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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직업은 가락시장 품걸이 입네다”

    “내 직업은 가락시장 품걸이 입네다”

    15일 새벽 5시 30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쌀쌀한 새벽바람을 뚫고 수레가 딸린 오토바이가 질주하더니 트럭 뒤에 멈췄다. 털모자에 낡은 항공점퍼를 입은 남성은 익숙한 동작으로 싣고 간 채소 상자를 트럭으로 옮겼다. 5분도 채 안 돼 수십 개의 박스가 트럭에 실렸다. 얼굴에서는 땀이 흘렀다. 가락시장을 누비는 ‘품걸이’ 이춘석(50·가명)씨다. 품걸이는 가락시장에서 출하되는 과일, 채소 등을 오토바이나 손수레로 트럭까지 실어 나르는 짐꾼이다. 이씨는 4년 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왔다. 중국에 아내와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매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9시간 일하고 있다. 일당은 8만~10만원, 한 달에 평균 180만~200만원을 번다. 150만원을 중국의 가족에게 송금하고 있다. 나머지는 단칸방 월세와 생활비로 쓴다. 낮에는 내내 잠만 잔다. 밤낮이 바뀐 생활이 벌써 4년째다. 이씨는 “힘은 들지만 가진 게 몸뚱이뿐이라 짐 나르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가족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버틴다.”며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품걸이’ 이수호(48·가명)씨는 새터민이다. 6개월 전 중국 옌볜에서 왔다. 일거리를 찾아 떠돌다 가락시장에 발길이 닿았다. 청과물 가게에서 일당 8만원에 일하기로 했다. 그러나 6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능숙하게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억울했지만 차마 항변도 못 했다.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이 바닥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가게로 일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뜨내기 일용직이지만 약속한 돈이나 줬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가락시장의 품걸이는 10여년 전만 해도 대다수가 한국인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중국동포나 새터민으로 바뀌었다. 90% 이상이 중국동포 등 이주노동자들이다. 상인들은 “이들은 언제든 보따리를 쌀 수 있기 때문에 정규직으로는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품걸이는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서울농수산물공사 관계자는 “각 상회가 야간에 개별적으로 고용해서”라고 말했다. 부당한 대우도 다반사다. “굼뜨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거친 말을 쏟아내는가 하면 따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약속한 일당을 안 주는 일도 허다하다. 노동 사각지대인 셈이다.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한 사업주는 혹시 불법 체류자일까봐 신고를 꺼린다.”면서 “아직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품걸이가 없으면 가락시장은 돌아가지 않는다. 올스톱이다. 40년 가까이 채소를 중개해 온 윤모(62)씨는 “거칠고 힘든 일을 하는 그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상인들이 늘고 있다.”면서 “불법 체류자라며 홀대만 할 게 아니라 품걸이 일 자체를 양성화해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도록 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인기·이영준기자 ikik@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중국의 부상과 동남아의 대응’ 펴낸 이선진 前대사

    [저자와 차 한 잔] ‘중국의 부상과 동남아의 대응’ 펴낸 이선진 前대사

    동남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못사는 나라,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를 많이 보낸 나라,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을 많이 받는 나라…. 온통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하지만 과연 한국과 한국인에게 동남아가 허툰 대접을 받아도 될 지역인가 하면 그 반대다. 놀랍게도 한국의 무역 파트너는 1위 중국에 이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10개국이 2위다. 한국 사회와 정부의 무관심과는 달리 이익을 좇는 한국 대기업들의 투자가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는 지역이 바로 동남아란 사실. ‘중국의 부상과 동남아의 대응’(동북아역사재단 펴냄)은 중국, 인도와 중심축을 이뤄 급성장하고 있는 동남아를 “몰라도 너무 몰라 답답한 마음에 제대로 알려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고 한다.이 책의 필자 중 한 명인 이선진 전 인도네시아 대사를 만났다. →어떻게 나온 책인가. -중국 혹은 동남아 지역 대사를 지냈거나 지내고 있는 전·현직 외교관들이 2010년 9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모였다. 외교안보, 경제 면에서 동남아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데 우리 사회와 정부의 인식이 못 따라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 외교의 장래를 위해 우리끼리라도 프로모션을 해 보자 해서 공부를 시작한 게 이 책이 나온 출발점이다. 지금도 모여 공부를 계속 하는데 2기 테마는 동남아를 넘어선 동아시아 공동체다. →중국과 동남아의 관계는 어떤가. -중국은 1990년대 후반 동남아 외환위기, 주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에 대한 미국의 오폭 사건 등으로 초강대국 미국의 대중국 봉쇄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착안한 지역이 동남아다. 중국은 아세안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기 직전 농산물 시장 개방을 선언하는 등 파격적인 대동남아 접근을 시작했다. 남중국해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선언도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결국 이 지역에서 발을 빼던 미국을 대신해 중국의 동남아 자리 잡기가 성공했다. →중국, 동남아가 하나의 권역으로 갈 가능성은. -경제적으로 이미 아세안은 중국과 깊어졌다. 최고의 경제 파트너가 중국이다. 한편으론 남중국해 사태 등에서는 안보와 관련해 협력할 수 있는 미국의 존재도 필요하다. 영리하게도 아세안은 중국, 미국과 양다리 외교를 하고 있다. 당분간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과 협력하는 체제로 갈 것이다. →동남아를 호락호락 내줄 미국이 아닌데. -부시 정권 때 무시했으나 오바마 정권 들어 동남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세계에서 경제가 가장 활발한 지역이 동아시아다. 그 동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이 동남아다. 과거 한·중·일이던 경제 중심축이 중국·동남아·인도로 바뀌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역설하는 게 아·태 외교다. 그가 취임 후 최초로 방문한 곳이 바로 아세안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의 대동남아 전략이 한반도에 던지는 함의는. -첫째, 동남아와 동북아는 같은 안보축이라는 점이다. 과거 세계 리더가 미국이었지만 중국도 그에 못지않게 커졌다. 중국은 동남아 국가이자 동북아 국가다. 둘째, 동남아는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주는 지역이다. 고성장 축을 따라 우리도 성장을 해야 한다. 셋째, 남북 문제에서 동남아는 적지 않은 변수다. 핵문제는 6자회담이 푼다고 하자. 노무현 정권은 물론 MB 정권에서도 죽였던 동남아 채널은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아주 유효하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개포동 외국인학교 재논의

