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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노풍 ‘眞風’ 되려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지난 27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16부작의 드라마’를 마치고 끝났다.드라마의 주연은노풍(盧風)을 몰고 온 노무현(盧武鉉) 후보였다.지난 3월9일 한국에서 제주도 경선을 시작으로 모든 후보가 바람(風)을 일으키겠다고 호언 장담했으나,노풍 앞에 다른 후보들의바람은 역시 ‘NO풍’밖에 되지 못했다. 노 후보 이외에도경선에 출마,바람을 일으키겠다던 후보들은 6명이나 있었으나,정동영(鄭東泳) 후보를 제외한 5명의 후보는 중도 탈락,끝까지 조연 역할도 제대로 못했다.드라마 대미에 관객들이주연에게 보내는 찬사가 보기 싫어 일부 조연은 아예 마지막 무대에 참석도 하지 않았다. 한국 정치사에 체육관에서 실시된 정치 드라마는 과거에도있었다. 그러나 11년전 장충체육관에서 신군부 대통령을 선출하던 때와는 드라마의 성격도,국민적 기대도 다르다.선거인단이란 비슷한 용어를 사용,주연의 무대를 빛내려 했지만그때와는 선거인단의 질도 다르다. 물론 다른 점은 11년 전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무대였고 이번은 본 선거에 나갈 당의 후보를 선출하는 무대로 아직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노풍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시작된다.지금까지는 본 무대에 나가기 위한 연습장이었다.그러나 노풍이 워낙 거세게 불어 본 무대에 나갈 주연이 쉽게 결정된 것뿐이다.본 무대에는 관객이나 무대 장치도 큰차이가 있다.더구나 본 무대에는 또 다른 연습무대에서 주연으로 뽑힌 후보가 등장해 열띤 경연을 벌이게 된다.여기서 탈락하면 조연은 고사하고 아예 정치무대에서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혈투와 같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초기의 예상과 달리 노무현 후보는16개지역 경선과 인터넷 투표에서 72.2%를 획득함으로써 노풍의 실체를 확인하고 당당하게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다. 한국 정당정치 사상 처음 실시된 민주당의 국민참여 경선은 국민의 정치관심을 유도하고 공천권을 당원과 국민에게준,정당 민주화를 위한 가히 역사적인 변화이다.특히 노 후보의 탄생은 기성 정치권에 식상한 청·장년 세대의 변화욕구와 새로운 세대의 등장 욕구의 표출로 볼 수 있기 때문에앞으로 정치권의 많은 변화가 예고된다. 그러나 노풍이 허풍이 되지 않기 위해선 노풍의 실체를 보여 주어야 한다.바람은 감지되나 노풍이 어느 쪽으로 갈지유권자들은 확신이 아직 없다.당내 경선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본선 경쟁에서 노풍이 허풍이 아닌 진풍(眞風)임을유권자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우선 노 후보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한다.부산·경남(PK) 지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할 경우 재신임도 묻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노 후보의 약속을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노 후보는 최근 국민적 관심사인 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의혹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양김 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에게 노 후보가 DJ·YS와의 관계를 어떻게정립할 것인지도 관심사다.특히 DJ는 노 후보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국민들의 정서와는 차이가있다. 이념 문제,남북관계도 노 후보는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개혁과 통합’으로 내세운 노 후보가 이제 본격적인 검증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는 12월 대선정치 드라마의주연이 될지의 여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절차가 놓여 있다.노풍이 진풍일지 또는 허풍이 될지 여부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드라마에서 결정될 것이다. 김영래 아주대 교수 전 한국정치학회장
  • 광주국제영상축제 7일부터

    ◇세계 10여개국 130여편의 장·단편을 선보이는 ‘2001광주국제영상축제’가 7일부터 14일까지 광주광역시 충장로일대 4개 극장을 무대로 펼쳐진다. 개·폐막작은 프랑스 신인감독 로랑 캉테의 ‘시간의 사용’과 한국영화 ‘이것이 법이다’.‘시간의 사용’은 가족들에게 실직 사실을 숨기고 번민하는 중년 가장을 그린사회성 짙은 휴먼드라마이며,김민종 임원희 신은경 등이주연한 액션영화 ‘이것이 법이다’는 오는 21일 일반극장에서 개봉된다.영화제 홈페이지 www.giff.co.kr. ◇CJ엔터테인먼트와 멀티플렉스 극장 CGV가 독립영화 진흥을 위해 마련한 ‘CJ-CGV 영화기금’이 디지털 장편영화공모에서 김지현 감독의 ‘뽀삐’를 첫번째 지원작으로 선정해 2,500만원을 지원한다.김 감독은 디지털 독립영화를주로 찍어왔으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이진숙 프로듀서가 제작을 맡아 내년 1월 크랭크인 된다.
  • 대우車 희망싣고 다시 달린다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고래고래 지르는 고함소리,여기저기서 터지는너털웃음들…. 4일 아침 8시30분,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지난달 8일 부도 이후 가동이 중단됐던 부평공장은 정부와 채권단의 자금지원 재개로 기계음이 다시 힘차게 울려퍼졌다. 25일 만에 출근한 3,500여 직원들의 얼굴엔 생기와 희망섞인 기대감들이 배어 있었다.공장을 짓눌렀던 침울함과 절망감은 찾기 어려웠다. 구사(救社)를 위해 노사가 힘차게 재시동을 걸었음이 곳곳에서 느껴졌다.김일섭(金一燮)노조위원장 등 노조 간부들은 이날 일찌감치출근해 생산라인을 돌았다.노조원들에게 작업얘기를 건네며 독려하는모습은 노조간부라기보다 차라리 경영자의 모습이었다. 오전 9시 중형승용차 레간자·매그너스 생산라인(승용2공장).작업복차림의 직원들이 지난 3일 협력업체로부터 미리 공급받은 부품을 점검하며 차체조립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소형 승용차 라노스 생산라인(승용1공장)은 오전 9시30분쯤 가동이 잠시 중단됐다.한 협력업체가 부품공급을 조건으로 현금지급을 요구했기 때문.회사측의 간곡한 설득으로 다시 부품이 공급돼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것이 완전하게 정상으로 회복되지는 않았다.자동차 수요급감 등으로 2교대 근무가 1교대로 줄었다.이달중 생산계획량은 1만2,000대 가량(연산 50만대).때문에 이날 실제 공장가동률은 50%를 조금 웃돌았다. 이상철(李相喆)작업팀장은 “공장가동은 노사가 이룬 결실”이라며“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같은 노력이 대우차 매각에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한 생산직 직원은 “봉급보다 직장을 다시 찾았다는 사실만으로 일할 맛이 난다”고 했다. 생산라인에서 만난 조두연(趙斗衍) 노조 대의원은 “어떻든 ‘공장은 정상가동돼야 한다’는 것에 노사가 뜻을 같이했다는 데 의미가크다”면서 “그러나 40대 이후의 나이 든 직원들은 이날 근무가 시작되기 전에 작업장별로 회사 현황과 구조조정 계획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심 불안해 하는 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공장가동으로 협력업체와 대리점,주변 상가 등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변속기 제조업체인 D기계공업의 유모씨는 “공장이 가동된 만큼 밀린 부품공급을 차질없이 해나가면 어음도 결제받게 될 것”이라며 기대에 차있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주연(李周淵·40)사장은 “공장가동으로 중단됐던 판촉활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면서 “하루빨리 고객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공장 정문앞에서 식당을 하는 조성분(趙成粉·44·여)씨는 “하루평균 70만원을 웃돌던 매상이 공장가동 중단 이후에는 거의 제로로 떨어졌다”면서 “장사는 둘째치고,4,000원짜리 음식을 먹고 카드를 내미는 직원들의 생활고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며 공장가동을 반겼다. 한편 대우차는 3,500여명의 명예퇴직 예상자를 포함, 6,900명까지의 대규모 인력감축과 생산량 축소 등을 골자로 한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또 법정관리 개시결정에 따라 임원 95명의 일괄사표를 받았다. 주병철기자 bcjoo@
