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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노벨물리·화학상 4명 배출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은 7일 자국 과학자 3명의 노벨물리학상에 이어 8일 또 노벨화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쾌거’로 규정했다. 또 역대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 16명 가운데 13명이 과학·의학 분야라는 사실을 강조했다.‘과학 입국’ 진입에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점도 내세웠다. 마스카와 도시히데(68) 교토산업대 교수와 고바야시 마코토(64) 고에너지 가속기연구기구 명예교수는 나고야대 이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선후배 사이다. 대학원에서는 소립자 이론의 거두로 이름난 사카다 쇼이치 교수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973년 자연계의 비대칭 기원을 함께 정리,‘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을 완성했다. 때문에 ‘영원한 콤비’로 불린다. 특히 둘 다 해외 유학의 경험이 없는 ‘일본 토종’이다. 마스카와는 어느 날 물질의 최소단위인 소립자 쿼크가 6종류라는 이론의 핵심을 욕조에서 생각해 냈다. 목욕을 하던 중 “네 개의 쿼크를 포기하려던 순간 6개의 퀴크라면…”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마스카와는 당시 “계산도 필요없었다. 확실했다.”는 자신감으로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의 골격을 세웠다.73년 영문으로 과학전문지에 발표했다. 마스카와는 스스로 “영어가 정말 서툴다.”고 말한다.7일 저녁 노벨 재단측은 마스카와에게 처음에는 영어로 수상소식을 전달하다 도중에 여성 통역이 일본어로 설명했다. 마스카와는 기자회견에서 “영어가 안 돼서”라며 농담했다. 마스카와는 어릴 때부터 문과 과목에 소질이 없었다고 했다. 또 국제학회로부터 초청을 받아도 거절했을 정도다. 마스카와 부부는 현재 여권이 없다. 부인 아키코는 “수상식 때 처음으로 외국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의 영어 논문은 고바야시가 썼다. 또 다른 수상자인 난부 요이치로(87) 미 시카고대 명예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대와 오사카대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1970년에 시민권을 취득했다. 난부는 일본의 두뇌유출 제1호로 일컬어질 만큼 과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었다. 난부는 기자회견에서 “이론을 발표한 지 40년 이상 지났다. 젊었을 땐 (기대도) 있었지만 최근 20∼30년은 잊었다.”며 기뻐했다. 또 “나는 엉뚱한 일을 생각해 내는 것을 좋아한다. 연구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다. 수수께끼의 해결은 나의 취미”라고 했다. 노벨화학상을 받는 시모무라 오사무(80) 보스턴대 의학부 명예교수는 수상 소식에 “정말 의외다. 화학상이라는 것에 놀랐다. 의학·생리학상이라면 조금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이라고 말했다. 요즘도 매사츠세츠주의 자택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또 어린이들을 위해 영어·일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시모무라도 나고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따라서 나고야대는 노벨물리학·화학상의 산실로 우뚝 서게 됐다. hkpark@seoul.co.kr
  • “야스쿠니 참배할 수도, 안할 수도…”

    |도쿄 박홍기특파원|아소 다로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의향을 놓고 “지금 간다, 안 간다고 말할 수 없다.”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아소 총리는 7일 오후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부대표의 질문에 이렇게 명확한 언급을 피했다.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한 정치적 선택의 폭을 넓혀놓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아소 총리는 2006년 8월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했을 때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숙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던 터다. 그는 외무상 재임 때인 지난해 종전기념인일 8월15일에는 야스쿠니신사를 찾지 않았다. 아소 총리의 발언은 “간다고도, 안 간다고도, 갔다고도, 안 갔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밝혔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모호한 태도와 비슷하다. 아베 전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참배 강행에 따른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를 고려, 재직 중 확실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실제로 참배도 하지 않았다. 아소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의 바람직한 형태에는 “국가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국가가 최고의 명예로 모시는 것을 금지하는 상황은 잘못됐다.”며 종교법인에서 벗어나 국가가 관여하는 특수 법인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론을 거듭 주장했다. 그는 “개인 의견을 밀어붙일 생각은 없고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 결론을 내고 싶다.”면서 “최종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와 유족회 측에서 판단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hkpark@seoul.co.kr
  • ‘우주의 비대칭’ 기원 규명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일본인들의 독무대였다. 스웨덴 노벨상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우주의 불균형 기원을 밝혀낸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카와 도시히데, 난부 요이치로 등 3명이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고 밝혔다. 미국 시카고 대학 페르미연구소의 난부 박사는 소립자 물리학에서의 자발적 대칭성 깨어짐 메커니즘을 규명한 연구로 수상 업적의 절반을 차지했고, 일본 고에너지연구소(KEK)의 고바야시와 마스카와 박사는 자연계에 3가지 쿼크가 존재함을 예견하는 대칭성 붕괴의 기원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인은 모두 15명이 됐다. 고바야시와 마스카와 교수는 한국 물리학계에서 ‘일본과 한국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수준의 차이’를 언급할 때 자주 언급되는 학자들. 이들은 일본 정부가 10년 넘게 치밀하게 준비해 온 ‘노벨상 프로젝트’의 대표주자다. 1990년대 말 일본 정부는 두 사람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하고 쓰쿠바에 수백억원을 투자해 ‘슈퍼 가미오칸데’로 명명된 최첨단 입자 검출기(Belle)를 건설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포스트시즌 진출확률의 묘미

