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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주자가 광주시교육감 후보 후원회장?

    대선주자가 광주시교육감 후보 후원회장?

    대선후보로 나선 정치인들이 광주·전남 교육감 예비후보들의 후원회장을 맡아 교육이 정치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3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치후원금센터에 따르면 광주·전남교육감 예비후보자 중 후원회를 운영하는 후보는 5명으로 광주 3명, 전남 2명이다. 이정재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는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후원회장으로 초빙했고, 박혜자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는 정세균 전 총리를, 김대중 전남도교육감 예비후보는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을 후원회장으로 정했다.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와 김동환 전남도교육감 예비후보는 비정치인이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이정재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이낙연 전 대표가 후원회장을 맡아 광주시교육감 선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전 총리가 ‘이 후보의 교육가로 살아 온 40년 외길 인생과 교육철학에 대해 항상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초·중·고 교사와 대학 교수를 거쳐 대학 총장까지 오른 교육전문가이자, 교육계의 큰 어른이다. 존경받는 스승이자 유능한 교육행정가로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다’며 후원회장을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정세균 전 총리는 박혜자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의 공동후원회장이다. 박 후보는 정 전 총리가 선거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후원회장을 맡았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박 후보는 “정 전 총리가 공동후원회장직을 흔쾌히 수락했고 그 성원에 힘입어 6월 1일 광주시교육감 선거에서 승리해 위기에 처한 광주교육을 새로 고치겠다”고 밝혔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은 김대중 전남도교육감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김 후보는 “6선 국회의원을 지낸 천 전 장관이 후원회장직을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이번 전남교육감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정재, 박혜자 후보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는 두 전직 총리를 영입해 지지세를 늘리고 후원금을 모으는데 크게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 교육감선거가 자칫 정치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감 선거 관련 규정은 정치적·이념적으로 편향된 후보가 학생 교육을 책임져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정당 공천이 없고 특정 정당과 정책 공조를 할 수 없게 제한하고 있다. 지역 교육계 한 관계자는 “정치적 중립이 필요한 교육에 정치 논리가 끼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선 교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감 선거에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것은 모순이다”고 밝혔다. 올해 교육감 선거 선거비용 제한액은 광주 6억6,600만 원, 전남 13억2,300만 원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그 중 절반인 3억3,300만 원과 6억6,150만 원까지 후원회를 통해 모금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후원회 결성과 후원금 모집 과정에서 예비후보를 직·간접적으로 홍보할 수 있고 지지세를 결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원회의 역할은 크다. 정당 공천이나 지원이 없이 후보 개인 능력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예비후보 입장에서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를 낼 수 있는 묘책이다.
  •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가 최근 광주 상무대로에 위치한 선거사무소에서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다. ‘더 큰 포용교육’을 기치로 열린 이번 개소식에는 3,000여명의 시민이 함께 해 2018년에 이어 다시 도전하는 이정선 예비후보에 대한 관심과 열기를 실감케 했다. 이정선 예비후보는 “지금 광주교육은 코로나 19로 인한 학습 격차와 실력 저하, 학령 인구 감소 및 미래 사회에 대한 대비 부족으로 교육대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며 “광주교육의 다가올 미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잘 준비된 교육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예비후보는 “2018년 교육감선거에서 2% 차이로 아쉽게 낙선했지만 지난 4년간 광주시민과 함께하며 ‘더 좋은 광주교육’을 만들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면서 “반드시 선거에서 승리해 우리 아이들만 바라보는 교육감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앞으로 광주교육이 나아갈 방향은 다양성을 품은 실력과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AI 미래교육, 단 한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 학교와 마을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교육이다”며 “이제는 혁신교육을 넘어 ‘더 큰 포용교육’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 광주시교육감 선거, 6파전 예상

    광주시교육감 선거, 6파전 예상

    광주시교육감 선거 출마를 검토했던 지병문 전 전남대 총장이 28일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광주시교육감 선거는 6명의 예비후보로 압축됐다. 지역 교육계에 따르면 예비후보로 등록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선거전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지 전 총장이 출마를 포기했다.지 전 총장은 “광주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봉사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어서 교육감 선거 출마를 고민했으나 지금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시작하기보다는 멈추고 쉴 때라고 판단해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 전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함에 일부 후보 간 단일화 여부와 파괴력이 미지수가 됐다. 일각에서는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돼 지 전 총장과 정성홍 전 전교조 광주지부장 등 일부 후보 간 단일화를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었다. 3선인 장휘국 교육감이 출마할 수 없어 무주공산이 된 시 교육감 선거는 이처럼 단일화 논의가 수면위로 올라오지 않은 가운데 당분간 6명의 후보가 경쟁하게 됐다. 현재 출마를 선언한 후보는 강동완 전 조선대 총장, 김선호 전 동아여중 관선 이사장, 박혜자 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 이정선 전 광주교대 총장, 이정재 전 광주교대 총장, 정성홍 전 전교조 광주지부장(이상 가나다순) 등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이정선 전 광주교대 총장, 박혜자 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 등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전통적인 조직력을 갖춘 전교조 후보의 ‘약진’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광주 교육계 관계자는 “일명 ‘시민후보’로 대변되는 단일화가 시 교육감 선거에서 최대 변수였는데 단일화 논의에 기대를 걸었던 지병문 전 총장이 출마를 포기해 변수가 어느 정도 사라진 것 같다”며 “그러나 선거는 유동성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예측 못 할 변수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인사]

    ■한국일보 [부장] △독자마케팅국 마케팅지원팀장 엄태석△경영지원실 재무관리팀장 유종수 [부장대우] △신문국 종합편집부 김도상△신문국 그래픽뉴스부 송정근△신문국 그래픽뉴스부 신동준 ■한경BP △한경BP 대표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서화동△논설위원 이건호△논설위원 유병연△편집국 부국장 겸 정책부문 에디터 박준동△부국장 겸 글로벌포럼사무국장(아그로플러스 대표 겸직) 장진모△부국장 겸 영상부문 에디터·디지털라이브부장 조성근△부국장 겸 B&M(비즈니스&마켓)부문 에디터 이심기△정치부장 류시훈△경제부장 주용석△금융부장 강동균△산업부장 서정환△중소기업부장 김동욱△유통산업부장 송종현△사회부장 이관우△건설부동산부장 김형호△증권부장 이상열△문화부장 오상헌△국제부장 서욱진△스타트업부장 고경봉△오피니언부장 이정선△광고국 부국장대우 신문마케팅1부장 유형노△제작국 윤전부장 신운섭△재경국장 이서준△재경국 재경부장 염흥수△업무지원국장 박해준△업무지원국 총무부장 홍재열 ■한국경제매거진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닷컴 △한경닷컴 뉴스국장 양준영 ■한경디지털랩 △한경디지털랩 디지털자산센터장 신경훈 ■한경글로벌뉴스네트워크 △한경글로벌뉴스네트워크 편집장 박해영 ■KBS △제작1본부 제작기획1부장 윤성도△제작1본부 시사교양1국 CP 유희원 ■MBC플러스 △광고사업본부 이사 정문주
  • 광주시교육감 선거전 뜨겁다

    광주시교육감 선거전 뜨겁다

    6월 1일 치러지는 광주광역시교육감 선거전이 후끈 달아올랐다. 장휘국 현 교육감의 3선 연임 제한으로 무주공산인 차기 광주시교육감 자리를 놓고 6~7명의 후보가 치열하게 물밑 경쟁을 하고 있다. 특히 시민을 위한 교육감을 선출하겠다며 시민단체들이 후보를 추대하고 단일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2~3명으로 압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동완 전 총장은 ‘광주가 학교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함께 광주교육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며 출사표를 냈다. 김선호 전 동아여중 관선 이사장은 인성교육 바탕 위에 튼튼한 실력을 배양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박혜자 전 의원은 ‘더 힘있게, 더 공정하게, 더 오래 가게’라는 3대 목표를 제시하며 광주교육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다.이정선 전 광주교대 총장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한 최근 10년 동안 수학능력시험 결과를 예로 들면서 ‘실력 광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정재 전 광주교대 총장은 광주가 인재의 요람이 되기 위해서 대전환의 미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성홍 전 전교조 광주지부장은 학생들이 미래에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공교육의 선순환 생태계 위에서 광주교육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눈여겨 볼 부분은 현재 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지병문 전 전남대 총장이 과연 출마할지, 또 일부 후보들의 단일화 여부다. 지 전 총장은 최근 한 매체와 통화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전남대 총장으로 일할 때 다소 힘들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교육행정을 제대로 펼 수 있을지 고민된다”며 “곧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4월이 되면 유력후보가 누구인지 판세가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지 전 총장이 출마할 경우 정성홍 전 지부장 등과 단일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시민단체인 광주전남개혁연대 공동대표를 지내 시민사회 세력과 줄이 닿아 있다. 정 전 지부장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광주교육에 적정한 후보를 찾기 위해 단일화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단일화 논의에 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주 교육계에서는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2∼3명이 선두권이지만 지 전 총장 출마여부와 후보 단일화가 최대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인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급 전보△기획재정담당관 남석△통신이용제도과장 이정순 ■행정안전부 ◇실장급 승진△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 장수완 ◇국장급 전보△인사기획관 고기동△정부혁신기획관 조상명△디지털정부국장 정선용 ■산업통상자원부 ◇실장급 전보△통상차관보 나승식 ◇실장급 승진△무역투자실장 문동민△무역위원회 상임위원 전윤종 ◇국장급 전보△정책기획관 최규종△자원산업정책관 유법민 ◇과장급 전보△무역위원회 덤핑조사과장 이원희 ■한국광물자원공사 △해외자원본부장 권순진△자원기반본부장 박명재△비서실장 김경호△재무관리처장 안종령△해외기획처장 서경환△개발지원처장 김남인△기술연구원장 최욱진△자산매각지원실장 류나영△법무실장 윤상수△남북자원실장 김문섭△광산안전사업실장 김영석△감사팀장 손영보△전략기획팀장 이제희△예산파트장 마일환△자금팀장 박가연△해외총괄팀장 신병훈△자산매각1분과장 신동호△안전기획분과장 이준용 ■한경미디어그룹 ◇한국경제신문△논설위원실 논설위원 박성완 박수진△편집국 영상정보부 선임기자 김병언△정책·국제부문장 겸 경제부장 박준동△산업부문장 겸 산업부장 이심기△마켓부문장 겸 금융부장 장진모△영상부문장 겸 디지털라이브부장 조성근△건설부동산부장 서욱진△생활경제부장 김형호△마켓인사이트부장 고경봉△중소기업벤처부장 이정선△지식사회부장 송종현△영상정보부장 강은구△제작국장 정희준△광고국 신문광고 부국장 전우형△광고국 신문마케팅1부장 유형노△신문마케팅2부장 김대환△경영지원실 업무지원국 관재부장 전병국 ◇아그로플러스△대표이사 유병연 ◇한경닷컴△상무보 김태완△뉴스국장 이상열
  • “인디 공연장 살리자” 의기투합한 로커와 변호사

