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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부정권 인권탄압 실상 日 世界誌 15년 연재 / ‘T·K生’ 오늘 베일 벗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형규 목사)는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73년부터 88년까지 일본 진보월간지 ‘세카이’(世界)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칼럼을 연재,군부정권의 인권탄압 실상을 고발했던 얼굴없는 칼럼니스트 ‘T·K생(生)’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공개한다.회견에는 박상중 참여연대 공동대표,오재식 전 월드비전 회장,‘T·K생’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일본의 쇼지 스토무 목사,독일의 폴 슈나이스 목사,미국의 페리스 하비 목사 등 당시 국내외 민주화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 목사 등에 따르면 ‘한국통신’은 지 교수의 투지,세카이 편집장 야스에 료스케(98년 작고)의 치밀하고 강직한 성격을 바탕으로 70년대 국내와 일본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목회자들과 외국 선교사들의 믿음이 일궈냈다. 60년대 사상계 주간을 역임했던 지 교수는 당시 일본 도쿄대 객원연구원으로 부임했다가 알게 된 세카이 편집장 야스에 료스케를 만나 한국 실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그런 이야기를 글로 써 달라.”는 권유를 받고귀국을 포기하고 상당기간 가족을 서울에 둔 채 대학의 전임강의를 감당하면서 매월 빠지지 않고 글을 써냈다. 야스에 료스케도 ‘한국통신’ 칼럼을 싣기 위해 승진 기회를 사양하고 15년여간 편집장 자리를 지키는 뚝심을 발휘하면서 T·K생 신화 탄생에 일조했다. 그러나 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추적을 피해 칼럼의 재료가 되는 성명서 등 민주화운동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아 정리하고 설명을 붙이고 담배종이처럼 마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포장해 서울에서 도쿄까지 날라다 준 국내외 기독교 목회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T·K생은 불가능했다는 것이 박 목사의 평가다. 이종수기자 vielee@
  • 새달1일 개봉하는 ‘여우계단’ / “여우야 여우야” 피 부른 소원

    ‘1,2편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볼 만(?)하다.’ 새달 1일 개봉하는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이하 ‘여우계단’,제작 시네2000) 시사회에서 대체적으로 흘러나온,거친 감상이다.‘여우계단’은 두가지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1·2편과의 차별성과,신예 윤재연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것.3편이라는 딱지는 전편들의 후광에 못지않은 짐이었던 것이다. 뚜껑을 열어본 ‘여우계단’은 내용면에서 밀실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1편은 성적 만능주의 등 우리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으로,가장 환한 ‘광장’에 서 있었다. 학교풍경과 함께 동성애 등 민감한 사안을 살짝 건드린 2편에서 사적 담론으로 돌아갈 것을 예고했다면,3편은 질투와 시기라는 솔직한 내면세계로 확대경을 들이댔다. 작품의 배경은 예술고교.교내 기숙사로 가는 길에 28개의 계단이 있는데,“여우야 여우야 내 소원을 들어줘…”라고 소원을 빌면서 올라가면 29번째 계단이 보이면서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영화는 어둠 속에서 “여우야…”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함축한 이 내레이션은 고비마다 등장한다. ●첫번째 소원=우정 꿈 많고 말 많은 여고시절이니 너나없이 소원을 빌겠지만,작품을 이끄는 주요 소원은 세가지다.발레반인 소희(박한별)와 진성(송지효)은 단짝.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모차르트형인 소희는 친구들에게 ‘인기 짱’이다.그의 소원은 우정.“영원히 진성이 곁에 남게 해달라.”고 빌 정도로 진성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두번째 소원=질투 반면 노력파인 진성은 늘 소희에게 밀린다.진성의 ‘2등 콤플렉스’는 질투와 시기로 변하고,1명밖에 나갈 수 없는 콩쿠르를 앞두고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무리한 소원을 낳는다.하지만 여우계단은 그의 손을 들어준다.그와 실랑이하던 소희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입원하면서 진성은 티켓을 거머쥔다.이를 비관한 소희는 투신자살한다. ●세번째 소원=복수 세번째 주인공은 ‘뚱녀’로 불리는 미술반 혜주.그는 소희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모두 간직할 정도로 ‘소희 마니아’다.최고에 대한 동경은 병적일 정도의 집착으로 변질하고,소희가 죽은 뒤엔 “소희가 내 곁에 있게 해줘.”라고 기도한다.소희의 원혼이 그에게 씌면서 피를 부르는 복수가 시작된다. ‘여우계단’의 높이를 제일 숨가빠했던 사람은 윤재연 감독.전반부의 구성은 다소 느슨해 지루하지만,갈수록 밀도를 높여갔다.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조소실·지하작업실·기숙사 등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나,조소실에서 도망가는 진성의 발목을 잡는 소희의 원혼,계단에 묻혀 있다 살아 움직이는 원혼 등 곳곳에 배치한 ‘공포 장치’에 감독의 세심한 신경이 살아 있다. 소희의 원혼이 씐 혜주와,진성 소희 등 주요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신인답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이종수기자 vielee@
  • 외설 초월 에로틱 팬터지 한곳에 / 씨네큐브 오늘부터 9편 상영

    프랑스 작가 조르주 바타이유는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통해 ‘금기와 위반으로서 인간을 만들어 온 저력’을 보았다.바타이유가 찬사한 이 에로티시즘의 미덕은,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었다.영화라고 눈길을 안 줄리 있었을까. 영화사에서 금기와 한계에 도전한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영화제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다.무대는 서울 정동의 씨네큐브.영화기획사 백두대간(대표 이광모)이 25일부터 31일까지 주최하는 이 이색영화제는 ‘영화로 꿈꾸는 에로틱 팬터지’를 모토로 내걸고 ‘감각의 제국’등 9편을 상영한다. 상영작들은 그저 벗기는 걸로 승부하는 데서 벗어나,녹록지 않은 예술성을 자랑한다.당연히 대부분 아카데미상이나 베니스상 등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이다. 일주일간 성과 사랑이란 화두를 다양하게 변주할 이들 작품의 수위는 ‘적나라’에서 ‘점잖’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 백두대간측은 얌전하고도 따뜻한 드라마를 원한다면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나 레몽 장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책 읽어주는 여자’가,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섹스신을 보고 싶으면 ‘베터 댄 섹스’가 제격이라고 추천한다. 이밖에 성기를 자르고 연인을 살해한 일본의 실화를 바탕으로 극단적인 사랑을 감각적 영상에 옮긴 ‘감각의 제국’과,신문광고를 통해 만난 섹스 파트너에게 진실한 사랑을 느끼는 ‘포르노그래픽 어페어’도 기다리고 있다. 목소리는 달라도 메시지는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게 이번 영화제의 성격.하나하나의 작품이 솔직하거나 대담한 성을 묘사하면서도,인간의 감추어진 욕구와 상상력을 거침없이 펼치면서 예술로 승화시킨다.상영작과 상영시간은 씨네큐브 홈페이지(www.cinecube.net) 참조.(02)2002-7770,1. 이종수기자
  • 원로문인 11인 ‘가상 유언장’ 실어/문예지 ‘한국문인’ 특집

