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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보도 그후] 국회 본회의장 ‘로열석 멤버’ 또 바뀌었다

    [서울신문 보도 그후] 국회 본회의장 ‘로열석 멤버’ 또 바뀌었다

    6월 임시국회에 들어서면서 새로 편성된 의석 배치도가 정당들의 새로운 ‘권력지도’를 보여주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최경환 원내대표와 김기현 정책위의장, 홍문종 사무총장이 본회의장 뒤편에 형성된 ‘로열석’에 새로 입성했다. 전임인 이한구 전 원내대표, 진영 전 정책위의장(현 보건복지부 장관), 서병수 전 사무총장의 자리를 각각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 전 원내대표와 서 전 사무총장은 직책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비교섭단체 의원이 자리한 본회의장 맨 왼쪽 구석으로 의석을 옮겼다. 지난 4·24 재·보궐 선거로 배지를 단 5선의 김무성 의원은 지난달 비교섭단체 경계가 되는 귀퉁이 자리에 앉았지만 6월 국회에서 이인제 의원과 이병석 국회부의장 등이 있는 중진의원 대열에 합류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와 홍지만 원내대변인도 원내 주요 직책을 맡으면서 의석 중간쯤의 뒤에서 두 번째 자리로 ‘영전’했다. 황우여 대표의 비서실장으로서 황 대표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길정우 의원은 여상규 의원에게 비서실장직과 함께 자리도 내준 뒤 앞쪽 초선의원 대열로 복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앉았던 자리는 정의화 의원을 거쳐 유기준 최고위원에게로 돌아갔다. 한기호 의원은 재선이지만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에 오르면서 맨 뒷줄에 앉는 영광을 안게 됐다. 민주당 로열석에서도 신임 지도부로 선출된 전병헌 원내대표와 신경민, 박혜자 최고위원이 가장 눈에 띈다. 지난달 앞에서 3번째 줄에 앉아 최전방을 맡았던 전 원내대표와 신 최고위원은 단번에 7줄을 껑충 뛰어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5번째 줄에 앉았던 박 최고위원은 맨 뒷줄 문희상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꿰찼다. 특히 신·박 최고위원은 초선이지만 최고위원이 되면서 역시 다선 의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초선인 문재인 의원은 대선이후 계속 재선그룹과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남북회담, 개성공단 상황 재발 방지에 초점

    “개성공단 상황 재발 방지가 남북회담의 협상 어젠다가 될 것이다” 남북이 협의중인 장관급 회담이 이뤄질 경우 개성공단과 같은 상황 재발 방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서 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7일 오전 국회에서 한반도통일연구원이 주최한 ‘개성공단 위기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 “남북이 협의해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도 일방이 이를 지키지 않을 수 있다”면서 개성공단 국제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성공단에 외국계 기업이 들어가면 북한이 합의사항을 좀 더 지키려 할 것이므로 외국계 기업을 유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은 “앞으로 북한과 힘겨운 줄다리기 계속되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올 가능성도 많다“면서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큰 틀에서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원장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상업적 거래와 인도적 대북지원의 분리,정부와 민간의 분리, 정치·군사적 현안과 경제협력의 분리 등 3대 원칙을 제시했다. 김 원장은 ”(이번 회담 제안은)북한이 개성공단을 열자는 말을 자존심을 살리면서 복잡하게 얘기한 것이므로 우리가 잘 읽고 불씨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모임인 개성공단기업협회 한재권 회장은 ”정부에서 큰 틀을 합의하는 것에 더해 세세한 부분을 기업인 입장에서 아울러달라”고 주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seoull.co.kr  
  • [주말 인사이드] 맨 뒷줄 ‘로열석’ 지도부·중진의원 몫… 출입구 가장 먼 앞줄엔 초선들

    [주말 인사이드] 맨 뒷줄 ‘로열석’ 지도부·중진의원 몫… 출입구 가장 먼 앞줄엔 초선들

    국회 본회의장 300개의 의석에 국회의원들을 배치하는 작업에는 선수(選數)와 당내 권력이 작동한다. 본회의장 배치도는 당내 권력구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살아 있는 권력 지형도인 셈이다. 국회법 3조는 “국회의원의 의석은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이를 정한다. 다만,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할 때에는 의장이 잠정적으로 이를 정한다”고 돼 있다. 통상 다수당이 본회의장 중앙에, 소수당이 의장석을 바라볼 때 오른쪽에 배치된다. 또 비교섭단체 정당과 무소속 의원들은 의장석을 기준으로 왼쪽에 자리 잡는다. 이제부터는 ‘힘’이 작동한다. 본회의장의 뒤쪽은 ‘로열석’으로 통한다. 우선 출입구에 가까워 들락날락하는 데 눈치가 덜 보인다. 또 본회의장은 경사져 있어 뒷자리에 앉은 의원은 앞에 있는 의원이 뭘 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때문에 본회의장 맨 뒷줄은 보통 여야 지도부와 중진의원들의 몫이다. ‘지도부석’으로 불린다. 지도부 앞 뒷줄 2~3열은 수석부대표 등의 자리다. 대변인들도 한곳에 모여 있기가 쉽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당 지도부와 함께 모여 그때그때 벌어지는 상황에 원활한 소통과 전략을 논의하는 야전지휘소인 셈”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이맘 때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 앞이 비서실장을 지낸 이학재 의원이었다. 좌우로는 당의 중진들이 앉았다. 왼편에는 정의화 당시 국회부의장이, 오른편으로는 유기준·정우택·심재철 최고위원, 황우여 대표, 이한구 전 원내대표, 진영 전 정책위 의장, 서병수 전 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차례로 위치했다. 비박근혜계인 정몽준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은 민주당과 인접한 오른쪽 거의 맨 끝에 의석이 배정됐다. 대선 뒤 박 대통령의 자리는 정의화 의원이 차지했고 선진통일당 대표 시절 왼쪽 끝에 있던 이인제 의원이 정 의원 한 석 건너 자리로 옮겨와 앉게 됐다. 민주당 역시 19대 국회 개원 초에는 맨 뒷줄 중앙부에 이해찬 전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김한길·추미애·강기정·이종걸·우상호 전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위치하고 좌우에 당내 중진 의원들을 배치했다. 이어 문희상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는 보다 중앙통로 쪽으로 자리를 옮겼었다. 문재인 의원은 초선의원이기 때문에 왼쪽 중간 쪽에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의 다른 의원들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한 번 자리가 정해졌다고 해서 끝까지 가는 건 아니다. 지도부 교체 같은 변동 요인이 생기면 미세 조정이 이루어진다. 상임위 조정이 있을 때도 같은 상임위원들끼리 앉을 수 있도록 변경된다. 특히 지도부가 한 자리에 앉는 것이 우선하기 때문에 새 원내대표와 당대표 등 지도부를 교체한 여야는 6월 임시국회에서 자리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가 늘 뒷자리를 차지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열린우리당이 창당됐을 때는 당 지도부가 본회의장 앞자리에 있었다. 국회 관계자는 31일 “당시 열우당 소속 의원이 46명 밖에 안 돼 원내대표 혼자만 뒤로 돌아서면 의원총회를 하듯 의원들을 다 볼 수 있어서 본회의장 대책을 효율적으로 마련하고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뒷줄이 늘 좋은 것도 아니다. 뒤쪽 방청석과 취재석에 노출되기 쉽다. 거의 모든 행동이 카메라에 잡히다 보니 본회의 중에 인터넷 등으로 딴짓을 하거나 야한 사진을 보다가 적발되기도 했고, 인사청탁 등이 적힌 쪽지를 주고받다가 내용이 공개된 적도 있다. 출입구가 멀어 기피석인 앞줄은 대개 초·재선 의원들의 몫이다. 19대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으로 물리적 충돌이 없어졌지만 과거에 ‘긴급상황’이 생기면 국회의장석으로 뛰어드는 것도 앞줄에 앉은 의원들의 몫이었다. 기피자리인 만큼 ‘물 좋은’ 상임위 소속 의원들을 배치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상임위도 비인기 상임위로 배정받았는데, 자리까지 불편한 앞자리에 앉으면 되겠느냐”면서 “인기 상임위 의원들은 불편하더라도 앞줄에 앉는 것을 감수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맨 앞줄에는 윤영석·김상훈·이상일·민병주·이헌승 의원이, 민주당은 김윤덕·배재정·최민희 의원이 나란히 앉아 있다. 앞줄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의원모임이 만들어진 적도 있다. 17대 개원 때 젊은 초선 의원 10명이 ‘국회 앞줄 모임’을 만들어 당과 상관없이 만남을 갖기도 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충남지사 지낸 경험 활용해 새 정부 성공 위해 최선 다할 것”

