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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오형국△의정관 이지헌◇승진△부이사관 김진수 ■보건복지부 ◇과장 △보건의료정책 이창준△의료자원정책 고득영 ■국토해양부 △교통정책실장 김한영△항공정책〃 여형구△동서남해안 및 내륙권 발전기획단 파견 박준영 ■K-water ◇실장 △비서 곽수동△기술관리 이규탁◇처장△총무관리 안재홍△재무관리 채봉근△수자원사업 권부현△수자원개발 고양수△수도사업 한규범△수도개발 김성한△수도권관리 이용일△수도권운영 최승철△강원관리 김세종△충청관리 정진표△충청운영 김태호△경북관리 홍용선△경남관리 이경일△경남운영 박영춘◇물관리센터장△한강통합 조홍영△금강통합 최재웅△영섬통합 이현노△경북권 최병습△낙동강통합 김기호◇관리단장△과천권 오석영△성남권 조관식△팔당권 황재혁△소양강댐 박성순△태백권 박언상△아산권 강창석△천안권 김영회△보령권 조재홍△충남중부권 나상진△금산권 임대준△대청댐 위옥량△충주권 여재욱△여수권 김봉수△운문권 윤재흥△포항권 안효원△안동권 안종서△거제권 김진문△울산권 이광호△남강댐 김태열△밀양권 이도용△시화조력 서을성◇건설단장△임진강 강병재△수도권수도 김만기△대산산업용수 윤한봉△성덕댐 이복한△부항댐 류지훈 ■경기도 △교통건설국 대중교통과장 강승호△기획조정실 정보화기획단장 김귀영△수도권교통본부 파견 유한욱 ■한국수력원자력 ◇실장 △감사 김규찬△경영선진화 김극배△홍보 최승경◇처장△기획 강영모◇건설기술처△구조기술팀장 김근경◇기술기획처△원자력산업계회의준비팀장 이종호◇고리본부△신고리제2건설소장 봉기형◇영광본부△제2발전소 운영실장 양창호◇월성본부△신월성건설소장 조태형◇한수원중앙연구원△APR+개발팀장 강용철△안전연구〃 전황용△기기성능〃 박성근 ■MBC △글로벌사업국 부국장 임화민 ■고려대 △의과대학장(의학전문대학원장 겸임) 한희철 ■우리금융그룹 △전략기획부장 안형덕△글로벌사업〃 박동영△미래전략〃 손태승△경영감사실장 권규성 ■우리은행 ◇전보 <부장>△점포개발부 이춘우△고객상담센터 김승걸△주택금융부 임영호△기업영업전략부 최정현△중소기업전략부 김삼종△인수투자부 이필보△프로젝트금융부 최동수△카드제휴업무부 고영배△카드프로세싱부 박세혁△자금운용지원부 이진희△트레이딩부 김건호△단기금융부 윤석구△외환사업부 소영수△U뱅킹업무부 민주홍△신탁부 김윤석△증권수탁부 박규서△협력사업부 김제수△전략기획부 김정기△재무기획부 이성욱△리스크총괄부 최기용△홍보실장 정희경△금융소비자보호센터 박석순△준법지원부 정진백△경영감사부 김선규<부장대우>△기업개선부 유근양 유관훈 조찬호 박도영 최한균△우리아메리카은행파견 조상완 김상현△중국우리은행파견 김상호 강성모 이희운<기업영업지점장>△본점 장재원 오형곤 오동엽 김정태 정동운△삼성 권주수 오승욱△트윈타워 고재설 정명수 이봉우△강남중앙 조성윤 임교택△중앙 김봉기△종로 서윤규△남대문 문기형 인병섭 안선영△여의도 박창섭 김병균△강남 이길영△서부 조남석 양병도<지점장>△가든파이브 이용택△가락남부 박태순△가락중앙 강환복△강남교보타워(투체어스서초센터 겸임) 최창락△강남대로 박효순△강남역 이상철△강남중앙 이용수△강서 이성영△개봉동 박형준△개포동 황성구△갤러리아팰리스 정종숙△거여동 박완기△공덕동(본점기업 겸임) 김대영△공항동 조석준△광진구청 김백철△낙성대 이재연△내발산동 김대호△당산동 유옥△대치동 이제창△대치역 박성상△도곡동 진창옥△독립문 최문규△독산동 최정△돈암동 송기옥△동대문 김선원△동여의도(본점기업 겸임) 정영진△동역삼동(강남중앙기업 겸임) 윤동영△동자동 손중완△마들역 한영완△마포로 김홍중△마포(남대문기업 겸임) 김재천△명동 김치식△문래동 문남현△미아동 차철환△방이동 조공현△방이역 윤순호△북가좌동 박흥수△사당북 이영희△사당역 이한모△삼성센터(삼성기업 겸임) 하태중△삼성역 최현구△삼성타운(삼성기업 겸임) 박종훈△삼일로(본점기업 겸임) 강병모△상계동 유승주△상도동 이상호△상봉동 정락의△상암DMC 전우탁△서교중앙 정영자△서울디지털 신언동△서초남 변재봉△석촌동 서영호△선릉 김홍구△세종로 김영세△센트럴시티 박화재△소공동 김택유△송파 원도일△숭실대역 구홍모△시흥동 이태식△시흥중앙 한규봉△신대방동(트윈타워기업 겸임) 김호영△신림2동 송경용△신림로 성미희△신사동 김중호△신설동 공승기△신정동 김성주△아크로비스타 권광석△양재남 강신종△양재중앙 박혜숙△언주로 배병철△여의도 조운행△역삼역 최정훈△연희동 유홍일△영등포서 고민규△오류동 이만혁△응암동 천평재△응암로 신익수△이수역 이성원△일원동 이종근△잠실남 송연자△잠실 김선규△장충남(종로기업 겸임) 김병규△장충동 우상용△장한평 육근영△종로4가 윤정한△종로6가 유병태△종로YMCA 손정명△중곡동 박종화△중랑교 최재선△중부 윤영진△중화동 정영목△창동 정영기△창신동 소주영△천호동 채의식△청담동 김진우△청담역 변은구△태릉역 이춘호△트윈타워(트윈타워기업 겸임) 이문훈△포스코센터(강남중앙기업 겸임) 이동연△하계동 오세황△학동역 황낙진△한강로(남대문기업 겸임) 박형민△홍은동 유태년△CJ센터(본점기업 겸임) 최재혁△GS타워(트윈타워기업 겸임) 이성호△SH공사 홍현풍△송도 김영생△인천 조명희△주안서 박강식△주안 임병환△고강동 이원중△과천 오완식△광적 이부구△구리 송문형△김포 김진△남양주 소광호△덕소 윤석수△부천내동 신갑섭△부천중앙 윤창진△부천 한희섭△분당구미동 구종민△분당금곡 유정희△분당 권덕재△산본역 장봉영△산본 박양수△삼성반도체 박우정△상동 최한호△서수원 최기상△서현역 김동기△송탄 신택호△수원북 윤기원△수지상현 김기복△신봉 최영훈△안산 이인호△야탑역 이상채△역곡 박창진△오산 이무열△용인 용성봉△원당 김현숙△의정부중앙 박근호△이천 정윤걸△인계동 이양순△중산 김해문△중소기업금융센터 반월공단 김병련△탄현 하태우△평촌 박성연△평택 양충호△화서역 박정기△화성남양 조봉준△LS타워(트윈타워기업 겸임) 김용승△대전북 지해엽△대전중앙 김윤태△대전 조규송△신방동 김영홍△온양 김진범△청주 조진영△충주 김무웅△춘천 박성균△동래 하경호△모라동 원태석△부산(투체어스부산센터 겸임) 임종수△서면 김기주△울산 주상득△내외동 기종광△마산 양기섭△양산 장노미△진주 노일룡△창원 김용식△대구 배상협△범어동 이순조△성서 서동출△구미공단 최홍식△포항 권오준△광주 경은배△금남로 강병효△상무 강영숙△광양POSCO 김희백△순천 주명수△여천 정기순△익산 이은옥△전주 이영구△개성 김인수△런던 이성용<사무소장>△쿠알라룸푸르 김용만◇승진 <부장대우>△개인심사부 류현석 양병재△중기업심사부 김화영 송정한△대기업심사부 홍정호 허성△기업금융부 양동규△검사실 조진섭△카드전략부 박형진△트레이딩부 김필섭△퇴직연금부 김창현△재무기획부 이태영△총무부 김준곤△준법지원부 이수동△강남1영업본부 김재성△강남2〃 임윤균△서대문〃 유태환△영등포〃 이경곤△종로〃 심철현△중부〃 김승오△경기중부〃 신제호<기업영업지점장>△중앙 김철수△종로 박동일 정성근△여의도 변순규△강남 안종해 진황△서부 정현택 이형상△부산경남 박형근<지점장>△가톨릭회관 김민수△강동구청 문세영△김포공항 안재진△까치산역 김민식△노량진 황선배△당산역 김봉진△대방북 김금이△둔촌남 오유정△면목동 하영재△명일역 진수명△목동역 민형식△문래역 한중원△방화역 박상윤△봉천서 박윤호△상암동 김성구△삼릉 정익현△상일역 조병규△서울성모병원 신완식△석관동 황호근△성동구청 김덕△송파송이 기혜림△송파역 최권운△신월7동 송영곤△신청담 조영만△암사역 이상국△양천구청 안용훈△용산시티파크 설혜경△일원역 김영숙△잠실타운 김민교△종로5가 안성경△중계본동 조남우△한국감정원 손공국△한남빌리지 현애영△천호뉴타운 김부영△간석동 전병복△검단신도시 김기완△구월중앙 장문준△용현동 남우석△인천공항신도시 김종목△인천논현 오광호△주안남 한재식△구성 이학수△동두천 김일곤△동백 추웅렬△동탄중앙 강판묵△동판교 김남수△동평택 송병수△분당테크노파크 임성준△분당파크타운 서양희△서판교 육재영△시화스틸랜드 박재우△안양1동 임경택△운정 정기천△의정부금오 최철재△이매동 오경희△일산백마 이경희△토평 기종만△포천 김수남△풍무동 송호철△하남풍산 최봉기△호평 