    서울시가 개포동 외국인학교 문제를 계기로 외국인정책을 전면 수정한다. 기존의 영어권, 선진국 출신 외국인 중심에서 이주노동자나 빈곤국 출신을 배려하는 정책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7일 “이달 말 사업조정회의를 열고 지난해 무기한 연기했던 강남구 개포동 외국인학교 사업을 재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장실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이주노동자 문제 등 빈곤국 출신 외국인정책을 등한시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했다.”며 정책 변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시가 이처럼 정책수정을 하게 된 것은 개포동 외국인학교를 둘러싼 공정성 시비 때문이다. 개포동 외국인학교는 서울시가 외국인 투자유치를 명분으로 2013년까지 학생 8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어권 외국인학교를 개포동 1만 6078㎡(4872평) 부지에 건립하겠다고 지난해 5월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하지만 영리기업이 참여하는 재무적 컨소시엄 형태라는 입찰형태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사업자 선정 과정에선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연선 시의원이 졸속 진행을 비판하며 중도사퇴한 것을 비롯해 그해 12월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지적이 잇따르자 결국 사업은 무기한 연기됐다. 김 의원은 “외국 명문학교는 출연금도 없이 이름만 빌려주고 ‘재무적 투자자’가 대부분 차입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결국 특정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면서 “설립 자체를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열린세상] ‘시티즌 오블리주’가 더 절실한 오늘이다/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시티즌 오블리주’가 더 절실한 오늘이다/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임진(壬辰)년 새해가 밝았다. 오리무중 속 우리 시민사회의 진로는 시계 제로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등장과 총선, 대선이 연이어 치러지는 ‘선거의 해’가 몰고 올 불안정성이 우리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한 세기 전 아픈 역사의 기억이 가슴을 찢는다. 조선왕조가 기울어 가던 개화기(1876∼1910)의 시대적 과제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 근대 국민국가를 세우는 데 있었다. 그때 우리는 양반과 상놈의 신분제 사회를 넘어 민족을 단위로 한 ‘국민 국가 만들기’(nation building)에 실패했다. 우리의 지도층은 나라를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들었고, 백성들은 국민으로 거듭나지 못해 일왕의 신민(臣民)이 되고 말았다. 역사는 우리의 앞길을 비추는 등대다. 실패라는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오늘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시대적 소명은 둘로 요약된다. 하나는 민족을 단위로 한 통일된 국민국가 세우기라는 미완의 근대 과제 달성이다. 다른 하나는 혼혈인과 이주노동자와 같은 타자에 대한 차별 넘어서기, 남녀 동권의 양성 평등사회 만들기, 그리고 환경을 지키는 녹색성장 이루기 같은 근대 이후 과제이다. 이 두 과제도 중요하지만 우리 내부의 분열을 봉합하는 사회통합, 국민통합이 더 시급한 초미의 과제이다. 지금의 현실을 들여다 보면, ‘역사는 반복하는가’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보수와 진보’, ‘친미와 반미’. 오늘 우리 안의 이분법은 한 세기 전 망국을 초래한 ‘개화와 수구’, ‘친일과 반일’의 분열과 진배없다. 벌어진 골과 갈등의 날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국민통합의 상징인 화폐의 도안 인물이 이를 잘 보여준다. 건국에 공이 있는 인물이나 자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나 과학자들의 초상을 실은 외국과 달리 우리 지폐는 조선조 인물을 담는 역설을 범한다. 민주주의와 산업화의 초석을 놓은 이승만과 박정희, 문호 이광수, 양성평등을 외친 나혜석은 독재자와 친일파란 이유로 세종대왕, 이황, 신사임당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국민을 하나로 묶는 데 필수적인 역사교육을 둘러싼 갈등은 최근 국사교과서 서술지침을 놓고 벌어진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웅변하듯 봉합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무상급식과 부자 증세 같은 복지문제, 4대강 사업과 원전 건설 같은 환경문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같은 교역문제를 둘러싸고도 좌와 우, 여와 야는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같이 파국을 낳을 뿐인 치킨게임만 일삼고 있다. 한 세기 전 조선의 망국은 전제군주와 특권 양반이 책임을 져야 한다. 통치의 객체에 지나지 않았던 백성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이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갖는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 이 땅의 사람들은 더 이상 훈육되는 통치의 대상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리더를 뽑을 권리를 갖고 있는 시민은 통치의 또 다른 주체로 공동체의 번영과 안위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의 몫이 있다. 그렇기에 권력자나 지배세력의 리더십만이 아닌, 시민사회의 펠로십(Fellowship)도 중요하다.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이 배려와 나눔을 체화하는 정신적 성숙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민 모두가 자신보다 못한 사회적 약자와 타자의 권리 보호에도 눈을 돌리는 교양 있고 품격 있는, 깨어 있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일기 시작한 안철수 돌풍이 웅변하듯 시민사회는 구태의연한 기존 정치세력에 식상했다. 우리 시민사회는 갈등을 해소하고 분열을 통합하는 치유의 리더십에 목이 말라 있다. 아직 논란의 불씨는 남았지만,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선거운동을 막는 것이 위헌이라는 유권해석을 냈다. SNS가 만들어낸 새로운 시민 공론장이 어떤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 낼지 자못 궁금하다. 더 가진 자의 책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만큼이나, 시민 개개인이 갖추어야 할 도리와 의무인 ‘시티즌 오블리주’(citizen oblige)가 더없이 필요한 오늘이다.
  • “코리안 드림요? 오늘도 잘곳 없어 막막합니다”

    “코리안 드림요? 오늘도 잘곳 없어 막막합니다”

    지난 2009년 어업취업비자로 제주도의 양식장에 취업한 네팔인 다이아 딤(29). 3년간 열심히 일해 목돈을 모아 귀국, 개인 사업을 차리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1년 6개월 동안 일한 양식장과의 계약이 끝나 최근 기숙사를 나왔다. 재취업까지 머물 곳이 마땅찮았다. 따로 방을 구할 수도 없었다. 겨울 추위를 몸으로 맞다 수소문 끝에 전남 여수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쉼터를 찾았다. 가까스로 한뎃잠을 면할 수 있었다. 딤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으면 집도 동시에 잃는 경우가 많아 직장을 구하는 동안 갈 곳이 없다.”면서 “다른 친구들의 공장 기숙사에 숨어들어 잠만 자고 나오거나 모아둔 돈을 쪼개 값싼 모텔방을 전전한다.”고 말했다. 박용환 쉼터 소장은 “최근 쉼터에 부산, 목포 등에서 생활하다 잠잘 곳을 찾아 여수까지 온 네팔, 말레이시아, 태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왔지만 노숙자 신세로 떠도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불안정한 주거 환경 속에서 지인의 집에 머물거나 간혹 노숙인 시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문제를 외면하는 사이 교회, 시민단체 등에서 쉼터를 마련해 두고 있지만, 이마저도 전국 20~30곳에 불과하다. 노숙인상담보호센터인 영등포햇살보금자리 관계자는 “중국동포와 외국인들이 가끔 와서 잠시 머물다 가곤 한다.”고 말했다. 다문화 시대에 등장한 ‘다문화 홈리스’다. 중국동포 박동춘(49·가명)씨는 전국을 떠돌며 공장일을 하다 지난해 9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8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다 교회 쉼터와 친구집 등에 신세를 졌지만 마음이 무겁다. 노숙인 쉼터의 문도 두드렸지만 ‘외국인이라 받아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달 가리봉동 중국동포교회 쉼터에 자리 잡은 박씨는 “여기에서도 나가야 한다면 난 그저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해성 목사는 “이따금 경찰이나 공무원 등이 갈 곳 없는 중국동포를 데려오기도 하고,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등에서 이곳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이 홈리스로 전락하는 것은 저임금과 고용불안, 제도상의 허점 때문이다. 이재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사무처장은 “이직을 3회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면 체류자격을 박탈하는 고용허가제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양산시키고 빈곤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를 당하면 보험혜택도 받지 못해 고용주로부터 외면받는 실정이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거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는 노사가 해결할 문제”라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지자체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노동자 쉼터에 재정을 지원하는 수준이다. 노숙인 쉼터 등 노숙인 지원시설도 외국인에 대한 지원 근거가 없다. 때문에 산업재해를 당해 치료와 요양이 필요하거나 돈이 없어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교회나 시민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쉼터뿐이다. 김해성 목사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노동력’을 수입했을 뿐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갈 곳 없는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윤샘이나·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美, 2년간 자동차 반덤핑 관세에 ‘발끈’ 中에 ‘인권 반격’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치고 때리는 통상 보복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마침내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까지 건드렸다. 아시아·태평양을 놓고 벌이는 주요 2개국(G2) 간의 각축전이 전초전이었다면 통상전쟁은 전면전인 셈이고, 인권전쟁이 어떤 식으로 비화할지 주목된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역시 내년에 ‘5세대 지도부’로의 권력교체를 앞둔 중국 측은 두드러지는 G2 갈등을 경계하는 입장이어서 ‘확전’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국은 중국의 이런 ‘약점’을 적절하게 파고드는 양상이다. 최초의 중국계 대사인 게리 로크 주중 미 대사는 14일 AP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 내 인권 침해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부임 후 처음으로 중국의 인권문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내 인권상황 악화의 원인과 관련해선 “중국 지도자들이 이집트 등 아랍세계를 휩쓴 민주화 시위가 중국에서도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인권운동가와 변호사의 체포와 구금, 그리고 독립적이지 못한 사법부의 판결을 우려했다. 자신이 만난 중국의 인권운동가와 변호사, 종교지도자 등이 종교에 대한 통제뿐 아니라 여성과 이주노동자의 급료와 생활수준 등에 대해서조차 말하기를 주저했다고 전했다. 로크 대사는 “부대사가 지난 2주 동안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의 부인 류샤(劉霞)를 만나 보려 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면서 “중국의 인권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의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미국 인권보고서’ 등을 통해 “자국 인권이나 신경쓰라.”는 수준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에서 로크 대사의 지적에 적극적인 맞대응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통상전쟁에서는 절대 양보할 기색이 아니다. 미국의 무역보복 압박에 ‘이에는 이’ 식의 즉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14일 중국 상무부가 미국산 자동차(배기량 2.5ℓ 이상 세단형 승용차 및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에 최대 21.5%의 반덤핑 및 반보조금 상계관세를 부과키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5월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앞둔 시점에 결정을 내려놓고, 시기를 봐 오다 최근 들어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전격적으로 2년간 과세하겠다고 공표했다. 미국의 반발도 신경쓰지 않고 있다. 미 하원 세입세출위원회의 공화·민주당 의원들이 중국 측의 상계관세 부과를 강력히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자 중국 상무부는 15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조사 결과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산한 자동차를 중국 시장에 판매한 탓에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손해를 봤다.”면서 “관련 조치는 법과 사실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일축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수중도시 방콕’ 엑소더스 행렬

