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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날 험난한 새 내각(호소카와 새 일본:2)

    ◎“한지붕밑 8당”… 정책조율 힘들듯/“중대사태 발생땐 혼란 초래” 지적/정치지도력·정권유지는 미지수 ○자민시대 막내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일본정치사의 한 페이지가 새로 넘겨지고 있다.일본정치의 자민당 단독지배 시대가 38년만에 막을 내리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고 있다. 일본정치는 이제 신세대 지도자인 「호소카와 총리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호소카와 일본신당대표는 제79대 총리에 취임한다.50번째 총리이자 비자민계로는 38년만에 처음이 된다.국회선출절차가 남아 있어 정식취임은 6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호소카와의 등장은 한마디로 일본정치의 대전환을 상징하는 것이다.호소카와는 일본신당을 창당한지 불과 1년2개월만에 총리에 오르게 된다.일본정치구조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올해 55세인 호소카와가 일본의 최고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은 원로 지도자들에 의한 일본 전후정치의 종언을 의미한다.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도 50대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를 새 총재로 선출함으로써 일본정치는 이제 명실공히 뉴 리더에 의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같은 세대교체로 일본정치의 역학구조도 크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은 동시에 혼란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그래서 전환기에 등장하게 되는 호소카와정권은 많은 불안요소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호소카와정부는 의회민주주의 역사상 거의 예가 없는 8개당파가 한 지붕밑에 모인 연립정권이다.각당의 이념과 정책,체질도 다르다.이들은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각당의 정책과 이념의 차이는 미해결의 장으로 남겨둔채 연립정권을 탄생시키고 있다.때문에 걸프전과 같은 중대사태가 발생할 경우 혼란이 일어나 적절히 대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립정권의 유일한 접착제는 정치개혁이다.이에따라 호소카와정권은 정치개혁을 위한 잠정정권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정치개혁을 끝낸후 연내나 내년 봄쯤 국회해산·총선이 다시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예산 2번쯤 편성 그러나 잠정정권론에 대한반대론도 만만치 않다.바로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 대표간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오자와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연립정권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그는 지난 1일 『호소카와내각으로 예산을 2번쯤 편성하고 싶다』는 의미있는 말을 했다.적어도 내년말까지는 호소카와내각을 존속시키겠다는 시사인 것이다.호소카와정부는 잠정정권이 아닌 본격정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본격정권 시나리오의 표면적 이유는 국민들의 동요를 막겠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자민당의 정권탈환 가능성을 줄이고 정권의 책임을 보다 오랫동안 공유함으로써 현실적인 정책으로의 전환을 통해 각당의 정책차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오자와의 「2대정당론」정계재편을 위한 환경정리라 할 수 있다. 호소카와정부가 잠정정권으로 끝날지,아니면 본격정권으로 안정을 유지할지는 호소카와의 정치지도력과 함께 미지수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강력한 미래의 일본을 구상하고 있는 뉴 리더들이 일본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호소카와총리는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라고 말했다.그의 말대로 일본정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역사적 대전환(호소카와 새 일본:1)

    ◎신국가주의 지향… 「정치대국」 부푼꿈/연정 국제적 역할증대 적극모색/도이 참여로 평화헌법고수 “불능” 세계사의 대변혁에 발맞추어 일본이 「역사적 대전환」을 하고 있다.패전 50년의 오랜 침묵을 깨고 신세대 지도자에 이끌려 새로운 일본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그 침묵을 깨는 소리는 신국가주의를 지향하는 일본민족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종소리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에서 비교적 소극적 역할을 담당해온 일본의 전후민주주의는 자민당지배의 종언과 함께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지난 1955년 11월15일에 탄생한 자민당 장기집권 신화는 1993년 8월5일 하나의 전설이 되어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고 일본정치에는 연립시대라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자민당정치는 전후 고도 경제성장정책을 지원하며 일본을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렸다.그러나 자민당은 냉전종식이라는 국제환경의 변화와 구조적 부패에 대한 자기개혁 실패로 정권에서 밀려나고 있다.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이 동구대혁명과 냉전종결이라는 역사적 임무를 마치고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지 못한채 무대뒤로 퇴장했듯이 자민당도 경제건설이라는 역사적 임무만을 끝내고 새로운 일본건설은 다음 지도자에게 넘기고 있다.새로운 일본의 건설을 담당할 신세대 지도자들은 누구인가.그 첫주자로 나선게 바로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신당대표다.호소카와는 5일 특별국회에서 총리선출의 통과의례를 거쳐 일본의 최고 지도자로 등장한다.그는 지난해 5월 일본신당을 창당하며 『역사적 직감에 의해 당을 만든다』고 말하고 그 배경은 힘있는 일본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소카와 배후에는 또한명의 신세대 지도자가 있다.새로운 일본을 만들고 있는 실질적인 지도자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대표간사다.그의 막후 활동으로 호소카와총리의 연립정부가 만들어졌다.오자와의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하다.「21세기 일본의 국가상은 정치대국」이라는 것이다. 오자와는 자민당의 경직된 체제로는 급변하는 국제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며 정치개혁을 강조해왔다.새로 출범하는 연립정부의 최대의 과제는 정치개혁이다. 일본정치의 구조적 대전환은 국내적으로 볼때는 부패한 자민당1당지배의 종언과 연립정부의 등장을 의미한다.그러나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냉전후 새로운 질서창출에 대응하기 위한 일본전체 변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변화는 국제적 역할의 강화를 지향하고 있다.일본의 적극적인 국제공헌은 지금까지 헌법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그러나 사회당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한데 이어 호헌파의 상징적 존재인 도이 다카코 전사회당위원장이 연립정부의 중의원의장에 취임하게 됨에따라 「평화헌법」을 지킬 안전핀이 사라지게 됐다. 일본의 이같은 국내변화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제정세의 변화라 할 수 있다.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보다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강요」받고 있다.미국은 세계전략차원에서 일본에 경제적 부담 뿐만아니라 정치적 책임도 맡기려 하고 있다.세계사의 흐름이 일본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이같은 시대흐름을 배경으로 전후 반세기동안 고개를 움츠렸던 일본이 새로운 모습으로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강력한「정치대국」을 지향하며.
  • 당 개혁의 상징인물/자민의 재집권 카드 고노 신임총재