    “몇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땅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리라고,새로 짓는 내집 앞에 석류나무 두 그루만 심어주시오.석류꽃이 필 때 고향을 생각하기 위하여,석류가 익어갈 때 고향을 생각하기 위함이요,또 어머님을 그릴 생각입니다.” 시인 황금찬씨가 세상을 떠날 때에 대비해 남긴 글이다.격월간 문예전문지 ‘한국문인’ 8·9월호는 원로 문인들의 ‘가상 유언장’ 특집을 마련했다. 이 특집은 올해 유난히 많이 타계한 문인들의 대부분이 유언장이나 시비·묘비명에 새길 말을 남기지 않아 그들의 문학적 작업을 기리는 작업이 쉽지 않았던 점에 착안해 이철호 발행인이 마련한 것.서원순 사무국장은 “문학 후배로서 선배들의 문학 자취의 진수를 담기 위한 자료를 모은다는 뜻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국문인’은 원로문인들을 대상으로 200자 원고지 8매분량의 ‘가상 유언장’을 계속 특집으로 실을 계획이다.또 황금찬 시인처럼 시비에 새길 시를 보내오는 이도 있다.“네가 떠난/빈자리/하이얀 태양이/말이 없고/구름 길/겨울 파도소리”(시 ‘빈 자리’전문) 이밖에 문학평론가 김우종,추리소설가 정건섭,시인 조병무 강준형,수필가 안태현 육상구 정목일 이수화 김길웅 조명철 등의 유언장도 실었다. 이종수기자 vielee@
  •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 / 내면적 자아의 미스터리 추적

    ‘상실의 시대’로 우뚝 솟아 세계적 작가로 입지를 굳힌 무라카미 하루키가 신작 장편 ‘해변의 카프카’(문학사상사)로 한국 독자를 찾아왔다. ‘태엽 감는 새’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이 소설은 지난해 일본에서 출판돼 100만부가 팔리며 그의 인기를 다시 입증했다.“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고 의욕을 밝힌 것도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있다. 소설은 15세 소년 나(다무라 카프카)와 지능 장애인이지만 고양이와 대화가 가능한 특이한 능력의 노인 나카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작가는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의 사연을 촘촘하게 겯는다.그 과정에 다무라를 도와주는 오시마,다무라가 사랑하는 사에키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하루키는 이 등장인물들을 그리스 신화와 일본 고전 등의 얼개에 실어 현실인 듯 비현실인 듯 이야기를 이어간다.특유의 빠른 진행과 감각적 문체에 미스터리와 스릴러,팬터지 등의 내용을 적절하게 버무리면서 읽는 이의 눈길을 빨아들인다. 소설의 색깔은 두 가지다.다무라를 따라가면 오이디푸스 신화를 연상케 하는 성장소설로,나카타를 좇아가면 폭력에 대한 경고로 읽을 수 있다.당연히 두 사람이 떠도는 이유가 중요하다.다무라는 “너는 언젠가 그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언젠가 어머니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389쪽)라는 아버지의 저주에 가까운 예언과 싸우고자 집을 나왔다.하지만 비록 초현실적으로 다루었지만 아버지는 살해되고 그 피는 다무라의 옷에 묻음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시사한다. 또 어머니 같은 사에키의 과거 모습을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나머지 반의 ‘불길한 예언’도 실현된다. 나에키 노인의 삶은 폭력에 대한 비판을 은연중 보여준다.그의 기억을 잃게 하고 지적 능력을 멈추게 한 어릴적 사고가 폭력에 의한 것을 암시하거나,고양이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조각가 조니 워커(다무라의 아버지)의 부탁대로 조니 워커를 살인하는 장면 등은 폭력이 몸에 스며든 인간의 비극과 그에 대한 저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해변의 카프카’는 이렇듯 다양한 문제 의식을 품고 있다.하루키는 자기 작품이 어느 한 방향으로 읽히지 않도록 하려는 듯이 다양한 장치를 숨겨놓았다. 주인공 다무라의 나이가 15세인 것은 소년과 어른의 경계를 나타낸다.‘해변’이 육지와 바다의 접점이고 ‘카프카’의 일본음이 ‘가(可)후카(不可)’로서 두 가지 뜻을 담고 있음도 의미심장하다.뿐만 아니라 작품내용도 꿈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생사,선악,어른과 아이,남자와 여자,의식과 무의식 등의 경계를 다루고 있다. 문학평론가 권택영 경희대교수는 “삶의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함을 존중하고 타인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소설가 장석주는 “내면적 자아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시조와 詩의 경계 허물기/홍성란 시집 ‘따뜻한 슬픔’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뒤 다양한 시적 실험을 모색해온 시인 홍성란이 세번째 시집 ‘따뜻한 슬픔’(책만드는집)을 내놓았다. 시조를 현대적 의미로 재탄생시키려는 시인의 다양한 실험은 이번 시집에서도 한결같다.평시조를 비롯,연시조 사설시조 등을 시집 곳곳에 배열하면서 그 형식에 따라 시적 주제와 내용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나간다.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시조의 형식적 다양성을 통해 내면에서 일고 있는 확장과 응축과정을 매우 활달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또 시집 곳곳에는 시인의 ‘시’를 향한 치열한 장인 정신이 배어 있다.시는 삶을 바라보는 창이기도 한데,시인은 그저 시적인 감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안으로 삭이고 묵힌 뒤 고백한다.그 모습은 표제시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시인은 “차마,사랑은 여윈 네 얼굴 바라보다 일어서는 것,묻고 싶은 맘 접어두는 것(…)”이라고 노래한다.이어 누르다 누르다 감출 수 없게 되면 “삿갓등 아래 함박눈 오는 밤 창문 활짝 열고 서서 그립다,네게 그립다,눈에게만 고하는 것”에 비유한다. 시인이 상상하는 경지는 “농익어 으깨진 은행”(‘즐거운 가을’)이나 “시의 눈빛 환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형상화된다.그러기 위해서 시인이 겪는 산고는 쉽지 않다.“때로 혼자서 울 줄 아는 짐승”(‘사금’)같은 아픔을 슬쩍 보여주기도 하다가 “생의 7할을 험한데 택하여 에돌아가는 몸”이라며 “뒤척이는 새벽 나는 많이 괴로웠구나”(‘긴 편지’)라는 고달픈 육성을 들려준다. 형식은 물론 내용면에서 치열하게 시를 일궈가는 시인의 깨어있는 노력은 부박한 세태를 따끔하게 꼬집는 노래로 들린다. 이종수기자
  • 딸이 부르는 프랑스판 思父曲 /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소설 ‘나의 아버지’