    “충남지사 지낸 경험 활용해 새 정부 성공 위해 최선 다할 것”

    4·24 재선거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완구(3선)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대내외적 어려움에 빠져 있다”면서 “역대 정권이 국민에게 안겨준 실망의 연속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갓 출범한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의 체제전환 등 국내 정치 상황에 새누리당이 신축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새 정부의 성공이 담보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당선된 이 순간부터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과 중압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충청의 맹주로 돌아온 이 의원은 중원 지역을 대표하는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중진 정치인이다. 15·16대 국회 때 충남 청양·홍성에서 재선을 지낸 이 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충남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 방침에 반발, 지사직을 던지면서 ‘통 큰 정치인’으로 지역 민심을 크게 얻었다.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며 각을 세웠던 박근혜 대통령과도 공감대를 이루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4·11 총선에서 신설 선거구인 세종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앞서 발병한 다발성골수증 때문에 출마 의사를 접고 투병생활을 했다. 같은 해 10월 건강을 회복한 뒤엔 박근혜 대선캠프 충남 명예선거대책위원장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9년 만에 여의도에 재입성한 이 의원은 3선의 무게감을 바탕으로 당내 충청권의 구심점을 맡을 전망이다. ‘포스트 김종필(JP)’ 역할을 놓고 논산·계룡·금산의 6선 이인제 의원, 충북지사 출신 3선 정우택 최고위원과 경쟁을 벌이게 됐다. 부여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4·24 재·보선 공식선거운동 스타트… 13일간 열전 돌입

    4·24 재·보선 공식선거운동 스타트… 13일간 열전 돌입

    4·24 재·보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11일 시작됐다. 후보들은 선거 출정식을 열고 13일간의 재·보선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4·24 재·보선은 서울 노원병, 부산 영도, 충남 부여·청양 등 세 곳에서 치러진다. 큰 주목을 받는 서울 노원병에서는 4명의 후보가 공식 선거 유세를 시작했다.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는 별도의 출정식 없이 새벽에 지하철 7호선 마들역 거리청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오후에는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과 유세차량으로 노원병 곳곳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출정식에서 “정치가 실종됐다”면서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치”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 민생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는 정치가 새 정치”라면서 “4월 24일이 어떤 날인지 아시냐. 노원이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는 날이다. 새 정치의 중심에 상계동을 거는 날”이라며 투표를 독려했다.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는 심상정 의원 등 진보당 지도부와 멘토단에 합류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출정식을 하고 세몰이에 주력했다. 김 후보는 “상계동 주민들께서 노회찬의 명예회복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도 이정희 대표와 함께 출정식을 하고 선전을 다짐했다. 부산 영도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후보, 김비오 민주당 후보, 민병렬 통합진보당 후보가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김무성 후보는 “태종대 진입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등 혼잡한 교통과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우리나라 제1의 국제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김비오 후보는 출정식에서 “낡고 한물간 새누리당의 퇴물 정치꾼이 아닌, 박근혜 정권 초기 불통 통치와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독주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젊고 새로운 후보를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다. 출정식에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참석했지만 관심을 모았던 문재인 의원은 임시국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첫날 선거지원에는 나서지 않았다. 양측은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김무성 후보의 위장 전입 의혹으로 충돌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김무성 후보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주소가 김 후보가 신고한 재산 내역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 “부산 남구에서 생활하면서 주소지만 위장으로 옮긴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무성 후보 측은 “해당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고 선거법상 재산 공개 기준은 지난해 12월 31일이기 때문에 올해 2월 영도로 전입한 김 후보의 전세 내역이 재산신고에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 부여·청양에서는 이완구 새누리당 후보, 황인석 민주당 후보, 천성인 통진당 후보가 본격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이 후보는 “중앙무대에서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높은 득표율로 당선시켜 달라”고 강조했다. 황 후보는 지역구를 다니며 “침체에 빠진 농업을 살릴 전문가”라며 지지를 당부했다. 천 후보도 “노동자 농민, 서민을 살리는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물먹은’ 정부조직법… 여야, 얼굴도 안 본 채 침 튀기는 설전만

    ‘물먹은’ 정부조직법… 여야, 얼굴도 안 본 채 침 튀기는 설전만

    여야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파행이 장기화되고 있다. 협상을 하기 위해 만나지도 못한 여야는 서로 상대방이 양보해야 한다며 목소리만 높였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논의는 장사꾼의 협상과 달라야 한다”면서 민주통합당을 비판했다. 이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노골적으로 새 정부 발목 잡기를 하는데 발목 잡기가 켕기니까 자꾸 현란한 어휘로 입장 변경을 하고 변신을 한다”면서 “정부조직법 원안 처리에 동의한다고 언급했으면 거기서부터 출발해야지 다른 얘기라고 하면 진전이 되느냐. 협상 원칙을 지켜 달라”고 요구했다. 이인제 의원도 “국회법을 보면 국회의장이 전시 또는 비상사태의 경우는 직권상정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지금은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라면서 “국가 비상사태라는 관점에서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며 직권상정을 요청했다. 협상 파행이 장기화되자 지도부의 협상력 부재에 대한 비판과 총사퇴론까지 나왔다. 정몽준 의원은 “당 지도부는 총사퇴한다는 각오로 책임감을 갖고 현재 위기를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면서 “야당도 문제지만 이런 정치 위기를 초래한 데는 새누리당의 책임도 없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는 민주주의에서 최고의 행위이고 대통령도 정치를 뛰어넘을 수 없다”면서 “정치 위기를 방치하면 국회가 죽고 정부도 타격을 받는다. 정치의 빈자리를 행정이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압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지난 11일 첫 국무회의에서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을 여야 정치권의 탓으로 돌렸다”며 “사돈 남 말하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박기춘 원내대표도 “대통령은 ‘미래창조과학부는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브레이크를 걸고 여당은 버티면 된다는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함께 결단하면 1% 남은 합의를 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과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을 연결시키는 움직임도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임명되면 정부조직법을 포함한 모든 협상이 엎어질 것”이라면서 “김 후보자와 정부조직법 협상이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김 후보자가 사퇴한다면 새로운 답들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지각… 방탄… 불임… “국회는 함량미달”

