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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집중하라 2018/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집중하라 2018/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새해맞이는 기대와 소망을 품게 하기에 새롭고 활기찬 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시작됐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거리낌 없이 튀어나올 정도로 신년 같지 않은 신년이다. 새해의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등 뒤에 엄습하고, 불투명한 내일이 희망 대신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시민의 힘으로 출범한 새 정부가 다방면에 걸쳐 고치고 바로잡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국내며 외교며 난마처럼 얽힌 난제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아직 없다. 그렇게 우리는 2018년 새해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인식처럼 깨어난 시민의 힘이 현 정권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용광로 같은 이런 열기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졌겠는가. 아닐 것이다. 힘을 못 쓸 정도로 힘이 빠지지 않았고, 아직은 기세가 살아 있는 권력을 그렇게 날려 버릴 정도의 강력한 힘은 순간의 감정 폭발만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인고의 세월을 거치며 차곡차곡 조직화되고, 내적으로 응축된 힘이 실정을 비집고 일시에 분출됐다고 봐야 한다. 며칠 전 검·경 수장인 문무일 검찰총장과 이철성 경찰청장, 그리고 박상기 법무, 김부겸 행자부 장관이 영화 ‘1987’을 관람했다. 1987년 겨울 치안본부(현 경찰청)로 끌려가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을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사정 당국의 조작 발표는 시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그해 7월 연세대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졌고, 8월 전대협 발대식이 충남대에서 열렸다. 비록 처해 있는 곳은 달랐지만 불의에 항거하는 30년의 유전자(DNA)가 살아 움직인 것이다. 그 힘을 현 정권이 받고 있는 터라 이전 진보 정권과는 다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인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이는 구호로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럴 만한 힘과 배경이 없었기에 그토록 갈구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고, 한 사람은 비운의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제 미완의 숙제를 현 정권이 풀어내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는 단순히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아니라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심화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도 눈앞에서 불합리한 주장과 행위가 횡행하고 있다. 합리가 외면당하고 불합리가 통제받지 않고 작동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다. 적폐청산은 민주주의 회복과 직결돼 있다. 외과수술하듯 환부를 정확히 도려내야 한다. 적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제거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벌백계식 단죄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던 악습과 폐해를 걷어내는 제도개혁이 근본이다. 겉으로 드러난 독초만 잘라내고 끝내선 안 될 일이다. 지금처럼 정권의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빗자루질 몇 번하고 건물을 올렸다가는 바람 한번 불면 건물이 성할 리 없다. 땅을 깊게 파야 한다. 기반석이 나오면 기반석을 뚫어 견고한 지지대를 세워야 한다. 그러고 나서 건물을 세운다면 그 어떤 풍파도 견딜 수 있다. 새해에 집중해야 할 것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다름 아닌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 블랙홀로 빨려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반도체 굴기를 현실화한 중국은 4차 산업혁명의 꽃인 인공지능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러나 우리의 인공지능 특허출원 건수는 중국에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초라하다. 정부의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은 기존 산업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신사업’을 일으키는 게 중요하다. 고용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국적 규제’가 신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규제혁파를 강조했지만 죄다 실패했다. 문 대통령 역시 규제개혁과 혁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재계 수장들의 신년사 요지는 규제혁파 호소다.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말 아닌가. 분명한 것은 과잉규제로 자승자박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잿빛 미래가 될 것이란 점이다. ykchoi@seoul.co.kr
  • 이한열 기념사업회 “1987, 많이 슬펐다…강동원 용기에 감사”

    이한열 기념사업회 “1987, 많이 슬펐다…강동원 용기에 감사”

    이한열 기념사업회가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에서 실존인물 이한열(1966~1987) 열사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이한열 기념사업회는 홈페이지(www.leememorial.or.kr)를 통해 “2016년 여름,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나오기 전, 박근혜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 강동원은 배우로서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로 제일 먼저 달려와 배역을 수락해주었다”면서 “작은 그러나 태산만큼 큰 용기를 내준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영화 ‘1987’은 1월의 박종철 열사(1965~1987) 고문치사 사건부터 6월 이한열 열사까지 이어지는 민주항쟁 실화를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에 맞고 쓰러진 뒤 7월 5일 세상을 떠난 이한열 열사를 배우 강동원이 맡아 열연했다. 이한열 기념사업회 측은 “각오는 했지만, 짐작보다 많이 슬펐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꺽꺽거리면 등짝이 아팠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이어 “노동자가 죽어가고 대학생이 죽어가고 그렇게 속절없이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대, 살아남으려면 무심해야 했던 시대가 상기되어 맘이 출렁거리고 울컥했다”고 덧붙였다. 기념사업회 측은 “(극중) 박종철 열사의 어머님이 ‘부검 전에 손이라도 한 번 만지게 해달라’고 울부짖는 장면, 아버님이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내뱉으실 땐, 보는 이의 맘도 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면서 “나 하나 움직인다고 세상이 바뀔까, 무기력했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 가족 생각에 뜻을 접었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열처럼 ‘마음이 너무 아파’ 외면할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그들은 자기 앞에 놓인 일에, 작은 그러나 개인이 감당하기엔 태산만큼 큰 용기를 냈었다. 그 용기들이 모여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한열 기념사업회 글 전문 영화 <1987>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짐작보다 많이 슬펐습니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꺽꺽거리면 등짝이 아프군요. 며칠 전부터 신촌 지하철역의 <1987> 포스터만 봐도 맘이 출렁거렸습니다. 배우 김태리의 무심한 표정에서, 노동자가 죽어가고 대학생이 죽어가고 그렇게 속절없이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대, 살아남으려면 무심해야 했던 시대가 상기되어 맘이 출렁거렸지요. 그 시절에도 스무 살의 풋풋한 설렘이 있었습니다. 미팅도 하고 서클(동아리) 활동도 하고. 그 둘의 대비가 김태리 배우의 무심한 얼굴에 그대로 배어나와 포스터 앞을 지나는 것만으로 울컥울컥했었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어머님이 부검 전에 손이라도 한 번 만지게 해달라고 울부짖는 장면, 아버님이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속으로 꾹꾹 누르며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으실 땐, 보는 이의 맘도 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연희의 말처럼 나 하나 움직인다고 세상이 바뀔까, 무기력했던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가족 생각에 뜻을 접었던 이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한열처럼 ‘마음이 너무 아파’ 외면할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앞에 놓인 일에, 작은 그러나 개인이 감당하기엔 태산만큼 큰 용기를 냈었지요. 그 용기들이 모여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고요.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김근태 6주기 추모행사…매년 참석하던 안철수 대표는 불참

