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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구상(이세기의 인물탐구:138)

    ◎뿌리깊은 ‘시심’… 역사의식 음미/세속의 고달픔·분노·저항 시로 표현/50여년간 저서 30여권… ‘문단의 어른’ 시인에게 명징한 시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세속에 시달린 고달픔과 분노와 저항이 순화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우리 문단에서 사물의 현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기 전에 맑게 열려있는 내부의 시선으로 시를 써온 구도자적 시인이 있다면 그가 바로 구상시인일 것이다. 그는 ‘사물에 대한 독자적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문학을 한다는 것이며 ‘만물은 감각이 아닌,존재론적 차원에서 음미하는것’이라고 말한다.그의 시는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인식과 역사의식에서 출발하여 문단에 처음 나온 5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뿌리깊은 시심이 시들줄을 모른다. ○신부 되려 일 신학교 입학 한 시인이 펴낸 30여권의 저서는 문학에 대한 왕성한 열정과 강인한 정신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어떤 시인 작가보다도 그는 수많은 태풍과 좌초와 시련을 겪었고 그로인해 구상문학의 심도는 그의 신앙과 관련된 어떤 헌사나 찬사도 한사코 거부한다. 본래 서울 종로 이화동에서 태어났으나 독일계 가톨릭 베네딕트수도원의 교육사업을 위촉받은 부친 구종진씨를 따라 4살 되던 해 원산시 근교인 덕원에 정착,그의 자전적 시집인 ‘모과나무 옹두리에도 사연이’에 그의 전 생애가 그림처럼 그려져있다.그는 부친이 쉰넷,어머니가 48세의 나이의 만득으로 노부모는 ‘심산의 동삼’처럼 애지중지하였고 장성할 때까지 의식주의 그리움을 모른채 그는 학문의 숭상과 인간의 구경이 현세에 있지않다는 참된 종교의 훈육을 받을수 있었다.그리고 부친이 돌아가실 무렵에 남긴 “너는 사물에 너무 기승을 하지 말아라.박빙인생인줄 알고 자신이나 자부를 너무 갖지 말라”는 것이 한평생의 좌우명이자 삶의 지침이 되었다. 소년시절부터 ‘미동’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이목구비가 반듯했던 그는 ‘겉으론 신수가 훤하고 키도 작은 편이 아니어서’ 호주머니가 텅텅 비어있어도 친구들은 ‘기천금쯤이야 문제없겠다’고 했고 막걸리집에서 나와도 요정에서 취한줄 알았다.더구나 그의 집안 내력과 부모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역정이나 내정도 순풍에 돛단듯 귀공자나 행운아인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의 부드러운 외양만으로는 ‘옥고를 치렀다든가 북한에서 감옥탈출을 했다든가 폐결핵환자로 두번씩이나 폐수술을 했다’는 것을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다.말씨 역시 굼뜨고 어눌한 편으로 라디오나 텔레비전 좌담회에 나오면 말의 짝을 맞추는 철어방식이 제멋대로지만 긴장되고 조리가 서야 하는 교단에서는 능변에다 달변이요,문화행사의 연사나 사회자로 자주 초청될 정도다. 도쿄유학이란 것도 부모의 양해아래 대학진학을 목표로 정상적인 도항 수속을 밟은 것과는 달리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성베네딕트수도원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3년만에 환속을 했고 문학을 한답시고 ‘고향의 불령선인’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걸핏하면 유치장 신세,‘스물 안짝에 교회에선 이단자,가문에선 불효자,마을에선 주의자 취급’을 당하다가 사회의 악의에 찬 눈길에서 벗어나고자 도쿄밀항을 시도하게 된것이다. 그간의 문학적 항해도 유유자적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널리 알려지다시피 그는 원산문학가동맹의 주동멤버였고 거기서 발간한 해방 1주년 기념시집인 ‘응향’에다 북한을 ‘까마귀와 불길한 아침,수상한 그림자가 배회하는 암흑지대’에 비유하여 ‘퇴폐적 악마적 반역사적 반민족적’등의 빗발치는 비난에 쫓겨 47년에 탈출하게 되었다. ○원산문학가동맹 주동멤버 6·25의 와중에서도 인간역사속의 오늘을 연작형태로 쓴 ‘초토의 시’로써 전쟁속에서도 섭리와 자유,선과 악,이념과 민족 등의 실존의식을 구상적으로 표출하였고 5·16이후 스스로의 행동적 현실참여에 허탈감을 느끼자 대학강단으로 전신하기에 이른다.이때 시작업의 휴면상태를 메우기 위해 연작 장시의 효시로 알려진 ‘밭일기’ 100편의 에스키스를 시작,‘나같은 사람은 어떤 일에 감동하는 촉발생심이나 그때그때 시류에 맞춘 시로서는 사물의 실재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에서 존재의 무한한 다면성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한 제재로써 응시를 거듭함으로써 관입실재하려는 의도’를 밝힌 바 있다. 만년의 그는 문단의 어른으로서 지휘하고 통솔하는 위치지만 단한번도 공직을 맡지 않았고 자신의 범주를 더이상 과장하지 않는다.먼저 간 오상순선생을 기리는 공초문학상을 위한 기금마련을 했고 그를 원하는 곳에 가서 상도 주고 축사도 서슴지 않아 사회적인 대소사에서 그를 만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그러나 막상 자신을 위한 자리는 극단적으로 마다하는 결벽과 괴팍스러움이 있다는 것은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짐작하기 어렵다. 지금도 그의 친지나 가까운 이들은 ‘진작 죽을 사람이 부인덕에 살게됐다’고 말한다.고향에서 중매로 결혼한 부인 서영옥씨는 수년전까지 영등포에서 순심병원을 경영하던 여의사로 그의 고질병인 폐결핵 치료의 주치의이기도 하다.자녀는 아들과 수필집 ‘딸 자명에게 보내는 글발’의 주인공이 있다.부인과 사별후 지금도 여전히 여의도 시범아파트,문을 열면 그와 절친했던 이중섭의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분위기에서 20년 이상을 하루같이 아침이나 낙일에 강변을 반원을 그리며 산책하고 그 바쁜 틈틈이에도 순백의 동심에 젖기 위해 어린이 놀이터에서 소일하기도 한다.선친의 유언대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 명성과 자신이 갖춘것에 비해 겸허하고 양보한다. 그런 그는 어딘지 모든 것이 무난하므로 탈을 부리지 않으려는 무사안일로 오해될 수도 있다.그러나 그의 파란이 중첩된 생애를 꼼꼼히 살펴보면 시인의 가슴에 담긴 슬픔의 무게야말로 생활철학과 종교와 깊은 시심에서 우러나온 평균적 수치임을 알게 된다.사물의 현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기 전에 심안을 통해 사리의 세계를 구축한 그의 구상문학도 끝없는 시심과 모나지않은 인품의 결과이며 이제 우리는 세속의 고달픔과 분노를 씻는 이 구도자적 노시인에게 진정어린 경의를 보내는 것만이 예의다. □연보 ▲1919년 서울 출생·원산 성장 ▲1941년 일본대 종교과 졸업 ▲1942­45년 북선 매일신문 기자 ▲1946년 시집 ‘응향’필화사건으로 월남 ▲1948­57년 연합신문 문화부장,승리일보주간,영남일보 주필 ▲1957­61년 서울대 서강대 출강 ▲1970­74년 하와이대 교환교수 ▲1976­현재 중앙대 예술대 대우교수 ▲1979­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6·93년 아시아시인회의 서울대 회장,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저서◁ 시집 ‘구상’(51년) ‘초토의 시’(56년) ‘까마귀’(81년) ‘개똥밭’(87년) 자전시집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84년) 사회평론집 ‘민주고발’(53년) 수상집 ‘침언부언’(60년) ‘실천적 확신을 위하여’(82년) ‘나자렛 예수’(79년) 시론집‘현대시 창작입문’(88년) 영역시집‘타버린 땅’(89년 런던) ‘밭과 강’(91년 런던) 등 30여권. ▷수상◁ 금성화랑무공훈장(55년) 서울시문화상(57년) 국민훈장동백장(70년) 대한민국문학상 본상(80년) 대한민국예술원상(93년)
  • 서양화가 이만익(이세기의 인물탐구:108)

