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합집산
    2026-01-19
    검색기록 지우기
  • 전통문화
    2026-01-19
    검색기록 지우기
  • 전광훈
    2026-01-19
    검색기록 지우기
  • 특별사면
    2026-01-19
    검색기록 지우기
  • 저작권
    2026-01-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2
  • 대전환기­문민정부의 신항로/박관용 정치특보 「신문로 포럼」조찬연설

    ◎행정구조 개편 선거 관계없이 꼭 실현돼야/기득권층 반개혁 구태 「국민 심판」 받아 마땅 박관용 대통령정치특보는 24일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대전환기­문민정부의 신항로」를 주제로 열린 「신문로포럼」 주최 월례조찬회에서 개혁과 세계화 지방화에 대한 견해를 발표했다.발표내용을 요약해 본다. 냉전종식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지방자치제 실시등은 우리가 당면한 전환기적 「도전」이다. 이러한 시기에 국민의 손으로 선택된 김영삼정부가 변화를 주도해 나간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개혁은 방법에서부터 새로워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김영삼정부는 이를 「윗물맑기 운동」에서부터 실천해왔다. 새 정권에 돈을 바치고 보호를 구매하는데 길들여진 기업들은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믿기는 커녕 불안해 하기까지 했다.대통령이 기업인들과 만나 기업의 경쟁력 육성을 약속하고 부패의 근원인 행정규제의 완화를 약속하고 나서야 의심이 풀리기 시작했다. 규제완화는 이제 공무원들이 아닌 민간 주도로 새롭게추진돼야 하며 김대통령 임기내내 추진될 것이다. 지난해말 단행한 정부조직 개편도 같은 맥락에 서 있으며 행정계층축소등 행정구조개편도 선거와 관계 없이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이를 선거연기음모로 비약하는 사람들을 본다.개혁은 혁명처럼 무력을 쓸 수도 없고 합법성과 국민에 대한 설득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일임을 실감하고 있다. 개혁총론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80∼90%에 이를 정도로 충분하다.그러나 각론에 가서는 조그만 불편에 부딪혀도 즉각 불평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정통성 도덕성에 대해 의심받지 않는 정부가 총론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 줘야 개혁이 밑으로 확산된다. 시행착오나 정책 인사의 혼선에 대한 비판은 수용하겠지만 비판속의 협조는 유지돼야 한다. 반미를 통치수단으로 삼는 북한은 북­미수교가 이루어질 때까지 남북대화를 거부하려 할 것이다.따라서 동서독의 전례처럼 인내를 갖고 접촉,대화를 유도해야 한다. 최근 김일성 조문 파동과 연관지어 정부의 북한정책을 비판하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그 때의 상황을 무시한 적절하지 못한 비판이다. 지방자치제는 중앙정치의 인질이나 모조품이 돼서는 안된다.인력·자원의 재생력을 갖는 경쟁단위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자치단체의 외자유치를 위한 법령·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며칠전 광역단체장 출마희망자를 만나보니 「봉건영주」를 꿈꾸고 있었다.전문경영인을 「모셔」 일어선 일본 이즈모시를 모범삼아 지방자치제에 대한 인식전환에 지식인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이합집산을 통해 지난 시절의 향수에 집착하는 기득권 집단이 있다.그들은 진정한 이념적 정책적 차별성도 없다.새정부 초기의 침묵에서 벗어나 뭔가 틈새를 찾으려 하고 언젠가는 정부에 맞서려고 할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사회는 권력과 어떤 집단이 대립하는 구조가 아니며 공권력의 동원은 탄압으로 불리기 쉽다.문민정부는 합리적 설득과 여론및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그들의 구태가 정도를 벗어나면 용서할 수 없겠지만 문민정부는 정당한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다.
  • 좌우익 대립 극심(새로쓰는 한국현대사:9)

    ◎반탁대회 성공하자 김구 “과도정부 추진”/좌익 찬탁 급선회후 전국 암살·테러 잇따라/반탁운동 격렬… 서울 철시·군정종사원 파업/좌우 4개정당 “임정 세워 국난 수습… 대단결” 추구 모스크바삼상회의가 결정한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과 「5년이내 신탁통치」는 이 땅에 남긴 것이 없다.그런 뜻에서 회의 자체가 우리에게 대단한 역사적 의미를 던져주지 못했다.다만 이를 기화로 남북의 각 정치세력은 주도권잡기에 혈안이 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만다.일제 유산 처리는 뒷전으로 밀린채 좌우익 대결구도만이 전면에 떠올랐던 것이다. ○군정청 “가두시위 훌륭” 1945년 12월27일 「모스크바 결정」이 전해지자 38선 이남지역의 세밑 정국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쪽은 김구를 중심으로 한 중칭(중경)임시정부 세력이었다.중칭임정측은 28일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결성,4대국 결정에 대항해 시위와 파업을 벌이라고 백성에게 직접 촉구했다.이날 밤부터 서울시내에는 「반탁」벽보가 곳곳에 나붙고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가두연설을 한 몇몇 인사는 미 헌병에 의해 연행되기 시작했다. 김구는 「신탁통치에 대한 비협조」를 선언하고 나섰다.그는 선언문에서 『한반도는 유엔이 규정한 신탁통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4대국 신탁통치는 ▲민족자결을 바라는 민족 염원에 어긋나며 ▲제2차세계대전 중 영국이 되풀이 약속한 내용과 다른데다 ▲끝내는 극동 평화를 깨뜨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김구는 이 내용을 4개국 원수들에게 전달하라고 미군정청에 요구했다. 29일에는 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회의가 열려 중칭임시정부와 청년단체들이 긴밀하게 협조,조직적인 반탁국민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한다.좌파인 조선인민공화국(인공)중앙인민위원회와 조선인민당도 이날 「신탁통치 배격」담화를 발표해 반탁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부터 서울거리는 철시했고 미 군정청에 근무하는 한국인들도 총파업을 선언,집단결근하고 따로 반탁 가두시위를 벌였다.이같은 분위기에 놀란 미군정청은 이날 하오8시부터 헌병을 제외한 미군 병사와 민간인의 외출을제한하는 일종의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30일에는 국민총동원위가 「국민행동강령」발표를 통해 「중칭임시정부 절대 수호」와 「외국군정의 철폐」를 호소한다.이날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송진우가 암살된 것도 그가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국민총동원위는 곧이어 31일 하오2시 서울시민반탁대회를 열었다.당시 중앙신문(좌익지로 뒤에 찬탁으로 선회,46년 9월 미군정에 의해 폐간됨)은 대회상황을 「수만명의 남녀노소가 구름같이 모여들어 탁치반대 깃발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질서정연하게 걸어갔다」고 보도하고 『기미만세(3·1운동)때를 연상케 하는 우리 민족의 항쟁표시』라고 평했다.하오4시30분쯤 끝난 이 대회는 질서정연했고 비폭력적이었다. 미군정청 보고서도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격렬한 모습이었다.그러나 호스로 물을 뿌리는 미군장교나 미국인들에게 이상하리 만큼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폭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 시위는 훌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군정청이 추산한 시위 참가자는 5만∼7만5천명이었다. 대회 성공에 고무돼서인지 김구는 46년 1월4일 중칭임시정부를 강화해 과도정권을 수립한다고까지 선언한다.국민총동원위가 주최한 대규모 반탁집회가 1월12일 한차례 더 열린데 이어 학생들의 반탁시위가 줄을 지었다.반탁운동은 전국적 범위의 저항운동으로 전개돼 가고 있었다. ○북은 소 지령따라 찬탁 우익세력이 반탁운동의 주도권을 잡고 민심을 이끌자 남쪽의 조선공산당도 1월3일 서울운동장에서 「탁치반대민족통일촉성시민대회」를 연다.그러나 이 대회는 도중에 찬탁으로 성격이 변질됐다.조선공산당의 태도 급변은 물론 소련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다.소련군 민정사령관 로마넨코는 45년 12월28일 박헌영을 평양으로 불러 모스크바 결정을 따르라고 직접 지시한다.5일만에 서울로 돌아온 박헌영은 이 대회를 「모스크바 결정 지지대회」로 둔갑시킨다.이어 인공 중앙인민위원회도 모스크바 결정을 지지하고 나섰다. 엄밀한 의미에서 당시의 대립은 「반탁」대 「찬탁」이 아니라 「반탁」대 「모스크바 결정 지지」였다.즉 「찬탁」으로 분류된 세력은 「신탁통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기 보다 모스크바 결정에 포함된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에 더 비중을 뒀다.어쨌든 조선공산당이 「찬탁(모스크바 결정 지지)」으로 급선회하면서 남쪽의 정국은 아수라장이 됐다.「찬탁은 좌익,반탁은 우익」이란 등식은 모든 가치 평가기준을 압도했다. 좌익이 찬탁으로 돌자 전국에서 테러행위가 잇따랐다.1월12일 서울에서 찬탁 유인물을 돌린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회원 3명이 납치됐다.또 전북 전주에서는 2월8일 아침 인민위원회 회원이 죽음을 당했는데 곁에는 「신탁통치를 찬성하거나 우리 한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반역자는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고문이 놓여 있었다. ○좌우 중간파 태동 계기 이 와중에서 정국을 주도하는 좌우익 4개 정당이 뜻을 합쳐 민족단합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보여 그나마 한가닥 희망을 던져줬다.한민당·국민당·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의 대표들이 1월7일 회담을 열어 공동성명을 낸 것이다.이 자리에는 중칭임정과 인공측에서도 옵서버로 나왔다.4당은 『자주독립과 민주발전을 원조한다는 모스크바삼상회의의 정신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신탁통치 문제는 장차 수립될 임시정부에서 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이어 『암살과 테러활동은 민족단결을 파괴하며 국가독립을 방해하는 자멸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이를 중지할 것을 호소했다.중칭임시정부가 다음날 「4당 합의」를 공식지지하자 민족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희망은 곧 무산됐다.이승만이 7일 전에 없이 강경한 반탁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한민당과 국민당이 8일 당대표들이 서명한 4당합의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비록 4당합의는 우익정당들의 번복으로 깨졌지만 이 때 합의한 「선 임시정부 수립,후 신탁통치 해결」원칙은 좌우합작과 통일정부수립을 목표로 한 제3세력,곧 「중간파」를 태동시켰다. 그나마 좌우연합의 기대를 걸게 한 4당합의가 깨진 뒤 좌우익은 각각 자체 기반 확보에 열을 올렸다.이는 2월1일 중칭임정의 「비상정치회의주비회」와 이승만 계열인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합쳐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비상국민회의는 뒤에 미군정청의 행정자문기관 성격을 띤 「남조선국민대표민주위원」으로 변모한다.이어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29개 정당·사회단체들이 이달 15∼16일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를 열어 우파와 맞섰다. ○“반탁” 조만식 연금당해 한편 북쪽에서는 김일성주도 아래 일사불란하게 모스크바 결정을 지지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46년 1월3일 평양에서 대규모 지지결의대회를 여는 등 주민여론을 유도하는 동시에 한쪽에선 반대파들을 어김없이 숙청했다.평남인민정치위원회 조만식의장이 1월5일 열린 긴급회의에서 「신탁통치 반대」발언을 하자 그를 고려호텔에 연금시켰다.반탁을 외치는 시민·학생들에 대한 시베리아 유형이 시작됐다. 모스크바 결정을 실행하기 위한 실무회담인 미소공동위원회 1차회담은 46년 3월20일 덕수궁에서 열렸다.모스크바 결정이 내려지고 미소공동위 개최까지의 석달동안 이땅의 정치세력들은 뭉치지 못했다.민족의 통일·독립을 4대국에 강력히 요구하기는 커녕 사분오열돼 정파 이익찾기에 급급했던 것이다.결국 미소공동위는 결렬되고 남북에 주둔한 미·소군은 단독정부 수립 계획을 구체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 「안정적 민주주의」 향한 장정/문민정부 치적 평가

