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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출 악재에 연예계 ‘우울’

    2007년 1월, 연예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원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 연예계라고 하지만 불화, 사망, 자살로 잇단 악재에 모두 망연자실하고 있다. 지난 21일 가수 유니가 집에서 자살을 하면서 그 충격의 파장은 정점에 이르고 있는 느낌이다. 새해 첫 날부터 이찬·이민영 커플의 파경 원인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들 커플의 파경은 가정 폭력과 혼수 등과 관련된 사회문제로 번져가며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12월16일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되는 부상을 입은 개그맨 김형은은 결국 지난 10일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 김형은의 사망으로 개그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일이 많아 교통사고의 위험에 늘 노출돼 있는 연예계는 고인을 기리는 분위기로 가라앉았다. 또한 지난 9일에는 한 여성의 죽음이 연예계에 파장을 던졌다. 탤런트 오지호가 자살한 임 모씨와 연인관계였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16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글을 올려 추모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인터넷을 통해 두 사람의 연인 시절의 일들과 자살 이유에 대해 각종 ‘추측’이 난무하며 사생활 침범 논란으로 이어졌다. 개그맨 김형은의 사고사 여파가 채 가라앉지도 않은 상황에서 21일 가수 유니가 집에서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던졌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경찰이 공식 발표함에 따라 2년 전 고 이은주 씨의 자살이 악몽처럼 다시 떠올라 아픔을 더해주고 있다. 유니와 친했던 한 연예인은 “유니가 2집 발표 이후 각종 인터넷 루머와 악플로 많이 힘들어했고, 한동안 지인들과도 연락도 끊었을 정도였다.”며 “3집으로 컴백한다고 이야기를 들어 축하 문자 메시지까지 남겼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방송 관계자도 “아직 새해의 첫 달을 넘기지도 못했는데 왜 이리 믿기지 않을 정도의 나쁜 소식들만 가득한지 모르겠다.”면서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라며 당혹감을 나타냈다. ‘말 많고 탈 많은’ 연예계가 하루빨리 악몽에서 벗어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10대서 70대까지 “스트레스 몰라요”

    10대서 70대까지 “스트레스 몰라요”

    ‘갱 갱 갱 갯 갱∼’ 꽹과리가 나지막하게 가락을 읊조리자 장구, 북, 징이 뒤따른다. 들릴락 말락한 소리가 어느새 구민회관을 뒤흔들 정도로 커졌다. 그러다가 느려지고 다시 빨라지고…. 록그룹처럼 장단에 맞춰 머리를 흔든다. 용산구(구청장 박장규)가 지난 2일 주최한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서빙고동 사물놀이가 두고두고 화제다.2004년 2월 창단한 새내기 동아리가 첫 대회 출전에서 19팀을 꺽고 1등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서빙고동 사물놀이의 마력은 무엇일까. 서빙고동 새마을금고 이사장인 정무균(62) 단장은 “3대가 모여 사는 가족처럼 회원 18명이 어우려져 있다.”고 말했다. 구성원의 연령은 서빙초교 5학년생인 김웅길·이현호(11)군부터 채희수(72)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사물놀이에 관심있는 동네 주민들이 알음알음 모이다 이렇게 됐다. 대부분 이곳에서 30∼40년 살아온 터줏대감이라 호흡은 금세 맞췄다. 원용태(57)씨는 “가락에 흥을 더하면 세대·주민화합은 절로 된다.”고 자랑했다. 열정적인 강문임(61) 교사를 만난 것이 행운이다. 강 교사는 13년 전에 자원봉사를 하려고 사물놀이를 처음 배웠다. 가락이 좋아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장구, 태평소, 꽹과리를 배우다 전문가가 됐다. 그러다 창단하는 동네 사물놀이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무보수 강사지만 강 교사는 일주일에 두차례씩 동사무소 연습실에서 수강생을 만났다. 그 사이 초보자들은 국악기 2∼3개를 다루는 전문가로 성장했다. 연습량만큼 실력은 늘었다. 대회 출전곡인 영남가락만 1년간 연습했다.9월부터는 매일 저녁 2시간씩 장단을 맞췄다. 채 할머니는 젊은이들에게 뒤질세라 생업인 문구점의 문을 닫고 연습실로 달려왔다. 피용순(55)씨는 “가족에게 미안할 정도로 매달렸다.”고 말했다. 평택 찜질방으로 합숙훈련을 떠나 화합도 다졌다. 힘들어도 사물놀이가 좋았다. 이은주(49)씨는 “힘껏 북을 내려치다 보면 쌓인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고, 강신홍(65)씨는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니 재미있다.”고 말했다. 첫 무대는 대성공이다.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어리둥절했는데 최우수상까지 받은 것이다.“이런 반응은 상상도 못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용산구 대표로 서울시 대회에 나간다. 더 큰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나비효과(MBC 밤1시20분) 한번 퍼득인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 건너 저 편에서는 태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게 나비효과다. 언뜻 황당무계한 소리 같지만 흥미진진한 얘깃거리임은 분명하다. 특히 시간여행에서는 더 그렇다. 시간여행을 다루는 SF물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불행했던 과거를 조금씩 수정했을 때 현재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라는 소재를 반복적으로 다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80년대 초반 첫 선을 보였던 ‘터미네이터’가 이 아이디어의 한자락을 펼쳐 보였다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사건을 되돌리기 위해 과거로 되돌아가지만 희생자는 점점 더 늘어난다는 역설을 다룬 ‘레트로액티브’는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나비효과’는 독립영화의 신선한 아이디어로 꼽힌 ‘레트로액티브’를 대작상업영화로 업그레이드한 격이다. 데미 무어와 나이를 뛰어넘은 닭살 연애로 유명한 애시튼 커처가 주인공 에반역을 맡아 이전까지의 청춘 코믹물 배우라는 틀을 벗어나려 한 작품. 정신병을 앓고 있는 대학생 에반은 왜 자신의 삶이 이렇게 꼬였을까 고민하다 어릴 적 첫사랑 켈리를 둘러싼 이런저런 사건들이 원인이라고 결론짓는다. 때마침 옛 일기장에서 우연히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시간터널을 발견하게 되고, 에반은 드디어 과거를 주물러서 행복한 현재를 만드는 일에 뛰어든다. 그러나 과거를 1㎜ 바꾸면 현재는 10㎝가 바뀌어 있고, 아차 싶어 다시 과거로 뛰어들어 1㎜를 바꾸면 이번에는 현재가 1m 바뀌어 있다.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영화에 대한 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스토리나 반전구도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평이었다. 그나마 결론이 다른 감독판에 대한 평가는 후한 편이었다.2004년작,113분. ●주홍글씨(KBS2 밤12시25분) 한석규와 그를 둘러싼 엄지원·이은주·성현아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여자들이 숨기고 있던 사연들이 차차 밝혀지는 구조의 스릴러 영화다. 반듯한 부인 수현(엄지원)에다 서로에게 깊이 중독된 애인 가희(이은주)까지 있어서 남부러울 게 없는 강력계 형사 기훈(한석규)은 어느날 맡게 된 살인사건을 수사하다 피해자 부인 경희(성현아)에게 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우 이은주의 마지막 작품인데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한석규가 악역으로 나와 화제를 모았다.2004년작,118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노래하는 작은 거인, 지휘자 함신익

    노래하는 작은 거인, 지휘자 함신익

    글 정재옥 CREDIA 대표 앞에는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또 다른 100여 명의 합창 단원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내로라 하는 협연자들이, 뒤에서는 2천여 명의 관객들이 그의 손만을 지켜보고 있다. 보통 사람의 담력이라면 잠시도 견디기 힘든 그 자리에서, 지휘자 함신익은 하늘의 별만큼 많은 음표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내며, 모든 사람들을 천상으로 이끌고 있었다. 지난 1개월 간 세 차례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함신익은 국내 음악계에서는 진정 힘있는 연주가이다. 워싱톤 포스트지는 지난 1천년 중 인류사에 영향을 준 가장 중요한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았다. 대륙을 넘어 교류한 최초의 지구촌 시대를 연 주인공이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칭기즈칸으로 대표되는 유목민들은 살기 위해 항상 이동했으며, 그들의 사고는 장소 중심이 아니라 시간과 속도 중심이었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칭기즈칸의 정신을, 디지털 노마드를 이야기하는 21세기에 함신익에게서 발견한다. 23세에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시작한 그의 이력도 놀랍지만, 군 복무 후 빈손으로 찾은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역경을 딛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 만다. 길거리 오케스트라니 유니폼 입은 지휘자니 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그의 사전에 안주란 단어는 없었겠구나를 짐작케 해준다. 늘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방법과 강한 추진력으로 일을 만들어가는 그의 열정이 있기에 우리는 세계적인 지휘자뿐만 아니라 영웅부재시대에 기댈 만한 리더 한 명을 얻은 셈이다. 그이기에 그가 이끄는 대전시향이 국내 정상의 교향악단으로 평가받는 점도 별로 놀랍지 않다. 오히려 세계무대에서 더욱 빨라질 함신익의 다음 행보와 그 성취가 자못 기다려진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외무고시 수석합격 김제중씨 최종합격자 25명 발표

    중앙인사위원회는 29일 2006년 외무고등고시 최종합격자 2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수석 합격의 영예는 100점 만점에 평균 76.96점을 얻은 김제중(24)씨가 차지했다. 오승준(22)씨는 베네수엘라 참사관인 아버지 오한구씨와 함께 부자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됐다. 여성은 36%인 9명이 합격했다. 합격자는 인터넷(gosi.go.kr)으로 30일부터 7월5일까지 채용후보자등록을 해야 한다. 다음은 합격자 명단. ▲외교통상 이관승 황 원 박윤래 이준희 홍성훈 허윤정 고성민 송옥경 곽정렬 이은주 김광우 임효선 김남기 김제중 이수영 천우승 김홍수 방경원 김정연 최기천 허정미 이강준 김기현 ▲외교통상(영어능통자) 오승준 윤승서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5·31 선택] 광역의원 당선자 명단

