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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세 노작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채색하다

    99세 노작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채색하다

    “거, 왜 나이 얘기를 꺼내 가지고…. 전 나이 생각 안 합니다. 여기 모두가 죽을 사람들이고, 산다는 건 곧 죽음 속에서 산다는 얘기지요. 모두가 만나는 게 죽음인데 때 되면 간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투는 어눌하고 발음은 샌다. 그런데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는 와중에 흘리는 싱긋 웃음은 해맑다. 9월 16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강남에서 한국 추상의 1세대, 기하추상의 대부로 꼽히는 한묵(작은 사진) 작가의 회고전이 열린다. ●시대별 작품 40점·미공개작 4점 전시 작가는 1914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아홉으로 최고령 생존 작가다. 그런데 1961년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겠다며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아직 거기서 산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자주 이름이 들먹여지는 작가는 아니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데다 스스로도 작품에 진전이 없다 싶으면 애써 전시를 하지도 않았으니 더 그랬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작업해 왔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낸 도록이 첫 도록이란다. 한국 개인전도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 ‘오늘의 작가전’ 이후 처음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만주로 이주한 작가는 그 곳에서 미술을 배우고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공부를 이어 나갔다. 광복과 함께 금강산에 머물다 분단으로 북한에 남았다가 1·4 후퇴 때 월남해 중고등학교 미술교사를 거쳐 홍익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야말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 낸 것이다. 이제 홍익대 교수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꾸려졌을 때 작가는 홀연히 그림을 제대로 그리겠노라며 프랑스행을 택했다. 프랑스 공부를 통해 이전 한국에서 하던 구상 같은 추상을 버리고 완전한 기하추상의 작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 작품 40여점과 미공개작 4점을 전시해 뒀는데 작가의 변화상이 읽힌다. 초기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비참한 상황을 그려냈다면, 프랑스로 건너간 뒤엔 3차원적 공간을 2차원 캔버스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들, 3차원에다 시간까지 끌어들여 만들어낸 작품들로 차츰차츰 변화해 왔다. ●한국전쟁 후 모습·광주민주화운동 참사 그려 아무리 추상이라 해도 한국 현대사를 겪은 상흔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1958년 잡지 ‘신태양’ 표지 그림으로 그린 ‘흰 그림’은 발표 당시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해서 크게 화제가 된 작품이다. 1987년작 ‘동방의 별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담은 작품이다. 부인 이충석(81)씨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르몽드 신문에 그 참상이 전해졌는데 그 뒤로 한 1년 정도는 붓을 못 잡을 정도로 괴로워했다.”면서 “그들의 눈동자를 위로하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작가와 이중섭(1916~1956)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유학 시절, 금강산 시절, 서울 시절을 모두 함께했을 뿐 아니라 이중섭의 마지막을 수습한 이가 바로 작가다. 그런데 이중섭 얘기만 나오면 작가는 입을 잘 열지 않는다. 생전에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고 거의 굶어 죽다시피 한 그가 안타까워 그러는 것이다. 부인에 따르면 지난해 이중섭 장례식 때 쓰였던 방명록을 우연히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건네줬더니 너무 속상해하며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고 했다. 그 비통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싫다는 것이다. 부인조차 “이중섭에 대한 얘기는 아픔이 너무 커서인지 절대 안 하려고 해서 나도 별로 들은 바가 없다.”고 전할 정도다. 기자의 질문에도 작가는 회갑 때 이중섭을 기리며 지었다는 ‘친구가 날아간 동녘하늘을 바라보며’라는 시만 보여줄 뿐이었다. (02)519-08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어둠의 갤러리/김종면 논설위원

    와유강산(臥遊江山). 산수화를 보며 즐긴다는 말이다. 그냥 비스듬히 누워서 강산을 노닐어도 산천경개를 직접 찾아가 보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맑아지고 위로가 되는 지경, 그림의 존재 이유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림을 그림 자체로만 즐길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특히 고가의 그림일수록 본연의 용도와는 달리 쓰이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불법로비에 이용되고 비자금 조성 통로가 되고 부의 대물림 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그림이 아니다. 은밀하게 굴러다니는 ‘검은 돈’일 뿐이다. 이름난 작가들의 그림이 왜 그리 비싸게 거래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은 ‘부호들의 독천장’이다. 지난 5월 뉴욕 소더비에서는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가 1억 1992만 달러(약 1354억원)에 팔려 세계 경매가 신기록을 세웠다. 국내 최고작가의 작품값도 만만치 않다. 최고기록인 박수근의 ‘빨래터’(45억 2000만원) 말고도 이중섭의 ‘황소’(35억 6000만원), 김환기의 ‘꽃과 항아리’(30억 5000만원) 등 국내 스타 작가들의 그림값은 수십억원을 호가한다. 그림값이 비싼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고가 미술품 수집열을 호사취미라고 나무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미술품 하면 자연스레 꺼림칙한 돈을 떠올리는 부정적 연상작용이 이어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내 일부 재벌들은 종종 미술품을 편법증여나 상속 등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그림 거래에는 양도소득세도 없으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출처나 소유자도 노출되지 않아 누가 얼마에 샀는지도 정확히 알기 어렵다. 국내 미술시장은 연간 4000여억원 규모에 이르지만 어느 정도의 탈세가 이뤄지는지는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비자금 세탁소’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 비리의 한 축은 미술품을 거래하는 상업화랑, 곧 갤러리다. 최근 서미갤러리가 ‘갤러리 불신’의 정점에 섰다. 한국화랑협회가 서미갤러리 측에 ‘무기한 권리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 서미는 이 결정으로 화랑협회 표결권을 박탈당하는 등 ‘식물화랑’ 신세가 됐다. 화랑협회는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미술품 양도소득세의 유예를 국회에 건의한다는 방침이다. 좀처럼 불황의 그림자를 거둬내지 못하는 미술계에 양도세가 부과된다면 정말 고역일 것이다. 그러나 반성부터 할 일이다. 미술품 거래의 투명화 등 자정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한 양도세 유예 요구가 과연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김찬경 회장의 고가의 그림들

    김찬경 회장의 고가의 그림들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붙잡힌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평소 은행 빌딩 4층에 갤러리를 차려놓고 고가의 그림들을 걸어놓았다. 개인 창고에도 국내외 유명화가의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미술품 가운데 23점은 김 회장 개인이 은밀히 로비용으로 쓰거나 급할 경우 개인 담보로 사용하거나 경매업체에 팔아넘겼다.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20일 “김 회장이 일부 그림은 골프장 아름다운 CC에도 전시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지난해 7월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 도상봉 화백의 ‘라일락’(시가 3억원 상당), 이중섭 화백의 ‘가족’(3억원) 등 2점을 금융감독원 로비를 위해 건넸다. 또 개인 명의 대출 등에 저축은행 소유 미술품 12점을 담보로 제공했다. 12점의 감정가는 94억원 상당이다. 특히 앤디 워홀의 ‘플라워’(25억원), 독일의 유명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21억원), 데미안 허스트의 ‘나비’(15억원), 박수근의 ‘노상의 사람들’(11억원) 등도 포함돼 있었다. 김 회장은 서미갤러리 등으로부터 담보로 제공받은 외국 유명화가 그림 11점(274억원)을 솔로몬저축은행에 개인 담보로 활용하기도 했다. 11점은 파블로 피카소의 ‘화가’(15억원), 미국의 입체작가 도널드 저드의 ‘무제 89-9’(감정가 25억원), 캐나다 출생 미국 화가 필립 거스턴의 ‘인사이드’(42억원), 미국 추상주의 화가 사이 텀블리의 볼세나(50억원) 등이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길섶에서] 세기의 남자/이도운 논설위원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 내가 졸업한 중·고등학교 앞을 지나게 됐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오산학교. 한강변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아서 수업을 듣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을 볼 수 있다. 오산은 1907년 독립운동 지도자 남강 이승훈 선생이 고향인 평안북도 용동에 세운 민족 교육기관이다. 용동을 둘러싼 다섯 개의 산이 학교 이름이 된 것이다. 교가에 ‘네가 참 다섯 메의 아들이구나.’라는 후렴이 나온다. 오산은 용동에서 김소월, 이중섭 같은 인재를 키워냈지만 6·25전쟁 무렵 공산당의 학정을 피해 부산으로 이전했다가 1954년에 다시 서울로 옮겼다. 개교 기념일마다 동문인 함석헌 선생이 하얀 도포를 입고 흰 수염을 휘날리며 오산 정신을 일깨워 주려 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산학교가 세워진 지 올해로 105년이 지났다. 한 세기가 넘는 역사다. 생각해 보니 내가 졸업한 대학도 127년, 내가 다니는 신문사도 108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갑자기 세기의 남자가 된 기분이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벽안의 한옥 지킴이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벽안의 한옥 지킴이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