    ◎「개혁 프로그램」 정교하고 일관성 있게 「개혁」의 기치를 높이 걸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된다.정치·경제·사회등 전분야에 걸친 과감한 개혁의 의지를 천명하고 출범하였다.특히 개혁 초년도에 보여준 정치에 있어서의 도덕성의 시현을 위한 노력,이를테면 정치적 지도층의 재산공개라든가 선거법의 대폭개정은 매우 인상적인 일들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문민정부 출범이래 최근까지 거의 연속적으로 발생한 각종 대형참사와 이 사건들의 사후처리과정에서 보여준 관료적 비능률성은 국정전반의 개혁에 한껏 부푼 기대를 가졌던 국민의 정서에 회의의 씨앗을 뿌렸다.그런데 따져보면 문민정부는 30년 가까운 후진국형 권위주의체제의 유산을 고스란히 안고 출범했다.따라서 아무리 개혁의 기치를 드높이 걸고 출발했다고 해도 과연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반적 국정개혁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겠는가. 한세대 가까운 세월에 걸쳐 형성된 후진국형 권위주의체제의 부정적 유산을 빠른 시간안에 효과적으로개혁해야 하는 역사적 부담은 엄청난 것이고,오늘의 한국정치체계의 역량으로는 힘겨운 작업이다.이에 반해 국민의 민주화및 개혁에 대한 폭발적 상승기대는 속전속결의 가시적 성과를 요청하고 있는가 하면,또 한편에서는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기득권층(현재도 계속해서 형성되고 있는 계층)의 완강한,때로는 조직적인 저항이 개혁의 추진을 쉽지 않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민정부는 그 자체로서 정치적 한계를 지니고 출발하였다. 첫째로 3당통합을 통해 거대여당을 형성함으로써 문민정부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3당통합이 구체제의 부정적 유산을 효과적으로 청산할 수 없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최근의 여권내의 정치적 갈등,나아가 정치권의 이합집산의 조짐은 정치적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이는 곧 한국정치의 도덕성 결여로 인식되어 정치에의 불신을 국민적 정서로 확산시키고 있다. 둘째로 바로 그와 같은 정치적 배경이 개혁적 차원에서의 한국민주정치의 제도화의 수준을 전근대적 영역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철저한 법치주의,관용의 원리,그리고 능력(전문성)위주의 인력충원 등의 핵심적 민주주의요소가 정교하게 제도화되어 있지 못하고,또 안정적으로 운영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정당은 아직도 지역당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그래서 정치의 지역성 극복이 한국정치의 과제로 그대로 남겨져 있으며,정치과정의 파행적 운명 또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국가예산의 국회에서의 변칙적 통과는 그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개혁주도세력의 정치적 충원기반이 취약하고,개혁의 추진을 위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프로그램의 준비가 미흡하였다.정치가 곧 통치를 의미하던 시대는 지나갔다.현대민주주의에 있어서 정치는 「국가관리」를 뜻한다.국가관리는 한개의 집단이나 한개의 정치세력의 관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그러므로 국가관리를 담당하는 현대의 정치적 리더십은 과감성과 더불어 합리성을,도덕성과 더불어 전문성을 갖출 것이 요청되는 것이다.과감한,때로는 혁명적인 개혁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는합리적이고 전문적인 개혁프로그램이 정교하게 준비되어야 하고 이를 마련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활용되어야 한다. 민족통일의 문제와 외교·안보문제에 있어서의 일관성있는 정책대안 제시,정치개혁의 지속적 추진,경제개혁과 사회정의를 위한 확고한 기본구도의 마련과 이의 실천,교육및 사회문화적 영역에서의 관료주의적 획일성의 지양과 사회적 낭비의 효과적 억제 등등,문민정부가 합리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단없이 과감하게 추구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개혁의 목표는 「안정적 민주주의」의 정착에 있다.이것이 곧 정치의 선진화와 세계화를 이루는 일이다.「개혁」이라는 명제가 「세계화」라는 명제로 변화했다고 해서 개혁이 완료되었다거나 유보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세계화는 무엇보다도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의 추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문민정부의 정치개혁의 과제는 우선 정치적 리더십에 있어서의 도덕성의 제고이며,정치과정에 있어서 관료적 권위주의를 지양하고 개방성을 확보하는 일이며,국지주의적 정치성향을 극복하는 일이고,광범위한 정치적 충원기반을 확보하고 경륜있는 전문가를 활용하는 일이며,과감하지만 일관성 있는 정책대안을 준비하고 제시하고 집행하는 일이며,전시효과적 정치·행정의 낭비를 없애는 일이며,지방자치의 기반을 착실하게 마련하는 일이라고 하겠다.내수외연은 복지천년의 민주국가로 가는 바른 길이다.
  • 신당결성의 반시대성(사설)

