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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사이 오가던 인정(두만강 7백리:2)

    ◎60년대초엔 북한냉면 먹으러 수시 왕래/물길러 오가던 아낙네들 문화혁명뒤에 사라져/용정 백금발전소 전기는 아직도 상계리에 공급 화룡시 용화향 상화촌 김 노인은 마을 앞 강건너 북한 땅인 무산군 화평리(화평리­옛 이름은 봇더기)에 사는 조카잔치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어느날 강에 나갔다가 강 건너에서 목욕을 하는 조카를 보았다.아무 날 잔치를 한다고 높은 소리로 알리더라는 것이다.그런데 미처 출국 수속을 하지 못해 갈 수 없었던 그는 잔치날 강언덕에 서서 형님 집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가깝고도 먼 이웃땅 참으로 두만강 양안의 마을은 가까우면서도 멀다.거리로 계산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고 국법으로 따지면 멀다.그러나 철조망을 치고 콘크리트 담벽을 쌓은 무인지대를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눈 한반도 군사분계선에 대면 두만강은 보통강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만강은 국경선 구실을 변변히 못했다.강 양쪽의 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통행증이나 여권 따위는 필요도 없이 왕래를 했다.용정시 개산둔진 선구촌 사람들은 냉면 먹으러 대안의 종성으로 다녔다고 한다.개산둔에 가야 식당추념들을 할 수 있었는데 20여리나 떨어졌고 국수맛도 엉망이었다.그래서 가까운 강건너로 가면 걸음도 덜고 입맛도 돋굴 수 있었으니 진짜 꿩 먹고 알 먹기였다.더구나 종성의 냉면은 함경도에서도 제일이어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 연변 텔레비전방송국 아나운서 박홍섭씨는 어릴 때 삼촌을 따라 강을 건너 친척 잔치에 참가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한달을 놀다가 돌아오려니 그만 얼음이 풀리기 시작했디 뭡네까.교두로는 감히 올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강이 다 풀리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디요.그래서 두껍고 긴 널빤지를 가져다 량켠 얼음우에 걸쳐놓고 허리에 바줄을 동여매고 건너왔댔시요』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중국과 북한관계가 냉랭해지면서 국경선은 쌀쌀한 냉기를 풍기기 시작했다.그러나 1970년 주은래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후 완화되긴 했다.겨울이면 두만강에서 아이들은 함께 썰매나스케이트를 타는 경우도 있다.말하자면 중국과 북한의 국제경기라 하겠다. 용정시 백금향 동광촌 제3촌민소조(옛명 현암동)는 10여호 오붓한 마을이다.몇년 전까지만해도 이 마을에서는 두만강물을 길어 음료수로 했다.겨울에 강이 얼면 아예 대안의 북한 상계리에 건너가 물을 길어왔다.온 마을이 물동이를 이고 지게를 지고 국경을 넘어 이국으로 간다.그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출국했다간 입국했다.아마 중국에서 출국 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을 꼽으려면 이 마을 아낙들일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동삼 내내 펄럭거리고 다니자니 미안하기 짝없더만요.상계리 분들이 얼굴한번 찡그리는 일없이 반겨 줄수록 죄송했디요.그래서 가끔 사탕,과자며 과일이며 떡을 가져다 드리곤 했는데,그러면 상계리 분들은 「이러지 마시라우요.엎음 갚음이랍니다」고 기래요.「우리가 쓰는 전기가 백금발전소의 전기 아닙니까」라면서….물고생을 무던히도 했디요.그때는 언제면 집에서 물을 받아 먹나고 학수고대했는데….정부에서 이런 사정을 알고 뽐프를 놓아주어서야물동이를 팽개치게 되었다구요.그런데 정작 물고생을 덜고 나자 상계리의 고마운 분들이 그리워집디다.물을 긷는다는 핑계로 국경을 넘나들었는데 이젠 세울 명목을 잃은거디요. 동광 마을 김씨가 들려준 국경을 드락거릴 시절의 회고담이다. 북한 땅 상계리와 서쪽으로 마주한 용정리 백금향 안개골에 들어선 백금발전소는 7백리 두만강에서 유일무이한 발전소다.1960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리처 이호성과장이 안개골을 답사하고 발전소 건설구상을 구체화했다.그해부터 착수한 공사는 만 10년이 걸려 지난 1970년 5월부터 정식 발전을 시작했다.그런데 상계리는 조개형국으로 된 언덕이 북으로 뻗어내려 두만강이 병풍처럼 둘러선 두렁바위(둘러선 바위라고 해서 불려진 이름)를 핥으며 10여리를 굽이 돌아간다.강을 따라 전깃줄을 늘리려면 인력과 물력 낭비가 엄청나 사전에 북한측과 협의하고 곧바로 조개언덕으로 전선대를 세우게 되었다.그 보상으로 상계리와 상계리에 있는 북한 공전소에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 ○안개골이 전기골로 백금발전소 퇴직간부 서현석(67·경상북도 영천군 고견면 태생)씨는 『예전에 안개골은 이름 그대로 늘 안개에 묻혀 있었수다.발전소가 세워진 후로 안개골은 별무리가 내려 앉은 격이 되었지.안개골이 전등골로 탈바꿈한 셈이우다』라고 말했다. 누누천년 이 땅을 적시며 흘러온 두만강은 우리 민족의 발목을 잡는 테였다.재난을 덮어씌우고 혈육간의 이별을 주고,그래서 아리랑고개 다음 가는 눈물이 강이 아니였던가! 하지만 반 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창조해온 우리는 끝내 두만강을 정복하고 두만강문화를 창조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문명시대가 열리면서 두만강 푸른 물이 누렇게 혼탁해졌다.그래도 두만강연안 사람들은 여전히 동방예의지국의 배달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백금향 백금촌 제2촌민소조 박길남(함북 무산군 풍경면 소학동 태생)노인을 찾아갔을 때 그 집에서는 꿩고깃국에 햇 이밥으로 후더운 접대를 했다.연변에서 평강벌 입살이 제일미라 만주국시기 공품이었다고 하지만 백금의 입쌀도 못지 않았다.최몽필잠장은 이밥맛이 어떠냐고 묻고는 수입해온 종자라고 부언했다. 『백금은 연변에서 해발고가 가장 높고 서리가 빨리 내려 논벼산량이 많이 떨어지는 땅입네다.그런데 백금 제4촌민소조 분이 어느 해 가을 강을 건너가 조선(북한)논에서 잘 영근 벼이삭을 몰래 가져 왔댔습니다.이듬해 그것을 심었는데 그 품종이 지금 백금에 많이 퍼진겁네다.서리가 빨리오는 고산지대에 맞는 우량품종을 수입 한 걸로 봐주시라요.그 다음부터 좋은 소출을 내게 되고 맛도 훨씬 좋아졌고…』 ○봄이면 과일꽃 만개 지난해 11월 25일 나는 우리 민족의 후더운 정을 한가슴 지니고 용정시 대소 과수농장을 찾았다.시루형국의 두개의 시루봉사이 안침진 곳에 터를 잡고 강건너 오국산성을 바라보며 오순도순 모여 앉은 대소 과수농장은 봄이면 과일꽃속에 묻히고 가을이면 싱그러운 사과향기에 젖어 말 그대로 아름다운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된다.현재 1천7백명의 인구에 4백여명 노동자를 가진 이 농장의 과수밭은 4백50㏊.국광,홍성,진홍,계광 등 20여가지 사과품종의 총산이 4백50만근이라고 했다. 광복전에 대소 땅은 거의가 이씨 성을 가진 지주 차지였다.천성이 부지런한 이씨 지주는 북한땅 길주에서 사과묘목을 사다가 아래 시루봉과 웃 시루봉줄기가 만나는 움푹지고 양지바른 비탈에 심었다.그리고 식구들과 소작인들을 총 동원해서 사과밭을 가꾸었다.사과원을 만들면서 이씨지주의 며느리는 일에 지쳐 죽기까지 했다.이씨지주는 며느리의 묘를 사과밭속에 썼는데 지금도 임자 없는 묘가 쓸쓸히 남아있다.그러나 광복이 나고 공산당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지주를 청산하자 자기가 심은 사과가 열매를 맺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씨지주는 몰래 떠나버렸다. 1964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덕해 제1대 주장이 대소로 시찰을 왔을 때 촌에서는 이씨지주과원의 사과를 대접했다.홍조를 띤 처녀의 볼마냥 탐스러운 사과를 받아든 주장은 대대적으로 사과원을 꾸려볼 구상을 했다.그는 요녕성 개현에서 초빙받아온 과수전문가 관치성(만족)을 대소에 파견하여 농장을 세웠다.이씨지주의 대담한 시도가 없었더라면 오늘 날 두만강변에 사과원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몇해 전에 대소과수농장허경진(46)부농장장이 20여리 떨어진 백금향에 초빙되어 가 30㏊ 땅에 사과나무를 심었지만 매서운 강바람에 겨울을 나면 얼어 죽어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일이 있다. 대소 맞은 쪽 대안 마을은 북한 함북 회령군 상수리다.그들은 강 하나 사이두고 대소에 사과꽃이 만발한 것을 볼 때마다 승벽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어느 해엔가 그들은 대소의 사과묘목을 떠다가 옮겼다.한해 겨울을 났는데 무사했다.신심이 생긴 회령군에서는 과수지도원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하여 시찰을 했다.원래 회령군에는 1천여㏊의 살구나무와 다른 과일나무가 있을 뿐 사과는 없었던 것이다.1985년 가을 대소에서는 묘목을 대량 보내고 이듬해 4월 22일 대소과수 농장에서 관치성,허경진,김수돈(57)등 책임자와 기술자들이 회령으로 건너갔다.그들은 회령군의 6개 이를 순회하며 기술지도를 했고 자동차로 접수를 싣고 가서 접목 등 지도를 해주기도 했다.85년부터 88년까지 4년동안 대소과수농장에서는 묘목과 접수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1988년 회령군에서는 세 상자의 사과를 따가지고 대소과수농장으로 와서 감사드렸다.1993년 여름에는 대소에 친척이 있는 상수 사람이 친척앞으로 편지를 보내 과수농약을 보내달라고 했다.농장지도부에서는 토론하고 밤을 타서 농약상자들을 둘러메고 강을 건너 주었다.이치로 따지면 국경을 사사로이 넘나드는 것은 불법이다.하지만 후더운 인간애앞에서 그런 것들이 때로는 무시되었다.
  • 일,오키나와 미 기지 축소안 제시(월드 뉴스라인)

