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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숫자 100

    숫자 100은 예사 숫자가 아니다.요즘이야 쉽게 백살까지 사시라는 말을 하지만 흔히 말하는 ‘백수(白壽)’라는 단어는 일백 백(百)자에서 한일(一)자를 빼 99세를 의미할 정도로 옛날 사람들은 숫자 100 앞에 겸손했다.그런 숫자 100을 감히 서울신문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100년전 구한말 올곧은 목소리로 민족을 일깨웠던 대한매일신보를 이어받은 민족정론지이기 때문이다. 올해가 100주년인 것은 서울신문((옛 대한매일신보) 창간만은 아니다.올해는 저항시인 이육사(陸史)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의열단 활동으로 옥고를 치를 때인 수인번호 ‘64’를 호로 사용한 이육사의 본명은 원록.‘청포도’와 ‘광야’ 등의 시로 민족의 자존심과 양심을 온몸으로 노래한 시인은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던 1904년에 태어나 1940년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서울시민 중 2004년 1월 현재 100살인 사람은 여자 73명,남자 9명으로 모두 82명.10만명에 한명 정도가 서울신문과 함께 격동의 한세기를 보낸 셈이다. 국보 제100호인 남계원 7층석탑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에 있다.원래 신라탑의 전형을 계승·발전한 고려시대 탑으로 개성에 있던 것을 1915년에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경복궁 경내에 있는 대부분의 석탑이 남계원 7층석탑과 함께 일제 식민지배 5년을 기념하는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때 전국 각지에서 옮겨진 것이다.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0호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화 보문사지장보살도이다.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는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조선시대 과천현의 객사 온온사(穩穩舍)이다. 대중교통체계가 바뀐 7월부터 운행되는 100번 버스는 도봉산역∼종로3가를 운행한다.경기 성남시 소속 100번 버스는 성남시∼잠실역을 운행하고 있다. 14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평가전에 출전한 축구선수 김태영씨는 국가대표급간 경기인 A매치 100경기 출장자들을 일컫는 ‘센추리클럽’에 한국선수로는 5번째로 이름을 올렸다.현재 센추리클럽에는 차범근,황선홍,홍명보,유상철 등이 가입한 상태다. 한편 100의 고지를 넘기 직전의 사람들도 있다.내년 한국야구도입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야구위원회는 올해 말 해외파 선수들을 불러들여 여는 기념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국민감독’ 임권택씨도 생애 100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숫자 100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숫자 100

    숫자 100은 예사 숫자가 아니다.요즘이야 쉽게 백살까지 사시라는 말을 하지만 흔히 말하는 ‘백수(白壽)’라는 단어는 일백 백(百)자에서 한일(一)자를 빼 99세를 의미할 정도로 옛날 사람들은 숫자 100 앞에 겸손했다.그런 숫자 100을 감히 서울신문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100년전 구한말 올곧은 목소리로 민족을 일깨웠던 대한매일신보를 이어받은 민족정론지이기 때문이다. 올해가 100주년인 것은 서울신문((옛 대한매일신보) 창간만은 아니다.올해는 저항시인 이육사(陸史)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의열단 활동으로 옥고를 치를 때인 수인번호 ‘64’를 호로 사용한 이육사의 본명은 원록.‘청포도’와 ‘광야’ 등의 시로 민족의 자존심과 양심을 온몸으로 노래한 시인은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던 1904년에 태어나 1940년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서울시민 중 2004년 1월 현재 100살인 사람은 여자 73명,남자 9명으로 모두 82명.10만명에 한명 정도가 서울신문과 함께 격동의 한세기를 보낸 셈이다. 국보 제100호인 남계원 7층석탑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에 있다.원래 신라탑의 전형을 계승·발전한 고려시대 탑으로 개성에 있던 것을 1915년에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경복궁 경내에 있는 대부분의 석탑이 남계원 7층석탑과 함께 일제 식민지배 5년을 기념하는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때 전국 각지에서 옮겨진 것이다.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0호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화 보문사지장보살도이다.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는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조선시대 과천현의 객사 온온사(穩穩舍)이다. 대중교통체계가 바뀐 7월부터 운행되는 100번 버스는 도봉산역∼종로3가를 운행한다.경기 성남시 소속 100번 버스는 성남시∼잠실역을 운행하고 있다. 14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평가전에 출전한 축구선수 김태영씨는 국가대표급간 경기인 A매치 100경기 출장자들을 일컫는 ‘센추리클럽’에 한국선수로는 5번째로 이름을 올렸다.현재 센추리클럽에는 차범근,황선홍,홍명보,유상철 등이 가입한 상태다. 한편 100의 고지를 넘기 직전의 사람들도 있다.내년 한국야구도입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야구위원회는 올해 말 해외파 선수들을 불러들여 여는 기념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국민감독’ 임권택씨도 생애 100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탄생 100주년 문학인 문학제 ‘어두운 시대의 빛과 꽃’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염무웅)와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개최하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29·30일 ‘어두운 시대의 빛과 꽃’이란 주제로 세종문회회관 세종홀과 금호리사이틀홀에서 열린다.올해 조명될 작가는 계용묵,박용철,박화성,이양하,이육사,이태준 등 6인.근대문학 100년의 성과를 정리하기위해 지난 2001년부터 시작한 문학제는 올해 문화관광부와 서울시가 5000만원씩 지원하면서 한층 풍성해졌다.29·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콘퍼런스홀에서 심포지엄이 열리며, 30일 서울 사간동 금호리사이틀홀에서는 ‘문학의 밤’행사가 열린다. 심포지엄에서 문학제 기획위원장인 최동호(고려대) 교수는 ‘절명지와 무명화의 길’을 통해 이육사의 저항시적 지향과 박용철의 순수시 지향을 하나의 문학사적 의미망에 포괄하면서 생산적 시각을 모색한다.정호웅(홍익대) 교수는 ‘어둠 속의 익은 세계’에서 이태준,계용묵,박화성의 소설세계와 이양하의 수필에 대해 논의한다. 한편 30일 ‘문학의 밤’행사는 시사랑문화인협의회,국악 실내악단 ‘신모들’과 함께 작품낭송,연주,시극·연극공연 등 다채롭게 진행된다. 이종수기자 vielee@˝
  • 대구 실버들의 거리 ‘진골목’

    “실버 골목을 아십니까?” 대구 도심의 약전골목을 아는 사람들은 많다.그러나 약전골목 바로 옆으로 난 ‘진골목’을 아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대구시 중구 포정동 중앙로 농협 중앙지점에서 약전골목 입구에 이르는 400m가 진골목이다.대구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어 진골목은 향수에 젖은 노인들이 즐겨 찾는 실버 골목이다. ●부자들의 동네,진골목 진골목은 ‘ㄱ’(기역)을 ‘ㅈ’(지읒)으로 잘못 발음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특성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긴 골목’이란 뜻이다. 80여년 전 진골목 일대는 대구의 부자였던 달성 서씨들이 모여 사는 최고급 주택가였다.그러나 당시 영남의 대표적인 부자였던 서병국(徐炳國)이 사망하면서 진골목은 퇴락을 시작했다. 1946년 6월 대구에 호열자(콜레라)가 발생한다.그런데 첫 희생자가 당대의 부호였던 서씨여서 아직도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된다.지금은 화교협회 건물로 쓰이는 서씨의 저택은 1000평이 넘는데,그 당시에 개인 풀이 있었고 보일러로 난방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서양식 건물 양식에 중국식 적벽돌을 사용해 지은 저택은 80여년이 된 건물이지만 아직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진골목의 정소아과 건물은 대구 최초의 2층 양옥집.1931년 지어진 이 건물은 서병국의 방계형제인 서병직의 소유였으나 1947년 정필수(84) 원장이 인수,지금까지 소아과 병원으로 사용하고 있다.대구가 낳은 천재 석재 서병오(石齋 徐丙五·1862∼1935)도 진골목에서 태어났다.진골목에 살던 만석꾼 서상민의 아들로 태어난 석재는 시인으로,서예가로,화가로, 그리고 가야금과 바둑,의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식민지시대를 풍미하며 살다 갔다.흥선대원군이 석재의 천재성에 반해 당시 17세였던 석재를 운현궁으로 초대,함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전한다.시인 이육사가 한때 석재의 한약방에서 약배달을 하며 시서화를 배우기도 했다. ●실버들의 사랑방,미도다방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진골목에는 이른 아침부터 향수에 젖은 노인들이 하나둘 찾아든다.1981년 문을 연 미도다방은 하루 400∼500명의 노인들이 찾는 대구 실버들의 본거지.60∼70대 노인들은 젊은 축에 속할 정도로 80대 이상 고령자들이 수두룩하다.남산동 권입섭(101) 할아버지도 일주일에 서너차례 다방을 찾아 노익장을 과시한다. 노인들의 호주머니를 생각해서 차 한잔에 1500원,약차 2000원만 내면 과자도 주고 포도주도 한 잔씩 서비스한다.설에는 양말,보름에는 귀밝이술,동지에는 단팥죽,복날에는 수박을 돌리고 매년 5월8일에는 돼지 서너마리를 잡아 경로잔치를 열기도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경남 합천 고향가는 길에 두 번이나 이곳 다방을 찾았다.지역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들이 수시로 찾아와 노인들에게 인사를 한다. 요즘 미도다방을 찾는 노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경기 침체로 노인들도 호주머니가 얇아진 데다 조기 정년과 사업실패 등 자식들을 걱정하는 한숨소리가 다방을 가득 메운다. 주인 정인숙(52)씨는 “IMF 외환위기 전에는 하루 1000여명의 노인들이 찾아왔다.”면서 “요즘은 얇아진 호주머니 탓인지 오후 5시만 되면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정씨는 용돈이 궁한 노인들에게 공짜로 차를 대접하거나 돈을 빌려주고 단골 노인들이 세상을 뜨면 직접 문상가는 의리를 지키고 있다. 실버들의 입맛에 맞는 진골목식당도 진골목을 지키는 터줏대감.진골목식당 건물은 한때 코오롱 창업주 이원만씨가 거주했고 육개장·호박전·묵채·보리떡·콩나물밥 등이 별미다. 대구거리문화연대 권상우 사무국장은 “대구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진골목을 훼손하지 않고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친일청산 ‘온라인’ 대장정

