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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와제네거 전 부인과 ‘이혼 위자료 전쟁’

    가정부와의 불륜사실을 시인한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64)와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56) 간 이혼 소송이 본격적인 전투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슈와제네거가 위자료와 변호사 수임료를 지급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22일 현지 소식통을 인용,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슈라이버의 위자료 요구를 거부하는 소장을 20일(현지시각) 법원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슈라이버는 지난 1일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4명의 자녀 중 미성년자인 두 아들(17세, 13세)의 양육권과 위자료, 변호사 수임료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슈워제네거는 소장에서 변호사 비용조차 각자가 부담해야 된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소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모두 두 미성년 아들에 대한 공동양육권을 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별다른 이견없이 조용히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두 사람간 이혼소송은 치열한 법정 다툼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이들은 혼전계약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슈라이버는 캘리포니아주(州) 법을 적용할 경우 슈워제네거의 재산에서 반을 나눠받게 된다. 이들 부부의 재산은 4억 달러(약 4000억원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미 슈라이버는 시가 100억원 상당의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슈워제네거가 가정부와 혼외정사로 13세 아이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5월 별거사실을 발표했다. 케네디 가문 출신인 슈라이버는 NBC 방송기자로 이름을 날리다 1986년 슈워제네거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위자료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대외적으로는 다정한 관계를 연출하는 등 기묘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한 지인의 생일 파티가 열린 레스토랑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는 전문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타이거 우즈 스캔들의 여진 ‘막장’ 속으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스캔들 여진이 계속 꼬리를 물고 있다. 전 부인이 우즈의 내연녀였던 레이첼 우치텔과 동거하던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 보도에 이어 우치텔이 이번엔 우즈로부터 받은 돈을 놓고 자신의 전 여성 변호사와 송사를 벌이려고 하고 있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미국 일간지 뉴욕 데일리 뉴스는 18일 우즈의 이혼에 큰 빌미를 줬던 호스테스 출신의 우치텔(사진 가운데)이 유명한 변호사 글로리아 알레드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알레드는 불륜 사실을 폭로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우치텔이 우즈로부터 1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받아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미국 연예전문 웹사이트 티엠지닷컴(tmz.com)의 보도에 따르면 우치텔이 비밀유지 합의를 어겼다는 이유로 우즈 측에 1000만달러를 게워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에 따라 우치텔은 알레드 변호사와 우즈 측 변호인의 내부 거래를 의심하면서 다른 변호사를 고용해 알레드에게 칼끝을 겨누고 있다. 그러나 알레드 변호사 측은 “나는 지난 1년 동안 우즈의 변호인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의뢰인(우치텔)과 관련해 우즈 측과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며 펄쩍 뛰고 있다. 오히려 우치텔 측에 무고혐의로 법적 대응을 할 기세다. 이에 앞서 티엠지닷컴(tmz.com)은 우즈와 그의 전처 엘린 노르데그렌, 우즈의 내연녀였던 우치텔, 그리고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억만장자 제이미 딩먼이 ‘4각 관계’에 얽혀 있다고 보도했다 . 한때 우치텔과 뜨거운 사이였던 딩먼이 우즈가 이혼한 후 노르데그렌에게 접근해 사귀면서다. 이래저래 우즈 스캔들의 여진은 점점 막장 드라마를 닮아가는 꼴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플레이보이’ 휴 헤프너 “어린신부에게 차인 이유는…”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85)가 60살이나 어린 신부에게 차인 심정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헤프너는 14일(현지시간) CNN의 토크프로그램(Piers Morgan Tonight)에 출연해 파혼의 이유와 심경을 담담히 밝혔다. 헤프너는 “결혼식 1달 전부터 이상한 조짐이 있었다.” 고 조심스럽게 입을 연 뒤 ”결혼식 1주일 전 크리스탈이 두사람의 ‘관계’보다는 ‘결혼’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헤프너는 “‘만약 결혼이 문제라면 두사람의 관계가 더 소중하니까 그만둘까’ 라고 물었는데 다음날 크리스탈은 짐 싸 나가버렸다.”며 황당해 했다. 당시 약혼자인 크리스탈 해리스(25)는 결혼식을 불과 5일 앞두고 돌연 마음을 바꿔 결혼식은 취소된 바 있다. 헤프너는 “파혼은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다.” 며 “크리스탈이 자신을 (사랑한다고)속였는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 케이블 채널인 라이프타임은 약혼자였던 크리스탈의 독점 인터뷰 예고편을 방영해 눈길을 끌었다. 이 인터뷰에서 크리스탈은 “헤프너의 부인이 된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헤프너가 일하는 거대한 조직이 나를 결혼식장으로 밀어넣고 있다.” 고 밝혀 결혼에 대한 심리적인 중압감이 컸음을 고백했다. 한편 헤프너는 1949년 밀드레드 윌리엄스와 첫 번째 결혼을 해 크리스티(58)와 데이비드(55)를 얻은 뒤 10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헤프너는 1989년 ‘올해의 플레이메이트’였던 킴벌리 콘래드와 혼인, 두 명의 아들 마스턴(10), 쿠퍼(9)를 더 얻었지만 지난 2009년 이혼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비행기로 엄마집 들이받은 ‘망나니 아들’