    ◎“금권정치 타파” 외쳐온 반골 30일 자민당 총재겸 총리후보로 선출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당내 「트러블 메이커」로 통해온 인물. 원로들의 지배를 받는 자민당이 반골이자 56세의 「풋내기」인 그를 총재로 선출한 것은 그가 호소카와 내각 이후에라도 자민당의 재집권을 담보할 수 있는 「개혁의 상징인」이기 때문이다. 고노총재에게 찍힌 트러블 메이커라는 낙인은 그가 자민당의 존재기반이 돼왔던 장로정치및 금권정치의 타파를 통한 개혁을 일관되게 주장해온데서 유래된 것. 그는 지난 76년 록히드 스캔들이 자민당을 할퀴고 있을 당시 당지도부의 부패상에 불만을 품고 탈당,10년간 「외도」한 전력을 갖고 있다.따라서 그는 원로들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이지만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당내 소장및 중간 연령층의 의원들로부터는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29일 열린 자민당 총재후보 정견발표회에서 그는 『젊은 지도자의 등장은 세계적 추세다.능력부족은 열정으로 보충하겠다』는 말로 강렬한 개혁의지를 과시,당내 개혁그룹을 열광시켰다.그가 주장해온 개혁방향은 보수정당 체질개선,새로운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보수의 소생으로 요약되고 있다. 선친인 고노 이치로 전자민당 간사장 역시 60년대에 총리직을 놓고 사토 전총리와 경합을 벌인 바 있었으며 알아주는 당내의 반골이었다. 67년 30세의 나이로 중의원에 진출한 이래 10선 경력을 갖고 있다.가나카와현 태생이며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 일「전전세대」퇴장…「새 정치」연다/비자민 총리 등장…일정국의 앞날

    ◎호소카와 총리 내세워 「차세대」로 진입/잠정정권 성격 강해 연정앞날 미지수/다음 총선후 하타의 전면부상 점치기도 일본정치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 시대가 열리고 있다.연립정부구성에 합의한 비자민 7당은 29일 당수회담을 갖고 총리후보에 일본신당의 호소카와대표를 옹립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호소카와대표가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의 뒤를 이어 일본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다. 호소카와대표는 다음달 상순에 열리는 특별국회에서 일본총리로 선출돼 정식 취임한다.총리선출을 위한 투표에는 자민당후보도 출마하지만 비자민7당의 의석이 2백43명으로 자민당의 2백24석보다 19석이 많은데다 무소속 10명이상이 이미 비자민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호소카와후보의 승리가 확실하다. 일본의 차세대지도자중의 한명인 호소카와대표가 총리가 되는 것은 일본정치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30일에 실시되는 자민당총재선거에서도 50대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이 당선될 것으로 보여 자민당에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일본은 전후정치의 한시대가 막을 내리고 차세대지도자에 의한 새로운 정치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호소카와대표는 당초 총리후보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그는 다음정권은 단명의 잠정정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총리로 취임할 경우 전환기의 정치적 희생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그의 이같은 신중한 자세로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가 연립정부총리후보로 유력시되기도 했었다. 사회당,공명당 등은 중의원 초선인 호소카와대표가 총리가 될 경우 정권기반이 취약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에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는 대장상등 정권담당 경험이 있는 하타 신생당대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권정치의 이미지가 강한 자민당의 다케시타파로부터 떨어져나온 신생당이 연립정부의 전면에 나설 경우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신생당은 호소카와대표를 총리후보로 옹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연립정권구성을 막후에서 지휘하고 있는 신생당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대표간사는 「호소카와총리 카드」를 제시하며 일본신당과 비자민세력 제휴를 추진해왔다. 신생당등은 호소카와대표는 1년전에 일본신당을 창당,신당붐을 선도했으며 지사경험이 있어 행정수완에도 걱정이 없고 참신한 이미지로 정권교체의 강한 인상을 줄수 있다고 강조해왔다.다른 당들도 결국 이같은 신생당 주장에 동조했다. 호소카와대표는 신생당등의 이러한 적극적인 지원과 일본신당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총리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당내 여론을 배경으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호소카와대표는 나름대로의 큰 정치적 야망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호소카와대표와 마지막 순간까지 「경쟁」을 벌였던 하타당수는 부총리겸 대장상이나 외상에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잠정정권에는 호소카와를 내세우고 다음총선후의 본격적인 정권때 하타당수가 총리가 되기위해 이번에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비자민세력은 총리후보결정과 함께 방위·외교등 기본정책과 제2차대전에 대한 일본의 「전쟁책임」을 명확히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정권구성을 본격화하고 있다.이들의 기본정책은 현재의 정부정책을 계승하기로 함에따라 호소카와총리시대에도 중요한 대내외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정치개혁을 위한 잠정정권의 성격이 강한 새정권은 얼굴은 호소카와지만 실천은 의 전망은 미지의 세계다.
  • 비자민 총리후보 선출 “반전에 반전”/일정국 이모저모

    ◎자민총재 경선 정견발표 맥빠진 분위기 ○후보 예상 빗나가 ○…29일 비자민 7당의 총리후보 선정은 당수회담 바로 전까지 반전을 거듭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단순한 후보가 아니라 거의 확실하게 총리취임을 보장받는 상황인 만큼 이는 충분히 예상된 드라마였는데 단지 막판에 밝혀진 드라마의 주인공이 많은 사람의 예상과는 다른 인물이란 점이 특이했던 것.당수회담 전날은 물론 당일 하오 무렵까지 관측통들의 대세는 『호소카와 당수도 좋은 카드이지만 역시 「총리」의 황금 패는 하타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하타 신생당 당수가 사회당이나 공명당의 적극적인 후보추대 의사를 물리치면서 호소카와 일본신당 당수에게 후보직 수락을 강력 요청하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긴 했지만 설사 행동은 그렇더라도 하타 당수의 진의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추측 또한 강했다. 그러나 호소카와보다 더 「정치적」이라던 하타 당수의 행동에는 정치적 이면이 없었던 셈. ○개혁 최선 다짐 ○…정권상실이 기정사실화한 자민당 의원들은 30일의 총재경선에나선 고노 장관과 와타나베 전 부총리의 정견발표를 들었다.단상의 후보들이 자민당의 권토중래와 영광회복을 열정적으로 약속했지만 의원들은 맥이 빠지고 지친 기색이 역연 ○자민 책임 논란 ○…한편 자민당 노장의원들은 비자민 연정구성에 대해 정권욕에만 눈이 어두워 급조한 「사상루각」이라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소장파 의원들은 『자민당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 이라고 인과론을 강조했다. 쓰카하라 순페이(총원준평) 당 전국 조직 위원장은 『우리들은 정‘ 속에서 살아왔다.정권이 있는 것이 공기가 있는 것처럼 당연시 돼왔다.때문에 야당이 되는 것은 큰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야당으로 전락하는 자민당의 모습을 안타까워 했다. ○조부도 전전 총리 ○…현 정치가중 가장 「핸섬한」미남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는 호소카와 총리후보는 내달 총리에 취임할 경우 지난 72년 54세로 총리에 오른 다나카 가쿠에이에 이어 두번째로 젊은 일본 총리가 된다. 호소카와는 고향인 구마모토현의 스키 대표선수로 전국체전에출전한 적도 있으며 특히 그의 할아버지인 고노에 후미마로(근위문마)는 전전인 37∼39년,40∼41년 두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한 바 있다. ○사회당 기쁜표정 ○…만년 야당에서 모처럼 정권의 자리에 오르게 된 사회당은 선거에 참패를 했으면서도 즐거워 어쩔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아카마쓰 히로다카(적송광륭) 사회당 서기장은 『이제 겨우 자민당 정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기쁨을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카마쓰 서기장은 지난27일 열린 7당 서기장급 대표자 회의에서는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 대표간사에게 『본래같으면 대선배로 대접을 해야 하나 비교 1당이라는 이유 때문에 용서를…』 운운하며 상석을 차지한 것을 미안해 하기도 했다는 것.
  • 일 정치구조 지각변동 돌입/비자민 연정구성 합의의 의미

