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육사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비위생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순자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영접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800만 화소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7
  • 광복회, 추미애에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수여키로…다른 단체 반발

    광복회, 추미애에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수여키로…다른 단체 반발

    “법무장관 재임 중 친일재산 국가귀속 노력 인정”최재형사업회 “광복회장 정치활동…불필요한 혼란” 독립운동가 후손 단체이자 김원운 회장이 이끄는 광복회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독립운동가 이름을 딴 상을 수여하기로 하면서 해당 독립운동가 관련 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광복회는 25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독립운동가 최재형 상’ 시상식을 연다. 광복회는 지난 22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 받은 이해승의 친일재산 등 총 171필지 공시지가 520억 원(시가 3000억원)에 대해 (추미애 장관 재임기간 법무부의) 국가귀속 노력이 인정된다”고 수상자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광복회에 따르면 추미애 장관은 직접 시상식에 참여해 수상할 예정이다.고 최재형(1860~1920) 선생은 러시아 한인사회 독립운동의 대부로 재산 대부분을 항일 투쟁 지원에 쓴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지원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광복회는 지난해 고인의 이런 정신을 기린다는 취지에서 ‘최재형 상’을 만들어 같은 해 5월 첫 수상자로 고 김상현 의원을, 12월에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처장에게 각각 수여했다. 이후 한 달 만에 추미애 장관을 세 번째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식에 사단법인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는 입장문을 내고 “‘최재형상’을 후손과 본 사업회 승인없이 수여한다는 것은 최재형 선생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이미 자신들이 ‘최재형 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복회가 별도로 협의도 없이 상을 만들고, 특정 정치권 인사 등에게 상을 줘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고 독립운동 정신도 퇴색시키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사업회는 “여야를 초월해 국민적 존경을 받는 최재형 선생의 이름을 빌려 상을 수여하는 것은 광복회 정관에 금지된 정치활동”이라며 “김원웅 광복회장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광복회 관계자는 “최재형 상 뿐만 아니라 ‘단재 신채호 상’, ‘이육사 상’ 등을 만들어 독립운동가들을 더 잘 알리고 선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엄정하게 내부 심사 기준에 의해 시상하고 있으며 남발이나 어떤 정치적 목적을 노리고 수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윤석열 징계에 野 연일 비판…김종인 “법치 셧다운”·주호영 “광기의 절정”

    윤석열 징계에 野 연일 비판…김종인 “법치 셧다운”·주호영 “광기의 절정”

    국민의힘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에 대해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법치는 ‘셧다운’되고 민주주의는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법치와 민주주의 파괴 등 국정 비정상의 중심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있다는 게 국민들의 공통적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나면 법치와 민주적 절차를 철저히 무시하는 특유의 일탈된 집단사고를 통해 법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질됐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라고도 덧붙였다.같은 회의에서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지난 정권에서 윤 총장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사실을 이야기하며 “당시 (현재 여권이) 인면수심의 정권이라 불렀는데 이 정권은 무어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주 원내대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축하한다. 망나니 역할을 아주 충실히 잘 수행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축하한다. 거룩하게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압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육사의 시 ‘절정’과 정호승의 시 ‘산산조각’을 올린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주 원내대표는 “두 시인의 고결한 시심을 훼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갖다 붙인 것은 너무 심했다”며 “광기는 이 정권의 절정이고 산산조각은 대한민국 법치주의와 추미애의 인격”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부의 방역 실패 책임을 묻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제가 지난 3월에는 자영업 대책, 8월에는 백신 준비, 9월에는 전 국민 자가진단키트, 10월에는 의료인 수급 문제를 얘기했지만 12월 해결된 건 단 하나도 없다”면서 “우리가 자랑하던 K-방역이 신기루 아니었다 싶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백신이나 지원금 스케줄을 내년 재보선에 맞췄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무능을 감추려는 정치 과잉이 계속되면 K-방역이 자칫 ‘킬방역’이 될 수 있음을 강력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17시간만 윤석열 정직 2개월’에 금태섭 “비겁, 배짱도 없어”(종합)

    ‘17시간만 윤석열 정직 2개월’에 금태섭 “비겁, 배짱도 없어”(종합)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17시간30분에 걸친 밤샘 심의 끝에 정직 2개월을 결정했다. 15일 오전 10시34분부터 2차 심의를 시작한 징계위는 16일 오전 4시쯤 심의를 종료하고 윤 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징계위원으로는 정한중(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위원장 직무대리, 안진 전남대 로스쿨 교수, 이용구 법무부 차관,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4명이 출석했다. 윤 총장 측에서는 특별변호인으로 이완규 변호사 등 3명이 나왔다. 윤 총장 측은 2차 심의에 앞서 징계위에 정 직무대리와 신 부장에 대해 기피를 신청하고, 검사징계법 규정대로 징계위원 7명을 채워달라고 요청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징계위는 15일 오전 10시34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을 시작으로 박영진 울산지검 부장검사, 류혁 법무부 감찰관,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에 대한 증인심문을 차례로 진행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도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은 징계위가 직권으로 증인으로 채택했다가 철회해 입장을 담은 의견서만 제출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오후 2시쯤 징계위가 열리는 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 징계위가 한창 열리던 중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絶頂)’을 언급하며 “이육사의 외침!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썼다. 윤 총장 측 변호인단은 15일 저녁 증인심문이 끝난 직후 “심 국장의 진술 내용을 탄핵해야 하고, 새로운 증거 열람이 필요한 데다 증인심문에서 나온 증언들을 정리해 최종 의견 진술을 준비해야 한다”며 속행 기일을 요청했지만, 징계위는 최종 의견을 진술하라고 요구했다. 변호인들은 징계위 요구가 무리하다며 최종 의견 진술을 하지 않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징계 절차 자체가 위법하고 부당한 만큼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인심문 절차가 모두 끝나고 윤 총장 측 변호인이 돌아간 뒤 징계위는 1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윤 총장의 징계 수위를 두고 밤샘 토론을 벌였다. 토론이 장시간 이어진 건 법무부가 청구한 징계사유의 인정 여부 등을 놓고 위원들 간에 이견을 좁히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한중 징계위원장 직무대리는 징계위가 끝난 뒤 “해임부터 정직 4월·6월 등 여러 의견이 많았다”면서 “합의가 안 돼 토론을 계속했다”며 경위를 설명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도 “위원회가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결론내렸다. 그다음의 몫은 여러분들과 많은 분들이 평가하실 거라 생각한다”면서 “저희는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검사 출신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총장 정직 2개월에 대해 “비겁하고 무능한데 배짱도 없네, 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도대체 이렇게 망쳐놓은 걸 어떻게 복구해야 하는가, 라는 걱정이 듭니다”라고 우려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를 향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팔아먹은 대한민국 역적으로 등극한 것을 축하한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무부 징계위원들 쇼 하느라 고생많았다. 을사보호조약으로 국권을 넘겨준 을사5적도 이만큼 고생하진 않았을 것 같다”며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새벽 4시 넘어까지 벌일 필요가 뭐 있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결국 판사 사찰’ 문건이 尹 운명 갈랐다

