 역사 인물 생가터가 모여 있는 것은 물론 국내 문학·예술의 거장들이 창작 활동의 무대로 삼아 온 근현대 유적이 풍부한 곳이란 점에 착안해 한옥 보존뿐 아니라 문화·역사 콘텐츠 보존을 중심으로 재정비 사업을 펼쳤다. 무계원과 함께 버려진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활용해 지은 옥인동 윤동주문학관이 대표적이다. 옥인동은 윤동주가 하숙했던 곳인데 문학관을 만들면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하늘, 바람, 별 그리고 민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펌프장 안에서도 별을 볼 수 있게 설계했다. 구립 박노수미술관, 상촌재 또한 가볼 만하다. 2012년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을 겸재 정선의 그림(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회화)처럼 복원할 때는 풀 한 포기 심는 것도 전통방식을 고집했다. 인왕산 인근에 한옥으로 된 청운문학도서관을 지어 2015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등 공공건물의 한옥 시대를 열기도 했다.”-서촌 이외에 북촌, 이화동, 익선동 등도 명소화했는데.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고 짚어냈다. 지역에 매력 있는 장소가 한 곳만 들어서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쳐서 전체를 활성화한다. ‘작은 것부터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라는 표어가 나온 것은 이런 철학에서다.”-한복 입기는 어떤 식으로 제창했는지. “종로2가 보신각 주변은 원래 한복 원단 판매상들이 밀집된 곳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그만큼 우리 옷을 안 입는다는 얘기다. 안타깝다. 2010년 민선 5기 출범 직후 한복을 입자고 했다. 설과 추석 명절 구의 크고 작은 행사 때 간부들과 직원들부터 한복 입기를 실천했다. 2013년부터는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열리는 간부회의에 참석자 60여명 전원이 한복을 입는다. 더불어 시민들의 한복 입기 활성화를 위해 한복을 입고 식당을 방문하면 음식값을 할인해 주는 한복음식점 프로그램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집에서 잠자는 오래된 한복도 개량해 주면서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곱다, 한복체험관’도 만들었다. 한복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한복을 입고 정숙관광 등 봉사활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매년 9월 종로한복축제까지 개최하게 됐다.”-올해 한복축제는 어떻게 이뤄지나. “올해로 4회째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관광 육성 축제로 지정돼 대표 관광콘텐츠로 인정받았다. 올해는 오는 21~22일 ‘우리 옷 한복 바로 알고 바로 입으면 더욱 곱습니다’를 주제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한다. 지난해는 한복 대토론회를 개최해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퓨전 한복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전통 한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장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한복을 바로 알고 바르게 입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잔치 한마당을 축제의 장을 빌려 제시하려고 한다. 한복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참여 가능한 한복뽐내기대회,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유소문화를 계승해 재현한 ‘2019 고하노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을 비롯한 연주 단원 모두가 한복을 입고 함께하는 한복음악회, 종로한복축제의 메인 피날레 공연인 강강술래 등을 준비했다.” -남은 기간 풀어야 할 과제를 꼽는다면. “종로에는 연간 950만명의 외래 관광객이 방문하는데 관광객 수용 한계 국면에 도달했다. 관광 성수기인 봄·가을에 종로구를 지나다 보면 경복궁을 비롯해 청와대, 인사동 등에 불법 주차된 관광버스들을 볼 수 있다. 주말 하루 약 2000대의 관광버스가 집중된다. 지금까지의 관광패턴은 관광버스에서 관광객이 하차하고 일정 시간 경과 후 승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관광버스는 도심 외곽에 주차하고 셔틀버스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셔틀버스 운영은 자연스럽게 도보여행 방식을 유도해 지역 상권의 매출을 증대시키고 고질적인 교통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더이상 출마가 어렵지만 큰 의미에서 정치적 포부나 진로가 궁금한데. “구청장 3선은 영광이다. 공직을 탐내지 않는다. 다만 구청장 임기를 잘 마치고 다시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종로가 전통문화 계승 및 현대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 진행 주현진 부장 jhj@seoul.co.kr정리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서울시 공무원→건축사→3선 연임 구청장건축인 역량 돋보인 도시비우기 사업 호평 서울시 공무원에서 건축사로 변신한 뒤 2010년 민선 5기 종로구청장에 당선돼 3선 연임 중인 건축 전문가 출신이다. 부지런하고 디테일에 강하며 항상 최선을 추구한다. 전남 곡성에서 농사짓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3년 광주 조선대 공업전문학교(고등학교 3년과 2년제 전문대 포함)를 졸업한 뒤 서울시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8년여간 건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1983년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이듬해 서울시에 사표를 내고 나왔다. 총 26년 4개월 동안 건축사로 일하며 백화점, 공동주택, 종합병원 등을 설계했고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올해의 건축문화인상을 받았을 만큼 건축인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35세 늦깎이로 서울산업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재산평가액이 시가 100억원을 넘을 만큼 건축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건축사로 일하면서 정치인의 꿈을 버린 적은 없다. 