    “인디 공연장 살리자” 의기투합한 로커와 변호사

    윤종수 변호사·해리빅버튼 이성수7일간 67팀 참여 온라인 공연 열어방구석 팬 끌어모아…1차 목표 달성“관심·지원 이어갈 시스템 고민”“온라인 릴레이 공연 이후, 행사가 끝난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공연장을 살리기 위한 릴레이 공연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를 열고 있는 윤종수 변호사는 공연을 기획한 소감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8일 시작해 오는 14일까지 공연장 5곳에서 진행 중인 이번 온라인 공연은 라이브가 목말랐던 록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 홍대 롤링홀에서 만난 윤 변호사와 밴드 ‘해리빅버튼’의 이성수는 “정말 열심히 ‘갈아 넣어’ 개최한 축제”라며 “인디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총 67개 팀이 참여한 이번 페스티벌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와 한국을 대표하는 하드록 밴드 보컬의 공동 기획으로 화제를 모았다. 약 5년 전부터 알고 지낸 두 사람이 뭉친 것은 코로나19로 공연장 줄폐업 소식이 전해지던 지난 2월 초였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이성수가 윤 변호사에게 법적인 해결 방안을 문의했고, 별다른 방법이 없자 유료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을 기획해 대관료를 ‘수혈’하기로 한 것이다. “어쩌다 변호사가 공연 기획을 하고 있냐”는 말을 들었다는 윤 변호사는 “그냥 음악이 좋아서 시작한 기획이었다”고 계기를 밝혔다. 그가 소속된 사단법인 코드가 행사를 주최하고, 공연 송출은 스타트업 ‘프리젠티드 라이브’를 운영하는 지인이 대가 없이 나섰다. 준비 기간은 한달로 빠듯했지만 행사 개최 소식을 알리자 “뭐라도 돕겠다”는 자원봉사자들까지 몰렸다. 섭외는 두 사람이 직접 발품을 팔았다. ‘포크 전설’ 이정선부터 DJ DOC, 잔나비, 크라잉넛, 다이나믹 듀오 등 ‘호화 라인업’이 완성됐다. 윤 변호사는 “어찌보면 불가능한 미션이었는데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준 덕분”이라고 했고, 이성수도 “모르는 사람까지 연락해 섭외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취지를 밝히니 모두 선뜻 동참했다”며 선후배에게 고마워했다. 공연은 2100여명의 유료 구매자를 끌어 모으며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목표했던 1차 금액 5000만원이 지난 12일 달성됐다. 놓쳤던 공연을 재방송 스트리밍으로 정주행 하기 위해 1일권(1만원)을 끊었던 관객들 중 전일권(5만원)을 재구매하는 사람도 많다. 수익은 모두 공연대관료 등 업계 생태계 유지를 위해 쓸 예정이다. 윤 변호사는 “단순히 기부나 후원을 받을수도 있었겠지만 좋은 음악, 실력 있는 팀들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도 커서 공연을 한 것”이라며 “유료로 표를 구매함으로서 관객들도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공연장이 사라지면 뮤지션도, 한국 대중 음악의 뿌리가 된 문화도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다. 결국 장기적으로 공연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시장을 확대해 가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윤 변호사는 “이번 공연을 통해 모인 관심을 다른 기획으로 잘 이어갈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수는 “공연을 하며 실시간 채팅을 보니 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면서 “페스티벌을 계기로 공연장에 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글·사진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홍대 인디공연장 살리자” 67팀 릴레이 공연 나선다

    “홍대 인디공연장 살리자” 67팀 릴레이 공연 나선다

    홍대 5개 공연장서 7일간 공연수익은 대관료·기금 마련 사용코로나19 장기화로 위기에 처한 인디 공연장을 살리기 위해 뮤지션들이 릴레이 온라인 공연에 대거 나선다. 8일 사단법인 코드에 따르면 이날부터 일주일간 프리젠티드 라이브를 통해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 온라인 페스티벌이 중계된다. 고사 위기에 놓인 공연장을 살리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롤링홀, 웨스트브릿지, 프리즘홀, 라디오가가, 드림홀 등 5개의 홍대 인디 라이브홀에서 총 67팀이 무대를 선보인다. 앞서 1차 라인업에는 해리빅버튼, 크라잉넛, 노브레인, 가리온,육중완밴드, 내귀에도청장치 등 12팀이 이름을 올렸다. 이후 여러 가수가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출연진이 크게 늘었다. 이정선, 잔나비, 다이나믹듀오, DJ DOC, 불고기디스코, 브로콜리너마저, 까데호, 카더가든, 소란, 솔루션스, 딕펑스, 조문근밴드, 최고은, 406호프로젝트 등 홍대에서 활동해 온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한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대중음악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브이홀, 무브홀, 에반스라운지, 퀸라이브홀 등 홍대 인디음악신을 지킨 공연장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하드록밴드 해리빅버튼의 보컬 이성수가 공연장을 도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다가 코드 이사장인 윤종수 변호사와 함께 온라인 공연을 추진하면서 이번 행사가 성사됐다. 무보수로 이번 공연을 주관하는 코드는 티켓 판매와 후원으로 얻은 이익을 5개 공연장 대관료를 지급하는 데 사용한다. 음악 채널 엠넷은 공연 마지막 날인 14일까지 무상으로 캠페인 예고 영상을 방영하며 홍보에 나선다. 인디음악의 열정을 부활시키려는 캠페인 취지에 맞게 영상에는 텅 빈 공연장에 노랫소리와 관객들의 환호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담았다고 엠넷은 밝혔다. 국내 최대 음악 플랫폼인 멜론도 후원금을 전달하고 공연 홍보를 돕는 방식으로 캠페인에 동참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현장] ‘1호 접종’ 지켜본 文 “대통령은 언제 기회 줍니까?”

    [현장] ‘1호 접종’ 지켜본 文 “대통령은 언제 기회 줍니까?”

    정은경 “순서 늦게 오기를” 文에 답변靑 “국민 불안한 일 일어나지 않길 바란단 뜻”靑 “文 접종 시기 안 정해졌다”文, SNS로 “일상회복 멀지 않았다” 기대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접종이 시작된 첫날인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마포구 보건소를 찾아 코로나19 백신 첫 예방접종이 이뤄지는 모습을 참관했다. 문 대통령은 접종대상들의 곁에 서서 참관을 지켜보면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대통령은 언제 기회를 주느냐”고 묻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1호 접종자들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다. 文 “우리 청장님은 언제 접종?”정은경 “코로나 1차 대응 요원 뒤에” 문 대통령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으로부터 예방접종 실시 계획을, 오상철 마포보건소장으로부터 접종 절차를 소개받은 뒤 접종실로 이동했다. 문 대통령은 보건소 예진실과 접종실, 이상반응 관찰실, 집중 관찰실, 약품보관실 등을 점검하며 접종실에서 접종자를 기다렸다. 문 대통령은 접종을 맡은 김서진 간호사를 향해 “드디어 1호 접종을 하시겠다”고 인사를 건넸고, 김 간호사는 “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우리 청장님은 언제 접종하느냐”고 물어본 뒤 “대통령에게는 언제 기회를 줍니까”라고 말했다. 동행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청장님이 대답을 잘하셔야 할 것 같다”고 추임새를 넣자 정 청장은 “순서가 늦게 오시기를”이라고 답하며 웃었다. 문 대통령은 “가급적 1차 접종을 좀 빠른 속도로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자 정 청장은 “1차 접종 맞고 그 기간 안에 2차 접종이 안 되면…”이라고 답했다.세 사람의 이날 대화는 문 대통령이 1호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는 야당 일각의 주장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정 청장은 자신의 접종과 관련해서는 “역학조사관들, 검역관들, 선별진료소 근무자 등 코로나 1차 대응요원들로 이번에 접종을 시작해서 질병관리청도 일정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청장의 답변과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국민이 백신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경우 먼저 접종에 나설 생각이었다”면서 “정 청장의 언급은 국민이 불안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접종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시스템에 따라 적절한 때에 접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文 “역사적 1호 접종, 좀 지켜봐도 되겠습니까” 마포구 보건소 첫 접종자김윤태 푸르메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원장靑 “어린이 백신 접종 제외돼어린이 병원 종사자 먼저 맞을 필요” 이후 진료소에는 마포구 보건소 첫 접종자인 김윤태 푸르메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원장이 입장했다. 문 대통령은 “안녕하십니까. 역사적인 1호 접종이신데 접종하는 것 좀 지켜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했고 김 원장은 “영광입니다”라고 답했다. 김 원장이 “아프지 않게 놔달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의사 선생님인데 (그런 얘길 하시나). 하하하”라고 웃었고, 정 청장은 “누구나 아프다”며 미소를 보였다. 청와대 측은 “백신접종 대상에서 아동들이 제외됐다. 코로나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면 어린이병원 종사자가 먼저 백신을 맞을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잘 알고 있는 김 원장이 솔선수범해 접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文 “백신이 아주 안전하다는 것을, 빨리,많이 맞는게 중요하다는 걸 알려달라” 김 원장은 “의사로서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이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판단한다”면서 “현재 개발된 코로나19 백신들은 아동들에게 접종이 불가능해 병원 종사자들이 백신 접종을 통해 면역력이 약한 아동 환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아마도 당분간은 이렇게 먼저 접종하시는 분들이 이상이 없는지가 국민들의 관심사가 될 것 같다”면서 “지켜야 되는 수칙들이 있을 텐데 잘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상이 없길 바라고, 또 백신이 아주 안전하다는 것을, 그래서 국민들이 전혀 불안해하실 필요 없이 빨리, 많이 맞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알려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이정선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 치료사가 마포구 보건소 2호 접종을 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문 대통령은 방문 뒤 SNS에 글을 올려 “국민들께 일상 회복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전해드린다. 접종 과정이 모든 국민께 신뢰를 주기 충분했고 사후 관리도 안심이 된다”면서 “회복하고 도약하는 봄이 다가왔다. 조금만 더 방역의 끈을 팽팽하게 당겨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시작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의 우선 접종대상은 만 65세 미만의 요양병원·시설 입소자 및 종사자 약 29만명이다. 이 가운데 예방접종 첫날인 이날 오전 9시부터 하루 동안 전국 213개 요양시설의 입소자 및 종사자 5266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접종을 받는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인사] 경남도교육청(중·초등), 대전시교육청, 한국산림복지진흥원

