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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일의 어린이책] 너는 없지만 계속 생각할래

    은유가 아주 깊어서, 초등 저학년까지도 읽으면 좋을 에릭 바튀의 새 그림책을 골랐다. ‘실베스트르’‘만약 눈이 빨간색이라면’ 등으로 열혈(?)엄마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그림 작가 에릭 바튀. 예의 그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붓터치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게 이끄는 그림책이 ‘마음을 움직이는 모래’(토마 스코토 글, 함정임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펴냄)이다. 미리 귀띔하지만, 이 책은 한두번 읽어서는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기 어려울 정도로 은유가 깊다. 그런 만큼 거듭 읽을수록 책의 진의(眞意)가 진국으로 우러난다는 점은 대단한 미덕이기도 하다. 쓸쓸하고 고요한 사막에 혼자 서성이는 ‘나’.“네가 쌓은 돌담이 그대로인지 보러 간” ‘나’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너’가 무척 그립다.‘너’가 누구인지는 독자들도 끝까지 알 수 없다.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그래서 ‘나’의 마음이 너무너무 아프다는 것 밖에는.“눈에 모래가 들어갔을 때 말고는 울지 않는다.”며 씩씩한 척하는 ‘나’의 깊은 슬픔이 책장 밖으로 출렁출렁 넘쳐나올 것만 같다. 이별과 죽음에 관한 명상과 성찰을 느리고 조심스럽게 에둘러 권유하는 책이다.‘너’와의 이별(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 독자들 마음까지도 찡하게 때린다.“엄마는 네가 돌담에서 떨어졌다고 말씀하셔. 아빠는 네가 모래 위에 쓰러졌다고 하시고. 난, 네가 햇빛에 살갗을 태우기 위해 그런 거라고 생각해.” 아픔을 달래려 애쓰는 ‘나’의 몸짓이 안타깝다.‘너’가 남기고 간 돌담을 덮어버리려 하루종일 모래를 긁어모은 ‘나’는 이렇게 말한다.“사람들은 무엇이든 눈에 안 보이면, 잊게 되는 것 같아.” 잔잔하고도 애틋한 감상에 젖어있던 책은 그러나 마지막 대목에서 껑충 도약을 한다. 슬픔을 딛고, 작은 성찰을 끝내고….“좋아, 이제 그만 가야겠어!…그래도 넌 빨리 돌아와야 해. 어쩌면 너무 늦을지도 모르니까. 그 때는, 내가 너무 커 버렸을지도 몰라.” 독특한 검정색 책 표지, 강렬한 붉은 색과 시원시원한 여백의 그림들. 소설가 함정임이 번역했다. 짧은 글, 깊은 성찰.‘글꾼’이 글을 옮긴 이유를 알만하다.5세 이상.1만원.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얌전히 있기엔 세상은 아름다워

    2권짜리로 나온 ‘고슴도치와 작은 이웃사촌’(니시나 사치코 글·그림, 성승희 옮김, 작은책방 펴냄)은 여러모로 신통한 동화책이다.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새로운 일을 꾸미는 고슴도치와 그의 귀여운 이웃사촌 겨울잠쥐가 주인공. 각각 6편의 짧은 동화가 담긴 두 권의 책에서는 이들이 숲 속에서 펼치는 즐거운 에피소드들을 만날 수 있다. 1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에는 자연사랑의 마음이 담뿍 들어있다. 표제작인 첫째편은 특히나 그렇다. 풀밭 위에 드러누워 “오늘 하루만큼은 꼼짝도 하지 않겠다.”는 고슴도치.이웃사촌 겨울잠쥐도 얼떨결에 고슴도치와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풀밭에 누워 있기로 한다.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걸까. 코 끝을 간질이는 바람줄기, 새파란 하늘빛, 재미있게 생긴 구름모양, 지저귀는 새 소리,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며 엎드려 있던 둘은 산이 온통 보랏빛 노을색으로 물들 무렵 마침내 알아차린다.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단순한 소재로 환상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 글 전개방식이 놀랍다. 한편한편이 모두 독립된 그림동화가 되어도 좋을 만큼 튼실한 완결구도를 갖췄다. 은은하면서도 밝고 선명한 파스텔풍 그림이 책읽는 마음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준다.2권 ‘생일날의 약속’에도 소담스러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호기심 넘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들이 묶여 있다.6세∼초등 저학년. 각권 8000원.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월간 ‘개똥이네 놀이터’ 창간

    도서출판 보리에서 어린이 월간지 ‘개똥이네 놀이터’를 내놓는다. 새달 1일 창간되는 이 잡지는 책읽는 아이들을 자연과 놀이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주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아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동화, 만화, 도감, 놀이 등 여러 형태로 담아 전한다는 점이 이 책의 큰 특징. 다양한 자극을 통해 책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꾸며졌다. 살아 숨쉬는 자연의 품을 느끼게 하는 ‘자연이랑 놀자’편, 맛깔진 서사의 기쁨을 주는 ‘이야기는 이야기’편,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다양한 놀이들이 소개되는 ‘놀고 먹고 만들고’편.‘이야기는 이야기’편에서는 20년 전에 발표돼 인기를 모았던 만화가 이희재의 ‘골목대장 악동이’를 연재만화로 다시 꾸민 ‘아이코 악동이’를 만날 수 있다.‘강아지똥’‘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의 연재동화 ‘랑랑별 때때롱’도 실린다. 딸린 읽을거리도 입맛을 당긴다.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책 속의 책-손바닥 그림책’,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말판놀이와 딱지 등이 다달이 부록으로 덧붙는다. 하나 더. 학부모(정기구독자)를 위한 ‘부모님책’은 덤이다.8500원.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권윤덕 지음