    ◎자민­「선구」 연합시도 끝내 좌절/새달 특별국회서 새정권 탄생 일본정치의 자민당지배가 끝나고 비자민연립정부의 탄생이 확실해지고 있다.일본정치는 이에따라 정권교체라는 구조적 대전환을 하며 연립정부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연립정부 총리후보로는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신당대표가 유력시되고 있다.차세대지도자인 이들의 등장은 일본의 전후정치가 막을 내리고 차세대 지도자에 의한 새로운 일본정치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비자민연립정부의 구성은 일본정국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 대표가 28일 신생,사회,공명,민사,사민련 등 비자민세력과의 회담에서 연립정권구성에 합의함에 따라 확실해졌다.비자민세력은 자민당보다 의석수가 많아 8월에 열리는 특별국회에서의 총리선출투표에서 승리,새로운 정권을 출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는 이에앞서 비자민5당과 마지막 문제로 남아있던 정책협조와 관련,「현정권의 제도와 정책을 계승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7당 정책담당자들은 일본신당 등이 연립정부참가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정책협조문제와 관련,27·28일 이틀동안 헌법,안보,자위대,한국정책,일·미관계 등 당면의 정책과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논의했으며 문제의 사회당이 유연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합의에 도달했다.7당은 29일 당수회담을 갖고 비자민연립정부구성에 최종 합의한 후 이에따른 문제들도 협의할 예정이다. 자민당은 정권유지를 위해 일본신당 등이 제안한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 선거제도개혁을 서둘러 수용하는 등 마지막 「대역전」을 모색했으나 끝내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의 협력을 얻는데 실패했다. 비자민연립정부의 출범은 지난 48년 아시타내각이후 45년만의 본격적인 연립정부의 탄생과 함께 38년간의 자민당 1당지배가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자민당정치는 전후 고도경제성장을 실현하며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키는 등 큰 업적을 남겼으나 구조적 부패와 자기개혁실패로 야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비자민연립정부의 총리후보로는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와 호소카와 일본신당대표를 중심으로 조정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현 단계에서는 정권담당경험이 있는 하타당수가 유력시되고 있다.그러나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에 하타당수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어 호소카와대표가 총리후보가 될 가능성도 있다. 비자민연립정부구성에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 대표간사가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오자와는 일본신당 등의 협력을 얻기위해 적극적인 막후공작을 펼쳐왔다.그러나 비자민연립정권은 정책차이 등 불안한 요소가 많아 정권기반이 취약할 것으로 보이며 정치개혁을 위한 잠정정권의 성격이 강하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내년봄 국회가 해산되고 총선이 다시 실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비자민세력은 선거제도개혁과 다음 총선을 거치며 재집결될 것으로 보이며 자민당도 가토(가등)그룹의 일부 탈당에 이어 개혁파들이 이탈,재분열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정치는 7·18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수의석 확보에 실패한데 이어 비자민연립정부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자민당1당지배는 냉전대응형 정치구조로 어느 면에서는 바람직한 정치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냉전종식과 함께 자민당1당지배도 끝나고 있다.이제 일본은 국제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시스템 모색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 자민,정권유지 “막판승부수”/정치개혁안 수용배경

    ◎“야당전락 위기” 신당과 타협 불가피/사키가케와 막후접촉… 대역전 시도 일본 자민당이 정권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자민당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선구)등이 제안한 정치개혁안을 수용키로 결정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정권만은 놓치지 않겠다며 뛰어든 「마지막 대승부」로 볼 수 있다. 자민당은 27일 총무회의를 열고 일본신당 등이 제안한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병립제 선거제도개혁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그밖에 ▲근본적인 정치개혁조치 ▲정치가 개인에 대한 정치헌금 금지 등 정치개혁안을 결의했다.이에따라 일본신당 등의 협력을 얻기 위한 자민당과 비자민세력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자민당이 이처럼 서둘러 정치개혁안을 의결한 것은 신생·사회당 등 비자민세력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져 야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몰린 때문으로 분석된다.자민당내에도 선거제도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없는게 아니다.그러나 정권이 교체될 경우 비자민연립정부 구성을 막후에서 추진하고있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 대표간사의 공작에 의해 자민당이 재분열될 위험성이 크다고 보고 우선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일본신당 등과의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본신당 등은 「병립제」로의 선거제도개혁 등 정치개혁을 전제로 한「정치개혁정권」구상을 지난 23일 밝혔다. 이같은 구상이 비자민세력에 의해 전폭 수용되면서 비자민연립정부 출범의 가능성은 한결 높아졌다.그러자 자민당도 부랴부랴 일본신당 등의 제의를 수용하며「대역전」모색에 나서고 있는것이다.자민당은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의 협력을 얻기 위해 미쓰즈카 히로시(삼총박)정조회장 등이 27일 양당을 방문하는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대화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총재도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로 옹립하기 위한 조정작업이 개혁파와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자민당이 이같이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자 신당 사키가케를 중심으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신당 사키가케와 일본신당은 당초 자민당이 자신들이 제안한 선거제도개혁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었다.그러나 자민당이 예상외로 신속한 대응을 보이자 신당 사키가케내에는 자민당을 포함한 「거국내각론」도 등장하고 있다. 신당 사키가케는 이처럼 자민당의 움직임을 어느정도「평가」하고 나섬으로써 비자민세력에 많이 기울고있는 일본신당과는 미묘한「차이」를 보이고 있다.자민당은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신당 사키가케대표와 막후접촉을 강화하며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신당대표는 27일 『자민당의 정치개혁안은 불충분하며 개혁파인 고토다 마사하루(후등전정청)법상이 총재가 돼도 자민당과 손을 잡기는 어렵다』고 밝혔다.자민당이 1당지배때의 오만을 버리고 대태협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 내일 7당당수 회동서 연정조율/일 비자민 결집 가능할까