    민자당의 김종필 전대표가 박준규 전 국회의장등과 함께 신당결성 움직임을 표면화하고 있다.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정당설립의 자유를 용훼할 생각은 없다.그러나 김씨의 신당추진은 우리의 정치발전과 역사의 흐름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민자당내 김씨의 거취문제에서 발전된 신당추진움직임은 처리과정의 혼선과 그에 따른 비판 및 동정론,그리고 특정지역의 정서를 떠나 역사적 정당성과 국민적 여망에 비추어 볼때 한마디로 시대역행적인 흐름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지역정서와 관계없는 대다수국민들이 느끼는 대로 우리의 정치시계가 15년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자조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추진세력들과 그들이 내건 명분이나 방법론 등에서 정치발전의 후퇴나 역사에대한 반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지역당은 안된다 정치체제에 대한 민주적 정통성시비가 종식된 상황에서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3김시대의 실질적 청산과 정치지도자들의 신진대사로,세계화시대와 새로운 세기의 통일과 번영의 선진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정치발전의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바람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우선 김씨가 오너가 되는 신당의 결성은 충청권과 일부 TK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또 하나 지역당의 출현과 3김시대로의 회귀라는 시대역행적인 정계구도의 재현을 예고하고 있다.한군데도 아닌 두군데의 지역정서를 묶어서 지역연합당을 만들겠다는 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지난 한 세대동안 망국적 지역대결구도의 조성에 책임의 일단을 부인 못할 김씨로서 통일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과거의 유산을 해소하는 데 여생을 바쳐야 마땅한 일이지 그것을 심화시키는 행태는 정당화되기가 어렵다고 우리는 생각한다.다가오는 선거에서 도단위의 지역감정이 선동정치의 재료로 악용될 때 지역간 갈등과 대립으로 사회적 통합이 깨어질 상황을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신당추진론자들이 그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대교체는 국민적 요구다 다음으로는무엇을 위한 3김구도의 재현이냐 하는 것이다.후생을 위한 병풍역할을 내건다지만 김씨의 오너체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그것이 또 한사람의 오너역할에 상승작용을 할 것이라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지금 국민들의 당혹감은 어째서 김영삼대통령의 당선과 김대중씨의 정계은퇴로 국민적 청산이 된 3김체제의 망령이 또 다시 고개를 드느냐에 있다.민주화투쟁이라는 명분이 있었던 과거의 3김시대와는 달리 이번 신당은 국민적인 대의와 명분이 불투명하다.중산층을 기반으로 하고 개혁과 세계화목표를 내건 민자당에서 굳이 이탈하는 동기가 반개혁,반보수,반세계화라면 몰라도 보수층대변을 표방하는 것은 민자당에 있을 때는 보수가 안되고 나가야 된다는 모순된 논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각제 미끼지 명분 못된다 김종필씨와 박씨등이 내각제를 들고나오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3당통합때의 이면합의가 내각제라고 하여 현재 민자당의원 가운데 그것을 선호할 의원들을 유인하는 미끼로서 내걸었다면 내각제개헌론을 정치이기주의에 악용하는 것이며 당당하고 떳떳한 태도라 할 수 없다. 결국 민자당이탈의 신당은 선거를 앞둔 소외불만세력의 이합집산이라는 측면이나 기존의 지분확보와 정치생존을 위한 이유 이외에 국민적공감을 얻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인상을 주고있다.권력의 반사이익을 기대하며 개인적 반감과 지역정서의 세일즈를 극대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래서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안타깝게 생각하는것은 신당추진의 주역들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단적인 예로 국회의장을 스스로 중도하차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사정은 신당주도가 개인적인 한풀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한다.신당주역들중 한분은 지난 한세대동안 국회의원,집권당대표,국무총리,대통령후보를 거치고 또 한 분 역시 집권당대표,국회의장까지 지내는 등 대통령 빼고는 거의 안해본 자리가 없는 분들이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면 자신들의 시대적 역할은 끝났음을 깨달아 자신들의 이익이나 입지에 집착하는 자세를 버리고 막이 내린무대에서 조용히 내려와 역사를 마주하며 후생들을 지켜보는 존경받는 사표가 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그런 시대정신에 대한 자각이 없는 한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는 훌륭한 후생들이 그들의 뒤에 서지 않을 것이며 서서도 안된다. 우리는 지역주의와 사감에 의한 신당추진은 안된다는 어느 원로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기대한다.국민대다수의 생각도 물론 그러할 것이다.
  • TK/「신당」 줄서기/고민의 계절

    ◎박준규시·구자춘·유수호의원 “참여”/이만섭·김복동의원·박철언씨 “관망”/민자의원 거의 당내위상 강화 “활용” JP(김종필의원)의 신당창당 움직임에 따라 정치권의 이른바 「TK」(대구·경북) 인사들이 진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들의 주류는 『30년 동안 권좌를 지켜온 TK가 「만년 2인자」인 JP의 뒷자리에 설 수 있느냐』 하는 심정적 거부감을 밝히고 있다.그러나 『그렇지만 갈데는 그곳(신당) 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따라서 JP신당의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제각각이듯 TK인사들의 행보도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는 양상이다. TK인사 가운데 가장 갈길을 확실히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박준규전국회의장과 JP의 오랜 측근인 구자춘의원 등으로 대표되는 「적극참여파」이다. 신당의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기로 한 박씨는 설날 연휴 동안에도 TK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인사들과 만나 내각제 개헌을 통한 간접집권을 역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수호의원(무소속·대구 중구)등 TK지역의 전·현직의원들로 구성된 「무소속연합회」의 일부도 이들과 뜻을 같이한다.JP진영은 유의원을 대구시장에 출마할 수 있도록 2월말이나 3월초쯤 의원직에서 사퇴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다음은 상황변화를 주시하는 「동정적 관망파」다.이만섭 전국회의장과 이치호·유학성 전의원,그리고 김종기·한병채·김근수·이정무·김중권·오한구전의원등 「무소속연합회」구성원 상다수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다음 총선에서 민자당의 공천을 기대하기 어렵고 공천을 받는다 해도 지역구의 정서로 볼 때 당선이 쉽지 않다는 생각들이다.보수대연합을 통한 내각제 개헌에도 매력을 느끼고 있다. 「회의적 관망파」도 있다.이들은 신당을 주시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회의적이다.JP가 신당에 참여해 달라고 직접 설득에 나섰음에도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머리를 흔든 신현확전총리나 김복동의원,『신당은 한풀이 지역당이 아닌 국민정당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철언전의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노태우전대통령이 지난달 30일 JP쪽 핵심참모 최각규전부총리에게 신당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밝힌 것도 강도에선 다를지 몰라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민자당의 대다수 TK지역 현역의원들은 누가 뭐래도 「민자당 잔류파」라고 할 수 있다.이들은 요즘 신당 창당에 따른 이합집산 가능성을 오히려 당내입지 강화에 활용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신당 적극참여」에서 「민자당 잔류」에 이르는 넓은 진폭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분류는 한시적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공통된 시각이다.오는 6월 지방자치 선거에서 신당이 어떤 결실을 거두느냐에 따라 TK인사들의 줄서기는 또 달라질 것이라는 게 일반론이다.
  • “파벌싸움 유발” 총무경선 신중론/민자 당세계화 간담회 내용

    ◎대통령·총재 분리… 위원회제 바람직/장후보 중앙기준 맞춰 지부서 뽑게 민자당이 10일 여의도 당사로 대학교수들을 초빙,「정당의 세계화」란 주제로 가진 간담회는 지도체제의 개편문제 등으로 당 내부가 한참 뒤숭숭한 가운데 열려 눈길을 끌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교수들은 민주적이고 경쟁력있는 정당으로 거듭나려는 민자당의 의지를 환영하면서도 당내 경선문제등과 관련,체질개선및 권력구조의 개방성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문정수사무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민자당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세계화와 국민의 바람에 맞추어 지난날의 틀을 새롭게 개조할 것』이라고 밝히고 『선진복지를 지향하는 현대적 민주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전문가들의 고견을 당개혁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한양대의 유세희교수(한국정치학회장)는 먼저 주제발표에서 한국 정당의 낙후성을 ▲청와대와 행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중앙집권적이고 무기력한 관료성 ▲개인지도자및 정권과 더불어 이합집산하는 단명성 ▲선거및 정치자금과 관련된 부패성 ▲정책등 국사보다는 지역구활동에 사활을 거는 무지성으로 요약했다. 유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 대통령후보 경선을 포함한 경쟁원리의 도입을 옹호했다.그는 그러나 『선거인단 구성등 내부절차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경선은 후유증을 남길 우려가 크다』고 밝히고 『지방선거후 이같은 문제가 본격 거론되면 내각제의 필요성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는 정당과 대통령이 유기적 협조관계라기보다는 정당이 행정부의 시녀역에 그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대통령연임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이와 함께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탈산업사회의 도래에 따라 정당간의 이념적 차별성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따라서 비중이 높아질 정당간 정책경쟁에 대비,전문성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중앙대의 윤정석교수는 『기능적으로 다양화된 세계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마찬가지로 정당구조도 기능위주로 세분화돼야 한다』고 밝히고 『이를 위해 전당대회와 중앙당기구를 크게 줄이고대신 민선단체장과 국회의원에 대한 당 차원의 입법·정책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윤교수는 당직경선문제와 관련,『단임대통령제 아래에서 원내총무등을 경선하면 파벌들이 차기대권의 경쟁을 위해 당을 깨는 것도 주저하지 않게 된다』고 신중론을 피력한 뒤 『단체장등 공직후보의 경선을 통해 국민지지 획득에 공헌한 인사들이 당의 주류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말했다. 건국대의 최한수교수는 『정당은 효율성보다 민주성·자율성이 강조돼야 한다』고 말하고 『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총재를 새로 경선하고 그 아래 정책·원내를 책임지는 의정위원장과 사무처의 기능을 분담하는 조직위원장을 두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제안했다. 최교수는 『당비와 활동실적에 따라 표결권을 차등화한 소규모의 전당대회를 구성하고 시·도지부나 지구당에도 이같은 실적주의를 도입,자치단체장등 공직후보 선출권을 부여하되 중앙당에 공천심사위를 상설,일정한 기준 아래 후보의 범위를 한정해주는 제한공천제의 도입도 검토해볼만 하다』고 밝혔다. 문정수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지구당이 위원장의 손아래 있는 소수 대의원들에 의해 장악돼 있는 현실에서 지구당 단위의 경선은 시기상조』라고 밝히고 『전당대회 대의원수는 지역및 직능대표성을 고려,7천명에서 5천명정도로 줄이는 방안을 긍정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8월 전대/“DJ 정계복귀 시도할듯”/민자당의 올 정세 분석

