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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향장기수 北送권고 검토 안팎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전향 장기수까지 북송을 권고한 것은 강제전향공작이 유신정권에 의한 국가적 폭력에 의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장기수의 북송 권고가 논란을 빚고는 있지만 납북된 사람이나 국군포로의 생사확인 및 송환과 연계된다면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서재일 의문사위 특수조사과장은 지난 1일 비전향 장기수 최석기·박융서·손윤규씨의 의문사를 인정하면서 “전향한 장기수라 하더라도 본인이 원한다면 북한으로 보내도록 정부에 권고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그는 당시 “인도적 조치로 국가 차원의 보상이나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의 접촉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수용·지시 있어야 실현 의문사위는 5일 “현재는 실무적인 검토가 이루어진 상황”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대통령 보고 및 권고는 7월 말쯤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의문사위가 대통령에게 권고안을 보고하기까지는 ▲실무검토 ▲상근간부회의 ▲보고서 발간위원회 ▲위원회 회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현재는 실무검토를 하는 수준에 불과해 앞으로 여러 단계를 거치는 동안 권고안으로 확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내부의 반대의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김희수 제1상임위원도 “아직 안건으로 제기되지 않은데다 논의를 한다고 해도 상임위원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사안임을 시사했다. 또한 의문사위가 권고안을 보고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다.대통령이 수용하여 관련부서에 지시를 내려야 방법을 마련,전향 장기수의 북송이 이뤄진다. 정부는 2000년 비전향장기수를 북측에 송환했고,현재 남측에는 공식적으로는 전향한 장기수만이 남아 있는 만큼 더 이상의 북송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정부 관계자는 “매우 당황스럽다.”면서 “남북문제 차원으로 접근하기에 앞서 교정당국에서 명확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전향 장기수는 이미 모두 북송 또한 일부 보수단체가 반대의사를 밝힌 것처럼 송환에 반대하는 여론을 수렴하는 방법도 숙제다. 비전향 장기수는 1993년 3월 이인모씨가 송환된 이후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비전향장기수 전원송환’을 합의함에 따라 같은해 9월 63명이 판문점을 통해 북측으로 송환됐다.2001년 2월에는 장기수 33명이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전향무효선언 및 송환촉구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6·15 남북정상회담 4돌] 北대표단 방한 안팎

    남북 정상회담 및 6·15 남북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다양하게 열린다. 정상회담의 주인공인 김대중 전 대통령측은 민간인 신분으로 15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6·15 남북 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를 북한측과 공동 주최한다.앞서 김 전 대통령은 전날 오후엔 토론회 참석차 내한한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측 인사들과 30여분간 환담을 나눴다.그가 북측 인사들과 만난 것은 퇴임 이후 처음이다. 임동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영접을 받은 이 부위원장은 방문록에 ‘력사적인 6·15는 민족의 긍지입니다.6·15 4돐 기념 국제토론회 북측 대표단 리종혁 2004.6.14’라고 적은 뒤 임 특보와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김 전 대통령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이 부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4년 전 평양에 오셨을때 뵙고 4년 만에 뵙습니다.신색이 좋습니다.”라고 인사했다.이에 김 전 대통령은 “이번 4주년에 오셔서 민족문제를 논의하게 돼 전 민족이 경하할 일”이라며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답했다고 배석했던 김한정 비서관이 전했다. 한편 ‘6ㆍ15 공동선언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에 참가할 북측 대표단 126명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14일 오후 내한했다.특히 북측 대표단에는 지난 93년 북송된 이인모씨의 외동딸 현옥씨도 포함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현옥씨는 “아버지가 40여년 동안 옥고를 치른 땅에 오니 가슴이 아프다.그동안 아버지를 돌봐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조승진·인천 김학준기자 redtrain@seoul.co.kr
  • [6·15 남북정상회담 4돌] 北대표단 방한 안팎

    [6·15 남북정상회담 4돌] 北대표단 방한 안팎

    남북 정상회담 및 6·15 남북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다양하게 열린다. 정상회담의 주인공인 김대중 전 대통령측은 민간인 신분으로 15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6·15 남북 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를 북한측과 공동 주최한다.앞서 김 전 대통령은 전날 오후엔 토론회 참석차 내한한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측 인사들과 30여분간 환담을 나눴다.그가 북측 인사들과 만난 것은 퇴임 이후 처음이다. 임동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영접을 받은 이 부위원장은 방문록에 ‘력사적인 6·15는 민족의 긍지입니다.6·15 4돐 기념 국제토론회 북측 대표단 리종혁 2004.6.14’라고 적은 뒤 임 특보와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김 전 대통령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이 부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4년 전 평양에 오셨을때 뵙고 4년 만에 뵙습니다.신색이 좋습니다.”라고 인사했다.이에 김 전 대통령은 “이번 4주년에 오셔서 민족문제를 논의하게 돼 전 민족이 경하할 일”이라며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답했다고 배석했던 김한정 비서관이 전했다. 한편 ‘6ㆍ15 공동선언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에 참가할 북측 대표단 126명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14일 오후 내한했다.특히 북측 대표단에는 지난 93년 북송된 이인모씨의 외동딸 현옥씨도 포함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현옥씨는 “아버지가 40여년 동안 옥고를 치른 땅에 오니 가슴이 아프다.그동안 아버지를 돌봐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조승진·인천 김학준기자 redtrain@seoul.co.kr
  • 전향제 어떻게 변해왔나

    ‘사상전향제’의 역사적 뿌리는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933년 일제가 ‘사법당국 통첩’을 제정,사상범과 독립운동가에게 ‘일왕에 대한 충성서약’을 석방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시작됐다. 해방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전향서로 바뀌어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는 수단이 됐다. 80년대에는 생활계획서라는 명목의 각서 제출을 요구했다.이처럼 전향서는 사상범에 대한 사면·복권의 주요 판단기준이었다. 사상전향제는 국가가 특정 사상이나 정치적 신념을 강제로 포기하게 한다는 점에서 헌법에 보장된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지난 98년 국민의 정부는 사상전향제를 전격 폐지하는 대신 변형된 형태의 ‘준법서약제’를 도입,논란을 초래했다.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준법서약제에 대해 ‘헌법적 의무를 확인,서약하는 것에 불과할 뿐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준법서약제는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지난 4월 시국·공안사범 1418명을 사면했으나 준법서약서를 받지 않음으로써 폐지의 단초가 됐다.법무부는 지난 7월 형사정책적인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마침내 준법서약제를 폐지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전향제 관련 사건일지 ●1933년 일제,사법당국 통첩제 도입. ●1945년 사상전향제로 전환. ●1993년 3월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 북송 ●1998년 사상전향제 폐지.준법서약제 도입 ●1999년 11월 유엔,국가보안법 단계적 철폐 권고 ●2000년 9월 비전향 장기수 62명 북송 ●2002년 4월 헌법재판소,준법서약제 합헌 결정 ●2003년 4월 준법서약서 없이 1418명 사면 단행 ●2003년 7월7일 준법서약제 폐지
  • [열린세상] 북한 핵과 대북 햇볕