    수몰 위기에 놓인 태국 수도 방콕에 26일 밤 4억t의 물이 추가로 유입되면서 홍수 사태가 ‘통제 불능’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7일 차오프라야강 인근 왕궁을 포함, 도심까지 물이 들어찼다고 AFP가 보도했다. 1200만명이 사는 방콕시가 전면 침수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차역, 시외버스터미널 등은 27일부터 시작된 닷새간의 임시 공휴일을 이용해 방콕을 빠져나가려는 시민과 인접국 이주노동자 수만명이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방콕 클롱송 지역의 수위는 16㎝에서 2.64m까지 급격히 불어났고, 클롱타위와타나 지역의 수위는 20㎝에서 2.38m까지 차올랐다. 돈므앙 지역은 이미 90% 이상, 방쁠랏은 70% 가까이 침수됐다. 수쿰판 빠리밧 방콕 시장은 26~27일 돈므앙, 방쁠랏, 사이마이, 타위와타나의 살라타마솝 등 방콕 50개 지역 가운데 4곳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 명령을 내렸다. 태국 국민들의 운명은 바닷물이 유입되는 28~31일 만조 때, 차오프라야강에 달려 있다. 태국 해군은 29일 오후 6시쯤 차오프라야강 수위가 2.65m에 이르러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날 이미 차오프라야강 일부 수위는 홍수 방지벽(2.5m)을 넘는 2.55m에 이르러 범람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 당국은 차오프라야강 홍수 방지벽 외곽의 13개 지역을 침수 예상 지역으로 선포하고 주민들에게 대피 준비를 하라고 경고했다.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는 눈물을 비치며 정부의 통제력에 한계가 있음을 시인했고, “방콕 전 지역이 앞으로 한달간은 침수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태국 국방부는 5만명의 병력을 홍수 피해 구제에 투입한다. 전국 8개주에 최대 20만명을 수용할 피난센터가 추가로 마련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3m 빗물벽’ 방콕 도심 접근… 수만명 피난처서 또 피난

    이번 주말 수몰 위험이 예고된 태국 수도 방콕에서 27일 닷새간의 공휴일을 맞아 대규모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피난민이 급증하자 태국 정부는 칸차나부리, 촌부리 등 전국 8개 주에 최대 2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를 추가로 개설하기로 했다. 태국 국방부는 홍수 피해 구제를 위해 병력 5만명을 투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방콕의 모칫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도로 일대는 방콕을 빠져나가려는 행렬로 오전부터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국내선 항공편 예약도 빗발쳤다. 피난처가 물에 잠겨 2차, 3차 피난에 나선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근 미얀마에서 온 이주노동자 수천명도 탈출 행렬에 가세했다고 AP가 보도했다. 이들은 후아힌, 푸껫, 파타야 등 여행지로 인기가 높은 남부 해안가로 몰리고 있다. 26~27일 방콕 내 돈므앙, 방쁠랏, 사이마이, 타위와타나 등 4개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 지시를 내린 수쿰판 빠리밧 방콕 시장은 다른 지역 시민들에게도 만조가 겹치는 이번 주말 홍수 피해가 없는 곳으로 떠나 있을 것을 권고했다. 방콕 북부지역의 침수에 이어 서부지역도 논타부리, 빠툼타니 등에서 대량의 물이 유입되면서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 25일 폐쇄된 돈므앙공항은 홍수 방지벽이 잇따라 붕괴돼 공항 주차장 등이 거센 물살에 휩쓸렸다. 현재 3m 높이의 ‘빗물벽’이 방콕 도심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30년 평균치보다 25%나 많은 비가 내리면서 침수 피해가 더욱 커졌다. 현재 8000억 밧(약 28조 9700억원)의 투자 가치가 있는 방콕 북부 공장 1만여곳이 침수됐고 66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홍수 피해가 장기화되면서 방콕 시내 상점에는 쌀, 국수, 생수, 기저귀 등 생필품 부족으로 사과문을 내거는 가게가 늘고 있다. 홍수구제작전센터(FROC) 본부장인 쁘라차 쁘롬녹 법무부 장관은 이날 “방콕에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식량보관센터도 지을 계획”이라면서 “전력이나 물 수급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방콕 도심에서 25㎞ 떨어져 신방콕국제공항으로 불리는 수바르나부미공항도 피난민 수용을 위해 공항 동쪽 주차장을 개방할 계획이다. 여기에 ‘악어 공포’까지 겹쳐 시민들은 이중고에 처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인근 악어농장에서 키우던 악어 100여마리가 방콕 북부 지역으로 휩쓸려 내려왔다. 태국 당국은 800여곳의 농장에서 수만 마리의 악어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방, 구두 등 전세계 악어가죽 제품 수요를 대기 위해서다. 대부분 민물 샴악어로 바다 악어보다는 작고 덜 공격적이지만 악어가 공격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당국은 소문을 부인하고 있지만 전기가 흐르는 소몰이 막대를 이용해 악어를 기절시키는 방법 등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위기의 남유럽 ‘문제는 정치다’] (3) 스페인

    [위기의 남유럽 ‘문제는 정치다’] (3) 스페인

    ‘축구와 정치 수준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경제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헛발질을 거듭한 축구 강국 스페인의 정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경제 호황기인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사회당)의 지지율은 2007년 주택시장 거품이 꺼지며 추락한 스페인 경제와 운명을 같이한다. 경제 위기에 대한 안이한 대처와 책임 회피 등 무책임한 정치로 결국 사회당 정권은 다음 달 20일 조기총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으로 내쫓길 처지에 놓였다. 야당인 마리아노 라호이 국민당 당수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스페인 일간 엘문도 여론조사 결과 국민당은 48%를 기록, 사회당(30.8%)과 17% 포인트 넘게 격차를 벌였다. 같은 날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당은 45.5%의 지지율로 사회당(29.7%)보다 15% 포인트 이상 앞섰다. 사회당은 지난 4월 3연임을 포기한 사파테로 총리 대신 알프레도 페레스 루발카바 전 부총리를 새 후보로 내세웠지만 민심은 이미 싸늘하다. 국민들의 시선은 새 정권이라고 해서 곱지는 않다. 스페인 싱크탱크인 엘카노로열연구소의 윌리엄 치슬릿 연구원은 “재임자나 후임자 모두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 국민들이 정치인들과 그들의 실패에 넌더리가 났다.”고 전했다. [위기의 남유럽 ‘문제는 정치다’] (1) 이탈리아 : 파시즘 공포 낳은 ‘비리’ 총리, 경제대국 조롱거리로 (2) 그리스 : 3대가문 정권 돌려갖기가 경제파탄 불렀다 (3) 스페인 : 위기 부인·선심정책… ‘毒된 포퓰리즘’스페인 국민들의 분노는 위기 초반에 대응할 기회를 놓치면서 위기를 키운 현 정권의 정책 실패에 집중된다. 지금은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등 외부의 압박으로 긴축에 나서 공분을 산 사파테로 총리지만 위기 부인, 책임 회피, 부채만 늘린 선심성 정책과 미봉책 양산 등의 전과(?)로 2008년 재임 초부터 정치 불신을 초래했다. 이상 신호가 감지된 2008년, 사파테로 총리는 그해 1월 엘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견해의 문제”라고 했고, 같은 해 7월 의회에서는 “불황이 올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위기를 자국 문제로 인식하지도 못했다. 매년 3%에 이르던 경제성장률이 꺾이고 나라 전체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5분의1이 실업상태에 놓여도 ‘미국발 신용경색’ 탓으로 책임을 전가했다. 선심성 정책과 공약도 남발했다. 2008년에는 모든 납세자에게 세금 400유로(약 63만원)를 환급해 준다는 공약을 내세워 재선에 성공했지만 곧바로 스페인 경제에 독이 돼 돌아왔다. 혹독한 경제 개혁으로 인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 미봉책만 내세워 재정위기를 악화시켰다. 이주노동자들이 경제성장에 보탬이 되자 2005년 58만명의 불법이민자에게 노동허가증을 덜컥 내줬다 3년 만에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이 중 절반 이상이 실업자로 전락했다. 다급해진 사회당 정부는 실업수당을 일시불로 주겠다며 귀국을 종용했다. 실책이 겹치며 이제 스페인은 이탈리아와 함께 ‘차기 구제금융국’ 후보에 올라 있다. 이달에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국가신용등급을 강등당했다. 스페인의 올해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7.3%로 이탈리아(120%)나 EU 평균(80%)보다는 낮지만 악성 부채가 많고 실업률은 EU 내 최고 수준인 21.2%,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46.2%에 이른다. 경기도 부진하다. 최근 회계법인 KPMG가 215개 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75%가 스페인 경제가 2013년쯤에나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성장을 하려면 개혁이 필수적이지만 긴축이 성장을 끌어내린다는 게 딜레마다. 이런 짐을 고스란히 넘겨받게 될 라호이 국민당 당수 역시 승리의 기쁨을 누릴 시간은 잠시, 부메랑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中시민들이 외면했던 ‘뺑소니 아기’ 현상태는…