    ■서울 종로구1|남재경|(한.45.|기타) 종로구2|나재암|(한.59.|기타) 중구1|안희성|(한.37.|기타) 중구2|최병환|(한.52.|상업) 용산구1|지용훈|(한.45.|기타) 용산구2|이종필|(한.59.|지방의원) 성동구1|이주수|(한.44.|기타) 성동구2|정승배|(한.51.|회사원) 성동구3|최홍우|(한.52.|지방의원) 성동구4|정교진|(한.39.|정치인) 광진구1|이재홍|(한.61.|기타) 광진구2|김귀환|(한.57.|기타) 광진구3|우재영|(한.60.|회사원) 광진구4|김분란|(한.60.|기타) 동대문구1|최병조|(한.63.|기타) 동대문구2|고정균|(한.37.|기타) 동대문구3|박주웅|(한.63.|지방의원) 동대문구4|김충선|(한.58.|지방의원) 중랑구1|윤기성|(한.63.|기타) 중랑구2|채봉석|(한.52.|상업) 중랑구3|민병주|(한.46.|기타) 중랑구4|김철환|(한.43.|기타) 성북구1|나주형|(한.38.|기타) 성북구2|이대일|(한.61.|지방의원) 성북구3|안훈식|(한.58.|약사) 성북구4|안희옥|(한.65.|기타) 강북구1|조천휘|(한.61.|정치인) 강북구2|신기철|(한.51.|지방의원) 강북구3|박종환|(한.58.|기타) 강북구4|김기성|(한.58.|정치인) 도봉구1|정병인|(한.55.|지방의원) 도봉구2|성무원|(한.65.|기타) 도봉구3|김영천|(한.49.|기타) 도봉구4|윤학권|(한.46.|정치인) 노원구1|조달현|(한.45.|기타) 노원구2|박환희|(한.36.|기타) 노원구3|부두완|(한.44.|지방의원) 노원구4|이상용|(한.51.|건설업) 노원구5|김철현|(한.38.|기타) 노원구6|이종은|(한.52.|기타) 은평구1|한기웅|(한.64.|기타) 은평구2|김우태|(한.51.|정치인) 은평구3|최주호|(한.41.|기타) 은평구4|임승업|(한.51.|지방의원) 서대문구1|김정재|(한.40.|기타) 서대문구2|하태종|(한.58.|지방의원) 서대문구3|송주범|(한.43.|교육자) 서대문구4|김수철|(한.36.|공무원) 마포구1|이강수|(한.45.|기타) 마포구2|최상범|(한.51.|기타) 마포구3|윤정용|(한.59.|기타) 마포구4|김혜원|(한.28.|기타) 양천구1|최명렬|(한.45.|정치인) 양천구2|최용주|(한.41.|기타) 양천구3|유관희|(한.44.|정치인) 양천구4|배상윤|(한.40.|기타) 강서구1|김기철|(한.52.|지방의원) 강서구2|이한기|(한.64.|지방의원) 강서구3|정연희|(한.49.|지방의원) 강서구4|김광헌|(한.47.|정치인) 구로구1|이병직|(한.67.|약사) 구로구2|박병구|(한.58.|정치인) 구로구3|김배영|(한.44.|지방의원) 구로구4|이우진|(한.53.|정치인) 금천구1|이종학|(한.58.|회사원) 금천구2|유재운|(한.50.|기타) 영등포구1|박찬구|(한.36.|건설업) 영등포구2|문병열|(한.48.|정치인) 영등포구3|양창호|(한.38.|정치인) 영등포구4|김영로|(한.50.|기타) 동작구1|김동훈|(한.66.|정치인) 동작구2|김황기|(한.49.|정보통신업) 동작구3|박덕경|(한.56.|정치인) 동작구4|이진식|(한.52.|정치인) 관악구1|오신환|(한.35.|상업) 관악구2|김갑용|(한.55.|지방의원) 관악구3|이남형|(한.54.|건설업) 관악구4|현진호|(한.48.|기타) 서초구1|도인수|(한.63.|기타) 서초구2|이지현|(한.30.|정치인) 서초구3|허준혁|(한.42.|정치인) 서초구4|김덕배|(한.42.|정치인) 강남구1|박홍식|(한.47.|정치인) 강남구2|김진수|(한.54.|지방의원) 강남구3|서정숙|(한.53.|약사) 강남구4|김현기|(한.50.|공무원) 송파구1|한응용|(한.62.|건설업) 송파구2|최홍규|(한.50.|건설업) 송파구3|진두생|(한.55.|지방의원) 송파구4|신영선|(한.61.|기타) 송파구5|김원태|(한.43.|기타) 송파구6|천한홍|(한.64.|기타) 강동구1|조상원|(한.61.|정치인) 강동구2|이국희|(한.51.|지방의원) 강동구3|배대열|(한.47.|상업) 강동구4|이지철|(한.48.|지방의원) ■부산 중구1|제종모|(한.59.|정치인) 중구2|구동회|(한.57.|기타) 서구1|권칠우|(한.42.|건설업) 서구2|조양환|(한.43.|지방의원) 동구1|최형욱|(한.48.|공무원) 동구2|박삼석|(한.56.|공무원) 영도구1|안성민|(한.44.|지방의원) 영도구2|김성길|(한.50.|지방의원) 부산진구1|김태문|(한.63.|기타) 부산진구2|김청룡|(한.34.|지방의원) 부산진구3|김석조|(한.59.|교육자) 부산진구4|김영욱|(한.39.|기타) 동래구1|현영희|(한.54.|지방의원) 동래구2|조길우|(한.62.|지방의원) 남구1|김신락|(한.50.|지방의원) 남구2|김선길|(한.48.|공무원) 남구3|성성경|(한.47.|기타) 남구4|이산하|(한.50.|기타) 북구1|손상용|(한.41.|기타) 북구2|천판상|(한.61.|지방의원) 북구3|배문철|(한.59.|정치인) 북구4|허태준|(한.59.|무직) 해운대구1|이동윤|(한.40.|교육자) 해운대구2|권영대|(한.42.|기타) 해운대구3|김영수|(한.49.|기타) 해운대구4|백선기|(한.58.|지방의원) 기장군1|홍성률|(한.59.|지방의원) 기장군2|김유환|(한.56.|기타) 사하구1|박홍주|(한.61.|기타) 사하구2|최대수|(한.46.|정치인) 사하구3|허동찬|(한.61.|기타) 사하구4|이상은|(한.46.|지방의원) 금정구1|백종헌|(한.43.|지방의원) 금정구2|최영남|(한.49.|금융업) 강서구1|이성두|(한.54.|농ㆍ축산업) 강서구2|조용원|(한.58.|기타) 연제구1|김성우|(한.40.|공무원) 연제구2|이해동|(한.51.|지방의원) 수영구1|강성태|(한.45.|정치인) 수영구2|유재중|(한.50.|교육자) 사상구1|송숙희|(한.47.|교육자) 사상구2|신상해|(한.49.|기타) ■대구 중구1|유규하|(한.49.|약사) 중구2|송세달|(한.43.|교육자) 동구1|이윤원|(한.61.|무직) 동구2|권기일|(한.41.|공무원) 동구3|정해용|(한.35.|공무원) 동구4|도재준|(한.55.|금융업) 서구1|김의식|(한.50.|건설업) 서구2|강황|(한.61.|지방의원) 남구1|정규용|(한.60.|정치인) 남구2|차영조|(한.59.|회사원) 북구1|장경훈|(한.60.|기타) 북구2|양명모|(한.47.|약사) 북구3|이재술|(한.45.|지방의원) 북구4|김충환|(한.44.|지방의원) 수성구1|정순천|(한.45.|기타) 수성구2|김대현|(한.35.|기타) 수성구3|김덕란|(한.45.|기타) 수성구4|이동희|(한.52.|지방의원) 달서구1|박돈규|(한.52.|기타) 달서구2|도이환|(한.48.|정치인) 달서구3|박부희|(한.45.|정치인) 달서구4|최문찬|(한.54.|지방의원) 달서구5|지용성|(한.58.|정치인) 달서구6|유병노|(한.51.|건설업) 달성군1|전성배|(한.43.|농ㆍ축산업) 달성군2|김영식|(한.48.|무직) ■인천 중구1|이병화|(한.56.|기타) 중구2|노경수|(한.56.|정치인) 동구1|허식|(한.47.|기타) 동구2|정종섭|(한.53.|정치인) 남구1|박창규|(한.59.|지방의원) 남구2|김성숙|(한.59.|지방의원) 남구3|이근학|(한.54.|정치인) 남구4|김을태|(한.58.|지방의원) 연수구1|이재호|(한.47.|상업) 연수구2|김용재|(한.39.|상업) 남동구1|신영은|(한.56.|지방의원) 남동구2|최병덕|(한.48.|지방의원) 남동구3|강석봉|(한.51.|지방의원) 남동구4|오흥철|(한.48.|상업) 부평구1|강문기|(한.38.|정치인) 부평구2|고진섭|(한.49.|금융업) 부평구3|강창규|(한.51.|지방의원) 부평구4|최종귀|(한.54.|건설업) 계양구1|이은석|(한.33.|정치인) 계양구2|조남휘|(한.54.|정치인) 계양구3|한도섭|(한.53.|운수업) 계양구4|성용기|(한.39.|기타) 서구1|문희출|(한.49.|정치인) 서구2|김용근|(한.53.|정치인) 서구3|윤지상|(한.52.|정치인) 서구4|박승희|(한.54.|정치인) 강화군1|유천호|(한.55.|상업) 강화군2|박희경|(한.52.|공무원) 옹진군1|배영민|(한.41.|건설업) 옹진군2|이상철|(한.61.|상업) ■광주 동구1|서인봉|(민.45.|기타) 동구2|손재홍|(민.46.|지방의원) 서구1|송재선|(민.48.|정치인) 서구2|김동식|(민.68.|지방의원) 서구3|김성숙|(민.51.|기타) 서구4|김월출|(민.46.|건설업) 남구1|서채원|(민.44.|기타) 남구2|나종천|(민.62.|정치인) 북구1|진선기|(민.41.|기타) 북구2|김후진|(민.58.|건설업) 북구3|이상동|(민.44.|기타) 북구4|조호권|(민.45.|회사원) 북구5|이철원|(민.47.|변호사) 광산구1|강박원|(민.69.|지방의원) 광산구2|유재신|(민.46.|약사) 광산구3|이정남|(민.49.|지방의원) ■대전 동구1|김남욱|(한.68.|기타) 동구2|오영세|(한.53.|정치인) 동구3|장문철|(한.55.|정치인) 중구1|김영관|(한.50.|정치인) 중구2|전병배|(한.53.|기타) 중구3|김태훈|(한.38.|정치인) 서구1|김재경|(한.43.|지방의원) 서구2ㅣ곽영교ㅣ(한.47.기타) 서구3|김학원|(한.52.|기타) 서구4|조신형|(한.43.|기타) 서구5|오정섭|(한.47.|정치인) 유성구1|송재용|(한.52.|지방의원) 유성구2|이상태|(한.49.|지방의원) 대덕구1|박희진|(한.43.|상업) 대덕구2|박수범|(한.45.|상업) 대덕구3|심준홍|(한.55.|기타) ■울산 중구1|이죽련|(한.46.|정치인) 중구2|김기환|(한.46.|지방의원) 중구3|김재열|(한.45.|지방의원) 남구1|윤명희|(한.57.|지방의원) 남구2|박순환|(한.50.|정치인) 남구3|서동욱|(한.43.|지방의원) 남구4|박부환|(한.53.|지방의원) 동구1|송시상|(한.59.|지방의원) 동구2|이재현|(노.47.|회사원) 동구3|이은주|(노.41.|정치인) 북구1|박천동|(한.40.|지방의원) 북구2|이방우|(한.44.|회사원) 북구3|윤종오|(노.42.|회사원) 울주군1|홍종필|(한.48.|정치인) 울주군2|천명수|(한.39.|건설업) 울주군3|김춘생|(한.54.|지방의원) ■경기 수원시1|남경순|(한.49.|정치인) 수원시2|최용길|(한.42.|회사원) 수원시3|이유병|(한.47.|상업) 수원시4|차희상|(한.52.|정치인) 수원시5|최규진|(한.44.|기타) 수원시6|한규택|(한.39.|기타) 수원시7|김인종|(한.46.|지방의원) 수원시8|이남옥|(한.46.|지방의원) 성남시1|이병열|(한.44.|건설업) 성남시2|장윤영|(한.46.|정치인) 성남시3|방영기|(한.48.|기타) 성남시4|박문수|(한.53.|상업) 성남시5|장정은|(한.38.|지방의원) 성남시6|이태순|(한.47.|지방의원) 성남시7|신계용|(한.42.|정치인) 성남시8|정재영|(한.51.|지방의원) 의정부시1|김승재|(한.53.|금융업) 의정부시2|신광식|(한.57.|정치인) 의정부시3|김남성|(한.41.|금융업) 의정부시4|윤석송|(한.50.|정치인) 안양시1|장경순|(한.45.|정치인) 안양시2|이천우|(한.41.|정치인) 안양시3|정홍자|(한.47.|지방의원) 안양시4|신보영|(한.39.|정치인) 안양시5|박광진|(한.43.|기타) 안양시6|이성환|(한.48.|정치인) 부천시1|이음재|(한.51.|정치인) 부천시2|유지훈|(한.50.|정치인) 부천시3|서영석|(한.48.|교육자) 부천시4|최환식|(한.47.|정치인) 부천시5|이재진|(한.39.|정보통신업) 부천시6|황원희|(한.58.|정치인) 부천시7|오정섭|(한.46.|기타) 부천시8|송윤원|(한.47.|기타) 광명시1|김의현|(한.52.|기타) 광명시2|백승대|(한.44.|정치인) 광명시3|전동석|(한.44.|정치인) 광명시4|최낙균|(한.49.|정치인) 평택시1|최중협|(한.54.|지방의원) 평택시2|장호철|(한.47.|지방의원) 평택시3|이주상|(한.65.|정치인) 평택시4|전진규|(한.56.|건설업) 양주시1|이항원|(한.49.|기타) 양주시2|유재원|(한.48.|기타) 동두천시1|김홍규|(한.44.|정치인) 동두천시2|박수호|(한.48.|정치인) 안산시1|김수철|(한.54.|지방의원) 안산시2|박선호|(한.52.|상업) 안산시3|이백래|(한.51.|정치인) 안산시4|김제연|(한.41.|정치인) 안산시5|이헌원|(한.54.|정치인) 안산시6|권혁조|(한.59.|기타) 안산시7|엄종국|(한.56.|지방의원) 안산시8|노영호|(한.49.|정치인) 고양시1|신득철|(한.58.|회사원) 고양시2|조선미|(한.38.|정치인) 고양시3|정문식|(한.35.|정치인) 고양시4|진종설|(한.51.|정치인) 고양시5|김현복|(한.41.|기타) 고양시6|김한명|(한.44.|기타) 고양시7|김학진|(한.31.|기타) 고양시8|김인성|(한.40.|기타) 과천시1|이해문|(한.51.|지방의원) 과천시2|한충재|(한.57.|지방의원) 의왕시1|김대원|(한.48.|정치인) 의왕시2|정경모|(한.56.|정치인) 구리시1|박호남|(한.53.|기타) 구리시2|양태흥|(한.61.|지방의원) 남양주시1|이경천|(한.51.|정치인) 남양주시2|이우창|(한.50.|정치인) 남양주시3|이인근|(한.49.|정치인) 남양주시4|이수영|(한.49.|정치인) 오산시1|박천복|(한.51.|기타) 오산시2|임찬섭|(한.44.|정치인) 화성시1|진재광|(한.40.|정치인) 화성시2|최지용|(한.51.|정치인) 시흥시1|황선희|(한.46.|기타) 시흥시2|함진규|(한.46.|지방의원) 시흥시3|임응순|(한.56.|지방의원) 시흥시4|이경영|(한.50.|교육자) 군포시1|임기석|(한.43.|정치인) 군포시2|최진학|(한.49.|정치인) 하남시1|윤완채|(한.44.|기타) 하남시2|김영환|(한.45.|정치인) 파주시1|임우영|(한.45.|기타) 파주시2|김광선|(한.53.|지방의원) 여주군1|권혁산|(한.55.|농ㆍ축산업) 여주군2|김기수|(한.39.|지방의원) 이천시1|이재혁|(한.68.|정치인) 이천시2|이종률|(한.48.|기타) 용인시1|신재춘|(한.39.|정보통신업) 용인시2|조봉희|(한.49.|기타) 용인시3|김기선|(한.52.|기타) 용인시4|조양민|(한.38.|기타) 안성시1|천동현|(한.41.|기타) 안성시2|황은성|(한.44.|지방의원) 김포시1|유영근|(한.51.|정치인) 김포시2|신광식|(한.64.|정치인) 광주시1|이건희|(한.44.|지방의원) 광주시2|강석오|(한.50.|지방의원) 포천시1|이우형|(한.48.|정치인) 포천시2|이주석|(한.57.|상업) 연천군1|박영철|(한.47.|기타) 연천군2|심진택|(한.56.|농ㆍ축산업) 양평군1|이희영|(한.48.|지방의원) 양평군2|정인영|(한.52.|지방의원) 가평군1|김영복|(한.44.|정치인) 가평군2|육도수|(한.47.|상업) ■강원 춘천시1|황철|(한.49.|회사원) 춘천시2|백선열|(한.46.|지방의원) 원주시1|김대천|(한.38.|정치인) 원주시2|이인섭|(한.42.|지방의원) 강릉시1|최재규|(한.45.|정치인) 강릉시2|박호창|(한.46.|건설업) 동해시1|이성기|(한.65.|기타) 동해시2|권순일|(한.48.|상업) 삼척시1|김양호|(한.44.|정치인) 삼척시2|박상수|(한.48.|정치인) 태백시1|심재영|(한.59.|상업) 태백시2|김연식|(한.38.|정치인) 정선군1|홍건표|(한.58.|기타) 정선군2|남경문|(한.43.|기타) 속초시1|이병선|(한.43.|지방의원) 속초시2|김시성|(한.42.|공무원) 고성군1|이강덕|(한.53.|정치인) 고성군2|서동철|(한.62.|지방의원) 양양군1|박융길|(한.61.|지방의원) 양양군2|임용식|(한.45.|상업) 인제군1|이기순|(한.52.|지방의원) 인제군2|정을권|(한.45.|지방의원) 홍천군1|이명열|(한.59.|기타) 홍천군2|김기남|(한.63.|정치인) 횡성군1|진기엽|(한.38.|정치인) 횡성군2|박명서|(한.46.|농ㆍ축산업) 영월군1|고진국|(우.53.|상업) 영월군2|권석주|(한.58.|정치인) 평창군1|이영덕|(한.60.|농ㆍ축산업) 평창군2|이준연|(한.47.|지방의원) 화천군1|장세국|(한.59.|정치인) 화천군2|정충수|(한.53.|정치인) 양구군1|이기찬|(한.35.|정치인) 양구군2|조영기|(한.45.|농ㆍ축산업) 철원군1|김동일|(무.42.|정치인) 철원군2|김영칠|(한.59.|정치인) ■충북 청주시1|오장세|(한.51.|기타) 청주시2|이대원|(한.50.|상업) 청주시3|김법기|(한.38.|기타) 청주시4|박재국|(한.65.|운수업) 청주시5|정윤숙|(한.49.|기타) 청주시6|권광택|(한.49.|기타) 충주시1|이언구|(한.51.|상업) 충주시2|심흥섭|(한.44.|정치인) 제천시1|이종호|(한.51.|기타) 제천시2|민경환|(한.42.|정치인) 단양군1|김화수|(한.47.|기타) 단양군2|이범윤|(한.67.|지방의원) 청원군1|한창동|(한.50.|지방의원) 청원군2|박종갑|(한.47.|농ㆍ축산업) 영동군1|임현|(한.62.|무직) 영동군2|조영재|(한.52.|농ㆍ축산업) 보은군1|김인수|(우.52.|상업) 보은군2|이영복|(한.55.|농ㆍ축산업) 옥천군1|이규완|(한.53.|기타) 옥천군2|박영웅|(한.44.|기타) 음성군1|이기동|(한.46.|지방의원) 음성군2|이필용|(한.44.|지방의원) 진천군1|장주식|(한.48.|지방의원) 진천군2|송은섭|(한.65.|지방의원) 괴산군1|김환동|(무.56.|상업) 괴산군2|오용식|(한.59.|농ㆍ축산업) 증평군1|최재옥|(한.51.|건설업) 증평군2|연만흠|(무.52.|상업) ■충남 천안시1|홍성현|(한.46.|교육자) 천안시2|정순평|(한.48.|정치인) 천안시3|김문규|(한.55.|기타) 천안시4|정종학|(한.51.|지방의원) 공주시1|송민구|(국.48.|정치인) 공주시2|박공규|(국.56.|정치인) 보령시1|김동일|(국.57.|정치인) 보령시2|백낙구|(한.59.|무직) 아산시1|이기철|(한.59.|상업) 아산시2|강태봉|(한.60.|정치인) 서산시1|이창배|(한.71.|정치인) 서산시2|차성남|(국.56.|정치인) 태안군1|유익환|(국.53.|농ㆍ축산업) 태안군2|강철민|(한.48.|수산업) 금산군1|김석곤|(국.54.|기타) 금산군2|유태식|(국.59.|지방의원) 연기군1|유환준|(국.60.|정치인) 연기군2|황우성|(우.55.|농ㆍ축산업) 논산시1|송덕빈|(국.60.|농ㆍ축산업) 논산시2|송영철|(국.46.|회사원) 계룡시1|김성중|(한.60.|기타) 계룡시2|조치연|(한.59.|건설업) 부여군1|홍표근|(국.52.|정치인) 부여군2|유병기|(한.56.|지방의원) 서천군1|송선규|(한.68.|기타) 서천군2|오세옥|(국.56.|상업) 홍성군1|오배근|(한.51.|기타) 홍성군2|이은태|(한.47.|지방의원) 청양군1|이정우|(국.46.|무직) 청양군2|최의환|(한.52.|기타) 예산군1|고남종|(한.50.|정치인) 예산군2|김기영|(한.52.|지방의원) 당진군1|김홍장|(우.44.|정치인) 당진군2|이종현|(한.46.|농ㆍ축산업) ■전북 전주시1|유창희|(우.45.|출판업) 전주시2|김윤덕|(우.40.|기타) 전주시3|심영배|(우.51.|교육자) 전주시4|김호서|(민.41.|지방의원) 전주시5|김성주|(우.42.|회사원) 전주시6|김희수|(우.53.|지방의원) 군산시1|김용화|(우.62.|지방의원) 군산시2|문면호|(우.55.|농ㆍ축산업) 익산시1|배승철|(민.54.|정치인) 익산시2|김병곤|(우.56.|정치인) 익산시3|황현|(민.45.|지방의원) 익산시4|김연근|(민.45.|정치인) 정읍시1|고영규|(민.49.|정치인) 정읍시2|이학수|(우.45.|정보통신업) 남원시1|이상현|(우.37.|교육자) 남원시2|하대식|(우.65.|정치인) 김제시1|최병희|(민.62.|지방의원) 김제시2|조종곤|(우.62.|상업) 완주군1|권창환|(민.55.|정치인) 완주군2|소병래|(우.41.|기타) 진안군1|김대섭|(무.59.|무직) 진안군2|이상문|(우.53.|지방의원) 무주군1|황정수|(무.51.|농ㆍ축산업) 무주군2|송병섭|(우.53.|운수업) 장수군1|장영수|(우.38.|정치인) 장수군2|김명수|(민.59.|건설업) 임실군1|김진명|(우.42.|지방의원) 임실군2|한인수|(우.49.|지방의원) 순창군1|강대희|(우.54.|기타) 순창군2|김병윤|(우.47.|지방의원) 고창군1|임동규|(민.61.|회사원) 고창군2|고석원|(민.59.|지방의원) 부안군1|권익현|(민.45.|정치인) 부안군2|김선곤|(민.57.|정치인) ■전남 목포시1|황정호|(민.43.|정치인) 목포시2|이호균|(민.44.|교육자) 여수시1|김종철|(민.51.|지방의원) 여수시2|송대수|(민.50.|정치인) 여수시3|서일용|(민.42.|정치인) 여수시4|최종선|(민.53.|지방의원) 순천시1|박흥수|(민.52.|정치인) 순천시2|이홍제|(민.58.|정치인) 나주시1|이기병|(민.49.|정치인) 나주시2|김상봉|(민.36.|기타) 광양시1|남기호|(민.48.|기타) 광양시2|김재무|(민.46.|지방의원) 담양군1|강종문|(민.45.|상업) 담양군2|송범근|(민.54.|지방의원) 장성군1|윤시석|(민.44.|정치인) 장성군2|정창옥|(민.54.|정치인) 곡성군1|조상래|(우.48.|상업) 곡성군2|정환대|(민.45.|농ㆍ축산업) 구례군1|고택윤|(우.48.|상업) 구례군2|박인환|(민.55.|지방의원) 고흥군1|이일형|(민.53.|정치인) 고흥군2|신윤식|(민.59.|정치인) 보성군1|황병순|(민.61.|정치인) 보성군2|이탁우|(민.49.|지방의원) 화순군1|구충곤|(민.47.|기타) 화순군2|홍이식|(민.48.|지방의원) 장흥군1|김창남|(민.53.|정치인) 장흥군2|이민우|(민.47.|농ㆍ축산업) 강진군1|황호용|(민.62.|정치인) 강진군2|이종헌|(민.51.|정치인) 완도군1|이부남|(민.61.|정치인) 완도군2|송주호|(민.50.|수산업) 해남군1|김석원|(민.48.|정치인) 해남군2|김병욱|(민.43.|농ㆍ축산업) 진도군1|장일|(민.49.|건설업) 진도군2|이영윤|(민.61.|정치인) 영암군1|강우원|(민.64.|정치인) 영암군2|강우석|(민.51.|농ㆍ축산업) 무안군1|김석원|(민.38.|기타) 무안군2|김철주|(민.48.|기타) 영광군1|이동권|(민.44.|정치인) 영광군2|박찬수|(민.47.|상업) 함평군1|김성호|(민.49.|지방의원) 함평군2|나병기|(민.50.|정치인) 신안군1|임흥빈|(민.45.|기타) 신안군2|강성종|(무.58.|무직) ■경북 포항시1|장세헌|(한.53.|기타) 포항시2|장두욱|(한.52.|기타) 포항시3|장경식|(한.48.|금융업) 포항시4|이상천|(한.56.|기타) 울릉군1|이상태|(한.63.|공무원) 울릉군2|정무웅|(한.65.|정치인) 경주시1|이상효|(한.55.|지방의원) 경주시2|박병훈|(한.41.|기타) 김천시1|백영학|(한.59.|정치인) 김천시2|김응규|(한.50.|지방의원) 안동시1|장대진|(한.46.|지방의원) 안동시2|정경구|(한.43.|정치인) 구미시1|백천봉|(한.49.|정치인) 구미시2|윤창욱|(한.42.|정치인) 구미시3|김영택|(한.43.|회사원) 구미시4|이용석|(한.59.|지방의원) 영주시1|김종천|(한.49.|건설업) 영주시2|손진영|(한.49.|정치인) 영천시1|한혜련|(한.54.|지방의원) 영천시2|김수용|(한.37.|상업) 상주시1|이종원|(한.59.|농ㆍ축산업) 상주시2|이재철|(한.47.|무직) 문경시1|이시하|(한.64.|상업) 문경시2|고우현|(한.56.|기타) 예천군1|이현준|(한.51.|기타) 예천군2|윤영식|(한.47.|건설업) 경산시1|이우경|(한.56.|지방의원) 경산시2|황상조|(한.46.|지방의원) 청도군1|박순열|(한.45.|기타) 청도군2|김동인|(한.54.|농ㆍ축산업) 고령군1|박영화|(한.66.|지방의원) 고령군2|나규택|(한.63.|기타) 성주군1|방대선|(한.48.|지방의원) 성주군2|박기진|(한.60.|무직) 칠곡군1|송필각|(한.56.|상업) 칠곡군2|박순범|(한.48.|공무원) 군위군1|김영만|(무.53.|운수업) 군위군2|장병익|(한.47.|농ㆍ축산업) 의성군1|김만용|(한.54.|기타) 의성군2|안순덕|(한.66.|지방의원) 청송군1|김영기|(한.58.|상업) 청송군2|남종식|(한.46.|농ㆍ축산업) 영양군1|조동만|(한.59.|상업) 영양군2|이상용|(한.46.|농ㆍ축산업) 영덕군1|김기홍|(한.43.|기타) 영덕군2|박진현|(한.46.|상업) 봉화군1|박노욱|(한.45.|농ㆍ축산업) 봉화군2|권영만|(무.47.|상업) 울진군1|전찬걸|(무.47.|기타) 울진군2|방유봉|(한.51.|지방의원) ■경남 창원시1|김상하|(한.50.|건설업) 창원시2|박차봉|(한.57.|지방의원) 창원시3|박판도|(한.52.|지방의원) 창원시4|강기윤|(한.45.|지방의원) 마산시1|강지연|(한.61.|지방의원) 마산시2|김오영|(한.51.|기타) 마산시3|황태수|(한.46.|교육자) 마산시4|이태일|(한.62.|지방의원) 진주시1|공영윤|(한.41.|정치인) 진주시2|배종량|(한.54.지방의원) 진주시3|강갑중|(한.57.|정치인) 진주시4|김진부|(한.49.|정치인) 진해시1|정판용|(한.55.|정치인) 진해시2|배종량|(한.54.|지방의원) 통영시1|김윤근|(한.46.|지방의원) 통영시2|강석주|(한.41.|정치인) 고성군1|정종수|(한.59.|무직) 고성군2|이동호|(한.43.|기타) 사천시1|김주일|(한.58.|무직) 사천시2|박동식|(한.48.|공무원) 김해시1|이유갑|(한.47.|교육자) 김해시2|허좌영|(한.52.|기타) 김해시3|신용옥|(한.49.|농ㆍ축산업) 김해시4|이규상|(한.46.|교육자) 밀양시1|이병희|(한.47.|정치인) 밀양시2|김갑|(한.57.|농ㆍ축산업) 거제시1|권민호|(한.50.|지방의원) 거제시2|김해연|(노.39.|회사원) 의령군1|김진옥|(한.54.|정치인) 의령군2|권태우|(무.56.|정치인) 함안군1|조근제|(한.53.|농ㆍ축산업) 함안군2|이방호|(한.63.|지방의원) 창녕군1|강모택|(한.46.|정치인) 창녕군2|박상제|(한.44.|정치인) 양산시1|성계관|(한.49.|상업) 양산시2|박규식|(한.55.|회사원) 하동1군|이갑재|(한.44.농·축산업) 하동군2|박영일|(한.51.|정치인) 남해군1|김영조|(한.68.|공무원) 남해군2|양기홍|(한.59.|운수업) 함양군1|임창호|(한.53.|지방의원) 함양군2|송경영|(한.58.|농ㆍ축산업) 산청군1|신종철|(한.44.|상업) 산청군2|허기도|(한.52.|기타) 거창군1|백신종|(한.53.|지방의원) 거창군2|김재휴|(한.53.|농ㆍ축산업) 합천군1|문준희|(무.46.|상업) 합천군2|김윤철|(무.41.|건설업) ■제주 제주도1|신관홍|(한.56.|건설업) 제주도2|오영훈|(우.37.|정치인) 제주도3|임문범|(한.49.|건설업) 제주도4|김수남|(무.46.|기타) 제주도5|강원철|(한.43.|지방의원) 제주도6|고동수|(한.44.|정치인) 제주도7|고봉식|(한.56.|지방의원) 제주도8|김병립|(우.52.|정치인) 제주도9|오종훈|(한.49.|금융업) 제주도10|고충홍|(한.58.|기타) 제주도11|하민철|(한.51.|기타) 제주도12|양대성|(한.66.|지방의원) 제주도13|장동훈|(한.41.|건설업) 제주도14|강문철|(한.47.|정치인) 제주도15|양승문|(한.61.|무직) 제주도16|강창식|(우.60.|지방의원) 제주도17|안동우|(노.43.|농ㆍ축산업) 제주도18|김행담|(우.59.|농ㆍ축산업) 제주도19|박명택|(한.44.|기타) 제주도20|허진영|(한.43.|지방의원) 제주도21|한기환|(한.59.|농ㆍ축산업) 제주도22|위성곤|(우.38.|기타) 제주도23|오충진|(우.49.|기타) 제주도24|김용하|(한.54.|지방의원) 제주도25|문대림|(우.40.|교육자) 제주도26|현우범|(무.55.|기타) 제주도27|한영호|(한.51.|농ㆍ축산업) 제주도28|구성지|(한.59.|농ㆍ축산업) 제주도29|김경민|(한.44.|수산업) <비례 당선자> ■서울 조규영|(우.40.|기타) 홍광식|(우.62.|기타) 하지원|(한.37.|교육자) 김인배|(한.39.|정치인) 박희성|(한.50.|정치인) 김진성|(한.67.|교육자) 나은화|(한.39.|약사) 이윤영|(한.44.|회사원) 이금라|(민.54.|정치인) 이수정|(노.34.|정치인) ■부산 하선규|(우.60.|정치인) 이영숙|(한.59.|정치인) 김주익|(한.52.|운수업) 전윤애|(한.46.|기타) 김영희|(노.43.|기타) ■대구 박정희|(우.65.|기타) 유영은|(한.58.|약사) 이경호|(한.45.|약사) ■인천 이명숙|(우.59.|정치인) 김소림|(한.46.|기타) 지정구|(한.40.|상업) ■광주 이명자|(우.55.|정치인) 조광향|(민.61.|기타) 김남일|(민.60.|교육자) ■대전 김인식|(우.48.|교육자) 이정희|(한.57.|정치인) 권형례|(국.42.|정치인) ■울산 서정희|(한.42.|기타) 김철욱|(한.52.|지방의원) 이현숙|(노.41.|정치인) ■경기 조복록|(우.53.정치인) 김형식|(우.73.|기타) 손숙미|(한.51.|교육자) 이용선|(한.45.|회사원) 김옥이|(한.58.|정치인) 임무창|(한.47.|상업) 정금란|(한.47.|지방의원) 김보연|(한.57.|교육자) 박명희|(한.51.|약사) 박덕순|(민.46.|약사) 송영주|(노.33.|기타) ■강원 최경순|(우.53.|정치인) 김동자|(한.54.|교육자) 유순임|(한.59.|기타) 최원자|(노.42.|정치인) ■충북 최미애|(우.55.|정치인) 최광옥|(한.48.|지방의원) 강태원|(한.38.|교육자) ■충남 이명례|(우.61.|정치인) 이선자|(한.62.|정치인) 황화성|(한.49.|기타) 박정희|(국.61.|정치인) ■전북 이영조|(우.65.|상업) 김동길|(우.51.|출판업) 유유순|(민.59.|무직) 오은미|(노.40.|농ㆍ축산업) ■전남 국영애|(우.45.|교육자) 박부덕|(민.63.|교육자) 양승일|(민.62.|농ㆍ축산업) 박해숙|(민.53.|정치인) 고송자|(노.57.|농ㆍ축산업) ■경북 손덕임|(우.57.|기타) 채옥주|(한.61.|정보통신업) 장길화|(한.46.|광공업) 최윤희|(한.50.|교육자) 김숙향|(노.36.|정치인) ■경남 이은지|(우.44.|약사) 임경숙|(한.61.|기타) 백승원|(한.45.회사원) 도난실|(한.45.|기타) 김미영|(노.42.|정치인) ■제주 오옥만|(우.43.|정치인) 좌남수|(우.56.|정치인) 김순효|(한.54.|정치인) 김완근|(한.49.|농ㆍ축산업) 김미자|(한.61.|농ㆍ축산업) 방문추|(민.50.|수산업) 김혜자|(노.39.|농ㆍ축산업) ●(우)열린우리당 (한)한나라당 (민)민주당 (노)민주노동당 (국)국민중심당 (미)한미준 (기)기타정당 (무)무소속 ●직업란의 기타는 기업인·자영업자·사단재단법인 이사장 등임 ●당선자는 지역 이름 정당 나이 직업순
  • ‘방과후 학교’ 이렇게 하면 성공