    ◎내면세계 귀기울이는 「문학적 화가」/중학때 국전입선… 「출품자격」 논란 일으켜/매서운 절제력으로 격조있는 개성 표출 「냉철한 지성의 화가」로 지칭되는 화가 이만익,그는 하나의 정해진 틀과 격식에 얽매이기보다 새로운 것을 향해 달리고 변모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투철하게 이룬 완벽주의라고 할수 있다.그가 지난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말하는 그림,소리없는 시」란 부제로 「40년 회고전」을 열었을때 화단 일각에서는 그의 나이가 「40년전」을 열기에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는 의아심을 갖는 이들도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림 40년전을 여는 뜻」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충만한 침묵」 머물러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에 매달리고 미술반활동을 시작한 것은 효제국민학교 2학년때부터고 그 일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이는 실로 50년에 이르는 세월』이며 「철없이 어린 날에 끄적거린 것이 어찌 그림이겠는가 웃을지도 모르지만」 「철모르고 순진하게 바쳤던 지난날의 시간들에 더없이 애정이 간다」고 했다.그래서 「한걸음멈추어 서서 지나온 나를 돌아다보고 맞이할 시간을 다시 준비」하기 위해 그가 겪은 「좌절감의 흔적」들을 한자리에 모아 펼쳐보이기로 한 것이다.전시에는 52년 그가 경기중 2학년때 그린 스케치에서 95년 신작에 이르는 2백40여점의 대작 소품이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이만익의 그림은 우리 역사의 삶속에 깃들인 인물들을 하나같이 관조하는 분위기다.잔잔하게 미소띤 얼굴에는 기다림이나 그리움,슬픔과 기쁨이 엇갈리고 기다림과 그리움의 연민 위에는 「충만한 침묵」이 초연히 머물러 있다.그가 정물이나 풍경이 아닌 인물에 유달리 집착하는 것은 화가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하나의 생명에 보다 적극적으로 표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선은 굵고 힘찬 유기적인 곡선에다 색채는 원시적인 원색이면서도 미술적인 녹청 군청 산호색이 정제된 조화를 이루고 있다.이른바 선과 색은 표현적 차원이 아닌 상징적 의미이며 정교하게 계산된 필치와 「긍정적 시각」으로 선명한 회화효과를 추구해내고 있다.삶을 찬미하는 마음에서 나온 장식성 또한 「정감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정돈시킨 것」으로 이는 그의 최근의 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크게 세가지 시기로 분류된다.50년대와 60년대는 주로 역 대합실이나 아기를 등에 업은 노인,생활에 지치고 고단한 청계천일대의 풍경 등을 대상으로 삼고있고 프랑스 유학 이후 어둡고 탁한 색채 대신 색채의 순도와 강도를 살린 장식적 화면을 조성하게 되었다.이른바 포만과 방출을 통과하여 마음속에 붓을 담가 그리는 「독자적 양식」을 구축하게 된 셈이다. 그는 『그림이 어렵고 모호해져서 공허한 논리로 옹호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래서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해 문학적 주제와 소재를 선택하게 되었고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주몽을 장대한 기상으로 정립하거나 「정읍사」 「삼국유사」속의 민족적 정서와 순수한 심성,민화·민담·탈춤에 이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 판소리에서 서민의 정취와 시와 해학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풍경보다 인물에 집착 이에대해 오병남 교수는 그의인물들은 「지워도 지워지지않는 우리의 한 자화상」이며 작가는 『인생의 애환과 정한에 직접 가담하지 자기 감정의 통로를 차단하여 그림속의 사연을 노출시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즉 그의 특기인 「무심한 방관자로서 작품에서의 작가의 감정을 매섭게 절제·생략하고 있다」는 평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는 것처럼 그도 어릴때부터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운명이 결정지어졌다.그리고 남들보다 배이상의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냈다 하더라도 그때마다 「풍운이 있는 곳엔 항상 서조」가 깃들이고 있음을 예감하여 비통과 고통마저도 「우주의 상서로운 빛,자연의 은총,인간의 따스한 정」으로 극복해왔고 그로인한 여유와 사유의 차원에서 「무념」의 경지를 맞게 됐는지도 모른다. 황해도 해주 상동에서 그는 배재고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부친과 경기고녀 출신인 지식인 부모밑에서 태어났다.부친은 해방전 타계하고 46년 어머니 이경숙 여사를 따라 6남매가 월남,53년 경기중 3년때 그린 「정동의 가을」과 「골목」등 2점이 제2회 국전에 입선하기도 했으나 중학생의 국전입선이 논란되면서 국전출품자격을 「대학 3년 이상」으로 규정시켜놓은 바로 그 장본인이기도 하다. 서울대 미대 재학중 국전 특선으로 다시 한번 야심에 찬 경력을 쌓았고 졸업후에는 대학때의 스승인 이봉상의 안국동 화실에 드나들면서 앙가주망 동인 활동으로 「의식있는 그림」을 발표하여 그때마다 화단의 기대를 모았다.66년부터 국전 3년연속 특선,이후 4년간은 「맹랑한 낙선」의 고배를 거듭 마신 끝에 그는 「미술계라는 제도권」과 국전의 불합리성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언제나 자신감 넘쳐 이만익의 세계에는 러시아 해빙시대의 기수이던 예프투셴코의 분위기가 언뜻 풍겨난다.혹은 혁명적 이미지의 르페브르나 실존적인 야스퍼스같은 프로필이 엿보일 수도 있다.어쩔수 없이 예술가의 면모를 굳건하게 지닌 그는 「회화의 문학성」을 끝내 고집하여,미술평론가 원동석에 의하면 그는 「이 시대 걸출한 문학적 화가」에 틀림없다.「그림속의 잔물결같은 미소와 슬픔을아련하게 깔면서 음영이 없는 원색의 대비,모나지 않은 형태의 균형감각,원근법을 무시한 평행적 구성등은 마치 영원을 향해 정지하고 있는 옛 벽화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그의 평이다. 당당한 눈빛과 언제나 자신감에 넘치는 명쾌한 실천적 행동은 어느 장소에서나 그늘이나 복안이나 위선이 없어보인다.평소 술을 즐기고 친구를 좋아해서 폭넓은 층과 친분을 트면서 사적인 모임에는 미인 부인인 김대화씨를 대동하기도 한다.자녀는 남매.지난 6월에는 시카고에 체류중인 여장부같은 어머니 이경숙여사가 92세의 나이로 그림전을 열어 집안의 기세를 한껏 과시해보였다. 이만익은 「항상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가 들은 것을 마음속에다 솔직하게 기록할줄 아는 명철을 지닌 작가」다.격조있는 개성과 군더더기가 없는 단순한 평면성으로 누가 봐도 「이만익의 것」임을 알게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했으나 그는 끊임없이 불뿜는 활화산인 듯 특유의 암자색을 분출하려는 정열로 또한번의 용틀임과 비약을 꾀하는 시기다. □연보 ▲1938년 황해도 해주 출생 ▲1953년 경기중 3년때 국전입선 ▲1959년 서울대 재학중 국전특선 ▲1961년 서울대 미대졸업 ▲1966∼68년 국전 연속3회 특선 ▲1962∼94년 앙가주망 동인전 ▲1973년 제1회 개인전겸 도불전 ▲1973∼74년 프랑스 아카데미 괴츠연수,르살롱전(은상) ▲1975년 귀국개인전(서울미술회관) ▲1977년 서울미술관 개인전 ▲1978년 서울미술관 개인전 ▲1979년 동덕미술관 개인전 ▲1980년 파리 개인전 ▲1981∼84년 「현대문학」지에 「그림으로 보는 삼국유사」 연재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신세계미술관및 광주개인전 ▲1983년 이탈리아 한국현대미술전(밀라노),국제조형작가회의(IAA) 한국대표단참석(헬싱키) ▲1984년 문예진흥원미술회관 개인전 ▲1985년 「그림으로 본 삼국유사」출판기념전(선화랑) ▲1986년 현대화랑초대 판화전, 파리 그랑팔레·독일 브레멘개인전 ▲1987년 ’87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현대화랑초대 개인전 ▲1989년 서울갤러리·부산일보화랑·라디오프랑스초대 개인전(파리) ▲1988년 서울올림픽 및 장애자올림픽미술감독 ▲1990년 도쿄 아트엑스포 개인전 ▲1991년 현대화랑·부산금화랑 개인전 ▲1992년 강남현대화랑·쥴리아나 아트갤러리 개인전 ▲1994년 제5회 이중섭미술상수상기념전(조선일보미술관),춤과 음악의 미술전(한가람미술관),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95년 이만익 그림 40년회고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수상〉이중섭미술상(93년)
  • 시인 고은/내 기질 꽃피울 곳은 역시 예술(작가를 찾아:5)