    스위스에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비행기 추락사고가 발생,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7일(현지시간) 샤프하우젠 주의 한 마을에서 경비행기가 저공비행을 하다 주택을 들이받았다. 비행기를 몰던 조종사는 아들, 사고를 당한 집은 노모의 주택이다. 노모는 사고 당시 지하실에 있다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아들은 잔해 속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고로 벽돌로 지은 주택은 한쪽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비행기가 불길에 휩싸이면서 화마는 주택 안쪽까지 흉하게 그을린 자국을 남겼다. 불행한 사고처럼 보이지만 경찰은 9.11 자폭테러를 흉내낸 자폭테러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아들이 노모에게 카미카제처럼 돌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이날 비행기를 빌려 하늘을 날며 노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계시느냐. 잠깐 들르겠다.”며 전화를 끊은 뒤 사고가 났다. 비행기는 주택 위를 세 번 비행한 뒤 전속력으로 벽을 향해 돌진했다. 주민들은 “사고로 볼 여지가 없다.”며 노모를 노린 테러였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47세로 생을 마감한 아들은 평소 노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부모가 이혼한 뒤 아들은 신세를 비관하며 괴로워했다. 아들은 가장파탄의 책임이 어머니에게 있다고 추궁하곤 했다.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뜬 뒤에는 사이가 더욱 나빠졌다. 직장을 잃은 뒤 경제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지난 2년간 아들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노모의 한 이웃은 “모자 간에 문제도 많고, 탈도 많았다.”며 자폭테러를 의심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지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 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러운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벨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 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은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 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 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힌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러운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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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기 막막” 女범죄율 5년來 최고

    “살기 막막” 女범죄율 5년來 최고

    여성 범죄율이 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무허가 음식점 운영 등 생계형 범죄가 급증한 것이 주요인이었다. 18일 법무부 여성아동정책팀이 최근 발간한 ‘2010 여성통계’에 따르면 2009년 여성 범죄인은 모두 40만 8111명으로, 전체의 16.2%를 차지했다. 이는 2004년 여성 범죄율이 16.4%를 기록한 이래 최고치다. 여성 범죄율은 2005년 15.7%, 2006년 15.6%, 2007년 15.3%, 2008년 15.4% 등으로 하락세를 보여 왔다. 형법과 특별법을 통틀어 여성 범죄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식품위생 관련 법규를 위반한 경우였다. 여성의 식품위생법 위반 사례는 1만 110건으로 전체 범죄자의 62.3%에 달했다. 법무부는 “이 같은 현상은 생계형 무허가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여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저지른 범죄 중 여성 비율은 14.9%인 데 비해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에는 48.1%에 달해 배우자 유무와 여성 범죄의 연관성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는 여성이 이혼·사별 후 사회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범죄도 함께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간통죄도 여성 비율이 47.2%로 여전히 높게 나타났다. 또 문서위조죄의 여성 비율(24.5%)도 높았다. 이 경우 임대계약서 등을 위조해 소액대출을 받는 등 생계형 범죄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여성이 강간을 저지른 범죄가 전체 범죄자(1만 4329명)의 1%에 육박한 점. 이에 대해 법무부는 “현행법상 여성이 단독으로 남성을 상대로 성폭행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는 점에 비춰 볼 때 다른 남성과 함께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여기에 포함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일본어 교습·법률상담 제공… 주민들과의 벽 허물었다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일본어 교습·법률상담 제공… 주민들과의 벽 허물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밀집 지역이 별로 없는 편이다. 한국인들의 상가가 밀집돼 있는 신주쿠 신오쿠보에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있지만 상업 지구다. 외국인의 주거지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신주쿠를 비롯해 도쿄 전역에 비교적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도 아시아에서 제일 큰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상업 시설 위주로 분포돼 있다. 도요타 자동차가 들어서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를 비롯해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등 공장지대에 브라질 이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일본계 브라질인들이어서 일본 사회에 동화된 측면이 강하다. 오히려 지난 1990년대부터 시작된 국제결혼으로 인해 농촌 지역에 외국인들이 일본인 남편들과 다수 거주하고 있다. 야마가타현이 외국인들의 이주 정책이 비교적 성공한 지역이다. 지난해 12월 현재 야마가타현에는 중국인 2872명을 비롯해 한국인 2032명, 필리핀 682명, 베트남 163명, 브라질 117명, 미국인 155명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도자와 무라는 20년 전부터 외국인 여성들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펴 효과를 거둔 모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대학교수를 매주 초빙해 외국인 신부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교실을 열어 일본말을 배우게 했다. 외국인 신부가 임신을 하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우려해 산부인과 의사는 물론 정신과 의사로부터 정기적인 진단도 받도록 배려했다. 외국인 여성이 이혼이나 재산상속, 가족 양육 문제 등과 관련해 법률지식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일본 법률상담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을 어머니로 둔 자녀들이 원활하게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장과의 간담회’ ‘국제아동의 보육에 대한 의견 교환회’ 등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도자와 무라 사무소의 마에다 고에는 “국제 결혼이 추진되면서 처음에는 외국인 주부들에게 언어, 자녀보육과 교육 문제 등이 발생했다.”면서 “하지만 지역주민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추진하는 행정력을 펴면서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990년 이곳에 시집온 이승호(49)씨는 “처음에는 주민들이 자주 조선적이라고 불러 상처를 받았다.”면서 “하지만 행정기관의 도움으로 주민들과 마음을 열면서 고려촌까지 세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글 사진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제이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런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밸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이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 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혀진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런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 개그맨 정만호 1년전부터 별거…아이들과 남양주에서 지내