    결국 판사 사찰’ 문건이 尹 운명 갈랐다

    15일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2차 기일에서 내려진 정직 2개월 처분은 징계위가 재판부 사찰 및 감찰 방해 등 윤 총장이 받고 있는 6가지 혐의 가운데 4가지를 인정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징계위가 이날 증인이 제출한 추가 의견서 반박을 위해 기일을 잡아달라는 윤 총장 측 요청을 거부하고 의결을 강행했다는 주장이 나와 적법성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윤 총장 측은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며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징계위는 이날 오전 10시 34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약 9시간동안 증인 심문을 마친 뒤 토론 및 심의를 거쳐 16일 오전 4시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의결했다. 출석한 징계위원은 4명으로 1차 기일 때와 동일했다. 검사징계법에 따라 징계위원의 과반 수에 해당하는 3명의 의견 중 윤 총장에게 유리한 수위로 정해졌다. 6개 징계 사유 중 핵심인 ‘판사 사찰’ 의혹에 대한 징계 수위 결정에 가장 큰 작용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윤 총장 측은 미국,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들어 법관 정보 수집 및 공개가 보편적인 행위라고 강조해왔다. 징계위 측은 우리 사법 체계를 해외 사례와 동일시할 수 없고, 무엇보다 대검에서 판사들의 공개된 정보를 넘어선 세평과 성향 등을 취합한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법관 정보 수집 건이 일부에 불과한데다 정보의 수준이 낮아 법조계에서는 범법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아 징계위 결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여기에 징계 회부 과정이나 징계위 운영 등 절차 면에서도 문제가 드러난 점은 향후 더 큰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추 장관 측이 당장은 윤 총장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을 순 있어도 향후 행정소송 등에서 징계위 결정이 유지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증인 심문은 ‘재판부 사찰 의혹’ 관련 문건 작성 책임자인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을 시작으로 총 5명에 대해 이뤄졌다. 심문을 마친 뒤 윤 총장 측은 징계위에 최종 의견 진술을 위해 “시간을 달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정한중 징계위원장(직무대리)이 처음에는 최종 진술을 내일 오후에 하자고 해서 ‘너무 촉박하다’고 얘기했고, 이후 갑자기 ‘오늘 종결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윤 총장 측은 항의 차원에서 의견 진술 기회를 포기하고 회의장을 나왔다. 징계위는 오후 7시 50분쯤 정회했다. 이 변호사는 “채널A 강요미수 사건 수사 과정에서 당시에 윤 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의견 대립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대검 실무팀에서 범죄 혐의 성립 불가 의견서를 낸 경위 등에 대한 증언들이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윤 총장 측은 추미애 장관 측 ‘핵심 증인’으로 꼽혔던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과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제출한 진술서를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손 담당관과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 등 증인들이 징계위에 총 60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지만 제출이 무산될 뻔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윤 총장 측이 재판부 분석 문건의 입수 경로를 캐묻자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편 추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과천 산책로에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육사의 시 ‘절정’을 언급하며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윤 총장은 1차 기일에 이어 이날도 징계위에 불참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尹측 최후진술 거부하고 퇴장… 징계위, 자정 넘겨 밤샘 진통

    尹측 최후진술 거부하고 퇴장… 징계위, 자정 넘겨 밤샘 진통

    15일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2차 기일에서는 윤 총장 측과 징계위 측이 증인심문을 진행하며 팽팽한 진실 공방을 벌였다. 윤 총장 측은 이날 증인들이 추가 제출한 의견서 반박을 위해 심의 기일을 속행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징계위가 이를 거부하며 충돌을 빚었다. 윤 총장 측은 “징계 절차가 위법하고 부당했다”면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고, 결과에 따른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징계위는 이날 오전 10시 34분부터 증인심문을 시작해 오후 7시 30분까지 약 9시간 동안 진행됐다. 징계위는 심문을 마친 뒤 이날 심의를 종결하겠다며 윤 총장 측에 최종 의견 진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정한중 징계위원장이 처음에는 최종 진술을 내일 오후에 하자고 해서 ‘내일은 너무 촉박하다’고 얘기하니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면서 “회의실에 다시 들어가 보니 갑자기 오늘 종결하겠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 총장 측은 추미애 장관 측 ‘핵심 증인’으로 꼽혔던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과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제출한 진술서를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면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지 않겠다”며 회의장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징계위는 이날 저녁 7시 50분쯤 정회했다. 이 변호사는 “채널A 강요미수 사건 수사 과정에서 당시에 윤 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의견 대립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대검 실무팀에서 범죄 혐의 성립 불가 의견서를 낸 경위, 중앙지검에서 실제로 검토했던 자료 등에 대한 증언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한편 윤 총장 측은 증인심문 시작 전 예고한 대로 정한중 징계위원장 직무대리와 신성식 대검 반부패부장 2명에 대해 기피신청했으나 징계위는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없다”며 이를 모두 기각했다. 윤 총장 측은 징계위 절차를 근거로 추후 행정소송 등에서 징계위의 불공정성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총장은 1차 기일에 이어 이날도 징계위에 불참했다. 증인심문은 ‘재판부 사찰 의혹’ 관련 문건 작성 책임자인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을 시작으로 총 5명에 대해 이뤄졌다. 손 담당관은 올해 초 윤 총장의 지시를 받고 법관 정보수집 문건을 작성한 수사정보정책관실 책임자다. 그는 문건 작성의 목적이 법관 사찰이 아닌 공소 유지 업무라고 주장해 왔다. 류혁 법무부 감찰관과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는 재판부 사찰 의혹에 대한 법무부 감찰 과정과 결과에 대해 윤 총장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감찰관은 윤 총장에 대한 감찰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가 보고 라인에서 제외됐다. 이 검사는 윤 총장 감찰 보고서에서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법리 검토 의견이 삭제됐다고 폭로한 실무자다. 재판부 분석 문건을 입수해 법무부에 전달했다가 다시 수사 참고자료로 되돌려 받은 한동수 감찰부장은 ‘명백한 법관 사찰’이라며 이들과 상반된 증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부장은 윤 총장의 징계 청구 사유가 된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감찰, 검언유착 의혹과도 관련이 있다. 윤 총장 측이 신청한 증인 7명 가운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출석하지 않았다. 한편 추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과천 산책로에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육사의 시 ‘절정’을 언급하며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강철 무지개” 추미애, 일제강점기 저항시로 심경표현

