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産 ‘한국제품’ 11월 나온다
“군사분계선을 넘은 지 3분여 만에 개성공단 부지에 도착했습니다.그렇게 가까운 줄 몰랐습니다.”
북한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업체로 선정된 국내 최대 시계업체인 로만손 김광성 상무의 말이다.김 상무는 한국토지공사와 개성공단 입주계약을 체결한 다른 14개 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지난 16일 하루 일정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해 부지 조성공사 진행상황을 둘러본 결과,개성공단의 근접성에 무엇보다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60㎞,자동차로 1시간30분이면 닿는 개성공단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오는 30일엔 시범단지가 들어설 2만 8000평의 부지 준공식이 열린다.이어 공장건물을 짓고 생산설비 등을 갖추는 데 적어도 4개월여가 소요된다고 하더라도 이르면 11월 중순쯤 첫 생산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개성공단 어디까지 왔나
2000년 8월 현대와 북한이 개성공단 2000만평을 개발하기로 합의한 이후 북한은 개성지역에 주둔하던 1개 사단을 후방으로 옮겼다.이어 2002년 11월 개성공업지구법을 발표,개성지역을 경제특구로 공식 지정했다.개성특구 2000만평(공단 800만평,배후도시 1200만평)은 창원공단(공단 765만평,배후도시 1400만평)과 비슷한 규모이자 여의도 면적의 24배다.
남북 당국과 현대아산,한국토지공사 등은 그간 9개의 규정과 13개의 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국제경쟁력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 주력했다.
개성공단은 1단계 노동집약적 중소기업공단 100만평,2단계 세계적 수출기지 200만평,3단계 복합공업단지 500만평 등 3단계로 나눠 개발된다.
남북은 1단계로 개성시 봉동리 일대 100만평을 개발하며,남측은 50년간 토지임차료 및 지장물 철거비 등으로 북측에 16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북측 노동자의 임금은 월 57.5달러,연 임금 상승률은 5% 미만으로 합의됐다.부지 분양가는 평당 14만 9000원으로 정해졌다.이는 중국 선양의 11만9000원,상하이 45만원,베트남 탄투공단 33만 7000∼43만 6000원에 견줘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범단지에 이어 개발되는 100만평은 올 하반기 분양하며,모두 250개 업체가 2006년부터 본격 입주하게 된다.
개성공단 내의 기업설립 및 등록,건축허가 등 관리업무를 총괄할 관리기관은 다음달 말 공식 출범한다.김동근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이 최근 초대 이사장에 임명됐으며,관리기관 창설준비위원회가 29일 활동에 들어간다.
●왜 개성공단인가
개성공단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돼 남과 북 모두에 실질적으로 이익을 주는 상생의 협력사업이다.북한의 경우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한 이후 시장경제 마인드를 확산시키고 노동의욕을 고취시키는 등 경제개혁을 추구하고 있으나 자본과 기술이 절대 부족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북한은 조금씩 움직이면서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안으로 남한과의 경협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6·15 4주년 기념 남북토론회에서 이종혁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털어놓은 불만은 남북 경협에 대한 북측의 속내를 잘 말해준다.“우리는 중요한 군사전략적 지대들인 개성지구와 금강산을 남측에 뚝 떼어주고,특혜도 충분히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측의 무성의로) 개성공업지구 건설이 지지부진하다.”
개성공단 건설은 남측 중소기업들에도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다.“인건비와 물류비 부담 때문에 더이상 국내에서 버틸 수 없는 절박한 시점이었는데….” 시범단지에 입주할 15개 업체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로만손 김광성 상무는 “월 7만원의 낮은 임금과 물류비 절감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30% 정도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굳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나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신발업체인 삼덕통상 문창섭 사장은 “중국에서 신발봉재 부품을 생산해 한국으로 들여오려면 최소 12∼15일 정도 소요되지만 개성공단은 반나절이면 될 것”이라며 납기일을 맞추고,제품 생산시간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의류업체인 신원의 박성철 대표는 “우수한 노동인력을 활용해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체 생산량의 15% 정도를 개성공단 시범단지에서 소화하면서 연간 10억원 정도 생산비를 절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과제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수두룩하다.정치적인 것도 있고,기술적이며 절차적인 것들도 있다.
최고 난제는 역시 북한 핵문제다.개성공단 사업이 본격화되기 위해선 핵문제 해결은 필수적이다.다만 남북간 다양한 교류·협력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만큼 남북은 의지를 갖고 개성공단 사업을 꾸준히 진척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더욱이 핵문제가 해결될 경우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 기업들의 대북 진출이 예견되는 만큼 이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금강산관광이 관광객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일시 중단됐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또한 ‘자유로운 수시 통행’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공장 설비 등이 멈춰서는 등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기술자 등이 즉각 올라가 대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현행 규정에 따르면 방북승인을 받는 데 최소 3일이 걸린다.
경의선 도로를 오는 10월 개통하고,전력과 통신을 오는 9월말 연결하는 등 각종 남북 합의사항이 이행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김인철 통일안보 전문기자 ick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