    개그맨 정만호 1년전부터 별거…아이들과 남양주에서 지내

    정만호가 별거와 이혼소송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혔다. 정만호는 15일 소속사 스타폭스미디어를 통해 “이번 이혼소송은 하루아침에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다. 이미 1년 전 쯤 아내와는 따로 떨어져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밝혀 아내와 별거 중임을 고백했다. 정만호는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다”라고 사과하고 “오랜 기간 고민 끝에 모두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이혼소송에 대해 설명했다. 정만호는 또 “지금부터는 사랑하는 두 아이들을 위해 성실한 아빠로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평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정만호는 현재 남양주 자택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사 스타폭스미디어는 “이번 일로 당사자와 아이들 및 모든 가족들이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정만호는 지난 3월 의정부지방법원에 별거 중인 아내를 상대로 이혼 및 친권자 지정 소송을 제기했으며 오는 21일 2차 변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제니퍼 로페즈 세번째 파경…네번째 운명 기다릴까

    제니퍼 로페즈 세번째 파경…네번째 운명 기다릴까

    할리우드 배우 겸 팝가수 제니퍼 로페즈가 결혼 7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제니퍼 로페즈(40)와 남편 마크 앤서니(41)는 15일(현지시각) 공동 성명을 내고 파경 사실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며 “우리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우호적인 결론을 내리고 합의를 끝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이들의 이혼은 예고된 것이었다며 파경 이유로 마크 앤서니의 지나친 간섭으로 제니퍼 로페즈가 힘들어 했다는 측근들의 말을 전했다. 이번 이혼으로 제니퍼 로페즈는 세 번째 이혼을 하게 됐고, 마크 앤서니는 두 번째 이혼을 맞이했다. 이들은 지난 2004년 6월에 비밀 결혼식을 치르고 부부가 됐으며 3살짜리 쌍둥이 남매를 두고 있다. 최근 새앨범 ‘러브(Love)’를 발표하고 가수 활동을 재개한 제니퍼 로페즈가 네번째 운명을 만나게 될 지 기다려 볼 일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입체 작품을 평면으로 풀어내 ‘선’의 미학 보여주고 싶었죠”

    “입체 작품을 평면으로 풀어내 ‘선’의 미학 보여주고 싶었죠”