    【도쿄 AP UPI 연합】 다마자와 도쿠이치로(옥택덕일낭)일본 방위청장관은 18일 오키나와(충승)현 관련 한 회의에서 오타 마사히데(대전창수) 오키나현 지사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현청소재지이며 주일미군 4만6천명중 75%가 주둔하고 있는 나하(나패)시를 오키나와현에 반환하고 그 대신 새로운 항구를 현내 다른 곳에 건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오타지사는 『우리의 궁극목표는 오키나와로부터 미군을 완전철수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그러나 이를 위해 점진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변화시대의 덕목/통찰력·조정력에 전문성 갖춰야(신지도자론:6)

    ◎국제조류 꿰뚫고 세계화 과제 해결 힘써야/시대상황 감안,옛지도자 용퇴선택 바람직/나카소네 전총리,미국 모르면 일본발전 없다”갈파 12년전인 83년1월 어느날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일본총리에 취임한지 두달 밖에 안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를 위해 부시부통령이 만찬을 베풀고 있었다.만찬도중 나카소네는 지난날을 회상하다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그는 『27살의 병사로 미국과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패전하고 반드시 고국을 부흥시키겠다고 결심했습니다.그러나 나는 둘째딸이 11살 되던 해 홀로 미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내 딸을 맡아준 미국인 역시 2차대전에 참전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다 끝내 목이 메고만 것이었다.부시부통령도,배석한 슐츠국무장관과 와인버거국방장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다음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레이건대통령은 크게 감동한 나머지 나카소네를 만나자 서로 「론」 「야스」라고 스스럼 없이 부르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나카소네의 정치리더십이 최선은 아니다.그러나 「미국을 모르고서 일본의발전은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꿰뚫은 통찰력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그가 총리가 된 뒤의 캐치프레이즈는 「전후정치의 총결산」이었다.50년대에 둘째딸을 미국에 보낼 때는 80년대를 내다본 것이고 총리에 올라서는 「미국의 그늘을 벗어난 새 일본」을 외친 것이다.그의 생각은 아직도 일본 정계를 지배한다.일본 정계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의 「일본개조계획」으로 이어지며 일본열도에 공감대를 얻고 있다. 국민 다수가 21세기형 지도자의 대두를 기다리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정치학자는 물론 정치인 스스로도 세계화시대의 가장 큰 덕목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력(비전)」을 첫손으로 꼽는다.20∼30년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없는 지도자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알맞는 국가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서울신문이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 리서치사와 공동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서울신문 28일자 시리즈5 참조)도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미래지향적 비전」을 꼽은 이가 45.8%로 가장 많았다.경희대 오세덕교수는 『비전제시 능력은 앞을 내다보는 직관력과 함께 과거와 현재,미래를 관통하는 분별력을 의미한다』고 했다.외국어대 김인철,단국대 강태훈교수도 『세계화라는 시대과제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꿰뚫고 그것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가 새 정치지도자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시대과제가 무엇인지는 대통령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가 잘 요약한 바 있다.「생명으로 인식해야 할 자원과 환경,미지의 문명을 열어갈 과학기술 정보,지역주의와 다자주의가 혼합된 국제경제 질서」가 그것이다.여기에 분단 반세기를 넘기는 우리로서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지상명제를 하나 더 안고 있다.이러한 미래의 명제 가운데 한두분야 이상에서 전문가에 버금가는 지식을 갖추지 않고는 대통령은 물론,국회의원이 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박종웅의원(민자당)은 말한다. 전문지식을 갖추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정치인의 전형으로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이 꼽힌다.그는 부통령 취임후 초고속정보화계획과 행정개혁을 주도했다.「환경지도자」 하면 그가 떠오를 정도가 됐다.지난해 한때 우리 정계에서는 「고어를 배우자」라는 바람이 일기도 했다.그런 고어도 최선의 대통령감이냐 하는데는 사람마다 견해가 갈린다.현실정치를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전문능력은 좀 뒤떨어지지만 조정력과 협상력이 뛰어나 독일통일의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콜총리도 훌륭한 지도자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미래의 우리 정치지도자도 통찰력,전문성과 함께 조정력을 지녀야 한다.권위주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손학규의원(민자당)은 『앞으로는 지도자가 권력분산을 수용하는 정치개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권력을 공유하면서도 전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인하대 이영희교수도 『새 리더십은 개인적 카리스마 보다는 그룹리더십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인 면에서 우리의 새 지도자에게 또하나 필요한 덕목은 지역감정의 타파와 분명한 진퇴라고 할 수 있다.한림대 김재한교수는 『냉전적 대결구도,지역당 구도를 해결하는 사람이 21세기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화여대 김석준교수는 「기존 지도자들의 솔선」을 요구한다.『급변하는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옛 지도자가 새 유형의 지도자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만 바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무리』라는 것이 김교수의 진단이다.
  • 「정치 대국화」의 집념(일본 21세기 야망:5)