    ◎미학으로서의 역사를 미는 나는 정치적 유미주의자/중학 하교길 한하운 시집 주워 읽고 시인 꿈꿔/시집 「만인보」는 고달픈 민중의 삶 기록/통일이 특정세력의 구호였던 시대 끝나 인간을 하나의 소우주라고들 하지만 이 우주라는 비유가 고은(63) 시인에게서 처럼 걸맞는 대상을 만난 경우도 드물다. 어떤 자리에서든 한번이라도 고은과 마주앉아 봤다면,더욱이 그와 술잔이라도 기울여본 이라면 잘 알 것이다.빨아들일듯 이글대다가도 금세 세상잡사를 초개로 돌려버리듯 표연히 돌아앉는 눈초리와 넘실대는 거대한 에너지의 엄청난 감염성을. 시인으로서 그의 생산력은 초신성 터지듯 폭발적이다.그런가하면 블랙홀처럼 바닥을 알 수 없는 허무의식은 젊은시절 그를 잇단 자살기도로 몰아대기도 했다. 그의 세계에서 세인들이 갈라놓은 선악개념은 빛이 바랜다.인간적 가치를 넘어선 곳에서 우주가 불규칙적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듯 그의 내부에서도 늘 낡은 관념에 묶인 자아에 대한 사살이 일어나고 번번이 새 생명이 돋는다.그는 진흙위에서만 화려하게피어나는 연꽃의 미덕을 안다. 어느 때는 천진,제멋대로인 소년이다가 어느 때는 선승의 도통으로 속세를 내려다보는 예술가.민주화의 물결을 앞에서 끌며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한 이상주의자인가 하면 어느 순간 무정하리만치 매서운 현실분석으로 돌변하는 정치사상가. 이 종잡을 수 없는 카오스 자체이며 마르지 않는 글샘 고은이 최근 왠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1년에 열권의 책을 쉽게 쏟아내던 그가 새책을 내놓지 않은지 어느새 반년. 『이제는 숨도 좀 돌리고 정리를 해가며 쓰려고요.하루 1백60장까지 쓰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많아야 50장이면 족합니다.오래 발효시켜 올 하반기쯤 큰 글을 하나 낼 계획입니다.「만인보」10∼12권도 이때쯤 나올겁니다』 젊은날 시인이 불교며 동양사상에서 받은 세례는 현실문제가 다급했던 80년대 내내 잠복해있다가 근작에 일제히 분출됐다.「화엄경」「선」「뭐냐」 등 소설과 선시집으로 오묘하며 허허로운 도의 세계를 빚어냈던 그는 다음 작품에서도 이를 더욱 파들어가보겠다고 한다. 『동양사상은 서구에서도대접받기 시작한지 오랩니다.보르헤스도 불교에 심취했었고 옥타비오 파스도 노장의 영향을 받았다지 않습니까.미국의 신과학주의 같은 것도 그렇고….종속이론이며 제3세계의 많은 저항적 정치이념이 사양길을 걷는 때에 그 정신문화는 오히려 주목받는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습니까.이것은 제1,2세계 문학이 퇴색했으니 동양사상이 다시 떠올라야 한다는 식의 대항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나는 서구의 것까지 껴안아 넘어서는 더 넓은 대안의 문학을 제시해보고 싶은 겁니다』 진보·저항문인의 대표적 단체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창립했고 그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까지 지냈던 그로서는 90년대 한국 정치상황의 급변을 매번 눈을 씻고 다시 보아왔다. 『이번 총선 때도 보세요.과거 민주화운동을 같이했던 동지와 후배들이 무소속,민주당,국민회의,신한국당까지 뿔뿔이 흩어져 나왔더군요.과거엔 짐작이나 했던 일입니까.몹쓸 선거역병들이 여전히 들끓었지만 나는 크게 보아 발전이고 적어도 발전을 향해 가고 있다고 봐요.몸살을 실컷 치르고 나면 우리 시민사회가 성큼 무르익겠지요』 그는 우스개삼아 『사실 정치라면 내가 누구보다 기질이 있다』고 덧붙인다. 『정치적 아이디어 풍부하지 선동력,토론능력,싸움꾼 근성까지 어느 출마자에 뒤지지 않지요.하지만 이게 직업정치에만 필요한게 아닙니다.민주주의를 꿈꾸고 독재의 모순과 맞섰던 정치적 인간으로서 나는 더욱 떳떳하니까요.본질적으로 내 기질을 꽃피울 곳은 누가 뭐래도 예술이겠고요』 중학 3학년 때 한시간을 넘게 걸어다녔던 하교길에서 우연히 한하운 시집을 주워 읽은뒤 시인을 꿈꾸기 시작한 그에게 예술혼이란 말은 숙명과도 같은 울림을 띤다.그래서인지 『나는 앎의 궁극목표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과학으로서의 역사 보다 미학으로서의 역사를 믿는다.나는 정치적 유미주의자다』라는,다른 사람이 했으면 엉뚱했을 호언조차 자연스럽게 들린다. 지난 83년 결혼과 함께 들어앉은 경기도 안성군 대림동산 장미골 집에서 그는 13년째 살고 있다.이곳 2층에 차려진 거대한 서재에서의 세월은 계절병처럼 찾아든 몇번의 구속을 빼곤 생애 처음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문학과의 밀월을 흠뻑 즐긴 기간이었다.이 시절에 그는 고달픈 민중삶에 대한 거대기록인 시집 「만인보」를 쓰기 시작했고 네권짜리 장시집 「백두산」을 맺었다.나이 쉰둘에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딸도 얻었다. 눈앞에 펼쳐진 산맥에서 이름을 딴 그 딸 차령이가 어느덧 국민학교 5학년.자라나는 자식을 보며 노시인은 누구보다 간절히 풍요로운 미래를 꿈꾼다.그때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화두는 통일이다. 『통일이 민주화운동 세력들만의 구호이던 시대는 지났지요.이제는 어느 편도 통일이 보편적 염원이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아요.저마다 나름의 통일방안을 내세우는 이도 많지만 통일이 어찌 이뤄질지야 운명만이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때를 대비해 민족의 자기동일성을 이뤄나가는 일이에요.저토록 폐쇄적이고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북한을 그대로 두고 통일이 된다 해도 얼마나 문제가 많겠습니까.북한에 대한 창조적 비판과 민족애로 굳고 맺힌데를 풀어줘야 합니다.이들에게도 통일을 준비시켜야 해요.이런 저런 이유로 통일은 한 20년쯤 걸리지 않겠습니까.나는 그때까진 살 작정이요』〈손정숙 기자〉 □연보 ▲1933년 전북 옥구군 용둔부락(현 군산시 미룡동)에서 고근식·최점례의 3남중 장남으로 출생.본명 고은태 ▲군산중학교 수석입학(47년) ▲전쟁의 참혹상에 충격받고 두차례 자살시도.이 와중에 한쪽 고막이 녹아버림.혜초승려를 만나 출가(50∼51년).법명 일초(52년) ▲조지훈의 천거로 「현대시」에 시 「폐결핵」발표.「현대문학」에 서정주의 단회추천으로 등단(58년) ▲첫시집 「피안감성」발표(60년) 환속(62년) ▲시집 「문의마을에 가서」(74년)「조국의 별」(84년)「네 눈동자」(88년)「만인보」9권(86∼89년) 장시집 「백두산」4권(87∼91년) ▲「이중섭 평전」(73년)「이상평전」(74년)「한용운평전」(75년) ▲기타 소설집·평론집·산문집 등 저서 1백여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대표간사(74년)국민연합 부위원장(79년) 한국민예총 공동의장(8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90∼91년) ▲83년 함석헌 주례로 이상화(이상화·중대교수)와 결혼 ▲제3회 만해문학상(88년) 등 수상
  • 노화가 귀국전(외언내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보현 초대전」.작품속의 무한한 상상력과 자유로움,그리고 자연주의적 천진난만함이 영롱한 색감과 어울려 뿜어져 나온다.경이롭고 감동적인 그의 그림앞에서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춘다.『도대체 이 작가 김보현은 누구인가』라며. 김보현은 국내 화단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재미화가다.19 55년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한 지 꼭40년,올해 78세의 고령이다.그동안 미국의 도처에서,그리고 독일 뮌헨에서 15회의 개인전과 18회의 그룹전에 출품한 경력이 그의 작가활동을 말해준다. 미국·프랑스·독일·인도의 유명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소장돼 있을 정도.그럼에도 김보현의 작품은 92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됐다.당시 그의 개인전을 소개한 한 월간지의 기사제목은 「76세의 소년,예술의 홍수시대에 나타난 대가 신인」. 미국에서의 그의 특이한 화면작업은 동양적 감성으로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길이 17m가 넘는 벽면을 압도하는 그의 대작에는 사람도 나오고 숲과 코끼리·사자·표범등 맹수와 유영하는 물고기도 보인다.순수하고 무구한 자연주의의 감동적 표현이다.샤갈의 의외성,이중섭의 설화적 동심,그리고 장욱진의 천진성 같은 것이 함께 느껴지는 화폭이다. 70년대 몰두한 딸기·복숭아등 과일과 홍당무등 색연필 그림은 뛰어난 묘사력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작가는 대작을 그릴때 사전에 주제나 내용에 대한 구상 없이 캔버스의 오른쪽 위로부터 순간의 착상을 자유롭게 그려나간다.천의무봉의 세계가 김보현작품의 특성이다. 실로 40년만에 돌아온 노화가의 귀향전은 적막하다.전시실 1·2층 5백여평에 그의 그림이 가득 걸려 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의 발걸음은 뜸하다.김기창·김흥수에 이어 예술의 전당이 세번째로 기획한 원로 초대전 임에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웬일일까.국내 화단에 특별한 인연도 계보도 없기 때문이 아닐는지.그래도 그의 작품은 우뚝하다.
  • 위대한 화가 아름다운 그림 70선/우리누리 지음(화제의 책)

