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종수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아리랑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베를린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LG그룹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048
  • “무사다운 삶의 방식 보여주고 싶었다”/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주연 톰 크루즈

    “다른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종차별과 국가간 갈등이 발생하는데,이 영화를 통해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탑건’ ‘레인 맨’‘미션 임파서블’‘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로 자리잡은 톰 크루즈가 이번엔 ‘사무라이’에 도전한다.영화 ‘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온 그는 20일 오후 1시 일본 도쿄 롯본기(六本木)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촬영에 얽힌 뒷얘기들을 들려주었다. “각본을 보고 ‘무사도(武士道)’에 매료돼 촬영 1년6개월 전부터 니오베 이사조의 소설 ‘무사도’를 거의 매일 읽었는데,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게 되었고 애정이 커졌다.”면서 “충성심과 영웅의 용기를 보여준 그들은 한마디로 예술가이자 철학자”라고 격찬했다. 1876년 사이에 일어난 사무라이의 난을 모티브로 만든 이 영화는 메이지(明治)유신시대를 배경으로 봇물처럼 몰려드는 근대화 바람 앞에서 일본의 전통정신을 상징하는 사무라이들이 저항하고 사라져가는 과정을 미국인의 눈을 통해 그린다. 톰 크루즈는 남북전쟁에 참전한 뒤 용기와 명예를 강조하는 군인정신이 퇴조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국 대위 알그렌으로 나오는데,일본 왕의 요청으로 일본에서 근대식 군대를 훈련하다가 거센 서구화 물결에 밀려 와해되는 사무라이 가치관의 대변자인 최후의 사무라이 가쓰모토(와타나베 켄)의 무사도 정신에 매료돼 그와 함께 구식 군대를 이끌고 왕실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다. 영화에 쏟은 그의 열정은 여러 군데서 묻어난다.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남북전쟁과 인디언전쟁,메이지유신 등 관련 서적을 탐독했고,직접 제작 과정에도 참여했다.또 검도·격투기 등을 8개월 동안 훈련하여 두개의 검을 동시에 휘두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벌이는 전투신을 소화하기 위해 몸무게를 12kg 늘리고 1년동안 근육 운동을 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낮추고 몸의 중심을 잡는 동작을 보여주었다.다른 주연인 와타나베와 함께 대결신을 찍다가 자신의 실수로 머리를 맞을 뻔한 장면을 실연하기도 했다. 회견장에는 등 일본와 외국 취재진 600여명이 몰려 영화에 쏠린 관심과 그의 인기를 반영했다.‘라스트 사무라이’는 일본에서는 새달 5일,한국에서는 내년 1월9일 개봉될 예정이다. 도쿄 이종수기자 vielee@
  • 소설가 최인훈 19년만에 단편 발표/분단후 현실 그린 ‘바다의 편지’

    소설가 최인훈(사진·67)씨가 1984년 단편 ‘달과 소년병’ 이후 19년 만에 신작 단편소설 ‘바다의 편지’를 발표했다.장편소설 ‘화두’ 이후 9년 만의 작품이다.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에 실린 ‘바다의 편지’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 사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는 요청에 소설로 답한 것이라고 한다. ‘바다의 편지’는 일인용 잠수정을 타고 침투하다 공격을 받아 수장된 한 젊은 수병의 독백을 통하여 분단과 이후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전반부는 바다가 ‘임무를 위한 배들이 숨어다니는’ 분단의 전선이 아니라,‘아름다운 돛배들의 놀이마당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후반부는 ‘양복입은 무당들,높은 담을 지키는 이국종 맹견들,헛소리를 가르치는 학교들,주택부금을 계산하는 전도사들,씨돼지처럼 살찐 왕과 왕비들,그들을 지키는 순라꾼들’이 가득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씨는 ‘영원한 경계인의 문학적 유서’라는 해제에서 “최인훈에게 바다 밑으로 내려보내는 잠수부는 인생과 세계를 탐사하여 그 비극적 아이러니를 확인하는 문제적 주인공”이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낙타섬에서’라는 단편에서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는 욕심이 하나 있다.잠수함의 승무원 얘기”라고 털어놓았던 작가는 중편 ‘구운몽’에 삽입한 ‘해전(海戰)’이라는 시에서 잠수함에 탄 젊은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해전’은 ‘바다의 편지’에 다시 삽입되어 눈길을 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지고지순한 사랑 무협팬터지로 포장/이광훈 감독 ‘천년호’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뜨거운 사극 붐이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28일 개봉하는 ‘천년호(千年湖)’(제작 한맥영화)가 그 열기를 더할 전망이다. 이 영화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은근해서 더 선정적인 농염함이나,‘황산벌’의 질펀한 웃음과는 성격이 다른 멜로물이다.‘닥터봉’‘자귀모’등을 연출한 이광훈 감독은 멜로 위에 무협 액션·팬터지 등 몇겹의 옷을 포개 입혔다. 영화는 신화로 문을 연다.기원전 57년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가 무력으로 부족을 통합하던 중 아우타가 이끄는 신목(神木)을 섬기는 부족을 몰살시킨다.아우타의 피는 천년호(千年湖)로 변하고,혁거세는 그가 부활하지 못하게 신검(神劍)을 꽂고 봉인한다. 잠깐의 복선에 이어 영화는 10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으며 역사로 돌아온다.진성여왕(김혜리)이 통치하던 통일신라 말기,사방에 도적떼가 들끓고 민심이 흉흉하여 나라는 도탄에 빠진다.혼신의 힘으로 반란을 진압하는 난세의 영웅 비하랑(정준호)과 그와 결혼을 약속한 자운비(김효진)의 사랑,비하랑에대한 흠모와 여왕으로서의 입장 사이에서 방황하는 진성여왕을 중심으로 영화는 가지를 뻗는다. 그러다 자객에 쫓기던 자운비가 우연히 발견한 신검을 뽑아 저항하다가 천년호로 몸을 던지면서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다.봉인이 풀려 되살아난 아우타의 원혼이 자운비의 몸을 빌려서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벌인다. 신화와 역사를 덧입힌 영화의 장점은 무엇보다 다양한 볼거리다.2년간의 답사를 거쳐 신라 이미지를 옮긴 중국의 비경(秘景)이며,컴퓨터그래픽에 신화적 상상력을 얹은 신비한 팬터지가 곳곳에 펼쳐진다.또 와이어를 타고 펼치는 역동적인 장면과 칼싸움,고증을 거쳐 섬세하게 재현한 궁궐 세트,의상,장식품 등도 인상적이다. 그것은 겉옷일 뿐 본질은 멜로다.원혼이 씌워진 자운비를 쉬 찌르지 못하는 비하랑의 갈등이나 “천년 사직을 지킨다는 게 모두 헛된 것이다.당신 하나를 지키지 못하는데…”라는 통곡은 영화의 주제를 응축하고 있다. 그러나 ‘지순한 사랑’을 전하려는 멜로의 골격은 팬터지·무협 액션이라는 여러 겹의 옷을 입어 둔해진 인상을 준다.형식의 과잉이 내용을 누르면서 둘은 겉돈다.이것저것 담다보니 애초에 전달하려던 메시지가 흐려지는 게 당연하다.집중했으면 꽤 괜찮았을 탄탄한 스토리라인도 우연의 남발 탓에 몰입을 방해한다.그래서인지 ‘두사부일체’‘가문의 영광’ 등 코믹물에서 스타로 자리매김한 정준호,10년만에 영화에 출연한 김혜리,CF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한 김효진의 열연도 빛이 바래진다. 이종수기자 vielee@
  • 기억·욕망·섹스의 함수관계는?/오늘 개봉 ‘노보’