    “안 그래도 이혼당할 뻔 했습니다. 허헛.” 말 들어보니 안 당한 게 이상하다. 다음 달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02-725-1020)에서 ‘厚. 我. 有. -후. 아. 유.’전을 여는 이승희(53) 작가는 홀로 중국 장시성(江西省) 징더전(景德?)에 머물고 있다. 베이징에서 차로 달려 23시간 걸리는 곳이다. 송나라 이후 대대로 관요(官窯·궁궐용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가마)가 몰려 있는 곳이라 찾긴 했지만, 살기 좋은 곳은 아니다. 이 작가 스스로도 “그냥 촌이 아닌 판자촌”이라고 실토한다. 편의시설도 없다 보니 작업 빼곤 할 일이 없다. “저녁 8시만 되면 깜깜해져서 잘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새벽 3시쯤 깹니다. 해 뜰 때까지 두세 시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긴 줄 몰랐어요.” 날씨마저 가혹하다. 1년 내내 빗줄기가 그치지 않고 실내온도는 34도를 오르내린다. 냉·난방시설은 없다. ●실용을 넘어선 도자기의 현 대성 전달 그럼에도 그곳에 빠져든 매력은 두 가지. 하나는 관요의 역사 때문에 도자기 만들기엔 더 없이 좋은 인프라다. 또 하나는 흙이다. “흙 입자가 우리나라는 원형이고 중국은 판형이에요. 도자기는 굽는 과정에서 20% 정도 줄어듭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흙으로 만들면 저렇게 넓은 판을 못 만들어요. 처지거나 깨져 버리죠. 중국 흙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흙보다는 잘 버텨냅니다.” 작품을 보면 유약이 발라져 반짝 빛나면서 볼록 솟은 부분과 유약이 없어 흙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평평한 배경이 대조적이다. 언뜻 보면 따로 만들어 붙인 게 아닌가 싶다. 몇몇 작품은 족자처럼 만들어 배경이 종이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돋을 새김 형식으로 한판에 만들어 통째 구워낸 것이다. ●흙물 끼얹고 말리는 작업만 70여회 입체 작품인 도자기를 평면으로 풀어내되, 입체적 성격은 유지하는 셈이다. 도예이면서 조각이기도 한 셈이다. 전시 제목 그대로 ‘넌 누구냐.’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도자기의 현대성을 말하고 싶었다. 용(用)에 묶여 있는 기존 도자기와 달리, 선이 살아 있는 도자기 자체의 미감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제목은 모두 ‘타오’(Tao)다. 타오는 도자기 도(陶)의 중국식 발음이다. 하지만 작업방식은 도(道)에 가깝다. 1차 관문은 널찍한 판을 만들어내는 것. 관요였던 덕분에 그 무거운 흙을 떠받칠 수 있는, 100년 묵은 나무로 만든 탁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 탁자 위에 깨지고 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흙을 차근차근 쌓아올려야 한다. 흙물을 끼얹었다 말렸다 반복하기를 70여회. 이 작업에만도 서너 달이 걸린다. 2차 관문은 그림 그리기다. 도예가인지라 붓을 제대로 잡아본 적은 별로 없다. 게다가 청화는 그릴 땐 안 보이고 구워낸 뒤에야 색이 나온다. ‘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그마한 접시에 수도 없이 연습해도 며칠만 붓을 놓으면 감을 잃어요. 그리고 또 그리는 것밖엔 방법이 없죠.” 마지막 관문은 구워내기. 여기서도 관요의 덕을 본다. 한국 가마 온도는 1280도 정도인데, 중국 가마는 1380도까지 간다. 이 100도의 차이가 도자기의 탄성과 질감을 좌우한다. 그럼에도 깨지는 것은 허다하다. 10개 구우면 건지는 건 고작 2~3개. 전시를 위해 준비했던 야심찬 대작 3~4개도 굽는 과정에서 그만 깨져 버렸단다. ●“예전 번 돈 다써 이혼 당할뻔 했죠” 이런 험난한 과정이 안겨준 가장 실질적인 타격은 역시나 돈. “1990년대엔 저도 알아 주는 생활자기 작가였습니다(웃음). 아트페어 때마다 판매순위 10위권에 꼭 들었지요. 그때 번 돈을 지금 다 쓰고 있는 겁니다.” 이혼당할 사유 추가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요즘은 작업을 더 확장할 궁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백자 작업을 주로 했는데 상감기법을 이용한 청자도 슬슬 시작했습니다. 아예 영국이나 독일 도자기 같은 것을 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서양 사람들도 놀라지 않을까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독립영화관-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KBS1 밤 1시 10분) 선호는 귀향해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있다. 농촌 생활에 불만이 가득하던 선호는 부모님이 애지중지하는 소 ‘한수’(피터)를 팔기 위해 길을 떠난다. 우시장에 갔지만 마땅치 않은 가격 때문에 소를 팔지 못한다. 그리고 선호에게 7년 전 헤어진 옛 애인 현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데.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KBS2 밤 11시 5분) 지난주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심판대에 올랐던 레드 팀의 팀장 김영필. 그리고 서서히 자신의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2인자 김호진. 이들은 팀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시도해 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분위기는 점점 격앙되고 결국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결과를 낳고 만다. ●일일연속극 불굴의 며느리(MBC 밤 8시 15분) 영심은 분장 중이던 지은을 찾아가 따귀를 때린다. 세령은 혜원을 찾아가 진우와 이혼을 준비 중이라고 말한다. 신우는 연정에게 영심을 생각하는 만월당 사람들의 분위기를 넌지시 묻고 안심한다. 막녀는 태몽을 꾸고 누가 임신을 했는지 궁금해한다. 한편 영심은 신우의 사표가 자신 때문인 줄 오해하고, 신우를 붙잡으려 한다. ●궁금한 이야기 Y(SBS 밤 8시 50분) 태어난 지 이제 고작 20여일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보기도 전에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고, 튜브로 영양을 공급받는 아이의 이름은 건우다. 작디작은 건우의 몸에는 수도 없이 많은 주삿바늘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이렇게 아픈 건우를 위해 기적을 꿈꾸며 고군분투하는 눈물겨운 모정을 들여다본다. ●명의(EBS 밤 10시 40분)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국립암센터의 윤영호 박사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를 찾는 환자는 대부분 의학적인 치료방법을 찾을 수 없는 말기 암환자다. 환자의 병이 아닌, 환자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의사. 우리나라에 호스피스에 관한 인식을 넓히기 위해 병원보다 병원 밖에서 편견과 싸우는 시간이 더 많은 그를 만나본다. ●전기현의 씨네뮤직(OBS 밤 11시) 한 주를 마감하고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 ‘전기현의 씨네뮤직’은 영화음악의 다양성과 희소성, 마니아적인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팝 칼럼니스트 전기현의 진행으로 그 주의 테마 음악, 씨네뮤직이 소개하는 최고의 음악영화, 패널과 함께하는 음악인 이야기, 그리고 불멸의 영화음악 코너가 이어진다.
  • 해리 포터 작가의 소녀 시절 집 얼마에 팔릴까?