    친일청산 및 친일인명사전 편찬기금모금을 위한 ‘온라인 봉화 대장정’이 시작됐다.국회에서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통과를 미루고 있는 데 대해 네티즌들이 반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9일 “1일부터 100일 동안 홈페이지(minjok.or.kr)에서 한반도 지도에 김구,이육사,윤봉길,유관순 등 애국지사의 이름이 명명된 100개의 봉수대를 설치하고 100명의 봉수꾼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육사 봉수대’는 시인 김지하,‘윤봉길 봉수대’는 양수철 서천문화원장이 봉수장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함세웅 신부,소설가 조정래·황석영 등도 참여할 예정이다.서우영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과거 전란이 났을 때 봉수대를 밝혀 위기를 알렸듯이 친일 과거사 문제 등 ‘역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에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입법이 무산되자 시민단체와 네티즌 등은 “역사적 진실규명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라며 정치권을 성토했다.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사무처장은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국회의 의도가 무엇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네티즌도 분노하고 있다.한 네티즌은 국회 홈페이지에 “국회의원 숫자 늘리는 데는 번개 같은 사람들이 민족문제는 ‘나 몰라라’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민족 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 소속 의원 등 7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국회의원과 네티즌이 함께 하는 민족 정기 번개’ 행사를 갖고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촉구했다.참석자들은 서대문 형무소를 관람하고 순국선열 위패봉안소에 국화를 바쳤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정호승씨 동화·산문집 동시 출간

    웬지 슬픔이 떠오르는 시인,그러나 그 빛깔은 우울하지 않고 내면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연노랑빛의 시인.대표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비롯,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에서 따스한 ‘슬픔의 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정호승이 최근 ‘스무살을 위한 사랑의 동화’(해냄)와 산문집 ‘정호승의 위안’(열림원)을 동시에 내놓았다. ‘스무살…’은 시인이 막 성인의 문턱에 들어서는 이들에게 보내는 문학적 메시지다.시인이 보는 20대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 것도 계산하지 않고 오직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기쁨만으로 충만한 때”다.시인은 이 ‘빛나는 시절’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1권에 실린 29편은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주제로한 작품들이다.고슴도치와 다람쥐의 애틋한 사랑,참문어와 풀문어의 죽음을 초월한 사랑 등을 징검다리 삼아 시인은 사랑의 애환을 빚어낸다.2편은 사랑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31편의 동화를 실었다.시인은 플라스틱 장미와 생화의 비유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거나(‘조화와 생화의 대화’),장미의 이름은 바꾸어도 향기는 지울 수 없다는 이야기로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장미의 향기’)을 넌지시 알게 해준다. 이처럼 ‘…동화’는 벌,개구리,검은툭눈금붕어 등 다양한 소재를 등장시키면서 막 어른이 되는 이들에게 쉽고 부드러운 형식으로 사랑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한다. 그러나 달콤한 사탕맛만 있는 것은 아니다.시인은 자주 매콤하고 아린 ‘고통의 힘’을 이야기한다.예컨대 바람의 시련을 견뎌야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음을 전하는 ‘은행나무’나 어린 매화나무에게 추위의 의미를 들려주는 엄마 매화나무 이야기를 인용한 ‘겨울의 의미’ 등에는 아픔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사랑이나 삶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는 따끔함도 전해준다. 이런 생각의 씨앗은 산문집 ‘…위안’에도 묻혀 있다.이미 발표한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에다 25편의 새 글을 보탠 이 산문집에서도 시인은 “고통이 없다면 그게 어디 인간이겠는가.”“사랑은 고통이다.”(135,136쪽)라고 ‘고통의 미덕’을 노래한다. 아울러 산문집은 시인의 내면 세계를 자상하게 보여준다.그 여정에서 자신의 시를 낳은 다양한 공간을 찾아다닌다.또 윤동주의 무덤을 찾아가서는 “시인은 죽어서도 시를 쓴다.”(135쪽)는 사실을 깨달았고,이육사의 삶 앞에서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 하는 문제는 어떠한 작품을 썼느냐보다도 더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138쪽)고 고백한다.그의 독백을 따라다니며 따스한 시인의 육성을 듣노라면 어느새 메마른 가슴이 촉촉히 젖어온다.“사람마다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을 지니고 있다면 이 글들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작은 위안의 말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종수기자 vielee@
  • 눈과 귀로 만나는 우리문학/매월 ‘북 앤드 송’ 콘서트 대중음악·연극등 곁들여

    ‘문학과 대중음악의 본격적인 만남?’ 한국민족음악인협회(민음협·의장 오용록)가 28일부터 매달 마지막 월요일 오후7시30분 서울 홍익대 근처 소극장 ‘테아트르 추’에서 여는 ‘북 앤드 송(Book & Song)’ 콘서트는 눈과 귀로 문학을 조명해 대중화하려는 야심찬 무대다. 그동안 문학과 대중음악의 만남이 간헐적으로 무대에서 이루어졌지만 대부분 시 위주인 데다,가수들이 시를 노랫말로 부르는 수준에 그쳤다.이런 경향과는 달리 민음협이 주관하는 ‘북 앤드 송’은 한국문학의 명작을 대중음악과 연극 등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다.첫 손님은 ‘손님’의 작가 황석영.‘장길산’‘무기의 그늘’ 등으로 한국 리얼리즘문학의 봉우리로 우뚝 솟은 황씨를 초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중간중간 노래를 들려준다.밴드 북적북적은 황씨가 오랜 구금끝에 내놓은 장편 ‘오래된 정원’과,영화와 가사로도 소개된 ‘삼포가는 길’을 노래로 옮겨 부른다.또 가극단 금강의 배우 원창연과 김지연이 ‘오래된 정원’의 주요 장면을 짧은 2인극 형태로 연기한다.‘바위섬’‘직녀에게’ 등 서정성 짙은 가요를 불러온 김원중이 관객과 함께 노래부르는 시간을 마련하며 가수 손현숙도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노래와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다른 초청자로는 새달 ‘눈물과 사랑의 시인’ 정호승을 비롯,고은 조세희 신영복 윤동주 이육사 공선옥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이들과 함께 호흡할 가수로는 국악가수 장사익을 비롯,양희은 전인권 등 내로라하는 대중가수들과 김가영 김원중 손병휘 등 민중음악 계열 포크뮤지션 등이 들어있다. 공연을 연출한 가수이자 작곡가인 김현성은 공연에 대해 “문학에 담긴 감동적인 메시지와 음악의 멜로디를 결합하는 독특한 자리”라면서 “이를 통해 문학과 음악이 함께 숨쉬는 상생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씨줄날줄] 청포도

    7월이다.번개가 번득이는 본격적인 장마철일 것이다.그래선지 첫날부터 무더위가 지독했다.회색빛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에 진땀을 뺐다.남녘에선 와중에 비까지 내렸으니 불쾌 지수깨나 올라 갔을 것이다.서울의 7월은 정말 어수선해 보였다.당장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청계고가 철거 공사가 시작됐다.그렇지 않아도 막히는 길이 더욱 막힐 것이다.엎친 데 덮쳤다고 대규모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무더위와 교통 체증,그리고 집단 시위.7월의 자화상일 듯싶다. 그러나 예전의 7월은 싱그러웠다.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었다.웬만한 시골집에는 청포도 몇 그루씩 있었다.앞마당에 뿌리를 박고 지붕으로 이어진 줄을 따라 뻗어 나며 앞 마루의 햇빛을 가려 주었다.푸른 포도알이 맺히고 익는 듯 마는 듯 푸름을 간직한 채 결실을 농축시켜 갔다.확실히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다.이육사 선생은 외견상 일제의 강점 상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안으로 안으로 조국 독립을 농축시키던 노력을 청포도에 비유했던 것 같다. 청포도는 하루하루를 살아 가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희망이요 꿈이었다.청포도 노래라면 ‘청포도 사랑’과 ‘청포도 고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라고 시작되는 청포도 사랑은 ‘오늘도 맺어 보는 청포도 사랑’이라고 끝을 맺는다.특유의 첫사랑을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쪽쪽 나는 청포도에 잘도 비유하고 있다.청포도 고향은 애틋한 망향의 노래다.‘청포도 익어 오는’으로 시작해 ‘청포도 송이송이 옛날이 그립구나’로 말을 맺는다.청포도는 고향과 희망을 일깨워 주는 우리네 공통 코드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각박하게 세상을 사는 것 같다.경기 침체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사사건건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각을 세우는게 무슨 시변(時變)인 것 같다.남의 의견을 따라 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법석이다.7월 한 달을 청포도의 계절로 만들어 보자.짐짓 패자가 되어 보자.한번쯤 나의 주장을 포기도 해보자.억지로라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 보자.7월은 청포도의 계절이다.청포도를 닮아가는 우리를 꿈꾸어 보련다. 정인학 논설위원
  • 근대문학 논쟁 주역의 삶과 작품