    ◎ODA 무기로 아주지도국 꿈꾼다/중·태·비·인니등에 93년 1백12억달러 차관/막강한 외교력 바탕,아주 집단안보체제 구상/“국제지위 향상에 미도움 필요”… 「워싱턴」 활용 전략 『거대한 경재력은 그 자체가 정치적 영향력이다』 드 골 전 프랑스대통령의 이 말 속에는 유럽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던 당시 서독에 대한 경계가 함축되어 있었다.2차대전 종전 50년.드 골 전 프랑스대통령의 말은 같은 패전국 일본의 오늘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경제적 슈퍼파워 일본이 지금 경제력을 국제정치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보수·우익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일본은 존재 자체가 세계질서에 영향을 줄만큼 거대화됐다」고 말한다.일본의 뉴리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진당간사는 그의 저서 「일본개조계획」에서 『일본은 세계의 대국이 됐다.일본은 대국으로서의 책임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냉전 후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혀야 한다는 변화의 흐름을 나타내고있다.일본은 21세기 대국을 만들기 위해 정치·외교력을 강화하는 적극적인 대외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대외전략의 무기는 일본의 거대한 경제력이며,그중 정부개발원조(ODA)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아사히(조일)신문은 지난 4일 『중국의 양자강 물을 북경까지 끌어오는 세계 최대의 대운하가 건설된다』고 보도했다.그러한 야심적인 중국의 국가사업도 엔차관의 지원으로 건설된다.중국은 93년 일본의 ODA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됐다.그전까지는 인도네시아가 최대의 수혜국이었으나 중국이 93년 13억5천만달러의 ODA를 받으며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했다.인도네시아는 11억4천9백만달러로 2위,그 다음은 필리핀(7억5천8백만달러),태국(3억5천만달러)등의 순위다.한국도 70년도에는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두번째의 많은 ODA(8천6백만달러)를 받았었다. 일본은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과 복지향상,환경·인구·AIDS대책 등 세계적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ODA를 제공하고 있다.이에따라 지구촌 곳곳에는 ODA지원에 의한 각종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그러한 일본의 ODA지원은 89년 이후 계속 세계 1위다.93년 ODA 총액은 1백12억5천8백만달러.일본은 개도국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원조를 위해 93∼98년간 제5차 ODA를 4차(88∼92년)보다 무려 50%나 늘어난 7백50억달러로 책정,추진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ODA는 단순한 원조가 아니다.일본정부는 ODA로 사회간접자본의 건설 등을 지원하고 일본기업은 그 나라에 산업투자를 강화한다.국익을 위해 ODA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ODA는 특히 국제정치무대에서 일본의 외교력을 강화하는 최대 무기다.일본의 과거 침략적 이미지를 엔의 위력을 빌어 좋은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한편 국제적 위상과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외교의 첨병인 셈이다. ODA를 많이 받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 등 아세안 국가들은 일본의 국제적 역할 증대와 유엔상임이사국 진출 등을 앞다투어 외쳐대고 있다.일본의 정치대국화 시나리오의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아시아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ODA는 일본의 아시아 정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그들이 받는 원조의 절반은 일본에서 나오는 엔이다.아시아를 비롯한 개도국 지도자들은 분주하게 일본을 찾고 있으며 도쿄는 많은 개도국에게 차관·원조·투자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일본외교의 또다른 축은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과의 관계이다.일본의 대외전략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일본은 미국의 세계전략 테두리 안에서 보완적 역할을 해왔다.미·일간의 이러한 관계는 옛소련의 팽창주의을 막는 금세기 최강의 안보동맹적 기능을 해왔다.일본은 그러나 경제 뿐만아니라 정치·안보분야에서도 국제적 역할의 확대를 점진적으로 모색해왔다. 미·일동맹관계는 이러한 일본의 국제적 역할 증대의 보호막 기능도 해왔다.미국은 세계 지도국으로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본의 역할증대를 지원해 왔다.그러나 냉전 후 국제질서가 경제중심으로 바뀌며 미·일간에는 안보적 동맹관계가 중시되면서도 경제적 경쟁이 치열해지는 새로운 현실이 나타났다. 양국간의 무역마찰은 좀처럼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세계의 성장센터라는 아시아시장을 둘러싸고 사실상의 경제적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다.일본은 미국이 최대의 시장이며 유엔이나 국제무대에서 지위향상의 지원자 역할 등을 하는 가장 중요한 파트너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일본은 여러분야에서 경쟁상대이지만 국익을 위해 「미국 활용전략」을 추진 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 후 일본에는 미국을 글로벌 파트너로 중시하면서도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일본지도자들은 아시아를 자주 방문하며 아시아판 집단안보체제를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있다.일본은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등 세계정치에서의 역할 증대와 함께 지역 지도국가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외교전략을 적극화하는 것이다.조셉 나이 전 하버드대 교수도 『일본은 에너지를 아시아지역에 적극 투자하는 지역주의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일본의 존재는 국제관계에서의 힘의 개념이 정치·군사적 중심에서 경제력 중심으로 바뀌며 그 중요성이커지고 있다.국제안보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군사력보다는 환경·인구·마약·개발 등과 같은 범세계적인 이슈로 대체되면서 강력한 경제력을 갗춘 일본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일본은 그러한 시대 흐름을 배경으로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주도적 역할을 도모하려는 외교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일본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사물놀이/전통계승넘어 세계음악“자리매김”(한국문화 세계화의길:4)

