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개혁의 추진과 사회적 합의/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개혁의 시대이다. 모든 나라의 집권자들이 개혁을 주창하고 있다. 영국은 ‘새로운 영국:의회와 행정부의 책임성, 분권화, 사법개혁’, 일본은 ‘내각기능의 강화와 행정의 슬림화’, 미국은 ‘시민, 결과, 그리고 시장 지향적인 정부’, 독일은 ‘어젠다 2010’을 개혁의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변화를 선창한 이래, 개혁은 식을 줄 모르는 세계적 물결이 되었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개혁은 세계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노동과 자본 같은 생산요소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황 속에서 유독 각국의 공공부문은 수출이나 수입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정요소로 잔존하게 되었다. 이 공공부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만드느냐가 그 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버렸고, 이 공공부문을 효율화하려는 노력이 개혁의 물결로 나타났다. 집권자 개인의 차원에서 보자면, 개혁은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한 효과적 전략이다.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은 대단히 정치적인 일인데,‘개혁’이라는 구호를 통해 국가운영의 제반 정책을 탈정치화시키고 자신의 운신 폭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치단체장이나 작은 조직의 리더조차도 개혁의 플래카드를 내걸기 일쑤이다.
개혁의 내용을 살펴보면, 선진국과 후진국 간에 재미있는 차이가 발견된다. 선진국은 예외없이 효율성 제고를 개혁의 내용으로 하는데 반해, 후진국은 부패척결과 참여의 확대를 내용으로 한다. 전자가 경제개혁의 성격을 띠는 것이라면, 후자는 정치개혁의 성격을 띤다. 한국의 경우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이중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인데, 사실은 두 상이한 개혁 사이에 이질적 가치가 충돌하게 되어있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근사한 개혁의 플래카드를 내걸어 왔다.YS정부는 세계화,DJ정부는 구조조정과 생산적 복지를 구호로 내걸었다. 구호 자체는 모두 첨단의 이론을 반영한 근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개혁의 결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당시의 정권들이 개혁의 의지를 분명히 갖고 있었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개혁의 피로를 느끼는 일부 사람들은 아예 개혁의 유용성마저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의 개혁주체들은 자신들의 치적을 자랑하지만,IMF경제위기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지도자들에게 권리를 백지위임하며 희생한 국민들의 기대에는 어림없는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개혁이 성공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추진주체의 도덕성, 개혁의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 개혁 프로그램의 실행을 위한 치밀한 계산과 과실의 배분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허점이 생기면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 많은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개혁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좌초하는 것은 이러한 요인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 노무현 정부가 출범 2주년을 앞두고 있다. 취임사에서 노 대통령은 4대 국정운영의 원리를 제시하며, 개혁의 프로그램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개혁의 추진과 성과는 미미하고, 집행력에 벌써 상당한 허점이 노출되고 있다. 개혁주체들이 참여정부의 상대적인 도덕성을 과신하며, 사회적 합의와 집행전략의 계산을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갈등을 유발하는 개혁의 전선이 너무 넓고 사회적 균열이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다. 개혁의 전선을 통합적 관점에서 체계화하여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막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적 합의의 수준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단지,‘과반’을 확보하는 전략으로써는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국가발전을 위한 개혁을 성공시키기 어렵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는 마음만 합치면 기적을 이루어내는 민족’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 자체가 실제로 국민에게 신바람을 일으킬 만한 상징적 가치와 정치적 가능성을 보유하는 존재였다. 취임 2주년을 앞두고, 왜 그러한 가능성이 사장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때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