    심심함은 재미의 시작이다. 옛날이다. 임금이 밤중에 심심하면 경복궁 오른쪽(서쪽)에 사는 사람들을 몰래 불렀다. 엊그제 청나라에 다녀온 역관한테는 뒷얘기를 들었다. 청나라 옥좌는 어떻게 생겼고, 신하들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어떤 맛있는 음식이 나왔는지, 술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증이 한두 가지가 이니었다. 그 다음에는 중인, 아전, 화가, 서예가 등을 차례로 불러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경복궁 왼쪽(동쪽)에 사는 양반들은 뻔한 얘기를 하기 때문에 서쪽 사람들의 얘기가 훨씬 진솔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양반들보다 글솜씨가 뛰어난 ‘송석원’ 같은 문집을 보며 세상의 진솔한 이치와 푸짐함을 느꼈다. 요즘 서촌(西村)이 주목을 받는다. 경복궁 서쪽 마을이다. 동네가 여럿이다. 효자동, 누하동, 누상동, 통인동, 옥인동, 필운동, 청운동, 체부동, 적선동 등 10여개 동네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서촌은 서인, 그중에서 소론이 살았다. 세종대왕 이도가 서촌에서 태어났고 필운 이항복,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시인 윤동주, 화가 이중섭이 서촌에 살면서 예술적 끼를 맘껏 발산했다. 근래 들어서는 한국화가 이상범, 박노수 가옥이 유명하고 소설가 박완서가 다닌 매동초등학교, 육영수 여사가 다닌 배화여고, 고(故) 정주영 현대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등이 단골로 드나들었던 유정미용실 등은 여전히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아 참, 또 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로 알려진 형제이발관이 오롯이 추억을 말해 준다. 서촌에는 한옥 663가구가 있다.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옛날 임금님이 살던 경복궁 바로 옆에 추억과 역사를 도도히 품고 세월속에 알뜰하게 존재해 있다. 이러한 가치를 위해, 이러한 보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외국인이다. 2008년 국내 최초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된 미국인 로버트 파우저(51)가 주인공이다. 1년 전부터 서촌주거공간연구회 회장을 맡아 서촌지역 한옥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파란 눈의 이방인이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시작했다고 하지만 서촌의 난개발이 안타까워 그 길을 택했다. 지난 23일 오후 경복궁 옆 서촌 길가에서 만났다. 점퍼 차림에 웃는 모습인 그는 “사진도 찍나요. 그럴 줄 알았으면 옷을 달리 입을걸.”이라고 말한다. 이럴 때 정감이라는 말을 쓰는 것일까. 수더분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약속 시간보다 다소 늦은 탓에 그는 “신문사도 마감을 중요하게 여기지요. 다문화 사회에 대해 원고를 쓰느라 좀 늦었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한다.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북촌에서 살아요.”라고 답한다. 서촌을 사랑하는 사람이 왜 북촌이냐고 했더니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 많아요. 원래는 서촌에 살았지요. 그런데 집 근처에 빌딩을 세우고 난개발을 하더군요. 그래서 북촌으로 집을 옮겼습니다.”라고 까닭을 말한다. 북촌 집은 방이 세칸 딸린 한옥이다. 미국과 일본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에 올 때면 자신의 집에서 재우며 한옥 자랑을 한다. 그와 함께 서촌 골목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누하동 일대를 갔다. 마침 10층 빌딩을 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계천 발원지 복원·생태보존 건의 성사 “저거 보세요. 인왕산과 북악산을 가리잖아요. 한옥 보존지역이라고 해놓고서는 저런 건물을 지으면 어떡하지요. 경관이 막혀서…. 한옥의 가치가 뭔지, 햇빛을 가리고, 뉴욕 같으면 이런 일이 절대 있을 수 없어요. 아마 2~3층 정도면 몰라도 말입니다.” 시인 노천명의 가옥 앞으로 장소를 옮겼다. 파란 눈의 이방인이 한옥 사랑을 얘기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얼핏 생각난다. 개발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2009년 누하동에 1년 동안 살다가 집 인근에 빌딩이 들어서는 바람에 “성질 나서” 북촌으로 이사했다. 그런 다음 2011년 서촌주거공간연구회를 설립했다. 서촌 한옥과 아름다운 골목들을 지키기 위해 매일 서촌 사람들과 만나 ‘서촌의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지금은 회원이 50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정회원 30명은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서촌 발전을 위해 토론을 한다. 서촌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킬까. 정보교환도 하고 소식지도 발간한다. “연구회 모임에는 3개 분과가 있습니다. 이야기 분과, 한옥 분과. 자연생태 분과 등으로 나눠져 있지요. 그동안 어떤 일을 했냐고요. 청계천 물줄기의 발원지인 수성동 계곡을 복원하면서 원래 그대로, 그러니까 자연생태를 보존하도록 서울시에 건의해 성사되도록 했습니다. 또 천재 시인 이상의 집 철거계획을 유보시켰지요. 서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미나도 열고 동네 공동체 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참, 지난 주에는 벚꽃축제를 함께 열었고 시각 장애인 가족들, 환경연합 가족들과 씨앗 나눠 주기 행사도 했습니다.” 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미시간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그는 일본에서 10년 정도 살았다. 그러면서 1983년 서울대에서 1년 동안 한국어 공부를 했고 1987~88년 카이스트(KAIST)와 고려대에서 영어 강사를 했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살던 그는 2008년 서울대에서 연락을 받고 다시 한국으로 왔다.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인에게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직을 맡게 했던 것이다. 그는 이후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법을 강의하고 있다. “일본에 있을 때에도 아파트에 살기 싫었습니다. 한국에 오면서 지도를 들고 북촌도 가보고, 삼선교도 가보고, 필동도 가보고 그러다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서촌의 한옥을 정했습니다. 마침 이웃에는 미술을 하시는 분, 글을 쓰시는 분, 건축을 하시는 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서촌 한옥은 옛날 한옥과 비슷해서 추억하기 딱 좋습니다. 그런데 개발을 하는 바람에 북촌으로 떠나긴 했지만 올해 말에는 다시 서촌으로 집을 옮길 예정입니다.” ●한옥 손대고 고치면 역사성 못 느껴 괴물 그에게 한옥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웃으면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오늘은 오래된 한옥이 역사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되지 않은 것은, 중간에 손대고 고친 것은 역사성을 못 느낀다. 괴물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한다. 서촌은 한옥의 미래를 간직한 곳이란다. 그러더니 “서울시가 생각하는 한옥은 조선시대의 것을 축소시키려 한다.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어 한국 사회에 대한 소감을 잠시 피력한다. “한국 교수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성공, 성공 하는 말을 자주합니다.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이너프(enough, 충분) 단계에 이르면 나눠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삶의 질이란 그런 것이고 태어나 살면서 사회 공헌도 해야 하거든요. 서촌주거공간연구회 모임도 그런 차원입니다. 앞으로 다문화 사회, 열린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이자 바람이지요.” 그가 가르치는 제자(한국어 교사 지망생)들에게 항상 이런 내용을 강조한다고 했다. 전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장차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부분에 중요성을 더 둔다는 것이다. 미시간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가 일본으로 파병된 인연으로 일찍 동아시아 쪽에 관심을 두었다. 대학에서 일문학을 전공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일본 교토에선 1950년대 지은 비좁은 흙집에서 살았어요. 한국의 서촌도 교토와 느낌이 비슷해요. 좁은 골목이라든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들이 그렇습니다. 북촌은 요즘 영화 세트장처럼 변했어요. 빨리 서촌으로 이사해야지요(웃음).” ●서촌 개발 갈등 조정해 한옥 잘 지킬 것 경복궁과 청와대 서쪽인 서촌은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삶의 형태가 간직된 근현대 생활박물관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요즘 평화로운 마을에 한옥 열풍과 ‘제2의 삼청동’ 바람이 불어닥쳤다. 부동산 투기와 개발 바람을 타고 한옥의 가치가 상승하자 이를 비싸게 매입한 투자자들이 다시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한옥을 바꾸려고 한다. 때문에 서울시와 원주민,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 간에 복잡 미묘한 갈등도 더러 생겨나고 있다. 파우저 교수는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여 서촌주거공간연구회를 통해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기존의 한옥을 잘 지키며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자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꿈을 물었다. 그랬더니 빙그레 웃는다. 촌스럽게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다시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것이냐고. “꿈은 없었요. 썰렁하죠(웃음). (잠시 생각하더니)꿈이 꼭 있다면 저와 함께하는 회원들이 열린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옥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책도 내고 그런 일을 할 생각입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1961년 미국 미시간 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2차대전 때 일본에 파병한 까닭으로 일찍 동아시아에 관심을 두었다. 1983년 미시간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1986년 박사학위(언어학)를 받았다. 1983~84년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후 일본에서 10년 동안 살면서 1987~88년 카이스트 영어강사, 1988~89년 고려대 영어강사 등을 지냈다. 이때 서울 약수동과 혜화동, 안암동 등 한옥에서 살았다. 2008년 미국인 최초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채용된 그는 현재 외국인과 내국인 교사 지망생들을 상대로 한국어 교수법을 가르치고 있다. 아울러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개론서를 교육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 ‘한국 문학의 이해’가 있으며 이는 해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 동생이 살고 있어 가끔 고향을 다녀온다. 파우저 교수는 아직 미혼으로 한옥을 사랑하는 여인을 좋아한다고 했다.
  • 씽씽한 음악도시, 빵빵한 음악축제!