    ◎해외공연 1천3백회… “완벽한 예술” 찬사/악기 대중화·국제음악제 국내개최 필요 1982년 11월19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 세계 타악인대회장.2시간 남짓 계속된 사물놀이 공연이 끝나자 대회장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속에 묻혔다.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연주자 모리스 랭은 당시 자신이 받은 충격과 감동을 밝힌 편지를 사물놀이의 리더 김덕수(김덕수·43)씨에게 보내왔다.『막이 오르기전 무대위에 달랑 놓인 조그만 악기 4개를 보고 「저걸로 무얼할까」 싶었는데 연주가 시작되고 몇분만에 내 잘못을 깨달았다.정말 감격적이었다.한국에 그토록 복잡한 리듬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 편지 내용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김덕수패 사물놀이가 펼친 해외공연은 1천3백여회.공산권이 붕괴되기전의 동유럽을 포함,안 가본 대륙이 없을 정도다.CBS 소니 폴리그램등 외국에서 만든 음반이 17종,비디오가 3종에 이른다. ○자신있게 내놀 상품 당연히 김덕수패 사물놀이는 한국문화의 세계화의 첨병으로 꼽힌다.우리가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문화상품이 김덕수패 사물놀이인 것이다.해외공연 횟수에서 뿐만아니라 사물놀이에 대한 외국인들의 호들갑스러운 찬사에서 그것은 확인된다.그 찬사는 문화상품으로서 사물놀이가 지닌 힘이 무엇인지도 아울러 보여준다. 『사물놀이는 하나의 사건이다.음악의 심장은 리듬인데 사물놀이는 메트로놈으로 측정할 수 없는 리듬을 갖고 있다』(비터 고든·미국 아시아 소사이어티 이사)『사물놀이의 완벽한 예술적 기교는 나의 말문을 막히게 하였다.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나를 감동시킨 사실은 「세계는 하나」라는 강한 느낌과 음악적인 표현의 불멸의 가치를 사물놀이가 나에게 불러 일으켰다는것,그리고 나에게 진실로 와닿는 「한국의 정신과 리듬」이었다』(볼프 강 슈람·오스트리아 재즈그룹 「레드선」 리더)『그들이 보여준 음악과 춤의 독특한 결합은 세계 드럼페스티벌중에서도 하이라이트였다』(존 와이어·세계 드럼페스티벌 예술감독) 한국어와 영어 및 일본어로 구성된 사물놀이 사진집을 지난 88년 펴낸 일본 사진작가 시미즈 이치로는 편집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소리가 끊기고 경탄과 감동의 소용돌이에 잠긴 유럽인들,숨이 턱턱 막히는 녹색의 더위속에서 웃고 울며 장구를 친 일본 학생들의 얼굴,비구름이 달리고 하늘이 울부짖는 여름비에 흠뻑 젖은 야외의 수천 관중.…나는 전하고 싶다.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사물놀이라는 도깨비의 이야기를』 ○신조어 「사물노리안」 장구 북 꽹과리 징 4개의 전통타악기(사물)로 우리의 얼과 정신을 심고 있는 김덕수패 사물놀이의 세계화 전략은 그 소리처럼 다양하고 힘이 넘친다. 『지난 십수년간 미국 유럽 각지에서 사물놀이 캠프를 열어 왔습니다.사물놀이를 배운 외국인들은 곧 우리문화를 그곳에 뿌리 내리는 전달자가 됩니다.사물놀이를 배운 현지인 1명이 하는 한마디는 한국인 1천명이 하는 천마디보다 한국문화를 알리는데 효과적이지요』 김덕수씨는 해외공연 초청을 받을때 교육프로그램을 50% 포함시키는 조건으로 수락한다고 밝힌다.사물놀이 강습은 외국의 대학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올해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타크루즈주립대학과 샌디에이고주립대학의 초청을 받아 지난 22일 도미했다.사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사물노리안(Samulnorian)」이라는 단어가 외국에서 통용될 정도.국내외의 사물노리안은 약 1만명이다. 사물놀이는 또한 10여년전부터 해마다 평균 2백세트의 사물을 외국에 보내고 있다.줄잡아 2천세트,즉 8천개의 우리 악기를 지금 외국인들이 연주하고 있는 셈이다. 오는 4월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32번가에 상설공연장을 열며 독일 베를린의 종합예술공간 「우파파브릭」의 전용공연장에 상주강사도 파견한다.한국문화원보다는 현지인의 호흡에 맞는 공연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사물놀이의 세계화 방안중 하나다. 사물놀이의 창립단원은 지난 78년 서울 공간사랑에서 「웃다리 농악」을 발표한 남사당패의 후예 김덕수(장구) 이광수(꽹과리) 최종실(북) 김용배(징·작고)씨.원조 사물놀이의 맥을 잇고 있는 김덕수패 사물놀이의 현재 단원은 김씨와 강민석(징)씨,그리고 연주회때마다 2명의 단원이 사단법인 한울림에서 합류한다. ○그시대의 소리창출 김덕수패 사물놀이가 세계음악계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전통을 계승하는 것 못지 않게 그 시대,그 문화가 요구하는 소리』를 끊임없이 개발해 온 데 있다.사물놀이의 레퍼토리는 수백개.우리 고유의 농악이나 무속가락을 연주할 뿐만 아니라 심포니·재즈·현대음악등 다른 장르와의 만남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처럼 국제경쟁력을 충분히 갖춘 사물놀이를 더욱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과 악기제공 차원을 넘어선 보다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창단공연 당시부터 사물놀이와 함께 일해 온 문화기획자 강준혁(스튜디오 메타 대표)씨는 ▲좋은 악기를 만들어 낼 악기공방을 만들고 ▲휴대하기 간편한 개량악기를 개발하여 트라이앵글이나 탬버린 처럼 사물을 대중화 시켜야 하며 ▲관련 국제행사를 국내에서 개최함으로써 이제는 「밖으로 나가는 세계화」가 아니라 「앉아서 세계를 불러 들이는 세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물놀이 국제페스티벌」「세계 북잔치」등을 한국에서 주최하고 사물을 어린이장난감으로도 만들어야 한다는것.일본 NHK의 「실크로드」처럼 우리 방송사가 사물놀이 다큐멘터리를 북방아시아 음악의 뿌리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만들면 방송문화상품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는 사물놀이 단독으로는 해낼수 없는 작업.세계적 명성 덕분에 문화체육부를 비롯,많은 곳에서 지원을 받아 왔지만 외국에 비싼 악기를 보내는 것도 현재 사물놀이에겐 벅찬 형편이다.그러나 정책적 지원과 기업의 과감한 지원이 있다면 「앉아서 세계를 불러들이는 세계화」를 사물놀이는 해 낼 것으로 보인다. ◎독 작곡가 에버라인/개방된 음악 어떤 장르와도 어울려/옆에서 치는게 특징… 세계에 유례없어(인터뷰) 『흔히 사물놀이를 농악에서 발전된 네오­트래디셔널 음악이라고 분류하지만 나는 한국의 뿌리를 가진 세계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악을 서양음악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독일 작곡가 마틴 에버라인씨(28)의 말이다. 『사물놀이가 다른 토속악기와 다른 점은 옆에서 친다는 점입니다.서양 타악기 뿐 아니라아프리카 등지의 민속타악기는 위에서 내리칩니다.따라서 연주자는 중력을 느끼며 항상 비슷한 속도로 연주하고 듣는 사람은 마치 땅을 밟으며 걷거나 뛰는 느낌을 받지요.그러나 사물놀이는 옆에서 치기 때문에 중력과 상관없이 다양한 속도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사물놀이 연주를 들으면 몸이 공중으로 올라가 마치 새처럼 나는것 같은 기분이 들지요』 국제교류재단 장학금을 받아 지난해 5월부터 서울에 머무르며 「사물놀이를 바탕으로 한 마림바 협주곡」「청산은 내뜻이요…」등을 발표한 바 있는 그는 『사물놀이의 또 다른 특징은 개방된 음악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한다.『얼마전 사물놀이와 유럽 재즈그룹 레드선과의 공연에서 봤듯이 어떤 장르와도 어울릴 수 있는 여유를 사물놀이는 갖고 있어요.사물놀이는 악기끼리 서로 대화하며 다양한 감정으로 말합니다』 사물놀이의 이런 특성이 바로 사물놀이의 세계성을 뒷받침한다고 그는 분석한다.에버라인씨는 뮌헨대학과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 21세기 선진한국 이끌 리더십(신 지도자론:1)

    ◎새시대는 「세계경영 비전」 요구한다/정치권의 세계화/국경없는 변화 조류 대응력 갖춰야/세계 10대부국 걸맞는 리더십 긴요 대망의 21세기가 5년 앞으로 다가왔다.그리고 21세기를 여는 전환시대는 새로운 지도자들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그것이 역사의 순리요,시대정신이라는 데 인식이 일치한다.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과학기술 능력을 갖춰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이제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구도식 후진적 정치리더십은 더이상 존재가치를 잃어버렸다.때문에 새로운 정치리더십의 유형을 정립하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발전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세대교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가 크다면 새로운 지도자의 육성을 위한 노력도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새로운 리더십의 대두 필요성을 점검하고 정치권의 세계화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엮어본다. 1998년 2월 25일.이날 상오10시 서울 여의도 의사당에서는 제15대 대통령취임식이 열린다.신임대통령은 화려하고 장엄한 의전국악 「만파정식지곡」의 영접을 받고 21세기를여는 첫 대통령으로서 역사적인 취임사를 할 것이다.세계 10대 부국으로 부상한 새로운 한국을 이끌어갈 이날의 주인공은 어떤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여야 할까. 민자당 김종필대표의 퇴진과 민주당의 당권투쟁이 이같은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있다.이와 관련,정치학자들은 주저 없이 뉴 리더십을 촉구하고 나선다.세대교체론이 나오고,김윤환장관 같은 이는 「70세 정치정년론」도 편다. 논의의 전제는 3년 뒤 한국과 세계의 변화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여기서부터 뉴 리더십의 당위성과 덕목이 추론되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지도자의 변화를 가져왔다.시대는 그에 맞는 새로운 인물,새로운 덕목을 요구하게 마련이다.물론 생물적 연령이 평가기준일 수는 없다. 이승만과 서독의 아데나워는 모두 73세에 대통령과 수상이 됐다.이승만은 독립운동의 영웅이었고 아데나워 또한 반 나치운동 지도자로 건국의 적임자였다.전후 16년동안 경제장관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에르하르트가 독일 총리에 오른 것도 67세 때였다. 미국의 개성파 세 대통령의 등장과정을 보면 시대상황과 리더십간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잘 읽을 수 있다. 40대의 무명 케네디는 아이젠하워 정권서 8년동안 부통령이었던 닉슨을 압도하고 대통령이 됐다.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따른 미국 국민의 초조감과 새로운 미국을 바라는 요구가 뉴 프론티어의 상징 케네디를 불렀다.은퇴한 닉슨은 그러나 8년 뒤 텍사스 카우보이 존슨을 꺾고 대통령에 취임한다.월남전의 확전에 따른 반전무드가 노련한 전략가 닉슨을 요구했던 것이다.늙었으나 강력했던 캘리포니아주지사 레이건이 이상주의자 카터를 누른 힘도 강력한 미국을 원하던 시대상황이었다. 정부는 93년 세계 12위에 오른 우리의 국민총생산량(GNP)을 98년에는 세계 10위로 전망하고 있다.지난해 8천달러로 추정되는 국민 한사람앞 GNP도 그때면 1만4천76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수출은 1천3백60억달러,경상흑자도 53억달러로 교역규모 역시 세계 10위.이 전망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은 한국이 초기선진국임을 의미한다.이 수치들은 연간 성장률을 7%로 전제한 것이다.지난해 우리의 성장률이 8.3%에 이른 역동성을 감안하면 매우 겸손한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로 압축되는 변화의 물결은 경제만이 아닌 정치 사회 문화 모두의 국경을 없애고 있다.국내정치는 세계정치에 편입되고,세계정치는 국내정치의 연장선상에 놓일 것이다.전문가들은 지역통합의 가속화를 예견한다. 국내외의 변화는 리더십의 변화를 수반하거나 추구하게 마련이다.『세계의 변화와 정보에 즉각 대응해야하고,세계문제와 더불어 국가생존 전략을 모색해야한다』(김충남 정치학박사·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의 저자).새 대통령은 남부지방의 가뭄에 대한 관심과 같은 심도로 세계의 공해 핵무기 마약 난민 에이즈 같은 전문적이고 국제적인 문제에 대한 결정을 요구받게 마련이다.연례화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나 오는 3월 덴마크에서 열릴 사회개발정상회의는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는 구체적 사례들이며 서곡들이다. 지난 90년 걸프전 때 일본의 리더십은 심각한 내부비판을 겪었었다.다국적군의 전비로 1백20억달러를 내고도 전쟁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탓이다.일본 언론은 국제화하지 못한 지도자들에게 화살을 돌렸다.정치학자들은 일본이 경제력에 걸맞는 대우를 못받는 이유의 하나로 「파벌정치」의 낙후성을 들었다.이같은 반성에 따라 도모토 아키코(당본소자)가 미국인 비서를,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가 영국인 비서를 두는 등 의원들이 외국인 비서를 잇달아 채용하고 있다. 이화여대 김석준교수는 『국가경영 기술,전문분야에 대한 안목과 비전을 지닌 사람만이 미래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새로운 리더십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21세기는 정보화·인간화·세계화의 사회로 정의된다.거기에 우리는 통일이 추가된다.권력정치,갈등과 대립,소비의 정치가들이 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서울대 김광웅교수는 「고도의 전문성과 공인정신」을 새 지도자상으로 꼽는다.숙명여대 이남영교수는 사회통합·경영·미래예측 능력을,이상희 대통령과학기술자문위원장은 멀티미디어의 「카라얀」을 새 지도자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른바「3김구도」는 산업화와 민주화란 국가목표를 함께 이루는데 성공했다.대립구도가 국가발전에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그러나 민주화나 산업화가 선진국 수준에 올라선 오늘에 와서도 이 구도가 재현되는 듯한 모습에 대해서는 국민적 우려가 높다. 선진국 초입에 들어서는 21세기를 앞두고 국민들은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 집요한 유엔외교(일본 「21세기 야망」:4)