젊어서는 먹고살기 어려워 엄두를 못 냈으나 건축으로 돈을 번 뒤 생활 터전인 종로에서 구청장 선거에 도전했다. 김대중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8년 민주당에 입당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종로 지역 국회의원 선거를 돕기도 했다. 선거에서는 경선을 포함해 총 여섯 번 나와 세 번 이겼다. 청결과 정리정돈을 중시한다. 종로의 대표 사업인 도시비우기는 그의 성격과 건축인으로서의 식견을 반영한다는 평을 듣는다. 신호등, 표지판, 안내판, 전봇대, 배전함과 같은 시설물은 거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보행을 방해한다며 철거하는 도시비우기 사업을 2013년 시작한 뒤 지금까지 2만여 건을 정비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도로 물청소, 옥상청소 등 건강도시 사업은 전국으로 전파되는 등 호응을 얻었다. ▲1953년 전남 곡성 출생 ▲조선대병설공업전문학교(1973),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1990),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환경설계학 석사 수료(1993), 한양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2010) ▲서울시공무원 7급 근무(1973~1984) ▲건축사 자격 취득(1983) ▲김영종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2001~2010) ▲세계문화유산도시협의회 회장(2012~2014) ▲지속가능발전지방정부협의회 회장(2018~현재) ▲대한민국건강도시협의회 의장(2019~) ▲민선 5·6·7기 종로구청장(2010~) ▲부인 김영자씨와의 사이에 1녀
  •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창신동의 재발견’ 편이 지난 11일 창신 1·2·3동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울타리의 삶’ 한울삶에서 투어를 시작했다.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 뒤 이움피움 봉제역사관에서 ‘봉제의 모든 것’을 관람했다. 가수 김광석이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살았던 집에는 부친 김수영씨의 국가유공자 명패와 김광석의 창신동 시절을 기리는 바닥 동판이 붙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요화’ 배정자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비석이 남아 있는 대한불교 원효종 총본산 안양암~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1956년에 지어진 석조 고딕양식의 전형 동신교회~순댓국집으로 변한 화가 박수근의 화실 겸 집터~한때 ‘연예인아파트’로 주가를 올렸던 동대문아파트를 2시간 30분 동안 돌았다. 어린 시절을 창신동에서 보낸 고교 역사교사 출신 엄태호 해설사가 창신동 설화를 깊고 차분하게 들려줬다.동대문이 곧 창신동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대문은 동대문 안쪽 마을이 아니라 동대문 밖 마을을 일컫는다. 길 이름도 동대문 안은 종로고, 문밖은 왕산로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은 길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에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와 새문안(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운종가(종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종로의 시전, 서소문 밖 칠패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인 배오개(이현)시장과 이 전통을 이은 광장시장도 성 안에 있었다. 현재의 동대문시장은 동대문 바깥 창신동을 주 무대로 한 신흥 시장이다. 본래 동대문 밖 10리(성저십리)는 서울을 지키는 훈련도감 소속 하급 군인과 가족의 거주지였기에 이들이 재배하는 야채류가 상거래의 중심 물품이었다. 1905년 설립된 광장시장이 최고의 포목상가로 발돋움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창신동 지역의 공간과 취급품목의 변화를 가져왔다.창신동은 도성의 동쪽에서 도성 안으로 진입하는 문밖 동네였다. 성저(城底)란 성 밖 10리에 이르는 지역이지만 경기도가 아니라 서울의 행정구역 안에 포함되는 특수한 행정구역을 이른다. 서울의 좌청룡(左靑龍) 낙산을 따라 형성된 유서 깊은 동네다. 도성~강원도~함경도를 오가는 길목이어서 고려시대 서울이 남경(南京)일 때부터 번성했다. 창신동은 조선시대 인창방의 ‘창’자와 숭신방의 ‘신’자를 따 1914년 일제강점기 때 급조된 지명이다. 이웃 숭인동 또한 숭신방의 ‘숭’자와 인창방의 ‘인’자를 따서 만들었다. 창신동은 인창방이고, 숭인동은 숭신방인데 교묘하게 순서만 바꿔치기했을 뿐이다. 민족정기를 훼손시키려고 장난질을 했지만 지명의 원상회복은 요원하다. 행정구역상 동대문구 창신동이었다가 1975년 종로구에 편입됐다. 낙산 아래에는 종로구 이화동과 동숭동, 성북구 보문동과 삼선동, 동대문구 신설동 등 3개 구청 관할지역이 맞물려 있다.창신동은 예로부터 ‘돌산’ 낙산의 기운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 찾아든 권세가의 별서가 들어선 한가로운 지역이었다. 창신초등학교 남쪽 창신1동 82번지쯤에는 동지(東池)라고 불린 사대문 밖 4개 연못 중 하나가 있어서 정자동이라고 불렸다. 사색붕당이 각축하던 시절 동지의 연꽃이 많이 피면 동인이 득세하고, 천연동 서지 연꽃이 많이 피면 서인이 득세한다고 해 양당이 서로 연꽃을 뭉개거나 연못을 메우던 시절도 있었다. 창신1동 128 창신초등학교는 불교계가 도심포교를 위해 지은 원흥사의 옛 터다. 조계사로 옮겨가기 전까지 조선불교의 총본산이었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 부근에 있던 청룡정은 한량들의 활터였다. 창신동 202번지에는 실학자 이수광이 ‘비를 피하면서 청렴하게 살고자’한 비우당이 있다. 창신3동 7번지에는 단종비 정순왕후의 일화가 깃든 자지동천 우물이 있어서 이웃 숭인동의 동망봉, 정업사지, 여인시장과 어울려 순애보를 이루고 있다. 창신2동 옛 궁골 어림은 봉숭아와 앵두 등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많아서 홍숫골 또는 홍수동(紅樹洞)이라고 불렸다.낙산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여서 무속신앙의 대상이 됐다. 창신3동 서일국제경영고등학교 근방 당고개(당현) 바로 위 큰 바위에는 마을의 수호신 낙산신령을 모시는 도당(都堂)이 있었다. 