    中시민들이 외면했던 ‘뺑소니 아기’ 현상태는…

    차에 치인 뒤에도 시민들의 외면으로 거리에 방치돼 있던 중국 여자아기가 뒤늦게 병원에 실려 갔으나 뇌사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중국 언론매체에 따르면 광둥성 포산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승합차에 들이받혔던 유에유에(2)가 병원입원 초기에는 팔에 감각이 돌아오는 등 회복기미를 보였으나,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사고 6일 만인 지난 19일 새벽 뇌사판정을 선고받았다. 사고 당시 아기는 어머니 쿠 페이페이가 전화를 하는 사이 홀로 길을 걷다가 봉변을 당했다. 승합차에 뺑소니를 당한 뒤 한동안 길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지만 시민 17명이 딴청을 피우며 못 본 체 해 그대로 방치됐고, 심지어 뒤따르던 차량은 쓰러진 아기를 다시 치고 달아나기도 했다. 농촌에서 도시로 온 가난한 이주노동자인 아기 어머니는 모든 게 자신의 탓으로 느껴져 괴로워하고 있다. 그녀는 “딸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결국 뇌사에 빠졌다.”면서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는 건 알지만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유에유에의 안타깝고 충격적인 사고소식은 중국 사회전역에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남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중국인들의 오불관언(吾不關焉)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또 아기를 매정하게 방치한 시민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빗발쳤으나, 법해석을 두고 법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기를 도우려는 따뜻한 손길도 여기저기서 미치고 있다. 유에유에의 회복을 기원하는 웹사이트가 열려 모금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지역 당국은 아기를 구조한 여성시민에게 한화 180만원 상당의 보상금을 내렸다. 포천의 한 기업은 900만원 상당을 유에유에의 치료비로 쾌척하기도 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작지만 강하다” 이유 있는 흥행 롱런

    “작지만 강하다” 이유 있는 흥행 롱런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마당 1관. ‘훈남 파티’가 한창이었다. 티켓은 판매 시작 5분 만에 동났다.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훈남 파티’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팀이 별도로 준비한 뮤직 토크쇼다. 공연에서는 볼 수 없는 배우들의 다양한 개인기를 볼 수 있어 인기 폭발이다. 흥행에 감사하는 뜻에서 2007년 김무열, 오나라 등 당시 출연진이 처음 선보인 이후 올해 세 번째를 맞았다. 일종의 고객 감동 서비스인 셈.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꼭 봐야 할 행사’로 꼽힌다. 이처럼 작지만 강한 창작 뮤지컬 세 편이 공연가의 화제다. 장기 흥행을 이어가며 뮤지컬 저변 확대를 견인하고 있다. 2006년 초연된 소극장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지난 6월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5년 동안 시즌 4까지 제작되며 41만명의 관객(공연 2130회)을 불러들였다. 평균 객석 점유율은 83%. 7년 전 인도 여행에서 만난 첫사랑 김종욱을 잊지 못하는 여주인공이 그를 찾아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공연 작품으로 출발해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김종욱’의 인기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작품은 ‘빨래’다. 2005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30만 관객이 봤다. 임시직 서점 직원 ‘나영’과 몽골인 이주노동자 ‘솔롱고’의 고단한 서울살이를 따스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린 창작 뮤지컬이다. 몽골과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 강원도 산골에서 상경한 사회 초년생, 반신불수의 딸을 뒷바라지하는 할머니 등 한국 사회의 약자들이 모두 등장한다. 최근 영화로 제작돼 개봉(22일)을 앞두고 있는 소설 ‘완득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다문화 문제를 유쾌하게, 그러나 결코 경박하지 않게 건드린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교과서에도 오른다. ‘내 이름은 솔롱고’ ‘빨래’ 등의 노래 가사와 극 중 장면이 내년 중학교 ‘국어 3-1’(대교출판사)과 고등학교 ‘문학 1’(창비출판사)에 나란히 실리는 것. ‘김종욱’팀의 훈남 파티처럼 ‘빨래’팀도 고객 서비스 행사의 하나로 극 중 주인공 이름을 딴 ‘나영이 데이’를 열고 있다. 2005년 12월 첫 공연을 올린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인기도 만만찮다. ‘오! 당신’은 지난달 30일 2000회를 돌파했다. 이날 공연에선 ‘오! 당신’을 가장 많이 본 관객 ‘오! 당신’에 대한 시상이 이뤄졌다. 주인공은 한유선씨로 무려 120번 넘게 봤다. 한씨에게는 앞으로 100회 더 볼 수 있는 무료 관람권(1000만원 상당)이 주어졌다. 지난달 30일 2000회를 기준으로 현재 누적 관객 수는 약 21만명. 대극장 객석의 10분의1 수준인 소극장 작품이 장기 흥행하는 힘은 무엇일까. ‘김종욱’과 ‘오! 당신’을 연출한 김유정 감독은 “소극장의 좁은 공간 특성상 관객과 배우의 교감이 크고, 덕분에 극의 사실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면서 “관객들의 호응과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공감 밀도가 장기 공연을 이끄는 힘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수입이나 번안 작품이 아닌, 우리 현실에 맞는 창작품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조용신 대중문화평론가는 “롱런 작품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과 웃음 포인트를 잘 버무린 선물세트라는 점”이라면서 탄탄한 줄거리, 강한 호소력, 파워풀한 노래를 흥행 삼박자로 꼽았다. 김 감독도 “창작 뮤지컬이다 보니 관객들이 내 이야기, 내 인생, 내 처지로 느끼면서 감정이입에 나서고 이것이 입소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아울러 훈남 파티, 나영이 데이처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팬 서비스 행사, 캐스팅 등을 달리 해 여러 번 보는 맛을 끌어내는 노력, 소극장 뮤지컬이 초보자 입문용으로 적당해 추천작으로 자주 꼽히는 점 등도 장기 흥행 비결로 꼽힌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한가위 TV-영화]

    [한가위 TV-영화]

    언젠가부터 명절 연휴에 TV에서 볼 만한 신작 영화들은 오롯이 케이블의 몫이었다. 올 추석에도 KBS를 제외하면 영화에 힘을 주지 않은 모양새가 역력하다. 케이블 중에서는 CJ E&M 계열의 물량공세가 두드러진다. ●10일-이클립스·아저씨 채널CGV는 오후 10시 전 세계 소녀팬들을 사로잡은 트와일라잇 시리즈 3편 ‘이클립스’를 방송한다.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사이에 둔 뱀파이어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와 늑대인간 제이콥(테일러 로트너) 간의 미묘한 삼각관계가 그려진다. OCN에서는 같은 시간 원빈의 환상적인 액션과 복근 노출로 여심을 뒤흔들었던 ‘아저씨’가 방송된다. 패틴슨과 원빈, 두 꽃미남의 시청률 대결이 흥미롭다. ●11일-이끼·쩨쩨한 로맨스 KBS가 오후 10시 35분에 강우석 감독의 ‘이끼’를 방송한다. 영화의 최대 강점은 정재영, 박해일, 유준상, 유선, 허준호, 유해진 등 걸출한 배우들의 시너지다. 30년간 은폐된 한 마을을 무대로 낯선 손님 유해국(박해일)과 그를 경계하는 마을 사람 간의 긴장감을 쫓는다. 채널 CGV는 오후 10시부터 이선균, 최강희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쩨쩨한 로맨스’와 공포 시리즈물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를 연속 방영한다. ‘파이널’은 추석 극장가에서 5편이 상영 중이다. ●12일-님은 먼곳에·마음이2 MBC가 밤 12시 40분 이준익 감독의 2008년작 ‘님은 먼곳에’를 내보낸다. 주연배우 수애의 구성진 노래를 들을 수 있다. KBS는 오전 11시 10분에 송중기 주연의 ‘마음이2’를 방송한다. 죽은 아버지의 선물인 개 ‘마음이’가 유일한 친구인 동욱과 동물 박제를 이용해 장물을 옮기려는 형제의 추격전을 그렸다. 오후 8시 50분에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김인권, 김정태 주연의 ‘방가? 방가!’가 편성됐다. 취업을 위해 부탄인 ‘방가’로 변신한 청년 방태식(김인권)의 생존기가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OCN은 오후 10시부터 제임스 카메론 사단의 해저탐험 영화 ‘생텀’을 방송한다. 올 2월에 개봉한 최신작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깊고 거대한 해저동굴에서 조난당한 탐험대의 악전고투를 그렸다. 채널 CGV는 밤 12시에 톰 티크베어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 ‘인터내셔널’을 방송한다. 범죄의 실체를 밝히려는 인터폴 형사 루이 샐린저(클라이브 오웬)와 지방검사 엘레노 휘트먼(나오미 왓츠)의 목숨을 건 수사가 펼쳐진다. ●13일-내 사랑 내 곁에·심야의 FM SBS가 밤 12시부터 루게릭병 환자 역을 맡은 김명민의 체중 감량으로 화제를 모은 ‘내 사랑 내 곁에’를 방송한다. 채널 CGV는 오후 8시에 지구 종말을 소재로 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블록버스터 ‘2012’를, 오후 11시에 춘향전을 방자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영화 ‘방자전’을 차례로 방송한다. OCN은 오후 10시 유지태, 수애 주연의 웰메이드 스릴러 ‘심야의 FM’을 방송한다. KBS에서는 오후 9시 50분 김명민, 오달수 주연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볼 수 있다. 올 초 470만명을 동원한 대박 작품으로 조선판 셜록 홈스와 왓슨 콤비의 활약상을 그린 코믹액션 사극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美서 ‘뱀파이어 박쥐’에 물려 19세 노동자 첫 사망