    19대 국회가 3월 들어 개원 10개월째를 맞고 있지만 역대 어느 국회보다 ‘함량 미달’이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일하는 선진 국회’와 쇄신·상생의 정치를 표방하며 문을 연 19대 국회는 실제로는 지각·방탄·불임국회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엔 정부조직법 개정안 관련 협상이 난항에 부딪히면서 협상력 부재마저 드러내고 있다. 19대 국회는 시작부터 늑장 출발했다. 지난해 5월 30일이 임기 개시일이었지만 33일이나 공전한 끝에 7월 2일에야 일을 시작했다. 여야가 개원 조건으로 민간인 사찰 관련 국정조사,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 MBC 노조 파업에 대한 상임위 진상조사 등 민생과는 거리가 먼 정치 이슈들을 내걸면서 씨름했던 탓이다. 그렇게 열린 7월 임시국회도 묵혀 두었던 민생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저축은행 비리 의혹으로 기소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처리되면서 방탄국회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민주당이 단독 소집한 8월 임시국회도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한 방탄용이라는 눈총을 받았다. 19대 국회 첫 국정감사는 12월 대선 정국에 묻힌 ‘무늬만 국감’이었다.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건전한 국정 비판보다 상대 당 대권 후보의 의혹 들춰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2013년도 예산안 처리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연내 처리에 실패했다. 여야는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놓고 극명한 이견을 보인 끝에 결국 본회의 차수를 변경하면서 다음 날인 2013년 1월 1일 오전에야 처리하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국회가 새해를 몇 시간 앞둔 12월 31일에 가까스로 예산안을 처리한 전례는 많지만 해를 넘긴 경우는 제헌국회 이후 이때가 처음이다. 제 식구 감싸기 행태는 해를 넘겨서도 반복됐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영주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는 지난달 28일이 사실상 처리시한이었지만 결국 불발됐다. 민주당이 본회의 소집 요구서를 전날 제출했지만 새누리당이 ‘기습상륙작전식’이라며 거부한 탓이다. 지난 4일 국회 윤리특위에서 민주당 이종걸, 배재정 의원 징계안 처리가 무산된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부조직법 개정과 관련해선 19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됐지만 소수정당 보호라는 당초 목적과 달리 식물국회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6선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은 7일 이런 상황을 빗대 “하수구가 없는 부엌과도 같은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신뢰관계가 바탕이 돼야 할 국회가 진영 논리와 당청 관계에 가로막혀 좌초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與 제2 새마을운동 추진 움직임에 野 반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선거 때 제기한 ‘잘살아 보세’란 구호가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제2의 새마을운동 추진 움직임으로 구체화되면서 야권이 반발하는 등 논쟁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농림수산식품부가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제2새마을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한 데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국민 정신운동으로 승화시키자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인 박 당선인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신화’를 오버랩시켜 일종의 ‘구애’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과 함께 시대착오적인 관제식 발상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지난 4일 새누리당 대전·충남지역 국회의원들과 식사할 때 다보스포럼 특사였던 이인제 의원이 세계적으로 새마을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하자 일부 의원들이 “새마을운동을 국민 정신운동으로 승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설훈 의원은 “화석화돼 가는 것을 끄집어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시대착오다. 퇴행적인 사고로 구태의 전형이다. 이런 판단을 하면 앞으로 참 힘들어질 것”이라면서 “박정희를 죽이는 것이고, 과거 속에 가두는 것”이라고 평했다. 문병호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 지금은 많이 바뀌었고, 민(民) 주도에 국민 소통 시대다. 국가주의적으로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농림수산식품위 소속으로 지역구가 농어촌인 김승남 의원도 “농어촌 후생대책이나 노령화 복지문제 등 대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제2새마을운동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했다는 신화를 되살리려 하거나, 살아 있는 권력인 박 당선인에게 잘 보이려 하는 등 관제식 발상이라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는 정신운동 등으로 변형 시행을 주문했다. 박 당선인 지역구(대구 달성군) 출신 이종진 의원은 “협동정신 등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바람직하다”면서 “지금은 새마을 정신운동이 사회 양극화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각박할 때 화합하고, 도와주는 정신교육을 병행하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강기윤 의원도 “새마을운동을 시대에 맞게 어떻게 각색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 소득과 이념 등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면서 “다양성을 하나로 통합하고 묶어가는 게 필요하다. 새마을운동을 그런 식으로 시대에 맞게 기능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2013년 오늘 한국에서 신작로를 넓히고 마을 길을 닦고 할 일이 아니다. 경제 회생 정책을 하더라도 새로운 시대 정신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변화와 개혁 반드시 이루겠다” 대국민 약속으로 첫발

    “변화와 개혁 반드시 이루겠다” 대국민 약속으로 첫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박 당선인의 첫날 행보는 선거운동 일정만큼 분주했다. 선거 기간 함께했던 인사들과 잠시 소회를 나눈 뒤 하루 만에 주한 4강 대사를 모두 만나며 본격적인 외교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도 통화하며 문 후보를 위로했다. 박 당선인은 오전 8시 45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나섰다. 자택 주변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에게 “안녕하세요.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나오셨어요.”라고 인사했다. 박 당선인은 청와대 경호처에서 제공한 방탄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유세를 다니며 이용했던 승합차를 탔다. 오전 9시쯤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도착한 박 당선인은 기다리고 있던 선대위 관계자들과 나란히 참배했다. 황우여·김성주·정몽준·이인제 공동선대위원장을 비롯해 100여명의 선대위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박 당선인은 헌화 및 분향을 마친 뒤 방명록에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박 당선인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박 당선인은 오전 10시쯤 새누리당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 도착해 당선인 신분으로 첫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비전 등을 전달했다.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첫날 대규모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진 것과 대비됐다. 기자회견을 마친 박 당선인은 비공개 일정으로 선거 유세를 수행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진 이춘상 보좌관과 김우동 홍보팀장의 납골묘를 찾았다. 오전 10시 50분쯤 정치 여정 15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이 보좌관의 납골묘가 마련된 경기 고양시 하늘문공원을 먼저 방문했다. 박 당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진 납골묘에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며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낮 12시 박 당선인은 여의도 근처에서 선대위 관계자들과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당선인은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을 믿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국민을 믿으려면 진실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은 그에 소박하게 보답하고, 은혜를 주고받으며 국민과 정이 생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오후 문 후보에게도 전화를 걸어 “앞으로 국민을 위해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이에 문 후보는 “박 당선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제가 당을 책임지고 끌어갈 수는 없겠지만 민주당이 정파와 정당을 넘어서 국정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고 김현 민주당 대변인이 전했다. 이후 오후 2시 30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도 박 당선인은 관계자들에게 노고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 당선인은 해단식에서 “우리의 승리가 정말 값진 것이지만 우리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잘 챙기고 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면서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해서 국정운영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은 오후 8시부터 10분 남짓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전화통화를 했다. 박 당선인과 메르켈 총리는 이공계 출신의 보수정당 여성 당대표를 지낸 공통점 등으로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고 박 당선인이 지난 8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을 때 메르켈 총리가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내년 한·독 수교 130주년을 맞아 박 당선인에게 독일 방문을 초청했다. 이어 오후 8시 30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전화통화로 유엔과의 협력, 남북관계 개선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박 당선인의 첫날 행보는 역대 대통령들의 일정에 비해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당선 9일 만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회동했다. 박 당선인이 이날 오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강 대사를 차례로 접견했지만 2007년 이 당선인은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4강 대사를 만났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新지역주의’ 조짐?