    김근태 6주기 추모행사…매년 참석하던 안철수 대표는 불참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의 6주기 추모행사가 29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렸다.이날 추모 미사에는 여당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불참했다. 안 대표는 매년 본인이나 부인 김미경 씨가 참석해왔다. 이날 추모행사는 더불어민주당이 9년 만의 정권교체로 집권 여당이 된 후 처음 열린 만큼 참석자들의 말과 표정에서 고인의 뜻을 이어받은 자부심과 뿌듯함이 가득 묻어났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문희상, 이석현, 박병석, 이종걸, 김부겸, 박영선, 설훈, 이인영, 박완주, 유은혜, 기동민 등 의원단이 참석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고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김 전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은 유족과 함께 성당 입구에 서서 추모객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했다. 추 대표는 추도사에서 “지난해 추모 미사 때는 참 막막했는데 올해는 마음이 따듯한 겨울이다”며 “촛불 정신을 받들어서 드디어 정권교체를 해내고 오늘 다시 김근태 정신을 기린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인간 존엄과 가치를 다시 세우고 국민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는 일을 일생의 사명으로 아셨던 이 시대 진정한 지도자 김근태 의장님께서 항상 정신적 좌표가 돼 주시는 덕분에 우리도 이 길을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하늘나라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님과 달라져 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이제는 마음 놓으시고 흐뭇하게 안식을 취하시면 좋겠다”며 “의장님의 정신이 민주당 이름으로 살아있도록 후배들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어진 추도사에서 “벌써 6년이 지났다. 형님을 떠나보낼 때는 참 막막했는데,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제 마침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과 ‘1987’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거기 그 울부짖던 박종철과 이한열의 고통 속에서 김근태가 떠올랐다”며 “웃음을 잃지 않았던 평화의 김근태가 거기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김근태의 뚝심과 정신이 마침내 국민에 퍼진 것 같다”며 “후배들이 잠시도 게으르거나 교만하지 않고 이 땅의 5000만, 남북의 8000만 민중과 함께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상임고문을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추도사를 준비하고도 국회 본회의 개의를 위한 교섭단체 협상 때문에 미사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도 미사 후에도 김 전 상임고문 추모행사가 종일 이어진다. 이날 오후 1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묘역을 참배하고, 오후 7시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제2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시상식과 추모문화제를 연다. 올해 문화제는 고인을 기억하는 시와 소설을 낭독하고 노래를 부르는 ‘낭독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아버지…’ 고(故) 김근태 선생 6주기

    [포토] ‘아버지…’ 고(故) 김근태 선생 6주기

    여당 인사들 대거 참석…추미애 “마음 따듯한 겨울” 김부겸 “교만하지 않고 역사의 수레바퀴 밀겠다” 우원식, 고인이 준 녹색 넥타이 매고 묘역 참배행사 참석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의 6주기 추모행사에 여당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올해 9년 만의 정권교체로 집권 여당이 된 후 처음 열린 고인의 추모행사인 만큼 참석자들의 말과 표정에서는 고인의 뜻을 이어받은 자부심과 뿌듯함이 가득 묻어났다. 이날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추모 미사에는 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비롯해 문희상, 이석현, 박병석, 이종걸, 김부겸, 박영선, 설훈, 이인영, 박완주, 유은혜, 기동민 의원 등이 참석했다. 아울러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과 국민의당 손학규 상임고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매년 본인이나 부인 김미경 씨가 참석해오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불참했다. 김 전 상임고문의 부인인 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유족과 함께 성당 입구에 서서 추모객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했다. 추 대표는 추도사에서 “지난해 추모 미사 때는 참 막막했는데 올해는 마음이 따듯한 겨울이다”라며 “촛불 정신을 받들어서 드디어 정권교체를 해내고 오늘 다시 김근태 정신을 기린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인간 존엄과 가치를 다시 세우고 국민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는 일을 일생의 사명으로 아셨던 이 시대 진정한 지도자 김근태 의장님께서 항상 정신적 좌표가 돼 주시는 덕분에 우리도 이 길을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하늘나라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님과 달라져 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이제는 마음 놓으시고 흐뭇하게 안식을 취하시면 좋겠다”며 “의장님의 정신이 민주당 이름으로 살아있도록 후배들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어진 추도사에서 “벌써 6년이 지났다. 형님을 떠나보낼 때는 참 막막했는데,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제 마침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과 ‘1987’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거기 그 울부짖던 박종철과 이한열의 고통 속에서 김근태가 떠올랐다”며 “웃음을 잃지 않았던 평화의 김근태가 거기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김근태의 뚝심과 정신이 마침내 국민에 퍼진 것 같다”며 “후배들이 잠시도 게으르거나 교만하지 않고 이 땅의 5천만, 남북의 8천만 민중과 함께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상임고문을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추도사를 준비하고도 국회 본회의 개의를 위한 교섭단체 협상 때문에 미사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우 원내대표는 야당과 극적인 타결을 이룬 직후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으로 달려가 묘역 참배에 참석했다. 중요한 날에만 맨다는, 김 전 상임고문이 생전 사용하던 녹색 넥타이를 맨 채로였다. 우 원내대표는 추도사에서 “제3기 민주정부의 첫해, 우리는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힘없고 백이 없어도 억울한 꼴 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형님의 준엄한 말, 늘 가슴 속에 각인하고 있다”며 “반짝이는 별처럼 김근태의 유지를 이정표 삼아 뚜벅뚜벅 걷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오후 7시에는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제2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시상식과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올해 문화제는 고인을 기억하는 시와 소설을 낭독하고 노래를 부르는 ‘낭독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된다. 연합뉴스
  • 김윤석 “탁 치니 억…대사가 입에 안 붙더라”