    “강철 무지개” 추미애, 일제강점기 저항시로 심경표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5일 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을 인용해 검찰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등에 대한 심정을 표현했다. 대표적 저항 시인으로 꼽히는 이육사의 시 ‘절정’은 일제 강점기 속 극한 상황에서도 결기를 잃지 않고 독립을 염원한다는 의지를 담은 작품이다. 추미애 장관은 ‘과천 산책로에서’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통해 “매서운 겨울바람입니다. 낙엽진 은행나무는 벌써 새 봄에 싹 틔울 때를 대비해 단단히 겨울나기를 하겠다는 각오다”라고 적었다. 추 장관은 “그저 맺어지는 열매는 없기에 연년세세 배운대로 칼바람 속에 우뚝 나란히 버티고 서서 나목의 결기를 드러내 보인다. 이육사의 외침!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라고 적은 뒤 “꺾일 수 없는 단단함으로 이겨내고 단련되어야만 그대들의 봄은 한나절 볕에 꺼지는 아지랭이가 아니라 늘 머물 수 있는 강철 무지개로 나타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절정’이 발표된 1940년은 일제의 식민 통치가 극에 달하던 암흑기다. 윤 총장 징계 청구 혐의 및 징계위 진행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와 검찰·야당은 물론 여론의 반발 등에 부딪힌 상황을 빗댄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검찰은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면서도 잘못에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물을 길 없는 성역이었다. 어떤 기관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 없다. 검찰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민주적 통제를 받으면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향촌동 르네상스 … 바흐가 흐른다

    향촌동 르네상스 … 바흐가 흐른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대구 역시 오래전엔 읍성이 있었던 도시였다. 대구읍성의 북쪽 성벽 아래, 그러니까 향촌동 일대가 지금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쇠락한 도심에서 문화와 예술의 성지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새삼 이 공간에 주목하는 건 옛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향촌동에 담겨 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독특한 정서 때문이다. 그 시절의 이야기만 따라가도 한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대구가 코로나19 초반의 악몽에서 회복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거리두기는 이어지고 있다. 외지인, 특히 수도권 지역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편이니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며 다니는 게 좋겠다. 먼저 향촌동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피자. 그래야 왜 대구 사람들이 ‘향촌동 르네상스’를 꿈꾸는지 알 수 있다. 향촌동은 옛 대구읍성의 북쪽 성곽(현 북성로)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현 대구역 맞은편에 있다. 조선 선조 때 일본 침략에 대비해 쌓은 대구읍성이 사라진 건 1906년이다. 당시 ‘야마모토 군수’라고 불렸던 친일파 박중양 대구군수가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대구읍성을 불법 철거했다. 향촌동의 최전성기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였다. 헌병대 등 권부가 몰린 옛 경북도청 앞이 낮의 중심지였다면, 밤을 지배하는 곳은 향촌동이었다. 당시 대구 유흥의 중심이었던 향촌동 골목에는 사미센(일본 악기)과 일본인들의 게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광복 이후 일제가 떠나며 쇠퇴하던 향촌동은 1950년대 한국전쟁 피란 예술인들로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전쟁 중이었지만 골목에는 바흐와 베토벤 음악이 흘렀고, 문학이 꽃을 피웠다. 당시 한 외신기자가 ‘폐허에서 바흐를 듣는다’고 썼던 기적의 공간이 바로 향촌동이었다. 오늘날의 향촌동이 꿈꾸는 모습 역시 바로 이 시기의 살롱 문화다. 피란 시절 북적댔던 향촌동은 예술인들이 떠나면서 다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0~1980년대 김치에 막걸리를 마시던 젊은이들마저 대구 신도심으로 눈을 돌리면서 향촌동은 60대, 70대들의 공간이 됐다. 그 골목에 이제 막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보태지기 시작한 것이다.이 동네의 모양새가 참 독특하다. 좁은 골목길을 경계로 한쪽은 젊은이들의 양지, 또 한쪽은 어르신들의 성지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향촌동 르네상스의 중심지는 복합문화공간인 ‘대화의 장’이다. 이 안에 카페 겸 펍인 대화살롱, 대화주방, 대화강당, 대화공방, 대화스튜디오 등이 밀집돼 있다. 이름에서 보듯 음식이나 장식 등이 젊은이 취향이다. 옛 한옥을 리모델링한 대화강당에서 토론 모임을 갖거나 젊은 작가들이 입주한 공방에서 여러 소품들을 살 수도 있다. ‘개화기 복장’을 갖춰 입고 인증샷을 찍으러 오는 ‘인싸’ 커플도 흔하다.대화의 장에서 50m쯤 떨어진 ‘꽃자리 다방’도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다. 화가 이중섭이 그려 준 표지화로 유명한 구상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 발간기념회가 열렸던 공간이다. 건물도, 이름도 예전 그대로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 ‘퍼센트 14-3’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1955년 대구 군예대에서 근무하던 명배우 허장강이 이 집 안채를 세내 잠시 살았다고 한다. 아마 당시 군예대 동료였던 영화배우 박노식 등도 문턱이 닳도록 이 집을 들락거렸지 싶다. 이 카페는 수제화 골목 지나서 있다.어르신들의 중심 공간은 ‘판코리아 성인텍’이다. 이곳은 농반진반 ‘60금’ 건물이다. 60세 이하 ‘아이들’은 출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영숙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겉으로는 작아 보여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수백 명의 어르신들로 북적댄다고 한다. 어르신 놀이터는 해거름이면 파장이다. 오후 6시 무렵이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집으로 가거나, 주변 공간으로 삼삼오오 사라진다. 화려한 복장의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무렵이다. 향촌동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그 좁은 골목을 따라 하꼬방(단칸 가건물)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적산가옥도 많다. 보통 적산가옥 하면 목조 주택을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향촌동 일대 옛 살롱들의 대부분은 시멘트로 지은 건물이다. 숱한 기억들을 갈무리하고 있는 옛 건물들을 엿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시인 구상이 즐겨 묵었다는 화월여관(현 판코리아 성인텍), 지독히 가난했던 화가 이중섭이 생애 마지막 예술혼을 불살랐던 백록다방(현 갤러리모텔), 음악감상실 르네상스(현 판코리아 식당) 등이다. 이 건물들에 얽힌 이야기가 재밌다.피란 시절 향촌동을 넉넉하게 만든 이는 구상 시인이다. 주머니가 솜털처럼 가벼웠던 예술인들은 무시로 외상술을 마셔댔고, ‘향촌동 귀공자’ 구상 시인은 이들의 밀린 외상값을 지갑을 털어 내줬다. 이중섭이 1955년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던 백록다방은 경북여고 동기인 두 인텔리 여성이 마담이었다. 둘의 빼어난 미모와 지성미는 숱한 예술인들을 불러모았다고 한다. ‘음악은 르네상스에서, 차와 대화는 백록에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나. 이중섭이 캔버스 삼아 그렸던 은박지는 미국산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이중섭을 흠모하던 시인 김광림이 구해 줬다고 한다. 물론 이중섭은 이때 번 그림값을 술값으로 탕진해 버렸다. 그가 전시회를 열었다는 미 공보원 건물은 아쉽게 사라졌다. 르네상스는 클래식 음악감상실이었다. 박용찬이란 호남의 갑부 아들이 1951년 1·4 후퇴 때 레코드 한 트럭분을 싣고 내려와 문을 열었다고 한다. 화가 김환기, 건축가 김중업, 배우 최은희와 감독 신상옥 등이 즐겨 찾았다. ‘북성로 허브’가 세 든 건물은 해방 공간의 세도가 이기붕의 신혼집이 있었던 건물이다. 고딕풍으로 멋을 낸 외관이 인상적이다. 아울러 이중섭과 소설가 최태응이 묵었던 경복여관(현 의류 가게),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 이름을 딴 청포도 다방(현 갤러리모텔 주차장), 음악다방 백조(현 아파트 공사장) 등도 안내판으로만 남은 공간들이다.대구에 가 볼 만한 일몰 전망대가 생겼다. 앞산 중턱에 있는 ‘해넘이 전망대’다. 앞산 일대의 소박한 집들과 도심의 거대한 마천루들이 붉게 물드는 장면이 제법 곱다. 입장료를 내고 올라야 하는 앞산 전망대의 해넘이가 압도적일 만큼 화려하다면 ‘해넘이 전망대’의 일몰 풍경은 어딘가 나른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을 준다. 해넘이 전망대 아래는 빨래터 공원이다. 이 일대 주민들의 옛 빨래터를 공원으로 꾸몄다. 빨래터 앞엔 두 그루의 수양벚나무가 있다. 지금은 잎이 졌지만 수양벚꽃이 흐드러지던 봄엔 아마 전국에서 가장 화사하고 요염한 빨래터였을 게 틀림없다. 세상 어느 남정네가 벚꽃 아래에서 빨랫방망이를 내리치는 여인네를 보며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지 않았으랴. 빨래터에서 두어 블록쯤 아래에 봉준호 영화감독의 어린 시절 집이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봉준호 생가 복원’ 운운하는 선거 구호가 등장해 여론의 질타를 받는 해프닝이 일었던 곳이다. 해넘이 전망대에서 굽어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그저 봄날의 꿈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포항 포도로 만든 포도주 광고