    절제된 언어의 묘미를 담뿍 담은 그림책 ‘시리동동 거미동동’을 기억하는 엄마라면 작가 권윤덕의 새 책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창비 펴냄)에 선뜻 신뢰를 보낼 것 같다. 그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번 그림책도 담백한 언어와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멋진 화음을 이뤘다. 새까만 머리칼,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독자의 시선을 붙들어 놓는 꼬마 여주인공. 금방이라도 꿈틀꿈틀 책장 밖으로 머리를 내밀 것 같은 고양이 한마리가 꼬마의 몸짓들을 일일이 흉내낸다. 신문지 밑에 숨어도, 문 뒤에 숨어도, 책장 밑에 숨어도, 옷장 속에 숨어도…. 번번이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로 끝나는 간명한 글에 단 둘뿐인 단출한 등장인물 구도인데도 신통하다. 꼬마가 빨래를 널고, 파리를 쫓아다니고, 꽃 냄새를 맡는 동선들의 질감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지면 밖으로 전해온다. 요즘 한창 불화(佛)를 배우는 데 푹 빠져 있는 작가여서일까. 탱화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색감, 전통민화를 닮은 듯도 한 힘찬 선들이 강렬한 시각효과를 낸다.4∼7세.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논술은 밥이다/김은실 지음

    논술에 왕도가 있을까. 주니어김영사에서 펴낸 ‘논술은 밥이다’(김은실 지음, 우지현 그림)는 독서에 재미를 붙일락말락 하는 초등생들에게 “책읽기와 글쓰기는 맛있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논술의 족집게 선생님은 ‘혼자만의 시간에 즐기는 독서’”라고 정의한 이 책은, 뛰어난 논술실력을 자랑하며 입학한 명문대학생 10명의 경험담을 실었다. 단순히 ‘이러이러해야 할 것’을 열거하는 게 아니라 생생한 경험담을 근거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결 더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독서비법들이 다양하게 소개됐다. 논술실력 쟁쟁했던 대학생들이 직접 추천하는 책의 목록들도 눈길을 끈다. 초등생.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우물 속 도마뱀/김선숙 글·그림

    ‘우물 속 도마뱀’(김선숙 글·그림, 문학동네어린이 펴냄)은 한글을 떼지 못한 유아들의 감각기관을 이래저래 자극할 수 있어 좋다. 원색의 강렬한 색감, 콜라주 기법이 동원된 입체감 넘치는 그림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반복되는 단순한 글 속에 등장하는 여러 흉내내는 말들 또한 아이들 귀를 쫑긋 세워놓기 ‘딱’이다. 시청각 감각을 부지런히 쓰게 유도하는 요령있는 그림책인 셈이다. 숲 속 우물로 물을 뜨러 간 여자아이 꼭지. 물을 뜨지 못해 발을 ‘동동동’ 구르는 꼭지의 귀에 들려오는 ‘둥둥둥’ 북소리. 노란 장화를 신은 도마뱀이 배를 두드리며 걸어오는 소리는 ‘둥!둥!둥!둥!’. 여러 등장인물들이 내는 소리들이 무척 재미있다.5세까지.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지붕 위의 시인 로니/재클린 우드슨 지음

    아이들에게 ‘시를 써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머리를 긁적일 것이다. 시쓰기는 까다로운 것, 시어(詩語)는 근사하고 특별해야 하는 것이란 선입견을 가진 아이들에게 ‘지붕 위의 시인 로니’(재클린 우드슨 글, 조경현 그림, 김율희 옮김, 다른 펴냄)는 무척이나 유익한 책이다. 시의 소재는 일상에 널려 있으며, 평범한 입말체도 얼마든지 멋진 시어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어린이용 시문학 교양서’인 셈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접근방식이 뭣보다 새롭다.‘시란 이래야 한다.’는 해설식 전개가 아니다. 책의 틀거리는 엉뚱하게도 줄거리가 뚜렷한 소설. 열한살짜리 주인공 로니가 일상에서 겪는 자잘한 감상들을 솔직하게 시로 풀어낸다. 예컨대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어진 어느날 로니는 ‘지붕’이라는 짧은 시를 통해 서러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한밤중/에드나 아줌마가 잠자리에 들면/가끔 난 지붕에 올라가/가끔 난 앉아서 별을 센다./아마 그 중 하나는 엄마일 거고/다른 건 아빠일 거야./가끔 반짝거리는 걸 보면./내 말은, 별들이 말이야.”책을 덮을 때쯤이면 그 어렵던 시가, 어느새 옆구리로 바짝 다가와 말을 걸어올지도 모르겠다. 초등3년 이상.8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댕기 땡기/이상교 글