조선 말 점술가 200여호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총독부건물 신축용 돌을 떼어가는 바람에 미아리고개로 옮겨 갔다고 한다. 창신동은 2개 사립대학교와 최초의 민간 여학교 창립의 터이기도 했다. 창신초등학교가 있는 원흥사지에는 동국대의 전신 명진학교가 처음 자리잡았고, 1932년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한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이 창신동에서 학교를 키웠다. 이후 1938년 흑석동에 교사를 신축해 중앙대로 발전시켰다. 창신1동 225번지 현재의 종로구민회관 일대는 1933년 설립된 최초의 민간 설립 여학교 동덕여중고가 방배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교사였다. 1898년 개설된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간 전차가 창신동을 지나가면서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이 틈입했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 귀국동포, 사대문 안 철거민까지 몰리면서 도심 인접 달동네로 변모했다. 일제강점기 성벽 아래 토막촌이 해방 이후 판잣집과 도시형 한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1916년부터 8년 동안 낙산 돌산에서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서울시청) 신축용 석재 채취가 본격화되면서 창신동은 피폐해졌다. 채석장 낙석사고가 빈번했고, 강도와 살인 사건은 물론 화재가 자주 발생해 치안위험지대의 오명을 뒤집어썼다.어쩌다가 창신동에 ‘봉제 DNA’가 깃들게 됐을까. 1958년부터 청계천 상류가 복개되면서 1961년 평화시장이 설립된 게 결정타였다. 동대문의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주거지대화한 것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평화시장 일대 의류생산 공장들이 대거 창신동으로 이전하면서 동대문 의류산업의 배후지대가 형성됐다. 공장과 주거지, 소비시장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특이한 공간이 자리잡은 것이다. 무허가 판잣집이 도시형 한옥으로 바뀌고, 채석장 자리에 창신시영아파트 3동이 세워졌다. 1964년부터 1969년 사이에 동대문스케이트장과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상가아파트, 낙산시민아파트가 차례로 건립되면서 면모를 일신했다. 1971년 동대문종합시장, 동화시장이 설립되고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봉제노동력이 주거지로 쏟아지고, 주거지 내 봉제공장이 확산됐으며 창신동에 봉제인력시장이 생긴 것도 역할을 했다. 이처럼 창신동은 1960~70년대 서울의 도시산업화 과정에서 봉제공장 지대화했다. 동양 최대 규모의 패션산업이 동대문 일대에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배후지대인 창신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동대문을 밝히는 보석은 골목골목에 숨어 있다. 동대문시장의 원단이 오토바이에 실려 창신동에 도착하면 옷의 본을 만드는 패턴작업장에서 재단·재봉을 거쳐 안감·주머니·단추를 다는 ‘마도메’, 다림질·포장 등 완성과정의 ‘시아게’를 마치면 옷이 완성된다. 3000여개의 작은 공장들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인 양 움직인다. 의류의 기획과 생산, 유통과 판매가 원스톱으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최신 유행의 옷 한 벌이 하루 안에 뚝딱 탄생하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 완제품은 오토바이를 타고 의류쇼핑의 메카 동대문시장으로 옮겨져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이 옷에는 ‘메이드 인 창신동’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옷의 고향이 창신동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한약진흥재단 제8차 한의약 보건정책 포럼 개최

    ‘제8차 한의약 보건정책 포럼’이 오는 14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다. 포럼은 이명수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약진흥재단이 주관한다. ‘보건의료체계에서 한의약의 역할 및 발전방향’이란 주제로 ▲경희대학교 동서의학연구소 고성규 소장이 ‘국내 보건의료체계 현주소’ ▲한국법제연구원 이세정 선임연구위원이 ‘국외 보건의료 법제도 현황 및 시사� ?� 발표한다. 종합토론에서는 서울대학교 김진현 교수가 좌장으로 나서며, 한약진흥재단 이화동 정책본부장, 대한한의사협회 이은경 부회장, 한국의료법학회 신은주 회장, 대한한의학회 한창호 정책이사, 경향신문 박효순 부장, 녹색소비자연대 최재성 정책센터장이 토론자로 참석한다. 한약진흥재단 이응세 원장은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에 따라 한의사제도가 도입된 이후, 한의학은 의학과 함께 국내 보건의료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이번 포럼을 통해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와 해외 보건의료 법제도 현황을 살펴보고, 국내 보건의료체계에서 한의약의 역할과 발전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포럼에 관심 있는 사람은 12일까지 신청하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며, 문의는 미래정책팀 김지원 연구원(02)3393-4525, cactus@nikom.or.kr)으로 하면 된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운동하는 종로 “건강산책 명소 함께 걸어요”

    운동하는 종로 “건강산책 명소 함께 걸어요”