    포스트시즌이 돌아왔다.WBC에서 우리가 일본을 두 번이나 이기고도 결승에 올라가지 못하자 잘못된 제도라고 분통을 터뜨린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장기 레이스를 펼치는 스포츠가 짧은 기간 안에 우승팀을 결정지으려면 모순된 제도를 택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답게 최강팀을 결정하는 방식은 유럽의 축구리그들처럼 20개 팀이건 30개 팀이건 한 리그에 몰아놓고 시즌 최다승을 올리는 팀을 고르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도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1968년까지 20개 팀이 양대 리그로 나뉘어 리그 우승팀만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이 10%에 불과하다. 프리미어리그는 아예 포스트시즌이 없는 셈이고 구태여 진출 확률을 계산한다면 0%다. 1969년부터 메이저리그가 포스트시즌 진출 팀 수를 넷으로 늘린 데는 이유가 있다. 사상 최다인 네 개의 신생팀이 탄생했다. 따라서 기존 제도를 손질하지 않을 경우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이 8%대로 떨어진다. 구단주들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리그를 둘로 쪼개 디비전을 만들고 디비전 우승팀이 리그 결승을 치러 월드시리즈 진출 팀을 결정하는 제도다.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도 10%에서 17%로 높아졌다. 강팀이 어느 한 디비전에 몰릴 경우 이론적으로는 리그 7위의 승률을 올린 팀이 월드시리즈에 올라가고 최종 챔피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구단주들이 내심 노렸던 긍정적 결과를 내놓았다. 첫째,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시즌 종반까지 관심을 갖게 되고 관중 증대로 이어졌다. 둘째, 리그 결승 자체가 월드시리즈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수입원이 되었다. 여기에 재미를 붙인 메이저리그는 계속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을 높여 지금은 27%다. 일본은 약간 사정이 달랐다. 실력에서는 더 강하다고 자부하던 퍼시픽리그는 인기는 센트럴리그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때문에 전·후기제를 택하기도 해보고 한국과 비슷한 시스템을 흉내내보는 등 갖은 애를 썼지만 아직까지 별 효험을 못보고 있다. 센트럴리그는 요미우리의 인기를 업고 리그 1위가 당연히 일본시리즈에 진출해야 한다는 보수적 태도를 유지하며 자존심을 세웠다. 한국이 지금과 같은 경기제도를 택하자 ‘그러면 4등이 우승할 수도 있겠네요?’라며 호기심 반, 얕잡아 보는 마음 반으로 말했다. 그러나 천하의 센트럴리그도 이치로, 마쓰이, 마쓰자카 등을 영입해간 메이저리그의 융단 폭격을 버티지 못했다. 지난해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도입한 것이다. 일본이 클라이맥스 시리즈란 어머어마한 이름으로 내세운 제도는 한국과 비슷한 플레이오프 제도다.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을 16%에서 무려 50%로 바꾸는 혁명적 변화였다. 한국도 짧은 프로 야구의 역사에 비해 여러 차례 제도 손질이 있었다. 한국시리즈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전제와 적은 팀 수 때문에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어느 제도를 택하나 높을 수밖에 없다. 한번도 30%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너무 높여도, 낮춰도 정규 시즌의 흥행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높다고 해서 저급 리그는 아니고, 낮다고 고급 리그도 아니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日총리 첫 번째 조건은 세습의원이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치에서 정치 대물림 즉, 세습의원은 상투적인 용어에 불과하다. 지난달 24일 아소 다로 총리가 취임한 이후 ‘총리의 조건은 세습의원’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에 이은 아소 총리는 모두 총리를 역임했던 부친이나 조부를 뒀다. 세차례 연거푸 대를 이어 총리 자리에 오른 탓에 ‘총리 혈통’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게다가 아소 내각은 각료 17명 가운데 12명이 세습의원들로 채워져 ‘세습 내각’이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친족을 포함,3촌 이내의 국회의원으로부터 정치적 기반을 이어받은 정치인이 그만큼 많은 데다 정치적 기반도 튼실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앞으로 치러질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내건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 역시 부친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은 2세 정치인이다. 1955년 보수연합에 따라 자민당이 출범한 이래 총리는 하토야마 이치로에서 아소까지 모두 25명이다. 하토야마는 중의원 의장을 지낸 하토야마 가즈오의 장남이다.1991년 미야자와 기이치 이전까지 36년간 세습의원 출신의 총리는 없었다. 그러나 미야자와 이후 ‘총리의 역사’는 바뀌었다. 총리 11명 가운데 82%인 9명이 부친이나 조부로부터 정치를 물려받은 세습의원들의 차지다. 단지 무라야마 도이치, 모리 요시로 등 2명만이 세습의 힘이 없던 ‘보통 총리’였다. 모리의 부친이나 조부도 기초단체장을 지냈기 때문에 넓게 보면 세습 정치인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대행은 최근 “자민당은 총리의 아들, 손자가 아니면 총리가 될 수 없나.”라고 비꼰 적도 있다. 따져보면 세습의원의 총리는 우연이 아니다. 자민당의 중의원·참의원 387명 가운데 무려 33.3%인 129명이 세습의원이다.3명 중 1명꼴이다. 민주당의 경우, 오자와 대표와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 등 22명이 세습의원이다.221명의 의원 가운데 10.0%다. 이들 중 오자와, 하토야마 등 6명은 출발 정당이 자민당이다. ●정치신인 진입 차단… 불공정 경쟁 폐해도 일본 사회에서도 세습의원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정치에서 필수적인 이른바 ‘3종 세트’, 즉 가방(자금), 간판(지명도), 지반(지역기반)을 일찌감치 손에 넣었기 때문에 바닥부터 뛰는 정치 신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폐해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불공정 경쟁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자신의 선거구를 친족에게 인계하거나 정치자금관리단체를 물려주지 못하도록,‘세습’을 막기 위한 당규를 추진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를 ‘그들만의 직업’, 일종의 ‘샐러리맨’으로 보는 인식도 적잖다. hkpark@seoul.co.kr
  • 아소 日총리, 대북 유화 제스처?

