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10돌에 돌아본 민주화역정/김학준 인천대총장(특별기고)
우리는 어제 6·29 10주년을 맞이했다.온 국민을 환호하게 만들었고 국제사회에서도 기대를 불러 일으켰던 그 감격스런 민주화조처 8개항의 실현이 약속됐던 때로부터 어언 10년이 흐른 것이다.
선언자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후보의 표현 그대로 그것은 국민에 대한 항복이었다.권위주의체제의 종식과 민주정치의 부활을 외치는 대다수 국민들의 전국적 절규가 마침내 6월 항쟁의 형태로 폭발했을 때,집권세력의 제2인자였던 그는 더 이상 저항하는 무모함을 버리고 그것을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비롯한 8개항으로 압축해 즉각적 실현을 다짐함으로써 탈권위주의체제로의 전환을 예고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6·29선언은 국민의 승리였다고 하겠다.60년의 4월혁명에 이은 두번째 민주혁명이 국민의 힘을 통해 시작됐던 것이다.
○개헌 통해 기틀 마련
돌이켜 생각하면,4월혁명은 그 꽃이 활짝 피기에 앞서 61년에 5·16 군사쿠데타를 만남으로써 일단 좌절됐다.그뒤 72년의 유신쿠데타,79년과 80년의 신군부쿠데타는 그리하여 권위주의체제를 지속시켰고 강화시킴으로써 4월혁명의 정신은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27년만에 다시 점화됐다.마치 4월혁명이 김주렬군의 죽음으로 촉발됐듯,6월항쟁은 박종철군과 이한열군의 죽음으로 촉발됐으며,그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순사위에서 마침내 6·29 민주화선언의 나무가 자라게 된 것이다.
6·29 민주화선언은 우선 자유화의 단계를 밟았다.권위주의체제 아래 취해졌던 부당한 반민주적 법률들과 제도들이 고쳐지기 시작했으며 그것들에 의해 부당하게 구속됐던 사람들이 풀려났다.
그 조처들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조처는 개헌이었다.여야합의에 따라 새로운 민주헌법이 마련된 것으로,이 헌법은 오늘날까지 한 글자도 고쳐지지 않은채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개헌은 자유화의 다음 단계로서의 민주화의 개시 단계를 알리는 신호였다.이 개헌에 따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들이 마련될 수 있었다.3권분립의 확립,헌법재판소의 신설,언론자유의 보장,복수정당제도의 보장 등이 그 대표적 보기들이다.그리하여 그뒤 우리는 제도적 민주주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경·사 수준 높여야
민주화 개시 단계의 다음 단계는 민주화의 실천 단계이다.이 단계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도화의 수준을 뛰어넘어 실질화돼야 한다.그래서 이 단계를 실질적 민주주의 단계라고 부른다.
4·19 혁명이,그리고 6월 항쟁이 요구한 민주화는 오늘 현재 민주화의 개시 단계와 민주화의 실천 단계 사이에 와 있다.달리 표현해,제도적 민주주의의 단계와 실질적 민주주의 단계 사이에 와 있는 것이다.
공정하게 말해,제도적 민주화는 비교적 착실하게 진행되어 왔다.제도적으로 여전히 미비한 부분이 없지 않으며 그래서 그 미비한 부분의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으나 그래도 이 방면에서의 진전은 꽤 높은 수준에 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질적 민주화의 수준은 높지 않다.우선 정치문화와 행정문화는 여전히 권위주의체제의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이어 경제 부문과 사회 부문에서도 민주화는 실질적으로 선진국의 수준에 이르고 있지 못하다.
이 실질적 민주화의 단계를 우리는 이번 15대 대통령 선거를계기로 크게 진전시켜야 한다.깨끗한 선거의 전통을 확립하는 것이 그 목표들 가운데 하나이다.그리하여 새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재벌의 국민화,부의 보다 더 고른 분배,그리고 지역간 갈등의 완화 등을 통해 경제적 및 사회적 부문에서의 실질적 민주화를 진전시킴으로써 민주화의 실천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우리는 민주화의 세번째 단계인 민주주의의 확립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며 동시에 평화통일의 과업을 주도하게 된다.
6·29 선언은 이렇게 볼 때 현재 진행형이다.우리 모두 새로운 감회로 민주화의 진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