    ◎오자와,“연정위해 양보할것 모두 양보”/다당화론 자민에 불리… 정권교체 집념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 대표간사가 일본의 정치지도를 새로 그려 나가고 있다.7·18총선후 일본에서는 비자민세력 연대에 의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그리고 이같은 일본정치구조의 대전환을 추진하는 막후 연출자가 오자와 대표간사다. 오자와는 적극적인 국제공헌 주창자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의 차세대 지도자 가운데 한사람이다.오자와가 정권교체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가지야마 세이로쿠등 자민당 지도자들과의 권력투쟁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부패하고 경직된 자민당 정치로는 격동하는 세계적 전환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며 그가 진작부터 주장해온 정계재편에 근거한 것이다.오자와의 새로운 정치시스템 시나리오의 골간은 보수 2대 정당제다. 그의 시나리오는 선거제도 개혁으로부터의 출발을 상정했었다.그러나 자민당의 반대로 선거개혁이 이뤄지지 않자 그는 자민당을 탈당,신생당을 창당했다.그의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신생당 창당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오자와는 자민당이 7·18총선에서 과반수(2백56석)에 못미치는 2백23석만을 얻는데 그쳐 단독정부 구성이 불가능해지자 본격적인 막후활동에 나섰다.그 대상은 「제3세력」으로 남겠다고 밝힌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선구). 오자와는 일본신당 등과 막후접촉,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신당대표의 「비자민 총리후보카드」를 제시하는 등 일본 신당등을 비자민세력에 합류시키려는 공작에 무게를 실었다.호소카와대표는 오자와의 이같은 적극적인 공작과 자민당과 손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당내여론을 배경으로 지난 23일 「정치개혁정권」구상을 제의,비자민세력과의 연계 가능성을 밝혔다.신생당및 사회,공명,민사당,사민련 등 비자민세력은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의 제의를 전폭 수용키로 합의했으며 28일 7당당수회담이 열릴 예정이다.그러나 신당 사키가케가 아직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어 당수회담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일부 보도를 통해 오자와가 자신의 강한 금권정치 이미지가 결속에 장애가 된다면 신생당을 탈당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하타 쓰토무(우전자)신생당 당수는 이를 부인했다.그만큼 비자민연립정권 창출에 거는 오자와의 집념은 강하기 이를데 없다. 비자민정부 수립후 오자와의 구상은 우선 소선거구제로의 선거제도 개혁.현행 중선거구제가 폐지되고 소선거구제가 도입되면 지금까지의 선거형태와 선거구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야당도 현재의 다당화 상태로는 자민당에 불리하기 때문에 그대로 선거전에 돌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된다. 오자와는 이같은 상황변화에 의해 비자민세력은 정책이 크게 다른 일부 세력을 제외하고 재결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동시에 자민당에도 제2분열 등 큰 변화가 도래,이 과정에서 2대정당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이 그의 2대정당 시나리오의 줄거리다. 그렇다면 오자와의 보수 2대정당론의 큰뜻은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걸까.그는 무엇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2대정당에 의한 정권교체와 그것을 통한 정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관측통들은 또다른 의도를다음과 같이 읽고 있다.즉 헌법개정,자위대의 해외파견 등에 반대하는 혁신세력을 약화시키고 보수당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한마디로 오자와의 「대야망」은 정치 대국화로 귀결하고 있는 것이다.
  • “일본 비자민 연정 가능성 높다”/7·18총선후 정국 변화 전망

    ◎신당 「개혁구상」 제의로 급진전/정­경­관 3각 유착관계 변화 기대/자민당 재분열 가능성 배제못해 일본정치가 7·18총선을 계기로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다.도쿄신문의 고바야시 가즈히로 정치담당논설위원과의 대담을 통해 전환기의 일본정치를 조감해본다. ­정권교체 가능성은. ▲열쇠를 쥐고있는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선구)가 「정치개혁정권」구상을 제의함에 따라 비자민세력에 의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졌다.자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과반수의석 획득에 실패한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희망하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다. ­비자민연립의 총리후보는. ○호소카와 총리후보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신당대표와 하타 쓰토무 신생당 당수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비자민연립정권탄생후의 관료및 경제계와의 관계변화는. ▲자민당과의 유착관계에 한동안 혼란이 나타날지 모른다.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정치와 관료·재계와의 관계에 긴장감이 나타나며 부정부패의 온상인 정치·관료·재계의 이른바 「3각 유착관계」가무너지고 바람직한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정치혼란이 오랫동안 계속될 경우는 관료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오자와 중요역할 ­일본정치변화에 있어서 오자와 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의 역할과 신생당의 대응은. ▲오자와 대표간사는 신생당 창당 등 일본정치변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오자와의 시나리오는 자민당의 지배를 끝내고 정권교체를 실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일본의 정치변화는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오자와 구상」보다 오히려 빨리 진행되고 있다.오자와를 비롯한 신생당 지도자들은 적극적인 국제공헌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정당과의 협력유지를 위해 당분간 적극적인 대외정책 등은 자제하며 유연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본다. ○자민총재 변수로 ­자민당의 향방은. ▲자민당의 다음 총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재분열의 가능성도 있다.정치개혁에 신중한 사람이 총재가 될 경우 개혁파들은 탈당할 가능성이 있다.이번 선거에서 신당들이 약진,탈당의 위험부담이 적어져 과거보다 쉽게 탈당결단을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당 지배체제 마감 ­일본정치의 미래는. ▲일본정치는 역사적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자민당 1당지배가 끝나고 연립정권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그러나 일본정치는 이번 세기말까지는 혼란을 겪게될지 모르며 불안정한 미지의 세계를 맞고있다.몇년간의 혼란을 거치며 3∼4개 정당에 의한 연립정권으로 정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한마디로 일본정치가 이른바 「55년체제」를 마감하고 「2000년체제」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 대외정책 변화(일본은 변하는가:4·끝)