    만약 끊임없이 기억을 상실한다면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21일 개봉하는 영화 ‘노보(Novo)’는 불의의 사고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인물 그래햄의 일상을 추적하면서 기억과 욕망,혹은 섹스의 관계를 파고든다. 그래햄은 불과 몇 분 전에 일어난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다.당연히 아내 이자벨은 물론 아들 안투안,직장 동료 프레드 등 주위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하루하루가 새 날인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그래햄은 그의 정체성을 밝히는 열쇠인 메모장에 매일 일어난 일을 기록해간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한 축은 그가 망각의 늪에 빠져있기를 바란다.그의 리비도를 이용하여 편리한 섹스 파트너로 즐기는 직장 상사 사빈,은밀한 사랑에 빠진 그래햄의 아내와 친구 프레드 등이 그들이다.반면 그래햄의 가까이 혹은 멀리서 그가 빨리 기억력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이도 있다.어린 아들 안토닌과 같은 직장에 임시직으로 고용된 이렌이 주인공.어린애 같은 그래햄의 해맑은 매력에 빠진 이렌은 다양한 방법의 사랑을 통해 그를 망각의 세계에서 건져내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망각을 소재로 한 ‘메멘토’와 분위기가 유사하다.하지만 ‘노보’에서 기억상실의 의미는 다른 재미있는 주제들을 묘사하는 장치로 보인다.예컨대 이렌의 열정적 사랑과 기억상실자인 그래햄이 느끼는 행복감의 대조,그래햄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대조적인 그래햄의 순수함,기억상실증에 걸렸을 때의 자유로운 사랑 등을 생각케 한다. 평론가 출신의 장피에르 리모쟁 감독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망각과 기억,섹스의 관계를 모색하는 그의 노력에 힘입어 영화 속 누드신이나 격렬한 정사신은 전혀 도발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지난 8월 광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눈길을 끌었다. 이종수기자
  • 사랑, 그 네가지 색깔/오늘부터 ‘애정만세 4색전’

    우연한 만남과 사랑,갈등과 이별,그리고 재회 등 고만고만한 할리우드식 사랑타령에 식상하다고? 그렇다면 21일부터 새달 4일까지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리는 ‘애정만세 4색전(Romance 4ever)’을 찾아가보자.동숭아트센터가 퍼시픽엔터테인먼트·태원엔터테인먼트와 공동으로 마련한 이 기획전에는 ‘길들여진 눈’을 씻어주는 4편의 영화가 기다린다.모두 소재의 신선함은 물론 주요 해외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이다. ●‘해피 액시던트’=자신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온 여행자라고 주장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 이야기.탄탄한 구성과 SF기법을 쓰지않고도 시간여행 효과를 잘 살려 “기발한 코미디” 등 호평을 받은 작품.독립영화계의 대표주자 브래드 앤더슨이 연출했다. ●‘패스트푸드 패스트 우먼’=2000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오해 때문에 일이 꼬이는 30대 연인,고정관념에 매여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70대 커플 등 두쌍이 사랑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현대인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신다.감독은 국내에 ‘수’로 알려진 아모스 콜렉. ●‘도메’=이란에 정착하려고 온 아프가니스탄 청년이 이방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문화 차이로 적응을 하지 못하다가 한눈에 반한 이란 처녀의 사랑을 얻기위한 속앓이 과정을 감동적으로 다루었다.이란 영화계의 기대주 하산 예크타파나 감독. ●‘바텔'=‘킬링 필드’로 세계를 놀라게 한 롤랑 조페 감독이 17세기를 배경으로 만든 애틋한 연사(戀事).평민과 귀족의 신분 차이를 초월한 사랑을 위해 가슴졸이는 사연이 펼쳐진다.2001년 칸 영화제 개막작.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열연. 이종수기자
  • “내속엔 시인과 비평가가 산다”/나희덕 글모음 ‘보랏빛은‘