손종열△세이 김성환△용문역 민경만△우리충대 박찬용△대천 최재환△아산배방 이기일△조치원 길원섭△가경동 형영진△산남동 이신희△동해 김진홍△속초 이형재△한림대 정종석△범천동 김미경△부곡동 고창규△수영역 최미경△연산중앙 이호△화명동 이상계△울산북 고석휴△밀양 허종민△창원테크노파크 황남진△통영 장영주△대구용산동 박종현△대명동 김주현△대봉동 이경숙△반야월 안경삼△상인동 이형문△유통단지 채영도△중동 이대기△칠곡 박광희△침산동 김일환△문흥동 라춘홍△유동 오득수△진월동 김영식△목포 김양진△하당 위광복△김제 민병규△서신동 심상규<개설준비위원장>△별내신도시 이우창△논산 이재후△아산테크노밸리 김충식△천안아산역 김영준△전주효자동 임태훈 ■한샘 ◇승진 △상무 천정렬△이사 소춘애 노정현△이사대우 김태욱 이창욱 ■대성MDI ◇승진 △기획 전무이사 조상호△영업 전무이사 이신행△관리 상무이사 박병하△전략기획실장(상무이사) 김일한△동해사업소장(이사) 김대섭 ■현대종합상사 ◇승진 △전무 전성수△상무 강기완△상무보 김규진 남근호 박근우 박종만 이건화 이재환 ■동아건설 ◇승진 <전무>△건축사업본부장 강경돈<상무>△외주구매담당 신언호△중동지역업무총괄 홍창기<상무보>△해외사업팀장 이종선 ■쌍용건설 ◇승진 △부사장 이효연△전무 김동진△상무 피태희△상무보 유병모 박윤섭 이경석 유진태△이사 최기태 김희준 이건목 김한종 허기태 전용봉 ■동부건설 ◇상무 승진 <건축주택사업부>△주택영업담당 장주호△건축기술담당 이주익△마케팅담당 최후영<경영지원실>△전략기획팀장 유재욱
  • 더 헷갈리는 새 도로명

    더 헷갈리는 새 도로명

    ‘도로명 주소’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전국 자치단체가 고시한 도로명이 천태만상이다. 외국어를 남발하거나 발음이 어려운 옛 지명을 억지로 쓰는 바람에 ‘쉽고 간편하게’라는 도로명 주소 도입 취지를 흐리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11일 지자체에 따르면 인천 서구가 고시한 청라지구의 도로명 주소는 ‘크리스탈로’ ‘사파이어로’ ‘에메랄드로’ ‘루비로’ 등 외국어 일색이다. 청라지구 사업시행자가 만든 사업 존(zone)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속셈’이 담겼다. 도로명 주소에 외국어를 써야 세련된 이미지를 풍겨 집값이 올라간다는 생각을 가진 주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루비존의 한 도로명을 우리말로 했다가 집단민원에 밀려 뜻을 접어야만 했다. 송도지구도 ‘센트럴로’ ‘하모니로’ ‘벤처로’ 등 단지의 13개 도로 가운데 7개 도로가 외국어 명칭이다. 택배기사 최모(42)씨는 “외국어 도로명 가운데는 간단치 않은 것들이 많아 당분간 길 찾는 데 고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시 북구 첨단지구 엠코테크놀러지사 앞길은 처음 ‘천변로’에서 ‘엠코로’로 변경됐다. 광주 신안사거리∼임동오거리 구간은 일대 자동차 부품·정비업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미로’에서 ‘자동차로’로 바꿨다. 인천시 연수구의 ‘함박뫼로’ ‘먼우금로’ ‘미추홀로’와 남동구의 ‘매소홀로’ 등은 옛 지명을 되살린 것이지만 발음이 어려워 주민 인식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제주역사문화진흥원이 제주시에 제시한 ‘이형상 목사길’ ‘고조기로’ ‘김대건 해안도로’ ‘이기풍 목사길’ 등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실동길은 ‘배비장로’, 동광로는 ‘오돌또기로’, 연삼로는 ‘설문대로’, 번영로는 ‘자청비로’로 바꿨다. 이들 인물 중 상당수는 역사학자나 알 수 있다. 종교 색채가 강한 도로명을 놓고서는 지자체들이 엇갈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로’를 ‘덕릉로’로,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길’을 ‘지봉로’로 변경했다. 이처럼 불교식 도로명이 일반 도로명으로 바뀐 곳은 전국적으로 100여곳에 달한다. 하지만 충북도는 2009년 고시된 종교적 도로명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보은 법주사로, 단양 구인사로 등 불교식 도로명 15곳, 음성 성당길 등 천주교식 도로명 3곳, 음성 향교길 등 유교식 도로명 3곳을 계속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종교적 논란을 불러올 도로명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는 게 정부 방침이지만 주민들이 원하면 쓸 수 있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도로명 주소에 대한 주민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지난 6월 말까지였던 이의신청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윤의영 협성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새 도로명은 이름을 가지고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를 벗어나 주소 식별 능력이 없다.”며 “이는 도로명을 정하는 데 기본적인 규정이나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 주민들의 의견이나 공공기관 위주로 일방적인 의견이 너무 많이 반영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충북도 도로명 주소 위원인 김영학 청주대 지적학과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이해득실을 따져 엉뚱한 도로명을 요구할 경우에는 지자체들이 끌려다니지 말고 적극 설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전국종합 kimhj@seoul.co.kr
  • [부고]

    ●이종진(전 스포츠서울 광고국 부장)씨 부친상 8일 부평 세림병원,발인 10일 오전 7시30분 (032)508-1346 ●김정무(전 전남과학교육원장)씨 별세 훈종(자영업)씨 부친상 이재혹(금호렌터카 호남본부장)김선호(김선호안과 원장)최두현(대학교육협의회 부장)씨 빙부상 7일 광주 그린장례식장,발인 9일 오전 11시 (062)250-4409 ●이창근(사업)용근(유니드플러스 대표·전 한국일보 미디어마케팅본부장)춘근(미국 예일대 교수)정희(서울시청 청소년담당관)정례(캐나다 거주)씨 모친상 김용근(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총무부장)최환종(주영광교회 목사)이형상(캐나다 거주·사업)씨 빙모상 8일 한양대병원,발인 10일 오전 11시 010-3755-9404 ●안경환(경기신문 문화체육부 기자)씨 조부상 8일 용인 보정장례식장,발인 10일 오전 8시 011-446-0386 ●김동현(월드룩 대표)경란(행현초 교사)씨 부친상 장민수(SK텔링크 과장)씨 빙부상 8일 서울아산병원,발인 10일 오전 7시 (02)3010-2265 ●김원연(길정보시스템 대표)씨 부친상 7일 서울아산병원,발인 10일 오전 9시 (02)3010-2291 ●유현(대신투자신탁운용 채권운용팀 대리)씨 부친상 8일 광주 운암한국병원,발인 10일 오전 9시 (062)528-4443 ●방석조(교보증권 리테일본부장)경창(시민위생 대표)진호(자동차나라 〃)씨 모친상 8일 포항의료원,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054)245-0420 ●고항제(한화리조트 수안보 본부장)죽경(염북중 교사)씨 모친상 김상택(사업)씨 빙모상 8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20분 (02)2227-7594 ●김종태(대경테크노스 상무)종현(치과 원장)씨 부친상 하정민(한국바스프 상무)손영우(국제신문 부국장)씨 빙부상 8일 부산 좋은강안병원, 발인 10일 오전 10시 017-587-1193 ●장선이(SBS 사회2부 기자)씨 외조모상 8일 강릉동인병원, 발인 10일 오전 10시 (033)650-6165
