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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성 극단적 선택 시도 왜?

    김동성 극단적 선택 시도 왜?

    이혼한 전 부인과 아들의 양육비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온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 김동성(41)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김씨는 지난 27일 오후 3시 30분쯤 경기 용인시 상현동에 있는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채 발견돼 119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김씨는 당시 수면제를 복용했으며,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혼한 아내와 최근 양육비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사실과 맞물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실제 극단적 선택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는 앞서 남긴 글을 통해 아이들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못한 미안함과 함께 과도한 사생활 노출에 대한 심적 고통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코로나19로 빙상장이 문을 닫아 경제 사정이 나쁘니 (양육비)조금만 더 기달려 달라”는 내용의 글을 전 부인에게 보내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해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빠들을 공개한 온라인 사이트 ‘배드파더스’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2018년 아내와 이혼한 김씨는 최근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 부인과 자녀들에 대해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한 바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여자는 운전하면 왜 안돼?” 외쳤다 1001일 수감…전사가 돌아왔다 [김정화의 WWW]

    “여자는 운전하면 왜 안돼?” 외쳤다 1001일 수감…전사가 돌아왔다 [김정화의 WWW]

    2018년 6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히잡을 두른 한 여성이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는다. 안전벨트를 메고 시동을 건 뒤 자연스럽게 주행을 시작한다. 여느 운전자와 똑같은, 낯설 것 하나 없는 이 모습에 전세계가 환호했다. 지구상에서 여성의 운전을 금지한 마지막 나라인 사우디에서 마침내 여성이 혼자 운전대를 잡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어서다. 루자인 알하스룰(32)은 사우디에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 대표적인 여성 인권 운동가다. 2014년 여성의 운전 권리를 주장하며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사우디까지 차를 몰았다 붙잡혀 수감됐다. 그에게 내려진 죄목은 테러방지법이다. 그는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무려 1001일 만에 풀려났지만, 이마저도 완전한 자유가 아닌 조건부 석방이었다. 남편이나 아버지 등 다른 남성의 ‘보호’ 없이도 여성이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한 그의 삶을 돌아봤다.여성 운전 불법 사우디에서 ‘운전 영상’ 올렸다 수감 알하스룰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보수적인 지역인 카심에서 나고 자랐다. 사우디는 전세계적으로도 여성 인권이 낙후된 국가 중 하나다. 엄격한 이슬람 중심주의의 영향으로 아직도 남성 보호자(후견인)가 없으면 여성 혼자 생활하기 쉽지 않다. 사우디가 올림픽에 여성 선수를 사상 처음으로 출전시킨 것도 2012년이 되어서였고,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건 불과 6년 전인 2015년이다.알하스룰은 어릴 때부터 구시대적이고 부당한 관습에 맞서 싸웠다. 부모가 “여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동생 리나의 복싱 수업을 반대하자, 이런 인식이 잘못됐다며 끝까지 부모를 설득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리나는 “내 언니 루자인은 불의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고, 누구보다 용감하다. 내가 물어볼 게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라고 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알하스룰이 본격적으로 사우디에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싸운 건 2013년 무렵이다. 그는 여성이 혼자 운전할 수 없는 사회에 반기를 들었다. 사우디는 여성의 운전을 법으로 막진 않았지만, 운전면허증을 발급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많은 돈을 들여 운전사를 고용하거나 남편 등 다른 남성이 운전해줄 때만 움직일 수 있었다.이를 바꾸기 위한 ‘여성에게도 운전을’(Women2Drive) 운동은 1990년대부터 있었다. 당시 여성 40여명이 리야드 시내 주요 거리를 따라 차를 운전하다 경찰에 제지당했고, 2007년에는 활동가들이 고 압둘라 전 국왕에게 탄원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직접 운전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유튜브 등에 올리는 활동가들도 많았다. 이들은 정부에 붙잡히고, 정직 처분을 받고, 운전을 포기하겠다는 서약서를 강제로 써야 했다. 알하스룰도 그중 하나다.그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활동가로 만든 건 UAE에서 사우디로 운전해 들어오려 했던 2014년 11월 30일이다. 당시 업로드한 영상에서 그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부드러운 아랍어로 “유효한 면허증이 있는 UAE에서 출발해 사우디로 운전하려고 한다”고 설명한다. “Let’s see what happens.”(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 위대한 도전의 대가는 가혹했다. 사우디 동부 국경지대인 알 바사의 보안국은 그의 여권을 압수했고, 73일간 구금했다. 전기충격·물고문 당해도 “투쟁”…사우디 정부, 고문 부인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구금에서 풀려난 뒤에도 여성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더 많은 영역에 여성이 발을 들일 수 있게 했다. 2015년 여성의 참정권이 생기자 그는 사우디 자문기구인 슈라 위원회의 구성원을 선출하는 선거에도 직접 출마했다. 후보자로 등록까지 했지만, 이미 당국의 눈엣가시였던 그의 이름은 투표 용지에 추가되지 않았다. 남성 후견인 제도 폐지를 청원할 때는 1만 4000개 이상의 서명을 받아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국가에 저항한 대가는 컸다. 2018년 5월, 알하스룰은 가족과 함께 살던 리야드의 집에서 붙잡혔다. 커다란 검은색 차들이 에워싸더니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쳐 그를 끌어냈다. 그들은 가족에게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고, 심지어 체포 영장조차 내놓지 않았다. 리나는 “그들의 소속이 국가 안보국인지도 알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며 “언니는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끌려갔다”고 돌아봤다. 알하스룰은 감옥에 간 뒤 3주 동안은 가족과 전화조차 하지 못했다. 면회가 가능해진 것도 3개월이나 지나서였다. 그동안 알하스룰은 부모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빠졌다. 리나는 “그는 매우 약했고, 매우 피곤한 목소리로 말하고 많이 떨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그의 몸 전체에서 붉은 자국도 발견했다. 알하스룰은 가족에게 감옥에서 전기충격 고문과 채찍질, 물고문, 성폭행 등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사우디 당국은 체포부터 현재까지 인도적인 처우는커녕 제대로 법적인 절차조차 밟지 않았다. 2018년 5월부터 첫 재판이 이뤄진 2019년 3월까지 사우디 당국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알하스룰을 계속 구금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독방에 장기간 갇히기도 했다. 그는 간첩 혐의와 함께 남성 후견인 제도 폐지를 촉구해 왕실 체제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결국 이같은 광범위한 테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5년 8개월의 징역형에 2년 10개월의 일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알하스룰이 풀려난 건 지난 10일이다. 1001일 만에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됐지만, 완전한 자유는 아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알하스룰은 여행이 금지됐고, 당국은 그가 발언하거나 활동을 재개하면 언제든지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며 “그를 포함한 인권 옹호자들의 모든 혐의를 철회하고 무조건 석방할 것을 당국과 전세계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우디 정부는 고문설 등을 전면 부인했다. 정부 관리들은 그의 활동 때문에 구금된 것이 아니라 외국 외교관이나 언론, 다른 조직과 연락을 취한 것 때문이라고 주장했다.남성 후견인 제도 등 완화됐지만 여권 침해 여전 알하스룰을 포함한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으로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다. 사우디는 여성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한 데 이어 최근 여성의 이동의 자유 제한도 일부 완화했다. 이제 21세 이상 여성은 남성 보호자 허가 없이도 여권을 발급받아 여행할 수 있고, 18세 이상은 혼인과 이혼 신고도 할 수 있다. 여성이 세대주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리나는 “모든 것이 대외 홍보(PR)뿐”이라며 여성의 권리가 여전히 부당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남성 후견인 제도의 완화로 이제 여성들이 남성 허가 없이 여행하게 됐지만, 남성 보호자가 딸이나 아내의 여행을 원하지 않으면 ‘불복종법’등 다른 법을 통해 여전히 이를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국제앰네스티는 “사우디 왕실은 사회 경제적 개혁을 통해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국내외적으로 자국민, 특히 여성에 대한 억압과 불관용, 인권 침해는 계속된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딸이 남성 보호자의 학대를 신고하자, 남성 보호자가 오히려 이를 불복종으로 신고하는 사례도 있었다. 결국 이 여성은 남성 보호자에게 복종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아 구금, 기소됐다. 알하스룰은 2019년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타임은 “사우디 당국은 루자인과 다른 여성 운동가들을 끊임없이 가둬 침묵하게 하고 있다”며 “그는 오히려 사우디 여성 운동의 모델로서 왕실과 국가가 감사함을 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루자인 알하스룰은 누구 · Loujain al-Hathloul1989 사우디아라비라 카심 출생2014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졸업   UAE에서 사우디로 운전하다 체포2018 당국에 체포돼 구금2019 펜 아메리카(PEN America) 바비 자유 저작상 수상   타임 ‘2019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2020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 등 유죄2021 수감 1001일 만에 석방
  • “남녀평등 진일보”vs“가정부보다 적어” 中 첫 가사노동 대가 인정 판결에 ‘시끌’