    “나는 비평가가 아니다.그러나 내 속의 시인은 내 안에 사는 비평가와 무관하지 않다.시를 읽거나 쓰는 동안 그 둘은 줄곧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어왔다.”시인 나희덕의 ‘보랏빛은 어디서 오는가’(창비 펴냄)는 시를 쓰는 내내 자신의 내면에 둥지를 틀고 있던 ‘비평 정신’에 대한 열망을 옮긴 글 모음이다. 시인은 먼저 시에 대한 사색의 실타래를 한올한올 풀어낸다.그 길목에서 고 문익환 목사의 시와 하이데거의 ‘낡은 구두’를 비교하면서 “예술은 삶에 대한 반어이자 그 반어의 반어”라고 정리하는가 하면 옥타비오 파스나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론에서 “또 하나의 시적 창조를 추동할 수 있는 맹아적 힘을 발견한다.”고 고백한다. 또 시인은 자신의 작품 비평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성성’ 표현에 대한 불편함을 들려준다.그 이면에 담긴 “작음·부드러움·곡선·세련됨·조용함” 같은 편견을 살짝 꼬집으면서 자신의 작품을 “갈등이 없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미화하거나,순종과 인내의 여성상으로 묶어두려는 선입견”에 대해 항변한다.이어 ‘자연’‘생태’‘전통’ 등이 어떻게 시로 구현되는가를 김기림·김소월·김혜순·최하림·오규원·이하석·고재종·김수영의 시를 통해 분석한다. 이윽고 섬세한 시인이 가진 상상력의 촉수는 다른 시인들의 세계로 뻗는다.습작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시인 정현종,김지하,강은교,고정희,장정일,김기택,최두석 등의 작품을 조명한다.‘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결국 빨강과 파랑이 섞인 보라색처럼 시론·시감상 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창작’을 살찌운 시인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았다. 이종수기자
  • 베트남의 상처 보듬으며 우리 앞날을 이야기하세/방현석 두번째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베트남을 기웃거린 지 10년이 되어서야 겨우 베트남을 무대로 한 이야기를 쓸 엄두를 냈다.베트남에 대해서 몰라서는 아니었다.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베트남이 아니고 여기,지금의 우리였다.” 문학을 받치는 두 기둥인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가운데 리얼리즘을 고수해온 작가 방현석(42)이 두번째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창비 펴냄)을 출간했다.수록된 4편의 중단편 가운데 올 황순원문학상과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인 ‘존재의 형식’을 비롯,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2편이다. 방현석과 베트남과의 인연은 94년으로 거슬러간다.선배작가 최인석·김남일·김영현 등과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만든 뒤 양국 문인교류의 주춧돌을 놓으며 쌓은 베트남 체험이 이번 작품집으로 결실을 맺은 것.작가는 베트남을 이국에 대한 동경심으로 채우지 않는다.그들의 생채기와 현실에서 우리의 지난 날을 더듬어보면서 앞날을 위한 지혜를 모색한다. ‘존재의 형식’은 학생운동에 이어 노동운동에 투신한 뒤 노선 차이로 다른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서먹서먹한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 친구 세 명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작품.베트남에 건너가 시나리오를 번역하고 있는 재우가 변호사가 된 운동권 친구 문태의 방문소식을 접하면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진행된다.후일담 형식을 띠지만 과거의 경험을 우려먹지 않는다.대신 번역을 도와주던 감독 레지투이의 삶에 얽힌 사연을 징검다리로 친구들과 화해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간다.실존 인물로 지난달 방한한 시인 반레의 모델인 그는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전사였고 전쟁에서 죽은 동지의 이름을 필명으로 “전쟁이 안겨준 비애로 전쟁을 넘어서려는 정신의 바다”(64쪽)를 시로 써왔다.재우는 그에게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운 뒤 “무언가를 꿈꾸려는 자는 그 꿈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71쪽)라고 다짐한다. 표제작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조선소에서 일하는 관리자들과 베트남 노동자들과의 마찰이 배경.주인공 건석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에 대한 뜨악한 감정으로 현장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한 베트남 노동자의 삶과 베트남 혼혈인 배다른 형의 일생을 겹쳐보면서 양국의 역사적 경험의 닮은 점과 연대의 실마리를 발견한다는 내용. 전교조 탈퇴 각서를 쓰고 교직에 복귀한 교사가 겪는 갈등을 다룬 ‘겨우살이’나 울산 미포만의 노동현장을 소재로 노동운동의 쇠태와 변질을 그린 ‘겨울 미포만’에서도 작가의 세계관은 한결같다.사회현상의 변화는 인정하되 본질의 모순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방현석은 88년 실천문학 봄호에 ‘내딛는 첫발은’으로 등단한 뒤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장편 ‘십년간’‘당신의 왼편’,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등을 발표했다.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후일담 문학과 개인의 관념을 다룬 작품들이 대세를 이룬 세태를 모르쇠하면서 꾸준히 현실주의 창작방법을 일궈온 그의 발걸음은 더디지만 든든하다. 이종수기자 vielee@
  • 분단 3세대의 시선/언론인 작가 양헌석의 ‘오랑캐꽃’

    지난 82년 등단한 언론인 작가 양헌석(47)이 절필 13년 만에 장편 ‘오랑캐꽃’(실천문학사 펴냄)을 냈다.양헌석은 88년 소설집 ‘태양은 묘지 위에 타오르고’를 발표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나 90년 ‘아가베의 꽃’을 쓰면서 “이젠 내 얘기를 써야겠다.”며 절필했던 작가.이번 소설은 절필 선언 이후 13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작품답게 그의 내면풍경이 잘 녹아 있다. 14일 만난 그는 “오랑캐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쪼개지고 상처투성이지만 해마다 맨 먼저 봄을 알린다.”며 “이 검질긴 속성에 이땅의 험한 현실에 맞서 싸우고 사랑하며 살아온 지식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싶었다.”고 작의를 밝혔다. 그가 남한의 지식인으로 묘사하는 인물에는 자신의 경험 특히,‘사회주의자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어두움이 곳곳에 묻어있다.아버지 이야기를 묻자 “남로당원으로 5년간 옥살이를 한 뒤 전향하지 않은 탓에 12년을 더 옥고를 치러야 했다.”면서도 “이 소설을 아버지의 이야기와 직결시키지 말고 소설로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굳이 그의 설명이아니더라도 ‘오랑캐꽃’은 자전적 이야기지만 ‘자전’에 갇혀 있지 않다.소설질료의 대부분이 성장 체험에서 나왔지만 탄탄한 서사구조와 생생한 문체로 새로 태어났다. 소설은 잡혀간 아버지가 남긴 상처와,그에 대응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윤기립·지원 남매의 세상살이에 비춘다.두 남매가 그들의 가슴에 각인된 ‘주홍글씨’에 맞서는 방법은 사뭇 다르다.기립이 사회의 억압에 주저하고 눌리다 막판에 도박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반면 여동생 지원은 기자로서,작가로서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한다.그 과정에서 일그러진 한국현대사의 한 모퉁이가 코믹하고 낭만적으로 그려진다.기립·지원 캐릭터가 작가 내면의 양가적 성격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물음에 “두 남매는 연좌제와 관련한 내 안의 두 모습을 뽑아낸 것”이라며 말했다. 1장과 3장에서는 기립과 지원의 시선을 빌려 1인칭으로,2장에서는 3인칭 시점으로 사건을 진행해,자칫 단순해질 수 있는 줄거리에 힘과 스피드를 더해준다. 작가는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덫이 되어버린 세계 속에서의인간의 삶이 무엇이냐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에 기대 소설관을 밝힌다.‘오랑캐꽃’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아무도 풀지 못한 의문이 새삼스럽게 몰려들었다.”(86쪽)는 기립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작가 조정래는 “분단 3세대의 시선으로 무거운 주제를 유려한 테크닉과 생동감 있는 문체에 실어 새로운 형식을 창출했다.”고 평했다. 이종수기자
  • 재벌 前부인 ‘30년만의 고백’