    “두 해 전,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더 이상 삶의 의욕을 느낄 수 없었다.”(5쪽) 아버지의 잔영이 짙게 드리운 여자 주인공이 아버지를 회상하는 프랑스판 사부곡 ‘나의 아버지’(여백)가 나왔다.작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34)는 프랑스에서 최연소 철학교수자격시험(아그레가시옹)을 통과 하고 27세에 데뷔작 ‘쿰란’으로 프랑스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어느날 엘레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다는 편지가 날아온다.이어 엘레나는 아버지의 빈 자리를 떠올린다.그러나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이복 남매라는 것을 알고서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던 ‘광대한 제국’의 이미지는 흔들린다.더 기막힌 것은 헬레나가 이복남매의 어머니 이름을 딴 것이란 것. 하지만 이는 신화가 체화되기 위해서는 한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훼손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이복남매인 폴 M과 이탈리아 여행,어머니의 친구 마들렌느 S의 증언 등의 과정을 거치며 아버지에 대한 신화는 오히려 더 굳건해진다. 작가는 이 단순한 줄거리에,엘렉트라콤플렉스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묘사 등을 덧대 지적인 소설을 잉태했다.작품을 번역한 길해옥 경원대 교수는 “종교적이고 심리학적이며,철학적인 작품”이라며 “그 가운데 작가 자신에게 존재하고 있었던 무의식적인 원형이 총체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종수기자
  • 인간속에 도사린 폭력성의 한계는…/라스 폰 트리에의 새로운 실험 ‘도그빌’

    “역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다.” 새달 1일 개봉하는 ‘도그빌(Dogville)’을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초현실주의적 스릴러 ‘유로파’(1991)와 ‘브레이킹 더 웨이브’(1996) 등 잇단 문제작을 터뜨리다가 ‘어둠 속의 댄서’로 2000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며 정점에 올랐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그의 신작 ‘도그빌’은 그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영상언어를 실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내용과 형식 면에서 쉼없는,새로운 도전 의식을 보여준다.‘어둠 속의 댄서’‘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억압받는 여성상을 통해 순교적 이미지를 보여준 감독은 ‘도그빌’에서 인간을 차고 냉정한 대상으로 해부한다.상황에 따라 얼마나 인간이 광기에 사로잡히고 야만적이 될 수 있는가를 미세하게 포착한다.그는 이런 관점을 끝까지 밀어붙이려고 3부작을 구상하고 있는데 ‘도그빌’은 1부작으로 그 신호탄이다. 무대 형식도 파격적이다.마치 독일 연출가 브레히트의 연극 무대를 보는 듯,영화의 세트를 극도로 단순하게 처리했다.무대에 소꿉장난 하듯 듬성듬성 만든 집,분필로 선을 그어 나눈 8가구,대문도 없이 관객에 노출시킨 방,몇가지 가구와 벤치 등 최소한의 세트만 설치했다.상대적으로 인물들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만들고 상황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키워준다.또 꽃씨가 흩날리는 광경,그레이스가 사과트럭 뒤에 숨어 탈출을 시도하는 몽환적 장면 등에서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환상적 분위기를 한껏 높여준다. 작품 배경은 미국 로키산맥 기슭에 자리한 마을 ‘도그빌’.‘개들의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 자체가 주민들의 야수성을 암시하는 복선이다.공동체처럼 지내는 단촐한 산골마을에 갱단에 쫓기던 미모의 여자 그레이스(니콜 키드먼)가 흘러 들어오면서 복잡다단한 상황이 펼쳐진다. 주민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당연히 경계심.하지만 그레이스의 신비한 분위기에 반한 작가 지망생 톰(폴 베타니)의 제의로 2주의 통과의례 기간을 거치는 동안 그레이스는 헌신적 노력으로 주민들의 마음의 문을 열고 ‘도그빌리언’이 된다.그러나 경찰이 그레이스를 찾는 전단을 붙이고현상수배 사진이 붙으면서 쫓기는 사연을 알게 된 주민들은 그에게 더 많은 노동과 몸을 요구하는 등 노골적인 ‘구별짓기’가 시작된다. 감독은 그레이스가 몸과 마음을 착취당하는 과정을 점증법으로 묘사하면서 인간에 숨어있는 야만성을 하나하나 까발린다.정체를 모를 때는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동등하게 대했으나 쫓긴다는 신분을 알고는 차츰차츰 억압자로 돌변하는 인간 집단의 심리를 정교하게 그려가고 있다.2시간45분을 지루하지 않게 끌어가는 힘은 꿈꾸는 듯한 표정,인간의 광기에 지친 얼굴,복수의 화신 등으로 다양하게 변신하는 니콜 키드먼의 열연이다.할리우드의 전설적 여배우 로렌 바콜을 비롯, 제임스 칸,필립 베이커 홀 등의 노련한 연기도 작품을 빛내는데 한 몫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감독님 ‘컷’만 하지 말고 ‘OK’사인도 좀 내주시죠/박찬욱감독 ‘올드보이’ 촬영현장