    김윤석 “탁 치니 억…대사가 입에 안 붙더라”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1987년을 조명한 작품이다. 그해 1월 고문으로 유명을 달리한 박종철 열사에서부터 6월 항쟁 당시 시청광장에 운집한 100만명의 시민까지 모두가 주인공이다. 힘이 하나하나 모이는 과정 자체가 극적이기도 했지만 영화적으로는 주인공들에게 맞선 악역들이 빛나야 하는 작품이다.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피해를 입었던 문성근이 간첩 사건을 조작해 국면을 뒤집으려는 안기부 장부장을,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간부로 이한열 열사 장례 집회를 주도했던 우현이 치안본부장 역을 맡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연기를 한 점도 흥미롭다. 박희순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이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수사관으로 명멸한다. 이러한 악역들 중심에는 단연 대공수사처 박처장이 있다. 김윤석(49)이 연기했다. 이미 ‘타짜’의 아귀, ‘황해’의 면가로 우리 영화사의 악역 열전을 새로 썼던 그였지만 박처장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실존 인물에다가 시대의 어둠을 상징하는 악역이라 부담스러웠죠. 하지만 이 영화는 악당이 강력해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더 빛날 수 있어요. 박 열사 유족들을 만났을 때 가장 나쁜 역을 맡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누님은 흔쾌히 허락하셨고 형님은 마음의 짐을 지게 될 것 같다며 걱정해 주셨죠. 어둠 쪽 역할을 한 배우들 모두 망설임 없이 동참했어요. 영화를 함께한 모든 동료들이 고맙지만, 악역을 연기한 배우들이 0.1% 정도는 더 고맙죠.”“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희대의 발언이 그를 통해 재현된다. 중간에 대사를 한 템포 쉬어가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30년이 지나 반추해 봐도 넌센스고 기가 찰 소리죠. 그래서인지 대사를 칠 때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이 안 되는 거예요. 스스로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니 자기 말이 맞지 않냐고 기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어색한 톤은 그렇게 나온 것 같습니다.” 그는 박 열사의 고교 2년 후배이기도 하다. “학교 때는 박 열사를 몰랐어요. 3학년 교실은 후배들이 올라가지 못하는 무서운 층이었거든요. 열사가 가시고 나서야 동문회에 소식이 퍼지며 알게 됐죠. 이제 와서 동문이라는 이유로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운운하는 건 시건방진 이야기 같아요. 다만 영화를 만들기로 했을 때 정말 최선을 다해 진정성을 담고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어요. 열사의 유족은 물론, 그 시대를 직접 겪은 분들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김윤석은 무엇보다 영화가 유족들에게 합격점을 받아 다행이라고 했다. “30년을 버텨 온 단단한 분들이에요. 잘 봤다고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유족들과 박종철기념사업회, 이한열기념사업회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습니다. 박 열사를 연기한 (여)진구가 영정 속에서 쓰고 있는 안경은 실제 박 열사의 것이에요. 엔딩에 나오는 ‘그날이 오면’은 이한열합창단이 불러 줬지요.” 김윤석은 ‘1987’이 한국의 ‘레미제라블’ 같은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작기 영상을 보면 시청광장 군중 신을 찍기 전에 감독님이 보조 출연자분들을 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바로 이 장면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해 주세요’라고요. 저도 그 장면을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지요. 저는 다른 촬영 일정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악역을 연기했던 몇몇 배우들은 얼굴을 가리고 시청광장 장면에 참여하기도 했죠. 거기에 구호를 외치는 여성 목소리가 나오잖아요. 바로 (감독의 부인인) 문소리씨예요. 이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희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모두 고맙지만 악역 배우들이 0.1% 더 고마워” 김윤석

    “모두 고맙지만 악역 배우들이 0.1% 더 고마워” 김윤석

    27일 개봉 ‘1987’서 시대의 어둠 상징 대공수사처장 연기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1987년을 다룬 작품이다. 그해 1월 고문으로 유명을 달리한 박종철 열사에서부터 6월 항쟁 당시 시청광장에 운집한 100만 명의 시민까지 모두가 주인공이다. 힘이 하나하나 모이는 과정 자체가 극적이기도 했지만 영화적으로는 악역들이 빛나야 하는 작품이다.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피해를 입었던 문성근이 간첩 사건을 조작해 국면을 뒤집으려는 안기부 장부장을,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간부로 이한열 열사 장례 집회를 주도했던 우현이 치안본부장 역을 맡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연기를 한 점도 흥미롭다. 박희순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이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수사관으로 명멸한다. 이러한 악역들 중심에는 단연 박처장이 있다. 김윤석(49)이 연기했다. 이미 ‘타짜’의 아귀, ‘황해’의 면가로 우리 영화사의 악역 열전을 새로 썼던 김윤석은 박처장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실존 인물에다가 시대의 어둠을 상징하는 악역이라 부담스러웠죠. 하지만 이 영화는 악당이 강력해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더 빛날 수 있었어요. 박 열사 유족들을 만났을 때 가장 나쁜 역을 맡았는데 최선을 다해 연기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누님은 흔쾌히 허락하셨고 형님은 마음의 짐을 지게 된다며 걱정해주셨죠. 어둠 쪽 역할을 한 배우들 모두 망설임 없이 동참했어요. 영화를 함께한 모든 동료들이 고맙지만, 악역을 연기한 배우들이 0.1% 정도는 더 고맙죠.” 사명감을 떠나 배우로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작품이라고 돌이키기도 했다. “처음엔 자기만의 특이한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님인데 다른 성격의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을 하려하는 지 의아했어요. 완성된 시나리오가 너무 빼어났어요. 대개 광장히 정의로운 주인공을 내세우는 법인데. 이 작품은 안타고니스트를 중심에 놓고 모이는 구조였죠. 또 그 구조 자체가 계란이 깨지고 부딪히고 부딪혀 바위가 무너지는 이야기로 귀결되니까 실화가 아니라고 해도 굉장히 좋았고, 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더욱 더 울림이 있는 것이었죠. 2년 전 작품이 처음 기획됐을 당시만 해도 외부 여건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감독님과 인연이 있던 저와 하정우, 강동원까지 합류하니 동력이 좀 되겠구나 싶었어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라는 희대의 발언이 그를 통해 재현된다. 중간에 대사를 한 템포 쉬어가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30년이 지나 반추해봐도 넌센스고 기가 찰 소리죠. 그래서인지 대사할 때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이 안되는 거에요. 스스로도 말이 안되는 것 같으니 내 말이 맞지 않냐고 기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어색한 톤은 그렇게 나온 것 같습니다.” 이북 출신인 박처장의 가족사가 언급되고 부하를 지키려는 모습 등 다소 인간적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 인물이 가족사를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리며 회유를 많이 했다고 해요. 그의 이야기가 진짜일지 가짜일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감독님은 진짜처럼 연기해달라고 주문했어요. 부하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저는 권력 싸움 속에서 조직을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행동이었다고 봐요. 양심 선언을 하겠다는 부하에게 가족을 들먹이며 회유하고 나와서는 복도를 걷는 장면에서 감독님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처럼 연기해달라고 했어요. 신기루처럼 권력을 쫓다가 버림을 받아가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고 봅니다.”그는 박 열사의 고교 2년 후배이기도 하다. “학교 때는 박 열사를 몰랐어요. 3학년 교실은 후배들이 올라가지 못하는 무서운 층이었거든요.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소식이 퍼지며 동문이라는 걸 알게 됐죠. 이제와서 동문이라는 이유로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운운하는 건 시건방진 이야기 같아요. 다만 영화를 만들기로 했을 때 정말 최선을 다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어요. 역사의 유족 분들은 물론, 그 시대를 직접 겪은 분들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김윤석은 무엇보다 영화가 유족들에게 합격점을 받아 다행이라고 했다. “30년을 버텨온 단단한 분들이에요. 잘 봤다고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유족분들과 박종철기념사업회, 이한열기념사업회로부터 아낌 없는 지원을 받았어요. 박 열사를 연기한 (여)진구가 영정 속에서 쓰고 있는 안경이 실제 박 열사의 안경이에요. 엔딩에 나오는 ‘그날이 오면’은 이한열합창단이 불러줬지요.” 김윤석은 ‘1987’이 한국의 ‘레미제라블’ 같은 영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작기 영상을 보면 시청광장 군중 신을 찍기 전에 감독님이 보조 출연자 분들을 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바로 이 장면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연기해주세요’라고요. 저도 그 장면에서 똑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다른 작품 촬영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악역을 연기했던 몇 몇 배우들은 얼굴을 가리고 그 장면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거기에 구호를 외치는 여성 목소리가 나오잖아요. 바로 (감독의 부인인) 문소리씨에요. 구호와 손짓하는 연기(웃음). 이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희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강동원, 할리우드 진출...사이먼 웨스트 감독 作 ‘쓰나미 LA’ 캐스팅