    1993년 3월,북한이 핵 비확산 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한반도가 핵 위기의 소용돌이로 휘말릴 당시,클린턴 행정부는 집권 초반 벌어진 급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며 마땅한 대책도 없이 표류했다.“어떤 동맹도 민족에 우선할 수는 없다.”고 천명하면서 장기수 이인모를 북에 돌려보낸 김영삼 정부도 당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당시 미국 내에서는 군사적 대응,경제 제재 등모든 방안들이 무차별적으로 거론되고 있었고,한국은 미국이 전쟁을 포함한 대북 강경책을 펼 수 있다고 불안해했다.결국 김영삼 정부는 핵 문제 해법을 위한 로드 맵을 미측에 제시했고,북·미간 핵 협상을 권유했다.대북 ‘햇볕’이라는 용어는 이 시기에 등장했다.그리고 94년 10월,우여곡절 끝에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북의 ‘불바다 발언’에 전 국민이 전율했고,카터가 방북 선물 보따리에 챙겨온 남북 정상회담은 김일성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무산되었다.북·미 관계의 순항 속에 한국은 북의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성토하며 삼각관계에서의 소외감을 드러냈다. 2002년 10월,북한의 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이 노출되면서 북핵 드라마의 제2막이 올랐다.94년 핵 위기의 학습효과가 작동한 탓인지,부시 행정부는 상당히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그릇된 행동에 대해 보상하는 전례는 없을 것이며 북의 핵 폐기가 우선임을 역설하면서도,평화적 해결과 국제 공조를 강조한다.한국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아마 대 이라크 공세 및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에 따른 대안의 한계를 간파한 듯하다. 한편 북한은 남북관계의 순항을 이용하여 미국의 예봉을 피하고 있다.“미국의 대북 압력에 남북이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억지 논리를 펴며,“핵파문이 민족 최대의 위업인 조국통일도 가로막고 좋게 발전하는 북남 관계를 뒤집어 엎으려는 간악한 흉계로부터 나왔다.”고 미국을 몰아세운다.민족공조의 수사(修辭) 속에서 통미봉남의 삼각 구도를 과감히 수정한 것이다.이렇듯 북한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며,외견상 전술적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다.이론적으로는 미국이 이 상황에서 소외감을 표출해야할 차례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설픈 삼각관계에 대해 미국은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그들은 ‘북한’이 아닌 ‘북한 핵’에 주목하기 때문이다.또한 미국이 상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북한 핵 보유 그 자체는 아니다.오히려 북한 핵이 가져올 파장,즉 동북아의 핵 도미노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북한 핵의 볼모는 미국이 아닌 한국이다.민족 공영의 동반자를 자처하면서도 핵 개발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이나,21세기 국제사회의 오만한 초강대국임과 동시에 반세기 동맹우방인 미국, 양자 모두 우리에게는 버거운 상대일 뿐이다.결국 북한에 숨쉴 틈을 주어 우리에게 의존하도록 만들고,이를 통해 지렛대를 행사하면서 핵의 뇌관을 조심스럽게 제거하는 것만이 우리로서는 최상의 대안이다.그래야 한반도의 안보,번영은 물론,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있어서도 한국의 입지를 확실히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유일한 방법은 대북 포용과 대화뿐이다.경협과 지원을 계속하면서 한반도 평화 및 안보와 엮어지도록 묘안을 짜야 하는것이다.이렇게 볼 때 현 정부가 북한 핵의 불용을 강조하며,일관성있게 대북 협력을 시도하는 일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대북 강경론 내지는 포용 회의론이 부각되는 현실은 유감천만이다.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정부의 책임이라 하겠다.정권 차원에서 햇볕의 성과와 북의 변화를 지나치게 과신,홍보했고 나아가 대북 정책과 국내정치를 묘하게 연계시켜 불신을 자초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향후 누가 정권을 잡던 대북 포용은 지속되기를,또한 현 정부가 초래한 시행착오는 반면교사로 삼기를 기대해 본다. 정옥임 국제안보평론가
  • 납북자문제 北과 인내심 갖고 대화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2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납북자의 가족상봉이 처음으로 성사되면서 이들의 본격적인가족상봉과 해결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다.냉전시대의 산물로 남북관계 진전 속에서도 여전히 한반도의 상처를 상징하고 있는 이들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해법을 살펴본다. 2차 이산가족 방문(11월30일∼12월2일) 때 납북어부 강희근씨 모자의 상봉이 이뤄짐으로써 남북의 납북자 문제 해법에 관심이 쏠리고있다. 납북어부 상봉은 북한을 꾸준히 설득,납북자를 이산가족의 틀에 넣어 상봉부터 시키자는 우리 정부의 신중한 접근법이 주효했기 때문에가능했다. 그러나 ‘납북’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과 ‘비전향장기수북송’과 맞먹는 피랍자 송환을 요구하는 납북자 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정부의 고민도 크다. 정부는 납북자 문제는 다른 남북 현안들처럼 한걸음씩 천천히 풀어나가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 아래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 대화를 해나간다는 전략이다.특히 이 문제가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해결의 우선순위도 높게 잡고 있다. 납북자란 넓은 의미에서 분단 이후 한국국민으로써 북한에 억류돼사망했거나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입북 당시의 신분,납북지역,시기,상황 등에 따라 세분되며 이를 유형별로 보면 ▲국군포로 ▲한국전쟁 중 납북된 민간인 ▲납북어부 ▲외국에서 강제납치된 민간인 ▲항공기 피랍자 ▲북송 재일교포 ▲북파공작원 등으로 나뉜다. 납북자에 대한 정의는 관계기관마다 다르다.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국군포로의 경우 별개의 사안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국방부가 공식확인한 국군포로는 351명에 불과하다.북파공작원은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관련 정보수집의 어려움과 납북자에 대한 정부의 입장차이때문에 전체규모에 대한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통일부는 국회에 제출한 납북억류자 현황자료에서 정전협정 이후 납북자는 모두 3,790명이며 이 중 13%인 487명이 북한에 억류돼있다고 밝히고 있다.여기에는 어부(3,692명),69년 KAL기 피랍에 따른승무원과 승객(51명),함정 피랍군인 및 경찰관(22명)등이 포함돼있다. 북한은 납북자의 북한거주사실은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납북자가아니라 공화국을 동경해 자진 월북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북한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에겐 공식적으로 ‘의거입북자’‘의용군’‘통일의 역군’‘통일용사’ 등으로 호칭한다.납북자들은 대부분 대남선전에 활용된다.납북자를 회유,협박해 자진월북했다는 기자회견을 시키고 월북자들의 생활상을 TV를 통해 내보내기도 했다.그러나 체제에저항하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납·월북자 22명 수용확인)하거나 처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북한의 국군포로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정전협정체결 이후 포로교환을 통해 남으로 갈 사람은 다 갔으므로 법적으로 국군포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납북자 가족도 상봉신청하면 만남 기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주관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은 6일 “납북자 가족들도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하면 규정된절차에 따라 상봉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서 북측과 납북자의 상봉확대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납북자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풀어나간다는 게 한적과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별도 생사확인과 면회소를 통한 상봉기회가있을 때에도 포함시키는 등 납북자 가족 상봉을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납북자 상봉을 이산가족 해법과 별도 의제로 풀어나가자’는 일부주장에 대해 박총장은 명분론적인 접근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올수 있는 방안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납북자들이 ‘왜 북한땅에 있느냐’는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가족과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세다. 2차 상봉에서 납북자 가족상봉은 북측의 태도 변화를 의미하느냐는질문에 박총장은 ‘북에 납북자는 없다’는 북측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측도 인도적인 문제에 유연성을 보인 것이라며 앞으로 보다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적이 북측과 이 문제를 다뤄온 것은 지난 6월 말 1차 적십자회담때.비공식적인 입장 전달 수준에 그쳤지만 북측은이 문제를 제기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그뒤 9월 2차 적십자회담에서 다시 정식으로 제기했을 때는 북측 반응이 많이 누그러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국군포로의 상봉문제에 대해선 “국군포로의 가족상봉 문제도일단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적십사회담을 통해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군포로 문제는 국방장관급 회담 등 다른 정부채널에서 해결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석우기자 swlee@. * “정전협정후 끌려간 사람들 이산과 별개”. “납북자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와 같이 취급해선 안됩니다” 87년 백령도 해상에서 납북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55)의 딸이자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인 최우영(崔祐英·30·여)씨는 “납북자 문제해결의 첫 걸음은 납북자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납북자도 포괄적인 이산가족 범위에 포함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최씨는 “이산가족들 중에는 6·25 때 자진 월북한경우도 있지만 납북자는 모두 정전 이후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북에끌려간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따라서 “납북자가 이산가족과 같이다뤄지면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처럼 가족간에 일회성 만남은 가능하겠지만 남쪽으로의 송환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납북자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최씨는 “지금까지 남북간에 있었던 300회 이상의 협상에서 북한은 끊임없이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을 주장해왔다”면서 “하지만 우리 정부는 92년에는 이인모씨,올해는 비전향 장기수 모두를 북으로 보내 주면서도 남측의 납북자 생환에 대해선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며 정부 정책을 못마땅해 했다. 최씨는 또 납북자 문제를 전담하는 정책기구나 전담부서의 필요성을강조했다. “우리 정부에는 납북자 문제 담당직원이 통일부 인도지원국 사무관 한명이 고작”이라면서 “지원정책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정부는 지난 9월 납북자로서는 최초로 생환한 이재근씨에게 탈북자에 준한 대우를 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최씨는 “통일이란 두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인데 여기에는 먼저 사람의 통합이 필요하다”면서 “근래 남북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에 납북자 문제도 더 잘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며 빠른 시일 내에 납북자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北 노동당 행사 표정