    씽씽한 음악도시, 빵빵한 음악축제!

    새달 5일부터 16일 동안 경기도 의정부는 음악도시로 변신한다. ‘씽씽(Ssing-Ssing)한 음악도시, 빵빵(Fun-Fun)한 음악축제’를 내건 제11회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세계 음악극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자신감이 대단하다. 음악극축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최진용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은 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설명회를 열고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는 축제가 자리 잡는 분수령이라는 10년을 넘기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한다.”면서 “축제에는 인간이 뿜어내는 사랑, 행복, 활기, 즐거움의 에너지로 가득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는 6개국, 7개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주빈국은 스페인의 북동부 ‘카탈루냐’로 정해 이 지역 작품을 개막일과 폐막일에 공연한다. 카탈루냐는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과 아름다운 동화책 등으로 예술적 수준이 뛰어나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지역이다. 개막작인 극단 엔필라트의 ‘플렉스’(PLECS)는 5일부터 이틀간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 오른다. 천막에서 보는 서양 서커스를 토대로, 일상의 물건을 활용한 장난기 넘치는 상상력에 아크로바틱 댄스를 접목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 폐막작으로, 19~20일에 공연하는 다이비나스의 ‘싱!싱!싱!’(Sing!Sing!Sing!)은 1950년대 스윙 초창기 특유의 화려함과 발랄함을 재연했다. 7중주단 밴드의 라이브 연주와 여성 보컬 3인의 노래가 매력적이다. 의정부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는 사각 링에서 악기와 채소 등으로 음악 배틀을 벌이는 호주 오닉스 프로덕션의 ‘루프 더 루프’(10~11일), 마을 신사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 이발소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테아트로 네세사리오의 ‘칼로니 이발소’(12~13일)를 올린다. 슬로베니아의 ‘핑크 노이즈’(5~6일), 프랑스의 ‘자전거 피아노’(12~13일), 영국·호주의 ‘파밀리에’(18~20일) 등 독특한 작품들이 의정부역을 비롯한 시내에서 관객을 만난다. 올해 축제는 창작에 탄력을 붙였다. 최 대표는 “축제는 준비 과정에서도 시민이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우수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로서 역할도 해야 한다.”면서 대표작으로 ‘합창뮤지컬 의정부 사랑가’(13일)를 꼽았다. 지난해 의정부 시민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열어 선발한 시민 배우 20여명이 7개월 동안 연습해 만든 작품이다. 서사민요 ‘진주난봉가’를 재해석해 해학과 감동을 녹여냈다.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발레뮤지컬 ‘에디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10~12일)도 관심을 끈다. 연출을 맡은 서미숙 서발레단 대표는 “피아프의 노래와 발레, 영상 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작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아프 노래의 감동을 살리기 위해 프랑스 배우를 캐스팅하고, 프랑스어로 공연한다. 한국의 대표 발레리노 이원국이 안무했다. 작가 이중섭의 삶과 작품 세계를 그린 오페라 ‘나는 이중섭이다’(18~20일),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각색해 판소리로 만든 ‘현제와 구모텔’(6일)도 준비했다. 이 밖에 이번 축제의 명예위원장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15일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스페셜 콘서트를 열고, 의정부시민으로서 명예대사가 된 가수 타이거JK와 윤미래는 20일 대극장 야외무대에서 피날레 콘서트를 올린다. (031)828-5892~7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중랑 망우리공원 ‘사색의 길’ 아시나요[동영상]

    중랑 망우리공원 ‘사색의 길’ 아시나요[동영상]

    들불처럼 다시 일렁인 3·1절 만세함성 소리가 채 가시지 않았다. 때마침 애국의 물결이 중랑구에 출렁댄다. 중랑구는 애국지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망우리공원 ‘사색의 길(5.2㎞)’을 5일 소개했다. 서울과 경기 구리시를 잇는 망우리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오른쪽에 빼어난 자연경관을 뽐내고 있다. ●서울시설공단 선정 산책 명소로 묘지들로 들어차 혐오감을 느끼게 했던 이곳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등산객들로 붐빌 만큼 훌륭한 휴식공간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은행나무 길’, 노을에 물든 청계천 물억새와 함께 서울시설공단 선정 산책명소 3곳에 뽑혔다. 공원 내 용마천·망우천·송림천·보현정사·동산 약수터는 서울시 선정 ‘물맛 가장 좋은 10곳’에 뽑히기도 했다. 공원 입구에서 진입로를 따라 15분 걸어 올라가면 사색의 길 출발점이 나온다. 두 갈래 어느 쪽에서 걸어도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또 동쪽을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남산,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경기 남양주시까지 조망할 수 있어 차라리 전망대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중랑구는 1997~1998년 순환도로 5.2㎞를 정비해 도시 환경림과 아스콘 포장도, 자연관찰로 등을 조성했다. 시민들이 산책을 하면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만들고 청소년들에게는 역사 교육장으로 삼도록 했다. 1933년부터 분묘 2만 8500여기(基)가 들어섰던 공원엔 꾸준한 이장지원 사업으로 9900여기만 남아 있다. 대신 소설가 계용묵·김말봉, 작곡가 채동선, 대중가수 차중락, 화가 이중섭, 아동운동가 방정환, 독립지사 오세창·한용운·장덕수·조봉암, 의학교육과 한글 보급에 앞장선 지석영 선생 등 역사적 인물들의 연보기록비를 세워 넋을 기리고 있다. 넓이 134만 8400㎡에 이른다. ●새단장 후 등산객들로 북적 망우(忘憂)라는 지명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종묘사직을 마련한 뒤 선왕들의 능지를 결정하기 위해 대신들과 함께 현재의 동구릉을 답사하면서 생겼다. 태조가 무학대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능지로 정하고 환궁하다가 고개 위에서 발길을 멈춰 “아아, 이것으로 오랜 근심을 잊게 됐노라.”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항일의병 ‘13도 창의군탑’도 들어섰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망우리공원 이렇게 가세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201번, 262번, 270번, 2227번, 2234번, 3번, 8번, 8-2번, 30번, 51번, 52번, 65번, 88번, 165번, 166-1번, 167번, 202번, 330-1번, 765번, 1330번, 1330-1, 1330-3번, 1330-5번, 1330-44번 8004번, 8005번 버스를 타고 망우리 고개 입구 동부제일병원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중앙선 양원역 2번 출구로 나와 10분쯤 걸어 가면 나타난다. 지하철 7호선을 타면 상봉역에서 버스로 5분 거리다. 자가 운전자는 망우리 고개 중간에 위치한 저류조공원 주변이나 망우산 중턱의 서울시설공단 묘지사무소(434-3337) 옆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 [여행가방] 연말연시 가족과 오붓하게