    강동원, 할리우드 진출...사이먼 웨스트 감독 作 ‘쓰나미 LA’ 캐스팅

    배우 강동원이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18일 배우 강동원(37)이 미국 영화 ‘쓰나미 LA(Tsunami LA)’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강동원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측에 따르면 영화 ‘쓰나미LA’ 배급사인 한니발클래식은 이날 강동원이 사이먼 웨스트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고 발표했다. 사이먼 웨스트 감독은 영화 ‘툼 레이더’, ‘와일드 카드’ 등을 연출한 영국 출신 유명 할리우드 영화 감독이다. 강동원의 ‘쓰나미 LA’ 출연 소식은 미국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 등 현지 언론에 먼저 알려졌다. 오는 2019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되는 ‘쓰나미 LA’는 미국 LA에서 역사상 가장 큰 쓰나미가 발생, 도시를 강타하고 대량 살상을 초래한다는 내용의 재난 영화다. 본격적인 촬영은 내년 3월부터 영국, 멕시코 등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웨스트 감독은 “강동원은 한국에서 대단한 작품들을 해 온 배우”라면서 “이렇게 뛰어난 배우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돼 기쁘다”라고 강동원과 함께 작업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강동원 역시 “이 영화에서 맡을 캐릭터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유능한 분들과 함께하게 돼 영광이다”라면서 이번 영화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한편 강동원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마스터’ 이후 활동이 뜸했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1987’에서 故이한열 열사 역으로 특별출연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현재 2018년 개봉하는 김지운 감독 새 영화 ‘인랑’을 촬영 중이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철원 유탄 사망사건 수사…軍, 초급간부에 책임전가”

    지난달 26일 강원 철원에서 육군 6사단 병사가 군 사격장 근처를 지나다 유탄에 맞아 숨진 사건에 대한 수사가 부당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군 인권센터는 19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 책임을 일선 부대 초급 간부들에게 전가해 본질을 호도하려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앞서 군은 사망한 이모(22) 상병의 일행을 인솔한 소대장과 부소대장, 사격통제관이었던 정보통신대대 소속 중대장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지난 9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1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소대장은 구속됐다. 부소대장과 사격통제관이었던 중대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군 검찰은 중대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센터 측은 군 검찰의 영장 청구와 관련해 “사격통제관은 현역 군인으로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는 데다 과실범이므로 사건 관련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아 증거 인멸 우려도 없다”면서 “무리한 구속 시도는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사의 객관성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센터 측은 “6사단에서 발생한 사건을 6사단 헌병이 수사했는데, 사단장 이하 모든 관리 책임자를 성역 없이 수사해야 하는 만큼 6사단 헌병은 수사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수사 지휘를 맡은 이모 대령이 현장에 가서 술판을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센터 측은 또 “주된 처벌 대상은 사격장 관리에 대한 직접적 책임이 있는 77포병대대장인 윤모 중령, 사격장관리관인 우모 상사, 6사단 교육훈련참모인 배모 중령 등이며, 6사단장인 이모 소장의 지휘통솔 책임도 크다”면서 “엉터리 사격장을 승인한 당시 사단장 이하 역대 사단장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사건이 발생한 사격장과 사고 장소인 사격장 표적지 뒤편 전술도로에 대한 시공과 관련한 문건과 사격장 안전평가 및 보수 내용에 관한 문건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철원 6사단 유탄 사망사건, 초급 간부들에 책임 전가 정황”

    “철원 6사단 유탄 사망사건, 초급 간부들에 책임 전가 정황”