    지역주의의 부활일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과 호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승리하면서 신지역주의가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인물론으로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약화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다. 영남과 호남으로 갈라진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올 대선에서도 여전했다. 오히려 더 강해진 측면도 있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문 전 후보가 부산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지지를 덜 받은 것”이라며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도 “지역주의는 상수로 존재하는 것으로 올 대선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면서 “이른바 인물론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했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지역주의가 만들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형준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박 당선인이 서울과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승리함으로써 신지역주의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른바 ‘영남+충청’의 지역구도가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충청 지역 정당인 선진통일당과 합당을 하고 박 당선인도 충청에 연고를 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이인제 전 선진통일당 대표의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면서 이른바 ‘영남+충청’의 지역구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또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 김경재 전 의원 등을 영입하는 등 호남에도 공을 들여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보수 후보 가운데 처음으로 호남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지역주의보다는 세대별, 연령별 투표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2030세대와 5060세대가 각각 진보와 보수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세대별로 지지후보가 나뉜 가운데 2030세대에 비해 투표적극성이 높은 5060세대가 당락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 비해 2030세대의 투표율이 5~8% 포인트 올랐지만 5060세대도 이전보다 많게는 6% 포인트까지 투표율이 올라간 데다 인구수도 많아지면서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조사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이번 대선은 세대별, 연령별 투표가 지역주의를 넘어 제1의 사회적 균열 구도로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2030세대는 진보, 5060세대는 보수로 구분하는 것은 세대별 성향을 너무 단순화했다는 것이다. 개혁에 대한 욕구가 높았던 386세대가 40대와 50대 초반을 차지하고 있어 50대를 단순히 보수로 분류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반대로 20대도 보수표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박 교수는 “20대, 특히 남성의 경우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이 30대에 비해 더 강한 측면도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는 60대에 비해 20대가 더 강경할 정도로 꼭 세대별로 보수 진보가 구분됐다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민생과 안정’ 전략 주효… 보수대결집으로 완승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18대 대선 승리는 그가 걸어온 길 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19일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박빙의 오차범위 내 우세(1.2%)로 출발한 박 당선자는 문재인 후보의 추격을 뿌리치고 100만표가 넘는 표차로 승리했다. 국민들은 ‘변화’를 기대하면서도 ‘민생’과 ‘안정’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당의 승리 요인은 가장 먼저 박 당선자의 개인적 역량을 빼놓을 수 없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애칭에서 알 수 있듯 박 당선자는 새누리당 대선 전략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박 당선자는 선거 초반 새누리당이 불안과 내홍에 휩싸였을 때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문재인·안철수 연대’에 짓눌린 당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민생과 대국민통합을 강조한 선거 전략도 유효했고 보수층을 결집한 리더십도 돋보였다. 여기에 정책 공약의 큰 줄기였던 경제민주화와 정치쇄신 이슈를 선점해 야권의 칼날을 무디게 한 것도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대선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우후죽순 터져 나온 야권발 각종 네거티브 공세에 맞불을 놓으며 ‘강(强) 대 강(强)’ 대결로 몰고 간 것도 결국 승리의 요인이 됐다. 박 당선자는 대선 출마 이후 줄곧 민생과 국민대통합을 얘기해 왔다. 양극화의 확대로 팍팍해진 살림살이와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등 어느 때보다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서민들에게 거창한 구호 대신 민생을 내걸고 소통했다는 점이 주효했다. 캠프 관계자는 19일 “우리는 선거 기간 동안 민생 정부를 외치며 국민만을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말했다. 박 당선자가 지난 8월 2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100% 국민대통합’을 선언한 이후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광폭 행보’도 참신했다는 평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의 참여와 지지도 큰 힘이 됐다. 박 후보가 호남에서 선전한 배경이기도 하다. ‘여성 대통령론’도 예상외의 파급력을 보여 줬다. 여론조사 내내 박 후보는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이 남성 유권자의 지지율을 웃돌았다. 역대 대선에서 볼 수 없었던 ‘보수 대결집’도 승리의 일등 공신이다. 선진통일당과의 합당으로 보수 대결집의 물꼬를 튼 박 당선자 진영은 이후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박세일 전 국민생각 대표, 김영삼 전 대통령, 막까지 애를 태웠던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 합류하면서 보수 대결집을 완성했다. 역대 대선에서는 1992년 박찬종, 1997년 이인제, 2002년 이한동, 2007년 이회창 등 제2, 제3의 보수 후보들이 출마해 보수층의 지지표를 잠식했다. 이번 대선과 같은 초박빙 승부에서 보수 성향의 유력 후보가 출마했다면 승부의 추는 야권으로 기울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 당선자는 국민대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보수와 중도세력 결집에 성공했다.”면서 “역대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집권당을 탈당하지 않은 것도 야권으로부터 ‘이명박근혜’라는 비판을 받았어도 전통 보수층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박 당선자의 또 다른 승리 요인으로는 이슈 선점을 꼽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정권교체 공세를 무력화한 배경에는 경제민주화와 정치쇄신이라는 시대적 어젠다를 발 빠르게 선점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저작권자’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영입해 야권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었던 경제민주화 공약을 약화시켰으며 ‘스타 검사’ 출신인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삼고초려’로 영입해 야권의 정치개혁 공세를 막았다. 물론 김 위원장과의 갈등으로 박 당선자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2차 TV토론회를 앞두고 전격 ‘구원 투수’로 등장해 이 같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등의 정책에서 ‘좌(左) 클릭’했다는 점이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과거사를 비롯해 야권 후보의 단일화, 막판 네거티브 공세를 잘 넘긴 것도 승리의 요인이다. 과거사 문제는 선거 초반 분위기를 야권에 넘겨 주는 계기가 됐다. 박 당선자는 인혁당 사건을 놓고 “두 개의 판결”로 곤욕을 치렀고,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법원의 강탈 판결을 놓고 야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야권이 후보 단일화에 나서면서 과거사 이슈가 묻혔고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아름다운 단일화’를 보여 주지 못하면서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안 전 후보가 선거 막판에 문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돌아섰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억대 굿판’, ‘신천지 연루설’, ‘국정원 여직원 불법 댓글 논란’ 등 야권발(發) 네거티브 공세는 청와대로 가는 마지막 고비였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주먹만한 알밤 쥐여주시던 국민들 성원 못 잊어”