    권환 김기진 김영랑 김진섭 송영 양주동 윤극영 윤기정 이은상 최명익. 이들 10인은 얼핏 보면 지향한 세계관과 문학세계가 각각 달라 보이지만,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모두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문학 활동을 시작하면서 ‘근대문학의 씨’를 뿌렸다는 점에서 한 곳에서 만난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염무웅)가 오는 24,25일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연다.탄생 100년이 된 이들 10인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면서 우리 근대문학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여물었는지 살피는 ‘문학축제’다. 두 단체 주관으로 심포지엄과 ‘문학의 밤’,학술제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진행된다.기획위원인 황현산 고려대교수는 “현대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을 기리는 작업은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10인의 작가는 모든 장르에 걸쳐 골고루 활동한게 특징이어서 이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것은 우리 현대문학의 연원을 살피는 학술회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세번째인 이 ‘문학축제’의 주제는 ‘논쟁,이야기 그리고 노래’이다.세 주제어에는 이들의 문학 인생이 농축돼있다. 먼저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둘러싸고 전개된 치열한 논쟁은 근대문학사의 특징이다.일본 유학파 김기진을 비롯해 윤기정,송영,권환,양주동 등은 카프와 직·간접적 관계를 맺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소설가 김기진과 송영은 각각 ‘파스큘라’와 ‘염군사’라는 문인단체를 조직하면서 계급문학의 토대를 다졌다.소설가 윤기정은 아나키스트 논쟁으로 카프의 1차 방향 전환을,시인 권환은 1931년 카프의 볼셰비키화를 내걸고 2차 전환을 이끌면서 계급문학을 강조했다.이들의 시·소설·평론은 ‘문학보다는 삶’에 무게를 두었다. 이에 맞서 ‘문학’에 비중을 두었던 비(非)카프계열 작가들은 시조·외국문학·국문학 등 다양한 ‘이야기’(담론)를 펼쳤다.국민문학파의 이은상은 ‘시조 부흥론’을 주장했고, 해외문학파의 김진섭은 외국문학을 소개하면서 카프 계열의 작가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또 중간파를 자처한 양주동은 문단의 좌·우파를 통합하려 애썼고, 국문학자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한편 주옥같은 시어를 구사한 서정시인 김영랑과 동시 작가 윤극영은 ‘노래’의 단초를 만들었다. 24,25일 이틀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문학제의 심포지엄에서 김대행 서울대 교수가 당시 논쟁을 상세하게 정리한다.또 김영민 연세대 교수는 문학에 대한 당시의 치열한 논쟁이 남북이 분단된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논지를 펼친다.각론에서는 한양대 서경석 교수가 ‘카프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원광대 김재용 교수는 송영의 월북 이후의 활동에 대해 조명한다. 한편 25일 저녁 서울 안국동 ‘철학마당 느티나무’에서는 ‘문학의 밤’이 열린다.윤기정의 장남인 윤진화 전 아시아개발은행 전문 수석위원 등이 나와 ‘나의 아버지’코너에서 토크쇼 형식으로 작가들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이밖에 김영랑·권환의 시를 낭송하고 이은상과 윤극영이 지은 노래를 부른다. 근대문학의 주역을 기리는 문학축제의 내년 무대에는 시인 이육사,소설가 계용묵 박화성 이태준,평론가 조윤제,수필가 이양하 등이 오른다.기획위원인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팀장은 “내년부터는 종합문학제 성격으로 3월에 개최하고,이후 열리는 기념사업회,지방자치단체 주관의 개별 작가 기념문학제와 유기적 관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종수기자 vielee@
  • 오피니언 중계석/ 고교 국어교과서 현대시 홀대

    이희중시인 논문 ‘시인세계' 기고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누구나 시(詩)를 배우지만,학교를 졸업한 뒤 시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웬만한 규모의 서점에는 시집만 따로 모아 놓은 서가가 있지만,대부분 저급한 취미에 야합한 시집들만 살아남는다.도대체 왜 제대로 된 시가 홀대받는 시대가 왔을까.시인 이희중씨는 퍼즐을 풀듯 시와 관련된 간접지식들만 달달 외우는 시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아울러 현대시의 성과를 무시하고,광복 이전의 시만 다루는 교과서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계간지 ‘시인세계’에 실린 ‘새 교과서 수록시와 시 교육에 대한 소견’이라는 논문을 통해 바람직한 시 교육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보자. 새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시는 ‘노래의 아름다움’이라는 대단원에서 제각각 하나의 소단원을 구성하는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육사의 ‘광야’,정지용의 ‘유리창’과,다른 대단원에 이은 준비학습과 심화학습에 실린 이은상의 ‘가고파’,백석의 ‘여승’,박재삼의 ‘추억에서’,정인보의 ‘자모사’등 모두일곱 편이다. 이렇듯 소단원의 하나로 목차에 실린 현대시 작품 세 편이 모두 광복 이전의 작품이다.이웃장르인 소설에서 선정된 네 편 가운데 염상섭을 제외한 박완서,윤흥길,이청준의 작품이 모두 1970년대 이후의 작품인 사실과 뚜렷하게 대조적이다. 소설에 네 편을 할당하면서 시에 세 편을 할당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시 세 편은 소설 한 편이 차지하는 지면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광복 이후 60년 가까이 진행된 현대시의 성과를 홀대하고 있다는 점이 자명하다. 준비와 심화학습에 선정된 시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박재삼의 시만 광복 이후의 작품.대부분의 단원에서 최신의 매체 언어와 텍스트를 도전적으로 선정한 것과 비교해 볼 때,유독 시만 자유롭게 최근의 텍스트를 선정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교과서에 수록된 시뿐만 아니라,시 교육도 왜곡돼 있다.교육자는 학생들에게 시를 이해하도록 권유하기보다는,시험에 필요한 부차적 지식과 일률화된 타인의 감상 결과를 외우도록 요구한다.젊은 세대들은 이같은 교육을 통해 시에 대한근원적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종의 퀴즈나 퍼즐처럼 주제,제재,소재,구성,구절풀이를 줄줄이 외우는 시 교육은 시를 읽는 즐거움 자체를 앗아간다.시 교육이 이렇다 보니 교과서에 실릴 시를 고를 때 지식 항목이 명쾌하게 정돈될 만한 작품을 고른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는 일차적 목적은,학생들 스스로 시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다.훈련을 통해 시를 감상하고 즐기는 능력을 길러,사회에 나가서도 자신의 감각에 맞는 시집을 주체적으로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시를 여러차례 읽게 하고,소감을 부담 없이 말하게 하고,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도 논평하게 해야 한다.시에 대한 분석이나 해설보다는 시 속에 담긴 체험에 관련된 주체적 발언을 장려해야 한다. 성공적인 경우,자율적이고 주체적인 토론을 통해 한 편의 시에 대한 가능한 해석의 한 가지에 도달하게 된다.다음 단계로 교사는 부차적인 지식을 알려줄 수 있다.동시에 다양한 해석의 방법이 오히려 문학을 즐기는 옳은 길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습득된 지식은 시험에서도 강하다.제 스스로 시를 읽을 능력이 있으므로 처음 보는 시가 출제되더라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평생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시를 찾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주제,소재,어구풀이 등 간접 지식의 세례를 받는 시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대부분의 시는 싱싱한 모습으로 저 홀로 있다.교실을 떠나면 아무도 시를 해설해 주지 않는다.시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만든 음식만 넣어주지 말고 그들 스스로 음식을 만들게 하라.그것이 바로 일종의 지적 생존 교육이다. 정리 김소연기자 purple@
  • 이육사 詩 3편 다시 세상밖으로