    지난달 26일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6사단 이모(22) 상병의 유탄 사망사건 수사가 부당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군인권센터(이하 센터)는 19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 책임을 일선 부대 초급 간부들에게 전가해 본질을 호도하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센터에 따르면 군은 사망자 일행을 인솔한 소대장·부소대장과 사격통제관이었던 정보통신대대 소속 중대장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지난 9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12일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끝에 소대장은 구속되고 부소대장과 사격통제관에 대한 영장은 기각됐으나 군 검찰은 사격통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센터는 “사격통제관은 현역 군인으로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는 데다가 과실범이므로 사건 관련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아 증거 인멸 우려도 없다”며 “무리한 구속 시도는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센터는 “이 사건의 실제 수사는 6사단 헌병이 했다”며 “6사단 사건이므로 사단장 이하 모든 관리 책임자를 성역 없이 수사해야 하는 만큼 6사단 헌병은 수사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수사에 객관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센터는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수사 지휘를 맡은 이모 대령이 현장에 가서는 부대 내에서 술판을 벌였다”면서 “주된 처벌 대상은 사격장 관리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77포병대대장 윤모 중령, 사격장관리관 우모 상사, 6사단 교육훈련참모 배모 중령 등이며 6사단장 이모 소장의 지휘통솔 책임도 크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문제의 사격장에선 총구가 2.39도만 상향 지향돼도 탄이 사고 장소까지 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점 등 군 조사에서 밝혀진 문제를 거론하며 “엉터리 사격장을 승인한 당시 사단장 이하 역대 사단장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단장이 ‘한강 익사 영웅병사’ 미담 조작 지시”

    책임 뒤집어쓴 부하는 감봉·해임 군검찰 재수사에도 ‘무혐의 처분’ 육군 중장이 병사의 사고사를 ‘미담’으로 조작할 것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6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1년 8월 27일 낮 12시 20분 육군 17사단 병사가 경기 김포의 한강 하구에서 익사한 사건을 당시 사단장이던 김모(육사 38기) 중장이 ‘영웅담’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김 중장은 현재 합동참모본부에 근무하고 있다. 센터 측은 “강변 청소 작업 중 병장 한 명이 발을 헛디뎌 급류에 빠져 숨진 사건을 당시 17사단은 후임병이 실족해 물에 빠지자 병장이 물에 뛰어들어 후임병을 밀어내고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고 발표했다”고 밝혔다. 숨진 병장은 사후 1계급 특진됐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사고 직후 현장에 있던 대대장이 연대장 이모 대령에게 사실대로 보고했으나 사단에서는 조작된 미담을 상부에 보고했다”면서 “이후 김 중장이 연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살신성인 의로운 죽음’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하 부대의 사고는 진급에서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므로 김 중장이 사고를 미담으로 꾸몄을 것”이라면서 “김 중장은 작전 중이었던 것으로 꾸미고자 병장의 상의 체육복을 벗겨 전투복으로 갈아입히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센터 측은 또 “김 중장은 연대장인 이 대령에게 ‘최초보고 당시 조작된 사실을 보고했다고 해 달라’고 부탁했다”면서 “이는 사고 조작 책임을 부하에게 떠넘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중장의 지시에 따랐던 이 대령은 감봉과 보직 해임 징계를 받았다. 이후 이 대령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해 사건 재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사건 수사를 의뢰받은 국방부 검찰단은 김 중장을 무혐의 처분했다. 김 중장은 이 대령을 무고로 고소했다. 센터 측은 “검찰단이 오히려 김 중장의 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센터 측은 김 중장을 직권남용과 무고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장 송모 대령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국방부 조사본부에 고발할 방침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철저하게 수사해 사실관계를 밝히고 엄중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광주 짓밟은 전두환, ‘전두환’ 밟고 간 문재인 대통령

    광주 짓밟은 전두환, ‘전두환’ 밟고 간 문재인 대통령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계엄군의 시민 학살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 열풍이 정치권에까지 번진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해 광주 국립 민족민주열사묘역 방문 당시 사진도 재조명 되고 있다. 최근 대형 온라인커뮤니티와 페이스북 SNS 등에는 ‘전두환 짓밟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해당 게시물에 첨부된 사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아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과 함께 서있는 모습이 담겨있다.해당 사진은 2016년 4월 8일 문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광주 국립 민족민주열사묘역을 방문한 당시 찍힌 것으로 확인됐다. 민족민주열사묘역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이 처음 묻힌 곳으로, 1997년 국립묘지가 조성되면서 대부분 묘지가 이장됐다. 이후에는 민주화 운동 열사들이 주로 묻힌 곳이다. 그런데 이 묘역에는 광주 학살을 지시한 전두환씨 기념비의 일부도 있다. 이 기념비는 1982년 당시 대통령인 전씨가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는 1989년 군부 정권이 퇴장하자 이 기념비를 부숴 민주묘역 입구 땅바닥에 묻어 사람들이 이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기념비 안내문에는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짓밟아 달라’고 적혀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한열 열사의 묘를 찾기 위해 민주묘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바닥에 놓인 ‘전두환 비석’을 보고 묘역 안내인에게 “원래 깨져 있었던 건가요? 밟고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이 비석을 밟고 묘지로 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도 지난해 이 기념비를 밟고 지나갔다. 한편 대법원의 내란 및 반란죄 등 확정판결에도 ‘광주 학살’을 부정하고 있는 전씨와 전씨 측근들은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운운하고 있다.전씨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지난 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이 나오는 내용은 완전히 날조된 사실”이라면서 “당시 계엄군들이 공격을 받고 몇 명이 희생되자 자위권 차원에서 사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택시운전사 관련해 악의적인 왜곡과 날조가 있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가혹행위 알렸는데 가해자와 방치…육군병사 자살

    육군 병사가 선임병으로부터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20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4시쯤 육군 제22사단 소속 K(21) 일병이 경기 성남 분당의 국군수도병원에서 투신자살했다. 치아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K일병은 병원 7층 도서관 창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당시 K일병은 부대 동료와 함께 동료 아버지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고, 인솔 간부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센터 측은 이날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월 강원 고성의 부대로 전입한 K일병이 병장 1명과 상병 2명 등 선임병 3명으로부터 폭언·욕설·폭행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K일병의 수첩을 인용해 “선임병들은 훈련 중 부상으로 앞니가 빠진 K일병에게 ‘강냉이 하나 더 뽑히고 싶으냐’며 폭언, 협박을 일삼았다”고 밝혔다. K일병의 지갑 속 메모에는 “엄마 미안해. 앞으로 살면서 무엇 하나 이겨낼 자신이 없어. 매일 눈을 뜨는데 괴롭고 매 순간 모든 게 끝나길 바랄 뿐이야. 편히 쉬고 싶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센터는 “K일병은 지난 14일 부대 내 고충 상담에서 선임병으로부터 구타와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사실을 이미 보고한 상태였다. 이후 ‘배려병사’로 지정돼 GOP(일반전초) 근무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가해 병사들과 분리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22사단은 2014년 GOP 총기난사 사건, 2017년 1월 일병 자살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며 “지난 사건들로부터 아무런 반성도 교훈도 얻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 헌병대의 조사로 가해 병사가 적발될 경우 관련 규정에 따라 엄중히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씨줄날줄] 6·29 민주화선언 후 30년/이경형 주필

