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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민족 역사 사랑 중진 인사들 나섰다

    역사문제에 관심이 많은 중진급 인사 40여명이 모여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었다.이성무(李成茂)국사편찬위원장의 발의로 시작된 이 모임은 지난 11일 발기인대회를 가진 데 이어 29일 오전 7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조찬을 겸해 창립총회를 가졌다.회장에는 이웅근(李雄根)동방미디어 회장이 선출됐다.이회장은 “조선왕조실록,고려사는 물론 ‘사상계’에 이르기까지 5,000년 한국사를 CD롬에 담는 작업을 하면서 역사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모임에는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했다.학계·문화계인사로 김종규(金宗圭)삼성출판사 회장,김경희(金京熙)지식과산업사사장,김시우(金時佑)독립기념관 사무처장,신봉승(辛奉承)한국역사문학연구소장(작가),이수홍(李秀洪)전국문화원연합회장,이존희(李存熙)서울시립박물관장,이종덕(李鍾德)세종문회회관 사장,조규향(曺圭香)디지털대 총장 등이 회원이다.언론계 인사로는 신우식(申禹植)전 서울신문 사장,이제훈(李濟薰)중앙일보 사장,박현태(朴鉉兌)전 KBS 사장,박용정(朴勇正)전한국경제 사장(아이티맥스 회장),김삼웅(金三雄)대한매일 주필,권영빈(權寧彬)중앙일보 주필,박석흥(朴錫興)전 문화일보 편집국장,김종심(金種心)동아일보 출판국장 등이 포함됐다.신윤식(申允植)하나로통신 사장,원종성(元鍾盛)동양엘리베이터 회장,조건호(趙健鎬)무역협회 부회장 등 재계 인사와,김병일(金炳日)기획예산처 차관,김덕배(金德培)중소기업특위 위원장,조선제(趙宣濟)교원공제회이사장(전 교육부차관),조정무(曺正茂)·황우여(黃祐呂)국회의원 등 정관계 인사도 참여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11기 소방간부후보 졸업식

    “간부후보생 모두 큰 충격과 슬픔을 가누지 못했습니다.순직하신 선배 소방관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을 이어받겠습니다” 8일 오전 충남 천안 중앙소방학교 대강당,11기 소방간부후보생 졸업식장은 숙연한 분위기가 장내를 압도했다. 40명 졸업생들 저마다 최근 서울과 부산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선배 소방관들을 마음속 깊이 추모하면서 새로운 출발의의지를 다졌다. 대통령상을 받은 이웅기(李雄紀·33) 소방위는 “많은 선배들의 피땀으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있는 소방공무원의 길을 시작하게 돼 어깨가 무겁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이례적으로 이날 졸업식에 참석한 이한동(李漢東)총리도 치사를 통해 “국민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소방관들은 모든 공직자들의 표상”이라며 소방공무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이 총리는 “소방공무원들이 더욱 나은 여건 속에서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데 온 정성을 쏟겠다”며 업무환경 개선을다짐했다. 최여경기자 kid@
  • 觀音의 바다로 또 다른 길 열리고

    산자락 곳곳에 부처님 자비가 깃들여 있다.새벽 6시,경남 남해군 상주에 있는 금산(錦山) 보리암에 올랐다.여명이 트기직전 희뿌연한 등산로를 밟다가 벽력같이 아침을 맞았다.시간이 흐를수록 길은 또렷해지고,부처에 이르는 길이 이러지않을까 싶다.사실 보리암에 이르는 좀 더 쉬운 길도 있다.남해읍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복곡리에서 오르는 길이다.하지만 보리암과 금산의 참맛을 즐기기에 복곡리 코스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자동차나 암자에 이르는 셔틀버스가 상념을가로막는 탓이다.그건 그렇고 한참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상주해수욕장 불빛이 어서 오르라 성원한다.