    서울 종로구는 오는 20일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제70회 종로건강걷기대회를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앞서 지난 6월 말 삼청공원에서 열린 제69회 종로건강걷기대회에는 5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한 바 있다.대회는 마로니에공원에서 출발해 이화동 벽화마을을 지나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약 4㎞ 구간에서 이뤄진다. 오전 8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리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준비체조, 바른 걷기자세 교육 등을 한 후 걷기대회를 연다. 별도의 신청절차 없이 걷기대회 당일 오전 7시 50분까지 집결지인 마로니에공원으로 오면 된다. ‘건강도시’를 표방하는 종로구는 올해 초 ‘운동하는 종로 만들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종로건강산책로’를 발굴한 바 있다. 일상 속 걷기 실천에 적합한 20개 건강산책코스 및 20개 건강산책명소를 만들었다. 또 운동하는 종로 만들기 프로젝트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어르신 건강체조 개발·보급, 우리동네 건강실천동아리 운영, 학교운동시스템 구축, 운동정보제공시스템 구축 등을 진행해 왔다. 구는 ‘운동하는 종로 만들기 홈페이지’(www.jongno.go.kr/fitness)도 운영 중이다. 자치회관과 구립체육시설 등에서 각종 운동시설을 제공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경복궁둘레길, 인왕산숲길 등 종로건강산책로의 코스별 경로, 소요시간, 난이도, 소모 칼로리 등을 안내하고 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특별한 장비나 비용이 들지 않는 걷기 운동은 누구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간편한 운동”이라면서“이를 위해 구가 걷기 좋은 길을 지속 발굴해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 종묘(宗廟)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 종묘(宗廟)

    “왜적 대장 평수가(平秀家)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宗廟)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경동(驚動)하여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었다.” <선조실록 26권, 국편영인본 21책 486면> 1592년 음력 4월30일 새벽, 선조는 서울을 급히 빠져 나간다. 4월 14일에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과 열흘 만에 한성이 함락될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에 임금은 백성의 원성은 뒤로 한 채 급히 몸을 개성으로 옮긴다. 이 때 임금보다도 먼저 서울을 빠져나간 것이 바로 종묘와 사직에 있던 신주와 위판이었다. 조선에서 임금이라는 자리는 말 그대로 ‘종묘와 사직을 보전’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상징이자 유교의 심장인 종묘(宗廟)다. 종묘(宗廟)를 둘러보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덕수궁 등지를 휘적휘적 카메라 셔터 누르며 지나치는 발걸음과는 사뭇 다른 곳이 종묘다. 종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유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마음인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몸인 백(魄)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이를 ‘신혼체백(神魂體魄)’이라 하는데, 신혼은 사당으로 모시고 체백은 능이나 묘로 모셔진다. 여기서 조상의 마음, 즉 몸을 떠난 혼령이 머무는 장소가 바로 사당에 있는 나무로 만든 신주(神主)다. 흔히들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종묘는 바로 조선의 왕과 왕비들의 혼령, 즉 신주가 모셔진 사당이다. 지금의 종묘(宗廟)는 1395년 9월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한 후에 지었다. ‘궁궐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에 따라 경복궁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의 종묘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08년에 중건한 것이다. 현재 종묘에서 가장 중심 건물은 정전과 영녕전으로, 예전에는 지금의 정전을 종묘라 하였으나 현재는 정전과 영녕전을 모두 합쳐 종묘라 부른다. 정전은 왕과 왕비의 승하 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에서는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현재 정전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영녕전의 신실 16칸에는 34위의 신주를 모셨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지만,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숙종 때 명예를 회복한 단종의 신주는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원래 종묘는 풍수지리에 의거하여 응봉자락을 따라 흐르는 산줄기의 지맥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거쳐 흘러 들어온 길지(吉地)에 자리 잡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종묘와 창경궁 사이에는 도로가 동서 방향으로 나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때 광화문에서 이화동으로 통하는 도로(현재의 율곡로)를 내어 종묘로 들어오는 지맥을 끊었다고 한다. 현재 다행스럽게도 율곡로를 덮고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복원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한, 별스러운 장소인 종묘(宗廟). 우리는 이곳에서 낡아버린 조선 왕실의 옛 시간을 느낄 수가 있지 않을까? <종묘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장소야? -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가볼만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3. 위치는? - 지하철 종로3가역 (1호선)11번 출구, (3호선)8번 출구, (5호선)8번 출구 도보 5분 4. 꼭 봐야하는 곳은? - 정전, 영녕전, 신로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지만 의외로 관람객들은 많지 않은 편. 6. 여행의 의미는? - 역사서에 늘 나오는 ‘종묘와 사직을’에서 진짜 종묘를 만날 수 있다. 7. 주의할 점은? - 종묘에 대한 공부를 먼저 하고 가기를. 혹은 반드시 해설사와 함께 투어를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jm.cha.go.kr/agapp/main/index.do?siteCd=J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세운상가, 창경궁, 창덕궁, 인사동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서울 시내 역사적인 장소로서는 으뜸인 의미가 있다. 조선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인 종묘 방문은 적극 추천! 토요일 자유관람. 화요일 휴무, 나머지날은 시간제 관람이어서 종묘 홈페이지를 참조.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서울시 “내년부터 서울 도심에 공해차량 진입 제한”