  • “수입 먹거리 통관때 사전검사”

    “수입 먹거리 통관때 사전검사”

    앞으로 국민건강에 위해가 의심되는 수입 먹거리에 대해선 통관 단계에서 검사를 실시해 보건당국에 통보된다.수입쇠고기 및 멜라민 파동 등 수입 먹거리 논란 속에 세관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향후 수입 식품 통관이 한층 엄격해질 전망이다. ●수입식품 통관 한층 엄격해질 듯 허용석 관세청장은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불법 먹거리 수입 논란과 관련 세관이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허 청장은 세관의 ‘선제적 역할론’을 강조했다.식품과 마약류 등 국민 건강에 이슈가 될 만한 사안에 대해 관세중앙분석소가 사전 분석을 실시해 책임기관에 알려 사태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현행 식품안전검사는 식약청 소관이다.때문에 세관은 식품수입 신고필증 확인 후 통관만 하면 됐다. 하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통관의 문제점이 지적됐고,세관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비판이 거셌다는 인식에 따라 이번 조치를 내놓게 됐다. 관세청은 이미 최근 종이형상 물품에서 마약류인 ‘엘에스디(LSD)’가 검출돼 이를 국과수와 식약청에 긴급 통보해 대책을 마련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허 청장은 “법적 책임은 없지만 (세관의)소극적 자세에 대한 비난을 면키 어렵다.”면서 “검역기관보다 먼저 할 수 있는 업무를 적극적으로 찾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표적인 규제행정으로 비판받아온 관세행정을 친기업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허 청장은 “관세청의 기업 지원은 거시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뤄진다.”면서 “돌려줄 세금은 최대한 빨리 내주고,납세자가 낼 세금은 천천히 나눠서 내도록 하는 게 큰 원칙”이라고 강조했다.환율상승과 금융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허 청장은 “이달부터 키코(환헤지상품) 가입으로 손실을 입은 업체와 중소 수출입기업 등에 대한 관세 납기연장과 분할납부 등을 시행하고 있다.”면서 “올해 1조원과 내년 5월까지 3조원 등 6개월간 4조원의 지원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아울러 당분간 관세심사를 유보하고 심사 중인 것은 조기에 종결하도록 해 업체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FTA가 기회 되도록 기업들 적극 지원 허 청장은 또 “기업들이 자유무역협정(FTA)을 경제 활성화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최근 경제단체와 공동으로 FTA 활용전략 사례 발표대회도 가졌다. 그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절차와 규정으로 기업들이 FTA를 해외시장 확대의 기회로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칠레에서 무관세로 화훼 구근(알뿌리)을 들여와 최대 화훼 소비국인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하는 모델은 단순하지만 참고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관세행정 내년 G7 수준 도약 기반 마련 허 청장은 “관세행정의 패러다임이 ‘신속’에서 ‘안전‘으로 전환되고 무역량이 증대되는 등 변화에 맞춰 새로운 관세행정 발전전략(WBC 2012)을 수립했다.”면서 “시행 첫 해인 내년에는 관세행정이 G7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데 주력하겠다.”고 역설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국립민속박물관 ‘허벅과 질그릇’ 특별전

    국립민속박물관 ‘허벅과 질그릇’ 특별전

    ‘한라산과 제주에는 샘과 우물이 매우 적어서, 사람들이 5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길어오는데, 이를 가까이 있는 물(近水·근수)이라고 한다.’ 기묘사화로 유배지 제주에서 생을 마감한 충암 김정(庵 金淨·1486∼1521년)이 쓴 ‘제주풍토록’의 한 대목이다. 물을 길러가는데 5리 정도는 가깝다고 해야 할 지경이고 10리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강우량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편이다. 하지만 구멍이 숭숭뚫린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화산회토 지질이어서, 내린 비는 곧바로 지하로 스며들어 해안가에서 물이 솟아난다. 이렇듯 먼 곳에서 물을 길어가는데 필요한 것이 ‘허벅’이다.196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의 새벽은 물허벅을 지고 용천수(湧泉水)나 공동수도장으로 물길러가는 아지망(아낙)의 발자국 소리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허벅은 보통 대나무로 짠 일종의 배낭인 물구덕에 넣어 어깨에 멘다. 이런 모습으로 물길러가는 제주 아낙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주를 상징하는 풍경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이 13일 기획전시실에서 ‘허벅과 제주질그릇’ 특별전을 시작했다. 민속박물관이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벌이는 ‘2007 제주민속문화의 해’ 행사의 하나이다. 한 때 대량 유통되었다는 양철허벅과 이른바 ‘고무다라이’와 비슷한 재질인 고무허벅에 눈길이 가는 것은, 산업화 사회가 도래했다는 20세기 후반에도 제주의 물사정은 ‘제주풍토록’이 씌어진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전에는 허벅을 비롯해서 허벅보다 입이 더 낮고 넓은 방춘이와 능생이, 입에 턱을 만들어 깔때기처럼 만든 등덜기, 소주를 증류하는 고소리, 떡을 찌는 시리 등 질그릇 220점과 사진 90점이 출품됐다. 