    |도쿄 박홍기특파원|대북 강경파인 아소 다로 총리가 최근 북한을 향해 이례적으로 ‘불행한 과거의 청산’을 거듭 강조했다. 때문에 아소 총리가 북한에 대해 실질적인 유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아소 총리는 지난달 26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북한과의 관계를 전진시킬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29일 국회 연설에서도 같은 내용을 밝혔다. ‘불행한 과거의 청산’은 2002년 9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서명한 ‘평양선언’의 내용이다. 두 사람은 “북·일 양국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을 해결, 실질적인 정치·경제·문화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양국의 기본 이익과 일치한다.”고 합의했다. 대북 압력정책을 폈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불행한 과거의 청산’ 자체를 거론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와 맥을 같이하는 아소 총리의 행보는 의외일 수밖에 없다. 물론 대북 대화정책을 중시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언급했다. 외무성의 한 관계자는 “총리의 발언은 북한에 적극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북·일 관계의 진전에 대한 의욕의 표시라는 해석이다. 아소 총리는 이런 분위기 속에 2일 총리 관저에서 납치피해자가족들과 만나 “납치문제는 현재 진행 중이다. 북한의 대응이 답답하고 초조하지만 시간과의 승부다.(북한의) 답변을 서둘러 듣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고위 간부는 “일본은 평양선언을 운운하지만 실질적인 실천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짧게 말했다. 한편 아소 총리는 이날 국회 질의답변에서 과거 주변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2005년 과거사 피해자들에게 사죄한 ‘고이즈미 담화’에 대해 “정부의 인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현 내각에서도 계승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당시 담화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고초를 겪었던 국가, 특히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깊이 후회한다.”고 말했다. hkpark@seoul.co.kr
  • 워드, 아시아계 미국스포츠스타 6위에

    미프로풋볼(NFL)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스타 하인스 워드(32)가 일간 이그재미너가 선정한 ‘아시안-아메리칸 스포츠스타’ 10걸에 뽑혔다. 이그재미너는 30일 인터넷판에 아시아 출신으로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성공한 10명을 추린 가운데 워드를 6번째에 올려 놓았다. 신문은 워드에 대해 “워낙 거친 선수라 아시아 출신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아버지 역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며 “빠르고 거칠지만 항상 미소가 함께하는 선수”라고 평했다. 1위로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꼽았으며 “4분의 1이 태국,4분의 1은 중국 피가 흐른다.”고 설명했고 2위에는 ‘걸어다니는 만리장성’ 야오밍(농구)을 들었다.3위부터 10위까지는 스즈키 이치로, 마쓰자카 다이스케(이상 일본·야구), 비제이 싱(피지·골프), 워드, 이젠롄(중국·농구), 이와무라 아키노리(일본·야구), 브라이언 칭(미국·축구), 청야니(타이완·골프)가 뽑혔다. 워드는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하인스필드에서 열린 볼티모어 레이븐스와의 정규리그 4주차 경기에서 두 차례 패스를 받아 57야드를 전진했다. 팀은 연장 접전 끝에 23-20으로 승리,3승1패가 됐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동아시아 문학 세계로 발돋움을”

    고은, 황석영, 히라노 게이치로, 이노우에 히사시, 모옌, 쑤퉁…. 한·중·일 3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아시아 문학이 지역의 한계를 넘어 세계로 발돋움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장을 마련했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제1회 한ㆍ일ㆍ중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29일부터 새달 5일까지 서울과 강원 춘천을 오가며 진행된다. 한국 작가단의 최원식ㆍ오정희 부위원장, 일본 작가단의 시마다 마사히코 위원장과 이노우에 히사시 특별 고문, 쓰시마 유코 부위원장, 중국 작가단의 톄닝 위원장, 모옌 부위원장은 이날 개막에 앞서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최원식 부위원장은 “3국 작가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간 갈등을 넘어서 한자리에 모인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문학이 추구하는 ‘이월’의 가치가 나라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 이룩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에 소설가 겸 시인인 시마다 마사히코 위원장은 “한·일·중 3국은 사이에 벽이 놓여 있지만 서로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같은 아파트 이웃 주민과도 같은 관계”라며 “서로 알려면 ‘훔쳐보기’보다는 서로 방문해 차 한 잔 하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이번 대회의 의의를 강조했다. 이번 문학포럼에는 서울과 춘천에서 한강 유람선 선상 낭독회와 작가 강연,3국 작가 공개 대담 등 다채로운 부대 행사가 곁들여진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아소 내각 ‘출발 삐걱’

    |도쿄 박홍기특파원|아소 다로 내각의 출발이 순조롭지 않다. 기대보다 지지율이 낮은 데다 각료들의 실언에 정치자금 시비마저 잇따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전격적인 정계은퇴 표명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내각 지지율은 언론사별로 다소 차이가 나지만 50%에 못 미친다. 요미우리신문의 조사 결과는 49.5%, 교도통신은 48.6%, 아시히신문과 도쿄신문은 48%씩, 마이니치신문은 44%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지이신문만 53%로 절반을 넘었다. 아사히신문 조사를 기준으로 내각 출범 직후의 지지율은 후쿠다 정권의 53%, 아베 정권의 63%보다 떨어졌다. 물론 20%에 머물던 후쿠다 정권 후반보다는 크게 상승했다. 문제는 ‘바람직한 정권’을 물은 결과 ‘자민당 중심’이라는 응답이 39%,‘민주당 중심’이 40%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아가 73%는 정권 교체를 찬성했고,21%만이 반대했다. 자민당이 위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때문에 총재선거의 여세를 몰아 새로운 내각의 지지율을 높인 뒤 조기에 중의원을 해산, 총선거를 실시하려던 아소 총리와 자민당의 당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내각 출범 사흘 만인 26일 문부과학상 때 교과서에 독도의 명기방침을 밝혔던 나카야마 나리아키 국토교통상이 국민에게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카야마는 전날 취임 인터뷰에서 해외 관광객 유치를 설명하다 “일본은 아주 내부지향적이다. 단일민족이다. 세계와 교류가 없어서 내부지향적”이라고 말했다. 금품을 받고 교사를 채용하다 적발된 오타현 교육위원회의 사건에는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이 원인이다. 일교조의 아이들은 성적이 나빠도 교사가 된다. 그래서 학력이 떨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리타공항의 확장공사에 따른 주민 반발에도 “억지를 부리면 이익을 본다는 것 아니냐.2차대전 후 교육이 잘못된 탓”이라고 엉뚱한 논리를 들이댔다. 결국 파문이 커지자 발언을 취소했다가 “국민께 폐를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도 “일본은 단일민족국가”라고 발언했다가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의 반발을 샀다. 정치자금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과 사토 쓰토무 국가공안위원장에 이어 오부치 유코 소자녀담당상, 나카가와 쇼이치 재무상도 지명정지처분을 받은 기업 등으로부터 100만∼700만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이 불거져 해명에 나섰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은퇴에 따른 총선의 득실 계산이 한창인 가운데 야마사키 다쿠 전 부총재는 “플러스는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큰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hkpark@seoul.co.kr
  • 日 고이즈미 前총리 정계 은퇴