    [씨줄날줄] 6·29 민주화선언 후 30년/이경형 주필

    오늘은 ‘6·29 민주화 선언’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선언은 임기 5년 단임의 대통령직선제 현행 헌법의 출발점이었다. 5공화국의 군사독재가 국민들에게 항복한 날이기도 하다. 1987년 6월 29일 오전 9시. 서울 관훈동 민정당사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실은 긴장감으로 숨이 막혔다. 이윽고 노태우 당대표가 자리에 앉아 ‘국민 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 선언’을 읽어 나갔다.“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고… , 김대중씨도 사면복권….” 당시 민정당을 취재하던 필자도 ‘뭔가 대물 같다’는 감은 있었으나 그렇게 화끈할지는 몰랐다. 발표를 마친 노 대표를 뒤따라 나오면서 심경이 어떠냐고 묻자 “국민들에게 손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군 출신인 그가 ‘손든 것’은 ‘항복했다’고 말한 것 아닌가. 이 부분을 그의 회고록에는 “나는 이제 발가벗었다. 오직 국민 뜻대로 한다는 생각뿐이다”라고 기술했다. ‘6·29 민주화 선언과 한국 민주주의’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정훈 서울대 교수는 “정치사로서 6·29 선언은 4·13 호헌 조치에서 6·10 시민항쟁으로 이어진 ‘중대 시점’의 종결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옳은 지적이다. 군사정권의 한 시대는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내각제, 신한민주당 등 야당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대립 정국,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의 개헌불가 천명, 경찰의 시위 진압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사건 등 군사정권을 향한 간단없는 민중의 저항으로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도전과 미래’라는 논제로 “연인원 1700만명의 촛불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거리 의회’를 열어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승리한 명예혁명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정보를 가진 시민’이 온라인에서 소통하고 오프라인에서 집회를 열어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이 되면 광장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된 새로운 민주주의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6공화국 헌법이 시행된 후 7명의 대통령이 취임했다. 30년 전 모든 국민이 염원했던 대통령 직선제 헌법을 쟁취했지만 한 세대가 흐른 지금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만연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했다. 대통령 권한의 분산, 중앙집권의 지방분권화, 국회의원 선출 방식을 일대 혁신하는 선거법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제7공화국의 헌법안을 국회개헌특위를 중심으로 가다듬어 나가야 할 때다.
  • 장군의 노예?

    육군 사단장이 공관병, 운전병 등을 상대로 이른바 ‘갑질’을 일삼았다고 군인권센터(이하 센터)가 폭로했다. 센터는 2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 제39사단 사단장인 문모 소장의 행태를 낱낱이 밝혔다. 문 소장은 공관병에게 공관 텃밭과 난초 관리 등을 맡겼고, 자신의 대학원 입학시험 준비와 과제를 위한 자료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관병의 목덜미를 두 번 치고 뺨을 한 차례 때렸으며 운전병에겐 수시로 욕설을 퍼부었다고도 했다. 센터 관계자는 “제보자가 지난달 자신이 겪거나 목격한 피해를 국민신문고에 신고했지만, 육군본부 감찰실은 ‘사적 지시는 인정하지만, 폭행은 인정할 수 없다’는 회신을 보냈다”며 “문 소장은 육군참모총장의 ‘구두 경고’만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육군에 문 소장의 즉각 보직 해임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육군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민원을 접수한 사안에 대해 감찰실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사단장에게 엄중 경고한 바 있다”고 언급한 뒤 “센터에서 추가로 제기한 사안에 대해 신속하게 확인하고 결과에 따라 처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39사단장, 공관병에 뺨 때리고…운전병엔 수시로 욕설

    39사단장, 공관병에 뺨 때리고…운전병엔 수시로 욕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26일 서울 서대문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육군 제39사단장 폭행-가혹행위 및 병영부조리 사건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 사단장의 직권남용 행위에 대해 폭로했다.센터에 따르면 문 소장은 지난 3월 30일 술을 마시고 한밤중에 공관으로 들어와 공관병과 함께 복도를 걷던 중 갑자기 공관병의 목덜미를 두 번 치고 뺨을 한 차례 때렸다. 문 소장은 공관 텃밭 관리, 수십 개에 달하는 난초 관리 등을 공관병에게 맡겼고, 자신의 대학원 입학시험 준비와 과제를 위한 자료 조사를 지시했다. 운전병에겐 수시로 욕설을 퍼부었다. 센터는 문 소장이 담배를 피울 때 전속 부관에게 재떨이를 들고 옆에 서 있게 했고, 회식에서 자신이 입을 사복을 코디해서 가져오라고 시키고는 마음에 안 들면 폭언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제보자 중 한 사람이 지난달 자신이 겪거나 목격한 피해를 국민신문고에 신고했지만, 육군본부 감찰실은 ‘사적 지시는 인정하지만, 폭행은 인정할 수 없다’는 회신을 보냈다고 했다. 센터는 “제보된 내용은 군형법 제60조 군인 등에 대한 폭행,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그런데도 문 소장이 받은 조치는 육군사관학교 선배인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구두 경고’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육군에 문 소장의 즉각적인 보직 해임을 요구한다. 문 소장의 법률 위반과 기본권 침해, 육군의 엉터리 감찰 과정 전반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센터는 “문 소장이 사회에선 상상할 수 없는 갑질을 한 것은 현대판 사노비 제도이자 군의 오랜 적폐인 장군 공관병, 개인 운전병 제도가 온존하기 때문”이라며 “국방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 청산 기조에 맞춰 공관병·운전병 제도를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준익 감독 “박열은 신념의 인물…우리 시대로 치면 박종철·이한열 열사”

    이준익 감독 “박열은 신념의 인물…우리 시대로 치면 박종철·이한열 열사”