    ‘15년 동안 응어리진 한을 풀기 위한 몸부림’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아트서비스 종합촬영소의 세트장에는 두 배우가 토해내는 울분과 이죽거림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열기의 주인공은 10월말 개봉예정인 영화 ‘올드 보이’(제작 쇼이스트ㆍ에그필름)의 오대수(최민식)와 이우진(유지태).이날 촬영장면은 평범한 샐러리맨인 대수가 영문도 모른 채 납치돼 사설 감금소에 갇혀 15년을 잃어버린 뒤 그를 가두라고 지시한 우진과의 첫 대면을 담은 것이다.대수가 우진의 머리에 장도리를 들이대고 자신을 가둔 이유를 대라고 다그치자 우진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리모컨을 보여주며 약을 바짝바짝 올린다. “(내몸에) 심장 박동을 도와주는 모터를 넣었어요.그거 넣을 때 의사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그 모터,리모컨으로 끌 수도 있게 해주세요.언제든지 자살할 수 있게요. 아유, 이거(대수)는 어떡하나.성질 같으면 당장(우진을) 죽여버리고 싶은데 그러자니 가둔 이유를 모르겠고,고문을 하자니 지가 먼저 죽어버린다고 그러고…”. 깐깐한 박찬욱감독은 야속할 정도로 “OK”대신 “컷”사인만 반복한다.장도리와 유지태의 머리만 클로즈업해야 하는데 각도가 맞지 않아 최민식의 머리가 겹친 것.잇단 농담으로 지친 스태프를 달래주던 최민식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팔을 뻗은 자세가 견디기 힘들었는지 “얼차려가 따로 없네”라며 돌아선다.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다.스태프들의 참을성이 시험받을 무렵,한 스태프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뭐 좀 먹이지”라는 박감독의 우스갯 소리로 한바탕 웃음잔치를 벌이며 스트레스를 날린다.여유도 잠깐.이번엔 리모컨의 배터리가 말썽을 부렸다.아침부터 진행된 촬영에 배터리가 가물가물 해진 것.특수 제조한 리모컨이라 배터리 교체가 쉽지 않아 전문가를 부르는 한편 남은 ‘반짝 전력’으로 촬영에 박차를 가했다.희비 속에 하루를 보내면서 7∼8분 분량을 필름에 담았다. 지난 5월 12일 크랭크인해 절반 가량 촬영을 마친 ‘올드 보이’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큰 틀만 빼면 거의 새 영화다. 특히 작품의 핵심인우진이 대수를 감금한 이유는 ‘함구령’을 내려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발설할 경우 계약금의 3배를 위약금으로 내게 하는 등 궁금함을 더하게 하는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파주 이종수기자 ‘올드보이’는 이런 영화 ‘올드 보이’촬영 도중 잠시 짬을 낸 자리.고생 속에 정이 들어서일까.박찬욱 감독과 배우 최민식 유지태는 서로를 치켜세우느라 여념이 없다. ●박찬욱 감독 스릴러 액션드라마이지만 생각보다 코믹한 영화가 나올 것이다.오대수가 증오의 화신처럼 원수를 찾아 다니지만 뜻대로 안풀리고 어긋난다.굳게 다문 입에 레게 파마풍의 부스스한 머리로 진지하게 복수에 나서지만 되는 일 하나 없이 좌충우돌 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최민식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다.박감독은 내가 멋있게 폼 잡는 꼴을 못보겠다는듯 망가뜨렸다.곳곳에 유머라는 폭탄을 숨겨뒀다.그렇지만 오락게임한 뒤의 공허함을 남기는게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퀄리티 있는 작품이다.눈과 귀가 재미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유지태 너무 많은 요소가 담겨져 있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도덕적·사회적 응징의 문제를 이야기하는게 아니다.수줍음 잘타고 내성적인 사람이 말 잘하고 씩씩한 사람을 갖고 노는 통쾌함 등 다양한 흥밋거리가 담겨 있다.복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를 한번쯤 생각하게 할 것 같다.
  • 창간99주년 특집-종이신문의 미래 / ‘on off’ 퀄리티 콘텐츠가 큰 흐름

    인터넷 매체의 약진과 영향력 강화로 인한 종이신문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사람이 적지않다.그같은 전망을 뒷받침하듯 최근 종합일간지들은 앞다투어 자체 인터넷 뉴스 시스템을 강화하는가 하면,기존 인터넷 매체와 제휴를 맺어 공동보조를 취하기도 한다.그러나 이같은 흐름과는 달리 종이신문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정보의 홍수’ 속에서 유용하고 진실한 정보를 선별해 심층적으로 전달할 매체는 아무래도 종이신문이라는 주장이 그 예다.인터넷 매체의 언론 진입이 일반화되고,갈수록 심해지는 인터넷 매체와 기존 언론매체간 경쟁 속에서 종이신문의 위상변화와,그에 따른 제 역할은 어떤 것인지 짚어본다. “종이신문이 곧 사라지리라던 일부 예견은 결국 거짓인 것으로 증명이 됐다.”(아서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2002년 5월 세계신문협회 연차총회 발언) “뉴욕타임스의 종이신문은 2018년 안에 마지막 판을 내게 될 것이다.”(딕 브래스 마이크로소프트 기술개발 부사장,2002년 5월 전자책 관련 회의) 낙관과 비관의공존.위에 인용한 말은 종이신문의 미래를 보는 대조적 시각을 보여준다.굳이 세계로 눈을 돌릴 필요도 없다.국내에서도 ‘종이신문의 미래’를 잿빛으로 보는 시선과 아직은 밝은 빛으로 보려는 입장이 공존한다.최근에는 종이신문과 각종 단체들이 앞다투듯 인터넷 매체를 강화하거나 창간하고 있다. ●종이 매체는 여전히 매력 유재천(65)한림대부총장은 “인터넷과 무신통신의 발전 속도와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기가 힘들어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여전히 종이신문은 그런 매체에 비해 휴대와 수송이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낙관론을 편다. 유 부총장은 “미디어 역사를 보면 새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매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에도 라디오가 살아남은 것처럼 현실은 다르게 전개됐다.”고 덧붙인다. 기자 출신으로 영국 레스터대학에서 인터넷 저널리즘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사승(42)박사는 “종이신문의 미래는 다의적이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역사와 전통,브랜드 파워 등 개별 신문사의 특성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라고 정리했다. 조금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한국언론재단의 황용석연구위원은 “머지않아 종이신문만이 신문의 전형으로 기억되는 시대는 지나갈 것”이라며 “신문은 종이라는 물리적 특성보다는 그것이 담고 있는 정보,즉 기사에 의해 그 성격이 규정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종이 매체는 특유의 매력으로 영속하겠지만 용지·배달비라는 고정비용에 대한 부담 등으로 메인 스트림을 형성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그에 따라 신문의 형태는 다양한 형태의 전자적 신문 즉 모바일,PDA,전자종이 등의 형태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대안이 필요하다 유재천 부총장은 “매체의 특성에 맞는 변신이 중요한데 종이신문의 경우는 중요한 이슈에 대한 심층보도와 탐사보도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어차피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와 속보로 경쟁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이끌 만한 깊이 있는 추적으로 눈길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유 부총장은또 다른 대안으로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들이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다 보니 정확하고 올바른 뉴스를 판별하기가 어렵다.”며 “이런 ‘정보의 홍수’시대에 종이신문이 유용하고 진실한 정보를 가려주는 ‘정보의 안내자’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천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인터넷신문 등 다른 매체와 경쟁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지 말고 미디어교육과 사회교육 개념과 연계해,신문을 읽지 않는 10대와 20대를 유인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사승박사는 구체적 대응방안으로 “신문의 퀄리티와 브랜드 파워의 강화가 중요한데 이 두 요소를 뒷받침하는 것은 기자들의 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지적하고 “기존의 뉴스 개념이라는 틀에 비춰보면 인터넷 등 새 매체의 기사는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종이신문의 프로페셔널리즘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용석연구위원은 종이신문은 숱하게 쏟아지는 정보 가운데 중요도에 따라 걸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이에 따라 “단순한 정보의 나열보다는 꼭 알아야 되는 사안을 중심으로 해석·논평·전문가 의견을 총동원하는 등의 긴 기사로 특화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종수 기자 vielee@
  • 눈과 귀로 만나는 우리문학/매월 ‘북 앤드 송’ 콘서트 대중음악·연극등 곁들여