    ‘방과후 학교’ 이렇게 하면 성공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사교육비 경감, 교육 격차 해소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방과후 학교 활성화를 의욕적으로 추진 중이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고 일부 잡음도 들리지만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각 학교의 노력은 간단치 않다. 방과후 학교를 성공적으로 시작하고 있는 학교들을 돌아보고 그 노하우와 남은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 서울 노원 연촌초교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자리잡은 연촌초등학교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 특기 적성교육은 물론 교과학습을 적절히 반영했다. 그 결과 전교생의 60% 가까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도가 높다. 수영장과 체육관 등 다른 학교에 비해 시설이 좋은 이점을 살려 각종 특기 적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같은 서울에서도 교육 여건이 떨어지는 지역에 있지만 방과후 학교 덕분에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저렴하게 받고 있다. 부담 없는 가격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입맛에 맞게 개설됐다는 것도 연촌초 방과후 학교의 장점이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처럼 사교육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수업과 더불어 학교 밖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곳에서는 배울 수 있다.‘어린이 성장요가’ 수업을 받고 있는 5학년 박현정(10)양은 “그동안 요가를 배우고 싶어도 초등학생들이 다닐 곳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마침 수업이 개설돼 신청했다.”면서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니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더 좋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초청된 강사들의 마음가짐도 이곳에서만큼은 진지하다. 방과후 학교를 지도하고 있는 강사 윤혜진(25)씨는 “다른 곳에서도 강의를 하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공교육의 일부를 담당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더 생긴다.”라고 말했다. 이곳의 또다른 특징은 교실 4개를 개조해 만든 영어마을.15명 정도 소수 정예로 원어민 강사가 수업을 진행한다. 일반 학원에서 이같은 조건으로 교육을 받으려면 월 30만∼5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들지만 이곳에서는 교재를 포함, 월 9만원이면 된다. 때문에 인근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서 “영어 마을 때문에 이사오고 싶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스쿨 버스를 운영해 이 학교 재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6개 초등학교와 2개 중학교 학생들이 연계해서 수업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3∼6학년의 경우 수학과 같은 교과 과목도 개설돼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경기 포천여중 포천시는 교육 여건에 있어서 도시라기보다는 농촌에 가깝다. 하지만 전 교직원의 노력으로 방과후 학교가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다른 학교과 달리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시설·인력·지원 등 부족한 부분은 지역 사회와 연계해 해결하고 있다. 연극·무용·디자인 등은 인근 대진대학교와 ‘대학생 멘토링제’를 도입했다. 멘토로 활동 중인 이 학교 시각디자인과 김민정씨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포토숍과 같은 수업을 받을 수 있어 좋고 내 입장에서는 학점을 받을 수 있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말했다. 또 대입의 최대 화두인 논술 교육은 지역신문 편집국장의 도움을 받아 수업을 개설했다. 또 지난 12일에는 다른 중학교와 함께 ‘민속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비영리 단체에 위탁, 각종 스포츠 교실과 일본어 회화, 서예 등 프로그램까지 갖추고 있다. 특기·적성 교육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계발활동과 46개 동아리를 연계해 진행 중이다. 이 학교 방과후 학교를 총괄하고 있는 강현중 교사는 “아무래도 교육 환경이 서울과는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 중”이라면서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참여하는 학생들이 느는 등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진학을 앞둔 만큼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과목에 대한 교과학습 프로그램도 갖추고 있으며 3학년의 경우 심화 수업을 마련했다. 가장 인기 많은 프로그램은 원어민 회화 프로그램이다. 포천에서는 비용도 문제지만 사교육 시장에서도 원어민에게 수업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 학교에서도 원어민 강사를 구하기 힘들었을 정도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개설되자 지원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결국 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 수업을 듣고 있는 박주희(14)양은 “생생한 영어를 저렴한 가격에 배울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신소희(13)양은 “사실 여기서는 원어민을 길에서도 만나 보기 힘든데 이렇게 학교에서 수업받을 수 있어 만족한다.”고 전했다. ■ 인천여고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곳이 바로 고등학교이다. 대입을 앞두고 있어 비교과 과정보다는 교과 과정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지만 강사를 구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대학생 예비교사 제도는 학습 수준이 높은 고등학생을 지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사교육 시장의 유명 강사를 데려올 경우 비용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인천여고의 경우 참여도와 만족도 둘 중 후자에 일단 힘쓰기로 했다. 가장 수요가 많은 영어와 수학 과목은 상·중·하 수준별로 반을 편성하되 소수 정예를 원칙으로 했다. 영어 수업을 듣고 있는 서은빈(17)양은 “정규수업 시간과 달리 이해를 못하면 여러번 설명해 주신다.”면서 “교과서 위주가 아니라 수업이 딱딱하지 않아 더 좋다.”고 했다. 최혜현(17)양은 “아무래도 인원수가 적으니 거의 1:1로 수업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인천여고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수업 중 하나는 바로 논술이다.2008학년도 입시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논·구술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막상 사교육 시장에서도 뾰족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1·2학년을 대상으로 주중에 2개반, 주말에는 학년과 상관없이 1개반을 운영 중이다. 논술 수업을 받고 있는 이은주(17)양은 “논술 학원도 마땅치 않고 뭘해야 할지 몰랐는데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 “학원에서는 글쓰는 기술을 주로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주셔서 그런지 더 깊게 접근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풀어야할 과제는 방과후 학교에 있어 성공적인 출발을 보이고 있는 학교들도 입을 모아 “아직 갈길이 멀다.”고 말한다. 우선 교과영역에 있어서 강사 확보가 가장 큰 문제다. 특기 적성교육 등 비교과 영역을 담당할 강사는 비교적 인재풀이 넉넉하지만 교과영역은 그렇지 못하다. 법정 교원 수도 채우지 못하는 현실에서 방과후 학교는 기존 교사의 업무를 가중시킨다. 결국 사교육 시장을 대신한다는 원래 취지와 달리 수업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학생은 “알찬 방과후 학교 수업도 있지만 일부 수업은 정규 수업 시간과 구분이 잘 안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교육부는 학원강사 초빙제를 제시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천여고 오헌주 교사는 “일단 적은 돈만 받고 학교로 수업하러 올 수는 있겠지만 이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유치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학생들은 방과후 학교 때문에 다른 수업을 듣지 못해 고민이라고 했다. 인천여고의 한 학생은 “같은 시간에 방과후 학교를 신청하지 않은 애들은 EBS를 시청한다.”면서 “시험 문제가 거기서 많이 나오는 데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워 걱정”이라고 전했다. 학교 내 시설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남는 교실이 많은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컴퓨터실은 물론 직원 회의실까지 동원해야 하는 실정이다. 방과후 학교가 큰 도시 내에서의 학력 격차는 줄일 수 있지만 도농간의 학력 격차는 오히려 더 크게 벌려 놓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단 농어촌 등에서는 강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설사 프로그램을 개설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적어 가격을 낮추기가 쉽지 않다. 이같은 문제의 대안으로 거점학교가 제시되고 있다. 연촌초 정수원 교감은 “우선 남는 교실이 많은 학교에 시설 투자를 집중적으로 하고 인근 5∼10개 학교와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해 연계 수업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각 학교 간에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게 하면 일자리 창출까지 되니 1석2조”라고 설명했다. 열악한 여건 때문에 수업 자체에는 만족하지만 좀더 많은 시간 동안 수업을 받을 수 없다는 불만도 있다. 인천여고 함새롬(17)양은 “학원과 달리 선생님들과 토론도 하고 글쓰기도 하니 좋다.”면서 “하지만 1주일에 한번 1시간30분은 부족한 것 같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안전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방과후 학교를 진행하는 동안 안전 사고가 날 경우, 모든 책임이 학교와 교사에게 있다. 따라서 위탁교육을 위해 학교 밖을 벗어나는 경우 학생들의 안전 문제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현재는 교사가 인솔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출장비를 지출하기엔 학교 예산이 부족해 교사들이 수당없이 초과업무를 하고 있다. 포천여중 지정주 교장은 “교육부에서 이와 관련된 법안을 추진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얘기가 나온 지 이미 몇개월이 지났다.”면서 “방과후 교육 중 사고가 난다면 그 원래 취지나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똑똑한 사람들이 국악 듣고 배워 기뻐”

