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창동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투신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스키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8
  • ‘외도 의심’ 흉기로 연인 살해한 태국인 징역 15년

    연인의 외도를 의심하고 흉기로 살해한 태국인 남성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형사12부(부장 노재호)는 22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태국인 A(25)씨에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는 범행 후 경찰서에 찾아가 자수했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나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3월 8일 오후 전남 나주시 이창동 태국인 여성 B(22)씨의 원룸에 찾아가 B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와 B씨는 사실혼 관계로,2017년에 한국에 들어와 각각 광주와 나주에서 근무했다. A씨는 B씨가 다른 남성과 SNS로 연락을 하고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B씨를 찾아가 추궁하다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여자친구 흉기로 살해…나주서 20대 태국인 검거

    여자친구 흉기로 살해…나주서 20대 태국인 검거

    흉기로 여자친구를 살해한 태국인 남성이 하루 만에 검거됐다. 전남 나주경찰서는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태국 국적 A씨(25)를 붙잡았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전날 오후 2시 43분쯤 나주시 이창동 한 주택에 거주하는 태국 국적 B씨(22·여)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7년 한국에 들어온 A씨는 지난해에도 B씨를 폭행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자신의 집과 직장이 있는 광주로 달아났다가 이날 새벽 경찰에 자수 의사를 밝혔다. 경찰은 범행 동기 등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가면 증후군과 싸우고… 무대 중압감에 10초간 명상”

    “가면 증후군과 싸우고… 무대 중압감에 10초간 명상”

    봉준호 감독의 통역사 샤론 최(25·본명 최성재)는 영화 ‘기생충’이 낳은 또 한 명의 스타다. 뉘앙스까지 완벽하게 전달해 ‘언어의 아바타’로 불리는 최씨에 대한 할리우드의 관심은 남달랐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18일(현지시간) 최씨의 단독 기고문을 싣고, 칸에서 할리우드까지 봉 감독과 함께한 10개월의 여정을 소개했다. “그 자신도 모르게 시상식 MVP가 됐다”는 버라이어티의 표현에서 그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샤론 최는 기고에서 “2019년 4월 이메일로 봉 감독의 통역 의뢰를 받았지만, 당시 단편영화 각본을 쓰느라 메일을 확인하지 못해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기회를 놓친 그는 “느낌표(!)를 마구 입력했다가 겨우 프로답게 ‘다음에 꼭 하고 싶으니 다시 연락을 달라’고 답장을 했다”고 전했다. 며칠 뒤 정말 다시 통역 요청이 들어와 그는 “내 방광이 한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기도했다”고 털어놨다. 미국에서 영화예술 미디어학을 전공한 그녀의 첫 통역은 2018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 북미에 진출했을 때다. 당시 완벽 통역으로 유튜브 등에서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 6개월간 목소리를 지키려고 끊임없이 허니레몬차를 주문하며 가면 증후군과 싸웠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람의 말을 잘못 전달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싸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무대 중압감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무대 뒤에서 하는 10초간의 명상이었고, 관객들이 보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점을 되새기는 것”이라고 돌이켰다. 갑작스러운 유명세에 그는 “비아그라 광고에서 해시태그에 내 이름을 넣은 트윗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그는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나의 진심과 밀접한 이야기를 쓸 것”이라고 밝혔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봉준호 감독 통역 샤론최 “가면증후군과 싸웠다”

    봉준호 감독 통역 샤론최 “가면증후군과 싸웠다”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대부분의 사람은 비슷한 두뇌 용량을 갖고 있는데 만약 한가지 언어만 하는 사람이 1만 단어를 안다면,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바이링구얼은 각 언어에서 5000개의 단어를 안다고 한다. 그동안 두 가지 단어 가운데 하나를 고르느라 좌절감을 느낀 것이 영화의 시각언어와 사랑에 빠진 이유다.”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맡은 ‘언어의 아바타’ 샤론 최(한국이름 최성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아카데미 4관왕의 여정을 회고했다. ‘버라이어티’는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부터 최씨는 자신도 모르는 최우수 선수(MVP)였다고 소개했다. 수백 번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당한 끝에 최씨가 지난해 4월 전화통화로 봉 감독의 통역 요청을 받은 뒤 10개월간의 여정을 돌아본 글을 단독으로 싣는다고 밝혔다. 최씨는 “그동안은 내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허니레몬티의 끝없는 주문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며 “이제 앞으로 내가 쓸 각본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나의 진심과 밀접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가면 증후군, 무대공포증과 싸우며 통역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통역이자 영화학도로 겪었던 남다른 고충도 털어놓았다. 최씨는 “가면 증후군(impostor syndrome·자신의 성공이 노력이 아니라 운으로 얻어졌다 생각하면서 불안해하는 심리)과 싸웠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의 말을 잘못 전달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싸워야 했다”며 “무대 공포증에 대한 유일한 치유법은 무대 뒤에서 10초간 명상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이미 단편영화를 제작한 경력이 있는 최씨는 “감독으로서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첫 번째 통역 의뢰는 단편영화 각본 작업 때문에 놓쳤지만, 두 번째 통역 의뢰를 기꺼이 수락하고선 “통역할 때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방광이 버텨주기를 기도했다”며 당시의 벅찬 감정을 회고했다. 미국서 2년 살아, ‘기생충’ 이전 통역경험 거의 없어그는 ‘기생충’ 이전 통역 경험은 이창동 감독과 함께 했던 일주일에 불과했다는 점도 얘기했다. 봉 감독에 대해서는 대학 때 그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초등학교 시절 미국에서 2년을 살았는데 당시의 경험에 대해 “어린 시절 미국에서 2년을 보내면서 나는 이상한 하이브리드가 됐다”며 “너무 한국인다워서 미국인이 될 수 없었고, 너무 미국인 같아서 한국인이 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영어 실력을 유지했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학을 다닐 때 무심하게 듣는 ‘왓츠업’(What’s up?)이라는 말에도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봉 감독의 통역 일이 “모든 장벽을 깨트린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됐다”고 묘사했다. 그는 “통역을 할 때 회상에 잠길 시간은 없다”며 “통역은 현재 존재하는 순간에 관한 모든 것이고, 다음 순간을 위해 이전의 기억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의 유명세에 대해서는 “화장품 광고 제안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한국 정부가 2월 9일을 기생충의 날로 선포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당분간 통역은 자신을 영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며 영화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사랑방 손님’서 시작해 ‘기생충’ 꽃피워… 56년 만에 상업영화 심장 저격