    동아그룹 최원석 전 회장의 전 부인이자 70년대 ‘커피 한잔’으로 인기를 끌었던 여성 듀엣 ‘펄시스터즈’의 멤버 배인순(사진·55·본명 김인애)씨가 자전소설 ‘30년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찬섬 펴냄)을 17일 출간한다. 그녀는 ‘배인순 자전소설’이라고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젊은 시절 키웠던 가수로서의 꿈과 추억을 비롯,최원석 전 회장과의 결혼 과정,대기업 며느리로서 겪은 고초,최 전 회장의 외도로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등을 상세히 밝혔다. 특히 최 전 회장의 외도로 괴로워한 심경을 밝히면서 그의 외도 경력을 샅샅이 공개해 눈길을 끈다.영문 이니셜로 여배우 J와 L,선배 여가수 K양 등을 소개하고 있지만,현재 활동 중인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난잡한 애정 행각은 끝이 없었다.조간 신문 광고면에 나온 연예인을 한동안 뚫어져라 눈여겨본 다음날이면,여지없이 그 연예인과의 관계가 소문으로 돌곤 했다.”(193쪽) 배씨는 최 전 회장이 여배우 J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였다고 했다.“J는 차분한 외모에 단발머리가 어울려 다른 연예인과 달리 기품이 있어 보였다.”면서도 “그런 그녀가 내 집에,엄연히 아내가 있는 가정에 한낱 쾌락의 대상으로 발을 들여놓다니! 전혀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192쪽)고 밝히고 있다. 배씨는 또 최 전 회장이 배우 겸 탤런트 L양에 대해 “눈매와 오뚝한 콧날이 꼭 당신을 닮았어.”라고 말한 뒤 곧 그녀와의 스캔들 기사가 신문을 장식했다고 전했다. 이밖에 최 전 회장의 현재 부인인 아나운서 출신 장은영씨를 J라고 표기하면서 최 전 회장과 J와의 관계를 소개하고 방송국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는 J의 보석 분실 소동 풍문도 전했다.배씨는 K사장과 승용차를 함께 타고가다 교통사고가 나면서 번졌던 자신의 스캔들에 대해서도 해명하고 있다. 배씨는 98년 최 전 회장과 이혼한 이후,강남구 논현동에서 고가구점 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저승 갔다온 사람 이상의 상상력 발휘”/영화 ‘오구’ 주연 강부자 감독 이윤택

    “올해는 ‘오구’공연이 없어요?” 연극 ‘오구’의 주연인 탤런트 강부자(62)와 연출가인 ‘문화게릴라’ 이윤택(51)이 최근 자주 듣는 질문이다.그때마다 둘은 “올해엔 영화로 보세요.”라고 대답한단다.89년 초연이후 270만명의 관객 동원,정동극장 ‘10년 공연 계약’ 등 만성적 불황인 연극계에서도 불황을 모르던 ‘오구’가 28일 영화로 태어난다.10일 오후 서울 정동에서 강부자와 이윤택이 만났다.물론 영화배우와 감독으로서다. 약속시간보다 좀 일찍 모습을 나타낸 강부자는 방송대본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책(대본)이 오늘 나와서 짬내서 보고 있습니다.”라며 예의 수더분한 웃음을 띤다.강부자 하면 탤런트를 떠올릴 만큼 화려한 경력의 그에게 6년전부터 연극배우라는 강한 이미지까지 겹쳐졌다.하지만 그는 62년 탤런트로 입문한 뒤 바로 연극·영화에 출연해 개성 강한 연기를 선보였다. 약간 늦게 나타난 이윤택이 “아이고 선생님 제가 늦었지요.”라고 머쓱해하자 강부자가 “맞춰나왔는데 뭘요.” 하며 분위기를 풀어준다.시인·방송작가·연출가 등 전방위로 활약해온 그에게 ‘오구’가 감독데뷔작이지만 영상 자체가 낯설지는 않다.‘행복어 사전’ 등 드라마작가로 방송작업이 익숙하다. 영화 ‘오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두 사람은 동시에 “작품이 좋으니까요.”라며 애정을 표시했지만 개봉을 앞둔 심정은 약간 달랐다.패기만만한 이윤택은 “젊은 관객 위주의 영화가 주류인 현실에서 보기 드물게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오구’가 되지 않으면 연극도 그만 둘랍니다.”라며 과장기 섞인 자신감을 내비친다. 반면 강부자는 “막상 개봉이 다가오니 부끄럽기도 하고 가슴 떨리고 겁도 납니다.”라고 조심스레 말한다.그는 밀양에서의 자체 시사회때도 몰래 숨어서 봤다고 한다. 가장 큰 관심은 연극 ‘오구’와 영화 ‘오구’의 차이일 듯.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팽팽한 긴장 대신,현란한 영상기법을 구사해 마음대로 찍고 다듬는 영화로 같은 질료인 ‘오구’를 어떻게 표현했을까.강부자는 “세세한 부분까지 연기할 수 있어서 섬세하면서 상상력의 공간이 넓어요.그렇기 때문에 무섭기도 해요”라고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이윤택은 특유의 달변으로 “연극은 전체 몸의 움직임 등 외양을 중시하는데 비해 영화는 주름살 하나까지 잡으며 내면의 연기를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자연히 내용도 꽤 달라졌다.얼개는 비슷하다.꿈에서 남편을 본 황씨 할머니가 저승갈 준비를 한다며 산오구굿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이어 문상객들이 화투를 치는 등 잔칫집을 방불케하는 초상집 분위기로 관객을 웃고 울린다. 여기에 영화는 저승사자가 소를 타고 이승에 내려오고 개·파리 등으로 변신하는 장면 등에서 팬터지효과를 최대로 살렸다.또 미연(이재은)과 옛 애인 용택인 저승사자의 러브스토리도 가미해 극적인 효과를 드높였다. 두 사람은 ‘연극의 다리’에서 희한하게 만났다.강부자가 95년 연극 ‘문제적 인간,연산’을 본 뒤 “어떻게 연산군을 저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윤택이란 연출가가 어떤 사람인지 작품 한번 하고 싶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우연인 듯 1년 뒤 이윤택이 찾아왔다.89년부터 꾸려오던 ‘오구’가새 버전으로 바꿀 무렵 ‘가장 한국적 여성상’에 어울리는 배우가 절실해서 대본을 들고 무작정 SBS 녹화장으로 찾아갔다.강부자가 대본도 보지 않고 동의했음은 물론이다.97년 이후 ‘강부자의 오구’는 연극계 핫이슈로 떠올랐다. 연극에서 맞춘 ‘찰떡 호흡’은 촬영 내내 큰 힘이 되었다.“촬영중 섭섭한 소리를 해도 너그럽게 넘어가십니다.”는 이윤택의 말에 강부자는“경상남북도의 사투리가 달라 자주 지적을 당해 무안하기도 했다.”면서도 “저승갔다온 사람 이상의 상상력에 ‘어머 저럴수가 있나?’라고 놀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추어 올렸다. 6년째 맞춘 눈빛은 마지막 촬영때 빛났다.노모가 이승을 떠나는 장면에서 강부자의 애드리브 연기에 이윤택이 감탄한 것.“상여를 뒤로 하고 흰 종이옷 차림으로 바람부는 갈대밭 옆을 걸어가는데 진짜 하늘나라로 가는 기분이 들어서 즉흥적으로 두팔을 벌려 나는 것처럼 해봤어요.”(강)“대본을 넘어선 연기와 그림이 너무 좋아서 ‘OK,갑시다’했지요.”(이) 이종수기자 vielee@
  • 21일 개봉 ‘씨비스킷’/전설적 경주마 탄생시킨 3인의 도전