    중견 동화작가 이상교의 새 책 ‘댕기 땡기’(백남원 그림, 시공주니어 펴냄)는 시나브로 마음까지 녹여주는 손난로 같은 창작동화.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진리를 소근소근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변덕쟁이 주인공 다솜이. 떠돌이 어미개를 잃고 혼자 남은 강아지 ‘댕기’를 집으로 데려온 그날 이후로도 그 변덕은 그대로이다. 기분이 좋으면 “댕기야∼”하고 불러줬다가 귀찮다 싶어지면 또 어느새 “땡기!”라니. 가만히 보면 다솜이의 친구 명미의 신세가 댕기와 좀 닮았다. 엄마 아빠가 이혼해 이곳저곳 친척집을 떠도는 명미는 외삼촌 집에 와있는 지금도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이야기는 큰 파고없이 잔잔히 기승전결을 일궈간다. 꼬리 끝의 흰 줄 때문에 댕기가 재주없다 하시던 할머니의 말을 믿었던 다솜이가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훈훈하다. 초등 저학년.7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이태수 글

    작고 낮고 느린 세상. 그것이 크고 높고 빠른 세상보다 더 값어치 있음을 덤으로 귀띔해 주는 생태동화 한 권이 나왔다. 생태화가 이태수가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우리교육 펴냄). “날고 싶어, 날고 싶어, 날고 싶어.” 아파트 베란다의 둥지에서 막둥이로 알에서 깨어난 황조롱이. 먼저 태어난 세 언니들이 이만저만 부러운 게 아니다. 알에서도 제일 늦게 깨어난 데다, 엄마 아빠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잽싸게 얻어먹는 재주도 없다. 엄마가 잘게잘게 부숴주는 먹이나 간신히 받아먹는 황조롱이. 부화에서 비상(飛翔)까지 황조롱이의 일련의 생태과정이, 뭐든 조금씩 느린 막내의 입말체로 재구성됐다. 둥지 끝에서 잔뜩 겁먹고 있던 황조롱이가 ‘후드득 후드득’ 나는 마지막 대목에는 한 줄기 감동까지 깃들어 있다.“한 발짝 내디뎠어. 순간 날았어. 나는 날았어. 넓은 하늘을 날았어!” 4세 이상.98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웅진씽크빅 ‘푸른담쟁이 우리문학’

    아이에게 우리 고전의 포만감을 안길 수 있는 튼실한 읽을거리가 어디 없을까. 독서 자체의 즐거움에 글맛의 깊이까지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런 고민을 해온 학부모에게는 ‘푸른담쟁이 우리문학’ 전집(웅진씽크빅 펴냄)이 반가울 듯하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고소설에서 시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문학작품들이 모두 40권의 책으로 묶였다. 다양한 문학장르가 어울렸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거니와 작품을 추천하고 선정한 이들이 쟁쟁하다는 점은 무엇보다 큰 미덕.12인의 국문학자,30인의 중·고교 교사들이 책 작업에 참여했다. 초·중등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이 다수 끼어 학습효과까지 챙길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시중 서가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고전소설은 15권이나 된다.‘토끼전’‘흥부전’‘장끼전’‘사씨남정기’‘금오신화’ 등이 그들. 문장 이해력이 빠르다면 초등 중학년부터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배려한, 만연체를 피한 깔끔한 문장이 돋보인다. 고전 ‘삼국유사’‘삼국사기’, 근현대 소설 ‘배따라기’‘운수좋은 날’‘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이밖에 93편의 동시와 창작동화 등이 포함됐다. 김용택 안도현 나희덕씨 등 인기작가, 김용철 한병호 유승배씨 등 유명화가들이 글·그림 작업에 함께 했다. 초등4학년∼중학생. 전집 30만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아이들이 사는 성 (전2권)/송미나 글

    “난 어디에서 왔어? 아기는 어떻게 생겨?”“남자, 여자가 하는 일이 따로 있어?” 이런 질문에 명쾌하게 즉답을 내놓을 부모가 몇이나 될까. 아이들이 성(性)이나 성 역할에 관한 질문을 쏟아낼 때 우물쭈물하지 말고 조용히 읽어주면 좋을 그림동화가 ‘아이들이 사는 성(전2권)’(송미나 글, 캐릭터플랜 그림, 더큰컴퍼니 펴냄)이다. ‘나’라는 부제가 붙은 1권에는 남녀의 생식구조와 생명탄생의 과정이 재미있는 그림과 해설로 유쾌하게 묘사됐다. 아빠의 몸 속에서 아기를 만들 준비를 마친 정자가 엄마 몸 속의 난자를 만나 ‘나 자신’이 되는 이야기 흐름을 타며 아이는 기초적 성교육은 물론이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3D애니메이션(EBS 애니메이션 ‘아이들이 사는 성’이 원작)에서 따온 정자 캐릭터가 재미있다. 2권의 부제는 ‘답게?답게!’. 평등한 성 역할과 올바른 가치관을 왕비와 공주, 왕자가 등장하는 옛이야기로 에둘러 웅변했다. 왕의 뜻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왕궁에서 쫓겨난 왕비가, 왕의 편견을 깨트리고 결국 새로운 왕이 되기까지의 길목길목에 큼직큼직한 메시지들이 걸려있다.4∼7세. 각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백두산으로 날아간 된장잠자리/김정환 글