    ◎김정일,상반기중 권력 공식승계/정치 만개… 「세계화」 탈색될까 우려 오는 6월의 지방자치선거는 민자당후보들에게 「힘든 시험무대」이며 8월로 예상되는 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사장의 정계복귀가 가시화 될 것이라는 민자당의 분석이 나왔다. 민자당 정세분석위원회는 5일 펴낸 정세보고서에서 올해는 지방자치선거를 통해 내년의 총선과 차기정권을 향한 전초전 양상이 벌어지는 「정치만개의 해」로 전망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연초부터 선거정국이 크게 달아오르면서 국정목표인 세계화 추진 분위기가 실종될 우려가 크다는 판단 아래 세계화 기조의 유지를 전제로 한 「지방선거 필승정략」등 다각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2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의 면모를 일신하고 당직개편과 선거대책기구 구성,공천문제 등 내부갈등요소를 미리 없애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선거 또한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보고서는 이번 지방자치선거가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포기한 상태에서 결국 인물대결이 될 것이며 전환기적 진통을 이겨내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전망하고 있다.특히 15개 광역단체장선거 가운데서도 서울시장 선거의 승패는 곧바로 통치권의 누수문제와 연관되므로 어떤 후보를 언제 공천할 것인가를 깊이 있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의 개혁후퇴및 이른바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의 갈등을 부각시키고 성수대교의 붕괴와 같은 대형참사를 집권당의 무능력으로 몰아붙이는 전략으로 나설 것으로 분석했다.따라서 민자당 후보들은 세계화 기조에 맞춘 정책을 내세워 야당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며 「개혁선거법 준수운동」이나 「읍참마속의 모범」을 통해 선거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공천후유증도 최소화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선거 이후의 정국도 선명치 못하다.올 후반기에는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가 시작되므로 권력의 지방분권화에 따른 통치권의 조기누수현상에 직면하는 것은 물론 15대 총선을 향한 공천경쟁과 이합집산등 정치권의 동요도 예상된다는 것.이 과정에서 「여러정파의 화합」을 추구해야 한다는 국가체제정비 여론도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국가체제정비 여론」은 곧 개헌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김대중이사장이 민주당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예측하면서 『사전대비책이 요망된다』는 한마디로 우려를 대신했다. 이같은 정치상황의 분출은 국정기조인 세계화 추진분위기를 덮어버릴 가능성이 많고 이렇게 되면 국정의차질은 물론 국민정서에도 배치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판단이다.결국 중대한 국민적 요구에 부딪힐 올해에는 당의 환골탈태,당의 단합,견고한 당·정 협조체제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하며,한 차원 높은 여·야관계의 정립도 크게 요청된다고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 정치권 변신 몸부림(새전개 ’95정국:1)

    ◎지자선거 대비 체질개선 박차/“정계 지각변동 온다”여야 “전력투구”/제2창당 실체·JP위상 싸고 당내 신경전/민주/주류­비주류 당권장악 갈등 증폭 양상/민주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의 움직임은 숨이 가쁘다.좋게 보면 「정치의 활성화」,꼬집어 말하면 계파별 「세력대결」의 조짐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민자당은 「제2창당」작업의 실체와 김종필대표의 위상문제를 둘러싼 신경전이 더욱 가열될 기세다.지도체제의 개편을 겨냥한 민주당의 조기전당대회논쟁 또한 내분직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1차지향점은 오는 6월27일의 4개 지방자치선거다.여야 모두 이번 선거가 정국구도의 엄청난 변화가능성을 예고하는 절대절명의 분수령으로 판단하고 있다.「기회」보다는 「시련」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정치권의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출발한다.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여야는 모두가 「환골탈태」를 외치고 있다.외부인사를 대거 수혈해 체질을개선하고 당의 구조도 밑뿌리부터 재정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그러나 개편의 폭과 방식에 대해서는 처지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저마다 이해타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민자당은 이미 당의 명칭과 마크를 바꾸려는 생각으로 신문광고등을 통해 이를 공모하고 있다.당헌·당규와 정강정책도 대폭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과거의 잔재」는 가능한 지우고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하겠다는 것이 기본맥락이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김대표의 거취와 직결된 지도체제의 개편문제다.이는 민자당 창당이후 유지돼온 민정·민주·공화계라는 계파구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항이다.김대표측은 『당의 기구개편은 없다』는 김대통령의 말을 들어 김대표체제가 지방자치선거까지는 유지될 것임을 자신한다.그러나 일부에서는 『기구개편이 없다는 것이 인물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맞서고 있다.당대표의 위상을 실질적 권한과 일치시키는 「실세화」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상당수 인사는 「변화」의 실질적인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불안해 하고 있다.당 스스로 큰 물줄기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에 불만 또한 적지 않다.앞으로 개편작업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이들의 불만이 어떤 형태로 여과되거나 분출될지도 관심거리다. 민주당 역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이기택대표는 당의 민주화,지도체제개편,중앙당과 지구당의 역할변화를 당개혁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2월 전당대회 소집문제를 둘러싼 이대표측과 동교동계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져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이같은 다툼의 배경에는 조기에 당권을 장악해 김대중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사장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이대표의 계산과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동교동계의 속셈이 맞물려 있다.이는 김이사장의 정계복귀가능성과도 연결돼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야정당의 이같은 움직임과는 별도로 정치적 잠재력을 보유한 각종 이익단체와 재야세력등의 지방자치선거를겨냥한 이합집산도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전문가는 이같은 움직임이 복합적으로 얽혀 지방자치선거 이후 대규모 정계개편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개편의 전반적인 흐름은 「보수와 혁신」구도로의 재편을 점치고 있다.여기에는 기존정당의 「헤쳐 모여」 가능성도 포함된다.이 자체를 「정치의 경쟁력」강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 여야의 올 국정운영 전망

    ◎민자/「세계화·지방화」 제2창당 추진/고질적 계파 불식… 지방선거 압승 다짐 올 을해년은 그야말로 「변화하는 정치의 해」가 될 것 같다.여·야 모두 「제2의 창당」을 외치며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있고 6월27일엔 역사적인 지방자치선거를 치르게 된다.자치선거가 끝나고 나면 국회의원 총선거 분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집권여당인 민자당은 세계화 도약과 겹치는 정치의 해를 어떻게 대비하고 돌파해 나갈 것인가. 세계화라는 국정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해 민자당은 이미 변신작업을 시작했다.2월7일로 잡힌 전당대회는 제2의 창당이라는 목표에 따라 일대 변혁을 모색하고 있다.민자당이라는 당명과 당의 상징인 로고를 바꾸고 당헌·당규와 정강·정책도 고칠 움직임이다. 한마디로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세계화와 지방화,통일시대에 대비하자는 것이다.민자당이 지우려는 과거의 흔적은 3당합당 5년이 되도록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계파의식,변화에 수동적인 당의 체제와 인적요소,보수에서 급진진보에 이르는 이념의 혼재등으로 여겨지고 있다.따라서 민자당은 2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이러한 과거의 잔재를 지우고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방향은 「대변신」으로 잡고 있지만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김영삼대통령의 연두회견이나 전당대회 준비작업과정에서 그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분명한 것은 민자당이 환골탈태의 엄청난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민자당이 모색하고 있는 변신은 크게 3가지 방향으로 어림된다.하나는 세계화를 선도하는 개혁적인 모습으로의 정당개조이다.이를 위해 중앙당의 축소와 시·도지부및 지구당중심 운영안,변화에 대응이 늦은 총재­대표­당3역으로 내려오는 계선조직의 조정등 다양한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다.둘째는 정당운영에 시장경제이념을 도입하는 일이다.이를테면 점차적으로 시·도지부장및 지구당위원장,원내총무등의 당직에 경선제도를 도입,상향식 정당제도를 추구하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자원봉사자나 당비를 내는 당원들의 정당운영에의 참여가 보장되고 정당과 국민들의 간격도 좁아질 것으로 여기고 있다.마지막으로는 당안에 산만하게 혼재해 있는 이념성향을 한데 묶는 일이다.세계화·지방화시대에 걸맞지 않게 아직도 보수와 중도진보로 구별되는 노선을 통합,중도에 가까운 「개혁및 세계화노선」으로 새로운 이념을 정립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민자당이 이러한 변모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인적구성원의 변화에 따른 부작용이다.당을 개조하려면 당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민정·민주·공화계라는 계파의식을 버리고 사람을 뒤섞어야 한다.또 이념을 통합하자면 세대와 이념에 있어 극단적인 인사들에 대한 조정도 불가피하다.따라서 민자당의 변신에는 인적요소의 변동이 필수적이며 이를 어떻게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과제이다.이미 민정계와 민주계 일각에서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이들이 새 주류로 대두할 가능성도 높다.그러나 다른 한쪽으로는 이같은 변화에 부정적인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도 점쳐지고 있다. ◎민주/지방선거 도약·야권통합 야심/이대표 입지 변화·김대중씨 행보 관심 을해년은 민주당등 야권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우선 민주당의 위상변화가 예상된다. 새해를 제2창당의 해로 잡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획기적인 도약을 이루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품고 있다.정책개발과 대안제시에도 심혈을 쏟으며 수권정당의 면모를 새롭게 한다는 계획이다. 새해를 맞아 민주당 앞에는 전당대회와 지방자치선거,야권통합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변수들이 놓여 있다.여기에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사장의 거취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우선 새해 벽두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전당대회 문제는 올 한해 민주당의 행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각 계파가 원만히 타협을 이뤄내면 지방자치선거 때까지 순항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자칫 타협에 실패하거나 어느 한쪽이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된다면 당의 운명은 종언을 맞을 수도 있다.벌써 이기택대표쪽에서는 「대표직 사퇴」를 거론하고 있다.분당 얘기도 흘러 나온다.정계개편등 나라의 정국 구도가 완전히 바뀌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김이사장의 행보는 새해에도 끊임 없는 화제를 몰고 올 전망이다.지난달 발족한 국제정치기구인 「아시아·태평양민주지도자회의」의 공동의장으로서 더욱 활발한 국내·외 활동이 예상된다.봄에는 이 기구의 의장자격으로 유엔에서 미얀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연설을 할 계획이다.또 20년만에 일본도 방문한다. 그의 정치재개 여부에 대한 논란 역시 계속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다만 민주당의 역학구도가 어떻게 변화 할지가 변수다.이기택대표가 전당대회를 계기로 실권을 쥐게 된다면 김이사장의 전면등장은 상당기간 미뤄질 공산이 크다.그러나 지금과 같은 분권화 현상이 이어진다면 그의 당내 영향력은 오히려 확대될 조짐이다.지방선거를 통해 이대표의 효용가치가 어떻게 검증되느냐도 그의 거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지난해 논의가 중단된 야권통합 문제는 지방선거를 계기로 급속히 재추진될 전망이다.새한국당의 이종찬대표및 재야의 김근태씨가 이끄는 「통일시대국민회의」와의 통합은 구체적 논의를 끝낸 상태다.다만 제2야당으로서 통합 당사자의 하나였던 신민당이 와해직전의 단계에 이르러 변수가 되고 있다.지난 연말 김동길·박찬종 두대표의 동반사퇴에 이어 유수호의원등 소속의원 3명이 탈당한 신민당은 당분간 표류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 새해 중반이후 국운 트인다/역술가들이 본 을해년 나라운수