    ◎엔화 앞세워 안보리상임국 진출노린다/유엔헌장 개정회의서 상임국수 늘리기 로비/비용분담금 12% 넘어… 갈리총장도 호의적/“정치대국화” 우익 지식인들 앞장… 일 국민 56%가 찬성 여론 『패전국 외교는 50년간 침묵한다』영국 외교관들이 잘 인용하던 말이 지금 지구 반대편 아시아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일본이 패전 50년간의 오랜 침묵을 깨고 국제정치적 파워로서의 등장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 침묵을 깨는 소리는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일본의 전후 경제지상주의와 평화주의 한시대를 마감하는 조종의 소리로 들려온다. 일본은 지금 경제지상주의로 축적한 힘과 국제무대에서의 왜소한 정치적 파워의 불균형을 깨기 위해 「사무라이의 칼」을 뽑고 있다.경제적 파워에 걸맞는 정치·외교적 영향력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그 야망의 결정체가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일본외무성의 총합외교정책국은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시나리오와 함께 21세기 정치대국 일본의 위상을 구상하고 있다.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은 외무성 기관지 「외교포럼」 신년호에서 『글로벌 협력이라는 일본외교의 큰 좌표축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일본은 유엔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노 외상의 이러한 발언은 일본 외무성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상임이사국 진출을 꾀하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자민당 총재인 고노 외상은 각료가 되기 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며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그는 오자와 이치로 신진당간사등의 적극적인 국제공헌론과 보통국가론을 「신국가주의의 대두」라고 강력히 비난했었다.그러나 그러한 고노 자민당총재도 외무성에 들어가자 관리들이 추진하는 정치대국화의 큰 흐름에 합류되고 있다.보수·우익 정치인,지식인들은 관리들보다 앞서서 정치대국화의 나팔을 불고 있다.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은 일본외교의 최대 목표다.1995년은 일본의 패전 50주년인 동시에 유엔 창립 50주년이기도 하다.유엔은 50주년을 맞아 헌장개정등 기구개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를 활용,상임이사국의 야심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일본 사회에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유엔분담금을 내는 일본이 당연히 안보리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확산되고 있다.일본의 유엔분담금(93년)은 12.45%로 미국(25%)다음이고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중국등 3개국을 합친 액수보다도 많다.유엔도 든든한 물주 일본이 필요하다.냉전 종식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민족분쟁등이 발생하면서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돈이 모자라기 때문에 일본의 엔화가 필요한 것이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자주 일본을 방문하여 유엔상임이사국이 되고 싶은 일본의 야망을 대변하고 있다.그는 더 나아가 일본은 유엔평화유지군에 참가하기 위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역설한다.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대합창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엔블록이 형성된 아세안국가에서도 들려온다.그렇다고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서는 상임이사국의 수를 늘리는 유엔헌장개정과 기구개편이 필요하다.그러나 헌장개정은 모든 상임이사국과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결코 쉽지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일본과 독일에 주어진 적국조항도 없어져야 한다.강대국들의 정치적 역학관계도 미묘하다.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국론도 아직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반대하는 세력이 적지않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는 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최근 총리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6%가 상임이사국 진출을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회당의 반대속에 지난 92년 만들어진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은 일본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PKO협력법은 상임이사국 진출의 교두보이며 군비증강의 명분을 제공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은 PKO협력법을 바탕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평화유지활동을 적극화하고 있다.평화유지활동은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한 실적을 쌓아가는 중요한 과정인 동시에 과거 군국주의적 이미지를 평화주의 이미지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일본은 생각하고 있다.자위대가 거의 반세기만에 다시 아시아대륙에 상륙하고 그 활동범위를 세계로 확대하고 있지만 군국주의의 상징인 일장기는 평화의 상징인 유엔깃발 아래 묻히고 있다.일본은 이 때문에 냉전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유엔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다.유엔은 평화라는 이름아래 정치·군사력의 증강을 꾀하는 일본의 야망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유엔은 걸프전이후 그 위상과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현실주의자들은 여전히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상주의자들은 신질서는 유엔중심의 세계공동체 형성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이같이 유엔의 역할이 증대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국제정치의 결정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패전국이 반세기만에 세계적 정치대국이 되는 것이다. 일본사회에는 상임이사국이 되기전에 과거 침략사의 청산으로 아시아국가들의 불신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않다.그러나 그러한 양심의 소리는 경제적 슈퍼파워와 국제정치력을 모두 갖춘 강대국,새로운 일본의 등장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거추장스럽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시간의 문제이며 우리하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새로운 현실에 대한 대응 전략이다.
  • 외국 원조제의 밀물/일정부,거절에 “진땀”

    ◎지진구조 장비·기술 충분/“호의 무시” 오해살까 걱정 지진피해 지역의 구조·구호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일본이 국제사회의 원조 제공 의사에 당혹해 하고 있다. 19일까지 원조제공 의사를 표명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14개국.웬만한 나라라면 얼른 원조를 받아들이겠지만 일본은 지금 원조를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중이다.도쿄신문은 일본 정부가 원조를 준 적은 많지만 원조를 받는 일에는 미숙한 것도 이유중의 하나라고 분석한다. 원조대 파견과 관련,일본 정부가 가장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은 주일미군.클린턴 대통령은 지진이 발생하자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에게 직접 『요청이 있다면 주일미군의 출동에 응하겠다』면서 도움의 손을 뻗었다. 일본 정부로서는 자위대로 충분하다고 보고 있을 뿐 아니라 말도 잘 안통하고 지휘계통도 잘 서지 않아 구조활동에 혼란만 주게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필요없다고 거절하면 국제사회에서 「모난 행동」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다마자와 도쿠이치로(옥택덕일낭)방위청장관은 18일 『(주일미군의 출동은)우리로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지진지역에는 자위대원 7천여명을 포함한 2만9천명의 구조대가 활동하고 있다.과거 최대 규모다.다마자와장관은 『이 규모로 부족하다면 증파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방위청의 한 고위간부는 『일본은 태풍·지진등 자연재해가 많아 구조활동에 대해 자위대가 갖고 있는 기자재와 노하우의 수준은 상당한 수준』이라면서 『현장에 투입된 자위대원들의 사기도 높다』면서 자력구조를 강조.
  • 정치판도 우경화(일본 「21세기 야망」:3)