    [근대광고 엿보기] 포항 포도로 만든 포도주 광고

    “정신의 상쾌, 혈행의 양호, 원기의 충일(充溢), 동작의 활발, 병고(病苦)의 제거, 병약의 회복, 체력의 증진 등에 효력이 있고, 식욕을 촉진하고, 소화를 돕고, 피로를 없애 주고, 쇠약을 막고, 정력을 왕성히 하고….” 보약 광고 같지만 술 광고다. 일제강점기에 판매했던 ‘미쓰와 포트 와인’의 광고 속에 있는 내용이다. 와인(포도주)을 만병통치약처럼 과장해서 광고하고 있다. 포트 와인은 발효 중인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한 포르투갈식 주정 강화 와인을 뜻한다. 알코올 도수가 18~20도로 일반 와인보다 5도 이상 높은 독한 술인데 마치 몸에 좋은 보약인 것처럼 선전했다. ‘미쓰와 기나철(規那鐵) 포도주’라는 와인도 함께 판매됐는데 ‘완전한 흡수성과 동화성으로 효력이 비교할 수 없이 빼어난 자양강장 음료’라고 광고했다. 기나는 키나라는 열대식물 껍질에서 추출한 말라리아 특효약인 키니네를 뜻하는 단어로 해열 및 강장제로 쓰였고, 철은 빈혈에 좋은 물질이다. 미쓰와(미츠와ㆍ三輪) 포도주는 1920년대에 경북 포항 동해면과 오천면 일대에 있던 미츠와 포항농장에서 생산한 포도로 만들어졌다. 당시 미츠와 포도농장은 3만명이 넘는 조선인을 고용하고 넓이가 200만㎡에 가까웠던, 동양에서 가장 큰 포도농장이었다고 한다. 일제는 당시 유럽에서 포도를 수입해 포도주를 만들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포도 수입이 어려워지자 데라우치 조선 총독이 사업가 미쓰와 젠베이(三輪善兵衛)에게 포도농장을 운영해서 포도주를 만들어 보라고 권했고 미쓰와가 1918년 2월 국유지를 불하받아 농장을 설립했다고 한다. 광복 후에도 이 농장에서는 ‘삼륜포도주공사’라는 이름으로 포도주를 계속 생산했으며 1952년에도 어느 신문에 포도주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농장의 포도주는 1960년대까지도 ‘포항 포도주’로 불리며 시중에 판매됐지만, 기술력의 한계를 드러냈고 1966년에 방부제 과다 사용이 문제가 돼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도농장 자리에는 현재 해병대교육훈련단과 포항비행장이 들어서 있다. 미츠와 포도농장은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의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로 시작하는 이육사의 시 ‘청포도’의 배경이기도 하다. 육사의 고향은 경북 안동인데 시에 나오는 ‘푸른 바다’도 없고 청포도도 없다. 잦은 옥살이로 몸이 약해져 폐결핵을 앓았던 육사는 1936년 무렵 요양을 하러 포항으로 가서 머물렀는데 포도농장을 방문해 시상을 떠올리고는 이 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인연에서 동해면 사무소 앞과 호미곶 등 포항 여러 곳에 ‘청포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이천시, 친일행적 이인직·서정주 설봉공원 문학비 철거한다

    이천시, 친일행적 이인직·서정주 설봉공원 문학비 철거한다

    경기 이천시는 관고동 설봉공원내 문학동산에 설치된 이인직과 서정주 문학비를 철거할 계획이라고 10일 밝혔다. 미래이천시민연대, 이천시독립운동기념사업회,이천역사문화연구회 등 이천지역 시민단체들이 9일 엄태준 시장에게 “친일 행적 문인인 이인직과 서정주의 문학비를 철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이천의 정기 어린 명산 설봉산 자락에 자리한 문학동산에 반민족 친일 이인직,서정주 기념비가 있다는 것은 이천은 물론 민족 차원의 수치” 라며 철거 요청서를 엄 시장에게 제출했고 엄 시장은 “시민의 뜻에 따라 하루빨리 문학비를 철거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는 이달 중 이인직과 서정주 문학비 2개를 철거해 땅에 묻고 친일 행적을 기록한 표지석을 세우기로 했다. 시는 유승우 전 이천시장 시절인 2003년 이인직,서정주,이육사,윤동주 등 10명의 문학비를 설봉공원에 세웠다. 이인직은 조선 총독 직속 유림기관인 경학원 사성 등을 맡았고, 서정주는 창씨 개명한 이름으로 친일 작품을 발표해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가 펴낸 보고서에 친일 인사로 수록됐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음악이 항일 무기…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한 ‘중국의 3대 악성’