    그동안 잊혀진 민족시인 이육사(1904∼44)의 시 3편이 50여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 찾은 시편은,서울신문(대한매일 전신)이 지난 48년부터 6·25 직전까지 발행한 자매지 ‘주간 서울’33호(1949년 4월4일자)의 문화면에 ‘작고 시인들의 미발표 유고집’에 게재된 것.‘山(산)’‘畵題(화제)’‘잃어진故鄕(고향)’등 이 3편의 시는 46년에 나온 이육사 시집은 물론 이후 간행된 ‘육사 시전집’에도 빠져 있다. 이 시편들이 전해지지 않은 까닭은 서울신문사 건물이 6·25와 4·19를 거치는 혼란의 와중에 화재를 당하면서 ‘주간 서울’등 소장자료가 소실돼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단에서는 전집에 실린 육사의 시가 고작 29편일 뿐만 아니라,그가 일제의 탄압과 회유를 뿌리치고 끝까지 고난의 길을 택한 드문 ‘문학지사’라는 점에서 시3편의 발굴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육사는 1925년 항일 투쟁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에 나선 이래 마흔살의 나이로 중국의 베이징(北京)감옥에서 숨질 때까지 일제에 대한 저항과 조국 해방의 꿈을 접지 않았다.이런 의지는 발굴된 시편들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 ‘잃어진 고향’에서 육사는 ‘망국’과 ‘망향’의 정서를 절절하게 표현했다. ‘제비야/너도 고향이 있느냐’로 시작되는 시는 ‘고향을 찾아가는 제비’를 통해 고향과 고국을 잃어버린 독립투사이자 저항문인의 심사를 노래한다. 시 중반부에 ‘불행히 사막에 떨어져 타죽어도/아 서러워 하지야 않을 것’이라고 회한을 토로하는가 하면,‘무리를 지어 날아가도 홀로 높고 빨라/언제나 외로운 넋’이라며 자신의 처지와 위치를 빗댄 정서를 드러낸다. 권영민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는 “육사가 지고한 자기 정신의 경지를 얘기하는 시로,특히 ‘그 곳에 푸른 하늘이 열리면/어쩌면 너의 새로운 고장 혹은 고향이 될 법도 하다’는 종결 부분은 분명히 ‘청포도’와 맥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다른 시 ‘산’에도 그의 힘겨운 역정이 잘 드러나 있다.‘바다가 수건을 날려서 부르고/난 단숨에 뛰여 달려서 왔다’고 시작되는 시는 ‘그래도 어진 태양(太陽)과 밤이면 뭇별들이/발아래 깃들여 오기에’라며 스스로 삶에서 위안을 구한다.이어지는 ‘나라와 나라를 흘러 다니는/뱃사람들이 부르는 망향가’라는 대목은 육사다운 ‘절창’이라는 것이 권교수의 설명이다. 육사의 시 가운데 특이한 형식을 보인 ‘화제(畵題)’는 암울한 도시 현실을 그린다.시에서 육사는 도시를 ‘조기(弔旗)를 게양한 것처럼 서럽’다고하는가 하면 ‘버려진 아이들의 차가운 꿈’등의 표현으로 당시의 도시 풍경을 묘사한다. 권교수는 “아마도 원고 상태로 발견된 것을 ‘주간 서울’이 입수해 게재한 것이 아닌가 싶다.”라면서 “특히 ‘잃어진 고향’은 짜임새와 긴장감이 매우 뛰어나,시력(詩歷)이 짧고 남긴 시편이 적은 육사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심재억기자 jeshim@ ■잃어진 故鄕-이육사 제비야 너도 故鄕이 있느냐 그래도 江南을 간다니 저노픈 재우에① 힌 구름 한쪼각 제깃에 무드면② 두날개가 촉촉이 젓겠구나 가다가 푸른숲우를 지나거든 홧홧한 네 가슴을 식혀나가렴 不幸이 沙漠에 떠러져 타죽어도 아이서려야③ 않겠지 그야한떼④ 나라도⑤ 홀로 높고 빨라 어느때나 외로운 넋이였거니 그곳에 푸른하늘이 열리면 엇저면 네새고장도⑥ 될범하이 ※시는 원문을 전재한 것이며 옛 표현의 뜻은 다음과 같다. ①고개 위에 ②묻으면 ③아,서러워하지 ④그야 한 무리로 ⑤날아도 ⑥너의 새로운 고장도.
  • 요즘 대학생 詩 읽지 않는다/ 詩 전문誌 ‘詩로 여는 세상’ 전국대학생 530명 설문조사

    햄버거와 단발성 미팅에 익숙한 요즘 신세대 대학생들에게 시(詩)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같은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시 전문지인 계간 ‘시로 여는 세상’이 최근 연세·한양대 등 전국의 9개 대학생 530명을 대상으로 해 ‘오늘의 젊은이들은 시를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요즘 애들,시 한편 제대로 못외운다.’는 ‘삭막한 소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입시지옥과 상업문화에 찌든 이들에게 시는 ‘빵’도 아니고 ‘칼’도 아니었다.시야말로 ‘영혼의 자양분’이라고 호소해 보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의정으로 포장된 당장의 ‘꺼리’였다. -읽히지 않는 시- 응답자의 97%가 한번도 시지(詩誌)를 구독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그나마 구독한 경험이 있다는 이들도 시 전문지가 아닌 ‘창작과 비평’‘문학사상’‘실천문학’등 종합문예지를 들었으며 일부는 엉뚱하게 교양잡지를 들먹인 경우도 있었다.외우는 시가 한편도 없다는 학생도 24%나 됐다. 위안이라면 이들이 아직도 시를 읽는다는 점이다.1년동안 6편 이상 시를 읽는다는 이가 48%나 됐다.한편이라도 읽는 사람까지 더하면 88%였다.나머지(12%)는 아예 시와는 담을 쌓은 경우였다.그래도 시문학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가능성이 보이는 대목이었다. -시의 효용성- 이들에게 시는 무엇일까.시의 효용성에 대해 대다수가 ‘마음을 감동시키고 읽는 즐거움을 준다.’(74%)거나 ‘경험과 삶의 지혜 혹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준다.’(21%)는 등 긍정적인 답을 했다.무의미하다며 극단적으로 평가절하한 응답자가 3%대에 머문 것도 위안이었다. 그러나 시를 읽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이유를 묻자 82%에 이르는 응답자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시에 대한 매력을 잃었다.’거나 ‘시보다 재미있는 게 많아서’라고 답해 즉흥·즉물적이며 표피적 재미에 탐닉하는 세태를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시가 어렵다는 지적(13%)도 만만치 않아 ‘쉽게 쓴 좋은 시’를 낳기 위한 시인들의 고뇌가 절실함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읽혀야 하는 시- 시인 치고 읽히지 않는 시의 비애를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역설적으로 읽히는 시를 자아내는 시인이야말로 시대 혹은 상황에 대해 투철하고 진지하다는 평가도 가능한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좋을까.’라고 다시 물었다.역시 절반이 넘는 사람들(51%)이 ‘쉽고 부담없이 시에 다가가기’를 원했다.‘아름답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야’라거나 ‘낭송회 등 독자와 함께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라는 이도 44%나 됐다.독자들은 냉철하게 ‘시와 유리된 세태’에 대한 책임의 많은 부분을 시인들에게 묻고 있었다. 시전문지의 문제점을 묻는 데서도 같은 패턴의 응답이 나왔다.무려 80%에 이르는 사람들이 ‘시가 어렵고 재미없다.’‘읽을 거리가 없다.’거나 ‘시지가 시인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고 응답한 것.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시인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묻는 질문에 윤동주 김소월 천상병 한용운 서정주 이육사 등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그밖에 중견 시인은 류시화 이해인 기형도 안도현 정호승 등이 고작이었다.확실히 대학생 독자들의 시의식은 제한적이었으며 관심도 교과서나 수험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경북,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경북에 유명 문인들의 기념관과 문학연구소가 잇따라 건립돼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15일 경북도에 따르면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본명 李源綠)선생의 기념관을 그의 고향인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건립한다. 올해 안에 착공,사업비 20억원을 들여 탄생 100주년인 2004년 완공할 계획이다.기념관은 1000㎡ 규모의 전통 한옥양식으로 꾸미고,주변에는 5000㎡ 규모의 ‘청포도 정원’과 ‘청포도 시비(詩碑)’,야생화동산 등을 조성한다. 동리·목월기념관도 40억원을 들여 경주시 보문단지 안에 만들 예정이다.경주시 성건동과 경주시 건천읍이 각각 고향인 김동리(金東里)와 박목월(朴木月)은 당초 생가 터에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이었으나 부지 매입이 어려워 보문단지에 통합기념관(부지 3300여㎡,연건평 1300㎡)으로 짓는다..올해 착공,2003년 완공된다. 지난해 말에는 소설가 이문열의 ‘광산문학연구소’가 영양군 두들마을 생가 옆에건립돼 문을 열었다.경북도는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이들 기념관들을 하나의 벨트로 묶어 문학 관광명소로 조성키로 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작고 문인 48인의 육필서한집’ 출간

    한국문학 연구 양태를 살펴보면 작가론보다 작품론이 훨씬 많고 특히 문단사(史) 자료 및 연구는 빈약하다.이는 공식기록을 중시해오고 인물에 대한 내밀한 기록을 남기기를 꺼려온 민족성에서 기인한 탓이라고 생각된다.이런 점에서 최근 출간된 ‘작고문인 48인의 육필서한집’(민연 펴냄)은근대 한국문단사 재조명과 작가 탐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한집’에 실린 48명의 작가들은 모두 1930∼40년대와해방공간 등 근대 한국문단을 주름잡았던 인물들이다.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파인 김동환(金東煥)을 비롯해 소설가 김동리 박종화 박태원 박화성 손소희 송지영 유진오이태준 이효석 정비석 최정희 한설야 황순원,시인 김광균김남천 노천명 모윤숙 박남수 박목월 박봉우 유치환 이영도 이용악 이육사 조지훈,그리고 평론가 백철 등 이름만 들어도 ‘아,그 사람’할만한 사람들이다. 이 편지들은 파인의 부인(신원혜·93년 작고)과 파인이 잡지 ‘삼천리’운영 시절 알게 돼 동거했던 소설가 (최정희·90년 작고)가 보관해오던 것으로,파인 탄생100주년을 맞아 그의 3남 영식(英植·68)씨가 책으로 묶어 펴냈다. 서한집에는 당시 문인들간에 주고받았던 단순한 안부편지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긴 하다.그러나 최정희를 중심으로 모윤숙,노천명,이현욱 등 여류 문인들간의 특별한 인간관계나 이육사처럼 문단교류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그리고 해방후 월북해 반세기 가까이 남한문단에서 거명조차 되지 못했던 월북문인들의 편지도 다수 포함돼 있어근대 한국문단 이면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책은 작고문인 48인의 육필서신 215통을 원본대로 영인,수록하였다.서한집을 펴낸 파인 3남 영식씨는 “가치있는 자료는 연구자에게 자유롭게 이용돼야 하며 이 편지들이 문화유산으로 후손들에 전승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신공개를 놓고 이복동생들과 한때 이견을 빚기도 했지만 결국 이 편지들은 발신자나 소장자보다는 연구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더러는 원고지에,또 더러는 백지에 휘갈겨쓰듯 써내려 간편지에서부터 발신자가이국의 여행지에서 몇 줄 소감을 적어보낸 엽서까지 서한들은 빛바랜 색깔의 세월만큼이나 시대 저쪽을 살다간 문인들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편지봉투에는 당시의 동네 이름 등 주소가 그대로인 데다더러는 발신자가 근무했던 기관의 이름이 박힌 것도 있어시대상 연구자료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난해한 편지의 원문을 편집자가 일일이 풀어 원문 밑에 병기하고,또 편지 내용중 오류를 바로잡거나 몇몇 항목에 주석을 단 점은 호화장정 못지 않게 이 책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8만원. 정운현기자 jwh59@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3)지조와 훼절