    ‘사랑방 손님’서 시작해 ‘기생충’ 꽃피워… 56년 만에 상업영화 심장 저격

    벙어리 삼용·쌀 등 선배 영화인들 밑거름 2000년 이후 올드보이·밀양·버닝 등 주목 봉 감독, 2010년 ‘마더’로 도전했다 실패 세월호 다룬 다큐 ‘부재의 기억’도 새 역사한국 영화 101년 역사의 새로운 기록, 아카데미 도전 56년 만의 성과, 세계 최고로 등극한 ‘괴짜 천재’….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쓴 드라마는 이런 파생어들의 종합판이다. 아카데미 수상의 길까지는 선배 영화인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들이 있었다. 한국 영화계의 거성 신상옥 감독은 1963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시작해 이어 ‘벙어리 삼용’(1965), ‘쌀’(1967)을 잇달아 아카데미에 출품했다. 유현목 감독의 ‘카인의 후예’(1969), 최하원 감독의 ‘독 짓는 늙은이’(1970), 변장호 감독의 ‘비련의 벙어리 삼용’(1974) 등 한국적인 색채를 강조한 영화들이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거장 감독의 도전도 잇따랐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1)을 비롯해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3)와 ‘밀양(2008),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2013) 등이다. 지난해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예비후보에 오르며 아카데미의 문을 열 듯했지만 최종 후보에는 들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봉 감독도 2010년 영화 ‘마더’로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지만 후보 지명에는 실패했다. 이런 결과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아카데미 시상식만의 특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상업영화의 심장인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최고 권위의 상인데도 백인과 미국 중심 잔치하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생충’의 4관왕은 국제 영화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높아진 위상, 봉 감독 특유의 센스가 시너지를 발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한국 경제 규모가 10위 안팎이지만, 영화 관객 수나 전체 매출로 따지면 전 세계 5위 안팎 시장이라 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면서 “실제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를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번 ‘기생충’의 수상은 그동안 기반을 다져 온 우리 영화가 전 세계에 충분히 통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생충’은 우리말로 된 순수한 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아시아를 비롯한 외국 영화에 박한 평가를 한 아카데미가 ‘기생충’에 주요 상을 몰아주며 문화 다양성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오른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 또한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아쉽게도 수상은 불발했지만, ‘기생충’과 함께 한국 최초라는 의미를 남겼다. 상영 시간 29분의 짧은 다큐인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국가의 부재를 묻는 작품이다. 다큐는 2018년 11월 뉴욕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해 아카데미 출품 자격이 생겼고, 예비 후보를 거쳐 최종 후보에 올랐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한국·프랑스 예술 교류 기여 공로’ 최준호 교수, 佛 ‘최고 훈장’ 수훈

    ‘한국·프랑스 예술 교류 기여 공로’ 최준호 교수, 佛 ‘최고 훈장’ 수훈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프랑스 정부가 주는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는다. 한국인 공연예술 기획자로는 첫 기사장의 주인공이 됐다. 최 교수는 수많은 프랑스 작품을 기획·초청해 국립극장·예술의전당 등에 올리고, 파리 가을 축제와 상상 축제, 파리시립극장 등에서 한국 작품을 초청하는 데 역할을 했다. 특히 한불 수교 120주년 문화예술 공동 프로그램 책임과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예술 총감독을 맡아 한·프랑스 간 예술 교류에 기여했다. 최 교수는 앞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기사장(2005)과 문학예술훈장 오피시에장(2007)을 받기도 했다. 1802년에 제정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한국인은 고 조중훈·조양호(전 한진회장) 부자, 지휘자 정명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창동·임권택 영화감독, 이우환 미술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산창재 교보생명보험 회장 등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한불 예술 교류’ 최준호 한예종 교수, 레지옹 도뇌르 기사 훈장

    ‘한불 예술 교류’ 최준호 한예종 교수, 레지옹 도뇌르 기사 훈장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프랑스 정부가 주는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를 받는다.한예종은 최 교수가 한국과 프랑스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오는 4일 오후 6시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레지옹 도뇌르 기사장 훈장을 받는다고 3일 밝혔다. 최 교수는 2005년 프랑스 학술훈장 기사장을, 2007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 오피시에장을 받았으며, 한국인 중 공연예술 기획자로 레지옹 도뇌르 기사장 훈장을 받는 첫 주인공이 됐다. 최 교수는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등지에서 프랑스의 수많은 작품을 기획·초청하고, 파리 가을 축제, 상상 축제, 파리시립극장 등에서 한국작품을 초청하는 데 역할을 했다. 특히 한불 수교 120주년 문화예술 공동프로그램 책임과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2015-2016한불상호교류의해’에서 예술 총감독을 맡아 240여개 예술 작품과 양국 400개 이상 행사를 기획, 총괄하며 한·불 간 예술교류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1992년 지휘자 정명훈, 2004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2006년 이창동 영화감독, 2007년 이우환 미술가·임권택 영화감독, 2016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2017년 산창재 교보생명보험 회장 등이 받았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로… 봉준호, 할리우드 벽 넘었다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로… 봉준호, 할리우드 벽 넘었다

    스페인 거장 알모도바르와 경합 끝 수상 할리우드 내 세대교체 흐름도 영향 미쳐 북미 개봉 역대 모든 외국어영화 흥행 8위 “자막의 장벽,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중략)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영화입니다(I think we use only one language, Cinema).” 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남긴 말이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이후 ‘기생충’은 15개 이상의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영화제 이외 각종 시상식에서도 30여개가 넘는 상을 받는 등 거머쥔 트로피만 50개가 넘는다. 북미에서 80여일간 장기 상영하며 박스오피스 누적 매출만 2390만 739달러(약 279억원)를 넘겼다. 이는 북미에서 개봉한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 기록이자 북미에서 개봉한 역대 모든 외국어영화 중 흥행 순위 8위의 기록이다. 이 때문에 ‘기생충’의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할리우드리포터·버라이어티 등 미국 연예매체들은 ‘기생충’의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2관왕을 예측하기도 했다. ‘기생충’의 골든글로브 수상이 더욱 의미를 갖는 것은 영화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한국 영화로 우뚝 섰다는 데 있다. 기존에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베를린·칸·베니스영화제에는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등 이른바 작가주의로 분류되는 감독들이 활발히 진출했다. 그러나 골든글로브에는 봉 감독이 처음 이름을 올렸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칸이 가장 전위적인 영화들, 동시대의 가장 문제적인 작품에 관심을 둔다면 골든글로브나 아카데미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영화들에 주안점을 둔다”며 “이번 수상은 미국 주류 영화 시장에 ‘봉준호’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비영어권 국가의 영화에서도 보다 젊은 피를 찾는 할리우드의 경향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외국어영화상 부문에서 ‘기생충’과 경쟁한 ‘페인 앤 글로리’는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이다. 1980년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소녀들’로 데뷔한 알모도바르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2000), ‘그녀에게’(2003)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두 차례나 안았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경쟁해 상을 받았다는 건 할리우드 내에서도 세대교체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결과”라고 평했다. 골든글로브상은 매년 1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선정, 시상한다. 그렇기 때문에 2월에 열리는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의 전초전으로 불린다. 그러나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의 회원수가 약 90명으로 소수인 반면 아카데미를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회원수는 약 9000명에 달한다. 외국인이 다수 포함된 외신기자협회보다 미국의 배우, 감독, 제작자가 주축이 된 AMPAS가 훨씬 미국 중심적이며 대중친화적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오는 13일 아카데미 최종 후보가 공개된다. 현재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상 국제극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과 주제가상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이어 감독·각본상은 물론 최고 영예인 작품상 후보 선정도 점쳐지고 있다. 골든글로브는 작품상 후보작의 경우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로 구성돼야 한다는 규정을 갖지만, 아카데미에는 언어 규정이 없어 ‘기생충’의 노미네이트도 유력시된다.지난해 멕시코의 거장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골든글로브에서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뒤 아카데미에서 3관왕(외국어영화상·촬영상·감독상)에 오른 것도 본보기로 꼽힌다. 강 평론가는 “외국어영화상은 물론 감독·남우조연상 등 깜짝 수상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예측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다음달 9일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세월호 다룬 ‘부재의 기억’, 아카데미 단편 다큐 예비후보

    세월호 다룬 ‘부재의 기억’, 아카데미 단편 다큐 예비후보

    세월호 참사를 다룬 한국 영화 ‘부재의 기억’이 제92회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후보로 선정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국제극영화상과 주제가상 부문에 이름을 올린데 이은 쾌거다. 18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시간) 발표된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 후보에 이승준(사진) 감독의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이 포함됐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봉 감독의 전작 ‘옥자’가 제90회 시각효과상과 음악상 예비후보에,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제91회 외국어영화상 예비후보에 올라갔으나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를 당시의 현장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조명,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다. 상영 시간은 29분이다. 이승준 감독은 탈북민의 실상을 밝힌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으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감독은 18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과정에서 영화를 함께 만든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셨다”며 “그 성원에 보답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단편 다큐멘터리 예비후보에는 ‘부재의 기억’을 포함해 ‘애프터 마리아’, ‘파이어 인 파라다이스’, ‘고스트 오브 슈가랜드’ 등 10편이 올랐다. 최종 후보는 내년 1월 13일에 발표되며, 시상식은 2월에 열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한국인 지대한 영화 사랑 100년 지킨 버팀목, 백년 대계 담아 낼 비전 그릇 어디 있나