    지방 여행이 잦은 연말연시다. 가족들과 묵기 좋고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숙소를 찾는다면 베니키아(www.benikea.com)가 좋은 대안이 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개발한 중저가 관광호텔 체인브랜드로, 45개 지점이 전국 주요 관광지에 고르게 분포돼 있다. ▲제주 베니키아 호텔제주크리스탈(064-732-8311)은 눈 쌓인 한라산을 한 눈에 품을 수 있다. 서귀포항과 천지연폭포, 이중섭거리가 가깝다. 인근의 재래시장에서 제주 전통음식을 맛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경남 마산 베니키아 호텔사보이(055-247-4455)는 마산의 교통 중심지에 있다. 960개의 돌탑과 아름다운 봉암지를 품은 팔용산이 지척이고, 마산의 관광명소인 산호공원과 돝섬을 둘러보기도 편하다. ▲경북 청송 주왕산온천관광호텔(054-874-7000)은 주왕산과 주산지를 품고 있다. 달기약수로 만든 백숙과 달기약수 온천도 청송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들이다. ▲강원 평창 용평 드래곤밸리호텔(033-330-7111)은 용평리조트 내에 있다. 스키나 스노보드 등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풍력발전기들이 늘어선 대관령 아래 양떼목장과 천년 고찰 월정사도 멀지 않다. ▲강원 강릉 베니키아 경포비치호텔(033-643-6699)은 경포대와 경포호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선교장과 오죽헌, 참소리박물관 등 자녀들과 함께 가기 좋은 곳들이 많다. ▲부산 베니키아 송정관광호텔(051-702-7766)은 모래 곱기로 유명한 송정해변을 조망할 수 있는 곳. 죽도 공원 등도 지척이다. 부산지하철 남천역에서 5분 거리의 베니키아 호텔프레스(051-611-0003) 인근에는 야경이 아름다운 광안대교가 있다. ▲인천 베니키아 프리미어 송도브릿지호텔(032-210-3000)의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인천대교와 서해의 낙조를 조망할 수 있다. 인접한 월미도와 소래포구 등에서 겨울의 낭만도 만끽할 수 있다. ●한화리조트·휘닉스파크 제휴 한화리조트와 휘닉스파크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시설물 교차 이용 등 회원 혜택을 강화한다. 이에 따라 휘닉스파크 회원들은 한화리조트의 12개 리조트와 워터피아 경주스프링돔 등의 부대시설을, 한화리조트 회원들은 휘닉스파크의 스키장과 블루캐니언, 퍼블릭 골프장 등의 부대시설을 상호 동일한 회원 자격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가을 끝자락이다. 창덕궁의 나무들도 겨울을 맞이할 요량으로 나뭇잎마저 무겁다는 듯 후드득 털어낸다. 한 노(老)시인은 백발을 만지작거리며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시집을 뒤적인다. 돋보기를 꺼내 들고 책장을 넘기던 노시인은 “그래 바로 이 시야, 이거!”라고 탄성을 터뜨린다. 어떤 시일까. ‘팔삭둥이 첫 아들이 죽었을 때/그는 곤드레만드레가 되어/죽은 애 또래의 살아 있는 애들을/그리고 있었다/저승동무 길동무로/천도 따는 애며/맨손으로 물고기 잡는 애들이랑/학 타고 날아가는 애도/상기도 애비 목 틀어잡는 녀석이며/여직 애미 젖가슴 뒤지는 녀석/오오라 게한테 물린 고추녀석이 제일 늦구나/개구쟁이 코흘리개 오줌싸개 울보랑 모두 모이자/그는 잠자코 붓을 놓았다/그리고 죽은 애 목덜미에 그림을 그려주었다/십자가보다 더 빛부신 동심(童心)을’ 지난 16일 오전 창덕궁 바로 옆 바움갤러리에서 원로 시인 김광림(82) 선생을 만났다. 그는 천재 화가 이중섭과의 추억을 새삼 떠올린다. ●‘시전집’에 이중섭 연작시 8편 담아 “17살 때 함경남도 원산에서 이중섭 화가를 처음 만났어요. 그의 첫애가 죽어 애도할 때였지. 하루는 이중섭의 집에서 같이 잤는데 새벽녘에 일어나 보니 온데간데없어요. 그래서 옆방에 슬쩍 가 봤더니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뭘 그리나 어깨너머로 봤더니 애들이 하늘에서 새를 타고 다니는 거, 천상의 복숭아를 따는 아이들, 학을 타고 날아다니는 아이들, 아버지 목에 매달려 있는 애들, 게가 아이의 아랫도리를 물고 있는 모습 등을 그리더군요.” 노시인은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추억의 편린들이 가을 낙엽과 함께 머릿속을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올해가 이중섭 화가 탄생 95주년이고 작고 55주기가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시인은 “아, 그렇게 됐나요. 나보다는 13살 위였는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얘기 도중 가끔 백발을 쓰다듬는 모습이 어쩌면 천상의 복숭아를 따러 날아가 버린 이상한(?) 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쓸 수 있는 시, 그는 시인이 부러워 시처럼 그림을 그렸지…. 은박지 그림이 생각나. 내가 군 장교로 있을 때였어. 외출을 나올 때마다 군보급품 박스에 있던 양담배 럭키스트라이크 은박지를 수집해 갖다주었어요. 아주 좋아했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그 그림들을 죄다 불태워 달라고 했어. 참으로…. 은박지 그림만 200~300장 됐어.” 이중섭 화가는 1955년 서울 미도파백화점과 대구 미공보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실망과 충격으로 대구에서 만난 김 시인에게 “내 그림은 다 가짜야.”라고 하면서 불태워 달라고 했다. 이중섭 화가는 그렇게 그림을 던지고 확 가 버렸고 김 시인은 은박지 그림과 소품들을 보관했다가 이중섭 화가와 같이 머물고 있던 친구이자 소설가 최태응에게 모두 돌려줘 가까스로 은박지 그림을 살려냈다. 이 그림들은 지금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노시인은 2006년 이중섭 화가에 대한 추억의 글과 시를 모은 ‘가짜와 진짜의 틈새에서’라는 책을 펴내면서 “그의 그림을 불사르지 않고 세상에 남아돌게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중섭 작품에 대한 순수한 평가보다는 그림값을 올리려는 상업적 행태가 눈에 거슬린다는 지적을 했던 것. 노시인은 지난해 1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김광림 시전집’을 펴냈다. ‘이중섭 생각’이라는 연작시 8편도 담았다. 여기에서 노시인은 ‘왜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가짜라고 우겼을까/그가 진정 진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꿈틀대는 어기찬 생명력을 더 지켜보지 않았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다하지 못한 정을 엽서에다 그리고/ 은박지에 또 그려서/고통을 환희로 바꿔 찬 한 사내가/거뜬히 시의 수렁 속을 가고 있다/갈증도 모르고 허기도 저버린 채’라고 그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이중섭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또 그런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다수의 시를 쓰게 됐어요. (다시 백발을 만지작거리다가) 연작시 말고 또 뭐 있더라….” 옆에 있던 딸 김상미씨가 얼른 기억을 돕는다. 노시인은 요즘 병원에 다니느라 딸 집에 기거하고 있다. “아마 ‘사막’일 겁니다. (딸이 시를 읊는다) ‘화가 이중섭은 사막으로 걸어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아랫도리를 게의 예리한 발톱에 찝힌 것이다. 물린 순수의 피나는 이적(異蹟)을 담배 은종이에 나타내었다’ 아버지 맞죠.” 노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나.”라며 활짝 웃는다. 화제를 바꿨다. 문단 데뷔 시절을 물었다. “전쟁 2년 전인가 그래요.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을 때 새벽녘에 문득 낡은 문풍지를 보고 시를 하나 썼어. 그랬더니 친구가 ‘안양에 박두진 시인의 문하생 동인(청포도)들이 있는데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갔어.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쓴 시를 박두진 시인에게 보여줬더니 ‘10년 후면 우리나라의 시가 달라지겠네’라고 하면서 구상 시인한테 가보라고 하더군. 그때 구상 시인은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었지. 구상 시인과는 원산에서 만났던 사이였지. 어쨌든 찾아갔어.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나를 아래층으로 끌고 내려가 우동 두 그릇을 시키면서 ‘배가 고플 텐데 두 그릇 다 먹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시를 읽더니 ‘관념적이긴 하지만’이라고 말을 하더군. 그 2~3일 뒤에 ‘문풍지’라는 제목으로 시가 발표됐어. 그래서 데뷔작이 ‘문풍지’야. ●“그의 그림에서 詩 영감 많이 얻어” 이후 6·25전쟁이 끝난 1957년 전봉건, 김종삼 등과 함께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라는 3인 시집을 내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펼쳤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시작으로 2009년 제10회 청마(靑馬)문학상을 수상한 ‘버리면 보이느니’까지 통산 18권의 개인 시집을 펴냈다. 그러는 동안 평양 출신의 박남수(1918~1994) 시인과 친하게 지냈으며 문덕수(83)·홍윤숙(86) 시인 등과 절친 문우로 교류했다. 1990년 제12차 세계시인대회 때였다. 일본의 저명한 국제적 여류 시인 시라이시 가즈코가 ‘오늘의 율리시스’라는 시를 낭독하기 직전 노시인이 “나는 북에서 온 한국의 율리시스입니다.”라고 말해 장내의 무거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낸 일화는 지금도 문단에서 회자된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 타이완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문화 교류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6·25전쟁 때는 9사단 29연대에 배속(소위)돼 백마고지와 저격 능선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전우의 죽음을 다룬 시 ‘진달래’가 ‘국방’지에 게재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으며 후에 은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슬하에 김상수(사업가)·김상일(조각가)·김상호(중문학자)·김상미(주부)씨 등 3남 1녀를 두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노시인에게 시 한편을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죽음이란 걸(주제)로 병원에 있을 때 써보긴 했는데….”라는 대답이 나지막이 돌아온다. 다음은 그가 최근에 쓴 미발표작 시.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광림은 김광림은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충남(忠男)이다. 원산공립중학을 거쳐 평양종합대 역사문학부 외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48년 12월 한탄강을 거쳐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해 안양에서 ‘청포도’ 동인과 어울리다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을 만났고 그의 권유로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던 구상 시인을 만난 것이 인연이 돼 ‘문풍지’라는 시를 처음 발표했다. 경기 여주군 북내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중 6·25전쟁을 만나 육군 소위로 9사단 29연대에 배속돼 전쟁에 참가했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으며 1961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듬해 두 번째 시집 ‘심상의 밝은 그림자’, 1965년 세 번째 시집 ‘오전의 투망’ 등 지금까지 18권의 시집을 내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83년 장안대 교수, 한양대 강사 등으로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1985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맡아 아시아 시인대회 서울대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2001년 국가유공자증서 등을 받았다. 2009년에는 ‘허탈하고플 때’로 청마문학상을 수상했다.
  • 제주올레 걸으며 자신을 만나보세요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한국방문의 해를 기념하는 4대 특별 이벤트의 하나인 ‘2011 제주올레 걷기축제’를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제주올레 6∼9코스에서 연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축제는 제주의 자연과 문화, 함께 걷는 사람들과의 대화,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을 통해 길에서 사랑을 발견하자는 뜻에서 ‘사랑하라, 이 길에서’(Discover Love on the trail)를 주제로 내걸었다. 9일 6코스(쇠소깍∼이중섭 거리∼외돌개), 10일 7코스(외돌개∼법환포구∼월평포구), 11일 8코스(월평마을∼주상절리∼대평포구), 12일 9코스(대평포구∼월라봉∼화순해수욕장)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행사가 진행된다. 서귀포 시내에서 가까운 코스들로, 가장 긴 코스가 15㎞에 불과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코스마다 10여개의 야외무대가 설치돼 전문가와 아마추어 공연자들이 축제 참가자들이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음악, 기악 연주와 노래, 무용, 마임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인다.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의 부녀회에서는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는 제주의 먹을거리를 내놓는다. 매일 밤 8∼9시 서귀포시 서복전시관 야외무대에서는 ‘간세다리’(게으름뱅이) 정신으로 느릿느릿 걷는 참가자들을 위한 야간 프로그램인 ‘간세다리, 다 모여라’ 행사가 열린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서는 야시장 먹을거리 장터를 운영하며, 이중섭거리에서도 야간 예술벼룩시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6코스 중간 지점인 제주올레 안내센터~서귀포매일올레시장까지는 달빛 올레도 체험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제주올레 걷기축제 홈페이지(www.ollewalking.co.kr)를 통해 10월 16일까지 접수한다. 참가비는 개인 1만원, 20인 이상 단체는 1인당 8000원이다. 현장 신청은 받지 않는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1호짜리 그림 200여점 한곳에