    ◎“유리한 국제질서 창조” 신보수주의 대두/해외파병 제약 평화헌법 개정론 점차 확산/오자와 등 뉴리더들,“권력집중” 양당제 구상/무라야마 등장,사회당 해체 앞당겨 역사에 적응력 과시 『일본으로부터 미국에 좋지않은 두가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달러하락과 사회주의 총리의 등장이라는 뉴스입니다』 일본에 사회당총리가 탄생한 다음날인 지난해 6월30일 미국의 NBC TV방송이 도쿄발로 보도한 뉴스다. NBC방송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위원장이 일본총리로 선출된 것을 이같이 미국에 나쁜 뉴스라고 보도했다.뉴욕 타임스도 같은날 『사회주의자가 일본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미·일안보조약을 부정하고 냉전시대 「거대한 악」이었던 사회주의자가 아시아 동맹국 일본의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며 미국에 나쁜 뉴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지않은 뉴스의 더 심오한 의미는 사회당위원장이 총리가 된 오늘의 정치상황이 아닌 다른 차원에 있을지도 모른다.무라야마 총리의 등장은 사회당의 몰락을 앞당기고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의 강화를 촉진하며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조금씩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본의 거시적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무라야마 위원장도 자신의 총리선출이 사회당의 몰락을 촉진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해서일까 당시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사회주의의 퇴조라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을 역류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역류가 아니라 일본의 놀라운 역사의 적응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일이다.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국제공헌이라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따라 전후 반세기동안 1국 평화주의와 경제지상주의를 표방했던 사회당의 퇴조를 가속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회당의 퇴조와 함께 일본에서는 미국의 보수화 회귀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그것은 일본정치의 총보수화라는 거대한 정치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보수화가 일본정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나카소네 내각의 등장 때라 할수 있다.그는 저서 「새로운 보수의 논리」에서 『지금은 국내경제본위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욱 넓은 세계를 향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그것은 곧 보수통치의 부활이다』하고 역설했다. 안으로는 보수화,밖으로는 대국화를 지향하는 나카소네 전총리의 이러한 보수정치와 「전후정치의 총결산」 외침은 2차대전전 일본의 전통적 가치였던 국가주의와의 연속성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그러나 전후 교육을 받은 뉴리더들의 신보수주의는 천황제나 신도사상등 복고주의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그들은 국제적 변화에 대응 일본도 국가개조를 하여야 한다는 현실주의자들이다.오자와 이치로 신진당 간사장,하타 쓰토무 전총리등 뉴리더들은 극우파의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르다.그들은 일본 국왕을 신으로 보지 않으며 군사력으로 현대판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여야 한다는 극우파의 제국주의적 환상도 거부한다. 현실주의적 신보수주의자들은 오늘의 일본은 국제적 책임과 권리가 동시에 커졌다고 인식하고 있다.막강한 경제·산업·기술력을 갖고 있는 일본은 과거와는 달리 국제질서에 순응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에서 일본에 유리한 국제질서를 창조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논리다. 전후세대들은 물론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침략과 패전의 아픔보다는 성장과 풍요로움만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은 민족적 우월감과 자신감에 도취하여 또다른 패권의 유혹을 받을지 모른다.그러한 우려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보수주의 뉴리더들의 군사적 국제공헌론과 일본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국화 의식」에서 읽혀진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냉전후 국제상황에 맞지않는 국내체제를 무너뜨리고 다이내믹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 정치개혁을 단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의 선거개혁이다.소선거구제가 도입됨에 따라 일본정치는 2대 정당제로 재편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당·공산당등 혁신세력은 설땅을 잃어가고 있다.오자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 일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력집중형 양당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신보수주의자들이 그리는 일본의 국제화·대국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하나 남아 있다.헌법의 개정문제다.평화헌법은 교전권과 집단자위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약하고 있다.물론 지금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되고 있다.그러나 훨씬 더 적극적인 해외파병과 군사력 증강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 일본의 개헌은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50%를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아직은 「평화주의 유토피아」에서 안주하려는 세력이 강하다.그러나 평화헌법은 미군점령기의 굴욕적 유산이라는 민족주의자들의 외침속에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최대의 평화헌법 수호자인 사회당은 그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헌법을 바꾸는것은 일본이 강요된 속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한 과정일지 모른다.일본이 언제까지나 평화헌법 틀안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역사인식이다.일본은 본래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그러한 변화는 그러나 아시아인들에게는 불길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진다.그것은 역사적 체험 때문이다.일본방위아카데미 책임자를 역임한 온건보수파 지식인 마사미치 이노키도 『평화헌법의 개헌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나머지 마귀들이 모두 튀어나와 밤공기를 어지럽히는 사태와 같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 「일본개조론」의 표와 이(일본 「21세기 야망」:2)

    ◎「보통국가」 내세운 군사대국화 집념/“군 없는 경제력은 허상” 자위대 위헌론 종식/“「평화헌법의 구속」 벗어나자” 민족주의 대두/“힘 있을때 밝으로 뻗어야”… 섬나라 본색 드러내 일본의 21세기 구상.대학에서 첨단 과학·기술연구소에서, 정치판에서 열띤 논쟁으로 때로는 은밀한 전략으로 논의되고 있는 21세기 일본개조론.일본은 21세기를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다.경제신화로 세계정상에 올라서며 민족주의적 주체성과 자신감을 되찾은 새로운 일본은 21세기로 다가가 이를 자신들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국가개조론은 밖으로는 냉전의 종언이라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과 안으로는 38년간의 자민당 일당지배가 막을 내린 중대한 정치적 전환기를 맞아 활발해졌다.세계사 변화에 대응,새로운 일본을 만들어야한다는 대합창이다.그 대표적인 일본개조 구상이 주목받는 뉴리더 오자와 이치로 신진당 간사장의 「보통국가론」이다.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공헌하지 않으면 안될 일본이 안전보장을 국제공헌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안전보장면에서도 오늘의 일본에 어울리는 국제공헌을 할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자와가 그의 저서 「일본개조계획」에서 말하는 보통국가론이다.일본도 평화헌법의 구속에서 벗어나 국익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군사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다.경제력뿐만이 아니라 군사력도 외교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변화하는 일본의 실체다. 그러나 국가개조론은 오자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일본개조계획」은 그의 이름으로 발간됐지만 오자와는 서문에서 각 부문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책이 완성됐음을 밝히고 있다.보통국가는 많은 지식인·전문가들이 그리는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모습인 것이다.「일본개조계획」은 더욱이 정치서적은 팔리지 않는다는 출판계의 불문율을 깨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반국민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일본서점에서는 그밖에도 「책임있는 변혁」,「21세기비전 일본의 개혁」,「하이테크국가 일본의 선택」등 일본의 대변혁을 역설하는 많은 책들이팔려나가고 있다. 일본개조론은 93년8월 자민당정권이 무너지고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의 연립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열도의 거대한 흐름으로 나타났다.일본은 마치 국가개조라는 거대한 용광로로 빨려들어가는 듯했다.그러나 지금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오자와가 창출해낸 연립정권이 무너지고 지난해 6월 자민·사회당 연립정권이 등장하면서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국가개조론은 잠시 잠복하고 있다.평화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위원장이 총리가 되고 「작은 일본」을 지향하는 고노 요헤이 자민당총재가 외상을 맡게 되자 일본은 마치 평화주의 유토피아로 회귀하는 듯하다.일본내에는 실제로 자위대가 해외에서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1국 평화주의」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게 현실이다. 그러나 무라야마 총리의 등장은 일본내에서 가장 강력한 평화주의 집단인 사회당의 몰락을 역설적으로 예고하고 있다.사회당은 학교에서 국가를 부르거나 국기에 대한 경례조차도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이라고 강력히 반대했었다.그러나 무라야마 위원장은 총리가 되자 그토록 반대하던 자위대 존재에 대해서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사회당은 전후 반세기 동안 맡아온 평화주의 지향의 역사적 임무를 마치고 이제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평화주의는 일본을 약하게 만들었다』 국가개조의 이론 제공자인 지식인들과 변혁의 선두에 선 정치인들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그러나 전후 일본의 시대적 흐름이었던 평화주의에도 그 밑바닥에는 민족주의가 면면히 흘러오고 있었다.평화주의와 「군사력 없는 경제발전」 모델은 일본의 궁극적인 국가 목표가 아니라 시대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 군사력 없는 경제발전 모델을 선택한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그의 저서 「세계와 일본」에서 『당시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은 경제적·사회적·사상적으로도 불가능했다.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언제까지라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전후 일본이 경제부흥에 에너지를 집중투자하는 전략을 선택했듯이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세계에 퍼져있는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대전환하고 있다.냉전후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족분쟁은 일본 안보와 자원 확보및 시장 접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뉴리더들의 공통된 현실인식이다. 뉴리더들은 그러나 밖으로만 눈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그들은 내부개혁도 병행하고 있다.자민당 장기집권아래 구축된 관·민협조체제의 이른바 「일본주식회사」의 부정적인 면을 개조하고 있는 것이다.생산자 중심의 관·민협조체제는 냉전시대에는 매우 유효한 냉전대응형 구조였다.그러나 막대한 무역흑자를 가져온 관·민협조체제는 냉전이 끝나고 경제가 세계질서의 중심이 되면서 일본 폐쇄성의 상징으로 미국을 비롯한 무역적자국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철저한 실용주의자들인 뉴리더들은 미국등과의 더이상의 마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 좀더 열린 「일본주식회사」를 지향하는 몸짓을 하고 있다.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내부개혁은 더욱 강력한 세계전략을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일본은 힘이 있을 때마다 밖으로 눈을 돌렸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일본의 외부지향 움직임은 미국이 경제적 자신감 상실로 국내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과 맞물려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일본은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중시하고 있지만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뉴리더들은 미국을 지원하는 지금까지의 「2차적 역할」에 만족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한 뉴리더들이 그리는 일본 개조의 완결편은 21세기 대국이다.국가개조는 일본이 아직은 강대국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새로운 일본은 급변하는 세계변화에 대응할수 있는 기동력 있는 국가건설를 지향하고 있다.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일본은 21세기 어느때 아시아에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대항세력이 될지 모른다.그때 일본은 오자와가 구상하고 있는 보통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예측한다.일본의 보통국가는 군사대국으로 가는 길이다.
  • 일 방위예산 증가율 0.855%로 억제/35년만에 최저