제주목사를 지낸 이형상이 1702년에 제주의 자연·역사·산물·풍속을 기록한 ‘남환박물(南宦博物)’과 이원진이 1651년 제주목사로 재임한 26개월동안의 자료를 정리한 ‘탐라지’, 김상헌이 제주에 안무어사(按撫御史)로 파견된 1601년 8월부터 6개월동안 쓴 기행문 ‘남사록’등의 자료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특별전은 지역 민속자원을 발굴하여 지역민속을 보존하고 연구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만들고, 뭍 사람들에게 제주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전시회장을 둘러보면, 생활사 박물관이 아닌 미술사 박물관에 온 것이 아닐까 착각할 만큼 허벅의 현대적 아름다움에 눈을 비비게 된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허벅의 매력을 관람객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꾸민 세련된 전시기법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신광섭 민속박물관장은 “요즘은 허벅의 선을 재현하지 못할 만큼 옛 허벅에는 나름대로 정제된 예술적 감각이 배어 있다.”면서 “지금은 허벅을 예술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달항아리가 그랬듯 100년쯤 뒤에는 허벅 자체가 갖고 있는 예술성이 부각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속박물관의 ‘허벅과 제주질그릇’특별전은 오는 8월15일 막을 내린다. 이어 9월18일부터 10월31일까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같은 전시회가 이어진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e-18세기 탐라

    e-18세기 탐라

    한 해 500만명이 찾는 국민 관광 1번지 제주의 300년 전 모습은 어떠했을까. 제주시는 26일 지난해 5월부터 추진한 ‘사이버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구축사업’을 마무리해 본격적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보물 652-6호로 지정된 탐라순력도는 1702년(숙종 28년) 제주 목사 겸 제주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제주의 모습을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채색도로 그리게 한 41폭의 화첩. 18세기 초 제주도의 관아와 성읍, 군사 등의 시설과 지형, 풍물 등을 제주목사 순력행사를 통해 자세하게 묘사한, 현존하는 제주 유일의 옛 기록화이다. 순력이란 매년 봄, 가을로 지방관이 관할 방어지와 군민풍속을 친히 살피는 것을 말한다. 제주목사 이형상은 당시 알몸으로 작업하던 해녀에게 처음으로 잠수복을 입게 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탐라순력도에는 진상에 필요한 말을 각 목장에서 징발하여 제주목사가 확인하는 광경을 그린 공마봉진(작은 사진 위·貢馬封進), 감귤 과수원에서 관리들이 여흥을 즐기는 귤림풍악(橘林風樂) 등 말과 감귤로 유명한 지금의 제주와 비슷한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또 추사 김정희의 귀양지로 유명한 대정현 일대의 모습을 담은 대정조점(작은 사진 아래·大靜操點)과 국토 최남단 마라도와 우도, 비양도 등 제주 부속섬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특히 최근에 복원한 제주목 관아지 망경루는 탐라순력도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해 화제를 모았다. 복원한 망경루는 조선시대에 지방의 20개 목(牧) 가운데 제주에만 유일하게 존재했던 2층 누각으로,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임금님이 있는 한양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시는 모두 41면으로 구성된 탐라순력도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했다. 탐라순력도 원본 이미지와 함께 그림 내용과 제주지역 문화 풍습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담았다. 또 어린이들이 흥미를 갖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90쪽 분량의 캐릭터 만화 ‘철이와 보람이의 신나는 탐라순력’도 제작했다. 탐라순력도 화폭을 인터넷 메일로 그대로 보낼 수 있는 E-카드, 여러 개의 화폭들을 번갈아 볼 수 있는 화면보호기 등도 서비스한다. 제주시 관계자는 “탐라순력도는 30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 변방의 섬, 귀양의 섬, 제주를 여행하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고 말했다(www.tamnamap.jejusi.go.kr).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7)茶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7)茶室

    붉디붉은 동백꽃이 벙그러져 하늘을 향해 얼굴을 내민다. 퍼득이는 새의 날갯짓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붉은 동백의 무리들은 마치 절망 속에서 자신의 삶을 내던져 버리는 중생들의 아픈 추락비행 같다.‘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속에 깃든 의미는 아마 희망이었던 것 같다. 추락과 날개는 상반된 감각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추락이 절망이요 포기라면 날개는 곧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로지 한 곳을 향해 집중하고 인내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넉넉한 삶의 여유다. 신년 들어 일지암에서 중생의 평안과 차인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다회를 열었다. 멀리 서울과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초의차문화연구원들이 참석했다. 신년다회는 일지암 초당에서 열렸다. 까실까실하고 상큼해 보이는 새 볏짚으로 엮어올린 지붕을 가진 일지암 초당에는 3평 남짓한 차실이 있다.3방향으로 문을 해닫고 한쪽에는 차를 덖을 수 있는 부엌으로 만들어 놓은 일지암 초당 옆으로는 그 유명한 유천이 흐른다. 초당의 문을 열면 두륜산의 광활한 산맥이 울퉁불퉁 튀어오르는 것이 보이고, 늦은 오후 맑은 석양에는 서해바다의 잔잔한 물소리가 바람과 풍경소리를 타고 월담을 한다. 아름다운 풍광을 다탁으로 한 일지암 초당의 다실은 그야말로 담백하다고 말할 뿐이다. 갈아 붙인 회벽에 몇겹으로 이어 붙인 회백색 벽지와 3명 정도가 마실 수 있는 작은 차 도구가 전부다.2∼3명의 찻자리는 늘 고요하다. 오직 바람소리와 유천의 물소리를 벗삼아 자신의 마음을 흘려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지암의 차실을 두고 ‘무애의 차’ 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차인들에게 차실은 차, 차도구와 함께 매우 중요한 것중 하나다. 