    12월 19일 오후 6시 정각.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 발표 순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는 환호성에 휩싸였다. 박근혜 당선자가 오차 범위이긴 하지만 경합우세로 나오자 기대감이 한껏 고조됐다.  김용준·황우여·정몽준·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서병수 사무총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등과 선대위 관계자들은 당사 2층에 마련된 대선 상황실에 일찌감치 모였다. 당사는 낮부터 몰려든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9대의 TV 모니터에 ‘50.1% 대 48.9%’로 박 당선자가 앞서고 있는 수치가 표시되자 선대위 관계자들과 당직자들은 한목소리로 “박근혜”를 연호했다.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감격에 겨워 서로 얼싸안았다.  일부 방송 조사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다소 앞서는 결과가 발표되자 당직자들은 속속 전해지는 개표 현황에 긴장을 풀지 못했다. 황우여 공동선대위원장은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아직 이르다.”며 말을 아꼈다.  안형환 대변인은 오후 8시 출구조사 관련 브리핑에서 “격차가 작기 때문에 개표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겠다.”면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개표 과정에서 한 점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밤 11시가 넘어야 당락이 확실해지리라는 예상을 깨고 초반부터 표차가 점점 커지자 환호는 커졌다. 방송을 지켜보던 선대위 관계자들은 “부산에서 60%가 됐다.”, “전북이 10%를 넘었네.”, “제주도가 이번에는 괜찮네.” 등 기대감에 부풀었다. 투표율이 높았던 게 새누리당에 그리 나쁠 게 없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밤 9시를 전후해 ‘당선 유력’이 ‘당선 확실’로 바뀌면서 당사는 축제의 도가니로 변했다. 당사 바깥은 태극기를 든 지지자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소리 높여 외쳤다.  박 당선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서 홀로 개표 방송을 시청하다 밤 10시 40분쯤 자택을 나서 당사로 향했다. 검정색 패딩 점퍼에 빨간 목도리를 두른 박 당선자는 환호하는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손을 흔들며 100여m를 걸어 차량에 올랐다. 집 앞 골목은 발디딜 틈이 없어 수행차량이 겨우 빠져나올 정도였다.  밤 11시 10분쯤 당사에 도착한 박 후보를 황우여·정몽준·이인제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뜨겁게 맞았다. 김성주 위원장과는 포옹을 나눴다. 당직자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박 당선자를 맞았다. 이들과 함께 잠시 TV방송을 지켜본 박 당선자는 4층 기자실에 들러 사례를 했다. 선대위 관계자들을 향해 “힘들고 어려운 선거였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셔서, 진심을 다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짧게 밝혔다.  선거기간 동안 밀착취재했던 기자들에게도 “그동안 추운 날씨에도 취재하고 보도해 주느라 애써 주신 언론인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한 뒤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이후 박 당선자는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해 당선소감을 밝혔다. 선거 전날인 18일 마지막으로 유세 연설을 했던 그곳이다. 더없이 환한 표정으로 박 당선자는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특별무대에 올랐다.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다.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선거기간 중 만나뵜던 많은 국민 여러분”이라면서 “제 주먹만 한 알밤을 들고 와 손에 쥐여 주신다든지 많은 격려와 응원을 하시던 모습들이 많이 생각난다. 다시 뵙고 싶고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를 여러분께서 열어주실 수 있도록 해 주신 것, 보내주신 신뢰의 뜻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국민 여러분 모두가 꿈을 이루고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선거운동 중 큰 사고가 났다. 저를 돕던 소중한 분들을 떠나보내야 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며 교통사고로 숨진 고 이춘상 보좌관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앞서 이날 오전 8시쯤 삼성동 자택 인근 언주중학교에서 투표를 마친 박 당선자는 “선거 기간 함께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현명하신 국민들께서 우리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실 거라고 믿는다.”면서 “날씨는 춥지만 꼭 투표에 참여하셔서 국민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좋은 꿈을 꾸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들며 엷은 웃음만 지었다. 투표소 주변에선 지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첫 여성대통령 시대] 친박계 전·현의원 주축…정책라인이 ‘싱크탱크’

    [첫 여성대통령 시대] 친박계 전·현의원 주축…정책라인이 ‘싱크탱크’