    우리나라에서 터를 잡고 사는 잠자리는 무려 110여종. 그들 가운데 의지가 강하기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된장잠자리’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멋지고 화려한 날개를 달고 있지도, 특별히 오래 사는 것도 아닌 수수하고 낯선 된장잠자리에게 눈길을 준 생태동화 한권이 새로 서가에 꽂혔다.‘백두산으로 날아간 된장잠자리’(김정환 글, 박지훈 그림, 언어세상 펴냄)는 저명 곤충학자 김정환씨가 오랜 연구경험을 지면에 옮긴 일종의 ‘다큐동화’인 셈이다. 동화 속 화자는,3월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제주도 연못 혼인지에서 태어난 된장잠자리 ‘나’.‘나’가 혼자 헤쳐나가야 할 세상은 힘든 일로 가득하다. 무시무시한 모기 떼와 거미의 공격을 물리쳐야 하고, 매서운 날씨도 견뎌내야 하니까. 이야기는 주인공 된장잠자리가 온갖 위험과 험난한 여정을 뚫고 백두산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주도 혼인지에서 출발해 창녕 우포늪, 영산강, 한강, 압록강을 거쳐 백두산 천지에 이르는 이동경로를 따라가는 책읽기는 그대로 한편의 ‘생태기행’이기도 하다. 담담한 수묵채색화가 토속적 향취를 보탰다. 초등생.98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꼬물꼬물 과학이야기/손영운 글

    ‘꼬물꼬물 과학이야기’(손영운 글, 권윤주 그림, 뜨인돌어린이 펴냄)는 일상의 사물들을 과학적 시각으로 볼 수 있게 안내해주는 교양서이다. 이야기를 끌어내는 주인공은 꼬물꼬물 박사 가족. 엉뚱한 말을 잘하는 꼬물꼬물 박사와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남매 꼬불이와 꼬질이가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과학이야기를 엮어간다. 태평양의 아름다운 산호섬 몰디브가 해마다 조금씩 바다속으로 가라앉는 건 왜일까. 꼬물꼬물 박사가 이렇게 질문 하나를 던져놓으면 꼬마 남매는 번번이 엉뚱한 대답을 한다.“누가 쇳덩이를 올려놨나요?” 뚱딴지같은 추측을 하는 아이들에게 박사는 과학적 원인을 귀띔해주고, 이야기는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몰디브가 가라앉는 것은 바닷물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기 때문이고, 바닷물이 점점 불어나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이며, 지구 온난화란 온실 기체의 양이 많아져 생기는 현상인데…. ▲식물의 잎이 하는 일, 날씨의 변화(초등5) ▲흔들리는 땅, 계절의 변화(초등6) ▲일기예보, 빛·지각의 구조(중등1) ▲생식과 발생, 물의 순환과 날씨 변화(중등3) 등 초·중등 과정의 교과내용들이 많아 학습자료로도 손색없을 듯하다.1만 1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지빠귀 부리 왕자/펠릭스 호프만 그림

    “흥, 절구통!” “늘어진 엿가락 같군!” “몽땅하면 재주가 없다고!” “낮귀신이 따로 없군!” “틀어진 장작개비!” 도도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공주. 신랑감으로 찾아온 멋진 남자들에게 온갖 트집을 다 잡으며 딱지를 놓는다. 그림 형제의 고전 ‘지빠귀 부리 왕자’(펠릭스 호프만 그림, 박경희 옮김, 비룡소 펴냄)는 콧대높은 공주가 제멋대로 성질을 부리는 장면으로 운을 뗀다. 시원시원한 그림이 곁들여진 그림동화로 새롭게 탄생한 덕분에 취학전 아동들도 쉽게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옛날 어느 나라에 매우 아름다운 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로 열리는 이야기는 금세 아이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맨다. 신랑감 후보 대열에 끼인 맨 앞쪽의 착한 왕자에게도 공주는 또 버릇없이 딴죽을 건다. 왕자의 뾰족한 턱을 가리키며 “지빠귀 새의 부리같다.”고 놀리자 이번엔 늙은 임금님이 화가 났다. 궁궐 문을 들어서는 첫번째 거지에게 무작정 공주를 시집보내겠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언하는 게 아닌가. 책의 들머리에 놓인 ‘극적 장치’앞에서 꼴깍 군침을 삼킬 독자들을 위해 이야기는 속도를 높인다. 며칠뒤 궁궐 창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떠돌이 거지 악사, 꼼짝없이 그의 아내가 되고만 공주. 이제 2장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분위기를 바꿔 이어진다. 남루한 행색으로 거지 악사를 따라 길을 떠난 공주는 난생 처음으로 온갖 험한 일을 다하게 된다. 궁궐시절을 생각하며 제멋대로 살았던 시간들을 후회도 해보지만, 시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끼니를 마련하기 위해 급기야는 하녀가 되어 다시 궁궐로 들어가게 됐으니! 중반쯤 넘어 가면 해피엔딩을 눈치챌 수 있는 평이한 이야기 구도이긴 하다. 남을 함부로 평가하는 공주의 못된 버릇을 고쳐 놓으려 임금님은 단단히 별렀고, 거지악사는 다름아닌 공주가 ‘지빠귀 부리’라고 놀렸던 그 뾰족턱의 왕자였던 것. 몇번씩 곱씹게 하는 철학적 메시지는 없어도 명쾌한 ‘고전적’ 서사틀이 오히려 책읽는 맛을 돋워 준다. 넉넉한 여백을 둔, 은은한 색감의 연필선 그림이 신선하다.5세 이상.8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주말화제] 금연광고 효과는 대박