    세계적으로 여성의 육아·청소 등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국에서도 가사노동의 대가를 인정하라는 판결이 처음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법원이 이혼 소송 중인 남편에게 “전업주부 아내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가사 노동을 돈으로 환산한 역사적 판단’이라는 긍정론과 ‘남성의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한 결과’라는 비판론이 엇갈린다. 24일(현지시간) BBC방송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혼 소송 중인 여성이 5년간 가사노동에 대한 대가로 5만 위안(약 850만원)을 받게 됐다’는 법원 판결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라고 전했다. 남편 천모씨와 아내 왕모씨는 5년의 열애 끝에 2015년 결혼했다. 그러나 관계가 나빠져 2018년 별거에 들어갔다. 천씨는 줄곧 이혼을 요구했지만 왕씨는 “부부의 감정이 남아 있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마음을 바꿔 “그간 가사노동을 보상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지난 20일 베이징팡산법원은 천씨에게 “혼인 기간 동안 전적으로 가사를 책임진 왕씨에게 5만 위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최근 개정된 민법 1088조를 근거로 들었다. 배우자 중 한 명이 육아나 노인 돌봄 등 의무를 지면 상대방이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베이징 로펌 캉다의 한 변호사는 “중국 본토에서 집안일을 보상하라는 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환구시보는 설명했다. 곧바로 이 사건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6억회 이상 조회돼 논쟁거리가 됐다. 누리꾼들의 입장은 둘로 갈렸다. ‘이제 중국도 남녀평등에 한발 더 다가섰다’며 칭찬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5년간 노동의 대가로 5만 위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조도 상당했다. 왕씨가 받은 보상금이 우리 돈으로 매달 15만원 정도에 불과해서다. 유명 논평가는 “할 말이 없다. 전업주부의 일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됐다”며 “베이징에서 가정부를 고용하는 데도 1년에 5만 위안은 더 든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베이징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는 얼마? 中 역사적 판결에 갑론을박

    세계적으로 여성의 육아·청소 등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국에서도 가사노동의 대가를 인정하라는 판결이 처음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법원이 이혼 소송 중인 남편에게 “전업주부 아내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가사 노동을 돈으로 환산한 역사적 판단’이라는 긍정론과 ‘남성의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한 결과’라는 비판론이 엇갈린다. 24일(현지시간) BBC방송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혼 소송 중인 여성이 5년간 가사노동에 대한 대가로 5만 위안(약 850만원)을 받게 됐다’는 법원 판결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라고 전했다. 남편 천모씨와 아내 왕모씨는 5년의 열애 끝에 2015년 결혼했다. 그러나 관계가 나빠져 2018년 별거에 들어갔다. 천씨는 줄곧 이혼을 요구했지만 왕씨는 “부부의 감정이 남아 있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마음을 바꿔 “그간 가사노동을 보상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지난 20일 베이징팡산법원은 천씨에게 “혼인 기간 동안 전적으로 가사를 책임진 왕씨에게 5만 위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최근 개정된 민법 1088조를 근거로 들었다. 배우자 중 한 명이 육아나 노인 돌봄 등 의무를 지면 상대방이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베이징 로펌 캉다의 한 변호사는 “중국 본토에서 집안일을 보상하라는 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환구시보는 설명했다. 곧바로 이 사건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6억회 이상 조회돼 논쟁거리가 됐다. 누리꾼들의 입장은 둘로 갈렸다. ‘이제 중국도 남녀평등에 한발 더 다가섰다’며 칭찬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5년간 노동의 대가로 5만 위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조도 상당했다. 왕씨가 받은 보상금이 우리 돈으로 매달 15만원 정도에 불과해서다. 유명 논평가는 “할 말이 없다. 전업주부의 일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됐다”며 “베이징에서 가정부를 고용하는 데도 1년에 5만 위안은 더 든다”고 지적했다. 한 여성도 “이번 사건을 봐도 알 수 있듯 중국에서 여성은 늘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결혼한 뒤에도 일을 포기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조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통계청이 처음 가사노동 가치를 산정했다. 2014년 기준 가사노동 시급은 1만 569원으로 당시 최저임금(5210원)의 두 배 수준이었다. 올해 최저임금 8720원을 적용하면 대략 1만 7000원 정도로 추산된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양육비 미지급’ 김동성 폭로전 언제까지…아이들만 상처

    ‘양육비 미지급’ 김동성 폭로전 언제까지…아이들만 상처

    양육비를 미지급해 ‘배드파파’ 사이트에 올라왔던 전 쇼트트랙 선수 김동성이 “침묵이 답이 아니라는 결정을 했다”며 연일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다. 김동성은 이혼 후 여자친구 인민정과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에 출연했고, 전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재혼은 너무 축하해주고 싶지만 방송은 두 번 다시 안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전처는 “양육비 문제를 다 해결하고 떳떳하게 방송에 나오는 게 먼저 아닐까요?”라며 “300만원을 벌어서 200만원을 꼬박 줬다는 거짓말, 이제까지 아이들과의 면접교섭권은 꼴랑 3번 했는데 재혼스토리까지 우리 아이들이 방송으로 접해야 한다”라며 양육비 지급을 촉구했다. 전처는 “이혼한지 2년이 넘어가고 있어서 아이들과 안정기가 찾아왔는데 아이 아빠의 행동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라며 호소했다. 그러자 김동성은 여자친구 인민정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라며 “전처가 SBS ‘자기야’ 등 언론 매체를 통해 말했던 서울대 음대는 거짓이었다”며 전처의 학력위조를 주장했다. 김동성은 “‘우리 이혼했어요’ 방송도 양육비를 지급하기 위함이었으나 전처는 또 방송을 나가지 못하게 바로 반박 글을 올렸다. 한쪽 말만 언론에 나와 저는 어느덧 파렴치한 아빠로 낙인찍혀 버렸다”며 침묵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리고 23일과 24일 여자친구 인스타그램을 통해 양육비를 노력하고 있다며 전처, 아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다. 캡처된 사진 속 전처의 이름은 ‘밑빠진 독’이었다. 김동성은 카톡에서 전처와 욕설을 주고 받았고 금메달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동성은 결혼 14년만인 2018년 12월에 갈라섰고,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가지 매달 3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아 배드파더스에 이름이 올랐다. 김동성은 양육비 해결의지를 강조하며 연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파렴치한 아빠로 낙인찍힌 것이 한쪽 말만 나왔기 때문이라며 연일 카톡을 공개하고 아이들의 엄마인 전처와 흠집내기식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다. 분명한 건 그는 양육비를 해결하지 않았고,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는 사람은 자녀들이라는 사실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 남길 바란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See Woods Again

    See Woods Again

    세계 최고의 골프 스타에서 성추문의 장본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타이거 우즈(45)가 또 ‘비운의 황제’가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우즈는 2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카운티에서 현대 제네시스 GV8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고 내리막길을 달리다 전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전했다. 타이거우즈재단은 이날 오후 늦게 낸 성명에서 “우즈가 현재 깨어났으며, 병실에서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우즈의 두 다리가 복합 골절됐으며 발목이 산산조각 났다며 1등급 외상 치료 병원인 하버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대학(UCLA) 의료센터로 이송돼 몇 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약물이나 알코올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우즈가 유일한 탑승자였고 다른 차량과 충돌한 것은 아니라고 확인했다. 병원 측 관계자는 우즈의 오른쪽 정강이뼈와 종아리뼈 여러 곳이 부러졌으며 정강이뼈에 철심을 꽂아 부상 부위를 안정시켰다고 전했다. 발과 발목뼈는 나사와 핀으로 고정했으며 상처 부위의 부기도 가라앉혔다고 소개했다. 사고가 난 도로는 LA 남쪽 왕복 4차선 가파른 내리막길로 드라이빙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우즈가 몰던 SUV는 중앙분리대와 부딪친 뒤 여러 차례 굴러 반대편 차선의 연석, 나무 등을 들이받고 도로에서 9m가량 떨어진 비탈길에서 멈췄다. 최근 재발해 다시 받은 허리 수술에 이날 다리와 발목까지 크게 다치면서 우즈는 프로골프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96년 프로에 데뷔한 우즈는 1997년 21세에 마스터스에서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딴 뒤 3년 뒤인 24세에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메이저 15승을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최다승인 82승을 샘 스니드(미국)와 나눠 가진 ‘살아 있는 골프 전설’이다. 하지만 추문과 부상, 사고와 부활을 반복했다. 2009년 성추문 끝에 전 부인 엘린 노르데그렌과 이혼한 뒤 2010년 필드에 복귀했다. 네 번째 허리 수술을 받은 2017년 5월에는 자택 인근 도로에서 자신의 차량을 세워 놓고 잠을 자다 음주운전 혐의로 경찰에 적발됐다. 끝날 것 같던 우즈의 시대는 2018년 PGA투어 상위 30명만 출전할 수 있는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다시 열렸다. 2019년 마스터스를 다섯 번째로 제패하면서 ‘황제의 귀환’을 알렸다. 우즈는 지난해 아들 찰리와 가족 골프이벤트 대회에 나서 부자의 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5번째 허리 수술로 올 4월 열리는 마스터스 출전이 암울해진 데 이어 이날 선수 생활을 기약할 수 없는 사고까지 당하는 악재가 다시 덮쳤다. 우즈의 부상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승 기록이 82승에서 멈출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주변인들은 빠른 쾌유를 기원했다. 우즈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하는 등 가깝게 지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선임 고문 제이슨 밀러의 계정을 통해 “당신은 진정한 챔피언”이라며 완쾌를 기원했다. PGA 투어 제이 모너핸 커미셔너도 “투어와 선수들을 대표해 우즈의 빠른 회복을 위해 지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즈의 총애를 받는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과 충격을 받았다”며 “빨리 완치되길 마음으로 빈다”고 밝혔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투잡 뛰며 청춘 건 PC방, 남은 건 빚 2억… 변제금 못 내면 개인회생마저 ‘물거품’