    이준익(58) 감독은 지금까지 열두 편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일곱 편이 역사와 얽혀 있다. ‘왕의 남자’나 ‘황산벌’처럼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친 작품도 있지만 ‘사도’부터는 유독 시대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박열’ 또한 그러한 작품이다. 전작 ‘동주’에 이어 거푸 일제강점기를 조명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했던 시인 윤동주나 일본에서 대역죄인을 자처하며 사형을 쟁취하려 했던 아나키스트 박열 모두 “능동적 근대성을 남긴 인물”이라고 이 감독은 이야기한다.“역사 영화를 많이 찍다 보니 오히려 역사에 대한 기갈이 듭니다. 우리가 서양 교육을 받으며 자라서인지 역사도 서양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상한 관성 탓인 거 같아요. 식민지 근대화론에 뿌리를 둔 피동적인 근대성보다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근대성을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정치사와 전쟁사가 아닌 민중사로 읽으면 동학혁명에서 비롯된 민중의 함성이 오늘날의 ‘촛불’로 이어진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사이사이에 있던 능동적 근대성의 거점들을 찾아 짚어 주고 싶었어요. 그 선상에 윤동주도, 박열도 있는 거죠.”유관순과 같은 해에 태어난 박열(1902~1974)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항일운동가는 아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고, 문경으로 낙향해 제2만세운동을 이어 가려다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 청년들과 교류하며 무정부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을 펼쳤다. 그의 삶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변곡점을 맞는다. 당시 폭동을 우려한 한 일본 대신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가짜 뉴스를 흘려 불과 사흘 만에 조선인 6000여명이 학살당한다. 일본 내각은 국면 전환용으로 당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박열의 혐의를 부풀려 일 왕세자 폭탄 암살 음모의 주동자로 꾸민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기보다는 제국주의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라며 죄를 기꺼이 뒤집어쓴다. 영화는 그러나 박열을 영웅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이십대 초반, 질풍노도의 모습이 많다. “피 끓는 청년이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기성세대에 편입되지 않은 채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과정이 영화에 담겨 있어요. 박열은 우리 시대로 치면 박종철, 이한열 열사라고 봅니다.” 이 감독은 박열을 단순히 치기 어린 청춘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오류라며 경계하기도 했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제국주의에 항거했던 놀라운 신념의 인물입니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조선 청년의 기개와 신념을 현실로 만들어 낸 행동주의자죠. 그 지점에 박열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영화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를 다루지만 코믹 요소가 상당하다. 일본 내각의 모습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전작인 ‘동주’와는 또 다른 스타일. 그렇게 엄숙주의를 탈피했다는 점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과 궤를 같이한다. “‘암살’은 우리 영화의 큰 성과를 보여 준 사례에요.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정서적 다양성을 열어 줬죠.” 국가주의, 민족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아시아 역사 공동체 의식을 꿈꾸는 이 감독은 ‘박열’에서 식민지 시대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거나 반일 감정이나 분노를 유발하려 하지 않는다. 또 ‘동주’에서 윤동주 못지않게 송몽규가 부각됐던 것처럼 박열의 동지이자 동거인인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를 또 한 명의 주인공이자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전면에 내세운다. 박열은 가네코 후미코가 있어 완성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일본 역사학자 야마다 쇼지가 쓴 ‘가네코 후미코’ 평전에 기대고 있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 무척이나 불량스러워 보이는 이제훈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일본의 인기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배가본드’ 이미지가 연상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영화 속 박열의 외모는 오만 가지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던 그의 실제 기록을 토대로 한 겁니다. 사진을 보면 그 만화가 오히려 박열의 모습을 참조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죠. 허허허.”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위수령 발동/손성진 논설실장

    [그때의 사회면] 위수령 발동/손성진 논설실장

    6월 항쟁 30주년이 지났다. 민주화의 성취는 1970년대와 80년대의 독재에 대한 항거의 결과지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장발을 흩날리는 학생들이 줄지어 스크럼을 짜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교문 쪽으로 뜀박질을 한다. 동시에 1개 중대 병력보다 많은 전경이 군홧발 소리도 요란하게 학생들을 향해 돌진하며 최루탄 수십 발을 터뜨린다. “흔들리지 흔들리잖게….” 학생들의 외침은 절규로 변한다.교정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젊은피들의 몸을 던진 시위가 벌어졌다. 저항은 탄압으로 이어져 학생들은 구속되고, 고문을 당했다. 1965년의 한·일 수교 회담, 1969년의 3선 개헌, 1972년의 10월 유신을 거치며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육군 부대가 한 지역에 계속 주둔하면서 질서를 잡도록 대통령령으로 만든 것이 위수령이다. 위헌·위법적이었다. 위수령은 1971년 서울의 대학가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1차 발령되었다. 두 번째는 1979년 ‘부마 사태’ 당시 마산 일원에 내려진 것으로 이는 ‘10·26 사태’를 부른 계기가 됐다. 위수령이 내려지면 무장한 군인들이 학내로 진입해 학생들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1971년 10월 15일은 마침 서울대 개교기념일이기도 하여 불상사가 없었으나 고려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에선 군인들이 학생들을 구타하고 끌고 갔다. 대학은 군인들이 진주하여 폐쇄됐다. 전두환 정권에서 대학가 시위는 더 격렬해졌다. 잔디밭이나 옥상에서 시위 현장이 포착되는 순간 교정 곳곳에 사복 차림으로 위장해 있던 ‘백골단’들이 시위자를 덮쳤다. 짓밟다시피 해서 제압해서는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갔다. 은폐된 진실을 바깥으로 알리려면 교문 밖으로 나가야 했다. 스크럼을 짠 학생 시위대는 대형 철문으로 돌진했다. 때로는 돌과 화염병이 난무했다. 불어나는 시위 학생의 숫자보다 곱절이나 많은 전경이 학교를 에워쌌다. 전경들은 교정을 병영 훈련장처럼 휘젓고 다녔다. 교정에는 늘 최루탄 가스 냄새가 진동했다. 꿈쩍하지 않는 현실에 무모한 도전을 감행해 비참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몸에 불을 붙이거나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할복을 시도해 목숨을 끊었다. 독재 권력에 경고하고 세상을 일깨우려는 최후의 몸짓이었다. 서울 평화시장 미싱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열악한 근로조건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했다. 또 1975년 당시 서울대 농대 학생이던 김상진은 할복하고 자결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지만 희생은 너무나 컸다. 김상진, 박종철, 이한열 같은 아까운 청춘들이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고 말았고 고문과 오랜 감옥 생활에 정신적인 후유장애를 겪고 있다. 사진은 1971년 10월 위수령 발동으로 연세대 교정을 점령한 군인들. 손성진 논설실장
  •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범여권 총출동…추미애 눈시울 붉히기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범여권 총출동…추미애 눈시울 붉히기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범여권 인사들이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 대거 참석했다.범여권 인사들은 이날 기념식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 직접 참석해 기념사를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6·10 항쟁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데 이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6·10 항쟁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도와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부산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이날 행사에는 국본과 6·10 항쟁의 한 축을 이룬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김수현 사회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이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 임기 내내 저 문재인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임을 명심하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앞서 문 대통령이 입장할 때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입구까지 나가 영접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당사자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등 각당 지도부도 나란히 앉아 기념식을 지켜봤다. 민주당 문희상, 송영길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 여당 인사들도 두루 참석했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명동성당 농성에 참여한 ‘87 세대’ 아버지와 촛불집회에 참여한 ‘촛불 세대’ 딸이 서로에게 쓴 편지글을 낭독하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기념식 도중 눈시울이 붉어진 민주당 추 대표는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가를 닦기도 했다. 기념식 분위기는 참석자 모두가 일어나 손을 맞잡고 ‘광야에서’를 목청껏 합창할 때 최고조에 올랐다. ‘광야에서’는 현재까지도 각종 집회와 시위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민중가요다. 한국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도 이 순간 만큼은 범여권 인사들과 같이 손을 잡고 합창에 동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10 민주항쟁 30주년…문 대통령, 이한열 어머니·박종철 형과 ‘광야에서’ 제창