    올해 여든다섯된 경기민요의 명인 이은주 명창이 2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소리인생 70년을 결산하는 ‘소리연’ 공연을 갖는다.200여명이 한무대에 서는 초대형 무대다. 그래서 보통 민요공연과는 다르다.‘회심곡’은 드라마틱한 연출에 휘모리잡가 같은 빠른 곡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물론 이은주 명창이 곱게 단장하고 앉아 무대를 지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직접 나서 2시간여에 걸친 공연을 이끌 예정이다.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듯.KBS 유애리 아나운서는 올해 초 이은주 명창이 녹음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자그마한 체구 어디에다 그런 기운을 감춰뒀던지 옛날옛적 목청이 그대로 살아 있더란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이은주 명창을 서울 단성사 뒷편 자택에서 만났다. 첫인상은 역시 이런 소문에 어울릴 만했다. 눈빛은 또렷하니 맑았고, 옷매무새나 머리단장 행동거지 하나하나 모두 빈틈없이 반듯했다. 동작은 어찌나 빠른지 같이 다니면 제자들이 더 헉헉댄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래도 공연 전이라 긴장되는 모양이었다.“예전엔 몸 한 번 안아팠으니, 그냥 일사천리로 공연했지요. 그런데 이번엔 잘 될까 걱정이 되네요.” 무엇보다 고마운 건 준비하느라 고생한 제자들이다.●15세때 회초리 맞으며 국악 시작 이은주 명창은 어릴 적 우연히 접했던 국악에 홀딱 반한 경우.“어릴 적 동네에서 틀어주던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냥 뭔지도 모르게 집에서 따라 불렀죠.” 15살 때 서울에 올라가 회초리를 맞아가며 원경태 선생에게서 5년 동안 국악을 배웠다. 그러다 1939년 인천 홍명극장 국악공연에서 ‘수심가’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국악공연은 관객들이 표를 던져 1등을 뽑는, 요즘말로 하면 ‘배틀’ 형식이었다. 이때부터 각종 국악무대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그 뒤 1955년 마침내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열린 국악공연에서도 1등을 차지했다.‘이은주’라는 이름이 마침내 ‘명창’의 반열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이때를 전후해 음반도 쏟아져나왔다. 요즘으로 치면 ‘보아’나 ‘이효리’인 셈. 그러나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니 불법복제도 많았다. 이 음반들은 지금도 일본 수집가들 손에 고이 쥐어져 있다고 한다.●50년전 그 시절에도 팬레터 많이 받아 이런 이은주 명창이었기에 항상 따르는 고정팬이 있다. 대부분 50∼60년대생으로 어릴 적 들었던 ‘이은주의 소리’를 못잊어 한다. 국악치고는 꽤 비싼 가격인데 이번 공연표는 이미 매진될 정도라 한다. 그 시절에 혹시 ‘팬레터’도 받았을까.“정말 많았죠. 공연 한번 나가면 온갖 엽서와 편지가 쏟아져 들어왔어요.”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빙긋 웃는다.“노래 잘하고 얼굴 고왔으니, 몇살이냐 시집 갔느냐 뭐 그런 얘기들이었어요.”●`태평가´ 복원… 1975년 인간문화재로 그러나 5·16 쿠데타는 이 분위기를 확 바꾼다.‘구성지고 애절한 가락’은 조국근대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나마 살아남은 쪽은 판소리 같은 남도소리 정도다. 경기민요를 했음에도 이은주 명창은 그래도 많은 복을 누린 편이다.‘태평가’를 복원했고, 그렇게 까다롭다는 ‘이별가’와 ‘긴아리랑’을 잘 불러 1975년 인간문화재가 됐다.91년 KBS국악대상 공로상,93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2005년에는 국악협회가 정한 ‘10대 명인’에 꼽히기도 했다. 이보다 이은주 명창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이제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다는 점이다.“들으러 오는 사람들도, 배우러 오는 사람들도 모두 대학 나와 똑똑한 사람들이에요. 우리 때에 비하면 정말 좋아진 거죠.”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30년 봉사의 삶 ‘아름다운 중년’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 도울 겁니다. 단 한 명이라도 저를 필요로 한다면….” 자신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커피숍 여주인이 30여년에 걸쳐 버림받은 아이와 독거노인 등 36명을 돌봐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서울 하왕십리동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이은주(여)씨가 지금까지 키워낸 아이들은 무려 19명. 그동안 보살펴 온 할머니도 17명이나 된다. 자신의 친자식 5남매까지 합치면 모두 41명을 돌봐온 셈이다. 데려와 키운 아이 중 14명은 고등학교나 군을 마치고 자립해 이씨 곁을 떠났고 할머니도 8명이 세상을 떠나 지금은 14명이 이씨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씨는 커피숍 운영과 부업으로 번 돈에 손님들이 저금통에 모아준 성금을 보태 생활비와 아이들 학비, 방세를 마련해 왔다. 가게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도 할머니들 식사는 자기 손으로 마련한다. 아이들도 모두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이씨가 이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30여년 전. 혼자 사는 한 할머니를 소개받아 다방에 딸린 방에 모시면서부터다. 이후 불쌍한 아이와 노인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고 그때마다 식구로 삼았다. 어느덧 이씨의 새 식구는 30명을 훌쩍 넘어섰다. 신기하게도 봉사하는 삶을 살면서 병은 저절로 나았다. 처음엔 이씨를 극구 말리던 남편과 자녀들도 아픈 몸을 내던져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고는 든든한 후원자로 돌아섰다. 이씨는 “때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사람의 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끊을 수가 없더라고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할머니들이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인간문화재 제도가 문화재보호 막아”