    |도쿄 박홍기특파원|퇴임 이후에도 높은 인기를 누렸던 고이즈미 준이치로(66) 전 총리가 정계를 은퇴한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5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열린 당지부 임원회에 참석, 이르면 11월 초순에 치러질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뜻을 밝혔다. 그는 지난 1972년 가나가와현에서 출마, 중의원으로 처음 입문한 뒤 지금껏 12차례 당선됐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임원회에서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은 끝났다. 정치가는 끝을 스스로 결정한다. 총리도 했다. 충분하다.”고 말했다. 아소 다로 총리의 취임 하루 만에 나온 고이즈미 전 총리의 은퇴 방침은 중의원선거와 함께 선거 이후 정계 개편에도 적잖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는 지난 2001년 4월부터 2006년 9월까지 5년 5개월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성역 없는 개혁’이라는 모토 아래 우정 민영화·도로공단 민영화 등의 과감한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역대 총리 가운데 세번째로 긴 집권이다.hkpark@seoul.co.kr
  • 아소 내각 어떻게 꾸려졌나

    아소 내각 어떻게 꾸려졌나

    |도쿄 박홍기특파원|아소 다로 자민당 총재가 24일 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실시된 총리지명선거에서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아소 총리는 이날 저녁 제92대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역대 59명째 총리다. 아소 총리는 중의원 선거에서 전체 478표 가운데 반수가 훨씬 넘는 337표를 얻었다. 참의원에서는 다수당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총리로 선출됐다. 그러나 양원의 결정이 다를 경우, 거치도록 규정된 양원협의회에서 중의원 우선 원칙에 따라 아소 총재가 총리로 확정됐다. 아소 총리는 이날 저녁 6시30분쯤 취임 회견에서 각료의 명단을 직접 밝혔다. 관방장관이 발표하던 관례를 과감하게 깼다. 또 각료들의 발탁 배경도 세세하게 설명했다. 이른바 ‘대통령형 총리’, 즉 강한 리더십을 과시하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된 이례적인 행보다. 뚜렷한 컬러를 보이지 못했던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와의 차별화로 국민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 주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 ‘아소 내각’의 성격은 중의원 선거에 확실하게 맞춰졌다. 한마디로 선거관리내각 체제다. 때문에 내각과 당의 결속을 위한 파벌의 균형,‘아소 컬러’를 뒷받침할 측근, 지방 표밭을 의식한 지명도 및 각료의 참신성 등 갖가지 요소가 골고루 고려됐다. 아소 총리는 총재선거 과정에서 적극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 파벌을 중용했다.20명의 군소 파벌인 아소파의 수장인 점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조치이다.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에서 호소다 히로유키 간사장 대리를 간사장에 기용했다. 고가파의 고가 마코토 선거대책위원장의 유임도 마찬가지다. 포용력도 보여 주었다. 총재선거에서 2위를 한 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상을 총리 대리 1순위인 부총리로 파격적으로 대우했다. 역시 후보였던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은 농림수산상으로 기용하는 여유를 보였다.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 등 비지지파의 껴안기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또 후쿠다 내각의 각료 가운데 5명을 재임시켰다. ‘아소 컬러’를 위해 측근들을 서슴지 않고 기용했다.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 나카가와 쇼이치 재정상, 아마리 아키라 행정개혁상은 손이 잘맞는 측근 중의 측근들이다. 때문에 편향된 인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아소 내각은 세습의원들이 대거 포진한 탓에 ‘초명품 내각’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다. 아소 총리는 외조부가 요시다 시게로 전 총리로 전형적인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오부치 유코(34·3선) 소자녀담당상은 2000년 재임 중 타계한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차녀로 역대 각료 중 최연소 입각의 기록을 세웠다. 나카소네 히로부미 외무상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장남이다. 하토야마 구니오 총무상은 조부가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이다. 나카가와 재정상의 부친은 과학기술청장관, 아마리 행정상·모리 에이스케 법무상·하마다 야스가즈 방위상의 부친은 중의원을 지냈다. 세습의원들의 대거 입각은 지역에서 집안 대대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습의원들이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 바람을 일으키는 거점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정략적 구상에서 나온 것 같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또 중의원선거가 시기적으로 촉박한 만큼 대중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의 기용이라는 긍적적인 해석도 있다. 반면 경기침체 아래 불안한 국민생활이 최대 쟁점이 된 상황에서 ‘귀공자’인 세습의원들이 제대로 국민들을 파고들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hkpark@seoul.co.kr
  • 아소 vs 오자와 막오른 ‘중의원 선거결투’… 양측 정책 비교해보니