    전세계적 베스트 셀러인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안 K 롤링의 소녀 시절 집이 다시 팔리게 됐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은 15일 이 집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이 집이 롤링에게 커다란 영감을 줬다면서 이 소식을 전했다. 이 집에는 계단 밑 벽장과 지하로 내려가는 마루바닥의 쪽문 등 소설 속 해리 포터가 사는 집을 연상하게 하는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고 한다. 롤링(45)은 터츠힐에 있는 이 집에서 부모와 동생 다이앤과 함께 9살 때부터 18세 때까지 살았다. 특히 재미있는 사실은 롤링이 17세 때 휘갈겨 쓴 낙서가 아직도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롤링은 당시 이 집 침실 창가에 “조안 롤링 1982년 경 이 집에서 잠잤다.”라는 낙서를 남겼다. 롤링의 부모에게서 1995년 쳅스토우 근교의 이 집을 산 BBC 방송 프로듀서 줄리안 머서는 몇차례 집 내부 수리를 했지만, 롤링의 낙서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영국의 네티즌들은 롤링이 유명하게 되기 전부터 그녀의 낙서를 보존한 줄리안 머서의 혜안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아기 우유값이 없어 눈물을 떨구던 가난한 이혼녀였던 롤링은 1997년이 되어서야 해리 포터 1탄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머서는 당초 이 방 3칸짜리 집을 39만9950 파운드(약 6억8000만원)에 팔려고 내놓았다. 그러나 조안 롤링의 체취가 남은 이 집이 화제에 오르면서 얼마에 최종 낙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남편 성기 잘라 음식물쓰레기로 ‘처리’한 악녀

    남편 성기 잘라 음식물쓰레기로 ‘처리’한 악녀

    소크라테스의 부인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무자비한 악처가 미국에 등장했다. 미국의 40대 여성이 별거 중인 남편의 성기를 잘라 음식찌꺼기 처리기에 던져넣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허핑턴 포스트 등 미 언론이 1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 주 가든 그로브 경찰은 캐서린 베커(48)라는 이름의 이 여성을 체포했다. 그녀는 남편(51)의 저녁 식사에 약물을 타서 정신을 잃게 한 뒤 그를 침대에 묶고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남편의 성기를 넣은 음식물처리기의 전원 버튼을 누른 것은 물론이다. 긴급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응급구조대는 베커의 집 침실에서 침대에 묶인 채 피를 흘리는 남편을 발견, 병원 응급실로 후송했으나 중태라고 언론은 전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과정에서 베커는 남편에게 이런 엽기적인 일을 저지르고도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며 전혀 뉘우치는 기색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베커 부부는 1년 6개월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가 5월부터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사건 당시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진 베커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를 수사중인 현지 경찰 관계자는 “베커가 최대 종신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허핑턴 포스트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불륜 터미네이터’ 슈워제네거 김지운 감독 손잡고 재기하나

    ‘불륜 터미네이터’ 슈워제네거 김지운 감독 손잡고 재기하나

    추문에 휩싸인 ‘터미네이터’가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영화계에 돌아온다. 가정부와의 혼외정사로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이혼 절차를 밟게 된 아널드 슈워제네거(63) 전 미 캘리포니아주 주지사가 김 감독이 지휘하는 서부영화 ‘라스트 스탠드’(The Last Stand)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고 미국의 연예매체 데드라인할리우드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라스트 스탠드’는 오는 9월부터 촬영에 들어가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서부영화 ‘라스트 스탠드’ 주인공으로 ‘라스트 스탠드’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한 국경 마을을 배경으로 멕시코 마약밀매상을 쫓는 보안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영화사 라이언스게이트가 제작을 맡는다. 라이언스게이트의 한 간부는 데드라인할리우드와의 인터뷰에서 “‘라스트 스탠드’는 많은 제작자들이 사랑에 빠져온 선인과 악인의 구도를 다룬 전형적인 옛날 스타일의 서부 영화로 자신의 마을을 지켜야 하는, 도덕적 결정에 맞닥뜨린 쇠락한 63세 남성을 다룬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다이하드·하이눈 섞은 영화 될 것” ‘악마를 보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으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김 감독은 ‘라스트 스탠드’를 가리켜 “‘다이하드’와 ‘하이눈’을 섞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당초 제작진은 연기파 배우 리암 니슨을 주인공으로 낙점했으나 그는 바쁜 스케줄을 이유로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슈워제네거는 수개월 전부터 이 영화에 강한 애정을 드러냈고 결국 영화사인 라이언스게이트가 감독을 설득,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후문이다. ●수개월 전부터 강한 애정 보여 슈워제네거는 지난 5월 자신의 집을 오랫동안 돌봐온 가정부 밀드레드 바에나와의 사이에 13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고 인정한 뒤 부인과 별거하면서 ‘터미네이터’ 신작 논의 등 할리우드 복귀 계획을 잠시 중단했다. 부인 슈라이버는 지난 1일 법원에 25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낼 이혼서류를 제출했다. 라이언스게이트의 간부는 불륜으로 인한 언론의 조롱에도 슈워제네거가 여전히 스타로 활약할 것 같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전히 그는 큰 뉴스거리”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1월 두 번째 주지사 임기를 마친 슈워제네거의 마지막 영화 출연작은 지난해 개봉한 ‘익스펜더블’로, 카메오 역할로 잠깐 얼굴을 비친 게 다였다. 그가 당초 출연하기로 했던 영화 ‘크라이 마초’(Cry Macho)는 내년 2월로 작업이 연기되거나 아예 사장될 것으로 보인다. 슈워제네거는 1250만 달러에 흥행 수익의 25%를 받는 조건으로 ‘크라이 마초’에 출연하기로 했다. 하지만 ‘라스트 스탠드’ 출연료는 그 정도의 고액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슈워제네거는 또 스파이더맨, 엑스맨, 아이언맨 등 수많은 슈퍼히어로를 창조해 낸 마블코믹스의 전설 스탠 리와 손잡고 주지사 재임 시절 자신의 별명인 ‘가버네이터’(Governator)라는 애니메이션에도 목소리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스캔들 때문에 진행이 중단됐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칼 빼든 국세청 ‘세금없는 富 대물림’ 뿌리 뽑는다