    한국인 지대한 영화 사랑 100년 지킨 버팀목, 백년 대계 담아 낼 비전 그릇 어디 있나

    한국영화 100년을 맞은 2019년이 저물고 있다. 1919년 10월 27일 연쇄극 ‘의리적 구토’로 출발한 한국영화는 우리 국민들이 기대는 가장 친근한 오락이자 문화였고, 대중과 가장 가깝게 호흡한 예술 장르이기도 했다. 올해 봉준호 감독 7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한 가장 큰 선물임과 동시에 한국영화의 저력과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봉 감독 역시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영화청년들의 롤모델로 각인됐음은 물론이다. 세계 어느 국민들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 관객들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가 인정한 작품에 1000만 관객 흥행으로 보답한 것은, 대중성과 예술성의 절묘한 균형을 포착해 내는 한국 상업영화의 강점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지대한 영화 사랑과 영화적 안목을 보여 주는 대목임에 분명하다. 1월부터 시작한 ‘한국영화 100년의 기록’이 어느듯 마지막 연재를 맞았다. 한국영화사 연구자이자 한국영화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한국영화 100주년 행사로 바빴던 올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올해 신구 영화인들이 함께 뜻을 모은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돼 영화의 날인 10월 27일까지 다양한 기념사업과 행사들이 이어졌다. 한국영화 역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영화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자로 참가한 ‘한국영화 100년 100경’이 영화의 날에 맞춰 발간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 모든 사업들은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각 분과와 영화진흥위원회 실무진의 헌신으로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한국의 주요 국제영화제들과 한국영상자료원(KOFA)도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상영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과 만났다.특히 2019년은 한국영화 관련 학술 행사들이 집중적으로 진행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열린 포럼BIFF에서는 100주년을 기념한 두 섹션 ‘동아시아 초기 영화의 수용과 실천’ 및 ‘균열과 생성: 한국영화 100년’이 3일에 걸쳐 진행됐다. 영상자료원이 공동 개최하고 필자가 책임 기획을 맡은 전자는 초창기 한국영화사 연구를 세계영화사의 맥락, 특히 동아시아 국가 간의 영화사 비교 연구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장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설 지석영화연구소가 기획한 후자는 이창동 감독의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100년간의 한국영화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또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한국영화학회 등 영화학계가 협업한 국제학술세미나 ‘글로벌 한국영화 100년-사유하는 필름을 찾아서’는 국내외 저명 학자들부터 신진 연구자까지 집결해 한국영화의 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미래를 예측해 보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 한국영상자료원 역시 올해는 가장 바빴던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지난해 12월에 부임한 주진숙 원장 체제로 뒤늦게 100주년 사업에 착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한국영화 관련 행사 지원부터 ‘기술’, ‘여성’, ‘독립영화’라는 키워드로 한국영화 100년을 새롭게 바라보는 자체 행사들까지 숨가쁘게 치렀다. 영상자료원이 보존 중인 한국영화 자료들은 올해 가장 바쁘게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 파리, 브뤼셀, 부다페스트 등 한국문화원이 있는 해외 도시들에서 영화제와 행사들이 연거푸 이어졌기 때문이다. 영상자료원 내부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들이 이어졌다. 시네마테크 KOFA는 100주년 기념 영화제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를 비롯해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 고전영화들을 소개했다. 한국영화박물관은 여성 캐릭터와 검열 이슈로 영화 100년을 일별한 기획전시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와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를 선보여 관람객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2004년에 착수한 연구 파트의 원로영화인 구술사 사업도 올해 송길한(시나리오 작가), 김동호(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김지미(배우), 홍파(감독)를 선정, 그들의 영화 인생과 한국영화 역사에 대한 소중한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한국영화 100주년에 걸맞은 대중적, 학술적 행사들이 이어졌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영화 100년을 역사가의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정리한 ‘통사’(通史)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러분들은 공신력 있는 한국영화사 도서를 접한 적이 있는가. 아마 쉽게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영화사 연구 지형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참고문헌인 ‘한국영화전사’는 1969년 한국영화 50주년을 기념해 고 이영일(1932~2001)의 저술로 발간된 바 있다. 2004년 후학들을 통해 개정증보판이 나오긴 했지만, 대중들의 시야에서 멀어진 50년 전의 기록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영화전사’가 발간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한국영화 100년 혹은 ‘전사’ 이후 50년에 대한 본격적인 통사 기술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또 다른 이영일, 즉 뛰어난 영화사가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사실 이 책을 쓸 당시 그는 30대에 불과했고, 마치 돈키호테의 열정과 자세로 한국영화사 저술 작업에 임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바꿔 보자. 지금 우리는 ‘한국영화전사’에 버금가는 또 다른 통사를 가질 수 없을까. 또 한 명의 돈키호테가 없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불행하게도 국내외 한국영화 학계의 연구자층은 2000년대 초반 전성기에 비해 얇아졌고 특히 들이는 품에 비해 명료한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영화사 연구에 과감히 뛰어드는 대학원생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학계 역시 연구 방법론이 크게 바뀌었다. 지금 연구자들은 역사가의 관점과 흐름이 읽히는 통사 쓰기보다 미시적 관심사에 따른 연구 주제에 천착하거나, 해체론적 접근을 기반으로 국가 영화사의 균열 지점에 더 관심을 가진다. 특히 소논문의 절대 생산량을 학술적 업적으로 계량화하는 현재 아카데미의 규칙 탓에, 이영일의 ‘한국영화전사’ 같은 통사 기술 작업은 더이상 시도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2019년 영화학계는 한국영화사 100년을 공신력 있게 기술하는 작업을 진행하지 못했고, 결국 앞으로의 숙제로 남았다. 영상자료원 역시 깊은 고민을 실천으로까지 옮기지 못했다. 올해 한국영화 100주년을 본격적인 통사 서술의 계기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국가나 영화 관련 기관의 든든한 지원이 선결돼야 하겠지만, 영화사 연구자들 역시 직업적 사명감은 물론 구체적인 방법론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소논문 형태의 각론으로 진행한 수많은 연구 성과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들의 영화사 쓰기를 시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감독과 작품의 역사뿐만 아니라 정책·산업, 기술, 관객 수용, 비평 같은 각자의 연구 관심이 반영된 복수의 영화사를 기술해야 한다. 물론 여성주의나 문화사 같은 관점도 한국영화사 100년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장단점이 확실히 있겠지만 각 주제나 시기의 전문 필자들이 참가하는 집단적 글쓰기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복수의 역사 서술들이 학계의 연구자들끼리만 읽는 용도가 아니라 대중적 시야에서 주목받고 공감과 호응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의 지난 100년과 새로운 100년을 국민들과 함께하는 가장 근사하고 세련된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국립 한국영화박물관 건립이라 생각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박물관은 공간의 규모나 건축의 상징성도 중요하겠지만, 공신력 있게 정리된 한국영화 100년의 기록과 새롭게 준비해야 할 100년의 비전으로 채워져야 한다. 한국영화박물관은 한국영화의 지난 100년과 앞으로의 100년 그 자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한국영화의 모든 것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새로운 그릇이어야 하고, 특히 청소년들이 과거의 한국영화에 공감하고 미래의 한국영화를 예측하는 체험의 장이 돼야 한다.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영화의 기록을 어떻게 국민들과 공유할 것인지 고민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끝으로 25회에 걸쳐 연재한 ‘한국영화 100년의 기록’을 읽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배우 윤정희 10년째 알츠하이머 투병…파리에서 요양 중