    “엄마, 미안해요. 나는 엄마의 사랑을 연기로 태워 버리고 말았어.” 어머니 품에 안긴 딸의 귀에서 검붉은 니코틴액이 흘러나온다.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죽음을 앞둔 딸을 애처롭게 쓰다듬는다. 곧이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흡연 여성이 후두암에 걸릴 확률은 비흡연 여성보다 4.2배 높다.’는 문구가 뜬다.‘흡연, 세상과 이별하는 행위’라는 카피로 마무리되는 15초짜리 광고는 보건복지부가 금연 캠페인의 하나로 제작한 것이다. 금연 공익광고가 교과서 같은 틀을 깨고 과감히 상업광고 기법을 도입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상반기 ‘자학’편에 이어 지난 5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이별’편도 벌써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리즈 방영 이후 흡연율도 유례없이 큰 폭으로 떨어져 금연을 이끄는 일등공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조사한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52.3%로 지난해의 57.8%보다 무려 5.5%포인트 떨어졌다.2002년 흡연율은 59.6%,2003년은 56.7%였다. 보건복지부는 담뱃값 인상과 함께 금연 캠페인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학 시리즈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스위스 국제광고제에서 캠페인부문 최종경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자학 시리즈가 흡연의 폐해를 거칠고 냉정하게 전달했다면, 이별 시리즈는 감정이입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개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로 한 단계 높여 죽음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강조점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기존의 금연 광고에서 주로 보여주던 니코틴에 찌든 폐는 감정이입 이전에 혐오감부터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처음부터 선택안에서 빠졌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이별편에서 흡연자들의 눈과 코, 귀에서 흘러내리는 섬뜩한 니코틴액.‘금연’이라는 말은 한마디 없이 상징적인 비주얼 코드를 통해 흡연으로 인한 죽음을 보여줬다. 시리즈를 만든 빌리브커뮤니케이션 조계성(43) 감독은 “처음에는 자살을 주제로 쓰려 했지만, 죽으려고 담배 피우는 사람은 없지 않으냐.”면서 “자살은 보다 목적성이 있기 때문에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의 원치 않는 이별이라는 테마를 통해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학’편에서 머리를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테이블에 얼굴을 문대는 행위로 흡연을 표현한 데에는 제작진들의 ‘흡연경력’이 한몫했다.실제로 담배를 피우면서 느낀 자각증상을 그대로 영상화했다. 일부 제작진은 광고를 만들면서 금연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금연 공익광고의 변모 뒤에는 복지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2000년부터 영상광고를 제작한 복지부는 초기에 연예인을 내세워 계도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후두암으로 성대를 잃은 흡연자와 폐암으로 투병하는 이주일씨를 등장시키는 충격요법을 쓰기도 했지만 효과가 오래가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상업광고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보다 감각적인 영상이 필요하다고 판단, 전 세계의 금연광고를 모니터링하는 등 노력 끝에 지난해 ‘담배와의 이별’편을 탄생시켰다.“우리 이제 헤어져.”라고 담배에게 직접 이별을 고해 눈길을 끈 이 광고는 젊은 세대에게 호평을 받았다.복지부 관계자는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 올해는 내용면에서 보다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면서 “앞으로도 지금의 방향을 유지해 보다 참신한 공익광고를 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렉시 ‘눈물씻고 화장하고’ 다시왔다