    ■ 경남도교육청(중등) ◇ 교장급 <국장>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최병헌 <직속기관장> △ 도교육청 교육연수원 허인수 △ 도교육청 낙동강학생교육원 박세권 <교육장> △ 김해교육지원청 김현희 △ 남해교육지원청 강태석 △ 합천교육지원청 정종화 <본청 과장>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이정숙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홍정희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민주시민교육과 송호찬 <전직(교장 → 교육연구관)> △ 도교육청 과학교육원 김성권 <전직(교육연구관 → 장학관)>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기후환경교육추진단 이인숙 <교장 전직(장학관, 교육연구관 → 교장)> △ 구암중학교 황원판 △ 연초고등학교 김재훈 △ 창원과학고등학교 조용국 △ 대방중학교 임욱빈 △ 김해제일고등학교 김갑영 △ 삼정자중학교 조규갑 △ 창원명곡고등학교 김주석 △ 마산고등학교 임채환 △ 안의고등학교 김상용 △ 명석중학교 신정희 △ 마산동중학교 최문용 △ 월산중학교 이화순 <교장 전보> △ 창원용호고등학교 정영권 △ 경원중학교 양기수 △ 반림중학교 김미영 △ 반송여자중학교 김형중 △ 웅남중학교 박순호 △ 밀양여자고등학교 석희섭 △ 영산중학교 이두환 △ 안남중학교 권영임 △ 합포여자중학교 정인근 △ 구산중학교 김병진 △ 진주중앙고등학교 박기열 △ 반성중학교 하만흥 △ 진주봉원중학교 문영인 △ 통영여자고등학교 손병욱 △ 지세포중학교 임춘화 △ 삼천포중앙고등학교 김언근 △ 김해외국어고등학교 정보암 △ 김해여자중학교 서한수 △ 금남고등학교 송숙정 △ 구산중학교 강남호 △ 함안중학교 이수은 △ 신반중학교 최진영 △ 진교고등학교 최달수 △ 경남은광학교 시옥순 <장학관 전보>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전제동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김익수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이은지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창의인재과 김지연 <교육연구관 전보> △ 도교육청 학생안전체험교육원 서성덕 <공모만료(공모교장 → 교장)> △ 함안고등학교 문정식 △ 진해중학교 최용만 △ 동진여자중학교 유병십 △ 김해영운고등학교 심재일 △ 분성중학교 박삼수 △ 의령고등학교 황석도 <장학관, 교육연구관 승진(장학사, 교육연구사 →장학관, 교육연구관)>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오연경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정선희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민주시민교육과 강형천 △ 창원교육지원청 정득수 △ 진주교육지원청 신재국 △ 양산교육지원청 강은경 △ 밀양교육지원청 김덕용 △ 의령교육지원청 김서연 △ 하동교육지원청 공현철 △ 도교육청 학생교육원 양봉석 △ 도교육청 학생교육원 진산분원 주형규 <교장 승진(교감 → 교장)> △ 청암중학교 강춘앵 △ 초계고등학교 공등표 △ 호암중학교 곽인숙 △ 양곡중학교 권혁구 △ 충무고등학교 김경근 △ 내동중학교 김동률 △ 용원중학교 김미연 △ 사량중학교 김영식 △ 범어중학교 김혜영 △ 영산고등학교 나정흠 △ 덕산고등학교 노오기 △ 삼천포제일중학교 박두숙 △ 삼성중학교 박수규 △ 원동중학교 박종석 △ 거제상문고등학교 송호용 △ 밀양영화고등학교 안종헌 △ 김해여자고등학교 오현숙 △ 김해임호고등학교 왕병권 △ 양산남부고등학교 유배열 △ 합천고등학교 이승근 △ 가조중학교 임정희 △ 야로중학교 정종환 △ 남해제일고등학교 정형석 △ 남해여자중학교 최수연 △ 웅상고등학교 최양희 △ 진영장등초중학교 최영환 △ 김해은혜학교 박미정 △ 진주혜광학교 박현옥 <교장 중임> △ 명곡여자중학교 윤혜경 △ 봉림중학교 김금옥 △ 창원동중학교 박치갑 △ 토월중학교 이용규 △ 팔룡중학교 최영길 △ 광려중학교 최철규 △ 안골포중학교 김형준 △ 경남정보고등학교 양재석 △ 대곡고등학교 양상수 △ 명신고등학교 이현철 △ 진서고등학교 정화영 △ 개양중학교 고일생 △ 진주중앙중학교 윤선자 △ 통영중학교 강오원 △ 거제고현중학교 이영자 △ 부곡중학교 윤재근 △ 경남항공고등학교 김금룡 △ 소가야중학교 이한기 △ 회화중학교 최상재 △ 진교중학교 조항두 △ 하동중앙중학교 최철숙 <공모교장> △ 남산중학교 김형헌 △ 웅천중학교 김은수 △ 고성중앙고등학교 심대현 △ 거제공업고등학교 오민세 △ 남해보물섬고등학교 백명기 ◇ 교감급 <교감 전보> △ 사천(중) 강명식 △ 창원[창원](중) 곽남연 △ 산청(중) 권오영 △ 창원[창원](중) 김종세 △ 창원[창원](중) 김택수 △ 김해(중) 김화선 △ 창원[창원](중) 김효제 △ 창원[진해](중) 류홍률 △ 창원[창원](중) 박동규 △ 경남과학고등학교 박두갑 △ 창원[창원](중) 박미란 △ 진주(중) 박재득 △ 거제(중) 박철현 △ 창원[마산](중) 안계숙 △ 경남체육고등학교 안종길 △ 창원[창원](중) 윤란자 △ 고성중앙고등학교 이강식 △ 진주고등학교 이동규 △ 통영(중) 최창식 △ 김해(중) 하종호 △ 밀양(중) 황광열 △ 거창나래학교 김학태 △ 진주혜광학교 최은숙 <교육전문직원 전보>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강경모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권순길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김선향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김시론 △ 도함양교육지원청 김정숙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김종승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김지종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김형남 △ 사천교육지원청 문정원 △ 밀양교육지원청 박봉률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박윤정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체육예술건강과 박을순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신상철 △ 창원교육지원청 신창옥 △ 도교육청 정책기획관 오용주 △ 남해교육지원청 이명지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이성란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창의인재과 장윤정 △ 고성교육지원청 정창민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정창욱 △ 진주교육지원청 천병철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최수미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최양림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체육예술건강과 최천호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유아특수교육과 박일성 <교감승진(교사 → 교감)> △ 김해분성고등학교 강종천 △ 통영(중) 김정미 △ 김해(중) 김정혜 △ 남해(중) 김희란 △ 김해영운고등학교 남정임 △ 김해(중) 노옥숙 △ 거제(중) 박경윤 △ 안의고등학교 박기석 △ 경남해양과학고등학교 박선곤 △ 김해(중) 박순애 △ 한국나노마이스터고등학교 박정하 △ 김해수남고등학교 박종대 △ 마산용마고등학교 심판갑 △ 거창(중) 안종금 △ 밀양고등학교 양동화 △ 물금고등학교 유경찬 △ 마산가포고등학교 윤정식 △ 창녕(중) 이대호 △ 초계고등학교 이연주 △ 통영(중) 이태숙 △ 김해(중) 이희선 △ 야로고등학교 정무임 △ 진해용원고등학교 정윤호 △ 김해여자고등학교 정종엽 △ 거창(중) 정차영 △ 창원[진해](중) 조미옥 △ 김해가야고등학교 천두희 △ 창원[진해](중) 최대현 △ 김해(중) 최창옥 <전직(교감 → 교육연구사)> △ 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김혜경 <전직(장학사·교육연구사 → 교감)> △ 통영(중) 김도윤 △ 양산(중) 박영애 △ 창원[마산](중) 박주서 △ 김해(중) 이왕민 △ 진주(중) 정화영 △ 창원용호고등학교 정희정 △ 창원신월고등학교 하은영 △ 김해은혜학교 이창훈 △ 창원천광학교 김기영 <전직(교사 → 장학사)> △ 창원교육지원청 강성희 △ 창원교육지원청 강혜린 △ 거제교육지원청 김경원 △ 거제교육지원청 김미정 △ 도교육청 감사관 김태완 △ 양산교육지원청 양광성 △ 통영교육지원청 유원숙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민주시민교육과 이상겸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이수용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정우민 △ 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정학룡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기후환경교육추진단 천명수 △ 도김해교육지원청 최복순 △ 도교육청 행정국 학교지원과 하치훈 △ 김해교육지원청 황선영 △ 양산교육지원청 박인수 △ 진주교육지원청 홍숙희 <전직(교육연구사 → 장학사)> △ 도교육청 행정국 미래학교추진단 문기철 △ 함안교육지원청 안의환 △ 하동교육지원청 이상제 <전직(장학사 → 교육연구사)> △ 도교육청 학생교육원 남해분원 김태정 △ 도교육청 특수교육원 도외숙 ■ 경남도교육청(초등) ◇ 장학(교육연구)관 <본청 국장> △ 본청 미래교육국 원기복 <신임교육장 및 직속기관장> △ 진주교육지원청 박영주 △ 밀양교육지원청 김정희 △ 의령교육지원청 한금조 △ 도교육청 산촌유학교육원 전영태 △ 도교육청 유아교육원 윤양수 △ 도교육청 학생안전체험교육원 박희문 <본청 과장>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이외숙 △ 본청 학교정책국 유아특수교육과 양경원 <전직(교장→장학관, 교육연구관)>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우조현 △ 도교육청 교육연수원 최미숙 △ 김해교육지원청 문종녀 △ 양산교육지원청 김봉수 △ 고성교육지원청 변진희 △ 남해교육지원청 김보상 <전직(교감→장학관)>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조래은 ◇ 전보(장학관, 교육연구관↔장학관, 교육연구관) △ 본청 학교정책국 초등교육과 김정희 △ 본청 미래교육국 체육예술건강과 장종욱 △ 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이창두 △ 창원교육지원청 이명주 △ 창원교육지원청 박영구 <직위 승진(장학사, 교육연구사↔장학관, 교육연구관)> △ 도교육청 과학교육원 우포생태교육원 권상철 △ 도교육청 유아교육원 한수진 <전직(장학관, 교육연구관→교(원)장)> △ 창원 토월유 배연희 △ 창원 창원신월초 이국식 △ 창원 명서초 김정희 △ 마산 봉덕초 김경미 △ 밀양 밀성초 박성흠 △ 창원 창원한들초 신종규 △ 하동 묵계초 오인태 ◇ 교(원)장 <중임(초등교장)> △ 창원 동산초 노병채 △ 창원 무동초 성수경 △ 창원 봉강초 윤덕인 △ 마산 무학초 이말숙 △ 마산 호계초 정경영 △ 진해 안골포초 오영선 △ 진해 안청초 변경희 △ 진해 웅동초 이숙남 △ 진해 자은초 이진환 △ 진주 금곡초 정분임 △ 진주 내동초 강광호 △ 진주 미천초 김점순 △ 진주 서진초 강옥순 △ 진주 장재초 김계옥 △ 진주 지수초 이희숙 △ 통영 통영초 원필숙 △ 사천 남양초 김숙진 △ 김해 계동초 최영숙 △ 김해 김해구지초 예성수 △ 김해 김해내동초 이지순 △ 김해 분성초 박봉호 △ 김해 진례초 최선희 △ 김해 화정초 배숙정 △ 밀양 부북초 이두흠 △ 밀양 예림초 정복도 △ 거제 양지초 이순복 △ 거제 외간초 권옥현 △ 거제 칠천초 김향선 △ 의령 대의초 김정란 △ 고성 고성초 강주희 △ 고성 하일초 김재천 △ 함양 금반초 정상숙 △ 함양 수동초 하정영 △ 함양 유림초 정영선 △ 합천 초계초 최선 <중임(유치원장)> △ 창녕 창녕유 허정숙 <전보(초등교장)> △ 창원 명도초 이수광 △ 창원 사파초 윤현철 △ 창원 신방초 배종달 △ 창원 용남초 구자익 △ 창원 용지초 이말련 △ 창원 웅남초 조경식 △ 창원 일동초 임의순 △ 마산 교동초 박현숙 △ 마산 구산초 허말란 △ 마산 구암초 성향선 △ 마산 내서초 오인숙 △ 마산 마산중앙초 양정숙 △ 마산 반동초 정수교 △ 마산 북성초 김순옥 △ 마산 석전초 김덕순 △ 마산 안계초 이분헌 △ 마산 월포초 강경선 △ 마산 전안초 이연희 △ 마산 중리초 김미숙 △ 마산 진동초 심성우 △ 마산 팔룡초 지영미 △ 진해 경화초 선정화 △ 진해 대야초 송철규 △ 진해 용원초 이종석 △ 진주 봉원초 박시영 △ 진주 선학초 박미자 △ 진주 신진초 김호연 △ 통영 두룡초 신한옥 △ 통영 용남초 문상현 △ 통영 한산초 강해룡 △ 김해 대청초 손남옥 △ 김해 구산초 허성대 △ 김해 김해대곡초 김춘옥 △ 김해 김해부곡초 김홍섭 △ 김해 김해신안초 하종명 △ 김해 대감초 이정선 △ 김해 삼문초 류영선 △ 김해 김해합성초 노동현 △ 김해 용산초 한영숙 △ 김해 진영대흥초 장종대 △ 밀양 상동초 김진석 △ 거제 기성초 이재섭 △ 거제 신현초 이창호 △ 거제 제산초 박종찬 △ 양산 성산초 강미순 △ 양산 원동초 노형준 △ 함안 함안초 강미경 △ 창녕 계창초 김형태 △ 창녕 길곡초 전애리 △ 창녕 남지초 신용철 △ 창녕 도천초 한두례 △ 창녕 창녕성산초 이미화 △ 창녕 창녕초 하영미 △ 고성 거류초 강정순 △ 고성 마암초 윤성운 △ 고성 상리초 손순자 △ 고성 영현초 고영정 △ 하동 갈육초 김종호 △ 하동 북천초 신차순 △ 산청 단성초 강성태 <전보(유치원장)> △ 진해 곰내유 김현숙 △ 진주 한울유 백영재 △ 진주 진주유 심정란 △ 진주 진주누리유 하영옥 △ 김해 김해유 원혜선 △ 거제 사등유 홍경혜 <승진(초등교장)> △ 김해 김해가야초 허둘옥 △ 김해 김해삼성초 박미애 △ 김해 봉명초 김명남 △ 김해 어방초 박선희 △ 김해 영운초 김선희 △ 밀양 미리벌초 김은주 △ 밀양 밀양초 이선숙 △ 밀양 산내남명초 강명환 △ 밀양 송진초 이향자 △ 밀양 청도초 김종숙 △ 밀양 태룡초 김인숙 △ 거제 명사초 곽철원 △ 거제 옥포초 이현주 △ 거제 일운초 이은하 △ 양산 대운초 강기섭 △ 양산 덕계초 이현님 △ 양산 백동초 김정숙 △ 양산 서창초 고병원 △ 양산 화제초 조미옥 △ 창녕 고암초 손영화 △ 거창 북상초 박희자 △ 김해 장유초 최진숙 △ 양산 회야초 정재식 △ 김해 김해봉황초 민승도 △ 김해 수남초 박환식 △ 거제 내곡초 이점자 △ 거제 아주초 김성은 △ 양산 동산초 강순옥 △ 양산 삼성초 박애란 △ 함안 대산초 장미란 △ 함안 문암초 임채순 △ 함안 칠원초 차유미 △ 창녕 장마초 천병영 △ 남해 설천초 윤정순 <승진(유치원장)> △ 마산 양덕솔빛유 김유희 △ 통영 통영유 황 미 △ 사천 사천유 박창희 △ 김해 진영유 박순영 △ 거제 한아름유 홍남수 △ 고성 고성유 김미경 △ 함양 천령유 이영란 △ 합천 합천유 강미경 △ 양산 양산유 손옥경 △ 창원 용호유 김은정 △ 양산 물금유 이혜선 <공모교장> △ 마산 마산고운초 김태오 △ 거제 거제용소초 황건수 △ 양산 양산초 강성수 △ 산청 신안초 김태성 △ 합천 가회초 김형수 <원로교사> △ 창원(창원) 윤영일 △ 진주 강경숙 △ 진주 최봉덕 △ 거제 김기태 ◇ 교(원)감 <전보(초등교감)> △ 창원(창원) 김명희 △ 창원(창원) 조현주 △ 창원(마산) 김윤희 △ 창원(마산) 하한수 △ 진주 서외남 △ 진주 송민정 △ 통영 남치리 △ 통영 이기선 △ 김해 남국종 △ 거제 김홍석 △ 거제 박정옥 △ 거제 이호룡 △ 함안 최재봉 △ 남해 배상열 <전보(초등특수교감)> △ 경남혜림학교 손영숙 △ 경남은광학교 신홍식 <전보(유치원감)> △ 창원(마산) 홍경덕 △ 창원(진해) 신숙기 △ 진주 정경윤 △ 진주 최수연 △ 거제 김경숙 △ 거제 조미숙 △ 밀양 김봉선 △ 양산 윤서현 △ 고성 조영란 △ 남해 손정미 △ 하동 이정숙 △ 합천 문춘화 <승진(초등교감)> △ 창원(마산) 곽광영 △ 창원(마산) 김혜숙 △ 창원(마산) 박은정 △ 김해 김영곤 △ 김해 김은경 △ 김해 김종락 △ 김해 김주옥 △ 김해 박훈영 △ 김해 안효성 △ 김해 이희선 △ 김해 정귀남 △ 김해 정명상 △ 김해 제창수 △ 김해 조현윤 △ 밀양 고원일 △ 밀양 성웅곤 △ 양산 고장현 △ 양산 김대범 △ 양산 김미경 △ 양산 김외규 △ 양산 오장명 △ 양산 유경숙 △ 양산 윤성자 △ 양산 채영애 △ 창녕 안창준 △ 창녕 하갑선 △ 남해 강용순 <승진(원감)> △ 창원(창원) 김정혜 △ 창원(창원) 박미혜 △ 창원(창원) 류말순 △ 창원(마산) 김정희 △ 진주 김미자 △ 진주 이길순 △ 김해 이미경 △ 거제 신은희 △ 거제 이향미 △ 양산 김선녀 △ 양산 김정남 △ 양산 김창숙 △ 양산 진말숙 <전직(교육전문직 → 초등교감)> △ 창원(창원) 임수일 △ 창원(창원) 차분남 △ 창원(창원) 최진수 △ 창원(마산) 이은주 △ 김해 이동주 △ 양산 류경희 △ 함안 김양자 △ 산청 이병만 ◇ 장학(교육연구)사 <전보> △ 본청 정책기획관 곽형준 △ 본청 감사관 김경래 △ 본청 학교정책국 유아특수교육과 임상호 △ 본청 학교정책국 초등교육과 김현희 △ 본청 학교정책국 초등교육과 김민정 △ 본청 미래교육국 기후환경교육추진단 김경화 △ 본청 학교정책국 진로교육과 조순금 △ 본청 미래교육국 교육복지과 정혜숙 △ 본청 행정국 안전총괄과 조성대 △ 본청 행정국 미래학교추진단 홍기표 △ 도교육청 교육연수원 안성진 △ 도교육청 교육연수원 유민순 △ 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정대수 △ 도교육청 특수교육원 유종열 △ 도교육청 유아교육원 이민순 △ 도교육청 유아교육원 진주체험분원 조필례 △ 창원교육지원청 오정애 △ 창원교육지원청 정종성 △ 창원교육지원청 한경수 △ 진주교육지원청 강수연 △ 통영교육지원청 김윤용 △ 통영교육지원청 박천주 △ 사천교육지원청 강현숙 △ 김해교육지원청 강은영 △ 밀양교육지원청 김연정 △ 양산교육지원청 하연숙 △ 함안교육지원청 류은주 △ 함안교육지원청 전수정 △ 하동교육지원청 고승진 △ 산청교육지원청 이용기 <전직(교감→교육전문직)> △ 거제교육지원청 박춘석 △ 남해교육지원청 허승배 △ 거창교육지원청 문익동 <전직(원감→교육전문직)> △ 도교육청 유아교육원 김해체험분원 정혜경 <전직(교사→교육전문직)>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김덕진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조재광 △ 본청 학교정책국 유아특수교육과 박미정 △ 본청 미래교육국 체육예술건강과 최은영 △ 도교육청 유아교육원 조명화 △ 통영교육지원청 이정희 △ 양산교육지원청 이대용 △ 양산교육지원청 이상균 △ 고성교육지원청 오정훈 △ 남해교육지원청 박선희 △ 함양교육지원청 이미영 <파견, 파견연장(교육전문직)> △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곽형준 △ 본청 학교정책국 총무과 정영환 <파견(교사→인턴장학사)> △ 본청 정책기획관 곽지은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김성준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정순이 △ 본청 학교정책국 유아특수교육과 박은화 △ 본청 학교정책국 초등교육과 이태호 △ 본청 학교정책국 초등교육과 이계영 △ 본청 미래교육국 창의인재과 하호용 △ 본청 미래교육국 기후환경교육추진단 정재훈 △ 도교육청 유아교육원 김민경 △ 도교육청 과학교육원 우포생태교육원 김철록 △ 거제교육지원청 송영헌 △ 양산교육지원청 이순미 △ 의령교육지원청 김인철 △ 함안교육지원청 윤은진 △ 남해교육지원청 박대영 △ 합천교육지원청 김기호 ■ 대전시교육청 ▣ 초등 ◇ 장학관 승진(장학사 → 장학관) △ 유초등교육과 원정애 ◇ 교육연구사 파견 △ 한국교원대학교 채은영 ◇ 교육연구사 파견 복귀 △ 교육연수원 김귀영 ◇ 교육전문직원간 전직(장학사 ↔ 교육연구사) △ 기획예산과 김귀영 △ 과학직업정보과 송나영 △ 서부교육지원청 강대식 △ 교육정보원 권희청 △ 교육정보원 류희상 △ 교육과학연구원 김혜정 ◇ 장학사·교육연구사 전보 △ 교육정책과 민길홍 △ 유초등교육과 김경아 △ 유초등교육과 김선자 △ 유초등교육과 박은희 △ 유초등교육과 성미란 △ 유초등교육과 전향임 △ 교육정책연구소 김미란 ◇ 장학사·교육연구사 임용(원감·교사 → 장학사·교육연구사) △ 시설과 조현수 △ 동부교육지원청 박준수 △ 서부교육지원청 손정희 △ 서부교육지원청 채선희 △ 교육연수원 김선영 △ 교육연수원 조근애 △ 교육정보원 임경선 △ 유아교육진흥원 권영미 ◇ 특수학교(초등) 교사 파견 연장(인턴교육전문직원) △ 유초등교육과 임정윤 ◇ 초등학교장 승진(공모교장 → 초등학교장) △ 산흥초 김완구 ◇ 초등학교장 승진(초등학교 교감 → 초등학교장) △ 동산초 노명례 △ 보운초 주진숙 △ 산성초 노경미 △ 석봉초 성낙훈 △ 성천초 복명희 △ 용전초 김윤덕 △ 중촌초 오경운 △ 천동초 홍병기 △ 봉암초 이면수 △ 유성초 한유경 ◇ 초등학교장 공모(초등학교 교감 → 공모교장) △ 장동초 양희중 ◇ 초등학교장 중임 △ 글꽃초 오순임 △ 대정초 임재윤 △ 도솔초 김현수 △ 목동초 박선해 △ 백운초 이현숙 △ 변동초 송호경 △ 상원초 황미자 △ 신평초 이혜경 △ 용산초 이희순 △ 원신흥초 김효미 △ 현암초 박노철 △ 동명초 전경숙 ◇ 초등학교장 전보 △ 도마초 유영호 △ 문창초 박찬용 △ 서원초 서강익 △ 송촌초 이옥선 △ 월평초 김용자 △ 장대초 유영언 △ 탄방초 백금성 ◇ 초등학교장 명예퇴직 △ 장대초 송명자 ◇ 초등학교장 정년퇴직 △ 목동초 김명희 △ 유성초 김진숙 △ 중촌초 류근양 △ 용산초 송권석 △ 문창초 송민애 △ 탄방초 송선희 △ 상원초 여양구 △ 신평초 유인화 △ 서원초 윤국진 ◇ 유치원장 승진(유치원 원감 → 유치원장) △ 여울누리유 김효정 ◇ 유치원장 전직(교육연구사 → 유치원장) △ 신흥유 류은옥 ◇ 유치원장 중임 △ 원신흥유 김복남 ◇ 유치원장 정년퇴직 △ 신흥유 최미경 ◇ 특수학교장 전직(장학관 → 특수학교장) △ 해든 한도영 ◇ 초등학교 교감 특별 승진 △ 흥도초 고민숙 △ 두리초 김명옥 △ 대정초 김상숙 △ 문화초 김애정 △ 관저초 김애중 △ 삼천초 김정희 △ 외삼초 백순이 △ 용전초 손성자 △ 샘머리초 손재연 △ 진잠초 송경옥 △ 버드내초 오창근 △ 대흥초 유동주 △ 금성초 윤현순 △ 어은초 이미숙 △ 오류초 이미자 △ 외삼초 이애윤 △ 백운초 이종숙 △ 구봉초 임연순 △ 상지초 장재희 △ 둔산초 장정희 △ 문정초 정미숙 △ 버드내초 정보영 △ 도안초 조송자 △ 흥도초 천성순 ◇ 초등학교 교감 승진(초등학교 교사 → 초등학교 교감) △ 석봉초 김선경 △ 신흥초 사홍석 △ 금성초 이경순 △ 도솔초 박혜정 △ 반석초 김명순 △ 복수초 한창숙 △ 선암초 오경희 △ 유천초 우선희 △ 문지초 박지현 ◇ 초등학교 교감 전직(교육연구사 → 초등학교 교감) △ 대양초 최은경 △ 송강초 권오정 ◇ 유치원 원감 승진(유치원 교사 → 유치원 원감) △ 여울누리유 안서영 ◇ 유치원 원감 전직(장학사 → 유치원 원감) △ 삼천초병설유 이혜경 ◇ 유치원 원감 청간 전보(동부 ↔ 서부) △ 원신흥유 이은모 ◇ 초등학교 교감 관내 전보 △ 대암초 이율희 △ 동산초 오양록 △ 목양초 최숙영 △ 법동초 이석호 △ 삼성초 김성길 △ 유평초 이영석 △ 서대전초 진이정 △ 회덕초 오나영 △ 기성초 성순희 △ 남선초 양인애 △ 둔천초 김효기 △ 서부초 강숙영 △ 송림초 유송례 △ 신계초 박재명 △ 원신흥초 김종환 △ 죽동초 이명옥 △ 진잠초 서용식 ◇ 유치원 원감 관내 전보 △ 문창유 이종은 △ 은어송초병설유 이정주 ▣ 중등 ◇ 장학관 전직(교장 → 장학관) △ 대전교육청 교육국장 오석진 ◇ 교육연구관 전직(장학관 → 교육연구관) △ 교육연수원 원장 정흥채 ◇ 장학관·교육연구관 전직(교감 → 장학관·교육연구관) △ 유초등교육과 전서경 △ 교육과학연구원 과학교육지원부장 홍상욱 ◇ 장학관 직위 승진 △ 과학직업정보과장 한혁 ◇ 장학관 승진(장학사 → 장학관) △ 과학직업정보과 박락영 ◇ 교육연구관 승진(교육연구사 → 교육연구관) △ 교육정보원 정보지원부장 태관식 △ 교육정보원 수학교육부장 김택수 ◇ 장학사·교육연구사 간 전직(장학사 ↔ 교육연구사) △ 교육정책과 장오희 △ 교육연수원 정현석 △ 교육연수원 윤미영 △ 교육정보원 조해영 ◇ 장학사 신규 임용(교사 → 장학사) △ 교육정책과 이화종 △ 민주시민교육과 구정희 △ 서부교육지원청 백은하 △ 서부교육지원청 홍정화 ◇ 장학사 전보 △ 교육정책과 박은조 △ 중등교육과 최명희 △ 과학직업정보과 김우전 △ 체육예술건강과 김병수 △ 동부교육지원청 박봉규 △ 동부교육지원청 고영민 ◇ 교육전문직원 정년퇴직 △ 대전교육청 교육국장 임창수 ◇ 교육전문직원 명예퇴직 △ 교육연수원 원장 이광우 ◇ 중등학교장·특수학교장 승진(교감·공모교장 → 교장) △ 괴정고 서윤순 △ 맹학교 박준상 △ 대전여중 임미순 △ 한밭중 박애란 △ 신탄중앙중 신현묵 △ 진잠중 황호룡 △ 느리울중 가순관 ◇ 중등학교장 전직(교육연구관 → 교장) △ 충남여중 박귀미 △ 두리중 이상탁 ◇ 중등학교장 중임 △ 매봉중 이정진 △ 태평중 장흥남 △ 유성중 정상신 △ 삼천중 하경란 △ 전민중 김미경 △ 갑천중 김근호 △ 남선중 박상필 △ 도안중 양기찬 ◇ 중등학교장 전보 △ 충남기계공업고 이종업 △ 한밭고 남성호 △ 유성고 조진형 △ 대전공업고 박인규 △ 구봉고 명재덕 △ 전민고 서정남 △ 동신중 이정옥 △ 기성중 이학우 △ 외삼중 양미연 ◇ 중등학교장·특수학교장 정년퇴직 △ 충남기계공업고 황의만 △ 한밭고 정미애 △ 유성고 정동섭 △ 맹학교 원종대 △ 충남여중 유평열 △ 외삼중 김종성 △ 두리중 조주호 ◇ 중등학교장 특별 승진 △ 반석고 김경희 ◇ 중등학교·특수학교 교감 승진(교사 → 교감) △ 동대전고 임경옥 △ 송촌고 김충식 △ 가오고 박찬수 △ 혜광학교 오자영 △ 해든학교 홍세연 △ 대전중 김규행 △ 대전여중 백승혜 △ 동신중 김희영 △ 동대전중 양희명 △ 대전송촌중 인창호 △ 내동중 김상선 △ 만년중 유민정 △ 문지중 기현이 ◇ 중등학교 교감 전보 △ 충남기계공업고 정흥교 △ 대전고 김면중 △ 충남고 라인덕 △ 대덕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조창희 △ 둔원고 남승권 △ 괴정고 임헌규 △ 반석고 우부식 △ 충남여중 김란숙 △ 문화여중 민문기 △ 중리중 장희식 △ 대문중 이윤종 △ 매봉중 이범주 △ 대청중 이종석 △ 대전서중 윤형준 △ 변동중 정찬우 △ 갑천중 김성희 △ 남선중 신은실 △ 지족중 박종근 △ 관평중 김복자 ◇ 중등학교 교감 정년퇴직 △ 충남기계공업고 김대식 △ 대전고 손종배 ◇ 중등학교 교감 특별 승진 △ 충남기계공업고 장문규 △ 국제통상고 박순철 △ 한밭고 허천 △ 동대전고 천세라 △ 과학고 고동순 △ 충남여고 김언아 △ 유성생명과학고 이옥이 △ 유성생명과학고 이원혜 △ 신탄진고 김미원 △ 대전공업고 최재리 △ 둔산여고 김교철 △ 둔산여고 송달호 △ 관저고 김해옥 △ 관저고 유재임 △ 송촌고 서유미 △ 둔원고 정국진 △ 지족고 조재우 △ 산업정보고 이종순 △ 가양중 이택병 △ 가오중 김영미 △ 동대전중 홍유선 △ 태평중 박경숙 △ 태평중 정지선 △ 은어송중 오희세 △ 은어송중 정인자 △ 글꽃중 최이임 △ 전민중 권미향 △ 문정중 김홍찬 △ 문정중 전용호 △ 관저중 부은숙 △ 봉우중 최재은 △ 정림중 전옥권 △ 지족중 이연숙 △ 노은중 양진숙 △ 노은중 유형삼 △ 구봉중 이경숙 △ 동화중 채숙희 △ 자운중 백주현 △ 봉명중 김영호 ◇ 중등학교 교감 정년퇴직 △ 관평중 하동수 ■ 한국산림복지진흥원 ◇ 1급 승진 △ 동반성장지원본부장 이우진 △ 국립산림치유원 산림치유사업부장 박석희
  • 남자라 오해받았던 ‘파워 주포’… 92연승 대기록 이끌어… 센 언니 원천은 ‘연습 또 연습’