    美서 ‘뱀파이어 박쥐’에 물려 19세 노동자 첫 사망

    미국에서 처음으로 흡혈 박쥐에 물려 사람이 사망한 첫 사례가 보고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이하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측은 최근 주간 보고서를 통해 “멕시코에서 온 19세의 이주노동자가 흡혈 박쥐에 물려 옮긴 광견병에 의해 미국에서 숨진 첫번째 사람이 됐다.” 고 밝혔다. CDC측에 따르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 19세 노동자는 지난해 7월 15일 멕시코의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다 흡혈 박쥐에 의해 발뒤꿈치를 물렸다. 치료 없이 미국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일을 떠난 그는 이후 고열을 비롯 어깨 통증, 손 마비 등으로 상태가 악화됐고 8월 21일 사망했다. 미 보건당국 측은 사후 조사를 통해 “이 노동자가 흡혈 박쥐에 의해 옮긴 광견병에 의해 사망했으며 평균적인 잠복기간(85일)보다 훨씬 짧았다.” 고 보고했다. 또 “그와 접촉한 사람들을 모두 조사했으나 이상 없었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된 흡혈박쥐는 가축과 다른 야생동물의 피를 빠는 야행성 포유류다. 일반적으로 멕시코와 브라질 등에서 발견되나 최근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기후 변화 등으로 서식지가 확장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엄청 비싼 커피값… 재배농민은 왜 가난할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요즘 커피값을 보며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거나, 내뱉는 말이다. 점심값 1만원 시대가 되면서 다소 수정할 필요가 생기긴 했어도, 커피값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건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얼마나 큰 부자가 됐을까. 그들이 흘린 땀방울은 모두 고스란히 돈으로 변해 곳간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겠지. 하지만 누구나 직감적으로 절대 그렇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도시에서는 채소값 폭등이 단골 뉴스가 되는데도, 벼락부자가 됐다는 농민 얘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가 여태 질리도록 봐온 ‘유통의 현실’이다. ‘커피밭 사람들’(임수진 지음, 그린비 펴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구 반대편에서도 벼락부자가 된 농민은 없다는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지리학자인 저자가 2년여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커피밭 노동자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그들의 삶에 대한 단상을 풀어냈다.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2001~2003년 코스타리카 타라수 지역과 페레스 셀레동 지역에서 커피열매를 따며 지리학 박사 연구를 병행했다. 저자는 단지 연구자로 머물지 않고, 그들과 똑같은 일용노동자 생활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현지 노동자들과의 우정도 싹 트게 됐을 터. 저자는 하루 종일 일해도 커피 한 잔 값 정도의 일당밖에 벌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거와, 한국 이주노동자들의 현재와, 아직 자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의 내일을 본다. 책의 출간 목적이 다소 불분명한 건 아쉬운 대목. 공정무역을 말하려는 것인지, 자본과 착취에 관한 것을 말하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커피의 유행과 더불어 그에 대한 온갖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책이 ‘유행’ 이면에 감추어진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컨대 유명 커피 브랜드의 5000원대 커피 한 잔에 담긴 현지 노동자들의 땀에 대해, 공정무역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이 전지구적 빈부격차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부(富)가 얼마만큼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번 방학에 평화·인권 배울래요”

    “이번 방학에 평화·인권 배울래요”

    비정규직 문제, 이주노동자 인권, 다문화, 반전 및 비폭력은 최근 우리가 자주 접하는 사회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런 주제들은 어린이들이 배우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평화·인권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면서 “이는 우리 공동체 사회 구현을 위해 누구나 교육받고 실천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몸에 익혀야 할 주제라는 이야기다. 마포구가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위해 구립서강도서관에서 1일부터 14일까지 개최하는 2011 어린이·청소년 평화책 순회전시회 ‘둥근 해가 떴습니다’도 이런 생각에서 첫발을 뗀 것이다. 인권과 평화는 결코 어려운 게 아니며 어린이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얘기여야 한다는 게 주제다. 그래서 이번 도서전은 책을 모은 전시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체험형 프로그램을 가미했다. 이번 순회 전시회는 평화박물관이 공동 주관해 전국 각 도서관, 문화공간 등에서 돌아가며 개최하는데, 마포구에서는 벌써 올해로 세 번째다. ●올해 세번째… 체험 프로그램 가미 박 구청장 역시 평소 어린이 교육과 문화 사업에 관심이 많아 관련 행사를 다채롭게 꾸미고 있다. 특히 ‘생명과 평화 포럼’ 초대 대표를 역임할 만큼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 구정에 있어서도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강조해 왔다. 신수현 서강도서관 문화콘텐츠팀장은 “3년째가 되면서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의 관심이 커졌고, 특히 방학이 시작되면서 열람실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이 많아 전시회에도 관람객이 붐비고 있다.”고 전했다. 도서관 4층 어린이열람실에서는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한 도서 90권을 선정한 테마서가를 운영한다.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의 삽화는 따로 모아 전시회를 마련한다. 또 선정 도서와 관련된 소품을 모아 서랍장에 넣어두고 만져보는 체험 프로그램 ‘열어보렴’도 운영되고 있다. 서랍에는 평화 관련 물품이나 책 속에 등장하는 소품들을 담아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책 내용을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6~7일에는 평화 서랍 체험 후 자신의 손바닥을 그려 보고 그 속에 평화의 메시지를 담는 책놀이가 진행된다. 7일과 14일에는 평화영화도 상영된다. ●한·중·일 공동기획 삽화 전시도 10일에는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의 작가 이억배씨가 직접 아이들을 만나는 저자와의 만남 코너도 준비돼 있다. 이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년여 동안 민통선 안쪽을 수십 차례 답사하고 비무장지대 생태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이씨는 저자와의 만남에서 ‘마음의 문이 먼저 열려야 평화의 문이 열린다’를 주제로 지금까지 작업한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과 함께 대형화판 만들기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초등학생 어린이 3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문의는 3141-7053. 홈페이지(sglib.mapo.go.kr)에서 신청 가능하다. 박 구청장은 “이번 행사가 단발로 끝나지 않도록 매년 개최를 지원할 생각”이라며 “평화와 인권이 침해받지 않고 공존하며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한축을 맡겠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외국인 편견·몰이해 反다문화 정서 부채질

    외국인 편견·몰이해 反다문화 정서 부채질

    우리나라도 거주 외국인이 120만명을 넘으면서 점차 다문화 사회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반면 사회의 한쪽에서는 ‘반다문화 정서’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다문화 사회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다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5일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반다문화주의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등에는 ‘다문화가정 결사반대한다.’, ‘한국도 10년 뒤면 노르웨이처럼 된다.’ 등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2008년 6월 만들어진 인터넷 카페 ‘다문화정책반대’의 한 회원은 “친다문화 정책을 쓰는 한국에서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노르웨이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글을 남겼다. 이들은 온라인상에 외국인 범죄와 결혼 이민자의 가출 사례 등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해 ‘사랑이 아닌 돈을 위해 결혼했다.’,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에 대해서는 ‘방구’, ‘파퀴벌레’라며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핫뉴스’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값싼 노동력 때문에 끌어온 무슬림들이 주객전도 식으로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복지 혜택은 다 누리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10년만 지나면 노르웨이꼴 난다.”는 감정 섞인 글을 남기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활하는 무슬림 15만명 가운데 10만명가량이 노동자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모임’,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외국인에 의한 피해자 모임’ 등 온라인 카페와 시민단체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 ‘다문화바로보기실천연대’ 등은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이 서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한국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억지 논리를 펴면서 반다문화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반다문화 시민단체들은 법무부나 고용노동부 등 정부기관과 국회의원 사무실에 항의 전화를 걸고 오프라인 집회를 열어 ‘다문화정책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와 다문화바로보기실천연대 회원들은 지난 4월 국회 김선동 의원이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모자법에 대해 “불법체류자 자녀들도 교육 및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법안 폐기를 요구하는 항의 방문을 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이들 단체 회원 수십명이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을 찾아가 재한 방글라데시인에 대한 범죄 예방 교육 및 엄격한 처벌과 관리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에 대한 편견과 자민족 중심주의가 갈등을 유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 이정혁 목사는 “일각에서는 조선족·동남아인에 대한 혐오감이 팽배해 있다.”면서 “아직까지 집단적 반발은 없지만 이들이 뭉쳐 집단행동을 보이면 걷잡을 수 없는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김기돈 사무국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주노동자 인권보호 활동을 하는 단체들에 항의하는 전화들이 크게 늘었다.”고 소개했다.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적응 교육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편견과 자민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큰 문제”라면서 “인권, 문화 등 교육을 통해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4) 민주화 무풍지대’ 중동 산유국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4) 민주화 무풍지대’ 중동 산유국