    이번 대선에서는 ‘주연’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못지 않게 ‘조연’ 역할을 한 측근 인사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중앙선거대책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선거 기구에서 위원장과 본부장, 단장, 위원 등의 공식 직함을 받은 인사만 줄잡아 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박 당선자와 다양한 연결고리를 맺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였다. 성공 신화를 쓴 ‘박근혜 사람들’을 들여다봤다. 김무성 본부장 등 ‘10인 회의’멤버 주목 ●‘액션 탱크’, 전·현직 의원들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과 서병수 당무조정본부장, 유정복 직능본부장, 홍문종 조직본부장, 변추석 홍보본부장, 안종범 정책메시지단장, 이정현 공보단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이학재 비서실장, 이상일 대변인 등 10명은 선거기간 내내 매일 아침 머리를 맞댔다. 비공개로 진행된 ‘10인 회의’에서 그날 그날의 선거 전략이 나왔다. 대선 승리를 이끈 ‘기관차’ 역할을 한 셈이다. 특히 김 본부장은 지난 10월 당내에서 불거진 ‘친박(친박근혜)계 퇴진’ 논란에 대한 박 당선자의 돌파구였다. 김 본부장은 선거 사령탑을 맡은 뒤 안형환·조해진·박선규·정옥임 대변인과 권영진·백성운 전 의원 등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을 대거 캠프에 합류시켰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박 당선자와 관계가 소원해졌던 김 본부장의 복귀에는 박 당선자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최경환 전 비서실장이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본부장과 비슷한 길을 걸은 ‘친박 구주류’로는 진영 국민행복추진위 부위원장을 꼽을 수 있다. 친박계 내부 갈등으로 한때 ‘탈박(탈박근혜)’을 선언했던 진 부위원장은 컴백 후 캠프에서 ‘정책 조율사’ 역할을 했다. 이렇듯 박 당선자를 도운 주축 세력은 친박계 전·현직 의원들이다. 상당수는 2007년 대선 경선 때 멤버들로, 사람을 쉽게 바꾸지 않는 박 당선자의 용인술이 반영돼 있다. 이주영 특보단장과 김학송 유세단장, 윤상현 수행단장, 박대출 수행부단장, 조윤선 대변인 등은 박 당선자를 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김태환·서상기·유기준·한선교·김재원·이진복·조원진·서용교 의원 등도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된다. 당의 간판인 황우여 대표와 ‘원내 사령탑’인 이한구 원내대표, 이혜훈·정우택 최고위원 등도 박 당선자를 측면 지원했다. 다만 경선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홍사덕 전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되면서 2선으로 후퇴했다. 강석훈·안종범·이종훈 의원 ‘3인방’ ●‘싱크 탱크’, 정책 브레인 박 당선자가 공약을 중시한 만큼 정책 라인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강석훈·안종범 의원은 박 당선자의 핵심 정책통이다. 이들은 진 부위원장과 함께 박 당선자가 공약을 발표하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 응했다. 강·안 의원은 이종훈 의원과 더불어 원내에서 ‘경제 브레인 3인방’으로도 꼽힌다. 이들은 모두 교수 출신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안 의원은 또 2007년 대선 경선 당시부터 박 당선자를 도와온 ‘5인 공부모임’ 출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와 최외출 영남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김영세 연세대 교수가 포함됐다. 박 당선자의 기획조정특보인 최 교수는 ‘조용한 조력자’로 통한다. 겉으로 드러난 행보는 없었지만, 박 당선자의 의중을 캠프에 전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인사들과 박 당선자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도 했다. 실제 박 당선자가 지난 9월 소설가 이외수를 만났을 때 이를 사전 조율한 인물이 최 교수였다. 김 명예교수는 박 당선자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국가미래연구원도 이끌었고, 연구원 소속 250여명의 학자들과 함께 박 후보의 대선 공약 밑그림을 짠 것으로 전해졌다.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도 연구원 소속이다. 이 밖에 윤병세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은 외교·안보,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는 복지, 박명성 명지대 교수는 문화, 곽병선 전 한국교육개발연구원장은 교육,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정부개혁 등의 분야에서 각각 핵심 참모로 꼽힌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박 후보의 역사 인식 등과 관련해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선자 이미지 변신에 기폭제 역할 ●‘새로운 피’, 영입 인사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는 그룹은 외부 영입 인사들이다. 박 당선자의 이미지 변신을 이끌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인재 영입은 지난해 12월 박 당선자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이후 가속도를 냈다. 특히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 등은 당내 인사와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당선자는 1987년 개헌 때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한 김 위원장을 끌어들여 경제민주화 논의를 주도했고, 2003년 한나라당의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한 안 위원장을 영입해 쇄신 의지를 보여줬다. 대표적 여성 기업인인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용준 공동선대위원장, 민주당 출신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 등도 비중 있는 영입 인사들이다. 이 중 김성주 위원장은 적극적인 유세와 언론 접촉 등으로 대선에서 적잖은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추석 홍보본부장과 조동원 홍보부본부장도 박 후보의 두터운 신뢰를 받는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조 부본부장은 올해 초 당명 개정 등을 주도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포스터를 제작했던 변 본부장은 ‘박근혜가 바꾸네’ 등의 선거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신뢰 높아… 신동철 부소장 ‘맏형’ ●‘궂은일 전담’, 보좌·지원 그룹 실무 보좌진 그룹도 빼놓을 수 없다. 보안을 중시하는 박 당선자는 입이 무겁고 성실한 보좌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보좌관은 박 당선자가 정치권에 입문한 1998년 이후 줄곧 근거리에서 보좌해 왔다. 박 당선자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만큼 이들에 대한 박 당선자의 신뢰는 절대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실무 그룹의 맏형 격이다. 여연에서 여론조사를 총괄했다. 백기승 공보위원도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이후 이른바 ‘마포팀’을 이끌며 박 후보에 대한 홍보 업무를 전담해 왔다. 조인근 메시지팀장, 장경상 전략기획팀장, 이창근 일정기획팀장, 장성철 공보상황팀장, 음종환 공보기획팀장 등 박 당선자의 선거 운동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보좌 인력들은 역할에 비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름 없는 조력자들’이다. 박 당선자 주변에는 외곽 지원 부대도 있다. 박 당선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바탕으로 의원들 못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KBS 보도본부장 출신의 김병호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병기 여연 고문, 이성헌·김호연·김선동·손범규·허원제 전 의원, 전광삼 공보위원 등도 박 당선자를 물밑 지원했다. 공개활동 자제… 정치적 무게감 커 ●‘캠프의 중심추’, 원로 그룹 원로 인사들의 경우 공개적인 활동은 자제한 편이나, 정치적 무게감은 상당했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계기로 박 후보를 돕는 ‘7인회’도 이러한 원로 그룹에 속한다. 강창희 국회의장과 김기춘·김용갑·김용환·최병렬 당 상임고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현경대 전 의원 등이다. 이번 대선이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로 흐르면서 캠프 외곽에서 박 후보를 지원하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이인제 전 선진통일당 대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김진홍 전 뉴라이트 상임의장,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등이 지원 사격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격전지 분석] (2)‘캐스팅보트’ 충청

    [격전지 분석] (2)‘캐스팅보트’ 충청

    대선 일주일을 앞둔 12일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지역의 표심도 요동치고 있다. ‘승세 굳히기’에 나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숨가쁜 열기를 토해내고 있는 지역이다. 이날 박·문 후보 모두 충청권을 찾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박 후보는 충북 옥천과 청주를, 문 후보는 충북 청주와 충남 공주, 보령, 서산을 훑었다. 두 후보는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7일 이후 12월 9일까지 박 후보는 충청권 15곳, 문 후보는 10곳을 방문해 유세를 펼쳤다. 서울과 수도권, 부산·울산·경남(PK) 등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찾은 곳이다. ●역대 대선 충북서 이기면 모두 당선 행정안전부의 ‘18대 대선 선거인명부’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4046만 4641명 가운데 이곳 유권자는 충남 160만 1006명(3.9%), 충북 123만 4225명(3.0%), 대전 110만 1820명(2.7%), 세종시 8만 7665명(0.7%) 등으로 전체의 9.9%(402만 4716명)를 차지하고 있다. 대선 투표율을 65~75%로 가정하면 충청권에 걸린 표는 261만~301만표다. 후보들이 충청권에 공을 들이는 것은 역대 선거에서 이곳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충청권, 특히 충북에서 이긴 후보는 역대 대선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과 비슷한 것으로 평가받는 2002년 대선에서도 당시 여당의 텃밭이던 충북에서 이긴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박 후보가 앞서고 있다. 조사기관마다 다르지만 대략 박 후보는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문 후보는 37~41%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10% 포인트가량 박 후보가 앞서고 있다. 지방지 8개사·리얼미터가 지난 9~10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박 후보 55.2%, 문 후보 39.8%의 지지율로 격차가 15.4% 포인트에 달했다.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의 11일 조사에서도 박 후보(52.0%)와 문 후보(41.8%)의 격차가 10.2% 포인트였다. 새누리당은 백중우세로 보고 있고 민주당도 백중 열세를 자인하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문 후보 지지 선언 이후 문 후보의 상승세가 뚜렷하다는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새누리당이 충청권에서 우위를 보이는 것은 박 후보의 어머니 고(故)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충북 옥천이라는 점을 활용한 ‘충북의 딸’이라는 구호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시 문제도 설계는 민주당이 했지만 최종적으로 막아준 것은 박 후보라는 논리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이회창·이인제 등 대표 지역정치인이 박 후보 측에 합류한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충청권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있는 데다 세종시 수정안 문제를 박 후보가 막아줬다는 논리가 먹히면서 충청권에서 박 후보가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유권자의 9.9%… 261만~301만표 문 후보가 박 후보를 따라잡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세종시에 수도권 유권자가 대거 유입됐고 대전 등에는 고학력자 비율이 높아 박 후보의 일방적인 우세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이전 충청권은 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투표를 했지만 점차 실리주의에 바탕을 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판세는 아직 유동적”이라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대선 첫 TV토론] 2002년 유권자 60% “TV토론, 투표에 영향”