    투잡 뛰며 청춘 건 PC방, 남은 건 빚 2억… 변제금 못 내면 개인회생마저 ‘물거품’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자영업자들 뉴스가 이해가 안 됐는데… 겪어 보니 정말 답이 안 보이더군요.” 박진형(27·가명)씨는 지난해 7월 코로나19로 생애 첫 창업에 도전했던 PC방을 폐업했다. 스스로 ‘청춘을 걸었다’고 각오를 다졌던 PC방은 창업 1년 만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에게 남은 건 대출 잔액 2억원뿐이다. 부모가 이혼한 뒤 조부모 손에서 자란 박씨의 꿈은 경제적 독립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내 가게를 차려 할아버지, 할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싶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인테리어 영업과 인천공항 면세점 판매직까지 ‘투잡’을 뛰며 9년간 창업 자금 9000만원을 모았다. 박씨는 종잣돈에다 은행 대출 2억 5000만원, 할아버지가 준 6000만원을 보태 경기도 부천의 학원가에 72석 규모의 PC방을 열었다. 창업박람회마다 찾아가 정보를 수집하고 상권 조사 끝에 시작한 PC방은 성공적이었다. 저녁 시간마다 학원을 마친 중·고등학생으로 만석이었다. 박씨는 알바 직원을 8명까지 채용하며 성수기 기준 월 3000만원씩 매출을 올렸다. 대출 원리금과 운영 비용을 빼면 순수익이 600만원을 넘었다. 조금씩 대출을 갚아나가면서 7년을 교제해 온 여자친구와의 결혼식도 계획했다. 박씨에게 코로나는 삶을 무너뜨린 충격이었다. 지난해 1월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시점부터 학생들의 발길이 끊겼다. 그해 2월 PC방과 노래방에 대한 밀접이용제한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박씨는 긴급히 소상공인 대상 정부대출 250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임대료와 대출 변제에 다 사라졌다. 직원들을 해고하고 혼자 하루 17시간씩 주 7일을 일했지만 역부족이었다. 5개월치 밀린 임대료가 1350만원을 찍는 순간 박씨는 폐업을 선택했다. 박씨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PC방 사장님에서 급한 대로 인근의 홀덤펍 알바생으로 전직했다. 한 달 180만원 알바로 재기를 꿈꾸던 그는 홀덤펍마저 석 달 만에 문을 닫자 절망했다. 박씨는 요즘 일당 12만원짜리 건설현장 일용직 일을 나간다. 그마저도 매일 구할 수 없어 새벽마다 인력사무소에서 무작정 기다린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모았던 종잣돈과 할아버지의 돈,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다 허사가 된 것 같고 다시 시작한다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법원에 신청한 개인회생 인가 결정을 기다리고 있지만 비관적이다. 그는 1인 기준 최저생계비 월 109만원으로 생활하며 나머지 소득으로 3년간 부채를 변제해야 한다. 도중에 변제금 납입이 끊기면 회생 결정도 무효화된다. 성남시금융복지상담센터 관계자는 “법원에서는 2030층이 근로능력이 있다고 보고 개인파산을 잘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직장에 다니며 부채를 갚는 개인회생 절차를 밟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동현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공보이사는 “법원이 책정한 최저생계비 기준이 워낙 낮다 보니 청년층의 경우 개인회생 과정에서 중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권 기자 rights@seoul.co.krQR코드를 스캔하면 ‘2021 격차가 재난이다-코로나 세대 보고서’ 디지털스토리텔링 사이트(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gapDisaster/index.php?section=section2)로 연결됩니다.
  • 타이거 우즈 혼자 몰던 차량 뒤집혀 다리 여러 군데 다쳐 “수술 중”

    타이거 우즈 혼자 몰던 차량 뒤집혀 다리 여러 군데 다쳐 “수술 중”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6·미국)가 자동차 전복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수술을 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보안관실은 23일(현지시간) 정오 직전 트위터에 올린 성명을 통해 우즈가 몰던 차량이 이날 아침 7시 15분쯤 전복돼 차량이 크게 파손됐고, 차량 절단 장비를 동원해 우즈를 사고 차량에서 끄집어냈다고 밝혔다. 우즈의 매니저 마크 스타인버그는 “우즈가 차 사고를 당해 다리 여러 곳을 다쳤다”며 “현재 수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상 정도는 공개하지 않고 사생활을 보호해달라고만 했다. 경찰은 우즈 혼자만 차량에 타고 있었다고 전했다.  지역 방송은 사고 현장 상공에 헬리콥터까지 띄워 언덕 길을 내려오다 뒤집히는 바람에 심하게 훼손된 우즈 차량을 촬영해 보도했다. AP 통신은 “차량 안에는 에어백 장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고가 난 차량 잔해가 도로 옆 산비탈에 흩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즈는 지난 주말 리비에라 골프클럽에서 맥스 호마의 우승으로 끝난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대회 주최자로서 참관하느라 캘리포니아주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등 수술 재활 중이라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호마의 우승을 직접 축하하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됐다. 이 대회가 끝난 뒤 그는 배우 드웨인 웨이드와 골프를 즐기기도 했다. 우즈는 2009년에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장기간 입원한 일이 있었는데 이때 불륜 사실이 들통 나 이혼에 이르렀다. 2017년에도 운전석에 잠든 채로 경찰의 눈에 띄어 음주 여부를 확인하느라 경찰관들 앞에서 걸어 봤는데 취한 듯 흐느적거리고 중심을 잡지 못했다. 당시 그는 통증을 잊기 위해 약물을 과다 복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15차례나 메이저 대회 챔피언에 오르고 미국프로골프(PGA) 82차례 우승으로 샘 스니드와 역대 최다 우승 타이 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2013년 다섯 차례 우승했으나 그 뒤 4년 동안 24개 대회에만 나설 정도로 만성적인 등 통증과 여러 차례 수술에 시달렸다. 11년 동안 메이저 우승 경력이 없다가 2019년 마스터스 대회를 제패했고 최근에는 오는 4월 마스터스 대회에 꼭 출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PGA 투어는 물론 가장 친한 동료이자 세계랭킹 3위 저스틴 토머스는 “우즈가 잘 이겨내길 바란다. 그의 자녀들이 아주 힘들어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배드파더스’ 김동성 “양육비 노력했다”…아들·전처 대화 공개

    ‘배드파더스’ 김동성 “양육비 노력했다”…아들·전처 대화 공개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 김동성이 양육비를 둘러싸고 전처와 설전을 벌인 있는 가운데, 자신의 아들·전처와 주고받은 대화를 공개했다. 김동성은 23일 현재 교제 중인 인민정씨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배드파더스 #양육비 노력했습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잘못 반성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아들, 전처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캡처해 공개했다. 김동성은 전 아내 이씨와 결혼 14년 만인 2018년 12월에 갈라섰다.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가지 김동성이 매달 3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아 배드파더스에 이름이 올라 논란이 됐다.이후 김동성은 지난 1일 연인 인민정과 함께 TV조선의 예능 프로그램 ‘우리 이혼했어요’에 출연해 “300만원을 벌면 200만원은 보내줬다”며 양육비 미지급 논란에 대해 털어놨다. 방송 직후 전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300만원 중 200만원을 줬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며 “방송에 두 번 다시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김동성은 지난 15일 SNS를 통해 “전처와의 이혼은 신뢰와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라며 “SBS 예능 프로그램 ‘자기야’에 출연해 밝혔던 서울대 음대 학력은 거짓”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인애국단 핵심 3인방 중 ‘여전사’… 윤봉길·이봉창 의거 숨은 조력