    ◎어린이 위한 동화형식 미술사입문서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본격적인 미술사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한국편과 세계편 두권이며 동화 형태로 썼다.주인공 어린이가 도깨비·요정과 함께 시간여행을 하면서 명작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작가의 생애,작품감상법등의 해설을 듣는다는 줄거리. 먼 옛날 작품에서 부터 현대미술까지의 흐름을 소개했으며 해당작품의 원색사진을 크게 실어 직접 감상할 수 있게끔 했다. 한국편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불교미술,조선의 안견·김홍도·장승업·윤두서,현대의 이중섭·유영국·장욱진·김기창 등의 작품이 나온다. 세계편에는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보티첼리를 비롯,미켈란젤로·밀레·고야·고호·피카소·샤갈 등이 등장한다. 한국편 주인공인 누리는 일본 만화비디오 팬.그러나 미술여행을 마친 뒤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깨달아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우리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아울러 미술품에 대한 안목을 길러준다든지,어려움을 극복하고 작품을 완성하는 예술가들의 혼을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웅진출판 각권 6천원.
  • 광주비엔날레/한국 근대화가의 대작 한눈에

    ◎9월20일부터 두달간 중외공원 문화벨트서 특별전/김환기·박수근·이쾌대 등의 60점 모아/격동기의 서구예술 주체적 수용 조명/「시상경력」조양규 그림·천재 김관호의 3점 첫 공개 구한말 개화기부터 일제시대까지 한국미술의 여명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대표적 근대화가들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대대적인 전시회가 처음으로 마련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9월20일부터 11월20일까지 광주 중외공원 문화벨트 일원에서 열리는 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으로 마련된 「한국근대미술 속의 한국성」이 화제의 전시회.천부적 재질과 선각자적인 삶으로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화가 17명의 작품 60여점을 통해 물밀듯 밀려오는 서구사조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시대상황을 수용하고 한국성을 지켜나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취지다. 이 시대 작가들의 작품은 일제시대와 6·25라는 엄청난 재난을 겪으면서 상당부분 파괴되거나 유실됐고,험난한 격동의 역사 속에서 사상적 이유 때문에 평가가 유보된 것도 많아이같은 전시회를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었다.그러나 지난 88년 10월 납·월북 화가들의 복권을 계기로 근대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연구가 활발해져 역사의 그늘에 가려있던 이 시대 화가들에 대한 자료가 속속 발굴되면서 재조명작업이 가능하게 된 것. 이번에 소개되는 화가는 한국미술의 여명기에 서양회화를 도입한 김환기(1913∼1974),오지호(1905∼1982),나혜석(1896∼1946),박수근(1914∼1965),이중섭(1916∼19 56),이인성(1912∼1950),이쾌대(1913∼1970) 등.또 외래문화에 맞서 우리 전통회화의 맥을 이어온 구한말 초상화가 채용신(1850∼1941),산수화가 변관식(1899∼1976)과 채색한국화 개척자 박생광(1904∼1985),한국화에 현대적 기법을 가미해 독창적 화풍을 일군 이응노 화백(1904∼1989) 등의 작품들이 소개된다.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서양화가 김관호(1890∼?)와 조양규(1928∼?) 등 두 천재화가의 작품이 최초로 공개돼 관심을 모은다. 평양 태생으로 도쿄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관호는 서양화의 본격적인 도입기였던 1910년대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화가였다.도쿄미술학교를 수석졸업(1916년)했고 졸업작품 「해질녘」으로 같은 해 10월 일본 문부성이 주최하는 문전에서 특선을 차지하는 등 그의 활약은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눈부셨다.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작품은 도쿄미술대학에 소장된 「해질녘」과 「자화상」 단 2점이 전부였다.그러다 이번 전시회의 큐레이터인 평론가 윤범모 교수(경원대)에 의해 도쿄미술대 동창생인 한 일본인이 그의 작품 3점을 소장하고 있음이 확인됐고 이번에 국내에 선보이게 됐다. 조양규는 사상경력 때문에 일본으로 건너가 전후 50년대 일본화단을 주름잡았던 한국인 화가.제주4·3사건에 연루돼 48년 밀항했던 그는 60년 행방불명되기 전까지 인간소외를 강렬한 필치로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우리 근대미술사에서 최초의 리얼리즘 작가로 꼽힌다.
  • 「현대미술 50년전」/해방이후 한국명작 흐름 한눈에

    ◎22일∼3월29일 국립 현대미술관/「호암」·「토탈」 등 7개 사립미술관 참여/62명작품 86점 시기별로 선별 전시 국내 주요 사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조각등 미술품을 한자리에 모아 해방이후 지난 50년간 우리의 현대미술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기획전이 열린다.문화체육부와 미술의해 조직위원회가 22일부터 3월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마련하는 「현대미술 50년전」이 그것.이처럼 사립미술관의 합동 전시회가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호암·워커힐·선재·환기·운향·한국·토탈미술관등 7개 미술관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각 미술관의 소장품중 해방이후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던 작가 62명의 작품 86점을 시기별로 구분 전시해 우리 현대미술의 흐름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끔 꾸미는게 특징이다. 전시에 참여하는 미술관은 호암미술관을 빼놓곤 대부분 최근 설립된 것들.소장작품 가운데 45년부터 50년까지의 초기작품은 드물고 일부 미술관은 특정 작가의 미술품만을 소장해 시기별 작품분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따라서 한국의 현대미술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전이라기보다는 미술관 소장 작품으로 본 단면전의 성격이 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회는 우선 사립미술관 및 박물관 설립을 유도하는 정부 정책의 하나로 개인과 기업등 일반인들에게 이같은 사립미술관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우리 미술의 변천모습을 보여주는 보기드문 자리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시작품을 시기별로 보면 이중섭의 「황소」,김환기의 「영원의 노래」,김기창의 「복덕방」「군상」,박래현의 「이른아침」등 50년대 작품이 18점,김기창의 「무당 Ⅱ」,박수근의 「소와 아이들」,남관의 「푸른문」,김창열의 「수평」,천경자의 「가족」등 60년대 것이 29점이다.또 70년대 작품으로는 권옥연의 「사랑」,김환기의 「무제 03­07­72」,김영주의 「인간들의 계절」,변종하의 「밤의 새」,성재휴의 「청기와 숲」등 8점이 나오며 80년대 이후 작품으로는 박생광의 「무녀」,곽훈의 「기」,서세옥의 「군무」,권여현의 「꿈」,곽덕준의 「대통령시리즈」,전수천의 「혹성들의 신화」,안성금의 「관음」,조성묵의 「메신저」,조광호의 「로고스의 암호­코리아환타지」등 31점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회의 운영위원장을 맡은 오광수 환기미술관 관장은 전시회 개최와 관련,『국립현대미술관속에서 열리는 또다른 미술관들의 전시회인만큼 자칫 「화랑미술제」의 인상을 보일 수도 있지만 각 미술관 소장품중 한국미술 50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들을 선별해 회고하는 자리로 꾸몄다』면서 『전시회 준비과정에서 주로 최근 작가위주의 작품 소장등 국내 사립미술관의 한계가 드러나 향후 이같은 풍토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시인 조정권씨 산문집 「하늘에 닿는 손길」 화제

    ◎산문의 벽 뛰어넘은 「시문체 인물탐구」/잡지사 시절 예술인들과의 인연 엮어/“가벼운 단상”서 탈피… 읽는 재미 쏠쏠 일상속의 가벼운 단상들을 적은 글을 흔히 「산문」이라는 문학의 틀로 묶는다.그래서 산문은 읽는 이들도 부담없는 자세로 대하게 되고 쓰는 작가들도 가벼운 읽을거리쯤으로 여기게 되는게 일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 조정권씨(45)가 최근 펴낸 산문집 「하늘에 닿는 손길」(문학동네간)은 이같은 산문론을 다시한번 생각케 하는 읽을거리로 다가선다. 즉 시적인 표현으로 흐르는 문체나 집요하게 파고드는 인물탐구,겸손한 자기성찰등 「산문을 뛰어넘는 산문」의 묘미를 충분히 전하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철저히 작가가 맺었던 미술과의 인연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있다.7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조시인이 미술쪽에 관심을 두고 「공간」지에서 6년간 근무하며 편집장과 주간직을 맡기까지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따라서 이 산문집은 조씨가 「공간」지와 인연을 맺고 있을때 만나거나접했던 문화예술 특히 미술분야의 인물들과 맞물려 나름대로의 사유를 정리한 글모음인 셈이다. 산문중에는 실제로 미술인과의 예사롭지 않은 만남에서 자신의 시 인생이 출발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글이 실려있기도 하다.『나의 문학은 한 위대한 화가로부터 자양분을 받았다』고 한게 바로 그것. 조시인은 이같은 인연으로 만나게 된 인사들에 대한 탐구와 자신의 시적 감수성을 거침없이 이 작품에 쏟아놓고 있는데 시와 미술의 자연스런 만남이 작품 전체에 펼쳐지고 있다. 『이중섭은 우리가 잃어버린 대지의 원주민이었음이 분명하다.「황소」는 원초적 회귀적 상상력과 만남으로써 웅대하게 내면화 되고 안으로 굽이치는 남성적 육성을 획득한 작품이다.대륙적 상상력까지를 동반한 열망의 표상을 그리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는 그 속에서 용기를 일으키는 허무의 굽은 물결을 견디기에는 너무나 선한 인상을 타고났다』(내장을 쏟을듯한 실존­이중섭의 황소). 『내가 마당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이유는 빗자루질을 함으로써 드러나는 마당의 살결이 목적이 아니라 빗자루질이 지나간 길 위에 빗자루질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나의 행위위에 나의 체중과 호흡을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라네』(백지4­내가 마당에서 빗자루질하는 이유중). 화가 윤형근의 그림에서 착상한 이 시말고도 이 산문집에는 자작시가 숱하게 등장한다. 특유의 통찰력과 칼날같은 언어감각은 빼어난 미문을 만들기도 하는데 「들풀은 청평의 딸이다」(모노크롬의 가을)/「4월의 땅은,아직 한 장의 늙은 피부 빛깔이다」(누드산책)/「이우환의 점과 선들은 결빙을 꿈꾸고 있었다.나는 그 앞에서 언젠가는 얼음으로 깎아낸 한 줄의 시를 완성하리라 맘먹고 있었다」(내 시와 이우환과의 만남)등의 표현이 그것들이다.
  • 「실내정경 구상화」­「한국화단사 발굴」 기획전