    배우 윤정희 10년째 알츠하이머 투병…파리에서 요양 중

    배우 윤정희(75)가 10년째 알츠하이머를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윤정희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3)의 공연을 담당하는 기획사 빈체로 측에 따르면 윤정희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며, 최근 증세가 심각해졌다. 10년 전쯤 시작된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증상이 최근 심해지면서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거나 그의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를 알아보지 못 하는 등 상태가 심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윤정희는 현재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딸의 집에서 함께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정희는 1960년대를 대표하던 톱배우다. 1967년 영화 ‘청춘극장’을 시작으로 약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윤정희의 2010년에는 영화 ‘시’(감독 이창동)에서 알츠하이머 치매로 기억을 잃는 미자 역할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윤정희는 홀로 손자를 키우며 늦은 나이에 시를 배우는 할머니 ‘미자’를 연기했다. 미자라는 이름은 윤정희의 본명이다. 영화 ‘시’ 이후 연기 활동을 제대로 재개하지는 못 했지만 알츠하이머 증세가 완화됐을 때는 여러 차례 공식석상에 참석했다. 아름다운예술인상을 선정하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로도 활동했으며,지난해 11월에는 영화평론가상 시상식에 참석해 공로상을 받았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윤정희, “‘오늘 촬영 몇 시야?’ 묻는다” 알츠하이머 투병 고백