    ◎미 그늘 벗어나 독자외교 펼듯/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총력/경제대국 걸맞는 정치·군사대국화 겨냥/오자와등 “새 국제질서에 적극 참여” 표방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분쟁해결 역할을 담당하고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위해 상설 유엔대기군을 창설하는 등 자위대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일본의 차세대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는 최근 발간한 그의 정책집 「일본개조계획」에서 냉전종식후 일본의 새로운 국제질서에의 적극참여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오자와를 중심으로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등 신세대지도자들은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역할증대를 주장하며 강력한 일본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 일본은 7·18 총선을 계기로 한동안 정치적 혼돈을 경험할지 모르지만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더라도 멀지않아 신세대지도자시대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일본에서는 이미 「95년 신체제」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1995년은 세계사와 일본에 매우 중요한 의미있는 해가 될것으로 보인다. 1995년은 제2차대전의 종결과 유엔창립 50주년이 되는 해인 동시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일단 발효만료되는 해다.현재 일본은 95년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기까지에는 적지않은 걸림돌이 남아있지만 미국 등은 이미 지지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은 세계전략에서 자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제대국인 일본과 독일을 상임이사국에 진입시킨 다음 경제만이 아닌 정치적 책임도 맡게 하려는 외교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유엔의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일본은 세계무대에서의 군사적 역할의 급속한 확대와 더불어 국제정치의 결정자가 되는 것이다. 일본이 경제력에 이어 군사력도 갖출 경우 미국의 세계전략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이는 오자와의 외교목표이기도 하다.일본은 물론 미일동맹을 안보·외교정책의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외무성 일각에서는 미일동맹이 완만한 해체과정에 들어갔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키신저 전미국무장관도 『일본은 앞으로 미국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 외교정책의 변화가 대한외교에 영향을 미칠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한국은 기왕에 일본의 침략사를 지적하며 경제지원 등 여러가지 요구를 해왔다.그러나 한국침략에 죄책감을 느끼는 정치세대는 미야자와총리가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이며 신세대지도자들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 종래와 같은 양국외교는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신세대지도자들은 전임자들과 달리 한국에 요구할 것은 보다 당당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외교및 정치경제정책은 국제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일본이 엔화관리와 무역정책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세계경제가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일본국회가 해산된 지난달 18일 세계시장에서 엔화가치가 폭락한 것은 일본정치가 국제화됐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드골 전프랑스대통령은 『거대 경제력은 그 자체가 정치적 영향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그는 독일의 경제성장을 경계하며 이같이 말했으나 그의 말은 바로 지금 일본에적용되고 있다.영국외교관은 『패전국의 외교는 50년간 침묵한다』는 말을 잘 인용한다고 한다.1995년은 일본이 패전 50주년을 맞는 해다.일본은 지금 오랜 침묵을 깨고 있다.
  • 하타 쓰토무 신생당 당수(일 신당돌풍의 두 주역)

    ◎내각불신임 주도한 개혁화신 하타 쓰토무(우전자·58) 신생당 당수는 일본에 야당만의 연립정부가 들어설 경우 가장 유력한 총리감으로 꼽혀온 인물. 개혁의 기치를 들고 이번 7·18총선에 참여,신생당을 사회당에 이은 제2야당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지난달 18일 내각 불신임 투표에서 자신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찬표를 던지게 해 55년 결당이래 자민당에 최대의 시련을 안겨주면서부터 정치에 식상한 일본인들에게 개혁의 화신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결과 그는 개인 퍼스낼리티가 먹히지 않던 일본 정치무대에서 새로운 스타로 부상했다. 그는 자민당 시절 중간자적 입장을 고수했으며 극우를 거부하는 한편 사회당에 대해서는 극좌노선의 포기를 종용하는 중도보수 성향을 보여왔다. 69년 중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농수산상·대장상등 요직을 두루거쳤다.앞으로 신생당의 실질적 지도자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와의 관계설정을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 정치체제의 대전환(일본은 변하는가:1)

    ◎「보수+보수」에 의한 「견제와 균형」추구/탈냉전의 새국제질서 대응준비/금권·파벌의 근본개혁은 미지수 「7·18총선」이 일본 정치구조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자민당 다수 단독정권시대의 종언과 사회당의 퇴조,신당그룹의 중요 정치세력으로의 부상이 필경 변화를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총선을 계기로 그 폭과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이는 일본의 변화를 4회에 걸쳐 짚어보기로 한다. 『일본정치의 자민당 1당지배는 전후 미국주도의 국제정치에서 바람직한 냉전대응형 정치구조였다.그러나 냉전의 종언이라는 국제환경의 변화와 함께 일본정치에도 변혁의 필요성이 나타났다』 일본의 국제정치학자 이노구치 구니코 상지대교수는 일본정치의 변화를 이같이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당연한 역사적 흐름으로 진단한다.전후 일본정치는 「냉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지난 1955년 보수우익연합에 의한 자민당의 탄생과 사회당 출범으로 구축된 이른바 「55년체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지난 38년간 일본정치를 지배해온 「55년체제」는 이번 선거를 통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냉전형 일본정치의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있다.자민당이 과반수의석 획득에 실패하고 사회당이 참패했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물론 제1당을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상황은 크게 바뀌고 있다.자민당의 분열과 함께 자민당의 다수단독정권의 시대가 막을 내림으로써 과거와 같은 「마음대로의 정치」를 할 수 없게 되고 정국운영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민당 정치는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막후협상을 통해 총리를 선출함하는등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난을 받아왔다.이같은 폐쇄성에 의한 정치의 다이너미즘 상실과 금권정치의 구조적 부패는 국제정세 변화와 함께 자민당의 분열을 부른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민당의 분열과 사회당의 퇴조,신당그룹의 대약진은 일본정치구조의 큰 변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그중에서도 기성정당을 비난하며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신생당,일본신당,신당 사키가케(선구)등 「신당 트리오」의 대약진은 일본정치가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말해준다. 신생당의 실질적 지도자인 오자와 이치로 대표간사는 신생당을 중심으로 한 제2의 보수정당을 만들어 「2대 정당제」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그의 시나리오가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지만 많은 국민들과 경제인들은 부패한 자민당 1당지배가 끝나고 2대정당제에 의한 「견제와 균형」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는 밝히고 있다.일본사회에는 강한 안정지향적 성향이 남아있지만 일본인들의 정치의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일본전문가인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교수는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파벌정치가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당정치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그러나 그는 『파벌싸움이 단지 당과 당의 대립으로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 일본정치의 기본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정치지도가 어떻게 다시 그려질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과반수의석을 획득한 정당이 없어 일본정치는 당분간 「혼돈의 시대」를 경험할지 모른다.그러나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조교수는 『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치에도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민당의 다수단독정권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일본정치에도 의회정치 본래의 긴장감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물론 폐쇄적 금권정치라는 「일본형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국제정치의 거시적 구조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자신에 맞는 새로운 정치시스템의 모색을 통해 냉전후 새로운 국제질서에의 대응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일본의 정치변화와 개혁은 일본의 국내문제에 속한다.그러나 일본의 정치적 결정은 세계경제는 물론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일본의 존재가 크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 자민,“2백석 확보땐 연정구성”/무토 외상