해발 681m에 불과하지만 금산 오르는 길은 수월치 않다.가파른 길을 오르느라1시간 땀을 한움큼 쏟아내자 떡하니 쌍홍문이 가로막는다. 그제서야 금산의 영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맨 왼쪽부터 상사암,촉대봉,향로봉,좌선대,제석봉,일월봉,장군암 등이 얼굴을 비친다. 금산 38경.이 좁은 산자락에 영봉과 기암괴석,볼거리들이너무 즐비해 38경이란 숫자를 붙였다. 쌍홍문은 그 제1경.두갈래콧구멍을 지닌 굴이다.마치 천계(天界)에 이르기 위해 고행을 통과의례로 치르는 선승(禪僧)처럼 보리암에 이르기 위해선 쌍홍문을 거쳐야 한다.쌍홍문위 오른쪽으로 용굴과 음성굴이 버티고 있다.보리암 관음상과 삼층석탑이 자리잡은 암봉 바로 아래다.용굴은 정말 용이웅크릴 수 있을 만큼 길고 널찍하다.굴의 안쪽으로 들어서자 불자들이 켜놓은 초들이 그득하다. 보리암에 올라 숨을 돌리니 다도해 쪽빛바다가 일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관음상이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승치,삼서,목도 등 섬 7개가 점점이 떠있다.그 옆으로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북적이는 상주해수욕장의 고운 모래결과 송림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그 사이에 사람들의 공간,속세가 있다.관세음보살은 그 북적이는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비껴 서있다. 3대가 음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보리암의 장엄한 일출은이틀째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황사로 인한 해무 탓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희한하게도 중국 진시황의 흔적이 보여 눈길을 끈다.통영 소매물도에는 ‘서불과차’(徐市過此)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는 글씽이굴이 있다.지금은 글씨를 찾을수 없다.세월에 씻겨졌다고 주민들은 말한다.그러나 이곳 금산 자락 이동면 양아리에는 ‘서불과차’ 글씨가 또렷이 새겨진 바위가 남아있다. 보리암 뒤 능선에 오르면 이제 영봉들 머리를 밟아볼 차례다. 영봉마다 금산과 바다는 그 얼굴을 달리한다.새벽녘과 한낮,초저녁의 얼굴이 모두 다르다.이 만변지화(萬變之化)를 굽어보는 데 한나절로도 빠듯하다. 사자봉에서 금산의 뒷자락으로 800m를 내려가면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한참을 살았다는 부소암이있다. 바깥 세상에 완전히 등 돌린,바람조차 속살거리는 그곳에 지금은 한 도인이 살고 있다. 금산이란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남해에서 치성을 드린 뒤 왕위에 오르면 비단으로 산을 두르겠다고 약속한 데서 유래했다.그 약속을 못 지켰으니 이름만이라도 금산으로 바꿨다는전설이다.원래 이름은 원효대사가 붙였다는 ‘보광’. 관세음보살상 옆에는 원효대사가 683년에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있다.금산에 오르는 이들은 나침반을 꼭 지니고 간다.삼층석탑 앞에 놓으면 나침반 바늘이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기때문이다.그 가리키는 방향에 속세가 있다. 금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관세음보살 앞에서 세상사 모든 고행을 짊어진 듯한 여인네의 천배(千拜)가 보인다.아침 7시쯤부터 지켜보다 11시를 맞았으니 벌써 4시간.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 뒤 다시 두손을 가지런히모아 무릎에 포갠 뒤 일어서는 기도가 계속된다. 무엇이 저 여인을 경건한 신앙의 경지에 몰아넣은 것일까.사념이 깊어질수록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선(禪)의 경지가 밟힌다. 남해 글 임병선기자 bsnim@. *여행 가이드. ■가는 길 여러갈래 길이 있다.