    11일 북한 언론 매체들은 전날 평양시 김일성광장에서 거행됐던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열병식 및 군중시위’를 반복해서 내보내고이에 대한 외국 방문 인사들의 반응을 보도하는 등 경축 분위기를 전했다. ■11일 북한 표정 북한의 라디오방송인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오전 8시‘열병식 및 군중시위’를 재방송했다.앞서 중앙방송은 오전7시 열병식 및 군중시위를 지켜본 해외동포와 외국 손님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 발언 등 관람객들의 반응을 소개했다. 또 방송들은 노동당 창건 55돌 경축연회가 10일 저녁 평양에서 열린사실과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김 총비서에게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는 편지를 보낸 소식,지난 93년 북송된이인모씨가 김 총비서에게 편지를 보낸 소식 등을 전했다. 그러나 방송들은‘열병식 및 군중시위’를 관람한 남측 방문단에 대해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언급하지 않았다. ■주석단 서열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당 창건 기념행사의 주석단에서는 박성철ㆍ김영주(김일성 주석 동생)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 등 이른바‘혁명선배’로 불리는 원로 간부들이 앞에 나온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노동당 창건 또는 발전에 기여한 원로 간부들에 대한 예우 차원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상연기자 carlos@
  • [사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3일 방송 3사와 회견에서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사실을 우리는 환영한다.특히 김 대통령이 “국군포로가 300∼400명이고,납북자수도 그 정도 된다”며 이례적으로 숫자까지 밝히면서 북한과 물밑대화 등 해결 방향을 제시한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국정 최고 책임자가 굳은 의지와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이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를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 문제가 일거에 풀릴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김 대통령이 “당분간 북한과 물밑 접촉을 더 많이 진행해야 한다”고 언급한 취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다시 말해 “국군포로나 납북자는 없고, 있다면 의거입북자만 있다”고 지금까지 주장해온 북한의 입장을 바꾸도록 설득하기 위해선 시간과 명분이 필요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이산가족과 마찬가지로 국군포로와 납북자들도 대부분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고령자들이라는 점을 남북 당국,특히북측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이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가족들과 재결합하게 해야 한다.이미 남측이 지난 2일 비전향장기수들을 송환해 인권 보호 측면에서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훌륭한 전범(典範)을 남기지 않았는가.비전향장기수들은 남한 사회에서는 실정법상 엄연히 범법자들이었다.하지만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보아 생전에북측 가족들과 재회하도록 해 궁극적으로 남북 화해의 밑거름이 되도록 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돌려보낸 것이다. 따라서 북측도 남측이 상호주의를 적용하지 않고 인도적 차원에서비전향장기수들을 조건없이 보낸 뜻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그런맥락에서 북측으로 간 장기수들을 정치적 선전 차원에서 지나치게 부각시켜 결과적으로 남북화해 기반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당부한다.북이든 남이든,과거 이인모씨의 북한 송환 이후의 전철을밟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2차 장관급회담에서 이산가족간 서신교환을 추진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하는 등 남북간에 이산가족 문제를 풀기 위한 다양한해법이 논의되고 있는 점에 기대한다.남북이 국군포로나 납북자들도특수 이산가족으로 보고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하다면 해결책을 못찾을 이유가 없다.북측이 요청한 식량지원도 이산가족 문제와 직접 연계시켜서는 안될 것이다.다만 북측이 국군포로 등을 포함한 광의의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느냐에 따라 식량지원에 대한 남측 여론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 비전향 장기수 맞는 북한 이모저모