    ◎남북정상회담·이산가족 상봉/무역은 흑자… 에이즈 급속확산 「내년에는 통통한 돼지가 우리의 국운을 틔워준다」 성수대교붕괴·지존파·도세등 연중 꼬리를 물고터져 나왔던 사건·사고로 우울했던 국민들의 마음을 반영하듯 내년 우리나라 운세는 전체적으로 「운수대통」이라는 전망이다. 장안의 「용하다」는 역술인들은 내년에는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지고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며 사회가 안정되는등 길한 해가 될것으로 한결같이 예언하고 있다. 이들이 주역을 통해 내세우는 근거는 음양오행에서 각각 나무(목)와 물(수)을 뜻하는 을과 해가 합쳐진 내년 을해년이 수생목의 상생관계를 이루는 발전적 형국이라는 것. 게다가 운세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괘상또한 사물을 잉태한다는 의미의 「수뢰둔」상이어서 생산을 위한 산고가 내년 중순까지 다소 따르겠지만 중순이후 안정을 찾아 잃는 것보다는 얻는것이 휠씬 많게 된다. 가장 희망적인 소식은 연말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것을 포함,이산가족상봉등 분단이후 유례가 없었던 통일의 일대 전기가 마련된다는것. 98년에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꾸준히 주장해온 철학박사 최봉수씨(66)는 「동양의 우주관인 경세사관에 따라 내년 후반기부터 시작된 화해교류 움직임이 결국은 98년 통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정역철학중앙회장 백운선씨(45)는 「북한의 김정일체제가 확고히 구축돼 남북대화의 물꼬가 후반기 본격적으로 트여 우리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지만 경제적으로는 잃는것도 있을것」이라면서 「국내에서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이러나 정계가 크게 재편되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스타가 탄생할것」라고 내다보았다. 백씨는 또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겠지만 국내경기는 수요의 감소로 다소간 불황을 겪을 것이며 에이즈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급속도로 늘어나 전사회적으로 공포감이 확산되어 갈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내놓았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성환선생/서울신문사 보훈처·독립기념관 선정

    ◎임정 무장단체 「광복진선」 결성/중국시찰 가쓰라 일본총리 암살기도/만주서 교포에 문맹퇴치운동도 펼쳐 청사 조성환선생(1875년7월9일∼1948년10월7일)은 일제의 침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자 항일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25세때인 1900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해 군복을 입은 선생은 일부 선배군인들이 주요보직을 차지하기 위해 일제와 야합을 일삼는데 분개,숙군을 외치다 군을 떠나게 됐다. 선생은 『썩은 군대는 나라를 망친다』면서 부패군인의 제거를 주장,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복역 3년만에 특사로 풀려나온뒤 신민회에 가담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했다. 1907년 결성된 비밀결사 신민회에는 선생과 같은 무관출신,양기탁등 언론인,이회영등 교육자,민족자본가,안창호등 해외국권회복 운동가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동휘·노백린등 다른 무관학교 출신자 14명과 함께 신민회에 가입한 선생은 독립운동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주 북간도를 돌아보았으며 1910년 국권침탈을 맞아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믿기시작했다.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는 나철이 창시한 종교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내에서 만주 동삼성으로 자리를 옮겨 포교중이었다. 선생은 1912년 중국 동북지방을 시찰하는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를 암살하려다 사전에 붙잡혀 거제도에서 1년동안 유배생활을 지내기도 했다. 유배를 마친뒤 곧바로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동료 독립운동가들과 청소년교육에 몰두하던중 1918년 만주길림에서 「대한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대한독립선언서의 서명자 가운데 1명으로 참여했다. 다음해인 1919년 국내에서 발발한 3·1만세운동에 자극을 받아 독립운동가 사이에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에 적극적으로 힘을 쏟았다. 선생은 4월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군무부 총장 이동휘와 함께 군무부차장에 임명됐으며 4개월후 동만주에서 활동중인 중광단에 참가,무장독립운동을 벌였다. 선생은 이와 별도로 대종교도들을 규합,정의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선생은 이어 1920년 청산리 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한 일제관동군이 추격에 나서자 이를 피해 노령 이만으로 이동,이곳에서 이청천·홍범도·안무등과 함께 고려의용군을 결성하고 의용군을 모집해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선생은 일제의 꾐에 넘어간 소련이 독립군을 무장해제하기 위해 기습해오자 동료들과 다시 만주로 돌아오게 된다. 북만주로 돌아온 독립군단체들은 1923년 재통합에 나서 군정서·의군부·혈성단·독립단·광복단·국민회·신민단·대진단·의민단등 9개 단체로 각 단체의 통합을 위한 군사연합회 준비회의를 열었으며 선생은 이 과정에서 연락책을 맡았다. 선생은 이 모임이 진척을 보이지않자 김좌진을 중심으로 창설된 신민회에 참여,중앙집행위원회 외교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군정서를 모체로 하는 신민부는 백두산에서 흑룡강,장춘에서 구참까지를 활동무대로 정하고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한족을 대상으로 문맹퇴치운동을 펼치면서 민족반역자의 징계,일본기관 습격등을 주임무로 삼았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정의부·한국독립유일당촉성회 조직운동등을 통해 흩어져있는 독립운동단체를 통일시키기 위해 수년동안 힘을 쏟았으나 정당의 이합집산이 심해 뚜렷한 진전을 얻지 못했다. 선생은 1938년에 이르러 비로소 뜻이 맞는 이동녕·차이석·엄항섭등과 함께 임시정부의 외곽무장단체인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선생은 같은해 이청천등과 함께 독립군 군사학편찬위원회 주임위원으로 임명돼 군사관련 교재를 번역하기도 했으며 1년뒤 1939년 임시의정원 의원과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임됐다. 선생은 1939년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3개년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광복군을 양성키로 한데 따라 11월 임시정부 군사특파단장으로 서안에 파견돼 광복군설립의 기초를 닦았으며 1940년9월17일 마침내 광복군이 창설되자 최고원수부의 판공처장으로 임명됐다. 선생은 42년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있으면서 중국측의 광복군 무력화 움직임을 무산시켰으며 43년에는 국무위원에 올라 대일전쟁을 지도했다. 선생은 45년 들어 임시의정원 제4과 군무·교통위원으로 일하다 8·15해방을 맞아 같은해 12월 동료 임정요인들과 함께 환국했다. 선생은 환국 이후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성균관 부총재등을 지내다 48년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일사회당 「자민당 아류」 전락하나/「연정합류 1백일」의 현주소