    파인과 최정희의 연애가 무르익어 갈 무렵에 강력한 방해자로 등장한 인물이 시인 김종한(金鍾漢,1914∼1944,일부 문학사전에는 1916년 생으로 되어 있으나 착오임)이었다.‘문장’지를 통해 정지용으로부터 “경쾌한 코닥 카메라 취미”의 “명암이 적확한 회화”란 평을 들으며 그는 1939년 보무도 당당하게 등단했다.이미 그는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한 경력에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1937)이란 후광까지 입었던 터라 정지용 사단인 조지훈·박두진·박목월·이한직·박남수와 더불어 시인으로서의 앞길이 창창한 유망주였다.“조금 더,단 1년만이라도 오래 살았더라면 ‘청록집’은 4인 시집이 되었을지 모른다”(大村益夫 ‘윤동주와 한국문학’ 중 ‘김종한에 대하여’)고 할 정도로 암흑기 그의 시는 돋보였다.고향이 파인과 같은 함북 경성(鏡城)이었다는 사실을상기하면 필시 배신자는 고향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을까. 김종한은 최정희에게 끈질기고 추잡하며 노골적이고 야성적인 글을 끊임없이 보냈을 뿐만 아니라 신당동 집으로 찾아가기까지 했던근대 한국문단 ‘스토커’의 챔피언급이었다.그는 삼천리사와 신당동 두 곳으로 여러 형태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사연은 노골적인 사랑의 고백이자,위협이고 유혹인데한글과 일어를 뒤섞어 썼다.“승녀(僧女)는 되지 마시기 바라오며”란 구절을 미망인에게 함부로 한 걸로 볼 때 그는진작부터 최정희에게 깊은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나는 고독한 시계입니다.당신은 내 안의 진자(振子)입니다”는 고백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고,“두 번 주신 엽서에 의하면생존본능의 정력이 소모된 듯한 표정이 보이는 고로 근심하고 있습니다.피차 일반이기도 하려니와,나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깨트려 가려는 자세를 강조하기로 결심했습니다.이것이 연애편질 수가 있다면 나는 좀더 행복자였을 텐데”에 이르면 매우 노골적이 된다.즐겁게 지낸다는 최정희의 편지에 대하여 애인이라도 생겼는지 걱정이라고 덤비는 김종한의 방자함은 한계가 없다.“좋은 동무를 얻었으니 반생이나 동반하려고 공상하지 않은 바도 아니었는데--벌써 절교의 자세를취하십니다 그려.크게 반성하시고 회신을 주시기 바라오며,동경은 오늘도 비가 옵니다.참,”이란 글로 미뤄 보면 어지간한 스토커였던 것같다. “애기(지원,어렸을 때 아란으로 부름.1942년)가 났다지요? 애기 어미는 아마 고양이가 낙태한 듯한 거룩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추측하오며,여하간 크게 축복지지(祝福之地).여무언야(餘無言也)”란 편지를 보낸 이 시인에게 아무리 사람 좋은 최정희인들 고분고분하진 않았을 터이다.이내 절교장을 받은 듯 “이제는 신사로 대접해 주세요”라는 애원조가되지만,“지금 떠나갑니다.명년 춘삼월,다시 뵈올 때까지,연애도 많이 하시고 소설도 많이 쓰시기 바라오며”란 야유가또 등장한다. 이렇게 끈질겼던 김종한은 대체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었던가.일본대학 예술과 학생 때부터 부인화보사(婦人畵報社)에 아르바이트로 나가다가 졸업(1939) 후 정식직원이된 그는 고구려 문인 을파소(乙巴素)를 필명으로 삼았다가‘달밭집’(月田茂)이라는 고향의 택호를 창씨개명으로 정한 괴짜였다.“순수하고 자아가 강한 만큼,서울에 나와서도 가는곳마다 충돌하여 문단 동료들로부터 백안시를 당했다.그는 1942년 도쿄로부터 귀국,‘국민문학’ 편집을 맡았는데,한 때(1943.5)는 경성일보 기자였던 유명한 재일동포 작가김달수(金達壽)와 종로구 사간동 같은 집에 하숙을 하며 가깝게 지냈다.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은 김종한을 일언지하에 친일파로 몰아댔는데 오무라 교수는 그가 싱가포르 함락을찬양했던 친일시를 예술성이 없다고 몰아친 용기나,“조선의 옷을 입고 조선온돌에 누워 있어도 훌륭한 황민이 될 수 있다”(좌담 ‘국민문학의 방향’)고 한 말을 주시한다.‘국민문학’에 1년3개월간 근무하다 사직한 그는 정지용을 비롯한 토착적인 민족정서가 강한 홍사용·백석·김동환·주요한·유치환 등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려 진력하다가 급성폐렴으로 죽었다.이루지 못한 연애처럼 그의 문학적 위상 또한아직도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다. 시인이라고 다 김종한처럼 경박하지는 않다.그 반대편에 이육사(李陸史)의 편지는 무게를 보탠다.이 강철의 투지를 지닌 대륙적 남성 시인은 절친했던 이병각(李秉珏)시인 부부가 폐병으로 눕자 아예 동거하며 주위의 만류를 듣기는 커녕자신이 피하면 친구가 병이 더 심한 줄 알고 불안해 한다며오히려 가까이 지냈다.1941년은 그에게 액운의 해였다.이병각과 부인의 장례를 다 치른 그는 부친상까지 당했다.너무쇠약해 졌음을 느끼고 여기 저기 요양을 다닌 건 1942년이었는데,항상 바빴던 그에게 여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건강의 악화 때문이었다.최정희에게 보낸 ‘무량사(無量寺)에서’란 편지는 이 무렵의 글일 터인데,대체 무량사란어떤 절인가.김시습이 난세를 피해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의탁했던 곳이다.“백제란 나라는 어디까지나 산문적이란것을 말해줍니다”는 함의는 무엇일까.신라의 지배계급 문학이었던 향가와는 달리 백제의 전설들은 오히려 백성들의 설움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뜻일까.“깨어져 와전(瓦)을 비치고 가는 가냘픈 가을 빛살을 이곳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는모양”이라고 나라 잃은 몽매한 백성들을 안타까워 하면서,“무량사만은 오늘 저녁에도 쇠북 소리가 그치지 않고 나겠지요”라고 문학인의 사명을 쇠북소리에 빗대어 토로하는 이 행동주의 시인의 심경을 꿰뚫어 보라. 이 삭막해 보이는 민족해방투사 시인에게도 연인이 있었던가.모든 선진 사상을 흡수 실천했으면서도 정작 가풍을 좇아 조혼으로 결코 행복스럽지 못했던 부부생활이었던 이육사. 신석초는 “그에게도 단 한 사람의 비밀한 여성이 있었다는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다”(신석초 ‘이육사의 인물’)고 귀띔했지만 그게 누군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너는 무삼 일로 사막의 공주같아 연지 찍은 붉은 입술을내 근심에 표백된 돛대에 거느뇨 /오--안타까운 신월(新月)”(‘해후’)이라는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를 닮은 시가바로 그녀를 그린 작품이라 전한다.비밀결사 대원답게 그는영원히 자신의 연인을 철저히 숨긴 채 친구가 옮겨준 폐병으로 쇠잔해져 자신이 동양의 파리라며 동경했던 도시 북경에서 옥사했다.지조와 사랑은 일치하는 것일까. 이육사와는 사뭇 다른 사랑의 실천자에 이효석이 있다.“이효석씨 하고는 그가 결혼하기 전부터 가깝게 사귀었다.…수송동 그 방에다 살림을 꾸미고 여기서 먹고 자고 했는데,얼마 안돼서 부인이 친정으로 가고 그 방에서 나는 칼도마질이랑 하는 여자를 목격할 수 있었다.…이효석씨는 ‘칼도마 위의 여자’를 ‘넥타이 갈아매는 기분’으로 사귀었다고 나중에 부인에게도,내게도 말했다”(최정희 ‘조광·삼천리 시절’)는 대목은 유명한 문단 야사의 한 토막이다.자신의 바람기까지 익히 알고있는 최정희에게 이효석은 마음 놓고 편지로 모든 아픔을 털어 놓는다.경성제대의 수재였던 그가 18세의 이경원과 결혼하자 호구지책으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했는데 입 빠른 평론가 이갑기(李甲基)가 “너도 개가됐구나”라고 모독하자 파인의 고향 경성 농업학교 교사로내려갔다가 평양 숭실전문 교수로 자리를 바꾼 게 1934년.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전문이 1938년 폐교당하자 대동공업전문학교로 옮겼는데,편지는 이 내역을 말해준다.메밀꽃 분위기보다는 장미,된장보다는 버터를 더 사랑했던 이 수재는 편지에서 보듯이 함북 주을(朱乙)온천을 끔찍히 좋아했다.길명지구대란 명승과 함께 68도의 라듐이 내뿜었던 전국 1위의 이휴양지가 이국취향의 유미주의자 이효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였다.아내가 죽은(1940) 뒤 실의에 빠진 모습이 편지에 역력히 나타나있는데,그 자신도 1942년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꼭 편지에 깊은 뜻이 담긴 것만이 중요하진 않다.화가 김환기(金煥基)의 풋감 그림이 싱싱한 편지는 내용에 못지 않게글씨 자체가 예술품이다.문인과 화가의 관계가 늘상 가깝듯이 김환기도 그림 재료를 사러 거리에 나갔다가 우연히 김동환·최정희를 조우했었는데,헤어져 전차에 올라 생각해 보니 최에게는 건강 안부를 놓쳤고,김은 화가 이종우(李鍾禹)로착각하고 인사를 했다는 고백이다.이 편지는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다.김환기가 이종우로 알고 인사를 한 뒤 헤어져서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동환’이었다는 사실은 뇌리에 최·김 둘이 자주 어울린다는 ‘소문’을 들었을 개연성도 있다는 묘미가 느껴진다.사람을 몰라 봤던 데 대한 사과의 편진데 이럴 경우 대개는 어물쩍 넘기는 게 오히려 예의일 듯 하건만 굳이밝히면서 다음에 만나면 오토밀이라도 사 드리겠다는 화가의 진솔성이 애교롭다.김환기가 눈치를 챘든 않았든 이 무렵은 파인과 최정희가 꽤나 깊어졌던 때일 것 같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파인아들 김영식씨 공개 작고문인 서한의 의미