    아소 vs 오자와 막오른 ‘중의원 선거결투’… 양측 정책 비교해보니

    |도쿄 박홍기특파원|아소 다로 자민당 총재와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총재의 ‘중의원 결투’는 이미 시작됐다. 다음달 26일이나 11월 초순으로 예상되는 중의원 선거를 겨냥한 맞대결이다. 중의원 선거의 결과는 일본의 정치 지형을 바꿀 만큼 파괴력이 엄청나다. 자민당에는 지배체제 유지, 민주당에는 정권교체의 실현이다. 지금까지 내세운 아소와 오자와의 정책은 뚜렷이 구별된다. 경제 및 재정, 사회보장, 외교·안보 등의 접근법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최대 쟁점인 경제 정책에서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과 지방에 초점을 맞춘 점이 비슷하다. 아소의 모토는 ‘일본경제 전치(全治) 3년’이다. 경기후퇴의 국면에 접어든 일본 경제를 ‘전치 3년’으로 진단했다. 역으로 3년 안에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의미다. 아소는 줄곧 “경기의 불안 해소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를 위해 경기대책·재정재건·경제구조개혁의 3단계 대책을 마련했다. 아소는 경기 부흥을 위해 설비투자·증권투자 등을 우대하는 정책적 감세 제도를 내세웠다. 특히 국민 생활에 민감한 소비세와 관련, 장기적으로 10%대의 인상이 필요하지만 3년 동안은 현행 5%로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오자와는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때처럼 ‘국민생활이 제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자민당의 실패한 정책으로 피폐한 지방 경제, 심각한 격차 문제 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고이즈미 정권의 구조개혁에 대해 시장만능, 약육강식의 개혁이라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고이즈미 개혁의 장·단점을 검증, 치유하겠다고 신중론을 편 아소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소비세의 경우, 올리지 않을 뿐더러 나아가 조세제특별조치와 소득세의 각종 공제를 폐지하겠다고 치고 나갔다. 오자와는 사회복지와 관련, 매월 어린이 수당 2만 6000엔 지급과 함께 휘발유세의 잠정세율 폐지 등을 들고 나왔다. 외교·안보 분야의 입장차는 확연하다. 아소는 미·일 동맹의 중시와 해상자위대의 지속적인 인도양 급유 활동을 강조한 반면 오자와는 대등한 미·일 관계의 구축과 함께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활동을 반대하고 있다. 또 오자와는 국제연합(UN)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헌을, 아소는 국제연합 지상주의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hkpark@seoul.co.kr
  • [한·중 지도자 포럼] “韓·中 경제·안보 협력 제도화 머리 맞댈때”

    [한·중 지도자 포럼] “韓·中 경제·안보 협력 제도화 머리 맞댈때”

    한·중 정상이 지난 5월 베이징에서 합의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는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나. 한·중 수교 16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 경제관계를 넘어 정치·안보 분야까지 발돋움하려는 양국 관계의 현안 및 동북아 정세를 쉬둔신(徐敦信) 전 주일중국대사와 김한규(전 총무처장관)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을 통해 짚어봤다.‘한·중 지도자포럼’ 참석을 위해 22일 서울에 온 쉬 전 대사는 23일 서울 프라자호텔 귀빈실에서 김 회장과 대담을 가졌다. 1 한·중관계 김한규 회장 지난 16년 동안 두 나라는 교류확대를 통해 동반상승의 기회를 누렸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내실화를 통해 이익의 공통기반을 넓혀나가야 할 때다. 쉬둔신 전 대사 한국이나 중국 모두 이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다. 전략적 관계는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양자를 넘어서 동북아 및 국제무대에서 전략적 의의를 지닌 대화상대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또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신뢰도 목표로 한다. 기회를 나누며, 도전과 어려움을 함께 대처하는 동반자다. 두 나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됐다. 전략적 관계의 많은 발전 여지가 남아 있다. 김 회장 두 나라는 한반도와 양자 관계를 넘어 지역 및 국제무대에서 현안의 해결책을 함께 찾고 같이 대처하는 사이가 돼야 한다는 데 양측이 의견을 접근하고 있다. 식량난, 석유 고갈 및 에너지 수급, 기후변화, 테러리즘 등에 대한 공동 대처를 위한 각종 협력들이 진행 중이다.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한 각종 노력도 그 중 하나다. 쉬 전 대사 동북아 안정을 위한 전략적 대화의 제도화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핵 6자회담 등이 제도화의 초보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는 데 중국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경제교류 및 안보불안 해소를 위한 ‘협력의 제도화’를 위해 한·중이 머리를 맞댈 때다. 세계화와 함께 지역공동체 진전이란 전 지구적 추세에 동북아가 뒤처져선 안 된다. 2 북핵 문제 김 회장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영변 핵시설 감시카메라와 봉인 제거를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테러지원국을 해제해 주지 않았다며 북한이 미국과 다시 힘겨루기를 벌여 핵 문제는 다시 수렁에 빠진 상황이다. 북핵 문제가 위기상황으로 치닫지 않게 관리하는 데 중국 역할이 컸지만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소극적이란 지적도 있다. 쉬 전 대사 중국이 북한 핵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해 대북 식량 및 석유공급을 중단했더라도 북한이 굴복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 국민들이 겪었을 인도적 재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평화적 방법과 한반도 비핵화란 두 원칙으로 이 문제를 다룬다는 중국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북·미는 북핵문제의 핵심 당사자다. 손해보지 않으려고 밀고 당기는 두 당사자 사이에 믿음은 적고 서로 더 많은 것을 확보하려는 실랑이는 거세다. 그래도 두 당사자 모두 북핵 해결과 관계 정상화로 가는 과정의 중단을 원치 않는다. 위기도 있겠지만 파국은 없을 것이다. 김 회장 보수 우파 정치인 아소 다로 전 일본 외무상이 22일 자민당 총재로 선출, 사실상 차기 총리로 내정됐다. 고개를 드는 민족주의 속에 보수화·우경화가 동북아 정세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쉬 전 대사 아소 다로가 외무상이 됐을 때 같은 우려가 있었지만 그는 냉각된 중·일관계를 녹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미국 추종, 미국 일변도의 정책을 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아시아와 주변국들을 깔보는 듯한 행동도 있었다. 그러다 고이즈미 집권 후기에는 일본 정계와 여론이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변화가 생겼다.‘미국 일변도 정책’과 균형 외교 가운데 어떤 선택이 일본에 도움을 주는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큰 걱정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중·일간 무역액은 미·일의 그것을 앞질렀다. 김 회장 동북아지역 협력은 막을 수 없는 대세다. 한국의 제의로 중국, 일본과의 3국 정상회담이 추진돼 왔다. 지난 9월초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사임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첫 동북아 삼국 정상회담은 실현됐을 것이다. 3 중·일 관계 쉬 전 대사 한·중·일 삼국 정상회담에는 중국도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미국을 동북아에서 배척하겠다는 배경이 깔려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중요한 정치·경제적인 역할을 존중한다. 중·일 두 나라는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열도) 등 영토·역사 문제를 안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십년이 된 지병 같은 난제들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이 두 나라 관계발전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우리에겐 평화와 발전이 필요하다. 물론 일본은 역사문제를 더 솔직하고 겸허하게 대해야 한다. 역사문제는 집단적 기억과 민족 감정을 자극한다.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해선 안 된다. 지난 5월 후진타오 주석의 방일 때 두 나라는 전략적 호혜관계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의 성의와 노력, 그 성과에 대해 중국은 높게 평가한다. 4 중·미 관계 김 회장 지난 1∼2년새 미국의 중국 대하기가 크게 달라졌다. 중·미간 고위급 전략대화가 시작됐고 대등한 대화 상대이자 국제사회에서 의무와 책임을 같이하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정부는 미·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해 왔다. 민주당 선거 캠프 관계자들도 버락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면 미·중·일 3국 정상회담을 실현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엔 강대국들만의 지역문제 협의가 편치만은 않다. 쉬 전 대사 한·미는 동맹관계고 한·중 관계 역시 좋다. 한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을 것이다. 세 강대국이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협의의 장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 중·미 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평온하다. 그렇다고 인권, 종교, 티베트 문제 등과 관련한 미국의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고 함정과 굴절도 있다. 중국의 현실과 조건을 고려치 않은 채 지나치게 요구하는 측면도 있다. 이석우 국제전문기자 jun88@seoul.co.kr ■용어클릭 ●한·중 지도자포럼 중국 외교부 산하 중국인민외교학회와 21세기 한·중 교류협회가 차관급 이상의 지도급 인사들을 모아 두 나라 현안 및 관계발전을 위해 협의·토론하는 자리다. 지난 2000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아셈(ASEM·아시아유럽회의) 정상회의에 참석한 주룽지(朱鎔基) 당시 중국 총리 방문을 계기로 2001년 발족, 양국을 오가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과 후진타오 주석의 방한 이후 관계발전 방안’을 주제로 23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토론을 벌였다.
  • 신념보다 국익… 한일관계 개선 기대