    내년부터 서울 도심에 공해차량의 진입이 어려워진다. 서울시는 6일 국토교통부 고시를 통해 한양도성 녹색교통진흥지역 특별종합대책이 최종 확정됐다고 7일 밝혔다. 녹색교통진흥지역은 교통 혼잡과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자 ‘지속가능교통물류발전법’에 따라 특별히 관리하는 곳이다. 지난해 3월15일 한양도성 내부 16.7㎢가 국내 첫 녹색교통진흥지역으로 지정됐다. 여기에는 종로구 8개동(청운효자동, 사직동, 삼청동, 가회동, 종로 1~4가동, 종로 5~6가동, 이화동, 혜화동), 중구 7개동(소공동, 회현동, 명동, 필동, 장충동, 광희동, 을지로동)가 포함된다. 시는 특별종합대책을 통해 2030년까지 승용차 교통량을 지난해 대비 30%까지 감축하고, 보행, 자전거, 대중교통 등의 이용공간을 2배 이상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도로공간을 재편한다. 한양도성 안에 있는 차도는 최대 4개 차로로 줄인다. 버스 통행이 많은 도로는 버스전용차로를 포함해 최대 6개 차로로 바뀐다. 자동차 진입 수를 억제하고, 보행·자전거 공간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보행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퇴계로(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 을지로(세운상가군 재생활성화 사업), 세종대로(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등을 대상으로 주민의견 수렴 및 설계 등을 검토한다. 내년부터 차례대로 공사를 시행한다. 올해 안으로 종로~청계천~한강을 잇는 청계천 자전거전용도로도 설치한다. 녹색교통진흥지역 내 자전거도로 네트워크를 계속 확충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친환경등급제와 연계해 공해차량이 한양도성에 들어오는 것을 제한한다. 진출입 교통량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자동차통행관리시스템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한양도성 녹색교통진흥지역 진출입도로 41개 지점에서 번호판 인식 카메라로 단속을 시행한다. 녹색교통진흥지역 안에 있는 대규모 교통유발시설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2020년까지 교통유발부담금의 단위부담금을 연차별로 상향 조정해 원인자에게 책임을 더 강화한다.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도심 제한속도는 간선도로 시속 50㎞, 이면도로(왕복 2차로 이하) 시속 30㎞로 하향 조정한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본식 가옥 점령 막은 북촌 한옥… ‘서울의 징표’ 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본식 가옥 점령 막은 북촌 한옥… ‘서울의 징표’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특별시,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회 서울사방 북촌 편이 6월의 첫 주말인 지난 2일 북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북촌의 기와집 처마 아래로 흐르는 초여름 바람이 시원한 하루였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예약자들이 몰려오면서 집결 장소인 안국역 2번 출구 앞이 갑자기 북적였다. 신문 기사를 보고 예약 없이 무작정 나오거나, 친구 따라 온 몇 명도 무사히 투어에 합류했다. 다만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이 동나 진행 요원들이 양보해야 했다. 정순희 해설사는 일행을 ‘북촌 신세계’로 이끌었다.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백악산 아랫동네다. 저잣거리인 종로 운종가의 배후도시이기도 하다.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 왕족과 공신, 고위관료들에게 나눠준 알짜배기 땅이다. 왕조의 심장부 북촌은 개화의 발상지다. 근대의 활시위를 당겼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가장 뜨거운 변혁의 물결이 휩쓴 역사의 무대였다. 개화의 사랑방 역할을 한 박규수의 집이 지금의 재동 헌법재판소 자리에 있었다. 이곳에서 박규수, 유대치, 오경석으로부터 개화 세례를 받은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의 집도 반경 200m 안에 모여 있었다. 북촌의 사대부들로부터 발화한 근대 개화사상은 기득권 세력이 추진한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실패했다. 북촌의 붉은 기운은 1919년 3·1운동으로 되살아났다. 계동 중앙고보(중앙고등학교) 숙직실에서 김성수·송진우·최남선·최린 등에 의해 싹텄다. 경운동 보성사(조계사 앞)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 2만장이 이종일의 집(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전국에 배포됐다. 천도교 대표 손병희의 가회동 집과 불교계 대표 한용운의 계동 집도 지척이었다. 계동 보현빌딩(현대 사옥 맞은편) 자리는 해방 이후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가 꾸려진 곳이다. 계동에 살면서 12번의 테러를 당한 여운형은 명륜동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결국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했다. 백송이 있는 헌법재판소는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터이고, 압류당한 홍영식 집터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 들어섰다. 1993년 헌재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성고등여학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경기고등여학교, 경기여고, 창덕여고가 맥을 이었다. 근대 교육과 근대 의료의 모태였다.북촌 한옥은 ‘오래된 도시’ 서울의 징표이자 존재 가치다. 북촌의 영과 욕이라는 우리 근현대사의 씨줄과 날줄이 남긴 산물이다. 기농 정세권(1888~1965)이라는 선각자가 남긴 한옥은 현대 서울에서 가장 돋보이는 문화유산이자 미래유산이다. 