    남자라 오해받았던 ‘파워 주포’… 92연승 대기록 이끌어… 센 언니 원천은 ‘연습 또 연습’

    ‘배구 레전드’ 장윤희(51) 17세 이하 여자유스대표팀 감독. 그녀는 천생 여자였다. 단정하지만 자신감 있게 인터뷰실에 앉은 장윤희에게 ‘그 사건’ 때 “여성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았느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장윤희는 최근 높은 인기를 누리는 여자배구의 원조 슈퍼스타다. GS칼텍스의 전신인 호남정유의 주포였던 그는 1991~99년 슈퍼리그 9년 연속 우승과 92연승 신화의 주역이다. 국가대표 시절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베이징·방콕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수많은 트로피를 수집했던 전설의 장윤희를 만났다. 처음 본 기자의 질문에 장윤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괜찮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그 사건은 이랬다. 1994년 10월 28일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첫 경기인 독일전을 앞두고 배구 여전사들은 상파울루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장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이상하게 어수선했어요. 그래도 우린 몸을 풀고 있었지요. 그런데 김철용 감독이 와서 ‘장윤희, 오늘 경기 못 뛴다’고 하는 거예요.”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장윤희가 브라질에 도착해 받은 도핑검사 결과 ‘남성 호르몬’이 높게 검출됐다는 것이다. 당시 장윤희의 지치지 않는 체력과 후위공격의 강력한 스파이크는 남성 못지않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김 감독이 경기감독관에게 “장윤희가 오늘 경기를 뛰고 다시 검사받아 결과가 이상하게 나오면 몰수패를 당하겠다”고 사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불과 10여일 전인 같은 달 16일 폐막한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배구가 32년 만에 처음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도 검사 결과에 문제가 없었다고 하소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바로 경기장을 나왔다. “마침 경기장에 늦게 도착한 한 남성 교포분이 밖으로 나가는 저를 알아보고 ‘어디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그 교포가 동행해 줬어요. 통역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분이 택시를 잡아 주고 병원까지 따라다니며 통역과 안내를 다 해 줬어요. 참으로 고마운 팬입니다.”24살 장윤희는 이날 부인과 병원 3곳에서 검사를 받으며 1.5ℓ짜리 물병 5개를 비웠다. 여성이 맞다는 ‘당연한’ 검사 결과를 재확인하고 경기장에 돌아오니 팀은 패해 있었다. 물론 다음 경기부터 출전했다. 단장인 여무남 전 대한역도연맹 회장이 국제배구연맹(FIVB)에 공식 항의했고 FIVB 회장이 사과했다. 그래서 장윤희는 “괜찮다”고 쿨하게 답했단다. “수치스럽지 않았느냐”고 묻자 장윤희는 “성격상 속상하고 마음에 상처받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어서…. ‘내가 남자가 아니면 됐지, 뭐’ 하고 편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후배들이 여자가 맞는지 검사를 받았다는 기사가 난 신문을 이만큼 주더라고요.” 그는 엄지와 중지로 가늠해 보이며 웃었다. 장윤희는 태릉선수촌에서 사랑을 꽃피운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 이경환과 1997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평범한 아내가 꿈이었다”는 장윤희는 맏딸을 낳고도 선수로 뛰다가 2002년 은퇴했다. 배구 재능을 타고났을까. “학교 시절부터 신체 조건의 불리함을 극복하려고 줄넘기를 무척 많이 했습니다. 매일 이단뛰기를 1000개 이상, 삼단뛰기를 500개 이상 했습니다.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자 태릉선수촌 트레이너도 ‘연습 벌레’라고 인정했습니다. 재능은 있는데 훈련을 게을리해서 빛을 보지 못한 선수는 많습니다만 훈련을 거듭해 빛을 보지 못한 선수는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공격수로 부족한 높이(신장 170㎝)를 훈련을 통한 점프력으로 보완했다. 장윤희는 전주 근영여고 시절부터 연습 벌레였다. “학교 감독님이 ‘윤희는 키가 작고 재능이 부족해 실업팀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연습뿐이었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1970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남원초등학교에서 배구에 입문했다. ‘삐삐한 소녀’ 장윤희는 학창 시절부터 혼자 남아 개인 훈련을 하면서 ‘악바리’, ‘장똘’이라는 별명 속에 거포로 성장했다. 그는 배구에서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맞다고 강조했다. “여름철 비시즌,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흘린 땀은 팬들이 알아주고 기록으로 보답받죠.” 지금은 그때보다 리그가 길고 경기가 많아 체력 소모가 심해 훈련량이 더욱 중요하다. 그 시절 보통 여자 선수들은 풀세트를 뛰면 몸무게가 3㎏ 정도 빠졌다. 하지만 장윤희는 몸무게에 1.5㎏ 정도 변화가 생겼다. 그는 화려한 배구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경기로 뜻밖에도 ‘준우승’을 이야기했다. “고3 때인 1988년 11월 호남정유에 입단해 배구대전에서 준우승했을 때입니다. 당시 여자배구는 미도파와 현대건설이 주름잡았고 호남정유는 잘해야 3위 팀이었지요. 그때 저뿐만 아니라 여고생 4인방(홍지연·김호정·이정선)이 무서운 줄 모르고 날았습니다. 결승에서 현대건설에 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자신감을 확인했던 겁니다.” 배구 인생을 시작하면서 땀을 흘리면 우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리그 우승컵 사냥은 3년 뒤인 1991년부터 시작됐다. 기억에 남는 경기는 93연승이 막혔을 때라고 말했다. “1995년 1월 선경합섬과의 경기였어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준비했는데 그날따라 경기가 풀리지 않고 범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한 실수는 득점으로 연결되고…. 결국 패했지만 우리끼리 라커룸에서 마구 웃었어요. 너무 기뻐서. 패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다음 경기부터 경기력이 더 좋아지더군요.” 연승을 이어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선수들의 어깨를 짓눌렀던 것이다. 장윤희라는 거포를 장착했던 호남정유는 1990년 11월부터 1995년 1월 2일까지 무려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내달린 무적함대였다. 그에게도 1995년 슬럼프가 찾아왔다. “코트가 좁아 공을 때릴 곳도 없고 보기도 싫었어요. 배구를 그만두겠다고 부모님께 상의도 했지요. 거의 한 시즌 슬럼프가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저를 일으켜 세운 건 ‘잘한다’며 다독거린 동료의 믿음이었습니다. 그게 배구이고 인생 같더군요. 좌절할 뻔했지만 극복하니 제가 더 성장해 있더군요.” 최근 여자배구의 인기가 높다. 아기자기한 랠리에 국제대회 성적도 받쳐 준다. 장윤희는 이런 요소에 ‘김연경 효과’도 강조한다. “김연경 선수는 기량도 기량이지만 팬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월드 클래스예요. 연경이는 해외 리그에서 뛸 때 경기를 보러 온 팬들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하게 대하더군요. 이건 본인의 노력입니다. 사실 경기를 뛰고 나면 힘이 하나도 없어요. 아쉽게 패한 경기에서는 더더욱 그렇고 심지어 짜증도 납니다. 그런데도 연경이는 웃으면서 팬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분명 일류의 모습이었습니다.” 김연경의 그런 팬 서비스가 부러운가 보다. “우리 때는 카메라가 어색하고 두렵고 카메라만 다가오면 몸이 경직돼 버리더군요. 카메라가 상대팀보다 더 무서웠거든요. 경기 끝나고 밖에서 기다리는 팬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들에게 다가서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그런데 요즘 어린 선수들은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럽고 말도 잘하더군요. 참 보기 좋아요.” ‘센 언니’ 장윤희에게 진로를 상담하는 후배도 많다. “지도자로 배구 인생을 마무리하겠다는 후배도 많습니다. 그런 목표를 가졌다면 철저히 준비하라고 조언합니다.” 여자배구에서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현대건설 이도희 감독 등 여성 지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팀에서 여성 지도자의 역할과 중요성이 재확인된 것이다. “배구는 감독이 말로써 지시하는 지도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 명의 선수처럼 팀에 녹아들어 볼을 때리고 선수들과 교감해야 하거든요.” 배구 말고 즐거웠던 순간을 묻자 자녀를 가졌을 때도 좋았지만 딸(21)과 아들(13)이 코트에서 뛰는 모습을 볼 때라고 했다. 두 자녀 모두 배구를 한다. “관중석에 앉아 애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공을 때리는 것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상대 코트에 꽂아 넣으면 저도 모르게 두 손이 번쩍 올라가는 희열도 느낍니다. 애들 앞에선 배구 선배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엄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이 스스로 배구를 시작했으니 이왕이면 즐겁고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배구도 인생의 한 길이지 않겠습니까.”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장윤희가 걸어온 길 ▲ 1970년 5월 전북 남원 출생 ▲ 근영여고, 한국체대 졸업 ▲ 배구 레프트 공격수 ▲ 국가대표(1989~1998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0년 베이징·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은메달 -1994년 세계선수권·1998년 월드컵 4위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비치발리볼 ▲ 호남정유&LG정유(1988~2002년) -베스트6 10회 수상(1993~2000년 연속) -MVP 5회 수상(1997~1999년 연속) ▲ MBC 플러스 해설위원(2009~) ▲ 17세 이하 여자유스대표팀 감독(2020~)
  • [인사] 하이투자증권, 신한신용정보, 한국신용정보원, EBS