    2일 오전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맞은 북측은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는 비교적 차분하게,그러나 평양에서는 대대적으로 환영행사를 가졌다.93년 이인모(李仁模)씨 북송 때와는 달리 남측을 자극하지않으려고 고심한 북측의 배려가 엿보였다. ■판문점 통일각 43년 10개월 수감으로 세계 최장기 복역 기록을 가진 김선명씨가 중립국감독위 북쪽 출구를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북측 관계자는 김씨를 껴안고 감격적인 인사를 나누었다.빨치산 출신 김국홍씨는 휠체어를 타고 중감위 회의실을 통과하자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통일각 건물 벽에는 ‘백절불굴 통일애국 투사들에게 영광 있으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한편 이들이 북으로 보낸 화물은 세탁기,냉장고,TV 등 가전제품과여행용 가방 등으로 한 관계자는 “한 사람이 많게는 15개 박스,적게는 가방만 2개 보낸 이도 있다”고 설명했다.장기수들은 최고 예우를상징하는 붉은 색 벤츠 승용차에 나눠타고 평양으로 이동했다. ■북측 반응 및 평양 환영행사 평양 거리에는 이들을 환영하기 위한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다.김일성광장에서는 4,000여명의 예술인들이 화려한 환영행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조명록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홍성남 내각 총리,전병호ㆍ계응태 당중앙위원회 비서 등이 이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송환을 축하했다. 이들은 이어 김일철 인민무력상,최태복 당중앙위 비서,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의 안내로 김일성 주석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조선중앙텔레비전방송은 판문점을 출발,개성과 사리원을 거쳐 평양에 도착한 비전향장기수의 동정을 상세히 실황 중계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이석우기자 swlee@
  • 비전향장기수 북송

    류한욱(89),우용각(71)씨 등 북한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비전향장기수 63명이 2일 오전 10시 육로로 판문점을 거쳐 북송된다. 정부는 “비전향장기수의 신병은 93년 이인모(李仁模)씨 송환 전례에 따라 2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건강검진기록과 함께 북측에 인계된다”고 1일 밝혔다. 비전향장기수 63명의 북송은 법률상 적용법규가 없기 때문에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방북절차에 따라 방북증명서를 발급받는 형식으로이뤄진다. 이들은 북송에 앞서 1일 오후 서울 평창동 북악파크텔에 집결,방북안내교육을 받고 단체숙박을 하면서 남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들의 남쪽 가족과 친지 등은 2일 오전 8시 북악파크텔을 출발할 때까지만 배웅할 수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 93세 노모·北送아들 애끊는 이별