    윤정희, “‘오늘 촬영 몇 시야?’ 묻는다” 알츠하이머 투병 고백

    중견 배우 윤정희(76)가 알츠하이머로 10년째 투병 중이라고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3)씨가 직접 언론에 밝혔다. 10일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인터뷰에서 아내 윤정희 씨의 건강상태에 대해 “10년 전부터 알츠하이머 증상이 시작됐다.”고 밝힌 뒤 “둘이서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단둘이서 지내다가 현재 아내가 딸이 있는 파리에서 지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윤정희 씨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깊이있는 연기를 선보여 강한 여운을 남겼다. 이 영화는 제 63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윤정희 씨는 남편 백건우 피아니스트와 함께 칸 영화제에 직접 참석하는 등 열정을 드러냈다.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역할이 알츠하이머를 앓는 역할이었다. 긴 대사를 써놓고 읽으면서 하고 그랬다. 그 뒤로 영화를 더 하고 싶었지만 상 받으러 올라가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백건우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가족이 부인 윤정희의 건강상태를 공개하는 외부로 이유는 한평생 영화배우로서 살아온 윤정희를 위해서였다. 딸 진희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오랫동안 (영화배우로)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다. 이 병을 알리면서 엄마가 그 사랑을 다시 확인했으면 좋겠다. 지금 엄마에게 그게 정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불었던 산업의 활기는 2006년 그 정점을 찍었다. 2003년부터 80편대를 기록하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6년을 기점으로 100편을 넘어섰다. 2001년 50%를 넘어 2004년부터 60%대에 육박하던 한국영화 점유율도 급기야 2006년 63.8%를 기록했다. 현재까지도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되는 비율이다. 2006년이 한국영화산업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보여준 해였다면, 2007년 이후는 위기 혹은 조정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2006년 7월, 긴 논란 끝에 결국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제도)가 73일로 축소되었고, 때마침 버팀목이라도 무너진 듯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거세졌다. 한국영화 관객은 감소했고 수익률과 수출 실적 또한 하락했다. 2007년 50%로 내려선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8년 42.1%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2년 만에 침체기를 극복하고 2009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만들어낸다. 시장 규모에 맞는 한국형 장르가 다듬어졌고,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감독들이 작품을 이어갔다. 이번 연재는 200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가 어떻게 도약해 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한국형 장르의 역동성 200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에서 주목할 장르 키워드는 바로 사극과 스릴러다. 퓨전의 길을 택한 사극·시대극 그리고 범죄·액션과 결합한 스릴러 장르는 다양한 장르적 요소와 이합집산하며 더욱더 진화해갔다. 이러한 장르 다변화와 ‘복합장르화’ 경향은 2010년대로 이어지며 ‘한국형 장르’가 구축되는 방법론이 됐다. 물론 한국영화의 전통적인 장르인 멜로·로맨스와 1990년대의 인기 장르였던 로맨틱 코미디도 관객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1960년대 한국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사극 장르는 2000년대 들어 현대적인 감각의 퓨전 사극으로 부활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2003)를 시작으로 2005년 ‘혈의 누’(김대승)·‘형사 Duelist’(이명세)가 이어졌고, 2005년 12월에 개봉한 ‘왕의 남자’(이준익)는 1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사극 흥행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를 쓴 김대우 감독은 대담한 상상력과 세련된 유머가 돋보인 ‘음란서생’(2006)과 ‘춘향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방자전’(2010)을 내놓으며 퓨전 사극의 유행을 이끌었다. 2000년대 후반에도 사극의 인기는 계속되었는데, 고려 왕조를 배경으로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쌍화점’(유하, 2008),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하며 판타지 장르에 도전한 ‘전우치’(최동훈, 2009)가 대표적이다. 근현대사의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다룬 시대극 장르도 주목할 경향이다. 2004년에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하류인생’(임권택) 등 근현대사를 가공하거나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역도산’(송해성) 등 실존인물을 소재로 과거를 되돌아보는 노스탤지어 영화들이 수확됐다. 2005년에는 대통령 시해 사건을 블랙코미디 감각으로 풍자한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일제강점기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그린 ‘청연’(윤종찬)이 이어졌다. 2007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화려한 휴가’(김지훈)가 전국 730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이 선취한 스릴러 장르는 2008년 ‘추격자’(나홍진)에서 완성됐다. 실제 연쇄살인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추격자’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500만 이상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이 영화의 성공은 범죄·액션 등의 요소와 결합한 스릴러 장르의 유행을 촉발, 스릴러가 현대 한국영화의 대표 장르로 등극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에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끼’(강우석), 잔혹한 이미지를 전시한 ‘하드보일드’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김지운)가 흥행 배턴을 이었다. 액션과 스릴러는 장르 특성상 결합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전통적인 강세 장르인 액션이 더 전면으로 나서는 영화들도 있었다. 2010년에는 남북 분단 상황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의형제’(장훈)가 540만 관객을, 2011년에는 ‘감성 액션’을 표방한 ‘아저씨’(이정범)가 6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과 비평 모두 주목을 받았다.범죄스릴러의 인척 장르라 할 누아르, 갱스터 영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윤종빈, 2011)는 1980년대 시대상을 풍자와 해학 그리고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그리며 갱스터 장르의 신기원을 보여주었다. 한편 최동훈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한국형 ‘케이퍼 무비’(범죄 전문가들의 정교한 범죄 과정을 보여주는 장르)를 성공시켰다. 이후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2006), ‘멀티캐스팅’의 묘를 살린 범죄영화 ‘도둑들’(2012) 등을 내놓으며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등극했다. 큰 예산이 들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법칙을 새롭게 재해석한 ‘달콤한 거짓말’(정정화, 2008), 박중훈의 귀환과 ‘88만원 세대’의 묘사가 인상적인 ‘내 깡패 같은 애인’(김광식, 2010), 장르 화법에 더없이 충실했던 ‘시라노: 연애조작단’(김현석, 2010), 기획 코미디의 힘을 보여준 ‘댄싱퀸’(이석훈, 2011), 46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성공작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2012), 키치적인 B급 정서가 매력적인 ‘남자사용설명서’(이원석, 2012) 등이 이어졌다. 멜로를 코믹호러에 접붙인 ‘달콤, 살벌한 연인’(손제곤, 2006), 로맨틱 코미디의 뼈대에 호러를 녹여낸 ‘오싹한 연애’(황인호, 2011)도 주목받았다. ●예술영화·상업영화 아우르는 작가주의 1996~1997년 데뷔해, 2000년대 초중반 주요 해외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작가주의 감독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은 미학적 성숙을 거듭하며 그들의 영화세계를 완성시켜갔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치면 단연 홍상수다. 그는 매년 1~2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새로운 미학적 실험과 변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년 ‘극장전’, 2006년 ‘해변의 여인’, 2008년 ‘밤과 낮’·‘첩첩산중’(단편), 2009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0년 ‘하하하’·‘옥희의 영화’, 2011년 ‘북촌방향’ 등 언뜻 앞의 영화와 겹치는 듯하면서도 매번 기존의 틀을 바꿔가는 방식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마치 거울처럼 마주 보는 그의 연작들은, 각 영화의 제목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차라리 ‘홍상수 영화’로 호명하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비평적 해석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국내외 비평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예술영화 관객들의 지지도 굳건하다. 김기덕은 ‘활’(2005), ‘숨’(2007), ‘비몽’(2008) 등 본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는 영화다’(장훈, 2008)·‘풍산개’(전재홍, 2011) 등 조감독 출신 감독의 영화 제작까지 겸했다. 그는 ‘아리랑’(2011)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피에타’(2012)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안았다. 이창동 역시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구원에 관한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미학적 성취를 이어갔다. ‘밀양’(2007)은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 진출, 주연 배우 전도연이 한국영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시’(2010)는 제6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각본상을 받았다. 한편 이창동은 2009년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2011년 제64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2000년대 들어 새롭게 발견된 시네아스트(cineaste·영화예술가)로는 재중동포 출신인 장률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망종’(2005)이 제58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고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널리 알려졌다. ‘경계’(2007), ‘중경’(2007), ‘두만강’(2009), ‘풍경’(2013)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조선족, 탈북 여성과 소년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등 경계인들의 이야기를 건조한 풍경 속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그는 ‘경주’(2013) 이후 새로운 화법으로 전환해 더 넓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외에도 ‘천년학’(2007)으로 100번째 영화를 연출한 거장 임권택, 현대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을 로맨스 장르에 녹인 ‘멋진 하루’(2008)의 이윤기, 리얼리즘과 신비함이 뒤섞인 ‘파주’(2009)의 박찬옥, 제주도 4·3 사건을 독특한 미학으로 승화시킨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의 오멸 등이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제28회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한 ‘회오리바람’(2009)의 장건재,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을 예리하게 포착한 ‘무산일기’(2010)의 박정범,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창조한 ‘파수꾼’(2010)의 윤성현 등 인상적인 독립장편영화로 데뷔한 감독들도 특기할 필요가 있다.대중영화와 작가영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독창적인 장르 해석과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유지하는 감독군으로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그리고 나홍진이 있다. 봉준호는 국내를 넘어선 흥행과 비평적 지지를 받은 ‘괴물’(2006),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로 국내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마더’(2009) 그리고 글로벌 영화 프로젝트의 성공작 ‘설국열차’(2013)를 이어가며 그만의 영화세계를 진보시켜갔다. 박찬욱은 ‘복수 3부작’의 완결편 ‘친절한 금자씨’(2005), 디지털 영화 미학을 개척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쥐’(2008), 그리고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2013)까지, 영화적 야심과 예술가적 자의식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다. 김지운은 만주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를 오마주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고어 영화(선혈이 낭자하는 잔인한 묘사가 특징)에 가까운 하드보일드 ‘악마를 보았다’(2010) 등을 통해 특유의 장르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2008년 범죄스릴러 ‘추격자’로 데뷔한 나홍진은 광기 어린 액션스릴러 ‘황해’(2010), 초자연적 미스터리스릴러 ‘곡성’(2016)을 내놓으며, 스릴러 장르를 그만의 스타일과 해석으로 새롭게 구축해가고 있다. 그의 세 작품은 모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추격자’는 제61회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황해’는 제64회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제69회 비경쟁부문에서 세계 영화인들을 만났다. 그는 가장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임에 틀림없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불었던 산업의 활기는 2006년 그 정점을 찍었다. 2003년부터 80편대를 기록하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6년을 기점으로 100편을 넘어섰다. 2001년 50%를 넘어 2004년부터 60%대에 육박하던 한국영화 점유율도 급기야 2006년 63.8%를 기록했다. 현재까지도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되는 비율이다. 2006년이 한국영화산업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보여준 해였다면, 2007년 이후는 위기 혹은 조정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2006년 7월, 긴 논란 끝에 결국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제도)가 73일로 축소되었고, 때마침 버팀목이라도 무너진 듯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거세졌다. 한국영화 관객은 감소했고 수익률과 수출 실적 또한 하락했다. 2007년 50%로 내려선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8년 42.1%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2년 만에 침체기를 극복하고 2009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만들어낸다. 시장 규모에 맞는 한국형 장르가 다듬어졌고,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감독들이 작품을 이어갔다. 이번 연재는 200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가 어떻게 도약해 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형 장르의 역동성 200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에서 주목할 장르 키워드는 바로 사극과 스릴러다. 퓨전의 길을 택한 사극·시대극 그리고 범죄·액션과 결합한 스릴러 장르는 다양한 장르적 요소와 이합집산하며 더욱더 진화해갔다. 이러한 장르 다변화와 ‘복합장르화’ 경향은 2010년대로 이어지며 ‘한국형 장르’가 구축되는 방법론이 됐다. 물론 한국영화의 전통적인 장르인 멜로·로맨스와 1990년대의 인기 장르였던 로맨틱 코미디도 관객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1960년대 한국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사극 장르는 2000년대 들어 현대적인 감각의 퓨전 사극으로 부활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2003)를 시작으로 2005년 ‘혈의 누’(김대승)·‘형사 Duelist’(이명세)가 이어졌고, 2005년 12월에 개봉한 ‘왕의 남자’(이준익)는 1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사극 흥행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를 쓴 김대우 감독은 대담한 상상력과 세련된 유머가 돋보인 ‘음란서생’(2006)과 ‘춘향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방자전’(2010)을 내놓으며 퓨전 사극의 유행을 이끌었다. 2000년대 후반에도 사극의 인기는 계속되었는데, 고려 왕조를 배경으로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쌍화점’(유하, 2008),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하며 판타지 장르에 도전한 ‘전우치’(최동훈, 2009)가 대표적이다. 근현대사의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다룬 시대극 장르도 주목할 경향이다. 2004년에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하류인생’(임권택) 등 근현대사를 가공하거나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역도산’(송해성) 등 실존인물을 소재로 과거를 되돌아보는 노스탤지어 영화들이 수확됐다. 2005년에는 대통령 시해 사건을 블랙코미디 감각으로 풍자한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일제강점기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그린 ‘청연’(윤종찬)이 이어졌다. 2007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화려한 휴가’(김지훈)가 전국 730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이 선취한 스릴러 장르는 2008년 ‘추격자’(나홍진)에서 완성됐다. 실제 연쇄살인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추격자’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500만 이상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이 영화의 성공은 범죄·액션 등의 요소와 결합한 스릴러 장르의 유행을 촉발, 스릴러가 현대 한국영화의 대표 장르로 등극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에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끼’(강우석), 잔혹한 이미지를 전시한 ‘하드보일드’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김지운)가 흥행 배턴을 이었다. 액션과 스릴러는 장르 특성상 결합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전통적인 강세 장르인 액션이 더 전면으로 나서는 영화들도 있었다. 2010년에는 남북 분단 상황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의형제’(장훈)가 540만 관객을, 2011년에는 ‘감성 액션’을 표방한 ‘아저씨’(이정범)가 6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과 비평 모두 주목을 받았다.범죄스릴러의 인척 장르라 할 누아르, 갱스터 영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윤종빈, 2011)는 1980년대 시대상을 풍자와 해학 그리고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그리며 갱스터 장르의 신기원을 보여주었다. 한편 최동훈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한국형 ‘케이퍼 무비’(범죄 전문가들의 정교한 범죄 과정을 보여주는 장르)를 성공시켰다. 이후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2006), ‘멀티캐스팅’의 묘를 살린 범죄영화 ‘도둑들’(2012) 등을 내놓으며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등극했다. 큰 예산이 들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법칙을 새롭게 재해석한 ‘달콤한 거짓말’(정정화, 2008), 박중훈의 귀환과 ‘88만원 세대’의 묘사가 인상적인 ‘내 깡패 같은 애인’(김광식, 2010), 장르 화법에 더없이 충실했던 ‘시라노: 연애조작단’(김현석, 2010), 기획 코미디의 힘을 보여준 ‘댄싱퀸’(이석훈, 2011), 46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성공작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2012), 키치적인 B급 정서가 매력적인 ‘남자사용설명서’(이원석, 2012) 등이 이어졌다. 멜로를 코믹호러에 접붙인 ‘달콤, 살벌한 연인’(손제곤, 2006), 로맨틱 코미디의 뼈대에 호러를 녹여낸 ‘오싹한 연애’(황인호, 2011)도 주목받았다. ●예술영화·상업영화 아우르는 작가주의 1996~1997년 데뷔해, 2000년대 초중반 주요 해외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작가주의 감독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은 미학적 성숙을 거듭하며 그들의 영화세계를 완성시켜갔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치면 단연 홍상수다. 그는 매년 1~2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새로운 미학적 실험과 변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년 ‘극장전’, 2006년 ‘해변의 여인’, 2008년 ‘밤과 낮’·‘첩첩산중’(단편), 2009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0년 ‘하하하’·‘옥희의 영화’, 2011년 ‘북촌방향’ 등 언뜻 앞의 영화와 겹치는 듯하면서도 매번 기존의 틀을 바꿔가는 방식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마치 거울처럼 마주 보는 그의 연작들은, 각 영화의 제목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차라리 ‘홍상수 영화’로 호명하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비평적 해석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국내외 비평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예술영화 관객들의 지지도 굳건하다. 김기덕은 ‘활’(2005), ‘숨’(2007), ‘비몽’(2008) 등 본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는 영화다’(장훈, 2008)·‘풍산개’(전재홍, 2011) 등 조감독 출신 감독의 영화 제작까지 겸했다. 그는 ‘아리랑’(2011)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피에타’(2012)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안았다. 이창동 역시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구원에 관한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미학적 성취를 이어갔다. ‘밀양’(2007)은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 진출, 주연 배우 전도연이 한국영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시’(2010)는 제6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각본상을 받았다. 한편 이창동은 2009년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2011년 제64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2000년대 들어 새롭게 발견된 시네아스트(cin?ste·영화예술가)로는 재중동포 출신인 장률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망종’(2005)이 제58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고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널리 알려졌다. ‘경계’(2007), ‘중경’(2007), ‘두만강’(2009), ‘풍경’(2013)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조선족, 탈북 여성과 소년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등 경계인들의 이야기를 건조한 풍경 속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그는 ‘경주’(2013) 이후 새로운 화법으로 전환해 더 넓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외에도 ‘천년학’(2007)으로 100번째 영화를 연출한 거장 임권택, 현대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을 로맨스 장르에 녹인 ‘멋진 하루’(2008)의 이윤기, 리얼리즘과 신비함이 뒤섞인 ‘파주’(2009)의 박찬옥, 제주도 4·3 사건을 독특한 미학으로 승화시킨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의 오멸 등이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제28회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한 ‘회오리바람’(2009)의 장건재,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을 예리하게 포착한 ‘무산일기’(2010)의 박정범,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창조한 ‘파수꾼’(2010)의 윤성현 등 인상적인 독립장편영화로 데뷔한 감독들도 특기할 필요가 있다.대중영화와 작가영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독창적인 장르 해석과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유지하는 감독군으로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그리고 나홍진이 있다. 봉준호는 국내를 넘어선 흥행과 비평적 지지를 받은 ‘괴물’(2006),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로 국내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마더’(2009) 그리고 글로벌 영화 프로젝트의 성공작 ‘설국열차’(2013)를 이어가며 그만의 영화세계를 진보시켜갔다. 박찬욱은 ‘복수 3부작’의 완결편 ‘친절한 금자씨’(2005), 디지털 영화 미학을 개척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쥐’(2008), 그리고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2013)까지, 영화적 야심과 예술가적 자의식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다. 김지운은 만주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를 오마주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고어 영화(선혈이 낭자하는 잔인한 묘사가 특징)에 가까운 하드보일드 ‘악마를 보았다’(2010) 등을 통해 특유의 장르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2008년 범죄스릴러 ‘추격자’로 데뷔한 나홍진은 광기 어린 액션스릴러 ‘황해’(2010), 초자연적 미스터리스릴러 ‘곡성’(2016)을 내놓으며, 스릴러 장르를 그만의 스타일과 해석으로 새롭게 구축해가고 있다. 그의 세 작품은 모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추격자’는 제61회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황해’는 제64회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제69회 비경쟁부문에서 세계 영화인들을 만났다. 그는 가장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임에 틀림없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방구석1열’ 송강호 “‘밀양’은 전도연 위해 최선 다한 영화”