    어디에서도 소형차를 찾아볼 수 없고, 어디에나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곳.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선 중동을 휩쓸고 있는 민주혁명의 긴장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아랍의 봄’은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북아프리카로 가려던 관광객과 해외투자가 행선지를 자신들 쪽으로 돌리고 있다며 즐거운 표정을 숨기지 않을 정도다. 민주화 요구가 중동을 뒤흔들지만 걸프만 인근 산유국엔 먼나라 얘기일 뿐이다. ●“지혜로우신 술탄·왕세자 덕택에…” 아부다비의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 인터뷰하던 와엘 사브 회장의 블랙베리 전화기가 울렸다. 레바논 출신으로 아부다비 유력 가문 소유의 대기업인 마즈코프 전문경영인인 그는 잠깐 통화를 하더니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곧이어 문틈으로 하얀색 전통 복장을 입고 명품 선글라스와 시계로 치장한 남성이 보였다. 회장도 꼼짝 못하게 하는 이 남성은 바로 ‘왕족의 개인사무실 매니저’였다. 쉽게 말해 왕족의 재산관리인이다. 이들은 왕족의 재산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하기 때문에 왕족 못지않은 권세를 누린다. UAE에서 왕족이나 그들의 대리인들에게 사전 예약이란 없다.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온다. 인터뷰를 재개하려는데 왕족의 개인 고문은 양해도 없이 한국에서 찾아온 기자가 흥미롭다며 사브 회장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아부다비의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답변을 마저 이어가던 사브 회장의 말을 가로채더니 한참을 아랍어로 떠들어댔다. 말인 즉슨, “지혜로우신 우리 술탄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과 그의 아들이신 왕세자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빈 술탄 알나하얀의 지혜와 영도로 안 좋은 사태에서 벗어났다.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산유국 지배계급은 석유라는 생산수단을 독점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을 통제한다. 생산에 따른 재화 분배도 국가, 즉 왕족 차지다. 막대한 오일머니 일부를 국민들에게 배분함으로써 혁명의 싹을 잘라 버린다. 국민들은 석유 중심 경제구조를 대체하거나 도전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국민들은 “현명하시고 위대한 우리 지도자”만 외치며 왕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를 수십 년. 이제 걸프 산유국 국민들은 오일머니의 단맛에 취해 변화도, 개혁도 잊은 채 1년 내내 쇼핑과 휴가를 즐기며 ‘석유의 가을’을 누리고 있다. 적어도 UAE 515만명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꿈꿨던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는’ 공산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외국인들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가 건립하는 상가를 무료로 분양받거나 서민용 주택을 무료로 제공받는 등의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내국인’ 가운데 먹고사는데 곤란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은 물론 해외 유학까지 무상이고 취업도 쉽다. ●유학까지 무상 교육… 일 안해도 월급 정부 공무원으로 취업하기만 하면 곧바로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스폰서제도’ 덕분에 막대한 돈을 앉아서 벌 수 있다. 외국인 투자기업이 법인이나 지사 등을 설립할 때 반드시 자국민 스폰서를 지정하도록 한 덕분에 멋들어진 서명 한 번이면 해마다 막대한 배당을 챙길 수도 있다. 기야스 괴켄트 아부다비 중앙은행 수석경제학자도 스폰서제도를 정부가 세계화를 시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UAE 국민들은 인생의 쓴맛도 모르고 사회비판의식도 없다. 돈만 많고 예의 없는 족속이 돼 간다. 한 한국 기업의 현지 사무소 직원은 아부다비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목격한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직원이 몇 번이나 정중하게 재료가 다 떨어져서 팝콘을 팔 수 없다고 하는데도 내국인 젊은이는 ‘팝콘을 달라’고 소리치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몇십 분 동안 지치지도 않고 그러고 있더라. 과자 사 달라며 떼 쓰는 유치원생을 보는 것 같았다.” ●아이폰·블랙베리 함께 가진 젊은이들 두바이에 거주하는 한 한국인은 “이곳 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학생 가운데 누구도 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질까 걱정하지 않는다. 그건 언제나 자국 학생들 몫이기 때문이다.”고 귀띔했다. 코트라 두바이지사 박정현 과장은 “내국인들은 공공기관에 주로 취업한다. 근무시간은 똑같이 8시간이지만 근무 강도가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기관의 경우 채용 할당제 때문에 자국민을 채용한 뒤 월급은 그대로 지급하고 출근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유인 즉슨 일을 잘하지도 못하는 데다 열심히 하지도 않고 직장 분위기만 해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UAE 국민들 중에서도 지위 차이는 있다. 육체노동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가 그 기준선이 된다. 대부분 힘들게 일할 필요도 없고 돈도 넘쳐나니 이곳 젊은이들은 쇼핑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들은 어떻게 먹고 마시고 놀지 고민할 뿐이다. 대형 쇼핑몰이나 커피숍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앉은 젊은이들이 대낮에 몇 시간씩 수다를 떠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시욕도 엄청나다. 세계 최고층인 부르즈 칼리파,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아부다비 ‘그랜드 모스크’ 등 뭐든 세계 최고여야 직성이 풀린다. 한 국내 대기업 아부다비 본부장은 “주말이면 두바이 번화가는 두바이나 아부다비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 번호판을 단 고급 차량들로 넘쳐난다.”면서 “대부분 환락시설에서 질펀한 음주 가무를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아이폰과 블랙베리를 함께 갖고 다니는 내국인이 적지 않은데 사용법도 독특하다. 블랙베리는 이메일을 보내고 받는 데 쓰고 아이폰으로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즐기는 식이다. 심지어 번호가 똑같은 아이폰을 두 대나 들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한 여행가는 “대학생들이 자동차를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해 강의를 듣는 두 시간 내내 에어컨을 켜두곤 한다.”고 꼬집었다.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를 보여주듯 UAE 여성들은 대부분 눈이나 얼굴만 남기고 전신을 가리는 전통의상인 니카브를 입고 있다. 하지만 소비욕구에서는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천편일률적으로 검은색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끝부분에 화려한 금박 자수를 입혀 멋을 냈다. 특히 핸드백은 과시욕구를 충족시키는 필수품목이다. UAE는 최소 몇 백만원 하는 루이뷔통·구치 등 명품 핸드백의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외국인 노동자가 유일한 혁명 열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UAE의 돈줄을 쥔 건 내국인이지만 국가를 움직이는 건 인구 80%를 차지하는 외국인들이다. 한 한국 기업인은 “정부 고위 관료 중에도 외국인이 상당수”라면서 “심지어 경찰과 군대까지도 자신들은 관리자 구실만 할 뿐 실질적인 업무는 모두 외국인을 고용해서 운용한다.”고 전했다. 고위직 상당수는 영국계와 인도계가 차지하고 있다. 대학에는 이집트에서 건너온 학자들이 부지기수고 집단 거주지에 모여 사는 하층노동자 대부분은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출신들이다. 지금까진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군림하는 위치에 있는 내국인들. 하지만 석유자원이 고갈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지금처럼 흥청망청 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마땅한 노동 경험도 없는 이들의 생활상을 볼 때 앞으로도 UAE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한국기업 관계자는 “몇 년 전 이주노동자들이 며칠 동안 파업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하루도 안 돼 말 그대로 국가 시스템이 마비돼 버렸다.”면서 “UAE에서 민주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건 내국인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 몫이다.”라고 전망했다. 지난 1월에는 두바이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버스 여러 대가 파손되는 등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UAE 정부도 하층 노동자들을 잠재적 위협 세력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두바이에선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여 노점상 350명을 포함한 500여명을 체포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미국 사설군사업체 블랙워터 창립자인 에릭 프린스가 아부다비 왕세자 요청으로 정원 800명 규모로 용병 특수부대를 만들었으며 이들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시위 진압이라고 지난달 14일 보도했다. 개혁이 필요할 때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면 언젠가 남에 의해 개혁을 강요당하게 된다. 아부다비를 떠나기 위해 공항에 앉아서 언젠가 UAE 국민들은 자신들 땅에서 이방인이 돼 버린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옆자리에 한 청년이 앉았다. 흰색 전통의상을 입고 아이폰과 블랙베리를 함께 들고 있는 게 영락없는 UAE 사람이다. 그런데 머리엔 야구모자를 쓴 게 눈길을 끈다. 이 청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름한 옷차림을 한 노인에게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다. 노인이 괜찮다고 사양했다. 이 젊은이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UAE 젊은이답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글 사진 아부다비·두바이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3)부동산 거품 꺼진 두바이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3)부동산 거품 꺼진 두바이