    ‘절망은 없다.’ 21일 개봉하는 ‘씨비스킷(Seabiscuit)’은 1930년대 대공황 위기를 극복한 미국인의 저력을 설파하는 영화다.희망의 메신저는 당시의 전설적인 경주마 씨비스킷과 그를 탄생시킨 기수·조련사·마주 등이다.겉모습은 작고 볼품없지만 조련을 통해 ‘희망의 상징’인 경주마로 거듭난 씨비스킷이나,갖은 시련을 겪은 뒤 우연히 만나 ‘씨비스킷 신화’를 일궈내는 세 사람의 공통점은 끝없는 도전 정신.이들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이 당시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신화’를 심어준 원작 ‘씨비스킷-미국의 전설’의 탄탄한 구성에 힘입어 짜임새 있게 펼쳐진다. 전반부는 산업화 바람이 불어닥치는 1910∼20년대 미국과 캐나다를 배경으로 세 사람의 ‘고난의 시대’를 번갈아 보여준다.자전거 수리점 주인 찰스(제프 브리지스)는 타고난 사업재능으로 남보다 먼저 자동차 장사에 눈을 떠 큰 돈을 벌지만 대공황 한파로 경영난에 처한다.이어 아들이 차를 몰다 사고로 숨지고 아내마저 그를 떠난다.대공황의 그림자는 기수 자니(토비 맥과이어)에게도 짙게 드리운다.부유한 아일랜드계 이민의 아들로 자라던 그도 다른 집에 넘겨진 뒤 고아처럼 자라며 권투선수와 3류기수로 시골을 떠돈다.조련사 톰(크리스 쿠퍼)의 원래 직업은 야생마를 길들이는 카우보이.말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말을 잘 알지만 산업화에 밀려 삶의 터전을 잃고 서부로 밀려온다. 영화의 후반은 우연히 만난 이들이 경마팀을 이뤄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씨비스킷을 경주마로 키워가는 과정이다.사나운 종마가 부상,방해공작 등을 이겨내고 ‘스포츠 영웅’으로 탄생하는 과정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카메라를 달리는 말 사이에 배치하여 담은 박진감 나는 경주 장면과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화음이 힘을 더해준다. 재치있는 대사와 다양한 효과음으로 진행하는 라디오 중계 등 당시 사회상도 볼거리.그러나 원작의 방대한 분량이 벅찼는지 영화는 내용을 압축하는데 허술함을 드러낸다.연결고리없이 세 사람이 따로 겪는 과정을 담은 전반부가 약간 지루하고 산만하다.또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을 너무 미화한 게 아니냐는 느낌도 준다.그런흠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온 가족이 감상하기에 적절하고 유쾌하다.영화 ‘데이브’ ‘빅’의 각본을 쓴 게리 로스가 감독. 이종수기자
  • “돌아온 들에 봄은 왜 오지 않는가”원로시인 이형기 8번째 시집 출간

    이형기(사진·86)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봄은 왜 오지 않는가’(삶이보이는창 펴냄)를 읽노라면,이시인은 꺼질 줄 모르는 용광로 같다.가슴 속에 끊임없이 불길을 안고서 세상의 온갖 불순물을 녹인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건만 시인은 ‘왜 오지 않는가?’라고 반문할까.답을 구하려면 그의 삶을 살펴봐야 한다. 함남 함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작가 한설야·임화·이기영,독립운동가 여운형 등과 교류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일본 유학을 마치고 지하 항일투쟁을 하다가 체포돼 1년간 복역했다.이후 여운형의 비참한 죽음을 목도하고 오랫동안 칩거하다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나서면서 온 몸으로 시대의 모순과 맞서는 한편 활발하게 시를 써왔다. 치열한 삶의 여정으로 그의 시심은 두동강난 ‘불구의 조국’에 대한 탄식과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열정으로 채워진다.시인의 눈에 “분단 악법이 기세등등”하고 “미국식 바람에 돈타령”이고 “미친 영어 열풍에 아기 혀마저 수술”하는 현실에서 봄은 요원하다.“돌아온 들에 봄은 왜 오질 않는가/꿈별을바라 밤마다 통곡한다”(‘봄은 왜 오지 않는가’)고 노래한다.그 뜨거움은 “외제 껌을 씹으며 USA 매니큐어로 물들”이고 “거품 모양새에 춤추는”(‘명동거리에 띄우는 노래’) 현대인들의 실종된 역사의식을 도마에 올리는 매서운 질책과 국토에 대한 애정으로 형상화된다. 5부 ‘가시밭 약전’은 김선명옹 등 22명의 비전향 양심수와 가족들의 고난에 찬 삶을 들춰낸다.숱한 사연을 증언하던 시인은 그들의 ‘아름다운 신념’ 앞에서는 시마저도 사치라고 느낀 듯 “시를 쓴다고?/집어쳐!/그 자체가 위대한 시인데/무슨 사족이냐(…)”(‘정림아 어데 있느냐’)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을 모르쇠하는 세태를 꼬집는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그 열정은 “시혼은 차마 그냥 죽을 순 없어/잃어버린 시간을 기어이 되찾고야 말 것이다.”(‘저 통곡 저 아우성’)라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이종수기자 vielee@
  • 문인들이 들여다 본 시인 7人의 사랑/시인세계 특집 ‘…사랑의 시’