    ‘방구석1열’ 송강호 “‘밀양’은 전도연 위해 최선 다한 영화”

    임필성 감독이 배우 전도연과 함께 영화 ‘밀양’에 출연했던 배우 송강호의 말을 대신 전했다. 3일 방송되는 JTBC ‘방구석1열’은 지난주에 이어 한국 영화 100주년 특집 두 번째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서는 배우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영화 ‘밀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진행된 ‘방구석1열’ 녹화에서 전도연은 ‘밀양’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송강호에 대해 “‘넘버3’라는 작품을 보고 너무 좋아했던 배우인데 함께 연기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당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현장을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송강호 배우는 실제 촬영할 때도 ‘종찬’처럼 늘 내 곁을 지켜줬다. ‘신애’를 연기하면서 지치고 분노에 차 있었던 나를 위해 현장 분위기를 늘 유연하게 만들어줬다”라며 아쉬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전했다. 임필성 감독은 “송강호 배우는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늘 ‘신애 모드’였던 전도연 배우를 보고 실제로 존경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렇게 노력하는 배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하더라”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어 민규동 감독은 ‘밀양’ 속 ‘종찬’ 캐릭터에 대해 “‘원작에 없던 캐릭터인 ‘종찬’은 ‘신애’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데, ‘신애’와 대비되는 모습으로 ‘신애’의 고통이 더 크게 전해지도록 만들었다. 이창동 감독의 이런 선택이 영화의 균형감을 불어넣어 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녹화에서 MC 장성규는 전도연에게 “‘누나’라고 불러도 되냐”고 돌발 질문을 했고, 전도연의 예상치 못한 답변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배우 전도연과 함께한 JTBC ‘방구석1열’은 11월 3일 일요일 오전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방구석1열’ 전도연 “‘밀양’ 촬영 당시 이창동 감독에 ‘OK’ 못 들어”

    ‘방구석1열’ 전도연 “‘밀양’ 촬영 당시 이창동 감독에 ‘OK’ 못 들어”