  • 미술과 음악은 어떻게 소통하나

    피카소는 큐비즘을 내세운 뒤부터 음악을 작품 소재로 다뤘고,호안 미로는 여러 빛깔의 선과 형태로 음악적인 조화를 추구했다.그런가하 면 드뷔시의 피아노곡은 인상파 화가 모네의 몽롱한 그림을 보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트레비 분수에서 영감을 얻어 교향시 ‘로마 의 분수’를 작곡한 레스피기의 작품세계 역시 ‘미술적 음악’의 면 모를 엿보게 한다.미술과 음악은 어떻게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는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이 개관 11주년을 맞아 마련한 ‘미술속의 음악’전(6일∼내년 2월4일)은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주제로 한 기획 전이다. 전시는 크게 ‘봉주르 뒤피’‘마술피리 2001’‘음악을 위하여’등 3부문으로 나뉜다. 금호미술관 2층 전시장에서 열리는 ‘봉주르 뒤피 ’전은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1877∼1953)의 작품을 보여준다.교회 의 오르간을 연주하는 아버지 곁에서 성가대 모습을 스케치하며 유년 시절을 보낸 뒤피는 어른이 돼서도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음악적 열정이 남달랐다.그런만큼 그의 작품엔음악적 영감이 풍부한 색감과 간결한 필치에 담겨 있다.이번 전시에는 ‘니 스의 불꽃과 쥐테프롬나드 카지노’‘음악가’등 음악을 테마로 한 유화와 드로잉작품 20점이 소개된다. 1층 전시장에서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각색한 ‘마술피리 2001’이 관람객을 맞는다.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해 전시공간에서의 ‘공연’ 형태로 보여준다.‘마 술피리’는 1791년 초연된 이래 200여년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옷이 입혀졌다.연출을 맡은 무대의상가 정경희(42)는 이 ‘ 마술피리’를 어떻게 요리할까.눈길을 끄는 것은 타미노(왕자), 파미 나(밤의 여왕의 딸)등 주요 인물들을 제치고 천사소년이나 무사와 같 은 엑스트라급 인물들이 중요 배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지하 1층에서 열리는 ‘음악을 위하여’에는 주명덕 황규태 고명근 이호철 이주연 송경혜 장화진 등 7명의 국내작가들이 참여한다.이들 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가의 작품세계를 이미지합성 사진,회화,드 로잉,설치작업 등을 통해 보여준다.눈물방울이 흐르는 듯한 선율의 쇼팽 피아노협주곡 분위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송경혜,말러의 ‘대 지의 노래’를 레코드판 설치작업으로 들려주는 장화진,스트라빈스키 의 불협화음 세계를 아크릴 상자속의 피아노 형태로 이미지화한 이호 철 등이 눈길을 끄는 작가들이다.(02)720-5114 김종면기자
  • [기고] 전자정부 서둘러라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전 세계가 이-비즈니스(e-Business)열풍에 휩싸여 있다.이러한 정보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새로운 개념이나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업무방식과 사고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동인(動因)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미국,영국 등을 비롯한 선진 각국의 공공부분에서도디지털 민주주의,전자정부로의 변화를 빠르게 추구하고 있다.인터넷기술은 정부 운영방식을 새로운 형태로 혁신시키는 핵심요인으로서작용하고 있다.전자정부란 대민 행정측면,내부 행정처리 및 정책결정의 측면,조달의 세 측면이 전자적으로 상호 유기적인 작용을 하면서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공공재화나 서비스를 상호간에 제공하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첫째,대민 행정측면에서는 대민행정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 시간과공간적 제약이 없어질 것이다. 가령 공무원이나 행정기관의 근무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없이 24시간,365일 언제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서류 중심에서 정보에 기초한 전자화로 정보의 사유화 및 단절로부터 부처간의 협업과 지식관리가 가능해지며 단순한 거래처리,단기적 전술적 측면 중심의 업무처리 방식에서 분업적이며 장기적 전략적 업무처리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 또 자원중심적인 업무처리 방식으로부터 셀프서비스 형태의 업무처리 방식으로 전환되어 국가의 전략과 목표 및 실행계획의 설정 및 추세, 예외관리가 충실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외부 공급자 또는 협력사를 통한 재화나 서비스의 조달측면으로는 다양한 공급자 또는 협력사들과 전자적으로 연결되고 인터넷을통한 납기,품질,공급능력,가격,위험수준 등을 고려한 보다 광범위한전략적 공급자의 선택이 가능하며,인터넷이라는 열린 망을 통해 참가자들이 동시에 업무를 수행하거나 정보를 공유하여 비용이나 시간을줄일 수 있어 효율성,생산성 회계의 책임성 및 투명성을 제고할 수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세가지 측면이 전체적으로 통합되어 정부 뿐만 아니라기업,시민,시민단체,지역사회,학교,병원 등 모든 주체가 하나의 가상공간 속에서 융합되는 전자국가로 발전되어 갈 것이다. 이를 위한법적, 제도적,기반시설 등 갖추어야 할 부분이 산적하여있으나 성공적인 전자정부로 가는 길은 각종 프로세스나 사고의 틀을고객 중심적으로 전환하여 근본적인 혁신,창조성, 그리고 신속성 및전자적으로 모든 것이 처리 가능하도록 인프라 스트럭처를 통합하는데 있다. 우리나라의 전자정부 구현사업은 1995년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추진되어왔다.그러나 선택사양적 사업화 추진,강력한 사령탑 부재,부처할거주의,느슨한 성과 평가 및 행정개혁과 유리된 전자정부 구현사업이 추진되는데 인터넷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전자정부의 신속한 추진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많은 어려움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자정부의 구현은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한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이다.인터넷 기반의 정보기술(IT)산업에서는 우리가 경쟁 우위에 있음은 틀림없다.이러한 여세를 몰아 낙후된 공공분야에 인터넷 기반의 정보기술을 도입하여 전자민주주의를실현하면 선진국에 성큼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공공분야에도인터넷 기반의 정보기술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공공분야의후진성을 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주연 한국오라클 이사·명지대 객원교수
  • MBC 이주연 아나운서 비난 빗발

    MBC ‘피자의 아침’(월∼토 오전6시30분) 인터넷 게시판에 지난 12일 진행자인 이주연 아나운서의 발언에 대한 비난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이 아나운서가 지난 14일 게시판을 통해 사과를 했음에도비난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아나운서는 지난 12일 경기 의정부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던 환자가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의사를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을 보도하면서‘정말 몸이 많이 안 좋으신 분들은 저런 심정이 들거예요’라고 말했다.이에 대해 의료인들을 중심으로 ‘범인을 동조하는 발언을 할수 있느냐’‘방송을 그만둬라’‘어떻게 범인과 국민들이 같은 심정이냐’는 등의 반발이 일었다.이에 따라 이 아나운서는 14일 ‘…실수였다.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죄송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시판에 올렸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MBC의 공식사과를 요구하고 있다.‘피자의 아침’의 김승한 국장은“이주연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이번주 토요일 방송분에서 공식적인사과나 해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 관급공사 부실시공 묵인…수뢰공무원등 6명 구속