    2009년 1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국영기업인 두바이월드가 채무지불유예를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투기에 가까운 부동산 거품과 내국인들의 불로소득을 보장하는 스폰서 제도,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삶 등 그때까지 모래 위에 기적을 쌓아 올리는 것으로 칭송받던 UAE 경제의 맨얼굴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 후 1년 8개월가량이 지났다. 과연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만난 엔조(Enzo) 그룹 아메드 알하나에이 회장은 6일 인터뷰에서 “솔직히 지금도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위기가 최고조였던 때와 비교해 40% 정도만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면서 그 근거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말했다. “정부와 은행들이 위기 이전보다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위기 전에는 100% 파이낸싱해줬다면 요즘은 70~80%만 해준다. 그것도 담보를 요구한다. 예전엔 공짜로 돈을 빌려서 부동산 개발하던 회사들이 요즘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력한 왕족이 소유한 복합기업인데도 은행에 대출을 신청할 때 심사를 받고 그나마 80%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은 적어도 이들 기준에서는 엄청난 규제다. 도대체 이전에는 어떠했기에 이 정도에 엄살을 떠는 것일까. 사이푸르 라만 걸프뉴스 비즈니스 에디터는 “예전에는 부동산 관련 규제 자체가 없었다. 부동산 매매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정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설계도만 있으면 부동산투자 대출이 100% 가능했고 매매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코트라 두바이 지사 박정현 과장도 “예전에는 100% 대출해줬는데 이제는 80% 정도만 가능하다. 대출규제가 엄격해졌다.”고 밝혔다. 알하나에이 회장은 정부가 발주한 공사는 큰 문제 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민간 쪽은 공사가 연기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250억 디르함에 이르는 메가 프로젝트 2개를 준비한 지 1년이 됐지만 공사 착공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금을 조달하는 동안 갖가지 변수가 생기면서 공사 금액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공사를 구간별로 쪼개서 진행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그는 “돈을 만질 수 있는 프로젝트임에도 은행들이 너무 소극적이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알하나에이 회장은 “아부다비 상업은행만 해도 현금 자산이 500억 달러나 된다.”면서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투자에 나서지 않는, 유동성이 부족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해외자본을 유치하기도 한다. 두바이는 10% 경제성장을 상정하고 부동산 개발을 밀어붙였다. 사실상 부동산 거품 붕괴는 예정된 운명이었던 셈이다. 중앙정부가 자리잡은 데다 부동산 거품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아부다비는 비교적 상황이 좋지만 두바이는 지금도 공실률이 50%가 넘는다. 밤에 부르즈 칼리파를 살펴보니 불이 켜진 곳보다 꺼진 곳이 더 많았다. 더구나 부르즈 칼리파 주변에 운집한 수많은 초고층빌딩 건설현장에 설치된 타워 크레인은 하루 종일 멈춰서 있었다. 두바이에 온 지 1년 8개월이 됐다는 한 한국인은 “저 타워 크레인들이 움직이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혀를 끌끌 찼다. 앞으로도 상황이 쉽게 좋아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코트라 두바이지사는 UAE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8%인 부동산 부문이 올해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대규모 공사가 끝난 매물이 계속 나올 예정이어서 추가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해에는 원자력발전소 발주 금액이 반영돼 역내 최고인 710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올해에는 전년 대비 절반수준인 340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2008년 708억 달러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건설경기가 얼마나 안 좋아졌는지는 지난해 12월 ‘아라비안 비즈니스’가 선정한 아랍권 부호 50위 순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1020억 달러였던 건설업계 부호의 자산 총합은 지난해 730억 달러로 약 28.4% 줄었다. 무분별한 부동산 거품을 방조한 것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절감한 UAE 정부가 꺼낸 대응책이 바로 부동산 대출규제와 자격심사 강화다. 아부다비 중앙은행 수석경제학자 기야스 괴켄트에 따르면 부동산 대출규제는 갈수록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8년 9월 이전에는 건물 시가의 98%를 은행에서 대출해줬다. 2%만 갖고도 98% 대출을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면서 “집을 여러 채 사놓고는 되팔아서 시세차익을 챙기는 일이 빈번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소비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두바이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 두바이몰에는 쇼핑을 하는 관광객들과 내국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소비와 관광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부문에서 유동성이 제한되면서 경제 흐름이 막혀 있는 게 지금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함부로 자금 흐름을 터줄 경우 또다시 닥칠지 모를 거품 붕괴 위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적절한 규제가 투자 유치에도 유리하다는 점을 UAE 정부가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 사진 아부다비·두바이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9)‘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9)‘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간디! 흔히 ‘인도 독립의 아버지’, ‘힌두의 성자’라고 불리는 ‘위인’. 그러나 청년 시절의 간디는 조혼이나 카스트 제도를 부끄럽게 여겼고, 육식을 금지하는 힌두교 전통을 낙후된 것이라 생각했던 식민지의 젊은 문명론자였다. 그가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인도의 대개혁을 위해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당연한 일. 이 촌뜨기 식민지 유학생은 식민 본국에 도착하자마자 ‘영국 신사’의 꿈을 꾸면서 새 옷을 맞추고, 실크 모자와 야외복과 고급 넥타이를 사고, 그것도 모자라 댄스와 프랑스어와 웅변술과 바이올린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에 빠진다. 물론 이런 부박한 충동은 금세 극복되었다. 그렇다고 ‘문명=개혁’에 대한 간디의 이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간디는 귀국 후 집안에서 자녀에게 체조 교육을 시키고, 음식을 개량하고 의복을 서구화했다. 그에게 영국은 문명과 이성의 대명사였고, 인도는 교화시키고 개혁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식민지 엘리트 청년은 스스로를 위대한 대영제국의 신민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샤 계급 출신으로 인도 사회에서는 흔하디 흔한 ‘식료품상’이란 뜻의 ‘간디’란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변호사 자격을 따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개업하기가 어려웠다. 집안의 꿈이었던 정치 관료로 출세하기란 더 난감해 보였다. 간디는 스물넷에 ‘잘나가는 변호사’를 꿈꾸며 남아프리카로 떠난다. 안타깝게도 날선 바지에 영국식 양복을 입은 변호사도 그곳에선 ‘갈색 피부’에 불과했다. 1등석 차표를 지녔지만 “같이 못 타고 가겠다.”는 백인의 말 한마디에 강제로 끌려나와 낯선 기차역에 버려진다. 최초의 충격! 그랬다. 간디는 당시 남아프리카에 5만명가량 존재했던 이주노동자, ‘쿨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쿨리들의 구심점이 되어 버린 간디. 이제 스물여섯 살 청년 간디는 ‘쿨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키는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결국 남아프리카의 나탈에서 인도국민의회를 결성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치가, 혁명가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간디는 23년간 남아프리카에서 그리고 귀국 후 조국 인도에서 죽을 때까지 정치 지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간디는 자신의 자서전에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 대영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전국적인 정치 지도자가 자신이 해 왔던 것은 정치적 실험이 아니라 “정신적 실험”이며 ‘모크샤’(자기 구원)를 향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징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학창시절에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기억이 없다.”거나 도둑질을 했을 때 깊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속죄를 했다는 식의 자기 성찰은 진지하다. 그러나 이런 특징을 모든 위인이나 성인의 특징이라고 말해버리면 간디는 그냥 ‘본투비(Born to be) 성인’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간디의 삶은 그런 게 아니었다. 매번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낯선 상황, 낯선 사건에 놓였고, 매번 그 현장에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영국에 협력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정치적 문제에서부터 육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일상적인 문제에까지 간디에게 쉬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 그는 책을 통해서 진리의 길을 발견했다. 그가 자발적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유학 시절에 읽었던 책들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시절 이후 그가 생산해야 하는 진리의 길은 매번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던 투쟁의 한복판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놀라울 정도의 윤리적 감수성으로 매번 창조적인 ‘진리 실험’을 한다. 소위 ‘비폭력 불복종’이라고 불리는 ‘사티아그라하’ 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사티아그라하’는 단순한 정치적 불복종, 지문찍기를 강요하는 영국 지배에 대한 정치적 저항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정신적 고결함을 파괴하며, 인간 관계의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폭력에 대한 불복종이었다. 그것은 영국을 향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맹세’이기도 했다. 나부터 한없이 고귀해지겠다는, 나부터 한없이 낮아지겠다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맹세. 간디의 진리 실험이 더해질수록 그는 유명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삶은 점점 더 간결해졌다. 그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만큼만 입었으며(윈스턴 처칠은 그가 “반쯤 벌거벗은 몸으로 총독 궁전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보자 기절초풍하며 “경악스럽고 역겹다.”고 했다), 가장 비천한 불가촉천민이 하는 일, 청소나 똥 푸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간디의 아내는 때때로 절망하고 울부짖었으며,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났다. 맏아들은 마치 아버지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말썽을 피우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명하고 단호했다. 비록 때때로 좌절하고 비틀거렸지만 그는 단 한번도 ‘사티아그라하’, 모든 폭력과 지배에 대한 그 위대한 불복종을 멈춘 적이 없다. 간디의 물레! 그건 간디의 상징이고, 인도 독립의 상징이고, 나아가 모든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해서 진부하기조차 한 물레! 그러나 간디의 물레, 그것은 단순한 ‘국산품 애용’ 운동이 아니다. 흔히 자치로 번역되는 ‘스와라지’ 역시, 단순한 정치 체제를 일컫는 말은 아니다. 그건 사람들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 인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형제, 자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정신적 힘을 의미했다. 도대체 인도가 왜 식민지가 되었는가. 물론 동인도회사의 지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그것 때문인가. 그 이면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들어온 영국 상인만큼 단숨에 돈을 벌고자 했던 인도인의 욕망과 협력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인도인의 마음에 뿌리박힌 영국 문명에 대한 동경, 물질과 화폐에 대한 욕망. 독립과 해방은 영국 통치가 끝나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영국적 삶의 방식 전체, 근대 문명 전체가 종식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물레’는 도구가 아니라 비전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힘으로 노동하고, 그 노동의 힘으로 정신적으로 자립하고, 그 자립하는 정신들이 상호호혜의 관계를 맺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이상적인 꿈. 그걸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나 대량생산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수공업들이 리바이벌되는 작은 마을들의 연합. 간디가 꿈꾼 인도의 미래였다. 마을 스와라지에 모든 사람이 환호와 갈채를 보냈을까. 아니다. 타고르는 ‘실을 잣고 천을 짜는 것’이 과연 한 민족의 구루가 전하는 메시지로 적절한가에 대해 간디에게 물었고, 간디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고칼레조차 간디의 ‘스와라지’ 이상을 어리석은 짓이라 비웃었다. 간디는 대답했다. “나는 원시적 방법 자체를 위해 원시적 방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시적 방법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는 것은 이 방법 말고는 할 일 없이 살아가고 있는 수백만 마을 사람에게 일자리를 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한 걸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네.” 절대적 빈곤 속에서 술과 아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존심과 고결함을 돌려주는 일. 상호 의존과 형제애를 일상에서 실감하는 일. 노동과 명상과 섬김이 함께하는 마을에서의 삶! 그건 어떤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간디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인도의 비전, 아니 인류의 비전이었다. 1947년 의회를 통과한 인도독립법령에 따라 8월 15일 영국의 인도 지배가 종식되었다. 어찌 보면 간디의 이상이 실현된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립의 날, 그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독립은 온갖 적대와 폭력 속에서 힌두와 이슬람이 결국 결별을 하는 분단 인도가 탄생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평생 간디를 추종했고 간디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되었던 네루는 간디의 스와라지 이상을 버렸다. 그는 중공업을 기반으로 한 ‘발전된 인도’를 열망했다. 간디의 머리에는 타고르의 시가 떠나지 않았다. “혼자 걸어가라!” 간디는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얼마 못가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투비 성인’으로 출발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영혼’으로 잠들었던 간디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간디의 출발점에 다시 서고 있는 게 아닐까. 혁명의 길과 구원의 길이 다른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 “하야 발언은 더 신중했어야…한기총 피눈물 나는 자정을”