    |도쿄 박홍기특파원|22일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아소 다로 차기 총리는 전형적인 ‘보수·우파’ 성향의 정치인이다.‘매파’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새로운 일본’을 주창했던 아베 신조 정권 때 외무상과 자민당 간사장을 맡아 아베 총리를 뒷받침했다. 외무상 때 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이른바 ‘가치관 외교’에 치중, 중국과 서먹한 관계를 만든 적도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도 외무상을 맡았던 ‘외교통’이다. 아소 차기 총리의 등장으로 일본 외교는 ‘아시아 중시외교’를 표방했던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노선에서 다소 벗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고이즈미·아베 정권의 ‘강경 우익’ 노선과 맥을 같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는 차이가 없다. 아소 차기 총리는 일본 보수정치의 뿌리인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외손자다.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은 까닭인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는 요시다 전 총리를 꼽고 있다.‘대단한 국가 일본’이라는 저서에서 요시다 전 총리가 자신에게 “일본인의 에너지는 대단하다. 일본은 반드시 잘된다.”라고 말한 점을 밝힐 정도로 ‘일본 우월주의’가 남다르다. ‘너무나 일본적인’ 아소 차기 총리인 탓에 그동안 한·일 역사와 관련, 적잖은 문제를 일으켰다.“창씨 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이뤄졌다.”거나 “일본은 한글 보급에 공헌했다.”는 등의 ‘식민지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아소 차기 총리를 두고 현실정치 및 외교에서는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도 없지 않다. 단적인 예이지만 고이즈미 정권인 2006년 8월 외무상 시절 “신념과 국익이 부딪치면 국익이 먼저”라며 참배하지 않았다. 당시 “총리가 되면 재임 중에는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외무상 재직 전에는 두 차례나 참배했던 터다.‘신중론’이 부각되는 대목이다. 한국 징용자들의 유골 반환이나 사할린 영주귀국 확대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소 차기 총리는 중국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 중국에 부정적으로 비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지난 12일 선거과정에서 “지난해 외무상 시절 엉망진창인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길을 텄다.”면서 “일·중 우호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다. 목적은 일·중 공동 이익이다.”라며 중국과의 우의를 강조했다. 또 전략적 호혜관계의 발전도 내세웠다. 반면 북한에 대한 강경론은 여전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관련,“‘이상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비틀거리고 있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북핵이나 납치문제에 대화와 압력의 병행론을 주장하고 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아소 차기 총리는 외교정책에 큰 변화를 꾀할 수 없는 처지다. 총선거의 결과를 봐야 한다. 괜히 실수라도 할 경우, 총선거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hkpark@seoul.co.kr
  • 아소, 축배는 아직 이르다