    ◎소외된 작가와 작품 새로 조명/강진옥 등 13명의 대상접근론 독특/구상회화의 흐름·정보 아는데 도움/「발굴전」엔 초기추상미술 이끈 변희천씨등 그림 선봬 국내화단의 중심부에서 소외됐거나 뒷전에 처져있던 작가와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획전이 2월화단을 의미있게 장식한다.오는13일까지 서울 현대아트갤러리(513­5508)에서 열리는 「구상회화 재조명시리즈­실내정경,그 친화적 세계의 접근」전과 16일부터 3월15일까지 서남미술전시관(715­9306)이 마련하는 「한국화단사의 발굴시리즈­40년만의 재회전」이 그 전시로 현대미술에 생소한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그림마당이 된다. 「구상회화 재조명…」전은 추상과 실험일변도의 현대미술 경향에서 그 가치및 의미를 상실해온 구상회화에 대한 깊은 애정의 「자기 반성적」전시로 볼 수 있다.의식과 예술성면에서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 한편 서구지향의 회화적 규범아래 화단 중심부의 조명을 받지 못해온 구상회화를 진지하게 되짚어 보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상회화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은 이 갤러리에서 적어도 구상회화에 오늘을 이끌어 가는 작가들의 다양한 정보와 면면을 접할 수 있다.지난 92년5월부터 구상회화에 대한 재조명시리즈로 시작,이번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실내정경…」에는 강진옥 김경희 김명식 배정혜 유의랑 장지원등 13명의 작가들이 특유의 방법론으로 대상세계의 접근에 노력하고자 한 독특한 미감을 반영하고 있다. 서남미술전시관의 「한국화단사 발굴…」전은 우리 화단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서도 세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 3명을 초대하는 자리이다.작고작가 이철이씨와 함께 원로작가 변희천화백(86),김종하화백(76). 이중섭·박수근과 더불어 우리 양화의 2∼3세대에 속하는 이들은 지난 54년6월 당시 화신백화점내 화신화랑에서 3인전을 가진 남다른 인연의 인물들로 국내 추상미술 발전에 초석이 된 작가들이다. 생존작가 변희천화백의 경우 철저한 재야작가로 사설화랑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 팽배로 초창기 뛰어난 활동에도 불구하고 일생동안 단 한점의 작품을판매한 적이 없는 작가이며,김종하화백은 일본과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수법의 환상적 표현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지난68년 작고한 이철이화백의 작업 또한 20여년의 휴면기를 거쳐 1∼2년전부터 유족의 노력으로 새 빛을 보기 시작했다.
  • ’93미술계 10대 주요뉴스

    ■금융실명제 실시로 인한 급속한 미술시장 한파. ■운보 김기창화백의 팔순회고전과 손동진·김창렬·곽훈 등 원로·중진들의 대규모회고전 개최. ■백남준의 베니스비엔날레 대상수상. ■한국화랑협회와 MBC간의 이중섭「소그림」위작시비와 소송비화사건. ■서예공모전 비리파문. ■국립현대미술관의 「휘트니비엔날레」와 「플럭서스」「포스트모던4인전」등 해외전 유치. ■대전엑스포 다양한 미술전개최. ■「5천년 민족문화사료전」「겸재 진경산수전」「고려불화전」등 대형고미술전 만발. ■남북미술인이 만난 제1회「코리아통일미술전」일본 도쿄에서 개최. ■「평화를 사랑하는 1백11인의 작가전」「비무장지대전」등 이념을 초월한 이채로운 기획전 등장.
  • 연말 화랑가 꾸미는 소품점 다양/직장인 겨냥…고급스런 선물용 인기

    매년 연말 화랑가의 인기품목으로 자리잡아온 소품전이 올해는 어느해보다 다양하게 꾸며지고 있다. 연말보너스를 받는 직장인들을 겨냥하거나 연말연시 선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고급스런 선물용으로 선보이는 화랑가의 전략으로 화랑들은 대중성 강한 작가들의 소품이나 판화등 10만원대에서부터 수백만원이 넘지않는 수준의 작품들을 구비하고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특히 극심한 불황속에서 마지막 송년전시를 통해 미술애호의 분위기를 새롭게 조성하자는 화랑들의 간절한 기대가 맞아 떨어져 예년을 훨씬 상회하는 십여개 화랑이 저마다 특색있는 소품전을 준비했다. 찾아볼만한 소품전을 살펴본다. ▲서림화랑(514­3377)의 「제5회 소품40인전」(16∼26일)=가격은 20만원에서 6백만원까지며 은행카드를 이용하여 할부로 구입할수 있고 계형식으로 팀을 만들어 목돈이 들지 않고도 그림을 소장할수 있는 방법을 준비. 강정완 윤장렬 이만익 장리규 장리석 이두식등 작가 40명초대. ▲국제화랑(735­8449)의 「황용엽 작은 그림전」(15∼24일)=제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인 황씨의 작가 생애 최초의 소품전으로 12호이하의 작품 30여점 발표.예술성을 인정받는 작가의 친근하고 정감어린 화면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갤러리타임(511­1100)의 「93송년­작은 그림 100점전」(26일까지)=6호미만의 크기로 작품가격은 30만원에서 1백50만원으로 제한,각 장르의 유망작가 33명의 작품 1백점 전시. 김경렬 황창배 김일해 배정혜 김승연 이은산등 초대. ▲세종갤러리(776­1811)의 「93송년특별전」(31일까지)=「사랑의 메시지」란 부제아래 구자승 김경옥 김경희 주태석 권사극 박일용 유향숙등 작가7인의 4호정도 소품전시. ▲부평 해반갤러리(515­7985)의 「27인의 작은 판화와 시의 만남」전(22일까지)=국내 판화계의 정예작가 김승연 김상구 김준권 신장식 김효제등 27명의 대표작 전시.
  • 김환기 등 한국화가 50명의 명화 망라(미술화제)

    ◎캘러리현대,「한국의 명화」출판기념전 금융실명제 실시여파로 크게 위축된 화랑가에 국내 유명작가의 진품을 망라하는 대규모 기획전이 꾸며져 화제가 되고있다. 그 전시는 10월5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734­8215)에서 열리는 「한국의 명화」출판기념전. 일간지 미술담당 기자인 박래부씨가 출간한 저서「한국의 명화」에 수록된 작가 50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장식한 대표적인 화가·조각가가 총동원되는 전시로 김환기 유영국 이상범 이중섭 구본웅 박수근 변관식 도상봉 김인승 오지호 남관 장욱진 이응로 서세옥 박노수 박생광 장우성 김종영 권진규 윤중식 손응성 최영림 김기창 박래현 김정숙 곽인식 임직순 박고석 성재휴 천경자 문신 이대원 권옥연 문학진 김흥수 박영성 변종하 김창렬 김형근 하인두 박서보 민경갑 최종태 백남준 이우환 김종학 송수남 이종상 이만익 곽훈등 작고작가 20명과 생존작가 30명등 이름만 열거해도 쟁쟁한 인물들이다. 갤러리현대 대표 박명자씨는 생존작가와 작고작가 가족들의 협조를 얻어 전시를 구성했는데 모두가 비매품으로 출품된다.
  • 가구점 전시 미술품 11점 도난/표구 부수고 그림만 도려가

    8일 하오9시부터 9일 상오 사이에 서울 성북구 동소문3가 71 동방공예가구점(주인 김정기·49) 2층 전시장에서 시가 1백만원 상당의 허백련작 현판글씨 1점과 이중섭작 서양화 「만삭의 기쁨」(10호 크기) 1점등 미술품 11점이 도난당한 것을 주인 김씨가 24일 신고,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동방공예가구점 종업원 오재교씨(45)는 『지난 8일 하오9시쯤 가구점 출입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퇴근했다가 다음날 상오9시쯤 출근해보니 자물쇠가 부숴져 있었고 2층 전시장 벽면에 걸려있던 전시그림의 표구가 부숴져 그림이 도려내진채 없어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주인 김씨를 상대로 도난품을 조사,이들 작품외에도 이상범씨 작품도 없어진 것을 확인했으나 김씨는 『작품들을 20년전에 산 것인데다 감정을 한 적이 없어 진위 여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중섭씨와 이상범씨의 작품의 경우 호당 1억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진품일 경우 피해액은 1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고미술협회와 고미술상에 도난사실 통보와 함께 수사를 벌이고 있다.
  • 한국­박수근/외국­고흐/미술애호가들 좋아하는 작가