    ◎“미달땐 정권양도 검토”/일본신당·「사키가케」 대상될듯/두 신당,야 총수회담 참가 거부 【도쿄 연합】 무토 가분(무등가문)일본 외상은 26일 내달 총선거에 자민당이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2백석 이상을 확보할 경우 일부 야권세력과 연립정권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무토 외상은 이날 출신지인 기후(기부)현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총선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자민당의 대응에 대해 『당을 중심으로 연립 정권을 구성하되 일본신당과 「신당사키가케」를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백석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정권 양도를 진지하게 검토하겠지만 그이상을 확보하면 최다 득표당 자격으로 연립을 통해 정권을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정 파트너 조건이 『최소한 내각 불신임안에 찬성하지 않은 세력들』이라고 강조했다.이는 중의원에 의석을 갖고 있지 않은 일본신당과 투표 당시 소속원 대부분이 반대표를 던진 신당사키가케를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호세가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신당대표는 이날 하타 스토무(우전자)신생당 당수와 회담을 갖고 신생당이 제의한 27일의 비자민 당수 회담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회담에서 『정권 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야권이 협력하려는 취지에는 찬성하나 우리당으로서는 출범 후 처음으로 치르는 선거인만큼 창당 정신을 충실히 살리고 싶다』며 야당간 정권 협의에는 동참하지 않을 뜻임을 분명히 했다. 또 신당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표도 지방유세를 이유로 비자민 당수 회담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정계 관측통들은 『선거 스캔들로 얼룩진 자민당 다케시타파 중심 인물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전간사장 등 신생당 간부에 대한 반발이 크게 작용한데다 신생당과 연계될 경우 기성 정치세력 틈에 끼어 선거전이 어려워진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했다.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7·18총선의 전초전인 도쿄도의회 의원선거가 27일 실시된다.당일 개표가 실시되어 이날 하오 11시쯤에는 대세가 판명날 것으로 보인다. 정치개혁이 최대의 이슈가 된 이번 도쿄의회선거는 총선의 예비선거적 성격을 띠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자민당 등 각당은 총선체제로 후보자들을 지원해왔다.
  • 일 하타파 오늘 창당선언/지지율 사회당제쳐 2위

    ◎사회당도 「집권호기」 판단… 제휴 모색 【도쿄=이창순특파원】 오는 7월18일 총선을 앞두고 자민당 탈당 소장파 의원출신 11명이 22일 신당인 「사키가케」(선구)를 결성한데 이어 지난 18일의 내각불신임안 투표에서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에게 등을 돌렸던 집권 자민당내 하타(우전)파도 이날 집단으로 탈당계를 제출,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타파에 속한 44명(중의원 출신 35명·참의원 9명)의 의원들은 22일 하오 전원 탈당계를 제출하고 창당절차를 밟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23일 임시총회를 열어 신당결성을 정식으로 선언하고 결당이념과 기본정책을 발표한다. 22일자 요미우리(독매)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하타파는 공산당을 제외한 비자민당 세력의 총집결을 목표로 「새로운 일본을 창조하는 국민회의」(가칭)를 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일본 전역에서 유권자 1천명을 임의추출,전화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하타파가 신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설 경우 9%가 지지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사회당에 표를 던지겠다고 응답한 8%를 앞지르는 것이다. 또 자민당이 득표전략에 부심하고 있는 가운데 제1야당인 사회당은 자민당의 분열과 신당 바람이 일고 있는 이번 총선이야말로 절호의 집권 기회라고 판단,공명·민사등 다른 야당은 물론 자민당 탈당 세력들과의 제휴를 위해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 정계개편의 3개 시나리오/하타+범야권/비자민 연정 탄생… 하타 총리옹립/자민+범보수/자민 제1당 유지… 보수연합 추진/하타+범개혁/자민 총선 참패… 잔류의원 재분열 일본 자민당의 하타파가 22일 탈당,전후 38년간 일본정치를 독점해온 자민당이 분열됐다.자민당의 분열은 자민당 1당지배체제의 막이 내리고 새로운 정치체제인 연립정권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22일 7·18총선후 예상되는 연립정권과 관련,3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하타신당과 사회·공명·민사당 등에 의한 연립정권=자민당이 제1당의 자리는 지켰으나 과반수 확보에 실패,정권을 내놓고 하타신당이 사회당 등 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경우.사회당은 이미 총리자리를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혀 「하타총리,야마하나 사다오 사회당위원장 부총리」라는 비자민당 연립정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공명당도 「하타총리」옹립에 지지를 나타내고 있다. 하타를 중심으로 한 연립내각에서는 중요 각료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사회당은 총리자리를 양보하는 대신 대장성,외무성,통산성 등의 중요 각료자리를 요구하고 공명당도 하타신당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경우 중요자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네마루 신 전자민당부총리의 직계인 오자와 이치로 전자민당간사장이 주요 자리를 차지할 경우 사회당 등이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더욱이 정치개혁이외는 공통정책이 없다는 어려운 점이 있다. ▲자민당,일본신당,신당 사키가케에 의한 연립정부=자민당이 과반수에는 크게 못미치나 제1당을 유지하며 보수연합을 구성하는 경우.자민당은 지난 38년의 공적을 앞세워 하타파 이외의 보수계를 모아 정권연장을 시도할 것이라는 경계감이 야당내에는 강하다. 자민당은 미·일관계를 기본축으로 하는 외교와 안보 등 기본정책에서의 공통점을 고려할때 일본신당과 자민당을 탈당,새로 출범한 신당 사키가케와 연립정권 구성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이 구상은 자민당이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의 정치개혁요구를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그러나 자민당과 이들 신당및 보수계 무소속을 합해도 과반수가 안될 때는 실현 불가능하다. ▲하타신당,자민·사회당 개혁파에 의한 연립=총선 참패로 자민당이 다시 분열되는 경우.선거제도개혁과 관련,하타파와 협조했으나 자민당에 남아있는 「정치개혁추진의원연맹」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이 자민당을 나와 하타신당과 손을 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총리후보에 하타씨가 될지 정치개혁추진의원연맹회장인 가이후 도시키 전총리가 될지는 미묘하다.선거결과에 따라서는 자민당을 나온 정치개혁세력과 하타신당의원의 수가 잔류의원보다 많아 이들이 「본가」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자민당은 총선후 미야자와총리 후임 선출과정에서 각 파벌의 치열한 경쟁으로 재분열될 위험성도 있다.자민당은 재분열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하시모토 류타로 전대장상이나 가이후 전총리를 총리후보로 옹립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고토다 마사하루 법무상을 추대할 가능성도 있다. ◎“자민과 연정 거부”/일본 신당 【도쿄 교도 연합】 호소가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 신정당 당수는 오는 7월18일 총선이후 신정당과 자민당과의 연정 구성 가능성을 배제했다. 호소가와 당수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민당과 신정당의 연정 제휴는) 자민당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 한사람도 당선되지 않고 양식있는 사람만이 당선돼야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10명의 자민당 탈당의원들로 21일 전격출범한 「사키가케」(선구) 신당과의 협력 전망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 자민당을 뛰쳐나온 44명의 하타(우전)파 의원들이 결성할 신당과의 협력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 “자민 참패→ 「하타총리」 옹립”/일 총선앞둔 신정치세력의 목표