    아소, 축배는 아직 이르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아소 다로 차기 총리의 앞 길은 그다지 평탄치 않아 보인다. 자민당의 총재가 됐지만 차기 총리로서 취임의 축배를 들기에는 다소 이른 상황이다. 총재 선거라는 예선전을 거쳤을 뿐이다. 본선인 정권을 건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24일 발표될 조각도 선거관리 내각으로 불릴 정도다. 아소 차기 총리의 고민은 내각과 자민당의 지지율에 있다. 아베 신조 정권의 출범 초 지지율은 70%, 후쿠다 정권은 58%였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전격 사임 역시 중의원 선거를 겨냥했다.20%대에 머물고 있는 현재의 지지율을 새 내각의 출범에 힘입어 끌어올리는 게 목적이다. 아소 차기 총리는 내각의 지지율이 예상대로 높게 나올 경우, 각본대로 조기에 중의원 해산을 결단할 가능성이 높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지난 18일 새 총리의 지지율을 고려, 선거일을 다음달 26일로 합의했다. 중의원 해산도 다음달 3일로 잡았다. 물론 아소 차기 총리가 임시국회에서 추경 예산의 처리를 감안, 늦추더라도 11월 중에는 선거를 실시할 전망이다. 연립여당의 일정대로라면 아소 차기 총리의 임기는 중의원선거의 결과에 달렸다. 법적으로는 후쿠다 총리의 잔여 임기인 내년 9월까지다.24일 총리에 취임한 뒤 29일 임시국회에서의 총리 연설이 예정돼 있다. 다음달 1∼3일 당대표들의 질의가 끝난 뒤 중의원을 해산하는 게 그의 시나리오다. 중의원의 총의석은 480석이다.300석은 전국의 300개 선거구에서 선출되며,180석은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눈 비례대표 선거구에서 당선자가 확정된다. 현재 자민당 의석은 304석이다. 공명당 31석까지 합치면 335석에 달한다.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중의원에서 재가결 통과시킬 수 있는 3분의2를 넘고 있다.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편 ‘원맨쇼’의 성과다. 자민당이 선거에서 현재의 의석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선거의 승리 기준은 의석의 과반수,241석에 맞춰진다. 과반수를 확보한 당은 중의원을 장악, 자당 후보를 총리로 선출해 단독으로 정권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은 193∼207석, 민주당은 209∼236석으로 나타났다. 독자적인 과반수 확보는 어렵다는 얘기다. 원내 제1당은 군소 정당과의 연립을 통해 인위적으로 과반수 의석을 조성, 정권을 잡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정계개편이다. 자민당이 선거에서 상당수의 의석을 잃고 원내 1당을 유지할 경우, 책임론의 대두는 불가피해 보인다. 책임소재는 아소 차기 총리에게 돌아가게 된다.‘옹립한’ 취지가 퇴색되는 탓이다. 아소 차기 총리의 ‘단명설’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상실 의석에 따라 책임 수위는 달라진다. 중의원 선거는 일본 정치의 ‘폭풍’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hkpark@seoul.co.kr
  • 日 아소총리 체제로

    |도쿄 박홍기특파원|아소 다로(68) 자민당 간사장이 4차례에 걸친 당권도전 끝에 22일 자민당 총재에 당선됐다.24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의례적인 총리지명선거를 거쳐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후임으로 새 내각을 발족시킬 예정이다. 아소 총재는 이날 투표권을 가진 소속 의원 386명과 지방대표 141명 등 527명이 참여한 총재선거에서 67%인 351표를 확보, 거뜬히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지었다. 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상은 66표,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은 46표, 이시하라 노부테루 전 정조회장는 37표,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는 25표를 얻는 데 그쳤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에 맞서 중의원 선거, 즉 총선거를 치를 ‘당의 얼굴´을 뽑는 선거였던 만큼 위기감 속에 대중적 인기가 높은 아소 총재에게 ‘표 쏠림´ 현상이 일어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소 총재는 이날 당선이 확정된 뒤 인사말에서 중의원 선거와 관련,“부여된 천명이다. 선거에 이김으로써 천명을 완수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또 “노후와 경기의 불안, 정치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hkpark@seoul.co.kr
  • 오자와 이치로 日 민주당 대표 취임…중의원 선거서 아소와 ‘한판’

    |도쿄 박홍기특파원|정권교체의 기치를 내건 일본의 오자와 이치로(66) 민주당 대표가 21일 임시 당대회에서 대표로 공식 취임했다.2006년 4월 처음 대표에 오른 이래 내리 세번째다. 경선에서 다른 출마자가 없어 무투표로 취임했다. 이에 따라 오자와 총재는 22일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아소 다로(68) 간사장과의 정권을 건 한판 승부만 남겨 놓고 있다. 정치 변혁을 가져올 중의원 선거는 새로 취임할 총리의 권한이지만 다음달 26일쯤 치러질 공산이 크다. 오자와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중의원 선거와 관련,“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에게 있어 최후의 일전이 될 것이다. 이제야말로 일본을 바꿔야 할 때다. 나의 정치생명을 걸겠다.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며 정권교체의 결의를 다졌다. 또 “일본의 경제나 사회를 바꿔 국민생활을 안정시키려면 정치·행정 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당의 조직도 선거체제로 전환했다. 오자와 대표는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자민당에 압승, 원내 제1당으로 부상한 이후 줄곧 자민당을 압박,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 실시를 요구해 왔다. 그는 사실상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사임도 이끌어 냈다. 오자와 대표 임기는 2010년 9월까지 2년간이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 생명이 좌우되는 만큼 큰 의미가 없다. 선거에서 이기면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총리에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오자와 대표는 특히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해 지역구인 이와테 현를 떠나 도쿄 등 수도권 출마도 고려하고 있다. 한편 아소 간사장은 지난 20일 구마모토시에서 가진 총재선거 유세에서 “자민당 총재로서 총선에서 민주당을 깨는 데 선두에 서서 싸울 각오”라며 사실상 총재선거 ‘승리선언’을 했다. 새 내각과 당의 쇄신을 위한 인선 작업에 나선 아소 간사장은 21일 TV에 출연, 중의원 선거일과 관련,“추경예산을 포함한 긴급 경제대책을 꼭 통과시키고 싶다.”며 11월 선거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hkpark@seoul.co.kr
  • [특파원 칼럼] 일본 정치 위기와 자민당의 정치쇼