    한인애국단 핵심 3인방 중 ‘여전사’… 윤봉길·이봉창 의거 숨은 조력

    1919년 14살 나이에 평양 3·1운동 참여상하이 김구 찾아가 ‘밀정’ 처단 등 앞장윤봉길 의거 이후 김구와 이념 갈등 심화‘백범일지’에도 독립운동 전혀 언급 없어 김원봉 창건 조선의용군 ‘부녀대장’ 맡아6·25땐 인민군으로 참전해 남한서 외면이화림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독립운동가가 있다. 이화림은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백범 김구 선생이 만든 한인애국단의 핵심 3인방 중 한 사람이었다. 두 의사를 도와 의거를 성공으로 이끈 이화림은 공식적으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화림의 역할이 조역(助役)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화림은 님 웨일스의 ‘아리랑’ 주인공이자 동갑내기인 김산과 자주 비교된다. 1932년 4월 29일 아침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 기념행사 겸 일본의 상하이 침공 승리 기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봄 코트를 입은 남자와 양장 차림을 한 젊은 여인이 식장 입구에 나타났다. 도시락과 물통을 든 남자가 행사장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는 것을 100m 떨어진 곳에서 확인한 여인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윤봉길 의사였고 윤봉길이 삼엄한 검문검색을 통과하도록 도운 27세의 여성이 바로 이화림이었다. 기념식이 시작되자마자 요인들이 늘어선 단상으로 윤 의사가 던진 물병 폭탄으로 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상하이 일본인 거류민단장과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가 즉사했다. 중장 노무라는 눈을 잃었다. 일본 패전 후 미주리함에서 일본 외무대신 자격으로 항복문서에 조인했던 시미게쓰 당시 주중 공사 등 수십명은 중상을 입었다.●윤봉길 의사 훙커우공원 검문검색 통과 도와 거사 직전 이화림은 세 살 적은 윤봉길과 김구 앞에서 애국단 단원으로서 선서를 했다. 원래 윤봉길과 이화림은 부부로 변장해 식장에 들어가기로 했었다. 두 사람은 사전답사를 하며 거사 지점까지 잡아 놓았다. 그러나 둘이 함께 움직이면 발각될 염려가 있다는 김구의 의견에 따라 윤 의사 혼자 거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화림은 훗날 회고록에서 “추풍낙엽이 지듯이 일본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고 썼다. 석 달 전 이화림은 이봉창 의사의 의거도 도왔다. 이봉창은 일왕을 폭탄으로 죽일 계획을 세웠는데 문제는 폭탄을 일본으로 몰래 갖고 갈 방법이었다. 김구와 이봉창, 이화림이 밤새 고민한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 이봉창의 속옷(훈도시)에 숨겨 가는 것이었다. 이봉창의 속옷에 비밀 주머니를 달아 준 이가 이화림이었다. 그 덕에 이봉창은 삼엄한 감시를 뚫고 대한해협을 건널 수 있었다. 이봉창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화림은 오열했다.이화림은 1905년 1월 6일 평양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춘실이며 두 오빠도 일찍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화림도 14세의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며 항일운동에 뜻을 두었다. 중학교를 거쳐 평양 유치원교원학교를 나와 유치원 교사로 잠시 일하며 조선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던 이화림이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것은 1930년이었다. 망명을 앞둔 막내딸 이화림에게 어머니는 눈물을 감추고 정몽주를 떠올리는 시를 선물로 주며 격려했다. “나는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고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리라. 비록 내가 죽을지라도 나의 영혼은 영원히 인간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상하이로 간 이화림은 김구가 만든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김구와 함께 조선인 밀정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거사를 벌일 기회를 엿보았다. 두 의사의 의거 후 이화림은 김구를 떠났다. 테러가 아닌 조직적인 무장 투쟁만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우파인 김구도 코뮤니스트인 이화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화림은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의 추천으로 광저우 중산대학에 입학했다. 법대에 들어갔다가 몇 년 후 신분을 감추기 용이한 의대로 바꾸었다. 1935년 의열단을 포함한 좌익 계열의 조선민족혁명당이 결성됐고 윤세주의 연설에 감동한 이화림은 1937년 1월 민혁당에 가입했다. 1938년 10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를 창건하자 이화림은 부녀대(부녀복무단) 부대장을 맡았다. 대장은 김원봉의 부인 박차정이었다. 조선의용군은 좌파 연합인 조선민족전선 산하의 한인 군사조직이었다. 조선의용군은 적을 상대로 한 선전 활동, 포로 신문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투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중국 국민당에 배속된 선전대여서 대원들은 국민당의 소극적인 항일 투쟁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 이유 등으로 조선의용군은 1939년 10월 화베이행을 결정한다. 의용군은 모택동의 팔로군 지휘 아래 타이항산맥에서 일본군과 싸웠다.●“이화림은 혁명에 충직했던 여류혁명가” 이화림은 일본군 바로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었고 적진 깊숙이 쳐들어가 선전과 삐라 살포에 앞장섰다. 체구는 작았지만 남자보다 용감했다. 중산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진광화의 소개로 간부훈련반을 마친 이화림은 부녀대장이 됐다. 진광화는 타이항산맥 전투에서 윤세주와 함께 전사했다. 당돌한 이화림이 남자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조선의용군 출신 최후의 분대장이자 옌볜 작가였던 김학철의 책에 쓰여 있다. 이화림을 곁에서 지켜봤던 김학철은 이화림을 혁명에 충직했던 여전사이며 여류혁명가라고 평가했다. 중산대학 법대생 김창국과 결혼했다 이혼한 이화림은 이집중(본명 이종희)과 재혼했다. 이집중은 조선총독부의 밀정이며 김활란의 형부인 김달하를 중국에서 처단한 인물이다. 공산주의자라기보다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던 이집중은 화북행을 거부하고 김원봉과 함께 한국 광복군으로 편입됐다. 이런 이념적 차이 등이 원인이 돼 이화림은 또 이혼했다. 이후 이화림은 조선의용군 병원에서도 일했고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1월에는 혁명사업의 일환으로 의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명을 받아 중국의과대학에 들어갔다. 의대 재학 중에 종전이 됐고 이화림은 학업을 계속해 의대를 마쳤다. 중국에 있던 한인 항일운동가들이 광복 후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한 곳을 택해 귀국했지만 이화림은 중국에 남았다. 이화림은 옌볜의학원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하얼빈에서 의사로 활동했다. 그럴 즈음 6·25가 터지자 조선인민군 제6군단 위생소 소장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폭격으로 부상을 당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선양의사학교 부교장, 중국 교통부 위생기술과 간부, 옌볜 조선족 자치주 위생국 부국장 등 주로 만주의 공공 의료 분야에서 조선족을 위해 일했다. 중국의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혁명을 이화림도 피해 가지 못했다. 이화림은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고초를 겪었다. 마오쩌둥 사후 이화림은 명예를 회복했지만 건강이 악화됐다. 말년을 다롄에서 요양하던 이화림은 1999년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中 문화혁명 때 ‘반혁명분자’ 낙인찍혀 고초 이화림의 조선족 사랑은 지극했다. 검소하게 살며 모은 돈으로 조선족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거금을 기부했고 조선족 아동문학작가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임종 직전에도 자신의 전 재산 5만 위안을 다롄시 조선족학교에 기부했다. 김구는 이화림의 투쟁 정신은 높이 샀지만 그의 사상은 싫어했다. 이화림은 백범일지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념적 차이로 김구가 고의로 언급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화림에게는 인민군 간호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주홍글씨 같은 전력이 있어 남한에서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이화림 외에도 일본군과 싸우던 수많은 조선의용군 출신들이 인민군의 일원이 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인민군 보병부대원의 47%가 조선의용군 출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일성은 권력투쟁을 일으켜 옌안파를 숙청했듯이 조선의용군을 내팽개쳤다. 조선의용군은 남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것이다. 중국에서만 중국 옌볜작가협회가 ‘화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는 등 이화림을 기리고 있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여기는 중국] 전업주부 이혼 시 가사 노동 ‘돈’으로 환산…중국 첫 판결

    [여기는 중국] 전업주부 이혼 시 가사 노동 ‘돈’으로 환산…중국 첫 판결

    전업주부의 이혼 시 가사 노동에 대한 보상청구가 가능하게 됐다. 중국 인민법원은 최근 전업주부 왕 씨의 이혼 소송에서 가사 노동 보상금 5만 위안(약 855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전업주부의 가사 노동을 금전적으로 환산, 이혼 시 보상금 지급을 인정한 역사상 첫 사례로 기록됐다. 지난 20일 베이징팡산법원(北京房山法院)은 남편 천 씨가 청구한 이혼 소송에서 혼인을 유지한 기간 중 가사 노동을 전적으로 책임졌던 아내 왕 씨를 위해 남편이 총 5만 위안의 가사노동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공개된 판결문에 따르면, 천 씨와 왕 씨 두 사람은 지난 2010년 처음 만난 이후 5년 간의 열애 끝에 2015년 혼인 신고를 하고 동거를 시작했다. 이후 아들 천샤오 군을 출생했으나, 지난 2018년 7월부터 별거 중이었다. 다만, 남편 천 씨가 제기한 이혼 소송에 대해 아내 왕 씨는 “아직 부부간의 감정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남편 천 씨는 아내와 더 이상 혼인을 유지할 이유와 부부간의 감정이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이혼 의사를 수 차례 피력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 왕 씨는 이에 대해 남편 천 씨에게 가사 노동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관할 법원은 보상금을 요구한 아내 왕 씨의 손을 들어주는 1심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남편 천 씨는 아내에게 총 5만 위안의 보상금과 16만 위안(약 2740만원) 상당의 재산 분할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남편 천 씨는 혼인 기간 중 자녀 양육 및 가사 노동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난 2018년 11월부터 남편 천 씨는 내연녀 A씨와 동거를 하는 등 아내 왕 씨와의 혼인 기간에도 외도 한 정황이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보상금 지급 판결이 공개됐다. 재판부는 “남편 천 씨는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서 이혼 소송을 제기했으나, 귀책 사유가 없는 아내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아서 관할 법원은 1차 소송 시 기각 판결을 내렸던 바 있다”면서 “하지만, 두 번째 소송에서 아내 왕 씨가 남편에게 가사 노동에 대한 보상금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재판부는 혼인 기간 중 남편의 가사 의무를 저버린 행동에 대해 적절한 보상금을 지급토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왕 씨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양 측의 감정이 이미 깨진 상태였다”면서 “재판부는 이 점을 고려해 이혼 소송에 대해서만큼은 남편 천 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법원은 아들 천샤오 군의 양육은 향후 아내 왕 씨가 전담, 남편 천 씨는 매달 2000위안(약 35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토록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왕 씨의 가사 노동에 대한 보상금이 지나치게 낮게 측정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특히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례가 중국민법전에 게재된 ‘가사노동’에 대한 새 규정이 인정된 첫 이혼 소송이었다는 점에 관심이 집중됐다. 다만, 5년 간의 혼인 기간 중 전적으로 가사노동을 담당한 아내에게 이혼 시 단 5만 위안 지급에 그친 것에 대해 가사 노동에 대한 사법적 정의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한 누리꾼은 “이 사건에서 무려 5년 동안의 혼인관계를 고려할 때 가사 노동 보상금은 연평균 1만 위안(약 171만 원)에 불과하다”면서 “베이징에서 보모로 근무하는 근로자들도 연평균 5만 위안 이상(약 855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 보상금 액수를 선정한 법원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이번 판결이 주목받는 이유는 역사상 처음으로 가사노동을 금전적으로 환산해 보상했기 때문”이라면서도 “이번 사건이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오히려 향후 이어질 이혼 사건에서 가사 노동 보상이 저가로 평가되는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킴 카다시안 카녜이 웨스트와 이혼 소송 제기, 결혼 7년 만에