차를 하면 할수록 자신만의 차실을 하나쯤 가꾸는 염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부쩍 자신의 차실을 소유하는 차인들이 늘고 있다. 작게는 3∼4평, 크게는 10여평의 차실을 근사하게 가꾼 후 가까운 차인들을 초대해 차회를 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도심의 아파트에서도, 먼 산골의 초막에서도 차실을 꾸며 차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차실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일본의 차실이다. 일본의 차실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도의 문명을 향유한 일본문명의 상징처럼 일본의 차실은 세계적인 눈길을 끌었다.100여년이 넘는 대숲속의 차실들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눈에도 동양문명의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이른바 초암으로 불리는 일본의 다실들은 실로 담백하기 짝이 없다. 허리를 굽혀야 하고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몰려 앉아 무릎을 맞대고 먹어야 하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차실이 바로 이 시대의 차인들과 서양인들의 마음과 눈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초암의 백미는 텅 비어 있고 작다는 데 있다. 초암에 대해 조선시대 이형상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내 집은 초려삼간/세상일이라곤 전혀 없네/차 달이는 돌 탕관과 고기 잡는 낚싯대 하나/뒷산에 절로 난 고사리 그것이 분수인가 하노라.”라며 소유하지 않는 자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초암의 핵심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이라는 점에 있다. 그리고 작지만 위대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한적한 대숲이나 정원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초암은 흙과 볏짚을 혼합해 바른 벽이나, 대나무와 흙으로 엮어 만든 벽이 대부분이다. 방바닥 역시 마찬가지다. 대나무 자리를 깔거나, 갈대를 엮어 만든 것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암 차실은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가집 같은 것이다. 이른바 건축의 기본을 도외시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쉽게도 일본 초암차의 원류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우리의 옛 초가집의 소박한 멋이 원형인 것 같다. 최근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일본 초암다실의 원형은 우리나라라는 것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센리휴에 의해 완성된 초암차실은 당시 강대했던 무사계급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꺾으려는 정치적 목적도 가미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록 자결은 했지만 도요토미의 왕사역할을 했던 센리휴는 차의 근본정신 회복을 통해 일본 지배계급의 야만성을 희석시키려 했던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굽어보게 하는 소박한 다실인 초암은 우리나라의 초가집들과 매우 닮았다. 초암다실이 세계적인 다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사성과 함께한 정신성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근원적 투쟁심을 탈각시켜 버린 무소유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물신주의의 총아인 자본주의는 불가사리처럼 무엇이든 거대화시키고 조작해낼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 그러나 초암은 그런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역설의 미학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곧게 수직으로 뻗어내린 직선의 미학에 휘어지고 굽어진 곡선의 미학으로 맞서고 있다. 화학화시키고 인위적으로 조작한 재료 대신 흙과 집 그리고 대나무 등 천연재료를 사용,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데 그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 작고 어두운 초암은 폐쇄적인 공간이 결코 아니다. 사방을 개방해 누구라도 들고 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 열린공간은 신분의 차별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초암은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했다. 깊은 산중에서 수행을 하기 위해 손가는 대로 지어낸 띠집인 초암, 가난한 선비들이 호연지기를 기르고 청빈함과 검소함을 자랑하기 위해 만들었던 모사(茅舍), 초려(草廬), 초정(草亭), 또한 왕이나 왕세자 등이 제를 지내기 위해, 잠시 머물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은 모옥(茅屋), 초옥(草屋) 등이 존재했다. 먼저 초암은 원래 스님들이 살던 암자의 명칭이기도 하다. 대중수행을 피해 홀로 수행을 하기 위해 깊은 산중에 아무렇게나 지은 작은 암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초암은 천연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검소하고 청빈한 삶의 원형을 그대로 담아내게 된 것이다. 설잠 스님의 ‘모암’이란 시는 이같은 상징성들을 그대로 드러낸다. “푸른 산 깊은 곳에 귀틀집 한 채 얽었는데/집 아래로는 맑고 맑은 만길 깊은 못이로세/가는 곳 되는대로 구름따라 함께 가고/머물 때엔 한가로이 달 아래 절방에 함께 있네.” 선비들이 독서나 차를 마시는 데 이용했던 초정이나 누실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며 호연지기와 청빈함을 자랑했던 초정이나 누실 역시 작고 소박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암의 원형들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 점에서 초암은 자연주의의 원형이랄 수 있다. 그같은 것은 차가 지닌 자연성과 우주성을 일체화한 독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암은 또 차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물론 역사성과 현실성에서 시작된 것이겠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현대에 와서 초암은 문명의 역설성을 상징하고 차의 본연성을 담아낸 천연의 기제로 자리매김될 만하다. 