    1호짜리 그림 200여점 한곳에

    “1호짜리란 게 참 애매하긴 하죠. 작가 입장에서는 자그마하다 보니 그리기 애매하고, 화랑 입장에서는 이러나저러나 한 개의 작품을 파는 꼴이니 취급하기 애매하고. 그런데 공급자 측면이 아니라 수요자 입장에서라면 1호짜리가 가장 적당한 크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겁니다. 갤러리 이름을 ‘아트유저’로 지은 것도 그 때문이지요.” 오는 9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갤러리 아트유저에서 개관 기념전으로 ‘작은 것의 미학’전을 여는 김종화(53) 대표의 말이다. 100명의 작가 작품 200여점을 건다. 작가와 작품 수로만 보면 초대형 전시인데, 막상 전시장은 10여평 남짓이다. 전시제목 그대로 작은, 1호짜리 소품만 모아 전시하기 때문이다. 미술계에서 100만원전, 200만원전 하는 식의 소품전은 많다. 그러나 소품전이라 해도 실제 출품된 작품들의 크기는 대체로 크다. 소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시작해도 뭔가 제대로 표현하고픈 작가들의 욕망이 반영되다 보니 작품이 자꾸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아예 1호짜리 캔버스를 만들어서 작가들에게 보냈다. 더 욕심 내지 말고 그 크기에 딱 맞춰 그려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때문에 캔버스를 가로로 쓰느냐, 세로로 쓰느냐의 차이를 제외하면 모든 작품 크기가 규격화된 듯 정확하다. 캔버스 사이즈에 익숙지 못한 몇몇 동양화 작가들의 작품에만 일부 변형이 가해졌다. 또 하나의 장점은 모두 소품을 겨냥해 만든 신작이라는 사실. 참여 작가들의 면면은 쟁쟁하다. 고인이 된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남관, 하인두를 포함해 윤명로, 오수환, 권순철, 박영남, 황재형, 석철주, 전병현, 사석원, 안성하, 도성욱, 마리킴 등 원로·중진·신진 작가들이 골고루 섞여 있다. 작가들이 혹 답답함을 토로하진 않았을까. “오히려 재미있어했습니다. 1호짜리 소품을 처음 그려봤다는 분도 있었으니까요. 작아서 쉬운 게 아니라, 작기 때문에 이런저런 요소를 배치하는 게 더 어렵거든요.” 소품이라 가격도 비교적 ‘착하다’. 30만~300만원 수준이다. 소품 위주 전시를 쭉 이어나갈 생각이라는 김 대표는 “큰 돈 없어도 미술을 즐길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편안하게 들러 달라.”며 웃었다. (02)379-0317.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지자체 ‘작가 미술관’ 건립 붐