    킴 카다시안 카녜이 웨스트와 이혼 소송 제기, 결혼 7년 만에

    미국의 유명 연예인 킴 카다시안(40)과 힙합 스타 카녜이 웨스트(43)의 결혼 생활이 7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카다시안은 19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고등법원에 이혼소송 서류를 제출했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연예전문매체 TMZ에 따르면 카다시안은 웨스트에게 자녀 넷(딸 노스, 아들 세인트와 시카고, 딸 팜)의 공동 양육권을 요구했으며, 이혼 절차는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혼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카다시안은 2012년 웨스트와 만나기 시작했고, 2014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슬하에는 아들 둘과 딸 둘을 뒀다. 둘의 관계는 지난해 7월 위기를 맞았다. 미국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웨스트가 지지자 수백명 앞에서 카다시안이 낙태를 고려한 적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자, 카다시안이 크게 분노하면서였다. 그 뒤 카다시안은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다들 아는 것처럼 카녜이는 조울증을 앓고 있다”면서 “연민과 공감을 부탁한다”라고 남편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부부는 최근 몇 달간 별거해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카다시안은 캘리포니아주 칼라바사스에 머무르고 있으며, 웨스트는 와이오밍주의 목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카다시안에게 웨스트는 세 번째 남편이다. 그는 농구선수 크리스 험프리스, 음악 프로듀서 데이먼 토마스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일이 있다. 카다시안은 리얼리티 TV쇼 ‘카다시안 따라잡기’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으며, 웨스트는 음악뿐 아니라 패션브랜드 ‘이지’(Yeezy)를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카다시안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억명, 웨스트의 트위터 팔로워는 3000만명을 넘는다. 카다시안의 재산은 7억 8000만 달러로 포브스는 집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남편 반대로 출국 못한 이란 여자스키 코치…휴대전화로 원격지도

    남편 반대로 출국 못한 이란 여자스키 코치…휴대전화로 원격지도

    이탈리아에서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이란 여자대표팀 코치가 남편의 허락을 받지 못해 대회에 동행하지 못하면서 휴대전화로 ‘원격 코치’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사연이 전해졌다.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진행 중인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이란의 파로그 아바시(28)는 18일(현지시간) 열린 여자 대회전에서 1분 36초 80을 기록, 출전 선수 99명 가운데 63위를 차지했다. 그는 경기를 마친 뒤 이란의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향후 이어질지도 모를 압박이나 비난을 무릅쓰고 그가 여성 인권을 언급한 것은 그의 코치인 사미라 자르가리가 이번 대회에 동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르가리 코치가 이탈리아로 함께 오지 못한 것은 그의 남편이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P통신은 “이란 법에 따르면 남편이나 아버지 등 ‘남성 보호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여성은 출국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자르가리 코치는 이란에 남아 휴대전화를 이용해 ‘원격지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경기 시작 전과 1차 시기 종료 후, 그리고 경기를 다 마친 후에 세 차례 휴대전화를 통한 지도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자르가리 코치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남편이 현재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혼에 동의하지 않자 그가 나를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법을 바꾸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싶다”며 남편의 반대로 출국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아바시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다”라며 “이란의 모든 여성과 함께 이걸 바꾸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AP통신은 “2015년 이란 풋살 선수인 닐로파르 아르달란도 남편의 반대로 아시안컵 출전이 좌절됐다”고 이번 자르가리 코치와 비슷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아바시는 “이란에서도 여성들은 운전이나 여행, 운동선수의 경우 훈련과 경기 출전 등이 자유롭다”면서도 “1000명에 1명꼴로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런 것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르가리 코치는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지도자 자격으로 방한했던 인물이다. 이란은 이번 대회에 여자 선수 4명이 출전, 아테페 아흐마디가 대회전 55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그들의 시선] 실패를 가장 많이 경험하는 변남석 작가 “제 작업에 밑그림은 없어요”

    [그들의 시선] 실패를 가장 많이 경험하는 변남석 작가 “제 작업에 밑그림은 없어요”

    “초반에는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거나, 그거 하면 밥이 나오느냐는 분들이 있어요. 할머니들 표현은 단순해요. 뭐 먹고사세요? 라고 물어보시죠. 안쓰럽게 생각하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16여년 전. 분당 탄천에서 돌을 세우던 변남석(59) 설치 작가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그랬다. 이에 대해 변 작가는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할 뿐,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편견 뒤에서 하루하루 꾸준히 쌓아올린 그의 취미는 어느 순간 예술 작품이 됐고, 직업이 됐다.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180도 달라졌다. 최근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공방에서 그를 만났다. 변남석 작가는 무엇이든 균형을 잡아 세우는 재능이 있다. 외국에서는 그를 균형 잡기 예술가, 즉 밸런싱 아티스트(Balancing Artist)라고 부른다. 변 작가는 작은 돌에서부터 유리병, 자전거, 세탁기, 공중전화부스 등 크기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서리나 귀퉁이에 중심을 잡아 세운다. 그는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많은 실패를 하는 사람.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절대 중심을 잡는 ‘중심 잡기 예술가’로 보시면 될 것 같다”라고 소개했다.# 내 삶의 중심을 잃었을 때, 운명처럼 예술 재료를 만났다.  운동 신경이 남달랐던 변 작가는 경희대학교 체육과를 졸업한 뒤 서울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이후 분당에 실내 스키장을 열어 직접 운영했다. “세계에서 스키를 가장 잘 가르칠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그의 자신감만큼이나 사업도 잘됐다. 하지만 이혼의 아픔으로 길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변 작가는 그 시기를 “삶의 중심을 잃었을 때”라고 말했다. 곁에 남은 5살과 8살 난 두 아들과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부침을 느꼈다. “모든 일을 제가 다 해야 하잖아요. 아이들 돌봐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챙겨야 하고. 집안일이 끝나야 비로소 저의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런 생활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인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습니다.” 2003년, 어느 여름날. 심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지쳐 있던 변 작가는 춘천에 있는 등선폭포에 갔다. 계곡에 몸을 담그고 있던 그의 눈에 돌 하나가 들어왔다. 장난삼아 그 돌을 세우고, 그 위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세웠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숙소에 돌아와 그 사진을 본 변 작가는 묘한 매력에 빠졌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 같았어요. 깜짝 놀랐죠. 누군가가 그 돌을 가져갈까 봐, 없어질까 봐,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날이 새자마자 다시 그곳에 가서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날 이후, 돌 위에 돌을 쌓는 것이 좋은 취미가 될 것 같아 (중심 잡기를) 시작했어요. 그게, 이제는 직업이 됐죠.”# “‘돌’ 중심 잡지 말고 ‘돈’ 중심이나 잡아” 변 작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서 중심을 잃었던 자신의 삶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늘 중심 잡기에 몰두했다. 아니 푹 빠졌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변 작가 어머니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당시 어머니는 그에게 “그거 하면 돈이 생기니, 쌀이 생기니…”하며 안타까워하셨고, “돌 중심 잡지 말고, 돈 중심 잡으라”고 조언하셨다. 당시 그렇게 변씨를 걱정하시던 어머니는 지금, 고인이 되셨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균형 잡기에 몰두했다. 돌 세우던 것으로 시작한 소박한 그의 예술은, 자전거, 오토바이, 사다리 중심 잡기 등 다양해졌다. 완성된 작품은 하나씩 직접 촬영해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했다. 이 블로그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KBS ‘오천만의 일급비밀’, SBS ‘스타킹’, ‘생활의 달인’ 등 방송출연으로 이어졌다. 그런 인연으로 서울시 홍보영상에 출연하게 됐고, 그 영상을 본 두바이 왕세자가 자국으로 변씨를 초청하면서 두바이 몰에서 공연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공식적인 그의 첫 공연이었다. “제가 공연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논다고 생각하고 즐기며 보여줬어요. 금액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봉투를 주는데, 1만 달러가 들어 있는 거예요. 그 당시 1000만원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외국에서 섭외 연락이 오면 ‘나는 1만 달러’, 라고 답했는데, 성사가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잘 몰라서 그렇게 말했는데, 나중에는 (부르는 금액이) 점점 줄게 되더라고요.” 이후 변 작가는 국내 방송은 물론 CNN·BBC·NBC 등 다수 해외 방송에 출연했고, 미국·홍콩·싱가포르 등에서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공연, 행사, 광고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입도 늘었다. 이쯤 되면 “뭐 먹고사세요?”라고 질문했던 어느 할머니의 물음에 답이 된 것 같다.# “제 작업에 밑그림은 없어요” 변 작가에게 작업방식을 묻자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진행한다”고 답했다. 그는 먼저 그날 날씨를 확인한 후 장소를 정한다. 그곳에서 어울리는 작품 소재를 찾고, 즉석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는 “장소에 맞는 돌을 찾는 작업이 제일 어렵다”면서 “돌을 찾으면 작은 것은 그냥 들고 옮기면 되는데, 큰 것은 굴려서 옮긴다. 사람들이 보면 저 사람 뭐 하나, 할 정도로 미친 듯이 갯바위 위를 뛰어다닌다. 그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해진 틀에서 작업하지 않지만, 어느 곳에서든 주어진 환경을 기반으로 최선을 다해 창작에 임하는 것이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특별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누군가 ‘무슨 작업 하세요?’ 물으면, 놀아요, 이렇게 답해요. 놀다 보면 실패를 만나고, 또 그 과정에서 ‘이렇게 하면 더 잘되겠다’와 같은 생각이 따라와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면서 생각이 따라오는 작업을 하다 보니 남들과 조금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균형 잡기는, 마음의 중심을 잡고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기 확신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어요.”여러 일정 속에서도 변 작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너희는 모두 특별해’, ‘너희는 능력자야’, 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기부 이유를 밝혔다. 그런 변 작가의 목적만큼이나 그의 재능기부 시간에는 아이들과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낸다. “먼저 그곳에서 소외되는 아이를 추천받아요. 그 아이를 제 도우미로 초대해 옆에 앉혀요. 그러면 아이들이 부러워하죠. 그리고 각 반에서 한 명씩 불러서 시합을 시키는데, 그 아이를 결승에 포함시켜요. 항상 소외받고, 약한 아이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뭐라고 안 해요. 그런데 소외되던 아이가 결승전에서 절대로 지지 않아요. 그때 아이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특별함을 발견하는 경험을 합니다.” 여전히 그의 성공 뒤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가 기다리고 있다. 더구나 변씨는 수전증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다는 ‘긍정 에너지’와 ‘오랜 노력’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약점을 이겨내고 있다. “사실 저는 중심 잡기를 하기에 조건이 나쁜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성격이 급하고 산만합니다. 더 나쁜 점은 손을 떤다는 거예요. 병을 세워야 하는데, 손을 떠니 ‘어떻게 하지? 망했다’ 이런 생각이 잠깐씩 들곤 해요. 그럴 때도 제가 결과를 만듭니다. 사람들은 좋은 조건에서만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더 나쁜 조건에서 뭔가를 이루면, 훨씬 더 강한 사람이잖아요. 그럼에도 결과를 내고 싶다, 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중심 잡기는 실패에 도전하는 작업이니까요.”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형우, 임승범 기자 hwkim@seoul.co.kr
  • ‘조카 물고문’ 이모 “할 말 많다…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살인죄 적용