    각종 관급공사에서 부실공사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공무원과 감리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4부(부장검사 曺大煥)는 21일 정보통신부 조달사무소 건축주사 이범선(39),서울 지하철건설본부 토목주사 김윤중(46·전 금천구청 하수과),관악구청 도시관리과 토목서기 한동주(35·전 금천구청 토목과),서울 대영중학교 서무과 직원 홍순조씨(57·전 서울 남부교육청) 등 4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또 관급공사에 감리원으로 참여해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S설계사무소 이주연(44),J건축사무소 이의복씨(42) 등 건축기사 2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고D건설 대표 안모(58),J건설 대표 김모씨(59) 등 2명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범선씨는 지난 97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청주 우편집중국 공사 때 D건설 대표 안씨로부터 부실 공정과 설계를 묵인해 주는 대가로 10차례에 걸쳐 1,25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
  • 새 영화-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이 과연 ‘쉬리’에 맞먹는 흥행을 기록할 수있을까. ‘건축…’이 오는 5월1일 ‘쉬리’의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 대장정에 오른다. 이 영화는 ‘쉬리’를 만든 삼성영상사업단이 투자한 영화.‘쉬리’가 남북관계를 소재로 삼았다면 이 영화는 과거의 한일 관계에 초점을 맞춘 가상역사 미스터리물이다. 96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서 당선작으로 뽑힌 이 작품은 탄탄한내러티브와 구성이 돋보인다.많은 컴퓨터그래픽을 활용,볼거리가 풍부하다. 제작비는 약 20여억원.‘김의 전쟁’의 시나리오를 쓰고 ‘피아노맨’을 찍은 유상욱 감독의 세번째작품이며 ‘접속’의 김태우와 ‘창’의 신은경이주연으로 나온다. 이 영화는 날개 오감도 등을 쓴 천재시인 이상의 실제생활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특히 그가 총독부 건축설계사였다는점에 착안,1930년 2년동안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난다는 가상상황을 설정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박정희라는 실명인물이나 이상의 비밀을추적하는 중앙정보부 요원,안기부 해킹,연쇄살인 사건 등 다양한 코드를 집어 넣어 영화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거대한 역사의 음모가 감춰져 있음을알아낸 젊은이들이 이상의 시 속에 그해결의 열쇠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목숨을 건 모험에 나선다.역사적 음모가 집약된 거대한 지하공간인 ‘육면각체의 방’은 직경 15m 높이 12m의 세트로 ‘창조’해냈다.특수촬영을 위해 미니어처 5개가 실제 세트의 20% 크기로 제작됐다.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37억원짜리 디지털 시네시스템을 도입,SFX의 효과를 100%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박재범기자
  • 서총련 간부 12명/보안법 위반 구속

    서울경찰청은 지난 28일 세종대에서 「한총련」 대변인 겸 「서총련」 의장 박병언씨(23·연세대 총학생회장)와 함께 붙잡은 서총련 정책위원장 서다윗씨(24·연세대 사회학과 졸)등 서총련 간부 1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30일 구속했다. 또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씨의 수행 연락책 지덕현씨(24·연세대 화학 졸)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구속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다윗 ▲송민호(23·서총련 정책위 부위원장·경희대 경영대학원) ▲신성필(24·〃 조직위원장·서강대 신방 4년) ▲전민아(24·여·〃 문화국장·덕성여대 수학 졸) ▲김우현(24·〃 학자추 정책위원장·경기대 경영 졸) ▲박형로(24·여·〃 노학연대 사업국장·단국대 특수교육 4년) ▲오동욱(25·〃 투쟁국장 대행·연세대 경제 졸) ▲이성숙(24·여·덕성여대 식품영양졸) ▲이주연(24·여·덕성여대 국문 졸) ▲오미정(23·여·연세대 천문 졸) ▲조선아(24·여·경희대 생물 4년) ▲한현수(25·서총련 전문대사업국장·서일전문대 졸)
  • 12월초 대기업 공채… 유의사항을 알아보면

    ◎취업시즌/면접땐 단정한 옷차림을/남성­짙은 감색·회색 정장에 사선무늬 타이 무난/여성­스카프 등 액세서리 이용하면 깔끔한 인상 본격적인 입사시험철이 다가왔다.대기업들은 오는 12월 첫째주와 둘째주 일제히 필기시험과 함께 면접시험을 치르지만 10월들어 각 대학의 학생과 취업게시판에 나붙기 시작하는 중소기업등의 사원모집 공고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입사시험에서 면접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면접 시험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첫인상을 좌우하는것은 옷차림이다. 면접때 옷차림은 지원하는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신뢰감을 줄 수있고 자신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옷차림이어야 한다.즉 단정하고 깔끔하면서도 성품이 좋아보이게 하는 「튀지않는」차림이 유리하다고 각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은 말한다. 면접때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40∼50대 회사 중역들이므로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성실하고 차분한 느낌의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것이다. 자신의 개성을 너무 강조하는 강렬한 인상의 옷차림은 오히려 역효과를 줄 수 있으므로 피하는것이 좋다. 남성복의 경우 슈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일반 직장의 경우 짙은 감색이나 진회색 싱글슈트가 무난하다.넥타이도 원색과 요란한 색상을 피하고 물방울 무늬나 반복적인 사선무늬를 택한다.최근 유행하는 밝은색의 가로무늬 넥타이의 경우 이제는 「튀지않는」편에 속하므로 스스로 어두운 인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밝은 인상심기에 활용해 볼 수도 있다. 또 패션감각이 필요한 회사에 지원했다면 어느정도 대담한 푸른색이나 연노랑 분홍등 원색의 셔츠나 화려한 문양의 넥타이를 매도 무방하다. 「모두스비벤디」디자이너 이주연씨는 『넥타이의 경우 바탕이나 문양중 어느 한쪽이 양복 색상과 같은 계통의 색이 들어있으면서 다른색상이 섞인 것이 어울린다』고 조언한다. 여성사원은 특히 면접때 외모가 중시되는것이 현실.자신감있는 면접태도와 함께 깔끔하면서 발랄한 느낌을 주는 옷차림이 면접관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가장 보편적인 차림새는 재킷과 스커트에 블라우스 조끼류를 받쳐입는것.특히 재킷은 요란하지 않게 남성들의 양복처럼 깃이 있는 테일러드 칼라 스타일이 좋으며 치마는 무릎에서 약간 올라간 정도의 길이가 적당하다.요즘들어서는 단정한 바지차림도 무난하다.또 밋밋한 블라우스만 입기 보다는 그위에 스카프등 액세서리를 이용해도 밝고 활동적인 인상을 줄 수있다.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은 어깨패드가 너무 강조되거나 깃이 너무 넓은 재킷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은 밝고 따뜻한 계통의 색상을 선택해 볼륨감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것이 좋다.깃이 없는 재킷은 작은 키를,더블여밈 재킷은 왜소한 몸을 다소 보완해 줄 수있다.