    ◎「월간미술」 320명 조사… 김환기·피카소 각2위 미술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한국작가 박수근,외국작가 고흐인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월간미술 7월호특집 「한국의 미술애호가는 누구인가,그들의 문화의식을 말한다」에서 밝혀진 것으로 월간미술 애독자 3백20명을 대상으로한 조사결과이다. 이 조사는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응답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한데 2년전 현역작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와 그 순위가 대체로 일치한다. 한국작가는 박수근(22명)김환기(12명)이중섭(11명)장욱진(10명)등의 순이며 남관(8명)천경자(8명)김기창(7명)김흥수(7명)유영국(7명)등이 그 뒤를 잇고있으며 이종상 이대원 변관식 박생광 이두식 이왈종 이우환 백남준이 각각 6표로 그다음 순위에 들었다.한국작가에 대한 선호도는 한국적인 내용과 형식으로 뚜렷한 예술적 성과를 남긴 유명작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작가는 고흐(24명)와 피카소(23명) 마티스(14명)에곤 실레(7명)의 순이며 그뒤를 고갱·타피에스·샤갈·르누아르·스텔라·보나르·클림트·롱고·달리·호크니가 각 6표로 나타났다.거론된 외국작가들은 현역작가들보다는 대부분 서구 근대미술작가들이 주류를 이뤘고 동양권 작가는 단 한명도 30위안에 들지 못했다. 한편 작고작가를 포함해 국제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고있는 한국작가로는 백남준(71명)을 꼽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김흥수(28명) 김환기(16명) 이두식(16명) 김기창(12명) 박수근(11명) 남관(10명) 이중섭(9명)등이 차례로 올라있다.
  • 소그림 2점 고이중섭작/진위시비로 “시끌”

    ◎화랑협 “가짜”… 박용숙교수 “진짜” 맞서/사용물감 조사햄 곧 시비 가려질듯 소그림으로 유명한 고 이중섭화백의 소그림을 둘러싼 진위시비로 초여름 화랑가가 시끌벅적하다. 문제의 작품은 당초 이화백의 것으로 알려진 4호와 6호짜리 소그림 두점. 이들 작품을 놓고 국내유일의 미술품 감정기관인 한국화랑협회가 「가짜」라고 판정을 내린데 대해 작품소장자와 미술평론가 박용숙씨(동덕여대교수)가 「진품」이라고 맞서고 있는것. 여기에 MBC­TV가 지난15일 방영한 특집프로「춤추는 그림값」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박씨의 코멘트와 함께 일방적으로 감정위쪽에 공신력이 부족한 것으로 표면화시켜 화랑협회가 발끈한것. 진위주장의 양측은 그동안 논란만 거듭하며 팽팽히 맞서왔으나 최근 TV방송이 도화선이 돼 결국 화랑협회는 완벽한 증빙자료를 갖추고 언론중재위원회에 MBC프로를 제소키로까지 한것이다. 지난90년 천경자씨의 「미인도」위작시비에 이어 또한번 화랑가를 헤집어놓고 있는 이 사건은 지난해7월 울산지역의 소장자 손모씨가 화랑협회 감정위에 시가 10억원상당(진품일 경우)의 소그림 두점의 감정을 의뢰하면서 발단이 됐다. 당시 감정위는 감정위원 7명의 만장일치로 두점 모두 위작이란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문제는 가짜판정 6개월후 『가짜로 판정난 그림인데도 3억원에 두점을 사겠다는 인물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비화된것. 진품을 주장하는측은 『화랑들이 진짜를 가짜로 만들어 헐값에 구입하려는 수법』이라며 비난해왔고,감정위측은 『조사결과 그런 인물이 있지도 않고 박용숙씨의 주장과는 달리 똑같은 구도의 이미 알려진 작품이 있으므로 결코 진품일수없다』고 반박해왔다. 이번 위작시비는 그림에 쓰인 물감등을 뜯어내 조사하고 이중섭화백과 함께 활동했던 생존작가등을 동원할 움직임이어서 조만간 명징한 결론이 내려지겠지만 「돈에 멍든 한국미술계의 치부」를 드러낸 또하나의 부끄러운 미술계 뉴스로 기록될 것같다.
  • 「제주도 소설」 잇따라 발표/제주 출신작가 오성찬 현길언 한림화

    ◎「어두운 시대…」「껍질과 속살」「꽃한송이…」 출간/「4·3사건」「6·25」 등을 토속정서로 묘사 제주도를 작품의 주요무대로,제주도의 토속정서를 소설언어로 그려낸 이른바 「제주도소설」이 오성찬,현길언,한림화등 제주출신작가들의 잇따른 발표로 문단의 이목을 끌고 있다.최근 발간된 오성찬의 「어두운시대의 초상화」(푸른숲),현길언의 「껍질과 속살」(나남),한림화의 「꽃한송이 숨겨놓고」(한길사)등 3편의 소설집이 그것. 이들 소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막다른 변방으로 자리한 제주도에서 과거에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일상사를 토속정서와 독특한 설화에 담아 제주도특유의 사투리로 표현하고 있다.이들 가운데 현재 한양대국문과 교수로 있는 현길언을 제외한 두사람은 아예 제주도에 정착해 있다. 오성찬의 「어두운…」은 6·25직후 서귀포에 피난와서 살았던 천재화가 이중섭의 삶을 소재로 한 표제작을 포함,7개의 작품을 싣고 있다.자신의 15번째 소설집인 이 작품집은 작가가 10년정도 문예지등에 발표해온 중·단편가운데 무게가 느껴지고 애착이 가는 작품만 한데 모았다.표제작은 이중섭과 동시대를 거쳐온 한 무명화가가 제주도박물관 학예관으로 취임,개관준비를 위해 이중섭이 제주도에서 그렸던 그림과 인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라는 범속한 인물과 「천재」로 불리는 이중섭의 삶을 대칭적으로 살피고있다.현대인들이 쫓고 있는 허상의 의미를 분석한 이 중편속에는 이중섭의 제주도시절을 반추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곳곳에 녹아있다.또 단편 「연북정」과 「잡초이야기」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역사적 사실에 착안한 작품이다. 오성찬은 지난 69년 군대문제를 다룬 「별을 따려는 사람들」로 등단,자신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이나 오랫동안 구전되어온 전설등을 직접 취재하여 문학적인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의 작가로 제주신문기자등을 거쳐 현재는 제주역사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제주토박이. 현길언도 나이 40살이 되던 지난 80년에 등단할때까지 그곳에서 태어나 중년기까지 보냈다.그의 작품 「껍질과 속살」중 단편인 「김녕사굴 본풀이」는 제주도의 전설을 소재로 삼고 있다.제주판관이 유가적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김녕사굴을 없앴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불행한 운명을 맞는다는 줄거리로 제주사람들의 현실과 논리를 뛰어넘는 집단의 꿈과 진실,그리고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또 「우리들의 조부님」에서 보듯 제주도 4·3사건때 억울하게 아들을 잃은 노인이 죽음을 얼마 앞두고 아들의 모습으로 빙의해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등 자신의 체험을 소설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그는 문학이란 「체험의 진실」을 어렵사리 주워 모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그가 즐겨 다루는 주제인 4·3사건이나 6·25에 대한 작가의 입장은 비교적 중립적이다. 한림화의 「꽃한송이…」는 제주섬을 위한 작가의 10년에 걸친 진혼곡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제주여성들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삶을 소설을 통해 표현해 보고자 하는 작업이었다.「여정들」「자청비」「비바리」등 작품속에는 우리가 「해녀」라고 부르는 잠수세계와 지금 우리 여성계가 이루어내려는 여성사회의 모델이 제시돼 있다. 작품전편에는 제주지역의 말이 집요하리만치 고집스럽게 쓰이고 있다.작가는 『우리의 땅에 이런 언어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우리의 동족이 있음을 배우라』고 말한다.
  • 작고작가 11명 작품 한자리에

    ◎가나화랑서 15일까지… 회화·조각 60여점/평소 접하기 힘든 국내명작 선봬 지난달부터 개관10주년 기념전을 펼치고 있는 가나화랑(734∼4093)이 1일부터 제2부 기획전으로 「작고작가 작품전」을 열고있다.15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에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고작가 11명의 회화와 조각 60여점이 나와있다. 권진규 김종영 김환기 남관 도상봉 박수근 오지호 이응노 이중섭 장욱진 하인두등 명성이나 성과면에서 빼놓을수없는 거장들의 대표작과 미공개작들을 소개,미술애호가는 물론 미술학도와 중고생들에게도 가볼만한 자리가 되고있다. 대표적인 작품들을 보면 우리민족의 정서와 한을 민중정서의 미로 승화시켜 화폭에 옮긴 박수근의 「시장의 여인들」,실험정신으로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세계화단에 소개한 이응노의 70년대 문자추상작품,한국적 시정과 아름다움을 서양기법으로 표현한 김환기의 유화,치열한 작가정신을 불태웠던 권진규의 회화와 조각등 평소 접하기 힘든 국내 명작들이 전시되고 있다. 가나화랑은 지난달 기념전 「인상파와 근대미술 명품전」을 열어 인사동 1개화랑 전시사상 최고로 전시기간 26일에 2만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 재야화가 고 이철이 예술혼 재조명