    ‘문학과 대중음악의 본격적인 만남?’ 한국민족음악인협회(민음협·의장 오용록)가 28일부터 매달 마지막 월요일 오후7시30분 서울 홍익대 근처 소극장 ‘테아트르 추’에서 여는 ‘북 앤드 송(Book & Song)’ 콘서트는 눈과 귀로 문학을 조명해 대중화하려는 야심찬 무대다. 그동안 문학과 대중음악의 만남이 간헐적으로 무대에서 이루어졌지만 대부분 시 위주인 데다,가수들이 시를 노랫말로 부르는 수준에 그쳤다.이런 경향과는 달리 민음협이 주관하는 ‘북 앤드 송’은 한국문학의 명작을 대중음악과 연극 등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다.첫 손님은 ‘손님’의 작가 황석영.‘장길산’‘무기의 그늘’ 등으로 한국 리얼리즘문학의 봉우리로 우뚝 솟은 황씨를 초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중간중간 노래를 들려준다.밴드 북적북적은 황씨가 오랜 구금끝에 내놓은 장편 ‘오래된 정원’과,영화와 가사로도 소개된 ‘삼포가는 길’을 노래로 옮겨 부른다.또 가극단 금강의 배우 원창연과 김지연이 ‘오래된 정원’의 주요 장면을 짧은 2인극 형태로 연기한다.‘바위섬’‘직녀에게’ 등 서정성 짙은 가요를 불러온 김원중이 관객과 함께 노래부르는 시간을 마련하며 가수 손현숙도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노래와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다른 초청자로는 새달 ‘눈물과 사랑의 시인’ 정호승을 비롯,고은 조세희 신영복 윤동주 이육사 공선옥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이들과 함께 호흡할 가수로는 국악가수 장사익을 비롯,양희은 전인권 등 내로라하는 대중가수들과 김가영 김원중 손병휘 등 민중음악 계열 포크뮤지션 등이 들어있다. 공연을 연출한 가수이자 작곡가인 김현성은 공연에 대해 “문학에 담긴 감동적인 메시지와 음악의 멜로디를 결합하는 독특한 자리”라면서 “이를 통해 문학과 음악이 함께 숨쉬는 상생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아름다운 순간과 소통 형상화/소설집 ‘우체부가 없는 사진’ 펴낸 남상순

    “스무 살을 고비로 자기 안의 문제와 자기 밖의 문제를 바꾸고 뒤섞게 마련”(‘죽음의 무늬’)이라고 믿었던 여대생이 있었다.그는 학교 운동권의 총책을 선택했고 고난의 80년대를 정면 돌파했다.그러나 89년 동구권 몰락 등으로 이념의 좌표를 잃은 뒤 맛본 좌절은 너무 컸다.2년 동안 숱하게 산을 오르내리면서 곁가지 다 날린 온전한 자기와 만났고 글쓰기에서 새 삶을 찾았다. 93년 장편 ‘흰 뱀을 찾아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남상순(40).95년 장편 ‘나비는 어떻게 앉는가’(민음사) 이후 침묵을 지키던 그가 8년만에 소설집 ‘우체부가 없는 사진’(문이당)을 냈다.인터뷰는 ‘공백’을 화제로 시작했다.. “사는 게 머물러 있다 보니 글도 시덥지 않았습니다.저는 관계 속에 갈등을 빚으며 삶의 의지를 치열하게 느낄 때 글에 대한 욕구도 왕성해지거든요.다행히 누르고 삭인 감정이 쌓여서 최근 장편의 초고도 탈고했습니다.” ●문장마다 치열한 글쓰기 여성의 삶에 교묘하게 침투해 옭아매는 사회제도의 폭력적 징후를 담았다는 장편을 주위사람에게 보여줬더니 ‘통속적’이라는 지적에 충격(?)을 받고 새로 쓰는 마음으로 가다듬고 있다고 한다.그러고 보니 이번 작품집도 쉽게 써내려 가지 못하고 한 문장마다 탈진할 정도의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미리 치밀하게 준비해 들어가는 게 아니라 큰 얼개만 잡아놓고 돌발 상황에 대비합니다.길을 가다 보면 낯선 이미지와 대면하기 십상인데 그 경험에 충실하려고 비워두는 거죠.그러고도 모자라 첫 탈고 뒤 이제까지는 연습이라는 듯 다시 쓰는 스타일입니다.” 이번 작품집은 그 동안 마음 속에 꾸욱 누른 불덩어리 같은 9편의 단편을 모은 것.표제작은 “사람과 소통하는 수단”이라는 그의 소설론이 잘 배어 있는 작품.소통의 단절이 주는 절망감에 방황하는 남녀 주인공의 모습을 탁월한 이미지로 빚었다. ●불덩어리 같은 단편 9편 수록 또 자전적 요소가 강한 ‘죽음의 무늬’와 ‘악연1·2’는 80년대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후일담의 모습이 드문드문 엿보인다.“시작하기는 쉬워도 그만두기는 힘들다.”는 작품 속 고백처럼 희푸른 20대를 다바쳐 80년대와 맞서온 그가 들뜬 몸살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지론을 입증하듯 그의 후일담은 감상주의에 젖기 보다는 그 경험의 직접성에서 한발짝 떨어져 인간의 본질 문제로 접근한다.학원가 정보사찰(프락치) 문제도 직접 메스를 대기보다는 프락치 요원에게 독립적 인격을 부여한 뒤 운동권인 주인공과 빚는 갈등 속에 그리는 것(‘악연 1’)이 그 예다.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렸다가 그것과 함께 소통하는 것,그것이 모든 사진 작가들의 꿈일 것입니다.”(70쪽)라는 작품 속 묘사는 그가 꿈꾸는 소설을 대변하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식민시대 문인 51명 글밭 산책/방민호 선집 ‘모던 수필’