    음악이 항일 무기…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한 ‘중국의 3대 악성’

    정율성은 ‘중국인민해방군가’와 ‘옌안송’ 등 360여곡을 작곡한 작곡가로 중국인의 심금을 울린 ‘3대 악성(樂聖)’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항일운동가로서 정율성을 언급하기는 의열단장 김원봉처럼 조심스럽다.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귀국한 뒤 월북한 인물인데 남한 출신인 정율성은 광복 후 북한으로 들어갔고 6·25 전쟁 때는 중공군으로 참전했다. 그 때문에 정율성은 이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국내에서 그의 생애는 오래도록 조명받지 못했다. 2018년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이 광복절 기념식에 중국에 거주하는 정율성의 딸 정샤오티(鄭小提)를 초청했을 때 논란이 됐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율성은 1914년 8월 27일 광주광역시에서 정해업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중국에서의 공식 생일은 1918년 8월 13일로 돼 있다. 정율성이 생년을 4년이나 늦춰 적은 이력서를 당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정율성은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외적과의 싸움에서도 최후의 결전에는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승전고를 울린단다. 군대가 진군할 때 사기를 돋우는 데는 우렁찬 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군가가 없거든….” 온종일 만돌린만 켜고 노래를 부르는 정율성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군가가 없다’는 말은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의 앞날을 예견한 듯했다.●분열된 독립운동단체 대동단결 결의문 주도 정율성가(家)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맏형 정효룡(건국훈장 애족장)은 임시정부 서기로 일했고 국내에서 선전활동을 하다 옥살이를 했다. 둘째형 정인제는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국민혁명군으로 북벌에 참여했다. 셋째형 정의은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김원봉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학생을 모집하고자 국내에 잠입했다. 큰외삼촌 최흥종은 평생을 나환자를 돌보는 데 바쳤으며 작은외삼촌 최영욱은 의학박사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고모부다. 매형 박건웅(독립장)도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한 항일운동가다. 이런 가풍 속에서 자란 정율성이 중국행을 꿈꾼 것은 자연스러웠다. 마침 셋째형 정의은이 ‘조선혁명간부학교’ 2기생을 모집하러 국내에 들어와 입학을 권유했다. 항일의식이 투철했던 전북 전주 신흥중학을 중퇴한 정율성은 1933년 5월 8일 전남 목포항을 떠나 일본을 경유해 5월 13일 상하이 푸둥항에 도착했다. 함께 중국 땅을 밟은 이들은 모두 여섯이었는데 조카 정국훈도 있었고 1990년대에 광복회장을 지낸 김승곤도 있었다. 8개월 동안 그는 간부학교에서 군사학과 사회주의 이념을 배웠다. 매형 박건웅은 교관이었다. 1기 졸업생 중에는 시인 이육사와 석정 윤세주도 있었다.학교를 졸업한 정율성은 일본인들의 전화를 감청하며 항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러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일을 맞았는데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출신인 크리노와 교수를 소개받아 체계적인 성악 지도를 받은 것이다. 이름도 본명인 정부은에서 선율로 성공하겠다는 뜻을 담은 ‘율성’(律成)으로 바꾸며 음악에 몰두했다. 정율성은 상하이에서 열린 독창회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특출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정율성에게 크리노와는 이탈리아 유학을 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정율성은 항일운동을 포기할 수 없었다. 1937년 8월 정율성은 마오쩌둥이 홍군(紅軍)을 지휘하고 있던 산시성 옌안에 도착했다. 그에게 옌안은 공산당의 본거지이기에 앞서 항일투쟁의 사령부였다. 옌안행에는 먼저 그곳으로 간 ‘아리랑’(님 웨일스)의 주인공 김산과 독립운동가 김성숙의 부인 두쥔훼이가 큰 영향을 주었다. 1936년 6월 정율성은 난징에서 김산과 한 달 동안 함께 지냈다. 옌안에서 노신예술학원 음악학부에 들어가 음악 공부를 계속했다. 어느 날 노신학원 문학학부 동기생인 모예(莫耶)가 노랫말을 들고 왔다. 정율성은 곡을 붙여 만돌린으로 반주도 하며 청중 앞에서 불렀다. “보탑산 봉우리에 노을 불타오르고 연하강 물결 위에 달빛 흐르네…” 마오쩌둥도 함께한 청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노래가 바로 옌안 정신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극찬을 받고 지금도 중국에서 널리 불리는 ‘옌안송’이다. 옌안송은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동남아와 미국까지 퍼져 나갔다. ●당 결정 따라 北에… 조선인민군행진곡 작곡 1938년 8월 노신학원을 졸업한 정율성은 항일군정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틈날 때마다 작곡을 했다. 그 무렵 우리 독립운동 단체들은 사분오열돼 있었다. 정율성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대동단결을 촉구하는 결의문’ 작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듬해 7월 항일군정대학 군정단에 있던 궁무(公木)의 가사에 음을 붙여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현재 중국군의 공식 군가로 확정된 ‘중국인민해방군가’다. 그의 노래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명곡이 됐다. 정율성에게 일제와 싸운 무기는 음악이었다. 정율성은 노신예술학원 교수가 됐고 나중에 최초의 여성 중국 대사가 되며 저우언라이의 양녀로 알려진 딩쉐쑹(丁雪松)과 결혼, 가정도 꾸렸다.1942년 정율성은 조선의용군이 일본군과 격전을 치르던 태항산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장을 맡아 전투에 참여하고 후방 공작도 했다. 그러면서 광복을 맞았다. 정율성은 오랫동안 항일활동을 했고 부인의 조국인 중국에 남지 않고 당의 결정에 따라 조선의용군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는 ‘조선인민군행진곡’도 작곡했다. 광주에 있던 어머니를 조카가 데려오자 모시고 살았다. 그러다 다시 어머니, 부인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갔다. 6·25 때는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전선 위문활동을 했다. 정율성도 문화혁명을 피하지 못하고 고초를 겪었다. 자연에 묻혀 은둔하던 정율성은 든든한 후원자였던 저우언라이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76년 12월 7일 갑작스레 뇌일혈로 쓰러져 눈을 감았다. 중국의 국립묘지인 베이징 교외 팔보산혁명공묘에 묻혔다. 베이징에 살고 있는 외동딸 정샤오티(1943년생)는 광주를 찾아 음악회 등 아버지 관련 행사에 참석하고 한중 우호활동에 힘쓰고 있다. 동요, 민요, 군가, 뮤지컬, 오페라, 영화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남긴 정율성의 업적은 현대 중국의 3대 음악가로 불리는 녜얼(耳·중국 국가 작곡가), 셴싱하이(星海)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가 창작한 동요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2000년대에 들어 한중 양국에서 정율성이라는 이름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순안공항에서 연주된 곡은 정율성의 ‘조선의용군행진곡’이었다. 2005년 중국 전승절 60주년에 신중국 건국 100인의 영웅 중 여섯 번째에 오른 이름은 정율성이었다. 중국 하얼빈에는 정율성기념관이 세워졌다. ●광주시, 생가 복원 등 추진… 하얼빈엔 기념관 우리도 그가 자란 광주 양림동에 정율성거리를 조성해 사진과 작품을 전시하고 생가도 단장했다. 기념사업회도 구성돼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찾아본 정율성거리는 훼손이 적지 않았고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직도 개인 소유인 생가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정율성 음악제도 매년 열려 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진행이 더뎌지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 5월 생가 부지 매입과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양림동에는 기념관을 짓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본적지로 돼 있는 불로동에는 역사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선양사업만큼 중요한 향후 과제는 그의 이념과 행적을 둘러싼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집콕’ 연휴를 위한 온라인 공연…뮤지컬 ‘모차르트!’부터 가족극 함께 즐겨요