    ◎갤러리 21,19∼28일 화업 40년 발자취모아 「유작전」 마련/이중섭과 함께 수학한 양서1세대/국전외면… 「그림통한 자유」로 일관/하정웅대표,“한국미술 발전위해 숨겨진 작가발굴 지속” 잊혀지고 숨겨진 작가들을 발굴,재조명작업에 정성을 기울이고있는 한 화랑이 지난해 연말 김욱규유작전을 개최한데 이어 새해들어 「이철이유작전」(19∼28일)으로 또다른 뜻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사업가로 성공한 재일교포 하정웅씨가 고국에 각별한 마음으로 지난해 가을 동숭동에서 개관한 갤러리21이 바로 그 화랑이다.상업성보다는 미술인과 관객의 교감의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뜻을 담고있다. 이철이란 작가는 지난69년 60세로 타계한 서양화가. 일제시대에 이중섭 유영국등과 함께 동경문화학원에서 수학했던 양화1세대 작가이다. 일찍부터 국전을 외면하고 재야작가로 일관하여 화단의 그늘에 가려졌던 인물이기도 하다.그 저력과 열망을 다 채우지 못한채 예술생애에 대한 엄밀한 평가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불우한 작가라 할수있다. 19 42년 상처한 뒤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과묵한 가운데 술을 좋아했고 세속적 욕심이 없었다는 그의 예술세계는 19 6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선명하게 성취됐다. 지난88년 미술전문잡지의 발굴기사에 의해 작고후 처음으로 미술사적 조명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그래서 유작을 보관해온 유족(장남 이상국)은 비로소 용기를 얻어 90년 조그마한 회고전을 연바도 있다. 이 전람회를 계기로 이 작가에 대한 미술계 인식은 새로워지기 시작했으며 91년에는 이철이의 삶과 예술을 정리한 대형화집이 유족에 의해 발간되기도 했다. 이번 유작전에는 일본 유학시절에 제작했던 누드,풍경등 구상경향의 유화에서부터 해방이후 오랫동안 미술교사로 지내면서 몰입했던 꽃그림 중심의 수채화가 나온다.그리고 예술의 본격적 경지에 접어들어 작고 직전까지 천착했던 추상작품이 한꺼번에 선보여 예술40년의 궤적을 뚜렷이 보여줄수있게 되었다. 그의 아들과 동명이인인 중견서양화가 이상국씨는 스승이었던 그를 『선생님은 작품으로 인생의 승부를 거셨고 그림을 통해 자유를 얻으려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술가의 인생이 어떠해야 하는지 눈뜨게 한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미술평론가 이구열씨는 『그의 예술적 자취를 재조명하는 것은 우리 근·현대화단사에 매우 요긴한 일』이라고 강조하고있다. 지난해 가을 작고작가 김욱규(19 16∼19 90년)의 유작 4백여점을 최초로 공개,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갤러리21은 앞으로도 이 사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한국현대미술사에 빠져있으나 우리 미술사를 바꿔야 할만큼 소중한 작가들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다. 지난20년간 미술을 수집해온 화랑대표 하정웅씨는 그때마다 한국미술의 발전과 우수한 작가들의 양성을 위해 큰 몫을 하리라는 각오로 고국을 다녀가곤한다.
  • 화가 박고석씨(이세기의 인물탐구)

    ◎가식과 물질 탐하지 않는 「산의 화가」/웅대한 산의 정기 힘찬 붓놀림으로 표출/세상잡사에 초연… 「자유 예술인」으로 살아.과묵함 속에서도 친구들 위하는 따뜻한 마음 가득 그가 한 문장으로 길게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시인 고은씨는 『그와 함께 있으면 나 자신은 왠지 혼자서 돌아가는 음반(음반)같을 때가 있다.그는 그 음반의 소리를 들을 뿐』이라고 했을 정도다.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이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말없이 자유스럽게 움직이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산의 화가」박고석씨다. 그는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줄곧 「산」에만 집착해 왔다. 도봉·북악 백양산에서 설악·치악·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명산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 그의 산은 질풍같고 어느 때는 성난파도와도 같다. 안료가 범벅이된 힘찬 붓자국이 선명하게 지나간 화면을 바라보노라면 싱싱하게 살아있는 산의 정기가 꿈틀거리듯 압도해 온다. ○60년대후 산에만 집착 순간의 감동을 놓칠세라 그 웅대장려함을 작가는 단숨에 끌어안는 식으로 캔버스에 담아낸다. 봉우리와 봉우리,구릉과 구릉 사이로 때론 황금빛,때론 벚꽃빛 구름이 여울져 흐르고 하늘은 지중해의 사파이어로 산의 배경을 이루어 놓고 있다. 특히 그가 애착하는 설악의 용틀림같은 산맥은 마치 베토벤의 장엄미사곡을 듣는 듯한 비장감마저 던져준다. 60년대 후반까지 박고석씨 화실은 지금의 안국동 백상기념관 자리인 공간사랑 건물안에 있었다. 가죽바닥처럼 매끄럽고 긴 복도를 지나면 왼쪽 코너에 화실이 있었고 그곳에는 시인 김수영·구상·고은씨와 고은씨를 따라 소설가 최인훈씨,그리고 첼리스트 전봉초씨가 드나들곤 했다. 그들이 오면 박고석씨는 『어?』큰 눈을 껌벅한다.「왔느냐 반갑다」는 뜻이다. 그리고 술병을 잡아 들어보이며 커피잔에 술을 따라 건넨다. 모두들 가난했던 시절,그 화실에는 술과 함께 중국집에서 시켜온 군만두와 땅콩 부스러기가 널려있곤 했다. 그후 70년에 들어서자 그는 원남동 창경원 돌담길에 위치한 인수빌딩 4층으로 화실을 옮겼다. 먼저 화실보다 넓고 환한데다 창경원이 뜨락처럼 내려다보이는 낭만적인 분위기였다. 그의 부인 김순자씨는 미국으로 의상공부를 하러 떠나고 정릉집은 4남매에 맡겨둔 채 그는 노상 이화실에서 기거하는 듯했다. 화가는 화가대로,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마치 소설을 쓰기위해 일부러 설정해놓은 가족구성 처럼 그 가족은 저마다 외롭고 썰렁한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김순자씨는 아이들과 남편과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러 미국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의상 공부를 끝내고 워싱턴에 드레스숍을 열게되자 그는 자녀들을 하나씩 데려다 그곳에서 공부시켰다. 그때도 박고석씨는 도무지 말이 없어 왜 부인이 미국에 갔는지 왜 아이들이 이따금 보이지 않는지 아무도 몰랐고 이런것을 물으면 그는 그냥 씩 웃을 뿐이었다. 박고석씨는 생활이나 자녀학비에 관심없이 삽화료만 생겨도 조선일보뒤 아리스다방으로 달려가 친구들에게 술사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집에선 굶어도 그의 화실엔 친구들을 위한 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번은 딸아이 은령의 중학교등록금을 내야 한다니까 『걔가 벌써 그렇게 됐냐?』하는 식이다. 김순자씨는 그런 남편을 원망해본적이 없다.『남편은 예술가이니 당연히 그런 일은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녀들도 학비 한번 제대로 주지않은 아버지를 섭섭해 하기는커녕 『아버지는 화가이고 자유인·자연인』이라고 존경한다.지금 훌륭하게 자란 4남매의 효도는 넘칠듯 극진하기만하다. ○74년,20년만에 개인전 박고석씨는 74년,20년만에 몇번이나 망설이고 미뤘던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모처럼 연 개인전에서 그는 대자연의 황홀한 절경속에서 끓어 오르는 작가의 격정을 담은 「산 시리즈」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산처럼 듬직한 화가의 산그림에 매혹되어 그때부터 그를 「산의 화가」라 불렀다. 그는 어린시절 모란봉과 대동강이 있는,자연조건이 아름다운 평양에서 나고 자랐다. 본명은 박요섭.성경에 나오는 요셉이 그의 이름이었으나 중학교 시절 심산의 낡은돌(고석)이란 예명을 스스로 지어 가졌다. 평양교계의 인물인 박종은목사와 김승은여사의 아들 4형제중 막내.숭실중을졸업하던해 아버지가 큰형을 데리고 상해로 망명하자 비뚤어진 사춘기를 보냈고 35년 도쿄에 유학,니혼대 예술학부 미술과를 나와 동경 팔척화랑서 첫 개인전을 여는등 44년까지 도쿄에 머물렀다. 해방과 함께 중학동창인 전봉초(첼리스트) 서종일(성악)과 함께 월남,그이후 망명떠난 아버지와 큰형,어머니와 두형 등과는 영원한 이산가족이 되었다. ○부친망명으로 생이별 6·25의 와중에서 친구소개로 만난 김순자씨와 결혼.김순자씨는 건축가 김수근씨(86년작고)의 친 누님이기도 하다. 결혼후 부산피난시절의 고물시계장수 이야기는 51년 제작한 「범일동 풍경」에 잘 나타나 있다. 「헌 석유궤짝위에 헌 고물시계 몇개를 나란히 펴놓고 팔았으나 엿장수도 거들떠보지 않았다」(신동아 70년 6월호)는 수필이 그것이다. 박고석씨는 이른바 예사로운 성격은 아니다.그의 과묵으로 인해 그가 무엇을 얼마만큼 생각하고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는 또박또박 설명할 수가 없다. 단지 격식을 싫어하고 쓸데없는 치장을 역겨워한다.집도 비바람만 들이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 넓은 터에 지은 정릉집은 그야말로 이리저리 판자를 얽어맨 바라크에 불과했다. 다만 책만은 산더미처럼 쌓여 그가 한때 동서양의 명작을 난독(난독) 섭렵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80년 4자녀의 유학을 마치자 김순자씨는 16년간의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정릉집과 원남동 화실을 정리하여 83년 명륜동4가 대학로 건너편에 처음으로 아틀리에가 있는 살림집을 장만했다. 김수근씨가 매형을 위해 직접 설계 감리한 독특한 건조물이었으나 이때도 그는 디자인과 장식을 생략하라,살림집과 아틀리에가 독립되도록 현관을 따로 내라,「내집 가지고 건축연습하지 말라」고 처남을 나무랐다. 그해 그는 갑작스러운 순환기계통의 이상으로 보행이 부자유스러운 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의 산이란 평생의 과제로 선택할만한 경이의 대상이었다. 산은 말없이 그곳에 엎드려 있으나 한순간도 그에게 같은 감동을 준적이 없었다.사계는 물론 어제와 오늘,아침과 저녁이 다른 변화불측은 화가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아 놓아주지 않는다. 최근의 그의 산은 적묵(적묵)의 기법과 처절하리만치 깊고 짙은 임리의 설채로 소나기가 지나간후의 씩씩한 젊음을 살려내고 있다. 그는 90년 고희를 넘긴 화업기념으로 현대화랑에서 역시 「산의 시대」 개인전을 벌였고 개인전이후 강원도 설악동에 작업실을 마련해서 그곳에 머무르다가 부부가 손을 잡고 두어달에 한번정도 서울에 올라온다. 그리고 동숭동 난다랑에 나타나 커피를 마시거나 「맛있는 점심」을 찾는 만년의 행복을 누리기도 한다. ○설악동에 작업실 마련 그의 걸음걸이는 불편하고 말씨는 어눌하나 설악동에선 거의 하루도 빼지않고 울산바위밑에 화구를 펼쳐놓고 산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산에 대한 용솟음치는 열정을 정온으로 다스리고 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너의 생명이 무엇이냐,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인것을­. 한때 분노로 원망했던 부친이 들려준 이 성경 한구절이 어쩌면 평생동안 그를 지배했기 때문에 그는 뭇형식과 가식과 물질을 탐하지 않고 산처럼묵묵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제 표현주의와 야수파적 미학이 돋보이는 도정을 지나 관조적 여운이 감도는 소박한 화경(화경)에 이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단 한점,그를 버리고 간 부친과 두고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도원의 산을 기도로써 그려내려 하고 있다. □연보 ▲1917년 평양에서 출생.목사인 박종은씨와 김승은씨의 아들 4형제중 막내 ▲숭덕소학교·숭실중 졸업 ▲35년 도일 ▲39년 니혼대 예술학부 미술과 졸업 ▲40∼42년 일본서 격조전 창립동인전 연구회출품 ▲43년 도쿄 팔척화랑서 개인전 ▲45년 월남 ▲48년 대광고 미술교사 ▲51년 부산서 현대한국회화전 ▲52년 이봉상 손응성 한묵 이중섭과 구조전 창립동인전 ▲〃 (부산)휘가로다방서 개인전 ▲53년 홍대 미대 교수 ▲〃 손응성 이봉상 이응로 이정규와 5인전 ▲55년 중앙대 미대(미술학과장) ▲52∼62년 유영국 황염수 이규상 한묵 천종자와 모던아트전(연6회 출품) ▲60년 국전 추천작가 ▲65년 세종대 미대교수 ▲67∼76년 구상전 출품 ▲69년 국전운영 자문위원 ▲74년 개인전 공간개인전 ▲83년 개인전(현대화랑) ▲89년 한국미술협회고문 ▲90년 화집 발간및 개인전(현대화랑) 한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 화랑가 활력소/중진화가들 전시회 풍성