    “나는 옛 선배들의 산문들에서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었다.내 삶이 고통스럽고 내 마음이 공허에 빠졌을 때 그 ‘낡은’ 지면들은 내게 한 가닥 위안이었다.” 소장 평론가 방민호(38)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서 엮은 ‘모던 수필’(향연)은,문학이란 외길에서 불변의 지혜를 찾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그가 식민지시대 문학인 51명의 산문 91편에서 캐낸 것은 “사랑과 돈과 술”이 아니라 그에게 “살아갈 힘”이었다. ‘모던 수필’의 미덕은 작가의 세계관을 막론하고 다양한 경향의 작가를 포함한 점이다.강경애 나혜석 등 여류 예술가를 비롯,김남천 임화 박영희 이기영 지하련 한설야 등 카프(KAPF·조선프로예술가동맹)계열의 작가,이광수 김기림 이태준 정지용 등 당대의 문장가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인들을 아우른다.1부는 생활의 감각에 관한 것.보슬보슬 내리는 눈 꽃송이를 감상하느라 바늘에 찔리는 장면(강경애),평양 냉면에 담긴 갖가지 풍속과 정경(김남천),그믐달 예찬(나도향)을 지나다 보면 글밭 산책길은어느새 별을 보고도 흥분과 감동을 잊은 세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김동인)와 만난다.이렇듯 ‘모던 수필’의 글들은 읽다 보면 세월의 차이를 잊을 만큼 살아 숨쉰다.이 생생함은 작가들이 생활인으로서 느끼는 애환(2부),서구문화의 급작스러운 유입으로 나타나는 문화의 변화에 대한 단상(3부)에서 명징하게 나타난다.또 요절한 문인 6명에 대한 기억과 조사,예술에 대한 성찰을 담은 4부는 울림이 크다.모더니즘의 정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태준의 유명한 표현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에서 글 읽는 맛은 정점에 이른다. 이종수기자
  • 젊은이 풍속도 재치있게 그려/김종광 소설집 ‘짬뽕과‘

    ‘제2의 이문구’라 불릴 정도로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젊은 작가 김종광(32)이 짧은 소설집 ‘짬뽕과 소주의 힘’(이가서)을 냈다. 이 소설집은 아주 짧은 콩트에서부터 형태를 제대로 갖춘 단편 3편 등 모두 27편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글이 담겨,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이전 소설에서 보여준 의뭉스러운 글쓰기와 구수한 사투리는 여전하다.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도회적 감성을 글로 옮기려는 시도다.특히 1부 ‘힘차고 빠르게 읽기’에 담은 9편의 콩트는 젊은이들의 풍속도를 재치있게 그렸다.학원강사들의 월급날 풍경을 다룬 ‘포커’,작가가 우연히 목도한 화장실에서의 사랑나누기 장면 등을 익살스럽게 풀어낸다.이어 작가는 2부 ‘조금 빠르게 읽기’,3부 ‘보통 빠르게 읽기’,4부 ‘깊이 음미할 정도로 천천히 읽기’ 등의 부제를 달아 다양한 무늬로 변주한다. 이 가운데 김종광이 자신의 장기를 맘껏 발휘한 작품은 표제작.대학입학부터 소설가가 되기까지 아버지와 빚는 갈등(다분히 작가의 내면 풍경이 느껴진다)을 다룬 ‘짬뽕과 소주의 힘’.돈 안되는 소설을 쓰는 학과를 지원하려는 아들이 마뜩찮지만 보기좋게 합격하고 그 어렵다는 소설을 기가 막히게 빚으면서 쭉쭉 뻗어가는 모습에 흡족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훈훈하게 그린다. 한편 지난 14일 저녁 마련한 출판기념회에는 소설가 한창훈 윤성희 이명랑 등 동료 문인이 참가해 덕담을 건넸다. 축하세례에 김종광은 “술 안마시면 하루에 원고지 50장을 두들겨도 생활이 빠듯하다.”며 전업작가의 고충을 들려주었지만,행복해 보였다. 이종수기자
  • [시네 드라이브] 노출장면 많다고 흥행보장 되나요

    “이제 벗는 것 자체보다는 어느 배우가 벗는가가 중요하다.” 최근 영화인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다.여기엔 인터넷의 발달로 음란 메일에 이골이 난 관객의 눈길을 ‘노출’ 그 자체로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이는 최근 과감한 노출이나 정사신으로 화제가 된 영화들이 흥행에서 큰 재미를 못본 데서도 입증된다. 가까운 예로 제작사 기획시대가 ‘작가주의’ 비디오에로물로 유명한 봉만대감독을 스카우트해 만든 ‘맛있는 섹스,그리고 사랑’을 들 수 있다.‘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깔끔하게 잘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은 저조했다(8일까지 전국 20여만명 관람).그 배경엔 공포물이 강세를 띠는 여름철이라는 배급시기 등의 문제가 있지만 여주인공 김서형이 조연급이어서 인지도가 낮았다는 평가도 있다.‘누가 벗는지가 관건’이란 말을 보여준 셈이다. 근래 노출로 화제가 된 다른 영화의 운명도 엇비슷하다.에로물은 아니지만 밀도있는 노출로 입에 오르내린 고감도 멜로 ‘밀애’(변영주 감독)나 노인들의 성문제를 여과없이 다루었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뒤 논란 끝에 18세 이상 등급을 받은 ‘죽어도 좋아’(박진표 감독)를 떠올릴 수 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노출’자체로 어느 정도 재미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큰 변화다.여균동 감독의 ‘미인’이나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재미를 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할리우드도 우리와 상황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지난해 미국 흥행순위 20위 안에 든 영화 가운데 30년 만에 처음으로 성인용 영화가 단 한편도 들지못한 것도 에로영화 자체의 경쟁력이 낮음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이제 벗기는 것 자체보다는 컨셉트를 잘 구성해야 하다는 소리도 들린다.단순하게 ‘노출’로 승부하기보다는 다른 장르를 혼합해야 한다는 것이다.‘원초적 본능’이 스릴러를,‘색즉시공’이 코믹을 결합해 성공한 사례를 벤치마킹하자는 말이다. ‘오아시스’의 여주인공 문소리의 노출 신이 가득한 ‘바람난 가족’(새달 14일 개봉)이 어떤 결과를 거둘 지도 관심을 모은다.이종수 기자
  • 거액 들여 새로 만든 童心세계/16일 개봉 ‘피노키오’