    *학국문학사 빈공간 메워줄 귀중한 자료””. 한국문학사는 흔히 ‘겨울언덕에 홀로 서 있는 나목(裸木)’으로 비유된다.작가들에 대한 작품론은 풍성한 편이지만,작가들이 활동한 시대와 작가들의 개인적 여건 등을 알 수있는 연구는 미흡하기 때문이다.이는 서류 등 자료를 소홀히 하는 경향에다,사생활에 관한 자료를 노출하기 꺼려 하는 풍토 탓이다. 최근 김영식씨가 공개한 문인 48명의 사신(私信) 214통은 한국문학사의 이같은 ‘빈 공간’을 메워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학계와 문단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그동안 더러 문인들의 육필서한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수량이 적었다.아울러 특정문인에 한정된 것이어서 한국문단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반면 김영식씨가 내놓은 서한들은 수량도 방대하거니와 일제하 민족진영과 친일성향의 작가는 물론 해방후 월북작가 등 각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편지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오고간 것이 대부분이다. 김영식씨는 이달말 파인(巴人) 김동환 시인의탄생 100주년에 맞춰 기념행사를 갖기 위해 8년여전부터 각종 자료를모아왔다.이 편지는 자신이 소장해오던 것과 최정희 여사에서 태어난 이복형제들이 갖고 있던 것들이다. 김영식씨는 “문인들의 편지 속에서 선친과 관련된 ‘흔적’을 발견하고 반가움과 함께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면서 “가치있는 자료는 수요자,특히 연구자에게 자유롭게활용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편지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편지들은 첫 공개되는 것이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단교류기의 편린들로 당대의 문예사조,동호인관계,특정 문인의 개성,송수신자간의 내밀한 사연까지 고루 다루고 있다”면서 “이번에 밝힌 편지 말고도 60여통이더 있으나,관련자들 가운데 여럿이 생존해 있어 추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문인들의 사신은파인 김동환 시인이 부인 신원혜에게 보낸 32통을 제외하면,나머지 182통은 모두 문학사적 가치가 큰 ‘사료’들이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주로 소설가 최정희 여사인데,이는 그가 당시 파인 김동환 시인이 운영하던 삼천리사의 기자로근무하면서 문인들에게 원고청탁 등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파인 김동환 시인의 편지가 적은 것은 1946년 12월 당시 파인 가족이 서울 종로구 적선동 183번지(현 정부세종로청사자리)에 살고 있을 때 집에 불이 나 각종 자료 등이 모두없어졌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이 편지들에 대해 “우리 근대문학사 한 세기를 담아낸 기록”이라면서 “문인 몇 사람의 사신 차원을 넘어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 사료”라고 평가했다.임헌영씨는 또 “외국의 경우 문인들의 개인 전집에 작품은 물론 그가 주고받은 사신도 전부 수록하고 있다”면서“문인 인물연구는 물론 그동안 숨겨진 우리 문단사의 상당부분을 되살릴 수 있을 만한 자료”라고 말했다. 임헌영씨는 이 편지들은 ▲일제 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비(非)카프계열 문인들의 교류 파악 ▲남북한의 주요 문인 망라 ▲파인에서부터 학생시인 박봉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 포함 ▲최정희-모윤숙-노천명 등 당시 여류문인의 인간적 관계와 사생활 이해 ▲김남천의 문학비평 소개 ▲김사량의 편지를 통한 재일조선인 문단의 활동상 파악 ▲문단과 거의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육사의 문단 교류 등의 사실을 처음 또는 재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임헌영씨는 대한매일에 이 편지를 토대로 한 시리즈를 연재하기 위해 지난 한달여동안 기존 문단사와 비사 등을 확인하고 김영식씨로부터 가족사 등에 대해 청취했다. 정운현기자 jwh59@. ■파인 김동환·최정희는. 파인 김동환(1901∼1950년 납북후 사망 추정).그는 ‘국경의 밤’으로 우리 문학사에 굵은 획을 그은 작가이다.장편서사시와 민요시 창작을 주도했다.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가담하는 등 한때 계급문학에 관심을보였으나 주된 정조는 민족정신이었다.고전에 몰두해 가사문학 등 전통문학과의 접목을 시도하면서 민요시를 왕성하게 발표했으며,1929년에는 종합 대중잡지 ‘삼천리’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치열한 현실 의식의 부족으로 30년대 말부터 친일문학의 늪에 빠져들었고,1941년8월 친일단체를 망라한 ‘임전대책협의회’의 발족에 앞장서기도 했다.1931년쯤 ‘삼천리’에 입사한 최정희와의 ‘관계’가 1942년에 알려져화제가 된 뒤 43년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소설가 최정희는 1931년 ‘정당한 스파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주로 일제하 지식인 여성의 고통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인간문제’로 유명한 당대의 여류소설가 강경애가 민족의 수난과 정면대결을 시도한 작가였다면 최정희는 여성의 문제에 일찍 눈을 뜬 작가였다.‘지맥’‘인맥’‘천맥’ 등의 대표작에서 신여성의 진보적 의식이 당대의경제적 사회적 관습에 어떻게 짓눌리는가를 주로 다뤘다. 이종수기자 vielee@. ■편지 주인공들. 파인 김동환 시인과 최정희 여사가 보관해오던 편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우리 근대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거목’들이다. 이들 중에는 국권상실기에 문학을 통해 일제에 대해 저항의식을 표출하던 사람도,친일성향을 띠었던 사람들도 있다. 또한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한 사람들도 제법 많다.이는 우리 역사의굴곡을 여실히 보여준다.이들은 편지에서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거나,문학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모습을 보여주는 등 문인의 각종 고뇌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우선 편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국내에 비교적 자료가 적은 월북시인 및 작가들의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이들에대한 문학적 연구는 지난 90년대초 월북문인 해금조치로 조금씩 이뤄지고 있으나 사료가 적은 탓에,학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편지를 남긴 월북 시인 및 작가는 박태원·한설야·이태준·김남천·이현욱·안회남·박찬모·이용악·김사량 등이다.박태원은 말년에 중풍으로 전신불수,실명상태에서 ‘갑오농민전쟁’을 탈고해 ‘한국의 밀턴’으로 불린다.한설야는 북한에서 교육문화상·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을,김남천·이태준은 각각 문학가 단체에서 요직을 지냈다.또 이현욱은 임화의 두번째 부인으로,지하련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편지를 남긴 사람들 가운데는 친일성향의 작품이나 글을 남겼거나,친일단체에서 활동한 인사들도 적지 않다.김동환을 비롯해 백철·이헌구·정인택·박종화·유진오·정비석·노천명·모윤숙 등이 그들이다.박종화는 학병권유 글을 썼고,노천명은 일제의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는 시를 썼다. 다른 여러 인사들도 친일성향의 글을 몇 편씩 남겼다.그러나 ‘민족시인’ 이육사의 엽서 1통도 보여 눈길을 끈다. 최근까지 활동했던 소설가 김동리(95년 작고)와 황순원(2000년 작고)의 편지도 포함돼 있다.또 말년까지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한 설창수 시인의 편지도 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의 항일운동 공로로 지난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특히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이 최정희인지라 같은 여성인 모윤숙(22통),노천명(21통)등과 나눈 편지가 많다.이들 3명은 당시 문단에서 ‘쌈바가라스’(‘삼총사’의 일본식 표현)로 불릴 만큼 정이 도타웠다.편지에는 이들의 사생활과 개인적 친분관계가 숨김없이 드러나 자못 흥미를 끈다. 정운현기자
  • 교과서 문학 작품 “상당수 잘못 가르친다”