차의 정신은 궁극적으로 하심(下心)에 있다. 넓고 큰 집, 넓고 화려한 광채가 나는 차실은 바로 현대인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또 다른 기제다. 그러나 초암으로 대별되는 차의 정신은 내 욕망을 내려놓은 하심을 구조적으로 추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좁고 작아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문들, 도대체 막힘이 없는 사방으로 열린 공간들, 울퉁불퉁 튀어나온 소나무의 서까래 등 순수한 자연의 미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경계를 풀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초암에서 소박한 미의식을 본다. 소박한 미의식이란 작고 볼품없는 공간속에서 채워낼 수 있는 정신적 충만감을 의미한다. 일지암 초당의 신년차회는 바로 이같은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바싹 마른 장작을 구들에 넣고 사방으로 환히 열어젖힌 초당의 문들, 바로 앞의 작은 연못과 붉게 핀 매화 향, 그리고 손에 잡힐 듯 툭툭 꽃봉오리를 벙그러올리는 동백꽃이 바로 또 다른 차의 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그들은 그 찻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스님 참으로 부끄럽고 초라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자연의 경이 앞에서, 꾸미지 않은 자연의 소박함 앞에서 내가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며 그들은 자연을 품에 안았고, 현대사회 속에서 일그러져 있는 자신의 작고 초라한 모습을 관조할 수 있었다. 찻자리가 소중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차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자연을 나누고 결국은 우주를 나눌 수 있다. 한발짝 더 나아가 차를 통해 자신을 개벽시킬 수 있는 단초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술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육신을 망치지만 차는 사람을 가라앉히고 육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신묘로운 작용을 한다는 말이있다. 차 한잔은 이렇게 인간의 삶의 양식을 바꿀 수 있기도 하다. 일지암 암주 ■ 현대인의 차실은… 차실은 차인의 품격과 인격을 나타내는 척도다. 요즘 찻자리에 초대되어 가보면 이른바 명품으로 치장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것은 누구의 작품이며 이것은 얼마나 값어치가 나간다고 자랑을 한다. 그럴 때 그 찻자리에는 은근히 질시와 불편함이 싹튼다. 이른바 차회가 아니라 과시회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차가 자신의 신분과 인격을 상승시켜주는 인격체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경우를 보며 씁쓸해한다. 흔히들 차를 격식의 문화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갖추어진 다실에서 갖추어진 다구와 차를 준비한후 예법에 따라 마시는 것이 바로 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른바 그것은 바로 차가 격식화되어 있는 것이다. 차는 격식의 문화가 아니다. 물론 의식을 통해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차는 당연히 격식의 차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차는 자연스러움과 소박함 그리고 편안함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우선 차는 특정인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차를 마실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갖추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공유하는 나눔의 마당이 되어야 한다. 거실이나 방에서 행다를 해도 된다. 차실은 가급적 비린내가 나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깨끗하고 아담한 분위기 연출을 위한 곳이면 더욱 좋다. 먼저 다실을 꾸밀 공간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다. 다실의 크기는 3∼4평 정도가 제격이다. 다실의 크기가 너무 넓으면 주위가 산만하고 어지럽기 때문에 오히려 차실로서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실은 손님을 접대할 몇 가지 가구와 다구, 요란하지 않은 화분이나 서화로 간단하게 장식되어 있으면 더욱 좋다. 다실에 놓여진 난과 꽃은 차실의 분위기를 한층 품격있게 만들기도 하다. 다만 너무 요란스럽게 꾸며진 장식물들은 오히려 차실의 분위기를 해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실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응접실이나 서재를 이용해도 된다. 우선 차를 마실 수 있는 차도구를 위한 상시적인 공간을 마련한다. 그곳의 넓이는 0.5평 정도면 된다. 가능하다면 창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좋으며 조촐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소나무 화분이나 꽃 등을 준비해 놓아두면 더욱 좋다. 마지막으로 응접실이나 서재도 없는 단칸방에서도 차는 가능하다. 평상시에 차를 마실 수 있는 도구를 사람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놓아둔 다음 차를 마실 때 자리를 마련해 마시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행다란 다실의 유무에 있지 않고 그것을 소박하고 검소하게 즐길 수 있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국적회복’나선 中동포/(상)‘강제출국’ 안타까운 사연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들이 극한투쟁에 돌입했다.오는 17일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예고된 가운데 이들 중국동포는 ‘고향땅에 살 권리’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에 이어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중국인으로 불법체류자일 뿐’이란 법률 논리와 ‘고향에 왕래하는 것은 천부적인 권리’라는 역사성을 강조한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중국동포들의 현주소와 역사적 배경,해법 등을 살펴본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중국동포들이 ‘고향에서 살 권리를 보장하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접수시키고 있는 동안 재판소 밖에선 5000여명의 중국동포들이 손에 손을 잡은 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누군가가 시작한 노래가 커다란 울림이 돼 퍼지면서 이들이 한 민족임을 실감케 했다. ●“우린 조국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이 땅에 할아버지 묘지도 있고,내 호적도 있고,친척들도 있는데 왜 제가 이 땅에서 쫓겨나야 합네까.” 