    【도쿄 교도 연합】 일본 대장상과 방위청장관은 18일,95회계연도 방위예산 증가율을 35년만에 최저수준인 0.85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고 대장성관리들이 이날 밝혔다.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장상과 다마자와 도쿠이치로(옥택덕일낭)방위청장관은 이와 함께 탱크및 제트전투기 등과 같은 전선(전선)장비를 위한 예산도 6.5% 줄여 8천2백50억엔으로 제한키로 결정했다.
  • 경수로 일 분담 반대/오자와 신진당간사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 최대 야당인 신진당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간사장은 18일 북한의 경수로 2기 건설을 위한 일본의 자금협력에 대해 『북한 핵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막대한 양의 국민세금을 지출해서는 안된다』고 말해 명백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 일 거대야당 신진당 출범/가이후당수,총선 촉구

    ◎9개당파 의원 2백5명/원내 제2세력으로 부상 【도쿄=강석진특파원】 공산당을 제외한 일본의 야당 9개 당파가 결집한 신진당이 10일 하오 요코하마에서 창당대회를 갖고 자민당에 이은 제2당으로 공식 출범했다. 신진당의 출범으로 일본은 보수양당제로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신진당은 자민당에 이은 원내 제2세력으로 향후 정계 재개편을 앞두고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진당 창당대회는 앞서 양원 의원총회에서 선출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당수와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을 정식으로 승인하는 한편 신당 준비위원회가 결정한 부당수 임명도 추인했다. 가이후 당수와 오자와 간사장은 창당대회에 앞서 열린 준비위원회에서 당수 선거에서 패배한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총리와 요네자와 다카시(미택륭) 전민사당위원장 및 이시다 고시로(석전행사랑) 전공명당위원장을 각각 부당수로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정책심의회장에는 나카노 간세이(중야관성) 전민사당서기장,정무회장에는 이치카와 유이치(시천웅일) 전공명당서기장이 각각 임명됐다. 가이후 당수는 이날 연설을 통해 『정권탈환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당의 단합을 호소했다. 창당대회는 또한 「자유,공정,우애,공생」을 표방한 당강령과 국제화,규제완화등 행정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당면의 중점정책」을 공식 결정한뒤 「제3의 개국」을 향한 결당선언을 채택하고 폐회했다. 신진당에는 신생당과 공명당,일본신당,민사당,자유당,고지회,신당 미래,구개혁회,리버럴회 등 9개 당파와 참의원 무소속의원 2명이 참여해 중의원 1백79명,참의원 36명의 세력을 이루고 있다. 한편 가이후 당수는 이에 앞서 9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자민·사회·신당 사키가케로 구성된 연립정권은 국민의 심판을 받지 않은 만큼 빠른 시일안에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민·사회당 재편 촉진제/신진당 출범의 파장/내년 소선거구제 실험거쳐 정계 정비/좌파 분열땐 보수양당제 구도 가시화 일본 공산당을 제외한 야당세력이 10일 신진당을 출범시키면서 일본 정국이 과연 어디로 나아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진당은 정권을 탈환할 수 있을 것인가.사회당은 제3극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자민당은 단독정권을 세울 만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내년봄 치러지는 통일지방선거와 8월의 참의원 선거 결과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신진당이 창당되고 소선거구제 법이 성립됐는데 과연 중의원 선거는 언제 치러질 것인가 등등.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다.특히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있게 전망하지 못한다.다만 몇차례의 선거를 통해 차츰 보수 양당제로 정리돼 나갈 것이라는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데는 의견이 모아진다.사회당이 내분을 극복하고 신임을 회복한다면 물론 3당 정립의 가능성도 남아 있기는 하다. 일본 정치사에 등장한 정치슬로건이 많지만 지난 89년부터는 「정치개혁」이 대표적 정치슬로건이었다.금권·파벌정치 때문이었다.이제 일본 정치는 금세기의 마지막 10년동안 변화의 시기를 거쳐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이러한 대계기를 앞두고 각당의 사정은 복잡하다. 정계 개편의 최대 관심은 사회당의 운명.당의 발전적 해체 후 민주리버럴 신당을 만들자는 우파와 무라야마(촌산부시)정권 유지와 자민당과의 선거협력을 원하는 좌파의 싸움이 당 분열 일보직전까지 가 있다.만약 분열된다면 순식간에 지리멸렬할 전망이고 신당을 만들면 어느 정도 생명을 부지할 가능성이 높다.하지만 여론조사는 민주리버럴 신당에 대한 관심조차 10%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나 여전히 어려운 국면이다.일부에서는 몇차례 선거를 거쳐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자민당은 요즘 자신을 회복하고 다음 선거 준비를 가장 착실하게 진행시키고 있다.탈당 예비군이 없지 않지만 정권 복귀 후 구심력을 회복했다.내년도 예산을 한번 더 짤 수 있다면 신진당의 생명력을 상당히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무라야마정권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중의원 선거는 내년 가을 이후 치르겠다는 구도다.고노(하야양평)자민당총재 등은 9일 무라야마 총리와의 회담에서 내년 예산에 무라야마정권의 색채를 많이 반영키로 양보하면서정권유지에 의욕을 보였다. 신진당은 창당에도 불구하고 기세가 오르지 않고 있다.지난해 호소카와(세천호희)정권 탄생 때 같은 흥분은 찾아 볼 수 없다.몇차례 밥상에 올랐던 반찬(얼굴)들 뿐이다.신진당은 창당 일성으로 조기총선을 주장하고 나섰다.자·사연합을 흔들기 위한 것이다.또 사회당 우파의 분리를 통해 자·사연합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회당 우파에 계속 바람을 집어넣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그러나 오우치 전민사당위원장이 신진당 합류를 거부한데서 보듯이 지역구 사정에 따른 탈당예비군이 적지 않다.오자와에 대한 반감도 당내에는 꽤 번져 있다. 결국 정계 재개편을 가져올 중의원 선거는 내년 가을 이후 치러질 전망이 우세하다.그에 앞서 치러지는 참의원선거에서 자·사 연립정권이 크게 패배할 경우 총선은 당겨질 것이다.소선거구제로 치러지는 중의원 선거를 통해 일본 정치인은 걸러져 나가고 정당들의 위상도 정리돼 나갈 것이다.합종연형의 가능성도 폭넓게 열려 있다.신진당의 창당은 정계개편의 종결이 아니라 보다 큰 개편을 향한 시작이다.
  • 일 신진당수에 가이후/간사장에 오자와 선출