한옥을 조선시대의 유물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각종 문화재로 지정된 20여채를 제외한 모든 한옥은 1920~40년대 지어진 도시형 개량 한옥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양반가 한옥은 1870년에 지어진 안국동 윤보선가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도 1913년 준공됐다. 현존하는 서울의 기와집 1만 8000채 중 6000채 이상은 기농이 남긴 선물이다.북촌 한옥은 조선총독부를 위시한 일제 통치기구와 수탈기구, 일본식 가옥의 북촌 진입을 차단한 민간 차원의 방어선이었다. 가회동·삼청동·재동·계동·안국동·사간동·소격동·수송동·견지동·관철동·관훈동·익선동·봉익동·권농동·통의동·체부동·사직동·신문로·명륜동·창신동·이화동·신설동·왕십리·행당동·휘경동·충정로에 남아 있는 한옥 대부분이 기농의 작품이다. 몰락한 왕족과 벌열(閥閱)들의 고대광실을 사들여 필지를 잘게 쪼갠 뒤 중산층용 개량 한옥을 지어 공급했다. 요즘 각광받는 익선동 166번지도 종친 이해승의 누동궁 한 채를 68채의 한옥으로 재개발한 것이다. 국내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인 기농은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그의 한옥 개발과 북촌 선점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 서울은 적산가옥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기와집이 없는 서울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경남 고성 출신인 기농은 북촌 한옥을 남긴 데 그치지 않고 신간회를 후원하고,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으며, 조선어학회에 회관과 토지를 기증해 조선어사전 편찬을 도왔다. 춘원 이광수는 “조선물산장려를 몸소 실행할뿐더러…조선식 가옥의 개량을 위해 항상 연구하여 이익보다도 이 점에 더 힘을 쓰는 희한한 사람…나는 정씨의 인격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만해 한용운도 “정세권씨가 백난 중에서 회관을 완성하고자 고군분투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라고 조선물산장려회 기관지에 치하하는 글을 보냈다.한옥은 남았지만 그는 잊혀졌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재산을 강탈당하고, 세 번이나 옥고를 치른 그에게 주어진 것은 달랑 건국훈장 애족장 하나뿐이었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고, 서울의 미래를 남긴 선각자 정세권을 기리는 날은 없다. 정세권 문화상도 없고, 정세권 동상도 없다. 한편 이날 투어가 끝난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참가자들은 정세권이라는 인물을 내세운 참신한 기획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진행과 코스, 해설 내용에도 대만족을 표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이원석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종로(종묘에서 사직까지) ●일시 : 6월 9일(토) 오전 10시~12시 ●집결장소 : 종로3가역 11번 출구 종묘광장공원 앞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그때의 사회면] 장맛비에 무너진 부흥주택/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장맛비에 무너진 부흥주택/손성진 논설주간

    대한민국 사람치고 내 집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이른 지금 내 집 마련의 꿈은 수십년 전보다 더 멀어지고 있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 주택 사정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1955년부터 대한주택영단(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 금융기관 등과 협력해 주택을 지어 공급했다. 서민들을 대상으로 공급한 주택에는 부흥주택(또는 국민주택), 후생주택(또는 재건주택), 희망주택 등의 이름이 붙었다. 최초의 공공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부흥주택이 들어선 곳은 서울의 성북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등 당시로서는 변두리 지역이었다. 많이 헐리고 본모습을 잃었지만 부흥주택은 청량리2동 홍릉 단지, 정릉동 ‘정든마을’, 이화동 낙산마을에 아직 남아 있다.부흥주택 건설에는 육군 공병대가 동원됐다.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지원에다 원자재도 원조에 의존했다. 1955년 12월 청량리 부흥주택 완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각부 장관, 서울시장이 총출동했다. 그러나 부흥주택은 분양가가 너무 높아 처음에는 신청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곧 상황이 바뀌었다. 1956년 4월 실시된 청량리와 신당동 부흥주택 입주자 모집에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 30분 만에 분양이 완료됐다(경향신문 1956년 4월 12일자). 그러나 부흥주택을 둘러싼 말썽은 끊이지 않았다. 청량리의 부흥주택은 공병대가 맨바닥에 집만 지어 처음에는 전기가 없어 촛불을 켜고 살아야 했고 상·하수도도 없어 입주민들의 불만을 샀다. 서울 신촌 100채의 부흥주택은 장맛비에 지은 지 1년도 못 돼 무너져 내렸다.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흙벽돌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었다(동아일보 1956년 7월 2일자). 1956년 7월까지 전국에 지어진 흙벽돌 부흥주택 또는 재건주택은 7000여 가구에 이르렀다. 흙벽돌이 문제가 되자 그제야 시멘트로 바꿨다. 1959년에는 입주민들의 집단 청원 사태가 벌어졌다. 융자금 이자가 너무 높고 원금 상환 기간은 짧다는 것이었고, 국회에 특별조사소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다. 부흥주택의 구조는 흥미롭다. 마루가 깔린 공간과 아동이 머무는 온돌방에 접해 과할 정도로 넓은 테라스가 있었다. 부엌에서 계단을 두 단 올라야 온돌방과 높이가 같아지는 것은 부엌에 취사와 난방을 위한 아궁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변소에는 양변기가 있었고 욕실에는 둥근 설비가 눈길을 끌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목욕을 위해 사용했던 커다란 쇠가마다. 재래식 생활공간 위에 일본풍 생활기기가 담기고 위생설비와 외부 공간은 서구식인 복합 양식이었다. 설거지통과 찬장은 입주자가 마련해야 했다(‘거취와 기억’, 박철수). 사진은 부흥주택 입주 경쟁을 풍자한 만평.