    “하야 발언은 더 신중했어야…한기총 피눈물 나는 자정을”

    “한기총은 태어나면 안 될 조직이었습니다. 비정상적인 배경에서 탄생했지요.” 1일 오후 서울 구로6동 갈릴리교회에서 인명진(66) 목사를 만났다. 그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개신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맞서 생겨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태생적 한계를 환기시켰다. 이슬람채권법(수쿠크)에 대한 일부 기독교계의 반발, 불교 사찰에 들어가 기독교식 예배를 본 ‘땅 밟기’ 논란, 국내 지도에서의 사찰 표기 삭제 등 종교 간 갈등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인 목사는 최근 금권선거 논란 등으로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한기총 내부의 문제점까지 적나라하게 짚어 내려갔다. ●한기총 해체? 그건 아니죠 그러나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밝힌 ‘한기총 해체 운동’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했다. “그런 흠이 있다고 조직을 해체한다면 교회 안에 남아 있을 조직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스스로 문제를 인정하고 자정할 수 있는 내부 노력이 더욱 절실합니다.” 인 목사는 “난 평생 NCCK와 함께 살고 활동해온 사람이지만 어쨌든 한기총은 실질적으로 한국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양대 조직 중 하나”라면서 “(NCCK든 한기총이든) 피눈물 나는 자정 노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한기총의 경우 지금의 제도로는 금권선거를 안 하기 어렵고 교단 내부의 알력 및 분열을 조정하기 어렵다.”며 강도 높은 변화의 필요성을 주문했다. ●스스로 문제를 인정하고 자정해야 이슬람채권법과 관련해 조용기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 목사가 “대통령 하야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 견해를 밝혔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의견 표명은 할 수 있죠. 하지만 지금 개신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더욱 겸손하고, 더욱 조심스럽게 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 기독교에 대한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인 목사는 “지난 대선 때 일부 기독교인들이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공개적으로 나서면서 스스로 국민적 반감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면서 “이런 와중에 다른 종교의 교리와 종교행위 등을 문제 삼으며 반대하는 것은 오만하다는 반응 이상을 얻을 수 없다.”고 따끔하게 경고했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의 문제를 떠나) 국익을 위해 도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는 그는 “상식적인 종교인이라면 관련 법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힐 때도 국가와 민족, 국민의 이익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다. 인 목사는 “교리적으로 이슬람과 경쟁하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들어와서 형제 종교끼리 누가 더 백성을 잘 섬기는지 경쟁하고 누가 더 행복하게 하는지 경쟁하는 것이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라고 말했다. 한국 기독교의 근원에 대한 문제 제기도 서슴지 않았다. 인 목사는 “우리나라 기독교는 근본주의 개신교가 들어오면서 더욱 공격적이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으로 정착된 측면이 강하다.”면서 “이 정도로 (공격적으로) 하고 있는데도 그동안 종교 간 갈등이 그나마 심각하게 표출되지 않은 것은 이웃 종교의 너그러움 덕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목사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신교인이라는 이유로 사실 우리 기독교인들도 피해받고 있어요.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니 오히려 주눅 들었죠. 물론 자업자득의 성격도 있지만….” 그는 “기독교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기독교인이 대통령 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익히 알려졌듯 그는 한때 한나라당 직함을 갖고 있었다. 그것도 중진 의원들조차 꼼짝 못했던, 서슬퍼런 윤리위원장이었다. ‘차떼기당’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나라당에 ‘도덕의 외투’를 입혀 준 것.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검증위원회 설치를 밀어붙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모든 정치적 결점들을 대중 앞에 미리 까발려 예방주사를 맞게 한 뒤 오히려 대선 경쟁력을 높인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원칙과 가치 기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성 섬기기 경쟁이 종교의 자세 또한 그는 불교와 가장 가까운 기독교인 중 한 사람이다. 사찰에 가서 특별 법회 때 설교를 하거나 갈릴리교회로 스님을 모셔서 법문을 듣는 행사를 수시로 갖는다. 진보, 보수, 내 종교, 네 종교를 가리지 않고 급한 상황마다 그가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이유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 개성공단 억류 노동자 석방, 인도적 대북지원 재개, 불교와의 갈등 등 현 정부가 곤혹스러워하는 시기마다 그는 양측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인 목사는 “남북 관계가 경색된 뒤 인도적 지원마저 중단한 것은 기독교리에도 맞지 않는 냉혈한 짓”이라고 현 정권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그를 비롯한 여러 물밑 노력이 있었기에 연평도 사건 이후 중단됐던 대북 지원이 재개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만남 내내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되뇌었다. 군부독재에 맞서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노동운동, 재야운동, 환경운동, 이주노동자 인권운동 등 평생에 걸쳐 소외받는 이들의 편에 서고자 했던 이로서는 뜻밖의 자평이다. ●스스로 짠맛 내는 소금 이치 되새겨야 “다들 저를 보수라고 부르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죠. 뭐 요즘에는 ‘합리적 보수’라고도 부릅디다만.”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워낙 정치적으로 이뤄지는 세태를 겨냥한 자조 섞인 표현이기도 하다. “소금은 바깥에서 짠 기운을 더해서 짜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짠맛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든, 정치권이든 어디서든 소금의 역할을 강조하는 인 목사의 진심 어린 충고다. 어떤 절실한 개혁도, 그럴싸한 변화도 외부의 몫이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 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종교도, 정치도 마찬가지다. 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인명진 목사는…70·80년대 재야운동가 한나라 윤리위원장 지내 독재 정권 시절, 재야 운동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YH 사건(YH무역의 부당한 해고 통보에 여종업원들이 농성으로 맞섰던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을 겪으며 네 차례 감옥 생활을 했다. 1987년 6월 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을 지내는 등 1970~19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인 목사는 1945년(주민등록상으로는 1946년생)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7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전고를 나와 한신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8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목회 활동에 힘썼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맡아 한나라당 내부의 정풍운동을 벌이는 등 체질 개선을 시도했고, 이명박 정부 탄생에 기여하기도 했다. 2008년 5월 윤리위원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자유당에서부터 시작해 공화당·민정당·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으로 들어간 것을 두고 한쪽에서는 ‘변절자’라고 비난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좌파의 위장 취업’이라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1986년 서울 구로6동에 ‘노동자와 빈자(貧者)를 위한’ 갈릴리 교회를 세워 26년째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삶의 이력이 설명해 주듯 김홍진·이해학·이광선 목사 등 진보·보수를 폭넓게 아우르는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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