    ‘조카 물고문’ 이모 “할 말 많다…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살인죄 적용

    경찰, 이모 부부에 ‘살인죄’ 적용해 검찰 송치 10살 조카를 마구 때리고 강제로 욕조에 집어넣는 이른바 ‘물고문’ 학대를 가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에 살인죄가 적용된 가운데 이모가 억울함을 드러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용인동부경찰서는 지난 17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한 이모 A씨(30대)와 배우자 B씨(30대)의 죄명을 살인 및 아동복지법 위반(신체학대) 등 혐의로 변경해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다만 신상정보는 유족 등에 대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모 “기자·경찰, 정해놓고 질문만 한다” 불만이모 A씨는 이날 검찰 송치를 위해 용인동부경찰서를 나서면서 ‘숨진 아이에게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라고 말했다. 이어 ‘친모에게 체벌했다고 보낸 문자 메시지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그게 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거고, 기자들도 형사들도 너무 정해놓고 자꾸 질문만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냐’, ‘혐의를 부인하는 것이냐’고 묻자 “아니다. 정말 잘못했다 생각은 하는데,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다”고 답했다. 또 ‘살인을 부인하시는 건가’라는 질문엔 답 없이 호송차에 올랐다. 이모부 B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답 없이 떠났다. 플라스틱 막대와 파리채 등으로 지속 학대 정황조카 머리·다리 붙잡고 숫자 세어가며 ‘물고문’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8일 오전 9시 30분부터 약 3시간 동안 조카 C(10)양의 온몸을 플라스틱 막대와 파리채 등으로 때렸다. 또 팔과 발을 끈으로 결박한 뒤 욕조에 물을 받아 머리와 다리를 붙잡고 10~15분간 3~4회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은 혐의도 있다. 이모 A씨는 남편이 조카의 다리를 붙잡으면 자신은 조카의 머리를 잡고 물속에 넣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1, 2, 3’ 등 숫자를 세며 조카의 머리를 물속에 넣은 시간을 재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부부는 지난 1월 24일에도 조카의 손발을 결박하고 ‘물고문’ 행위를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에는 A씨 부부의 자녀 2명도 집안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지난 8일 조카가 숨진 날에는 방학을 맞아 두 자녀는 큰이모 집에 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물에 넣었다 빼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아이 호흡정지 오자 “욕조에 빠졌다” 거짓신고지난해 11월 말부터 조카와 함께 생활해온 부부는 12월말 무렵부터 약 20여 차례에 걸쳐 플라스틱 막대와 파리채 등으로 조카를 폭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숨진 조카 C양의 부검에서는 머리를 포함해 온몸에서 두루 멍과 상처가 발견돼 학대가 장기간 지속된 정황이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속발성 쇼크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소견을 내놓았다. 폭력으로 외상을 입었고 이 과정에서 피하출혈이 순환 혈액을 감소시켜 쇼크를 불러와 숨졌다는 추정이다. A씨 부부는 평소 조카가 말을 듣지 않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버릇을 고치기 위해 이같은 학대 행위를 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의 체벌 강도가 점점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 당시 폭행에 이어 ‘물고문’ 행위 때에는 “물에 넣었다 빼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조카가 숨을 쉬지 않고 몸이 축 늘어지자 그때서야 이들 부부는 행위를 중단하고 119에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조카가 욕조에 빠져 숨졌다”고 거짓 신고를 했다. 출동한 구급대원은 심정지 상태이던 C양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이 과정에서 병원 의료진과 구급대원이 C양 몸 곳곳에 난 멍을 발견했고,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하면서 A씨 부부의 잔혹한 학대 행위가 드러났다. 이사·직장 문제 등으로 11월초 이모집에 맡겨친모, 12월말부터 딸과 직접 연락 일절 안해“체벌했다” 문자에도 답 없던 친모 ‘방임’ 조사숨진 C양은 초등학교 3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A씨의 동생인 친모가 이사 문제와 직장 생활 등으로 딸을 돌보기 어렵게 되자 언니 집에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친모는 남편과 이혼한 뒤 2019년 9월부터 딸과 함께 살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C양의 오빠는 아버지가 맡았다. C양은 A씨 부부 집에 오기 전 용인의 다른 지역에서 친모와 함께 지냈다. 사건 발생 전까지 학대 의심 신고는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C양은 이모집 근처의 학교에 지난해 11월 10일 전학을 왔으며, 비교적 정상적으로 등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혼자서 외출을 하는 장면이 방범카메라에 남아 있는 등 감금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 따르면 친모는 딸을 언니에게 맡긴 이후 지난해 12월 말부터는 딸과 전화나 문자 메시지 등 직접 연락을 일절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모 A씨가 심지어 지난달 27일 문자메시지로 동생에게 “(C양을) 체벌했다”고 전했으나 친모는 별다른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C양의 오빠가 1월말 이모 집을 찾아갔으나 “동생이 눈병에 걸렸다”는 말에 만나지 못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경찰은 이에 따라 숨진 여아의 친모에 대해서도 방임과 학대 혐의를 추가로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사망사건에 대한 1차 조사만 마친 상태로 일단 방임 혐의로 형사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구속된 이모 부부에 대해서도 친자녀 2명을 학대한 정황이 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이모 부부, 신상공개 않기로…“자녀 등 2차피해 우려” 한편 경찰은 전날 열린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서 A씨 부부의 신상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 7명의 위원이 피해자(C양)의 오빠나 가해자의 자녀가 있기 때문에 신상을 공개하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모두 반대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의붓아들이 늘그막의 남편 유언장 고치게 했다” 래리 킹 부인 법정 다툼