  • 남성 추동복 낭만적 분위기 복고풍 유행

    ◎좁은 어깨·가는 허리의 긴 상의 인기/카브라 사라지고 일자바지 바람 불듯 올 가을·겨울 남성들은 한번쯤 과감하게 튀는 낭만적인 분위기의 옷차림으로 변신을 꾀해도 좋을 것 같다. 정형화된 틀에서 탈피,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온 남성 캐주얼이 최근들어 더욱 자유분방하고 멋스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또 정장 역시 영국 전원풍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도입되면서 남성들의 패션 변신을 가능케 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같은 남성복의 「연성화」 경향에 따라 정장과 캐주얼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 같다. 남성복 정장은 어깨가 좁고 허리가 쏙 들어가 몸에 꼭 맞는 복고적인 느낌의 재킷에 어깨패드가 없거나 얇은 언컨스트럭트 스타일이 주종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재킷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도 복고풍 유행의 반영. 몇년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스리 버튼 양복은 이젠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올해의 경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단추가 4∼5개 달린 코트같은 느낌의 상의도 선뵈고 있다. 바지는 밑단을 접는카브라가 사라지고 폭 좁은 일자가 돌아올 것으로 전망된다.여기에 재킷과 바지만의 투피스 차림보다는 조끼까지 갖춰입는 정식 스리피스로 고전풍의 정중한 느낌은 더욱 강해질 것 같다. 색상은 지난 봄·여름 시즌에 이어 자연색 강세가 계속될 전망.특히 붉은 기가 감도는 어두운 회색과 갈색 모래색 등이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 가을 유행 소재로는 까실까실한 질감의 홈스펀이나 트위드,긴 털의 알파카 등이 꼽히고 있으며 벨벳·모피 등을 이용해 부분적으로 포인트를 주는 스타일도 눈에 띈다. 넥타이와 함께 남성복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단품은 셔츠.셔츠를 어떻게 갖춰 입느냐에 따라 전체적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모두스비벤디 디자이너 이주연씨는 『정장 수트를 입을때 반드시 하얀색 드레스 셔츠만 고집하지 말라』면서 『자신의 얼굴색과 수트색에 어울리는 색상의 차이나 칼라,라운드 칼라 셔츠나 스웨터 등으로 개성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멋쟁이가 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 모­김 북경 비밀회담(모스크바 새 증언:7)

    ◎모택동,김일성에 남침 세부작전 일일이 지도/모택동/“평화통일 불가능… 무력침공 밖에 없다”/미 개입땐 중국 지원병력 파병 재확인 □모 충고사항 장병에 구체적 임무 부여 모든 작전 신속하게 전개 대도시는 우회공격 할 것 적의 군사력 파괴에 주력 스탈린이 모택동앞으로 보낸 전문은 스탈린·김일성 두사람이 무력남침을 결행키로 합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소련군총참모부 제8국·전문번호N8600·1950년 5월14일). 『모택동 동지앞.조선동지들과의 회담에서 필리포프 동지와 그의 친구들은 국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조선인들의 통일제의에 동의했음.이와 함께 최종 결정은 중국과 조선동지들이 공동으로 내려야 한다는 데도 합의했음.중국동지들이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최종결정은 새로운 논의가 있을 때까지 미루어야 함.조선동지들이 이번 회담의 상세한 내용을 귀하에게 통보할 것임.­필리포프』 ○스팔린 가명 사용 스탈린은 김일성과 남침계획을 확정지은 뒤 이같이 모택동에게 뒤늦게 통보,그의 체면을 살려 주는 체하면서 개전의공범으로 만들려고 했다.재미있는 것은 남침결정 사실을 문서화한 이 전문에서부터 스탈린은 「필리포프」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이후 그는 필리포프외에 「환시」라는 가명도 사용했다. 이보다 이틀전인 5월12일 평양의 슈티코프대사는 본부에 다음과 같은 보고전문을 띄웠다.『5월12일 김일성의 요청으로 그와 박헌영을 면담.김일성은 북경주재 대사 이주연이 김일성의 중국방문을 주재로 모택동·주은래를 만났다고 했음.주은래는 이 방문을 공식방문으로 하자고 주장.반면 모택동은 언제 북조선이 통일작전을 개시할 계획이냐고 묻고는 답도 기다리지 않고,군사작전을 곧바로 시작할 계획이라면 비공식 방문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함. 모택동은 또 평화통일은 불가능하며 무력에 의한 통일밖에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함.미국의 개입가능성에 대해서도 모택동은 미국이 그런 작은 나라에서 3차세계대전을 시작할 리 없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함.김일성은 이에 덧붙여 이주연대사는 자기와 모택동간의 회담을 논의할 권한이없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그래서 그를 소환해 견책한 뒤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음.5월10일 이주연대사는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 모택동을 만나 정식으로 김일성의 접견승인을 받았다고 함.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5월13일 아침 출발예정임.김일성은 그때까지 자신이 타고 갈 비행기를 준비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음.이에 대해 본인은 비행기는 이미 준비돼 있다고 답했음.김일성은 모택동과의 회담문제를 당중앙위에서 토의하지 않고 김책(정치국원)과만 의논했다고 함』 여기서 엿볼 수 있듯이 김일성은 모택동과의 회담을 추진하면서 스탈린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크게 신경을 썼다.이주연 대사를 소환해 견책한 것도 스탈린을 의식한 쇼였다.모택동과의 회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모택동과의 회담에서 다룰 의제를 다음과 같이 슈티코프 대사에게 통보했다.다음은 슈티코프가 보낸 보고전문의 계속.