    지자체 ‘작가 미술관’ 건립 붐

    전국 자치단체에서 ‘작가 미술관’ 조성 붐이 일고 있다. 작고한 유명 화가나 원로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은 단순한 관광 효과 외에도 지자체의 문화적인 위상을 높일 수 있고, 이를 추진하는 단체장의 품격 있는 업적으로도 알맞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우리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인 이우환(74) 화백의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시는 부지 3만 3000㎡에 건물 면적 8250㎡로 건립할 계획이다. 비용은 국·시비 250억원이 들 것으로 보고 문화체육관광부에 국비 지원을 요청해 놓았다. 이 화백은 지난 6일 설계를 담당할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 등과 함께 두류정수장 등 건립 후보지 2곳을 둘러보았다. 대구시는 2014년까지 이우환을 비롯한 세계 최고 수준의 작가들을 위한 미술관으로 건립, 특별한 관광명소로 조성할 계획이다. 전문 큐레이터도 이미 채용했다. 대구시 김대권 문화예술과장은 “미술관 건립 장소가 결정되면 바로 행정적인 절차를 밟아 공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 양주시는 장흥면 석현리 장흥문화예술체험특구 일대에 ‘양주 시립 장욱진미술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올 9월 설계가 마무리되면 공사에 들어가 내년 말 완공할 계획이다. 미술관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다 1990년 타계한 서양화가 장백진 화백의 부인 이경순씨와 유족이 기증한 유화 19점을 비롯해 벽화·드로잉 등 232점의 작품으로 채워진다. 양주시는 7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양주시는 또 조각가 문신(1922~1995)의 ‘문신 아뜰리에미술관’을 장흥문화예술체험특구에 건립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모텔 한 동을 사들여 개조한 시립 아틀리에를 조성, 유명 작가의 미술관으로 개관한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양주시 관계자는 “미술관들이 완공되면 장흥면사무소와 송암천문대 사이 4㎞ 구간에는 미술관 3개를 비롯해 장흥아트파크와 조각아카데미, 가족 조각공원, 100여개 아틀리에가 밀집한 미술관 단지가 조성된다.”고 밝혔다. 고양시는 산정 서세옥 화가 기념 미술관 건립 추진위원회가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서세옥 미술관’ 건립을 검토하고 있다. 충남 예산군 수덕사 인근에는 고암 이응노의 작품을 전시하는 ‘수덕사 선 미술관’이 2010년 3월 문을 열었다. 이 화백이 생전 작품 활동을 했던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수덕여관 옆 부지에 지어진 미술관에는 이 화백의 호를 딴 고암 전시실이 마련돼 이 화백의 후손과 제자, 지인들이 기증한 작품과 수덕여관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습작 등이 전시돼 있다. 이 밖에도 지자체들이 개관해 직접 운영하는 미술관도 10여개에 이른다. 한국 작가 중 가장 비싼 작품가를 자랑하는 박수근의 고향 강원 양구에는 ‘박수근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연면적 1400여㎡에 77점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용인에는 ‘백남준 미술관’이 2008년에, 대전 서구에는 ‘이응노 미술관’이 2007년 각각 개관됐고 제주 서귀포에는 ‘이중섭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대구 한찬규 기자·전국종합 cghan@seoul.co.kr
  • [기고] ‘세종마을’을 아세요/김영종 종로구청장

    [기고] ‘세종마을’을 아세요/김영종 종로구청장

    경복궁 주변의 마을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북촌이 서울 관광의 1번지가 되면서 이제는 다른 지역으로까지 내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경복궁 서쪽은 북촌에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북촌이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인 반면, 서쪽은 중인인 역관과 의관·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의 삶의 터전이었고 근대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이상 등도 이곳에서 꿈의 날개를 펼쳤다. 다시 말해 이곳은 양반층보다는 전문직 종사자와 문화예술인 마을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서 골목 하나만 지나면 동네 이름이 바뀌는 곳이다. 골목 어귀마다 숱한 이야기와 전설을 안고 있기도 하다. 지난 15일 통인시장 입구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세종마을’ 선포식이었다. 사단법인 세종마을 가꾸기회가 이끈 행사는 경복궁 서쪽의 15개 동네를 세종마을로 명명하는 한편 세종대왕 탄신일에 걸맞게 세종마을 문화축제로 펼쳐졌다. 북촌이 서울관광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경복궁 서쪽의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겪었다. 북촌에 빗대어 일부 인사들이 ‘서촌’이라고 부르는 결례를 저지르고 있어서다. 조선시대의 서울은 동서남북과 중촌의 5촌으로 관리됐다. 북악산 밑을 북촌이라 했고 남산자락 아래는 남촌, 낙산 근처를 동촌, 서소문 안팎을 서촌, 그리고 수표교 주변을 중촌이라 했다. 서촌은 분명 정동·서소문 일대인데 경복궁 서쪽이라고 서촌이라 불렀으니 마음이 상할 만도 했다. 일찍이 공자는 사회 혼란의 원인을 정명(正名)의 부재, 즉 이름이 바르게 되지 않음에서 찾았다. 이름이 바르지 않다는 것은 명목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명목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으면 각자 맡은 이름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사람 이름을 잘못 부르면 큰 실례가 된다. 하물며 땅의 이름, 특히 역사성이 깃든 지명을 잘못 부르는 것은 역사에 대한 결례이자 자신의 무식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위이다. 효율과 편리를 중시하는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지명이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우면 됐지 이름 붙여진 이유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내일을 사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과거를 이야기해 줄 의무가 있다. 특히 길 하나하나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는 600년 수도 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더욱 그러하다. 이곳 주민들이 ‘지명 바로잡기 운동’에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가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새 이름이 논의되었다. 주민들은 세종대왕이 탄생하신 이곳이 전문직 종사자와 문화예술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점에서 세종마을이란 명칭을 대안으로 마련했다. 행정동이나 법정동 이름은 아니지만 경복궁 서쪽 인왕산 일대의 넓은 역사적 마을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탄생한 것이다. 세종대왕 탄신 614주년을 맞이하여 세종마을이 탄생했다는 것은 지역민의 자랑이자 한국사의 새로운 한 장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세종마을이 서울 관광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점은 그래서 반갑다.
  • ‘제 버릇 개 못 준’ 위작의 달인

    ‘위작의 달인’ 홍씨 가족은 치밀했다. 서울 당산동 자신의 집으로 고객을 초대해 거실과 안방 벽에 전시해 둔 그림을 보여 주며 고(故) 박수근·이인성·나혜석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인 양 소개했다. 홍씨는 “박수근 화백을 미8군 범죄수사대 몽타주 그리는 작업에 취직시켜 준 답례로 작품 수십여 점을 선물로 받았다.”며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치밀한 거짓말에 고미술 수집가도 깜빡 속았다. 피해자는 결국 수억원에 그림을 사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모두 가짜 그림이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위조한 그림을 비싼 값에 판매하려 한 홍모(64)씨와 부인 유모(58)씨, 아들 홍모(33)씨를 사기 혐의로 붙잡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3일 밝혔다. 홍씨 가족은 고미술 수집가 한모(71)씨에게 유명 화가의 위작 3점을 2억원에 팔기로 하고 계약금 30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30여 년간 미술 감정 작업을 해 온 아버지 홍씨의 경험이 ‘위작 판매의 기술’이 됐다. 홍씨는 주한 미군 용산기지 안에 있는 미국의 한 대학 분교 동양학과 1학년을 다니다 그만둔 뒤 집에 작업장을 마련해 두고 미술 감정과 복원 작업을 해 왔다. 홍씨에게 계약금을 지불하고 그림을 넘겨받은 한씨는 작품 감정을 하던 과정에서 그림이 모두 위작인 것을 확인하고 구입 의사를 철회했다. 그러나 계약금은 돌려받지 못했다. 경찰이 홍씨 집에서 압수한 위작 2점을 ‘국제미술과학연구소’에 감정 의뢰한 결과 모두 위작으로 판명됐다. 경찰 관계자는 “홍씨의 집에서 위작 3점 중 한 점인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홍씨 일당이 사전에 빼돌린 것으로 보고 현재 그림의 위치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2009년 8월에도 이중섭·나혜석 등 유명 화가의 그림을 본뜬 위작을 팔아 수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작년 미술경매 최고 인기작가 피카소

    작년 미술경매 최고 인기작가 피카소

    지난해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작품 거래액 1위 작가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였다. 한국 작가 가운데는 오는 6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여는 이우환(75) 작가가 287위로 가장 높았다. 7일 미술시장 분석 사이트인 ‘아트프라이스’가 공개한 ‘2010 미술 시장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경매시장에서 피카소 작품의 낙찰 가격은 3억 6001만 달러(약 3920억원)에 이르렀다. 중국 작가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2위에는 3억 3900만 달러에 거래된 중국 작가 치바이스(1864~1957)가 차지했다. 국내 작가로는 이우환에 이어 김환기(1913~1974·328위), 이중섭(1916~1956·395위)이 이름을 올렸다. 조사 결과는 지난해 540여만건의 경매 기록을 바탕으로 산출됐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미술 경매서 가장 비싼 ‘몸값’ 자랑하는 화가는?