    문학의 젖줄은 자유혼이다.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인의 사랑 풍속도는 일탈에 가까운 ‘자유 연애’가 많아 세간의 소문을 풍성하게 한다. 계간 ‘시인세계’ 겨울호의 특집 ‘시인의 사랑,사랑의 시’는 문인들의 러브스토리를 집중 조명했다.이근배 시인 등 문인들이 이상과 김영랑,백 석,유치환,모윤숙,박목월,한하운 등 시인 일곱명의 이면을 찬찬히 살피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연의 주인공은 박목월(1916-1978).“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 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라는 김성태 작곡의 ‘이별의 노래’가 박목월의 시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더구나 이 시가 여대생과의 짧고도 깊은 사랑의 후유증을 노래한 것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호기심이 배가된다. 목월의 마음을 사로잡은 ‘베아트리체’는 그가 1953년 대구로 피란가 기숙하던 목사의 딸.목월이 서울로 돌아온 뒤 그녀도 서울에 올라와 두사람은 시인과 문학소녀에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결국 제주도로 잠행한다.그때 두 사람의 겨울 한복을 지어 제주로찾아간 부인의 인품 앞에 목월이 반성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사랑은 끝나지만 시인에게 ‘이별의 노래’를 남겼다. 두차례 결혼한 백석이 남모르게 나눈 두번의 사랑도 이채롭다.E고녀 학생인 난과 조선 권번의 기생인 자야가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특히 난을 향한 마음은 뜨거웠다.자야와 열애를 하면서도 난이 사는 마을을 찾아갔고 그녀의 고향인 통영을 제목으로 시를 3편이나 남겼다. 이밖에 스무 살 안팎의 나이에 여고 4학년생 최승희와 결혼까지 생각할만큼 사랑에 빠졌던 김영랑,‘문둥병 시인’으로 유명한 한하운과 R의 사랑,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허가되지 않은 사랑’의 안타까움을 나눈 청마 유치환과 시조시인 이영도,일곱살 아래의 기생 금홍을 만나서 서울로 올라와 다방 ‘제비’를 차리고 동거하면서 ‘날개’‘봉별기’ 등 한국 모더니즘을 개척한 소설을 남긴 이상 등의 사랑 얘기를 싣고 있다. 이종수기자
  • ‘객지’에서 ‘손님’까지 각이 너그러워진 세월/새달 환갑 맞는 황석영 ‘문학의 세계’

    ‘객지’(71년)에서 ‘손님’(2001년)까지. ‘영원한 청년 작가’ 황석영에게도 세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오는 12월14일 환갑을 맞는 그의 푸르디 푸른 문학인생 41년을 조명한 ‘황석영 문학의 세계’가 나왔다.창비가 1년6개월의 공을 들인 이 책은 3부에 걸쳐 국내외 유명 작가 및 평론가 15명의 작품론과 ‘내가 아는 황석영’ 등의 값진 글이 수두룩하다.고모리 요오이치 등 일본작가는 물론 미국의 시어도어 휴즈,프랑스의 세실 바스브로,독일의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 등이 글품을 보태 황석영의 국제적 입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는 책머리의 문학평론가 최원식 인하대교수와의 대담에서 등단작 ‘입석 부근’에 얽힌 이야기,대표작 ‘객지’가 계간 창작과비평에 실린 사연,북한에서 들은 월북작가 박태원의 결혼이야기 등 많은 숨은 이야기를 고백한다.그가 들려주는 이 일화들 자체가 우리 문학사의 서까래를 이룬다. 1부는 고교시절 문우인 오생근 서울대교수를 비롯해 황광수 임규찬 임홍배 서영인 등 동료들이 황석영의 주요 작품을 분석한다.특히임규찬 성공회대교수는 황석영의 대표작 ‘객지’가 미친 70년대의 파급력을 평가한 뒤 “기존의 비판적 시선들이 양적인 한계를 간과한 데서 비롯했다.”며 “전형적 상황과 전형적 성격의 창조에 주안점을 둔,장편이 아닌 단편적 성격의 중편구조에 딱 부합하는 서사노선”이라고 해석해 눈길을 끈다. 2부에서는 외국 작가들이 ‘무기의 그늘’‘한씨연대기’등의 작품을 소재로 황석영 문학의 정체성을 들려준다.프랑스 작가 바스브로는 ‘한씨연대기’‘삼포 가는길’‘무기의 그늘’을 분석하면서 “황씨의 작품은 38선을 보여주는데 그 속에는 역사와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거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3부는 인간미가 풋풋하게 나는 글모음집.선배 작가 송기숙은 ‘황구라’라는 별명을 낳은 뱀장사·약장사 흉내,좌중의 분위기를 간파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광범위한 독서량,‘장길산’ 창작 때의 풍경 등 ‘인간 황석영’의 면모를 구수하게 들려준다.고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는 황석영의 글을 읽은신선한 충격과 ‘장길산’ 번역을 맡은 일화 등을 전해준다. 한결같은 그의 글 인생을 축하하는 이 헌정집 성격의 연구서에 대해 작가는 “환갑 얘기를 하니까 쑥스럽다.”고 말한다.이어 “다른 생각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졌고 글쓰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는 그의 말은 몸은 환갑이지만 문학정신은 여전히 젊음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소설을 건지고 소설로 현실적 발언을 해온 황석영을 위한 문단의 덕담은 또 있다.한국일보에 연재된 ‘심청,연꽃의 길’이 이달말 문학동네에서 나올 예정인데,새달 1일 ‘황석영 문학의 세계’와 함께 두 책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만든다. 이종수기자 vielee@
  • “50살이 넘으니 봄날이 가더만…”/이청준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40대까지는 ‘봄날은 온다.’고 생각했는데 50살이 넘으니 ‘봄날은 간다.’는 게 실감나더군요.” 이 소설 같은 표현은 지난 5월 소설가 이청준의 자택을 찾았을 때 그에게서 들은 말이다.가는 봄이 아쉬웠을까? 최근 펴낸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현대문학 펴냄)는 지난날에 대한 기억이 가득하다.그 느낌은 한국화가 김선두 중앙대교수의 그림과 어우러져 더 따뜻하다. 작가는 40여년의 소설인생에서 만난 이런저런 사연을 들려준다.담담하게 문학 인생을 술회하는 글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작가 특유의 느릿느릿하고 차분한 말을 듣는 듯한 느낌에 젖어든다.글이 곧 말인 셈이다. 작가는 돌·강·나무와 글친구들을 징검다리 삼아 그에 얽힌 ‘아름다운 시절’을 현재로 불러낸다.그의 책만큼이나 집안을 메우고 있는 수석은 돌이되 돌이 아니다.그 하나하나에는 동행한 문인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와 따스한 인간미가 담겨 있다.울릉도의 현무암 조각에선 홍성원·김병익·김원일 같은 문우들과의 심한 풍랑 속 항해와 멀미의 기억을,제주도 화산석에선 시인 오규원과의 건강했던 갓 40대의 한 시절을(…) 떠올리곤 하는 식이다.나무와 강물도 스쳐가는 그저 풍경이 아니라 그와 교감한 이들의 숨결이 배어 있다.시인 오규원과의 우정을 다룬 표제글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에서 ‘그’는 오규원만이 아니라 ‘문학’으로 읽힌다. 이윽고 작가는 소설을 쓰게 되는 과정을 반추한다.시골에서 자란 그가 중학교때 광주란 도시와 맞부딪친 주눅듦은 서울의 대학생활에서도 이어진다.도회에 대한 낯섦과 서투름은 감성이 풍부한 젊은이의 정서를 부끄러움과 두려움,주눅듦으로 채색했고 마침내 자신을 다독이려고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는다.책의 말미에 이르러 자신의 ‘소설질’을 이렇게 회상한다.“나에게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어떤 실패나 소외로부터도 나를 견디고 넘어서게 하는 보람스러움과 자긍심을 지켜가고,어떤 지위나 영예보다도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자산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게 한다.” 비록 목소리는 낮지만 작가의 옹골찬 고집이 묻어난다. 이종수기자
  • 프리다 / 부상…조각난 몸·사랑의 고통 예술로 꽃피운 ‘격정의 삶’