    렉시 ‘눈물씻고 화장하고’ 다시왔다

    연예인과의 인터뷰에서는 종종 건조한 대화가 오간다. 틀에 박힌 답변이 돌아올 때가 많다. 하지만 그녀와 마주한 동안 그런 염려는 없었다. 솔직했고, 말 한마디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가수 렉시가 돌아왔다.1년 9개월 만이다. 지난 2003년 가을 ‘애송이’라는 노래로 가요계에 파장을 일으켰던 그녀. 이번엔 아프리카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2집 ‘렉스터시’(Lextasy)로 무장했다. “차라리 가수 안하는 게 낫지 립싱크는 죽어도 못하겠더라고요. 입만 뻥긋거리고 무대 밑으로 내려오는데… 기분이 정말 우울했어요.” 그녀는 최근 겪었던 ‘인생 최대의 위기’(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순간의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데뷔 후 줄곧 라이브로만 무대에 섰는데, 처음으로 립싱크를 해야 했단다. 그것도 이주일 동안 4번의 무대에서. 지난달 아프리카 케냐에서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던 중 먼지와 피로감 등으로 목에 물혹이 생겼다. 영양탕 등 기피 음식은 물론 도라지·배즙 등 목에 좋다는 것은 다 동원했지만 완쾌되지 않았다. “2집을 선보이는 결전의 날을 코앞에 두고 ‘두고 보자’고 별렀는데…좌절이었죠. 사람들 보기가 괜시리 싫어질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립싱크 자체만으로도 짜증나는데 설상가상으로 “제대로 입도 맞추지 못해 노래 안부른 티가 팍팍 나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며 손사래를 친다. 2집 앨범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앨범 제목 풀이부터 시작한다.“‘Lextasy’는 렉시(Lexy)와 엑스터시(Extasy)의 합성어죠. 마치 마약을 복용하듯 중독성이 느껴지는 음악이에요. 들으면 들을수록 더 강하고 자극적인 느낌이 드실 겁니다.” 이번 앨범의 감상 포인트는 아프리카 사운드. 드럼을 대신해 봉고와 퍼커션 등 타악기를 이용해 강하고 거친 비트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타이틀곡은 ‘눈물씻고 화장하고’.‘애니멀’이란 곡과 함께 생물학적 본능에만 치우치는 남자들을 조소하는 가사로 채워졌다. 가수 싸이가 작사·작곡했다. 또 남성우월주의를 비꼬는 것이냐는 물음에 목소리 톤이 치솟았다.“‘애송이’때도 그렇지만, 제가 쓴 가사도 아니고…전 페미니스트가 아니에요. 게다가 남자에게 별 관심도 없다니까요.”(웃음) 최근 가수 이효리가 아프리카 뮤직 비디오속 그녀의 섹시한 모습을 보고 크게 자극받았다는 얘기도 전했다.“누가 봐도 좋아하실거예요. 그만큼 고생하고 노력해서 만들었으니까요. 이효리씨도 아마 욕심이 나셨을걸요?(웃음)제 뮤직 비디오가 그만큼 좋다는 거니까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오는 13∼14일 세븐·빅마마 등 YG패밀리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땡큐 콘서트’와 27일 싸이와의 조인트 콘서트인 ‘올나잇 부비 콘서트’ 준비에 하루 24시간이 짧다는 그녀. 빠른 시일내에 영화를 통해 연기자로도 팬들 앞에 서고 싶단다. 하지만 여느 가수들처럼 두마리 토끼는 절대 좇지 못할 거라며 미소짓는다. “완벽을 고집하는 제 성격상 영화면 영화, 노래면 노래죠. 하나에만 올인해야 해요. 올 여름엔 노래를 통해 제대로 일 한번 저지르려고요.(웃음)”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김미성기자 492naya@sportsseoul.com
  • [이주일의 어린이책] ‘밀알’처럼 살다간 붕어빵 하나

    ‘붕어빵 한 개’(남은미 그림, 푸른숲 펴냄)는 ‘달님은 알지요’의 중견 동화작가 김향이가 어린 독자들을 위해 허리를 낮춰 참하고 착한 이야기 5편을 묶은 창작동화책이다. 주인공 하나에게 이야기 전체를 끌어가도록 맡겨놓는 흔한 서사구도가 아니라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얼핏 꼬마친구 사랑이가 주인공인 듯하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그 아이 주변의 정겨운 사물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예컨대 책 맨앞에 등장하는 표제작의 주인공은 붕어빵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 붕어빵 한봉지를 안고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달려가다 눈길에 그만 휙 미끄러지고만 사랑이. 그때 떨어뜨린 붕어빵 하나는 어떻게 됐을까.도둑 고양이, 늙은 쥐, 참새, 개미들이 차례차례 싸늘히 식은 붕어빵을 나눠먹으며 스쳐간다. 결국 남은 부스러기는 돌아오는 봄 예쁜 풀꽃들을 키우는 거름이 되고…. 기승전결을 갖춘 판박이 짜임새에 기대지 않고도 물 흐르듯 매끄럽게 흘러가는 이야기의 힘이 아주 신통방통하다.다락에 올라간 사랑이가 수십년째 그곳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와 아빠의 추억이 서린 물건들을 발견하는 ‘다락에서 나온 보물’편에서는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두런두런 서로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렇게 이야기 속 사물들이 의인화된 대목들에서는 마구 팬터지가 샘솟는다. 감칠맛나는 입말체, 리듬감이 살아있는 정제된 문장의 힘 덕분에 감상의 깊이가 한결 더해졌다. 초등저학년.7000원.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최영섭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최영섭 씨