    6·10 민주항쟁 30주년…문 대통령, 이한열 어머니·박종철 형과 ‘광야에서’ 제창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30년 전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촛불집회의 의미를 되새겼다.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이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박종철 열사의 형인 박종부 씨와 자리에서 일어나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가요인 ‘광야에서’를 제창했다. 문 대통령이 6·10 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2007년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0년 만이었다. 검은색 정장에 감색 넥타이를 맨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한승헌 전 감사원장을 비롯해 함세웅 신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스님 등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했다. 이번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 내외의 옆자리에는 배은심 여사와 박종부 씨가 앉았다. 4부 요인이나 정당대표 대신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의 상징성을 가진 인사를 예우한다는 뜻을 따른 것이다. 청와대는 앞서 국가 행사의 의전 양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배 여사와 박 씨 외에도 대통령 주변에는 시민사회 원로 인사와 6·10 항쟁 희생자 유족들이 자리했다. 지선스님은 문 대통령에게 “그간 억눌린 많은 바람이 있으시겠으나 한꺼번에 이를 이룰 수 없는 상황도 함께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엷은 미소를 띠며 이를 들은 문 대통령은 지선스님에게 악수를 청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6·10 민주항쟁과 촛불집회로 민주주의를 이어온 시민이 역사의 주인공임을 강조했다. 30년 전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과 6월 항쟁을 이끌었던 문 대통령은 “청년부터 원로까지, 제주에서 서울까지, 영호남이 한목소리로 외쳤던 함성,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은 시대의 흐름을 독재에서 민주로 바꿔냈고 국민이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되찾았다”며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고 덧붙였다. 행사장에 상영된 기념 영상에 30년 전 6월 항쟁 당시 친구인 노 전 대통령과 자신이 함께 거리 시위에 나선 사진이 나오자 문 대통령은 잠시 감상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 대통령, 6월 항쟁 30주년에 ‘경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대통합’ 화두로

    문 대통령, 6월 항쟁 30주년에 ‘경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대통합’ 화두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6·10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경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문 대통령이 정치분야에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성숙단계에 올라섰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과 방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내용으로서의 민주주의’인 경제 민주화는 여전히 미숙하다고 본 것이다.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새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경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키워드로는 ‘통합’을 제시했다. 지역과 세대, 이념을 뛰어넘는 국민적 통합과 ‘사회적 대타협’이 전제되지 않고는 실질적 개혁과 진전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의미가 기념사에 녹아있다. ‘사회적 대타협’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 5·18 기념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사, 현충일 추념사를 관통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더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고,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과제로 천명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4·19 혁명부터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고,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경제 민주화’ 대신 ‘경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썼다. 10년 전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를 통해 “6·10 항쟁은 아직 절반의 승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은 30주년 기념사에서 “촛불은 미완의 6월 항쟁을 완성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국정농단 사태를 야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민주적 절차와 제도에 따라 탄핵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혁명’으로 미완의 6월 항쟁이 완수됐다는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는 우리 국민이 이룬 그 모든 성취를 바탕으로 출범했고, 문재인 정부는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제37주년 5·18 기념식에서도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온 민주세력과 문재인 정부가 맥을 같이 함을 강조함으로써 새 정부의 정통성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보다 강조한 대목은 6월 항쟁이 ‘제도적 민주화’를 넘어 ‘실질적 민주화’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며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6월 항쟁은 살아있는 현재이고 미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실질적 민주화의 방향을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압축 표현했다.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양대 요소인 △제도와 △실질적 내용에 있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진전을 가져오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후퇴가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헌법, 선거제도, 청와대, 검찰, 국정원, 방송 등 우리사회 시스템을 형성하는 핵심기관들과 제도에서 민주주의를 심화해나가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보다 무게를 둔 것은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내용상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고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도 유지하기 함들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자리 문제를 경제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꼽았다.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시스템을 흔드는 ‘위기적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위기가 근본 원인”이라며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경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6월 항쟁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분배의 불균형,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저출산 문제 등을 방치한 민주주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일자리 정책의 현실적 한계도 고백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렵다”며 “우리 사회가 함께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바꿔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는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여전히 ‘통합’이라는 키워드를 응축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이룬 민주화 운동의 전통과 유산이 특정 지역만의 것이 아닌 모든 국민이 계승해야 할 정신적 유산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부산의 아들 박종철과 광주의 아들 이한열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영·호남의 민주화 열사의 이름을 나란히 열거했다. 지난달 5·18 기념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전남대생 박관현, 노동자 표정두, 서울대생 조성만, 숭실대생 박래전’의 이름을 부르며 “5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이들도 함께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의 유산이 특정 지역의 전유물일 수 없고 시민들이 지역의 틀을 넘어 연대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문 대통령 자신과 친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철학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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