    배우 전도연이 영화 ‘밀양’ 촬영 당시 이창동 감독에게 느꼈던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3일 방송되는 JTBC ‘방구석1열’은 지난주에 이어 한국 영화 100주년 특집 두 번째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서는 배우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영화 ‘밀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진행된 ‘방구석1열’ 녹화에서 MC 장성규는 배우 전도연에게 “지난번 출연한 문소리 배우가 ‘오아시스’ 촬영 당시, 이창동 감독에게 ‘OK 사인’을 듣지 못해 답답했었다고 말했다”라고 전하자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이 ‘OK 사인’을 잘 안 하는 편이다. 배우에게 ‘OK 사인’은 ‘참 잘했어요’라는 뜻과 같은데 그런 표현이 없어 답답했다”라고 같은 배우 입장에서의 격한 공감을 표현했다. 전도연은 ‘시’ 촬영장에 방문했던 일화를 전하며 “이후에 ‘시’ 촬영장에서 윤정희 선생님의 연기를 보고 ‘OK 사인’을 크게 외치는 이창동 감독을 보고 깜짝 놀랐다. ‘OK 사인’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전도연은 ‘신애’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힘들었던 점에 대해 “시나리오를 읽고 ‘신애’를 이해할 수 없어 힘들었다. 해답을 주지 않고 느낀 만큼 표현하라고 하는 이창동 감독님을 미워했다. 극 중 ‘신애’가 신에게 지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이창동 감독에게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함께 작업을 하다 보니 이창동 감독이 정말 대단한 감독이라는 걸 깨달았다”라고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공개했다. 한편, 이날 녹화에서 MC 장성규는 ‘밀양’ 2행시를 선보였고 이를 들은 전도연 배우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라며 특유의 매력적인 웃음소리로 촬영현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배우 전도연과 함께한 JTBC ‘방구석1열’은 11월 3일 일요일 오전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전도연 “칸 여우주연상 무게, 지금까지도 견디는 중”

    전도연 “칸 여우주연상 무게, 지금까지도 견디는 중”

    배우 전도연이 ‘칸 영화제’ 수상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전했다. 3일 방송되는 JTBC ‘방구석1열’은 지난주에 이어 한국 영화 100주년 특집 두 번째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서는 배우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영화 ‘밀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진행된 ‘방구석1열’ 녹화에서 주성철 편집장은 칸 영화제의 위상에 대해 “칸 영화제 수상은 영화인들에겐 마치 노벨상 같은 느낌이다.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이후, 2007년 전도연 배우가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탔을 땐 한국 영화 예술이 정점을 찍은 것만 같았다”라며 가슴 벅찬 순간을 회상했다. 전도연은 “수상할 때는 무대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이후 호텔 바에서 이창동 감독님과 송강호 배우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듣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펑펑 났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MC 장윤주는 “너무 부러워서 그날부터 4일 밤을 못 잤다”라고 이야기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전도연 배우는 “칸 영화제로 인해 얻은 영광도 크지만 좀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을 하고 싶은데 점점 작품 수가 줄어들고, 영화제 출품용 영화만 출연할 것 같다는 인식이 생겼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해야 할 배우로서 그 무게감을 지금까지도 견디고 있다”라고 밝혔다. 주성철 편집장은 전도연과 함께한 소감에 대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울고 웃어주는 전도연 배우가 ‘한국 영화 100주년’에 함께한 것은 큰 행운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전도연과 함께한 ‘방구석1열’은 3일 오전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단독] 이 모습, 아카데미서도 볼까