    ‘집콕’ 연휴를 위한 온라인 공연…뮤지컬 ‘모차르트!’부터 가족극 함께 즐겨요

    ‘집콕’ 연휴를 달래줄 다양한 온라인 공연들이 랜선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 10주년 기념 공연을 마친 뮤지컬 ‘모차르트!’를 유로로 볼 수도 있고 전통연희, 가족극 등 여러 장르를 무료로 만나볼 수도 있다. 올해 10주년 기념 공연을 마친 뮤지컬 ‘모차르트!’가 다음달 3~4일 이틀간 유료 온라인 상영된다. 천재 음악가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운명을 고뇌하는 모차르트의 모습을 김준수와 박강현이 연기한 영상을 안방에서 감상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대형 무대가 꽉 채워질 만큼 화려한 공연을 9대의 풀HD 카메라 등 다양한 장비로 촬영해 배우들의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담겼다. 세계적인 합창단인 빈 소년 합창단도 첫 온라인 투어를 갖는다. 한국시간으로 지난달 26일 새벽 2시부터 독일 클래식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5.9유로(한화 약 8000원)를 결제한 뒤 다음달 3일 새벽 3시까지 100명의 소년들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날 수 있다. 게랄드 비어트 음악감독은 “522년 역사상 가장 힘든 위기를 맞고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예술의전당이 스테이지 무비로 제작한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는 VOD 서비스로 안방에 다가간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 연극을 여러 각도에서 영상에 담아 영화화한 것으로 배우들의 표정은 물론 마을 배경까지 실감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다.잇따른 집콕 생활로 지쳤을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한 무료 온라인 공연도 마련됐다. 강남문화재단은 극단 하땅세가 제작한 가족극 ‘오버코트’를 28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유튜브와 네이버TV 채널에 공개한다. 장난기 많은 소녀 제인이 펼치는 환상적인 모험을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크린 아트와 라이브 연주로 그려진다. 강남문화재단은 이달 중순 유튜브와 네이버TV에 공개한 온라인 실내놀이 콘텐츠 ‘우·가·방(우리 가족이 노는 방법)’ 시리즈를 먼저 체험해 어린이 관객들이 주인공 제인과 먼저 친해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당부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다음달 1~4일 나흘간 여는 2020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도 네이버TV와 유튜브로 볼 수 있다. 동해안별신굿보존회의 사전 공연 치유의 연희 ‘기원’(10월 1일 오후 8시)를 시작으로 극단 깍두기의 어린이 연희극 ‘연희는 방구왕’(10월 2일 오후 4시), 그룹 상자루의 ‘Korean Gipsy’(10월 3일 오후 4시), 입과손스튜디오의 완창판소리 프로젝트 눈대목시리즈(10월 4일 오후 4시), 남창동의 광대 줄타기(10월 4일 오후 5시) 등 다채로운 전통연희들을 접하게 된다. 국립합창단은 지난 8월 14일과 15일 광복절 기념 합창축제에서 선보였던 ‘창작칸타타 나의 나라’와 ‘합창교향시 코리아판타지’를 지난달 28일부터 유튜브에 공개했다. 각각 1시간 남짓 분량으로 온가족이 함께 하모니를 즐길 수 있다.특히 백범 김구 선생의 목소리를 통해 독립을 갈망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나라를 지켜낸 인물들을 만나보는 여정을 그린 ‘나의 나라’가 인상적이다. 배우 김홍파의 내레이션으로 소리꾼 고영열과 정가 김나리가 출연해 합창과 함께 국악의 매력을 더했다. 이육사 시에 곡을 입힌 ‘꽃’에선 테너 박의준과 소리꾼 고영열의 듀엣이 합창에 어우러졌고 ‘어머니의 편지’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마음을 대변한 곡으로 알토 김미경과 정가 김나리의 애절한 음색이 돋보인다.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도 ‘집콕 추석생활’을 위해 유튜브와 네이버TV로 연주영상을 공개했다. 지난달 30일 ‘내 손 안의 콘서트Ⅶ’ 첼리스트 문태국과의 관현악 협연 영상이 공개됐다. 1일에는 모차르트를 주제로 정치용 예술감독의 지휘로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의 연주 영상을, 2일엔 ‘내 손 안의 콘서트Ⅹ-넥스트 스테이지’로 클래식계에서 주목받는 유망주인 지휘자 박승유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을 만나볼 수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구대 이옥비 이육사추모사업회 상임이사 명박 수여

    대구대 이옥비 이육사추모사업회 상임이사 명박 수여

    독립운동가이자 민족 시인인 이육사의 외동딸인대구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구대는 지난 21일 개최된 학위수여식에서 2019학년도 전기 명예박사학위 수여자인 이옥비 상임이사에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후기 명예박사학위 수여자인 (재)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 최미화 원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대구대는 지난 2월 코로나19로 인해 2019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이 취소돼 이날 전·후기 명예박사 학위를 함께 수여했다. 이옥비 상임이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에게 강한 독립정신과 민족정신을 불러일으킨 이육사 선생의 정신을 계승·전파하는 데 일생을 바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선정됐다. 2009년부터 이육사추모사업회의 상임이사로 활동한 그는 ‘나의 아버지 이육사’를 주제로 한 각종 강연과 행사 활동을 펼치며 인문학적 가치와 우국충정의 가치를 널리 전파했다. 한편, 대구대는 2019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을 통해 학사 538명, 석사 171명, 박사 39명 등 총 74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행사 참석자를 최소화한 가운데 진행됐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다큐로, 콘서트로, 강연으로… TV서 항일의 역사를 만난다