    ◎방위예산 감축·소비세 동결 정책 포기/좌파 “반당행위” 주장… 이합집산 가능성 일본 사회당은 요즘 「빛 좋은 개살구」다.이번 주말로 출범 1백일을 맞는 무라야마정권은 지지율이 출범 당시의 30%대에서 50%대로 뛰었다.여론조사는 내각의 인기상승이 주로 총리 개인에 대한 신뢰에 기인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빛깔이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진보세력을 대표하던 사회당의 앞길에는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소선거구제가 곧 실시되기로 돼 있기 때문이다.소선거구제 하에서의 경쟁력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일본정국은 자민당과 연내에 출범할 신·신당의 보수 양당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사회당은 겨우 비례대표 몇석 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40년간 일본정계의 대립되는 한 축이었던 사회당이 일본정치의 퇴화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그래서 사회당 안에서는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우선 연립정권의 대주주인 자민당에 적극 협조,정권을 안정시키면서 전열을 정비할 시간도 벌고 자민당에 기대 공천이라도 조정받으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당은 지난달초 자위대의 합헌 인정 등 기본노선을 대폭 현실화시켰다.또 「눈에 띄게 군축을 추진하겠다」던 당초의 목소리를 죽이고 내년 자위대 예산을 0.9% 늘리는데 동의했다.정치평론가들이 사회당을 「뉴 자민당」이라고 표현할 정도다.당의 생명선이라고까지 이야기되던 「소비세인상 반대」 입장도 포기, 소비세 인상을 추진키로 했다.하지만 당 지방조직 등은 이에 대해 자민당에 길들여져 「소금이 짠 맛을 잃고 있다」고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한편 당내 중도·우파는 「뉴 자민당」으로서는 곤란하다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당내 중도·우파를 대표하는 당내 최대세력 신민주연합(위원장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은 28일 총회를 열고 『자민당과의 연합이 영구적일 수 없다』면서 『사회민주리버럴세력의 결집에 노력하자』고 결의했다.이 자리에는 우파인 구보 와타루(구보선)서기장도 참석,격려사를 통해 「민주리버럴 신당」 구상을 내놓았다.이 구상에 대해 신·신당 창당에 참여하고 있는 민사당은 『너무 늦었다』면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일본 정계 관측통들은 신민주연합이 최악의 경우 사회당을 떠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당내 좌파가 반당적 행위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당의 변신노력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한두차례의 총선후에 확대된 리버럴세력으로 등장할 것인가,군소정당으로 몰락할 것인가.그 열쇠는 일본 유권자들이 쥐고 있다.
  • 민선 서울시장/대권도전의 관문/야 당내후보 난립

    ◎조세형최고 이어 이철의원 곧 출사표/홍사덕·한광옥·이부영의원 등 탐색전/민주/박찬종 신민대표도 출마 유력시… 과열 우려 민주당 범비주류의 조세형의원이 9일 서울시장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맨먼저 출사표를 던졌다.같은 범비주류의 이철의원도 다음달 29일 후원의 날 행사때 출마의사를 표명할 예정이다. 또 주류측의 홍사덕의원은 정기국회가 끝난뒤인 내년초를 출마선언 시기로 잡고 있다.권노갑의원과 함께 당내 최대계보인 동교동계를 이끌고 있는 한광옥의원도 이미 개인사무실을 중심으로 대의원들의 성향분석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민주당에는 서울시장 예선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의원이 드러내 놓고도 4명이나 된다.그만큼 야당에는 서울시장 자리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서울대출신이고 3선이다.이들말고도 탐색전을 계속하고 있는 1∼2명의 예비후보들까지 합치면 5∼6명이 서울시장을 노리고 있는 셈이다.이들은 저마다 자기가 시장감이라고 홍보전도 치열하다.민주당 예상후보들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관심도 높아가는 것 같다.그래서 「즐거운 비명」,「시장후보 풍년」이라는 얘기도 있다.그러나 당안에서는 시장선거가 아직도 9개월이나 남았는데 너무 빨리 과열되는 것 아니냐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그리고 경선 출마자들이 지나치게 일찍 떠오른 탓에 정치적인 상처를 입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을 한다. 또한 경선과정에서 당내 주류·비주류간의 갈등을 비롯,각 계파사이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형등 다양한 파벌싸움의 여파로 정작 중요한 본선에서 전력투구를 할수 없게 될 수도 있다.이는 서울시민들에게도 좋지 않은 이미지로 비칠 것이 뻔하다.이기택대표가 줄곧 『시장후보 경선의 조기과열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시큰둥하게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두주자격인 조의원은 사설연구단체인 「한국정학연구소」에서 매주 한번씩 토론회를 열어 이미지 제고와 정책개발에 신경을 쓰고 있다.연구소에는 전문가 50여명으로 구성된 「서울시정 연구실」을 둬 이미 선거공약을 마련하는 작업에까지 들어가 있는 상태라고 한다.그는 얼마전 내외문제연구회에 가입한 정대철의원의 지원 약속에 고무받은듯 범비주류의 전폭적인 지지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눈치다. 이의원은 지난 3일 정책자문모임인 「한강클럽」을 만든데 이어 마포의 이철후원회 사무실을 중심으로 출마에 따른 사전 준비와 점검에 열을 올리고 있다.그는 이미 지난 6일 기자실에 들러 『시장후보 경선출마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홍의원은 최근 5년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늘 1·2위를 다퉜다는 점을 강조한다.그는 『예선보다 본선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다른 후보들과의 득표력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강남의 「홍사덕연구소」를 사실상 선거용 캠프로 활용하면서 저변확대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의원도 동교동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낙점을 받으려 한다.아무래도 동교동계의 움직임이 경선판도의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에 그의 거취가 최대변수일 수 밖에 없다.다만 그는 동교동계의 입장정리가 끝날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이밖에 정의원은 내외연에 가입하면서 『당권과 서울시장은 관심없고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밝혀 일단 한발 물러선 인상이지만 앞으로의 상황변화에 따라 시장후보 경선에 합류할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수는 없다.얼마전 한 세미나에서 「신야당론」을 주장한 이부영의원도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바라고 있는 모습이다. 박찬종신민당공동대표도 눈여겨봐야할 변수다.이대표가 아직도 야권통합에 상당한 미련을 갖고 있고 통합이 실현되면 박대표가 유리한 국면을 맞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서울지역 대의원은 44개 지구당별로 7∼8명의 상무위원과 시의원 21명,구의원 1백67명등 모두 6백여명이다.
  • 민주/당권고지 겨냥 계보각축 한창/당내 역학관계 변화 조짐

    ◎KT,보선승리 여세몰아 사조직 강화/동교동·김상현계도 전열 재정비 분주 당권고지를 향한 민주당 각 계보의 물밑 움직임이 벌써부터 빨라지고 있다.KT(이기택대표의 애칭)계와 동교동계,후농(김상현고문의 아호)계등이 앞다퉈 집안단속을 서두르고 있다.이런 와중에 계파간 이합집산의 조짐도 두드러진다. 겉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이기택대표의 사조직인 통일산하회의 조직강화작업이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8·2보선에서 민주당의 경주승리를 주도한 여세를 몰아 지부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지난 5일 포항지부 결성까지 전국에 약 1백개의 지부가 구성됐다.KT진영에서는 연말까지 1백50개의 지부를 결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계획하고 있는 회원수는 1만명.지부별로 50∼70명으로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다.그러나 이들을 정예화한다는 계획이다.이를 통해 각 지구당별로 20∼25명인 대의원직에 대거 포진시킨다는 방침인 것이다. 내외문제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도 지도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총무경선및 부의장선출에서의 잇따른 패배가 자극이 된 것이다.특히 당조직개편과 관련,공동대표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대표진영을 긴장시키고 있다. 동교동계의 최재승의원은 9일 『현 지도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동대표제의 도입등을 내외연에서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최의원은 『특히 내외연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는 전당대회에서 독자적으로 당대표후보를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동교동계의 맏형인 권로갑최고위원과 비주류측의 정대철고문의 최근 접촉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정고문의 내외연 참여문제가 논의된 이 자리에서 정고문은 일단 확답을 피했다.그러나 조만간 DJ(김대중씨의 애칭)를 방문,입회여부를 결정할 생각이어서 그의 향후 거취가 당권경쟁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상황에 따라서는 정고문이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는 이대표에 대한 동교동측의 견제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한편 정고문과 호형호제하는 비주류의 수장 김상현고문은 정고문의 거취에대해 짐짓 태연한 모습이다.『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면서 애써 무시한다.다만 『DJ와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바람직스러운 것 아니냐』고 말해 정고문의 내외연 입회가 자신과 이대표와의 당권경쟁과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하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김고문은 오는 16일부터 충북지역 9개지구당을 시작으로 지구당방문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지금까지 방문한 지구당은 50여곳.전당대회까지 2백20개 전 지구당을 방문,대의원들을 상대로 표밭을 다진다는 옹골찬 계획이다.이부영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개혁모임」소속 의원들과의 연대도 꾀하고 있다.
  • 민자 TK의원들 “발등에 불”/보선이후 위기감 고조