    “의붓아들이 늘그막의 남편 유언장 고치게 했다” 래리 킹 부인 법정 다툼

    지난달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유명 방송 진행자 래리 킹은 일곱 여성과 여덟 번 결혼했다. 일곱 번째 부인과 이혼 소송이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손수 유언장을 고쳐 자녀들에게 200만 달러의 유산을 물려주겠다고 밝힌 데 대해 부인이 유언장 수정에 하자가 있다며 법정 다툼에 나섰다. 26세 연하의 부인 숀 사우스윅 킹(62)은 수정된 유언장에 서명했을 때 남편의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의붓아들 래리 킹 주니어가 늘그막의 남편에게 적절치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2019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고인은 상속분을 다섯 자녀들이 “똑같이 나눌 것”과 함께 숀을 유산 관리인으로 지명했는데 이를 바꿔 자녀들에게만 물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숀은 자신을 관리인으로 지정한 조항과 자녀들이 똑같이 나누는 조항이 충돌한다고 주장했다. 킹은 이전 부인들과 사이에 다섯 자녀를 뒀는데 딸 차이아는 폐암으로 지난해 7월 51세에 세상을 떴고, 아들 앤디는 다음달 65세에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1997년 결혼한 숀과 킹 사이에는 두 자녀가 있다. 그녀는 이혼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두 사람이 연락하며 지냈으며 머지 않아 법정 화해해 일단락지을 참이었는데 남편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세상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반면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킹 주니어는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숀이 함께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할 인물을 법원이 지명해달라고 주문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법원이 이달 말 법정 심리를 시작한다고 영국 BBC가 17일(현지시간)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트럼프와 생각이 똑같았던 러시 림보 폐암에 스러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트럼프와 생각이 똑같았던 러시 림보 폐암에 스러져

    지난해 10월 “지금껏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던 미국의 보수 논객 러시 림보가 폐암으로 70 인생을 접었다. 라디오 유명인이었으며 정치 해설위원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그가 고비에 몰릴 때마다 든든한 우군 역할을 했던 그였다. 네 차례 결혼해 세 차례 이혼하면서 슬하에 자녀가 없었는데 그의 부인 캐스린 애덤스가 17일(이하 현지시간) 고인의 라디오쇼에 죽음을 알렸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고인은 최장수 라디오 토크쇼로 손꼽히는 자신의 쇼에서 보수 운동 이념을 확산시키는 데 매달려왔다. 세 명의 대통령이 직접 그의 쇼에 출연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했던 1992년 출연했고,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은 여섯 차례나 그와 얼굴을 마주했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출연했는데 이란 혁명수비대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드론으로 척살한 데 대해 아주 잘했다는 림보의 칭찬을 들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고비마다 자신의 편이 돼준 그에게 미국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광인 대통령 자유의메달을 수여해 보은했다. 림보는 영향력은 막강했지만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발언 등으로 숱한 논란에 올랐다. 방송 도중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숱한 음모론을 공개적으로 떠벌였고, 이민에 맹렬히 반대하며 ‘미국 제일주의’의 선봉에 섰다. 1951년 1월 12일 미주리주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시절 이미 지역 라디오 방송의 마이크를 잡았다. 고교를 졸업한 1969년 사우스이스트 미주리주립대에 입학했지만 2학기 만에 중퇴하고 펜실베이니아주의 음악 라디오 방송국에 취업했다. 초기 방송 경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두 직장에서 잇따라 해고된 그는 부모가 사는 미주리로 돌아와 캔자스시티의 공공 문제를 다루는 토크쇼 진행자가 됐지만 곧 해고됐다. 1979년 미국프로야구 캔자스시티 로열스 구단의 마이크를 잡아 유럽과 아시아를 돌아봤는데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믿음이 굳어졌다고 털어놓은 일이 있다. 그는 2013년 청취자들에게 “유럽에 갔을 때 ‘잠깐, 왜 이 침실은 우라지게 올드 패션이고 제대로도 아니지? 이런 게 지옥인 건가? 그들은 이런 걸 화장실이라고 하는군’이라고 말하곤 했다. 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어떻지, 미국이야 200년 밖에 안됐지만 천년을 살아온 사람들보다 훨씬 밝은 앞날을 앞에 두고 있는 거지’란 것이었다.” 림보가 방송인으로 입지를 굳힌 것은 1983년 캘리포니아주의 KFBK 라디오방송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쇼를 진행하면서였다. 1987년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방송 진행자가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도록 규제한 공정성 독트린을 폐기하자 림보처럼 보수적인 진행자에게 살판 나는 세상이 됐다고 BBC는 지적했다. 2005년 일간 월스트리트 저널은 FCC의 결정이 “엄청 말 잘하는 보수 진행자들이 수백만의 엄청 화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향해 마이크를 열어줬다”고 정리했다. 이듬해 그의 쇼는 미국 전역의 수백개 라디오에서 방송됐는데 지난해 통계로는 매주 2700만명의 청취자를 거느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화당과 보수 운동 진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렀다. 인종 편견을 거침없이 방송 중에 드러냈다. 제시 잭슨 목사가 수배자처럼 생겼는데 모든 신문이 그의 사진을 도배하듯 싣는다고 비난했다. 성적 소수자(LGBT)의 권리를 대놓고 짓밟았고, 에이즈 감염자를 경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성관계를 할 때 동의 따위 필요 없다거나 여권 운동을 비웃었다. “페미니즘은 별 매력도 없는 여성들이 주류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쓴 적이 있으며 여성들을 ‘페미 나치‘라고 깎아내렸다. 거짓말이나 엉터리 얘기도 곧잘 늘어놓았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거나 인간이 기후변화를 초래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환경운동가들이 2010년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켰다거나 흡연이 주는 이득이 많은데도 위험이 부풀려졌다고 떠벌였다. 2015년 그는 청취자들에게 “분명히 말하는데 시가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메달을 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코로나 바이러스는 “흔한 감기”라며 “도널드 트럼프를 끌어내리려는 무기가 됐다”고 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자유의메달을 수여하며 “수십년 동안 그가 조국에 지치지도 않게 공헌했다”며 매일 수백만의 청취자가 “스스로 얘기하도록 고무시켰다”고 말했다. 그 며칠 뒤 림보는 폐암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했다며 “10월 1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하루 10시간, 스마트폰 세상에 갇혀 어느새 ‘학포자’… 게임 캐릭터 친구뿐