    김문성(35)씨가 내민 두 개의 명함에는 각기 다른 직함이 찍혀 있다. 하나는 ‘언론중재위원회 민간언론피해상담센터 조사연구팀’, 또다른 하나는 ‘사단법인 서울소리보존회 사무국장’. 이른바 ‘투잡스’가 아니다. 서울소리보존회는 잊혀져가는 우리네 전통소리를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단체. 취지에서부터 돈 냄새와는 거리가 있다. 그는 매달 한 번씩 은평구민회관에서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된 사람들을 불러다 무료공연을 연다. 참가자들 반응은 기대이상이다. 최근 알게 모르게 국악 마니아들이 크게 늘어 CD 판매나 공연 티켓도 제법 잘 팔린단다. 특히 다음달 27일 이은주 명창의 공연은 보존회 창립 이래 첫 대규모 공연이 될 성싶다.“2시간여에 걸친 공연이 될 텐데, 아마 200명 이상이 무대에 오를 겁니다. 최근래 공연 가운데 아마 가장 스케일이 클걸요.” 9∼10월쯤 국립국악원과 함께하는 대규모 공연도 준비 중이다. 아직 아쉬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인간문화재 지정제도가 오히려 문화재 보호를 막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문화재보호법은 판소리, 잡가, 정악 하는 식으로 종목을 정해 보호토록 하고 있죠. 그런데 실제 보호방법은 종목이 아니라 전수자를 지정하는 인간문화재 방식입니다. 한 명의 인간문화재를 빼고는 다 탈락해버리는 거죠.” 단적인 예가 소리보존회 이사장인 남혜숙 선생이다. 남 선생은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명창 고 김옥심 선생의 제자인데다, 명색이 법인 이사장인데도 은평구 생활보호대상자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김옥심 선생은 인간문화재에 지정되지 못했고, 남 선생은 그런 스승을 차마 떠나지 못한 미련한(?) 제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10여년 전, 갓 입사한 김씨를 국악에 빠져들게 한 사람이 바로 김옥심 선생이다. 황학동 레코드 가게 앞에서 우연히 들었던 그 목소리 덕분에 국악을 알았고, 김옥심 같은 명창이 왜 잊혀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씨름 중이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느라 결혼자금까지 깨가며 그 밑에 묻은 돈만 해도 ‘억대’다. 마지막으로 우리 소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가장 권하는 방법은 한 부문에서 일가를 이룬 명창의 노래를 먼저 들어보는 것이란다. 훈련이 덜 됐다면 크로스오버나 퓨전풍의 음악으로 워밍업해두는 것도 좋다.“CD를 사보면 아시겠지만, 국악은 해설자료가 굉장히 두껍게 나옵니다. 어렵다거나 하는 편견을 버리세요.”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6살 어린이 경찰청장과 화상대화

    “저도 이 다음에 크면 경찰청장 아저씨처럼 멋진 경찰이 될래요.” 이택순 경찰청장이 23일 경북 영주시에 사는 박민규(6) 어린이와 화상으로 만났다. 민규는 경북경찰청에 어린이 경찰복을 입고 나와 화면 앞에서 “안녕하세요. 경찰청장님”이라고 또렷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이 청장은 민규에게 “똑똑하고 밝은 민규를 보니 어른이 되면 경찰청장이 되고도 남겠구나.”라고 용기를 북돋워 줬다. 민규는 이 청장이 보낸 모형 경찰차를 경북경찰청 직원으로부터 대신 전해받고 씩씩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오늘 만남은 민규의 어머니 이은주(32)씨가 경찰청 홈페이지를 통해 이 청장에게 민규를 만나 달라는 이메일을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민규네는 지난해 11월 충북 청주에서 경북 영주로 이사 왔다. 처음 보는 아이들과 경상도 사투리 등 새 환경이 낯설었던 민규는 부적응 행동을 보였다. 밥도 잘 안 먹고 말수도 줄었다. 커튼 뒤에 숨어 있거나 침을 흘리는 등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TV 뉴스에서 경찰청장이 연설하는 것을 본 뒤로 민규가 달라졌다. 민규가 “엄마, 저 사람 누구야.”라며 관심을 보였다.“응, 경찰청장이야.”라고 말해준 민규 엄마는 그때까지만 해도 보통 남자아이들이 갖는 호기심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기심치고는 강도가 셌다. 엄마를 졸라 경찰박물관과 경찰서를 견학하고 경찰 그림도 그리면서 소극적이고 겁 많던 성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제는 부적응 장애도 사라져 유치원에서 새 친구도 사귀고 활달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엄마 이씨는 “경찰 덕분에 민규의 부적응 장애가 나았다.”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줘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민규에게 “우리 덕분에 민규의 성격이 밝아졌다니 나도 너무 기뻐. 다음에는 화상이 아니라 진짜로 만나자.”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시사풍자 웃음무대 하늘로 옮기다