    대선에서 TV토론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전문가들은 TV토론이 짧은 시간에 많은 유권자에게 후보의 장점과 상대 후보의 약점을 보일 기회라며 대선의 주요 변수라고 얘기한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경우에는 부동층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는 역대 TV토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정 TV토론회가 공식 도입된 것은 1997년 15대 대선부터다. 당시 이회창·김대중·이인제 등 세 후보가 공식·비공식으로 54차례의 TV토론을 벌였다. 당시 최대 수혜자는 김 후보였다. 달변이었던 김 후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후보 단일화 TV토론에서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준비된 대통령’의 모습을 보였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TV토론에서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보는 단독 토론회 이후 지지율이 4.7% 포인트 올랐지만 합동토론회에서는 지지율이 0.7~3.0% 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김 후보는 TV토론을 통해 ‘반DJ 정서’를 누그러뜨렸고 이는 대선 승리에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TV토론은 대선 정국을 달궜다. 노무현·이회창·권영길 후보가 27차례의 토론회를 했다. 노 후보는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TV토론에서는 정 후보에게 밀렸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자극적인 단어를 쓰며 공세적 태도를 보였던 단일화 TV토론과 달리 안정감을 보이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후보도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방송 직후 여론조사에서 최대 10% 포인트까지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2007년 17대 대선의 TV토론은 앞선 두 번과 달리 혹평을 받았다. ‘이명박 대세론’으로 TV토론 영향력도 미미했다. TV토론회의 공식 시청률은 역대 최저인 21.7%였다. 1997년(53.2%)과 2002년(34.2%) 시청률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토론회에 참여하는 후보 수가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다. 이전까지는 당선 가능성이 큰 순서대로 3명의 후보만 참여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는 국회 의석수 5석 이상의 정당 후보, 직전 총선 득표율 3% 이상을 기록한 정당 후보, 후보 등록 마감 30일 전 여론조사에서 5% 이상 지지율을 기록한 후보가 모두 참석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때문에 이명박·정동영 두 후보와 함께 이회창·문국현·권영길·이인제 후보 등 6명이 TV토론에 참석했다. 참여하는 후보가 늘어난 데다 정견 발표 뒤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싸움을 벌여 정책토론은 사라지고 네거티브만 남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TV토론에서는 가장 잘했다는 정 후보가 사상 최대의 표 차로 패하는 등 TV토론이 변수로 작용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TV토론의 영향력이 줄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올 대선 구도와 비슷한 2002년 대선의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TV토론이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에 유권자의 60%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TV토론은 지지자들이 지지 근거를 확인하고 부동층이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정책 대결이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TV토론의 희소가치가 더 높다.”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文, 실패한 정권의 핵심…서민정권이 서민 외면”

    “文, 실패한 정권의 핵심…서민정권이 서민 외면”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7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이번 선거를 ‘준비된 미래’와 ‘실패한 과거’의 대결 구도로 규정하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향해 공격 수위를 더욱 높였다. 박 후보는 대전을 시작으로 세종시, 충남 공주·논산·부여·보령, 전북 군산·익산·전주 등 모두 9곳에서 유세를 펼치며 중원을 집중 공략했다. 특히 충청은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 온 만큼 야당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며 비전을 부각시켰다. 박 후보는 대전역 광장과 공주 구터미널에서 가진 유세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준비된 미래로 가느냐, 아니면 실패한 과거로 되돌아가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문 후보를 두고 “스스로 폐족이라고 불렀던 실패한 정권의 최고 핵심 실세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권을 잡자마자 이념투쟁으로 날밤을 지새웠고, 입으로는 서민정권을 주장했지만 지난 정권에서 서민을 위했던 정책 하나라도 기억나는 게 있느냐.”며 문 후보를 몰아세웠다. 박 후보는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참여정부의 실정을 조목조목 따졌다. “대학등록금, 부동산 가격이 역대 최고로 폭등했고 양극화가 심해졌고 비정규직이 양산됐다.”고 지적했다. “실패한 정권이 부활해선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하는 동시에 새누리당이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하겠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국민을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지역과 세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도 가르지 않을 것이고 국민대통합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든 힘을 함께 모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북 유세에서는 국민대통합을 내세워 인사대탕평을 약속했다. 민주당이 박 후보와 새누리당을 공격하면서 사용한 ‘낡은 정치’, ‘과거세력’의 단어를 박 후보도 그대로 사용하며 역공했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등을 민주당이 백지화하려는 점을 언급하며 “말을 뒤집고 약속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있다.”면서 “이것이야말로 낡은 정치”라고 비판했다. 박 후보는 전주 일정을 마친 뒤 다시 세종시로 이동해 숙박했다. “박 후보의 정치신념인 원칙과 신뢰, 약속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지역이어서 박 후보가 애착을 보인 것”이라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충청지역 연설에서도 “세종시를 정치생명을 걸고 지켰다. 약속을 지키는 새 정치의 미래를 열겠다.”며 표심을 자극했다. 28일에도 충남 일대를 방문한다. 새누리당 유세현장에서는 문 후보에 대한 공세가 멈추지 않았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문 후보를 두고 “순진한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를 슬슬 구슬리다 결국 정치적으로 자살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신뢰받는 국가지도자라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괴테의 작품 속 파우스트 박사가 청춘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듯 영혼을 팔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면서 안 전 후보에게 민주당 지원에 나서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인제 공동선대위원장도 “야비한 야당 후보에게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공주·전주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무소속 安’의 한계… 현실정치 벽 못넘어