    ◎야와 협력구체화… 사회·공명당 지지/“막후실세” 오자와 거부감 극복 과세 일본정치에 「하타(우전)총리」시대가 열릴 것인가.자민당을 탈당,신당창당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하타파와 야당과의 선거협력이 구체화되고 있는 가운데 하타파 대표 하타 쓰토무 전대장상을 다음 총리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사회당은 「7·18」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수의석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선거후 특별국회의 총리지명선거에서 「긴급개혁정권」을 목표로 하타 전대장상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공명당 등 다른 야당들도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때문에 자민당이 과반수의석에서 크게 밑돌게 될 경우 「하타 총리」정권의 탄생 가능성은 충분하다. 자민당은 「7·18」총선에서 과반수의석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자민당계는 현재도 하타파의 35명을 제외할 경우 중의원 과반수 2백48명보다 5명이 적은 2백43명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자민당의 김권·부패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난과 야당의 선거협력으로 의석이 더욱 줄어들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타파는 이미 야당과의 선거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다.하타파는 23일 신당창당 직후 사회·공명·민사등 야당과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등과 협의기관을 설치하는 등 선거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하타파는 선거후에는 야당등과의 연립정부구성을 구상하고 있다.하타파의 신당 대표로 내정된 하타 전대장상은 선거후 총리지명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며 사회당은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에 이어 제2정당이 될 것이 확실하지만 야마하나 사다오 위원장의 총리지명선거 출마를 단념하고 그대신 하타씨를 지지할 방침이다. 사회당의 이같은 방침은 정권교대를 통한 자민당 1당지배체제의 붕괴와 비자민세력내에서의 고립탈피를 위한 전략이다.하타파와 야당의 연립정부가 실현될 경우 이는 전후 38년간 계속된 자민당 장기집권이 끝나고 야당이 국정에 참여하는 최초의 실질적인 정권교체라는 일본정치의 대변혁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시나리오에는 많은 걸림돌이 있다.우선 총선에서자민당의 참패가 전제돼야 한다.자민당이 과반수에 조금 못미칠 경우에는 하타파를 제외한 자민당 탈당자 및 무소속당선자들과의 연립정부 구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또다른 중요한 문제는 사회당과 다른 정치세력간의 정책차이와 하타파의 실질적인 막후 지도자인 오자와 이치로 전자민당간사장에 대한 거부감이다. 사회당은 자위대 원자력 헌법 등 일본의 기본정책과 관련,하타파나 다른 야당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더욱이 사회당 좌파및 일본신당·자민당을 탈당해 21일 정당을 새로 만든 10명의 소장파의원들은 「가네마루의 후계자」인 오자와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비자민당세력이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킨다 해도 정당간의 정책차이와 불협화음으로 얼마 못가 붕괴되는 등 정치혼란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새로운 정권의 탄생은 일본정치사의 중대한 변화이지만 동시에 정치혼란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그 실현여부에는 여전히 의문이 따르고 있다.
  • “한때 총리물망” 신세대 리더/일 하타파 실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등 두루 거친 8선/한국침략과 관련 망언 한동안 일본정계를 주름잡아온 가네마루(김환)가 진작부터 「끔찍이 아끼는 보물」로 불러온 오자와 이치로. 지난 18일 전후 38년간 지속돼온 일본 자민당 1당 집권체제를 일단 붕괴시킨 내부반란의 주역 하라파의 표면상의 대표는 하타 쓰토무(우전공)전대장상(58)이다.그러나 실질적인 막후 실세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전자민당간사장(51)이다. 지난 69년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대를 이어 중의원에 당선된 이래 8선을 기록한 오자와전간사장은 노정객들이 주도하는 일본정치현실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실세요직인 간사장을 거쳤고 지난 91연말 이미 총리후보로까지 거론댔을 정도로 신세대의 리더로서 일찌감치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개혁을 거부하는 보수원로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아 지난해 10월 다케시타파 회장 선출에서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전간사장에게 밀렸다.그러나 곧 44명의 중·참의원들을 이끌고 새파벌인 「개혁포럼21」을 발족시켰다. 그는 자신의 황태자적인 정치성장 배경을 감안,이번 내부반란이 유권자들에게 정치개혁 요구투쟁이라기 보다는 밥그릇싸움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직접 전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로 남았다. 경제대국 지위에 걸맛는 일본의 국제역할 증대를 주장하는 국제공헌파이며 지난해 유엔평화유지활동(PKO)법 제정당시 정치력을 발효했다.지난 90년 간사장재직당시 일본의 한국침략사죄문제에 대해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다』는 망언으로 물의를 빗기도 했다.
  • 일 자민,38년간의 1당지배 종막/중의원 해산이후의 정국 전망