    ◎변시지씨,두곳서 제주풍화 발표/김기혁씨도 불화 120점 선보여/황요엽·정하경씨,은둔 깨고 대작 출품 평소 작품발표가 듬하던 중진화가들의 대규모 개인전이 잇따라 열려 극심한 불황에 빠져있는 화랑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들어 화랑가는 4개월여동안 외국미술위주의 전시들로 장식됐거나 젊은 작가들의 3∼4인 그룹전이 유행한반면 굵직한 화랑들은 불황에 몸을 사려 무게있는 초대전이나 기획전개최를 뒤로 미뤄온 터여서 이들 중진작가초대전은 「점잖은 그림」을 즐기는 올드 팬들에게 모처럼 감상구미가 당기는 전시회가 되고 있다. 오랜 공백끝에 전시회를 갖는 작가들은 우성 변시지(66),우산 황용엽(61),남윤 김기혁(55),정하경씨(50) 등 4명. 제주에 작업의 터전을 굳히고 있는 변시지씨는 25일부터 5월16일까지 예맥화랑 인사동전시실과 소격동전시실 두곳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인사동에 본점을 둔 예맥화랑이 화랑운영에도 프렌차이즈방식을 도입,첫 지점으로 문을 연 소격동전시실 개관기념으로 이 화랑의 전속작가 변씨의 작품을 내놓은 것.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내며 미술수업을 한후 지난 57년 귀국하여 한국 고유미의 표출에 심혈을 기울여온 변씨는 자연주의에 바탕한 실경화작업을 추구하는 작가.젊은 시절,김인승 손응성 장리석씨 등과 「비원파」로 활약한 인물로 75년이후 그의 화폭에는 큰 변화가 일어 수묵조의 흑색의 필선과 특유의 감필 및 생략기법으로 독창적 화풍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황토빛위에 압축된 필선으로 제주의 풍경들을 화려하게 때로는 적막감짙게 담아낸 서정성 높은 제주풍화 50점이 발표되고 있다. 제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작가인 황용엽씨는 5월12일부터 25일까지 국제화랑에서 초대전을 펼친다. 2년만에 개인전을 갖는 황씨는 미발표 근작 40여점을 선보이는데 소품부터 대작(1백50호)까지 골고루 출품한다. 그룹전 등에 별로 참가하지않은 황씨는 창작욕넘친 노년의 결실을 이번 개인전을 통해 과시할 예정.그는 30년이상 일관되게 「인간」을 모티브로 한 작품제작에 임해왔으며 화단의 유행적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성실한 구상적 화면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그는 이번 근작들에서 과거 화면에 등장하던 절망적 한계상황을 되도록 배제하고 밝고 맑은 느낌의 삶을 관조하는 작가정신을 표출해보인다. 특히 향수에 젖은채 자연의 풍경과 동화된 인간들의 모습이 작가특유의 선묘로 그려지고 있다. 서울갤러리에서 28일부터 5월3일까지 전시를 갖는 김기혁씨는 「한국불교설화화전」이란 주제를 내세우고 있다. 본래 영문학자로서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내학문풍토에 대한 개인적 거리감을 버리지 못해 학자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김씨는 「그림」에 제2의 인생을 걸고 있다. 15년전부터 동양화에 전념하며 특히 불교설화의 형상화에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그는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중심부에 있는 대전시장 글랑팔레에서 열린 프랑스전국조형미술협회창립1백주년 기념전에 특별초대국인 한국의 대표로 초대돼 불교설화화 52점을 출품,호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출품작 52점과 그외 대표작 61점및 대작 4점등 1백20여점이라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회화외적인 모든것을 외면한채 외곬로 치닫는 근성이 유별난 김씨는 고승 고찰에 얽힌 얘기들을 현세로 끌어와 화현시키고 있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동산방화랑 초대전을 23일 개막,5월2일까지 계속하는 정하경씨(한성대교수)는 지난 84년이후 8년만에 개인발표의 자리를 꾸미고 있다. 80년대초부터 실경산수화에 전념하며 독특한 수묵화기법을 추구해온 정씨의 화폭은 섬세하면서도 수려한 필치가 돋보인다. 급변해가는 여러 회화형식에 초연,오직 산수화에 집착하고 있는 그는 청담한 한국의 자연을 재현해내고 있는 몇안되는 작가중의 한명이어서 이번 초대전은 한국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수 있는 전시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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