『김일성은 모택동과 다음의 문제들을 토의할 계획이라고 함. 1,무력통일 의향을 알리고 모스크바 회담 결과를 통보. 2,조만간 북조선과 중국간 무역협정체결과 통일 후 양국간 우호조약체결을 희망.3,중국공산당과 북조선노동당 중앙위간 교류문제.4,북조선 수력발전소 건설,중국거주 조선인문제등 상호관심사 논의』 이와 함께 김일성은 중국거주 조선인군 부대가 갖고 있는 일본제 및 미제 무기에 쓸 탄약공급을 중국측에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총참모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 김일성은 이 물건들은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전군이 사용할 3벌 분량의 탄약이 이미 비축돼 있다는 것이었다.김일성은 모스크바 회담에서 이미 필요한 원조는 다 받기로 합의됐기 대문에 실제로 모택동으로부터 원조받을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5월13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예정대로 북경으로 날아갔다.도착 당일 저녁늦게 모택동과의 1차회담이 이루어졌다.그리고 주은래는 로신 북경주재 소련대사를 불러 회담결과를 설명했고 로신대사는 이를 곧바로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다음은 로신대사가 보낸 5월13일자 전문. 『1,김일성과 박헌영이 중국에 도착했음.2,조선지도자들은 모택동과의 회담에서 상황이 바뀌어 북조선이 작전을 시작할 수 있다는 필리포프 동지의 지시사항을 설명했음.이 문제는 조선지도자들과 중국,특히 모택동과 의논해야 된다는 필리포프 동지의 지시도 전달됐음.3,조선지도자들은 이틀간 북경체류예정임.…중략…모택동 동지는 이 문제에 관해 필리포프 동지가 직접 설명해주기를 원함.중국동지들은 신속한 답을 원함』 ○개전땐 승리 보장 이튿날인 5월 14일 로신대사는 스탈린·김일성의 모스크바 회담결과에 대해 본국에서 보낸 전문을 받아 모택동에게 전달했다.그리고 로신 대사는 같은 날 모택동의 반응을 본국으로 타전했다.이 전문내용에 의하면 모택동은 신속한 군사적 방법으로 한국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하며 승리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북한지도부가 내린 현 남북한 정세와 남북한 군사력 균형에 대한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모는 또한 통일 뒤 중소조약과 유사한 우호동맹조약 및 상호원조조약을 북조선과 체결할 것을 북조선지도자들에게 제의했다고 밝혔다.물론 이같은 조약체결은 스탈린동지의 의견을 들은 뒤에 추진할 것임도 덧붙였다. 5월15일 2차회담에서 모택동은 김일성·박헌영과 무력남침에 대해 상세한 입장교환을 했다.회담 뒤 로신대사는 양측(주은래·박헌영)으로부터 별도 브리핑을 통해 회담결과를 전해 들었다.회담결과의 대한 양측의 설명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다음 사항은 양측 브리핑내용이 일치한다.김일성이 먼저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합의한 남조선 침공계획을 모에게 설명했다.즉 1단계 준비 및 병력집중배치.2단계 북조선이 수차례 평화통일 공세를 펼칠 것.3단계 남측이 이 평화통일제의를 거부하는 즉시 군사작전 개시.모택동은 이 3단계 작전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모택동은 작전과 관련,몇가지 중요한 충고를 덧붙였다.우선 모든 병사와 지휘관 개개인에게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할 것.작전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며 대도시는 우회할 것.대도시 점령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됨.작전의 최우선 목표는 적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데 두어야 함.이미 알려진 대로 후일 김일성은 모택동의 이 「귀중한」 충고를 제대로따르지 않아 작전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3단계 계획」 동의 그 다음 모택동은 일본의 개입가능성에 대해 물었고 김일성은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답했다.다만 미국이 2만∼3만의 일본군을 파병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는다고 김일성은 말했다.하지만 그 경우 북조선군은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기 때문에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김일성은 자신했다. 주은래가 로신 대사에게 브리핑한 내용에 따르면 이 말을 듣고 모택동은 김일성에게 『일본군의 개입은 전쟁을 장기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진짜 개입위험이 큰 쪽은 일본보다 미국이라고 모택동은 말했다.그러나 김일성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미국은 극동에 군사적 개입의사가 없다』고 미의 개입 가능성을 부정했다.『미국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중국에서 물러 났으며 한국에서도 이같이 신중한 입장을 지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후일 전쟁발발 직후인 50년 7월2일에도 주은래는 로신 대사에게 미군의 개입가능성에 대해 같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반면 김일성은 끝내 미국의개입가능성을 과소 평가했다. 박헌영이 로신 대사에게 브리핑한 내용은 주은래의 것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다음은 로신이 본부에 보고한 박헌영의 브리핑부분.『50년 5월16일.박헌영의 발언.모택동은 일본군의 개입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음.미군개입시 중국이 병력을 보내 북조선을 지원하겠음.모택동은 또 소련은 미국과 38도선 분할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전투행위에 참가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했음.반면 중국은 그같은 의무규정에 얽매이지 않아 북조선에 대한 지원을 쉽게 확대할수 있음』 5월15일 저녁 공식일정을 끝낸 김일성 일행을 위해 모택동은 만찬을 베풀었다.만찬시작 전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이렇게 말했다.『모택동 동지와의 회담은 매우 순조로웠다.모동지는 해방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했다.모동지는 모스크바에서 있은 스탈린동지와 본인사이의 합의사항을 모두 지지했다』 이튿날 5월16일 스탈린은 모택동앞으로 전문을 보내 통일 뒤 중국·북한간 우호동맹 및 상호원조조약 체결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우여곡절끝에 김일성·스탈린·모택동 3인간 무력남침에 대한 합의는 이렇게 마무리됐다.이제 남은 것은 공격개시의 택일뿐이었다.