    미술 경매서 가장 비싼 ‘몸값’ 자랑하는 화가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지난해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작품 거래액이 가장 높은 작가로 조사됐다. 미술시장 분석 전문 사이트인 ‘아트 프라이스’는 지난 6일 발표한 ‘2010 미술시장 트랜드’에서 “지난해 전 세계 미술품 경매에서 팔린 피카소 작품의 낙찰액은 총 3억 5001달러(약 3920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는 2009년 기준 피카소 작품 거래액인 1억 2010만 달러의 3배 수준이다. 피카소의 작품 거래액이 급등한 이유는 지난해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1932년작)이 미술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인 1억 640만 달러에 팔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사는 최근들어 중국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중국 작가 치바이스(齊白石)는 3억 3900만 달러의 작품이 거래되며 2위에 올랐고, 장다첸(張大千), 쉬베이훙(徐悲鴻), 푸바오스(傅抱石) 등 4명이 각각 4위, 6위, 9위에 오르는 등 10위권 안에 4명이 랭킹되면서 저력을 입증했다. 3위에는 앤디 워홀이 올라 여전히 식지 않은 인기를 자랑했다. 국내 작가로는 6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이우환의 작품 거래액이 287위에 올랐으며, 김환기가 328위, 지난 해 유화 ‘황소’가 35억 200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이 395위에 올랐다. 사진=파블로 피카소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백자청화운룡문호’ 17억 ‘와유첩’ 넘나

    ‘백자청화운룡문호’ 17억 ‘와유첩’ 넘나

    미술계가 경매 열기로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옥션을 시작으로 아이옥션(15일), K옥션(16일), 마이아트옥션(17일), AT옥션(4월 21일) 등 이름 있는 경매회사들이 주관하는 장터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나오는 작품만도 오귀스트 르누아르, 로버트 라우센버그,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등 1000여점에 이른다. 추정가 총액은 200억원대. 시장 상황이 아직 나아지지 않은 터라 등락 폭이 큰 현대미술보다 안정적인 고미술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장터는 오는 17일 오후 4시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 2층에서 열리는 마이아트옥션 경매. 고미술품에 방점을 찍으면서 출범한 첫 경매다. 왕실 도자기 ‘백자청화운룡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추정가 20억~30억원, 이하 추정가 기준), 이징의 흰 매 그림 ‘백응박압도’(2억~3억원), 미국에서 들여온 2폭 자수 병풍 ‘십장생문자수2곡병’(1억~1억 3000만원) 등이 출품된다. ●11점 남은 희귀품… 17일 고미술 낙찰 최고가 경신 주목 ‘백자청화운룡문호’는 조선 시대 제작돼 현재 11점 정도만 남아 있는 희귀 작품이다. 중국의 ‘견제’ 때문에 용 문양이 들어간 조선 백자 자체가 희귀한 데다, 백자는 크게 만들수록 찌그러질 위험이 커지는데 상대적으로 달항아리 같은 모양새를 잘 유지하고 있어 1등급으로 꼽힐 만 하다는 게 고미술계의 설명이다. 추정가 이상으로 낙찰되면 역대 고미술품 낙찰 최고가를 경신하게 된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지난해 경매로 팔린 ‘와유첩’(臥遊帖). 17억원이다. AT옥션도 내달 21일 제2회 경매에 중저가 도자기 고서화 200여점을 내놓아 고미술 경매 열기를 이어간다. 이에 앞서 이달 15일 오후 5시 서울 경운동에서 열리는 아이옥션 경매는 일반인들도 도전해볼 만하다. 총 245점이 나오는데 추정가 1000만원 미만의 작품이 95%(230점)를 차지한다. 물론 청자상감 ‘운학당초문주전자’(7000만~1억원), 청자 ‘퇴화문정병’(5000만~1억원) 등 고가 작품도 있다. 윤보선·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유명 인사 15명이 쓴 친필 편지 15점도 나온다. ●해외 수집가 한국경매 참여 늘고 낙찰률 상승세 16일 오후 5시 서울 신사동에서 열리는 K옥션 경매에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1890년 무렵 작품 ‘기대 누운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소녀’(15억~18억원)가 선보인다. 최근 해외 수집가(컬렉터)가 한국 경매시장에 작품을 내놓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3월에는 르누아르 작품 ‘붉은 모자를 쓴 젊은 여인’이 6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데미안 허스트, 프랭크 스텔라, 구사마 야요이, 줄리앙 오피 작품 등 총 183점이 출품된다. 박수근의 ‘마을’(8억~12억원), 천경자의 ‘새’(1억 5000만~2억원)를 비롯해 조선시대 정선의 ‘해주허정도’(2억 7000만~3억 5000만원)와 김명국의 ‘한산도’(2억 2000만~2억 7000만원)도 만날 수 있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10일 실시한 경매 낙찰률이 74.4%로 지난해 평균보다 5%포인트 높아졌다.”면서 “1억원 이상에 낙찰된 작품의 수(11건)와 범위도 커졌다는 점에서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내년엔 아흔, 그래도 캔버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뛴다”

    “내년엔 아흔, 그래도 캔버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뛴다”