    18대 대선을 25일 앞둔 23일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대선 레이스’를 멈췄다. ‘통 큰 양보’라는 역대 무소속 후보와 다른 ‘제3의 길’을 보여줬지만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같은 길’이기도 하다. 안 후보는 이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에게 야권 후보를 양보하고 ‘대선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등장한 지 13개월 만이다. 그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의 양자 대결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보이면서 한때는 지지율이 50%를 넘나들었다. 역대 대선에서 여야 정치권에 속하지 않는 제3후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후보로서 ‘다크호스’가 아닌 ‘유력 후보’ 반열에 올랐다. 부동의 1위였던 박 후보의 ‘대세론’을 깨기도 했다. 안 후보는 아이러니하게도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에 나선 뒤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하락세를 보였다. 과거 제3후보의 ‘위협적 지지율’을 뛰어넘어 여야 유력 주자들의 지지율을 뛰어넘는 ‘이기는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후보의 양보는 등 떠밀려 이뤄진 측면이 있다.”면서 “안 후보도 무소속 후보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역대 무소속 후보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도 대선을 앞두고 제3의 후보가 대세론을 형성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곤 했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유한킴벌리 사장 출신의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깨끗하고 청렴한 기업인’이라는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지만 기존 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해 5.8% 득표에 그쳤다. 고건 전 총리도 대선을 앞두고 후보로 급부상했지만 본인 스스로 대권을 접어야 했다. 2002년 정몽준 무소속 의원은 월드컵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새로운 ‘다크호스’로 부상했으나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내줬다. 1997년 대선에서는 신한국당을 탈당해 독자 출마를 강행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19.2% 득표로 3위에 머물렀다. 박찬종 전 의원도 1992년 대선에서 이른바 ‘버버리 바람’을 일으켰지만 결국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역대 대선에서 D-30일, 후보 등록, 선거운동 기간 돌입 시점은 각 후보 간 지지율의 변곡점이 됐다. 흥미로운 건 대선 여론조사가 처음 시작된 1987년 13대 대선 이후 2007년 17대 대선까지 모두 다섯 차례 대선에서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 1, 2위가 바뀐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2002년 16대와 2007년 17대는 이번 18대 대선과 정치 일정이 똑같다. 12월 19일 대선이 치러졌고, 11월 27일부터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2002년의 경우 후보 등록 직전인 11월 23일 갤럽 조사까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32.3%로 줄곧 선두였고, 노무현 민주당 후보 25.4%,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25.1%로 박빙이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4일 노·정 단일화가 되자 전세는 역전됐다. 25일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는 43.5%로 올랐고, 이 후보는 37.0%를 기록했다. 노 후보는 단일화 이후 단 한 차례도 역전을 허락하지 않았고, 정 후보의 지지 철회도 최종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11월 3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하며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같은 달 15일 여론조사까지 김대중 후보는 34.0%로 1위를 달렸고,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각각 24.4%, 23.7%로 박빙이었다. D-30일이던 18일을 기점으로 이회창-이인제 후보의 단일화가 최종 무산됐다. 신한국당은 같은 달 21일 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승부수를 띄우며 추격에 나섰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 후인 11월 29일 조사에서 김대중 후보는 32.8%, 이회창 후보는 29.3%로 양강 구도가 형성됐고, 김대중 후보의 우위는 선거 결과까지 이어졌다. 2007년 대선은 당시 야당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부동의 1위였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범여권 단일화가 시차를 두고 무산된 후, 이명박 후보는 투표일까지 줄곧 독주 체제를 굳혔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인제 “盧, 부패 혐의에 쫓겨 자살” 파문

    이인제 “盧, 부패 혐의에 쫓겨 자살” 파문

    새누리당과 합당을 의결한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가 1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 “부패 혐의에 쫓겨 자살했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대표는 세종시에서 열린 새누리당 선대위 발대식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겨냥해 “야당의 한 사람은 오직 정치적 경험이 대통령 비서라는 것밖에 없다. 자기가 모시던 대통령이 부패혐의에 쫓겨 자살했다. 정치적으로 영원히 죄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와서 대통령을 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고인의 죽음을 매도했다.”며 반발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함께 경선을 치른 경쟁 상대에 대한 미움도 없지 않겠지만 고인의 죽음마저 매도해야 하는지 인간적 비애를 느낀다.”면서 “전직 대통령의 죽음마저 매도하고 조롱하는 것이 박근혜 후보의 인식, 새누리당의 수준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노무현재단도 논평을 내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한 수많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무려 13번이나 당적을 옮겨 가장 추악한 정치인으로 꼽히는 철새 정치인이 더러운 말을 입에 담느냐.”고 따졌다. 재단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에게 망언을 일삼는 자들을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게 ‘박근혜식’ 국민통합이냐.”며 박 후보의 사과를 촉구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이춘규 선임기자의 대선 풍향계] 한쪽 후보의 극적 양보 기대감 속 “이제나 저제나” 국민 단일화 피로감 “역사 죄인 되지 마라” 87년 교훈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야권후보 단일화 성사는 정권교체라는 측면에서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있다. 단일화를 전제로 시기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누구로 단일화가 되더라도 최소 한 자릿수에서 최대 30%까지 지지표가 이탈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등 단일화 만능론을 무색하게 하거나 단일화 무산 가능성도 본격 제기되고 있다. 단일화 무산론은 새누리당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안 후보의 빅3 대결론이 대표적이다. 범야권에서는 여전히 단일화가 당연시되고 있지만 “단일화 무산 가능성이 절반을 넘는다.”는 분석은 물론 70% 이상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단일화가 난제 중의 난제임을 말해 준다. 역사적으로도 단일화는 난제였다. 1987년 대통령선거 때는 야권의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재야의 거센 단일화 압박에도 불구하고 ‘3자 필승론’이 나오면서 무산됐다. 그 결과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담판을 통해 단일화에 성공,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했지만 끝내 내각제는 무산됐다.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여권표를 잠식했지만 불과 39만표 차이였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선거 전날 정 후보가 단일화 파기 선언을 해버렸지만 진보진영의 표 결집 현상으로 노 후보가 간신히 이겼다. 2007년에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막판까지 티격태격하다 단일화가 무산됐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초강세여서 단일화를 해도 승리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평이다. 돌이켜보면 지지율이나 세력 차이가 크게 날 때 단일화는 성공했다. 1997년 대선이 대표적인 예다. 지지율이나 세가 팽팽하거나 단일화 효용이 없을 때는 실패했다. 1987년과 2007년의 경우다. 지지율이 팽팽했지만 세력 차이가 확연했던 2002년에는 단일화에 성공한 듯했지만 최종적으로 결렬됐다. 단일화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문·안 후보의 단일화 여건은 좋지 않아 보인다. 문·안 후보의 지지율은 팽팽하다. 세력 차이도 크지 않아 보인다. 200명 가깝게 팽창한 안 후보 캠프도 정당 수준으로 커졌다. 후보가 자진해서 양보하려 해도 어려운 구조가 돼 버렸다. 1987년 당시 재야세력은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며 양 김씨를 압박했지만 단일화에 실패했다. 상대를 주저앉히려 하기보다는 절박성을 갖고 단일화에 임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올해도 25년 전처럼 재야를 중심으로 외부 압박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들의 단일화 피로감이 높아지는 등 상황도 점차 엄혹해지고 있다. 한 후보의 극적인 양보를 기대하는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두 후보 진영이 단일화 문제를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할 때 같다.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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