    “세상에 웃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인간이 동물에 비해 우월한 이유도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코미디계 황제’로 불리며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개그맨 김형곤이 지난 11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46세. 숨지기 하루 전 고인이 미니홈페이지에 남긴 ‘대한민국이 웃는 그날까지’란 글은 세상에 고하는 유언이 되고 말았다. 고인은 1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자양동 H헬스사우나에서 목욕을 마치고 러닝머신에서 운동을 한 뒤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을 발견한 헬스트레이너 등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고 성동소방서 119구급대가 출동했다.11시50분쯤 인근 혜민병원 응급실으로 옮겨졌을 때 고인은 이미 숨져 있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급성 심장마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에서 입상하며 데뷔한 고인은 ‘공포의 삼겹살’로 불리며 심형래, 최양락, 임하룡 등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다.KBS ‘유머1번지’ 등의 프로그램에서 정치풍자 개그를 선보였고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 등을 통해 ‘잘돼야 될 텐데∼’‘잘될 턱이 있나∼’를 유행시키는 등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연극 ‘등신과 머저리’‘여부가 있겠습니까’‘병사와 수녀’, 뮤지컬 ‘왕과 나’, 영화 ‘회장님 우리 회장님’ 등에도 출연했다.2000년에는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기도 했다. 지난해 웃음철학을 담은 에세이집 ‘김형곤의 엔돌핀코드’를 출간했으며, 오는 30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1987년 KBS코미디대상을 포함,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언 연기상, 예총예술문화상 연예부문 공로상 등을 받았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11일에 이어 고인의 명복을 비는 수많은 동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12일에는 영국에서 유학중이던 아들 도헌(13)군이 귀국, 조문객을 맞았다. 고인이 생전 함께 호흡을 맞추며 활약했던 김보화 김정렬 등이 조문한 데 이어 90년대 말 뇌경색 판정을 받아 몸 일부가 마비된 조정현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직접 빈소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된다. 고인은 1999년 3월 가톨릭대학에 시신 기증 등록을 했다. 한편 영결식은 13일 오전 7시 삼성서울병원에서 대한민국 희극인장으로 치러지며 영정과 유품은 개그맨 양종철, 탤런트 김무생, 영화배우 이은주, 가수 길은정 등이 안장된 경기 고양시 청아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부고]

    ●우종석(상호 회장)씨 별세 제홍(인하공업전문대 교수)제방(상호 상무)씨 부친상 김하원(부원대리점 대표)안경철(대우정보시스템 부장)강수일(미국 거주)최상민(SK텔링크 차장)씨 빙부상 10일 한양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2)2290-9452●배광휴(전 삼양식품 사장)씨 별세 경문(전 서울은행 차장)경록(한겨레신문 주주독자배가추진단장)씨 부친상 이병창(KBS 문화예술팀 PD)씨 빙부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2)3410-6916●엄태준(씨엔엠커뮤니케이션 전무)태일(플라스틱 대표)성희(다움 부회장)성원(장충교회 전도사)태섭(캐나다 거주)성민씨 부친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3410-6915●최명재(한국화학연구원 그룹장)명규(LS전선 전무)명세(현대해상화재)씨 부친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10시 (02)3010-2230●최원혁(헤럴드경제 편집부 기자)씨 조모상 10일 경기도 여주고려병원, 발인 12일 오전 (031)886-4495●황원종(건강보험공단)휘종 승용(한국전력공사)선순(식품의약품안전청)소행(국민연금공단)씨 부친상 권오균(한국통신)김선진(건강보험공단)씨 빙부상 10일 국립암센터, 발인 12일 오전 5시 (031)920-0301●서석기(프로야구 한화 기록원)씨 조모상 9일 속초의료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33)635-5021●진윤태(신동아화재 장기보험팀장)씨 부친상 김정균(명진개발 대표)씨 빙부상 9일 서울의료원, 발인 11일 오전 5시 (02)3430-0298●최주억(전 LG트윈스 스카우트 팀장)씨 빙부상 10일 서울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30분 (02)2072-2028●민종식(전 국세청 부가가치세과장)씨 별세 병록(학원 강사)병희(희매스학원 원장)성희(세명대 교수)씨 부친상 이은주(송림중 교사)씨 시부상 김대수(희매스학원 원장)이원수(원주 연세대 의대 교수)씨 빙부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 (02)3410-6905
  • [인사]

    ■ 통일부 ◇국장급 △장관정책보좌관 金聖培 ■ 산업자원부 ◇국장급△국제협력투자심의관 洪性禾◇과장급△총무과장 鄭晩基△대통령비서실 파견 禹泰熙 ■ 환경부 ◇ 과장급 전보 △환경평가과장 李昊重 ■ 서울시교육청(중등) ◇교장 승진 △성일중 김용숙△숭인중 천행엽△상봉중 이홍식△장안중 윤석원△전동중 김재희△신연중 이순호△연천중 김상옥△홍은중 김학천△가산중 정정웅△난곡중 김현숙△문성중 이상영△안천중 박란정△양화중 김상철△신도림중 박정숙△신상중 김영국△한천중 윤연상△효문중 권혁창△한강중 홍승직△신명중 김태식△잠실중 홍현수△명일중 박연숙△경서중 권대섭△신원중 신승우△목동중 김성렬△염경중 주윤수△역삼중 권상연△서초중 이석기△경원중 문묘순△관악중 조성집△봉원중 조준섭△장승중 이봉주△양진중 형남규△화계중 윤재성△개운중 손영진△장위중 유광수◇초빙교장 승진△녹천중 배득은◇교장 중임△경인고 최영자△공항고 송종도△독산고 김용달△선유고 이진호△월계고 김형주△인헌고 안명수△자양고 최기숙△자운고 황화성△창덕여고 엄주용△서울경영정보고 신성우△서울공고 김선명△도봉중 이병탁△태랑중 신호춘△상현중 박윤호◇교장 전직△고척고 박희송△구정고 김장기△여의도여고 김명규△영등포여고 정하배△한강전자공예고 박상춘△중화중 이영식△세일중 정회태△윤중중 허천행△상계중 정세만△송파중 김광룡△가락중 김병란△봉은중 최태수△수송중 한익섭◇교장 전보△관악고 박기환△누원고 강종식△동작고 강해선△면목고 문계철△상계고 김재환△수락고 김동안△서울체육고 임성만△세현고 김대진△신서고 한상빈△중경고 강영환△효문고 강철인△염창중 최일환△신사중 차완영◇교장 전보 유예△신목고 박화서△휘경공고 김종한△경기상고 임인홍△서운중 양은용◇교감 승진△경복고 류성우△신서고 윤동원△효문고 성덕현△서울산정교 박옥진△종로산정교 김홍식△동부교육청 안광식 임영호△서부〃 강은석 여정모△남부〃 이사인 김외순 홍정신 박진관 이영용 황선홍 양병훈 김광집△북부〃 김재균 박동훈 서상완△중부〃 이혜련△강동〃 김재위 박재수 서홍식 이완재△강서〃 김윤옥 김용철△강남〃 임성근 정용호 김원철△동작〃 김은희 최성희 배인식 권순탁 신순용 유명식△성동〃 김문식 홍재옥△성북〃 김성욱 유서영◇교감 전직△경기고 황귀연 박건호△공항고 박조현△광양고 임종근 주영림△서울여고 양덕희△수락고 전기율△상계고 김선주△여의도고 김온호△영신고 김제범△오금고 정진석△자운고 김진호△창동고 옥현종△한성과학고 윤오영△경기기계공고 이재근△강동교육청 김동성 류장전△강서교육청 김종화 윤용수△강남교육청 정정혜 남기황◇교감 전보△가락고 안희삼△불암고 이상욱△서울과학고 오두환△세현고 이철우△자양고 임재섭△덕수정산고 강동훈△용산공고 김윤태△강동교육청 원영철△성동〃 박현태△서울사대부고 정문호△서울사대부여중 복완근◇교육전문직 승진△동부교육청 이기성△교육과정정책과 김성기◇교육전문직 전직△북부교육청 유좌선△동작〃 서동목△성북〃 홍성남△강남〃 김승재△정책기획담당관 조정순△중등교육정책과 김수득△교육과정정책과 민병관 김광하△직업진로교육과 강성봉△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 최병수△과학전시관 장춘길◇교육전문직 전보ㆍ전직△평생교육국 이규석△중등교육정책과 이정곤△남부교육청 봉성근△동부〃 김태수△남부〃 김세진△중등교육정책과 이준순△교육연구정보원 이시우◇교육전문직 전직△서부교육청 민병인 홍연화 신원식△남부〃 최재일 임유원△북부〃 고래억 진명희△중부〃 권세화 장상술△북부〃 이종문△강동〃 황원기△강서〃 김광영 복영숙△성동〃 김해숙 김영아△성북〃 김원기△교육연구정보원 채홍녀△학생교육원 이의순 김종희△과학전시관 임규형◇교육전문직 전보ㆍ전직△공보담당관 윤웅호△정책기획담당관 윤민자△학교운영지원과 홍석△혁신복지담당관 김기순△중등교육정책과 김창동 경종록 박수화 김신옥 김영식 이경희 서종일△교육과정정책과 최춘옥 이원숙 이현자 신현명 홍정희 박치동 송재범 유대환 최광락△교원정책과 권혁미 정덕채△직업진로교육과 심상문△학교체육보건과 안재홍 정상현△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 김종수△동부교육청 임종룡 김병혁 이경란△서부〃 강원희△북부〃 이경희 엄종훈△중부〃 신영철△강남〃 이형복 최철순△동작〃 송의열 최승애 강성희△교육연구정보원 최승택 김응길 한미철 이정모△교육연수원 김남훈 이현숙 김재영△학생교육원 방승호 백해룡 박노근△과학전시관 우일암 정대영◇팀장△교육과정정책과 박경전△직업진로교육과 이기봉△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 홍덕표△혁신복지담당관 이대영△학생교육원 김재홍 ■ 서울시교육청(초등) ◇원장 전직△장충유치원 이복희◇원감 승진△동부교육청 곽은숙△북부〃 최미화 이선경△중부〃 고문영 김선미△성북〃 강옥자 허경숙 지분순◇원감 전보△남부교육청 박영주 최지영△북부〃 윤경희△강서〃 권미애 최봉옥◇원감 전직△성동교육청 백정희◇교육전문직 전직△서부교육청 문복진△남부〃 강경숙◇교육전문직 전보△동부교육청 전미수△서부〃 김인자△남부〃 이순이△북부〃 심재정△중부〃 김기경△강동〃 김신영△강서〃 유양욱△강남〃 이경희△동작〃 김복순△성북〃 정해남◇초빙교장△봉래초 김칠수△용산초 최용식△개화초 이정규△공진초 조영옥△남명초 박용호△등명초 김영관△본동초 윤택중△중광초 한상윤◇교장 전직△대치초 김주남△북성초 구본순△덕암초 최각경△봉화초 최경식△휘봉초 이해춘△가인초 류제천△청운초 최영운△마천초 김동연△성일초 김휘경△강신초 최진철◇교감 승진△동부교육청 한진학 경경숙 이제옥 송원희△서부교육청 이두희 이봉숙 최순옥 서병석 오옥녀 김재길 현상익 최효신△남부〃 장용근 손창대 김무선 황재기 최경보 박철수 고광덕 김순희 권순호△북부〃 노승란 이희선 김경한 고재홍 원지연△중부〃 송춘례 이은숙 조성심 한정혜△강동〃 권혁진 이화연 김혜경 문종국 문정숙 조복순 민영숙 이상국 권현희 윤복희△강서〃 조진상 장승걸 태경애 김양중 유지영 권영자 이선희 민영규 김래선 용희영 이동재 이기완 김상돈 김갑렬 심봉화△강남〃 한숙경 이성자 정해숙 박은희 조순이 고성욱△동작〃 황경임 우정아 김동일 윤봉원 김영선 주영랑 김정숙 박옥화△성동〃 이화영 신순희 김희아△성북〃 김종철 유승후 권선화 이화복 윤경동 백현흠 김재환◇교감 전보△남부교육청 이병익◇교감 전직△남부교육청 오윤심△강서〃 이상래△강남〃 김혜옥△동작〃 유선주△성동〃 김선균△성북〃 오길상◇교육전문직 승진 및 전직△교육장 서부 경상호△북부 황병렬△동작 박영순(직할기관 원장)△교육연구정보원장 홍승표△학생교육원장 정정웅△동부 학무국장 신입철△강동 〃 진장관△강서 〃 김영기△강남 〃 유희종(직할기관 부장)△교육연구정보원 김한규△본청 장학관 초등교육정책과 김동춘△북부 초등과장 송묘용△강동 〃 이미경△강남 〃 백형윤△성북 〃 이춘혜△본청 교육정책기획담당관 류연수△교수학습정보지원부장 정재성△초등교원연수부장 이광양△대천임해교육원 분원장 김원규△본청 장학관 교육과정정책과 양민종△학생보건체육과 임점택△학교운영지원과 김민균◇교육전문직 전직△감사담당관실 오명환△초등교육정책과 양금정△교원정책과 한상로△서부교육청 류덕엽△남부〃 김미정 정용훈△북부〃 허인수 성광모△강동〃 장계분△강서〃 탁현주△동작〃 장인한△교육연구정보원 박은경 김동하△교육연수원 라민호 박옥란△본청 교원정책 정병택△본청 교육정책기획 홍석주△본청 교육과정정책 홍진용△남부교육청 이재우 최치수△중부〃 송천홍△북부〃 이은주△교육연구정보원 김정규◇교감 전보△경운 염수진△광진 김춘예△정문 박종순△정민 이종호△정애 강병두 ■ 제일경제신문 △편집국장 이길응△경영지원실장 전배식(광고마케팅본부)총괄 부국장 이재준△관리팀 부장 김태환△영업팀 부장 이성목 ■ 도레이새한 ◇상무 시니어△구미사업장장 겸 제1공장장 金成大◇상무보△필름사업부문장 보좌역 카지키요 히로시(梶淸 裕)△인사담당 李寧旭△포공재판매담당 金世根◇이사△원사사업부문장 李在夏△신소재연구센터장 全海尙
  • [토요영화]