    【도쿄 연합】 공산당을 제외한 일본의 야당들이 오는 10일 창당할 신진당 당수에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전총리,간사장에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를 각각 선출했다. 신진당 창당준비위는 당초 당파간 협상에 따라 당수를 선출할 예정이었으나 후보자들이 출마를 포기하지 않아 8일밤 가이후 전총리와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총리,요네자와 다카시(미택륭) 민사당위원장등 3명을 놓고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결과 2백14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가이후 전총리는 1백31표,하타 전총리는 52표,요네자와 위원장은 31표를 획득해 1차투표에서 가이후 전총리가 당수로 결정됐다. 간사장에는 오자와 신생당대표간사만 출마해 무투표로 자동확정됐다. 신진당은 당수를 비롯한 간사장등 주요당직이 결정됨에 따라 창당작업을 급진전시켜 10일 요코하마에서 창당대회를 갖고 공식출범한다.
  • 신진당출범/일 정계 총보수화 신호탄

    ◎내일창당… 정강과 열도 정국 전망/의원 180명… 소선거구제 생존위한 선택/개혁이념 부재… 「자민아류」 극복이 과제 일본 공산당을 제외한 야당이 모여 10일 창당하게 되는 신진당은 「제2의 자민당」이다. 신진당은 자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신생당,자유당,신당 미라이,가이후전총리 지지세력인 자유개혁연합,일본신당,공명당은 물론 34년전 사회당과 갈라졌던 민사당까지 포괄한다.야당들이 하나의 당으로 쉽게 결집하게 된 것은 최근 도입하기로 된 소선거구제 때문이다.난쟁이 당의 후보로서는 당선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하나로 뭉친 것이다.신진당의 창당은 지난 55년 자민당과 사회당의 두 기둥으로 세워졌던 일본 정계의 기존 구도가 완전히 깨졌음을 상징한다. 신진당이 내세우는 정책은 자민당과 차이가 거의 없다.주요 당 간부들도 자민당 출신들로 짜여 있다.특히 자민당 다케시타파 출신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간사장은 조직과 자금을 한 손에 장악한 실력자중 실력자다.신진당은 그를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오자와당」으로서 정치행태도자민당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도 하다.자민당 복사판이다. 오자와는 가이후의원이 자민당소속으로 총리를 하고 있을 때 자민당의 간사장이었다.그는 파벌내 항쟁에서 기세가 꺾이고 마침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거세게 불자 자민당을 떠나 신생당을 만들었다.그는 야당연립정권을 세워 자민당을 야당으로 밀어내고 흔들었다.자민당으로부터 많은 이탈세력이 나왔다.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당이 이탈,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세움으로써 자민당이 정권에 복귀했지만 이제 1백80여명의 의원으로 거대 야당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일본 정국이 자민당의 막후 실력자인 다케시타전총리와 오자와 신진당간사장의 대결로 압축됐다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신진당은 정치개혁의 흐름속에서 태어났지만 지금까지 보인 인선 및 정책비전은 개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선 밀실정치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당수 결정과 관련 결국 하타·가이후·요네자와의 선거로 결착되기는 했지만 오자와간사장이 마음에 두고 있는 가이후전총리를 단독 후보로 만들기 위한 물밑작업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근대적인 정당으로서 당내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보다는 파벌정치에서 몸에 밴 밀실조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밀실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실력자인 오자와의 뜻에 반해 하타전총리가 출마하자 하타·오자와 라인이 붕괴된 점도 밀실체질의 반영이다. 정책은 「새로운 일본의 창조」,「뜻있는 외교로 세계평화와 안정」,「생활자가 안심할 수 있는 복지와 풍요로움」,「신산업문명의 창조와 공생사회」 등을 내세우고 있다.지난 2·3개월동안 자민당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 헌법개정논의를 터부시하지 않는다든지 유엔의 개혁을 추진(상임이사국진출 의사의 다른 표현)한다는 내용 등을 포함시키고 있으나 자민당의 기존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이미 추진되고 있는 내용이다. 민사당과 공명당부터 자민당 이탈자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탈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두루뭉수리하게 정책을 표방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력하게 어필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이러한 정책과 이념의 부재는 임시국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대안부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국 신진당의 출현은 사회당의 정책전환과 함께 총보수화,총여당화하는 일본 정치변화를 상징한다.
  • 일 신진당 당수 3파전/가이후·하타·요네자와 입후보

    ◎간사장 오자와 확정 【도쿄 연합】 일본 공산당을 제외한 전야당이 참여해 통합 결성하는 신진당은 당초 대화에 의해 당수를 선출하려던 계획이 실패함에 따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전총리,하타 쓰토무(우전자)신생당 당수(전총리),요네자와 다카시(미택륭)민사당 위원장 등 3명의 후보에 대한 투표로 담판을 보게 됐다. 7일 고시한 신진당 초대 당수·간사장 선거에는 당수에 하타 전총리·요네자와 민사당 위원장,가이후 전총리 순으로 3명이 입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간사장에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 대표 간사 이외에 후보자가 없어 오자와 대표 간사의 간사장 취임이 사실상 확정됐다.
  • 재처리 플루토늄 일본,4.7t 보유/정부 원자력백서

    【도쿄 로이터 연합】 일본정부는 최근들어 플루토늄을 다량 축적함으로써 핵무기제조 의혹이 커지고 있다는 각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사상처음으로 재처리된 플루토늄을 작년말 현재 약 4.7t 보유하고 있다고 25일 공개했다. 일본 과학기술청의 이즈미 신이치로(천 신일낭) 원자력조사실장은 이날 과기청의 핵에너지에 관한 연례백서를 발간하면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핵연료재처리 계획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재처리 또는 분리된 상태의 보유 플루토늄양에 관한 상세한 수치를 인쇄물을 통해 공개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 러·일 국방장관회담/내년 1월 모스크바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일본 북방 4개 도서 영유권 문제로 분쟁을 거듭해온 러시아와 일본은 내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역사적인 국방장관 회담을 열 가능성이 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블라디미르 주렌코 러시아 총참모부 제1참모차장의 말을 인용,양국 국방관리들이 다마자와 도쿠이치로 일본 방위청 장관의 러시아 방문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주렌코 제1참모차장은 『우리는 오는 95년 일본 방위청 장관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을 배제하지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타르타스 통신은 일본 방위청 장관의 방문이 내년 1월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양측간의 회담이 이루어질 경우,양국관계에서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국방장관 회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일·러 내년 사상 첫 국방회담/교도통신 보도

    ◎북·중국 핵무장 대책 논의 【도쿄 연합】 일본의 다마자와 도쿠이치로(옥택덕일낭)방위청장관은 내년 1월 러시아를 방문해 파벨 그라초프 국방장관과 양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방장관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일 교도통신이 27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복수의 방위청소식통을 인용,양국 국방장관회담을 위해 방위청 무라다(촌전직소)방위국장이 다음달 러시아를 방문해 구체적인 일정 조정작업을 벌일 방침이라고 전했다.일본이 옛 소련은 물론 러시아와 국방장관 회담을 갖는 것은 처음으로 미국은 물론 아시아 각국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다마자와 장관은 러시아와 국방장관 회담에서 일본은 옛 소련을 위협으로 간주해 왔으나 러시아와는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안보대화와 방위교류를 추진해 북한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 동아시아 평화에 공동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할 것이라고 통신은 설명했다. 일본 방위청은 북한핵 문제와 함께 중국이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음을 중시,전략핵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와 핵무기 문제를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일,중국과 국방회담 재개/8년만에 도쿄서/북경측 핵실험 집중논의

    【도쿄 로이터 연합 특약】 87년 중·일국방장관이 만난 이후 처음으로 일본은 지호전(지호전)중국국방부장을 도쿄로 초청했다고 외무성의 한 관리가 25일 말했다. 양국의 국방유대는 89년 천안문 사태이후 중단됐는데 다마자와 도쿠이치로 일본 방위청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호전 중국국방부장관의 회담에서는 중국의 핵무기 실험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중국이 전세계적인 핵무기실험 유예조치를 계속 무시하면 대중국개발원조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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