    소아마비에다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인한 35차례의 수술,멕시코 유명 화가와 운명적 만남과 이혼,재결합,영구혁명론의 트로츠키와의 사랑….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그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은 멕시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드라마처럼 굴곡 많은 그녀의 삶을 스크린에 옮긴 ‘프리다(Frida)’가 21일 개봉된다. 감독은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국제무대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뒤 영화계로 건너온 줄리 테이머.줄리 테이머는 같은 여성의 시각으로 헤이든 헤레라의 원작 ‘프리다’(민음사 번역 출간)에서 ‘혁명가’ 프리다보다 ‘인간’ 프리다를 클로즈업한다. 영화는 “내 인생의 두가지 큰 사건이 있는데 첫 사고와 당신,그런데 당신이 더 나빴어.”라는 프리다의 대사에 압축돼 있다. 줄리 테이머는 프리다가 자신의 평생을 지배한 두 개의 코드 ‘부상과 사랑’이란 주요 틀에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며 걸작을 꽃피우는 과정을 점점이 그려 넣는다. 전체 분위기는 프리다의 그림만큼이나 환상적이고 아름답다.영화를 풀어나가다 상황에 걸맞은 프리다의 작품으로 넘어가 거나 미술과 인물을 콜라주한 장면 등 다양한 연출기법으로 영화와 미술을 동시에 감상하는 묘미를 준다. 당시를 생생하게 재연한 세트와 분장,프리다의 심경 변화를 이입하듯 때론 애잔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흘러나오는 라틴음악도 맛을 더해준다. 꿈많고 당찬 말괄량이 18세 소녀 프리다는 쇄골·갈비뼈·척추와 골반 등을 다치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몇차례 수술을 하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당대 최고의 화가 디에고에게 보여주면서 생의 전기를 맞는다.혁명과 그림에 대한 공감으로 결혼한 둘은 부부이자 동지이자 동료로 행복한 생활을 한다.하지만 화려한 여성편력의 디에고에게 질려갈 무렵,디에고가 자신의 여동생과 관계를 갖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사랑은 금이 간다. 거꾸로 그림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진다.영화는 미국과 파리 체류기,멕시코로 망명온 트로츠키와의 사랑 등을 거친 뒤 프리다의 죽음으로 종착역에 이른다. 원작을 보고 프리다의 매력에 흠뻑 젖어주연과 프로듀서를 자청하고 나선 셀마 헤이엑의 연기는 너무 자연스럽다.실존 인물을 빼닮은 외모에 열정적 연기로 프리다의 격정적인 삶을 되살린다.디에고 역의 알프레드 몰리나도 리얼리티에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디에고의 친구이자 라이벌 화가 역의 안토니오 반데라스,록펠러로 나오는 에드워드 노튼 등의 카메오 연기도 잘 어우러진다.다만 그림에 대한 지나친 기댐이 영화의 집중력을 흐트린다. 이종수기자 vielee@
  • [시네 드라이브] ‘선택’ 살리기 나선 네티즌들

    요즘 사이버 공간에서 관객들의 영화살리기 운동이 뜨겁게 전개돼 눈길을 끈다.영화 ‘선택’을 살려내자는 네티즌들의 열기가 포털 사이트 다음과 영화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선택’은 사상전향을 거부한채 45년간의 감옥생활 끝에 지난 95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북송된 김선명옹의 삶을 다룬 영화. 최근 네티즌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달 24일 전국 20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선택’이 흥행 저조를 이유로 대부분 일찍 간판을 내린 때문.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와 강남의 씨어터 2.0,목포의 중앙시네마를 제외한 모든 극장들이 1주일만에 서둘러 종영했다.이에 ‘선택’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긴 관객들이 홈페이지에 재상영을 요구하는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선택’의 볼 권리를 찾자고 강하게 주장한 네티즌 ‘왼발’이 다음카페에 사이트 ‘선택’(cafe.daum.net/45years)을 만들었다.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의 목소리는 다양하다.“이런 영화들이 자꾸 죽는다면 누가 다시 만들겠습니까”(‘감자고기’) “힘든 여건에서 고집스레 좋은 영화를 만들어낸 모든 스태프들에게 찬사를 표합니다”(‘또니’).재상영을 위한 다양한 방안도 쏟아지고 있다.정당성과 취지를 담은 전단을 만들어 거리에서 홍보하자는 제안부터 예술영화 전용관을 적극 이용하자는 등의 아이디어가 속출한다.이같은 목소리에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워도,제주 프리머스 상영관은 다음주부터 재상영을 결정했다. 이처럼 영화를 지원하는 관객모임과 운동이 본격화한 것은 ‘박사모’(‘박하사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때부터.이후 ‘파사모’(‘파이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로 이어졌던 관객들의 영화살리기는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라이방’‘나비’‘고양이를 부탁해’ 등 작품성에 대한 호평과는 달리 흥행에 실패한 작품을 재상영하는 ‘와라나고 특별전’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선택 살리기’는 일단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지만,인권·사상의 자유를 담은 영화의 주제의식에 공감한 사회단체들이 가세한 점이 종전의 영화살리기와는 조금 다르다.최근 이같은 목소리 높이기는 그 이유가 영화의 예술성에 있든,우리사회와 맞물린 문제의식에 있든 예전과는 퍽 다른 현상임엔 틀림없다.그 힘이 아직 미약하더라도 자기 권리를 찾자는 관객 목소리의 확산은 우리 영화의 다변화와 볼 권리 정착에 튼실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종수 기자
  • 두 교사가 실천하는 숭고한 ‘가르침’/14일 개봉‘칠판’