    ◎반민자정서 요지부동… 다음총선 큰 부담 대구·경북(TK)지역출신 민자당의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지난해 대구동을의 보궐선거에 이어 「8·2보선」에서도 이른바 「등돌린 TK정서」를 체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보선 결과를 놓고 민자당안에서는 『이제 믿을 곳은 부산·경남지역 밖에 없다』는 자조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당내 민주계로서는 내년의 지방선거에 이은 총선·대선에서 성과를 올리려면 정국대처방식에 상당한 궤도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민정계가 주축인 TK출신 의원들은 이같은 「가진 자」의 고민보다 더 큰 충격과 위기감에 빠져 있다.이번 보선에서의 패배를 민주계의 독주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이며 「즐거워 할 것」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당장 다음의 15대 총선에서 자신들의 정치생명이 위태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윤환 정호용 김용태 최재욱 강재섭 김한규의원등 대구·경북지역 출신의원들은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역 분위기를 열심히 탐색했다.그러나 두터운「반민자」의 벽을 허물기에는 역부족임을 실감해야 만 했다.정창화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현지에 내려온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정후보도 문제지만 내가 더 큰일』이라고 위기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선거결과가 근소한 표차로 나타났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당선 가능성이 한결 높아짐은 물론 민주계에 대한 약간의 경고의미를 담게 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강화를 덤으로 얻게 된다.그러나 더블스코어의 표차는 민자당 후보에게는 난공불락임을 뜻하고,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입지가 강화된다 해도 별로 의미가 없다고 풀이했다. 이번 선거운동의 행정적인 지원을 위해 대구 현지에 내려갔던 한 관계자는 『대구에서는 선거가 한번 더 없나 하고 벼르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민자당에게 다시 한번 참패의 충격을 안겨주겠다는 분위기 였다는 것이다.이 관계자는 민자당의 공천에 탈락한 뒤 출마해 동정표를 구하는 것이 당선에 가까운 길이 될 것이라는 넋두리 같은 풀이까지 소개했다.TK의원들은 「반민자」정서를 되돌릴만한 이슈나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 할 것이라는 데 더욱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최재욱부총장은 『묘책이 없다.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 대다수 의원들의 고민일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TK대망론」을 전개한 김윤환의원이나 정호용 김용태의원등 중진급 인사들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그러나 내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정국운영 구도의 변화에 따라 이들을 포함한 TK의원들의 대응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상황에 따라서는 앞으로 정국운영에서 핵심변수로 작용할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대구지역당의 출현이나 새로운 이합집산이 전개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 「미륭」 거래선 유공서 현대로/정유사 대리점 쟁탈전 예고

    ◎현대정유서 파격적 지원… 유공 크게 반발 국내최대의 석유류 자영대리점인 미륭상사(대표 박의원)가 31년간 거래해온 유공과 대리점계약을 갑자기 끊고 현대정유와 전격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2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미륭상사는 지난 18일 유공에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더좋은 조건을 제시한 현대정유와 계약을 맺었다.유공은 『계약만료일이 오는 10월19일로 3개월이나 남았음에도 미륭상사와 그 자회사인 LPG대리점 수인가스가 오는 25일부터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해 왔다』며 『이같은 일방적 계약해지는 비정상적인 거래파괴행위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정유사의 시장확보경쟁으로 주유소들이 간판을 바꿔다는 경우는 많았지만 대리점이 거래선을 바꾼 경우는 처음이다.현대정유는 수도권의 유통망확보를 위해 유공의 두배가 넘는 5백억∼7백억원의 자금지원을 약속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미륭상사가 유공과 결별한 것을 계기로 앞으로 1백20여 다른 석유대리점들도 관련정유사에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이합집산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공의 관계자는 『현대가 미륭상사에 제공키로 약속한 지원규모는 상거래관행을 벗어난 과다한 것으로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이익에 의한 고객유인에 해당된다』며 『과거 수년간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현대정유가 심각한 경영악화상태에서 유통시장확보를 위해 비정상적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는 것은 그룹내의 내부거래의혹이 짙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대리점확보경쟁이 벌어질 경우 정유사의 자금이 유통업으로만 몰리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번질 것으로 우려된다. 미륭상사는 지난 53년에 설립된 국내최초의 석유대리점으로 범양상선의 전사주인 고 박건석회장의 아들 승주씨 소유로 수인가스와 함께 경인지역에 직영주유소 28개·자영주유소 10개 등 38개의 주유소와 LPG충전소 7개소를 갖고 있다.
  • “자유체제로 이행” 요구하라/최평길(대북정책 새 접근)

    ◎상호사찰 강조… 불응땐 핵보유카드 써야 집권 50년­역대의 군왕 가운데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장기집권이다.김일성의 죽음은 그만큼 북한은 물론 남한에도 6·25이래 최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여겨지고 동북아시아에 준 충격도 크다. 조카 김정일의 20년 견제를 받아온 김영주는 김일성왕조를 공멸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김일성 생전의 간곡한 요청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보호하듯 가족단결의 대부로 앞장서고 있다. 김일성은 50년 장기집권동안 사돈·겹사돈·사촌·재종·조카·9촌까지 연계시켜 장관급인 노동당중앙위원회의 정위원·후보위원 2백41명 가운데 물경 20%에 달하는 50명 가까이를 친인척으로 앉혔다. 그들은 헤어지면 죽는다는 가족적 공포감,남한에 의한 흡수통합,체제붕괴,핵무기개발로 인한 전쟁공포등 삼중사중의 기득권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살아 생전에 치밀하게 조직하고 간곡히 부탁한 김정일을 8순의 게릴라출신이 볼 때는 못가에서 노는 아이처럼 보이고,60∼70대의 전쟁복구세대는 온실에서 자란 김정일화로,50대이하는 아비의 업적에 무임승차하는 그저 물려받은 창업 2세대로 볼 것이다. 때문에 김정일이 김일성 뒤를 이어 창업을 이루어갈 것인가는 그가 2백여명의 핵심간부와 2백만의 기득권세력의 이합집산을 막으면서 하루 두끼의 강냉이죽과 밀가루국수라도 배불리 먹일 것인지,장기집권한 빨치산 원로군부,젊은 장성,영관장교등 신세대군부를 조직계통으로나 덕으로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달렸다. 지난 90년 비내리는 7월 여름날 모스크바 국방부 신청사 앞에서 모스크바군사대학에서 5년 동안 장기유학중인 3백명 대위·소좌그룹중 한명인 현준민소좌를 만났다.그는 평양을 떠나올 때 전인민군중에서 부대통솔력에서 제일이고 김일성주석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충성심으로 선발,파견된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처형되고 고르바초프·옐친이 직선제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북한의 노동당이 유일집권당이려면 국민투표를 해야 하고 김정일이 주석이 되려면 공개적으로 많은 후보를 내세운 직선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그 이후 3백명의 유학군인은 모조리 평양에 소환되고 말았다. 유학생,유학파군인,해외근무 경험이 있는 외교관,연합기업소관리장,노동신문·민주조선의 지성있는 언론인등도 잠재적 개혁세력이다. 이들은 현저히 약해져가는 북한통치관료조직에서 서서히 자기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고 군부개혁신진세력은 명분만 생기고,허점이 보일 때 독자적으로 연합전선을 펼치려 할 것이다. 그러한 모의는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원 2백46명을 평양 만수산의사당에 집합시켜 놓고 만장일치로 총비서에 오르기 위해 물밑설득을 하는 이 순간에도 동시다발로 일어날 것이다.오히려 이들보다 먼저 김영주·강성산·연형묵·김환·김달현등 친인척 측근그룹이 김정일은 안되겠다고 정변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김일성주석의 사망으로 북한의 1인집권체제의 붕괴작용이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이 시기에 한국의 김영삼대통령은 확실하고도 자신있는 대북정책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사유재산 인정,다당제에 의한 의회민주주의를포함한 진보적 문화복지와 자유민주가 통일코리아의 기본이념이며 그 방향으로 북한도 발전되고 궁극적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중기적으로는 임가공과 경제특구건설등 경제원조를 하고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는 현실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할 때 과거의 핵투명성보장과 함께 핵무기개발을 중지할 것을 증명하는 남북핵상호사찰을 반드시 실천해야 된다.만약 북한이 고의로 이를 회피하고 핵개발을 계속할 경우 한국은 북한에 앞서 핵무기제조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어야 한다.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는 미국과 확실한 공조체제를 유지하여 현수준에서의 핵동결에 만족하지 말고 한국과 미국이 핵무기개발에 한자·한획도 떨림이 없는 공동보조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계속될 정변에서 새롭게 북한최고지도자가 부상할 때마다 김영삼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요청할 것이다.북한최고지도자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이니셔티브를 김대통령이 갖게 되었으니 이제는민주주의를 가르쳐주는 한반도의 문민대통령위상을 보여줄 때다.
  • 「좌우동거」의 과제(일 사회당총리시대:하)