    우리는 분단시대에 살고 있다. 좌로, 우로 한(恨)도 많다. 그래서 목놓아 ‘저편의 너를’ 부르고 그리움으로 손을 뻗는다. 광복 60년이 됐지만 분단의 노래는 여전히 단장(斷腸)의 메아리다. ‘봉선화’(1919년) 이후 한국 가곡 86년사(史)에서 가장 애창된다.‘그리운 금강산.’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을 켜켜이 담아냈다. 시보다 더 아름다운, 소설보다 더 감동으로 승화시킨 악상(樂想)이다.‘통일 주제가’로 ‘민족 가곡’으로 사랑받는다. 들을수록 애틋하고 향수가 있고 경건하다. 옛날이었다. 한 시인이 음악가를 꿈꾸는 중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닌다. 시인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켠다. 시인은 “이봐, 한 수 읊을 테니 적어봐.”라고 했다. 그러곤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라고 소리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닷바람이 불었다. 성질 급한 학생은 “다음은요?”라고 했다. 시인은 다시 술을 마시며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라고 했다. 학생은 또다시 “다음은요?”라고 보챘다. 시인은 또 목구멍으로 술을 꼴깍 넘기며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학생은 이튿날 가곡을 만들어 화답했다. 1954년 어느 날이었다.25살의 젊은 청년이 처녀가곡집을 냈다. 그러자 서울신문 문화면 전체에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이 게재됐다.‘악보 출판치고는 사상 최악이다. 그러나 이 청년의 장래를 정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의 시인은 2003년 작고한 조병화씨. 해방 직후 경복중학에 다니는 최영섭 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닐며 ‘추억’이라는 시를 발표했을 때의 상황이다. 두번째는 청년 최영섭이 가곡집을 내자 당시 작곡가 나운영씨가 주저없이 나서 역설적으로 호평했던 일화다. 최영섭(77)씨.‘한국의 슈베르트’라고 한다. 샘솟듯 넘쳐 흐르는 악상과 특유의 직감으로 무려 200여곡의 가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중 ‘누구의 주재런가∼’로 시작되는 ‘그리운 금강산’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민족의 송가(頌歌)로 널리 애창된다. 이 노래가 탄생된 지 올해로 45년째.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최씨를 만났다.“희수(喜壽)가 됐으면 다 평화로워야 하는데….”라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지난 4월에 막내아들을 잃었다.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4년 동안 온 집안 식구가 백방으로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가슴에 못질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 최씨는 현재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 한 주택가에서 반지하 월세방을 얻어 혼자 쓸쓸히 지내고 있다. 원래 세 아들을 낳은 본처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참 동안 혼자 살다가 모 방송국 PD의 중매로 둘째 부인을 만나 살았지만 1997년 뜻하지 않은 이유로 헤어졌다. 평생 살려고 약속했던 부인에게 재산을 다 주고 났더니 빈털터리가 됐단다. 그룹 ‘들국화’ 멤버였던 큰아들이 경기도 과천 집에서 함께 살자고 원하지만 집에 쌓인 책이며 음악자료들이 정들어 아직은 혼자 지내기로 했다. “평생 가곡을 만들면서 살아왔어요. 올해가 광복 60년이고 분단 60년이 됩니다.‘그리운 금강산’을 만들 때는 곧 통일도 될 것 같았는데. 솔직히 더 이상 ‘그리운 금강산’이 불려져서는 안됩니다. 세월이 지난 뒤 ‘아, 옛날 그런 노래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면 족하지요.” ‘올해의 의미’에 대해 오는 11월11일이 제1회 가곡의 날로 선포된 점을 강조했다. 최씨 등 가곡인들의 오랜 노력 끝에 얻어진 결실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9월8일부터 매주 목요일 가곡 연주회를 갖는다. 아울러 전야제 행사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옛 중앙기상대 건물 바로 옆 홍난파 선생이 살던 집에서 ‘봉선화의 집’이라는 현판식을 갖는다. 최씨는 “난파 선생이 돌아가시기 1∼2년 전 협박에 못이겨 일본군가를 편곡했는지는 모르지만 생전에 민족 가곡 100여개를 작곡할 만큼 우리들에게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준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냐.”고 강조했다.‘봉선화’를 작곡하는 등 평생의 95%는 우리 가곡과 동요에 헌신하고 독립을 간절히 원하며 살았는데 왜 그가 친일파로 매도돼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운 금강산’의 탄생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1961년 8월이었다.KBS(남산 시절)에서 ‘남산에 올라’‘한강의 노래’‘낙동강 칠백리’‘백두산은 솟아있다’ 등 정열적인 작곡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길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다루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하는 거요.”라고 불쑥 말했다. 아차, 무릎을 탁 친 최씨는 그 길로 시인 한상억(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숨가쁜 목소리로 “한 선생님, 여태껏 금강산이 없습니다.”고 했다. 한씨는 “허허, 나는 이미 다 써놓고 있었네. 안그래도 줄 참이었지.”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새벽 2시까지 ‘콩나물’과 씨름했다. 다른 곡 같으면 며칠이 걸렸을 법한데 ‘그리운 금강산’은 4∼5시간 만에 완성했던 것.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곧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인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6·25전쟁 발발 12주년 때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아름다운 내강산’이란 주제로 KBS교향악단·합창단 등의 협연으로 ‘최영섭 가곡특집’을 발표했다. 이때 받은 30만원(당시 집 한채 값)으로 둘째 아들의 병원비를 충당했다. 생애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리운 금강산’은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 50여명의 CD에 담겨 있다. 조수미를 비롯해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소프라노 홍혜경, 그리고 세계적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월드(My World)’에도 ‘그리운 금강산’이 포함돼 국내외에서 애창된다. 최씨는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여섯살 때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다. 또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뱃노래’에 매료됐다. 초등3학년 때 호르겔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천부적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다. 인천중학 재학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웠다. 서울 경복중학으로 전학한 후 이화여대의 임동혁 교수한테 작곡수업을 받았다.49년 경복중학 6년(당시 6년제)때 첫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서울대 음대 시절에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올해 김성태 선생한테 세배를 갔더니 세뱃돈 3만원을 주더군요. 그분은 96세의 나이에도 동요를 작곡하고 있어요. 여전히 배울 점이 많아요.” 최씨는 지금까지 가곡 외에 편곡 1600여곡, 기악곡 40여곡을 만들었다. 미발표된 것도 수십곡에 이른다. 재산은 하나도 없지만 가득 쌓인 문학책과 음악자료들을 볼 때마다 남부럽지 않게 여긴다. 혼자 맥주 마시며 책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올 가을에 발표될 신곡 20곡을 기대해 달라며 식지 않은 창작열을 과시했다. 오래전부터 ‘고운산’이란 필명으로 작사도 한다. 건강유지 방법을 물으니 “지하철이 곧 헬스클럽이다. 음악이 있어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며 웃었다. 생활비는 저작권료로 받는 월 200만∼300만원으로 충당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9년 강화 출생 ▲49년 경복고 졸업, 제1회 작곡 발표회, 임동혁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54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재학시절 김성태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원 석사 ▲61년 ‘그리운 금강산’ 작곡 ▲62년 6·25 12주년때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최영섭 특집 가곡 발표회’ 개최. 이후 작곡발표회 5회. ▲76년 드라마 주제가 ‘아, 이조 오백년’ 작곡 ▲95년 광복50주년 기념교성곡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전 24장 발표. ▲가곡 ‘모란이 피기까지’‘추억’‘망향’ 등 200여곡 작곡. ▲인천여중고·인천여상고·이화여고·한양대·상명여대·세종대 등에 출강. ▲현재 작곡가회 부회장, 한국예술가곡진흥회 회장. ■ 상훈 인천시문화상(59년), 경기도문화상(61년),MBC방송대상(87년), 대한민국 방송대상(92년),MBC가곡 공로대상(94년), 한국음악상(96년), 세종문화상(98년), 서울시문화상(2001년)
  • [이주일의 어린이책] 사막 할아버지의 선물/리처드 앨버트 글