    100여년 동안 동심을 사로잡은 동화 ‘피노키오’.웬만한 사람은 줄거리를 욀 정도로 익숙하고,이미 TV드라마와 영화로 숱하게 각색된 이 동화를 다시 영화로 만들었다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더구나 지난 99년 ‘인생은 아름다워’로 아카데미상 3개부문을 석권하면서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로베르토 베니니가 의욕을 보인 주역이라니 한층 더 눈길을 끈다.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1883년 탄생시킨 피노키오는,1940년 월트 디즈니가 만화영화로 만든 이후 지금까지 20여편으로 거듭났다.따라서 베니니가 각본·주연·감독한 영화 ‘피노키오’(Pinocchio·16일 개봉)를 보는 방식은 베니니만의 개성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이를 의식한듯 베니니도 무대 세트와 분장 등에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이탈리아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인 5000만달러를 들여 8개월간 준비끝에 대형 세트를 만들었다.관객들을 환상적인 분위기에 몰입시키기 위해 작품속에 ‘장난감 나라’ 뿐만 아니라 길이 20m의 거대한 상어 모형도 만들어 피노키오의 아버지제페토를 삼키는 장면을 연출했다. 주인공인 피노키오의 분장과 의상은 나무인형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공을 들였고,요정과 제페토의 의상에 들인 세심한 주의도 읽힌다.도입부도 베니니식으로 장식했다.수백마리의 흰쥐가 이끄는 마차에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푸른 머리카락의 요정이 등장하면서 시작을 알리는 것이나,언덕길을 오르는 수레에서 통나무 하나가 굴러 떨어진 뒤 살아 움직이는 장면 등이 새롭다. 그러나 그 뿐이다.베니니가 해석한 피노키오에는 독창성이 보이지 않는다.또 그의 우스꽝스러운 연기도 동심을 빨아들이기에는 힘이 달려 보인다. 이종수기자 vielee@
  • 컨페션 - PD와 킬러 두얼굴의 사나이

    이중생활은 그 자체로 흥밋거리다.묘한 대조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처럼 흡인력과 상상력의 자장을 넓히며 다양한 작품의 소재가 돼 왔다. 새달 24일 개봉하는 ‘컨페션(Confession of danger mind)'도 ‘호기심의 리스트’에 들어있다. 이 영화는 뚜껑을 열기 전부터 영화 외적인 요소들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미남 배우 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에다 드류 베리모어,줄리아 로버츠 등 호화 캐스팅으로 눈길을 끌었다.게다가 미국 방송사에서 쇼 프로그램의 신기원을 연 척 배리스의 자서전 ‘위험한 마음의 고백: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토대로 한 작품이란 것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또 ‘존 말코비치 되기’로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면서 스타덤에 오른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을 맡아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화제는 제작 이후에도 이어져 지난 1월 미국에서 개봉된 뒤 10주 동안 롱런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남자 주인공 샘 록웰은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흥미로운 요소는 쇼프로 프로듀서와 CIA 비밀암살요원 생활을 동시에 하는 주인공의 삶.여자 꼬드기는 데 몰두하다 TV프로듀서(PD)가 된 척(샘 록웰)은 1963년 ‘데이트 게임’(우리의 ‘사랑의 스튜디오’같은 짝짓기 프로의 원조)을 방송사에 제안한 상태.어느 날 CIA요원 짐(조지 클루니)이 접근해 킬러가 되라고 권유하자 흥미를 느끼고 훈련을 받는다.첫 살인 임무를 마치자 공교롭게도 그의 쇼 프로그램의 인기가 폭발한다. 이후 영화는 쇼프로그램 PD와 킬러로 줄타기하는 짐의 두 가지 삶을 따라간다.영화는 그 과정에서 영화 속의 쇼 프로그램처럼 자신의 삶도 쇼처럼 누리고 간 척의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또 ‘데이트 게임’과 전국 노래자랑을 연상케 하는 ‘땡 쇼’등 6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모습도 슬쩍슬쩍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는 ‘소문난 잔치’다.극적인 반전도 드물고 이중 생활이 주는 긴박감도 희미해 지루한 인상을 준다.또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의 소더버그 감독 식의 장면 전환,예컨대 카메라를 슬쩍 돌리면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신선한 느낌보다는 트릭처럼 보인다.게다가 줄리아 로버츠의 역할은 카메오에 가까울 정도여서 홍보용 캐스팅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종수기자 vielee@
  • ‘돈키호테’ 조선선비 위풍당당한 가출기 / 장편 ‘인간의 힘’ 펴낸 소설가 성석제