    ◎연정3당 총선협력·후보조정 부담/탈당사태 진정… 노선갈등 불씨 잠복/「오자와 전략」 먹혀들땐 또 이합집산 「비둘기파 정권」.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가 말하는 새 내각의 성격이다.일본사회에서는 지금 사회주의 총리의 등장과 함께 비둘기파 정권이라는 낯선 단어가 정치변화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다. 비둘기파 정권의 「일본적 의미」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가 추구하는 적극적인 국제공헌과 권력집중형 강권정치에 대한 반대개념이라 할 수 있다.그 말에는 「반오자와」 성향이 짙게 배 있다.일본정치는 이같이 자민당과 비자민세력의 대립에서 오자와와 반오자와세력의 대립구조로 바뀌었다. 오자와는 권력투쟁에서 패배,정권을 잃었지만 그의 패배는 완전한 패배는 아니라 할 수 있다.총리지명 선거에서 자민당과 사회당의 일부가 자신이 옹립한 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를 지지함으로써 그의 중요한 목표인 자민당과 사회당의 분열을 꾀할 수 있는 하나의 바탕은 마련했기 때문이다. 오자와의 시니리오대로 하타 쓰토무전총리는 구여당과 자민·사회당 이탈세력을 모은 새로운 정당을 구상하고 있다.구연립여당의 총리후보로 출마한 가이후 전총리도 오자와 등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력 결집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사회당의 분열을 꾀하는 「오자와 전략」은 현단계에서는 잘 작용하지 않고 있다.총리지명 선거에서 가이후 전총리를 지지한 세력의 탈당움직임이 아직은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1차투표에서 자민·사회당내 반란표는 61표에 이르렀다.그러나 반란표를 던진 의원중 탈당을 발표한 사람은 자민당의 2명에 지나지 않는다.자민·사회당은 당의 분열방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데다 집권당의 메리트 때문에 탈당을 망설이고 있는 의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민·사회당내 대립도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자민당은 더욱이 여당으로서의 힘을 축적,다음선거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정권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정치생명과 직결되는 선거다.자민·사회당은 물론 선거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개혁에 따른 소선거·비례대표제로 총선이 실시되면 자민당은 3백개 소선거구 전체에 후보를 내려 하기 때문에 선거협력과 후보조정은 매우 어렵다.후보조정이 안돼 선거가 자민·사회·구연립의 3파전이 될 경우 사회당은 지난번 선거에 이어 다시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당내에는 이러한 현실적 문제 때문에 중도·우파를 중심으로 자민·사회 연정에 반대한 세력이 많았으며 당내 노선대립 재연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자민당내에도 무라야마 총리,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외상,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대장상 등 새 내각 「트로이카」가 지향하는 호헌세력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외상 등의 「신보수주의」세력간의 대립이 있다. 자민·사회당내의 이러한 대립과 갈등으로 분열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사회당 총리 정권은 이러한 관점에서 제2차 정계개편의 과도기적 성격과 함께 새로운 정치질서를 모색하는 일본 정국의 혼란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그 과정에서 사회당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더욱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사회주의 총리의 등장은 오히려 사회주의 이상을 퇴색시키는 일본정치의 역사적 아이러니가 될지 모른다.
  • 일본의 사회당총리 등장(사설)

    일본에 사회당총리가 출현했다.옛날 같으면 놀라운 사태일지 모르나 지금은 변화된 시대탓인지 그렇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탈냉전과 사회당의 이념퇴색및 대한반도정책 균형노력,그리고 자민당과의 연정과 과도단명예상등의 탓일 것이다.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회당총리 출현과 자민·사회양당 연입의 성립은 역시 이변이요 변화하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세계와 함께 일본도 겪고 있는 세기말적 과도기의 정치혼돈을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혼돈은 38년간의 1당 장기안정집권을 누려오던 보수 자민당의 작년 7월총선 참패로 이미 예고된 사태다.8개 소수정파 연정의 호소카와총리가 8개월만에 물러나고 뒤이은 하타가 2개월 단명으로 끝난 데 이어 소수연정체제가 붕괴되고 보수자민·혁신사회 양당,그리고 신당사키가케의 다수정파 연정체제에 사회당총리가 등장하는 등의 이변과 혼돈의 속출인 것이다. 47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렇지 사회당이라고 총리를 내지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변으로 보는 것은 그것이 갖는 비정상적인 특징 때문이다.38년간이나 대립적이던 보수·혁신 양대정당의 연정과 총선에서 가장 참패한 사회당의 일본정치 주도등은 정상적 현상일 수가 없다.정치개혁지향의 오자와·호소카와·하타등으로 이어지는 소수연립에 대항하기 위한 정략적 결집의 소산인 것이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오늘의 왜곡된 일본정치모습이라 할 수 있다.결과적으로 일본국민의 정치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새연정은 정책갈등이 불가피할 것이고 일본정계의 자민·사회당등 각정파 이합집산을 통한 재편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혼돈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실을 전제로 할 때 자민·사회연정과 사회당총리내각의 한반도를 포함하는 대내외정책상의 큰 변화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북핵문제의 경우는 무라야마(촌산부시)사회당총리의 대북온건자세에 영향을 받겠지만 보수자민당의 견제 또한 받게 될 것이다.제재국면의 경우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북핵문제는 일본안보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사회당도 가볍게 대응하지는 못할 것이다.그러나 탈냉전후의 균형노력에도 불구하고 친북성향의 사회당속성에 대한 경계와 감시는 소홀히 해선 안될 것이다. 일본은 당연하고 확실한 우방이라 생각하던 자민당정권 때와는 다른 새로운 일본대응도 있어야 할 것이다.한동안의 정국혼돈을 전제로 하는 대일외교정책및 전략의 추구도 요청된다.정권이 아닌 정당별및 영향력있는 정치·경제·관료핵심지도자대상의 대일외교다변화도 기해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 도량인가 난장인가/이재근(서울광장)

    말없이 정진수행만으로 속세를 향해 말해야 할 승니들의 세계에 말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말로 하다 안되니 폭력으로 나오고 폭력으로 안되니까 고발 고소로 이어져 난장을 이룬다.공권력을 빌리다가는 「청부폭력」혐의로 확대된다.위통을 벗고 발길질을 하며 돌팔매 몽둥이질로 아수라장을 이룬 끝의 업보일시 분명하다. 『소림사도 아니고….무슨 스님들이 그래』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을 놓고 서울 조계사에서 빚어진 폭력사태를 접한 시민들이 한마디씩 내뱉은 말이다.분노와 증오 격정의 땀으로 일그러져 살기마저 서린 얼굴의 그들은 모두들 누구인가. 지난 겨울 열반에 드신 성철큰스님으로 하여 한껏 높아진 불교의 위상이 한꺼번에 무너진듯한데 대한 아쉬움도 여간 큰것이 아니다.성철스님은 생전에 『종단의 분규는,공부는 않고 섣부른 의욕만을 앞세운 자들의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때문』이라고 질책하면서 수도자는 모름지기 명리를 떠나야 함을 늘상 강조했다.일제때 총독부의 우리 불교계 분열책동에 놀아나 이합집산 난맥상을 보였던 당시 승가계를 꼬집어 『벼룩 서말을 몰고가는 일보다 중 셋을 몰고가는 일이 더 어렵다』고 설파한 사람은 불교유신론을 제창한 만해 한용운이었다.오늘의 스님네들이 그와 다르지 않다.그러니 「한 불당에서 내사당 네사당」찾는 스님들의 행태가 속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그 모두가 「집」과 「자리」다툼이다.흔히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집과 자리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경우도 없다고 한다.집있는 사람은 더 크고 쾌적한 집을 갖고자 하고 집없는 사람은 언제고 집없는 설움을 벗어나려 애쓴다.자리있는 사람은 더 큰자리를,자리없는 사람은 한자리 차지해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고자 한다. 집과 자리는 다 필요한 것이다.집은 좋을수록 좋고 자리는 높을수록 나쁘지 않다.집과 자리는 안정·평화·행복의 외형이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집착·탐욕·번뇌·무명의 내용이다.속인들은 그래도 할수 없다.그러나 스님들은 다르다. 불교는,모든것이 자기로부터 시작하지만 자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부처님의 말씀과 모든 경전은 자기를 무한히 확대하여 온누리 시방(십방)속으로 자기를 흩어지게 해야함을 교시한다.그것이 무아이며 무심이 아닌가 한다.자기를 시방속으로 흩어버리는 것은 온누리 모든 중생들에게 자기를 나누어주라는 말씀일 듯하다.이를 가르치고 실천하여 중생을 제도해야 할 스님들이 왜 걸핏하면 사생결단으로 피를 흘리며 싸운단 말인가. 출신 문중간에 반목 갈등이 쌓였고 재산다툼에다 종단개혁방법에 이견이 있다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말로하다 안되면 어디 커다란 도량(도장)하나 빌려 그속에서 문닫아 걸고 사흘 석달 삼년을 싸워 해결하고 나올 일이지 왜 서울 한복판에서 대중들 불러놓고 피나게 싸우는가.세상의 모든 악다구니 싸움을 한사코 말려야 할 스님들이 오히려 싸움판을 벌여 말려도 말려도 듣지 않는다. 「10·27법란」을 비롯,역대 정권에 의해 어느 종교보다 자율과 자존을 침해받았다고 불교계는 주장한다.그리고 항상 전통종교의 자부심과 종단운영의 자율성을 강조한다.하나 그날 폐허로 변한 조계사안팎의 사진 그림들을 보며 사부대중들은 얼마나 황량감을 느꼈는지 스님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자비의 실천」을 으뜸으로 하는 불교에서는 폭력을 「무명업식」의 소산인 것으로 설명한다.인간이면 누구나 잠재적으로 갖고있는 하나의 「어두운 힘」인 것이다.아상·번뇌·교만·회의·집착과 재물·지위·쾌락·명예를 위한 한없는 욕망이나 분노등 마음속에 내재돼 있던 이 어두운 힘이 표면화된 것이 다름아닌 폭력이다.그래서 염의의 스님들 세계에서는 물론 모든 인간사에서 가장 경계되고 증오돼야 할 이 폭력행위가 도심의 대도량에서 파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크나큰 서글픔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떠한 개혁이나 현실의 혁파도 폭력이나 다중의 위력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약속이자 공통된 가치라는 점이다.대중들의 대가람 조계사 경내가 북새판을 이룬 시간에 천주교 김수환추기경은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면 세계화 국제화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개방화 국제화를 향한 개혁시대의 조계종단과 그 스님들이 하루빨리 아집과 미망에서 벗어나 참되고 투명한,그리고 우리사회의 앞길을 밝히는 새모습의 승가·승가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제 스님들 모두 모여 상처를 씻고 용맹정진에 들어가시라.사부대중 모두가 지켜볼 것이다.나무 관세음보살.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