    칼 빼든 국세청 ‘세금없는 富 대물림’ 뿌리 뽑는다

    국세청이 탈법과 편법을 통해 교묘하게 자행되고 있는 ‘부의 대물림’에 대해 칼을 뽑아 들었다. 국세청은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차단을 하반기 세무조사의 역점과제로 정하고 조직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李청장, 전국 조사국장회의 주재 이현동 국세청장은 12일 본청 대회의실에서 전국 조사국장회의를 주재하면서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차단 ▲대기업에 대한 성실신고 검증 ▲역외탈세 근절의 중단 없는 추진 등의 3대 목표를 하반기 역점과제로 선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부를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성실신고에도 탈세가 없는지를 집중 검증키로 했으며, 변칙 상속·증여 혐의자에 대해서는 관련 기업까지 범위를 넓혀 조사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국세청은 대기업이 사주의 아들이 대주주인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사실상 변칙적인 상속을 하는, 이른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행위에 대한 관련 입법이 마무리되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 청장은 “편법·탈법을 통한 부의 세습은 국민에게 큰 박탈감은 물론 해당 기업에 대한 불신 심화, 특정계층으로의 경제력 집중, 기업의 지배구조 왜곡 등 국가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만큼 이에 대한 엄정한 과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세청이 그릇된 부의 대물림에 대해 칼을 빼어든 것은 최근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경영권 승계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다. 현재 대기업은 2세대에서 3세대로, 중견기업은 1세대에서 2세대로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거액의 상속·증여세를 피하려는 불법 행위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판단이다. 이 청장이 전국 조사국장 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세청의 핵심조직인 조사국의 전·현직 직원들이 최근 잇따라 비리에 연루되면서 국세청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한 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회의는 내부의 기강을 바로잡고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정한 세정 집행이야말로 최근의 각종 의혹에서 벗어나 국민의 신뢰를 얻는 최선의 길임을 명심해 달라.”며 조사국장들의 솔선수범을 당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주식 차명취득… 2500억 탈루 국세청은 상반기 특별 세무조사에서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차명재산 보유, 재산 해외 반출, 허위서류 작성 등 지능화·전략화된 수법을 통해 부를 승계한 대기업과 중견기업 사주, 대자산가 등 204명을 조사해 4595억원을 추징했다. 중견기업인 유명 제조업체의 사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본인 주식을 임원에게 명의신탁하고 이의 일부를 자녀가 대주주인 회사에 수백억원이나 낮게 판 것으로 적발됐다. 명의신탁 주식의 배당금 등으로 자금출처가 면제된 특정채권(일명 묻지마 채권) 55억원어치를 구입해 매각하고 이 돈으로 다시 지인 명의로 주식을 차명 취득하기도 했다. 탈루액은 2500억원에 달해 970억원의 세금 납부를 통보받았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190억원을 2002년부터 최근까지 임직원 20명의 이름을 빌려 양도성예금증서(CD), 국공채, 펀드 등 금융재산으로 차명 운영한 뒤 30대 중반인 자녀에게 이 재산을 변칙 상속하려던 제조업체의 사주 역시 세무당국에 꼬리를 잡혔다. 해외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와 서류상 이혼을 통해 상속세와 증여세를 탈루하다 적발된 사례도 나왔다. 공인회계사 C씨는 2007~2008년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50억원을 증여하고도 아들 명의의 페이퍼 컴퍼니에 투자한 것처럼 송금했다. 30년 이상 같이 살던 아내에게는 이혼 시 재산분할이 증여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악용해 서류상 이혼하고 예금 80억원을 넘겨줬다. 국세청은 사전 증여에 따른 상속세 등 140억원을 추징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돌싱’ 100만명 시대