    다큐로, 콘서트로, 강연으로… TV서 항일의 역사를 만난다

    EBS 봉오동·청산리 전투 다큐KBS, 박정현 등 참가 콘서트서3·1운동 100주년 기념곡 첫 공개JTBC도 비와이 ‘나의 땅’ 무대15일부터 광복 75주년을 기념하고, 항일운동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찾아간다. EBS 1TV는 광복절 당일 오후 5시부터 국방TV가 제작한 특집 다큐멘터리 ‘승리의 기억, 봉오동 전투’와 ‘독립군의 위대한 유산, 청산리 전투’를 연이어 편성했다. 다큐멘터리는 올해 두 전투 100주년을 맞아 홍범도 장군의 행적이 남아 있는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독립군 감시 문서가 있는 일본 외무성, 두 전투의 중심지였던 봉오동 골짜기와 청산리 일대를 훑는다. 1부에서는 독립군들이 스스로 ‘독립전쟁 제1회전’으로 칭하며 첫 승리를 거둔 봉오동 전투에 대해 살펴본다. 당시 의병 출신 홍범도 부대 등으로 이뤄진 독립군 연합부대는 1920년 6월 봉오동으로 집결, 유인작전으로 적을 가두고 허를 찌르는 기습 공격을 통해 일본군을 궤멸시킨다. 독립군의 전투력에 매우 놀란 일본군은 비밀문서에 “북간도 지역이 이제 곧 독립될 것 같다”고 적었다.2부에서는 독립군의 체계적인 군사교육과 무기 구매 과정을 살펴본다. 봉오동 전투 이후 일본의 대규모 토벌 작전에 맞선 독립군 부대들은 청산리 일대로 속속 모여든다. 청산리 전투 주역들은 1912년 우당 이회영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부터 1920년 북간도의 사관연성소까지 체계적 군사훈련을 받았다.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은 독립군 정예장교를 양성하고 근대식 무기까지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10월 21일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3~4배 규모의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청산리 전투는 이후 항일 투쟁의 실질적 기반이 됐다. 방송은 당시 기록과 재현, 전문가 분석을 통해 6일간의 치열했던 전투를 이해하도록 돕는다.KBS는 15일 오후 5시 30분 특집 콘서트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를 방송한다. 13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무관중 녹화로 진행된 공연으로 역사, 인물, 현대사 등 세 가지 테마를 통해 재일동포의 조국애를 돌아본다. 인순이, 포레스텔라, 김호중, 이봉근, 폴킴, 위키미키, 민영치 밴드 등이 무대에 오른다. 박정현은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작곡가 정재일과 만든 노래 ‘대한이 살았다’를 방송에서 처음 선보인다.JTBC ‘차이나는 클라스’는 오는 18일 오후 11시 ‘광복절에 읽는다, 육사와 동주’ 편을 꾸린다.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교수와 함께 190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을 대표하는 두 저항시인 이육사와 윤동주의 삶과 작품을 살펴보고, 래퍼 비와이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곡 ‘나의 땅’ 무대를 펼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민족시인 이육사의 넋 기리며”…8월 8일 안동서 문학축전

    “민족시인 이육사의 넋 기리며”…8월 8일 안동서 문학축전

    사단법인 이육사추모사업회와 이육사문학관은 8월 8일 이육사문학관 일원에서 ‘제17회 이육사문학축전’을 연다고 25일 밝혔다. 이날 행사로 육사 탄생 116주년 기념 학술발표대회와 함께 이육사시문학상 시상, 시극 공연도 갖는다. 이육사문학관 다목적실에서 열리는 학술발표대회는 이덕화 교수가 ‘이원조와 김남천 비평의 전개와 비교’, 조동범 평론가가 ‘이육사의 사상적 실천 의지와 시적(詩的) 아나키’를 발표한다, 이어 이규리 시인과 김도언 작가와 함께 ‘광야’ ‘청포도’를 노래한 저항시인 이육사의 고향 원촌마을 일대를 걸으며 이육사의 시 정신과 문학을 느낄 수 있는 ‘작가와 함께 걷는 육사로드’가 진행된다. ‘제17회 이육사시문학상’ 시상식도 열린다. 수상자는 이재무 시인으로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가 선정됐다. 이와 함께 최치언 시인이 연출한 시극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리라’가 다목적실에서 진행된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제17회 이육사詩문학상, 이재무 시인 선정

    제17회 이육사詩문학상, 이재무 시인 선정

    대구방송(TBC)이 주최한 ‘제17회 이육사詩문학상’ 수상자로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천년의 시작, 2019)의 이재무 시인이 선정댔다. 이 상은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숭고한 생애와 문학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2004년 제정됐으며, 올해로 열일곱 번째를 맞이한다. 최종심사는 오세영 시인을 비롯해 권달웅 시인, 조용미 시인, 구모룡 평론가, 오민석 평론가가 맡았다. 이들은 “‘데스밸리에서 죽다’가 세상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솔직하게 드러냈으며, 그것을 새로운 표현에 담아냈다. 이러한 그의 시편이 이육사 정신에 부합해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상금은 2000만 원이며, 시상식은 8월 8일 오후 2시 이육사문학관에서 열리는 제17회 이육사문학축전 여름 행사와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이재무 시인은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1983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했다. 시집 ‘온다던 사람은 오지 않고’,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슬픔은 어깨로 운다’ 등이 있다. 제17회 유심작품상 시부문, 제3회 송수권 시문학상, 제2회 풀꽃 문학상, 제27회 소월 시문학상, 제1회 윤동주 문학대상 수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중매

    중매

    집에서 꼼짝 말라는 기저 질환자가 된 내게여수에서도 배 타고 두어 시간 가야 당도하는 머나먼 섬,거문도 수협 중매인 35호 수산 최형란이 생선을 좀 보낸대서대구 사는 후배들 주소 몇 찍어주었는디 고향 바다 건너 뭍으로 간 간고등어 토막고등어들이우짜면 이리 푸짐하고 정갈하노, 억세게 칭찬받아가며노모께 몇 손 가고 친구들에게도 두세 마리씩 이사 갔다고백신 한 보따리 받았으니 잘 묵고 더 힘내겠다고김밥 싸고 배달하는 김병호가 우리 동네 이웃들나무들과 고라니와 별들에게까지 안부를 전해왔는디 사흘 후 최형란이 부녀회에서 생선 좀 보태기로 했다고십시일반 모은다는 게 큰 박스 8개가 만들어졌다는디나흘 후 배 가른 갈치 통갈치 키 크고 덩치 좋고 인물 훤한삼치들이 꼼짝없이 갇힌 쪽방 사는 어른들과 의료진들 먹일김밥 싸고 있는 대구 바보주막에 당도했다는디 엄청시리 왔어요… 이 은혜를 우짠다요…농갈라묵고 또 농갈라묵었다고 농갈라묵은김채원이도 중매인 최형란이도 울컥했다고얼떨결에 중매쟁이 된 내도 덩달아 울컥하는디오병이어가 별 긴가, 갈라묵고 살믄 살아지는기라,■김해자 시인은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집에 가자’, ‘해자네 점집’ 등 출간. 이육사 시문학상, 만해문학상, 구상문학상 본상 수상.
  • 이승로 성북구청장 “3·1 정신으로 코로나 위기 극복을”