    조선 중기에 네번의 가출을 시도한 양반이 있다면?그것도 기녀와 눈이 맞아 술집에 진을 친 것도 아니고 여염집 아낙과 정분이 나 야반도주한 것도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작가 성석제)라면 그는 당대의 문제적 인물임에 틀림없다.당연히 ‘최고의 이야기꾼’의 한사람인 성석제의 민감한 ‘창작 레이더’에 걸렸다. 전통적 해학미를 탁월하게 빚어온 소설가 성석제가 네번째 장편 ‘인간의 힘’(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지난해 계간 ‘문학과 사회’ 봄호부터 가을까지 연재한 것을 대폭 보완한 것이다. ● 자아찾기 처절한 몸부림 소설의 모티프는 10년전 작가가 본 ‘오봉선생 실기’.전형적 시골양반의 일대기를 다룬 이 조그만 텍스트에 작가는 나름의 상상력과 날카로운 풍자를 불어넣어 새 작품을 탄생시켰다.작가는 ‘점잖아야 할 선비’대신 양반가의 서출이자 ‘톡톡 튀는 선비’ 채동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엄격한 신분사회의 지위 역할을 뒤집고 있다.나아가 그의 ‘네번의 가출기’ 형식을 빌어 명분에만 매달리는 당시 사회의 허상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딱딱해질지 모를 이런 내용도 성석제의 입심과 해학미를 거치면 입가에 웃음이 절로 번진다.웃음의 전도사 채동구는 흥분을 잘하고 그때마다 세자 길이의 환도를 뽑는 돈키호테같은 인물이다. 광해군을 물리친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도성을 내준 뒤 의병을 모은다는 소식만 듣고서도 흥분해 시작한 그의 첫 가출은 정묘호란,병자호란 등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되풀이된다.구국의 신념으로 의연하게 나서지만 실속이라곤 하나도 없다.대개 거지꼴로 돌아와 형이나 문중으로부터 “밥대신 욕부터 먼저 먹는” 채동구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했을 뿐”이라며 당당하다.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돌출행동은 마치 돈키호테를 연상케한다. 예를 들어 이괄의 난 소식을 들은 뒤 “동구는 환도를 칼집에서 뽑으려 하늘을 향해 외쳤다.‘가자꾸나,바람아.때가 왔다,구름아.내 뒤에서 나만 밀어라.’그런데 환도가 녹이 슬었는지 종내 칼집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84쪽)는 묘사는 성석제식 해학이 잘 녹아 있다. ● 조선사회 허상패러디 그러나 그 속에는 결코 가벼이 날려버릴 수 없는 감동이 묻어 있다.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의 실현을 위해 온몸으로 싸우는 채동구의 모습은 ‘서글픈 웃음’을 자아낸다.무엇보다 당대의 가치관에 부응해 출세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허위나 허세를 보고 참지 못하는 모습은 작가의 말대로 ‘뜨거운 순정성’을 느끼게 한다.결국 작가는 마지막 가출에서 청나라 장수에게 호통을 치며 조선 선비의 기개를 보인 채동구에게 해피엔딩의 손을 들어준다.성석제는 잇단 역발상으로 통쾌한 웃음을 자아내는 주인공을 통해 “맹목적 충성과 과시적 공리에 매달렸던” 당시 지배계층의 허세를 꼬집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길에서 캐낸 서민들의 애환 / 공선옥 기행산문집 ‘마흔에‘

    “세상에는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동족임에도 어쩐지 다른 시대의 다른 나라 사람 같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사는 모습 자체로 울컥 목메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작가 후기) 문만 나서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 서민들의 애환을 주로 형상화해온 소설가 공선옥이 첫 기행산문집 ‘공선옥,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말)를 내놓았다.그가 나선 길에는 풍경과 서정이 조화롭게 잘 스며있다.그는 여행을 하되 그저 경치만 본게 아니라,발길 닿은 곳마다 배어있는 서민들의 한숨을 불러내 특유의 감성으로 어루만지고 있다. 경북 봉화 화전민 마을,서울 인사동,전북 무주,경북 안동 하회마을,전남 여수 화양반도 등 그가 가는 길마다 묻혀있는 인간의 이야기들을 고구마 캐듯 주렁주렁 건져올린다.그 여정에서 가리봉 오거리에 모여사는 연길의 조선족 우씨·최씨의 을씨년스런 삶이 조명되고 화전민들의 짠한 가난과 슬픔 도 떠오른다. 공선옥의 글이 주는 감동은,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에서 나온다.그는 이 땅 굽이굽이에 서린 애환을 그리되,관찰자로 묘사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오버랩시켜 처연하게 되살린다.또 창원으로 가서 분신노동자 배달호씨의 삶을 “고향사람·피붙이”같은 살가움을 실어 조명한 대목은,그의 글이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지를 잘 보여준다.여기에 사진작가 노익상·박여선의 렌즈가 포착한 주옥같은 풍경과 사람들의 땀냄새가,글 읽는 맛을 더해준다. 이종수기자
  • “고문받다 반신불수된 아버지 못잊어”회고록 ‘흰 그늘의 길’ 출간한 김지하

    “김민기나 채희완 등 후배들이 ‘요즘 젊은 친구들은 우리 시절의 사건은 알지만 내면세계는 너무 모른다.’면서 ‘형이 죽은 뒤 정리하기 힘드니 미리 써두라.’라고 재수없는 소리(웃음)를 해 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시인,민주화 운동가,사상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시대를 뜨겁게 살아온 김지하(본명 김영일·사진·60)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학고재)이 나왔다.91년 동아일보에 ‘모로 누운 돌부처’라는 제목으로 일부 발표하다가 중단,2001년 9월부터 지난 6월30일까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나의 회상,모로 누운 돌부처’로 연재했던 것이다. 7일 서울 소격동에서 만난 그는 “기억이 물흐르듯 흐르지 않고 가치론적으로 재구성되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고 폭발하고 망각되기도 하는데 이런 과정을 표현하는 게 힘들었다.”며 “1,2권까지는 중심을 갖고 밀고 갔고 3권에 이르러 전략적으로 여기저기 중심을 흩어놓았는데 ‘혼돈 속의 중심’을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흰 그늘’이라고 상징적으로집약한 회고록은 가족사와 출생·청소년 시절과 4·19(1권)를 지나 반독재투쟁과 수배·투옥시절(2권),출옥후 동학·생명·환경사상 등 동서고금의 창대한 사유체계를 접한 경험을 담고 있다. 그 속엔 ‘보석 같은 국문학자’ 조동일,지하라는 필명을 지은 김현,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과의 만남이 나온다. 가장 강렬했던 기억을 묻자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고문을 받다가 반신불수가 돼 실직한 일,붉은 악마와 촛불시위를 보고 흥분해서 직필로 원고를 써내려간 것,시집 ‘검은 산 하얀 방’을 낳기도 한 눈부심과 쓰라림이 공존하는 흰 그늘(白闇)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경험”을 꼽았다.기억나는 사람으로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들었다. 간담회가 끝날 무렵 한동안 세간의 궁금증을 불렀던 ‘애린’의 정체에 대한 질문을 받자 3가지 비유로 에둘러 갔다.“애린은 7년 동안 독방에 갇혀 있던 제가 잃어버린 부드러움의 상징일 수도 있고,프랑스 공산주의 시인 루이 아라공이 레지스탕스 활동 때 만든 지하유인물처럼 애잔함으로 나치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려는 ‘포위하는 투쟁’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또 원주에서 술마시던 욕쟁이 늙은 마담이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전처의 아들을 보살피는 넉넉함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글 사진 이종수기자 vi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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