    “꾹 참고 안 울어.내가 눈물 보이면 아들이 맘 편히 못가잖아.아들하고 훈련했어” 먹장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1일 낮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음식점 앞.북송을 하루 앞둔 신인영(辛仁永·71)씨의 노모 고봉희(高鳳喜·93)씨는 주름진 손으로 연방 눈자위를 부비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집을 나오기 전 “골수암으로 투병 중인 아들에게 내 손으로 지은따뜻한 밥을 먹이며 함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면서 “한번도 못본 며느리와 손주들 얼굴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하며 정갈하게 다린 와이셔츠를 챙기던 고씨였지만 막상 헤어질 때가되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며느리에게 보내는 한복과 40년 동안 간직한 금브로치 등 선물, 아들의 짐꾸러미를 챙기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없었다.지난 밤에는 아들과 마지막으로 한 잠자리에 들어 손을 잡고밤을 새다시피 했다. 전북 부안이 고향인 신씨는 서울대 상대 재학 중 6·25때 인민군에징집돼 월북,김일성대를 졸업한 뒤 지난 67년 공작원으로 남파,검거됐다.3남5녀의 장남인신씨가 98년 3월까지 30여년 동안 옥살이를 하는 동안 노모는 옥바라지를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 날만을 기다려 왔다. 다른 장기수들과 함께 식사를 마친 뒤 통일부가 지정한 장소로 떠날 때가 되자 신씨는 “어머니,이렇게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예요”라면서 “내년 봄 북으로 초대할 때까지 건강하세요”라고어머니를 위로했다. 고씨는 “그래,그래 나는 서운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니 나는 괜찮아” 하면서도 아들 신씨가 얼마 전 선물한 금반지를 낀 손으로 계속 눈자위를 훔쳤다.신씨가 “제 생각이 나시면 이 반지를 보세요”라면서 ‘만수무강 신인영’이라는 글자를 새겨 선물한 두 돈짜리 금반지다. 신씨는 배웅나온 형제와 친지들에게 “다시 만날 때까지 어머니를잘 모셔달라”고 신신당부한 뒤 뒤돌아섰다.아들의 뒷모습을 힘 없이바라보는 구순 노모의 눈가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안동환 홍원상기자 sunstory@. *비전향장기수 北送 의미. 북송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2일 송환되는 것은 반세기동안 우리 민족을 옥죄고 있던 냉전구조의 해체를 본격 촉진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북송자 63명은 해방 전후 빨치산으로 활동했거나 60년대 남파된 간첩들이 대부분이다.이러한 인물들을 기꺼이 보내주기로 한 것은 우리사회의 자신감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반증으로 여겨진다. 정부는 체제 선전에 집착하는 북측의 오랜 숙원을 ‘화끈하게’ 풀어줌으로써 앞으로 국군포로,납북자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영행사 할까 93년 3월 이인모(李仁模·현재 83세)씨 송환때 북측은 판문점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여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정부는 최근의 남북 화해 분위기를 감안,이번엔 자극적인 행사를 자제토록 북측에 당부했다는 후문이다.그러나 평양으로 향하는 연도변이나 평양 시내에서는 대대적인 행사가 상당 기간 잇따를 전망이다.63명이 무더기로 ‘이념의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북측으로서는주민들을 사상적으로 결속시킬 최대의 호재랄 수 있다. ■어떤 대우 받을까이인모씨의 전례에 비춰 보면 63명은 북한에서최상의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이씨에게 ‘김일성훈장’과 ‘국가훈장 1급’을 주고 ‘공화국 영웅’ 칭호를 부여했다.그가다녔던 양강도 파발인민학교를 ‘이인모학교’로 개칭했으며,이 학교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친필 비석과 이씨의 반신상을 세우기도 했다.병 치료를 위해 96년 그를 미국에 보내기도 했다. 이씨는 현재 부총리급 간부들에게 제공되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 [기고] 북한에 바란다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오늘 북송된다.우리말사전에는 ‘비전향(非轉向)이란 말이 없다.‘전향’만 있다.‘전향’은 ‘현실사회와 배치되는 자기의 사상을 그 사회와 맞게 바꿈’으로 설명되고 있다.‘비전향’은 ‘전향’의 반대말,따라서 뜻을 풀이하면 ‘현실사회와 배치되는 자기의 사상을 그 사회와 맞게 바꾸기를 거부함’이 된다.결과적으로 이번에 북송되는 63명은 현실사회(한국)와 배치되는 자기의사상(공산주의)을 우리 사회와 맞게 바꾸기를 거부한 장기수들인 셈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을 ‘미전향 장기수’로 불렀다.아직까지 전향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전향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한에서는 시종일관 ‘비전향자’로 호칭했다.그러므로 63명은 마지막까지 전향을 거부,‘신념의 강자’로서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켜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송자 63명 가운데 14명은 빨치산 출신이고 나머지 49명은 남파간첩이다.빨치산이나 남파간첩 모두 우리체제의 전복을 꾀했던 사람들이란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정부가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이들을북한으로 돌려보내기로 한 것은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이기도 하지만어디까지나 인도주의에 입각한 것이다.대부분이 고령인데다 죽기 전에 가족을 만나게 하는 것이 인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온갖 부담’을 무릅쓰고 이들의 북송 결정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북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배려와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묵시적 동의에 따른 것이지 결코 사상범으로서의권리에 의해서가 아니다.체제와 이념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한 채 살아야 하는 고통과 슬픔을 해소하는 것이 진정한 동포애이자 인도주의정신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장기수 북송과 관련,북에 당부하고자 한다.절대 ‘이인모 노인의 경우’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다.지난 93년 3월19일 당시 정부는 ‘민족이 이념보다 우선한다’면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송했다. 북한은 이씨의 송환 직후인 3월27일 조평통 부위원장 전금철(현재 남북장관급회담 북측대표 전금진)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이 성명은이씨를 보살펴준 남한의 각계 인사들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그러나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오히려 이씨의 건강진단 결과를 갖고 우리 정부가 가혹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심지어 “문둥병 환자가 덮던 피고름 묻은 이불을 제공했다”고까지 주장했다.그뿐 아니다.북한은 이 노인을 ‘사회주의 승리의 화신’으로 치켜세우고 대남 비난의 전도사로 활용했다. 한 마디로 우리 정부의 선의(善意)를 악의(惡意)로 갚은 것이다. 최근 북한언론은 대대적인 장기수 환영준비가 진행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그것은 평양당국의 자유다.그러나 우리의 선의를 욕보이고‘무고한 양민을 장기수로 몰았다’는 식의 중상·비난을 해선 안된다.왜.그같은 대응이야말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천명된 화해정신을깔아 뭉갤 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대북 신뢰를 허무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아울러 북한당국도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한 남북공동선언 취지에 입각,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런 성의 표시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동인(動因)이 되고 그런동인이 축척되어야 통일의 길이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남북 화해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면 우리 노력에 북한의 성의가 보태져야한다.이 점 유념해주기를 바란다. 장수근 자유총연맹 연구실장
  • 비전향장기수 북송 어떻게…일반인과 똑같은 訪北절차 밟아

    비전향 장기수들은 어떤 절차를 거쳐 북송(北送)될까. 통일부는 지난 10일쯤 민간단체인 ‘장기수 북송 대책위’와 협의,북송 희망자 65명의 방북 신청서를 접수해 62명에게 허가서를 내주었다. 이 가운데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16명은 북송에 문제가 있었지만 지난 8·15특사 때 잔형집행면제 사면을 받아 법적인 장애는 없어졌다. 따라서 일반인과 똑같이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방북신청-방북허가-북한측의 입국허가(신변보장각서)-방북 등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8월말쯤 북한으로부터 입국허가자 명단만 오면 사실상 북송 절차가 완료되는 셈이다. 지난 7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은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절차는 ‘전례에 따른다’고 합의했다.이에 따라 이번 장기수들도 93년 3월 처음으로 북송된 이인모(李仁模) 노인의 예에 따라 사실상 북송이지만 형식은 ‘북한 방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홍환기자 stinger@
  • 남북 화해·협력 5대현안 진척도 점검