    우리 대부분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진정한 문학작품과 처음 만난다. 그러다 고교 졸업과 함께 ‘소설책’은 읽더라도 ‘교과서에 실릴’그런 문학작품은 더 이상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이렇듯 중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작품에는 문학의 고전·정전(正典)이라는 후광과 의미가 실려 있다. 그러면 중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은 과연 ‘실릴’만한 것들인가.또 교육현장에서 그 작품들을 제대로 가르쳐지는가.문학평론가이자 사범대에서 예비 국어교사들을 지도하는 이남호교수(고려대)는 최근 발간한 ‘교과서에 실린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현대문학)를 통해 이문제를 숙고한다. 이교수가 머리말에서 “중등학교 문학교육을 실질적으로개선하려는 목적을 갖는다”라고 밝힌 이 책은 제목처럼 중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26편의 현대작품(시 17,소설 9)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촛점을 맞추었다.이교수는 이를위해 각 작품마다 먼저 ‘배우기에 적절한 작품인가’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일일이 따져묻는다. 특히 ‘어떻게’부분에서 일선 국어교사들의 학습내용 및교과서와 참고서 해설내용의 부정적 측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앞서 ‘배우기에 적절한 작품인가’부분에서도 부정적으로 지적당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효과적인 문학교육이되기 위해서는 우선 대상 작품이 문학적으로 휼륭하고,학생 수준에 맞으며,학생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윤동주의 ‘참회록’은 그의 ‘서시’나 ‘별을 헤는 밤’에 비해 내용이 모호하기 때문에 고교생에게가르치기에 적당하지 않은 작품이며,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도 시의 묘미나 감동을 전달해 줄 만한 요소가 적은편이라 교과서에 실을만큼 휼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교수의 견해다. 이런 지적은 박용래의 ‘겨울밤’,김동명의 ‘파초’,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등의 시 작품과,김동인의 ‘붉은 산’이나 이범선의 ‘학마을 사람들’등 몇몇 단편소설에도 해당된다.교과서에는 문학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충분히전달하는 휼륭한 작품을 수록해야 한다는 전제에 미달된다는 것이다. 물론 교과서에는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서정주의 ‘추천사’,유치환의 ‘생명의 서’,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김유정의 ‘동백꽃’,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등 중고생들이 꼭 읽고 배워야할 시·소설이 많이 실려 있다.그런데 교사와 교과서·참고서가 상당수 작품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해마지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어교사들은 교과서와 참고서의 내용에전적으로 의존하는데,바로 그 내용의 많은 부분이 부정확하거나 틀린 해설이며 쓸모없는 지식이어서 학생들의 이해와감상을 오히려 방해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문학교육에서는 무엇보다 작품 자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감상이 필요한데도 이를 무시한 채 도식적인 지식만을 주입한다.예를 들어 이상의 ‘거울’에 관해서 많은 고교 문학교과서와 참고서들은 ‘기이한 행적을 보인 작가의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식으로 해설한다.그러나 ‘거울’은 아주 상식적인 작품이고 고교생 수준에서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시로,학생들은 이작품으로 시적 사유와 문학적 상상력을 배우고 즐길 수 있다고 저자는 반박한다. 또 작품에는 없는 내용을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교사와 해설이 많는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육사의 ‘청포도’등이 그런 수난과 오해의 좋은 예라는 지적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김수영의 ‘풀’,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등도 교사나 교과서의 추상적이고 견강부회하는 설명이 시의 맛을 ‘가게’하고 만다는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쓴 좋은 작품에는 무조건 ‘일제에 대한 항거’나 ‘조국 광복에 대한 열망’등의 주제의식을 상투적으로 부여하는 버릇은 고쳐 마땅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김재영기자 kjykjy@
  • 봄나들이 가볼만한 곳들

    꽃샘추위 사이사이 마치 시샘하듯 눈발이 날리기도 하지만천하장사 항우라도 다가오는 봄을 어쩌진 못한다. ‘봄은 봄이로되 봄이 아닌’ 이때 문학과 드라마,영화에등장했던 명소들은 어떨까.한국관광공사가 이런 명소로 소개한 8곳 가운데 한 곳을 골라 봄나들이를 나서는 것도 괜찮을듯 싶다. ◆제주 우도 가장 먼저 봄이 찾아든다는 제주도,그중에서도본섬보다 더 빨리 봄이 깃드는 맏형격의 섬.이정재와 전지현의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을 담았던 영화 ‘시월애’의 촬영장소로 유명하다.널따란 풀밭과 하얀 해변 풍광 속에 누구나영화 주인공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다.파란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산호 모래해변,음악회를 열 정도로 넓은 콧구멍굴,성산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우도봉 등 명소가 많다.우도 면사무소 (064)783-0004◆당진 필경사 민족의 계몽자 심훈 선생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옛 가옥으로 상록수를 집필한 장소로도 유명하다.송악면부곡리 상록학원 앞 얕은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서해대교 개통으로 훨씬 가까워졌다.당진군청 문화공보실 (041)350-3221 ◆군산 월명공원 ‘탁류’로 유명한 채만식 선생의 문학비가있는 곳으로 호남의 관문인 군산시의 모습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공원 아래 월명동,영화동 일대에서는 일제시대 흔적을 엿볼 수 있다.군산항 횟집촌과 가깝고 벚꽃잔치로도 이름높다..군산시청 문화관광과 (063)450-4554◆보성 태백산맥 탐방 벌교읍내와 존제산 일대에는 조정래의대하소설 ‘태백산맥’ 무대가 흩어져 있다.다른 소설 무대와 달리 소설에서 표현된 곳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벌교역에서 출발,매일장터를 거쳐 소설 속에 등장했던 남원장,정도가네,금융조합,횡계다리,김범우의 집,소화다리,서민호 야학당,현부자네 옛집과 벌교 철교 등을 차례로 구경하며 민족의 아픔을 곱씹어본다.보성군청 문화관광과 (061)852-2181 ◆속초 아바이마을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실향민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다.최근 화진포 갈대밭,도예작업실 핸드메이드 등과 함께 새로운 관광지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갯배’라고 불리는 철선을 타고 마을로 들어가는 색다른경험을 할 수있다.속초시청 관광홍보계 (033)633-3171 ◆제천 태조왕건 촬영지 산중호수 충주호의 아름다운 풍광을배경으로 드라마 초반에 자주 등장했던 벽란도 포구 세트가있다.근처의 청풍문화재단지와 충주호 유람선 등을 함께 돌아보면 서정적인 풍광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제천시청 문화관광과 (043)640-6282 ◆안동민속촌과 안동호 안동댐 수몰지역의 문화재와 가옥을모아놓은 안동민속촌 입구에는 이 지역 출신의 저항시인 이육사 시비가 세워져 있다.여기에도 주로 해상전투신을 촬영한 ‘태조 왕건’ 촬영세트가 있다.임하댐도 놓쳐서는 안될코스.안동시청 문화관광과 (054)851-6114◆마산 산호공원 마산의 상징이랄 수 있는 무학산과 마산만장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용마산 중턱에 자리잡은 산호공원은시(詩)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이은상의 ‘가고파’, 이원수의 ‘고향의 봄’,이일래의 동요 ‘산토끼’ 등 마산이 낳은문인들 작품을 이곳 풍광과 함께 감상하는 맛도 별나다. 마산시청 문화공보실 (051)240-2114임병선기자 bsnim@
  • 안동대 김희곤교수 ‘…이육사 평전’ 눈길

    최근 미당 서정주의 타계로 시인의 사회적,역사적 평가문제가 재론된 바 있다.문단에서는 미당의 문학적 업적을 들어 칭송·추모 분위기가 주류를 이뤘다.반면 역사학계와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의 친일행적과 독재정권 찬양을 이유로 비판적 잣대를 들이댔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 가운데는 미당이 섰던 자리와 반대편,즉독립운동에 투신한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인인 만해 한용운,‘서시’의 윤동주,‘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이상화,‘상록수’의 심훈과 함께 이육사도 그 반열에 들어 있다. 최근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안동지역 출신의 민족시인 육사(陸史) 이활(李活,본명 源祿·1904∼1944)의 일대기를 기록한 ‘새로쓰는 이육사 평전’(지영사)을 펴냈다.이 책은 육사의 출생에서부터성장환경,순국에 이르기까지를 현장답사와 증언·자료를 토대로 쓰여졌다.특히 이 책은 육사를 문인보다는 일제하라는 특수상황 하에서투철한 역사의식으로 살다간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저자는 독립운동사전공의 역사학자로 육사 관련 학술논문을 이미 여러 편 발표한 바 있다. 저자는 우선 이 책에서 육사 관련 기존 기록이 오류투성이임을 지적한다.육사의 고향인 안동댐 입구에 세워진 ‘광야’시비에는 ‘육사가 북경의 사관학교와 북경대학 사회학과를 다녔고,정의부에 가입했다’고 적혀 있다.이 글은 이 지역출신 후배문인인 조지훈이 쓴 것이다.이에 대해 저자는 “확인결과 육사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 출신으로,광둥(廣東)의 중산(中山)대학에 다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저자는 “(육사의) 40년 생애를 재현하는 데 오히려 오류가 더 많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며 “이는 문학적 접근에만 치우친 연구경향과 절대적인 자료빈곤이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한편 저자는 육사 관련 오류를 바로잡는 성과 이외에도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더러 새 자료를 공개하기도 했다.우선 육사가 자신의 이름을 아명인 이원삼(李源三)에서 이활로,다시 1929년 대구감옥에서나온 후 ‘대구 二六四’로,또 육사(戮史)를 거쳐 육사(陸史),이육사(李陸史)로 사용하게 된 경위를 소상히 밝혔다.또 1934년 서대문형무소 투옥시절 육사의 신원카드(사진 포함)와 신문조서 등도 처음 공개했다.특히 육사의 친척으로 베이징에서 같이 감옥에 있으면서 그의말년을 지켜본 이병희(李丙禧·83·서울 거주·건국훈장 애족장)씨의증언을 토대로 육사의 최후를 재구성한 것도 돋보인다. 저자의 머리말 첫 구절이 사뭇 인상적이다.‘일제강점기에 친일하지않은 문인을 찾기 힘든 반면 친일한 조선어 학자를 만나기도 어렵다’.저자는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독립운동·항일투쟁을 벌인 문인을 찾으라면 너무나 어려운 과제”라며 “이 물음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육사”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3)의열단 자취 남은 南京·廣州