    [단독] 이 모습, 아카데미서도 볼까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목표 활동 민관 첫 합동 한국영화 홍보 지원정부와 민간 영화 배급사가 국제 영화제 수상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처음으로 꾸렸다. 대상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목표는 내년 2월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 수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오석근 위원장은 1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배급사인 CJ ENM과 지난달 팀을 구성하고 홍보 활동을 함께하기로 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으면 한국 대외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 영화 흥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전방위 지원 의지를 밝혔다. 윤인호 CJ ENM 영화팀장은 “배급사만 나서서 홍보 활동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큰 힘이 되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TF팀은 영진위, CJ ENM, 미국 배급사 니온과 영화인 등을 비롯해 10여명 정도로 구성됐다. 영진위는 전 세계 한국문화원을 통해 홍보에 나서고 유명 영화인 등을 통해 아카데미 회원에게 알리는 활동을 할 예정이다. 내년 아카데미 영화제 종료 뒤에는 그간 활동을 기록한 백서도 내놓는다. 영진위와 CJ ENM이 공조하게 된 데에는 지난해 이창동 감독 영화 ‘버닝’ 사례가 계기가 됐다.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올해부터 국제장편영화로 이름 변경) 부문 예비 후보에 그쳤다. 배급사가 영화를 출품하면 심사위원들이 후보를 선정하는 일반 영화제와 달리 아카데미는 8000여명의 회원이 투표하는 방식으로 후보를 선정한다. 미국 영화인을 비롯해 세계 유명 영화인이 회원으로 속해 있다. 한국은 봉 감독과 박찬욱 감독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카데미 상 후보로 오른 적은 한번도 없다. 지난해 영화 ‘버닝’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많은 해외 영화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지만 아카데미 본선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 영진위는 이 원인을 아카데미 회원을 대상으로 한 홍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이 국가별 대항전 성격을 띠는 점도 영진위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이다. 이 부문은 국가별로 1개 영화만 추천할 수 있다. 영진위는 올해 한국 후보로 ‘기생충’을 정했다. 다만 ‘기생충’이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상업적인 아카데미에 맞서 만든 칸에서 대상을 받아 아카데미 회원들이 이를 꺼리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윤 팀장은 “‘기생충’은 작품성과 상업성을 고루 갖췄다”며 “국제장편영화 부문과 다른 부문에서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 박스오피스 모조닷컴에 따르면 ‘기생충’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3곳의 상영관에서 개봉해 사흘 동안 37만 6264만 달러(약 4억 4549만원)를 벌어들였다. 스크린당 평균 수입이 12만 5421달러(1억 4847만원)로,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서 1위를 기록했다. 미국 배급사 니온은 다음주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주요 도시 등에서 상영관을 25~30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 영화 한류, 그 시작을 알리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 영화 한류, 그 시작을 알리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는 ‘문화의 시대’라고 불리기 시작한다. 정치권력에 예속되지 않은 독자적인 문화 영역이 부각됐고, 한국영화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92년 ‘결혼이야기’와 ‘미스터 맘마’를 위시로 한 기획영화의 등장은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에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1999년 ‘쉬리’의 전국 580만명 흥행 성공은 한국 영화산업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와이드 릴리스(광역 개봉 방식)로 상징되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한국영화가 맞이한 르네상스는 양적 성장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2000년대 한국영화의 완성도를 책임질 신인감독들이 대거 등장했고, 세계영화제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들도 이 시기에 출현했다. 문자가 아닌 영상의 시대, 한국의 ‘영화청년’들은 시네마테크(예술영화전용관), 영화저널, 국제영화제 등과 역동적인 관계망을 구축하며 분명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풍성한 영화문화를 꽃피우게 된다.●한국형 블록버스터 등장… 영화 판을 바꾸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외화 직배로 위기를 맞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며 문화계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는 수치로도 설명된다. 1993년 외국영화 대비 한국영화 점유율(서울 관객 기준)은 15.9%로 가장 낮았지만, 1997년부터 25% 선을 회복한 후 1999년 39.7%까지 올랐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흥행작들이 버텨 준 덕분이었다. 1995년 ‘닥터 봉’(이광훈, 37만명 흥행), 1996년 ‘투캅스 2’(강우석, 63만명), ‘은행나무침대’(강제규, 45만명), 1997년 ‘접속’(장윤현, 67만명), 1998년 ‘편지’(이정국, 1997.11 개봉, 72만명), ‘약속’(김유진, 66만명), 1999년 ‘주유소습격사건’(김상진, 96만명) 등이 한국영화의 상업적 존재감을 만들어 갔다. 특히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성공작으로 기록되는 ‘쉬리’(강제규)가 한국영화 흥행을 견인했다. 전국 스크린 수가 600개를 기록하던 시절(KOBIS 기준 현재 3127개), ‘쉬리’는 처음으로 전국 58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2000년대 한국영화의 ‘천만 관객 시대’를 예고했다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차용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은 1998년 여름에 개봉한 ‘퇴마록’(박광춘)의 홍보 문구에서 처음 등장했다. ‘블록버스터’의 어원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이 사용한 폭탄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설명되는 할리우드 대작 영화의 제작·개봉 방식을 의미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대규모 흥행을 목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제작한 후, 최대한 많은 극장에서 동시에 개봉해 단기간에 큰 흥행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75년 ‘죠스’(스티븐 스필버그)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흥행 수입 1억 달러(약 1200억원)의 벽을 돌파하면서부터다. 매끄러운 이야기 전개보다는 화려하고 압도적인 스펙터클 위주의 영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1990년대 후반의 한국영화계로 돌아오자.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15억원 수준이던 당시, ‘퇴마록’은 상대적으로 많은 24억원의 제작비를 들였고, 특수 효과에 기반한 볼거리를 앞세웠으며, 거액의 마케팅 비용과 함께 서울 27개관, 전국 70개관의 대규모 전국 동시 개봉을 추진했다. 한국 시장에서 추진한 첫 번째 블록버스터 방식의 영화였던 것이다. 개봉 첫 주 제작진의 의도대로 전국 45만명을 동원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지만, 결과적으로 그해 한국영화 흥행 5위에 그치며 블록버스터 전략을 완벽하게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에 맞지 않는 공허한 방법론이 될 뻔했던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1999년 ‘쉬리’를 통해 유의미한 제작 전략으로 정착한다. ‘쉬리’의 제작발표회에서 강제규 감독은 “할리우드에 대적할 만한 한국형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들겠다”는 출사표를 던졌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메이킹 영상을 돌려보며 한국영화 기술 수준에서 가능한 것들만 추려 냈다. 마침내 ‘쉬리’는 개봉 21일 만에 ‘서편제’(1993, 서울 기준 103만명)가 보유한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돌파, 서울에서만 24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당시 전 세계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타이타닉’(1997)의 제작비가 무려 2억 5000만 달러(약 3000억원)였는데, ‘쉬리’는 100분의1에 불과한 32억원의 제작비만 들여 국내 흥행에서 승리한 것이다. ‘쉬리’의 성공 신화는 IMF 외환위기 사태라는 국가적 상처를 치유하는 담론이 되었고, 김대중 정부의 국민영화로 등극했다. 특히 이 영화는 일본시장에서도 처음으로 13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 한류의 기반이 되었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쉬리’의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후 한국영화는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2배 이상 뛴 제작비와 급상승한 마케팅비, 광역 개봉 방식 등 ‘규모의 경제’라는 유사 할리우드 전략을 이어 간 것이다. 1995년 10억원(순제작비 9억원, 마케팅비 1억원)이었던 한국영화 평균 총제작비는, 불과 4년 만인 1999년 19억원(순제작비 14억원, 마케팅비 5억원)으로 뛰었다. 2004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2003.12 개봉)와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것은 분명 1990년대 말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경험이 귀중한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1000만 관객 영화’라는 호명 앞에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2004년 시점 한국영화는 평균제작비가 40억원을 넘고, 점유율은 무려 59.3%를 기록하는 급격한 성장을 맞게 된다. ●작가주의 감독들 성장… 상업영화 새 모델로 1990년대 중후반의 산업적 활력이 작가주의 감독들의 시대를 만들어 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젊은 감각의 영화사들은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고려할 패기가 있었고, 신인 감독들 역시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며, 그들의 작품들을 지지하는 젊은 관객들이 한국의 영화문화 지형을 새롭게 짜고 있었다.국내외 대학의 영화과, 대학 영화동아리, 영화아카데미(1984년 영화진흥공사 산하 설립) 등에서 단편영화 연출로 단련한 ‘영화청년’들이 신진 감독군을 형성, 상업영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1994년 데뷔한 ‘장미빛 인생’의 김홍준, ‘세상 밖으로’의 여균동, 1995년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돈을 갖고 튀어라’의 김상진, ‘내일로 흐르는 강’의 박재호, 1996년 ‘세 친구’의 임순례, ‘박봉곤 가출사건’의 김태균, ‘고스트맘마’의 한지승, 1997년 ‘접속’의 장윤현, ‘넘버3’의 송능한, ‘억수탕’의 곽경택, 1998년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내 마음의 풍금’의 이영재 등은 충무로 상업영화 시스템 내에서 그들만의 개성적인 스타일을 보여 주며 1990년대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특히 1990년대 후반 등장한 일군의 감독들은 관객과 비평을 두루 만족시켰던 2000년대 한국영화의 세련된 흐름을 예견하고 있었다.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는 ‘봄날은 간다’(2001),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은 ‘집으로’(2002),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임상수는 ‘눈물’(2000)에 이은 ‘바람난 가족’(2003), ‘정사’의 이재용은 ‘순애보’(2000)에 이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조용한 가족’의 김지운은 ‘반칙왕’(2000), ‘기막힌 사내들’의 장진은 ‘간첩 리철진’(1999)에 이은 ‘킬러들의 수다’(2001)로 21세기 한국영화의 서두를 장식했다. 1999년 역시 세련된 화법을 선보인 감독들의 데뷔가 이어졌는데, ‘해피엔드’의 정지우는 ‘사랑니’(2005),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민규동, 김태용은 각각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과 ‘가족의 탄생’(2006)으로 안정된 연출력을 선보였다. 2000년대 해외 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작가주의 감독들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 데뷔한 홍상수는 ‘강원도의 힘’(1998)을 이어 가며 모더니즘 미학의 본격적인 흐름을 만들었고, ‘악어’(1996)로 데뷔한 김기덕은 원초적인 에너지와 남근중심적인 폭력성이 찬반의 평가를 낳는 가운데 국내외 마니아층을 확보해 갔다.치열한 창작의 고통을 원고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 간 이창동은 ‘초록물고기’(1997)에 이은 ‘박하사탕’(2000)으로 세계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박찬욱은 영화광으로서의 취향을 앞세운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과 ‘삼인조’(1997)를 내놓으며 관객과의 접점을 찾는 데 더딘 행보를 보였지만,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일거에 도약했다. 이 영화는 한국 상업영화 특유의 뛰어난 완성도를 의미하는 2000년대 ‘웰 메이드 영화’의 장대한 흐름을 선취한 것으로 평가된다.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한일관계 악화… 영화인들 깊이 연대해야”

    “한일관계 악화… 영화인들 깊이 연대해야”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가 위기에 휩싸여 전 세계 영화인들이 지지 표명을 했을 때 저도 미력하게나마 목소리를 냈습니다. 정치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영화인들이 더 깊이 결속하면서 이런 연대가 가능하다는 걸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창 진행 중인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차 방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57) 감독은 한일관계 악화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몇 년 전’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가 ‘다이빙벨’ 상영 논란으로 보이콧 사태를 겪은 일을 말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 그는 지난 5일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경사스러운 해에 감독 데뷔 이후부터 줄곧 같은 세월을 걸어 온 부산영화제에서 상을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부산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그가 선보인 신작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가 연출한 데다, 캐스팅이 화려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프랑스 영화계 대스타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 분)의 자서전 출간을 앞둔 어느 날, 미국으로 떠났던 딸 뤼미에르(쥘리에트 비노슈 분)가 남편(이선 호크 분)과 어린 자녀를 데리고 프랑스로 돌아오며 겪는 격렬한 대립을 그렸다. 10여년 전부터 친분을 쌓은 비노슈에게서 작업 제안을 받았고, 시나리오 구상 단계부터 드뇌브와 호크를 떠올렸는데 “꿈이 이뤄졌다”고 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에 이어 또 가족을 테마로 한 데 대해 “의도했다기보다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사 속에서 빛나고 있는 드뇌브라는 현역배우의 매력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이자 할머니이고, 딸인 모습을요.” “한국의 이창동, 대만 허우샤오셴, 중국의 지아장커 등 동시대 아시아 감독의 작품들에서 자극을 받는다”는 고레에다 감독은 마지막으로 아시아 영화인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시아 영화인’이라는 생각은 늘 제 근저에 있습니다. 영화제나 영화 현장 등에서 교류하다 보면 국가나 어떤 공동체보다 훨씬 더 크고 풍요로운 ‘영화’라는 큰 공동체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에게 영화는 정치를 넘어선 일인 듯했다. 부산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