    ■ 하이투자증권 <신규 보임> ◇ 실장·WM센터장 △ 기업문화실장 강수환 △ 기업금융실장 이종혁 △ WM지원실장 성홍기 △ 강남WM센터장 이봉석 △ 대구WM센터장 최상윤 △ 부산WM센터장 이정선 ◇ 부서장 △ WM지원부장 강만석 △ 랩운용부장 표진수 △ 채권금융부장 여인수 △ 부동산금융3부장 임준홍 △ 중앙지점장 정종필 △ 서면지점장 남태식 △ 김해지점장 정성원 △ 월배지점장 김종수 △ 부산WM1지점장 이원정 <이동> ◇ 부서장 △ 디지털전략부장 양용인 △ 경영기획부장 류시웅 △ 여의도영업부장 조경휘 △ 양산지점장 최준호 △ 창원지점장 김창재 ■ 신한신용정보 ◇ 상무 신규선임 △ 카드사업본부 상무 이영민 △ 디지털혁신본부 상무 겸 경영혁신단 상무 문진호 ◇ 상무 재선임 △ 영업추진본부 상무 겸 신성장추진단 상무 홍연철 ■ 한국신용정보원 ◇ 임원 승진 △ 전무 조방수 △ 상무 박배철 △ 상무 김응수 ■ EBS △ 교양제작부장 김한중 △ 미래콘텐츠기획프로젝트팀장 백경석 △ 미래교육기획부장 남내원 △ 에듀테크부장 고장원 △ 학습콘텐츠협력제작부장 박성웅 △ 영어인공지능프로젝트팀장 김윤희 △ 기술기획부장 정효성 △ 네트워크기술부장 이정택 △ 제작기술부장 김호식 △ 영상기술부장 추신호 △ 편집부장 이덕희 △ 광고사업부장 이경미 △ 정책기획부장 황준성 △ 홍보부장 이지연 △ 인사부장 김기홍 △ 그래픽디자인부장 윤영원 △ 영상제작부장 김용상 △ 스튜디오영상부장 정호균(이상 2021년 1월 4일 자)
  • [리뷰] 정선아리랑 가락이 화려하게 채우는 무대…뮤지컬 퍼포먼스 ‘아리 아라리’