    [토요영화]

    ●주홍글씨(KBS2 밤 12시15분)데뷔작 ‘송어’부터 유작 ‘주홍글씨’까지 10년 동안 아홉 편의 영화를 남겼다. 지난 22일에는 수많은 팬들과 동료, 친구들이 모여 그녀를 기억하는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번지 점프를 하다’,‘안녕 UFO’,‘태극기 휘날리며’,‘하늘정원’,‘연애편지’ 등 그녀가 스쳐갔던 명장면들이 추모식에 온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스물 넷이라는 꽃다운 삶을 살다간 영화배우 이은주의 이야기다. 이은주는 멜로 스릴러 ‘주홍글씨’에서 격정의 사랑에 휩쓸린 재즈 가수로 나온다. 엇갈린 사랑과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에로틱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김영하의 단편소설 ‘거울에 대한 명상’과 ‘사진관 살인 사건’에서 모티프를 따왔다.‘호모 비디오쿠스’로 단편영화계의 스타로 떴던 변혁 감독이 연출했다. 세상에 두려운 게 없는 강력계 엘리트 형사 기훈(한석규)은 순종적인 아내 수현(엄지원)과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애인 가희(이은주)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그는 어느날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치정에 얽힌 사건으로 판단한 기훈은 살해된 남자의 아내 경희(성현아)를 용의자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 한편 수현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기훈은 가희와의 관계를 청산하려 하지만 가희의 매력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가희는 기훈과의 사랑이 흔들리며 절망과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고, 기훈을 둘러싼 세 여자가 안고 있는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는데….2004년작.118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콜래트럴(캐치온 오후 5시15분)‘히트’,‘알리’,‘에비에이터’,‘인사이더’ 등 남성성이 물씬 풍기는 선 굵은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마이클 만 감독이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를 기용해 택시 운전사와 살인청부업자의 하룻밤 동거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미국 개봉 당시 흥행 1위에 올랐고, 평론가 사이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특히 톰 크루즈가 냉철하고도 매력적인 악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주목받았다. 맥스(제이미 폭스)는 LA의 평범한 택시 운전사. 돈을 모아 리무진 대여업을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다. 어느날 밤 우연히 타지에서 온 빈센트(톰 크루즈)를 태우게 된다. 두 사람은 하룻밤 동안 다섯 군데를 들러 볼일을 본 뒤 새벽 6시까지 공항에 데려다달라는 전세 계약을 맺는다. 맥스는 빈센트가 말한 볼일이 청부살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는데….2004년작.120분.
  • 150살까지 살 수 있을까?/미하일 톰박 지음

    150살까지 살 수 있을까?/미하일 톰박 지음

    새해를 맞아 금연·다이어트 등 건강을 위한 야심찬 계획을 한두개 정도는 세웠을 것이다. 한달도 안돼 포기하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세계적인 대체의학자 미하일 톰박 박사가 쓴 ‘150살까지 살 수 있을까?’(이은주 옮김, 해냄 펴냄)는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겪는 건강의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건강백서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세에 육박한 지금, 잠재수명을 더 늘릴 수 있는 자연주의적 건강지침을 알려준다.“150살까지 어떻게 사나?”하며 한숨을 쉬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늙고 쇠약해진 몸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온갖 병치레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일 뿐, 자연이 인간에 부여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을까? 저자는 7년에 한번씩 평생 22번에 걸쳐 우리 몸이 새로운 에너지로 교체된다고 말한다. 에너지 교환이 제대로 이뤄지면 병들고 늙은 세포는 건강하고 새로운 세포로 재생돼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노화는 이 교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건강한 세포와 아픈 세포의 균형이 깨져 아픈 세포 쪽으로 기울어질 때 일어난다. 저자는 이같은 불균형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소홀한 척추관리▲잘못된 호흡▲부적절한 식사▲미흡한 체내위생▲행복한 삶을 누릴 능력의 부재를 꼽았다. 책에서는 이들 요인을 자연스럽게 치유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들이 제시된다. 척추가 단순히 요통이나 디스크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비만, 근육통, 두통, 피부질환까지 일으킨다는 사실, 음식과 물보다 생명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호흡의 중요성, 우리의 위장을 고려하지 않은 식단의 위험성과 건강한 섭식법에 대한 가이드, 눈에 보이는 신체외부의 청결뿐 아니라 장, 간, 신장 등 신체 내부청소를 해줘야 하는 이유, 질병과 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대처법 등 그동안 우리가 어설프게 알고 있던 의학상식을 바로잡고, 새로운 건강지식을 배워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특히 ‘우유 중독에서 벗어나라.’‘밀가루를 멀리할 수록 힘이 붙는다.’‘요추와 비만의 관계’,‘노화를 늦추는 호흡’,‘암을 일으키는 음식, 암을 막는 음식’,‘간 청소하기’ 등 잠재수명을 150살까지 늘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흥미롭다. 이와 함께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자연의 의사들’, 즉 운동과 물, 목욕, 사우나 등을 어떻게 활용하고 비만·심장마비·골다공증·치질·땀냄새·여성질환·전립선염 등 잘못된 습관이 불러오는 질병을 자연스럽게 치료하는 방법도 배워볼 만하다. 우리가 원하는 건강은 불로장생약을 먹거나 약해진 장기를 바꿔달아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건강의 15%는 부모로부터 물려받고 15%는 의술에 좌우되지만 나머지 70%는 전적으로 생활방식에 달려있다..1만 2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5·31 지방선거 누가 뛰나] 참신·도덕성 후한 점수 시민운동가 ‘태풍의 눈’

    [5·31 지방선거 누가 뛰나] 참신·도덕성 후한 점수 시민운동가 ‘태풍의 눈’

    시민단체 출신들이 올 지방선거에 대거 출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민운동을 통해 얻은 인지도와 전문지식을 지니고 있어 ‘태풍의 눈’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북지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인 최형재(42) 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전주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다.‘광주 흥사단’ 사무국장인 김전승(45)씨는 광주 북구청장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할 태세다. 인천 시민단체인 ‘민주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는 1월 중 지방자치위원회를 열어 회원 가운데 출마를 원하는 사람들을 후보로 옹립하고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은주(42) 공동대표는 “현재 3∼4명이 지방의원에 진출할 뜻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안희태(48) 인천 ‘남동시민모임’ 공동대표는 남동구 의원 출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원도에는 변지량(47) 전 ‘춘천경실련’ 사무처장이 춘천시장에 출마할 예정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제한이 따르지만 사면된다면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할 전망이다. 나창덕(56) ‘국제키비탄 태백클럽’ 운영위원장은 태백시장 출마를 위해 한나라당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조정식(50) ‘생명의 숲’ 공동대표도 무소속으로 태백시장에 출마할 뜻을 비춰 시민운동가끼리 격돌이 예상된다. 허남욱(43) 전 ‘삼척청년회의소’ 회장, 정상철(60) ‘민족통일 양양군협의회’ 회장은 각각 삼척시장과 양양군수 무소속 출마를 고려 중이다. 이들은 기성 정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참신성과 도덕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방자치제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비정치성과 객관성에 존립 기반을 두는 만큼 직접 현실정치 참여가 순수성을 훼손시킨다는 시각도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인터뷰보다 더 재미난 후일담