    8·15 이산가족 상봉의 흥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남북간에 극적인 ‘사건’들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9·10월에 예정돼 있는 큰 이벤트만 해도 6∼7건에 이른다.이들 행사들을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상봉 정례화,비전향장기수 송환,조총련 동포 조국방문,경의선 복구 등 경협,문화·예술·관광교류 등 5개 분야로 나눠 살펴본다. ◆이산가족 상봉.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를 앞으로는 1회적인 만남보다는 면회소 설치등 제도화에 목표를 두고 추진키로 했다. 다음달 2일쯤 열릴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우리측은 면회소 설치 장소 및 시기,면회소 운영방안 등을 북측과 협의,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면회소 장소와 관련,정부는 일단 판문점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쉽게 오갈 수 있는 위치이고 이미 어느 정도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점에서 무난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금강산 등 이북 지역을 선호하는 북측을 어떻게 설득하고,동의를 얻어낼 지가 관건이다.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20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철원’지역을 면회소 후보지로 거론한 것은 우리측 고민의 일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정부는 북한이 관광특구 지정을 거론한 개성도 후보지로 검토중이다. 정부는 면회소에서 상봉 뿐 아니라 서신교환,통화 등도 가능하도록할 계획이다.왕래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가족과 혈육의 정을 이어갈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 방법이다.하지만 정부는 이산가족문제를 너무 급진적으로 밀고나가다가는 북측의 수용능력에 부담을줘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속도조절에도 신경을 쓰기로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비전향 장기수. 정부는 북한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 북송문제가 원만히 해결돼야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가 제대로 풀릴 수 것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9월초로 예정된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가급적 북측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줄 때 확실히 줘야 받을 때 확실히 받아낼 수 있다는 논리다.정부가 북송을 원하는 비전향장기수를 전부(62명) 보내기로 한 것도 이같은 방침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산 상봉확대등에 대해 북측의 약속을 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비전향장기수를 모두 송환해야 한다는 데 정부의 부담이 있다. 특히 납북자·국군포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데,남파간첩은 열렬한환영 속에 평양으로 돌아가는 불균형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지도 고민거리다. 더욱이 북한은 지난 15일 내친 김에 이번 북송 때 장기수들의 가족동반 문제까지 제기해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정부는 이번에는 가족 동반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지만 가급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북측을 설득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한편 장기수 송환은 판문점 육로 또는 항공로를 이용키로 적십자회담에서 합의했었지만 항공편이 유력하다.그밖의 세부절차는 93년 비전향장기수 송환 1호인 이인모(李仁模)씨의 전례를 따를 예정이다. 김상연기자. ◆조총련동포 방문. 이달 안에 이뤄지는 조총련 해외동포 방문단의 고향방문도 민족 화해를 위한 구체화 조치의 하나다.그동안 전향서 등 각종 복잡한 조치를 필요로 했던 조총련의 방문을 사실상 개방,해외동포들이 이념에상관없이 누구든지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번 방문단은 대략 100여명 정도로 구성되며 이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내려가 성묘를 할 수 있게 된다.조총련 서만술(徐万述) 제1부의장은 지난 1일 “역사적인 남북 공동선언으로 빠른 시일 안에 고향방문이 실현될 것을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현재 민간단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조총련 동포의 고향방문을 정부 주도로 추진할 방침이다.따라서 75년 9월 해외동포 모국방문후원회가 시작한 ‘고국방문사업’과는 별개로 고향방문이 추진된다. 정부는 그러나 친북 단체인 ‘재중(在中) 조선인총연합회’의 고향방문은 추후에 논의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당분간은 일본 조총련에한해 고향방문이 이뤄지게 된다. 재일 조총련 동포는 25만명 정도로 거의 대부분이 남한 출신.이번고향방문에는 1∼2세대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석우기자. ◆경제협력. 남북을 잇는 경의선 복원공사의 착공식이 다가오면서 남북경협이 탄력을 받게 됐다. 경의선이 복원되면 현재 남북간 물자교류의 60%를 차지하는 해상수송이 육상으로 가능해져 물류비용 절감효과가 커진다.특히 해상로를이용해 원·부자재와 생산품을 운반할 경우 10일 이상 걸리지만 육로는 5일 이내로 줄어든다. 또 경의선은 중국횡단철도(TCR),시베리아횡단철도(TSR),몽골횡단철도(TMGR)와 연계돼 한반도가 동북아의 교통·물류 중심지로 급부상하는 ‘철(鐵)의 실크로드’시대를 열 전망이다. 따라서 철도복원을 계기로 과중한 물류비용 때문에 북한에서의 사업을 망설여왔던 기업들의 대북 진출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아울러 경의선을 따라 문산∼개성으로 이어지는 4차선 규모의 육로건설도 추진되고 있어 이 공사는 물론,북한 사회간접자본시설에 참여하기 위한 건설업체의 물밑 경쟁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경의선과 새 도로가 건설되면 현대가 개성지역에 추진하는 2,000만평의 서해안공단 조성사업도 한층 쉬워진다.장기적으로는 관광 등 인적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남북교류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류찬희기자 chani@. ◆문화분야. 문화분야는 이산가족 상봉으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무엇보다 북쪽의 이산가족이 돌아간 지난 18일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울에 온 것은 남북화합의 분위기를 잇는데 결정적 역할을하고 있다.나아가 이번 합동 연주회는 남쪽 교향악단의 북한방문공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하고,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에서 다시 확인한 백두산·한라산의 남북 교차관광 역시 이산가족 상봉에 못지않은이벤트가 될 것이다.금강산 관광이 남쪽 인사들만의 일방통행인데다,그것도 제한된 방북이었다면 교차관광은 남북관광 교류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남쪽을 방문한 북쪽 이산가족의 상당수가 문화예술계 인사였다는 것은 앞으로 교류의 문호를 넓히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무산됐지만 북한의 인민화가 정창모씨의 전시회가 추진되고,‘계관인 노력영웅시인’ 오영재씨의 시가 남쪽 언론에 실리는 등 반향을 얻은 데다,북한방문단 대표인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이 우리쪽김광욱 천도교 중앙총무 교령과 만난 것 등은 이산가족 상봉이 문화·예술·종교의 남북교류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음을 시사한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서동철기자 dcsuh@
  • [외언내언] 비전향 장기수와 이산가족