    ‘돌싱’ 100만명 시대

    이혼으로 배우자 없이 사는 남녀 가구주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사별 상태인 가구주 200만명까지 더하면 이혼이나 사별 이후 재혼하지 않고 사는 가구주가 330만명이다. 11일 통계청의 2010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이혼 상태인 가구주는 126만 7000명으로 5년 전(90만 4000명)보다 40.2% 늘어났다. 이혼한 가구주는 1980년 7만명에서 1990년 17만 4000명, 2000년 55만 3000명 등으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이혼 상태인 가구주가 전체 가구주(1733만 9000명)의 7.3%를 차지했다. 1980년대에는 100명 중 1명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명 중 7명꼴로 늘어난 것이다. 이혼이 크게 늘어난 것이 원인이지만 이혼 건수와는 조금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80년 2만 3662건이던 이혼 건수는 1992년 5만 3539건으로 5만건을, 1998년 11만 6294건으로 10만건을 넘어섰다. 이어 2003년 16만 6617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05년 12만 8035건, 2010년 11만 6858건 등으로 하락세를 보여왔다. 이혼 건수는 다소 줄어들고 있는데 이혼한 가구주가 늘고 있다는 것은 이혼 이후 재혼을 하지 않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이혼상태인 가구주의 성별을 보면 여자가 72만 1000명(56.9%)으로 남자 54만 6000명(43.1%)보다 많다. 여성이 남성보다 이혼 이후 독신으로 남아 있는 것을 선호하는 셈이다. 연령별로 보면 40대가 40.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50대 33.8%, 30대 12.2%, 60대 10.5% 순이었다. 이혼 가구주의 거주지는 경기가 전체의 23.3%로 가장 많았고 서울(20.6%), 부산(8.9%), 인천(7.0%) 순이었다. 사별 상태인 가구주는 2005년 183만 2000명에서 작년 202만 1000명으로 10.3% 늘었다. 이에 따라 이혼이나 사별 이후 재혼하지 않고 사는 가구주는 같은 시기 273만 6000명에서 328만 8000명으로 20.2% 증가해 전체 가구주의 19.0%를 차지했다. 특히 혼자 사는 가구주는 176만 4000명으로 전체 가구주의 10.2%에 해당됐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봉소아(bonsoir) 마담(1)…「집시」의 김영희(金英姬·가명) 마담