    ◎다케시타파 분열이후 구심력 상실/총선결과 따라 연정구성 가능성도/국민들 정치불신높아 “자민 고전” 예상 일본정계의 대개편이 시작되고 있다.내각불신임안 처리를 둘러싼 자민당의 분열로 전후 40년 가까이 계속돼온 자민당 1당지배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전통적인 보수와 혁신의 대립구도도 바뀌고 있다. 자민당은 야당이 제출한 내각불신임안에 찬성한 하타파가 신당창당을 결정함으로써 분열의 길을 가고 있다.자민당내 일부가 야당이 제출한 불신임안에 지지를 보낸 것은 헌정사상 이번이 처음이며 이같은 행동은 이미 분열을 예고한 것이었다. 자민당의 분열은 일본정치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자민당은 지난 1955년 민주당과 자유당으로 나눠졌던 보수우익세력의 연합으로 결성됐다.이른바 「55년 정치체제」의 출범과 함께 자민당 장기독점체제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그러나 자민당의 분열로 1당지배의 신화는 하나의 전설로 남고 새로운 정치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민당의 분열은 최대파벌 다케시타파의 분열로부터 시작됐다고할 수 있다.일본정계를 사실상 지배해온 다케시타파가 「가네마루 정치자금스캔들」과 관련,오부치파와 하타파로 분열됐으며 정치개혁을 둘러싼 대립으로 하타파가 자민당을 떠나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민당은 이번 정치개혁논의 과정에서 이미 심각한 대립현상을 드러냈었다.특히 가지야마 세이로크 자민당 간사장과 하타파의 실질적인 대표 오자와 이치로 전간사장간의 대립은 정치개혁논의를 저차원적인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바꾸어 놓은 측면이 강했다. 다케시타파가 분열된 후에는 당운영의 사령탑과 유력 지도자가 없어 자민당은 구심력을 상실했다.더욱이 많은 젊은 의원들은 파벌을 초월,정치개혁을 주장함으로써 자민당의 전통적인 파벌정치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일부 젊은 의원들은 하타파가 창당할 정당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내각불신임투표와 관련,찬성한 사람이 하타파를 중심으로 39명,결장이 18명으로 자민당에 반대입장을 나타낸 사람이 57명에 이르며 10여명은 이미 탈당의사를 밝혔다. 하타파는 공명당 민사당 사회당 등 야당과도 연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야당들도 이를 환영하고 있다.하타파가 야당과 어느 정도의 연대를 이룰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새로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하타파는 궁극적으로 연립정권을 구상하고 있다. 자민당이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의석 획득에 실패할 경우는 연립정권이 불가피하다.자민당의 장기집권에 의한 정치·관료·재계의 3각유착 부패구조와 정치자금스캔들의 반복으로 국민들의 정치불신이 높아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고전할 것으로 정치평론가들은 예상한다.
  • 정치개혁 주창해온 “차세대 총리감”/일 정계 불지른 하타는 누구

    일본국회 해산의 「주역」을 담당했던 자민당 하타파 대표 하타 쓰토무(우전자·58)는 장래 일본의 총리후보로 거론돼온 정치인. 다케시타파에 속해 있던 그는 미야자와정권 출범때 대장상으로 입각했다.그러나 다케시타파가 분열되면서 각료를 사임하고 정치동기생인 오자와 이치로 전자민당간사장과 함께 하타파를 구성,대표직을 맡고 있다. 그는 정치개혁을 강조하고 있으며 야당이 제출한 이번 내각불신임안 찬성에 오자와 전간사장과 함께 주도적 역할을 했다.하타파가 자민당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정당을 창당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총선결과에 따라서는 일본의 중요한 지도자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69년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2세의원.그후 계속 당선,농림분야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며 농수산상을 2차례 역임했다.다케시타정권 탄생때도 무대뒤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오다큐버스회사 등에서 근무.성성대학 경제과를 졸업한 그는 「아이디어 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타파의 또다른 지도자 오자와(소택·51)는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로 하타파의 막후 실력자다.가네마루 전자민당부총리의 「후계자」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그는 정적이 많아 하타를 파벌지도자로 내세우고 전면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하타와 마찬가지로 69년에 정계에 입문한 그는 헌법개정을 주장하고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통한 일본의 국제지위향상을 역설하고 있다.
  • 일 의원 평균재산 6억원

    ◎집권 자민당 야의원 비해 3배/1위 고노 관방장관 9백억원 일본에서도 국회의원 재산이 14일 처음 공개됐다.국회의원 7백49명(중의원 4백97명,참의원 2백52명)의 93년1월1일현재 토지·건물·예금·주식·유가증권등 평균재산은 8천8백60만엔(약6억6천만원)으로 나타났으며 10억엔(약75억원)이상은 12명으로 집계됐다. 당별로는 집권 자민당이 평균 1억3천2백만엔으로 야당의 3배에 이르고 있으며 제1야당인 사회당은 4천2백90만엔,공명당 5천3백90만엔,민사당 4천6백70만엔,공산당은 1천5백40만엔으로 나타났다.중의원 평균은 9천3백70만엔,참의원은 7천8백60만엔. 공개재산의 1위는 자민당의 사사가와 다카시(세천요)중의원으로 총개인재산은 42억4천만엔(약3백18억원).그러나 실세가격으로 계산할 경우 도쿄중심가 신바시(신교)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이 1백30억엔(약9백75억원)으로 일본정계 최대 재산가임이 밝혀졌다. 일본정계를 대표하는 정당당수,간사장,서기장,총리경험자,자민당 파벌지도자등 25명의 공개된 재산은 평균 9천7백만엔.그러나 실세가격은 5억6천만엔으로 나타났다. 실세가격으로 계산할 경우 정계실력자중 최고재산가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전자민당 간사장으로 19억2천만엔.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전총리,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가지야마 세이로크(미산정육)자민당간사장,호소가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신당대표등도 10억엔이상의 재산가로 밝혀졌다.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는 7억3천2백만엔(공개된 재산은 1억4천9백만엔). 야당인 사회당의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위원장은 5천2백만엔(실세가격 3억2천만엔),공명당의 이시다 고시로(석전행사낭)위원장은 4천1백만엔(실세가격 1억5천만엔). 재산공개결과 당선횟수가 많을수록 자산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당선1∼3회 의원들의 개인평균재산은 7천7백만엔.반면 4∼6회 당선의원은 9천9백만엔이었다. 일본정치가의 재산공개는 깨끗한 정치를 지향하며 지난 84년 제2차 나카소네내각때부터 각료를 대상으로 시작됐다.그후 정무차관까지 확대되었으나 정치자금스캔들은 계속 반복되었다.일본정계는 이같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정치가의 부정축재를 막기 위해 지난해말 자산공개법을 제정,이번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재산이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가족명의의 재산과 보통예금등은 포함되지 않고 허위신고의 경우에도 처벌조항이 없다는 비난이 있다.
  • 한·일 「환경협력공동안」합의/우리 기술 인력 일대학 연수 길 터

    【도쿄=이창순특파원】한국과 일본은 17·18 이틀간 도쿄에서 제3차 한·일무역산업기술협력위원회를 열고 지난해 6월 양국이 합의한 무역불균형시정 등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그 효율적인 추진방안을 협의했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측은 일본에서의 기술연수를 위해 일본해외기술자연수협회(AOTS)와 중소기업대학 등에 연수자를 파견키로 하는데 일본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편 양측 대표들은 이번 회의에서 환경 협력협정문안에 합의했다.양측이 합의한 문안에 따르면 양국은 환경보호 분야에서 연구·개발활동·정책·입법 등에 관해 정보를 교환하고 상호간의 환경협력활동을 조정하기 위해 정부 대표자로 구성되는 「환경협력공동위원회」를 설치키로 했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측에서 선준영 외무부 제2차관보를 수석대표로한 외무부·경제기획원·상공자원부·환경처등 관련부처 직원들이,일본측에서는 마쓰우라 고이치로(송포황일낭)외무성 외무심의관을 수석대표로 한 관계자들이 각각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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