    북한은 15일‘비전향 장기수 구원대책 조선위원회’ 성명을 통해 올해 안에 비전향 장기수들을 무조건 송환하라고 우리 정부에 거듭 촉구했다.이 성명에서 장재언(張在彦)북한적십자회 위원장은 지난 3일 정원식(鄭元植)대한적십자사 총재 앞으로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비난하며 이같이 촉구했다.특히 북한은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인도주의 문제로 부각시키면서 남한 당국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까지 하고 있다.북한이 인도주의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요구하는 것은 이율배반의 모순과 허구성을 드러냈다고 보아 마땅하다. 북한이 이산가족문제는 정치적 문제라며 해결을 거부하면서 비전향 장기수문제는 인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본말을 전도시킨 모순을 드러낸것이다.이산가족문제는 남북간의 정치문제만 해결되면 당연히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비전향 장기수를 인도적 측면에서 송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이산가족의 고통은 분단과 6·25전쟁으로 만들어진 민족적 비극이라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는 남북이 시급히 해결해야할 책무이며 당면과제다.엄밀하게 따지면 비전향 장기수 문제야말로 명백한 정치문제에 속한다.이들이 남한 정부를 파괴하고 전복하려 했던 실정법 위반의 범법자들이기 때문이다.더욱이 이인모(李仁模)씨 북송의 경우에서 보듯이북한은 비전향 장기수를 통일영웅으로 미화 선전했으며 대내 정치 수단으로이용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해 비전향 장기수 17명에 대한 3·1절 특별사면을 단행했다.정부가 비전향 장기수에대한 전향적 조치를 취한 것은 반세기 동안 형성된 대결 구도와 냉전적 이데올로기를 청산하기 위한 획기적 조치였다.민족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또 이들에 대한 인도적 조치를취함으로써 이산가족문제를 함께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도 포함돼있다.비전향 장기수 북송문제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산가족문제 해결 차원에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은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요구하기에 앞서 말그대로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성의를 보여야 한다.북한이 진정한 인도주의를 실현코자 한다면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과 상봉을 연계시켜서라도 하루속히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해결해주기 바란다.그것이 바로 남북한의 신뢰회복과 화해·협력을 위한 선결조치라는 점에서 북한의 성의 있는 자세 변화가 요구된다. 張淸洙 논설위원 csj@
  • [대한포럼] 미전향 장기수 사면과 후속과제/장청수 논설위원

    정부는 金大中대통령 취임1주년을 기해 3·1절 특별사면·복권대상자 8,81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이번 사면대상자 가운데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지난 58년부터 41년째 복역중인 우용각(71)씨 등 미전향 장기수 20명 중 17명도 포함돼 있다.이들에 대해서는 준법서약서 제출과 상관없이 잔형면제로 석방되며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북한으로 돌려보내지는 특단의 방안도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정부의 이번 미전향 장기수 사면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간 대결구도로 형성됐던 냉전적 이데올로기 청산을 위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획기적 조치로 평가된다.프랑스 르몽드지(紙)가 미전향 장기수 석방은 한국에서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게 된이것라며 파격적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전향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동안 한국인권문제의 사각(死角)으로 비유됐던 현안쟁점의 해소라는 상징성도 크다.그러나 정부의 이번 미전향 장기수 사면 의미는 무엇보다 남북한의 신뢰와 화해·협력을 위한 인도적 측면의 선결조치라는 점에서 당위성과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민족공동체 회복을 통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의 실천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북한이 그동안‘남한 미전향 장기수 구원대책기구’를 설치하고 이들의 송환을 요구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면조치는 남북관계 개선의 긍정적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미전향 장기수 사면이 갖는 이같은 역사성에 비추어 볼 때 정부의 효율적인 후속조처가 요청된다.첫째,미전향 장기수사후처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이다.朴相千법무장관의 북송검토 표명이후 국민적 여론은 긍정과 우려로 나뉘는 느낌이다.일부에서는 정부의 조치가 인도적 측면에서 선택된 만큼 조건없이 보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일방적인 북송은 이인모씨의 경우처럼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국군포로나 납북어부 석방 등의 상응조치를 받아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같은 의견에는 나름대로 명분과 이유가 분명하다.미전향 장기수의 경우대부분 고령인데다 국내에 아무런 연고자나 생계수단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이들을 북송하는 인도적 조치도 바람직하다.그러나 북한이 이들을 통일영웅으로 미화 선전하고 폐쇄사회의 통제성을 강화하는 정치수단으로 이용할 경우 심대한 부작용이 초래될 것이 자명하다. 이같은 결과를 감안해서 정부는 상호주의원칙에 의거,인도적 차원의 명분과 남북관계개선의 실리도 함께 추구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둘째,미전향 장기수 문제도 인도적 측면에서 이산가족문제와 연계하는 방안이효과적이라는 점이다.미전향 장기수 북송문제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산가족문제 해결차원에서 전향적으로 검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 대북포용정책의 일차적 목표가 이산가족문제에 귀결되는 만큼 북한이요구해온 미전향 장기수 석방을 이산가족문제 해결과 연계시켜 추진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이산가족 뿐만 아니라 6·25 이후 강제 납북된 429명 인사들의 귀환문제도 인도적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미전향 장기수 북송과 이산가족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은 북한의 태도가 중대한 변수가 되는 만큼 정부는 일관성 있는대북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바람직하다.이와 함께 이번 미전향 장기수 사면은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대화분위기를 한층 성숙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csj@)
  • 남북관계 수면위로 떠오른 ‘장기수 北送’/남북대화 불씨 살릴까