    봉소아(bonsoir) 마담(1)…「집시」의 김영희(金英姬·가명) 마담

     「로코코」「갈릴레오」등「스탠드 바」시대가 가고「발렌타인」「가스라이트」등 「살롱」시대가 다시 한발 물러서듯 마담들의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이른바「칵테일 하우스」또는「스카치 코너」가 판을 치는 서울거리, 그만큼 새 얼굴들이 서울 밤을 빛내고 있다. 새술 새부대에 새마담의 얼굴을 찾아가 보자.  한국은행 뒤 조폐공사 골목을 따라 조선호텔 앞으로 빠지느라면 중간 지점쯤에「집시」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20단이 채 못되는 지하에로의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온통 백색의 벽과 천장이 우선 산뜻하다.  바닥에는 붉은 주단-. 아직 때가 배지 않아 한결 더 정갈하고 호화롭다.  작년 12월 1일 문을 열었다니까 이제 겨우 8개월째.「집시」의 주인은 김영희(金英姬·가명·28).  눈매가 아름답고, 입가에 맴도는 미소가 좀체로 사라질 줄 모른다. 누가 보아도 90점 이상을 거뜬히 줄 수 있는 수준급 미인임에 틀림없다.  『경험도 없이 시작했는데, 아직은 자신이 없어요』  커다란 에머럴드 반지가 반짝이는 손가락으로 흰 이(齒)를 살짝 가린다.  고향은 충남(忠南) 부여(扶餘). 그러나 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나왔기 때문에 고향의 추억은 남은 것보다 잊은 것이 더 많다고.  『여자란 으례(으레) 그렇지 않아요, 좀 이해해 주세요』  아름답든 아름답지 못하든 여자의 과거는 밝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김(金) 마담은 그 상식을 어기고 스스로 자기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스메타나」의「몰다우」강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김(金)마담은 쟁쟁한 사업가의 1남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대학을 음악과 3학년까지 다녔던 자기의 지난 날을 차근차근히 얘기했다.  『학교 다닐 때는 팝송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방송국에 나가 한때는 노래를 부른 적도 있어요』  모 라디오와 TV 방송국에서 잠시나마 연예활동을 했지만 그것은 수입 때문이 아니고 순수한 자기의 취미 때문이었다는 것.  김(金) 마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망설인다. 무엇 때문일까. 말 못할 과거의 어떤 대목이 부딪친 때문인가.  그 예측은 맞았다.  『대학교 3학년 될 때 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 두고 들어앉았어요···』  다시 말이 중단됐다. 음악도 동시에 멈추어졌다. 마담이라기에는 너무도 앳된 얼굴에 수줍음이 가득한 마담 초년병-.  『이혼을 했어요. 5년만이었어요』  역시 그랬었다.  미모-결혼-파탄-술집 마담. 그런 공식이 김(金) 마담에게도 적용되고 말았던 것이다.  결혼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영업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에는 오히려 담담하다.  『여자 나이 스물여덟에 아직 결혼을 안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이 기회에 툭 털어놓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한강에 있는「리버뷰」맨션에서 5살짜리 아들과 3살짜리 딸 남매를 데리고 세식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식들의 나이는 어리지만 가장(家長)의 어깨는 역시 무겁다.  이혼한 뒤 1년 동안 마음의 갈피를 못잡던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하며 유람과 낭만의 상징인「짚시」라는 간판을 달았을 때 그는 비로소 정착자의 안도감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실내장치는 모두 김(金)마담이 직접 했다. 4인용 테이블 6개, 6·7명용 별실이 3개, 카운터에는 둥근 의자가 10개, 벽에는「실비아」인가 하는 프랑스 샹송 가수의 사진과 이른바 예술사진이라는 어느 누드 모델의 멋진 폼이 도사리고 있다.  『손님들은 대개 먼 곳에서 오는 분들이 많아요』  먼 곳이란 서울 중구 소공동(小公洞) 이외의 지역을 말한다.  무역회사 증권회사 은행 등 각종 기업체 사무실이 즐비하게 들어선 소공동(小公洞), 그 한복판에 자리잡은 스카치 코너「집시」에는 웬일인지 소공동(小公洞) 손님보다는 다른 곳 손님들이 많이 온다는 것.  아침 9시에 문을 열면 우선 찾아드는 것은 코피 손님들, 이 때는 소공동(小公洞) 손님들이 대부분 자리를 메운다.  11시부터 3시까지는 경양식 시간.  젊은 아베크족들이 시원한 에어컨디션 바람과 라틴 뮤직을 찾아 몰려든다.   저녁 6시부터「집시」는 본격적인 자기 기능을 나타내는 게 된다.  김(金)마담의 지휘로 움직이는 종업원은 남자 6명, 여자 5명, 여자는 모두가 웨이트리스, 일반 살롱의 호스테스와는 그 기능이 조금 다르다.  『그렇지만 서비스만은 아주 친절해요』  역시 장사 때문인가. 김(金) 마담은 자기 집 웨이트리스들의 미모와 재치와 친절을 무척 내세우고 있다.  술값은 보통 3백원에서 5백원정도(스카치 1잔).물론 나폴레옹 꼬냑 같은 것은 1잔에 1천3백원까지 받기도 한다.  『대개는 스카치 3,4잔 마시고 가요』  1인당 1천5백원에서 2천원 정도 마시고 자리를 뜨는 손님이 대부분. 그러나 개중에는 처음부터 병으로 시켜 놓고 3,4만원의 매상을 올려 주는 손님도 있다고.  「집시」에서의 김(金) 마담의 역할은 다양하다. 주방 감독에서 술값 계산, 주문과 안내, 그리고 서비스, 그 가운데 주 업무는 역시 서비스다.  주인 마담이자 유일한 호스테스이기도 한 그는 싫고 좋은 감정을 덮어둔채 어느 손님 테이블에든 한번씩은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  여러 층의 손님들에게 한결 같이 웃음으로 대해야 하는「집시」의 얼굴 김(金) 마담은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소공동(小公洞) 의 한 모퉁이를 지키고 있다.  <宰> [선데이서울 73년 7월22일 제6권 29호 통권 제249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부고] 포드 전 미 대통령 부인 베티 포드 하늘로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베티 포드 여사가 8일 별세했다. 93세. 1918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베티는 버몬트주 베닝턴 칼리지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첫 남편과 이혼하고 5년 뒤 당시 해군 중위였던 포드 대통령과 교제를 시작해 1948년 결혼했다. 워싱턴에서 30년 가까이 살았고 2006년 포드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지내 왔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퍼스트레이디 직을 수행한 베티 여사는 자신의 유방암 투병 사실과 약물·알코올 중독 사실을 솔직하게 알린 뒤 같은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 미국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특히 자신의 치료 경험을 살려 캘리포니아의 랜초 미라지에 알코올과 약물 중독 재활치료를 위한 ‘베티 포드 센터’를 세웠다. 이곳에서는 1982년 이후 수만명이 치료를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은 성명을 통해 “베티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매우 슬프다.”면서 “베티 여사는 우리나라 역사상 매우 힘든 나날 동안 포드 대통령의 힘이 돼 줬다.”고 애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오바마 입양될 뻔해” 부친 전기 작가 정보공개

    ‘오바마 대통령이 입양될 뻔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뱃속에 있을 때 부모가 그를 구세군에 입양시킬 뻔했다는 이민국 문서가 공개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시니어는 1961년 하와이 호놀룰루 이민국으로부터 중혼 혐의로 정밀 조사를 받았는데 당시 작성된 서류에 이러한 ‘입양’ 계획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이 8일 보도했다. 중혼을 의심받던 아버지 오바마는 “케냐에 있는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임신 5개월이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어머니 앤 던햄과 재혼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호놀룰루 이민국의 한 관리는 “아버지 오바마가 앤 던햄과 결혼했다 하더라도 함께 살지 않았고 던햄이 구세군을 통해 임신 중인 아이를 입양시킬 준비를 했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친의 삶을 다룬 책 ‘또 다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버지의 대담하고 무모한 삶’의 저자 샐리 제이콥스가 정보공개를 통해 얻은 메모를 통해 드러났다. 그러나 로버트 기브스 전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으며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을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브스 전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친이 이민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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