    하루 10시간, 스마트폰 세상에 갇혀 어느새 ‘학포자’… 게임 캐릭터 친구뿐

    모범생이던 다영이, 엄마 실직 뒤 폰 집착뺏으면 물건 던지고 자지러져 상담만 15번‘영상 만들기’에 빠져 낮밤 뒤바뀐 동준이 보충수업도 무기력, 유일한 외출은 편의점 취약층 아동 66%, 폰 사용시간 크게 늘어“돌봄 공백에 정서적 우울·학습 격차 심화”지난해 직장을 잃은 엄마와 매일 다투는 윤다영(10·가명)양과 침대에서 이불만 덮어쓴 채 겨울을 나는 오동준(13·가명)군의 일상은 코로나가 키워 온 관계 단절·소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윤양은 매일 10시간 가까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엄마가 썼던 구형 스마트폰, 사촌 오빠가 준 공기계, 자신의 키즈폰까지 3개의 단말기로 유튜브, 틱톡, TV 프로그램, 게임까지 반짝이는 눈으로 작은 스크린만 종일 응시한다. 윤양이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드라마 펜트하우스와 예능 프로그램인 미스트롯. 둘 다 시청 가능 관람 등급이 19세, 15세로 윤양에게 부적합하다.●엄마와 소원했던 아이, 함께 생활에 갈등 커져 엄마 양모(41)씨는 “매일 싸웠다. 코로나 이전에는 학교에서 모범생이라고 칭찬받던 아이가 지금은 두 얼굴의 악마가 됐다”고 걱정을 쏟아냈다. 윤양의 디지털 중독 증세는 심각하다. 엄마가 스마트폰을 뺏거나 감추면 물건들을 던지거나 자지러지게 울기도 한다. 모녀는 지난해부터 15차례에 걸쳐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모녀의 갈등과 아이의 스마트폰 집착이 심해진 건 엄마가 지난해 8월 실직하면서다. 양씨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의 스마트폰 집착도 커진 것 같다”고 했다. 양씨는 이혼 후 면세점에서 일해 왔다.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윤양의 교육이나 돌봄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양씨는 “코로나 충격으로 면세점 매출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직원들이 구조조정됐다”며 “나도 실업급여를 받으며 집에 있다 보니 그간 소원했던 아이와의 관계가 더 나빠진 것 같다”고 자책했다. 코로나가 앗아 간 학교의 부재는 후유증이 적지 않다. 성장기에 전인적 배움의 결핍은 윤양뿐 아니라 오군에게도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을 바꾸는 상처가 되고 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오군의 세계는 한 평 남짓한 방으로 좁혀졌다. 오군의 외출은 편의점을 갈 때나 인근에 있는 할머니 집을 갈 때뿐이다. 오군의 집에는 어른이 없다. 오군과 중학생 누나, 고등학생 형 등 홀로 삼남매를 돌봐 온 아버지는 2019년 암으로 숨졌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인 삼남매는 부친을 잃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코로나로 덮인 세상으로부터 소외됐다. 오군이 다니던 지역아동센터는 코로나가 유행할 때마다 문을 닫았고, 심리·정서 지원을 돕던 대학생 멘토링도 잠정 중단됐다. 삼남매는 각자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한 공간 안에서 남처럼 산다. 유일한 어른인 80대 친할머니가 아이들의 끼니를 살피는 정도다. 매달 지원되는 120만원 수급비로 삼남매는 월세를 내고 생활한다.●흥미 잃은 줌 수업, 문 닫은 시설… 폰과 소통뿐 어린 오군이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형·누나, 친구가 아닌 스마트폰이다. 오군은 코로나 초기 학교 줌 수업도 스마트폰으로 챙겨 보고 녹화 수업 영상도 봤지만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면서 흥미를 잃었다. 그동안 오군을 지켜봐 온 변선경 서울 동대문교육복지센터 사회복지사는 “지난 1년간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해 동준이의 학습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며 “담임 선생님이 휴교 중에도 아이를 학교로 불러 보충 수업도 했지만 무기력하다”고 걱정했다. 오군의 스마트폰 몰입은 매일 밤샘으로 이어진다. 오군은 ‘졸라맨’이라고 이름 지은 캐릭터들을 스마트폰으로 그려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만든다. 70초 분량의 영상을 만드는 데 두 시간 이상 걸린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축구하며 뛰노는 걸 좋아했던 오군은 지금은 동네 친구들과도 접촉이 없다. 방안에서 홀로 밤낮을 바꿔 생활한 탓이다. 오군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많다”며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익명의 캐릭터들을 ‘친구’라고 불렀다. 오군은 “꿈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게 싫다”고 했다. 그래서 “마스크를 써야 하니까 안 나간다”고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이유를 말했다. 국제구호개발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과 서울대 아동가족 연구팀이 지난해 8월 조사한 ‘코로나19 취약가정 아동·청소년 실태’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 988명의 66%가 스마트폰 영상 시청 시간이 코로나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고 응답했다. 하영주 희망친구 기아대책 아동복지팀장은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취약계층 아동들은 돌봄 공백의 일상화와 정서적 우울감 증가, 학습격차 심화 등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그 뒤에는 코로나로 인한 유대의 상실,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방치가 있다. 촘촘한 사회적 그물망 구축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안주혁(10·가명)군은 등교 수업이 중단되면서 ‘학포’(학습 포기) 대열에 섰다. 안군은 줌 수업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표현하고 있다. 분식점을 운영하는 어머니 이모(50)씨는 “아이가 몇 번 잘 이해가 되지 않은 문제나 원리를 질문했지만 ‘나중에 설명해 줄게’라며 진도 나가기에 바쁜 선생님과 온라인 수업 방식에 실망한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온라인으로는 소통이나 설명이 충분히 되지 않는다”며 “옆에서 줌 수업을 지켜보니 학원도 다니지 않은 주혁이와 이미 선행학습을 한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가 확연히 보인다”고 답답해했다. ●사라진 소풍·체험학습… 놀이·문화경험도 결핍 성장기 발달에 필요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정서·문화적 결핍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큰 의미가 된다. 신도윤(8·가명)군은 “어린이 대공원에 3년 전에 간 것이 마지막”이라면서 “학교에 입학하면 소풍이나 체험 학습을 가니까 기대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갔다”고 울상을 지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엄마는 도윤이의 놀이나 문화 체험을 챙겨 줄 여력이 없다. 도윤이가 유일하게 뛰놀던 동네 놀이터도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폐쇄됐다. 박경현 샘교육복지연구소장은 “아이들 간의 격차는 교육 환경, 심리·정서, 신체 발달, 사회적 관계 등과 결합되면서 학력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면서 “코로나 장기화는 취약계층 자녀들에게 큰 위기”라고 말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QR코드를 스캔하면 ‘2021 격차가 재난이다-코로나 세대 보고서’ 디지털스토리텔링 사이트(http://www.seoul.co.kr/SpecialEdition/gapDisaster/)로 연결됩니다.
  • KCC 정몽익, 2번째 이혼소송에 부인 ‘1100억대 재산분할’ 요구

    KCC 정몽익, 2번째 이혼소송에 부인 ‘1100억대 재산분할’ 요구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59)이 부인 최은정씨를 상대로 또다시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2019년 9월 배우자 최씨를 상대로 한 이혼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재차 제기했다. 정 회장은 고(故)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최씨는 고(故)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외조카다. 정 회장은 2013년에도 이혼소송을 냈지만 1·2심에 이어 2016년 대법원에서 패소한 바 있다. 정 회장은 다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 둘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법원은 두 사람의 혼인관계가 파탄난 것은 맞으나 그 원인이 중혼관계를 이어온 정 회장에게 있다고 봤다. 혼인관계가 깨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책주의’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2019년 9월 최씨를 상대로 또 한번 이혼소송을 냈고 변론기일과 조정기일이 각각 두 차례 열렸었다. 그러나 조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최씨는 올해 1월 이혼과 더불어 1120억원대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최씨가 요구한 1120억원은 정 회장 재산의 40%에 해당한다. 최씨 측은 원래 이혼을 원치 않는 입장이었으나 세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 등을 고려해 결국 이혼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독재판부에서 심리하던 사건은 최씨의 재산분할 소송 제기로 합의부 재판부로 이송됐다. 변론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10살 조카 물고문’ 이모 부부, 살인죄 적용…친모는?

    ‘10살 조카 물고문’ 이모 부부, 살인죄 적용…친모는?

    10살짜리 조카를 폭행하고 강제로 욕조 물에 집어넣는 ‘물고문’을 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수사해온 경찰이 이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다만 부부의 실명과 얼굴 등 신상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17일 경기남부경찰청과 용인동부경찰서는 숨진 A(10)양의 이모인 B씨와 이모부(모두 30대)를 살인과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B씨 부부는 지난 8일 오전 9시 30분쯤부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 자신들의 아파트 화장실에서 조카 A양이 말을 듣지 않고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파리채 등으로 마구 때리고 손과 발을 끈으로 묶은 뒤 머리를 물이 담긴 욕조에 10여 분간 강제로 넣었다가 빼는 등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A양이 숨을 쉬지 않자 같은 날 낮 12시 35분쯤 “아이가 욕조에 빠져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했다. 구급대원은 심정지 상태이던 A 양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며 그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이 과정에서 병원 의료진과 구급대원은 A양 몸 곳곳에 난 멍을 발견,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고 경찰은 B씨 부부로부터 “아이를 몇 번 가볍게 때린 사실은 있다”는 진술을 받아 이들을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이어 이들을 상대로 A양의 사망 경위를 캐물었고 B씨 부부는 결국 물을 이용한 학대와 폭행 사실을 털어놨다. 계속된 조사에서 경찰은 B씨 부부로부터 지난해 12월부터 A 양을 폭행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A양이 숨진 날 이뤄진 물고문을 연상시키는 가혹행위는 1월 24일에도 한 차례 더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부부가 훈육을 이유로 A 양을 상대로 지난해 12월부터 도합 20여 차례의 폭행과 2차례의 물을 이용한 학대를 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이에 경찰은 B씨 부부에 적용한 혐의를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에서 살인으로 변경했다. 이들 부부가 어린 A양에게 성인도 견디기 힘든 잔혹한 행위를 가하면서 A양이 숨질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A양의 시신을 부검한 부검의의 1차 소견도 살인죄 적용에 영향을 끼쳤다. 당시 부검의는 “속발성 쇼크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외상에 의해 생긴 피하출혈이 순환 혈액을 감소시켜 쇼크를 불러와 숨진 것으로 보인다는 뜻으로 ‘물고문’과 그전에 이뤄진 폭행이 쇼크를 불러온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어린아이에게 이 정도 폭행과 가혹행위를 하면 아이가 잘못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피의자 부부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봤고 부검의의 1차 소견은 폭행과 가혹행위가 무관하지 않음을 의미해 최종적으로 살인죄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혐의가 살인으로 바뀌며 경찰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 따라 B씨 부부가 신원공개 대상이라고 판단, 전날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었지만 위원회는 B씨 부부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 내부위원 3명과 변호사, 교수를 비롯한 외부인원 4명 등 모두 7명의 위원들은 “B씨 부부의 신원이 공개될 경우 부부의 친자녀와 숨진 A 양의 오빠 등 부부의 친인척 신원이 노출돼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비공개 결정 이유를 밝혔다. 경찰은 최근 A양의 친모 C씨도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C씨는 딸인 A양이 B씨 부부에게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보호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B씨로부터 “동생(C씨)과 통화할 때 조카가 말을 듣지 않아서 체벌했다고 알려줬다”는 진술과 이를 뒷받침할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확보해 이같이 조치했다. C씨는 지난해 11월 초 이사 문제와 직장 때문에 아이를 돌보기 어려워지자 언니인 B씨 부부에게 A양을 맡기곤 가끔 찾아와 A양과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C씨는 남편과는 이혼해 혼자 A양을 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A양은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지만, 12월 말 정도부터는 특별히 사용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 B씨 부부를 검찰에 송치하고 C씨에 대해서는 B씨 부부의 A양에 대한 폭행·학대의 횟수와 수위 등을 얼마만큼 알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B씨 부부가 자신들의 친자녀들도 학대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며 “이를 비롯한 B씨 부부의 여죄와 C씨의 방임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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