    100호를 맞기까지 주말판 ‘We’를 빛나게 한 수훈갑은 뭐니뭐니 해도 톱스타들. 그때그때 영화, 드라마, 가요계에서 활약이 돋보이는 스타들을 ‘We’는 참 부지런히도 만나왔다. 주말판이 생기고 근 1년 동안은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톱스타를 인터뷰해서 표지로 이끌어냈다. 분초를 쪼개 사는 스타들을 번번이 표지로 ‘모셔내기’란 간단할 수가 없는 일. 스타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이 지면 뒤에서 오고갔다. # 선한 눈망울의 과묵한 그녀, 수애 시쳇말로 연기력은 ‘끝내’주는데, 언변이 유별나게 달리는 스타도 꽤 있다.‘가족’‘나의 결혼 원정기’ 등을 거치며 연기파 신인으로 자리매김한 수애가 그랬다. 질문에 명쾌한 즉답을 돌려주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건 물론. 사슴처럼 선한 눈망울로 ‘예’‘아니오’의 단답형 대답만 돌려준 통에 인터뷰 시간이 곱빼기나 들었던 기억이 돌아보면 재미있다. # 송혜교 “죄송했어요, 독자 여러분!” 표지얼굴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끝내 불발에 그친 사례도 없지 않았다.TV드라마 ‘햇빛 쏟아지다’로 안방극장을 달구고 있던 송혜교. 촬영이 한창인 SBS 탄현스튜디오까지 찾아갔으나 방송담당 기자는 헛걸음을 해야 했다. 인터뷰 시간까지 정하고 갔으나, 웬걸? 아무리 기다려도 송혜교는 밴 차량(배우들이 타고 다니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승합차)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매니저는 “감정몰입이 안돼 배우가 난감해하니 오늘 인터뷰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답답한 말만 되풀이하고. 고스란히 하루를 공쳐버린 그날, 취재팀의 분노와 속앓이는 엄청났다. 갑자기 ‘빵구’난 지면을 땜질하느라 그날 밤 흘린 식은땀을 생각하면…. 최근 영화 ‘파랑주의보’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 들은 그녀의 때늦은 해명.“감정이 제대로 안 잡히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코디네이터도 옆에 못오게 해요, 제가. 앞뒤 따져 보질 않거든요. 변명 같지만 증거도 있어요. 메이크업 손질도 못하게 까탈을 부려서 눈썹 한쪽이 바보처럼 지워진 채 눈물장면을 찍기 일쑤예요. 잘 한번 보세요.” 배시시 눈웃음으로 덧붙인 멘트.“We 독자 여러분, 그땐 진짜진짜 죄송했습니다∼” 이쯤해서 취재팀은 귀여운 그녀와 그만 화해하기로 했다. # ‘인간성’ 들통나는 ‘We’ 밀착인터뷰 사진촬영에 인터뷰까지 2시간여의 만남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타고난 품성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인터뷰의 리듬을 타지 못해 난감한 스타가 없을 리 없다. 누구 하면 세상이 다 아는 한 남자 스타.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을 다시 기자에게 돌리는 괴팍한 버릇으로, 취재팀이 인터뷰 백지화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 박솔미 “제 내숭에 속으셨죠? 호호” 새침떼기 같은 외모의 편견을 순식간에 확 걷어내주는 스타를 대면하는 건 언제나 신선한 ‘충격’. 한가인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매너를 보인 스타로는 박솔미를 잊을 수 없다. 잠자리 날개처럼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내숭’을 떨었으나, 인터뷰 자리에선 싹 얼굴을 바꿨다.“(첫 영화 ‘바람의 전설’의)시나리오를 우연히 보고 맘에 들어 제작사로 쫓아가 막 졸랐다.”며 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한 멘트를 날리던 스타였다. 공인으로서 박수 받을 만하다 싶게 ‘친절한 그녀’들도 많았다. 김정은, 엄정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근사근함으로 기자들에게 ‘표’를 많이 챙기기로 소문난 얼굴들. # ‘보고 싶은 얼굴´ 1호 한가인 ‘보고 싶은 얼굴’이란 타이틀 아래 첫 인터뷰 대상으로 잡은 얼굴이 한가인.‘연정훈의 여자’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때. 그러니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개봉을 앞둔 2004년 1월.CF 2편, 드라마 2편쯤 조연으로 출연한 게 이력의 전부였던 당시, 그녀는 기자에게 유달리 강력히 스타예감을 안겼던 얼굴로 기억이 생생하다.“얼굴에 칼(?) 한번 대본 적 없는 100% 자연미인”이라며 집게 손가락으로 심하게 돼지코를 만들어 보이던 장난기 많은 스물두살 ‘꽃띠’였다. # 하늘에서 울리는 피아노선율, 이은주 두고두고 가슴이 짠한 만남이 있었으니, 고 이은주이다.‘안녕, 유에프오’를 개봉시킬 즈음 만났던 그녀. 배우답지 않게 유난히 낯을 많이 가리던 ‘심사숙고형’.“온갖 잡생각이 많은 A형이며, 배우가 안됐으면 피아니스트로 살았을 것”이라고 조용조용 말하던 그녀가 지금 우리곁에 있다면? 그녀의 희망대로 이제쯤 피아노 음반을 한 장쯤 내서 또 한번 지면을 장식했을지도 모르겠다. # 인어아가씨, 오후의 반란? 그러고 보면 ‘인어아가씨’ 장서희 인터뷰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첫 영화 ‘귀신이 산다’의 개봉 즈음. 본사로 찾아온 그녀는 깍쟁이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사려깊은 맏딸 같은 여유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오후 3시쯤. 한참 마감중이던 편집국이 그녀의 ‘깜짝 순회공연’으로 한바탕 시끌시끌. 총각, 유부남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카메라폰을 눌러댄 즐거운 어느 오후였다. # 김래원, 소크라테스 다 됐네~ ‘We’ 스타 인터뷰난에 두 번이나 밥상을 받은 운좋은 스타도 몇 있다. 김래원. 로맨틱 코미디 ‘어린 신부’때 어눌해서 답답했던 그가 얼마나 빠르게 성숙했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몇달 전 원톱 주연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앞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기자 왈,“웅변학원을 다녔나? 화술 많이 늘었네∼” # ‘귀하신 몸´을 낚아라! 정상에 올라갈수록 인터뷰가 까다롭게 성사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2,3주일 전 심지어는 몇달 전에 미리 인터뷰를 예약해야 하는 ‘귀하신 몸’들도 많다. 달리는 밴에서 새우잠을 자는 톱스타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인터뷰 짬을 낼 수야 없는 일. 배우라면 새 영화 개봉을 앞뒀거나, 가수라면 새 음반을 냈을 때 몸이 쪼개져라 정신없이 홍보작업에 매달린다. 그럴 때 잽싸게 그들을 낚아채(?) 커버스토리로 앉히는 게 취재팀의 역할. 촬영은 본사 5층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조막만한 얼굴을 다 가릴 만큼 큰 선글라스, 헐렁한 추리닝이나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그들의 변신은 10여분이면 끝난다. 피곤에 절어 눈동자가 풀렸다 싶지만, 잠자리 날개 옷만 갈아입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낯빛이 달라진다. 그들에겐 카메라 앵글이 다시 없는 ‘원기소’. 사진에 애착이 유별난 여배우라면 20∼30분의 촬영에 옷을 두어번쯤 바꿔 입는 것도 예사이다. 인터뷰 스타일도 언변도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공통분모를 나누는 사실 하나. 초보 배우든, 최고의 톱스타든 인터뷰장을 떠날 때 남기는 한마디는 매한가지,“자∼알 좀 써주세요, 기자님∼” 이제 결론. 그들을 긴장시키는 가장 힘센 사람은 언제나 독자 여러분이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되돌아본 정치권 2005 말… 말… 말…

    되돌아본 정치권 2005 말… 말… 말…

    임종 직전에라도 마이크만 들이대면 눈을 반짝이며 말을 한다는 정치인의 속성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치권은 2005년 한해에도 풍성한 말잔치를 벌였다. 한마디 ‘말씀’은 정국 흐름을 확 바꾸기도 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실소를 사기도, 거침없는 독설로 상대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혀’를 잘못 놀렸다가 도리어 화를 입는 ‘설화(舌禍)’도 허다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의 달인’답게 ‘후끈한’ 발언으로 뉴스를 주도했다.“정부와 여당이 비상한 사태를 맞고 있다.”며 시작한 ‘연정(聯政·연립정부)’ 관련 발언이 그랬다. 그 강도는 갈수록 거세져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용의도 있다.(7월 6일)”“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하겠다.”“2선 후퇴나 임기단축을 시작할 수 있다.(8월30일)”며 점차 진화해 나갔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스토커”라고 반박했고, 당사자로 거론된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대표가 펄쩍 뛰며 제안을 거부했다. 여당에서도 문학진 의원 등이 “대통령이 신(神)이냐.”“예스맨은 더 이상 못해먹겠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대한민국 걱정 두 가지는 태풍과 대통령” 대통령의 직선 화법도 여전했다.9월초 외국 순방 길에서는 “대한민국에 두 가지 걱정거리가 있는데, 하나는 태풍이고 하나는 대통령”이라면서 “대통령이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가니 열흘은 조용할 것”이라고 ‘자해’했다. 유전의혹 등 측근 비리가 불거졌을 때는 “밥을 먹어도 힘이 안 난다.”고 고백했다. 부인 명의로 된 대부도 땅 문제로 집중 포화를 맞은 이해찬 국무총리는 5월20일 기자간담회에서 “손학규 경기지사는 정치적으로 나보다 한참 하수”라고 말해 구설에 휘말렸다.10월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과 2004년에 이어 ‘2라운드’로 맞붙어 “쓰나미 피해 지원을 했던 다른 나라 국회의원이 (방청석에)와서 보고 계신데 (그런)질문에 답변드리는 게 창피스럽다.”고 냉소했다. 다음날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에겐 “의원들이 품위있고 사리에 맞게 질문해야지, 답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해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김영삼 정부의 불법도청팀 ‘미림팀´과 ‘X파일´ 논란도 정국 흐름을 좌우했다. 국민의 정부 때도 일부 불법 도·감청이 있었다는 국정원의 ‘양심고백’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병원신세를 졌고,‘병상정치’라는 말도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는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있고, 별일이 다 있다.”고 토로했다.‘삼성 킬러’인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불법으로 도굴돼도 문화재는 문화재”라며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자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은 두 차례 재보선에서 완패해 무력감을 드러냈다. 당에서는 ‘27대 빵’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5월말 당 워크숍에서 “대중에게 비쳐진 여당 이미지는 ‘무능 태만 혼란’”이라고 일침을 놨다. 여당 의원들도 이에 공감했지만, 지지율은 갈수록 추락해 20%대로 곤두박칠쳤다.“태풍이 올 때는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최선이다. 까불다가는 쓰나미에 다 휩쓸려간다.”고 몸을 사렸던 문희상 의장은 10월 재보선이 끝난 직후 ‘유구무언’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폭탄주 안 마셨지만 맥주잔 속 양주 마셨다” 한나라당은 연거푸 터져나온 술자리, 욕설 추태로 곤혹을 치렀다. 곽성문 의원은 골프장에서 맥주병을 던졌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감 기간에 피감기관과 술을 마신 데다 술집 여사장에게 성희롱이 담긴 욕설을 퍼부었다고 논란이 일었던 주성영 의원은 “폭탄주는 마시지 않았지만 맥주잔 속에 든 양주잔을 빼내 마신 사실은 있다.”고 해명하는 촌극을 빚었다. 박계동 의원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송파구지역협의회 출범식에서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게 축사기회를 안 준다며 맥주를 끼얹어 국회 윤리위에 제소당했다. 최근에는 임인배 의원이 사립학교법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의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여직원에게 “싸가지 없는 X” 등 욕설을 퍼부었다. 열린우리당은 “역시 많이 먹고 많이 마시는 돈 많은 정당”이라고 비아냥거렸고, 한나라당에서는 “미꾸라지 몇 마리가 연못 물 다 흐린다.”고 탄식했다. 비뚤어진 음주 문화를 바로잡겠다며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만든 ‘폭소클럽(폭탄주 소탕 클럽)’은 이후 회원들이 한두 잔씩 폭탄주를 다시 먹는 바람에 회원이 자연 감소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도 취임 직후 “신고식 하느라 폭탄주를 다섯 잔이나 먹어 박진 회장에게 죄송하다.”고 고해성사했다. 와중에 ‘조용히 폭탄주 마시는 모임’인 ‘조폭클럽’도 생겨났다. 국회 행자위원회 의원들이 국감을 끝내고 저녁을 먹다가 발족했다. 엉터리 자료로 망신을 산 의원도 있다.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은 충청북도 국감에 앞서 ‘이원종 충북지사가 안기부 도청 X파일과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의 질의자료를 배포했다가 부랴부랴 자료를 회수했다. 이 지사를 김영삼 대통령 때의 이원종 정무수석과 혼동한 해프닝을 벌인 홍 의원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으니 제발 잊어달라.”고 읍소했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10월초 ‘이해찬 국무총리가 1가구 2주택자’라고 밝혔지만, 이 총리는 이미 한 채 팔아버린 뒤였다. 총리는 발끈했고, 이 의원은 “집계상 실수였다.”고 사과해야 했다. 단식도 유독 많았다.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원내대표실에서 단식에 들어가 13일을 굶었다. 뒤늦게 심재철 의원이 5일 동안 단식했고, 안상수 의원은 “의원이 돌아가며 1일씩 단식하자.”며 숟가락을 얹었다. 쌀 협상 비준동의안 처리를 앞두고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무려 29일 동안 44㎏이나 살이 빠지면서도 일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농촌을 살리자.”며 눈물을 보였다. 행정중심도시법에 대한 위헌심판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임박해지자, 해당 지역구인 무소속 정진석 의원은 “합헌 결정이 나기 전에는 햇볕을 볼 수 없다.”며 의원회관 사무실에 들어앉아 열흘간 곡기를 끊었다. 여당의 선병렬·양승조 의원도 9일 동안 회관 1층 로비에서 ‘노숙’하며 단식했다. 한나라당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세운 전여옥 의원은 “차기 대통령은 대졸자여야 한다.”고 말했다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열린우리당의 전병헌 대변인은 취재진에 e메일을 보내 “(헷갈릴 수 있으니)‘전 대변인’ 약칭 대신 양쪽 대변인 이름을 모두 표기해달라.”고 잽싸게 요청했다. 차기 대권후보군의 말도 화제를 모았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을 접한 뒤 미니홈피에 추모글을 올려 “호스피스의 홍보대사였던 그가 막상 자신의 스트레스와 좌절감, 외로움을 들어줄 친구를 찾지 못했나보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모친을 여읜 직후 어버이날을 맞아 미니홈피에 애절한 사모곡을 올렸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공주’라는 별칭을 붙인 것을 가리켜 “전자공학 전공한 공주 본 적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동안 박 대표를 ‘수첩공주’라고 말해온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은 “봤다. 일본에는 전자공학 전공한 공주가 있다.”고 응수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솔직히 노무현과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느냐 하면 노무현”이라고 말했다가 발끈한 ‘창(昌)’에게 공개 사과했다. 손학규 경기지사는 “‘경포대’라는 신조어는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가, 강원도의 거센 반발과 함께 열린우리당으로부터 “경기도가 포기한 대통령 후보”라는 핀잔을 들었다. ●“국회의장 모가지 뽑아놓든지…” 발언 면박당해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부 언론인과 학자가 친미파”라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아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국회의장 모가지를 잡아 뽑아놓든지….”라고 했다가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달라.”고 면박당했다.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은 한마디 말로 단연 스타가 됐다. 쌀 협상 비준안을 처리할 때 본회의장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몸으로 막자,“제 자신이 닭보다 더 험한 발을 가진 농부의 아들”이라며 마이크도 없이 찬성토론을 벌여 비준안 처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당 ‘구원투수’ 정세균 의장은 최근 당·정·청 워크숍에서 “수구 우파가 다음에 집권한다면 역사의 후퇴이며 재앙”이라고 말했다가 한나라당의 역공을 맞았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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