    남북관계의 잠복변수였던 미전향장기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우리측의 3·1절 특사 방침 발표가 계기가 됐다.북측이 기다렸다는 듯이 전원송환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요구 자체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기회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전화통지문 또는 편지로 쟁점화해왔다. 그러나 23일 적십자연락관접촉을 통한 북측 편지는 과거와 좀 달랐다.미전향장기수들의 북송을 남북관계 개선과 연계시키려는 제스처가 그것이다.즉“북남관계를 풀고 폭넓은 대화와 접촉의 문을 열어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문민정부는 출범 직후인 93년 3월 이인모노인을 조건없이 송환했었다.그러나 북한이 이산가족 해결 등으로 화답하기는 커녕 체제선전에 악용하는 통에 씁쓸한 경험을 해야 했다. 때문에 새정부는 신중한 자세다.유일체제인 북한과 달리 우리측은 복잡다기한 여론을 감안해야 하는 까닭이다.북측이 ‘상호주의’원칙에 따라 국군포로 등과 맞교환에 응해준다면 우리측으로선 운신이 쉽다.그러나 이를간접타진했으나 북측 반응은 아직 냉담하다. 우리는 이들을 미전향 장기수 내지 공안사범으로 부르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광의의 이산가족 사업 범주에 포함시켜 왔다.반면 북측은 비(非)전향 장기수로 지칭하며 그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맞불용으로 활용해 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측의 제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기류다.여론을짚어보면서 대화의 불씨를 살리는 계기로 삼으려는 복안인 듯하다.장기수문제를 동진호 선원 등 납북자문제와 함께 논의의 테이블에 올렸으면 하는 게우리측의 희망이다. 具本永 kby7@
  • [사설]특별사면의 특별한 의미

    정부는 새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특별사면을 단행키로 하고 사면·복권대상자 8,81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이번 특사로 전국 교도소에서 모두 1,508명이 형집행정지·가석방 등으로 25일 풀려나게 된다.이번 특별사면·복권은 온 국민의 참여 속에 경제회생과 국민대화합을 다짐하고 대북(對北) 자신감을 대내외에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본의 아니게 범죄자가 된 중소기업인 1,840명이 형선고 실효 및 복권조치로 경제활동의 제약에서 풀려나고 벌금형을 받고도 실직 등으로 벌금을 완납하지 못한 2,600여명이 미납분을 면제받게 된다.이들은 적어도 신체적 자유를 회복한 가운데 개인적 경제활동을 재개하면서 국가경제회생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본인들은 물론 가족들을 위해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정부는 인도주의와 국민대화합의 차원에서 미전향 장기수들과 공안·노동관련 사범에 대해서도 대규모 은전을 베풀었다.이로써 96년 연세대 한청련사건 관련자 17명,노동운동가 24명이 석방됐다.또한 黃晳暎 徐敬元 林秀卿씨 등 밀입북 관련자와 박노해 白泰雄씨 등 사노맹사건 관련자들이 잔형면제와 함께 복권됐다.이들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이로써 우리 사회의 자산이기도 한 이들은 국가를 위해 나름대로 봉사할 수있게 됐다.이같은 사실은 우리 사회내부에 있을 수도 있는 이념적 혼란을 정부가 능히 수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혀진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것은 26년에서 4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 17명을 ‘준법서약서’를 받지 않고 석방한 사실이다.정부는 이들 미전향 장기수들이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것은 북쪽에 남아있는 가족들의안위를 우려한 것이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들을 석방한다고 밝혔다.이념과 관련해서 세계 최장기수를 갖고 있다는 불명예를 씻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다.그동안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준법서약서를 두고 ‘사상전향서’의 변형이라고 비판해왔던 게 사실이다.정부가 국내 우익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같은 결단을 내린 것은대북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굳건히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정부는 석방된 미전향 장기수들을 북한에 억류중인 국군포로나 납북자들과 교환하는 방안을 내비쳤다.이 문제와 관련,93년 이인모 노인을 일방적으로 북송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가 참고가 됐으면 한다. 사면·복권을 받은 사람들은 이번 특별사면의 큰 뜻에 걸맞게 경제회복과국민화합에 적극 동참하기 바란다.
  • “미전향 장기수 북송 ‘주고 받기’ 전제 처리”/강 통일 밝혀

    강인덕 통일부장관은 17일 “과거 정부가 이인모 노인을 북송한 것은 인도적 입장에서 무조건 보낸 것도 아니고,바겐(거래)한 것도 아닌 채 불명확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미전향 장기수의 북송은 철저하게 기브 앤 테이크(주고 받기)를 전제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일관성 결여로 잦은 혼선/문민정부 5년­통일외교

    ◎대북정책 방향 오락가락… 불협화 노출/대일 어업협상·통상문제 매듭 못풀어 문민정부 5년간의 통일·외교정책은 일관성 결여로 잦은 혼선을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또 미국,일본 등 전통 우방국들과의 관계형성에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영삼 대통령은 93년 취임사를 통해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라는 획기적인 발언으로 문민정부에서 대북정책의 큰 변화가 있음을 시사했다.이어 김대통령은 보수세력의 반대속에서도 출소공산주의자 이인모 노인을 조건없이 북으로 송환했다. 그러나 북한이 곧바로 우리측의 유화정책에 역행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로 나오자 정부는 통일·외교정책의 방향타를 놓쳐 버렸다. 대북정책이 극우와 온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취임 100일을 맞은 김대통령은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있는 상대와는 결코 악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해 이제 대북정책이 강경으로 선회했음을 선언했다.김대통령은 또 학자출신인 온건파 한완상 통일부총리와 한승주 외무장관을 각각 이영덕 부총리와 공노명 장관으로 교체했다. 문민정부는 이후에도 경수로건설,대북 식량지원 등을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불협화음을 막지 못했다.특히 95년 북한이 2천t의 쌀을 싣고가던 우리선박 ‘시 아펙스호’에 강제로 인공기를 게양토록한 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국내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이는 뒤에 정부의 식량지원정책이 지나치게 ‘비공개’로 진행돼 당시 통일원조차 국기게양에 관한 합의사항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민정부 후반들어 집중된 외교사안은 4자회담과 한일어업협정 개정문제 등이었다.사망한 김일성의 조문파동으로 남한당국과의 대화를 거부해온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김대통령은 96년 4월 미국의 클린턴대통령과 제주도 정상회담에서 4자회담을 공동제안했다. 문민정부는 4자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실제로 북한측에 식량지원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는 연계(linkage)전략을 구사했다.북한이 수락의사만 밝힌채 좀처럼 회담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국과 미국측은 김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난해말 본회담개최만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북측이 주장하던 의제문제를 덮어놓은 상황에서 ‘내용없는’ 본회담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또 한일어업문제도 문민정부 폐막 한달여를 앞둔 상황에서 김영삼 정권과 더 이상 협상을 벌이지 않겠다는 일본 정계의 보수파들에 의해 일방파기돼 양국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밖에 지난해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게된 다음에야 정부내에서 경제·통상외교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문민정부가 내건 ‘세계화’구호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그대로 드러낸 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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