    광복군 제3지대가 있던 안휘성 부양(阜陽)에서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 강소성 성도 남경에 내렸다.중경·무한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찜통’이라 부른다더니 아침부터 사우나실처럼 후꾼후꾼했다.양자강이 가까워 고온다습하기 때문이었다.남경은 수운의 이점이 있어 예로부터 강남의 중심 구실을 했고 삼국시대에 손권이 오나라를 세운이래 10개의 왕조가 왕도로 삼은 곳이다.근대에 와서도 태평천국의봉기군이 청나라 정규군과 서구열강에 대항해 싸울 때 거점으로 삼았으며 신해혁명 이후 손문도 중화민국의 임시수도로 삼았다.중일전쟁때도 임시수도였으며 일본군에 의해 양민 30만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국민당 정부의 임시수도 시절,우리 선열들의 항일운동도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취재팀이 먼저 찾은 곳은 남경대학.그곳에 항일전쟁사의 걸출한 인물 여운형(呂運亨)과 김원봉(金元鳳)이 다닌 금릉(金陵)대학 캠퍼스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조국에서 3·1운동이 실패하자 무력항쟁 밖에 없다고 생각한 김원봉은 금릉대학을 중퇴하고 서간도로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갔다.그러나 그곳의 교육은 중국 명문대학을 다닌 그를충족시키지 못했다.그는 길림으로 가서 저 유명한 암살 폭파 비밀결사인 의열단을 만들고 수많은 테러공작을 감행해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이때 그의 나이는 약관 21세였다. 30대 장년이 되자 김원봉은 의열단의 테러공작을 지양하고 군대조직을 계획했다.뒷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였다.그는 스스로 광동성 광주(廣州)로 가서 황포군관학교를 나와 조선혁명간부학교를 만들었다.이 학교출신으로 유명한 이는 뒷날 태항산에서 전사한 윤세주와 진광화,그리고 민족시인 이육사이다.김원봉의그런 활동은 거의 남경에서 이루어졌다.황포군관학교 동기생으로 중국의 첩보기관 삼민주의역행사(三民主義力行社)의 대표였던 등걸(騰傑)이 그를 도왔다. 남경대학은 우리 대학들과 달리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이 넓고 녹지가 많아 여유로워 보였다.플라타너스·팽나무가 지천이었다.시 인민정부가 발행한 백서를 보면 가로수가 40만 그루라던가.금릉대학 캠퍼스는 예스러운 품격을 지닌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푹신한 네모꼴의 잔디밭을 두고 3동의 건물이 둘러앉아 있었다.그 앞쪽에 뚝 떨어져서 대례당(大禮堂)이란 간판이 붙은 회당 건물이 있었다.민족혁명당을 창당한 곳이 이 대학의 강당이라 했으니 이것이 틀림없을 듯싶은데 전면이 일부 개축되어 있다. 남경대학을 나온 취재팀은 얼음이 섞인 생수병을 들이키며 의열단원들이 묵었던 명양가(鳴羊街)와 화로강(花露崗)을 찾아나섰다.한상도교수의 논문 ‘재중한인군관학교연구’를 보면 조선혁명간부학교는 1932년 10월20일 남경교외 탕산(湯山)의 선사묘(善祠廟)라는 사원에서 개교했고,교관들은 남경성내 명양가 호가화원(胡家花園)에서 묵었다.골목을 더듬어 찾아가보니 명양가와 화로강은 이어진 골목이었다.김원봉에게 호의적이었던 부호 호대해(胡大海)는 자신의 장원 호가화원에 김원봉을 식객으로 묵게 했고,김원봉은 자신의 의열단 동지들을위해 근처 화로강에 머물게 하면서 혁명간부학교 교관들의 숙소도 마련했을 것이다. 어림짐작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컸을 듯한 호가화원은 퇴락된 채 빈민들이 살고 있었다.그 옛날 주인이 손님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음직한연못가의 팽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다.문득 ‘지절시인’ 이육사가 떠올랐다.그는 조선혁명간부학교 1기생 명단 26명 가운데 육사(陸史)라는 가명으로 실려있다.그가 이 연못에서 올곧은 의지로 시를 썼을 것 같은 생각에 이곳저곳 두리번거렸다.연못가에서는 얼굴에 여유로움이 가득한 노인이 낚시질을 하고,해오라기 한 마리가 긴 부리로우렁이를 찍어올리고 있었다. 남경에는 백범 김구가 만든 한국특무대독립군 본부도 와 있었다.‘김구구락부’로 더 알려진 테러공격 비밀결사였는데 목장영 고안리(木匠營 高安里)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호가화원의 연못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이 목장영이 가까운 곳에 있다고 일러주기에 찾아갔으나 새 아파트단지 입구에 붙은 ‘목장영’이라는 간판을 본 것만으로만족해야 했다. 취재팀은 저녁 비행기로 광동성 광주로 날아갔다.우리 항일투쟁사에 큰 몫을 한 도시이기 때문이었다.광주 백운(白雲)공항에서택시를타고 달리는 동안 필자는 중국의 도시라기보다는 유럽에 온 느낌이었다.네온사인이 현란하고 거리를 질주하는 깨끗한 중형차들이 질서있게 차선을 지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세련되어 보였다.건물의 외형까지도 첨단화된 미를 뽐내고 있었다.하기야 북경,상해에 이어 중국 3대도시이며 1인 평균 생산액이 전국 1위인데다 백년전부터 중국내륙으로 들어가는 교통요지였고 홍콩과 가깝다보니 그럴 것이었다. 광주는 중국의 역사에서 혁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손문이 혁명을일으켜 ‘호법(護法)정부’를 세웠고 공산주의자들은 광주봉기를 일으켰다.광주봉기를 배경으로 쓰여진 앙드레 말로의 소설이 ‘정복자’이다.우리의 항일투사들도 이곳에 와서 크고 작은 자취를 남겼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황포군관학교(본래의 이름은 육군군관학교)이다.수많은 우리 항일투사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황포군관학교는 1924년 1월 손문이 국민당과 공산당을 합작한 결과탄생했다.국민당측의 장개석이 교장을,공산당 측의 주은래가 정치주임을 맡았는데 그로 인해 학생들도 양분되었고 그곳에 재학중이던 한인청년들도 뒷날 임시정부와 광복군,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으로갈라서는 결과가 되었다.그들의 입학은 1924년의 3기생들로 부터 시작되는데 유명한 이는 박효삼(朴孝三)·왕자량(王子良)·김원봉 등이다.그밖에 남경과 무한에 있던 분교를 졸업한 이도 많다. 황포군관학교에는 우리 교관요원들도 있었다.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가 러시아 유학을 하고 돌아온 양림(楊林.본명 金勳),1922년 의열단원으로 상해 황포탄 의거를 일으켰던 오성륜(吳聲輪),뒷날 만주에서 동북항일연군 간부로 활동한 최용건(崔庸健),의열단원이었다가 조선의용대 간부로 활동한 박효삼,이빈(李彬),양달부(梁達夫),김원봉,채원개(蔡元凱)등이다.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金山. 본명은 張志樂)도 교관이었다고 하나 연구가들의 실증은 없다. 취재팀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군관학교를 찾아갔다.광주시를 관통해 흐르는 주강(珠江)의 제방을 따라 보리수가 싱그럽게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대절한 자동차를 페리에 싣고 20분쯤 걸려 도시의 동남쪽에 있는 장주도(長州島)로 건너갔다.섬 거의 전체가 해군부대 주둔지였는데 황포군관학교는 옛날의 모습 그대로 보존,복원되어 있었다.우리나라의 중고생들이 극기훈련,야영훈련을 가듯 남녀 학생들이 입영훈련을 받고 있다.김원봉이 생도시절 중국인 생도 등걸과 우정을 쌓으며 토론을 한 곳은 어디일까.필자는 그런 상상을 하며 강의실,생도 숙사,강당,연병장 등을 돌아보았다.발길을 돌려 중산대학을 찾아갔다. 아나키스트였던 김성숙(金星淑)과 김산이 졸업한 중산대학은 필자가 돌아본 십여개의 전통있는 중국의 대학들 가운데 건축미가 가장 돋보였다.새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옛날 것들인데 깨끗하게 보존되어고상하면서도 웅장한 품격을 뽐내고 있었다. □광주(중국 광동성)■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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