  • [노주석의 서울살이] 기농 정세권 선생을 생각함

    [노주석의 서울살이] 기농 정세권 선생을 생각함

    서울 한복판에 송해길이 생겼다. 종로구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지 240m이다. 아흔 살 ‘국민 오빠’ 송해를 기리는 길이라고 한다. 송해의 사무실이 있고, 즐겨 다니는 2000원짜리 해장국집이 있다. 지하철 종로3가역 5번 출입구 앞에 그의 흉상도 놓였다. 거부감은 없다. 웃자는 게 코미디고, 웃기자는 게 코미디언 아닌가. 웃으면 그만이다. 좀 찜찜하긴 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길에 붙이고, 동상을 세운 뒤 벌어진 좋지 않은 추억 때문이다. 시비 붙는 사람 없으니 다행이다. 한 사람이 생각났다. 기농 정세권(1888~1965)이다. 서울에 한옥을 남긴 분이다. 가회동·삼청동·재동·계동·안국동·사간동·소격동·수송동·견지동·관철동·관훈동·익선동·봉익동·권농동·통의동·체부동·사직동·신문로·명륜동·창신동·이화동·신설동·왕십리·행당동·휘경동·충정로에 남아 있는 한옥 대부분이 그분의 작품이다. 1920~30년대 개량 한옥을 짓고, 한옥지구를 조성한 건축가이자 부동산 개발가이다. ‘궁궐의 도시’ 서울의 사대문 안은 왕과 일족이 사는 40여개의 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농은 일제강점기 몰락한 왕족과 벌열(閥閱)들의 고대광실을 사들여 필지를 잘게 쪼갠 뒤 중산층용 개량 한옥을 지어 공급했다. 요즘 각광받는 익선동 166번지는 종친 이해승의 누동궁 한 채를 68채의 한옥으로 재개발한 것이다. 선생은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그의 한옥 개량과 지역 선점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 서울 북촌과 서촌은 일본식 문화주택으로 덮였을 것이다. 건축가 정기용은 “북촌 한옥은 서울의 존재이며, 장소이고,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가 남긴 도시형 한옥은 서울의 징표가 됐다. 조선은 망하고, 국왕은 폐위됐지만, 분야별 왕이 있었다. ‘백화점왕’ 박흥식, ‘광산왕’ 최창학, ‘부동산왕’ 민영휘, ‘문화재왕’ 전형필이 그들이다. 정세권은 ‘건축왕’이었다. 전형필과 정세권 두 분의 선각자가 문화재와 한옥을 지켰다. 기농은 부동산 개발로 번 돈을 신간회와 조선물산장려운동에 썼다. 우리말큰사전 편찬을 도우려고 조선어학회에 회관과 토지를 기증했고 자금을 댔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재산을 강탈당하고, 세 번이나 옥고를 겪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지사 정세권은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31세에 상경, 70대에 낙향, 78세 타계할 때까지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었다. 춘원 이광수는 “그를 존경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했다. 만해 한용운도 ‘정세권씨에게 감사하라’는 이례적인 글을 기고했다. 그런 정세권이 잊혔다. 서울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서울의 기와집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전통가옥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양반가 한옥은 1870년에 지어진 안국동 윤보선가이다. 서울의 기와 한옥 1만 8000채 중 6000채 이상은 기농이 남긴 선물이다. 1644년 대화재로 사라진 영국 런던을 재건한 크리스토퍼 렌, 1850년대에 프랑스 파리를 오늘의 파리로 만든 E 오스만,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도쿄를 부활시킨 고토 신페이처럼 서울의 미래를 만든 사람은 기농 선생이 아닐까. 그런데 왜 정세권의 업적은 기록되지 않고, 정세권 길은 만들지 않으며, 정세권 동상은 세우지 않나.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사람, 정세권 정신을 가진 서울사람을 기리는 정세권의 날과 정세권상은 왜 제정하지 않는가.