새문안교회 단식농성장에서 만난김자연(가명·55·여)씨는 두 손을 꼬옥 말아 쥔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한국에 온지 6년이 됐지만 그동안 모은 3000만원은 얼마전 사기를 당해 다 날려버렸다.그는 “쫓겨날 상황에서 단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면서 “우리는 아픈 역사의 희생자일 뿐 조국이 싫어 떠난 사람들이 아닌 만큼 무조건 불법체류자라는 굴레로 엮지 말아달라.”며 하소연했다. 5살 때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간 이형상(64)씨는 “우린 동포 아니냐.”며 말문을 열었다.그는 “중국 땅에서 수십년간 이방인이라는 눈총을 견디며 풀뿌리처럼 살다 어렵게 찾아왔는데 조국마저 우리를 버린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여기 모인 사람 중 조국 땅 싫어 떠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도 딱한 처지는 마찬가지겠지만 중국동포들이 이 땅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를 찾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법률자문을 맞고 있는 정대화 변호사는 “재중동포의 국적문제는 단순히 헌법적인 차원을 넘어 일제 강점기의 수탈을 피해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한민족의 역사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중국동포들이 자진해서 중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만큼 이들이 국적을 취득할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또 “독일이 통일 후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100만명 이상의 독일인들에게 국적회복을 해준 만큼 우리도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재중동포의 국적회복의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일제단속에 생이별의 아픔도 불법체류자라는 족쇄 때문에 일제단속이 시작되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중국동포들도 적지 않다.이충일(32·여)씨는 요즘 아들 성민(가명·3) 때문에 외출을 할 수도 없다.세살밖에 안되는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밖에 나가면 경찰아저씨가 엄마 잡아가.”라며 엄마의 다리를 잡고 떨어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씨가 한국에 온 것은 6년 전.식당에서 일하다 한국인인 장모(38)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성민이를 갖게 됐다.하지만 혼인신고를 하고 돈도 모아 함께이씨의 고향인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살자던 부부의 약속은 이내 남편의 외도로 무참히 깨져버렸다.지난 8월 한국 여자가 생긴 남편은 이후 이씨를 폭행하고 아들 성민이마저 빼앗아갔다.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열흘 남짓만에 아들을 되찾았지만 모자(母子)가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17일부터 시작되는 단속에 적발되면 이씨는 아들을 남겨둔 채 강제출국을 당하고 호적법에 따라 성민이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혼한 어머니를 찾아 옌볜(延邊)을 떠나 한국에 온 현아(가명·14·여)는 국내법상 불법체류자다.미성년자인 불법체류자들은 학교의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학교장 재량에 따라 강제출국은 피할 수 있다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현아는 지난 2000년 방학을 맞아 한국 남자와 재혼한 어머니 김선숙(35)씨를 만나러 왔다가 함께 살게 되었다.학교장의 배려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입학은 했지만 1학년 1년 동안은 시험조차 볼 수 없는 청강생 자격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서울 외국인 노동자의 집 이선희 소장은 “학교장 재량에 따른다는 애매한 조항에 따라 현아와 같은 미성년 불법체류자 역시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유지혜기자 whoami@ ■이은규 서울조선족교회목사 “중국동포들에게도 조국에서 살 권리를 주십시오.” 중국동포의 국적회복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서울조선족교회 이은규(사진·43) 목사는 “중국동포들은 우리 나라에서 단순히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향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면서 국적회복 운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목사는 “중국동포 대부분은 일제 시대에 독립 운동이나 생활고를 피하기 위해 만주로 떠난 사람들의 후손”이라면서 “해방 후 북한에 들어선 김일성 정권 때문에 귀국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머물러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이어 “1948년 제정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에 의해 한국 국민이 됐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중국과 한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면서 ‘국제 미아’가 된 중국동포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라며 이번 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중국동포들의 국적회복 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법무부에 대해 ‘책임 방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이 목사는 “우리나라는 지난 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을 당시 국내법 효력을 갖는 ‘재중동포의 지위에 대한 협정’을 만들지 않았다.”