    [리뷰] 정선아리랑 가락이 화려하게 채우는 무대…뮤지컬 퍼포먼스 ‘아리 아라리’

    한 편의 전래동화를 만화로 보는 듯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진 무대에는 쉴새 없이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웃음을 준다. 지난 18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 아라리’는 우리 소리인 정선아리랑의 설화를 재구성해 때로는 재치있게, 때로는 애절하게 그려간다. 조선시대 경복궁 중수를 위해 정선 산골에서 한양으로 떠나는 떼꾼의 여정에서 전통 혼례와 나무 베는 장면, 뗏목을 타고 가는 과정, 부채춤, 농악 등 다양한 퍼포먼스가 이어져 75분간 눈을 뗄 수 없다. 특히 경복궁을 고쳐가는 장면에선 커다란 나무 기둥을 북 삼아 신나는 난타 공연이 벌어져 흥을 돋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동글동글한 강원도 정선 사투리와 특유의 한이 녹여진 정선아리랑으로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떼꾼 신기목과 아내 이정선, 이들의 딸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아리 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연기와 움직임을 선사한다. 특히 전문 무용수와 타악 연주자를 비롯해 무대를 스쳐가는 영상 등이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트로트나 랩처럼 현대적으로 우리 소리가 그려지기도 하고, 기생을 연기한 여장 남자와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한양 기생 등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 마스크 속 웃음을 끄집어냈고, 흥겨운 가락에 어깨도 연신 들썩여진다. ‘아리 아라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주최·주관하는 공연관광페스티벌인 2020 웰컴대학로 페스티벌에 참여해 국내·외 공연 관계자들에 눈길을 끌었다. 지난 18일부터 개막한 서울 공연은 예매처 평점이 10점 만점을 받는 등 호평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연극 ‘짬뽕’, 뮤지컬 ‘메밀꽃 필 무렵’, ‘오페라의 유령’, 퍼포먼스 ‘난타’, ‘배비장전’ 등 여러 장르에서 경험을 쌓은 윤정환 연출은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 아라리’에 대해 “남녀노소 누구나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뮤지컬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오는 25일 서울 공연이 마무리된 뒤 강원도 정선 아리랑센터에서 다음달 27일까지 정선5일장 상설공연도 열린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다시 울분 토한 할머니 “위안부 판 원수 갚겠다”

    다시 울분 토한 할머니 “위안부 판 원수 갚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을 향해 또다시 강도 높은 비난을 제기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 6일 대구 중구 희움역사관에서 열린 대구·경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에서 고인이 된 할머니 25명에게 술잔을 올린 뒤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위안부를 팔아먹었다. 언니들, 내가 여태까지 이렇게 할 일 못 하고 이렇게 울고 있다. 나는 끝끝내 이 원수를 갚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수요일 데모(수요집회를 지칭) 이거는 없애야 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연의 전신)도 없애고”라면서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저 하늘나라로 가야 먼저 간 우리 언니들한테 말을 할 수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윤 의원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쪽 눈을 실명한 김복동 할머니를 끌고 온 데를 다녔다”며 “언니들 내가 해결하겠다. 언니들 모든 사람, 세계의 사람들한테 복을 주고 행복을 주길 바란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흐느꼈다. 이 할머니는 정대협, 정의연에 이어 시민모임도 맹비난했다. 그는 “시민모임을 누가 만들었나. 최봉태(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장) 변호사가 만들었다. 이 사람이 시민모임을 26년이나 하면서 아무것도 도와준 것이 없다”고 했다. 안이정선 전 시민모임 대표를 겨냥해서도 “지난 6년 동안 대표를 유임하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하러) ‘미국에 같이 가자’고 해도 한 번도 따라가 주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행사는 참석자들이 격앙된 할머니를 달래며 마무리됐다. 이 할머니는 대구에 남은 유일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로, 지난달 7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열고 당선인 신분이던 윤 의원과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 등을 거론하며 이들이 수요집회 후원금 등을 할머니들을 위해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매년 6월 6일 대구 경북 일본군 피해자 추모의 날로 정해 세상을 등진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공식 등록된 대구·경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7명이며, 대구에는 이 할머니 1명만 생존해 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 ― 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 감독님만의 선수 지도 철학이 있는가. “감독인 나의 스타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선수들 각자의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한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한다. 선수들이 배구를 하면 스트레스에 굉장히 많이 노출되는데 선수들 얘기를 경청하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려고 도와준다. 배구가 재밌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선수 시절에 내가 싫었던 건 웬만하면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로 하기 싫었지만 도움이 됐던 것들은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 편이다.” ― 올시즌 유일한 이적생인 고예림 선수가 ‘새 직장’ 현대건설이 다른 점으로 소통을 많이 하는 점을 꼽더라. “선수들이 저하고도 얘기를 많이 하지만 훈련 시간에 선수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준다. 수비와 세터 간 호흡은 어떤 식으로 맞출 건지, 어느 위치에서 수비할 건지 등을 얘기한다.” ―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 하루 일과를 설명해주시면. “주중에는 오전 8시 30분 스태프 미팅을 마치고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먹고 오후 훈련을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내 자신을 돌아본다. 혹시나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운동 외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나. “훈련 시간 중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고전도 많이 읽는다. 최근에는 패스트와 한중록을 읽었다. ―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격언이 있나. “항상 겸손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어느 위치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 감독님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차가워보인다는 얘기를 하더라. “저는 정적인 사람이다. 여행보다는 책 읽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굉장히 단호하다. 과거 일에 끙끙 앓고 미련 두기보다는 앞으로 계속 가는 스타일이다. 정에 이끌리지는 않는다. 꽤 오랫동안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 말도 들어보면서 묵묵히 숙고(熟考)한 뒤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 뒤로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만약에 잘못되면 그건 내가 책임져야하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차가워 보인다는 얘기를 듣지 않나 싶다.”― 고교시절부터 함께한 김철용 감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제가 일신여중으로 스카우트 됐는데 김철용 선생님도 제가 고등학교 갈 때 일신여상에 부임하셨다. 고3 언니들이 전국체전이 끝나고 실업팀으로 간 뒤인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반부터 고등학교 체육관에 올라가서 연습을 했는데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뵀다.” ― 김철용 감독은 당시 A속공을 가장 잘하는 1학년 이도희를 공격수에서 세터로 전향시켰다고 하던데. “사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세터를 시키려고 했는데 제가 하기 싫다고 했다. 세터들이 워낙 욕을 많이 먹으니까 하기 싫었다. 중학교 때는 신장이 큰 편이라 항의가 받아들여졌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니 배구 선수 치고는 신장이 170cm로 작은 편이라 안 먹혔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때도 공격수였는데 당시 주전 세터였던 임혜숙 언니가 1학년 중반쯤 국가대표팀에 차출돼서 나가는 바람에 세터 자리가 비었고 그때 김철용 감독님이 세터를 시켰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선생님이 시키면 하는 거였다. 제가 1학년때 고3 언니들이 좋은 경기력을 갖고 있었다. 토스를 초보자가 하는데도 언니들이 받아주고 잘 때려주니까 계속 이겼던 것 같다.” ― 초등학교 1학년때 육상 선수를 하다가 10살 때 배구를 시작하셨다. 배구를 시작한 배경은. “키가 커서? 어렸을 때는 잘 뛰고 그랬나보더라.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랐는데 부모님이 몸이 약하니까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지 않겠냐고 해서 하게 됐다. 제가 막내라 아버지가 저를 되게 예뻐하셨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운동하는 걸 별로 안좋아하셨는데 학교 선생님이 설득했다. 그뒤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잘 해주셨다.” ― 김철용 감독과 이도희 감독 본인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고교랭킹 1위로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가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 흥국생명이 이다영을 데려갔다. 이다영이 부진할 때 믿고 기용해 리그 최고 세터 수준으로 키운 걸로 아는데. 현대건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아쉽지 않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FA는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거기 가서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애정을 갖고 그 선수를 키웠기 때문에 그 선수가 좋은 선수가 성장하길 바란다. 팬들의 그런 비판은 2018~2019 시즌에 이다영 선수가 힘들어할때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 이다영의 대체자인 세터 이나연 영입도 화제였다. “아직까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단계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좀 있다. 이 선수가 얼마나 따라올지, 이 선수가 내가 얼만큼 발전 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이 선수랑 같이 훈련해보면서 이 선수가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보이게 하는 게 제 역할이다. 단점은 안 보이게 하면서 장점 부각되게 하는게 제 역할인 거 같아서. 이나연 선수는 자신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 이다영 선수는 당연히 포함 될테니 이다영 선수를 빼고 코치 시절부터 통틀어서 감독님 밑을 거쳐간 세터 중에 기억에 남는 세터를 말해달라. “염혜선 선수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선수여서 좀 더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효희 도로공사 코치는 선택이 굉장히 좋은 선수여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흥국생명 이영주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공격수 였다가 세터로 전향한 선수였다. 프로팀에서 제일 처음 가르쳤던 선수라서 구질도 좋고 그래서. 운동을 좀 더 오래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김다인 선수가 제 밑에서 올해 3년째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 선수가 잘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수원시청에서 뛰던 김주하는 결혼 뒤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감독님과 닮았다. 감독님도 수원시청에서 뛰셨다. “코로나19로 포스트시즌을 치르지 못하면서 리베로 김주하 선수를 선보이지 못하고 끝난게 아쉬웠다. 김연견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체자가 필요했는데 이영주는 너무 어렸고, 고유민은 리베로 자리를 부담스러워해서 레프트 백업으로 원위치했다. 그래서 김주하 선수에게 부탁을 했고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김주하는 우리 팀의 주전 리베로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다. 수원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이번 시즌 개인사로 작년에 그만둔 것 같더라. 몸이 좀 많이 아팠는데 몇개월 쉬고나니까 괜찮아졌다고 하더라. 김주하 선수는 체력이라든지 고질적인 부상이 있다. 충분히 체력 보강을 해야 시즌때 아프지 않고 시즌을 마칠 수 있다고 많이 얘기를 했다.” ―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인사] 동신대학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전시, 충남대