    서울 성북구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주민과 함께하는 3·1절 행사가 어려워지자 이승로 성북구청장이 손팻말을 들고 101주년 3·1절을 기념했다고 2일 밝혔다. 이 구청장은 지난달 27일 종암동 ‘문화공간 이육사’를 방문해 “3·1절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림으로써 민족의 저력을 보여 준 것”이라며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국내외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현재 마음을 모아 민족의 위기를 극복한 선조를 떠올리며 희망과 의지를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구청장은 “45만 성북구민과 대한민국 국민이 마음을 모으면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외쳤다. 이날 메시지는 이 구청장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북구는 한용운(성북동), 이육사(종암동), 조소앙(동소문동), 정정화·김의한(동선동), 이은숙·이규창·유우석·조화벽(정릉동) 등 100여명의 독립운동가가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도시’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삶이 詩였던 아버지… 젊은이들이 그 정신 기억했으면”

    “삶이 詩였던 아버지… 젊은이들이 그 정신 기억했으면”

    종암동에 이육사 기리는 문화공간 마련 “특별한 해 아니어도 아버지 기억해 주길” 포승줄 묶인 아버지 모습이 마지막 기억 4살이었던 나에게 ‘다녀오마’ 하고 떠나 돌아가신 어머니 삶도 책으로 남길 계획“삶이 시고 마음이 독립이었던 아버지를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 봅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족 시인인 이육사(1904~1944) 시인의 하나 남은 혈육, 이옥비(79) 여사를 서울 성북구 종암동 ‘문화공간 이육사’에서 21일 만났다. 종암동은 이육사 시인이 1939년부터 거주하던 곳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청포도’를 발표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17일 이곳에 이육사 시인을 기리는 작은 공간인 문화공간 이육사가 문을 열었다. 이 여사는 “크고 작고를 떠나 서울에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 자랑스럽다”며 “공간이 작다고 아버지 (위상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정신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간을 마련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그는 “종암동 외에 다른 곳에도 부탁을 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던 곳도 있었다”며 “초반의 어려움을 딛고 공간이 생긴 만큼 학생 등 많은 젊은이가 이곳에서 아버지의 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옥비’(沃非)라는 이름은 이육사 시인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예쁜 이름이지만 뜻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이 여사는 “기름지게 살지 말라는 뜻”이라며 “욕심 없이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들어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육사 시인은 이 여사가 4살 되던 해인 1944년 1월 16일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이 여사가 기억하는 아버지 이육사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청량리역 동대문경찰서에서 포승줄에 묶여 밀짚으로 된 용수를 쓰고 계신 모습이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라며 “어렸던 나에게는 엄청 충격적인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아버지 다녀오마’ 이렇게 내게 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틈만 나면 들려주셨다”며 “그땐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 아버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전해 줄 이야기가 없었을 뻔했다”고 밝혔다. 지난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만큼 이 여사는 평소보다 훨씬 바쁜 한 해를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독립 순국선열의 자손 중 다수는 이미 사망하고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저를 이곳저곳에서 불러 주셔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다”면서도 “특별한 해, 특별한 기념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찾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쉼 없이 달려온 이 여사는 올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잊혀져 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 부족한 글솜씨나마 남겨 놓고 싶다”며 “아버지의 삶과 더불어 어머니의 특별했던 삶도 책으로 남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길섶에서] 이육사/박록삼 논설위원

    새 교과서를 받으면 가장 먼저 국어 교과서를 펼쳐 봤다. 소설, 시, 시조, 수필 등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길지 않은 시나 시조는 미리 외워 두면 수업 시간에 으쓱거리기도 좋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지 싶다. 국어 교과서에 나온 이육사(1904~1944)의 시 ‘청포도’, ‘광야’는 가슴이 시원해짐을 넘어 서늘해지는 느낌까지 줬다. 그리고 3학년 때인가 ‘절정’도 실렸다. 시구마다 밑줄 그어 가며 주제, 숨은 뜻, 은유법, 역설법 운운하는 수업은 서늘했던 시어와 정신을 떠올리면 차라리 지루했다. 그렇게 민족 저항시인이라 외우고 시험쳤지만 실제 그의 삶과 정신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인이기 이전에 치열한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로서 구체적 행적을 고교 졸업 30년 만에, 그것도 지난 주말 TV를 통해서야 처음 알았으니 참 게을렀고 참 무지했다.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폭파 사건에 관여해 첫 옥고를 치른 뒤 17년 동안 17번 형무소를 들락거렸다. 낮밤 없이 감시하는 일제 순사의 눈길과 갖은 고문 속에서도 결정적 증거를 잡히지 않은 채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니 굳건한 의지를 가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1월 16일, 76년 전 오늘이 이육사가 중국 베이징에서 옥사한 날이다. youngtan@seoul.co.kr
  • ‘청포도’ 고향 종암동서 기리는 이육사

    ‘청포도’ 고향 종암동서 기리는 이육사

    17일 오후 3시 이육사 시인의 정신을 기리는 동시에 지역 주민 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인 ‘문화공간 이육사’가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문을 열었다. 종암동은 이육사 시인이 1939년부터 거주하던 곳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청포도’를 발표한 곳이기도 하다. 성북구는 이육사 시인의 유고작인 ‘광야’가 처음 세상에 발표된 12월 17일로 개관식을 맞췄다. ‘문화공간 이육사’에는 이육사 시인을 기념하는 전시실과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 커뮤니티 공간이 함께 있다. 성북구는 이 공간을 주민의 문화생활을 돕고 새로운 지역문화를 가꾸는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1층 ‘청포도 라운지’에는 주민 간 소통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 마련됐다. 한쪽에는 도서 열람이 가능한 휴게실도 있다. 2층 ‘광야 상설전시실’에선 자료와 영상으로 이육사 시인의 활동과 작품을 접할 수 있다. 그의 유고시 ‘광야’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 얘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도록 했다. 3층 ‘교목 기획전시실 및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시의성 있는 주제로 연 2회 기획전시를 개최한다. 평소에는 시민강좌, 영화 상영회, 문화행사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개관 기념 특별전 ‘식민지에서 길을 잃다, 문학으로 길을 찾다’도 개막한다. 또한 18일 오후 5시에는 이육사 시인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의 특강이 열릴 예정이다. 4층 ‘절정 옥상정원’에는 이육사 시인의 친필을 넣은 기념조형물로 포토존을 만들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엄혹한 일제강점기 치하에서도 강철과 같은 신념으로 조국 독립을 의심치 않았던 이육사 선생과 한용운 선생이 성북구에 거주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는 사실은 45만 성북구민의 자부심이 됐다”면서 “그러나 한용운 선생의 유택 성북동 심우장에 비해 이육사 선생의 종암동 집은 아는 이가 적어 안타까워하는 성북구민이 많았는데 문화공간 이육사가 선생을 기리고 알리는 뜻깊은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