    ‘인간다움’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더구나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14일 개봉하는 ‘칠판(Blackboard)’은 무겁고 포괄적인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차분하게 풀어간다.그 메신저는 놀랍게도 칠판.가르침의 상징인 칠판의 다양한 쓰임새를 조명하면서 신산한 현실을 그려낸다. 이란과 이라크 접경지대.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가파른 산과,곳곳에 위태롭게 박혀 있는 큼지막한 바위,그리고 이를 휘젓는 황량한 바람 뿐이다.이 메마른 공간을 두 명의 교사가 지나간다.등에 칠판을 멘,우스꽝스러운 이들은 오로지 가르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학생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그들이 각각 만나는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배움은 사치다.한 그룹은 고향을 찾아가는 유랑민이고,한 집단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선을 넘나들며 밀수품 운반에 나선 아이들이다. 영화 속 교사들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음식과 물,피란처 등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하지만 온갖 위험에 직면해서도 그들은 ‘가르침’이라는 숭고한 업무를 수행하려노력한다.영화 가족으로 유명한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딸로서 이 영화가 두번째 연출작품인 사미라 마흐말바프는 약관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냉정하게 현실을 그린다.정치적 발언 대신에 일상적인 장면을 섬세하게 보듬으면서 황량한 현실과 인간다움의 의미를 포착한다.칠판의 운명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때론 폭격을 피하는 피란처였다가 부상당한 아이의 상처를 고정시키는 부목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결혼 예물과 위자료로 쓰이기도 한다.칠판의 기능은 이처럼 다양하게 변하지만 칠판을 통해 그들 안에서,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두 교사의 노력으로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림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난다.어떤 역경에서도 인간은 나름대로 살아가고,어디서든 가르치고 배우려는 욕구는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수작.철학적 내용 탓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미라의 시적 영상이 주는 감동의 여운이 오래간다. 이종수기자
  • 농익고 그윽해진 여성성과 생명 존중/김선우 두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

    “아지랑이 피는 구릉에 앉아 따스한 소피를 본 적이 있다.”(‘나생이’)라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젊은 여성시인.첫시집에서 험한 세파를 겪은 듯한 ‘선술집 아낙’의 정서를 탁월한 상상력으로 노래한 시인 김선우(33)가 두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사 펴냄)를 냈다. 첫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과 산문집 ‘물밑에 달이 열릴때’,어른을 위한 동화 ‘바리 공주’ 등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여성성과 생명을 중시하는 차분한 목소리는 여전하다.아니 더 그윽해지고 깊어졌다. 여성성에 대한 시인의 시선은 아주 구체적으로 나타난다.시집 곳곳에서 엄마나 언니의 오줌·월경·생리혈·양수·자궁 등을 이야기한다.시인에게 그것은 단순한 몸이나 생리현상이 아니라 생명을 낳고 소비하고 재생하면서 우주를 이루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그 여성성에서 시인은 모성의 위대함을 노래한다.“월경 자국 선명한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기우제를 올렸다는 옛 이야기”를 현재형으로 불러내면서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이어받은 자신에게서도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물로 빚어진 사람’)라면서 대물림된 생산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나아가 시인의 시선은 폐경을 맞은 엄마에게 “폐경이라니,엄마,/완경이야,완경!”이라고 신성한 생명의 의무를 다했음을 상기시키며 위무한다. 일전 인터뷰에서 “내가 글을 쓰는 한,아니 이곳에서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생태나 다양한 사회문제들,페미니즘의 문제는 내 존재의 저변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말한 시인의 다짐이 또 어떤 상상력으로 다가올지 기다려진다. 이종수기자
  • 흙냄새 툭툭 털어낸 담담한 ‘들녘의 삶’/농부시인 이덕규씨 첫시집

    “아이고 농부 시인이란 말 쓰지 마세요.농사는 농사고 시는 시입니다.되도록이면 제 개인사를 입에 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최근 첫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문학동네 펴냄)를 낸 이덕규(42)는 농부 시인이다.그런데 첫 마디부터 그 표현을 거부하면서 당황하게 만든다.그 이유를 재차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들려준다.“대물림한 농사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농촌 현실을 시로 쓰다 보면 너무 답답해 목소리가 자꾸 높아져요.그게 문학성을 갉아먹는 것 같아요.그래서 농사짓는 이야기를 많이 썼지만 거의 빼고 차분한 것만 모아서 4부에 약간 넣었습니다.” 체험이 앞서면 상상력이 눌려서 거칠고 생경한 작품이 나오는 것을 경계한다는 말이다.그의 말을 입증하듯 이번 작품은 시적 형상화가 뛰어나다.녹록지 않은 긴장으로 행을 이어가고 한 행에 압축하는 묘사가 빛난다. 구체적으로 시적 자아는 ‘독’‘아침이슬’‘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이른 아침 뒷산을 오르다 발견한 가시나무 가시에 맺힌 이슬에서 영원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고는“바르르 떨고 있었습니다.”(시 ‘자결’)고 노래한다거나 “나는/풀잎 끝에 맺힌/눈 흡,뜨고 사라져가는 아침이슬이다”(시 ‘독(毒)’)라는 대목은 삶의 작은 부분에서 시인만이 ‘보는’ 탁월한 감성을 잘 보여준다.이는 스스로 “오랫동안 독을 삼켜”(시 ‘독’)오면서 세상의 미세한 부분을 들추려는 시인의 ‘깨어있음’에서 나온다.시인은 “밤새도록 허공에 떠돌던/절망의 투명한 미세 입자들이 모이고 모여/더이상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을 때/”(시 ‘독’) 지상에 내려와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를 캐낸다. 시인의 다른 미덕은 남성다움이다.정진규 시인이 “우리 시가 지니고 있는 정서와 사유의 여성 편중과 어떤 유약성이 걱정되기도 하던 터라 이덕규의 시는 남달리 든든하고 신선했다.”고 평가했듯 그의 시는 강인함이 묻어난다. 여기엔 시인이 그토록 “문학 경력으로 울궈먹고 싶지 않다.”며 감추려 했던 개인적 삶이 원동력인 듯하다.61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난 시인은 80년대 대학에 들어가 5년 동안 “시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운동에 매진하다 ‘세상의 매’만 맞고 시작을 그만두었다.이후 13년 동안 건설현장을 떠돌다가 90년대 중반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다.좌절과 신산한 삶이 그와 그의 시를 담금질한 셈이다. 이런 이력은 “희망은 더이상 슬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된다.”(‘그해 겨울’)는 단호함을 낳았다.또 “차령이나 태백산맥의 준령들을 한 바퀴 휘/돌아보고 한 바퀴/휘돌아보고”나서 “북한산 인수봉우리쯤에 턱 버티고 올라서서 뇌성같은 소리로 크게 한 번 울부짖은” 뒤 “꺽정이 같은 놈 하나 만들고도 싶은 것이다.”(시 ‘꺽정이 같은 수상한 날에’)라는 역동적 노래로 이어진다. 문학을 떠났어도 마음의 끈은 한 번도 놓지 않았다는 그는 “70∼80년대 문학판에서 큰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상업주의와 성담론 혹은 서구 이론 뒤로 숨었다.”고 진단한다.정작 그는 어떤 시를 쓰고 싶을까. “사람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세상은 사람이기에 갈 수 없다.이 아이러니를 인식하면서도 그 세상으로 끝없이 밀고가는 운명을 담고 싶다.” 이종수기자 vielee@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