  • 중국의 남침지원(6·25내막/모스크바 새증언:6)

    ◎모택동 “2개 조선인 사단 파병”약속/모­김일성 친서받고 탄약·식량지원 승낙/장교 200명 훈련… 전투력 증강 주문/“장기전은 불리”… 일 개입 대비 당부 김일로부터 김일성의 친서를 전달받은 모택동은 먼저 조선인 사단의 전출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3개 사단중 2개는 현재 목단과 장춘에 주둔하고 있고 1개는 공격작전에 참가중이다.따라서 앞의 2개 사단은 언제든지 조선정부에 돌려줄 수 있다.하지만 나머지 1개는 전투가 끝나야 하기 때문에 1개월 전에는 곤란하다』며 흔쾌히 전출을 승낙했다.이와함께 모는 이 조선사단들이 정규군이 아니라서 군사적인 면에서 볼 때 전투력이 약하다면서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훈련된 장교를 배속시켜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중국군 보낼수도 김일은 또한 조선인 사단이 일본군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중국이 탄약을 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모택동은 『중국에서도 그런 탄약을 생산한다.얼마든지 주겠다』고 답했다.남침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모택동은『군사작전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게 됐다.김일성은 이 점을 감안해 신중하게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고 주문했다.모택동은 이와함께 일본의 개입에 우려를 표시했다.『전쟁은 신속히 끝날 수도 있고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장기전은 귀측에 불리하다.왜냐하면 그럴 경우 일본이 전쟁에 개입해 남조선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근에 소련이 있고 만주에는 우리가 있다.필요하면 귀측을 위해 중국군을 보낼 수 있다.우리는 모두 검다.미국 사람에게는 구별도 잘 안된다』 모택동은 이렇게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밝히는 한편 가까운 시일내에 남침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덧붙였다.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국제정세가 좋지 않다.중국공산당은 장개석군과 싸우기에 바빠서 북조선에 충분한 지원을 해줄 수 없다.그러니 국민당을 완전히 몰아내고 중국이 공산당 기치아래 통일될 때까지 남침을 기다려달라』 ○“개전 보류”요구 이와함께 모택동은 김일성의 북경방문에 관해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고 물었다.모는 또한 인도네시아·미얀마·말레이시아·인도차이나 등지의 공산당 동지들로부터 아시아제국 코민포름를 만들자는 제의를 받았다고 김일에게 말했다.하지만 아직 코민포름 출범은 시기상조라고 모는 말했다.중국내전이 진행중이고 조선에 긴장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코민포름 창설이 자칫 군사동맹체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5월 17일 모택동은 소련대표단에게 김일의 중국방문에 대해 브리핑했다.당시 북경주재 소련대표부의 코발료프대사는 5월 18일 스탈린앞으로 모의 브리핑내용을 보고했다.다음은 코발료프가 보고한 모택동의 발언내용.『북조선에 장교와 무기지원을 약속했음.만주에 1백50만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는데 이들로 2개 사단(사단병력은 1만명)이 구성돼 있다.이중 1개 사단은 전투경험이 있음.만주에서 국민당과 적극적인 전투를 벌였음.이들 2개사단은 북조선의 요청만 있으면 즉각 투입가능함.북조선이 투입요청을 하지 않더라도 이들을 훈련시키고 모든 보급품을 계속 제공하겠음.이외에도 우리는 장교 2백명을 훈련시키고 있음.1개월이내에 이들은 조선에 보낼 예정임.만약 남북조선간 전쟁이 일어날 경우 우리는 앞서 언급한 조선인 사단에 대한 식량·무기지원은 물론 모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 북조선동지들은 조만간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할 것으로 믿고 있음.하지만 대신 일본군이 들어올까봐 두려워하고 있음.일본군의 도움을 얻어 남조선이 북침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임.남조선이 침공해올 경우 대응공격을 하되 남조선군에 일본군이 들어있는지 없는지 주의깊게 살피라고 했음.만약 일본군이 들어있고 적의 전투력이 우세할 경우 영토일부를 내주더라도 귀측의 전투력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했음.그래야 상황이 좋아질 때 적을 격퇴시킬 수 있기 때문임. 우리는 또한 이런 후퇴시에 대비해 당·군·인민들을 이념적으로 교육시킬 것을 북조선측에 권고했음.그런 후퇴가 민주조선의 완전한 패배가 아니라 일시 전략적인 후퇴라는 점을 주지시키라고 했음.설사 미군이 철수하고 일본군이 대신 들어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선동지들이 너무 서둘러 남침을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음.왜냐하면 맥아더장군이 신속하게 일본군 병력과 무기를 남조선에 들여보낼 수 있기 때문임.반면 우리는 주력병력 대부분이 양자강 너머에 가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지원을 북조선에 해줄 수 없음. 따라서 남침은 1950년초,국제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려서 시작하는 게 좋다는 생각임.그 때는 일본군이 침공해와도 중국군 엘리트부대를 보내 일군을 격퇴시킬 수 있음』 ○소련과 긴밀협조 이같이 말한 뒤 모택동은 『이 모든 조치는 모스크바와 협의하에 취해 나가겠다』고 코발료프 대사에게 약속했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남침불가를 통보한 직후인 49년 4월,5월.모택동과 김일성 두사람 사이에는 이미 남침시 병력지원에 대한 깊숙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50년 4월 김일성의 모스크바방문에서 스탈린이 남침을 승인한 점을 상기한다면 모­김 두사람간 남침에 대한 교감은 이보다 무려 1년이나 앞서는 것이다. 전쟁의 해인 50년 1월 1일.날이 밝자마자 스탈린은 평양주재 소련대사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 1통을 보냈다.『임표가 모택동앞으로 다음과 같은전문을 보냈다.중국인민해방군 안에 1만6천명의 조선인 병력이 있는데 순수 조선인 부대도 있다.순수 조선인부대는 4개 대대,27개 중대,9개 소대임.중국군내에 3개의 조선인 지휘부가 있으며 그중 2명은 사단장급이고 5명은 여단장,대대장급 87명이다.중대장 5백78명,소대장1천4백명,분대장 1천9백명이다. 중국군이 중국남부로 이동했을 때 조선인 병력사이에서 조국으로 돌려보내달라며 소요가 있었다고 함.임표는 내전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조선인 병력을 1개 사단 혹은 4∼5개 여단으로 묶어서 모두 조선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임표의 건의에 대한 김일성의 입장을 들어볼 것』 그러나 김일성은 평양주재 중국무역대표부를 통해 보낸 중국정부의 서신을 통해 이 사실을 먼저 알고 1월 9일 슈티코프 대사를 불렀다.다음은 슈티코프 대사가 1월 11일 스탈린 앞으로 보낸 보고전문.『김일성은 중국정부가 내전이 끝나가고 있어 중국군내 조선군 부대를 해산시키고 북조선이 원하면 모두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알려왔다고 했음.김일성은 이들을 모두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했음.김일성은 ⑴이들로 1개 지상군 사단,2개 지상군 연대,그리고 1개 모터사이클 연대,기계화 여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함.⑵김일성은 이 조선인 병력을 50년 4월까지 중국영토에 두고 싶다고 했음.