  • [의정 포커스] 매일 새벽 낮은 곳으로 가는 ‘오토바이맨 ’

    [의정 포커스] 매일 새벽 낮은 곳으로 가는 ‘오토바이맨 ’

    “종로 구민 삶의 질 향상과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달리겠습니다.”5선 중진인 김복동(국민의당) 종로구의회 의장은 7일 이처럼 초선 의원 못지않은 각오를 드러냈다. 이종찬 전 국회의원(11~14대)의 종로 지구당 부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매일 새벽 5시부터 오토바이 순찰을 돌며 지역을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김 의장은 정치란 낮은 곳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의료보험 1만원도 못 내는 기초수급자에게 자치구가 보험료를 대신 내주는 제도를 구 조례로 처음 제정해 전국화시킨 공로로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지역 발전을 위한 성과도 눈에 띈다. 동대문 시장 일대 인도에 무질서하게 주차된 오토바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오토바이 주차장을 만들 수 있는 법적 근거인 이륜자동차 관련 주차장법을 2012년 개정했다. 서울에서 세 번째로 큰 구립 노인여가복지시설인 이화동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설립과 증축 과정에서 힘을 썼다. 기초의회 최초로 주민 의견을 현장에서 직접 듣는 ‘주민과의 대화’를 정례적으로 개최해 행정안전부 주관 지방자치 20년 평가 우수사례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현장 민원을 직접 접수해 600년 고도인 종로의 상하수도, 청소 등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이다. 그는 “2010년부터 ?쓰레기가 방치된 곳을 찾아서 도시텃밭으로 바꿨으며 이 과정에서 무려 1000t 이상의 쓰레기를 실어 냈다”고 했다. 김 의장은 “종로구의회 의원들은 모두 의회당 소속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여야 없이 구민의 이익을 위해 화합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발로 뛰는 일꾼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현장 행정] 더 좋아진 복지관, 더 커진 어르신 행복

    [현장 행정] 더 좋아진 복지관, 더 커진 어르신 행복

    “준공일까지 최선을 다해 꼼꼼히 보완해 보세요.”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2일 이화동에 있는 구립 노인여가복지시설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았다. 오는 25일 증축 준공식을 앞두고 최종 점검 작업을 벌이기 위해서다. 복지관은 기존 연면적 약 2975㎡(약 902평),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2007년 문을 열었다. 회원수가 3314명에서 2015년 8710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하자 증축을 추진했다. 복지관 옆 제설장비를 보관하던 창고를 헐고 연면적 1820㎡(약 552평),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공간을 추가 건립한 것이다. 복지관 전체 크기도 연면적 4795㎡(약 1453평)로 커지면서 서울에서 세 번째로 큰 구립 노인여가복지시설로 거듭나게 됐다. 김 구청장은 건축사 출신답게 문 방향, 창문 높이, 공연장 조명 위치, 소방 구조대 동선, 문턱 마감 등 설비 디테일을 일일이 지적했다. 벤치, 목욕탕 등 모서리 부분에 어르신들이 혹여 다치는 일이 없도록 마모 작업을 주문하기도 했다. 기존 복지관은 1층 경로식당, 밴드 연습실, 2층 건강증진실, 3층 체력단련실, 4층 컴퓨터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증축사업을 하면서 목욕탕과 찜질방, 공연장, 쿠킹룸 등을 신설했다. 솜씨 있는 어르신들이 고추장 등 각종 장을 담가서 수익 사업도 할 예정이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요리 솜씨를 전수하는 쿠킹 클래스도 구상 중이다. 목욕탕의 경우 회원은 3000원, 차상위계층은 50% 할인된 15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오찬을 제공하는 경로식당도 기존 96석에서 144석으로 늘렸다. 식대는 인당 3000원이다. 60세 이상 종로구민이면 누구나 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다. 김 구청장이 노인 복지에 힘을 쏟는 것은 지역의 노인 인구 비욜이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종로구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지난해 기준 16.1%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3위다. 구는 이 밖에도 2009년부터 어르신들에게 무료 안마를 해 주는 ‘효사랑 안마서비스’를, 2010년부터는 종로구치매지원센터를 열고 치매예방 인지건강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난 6월부터는 구의 각종 어르신 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도 시작했다. 김 구청장은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만큼 어르신들의 즐거운 노후생활을 위한 행정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서 “다양한 복지서비스로 효도특별구 종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잠잠하던 어버이연합, 활동 재개? “새 사무실 이전”

    잠잠하던 어버이연합, 활동 재개? “새 사무실 이전”

    보수단체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 사무실을 이전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31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어버이연합 측은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위치한 사무실을 최근 종로3가역 근처의 새 사무실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어버이연합은 지난해 8월초 이화동 사무실에 입주했다. 이곳에서 1년을 지낸 셈이다. 이날 추선희(58)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르신들이 ‘이렇게 물러날 순 없다. 끝까지 하자’고 했다”며 “집회 등 본격적 활동은 8월이나 9월쯤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추 사무총장은 “정부 지원이 끊긴 뒤 돈이 없으니까 활동을 접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어르신들이 ‘10년 동안 해왔는데 무슨 소리냐, 이렇게 물러날 순 없다. 끝까지 하자’고 했다”며 “그래서 ‘좋다. 그러면 사무실 좀 옮겨서 합시다’라고 했다”며 사무실 이전 이유에 대해 전했다. 추 사무총장은 “어르신들 자체가 국가관이 뚜렷하시고 대한민국의 진짜 경제발전을 일으킨 박정희 세대”라며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정신을 차려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매체를 통해 말했다. 인터뷰에서 추 사무총장은 “까놓고 얘기해서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보다 깨끗한 게 뭐가 있느냐. (대통령이) 임명한 놈들 하나같이 도둑놈의 XX 아니냐. 자기가 하면 로맨스가 남이 하면 불륜이냐”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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