면서 “이는 만들어야 할 법을 안 만든 ‘입법 부작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또 “법무부는 중국동포들의 국적회복 신청을 거부함으로써 같은 동포의 국적선택권,평등권,행복추구권을 위배했다.”면서 “정부는 스스로 양산한 중국동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책임방기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목사는 이와 함께 “우리 국민들도 중국동포 문제에 대해 좀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190만 中동포 이주 역사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재중 동포는 190여만명에 달한다.대부분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거나 생활고를 피하기 위해 한반도를 떠난 이주민의후손들이다. 주로 ‘동북 3성’으로 불리는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에 거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이징,톈진,신장,상하이,광저우 등 중국 전역 대도시로 진출하고 있다. ●첫 이주는 1860년 베이징조약 직후 재중 동포 이주사는 크게 3기로 나뉜다. 1기는 19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로 대부분 가난과 탐관오리들의 폭정을 피해 압록강을 건넜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2기에는 항일운동을 위한 정치적 망명이 주를 이뤘다. 3기는 45년 해방까지의 시기로 당시 일본은 일본인을 조선으로,조선인을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시키는 환위이민(換位移民) 정책에 따라 대규모 강제이주를 실시했다. 1기 이민은 1860년 베이징조약 체결 직후에 이뤄졌다.당시 청나라는 러시아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청조의 발상지인 만주지방에 대한 ‘봉금정책’을 풀고 주민들을 국경지대로 이주시켰다.그러자 조선의 헐벗은 농민들도 비옥한 미개척지를 향해 강을 건넜다.이들은 이주 초기 청의 관헌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었지만 1880년대 청 조정이 간도개척을 위해 조선족 포용정책을 펼치면서 간도지방 곳곳에 조선족 마을이 생겨났다. 학계에서는 이 시기부터 한·일합병 직전까지 20여만명의 조선인들이 국경을 넘은 것으로 추정한다. ●한·일합병 직전까지 20만명 이주 일제의 한국침략이 노골화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직후부터 1919년 3·1운동 전후까지는 주로 항일인사들의 정치적 망명이 많았다.국내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홍범도,유인석,이범윤 등이 을사조약을 전후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전후에는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기획이민’이 활발했다.이상설,이동녕,안창호,박은식,신채호 등이 이 시기 만주에 정착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만주지방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대규모 개발계획을 세운다.이에 따라 황무지였던 이곳에 조선 농민의 집단이주를 추진,38년 처음으로 간도와 랴오닝지방에 조선인들이 정착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 후에는 전쟁 물자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개척이민단’이란 이름으로 조선인농민들을 강제이주시켰다. 이세영기자 sylee@
  • 집무실등 7개동 복원 제주목 관아 되살아났다

    사적 제380호 제주목 관아(사진)의 복원공사가 22일 준공됐다.조선시대 관아 가운데 중심 건물들이 모두 복원된 것은 제주목이 처음이다. 제주목 관아 복원작업은 제주목사 이형상의 ‘탐라순력도’(1703년)와 고득종의 ‘홍화각기’(1435년)를 바탕으로 지난 92년 착수됐다. 그동안 국비와 지방비 등 141억원을 들여 99년 외대문을 시작으로 제주목사의 집무실이었던 홍화각,집정당인 연희각,연회장으로 쓰였던 우연당과 귤림당 등 7개동을 다시 세웠다. 서동철기자 dcsuh@
  • [씨줄날줄] 용연야범(龍淵夜泛)

    제주도가 음력 4월 보름 전날인 25일과 보름인 26일 이틀동안 ‘용연야범(龍淵夜泛) 축제’를 펼쳤다.월드컵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300년전 선조들의 풍류가 서린 전통축제에 오늘을 사는 후손들의 바람을 소담스럽게 담은 것이다.성공기원 축제가 맨 먼저 제주에서 열려 반갑다.화신(花信)이 제주에서 출발,전국에 전해지듯 월드컵 열기도 전국으로 훨훨 번져가기를 기대한다. 지난 1999년부터 재현되고 있는 용연야범은 말 그대로 제주의 빼어난 풍광 중 하나인 용두암 동쪽의 용연이라는 연못에 밤 배를 띄워 놓고 벌이는 축제다.그간 전통의 용왕제와 춤,노래에다 현대의 가곡과 춤을 잘 조화시켰다는 평을들었다.예나 지금이나 교교한 달빛속의 ‘선상음악회’다. 월드컵을 맞아 확대된 이번 축제는 조순자 명창의 여창가곡,황병기 명인의 가야금 독주,조상현 명창의 판소리가 용연의 밤하늘을 가득 메우며 성황리에 치러졌다는 보도다.특히 이매방 명인의 살풀이 춤사위는 밤의 침묵 속에서도 월드컵 관광객들로부터 탄성을 자아냈다고 한다.용연야범은 성산일출,사봉낙조,영구춘화 등과 더불어 영주(제주의 옛 이름) 12경중 하나이다.원래 새로 부임한 제주목사와 함께 제주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놀이였다.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용연 양옆으로는 높이 7∼10m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용연야범이 오늘 재현된 형태와 비슷한 축제 모습을 갖춘것은 조선 숙종 28년인 1702년.당시 제주목사로 부임했던이형상(李衡祥)이 탐라순력도에 ‘병담범주(屛潭泛舟)’라는 이름으로 당시 풍광을 화폭에 세세(細細)하게 담았다.한시 백일장과 시조 경창대회,활쏘기 경연대회,용왕제 등이보물로 지정된 5장의 그림에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는 것이다. 제주 축제에 앞서 정치권도 뒤늦게 월드컵 성공을 위해 ‘정쟁중단’에 합의했다.노사도 평화의 대열에 합류할 태세다.만시지탄이나,지구촌의 축제를 앞두고 여간 다행스러운일이 아니다. 용연야범 축제는 일년내내 어부와 해녀들의 안전,그리고풍어(豊漁)를 위해 섬사람들이 드리는 기원의 총화다.올 축제에 월드컵 기간동안 아무런 사고도 없기를 바라는 안전기원과,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기를 원하는 풍어 기원을 함께 드리면 지나친 욕심일까. [양승현 논설위원 ya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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