북조선에 이들을 배치하는 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함』 ○회담의제 “통일”로 중국군내 조선인 부대를 놓고 북한·중국간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김일성은 50년 4월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그런데 김일성은 모스크바를 방문하기 전에 모택동에게도 면담신청을 해놓았다.김일성이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던 4월 10일 이그나티예프 평양주재 소련대사대리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크렘린으로 보냈다.김일성과 모택동의 회담에 관한 건이었다.『북경주재 이주연 북한대사가 3월말 모택동을 만났음.이주연대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이 면담에서 김일성과 모택동의 회담문제가 협의됐음.모택동은 회담개최를 받아들이고 회담시기를 금년 4월말이나 5월초로 제의했음.모택동은 회담의제를 조선통일로 못박았음.그리고 김일성이 통일에 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면 비밀방문으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식방문으로 하라고 말했음.이주연대사는 회담시기나 회담의제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현재 병치료중이라는 핑계로 구체적인 답을 피했음.(편집자 주:스탈린의 요청에 따라 김일성은 중국지도자들에게도 모스크바방문을 비밀로 했음)』 김일성이 모스크바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간 뒤인 5월 3일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김과의 회담사실을 통보했다.『조선동지들이 최근 우리를 방문했음.회담결과에 대해서는 조만간 알려주겠음』북경주재 소련대사를 통해 보낸 짤막한 전문통지문이었다.그리고 나서 10일이나 지난 5월 14일 스탈린은 회담결과를 모택동에게 통보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김일성은 남침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스탈린과 모택동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그의 능란한 처세술을 읽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그는 두 사람간의 코뮤니케이션을 가능한한 차단시켜 때로는 서로 경쟁시키고 때로는 협력시키며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켜나간 것이다.반대로 스탈린­모택동 두사람의 이러한관계는 전쟁의 이니셔티브를 김일성으로부터 뺏어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 50년 「만찬장 사건」(모스크바 새 증언:3)

    ◎김일성 “개전 수일내 서울점령” 호언/“옹진반도 공략을” 소대사에 간청/“스탈린 다시 만나게 해달라” 졸라/「남침승인」 늦어지자 모택동 들먹이기도 이주연 북한대사의 중국파송을 위해 마련된 만찬이 50년 1월 17일 저녁 박헌영외교부장의 관저에서 열렸다.김일성,박헌영,김두봉을 비롯한 북한 고위층인사들과 소련대사,공사,중국대사,무역대표부 인사들이 대거 초대됐다.슈티코프대사는 1월 19일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을 통해 김일성의 이날 만찬장에서의 행적을 낱낱이 보고했다.(대통령문서보관소) 식사가 끝난 뒤 김일성은 소련대사관의 이그나테프와 펠리센코 두 참사관에게 다가갔다.그리고는 매우 흥분된 목소리로 이제 중국해방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으니 다음은 남조선동포들을 해방할 차례라고 떠들었다.그리고는 남조선 인민들은 자기를 믿고 따르고 있으며 북조선의 군사원조를 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빨치산만 가지고는 문제를 풀 수 없다.북조선에는 훌륭한 군대가 있다고 주장했다.이렇게 떠들어대던 김일성은 『요즈음 통일문제를 걱정하느라 밤잠을 못잔다.남조선 해방과 조국통일 과업을 더 늦추면 나는 조선인민들의 신임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력통일 늦출 수 없다 그런 뒤 김은 자신의 모스크바방문 때 스탈린이 남침을 먼저 시작하지 말라고 한 사실을 언급하며 『하지만 이승만이 북침공세를 시작하지 않고 따라서 남조선해방통일과업이 자꾸 미뤄지고 있으니 내가 스탈린 동지를 다시 찾아가 남침개시 허락을 받아야겠다』고 말했다.그리고 자신은 공산주의자이고 원칙주의자여서 먼저 전쟁을 시작할 수 없다느니,스탈린 동지의 명령이 자기한테는 법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의 허락이 필요하다느니 하며 횡설수설했다고 슈티코프 대사는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는 또 만약 스탈린동지를 만날수가 없다면 모택동동지가 모스크바방문을 마치는 대로 그를 찾아가 만나겠다고 말했다.그는 모택동이 중국내전만 끝나면 자기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모택동을 들먹이며 협박조에 가까운 말을 늘어놓은 것이다.사정이 여기에 이르자 소련대사관의 두 참사관은 그의말을 가로막고 화제를 바꾸어버렸다. 그 다음 상황을 슈티코프대사는 다음과같이 적고있다.『그러자 김일성은 내게 다가왔다.그리고는 이승만 군대에 대한 공격개시문제를 비롯,한반도상황을 논의하도록 스탈린 동지를 만날수 없겠느냐고 물었다.만약 스탈린을 못 만나면 모택동 동지를 만나겠다고 했다.그리고는 왜 옹진반도 공격을 허락하지 않느냐고 내게 따져물었다.인민군은 3일이면 옹진반도점령을 끝내고 수일내 서울까지 밀고갈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본인은 그에게 스탈린동지를 만나는 것은 문제가 안될 것이라고 답했음.그러나 옹진반도 공격은 안된다고 잘라 말하고는 그를 피해 만찬장을 떠났음』 이날 김일성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는 『스탈린동지를 만나게 해달라』『나는 자나께나 남조선해방만 생각하고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슈티코프 대사는 보고서 끝머리를 이렇게 마쳤다.『만찬이 끝날 즈음 김일성은 취한 상태였음.그의 모든 대화는 매우 흥분된 상태에서 이루어졌음.본인은 그의 이날 대화의 목적이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이고 우리의 입장을 타진해보려는 데 있었다고 생각함』 이 보고서 한통을 통해 우리는 당시 김일성이 얼마나 남침의욕에 가득차 있었는지,그리고 당시 소련지도부의 눈에 비친 그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한눈에 짐작할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49년 여름으로 잠시 거슬러올라가 보자.김일성이 스탈린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기남침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매달렸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있다.김일성,박헌영 두사람은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슈티코프대사를 8월 12일,14일 연이어 만났다.남침 불가피론을 설득키 위한 목적에서였다.다음은 슈티코프대사가 1차면담 뒤 본부에 보낸 보고전문.(대통령문서소.슈티코프대사와 김일성,박헌영의 대화록) 『두사람은 남조선이 조국통일민주전선이 제의한 평화통일방안을 거부했으므로 무력남침 외에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음.김일성은 자기가 지금 남침을 개시하지 않으면 조국통일의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고 말했음』 그해 6월 25일을 기해 김일성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고몇차례에 걸쳐 대남 평화공세를 펼쳤다.6월 30일에는 평양에서 남북노동당 연합회의를 열어 남북노동당을 합당,조선노동당으로 발족시키고 김일성을 위원장에,박헌영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한 바 있다. ○선제공격 필요성 강조 그러나 슈티코프대사는 이 요청에 대해 그해 3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김일성·스탈린 회담에서 북조선군이 남측에 대해 뚜렷한 무력우위를 확보치 못했다며 스탈린이 거부했다는 점을 거듭 상기시켰다.