    어떻게 해야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사막 할아버지의 선물’(리처드 앨버트 글, 실비아 롱 그림, 김원중 옮김, 비룡소 펴냄)은 그 정답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귀띔해주는 그림동화이다. 한적한 사막 마을에서 외롭게 지내는 알레한드로 할아버지. 우물, 풍차, 당나귀 한 마리가 친구의 전부인 할아버지 곁으로 어느날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사막에서 나고 자란 영양땅다람쥐. 다람쥐가 밭이랑에 올라 맛있게 물을 먹고 간 다음부터 할아버지의 머릿속은 온통 ‘사막 친구들을 좀더 많이 찾아오게 하는 방법이 뭘까?’하는 고민뿐이다. 그런데 애써 새 우물까지 팠는데도 동물친구들의 발길은 더 뜸해지니 어찌된 영문일까? 고민고민 끝에 동물들이 인기척을 경계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할아버지. 다시 멀찍이 떨어진 수풀 속에 물웅덩이를 팠더니 아니나 다를까, 찾아오는 친구들이 줄을 선다. 등장인물 하나만으로 주제에 접근해가는 화법이 간명하다. 덕분에 이야기를 흡수하기가 수월할 듯하다.6세 이상.8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홍인순 글

    우리 창작 그림동화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홍인순 글, 이혜리 그림, 보림 펴냄)은 아이들의 잠든 상상세계를 살살 흔들어 깨운다. 펜 그림이 앙증맞은 책의 주인공은 혼자 꿈꿔오던 세상으로 혼자 힘으로 길을 나선다. 주인공의 이름은 ‘강’. 소라 껍데기처럼 생긴 물건(베란다에 놓인 침낭) 안으로 들어가 애벌레 모양으로 변한 강이는 갖가지 괴물들 사이를 뚫고 모험을 감행한다. 방귀불을 내뿜는 괴물, 껍질을 벗기려는 괴물,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괴물을 용감하게 따돌리는 과정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 맨끝장에 작은 반전도 놓였다.“강아, 늦겠다. 얼른 일어나야지.”하는 글귀는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강이의 꿈이었음을 말해준다. 꿈 세계를 빌려 어린이들의 자의식 성장과정을 은유했다. 방귀불 괴물은 아빠, 껍질 벗기는 괴물은 엄마란 사실을 살짝 귀띔해주는 것도 오히려 책의 메시지를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될 듯. 가족, 사회 속에서의 ‘나’의 위치와 의미를 깨닫게도 한다.5∼8세.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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