    “제사 지내려면 병풍이라도 있어야 했으니 동양화 쪽은 그래도 먹고살 만했는데 서양화는 참 어려웠어.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간 이중섭(1956년 작고)은 국제극장 뒤에서 점심으로 만날 호떡을 얻어먹었지. 그땐 호떡이 제법 커서 한끼로 때울 만했거든. 가격은 생각 안 나는데,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어. 그런데 그 호떡 하나 사먹을 돈조차 없어 늘 쩔쩔맸지. 그러니 주인장이 불쌍해서 돈 조금만 받고도 주고, 공짜로도 주고 그랬어. 미안하고 고마웠던 이중섭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그림이니, 그림 하나를 정성껏 그려서 줬어. 주인장도 그걸 받기는 했는데 참 난감한 거야. 나중에 보니 그걸 장독 뚜껑으로 쓰고 있더라고. 유화물감이니까 기름기가 있어서 물기를 잘 막아주거든. 자존심이 무척 강했던 이중섭이지만 제 눈으로 그걸 보고도 아무 말 못했지. 그땐 시절이 그랬어.” “아깝네요. 그거 하나 잘 갖고 있었으면 지금 몇억원은 할 텐데.” “예술가의 삶이란 게 그런 거 같애. 내가 프랑스에서 살던 곳이 페뢰야. 빛이 좋아 화가들이 좋아하는 곳이지. 고흐가 살던 오베르하고 가까운 곳이기도 해. 언젠가 오베르에 갔더니 그곳 주민들이 이런 얘기를 해. 고흐가 권총자살하는 데 잘못 쐈대. 즉사한 게 아니라 한 3~4일 앓다가 죽은 거지. 장례가 골치 아팠어. 이름 없는 가난뱅이 화가인 데다, 그런 방식으로 죽었으니 다들 꺼림칙한 거지. 겨우겨우 이웃의 도움을 받아 장례를 치렀는데 이번엔 삯으로 줄 돈이 없는 거야. 그래서 그림 하나씩 가져가라 그랬대. 그런데 아무도 안 가져갔다는 거야. 그때 아무거나 하나 골라 집었어 봐…. 어휴.” 지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백영수(89) 화백을 만났다. 이중섭·김환기·장욱진·유영국·이규상 화백 등과 더불어 1950년대 신사실파 화폭을 개척한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신사실파는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구의 후기인상파적 화풍을 뛰어넘기 위해 이들이 결성한 단체다. 동인 중 유일한 생존 작가가 백 화백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1977년 프랑스로 떠났다가 올 1월 34년 만에 영구귀국했다. 따뜻한 느낌의 ‘모자(母子) 시리즈’로 국내는 물론, 유럽 화단에도 상당히 이름이 알려져 있다. 롯데호텔에서 백 화백을 만난 것은 영구귀국 뒤 첫 전시가 롯데호텔 1층 롯데갤러리 재개관전이어서다. 롯데호텔 전신은 1956년 세워진 반도호텔이다. 이곳 1층의 반도화랑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갤러리다. 롯데갤러리 재개관을 맞아 백 화백을 비롯, 김종화(93), 권옥연(84), 황용엽(80), 윤명로(75) 등 원로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을 모았다. 백 화백은 ‘모자 시리즈’와 더불어 ‘여백 시리즈’를 내놓았다. 그런데 원로 작가들의 명성에 비해 호텔 로비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갤러리가 어째 좀 옹색해 보인다. 내걸린 작품 수도 그리 많지 않다. 백 화백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에이, 이것만 해도 엄청난 거지. 반도화랑은 더했어. 그 시절 화랑이란 게 일종의 기념품 가게였거든. 반도호텔 맞은편에 미국공보원이 있었고 옆에는 국립도서관이 있었지. 거기다 최고의 요지였던 명동이 곁에 있었고…. 그러다 보니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이 사람들이 반도화랑에서 작품들을 사갔어. 이때 박수근(1965년 작고)이 그린 그림이 조선 풍속화야. 외국인 눈에 맞춘 거지. 덕분에 미군 부대 초상화가에서도 벗어났고….” 반도화랑에서 일을 배운 박명자(67) 회장이 나가서 살림 차린 곳이 바로 현대화랑(지금의 갤러리 현대)이다. 박수근 화백도 반도화랑 전시를 통해 화단에 본격 데뷔했다. “그땐 반도호텔이 9층인가 해서 주변에서 제일 높았어. 그림 그린답시고 몰려다니면서 명동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9층 칵테일 바에서 분위기 내고 그랬지. 반도화랑을 열었던 이대원(2005년 작고)이 오며 가며 이런저런 일거리도 줬고….” 당시 서양화 위상은 볼품없었다는 게 백 화백의 회고다. 심지어 이념 장벽까지 있었다. 장욱진(1990년 작고) 화백은 땅과 황소를 벌겋게 그렸다고 기관원에게 끌려갔단다.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추궁당하던 시절, 이중삼중 생활고에 시달렸다. “나도 무지하게 일했어. 서울신문사 뒤에 코오롱 아케이드 있지? 그게 1969년에 지어졌는데 그 지하 아케이드 디자인을 내가 했어. 그것만 했겠어? 국립극장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무대미술 작업도 내가 했지. 문예잡지나 시집 같은 책에다 삽화며 도안 그려넣는 일도 숱하게 했어. 그런데 그건 비교적 사정이 나은 거였어. 그나마 (작가) 이름값이 있으니 얻을 수 있는 일거리였거든. 이름 없는 작가들? 그냥 마냥 굶는 거지 뭐. 이중섭도 그렇게 굶어 죽은 거지.” 당시 작가들이 ‘괜찮은 일거리’로 꼽았던 것이 백화점 전시였다. 그런데 이것도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백화점 전시라는 게 지금처럼 멋지게 하지 않았어. 맨 꼭대기층에 전시해 두면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보고 상품을 사라고 해둔 거지. 일종의 미끼 상품이야.” 그렇게 자존심에 상처 받아가면서도 뭐가 좋아 그렇게 그림에 매달렸을까. “그냥.” 허무한 답이다. 말이 이어진다. “하얀 캔버스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으면 그냥 좋아. 이번엔 내가 또 뭘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막 설레. 얼마 전에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갔는데 마네 그림이 너무 좋은 거야. 여러 번 본 건 데도 너무 좋더라구. 나도 저렇게 멋진 거 하나 그리고 싶다, 이 생각밖에 안 들어.” 젊었을 때도 그 생각만으로 버텨냈다고 한다. “내 젊었을 때만 해도 샤갈, 미로, 피카소, 달리가 살아 있을 때였어. 수입된 유럽잡지를 통해 그 그림을 보면 너무 부러운거야. 나도 저런 작가가 되고야 말테다, 그 희망 하나로 버틴 거지.” 실은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단다. “좋아하는 일인 데다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잖아. 마티스는 아흔 넘어 손에 힘이 떨어지니까 가위로 종이를 오려서 작품을 만들어냈어. 르누아르는 말년에 골다공증이 오니까 몸에다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렸어. 그걸 보면서 그림이란 게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구나, 하는 계산도 했지.” 그렇게 지켜온 게 바로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자부심이 강하게 묻어나온다. 1977년 프랑스로 건너간 것은 파리의 한 화랑이 백 화백의 진가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초대전으로 프랑스에 불러 들이더니 아예 주저앉혔다. 10년 넘는 활동기간 동안 큰 개인전만도 22차례, 이런저런 전시회까지 합치면 100회 넘게 전시를 열었다. ‘한국에서 건너온 뛰어난 화가’라는 명성이 쌓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1989년 교통사고를 당하더니 1994년 위암 선고까지 받았다. 한동안 붓을 놓을 수밖에. 몸을 추스린 뒤 더 이상 비행기를 타기 싫어 영구귀국을 결심했다. 원래 살던 경기 의정부 집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하지만 창작 의욕만큼은 왕성하다. 아직도 주머니에 종이와 연필을 넣고 다니면서 눈을 사로잡는 장면은 재빨리 스케치한다. “아직 더 그릴 수 있어. 언젠가 프랑스 한인회에서 경로잔치 같은 걸 해 주겠다길래 펄쩍 뛰었지. 아직도 하얀 캔버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뛰는데 무슨….” 속으로는 고민도 있다. “미술가란 남이 안 하는 모양이나 색깔을 찾아내야 하니 스케치를 계속 모아두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중에 작품으로) 뽑아내야지. 그리는 시간 자체보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더 필요해.” 오는 10월쯤 신작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백영수 화백이 걸어온 길 ▲1922년 경기 수원 출생 ▲1945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졸업 ▲1945년 전남 목포고등여학교 미술교사 ▲1947년 서울 화신백화점 개인전 ▲1952년 해군 종군화가 미술전 ▲1953년 신사실파전(국립미술관)▲1973년 국립현대미술관 60년전 ▲1977년 프랑스행 ▲1978년 소시에테 나쇼날 보졀 그랑파레(파리) ▲1981년 프랑스 주재 한국작가전(파리), 프랑스현대작가전(도쿄도미술관) ▲1983년 살롱 도톤느 그랑파레(파리) ▲1985년 AAM전(파리) ▲1986년 프랑스 작가 초대전(일본, LA), 국제현대미술전(모나코) ▲2007년 신사실파 60주년(서울) ▲2011년 영구 귀국
  • [책꽂이]

    ●내가 처음 만난 예술가 1~10(실비 지라르데·클레르 메를로 퐁티·네스토르 살라 등 지음, 최윤정 등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 명화를 갈기갈기 찢어보고 재구성하고 비교해가며 놀도록 만들었다. 샤갈, 다빈치, 피카소, 김홍도, 장승업, 이중섭 등 서양과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대표작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게 한 예술놀이책 시리즈다. 책에 흠뻑 빠져 신나게 놀다 보면 예술적 감각이 절로 발달된다. 각 권 9000원. ●윤석중 연구-동심의 근원을 찾아서(노경수 지음, 청어람M&B 펴냄) ‘퐁당퐁당’, ‘짝짜꿍’, ‘졸업식 노래’ 등 우리 모두가 한때, 혹은 지금도 흥얼거리는 노래는 모두 그의 동시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내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는 아동문학가 윤석중을 연구한 책이다. 그의 생애와 문학관, 현재 아동문학이 지향해야 할 정신의 방향성까지 제시하고 있다. 1만 2000원.
  • 신사실파 5인 그림 한자리에

    신사실파 5인 그림 한자리에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그룹 ‘신사실파’ 5인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유영국의 1950년대와 1세대 모더니스트들’전이 12월 5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새로운 사실(寫實)을 표방한다’는 기치 아래 1947년 김환기·유영국·이규상·장욱진이 결성하고, 1953년 백영수와 이중섭이 합류한 신사실파는 전쟁과 분단, 이념 대립의 혼란한 현실에서도 수차례 동인전을 열며 한국 추상미술의 토대를 일궈 나갔다.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추상화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미발표 유작 5점. 최근 발굴된 이들 작품 가운데 3점은 ‘53 KUGG’라는 작가의 서명이 뚜렷해 1953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고, 나머지 2점도 같은 시기에 발표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영국은 한국전쟁 전후 시기 120여점의 전시출품 기록이 있으나 실제 남아 있는 작품은 거의 없어, 이번 발굴 작품들은 유영국의 작가적 공백기를 메울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장욱진·김환기·이중섭·백영수 등 1세대 모더니스트들이 전쟁 체험을 어떻게 자신들의 작품세계에 투영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소개된다. 가족을 향한 애틋한 감정을 표현한 이중섭, 동심의 세계를 화폭에 담은 장욱진, 한국적 정서를 묘사한 김환기의 그림에선 피폐한 현실을 예술적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거장들의 고뇌와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신사실파 동인 중 유일한 생존작가인 백영수의 근작들도 일부 선보인다. (02)3217-0223.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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