    ■ 동신대학교 △교무처 교수학습센터장 이성주 △교무처 현장교육지원센터장·IPP센터장 조중현 △학생취업지원부처장·학생취업지원처 장애학생지원센터장·대학일자리부센터장·학생생활관장 안민주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과장급 전보 △ 디지털사회기획과장 박민하 △ 과학기술안전기반팀장 조현숙 ■ 대전시 ◇ 4급 승진 △ 비상대비과장 심예보 △ 체육진흥과장 최동규 △ 상수도사업본부 신탄진정수사업소장 오계환 ◇ 4급 전보 △ 예산담당관 윤경식 ◇ 5급 승진 △ 법무담당관 고영일 △ 회계과 전상규 △ 트램정책과 김진중 ◇ 5급 전보 △ 인사혁신담당관 송원호 △ 운영지원과 김태훈 △ 세정과 정진용 △ 공동체정책과 김미경 △ 운송주차과 이종민 △ 인재개발원 이재성 ◇ 5급 승진교육대상 △ 정책기획관 최지인 △ 예산담당관 강전민 이정선 △ 재난관리과 최현 △ 일자리노동경제과 장용순 △ 기업창업지원과 신근섭 △ 소상공인과 배은주 △ 미래산업과 최미정 △ 기반산업과 박경숙 신성진 △ 자치분권과 전용주 △ 운영지원과 한상기 △ 문화예술정책과 민원규 △ 체육진흥과 박두찬 송재란 △ 문화유산과 장진영 △ 관광마케팅과 김지영 △ 복지정책과 김건환 정용남 △ 보건의료과 임은주 홍준기 △ 공원녹지과 지옥향 △ 생태하천과 오세남 △ 공공교통정책과 김기철 △ 운송주차과 장인환 △ 트램정책과 조지현 △ 주택정책과 안연숙 △ 건설관리본부 류현 △ 감사위원회 김창배 ■ 충남대 ◇ 교수 보직 △ 교학부총장 강병수 △ 대외협력부총장 김정윤 △ 대학원장 김현리 △ 교무처장 김형식 △ 학생처장 최동오 △ 기획처장 이영석 △ 산학연구본부장 김승범 △ 입학본부장 손은령 △ 국제교류본부장 임현섭 △ 기초교양교육원장 김순희 △ 도서관장 윤영남 △ 총장실장 허강무 ◇ 직원 전보 △ 총장실 비서팀장 김용구 △ 기획평가과장 장경수(대외협력팀장 겸직)
  • [인사] 삼성중공업, 코트라(KOTRA), 삼성웰스토리, 비즈니스플러스

    ■ 삼성중공업 ◇ 부사장 승진 △ 정진택 기술개발본부장 ◇ 전무 승진 △ 윤종현 조선시추설계담당 ◇ 상무 승진 △ 배현근 △ 안강춘 △ 윤기원 △ 이병헌 △ 임종진 △ 전제진 ■ 코트라(KOTRA) ◇ 해외지역본부장 △ 유럽지역본부장 겸 프랑크푸르트무역관장 이길범 △ 일본지역본부장 겸 도쿄무역관장 정외영 ◇ 해외무역관장 △ 로스앤젤레스무역관장 김승욱 △ 마드리드무역관장 안영주 △ 타슈켄트무역관장 최현필 △ 실리콘밸리무역관장 박용민 △ 호찌민무역관장 김관묵 △ 상하이무역관장 백인기 △ 시드니무역관장 김병호 △ 양곤무역관장 권오형 △ 취리히무역관장 염승만 △ 댈러스무역관장 윤태웅 △ 선전무역관장 구본경 △ 뮌헨무역관장 조일규 △ 프라하무역관장 손병철 △ 다롄무역관장 김삼수 △ 베이징무역관 부관장 이준호 △ 하노이무역관 베트남비즈니스협력센터 운영팀장 박민준 △ 뉴델리무역관 인도비즈니스협력센터 운영팀장 이인규 △ 자카르타무역관 인도네시아비즈니스협력센터 운영팀장 복덕규 △ 카르툼무역관장 김재우 △ 아순시온무역관장 김선태 △ 광저우무역관 수출인큐베이터운영팀장 안도건 ◇ 간부 보임 △ ICT·프로젝트실장 조은호 △ 통상협력실장 이종건 △ KOTRA아카데미 투자유치 담당 연구위원 서강석 △ 경제협력실장 윤주영 △ 해외진출상담센터장 김윤태 △ KOTRA아카데미 투자유치 담당 연구위원 이두영 △ 디지털무역·소비재실장 임채익 △ 고객서비스실장 이동원 △ 개발협력실장 박철호 △ 해외시장정보실장 김상순 △ 안전·운영지원실장 강상엽 △ 인재경영실장 박성호 △ KOTRA아카데미 글로벌마케팅 담당 연구위원 황기상 △ 인천KOTRA지원단장 이희상 △ 충북KOTRA지원단장 성병훈 △ 울산KOTRA지원단장 한창윤 △ 중소기업실 수출기업화팀 지방지원PM 정은주 △ 경제협력실 신남방 비즈니스 데스크장 최조환 △ KOTRA아카데미 전시컨벤션 담당 연구위원 양인천 △ 안전·운영지원실 조직망지원팀장 강병수 △ 중견기업실 유망기업팀장 배상범 △ 전시컨벤션실 해외전시팀장 은지환 △ 감사실 검사역 빈준화 △ 기획조정실 기획혁신팀장 임성주 △ 인재경영실 인사팀장 정준규 △ 비서실장 장상해 △ 투자유치실 신산업유치팀장 정덕래 △ 기획조정실 예산팀장 유병우 △ 주력산업실 소재부품팀장 최규철 △ 경제협력실 신남방팀장 김종현 △ 안전·운영지원실 총무팀장 김정태 △ 글로벌일자리실 스타트업지원팀장 김명신 △ 글로벌일자리실 해외취업팀장 손호길 △ 사회적가치실장 이정상 △ 안전·운영지원실 재무팀장 최성우 △ 디지털무역·소비재실 디지털무역팀장 김필성 △ 디지털무역·소비재실 소비재산업팀장 양진영 △ 인재경영실 인재개발팀장 고봉숙 △ 투자기획실 투자홍보팀장 이제혁 △ 사회적가치실 상생협력PM 황유선 △ 경제협력실 신북방팀 중국PM 박은균 △ 통상협력실 통상지원팀 통상교섭PM 이정선 △ 투자유치실 신산업유치팀 스타트업유치PM 주한일 △ 감사실 검사역 김한나 △ 경제협력실 경제협력총괄팀 양자경제협력PM 최현수 △ 고객서비스실 브랜드마케팅PM 김준성 △ 기획조정실 기획혁신팀 신사업개발PM 최정락 ■ 삼성웰스토리 ◇ 승진 △ 부사장 박영목 △ 상무 백원광 △ 상무 이재혁 △ 상무 장문상 ■ 비즈니스플러스 △ 편집국장 김신회 △ 광고마케팅국장 이웅일
  • [인사] 경찰청,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코트라, DGB금융그룹

    ■ 경찰청 ◇ 경무관 승진 예정 △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장 박성주 △ 경찰청 형사과장 최주원 △ 경찰청 수사기획과장 윤승영 △ 서울지방경찰청 경비1과장 강언식 △ 경찰청 사이버안전과장 유재성 △ 충북지방경찰청 경무과장 이상수 △ 경찰청 자치경찰기획과장 정병권 △ 경찰청 경무과장 한원호 △ 서울지방경찰청 101경비단장 홍기현 △ 경찰청 과학수사과장 곽순기 △ 서울지방경찰청 인사교육과장 이호영 △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장 이인상 △ 경찰청 정보3과장 윤시승 △ 전북지방경찰청 정보과장 최원석 △ 대구지방경찰청 형사과장 이상탁 △ 경기남부경찰청 정보과장 오문교 △ 경남지방경찰청 김해중부경찰서장 김한수 △ 경찰청 외사기획과장 백동흠 △ 부산지방경찰청 경무과장 김영일 △ 강원지방경찰청 정보과장 김희중 △ 전남지방경찰청 수사과장 이용석 △ 경찰청 정보화장비기획과장 김도형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 승진 △ 법제혁신연구실 연구위원 전영준 △ 미래기술전략연구실 연구위원 최수영 △ 법제혁신연구실 연구위원 최은정 ◇ 전보 △ 인프라금융연구실 연구위원 김정주 △ 법제혁신연구실 부연구위원 이광표 ■ 코트라 ◇ 해외지역본부장 보임 △ CIS지역본부장 겸 모스크바무역관장 이정훈 ◇ 간부 해외파견 △ 홍콩무역관장 김선화 ◇ 1직급 승진 △ 고객서비스실장 박성호 △ 중견기업실 유망기업팀장 황기상 △ 광저우무역관장 황재원 △ 칭다오무역관장 고상영 △ 난징무역관장 장병송 △ 첸나이무역관장 한정희 ◇ 2직급 승진 △ 통상협력실 이정선 △ 투자기획실 김한나 △ 해외시장정보실 빅데이터팀 바이어정보PM 김영상 △ 중남미지역본부 정석수 △ 기획조정실 기획혁신팀 신사업개발PM 이인규 △ 인재경영실 박은균 △ 글로벌일자리실 주한일 △ 아바나무역관장 이정훈 △ 사회적가치실 황유선 ■ DGB금융그룹 △ 지주 준법감시인 최종호 △ 지주 그룹디지털 혁신총괄 겸 은행 IMBANK본부장 이숭인 △ 은행 여신본부장 박성하 △ 은행 투자금융본부장 겸 지주 그룹CIB총괄 이재철 △ 은행 준법감시인 구은미 △ DGB캐피탈 대표이사 서정동 △ DGB신용정보 대표이사 박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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