김일성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남조선 주둔 미군이 물러난 마당에 38도선 분할규정을 지킬 아무 의미가 없다.스탈린동지가 남조선이 선제공격을 가해올 경우에만 대응공격을 하라고 했지만 남조선은 이제 북침계획을 연기시킨 것 같다.남조선은 2차대전 전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고수하려했던 것처럼 38도선 고수에 총력을 쏟고있다.따라서 스탈린동지가 권유하신 대응공격 기회는 없어졌다』며 선제공격 필요성을 되풀이했다.김일성은 이와함께 북조선군이 남측에 대해 확고한 무력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강조했다.그러나 슈티코프도 지지않고 두사람의 현실파악이 너무 낙관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지적하며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김일성은 한발 물러나 강원도 삼척지구에 해방지구 건설전략을 제의했고 슈티코프는 『그것까지 막을수는 없지만 신중한 분석과 준비를 거친 뒤 실행에 옮길 것』을 권고했다.하지만 해방지구건설은 애당초 김의 목표가 아니었다.8월 14일 김은 슈티코프를 만나 다시 무력남침 필요성을 역설했고 슈티코프는 계속 불가입장을 되풀이했다.그러자 김이 들고나온 전략이 바로 옹진반도 점령 계획이었다. 이 자리에서 두사람은 두가지 사항에 합의했다.『첫째,북조선에 소련제 무기를 긴급히 추가제공할 필요성이 있다.김일성은 전군에 지급할 2∼3벌의 탄약풀세트 지원을 요청.둘째,김일성은 옹진반도 점령을 목표로한 국지전개시를 제의.옹진반도 점령시 38도선 방어선을 1백20㎞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추가 공세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수 있다고 김은 강조』 슈티코프는 『모든 작전은 북조선군의 작전능력과 전반적인 정세파악을 확실히 한후에만 실행에 옮길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슈티코프대사는 8월27일 이 대화전문을 스탈린 앞으로 보냈다.그러나 슈티코프대사는 이 보고문에 남침계획이 매우 무모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그는 『첫째,현재 한반도에 실제로 2국가가 존재하며 남한은 미국등 여러나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따라서 남침시 미국이 무기·탄약뿐아니라 병력을 직접 파병할 것임.둘째,미국이 소련에 대한 악선전의 기회로 활용할 것임.셋째,북조선군이 남측에 대해 확고한 군사우위 미확보.넷째,남조선은 강한 군·경찰군을 창설했음』등을 남침불가의 이유로 들었다.슈티코프대사는 대안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옹진반도 점령은 권할만함.그러나 남조선군의 반격능력이 강할지 모르고 그 경우 장기전이 될수있음』이라고 덧붙였다. ○소대사 “계획 무모하다” 슈티코프 대사가 본국휴가를 떠난 뒤 김일성은 대사대리인 툰킨공사를 만나 옹진반도 작전계획을 재차 설명한 것이다.툰킨 공사가 김의 이 요청을 스탈린에게 보고했고 스탈린이 소련 당정치국결정을 통해 전면남침은 물론 옹진반도 작전까지 금지시킨 것은 전편에서 이미 기술한 바있다. 당시 소련 당정치국의 남침불가 결정은 소련외무부,국방부가 북한군전력을 종합적으로 평가 비교해서 내린 결론이었다.대통령문서소에는 9월23일자로 그로미코 외무장관,불가닌 국방장관이 스탈린에게 제출한 이 정치국결정의 초안이 보관돼있다.정치국결정의 내용은 거의 이 초안과 일치한다.다만 스탈린이 결재과정에서 몇군데 흥미있는 손질을 한 대목이 눈에 띈다. 스탈린은 초안말미에 『…북조선은 남측의 무력공격개시시 이를 격퇴하고 북조선정부의 영도아래 조선통일을 이루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한다…』라고 쓴 부분을 만년필로 긋고 『남측이 도발할 경우 북조선은 이를 격퇴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고쳐썼다.「무력통일」운운한 문구를 삭제한 것이다.그외에 북한의 무력증강 필요성이 언급된 부분들도 스탈린은 모두 그 표현을 완화하거나 삭제하는 등 끝까지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려했다.그러던 차에 앞서 기술한 김일성의 「만찬장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 「마포 새이웃」 대학생모임/훈훈한 지역봉사 활동

    ◎가난한 어린이대상 영·수 강좌로 시작/동네주민 큰 호응… 「동요방」 등 다양화/이대교수 등 후원 힘입어 교육장도 마련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등 서울 신촌일대 대학생들이 연합해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자원봉사교육에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마포 젊은 새이웃」이란 명칭의 이 모임 회원은 남녀대학생 20여명.이들은 방과후 집에 혼자 남게된 어린이들을 모아 매일 하오2시부터 5시까지 숙제를 도와주고 레크리에이션 지도를 하며 「어린이 그림방」「동요방」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대견스러운 이「마포 젊은 새이웃」은 지난 2월 정식 출범했다.평소 자신이 다니는 대학주변 지역에 봉사할 기회를 갖고자 했던 대학생 몇몇이 자연스럽게 동아리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들은 첫 봉사활동으로 마포구에 있는 염리국민학교에서 겨울방학 한달동안 6학년생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바 있다.학원이나 과외에 나갈 형편이 안되는 국민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젊은 새이웃의 영·수강좌는 1백여명의 학생이 몰려 2개반으로 나누어 가르쳐야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봄학기가 시작되면서 시간과 장소의 부족으로 젊은 새이웃의 봉사활동은 난관에 봉착했다.그러던중 지난 5월에 지역사회교육 마포지역협의회(회장 백명희·이대사범대학장)의 동교동사무실이 문을 열었다.이곳의 간사로 부임한 이주연씨는 마침 젊은 새이웃의 탄생을 적극적으로 돕던 후원자였던 터라 60평정도의 협의회사무실은 봉사활동의 터전이 될수 있었다. 우선 손쉬운 일부터 시작하기로 방침을 정한 젊은 새이웃은 협의회사무실에서 국민학생 숙제돕기와 레크리에이션 지도를 시작했다.이것이 동네주민들의 큰 호응을 받게되자 젊은 대학생들은 모임에 가입하지는 않더라도 자원봉사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동원,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어린이 그림방」과 「동요방」이 바로 그것으로 그림방은 이대와 홍대 미대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참여,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젊은 새이웃의 봉사활동이 활성화되는데는 숨어서 도와주는 후원자들의 역할도 큰힘이 되고있다.그중의 한사람이 한때 청소년국가대표 농구선수로 맹활약했던 차명신씨(이대 체육대학원).그는 지난 여름방학동안 자신의 특기를 살린 농구교실을 열어 어린이들을 무료지도하며 후배들을 격려해 주었다. 「마포 젊은 새이웃」의 회장을 맡고있는 백인규군(연세·경영3)은 『향락과 퇴폐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신촌의 대학문화속에서 우리들의 미약한 힘으로나마 지역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하지만 계속해서 모임을 이끌어나갈 후배들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 3살 여아 유괴 살해/10대 범인을 검거

    【포항=김동진기자】 이주연양(3) 유괴살해 사건을 수사중인 경북 포항경찰서는 24일 김모군(19·무직·영일군 기계면 현내동)을 검거,범행일체를 자백받고 구속했다.
  • 유괴됐던 어린이/6일만에 변시로

    【포항=김동진기자】 경북 포항시 해도2동 74의12 대왕만화가게(주인 이점식·32)에서 지난 17일 20대 청년에 의해 유괴됐던 이씨의 둘째딸 이주연양(3)이 실종 6일만인 22일 상오7시20분쯤 경북 영일군 동해면 약전2동 도구해수욕장 전망대 동쪽 4백m지점 모래사장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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