    [특파원 칼럼] 일본 정치 위기와 자민당의 정치쇼

    일본 정치에 격변, 변혁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다. 그만큼 정국이 혼란스럽다. 정확히 말하면 자민당의 위기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1955년 거대 보수정당으로 탄생한 자민당, 이른바 ‘55년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지난 1일 전격 사의의 뜻을 밝혔다. 취임 11개월 만이다. 지난해 9월 당시 아베 신조 총리도 같은 과정을 거친 터다. 후쿠다 총리는 사임 발표 때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정치적인 결정”이라고도 했다.55년 체제를 위한 퇴진이라는 얘기다. 정당의 특성이 정권 획득인 만큼 정권 수호를 위해 “무책임하다.”는 비난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태도나 다름없다. 정치공백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후쿠다 총리의 사의는 자민당의 승부수다. 따져 보면 언젠가 던져야 할 카드였다. 다소 앞당겨졌을 뿐이다. 자민당은 지난해 9월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참패했다. 후쿠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민주당의 공세에 몰려 줄곧 헤맸다.‘후쿠다 컬러’ 한번 제대로 표방하지 못했다. 때문에 후쿠다 총리 자신의 손으로 중의원을 해산한 뒤 중의원 선거를 실시,‘승리’로 이끌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자민당은 화려한 ‘정치쇼’를 펼치고 있다. 목표는 정권의 향방을 가늠할 중의원 선거다.22일 총재 선거는 예선전에 불과하다. 중의원 선거를 위한 자민당의 얼굴을 뽑는 절차인 셈이다. 총재 선거로 분위기를 띄워 새 내각과 자민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뒤 중의원 선거에 대비하려는 전략에서다. 흥행몰이에 일단 성공한 것 같다. 짜임새있는 각본과 함께 화려한 출연진의 덕이다. 후쿠다 총리도 많은 후보들이 나선 정책 대결을 주문했다.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와의 차별화이자 민생 및 경제정책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대중적 인기를 가진 아소 다로 간사장과 함께 여성 총리를 꿈꾸는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 경제통의 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상, 행정통의 이시하라 노부테루 전 정조회장, 방위·안보통인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 등 5명이 후보로 나섰다. 자민당의 ‘탤런트 의원’들의 총출연이다. 지난해 5곳에 그쳤던 전국 유세도 17곳으로 크게 늘렸다. 예상대로 매스컴과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총재 선거에 들어간 이래 자민당이 TV에 비친 시간은 민주당에 비해 10배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재 선거의 막바지인 19일 아소 간사장의 ‘대세론’은 사실상 굳어졌다. 각본대로다. 후쿠다 총리와 아소 간사장간의 ‘선양(禪讓)설’도 맞아떨어진 듯하다. 문제는 자민당의 ‘정치쇼’ 효과가 중의원 선거까지 이어질지 여부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오염쌀의 전매, 후생연금 문제 등도 자민당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자민당의 의석은 총 480석 가운데 305석이다. 연립여당인 공명당 31석까지 합치면 무려 336석에 이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카리스마’에 힘입은 2005년 선거 결과다. 현상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에 따라 과반수의 확보가 선거의 초점이다. 과반수를 획득하는 쪽이 정권을 잡을 수 있다. 민주당이 과반수를 넘으면 일본의 정치사는 다시 쓰여진다. 참의원까지 장악한 명실상부한 정권 교체인 까닭에서다.1994년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때와 차원이 다르다. 패한다면 다양한 계파들로 구성된 민주당은 존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다. 중의원 해산은 다음달 3일, 선거는 26일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해산권은 총리의 고유권한이다. 그러나 선거권은 국민의 몫이다. 표심에 따라 일본 정치는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MLB] 이치로, 107년만에 8년 연속 200안타

    미국프로야구에서 뛰는 일본인 타격기계 스즈키 이치로(35·시애틀)가 마침내 8년 연속 200안타를 작성했다. 이치로는 18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카우프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1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장,3타수 3안타를 몰아쳐 시즌 200안타를 정확하게 찍었다. 2001년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치로는 매년 평균 224안타를 작성, 윌리 킬러가 1894년부터 1901년까지 8년 동안 달성한 이 부문 최다 기록과 107년만에 타이를 이뤘다. 이치로는 시즌 타율도 .313으로 끌어올렸다. 빠른 발과 부채살 타법으로 안타를 만들어 내는 이치로는 2001년 데뷔 첫해 242안타를 날려 화려하게 미국 무대에 데뷔했고,2004년에는 262개나 터뜨려 조지 시슬러의 빅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257개) 기록을 84년만에 갈아치웠다. 이치로는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오릭스 버펄로스) 때까지 합하면 17년 동안 개인 통산 3070안타에 이른다. 2001년 신인상과 최우수선수상을 함께 거머쥔 이치로는 2001년과 2004년에는 아메리칸리그 타격 1위를 차지했고,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을 7년 연속 수상했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단독]유네스코대표부 재설치 무산 위기

    1997년 외환위기에 따라 폐쇄됐던 재외공관인 유네스코대표부 재설치 추진이 부처간 엇박자로 무산 위기에 처했다. 17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외교통상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99년 폐쇄한 22개 재외공관 중 외교적 수요가 큰 유네스코대표부와 중국 우한 총영사관 등 2개 공관을 선별, 최근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에 이들 공관의 재설치를 신청했으나 예산 지원이 어렵다며 허가를 받지 못했다. 한 소식통은 “유네스코대표부 등 2개 공관에 대해 행안부는 재설치를 승인했으나 재정부에서 예산 등을 이유로 불허했다.”며 “특히 유네스코대표부 재설치는 총리실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 추진한 사안인데 재정부에서 반대해 설치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대표부 재설치 문제는 지난 7월 방한한 고이치로 마쓰우라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한승수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유네스코 이사국인 한국이 유네스코대표부를 운영하지 않고 있으니 재설치를 고려해 달라.”고 건의했으며, 이에 대해 한 총리는 “공관 확충 계획에 포함시켜 추진하겠다.”며 긍정적 답변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외교부가 행안부와 협의, 유네스코대표부를 올해 신설할 2개 공관에 포함시켰으나 재정부가 예산 지원에 난색을 표하며 사실상 무산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우리나라가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집행이사국에 당선된데 이어 지난 6월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 위원국으로 선출된 만큼 새 정부의 외교 목표인 문화외교 강화 차원에서라도 대표부 재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한국 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모두 80여개국이 대표부를 운영 중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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