남해의 관문격인 하동에 이르기 위해 구례 순천쪽에서 들어왔다가 돌아올 때 하동을 거쳐진주 진교리쪽으로 가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호남고속도로 익산나들목을 나와 전주 남원 구례 하동을 거쳐 남해읍에 이른다.낮이라면 봄꽃들이 몽우리를 터뜨리는 861번 지방도로와 19호 국도를 타고,밤에는 구례에서 순천으로 나와 남해고속도로를 타다 하동 나들목으로 나오면 운전이 편하다. 남해고속도로 곤양 나들목을 빠져나와 진교 교차로에서 1002번 지방도로를 탄 뒤 쭉 남하해 노량교차로와 남해대교를 건너는 방법도 있다. 비행기로 사천공항에 내린 뒤 삼천포항으로 이동,남해 공용여객터미널(055-864-7102)에서 남해 창선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배를 탈 수도 있다.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하루 4차례(오전9시50분·11시30분,오후 1시30분·3시40분) 운행,6시간 소요. 요금 2만4,000원.남해공용터미널에서 상주 미조행 버스를갈아타고 금산주차장에서 내린다. 매일 오전 6시20분 부산역 아리랑관광호텔 옆에서 출발하는버스가 있다.왕복 1만8000원.보리불자모임 051-819-9990남해 창선면과 삼천포항을 잇는 연륙교가 연말에 개통된다. 남해군청 문화관광과(055-860-3228)에선 관광버스를 대절해오는 단체 여행객들을 위해 관광도우미로 나선다.미리 연락하면 무료로 가이드받을 수 있다. ■먹거리·잠잘곳 남해터미널 6층에 프라자모텔(055-864-7584)등이있다.금산 일출을 맞고 싶다면 상주해수욕장에 있는여관이나 금산입구의 재두장여관(055-862-6022)이나 이동면복곡리의 통나무산장(055-863-0413)을 이용하는 게 좋다. 상주의 단점은 먹거리에 있다.그래서 답사여행단체 등에서는식사를 순천 낙안읍성 등에서 해결하기도 한다.남해대교 아래 노량 횟집촌이 즐비하다.
  • [21세기 산업현장을 가다] ‘조선 빅3’ 호황 무한질주

    * 거대한 선박전시장 현대중공업 탐방. 조선업계는 요즘 호황이다.국내 조선업체들은 지난해 세계시장의 51%인 19억5,000만GT의 수주실적을 올렸다.올해도 45%의 시장점유율이 예상된다.‘잘 나가다 보니’ EU(유럽연합)와 통상마찰까지 불거졌다. 저가수주 극복이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그럼에도 조선업은 다른 산업현장과 달리 호황 속을계속 질주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조선왕국으로 우뚝 선 중심에는 현대중공업이 자리잡고 있다. 울산광역시 동쪽끝 방어진 앞바다를 끼고 있는 현대중공업에 들어서자 입구부터 단체관광객들과 외국 선박업체 관계자들로 북적댔다. “왜 이렇게 방문객이 많으냐”고 묻자 “현대중공업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지금까지 집계된 방문객만도 1,200만명에 이른다. 현장은 현대중공업의 실체를 느끼기에 충분했다.육중한 몸통을 움직이며 선박용 강판을 쉴새없이 옮기고 있는 골리앗클레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골리앗클레인의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 보는 250만평의 작업장은 그야말로 거대한 선박전시장이다. 왼쪽의 전하만,오른쪽의 미포만에는 출항을 앞둔 선박들이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스웨덴의 콘코디아사로부터 수주받은 32만t급 ULCC(극초대형 원유운반선)와 네덜란드의 P&O 네들로이드사가 주문한 6,8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1개)급 컨테이너선 2척도 시야에 들어온다. 한 직원은 “출항에 앞서 시운전하고 있는 선박만도 19척이나 된다”면서 “우리는 구조조정이 뭔지 모르고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다른 직원은 “95년 일본 조선사가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LNG(액화천연가스)선을 현대중에 발주한 사실은 현대중의 기술력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94년부터 모두 7척의 LNG선을 건조했고 3척을 건조중”이라고 자랑했다. 현대중은 지난해 조선 엔진기계 해양 등의 사업분야에서 77억달러의 물량을 수주했다.이 중 조선분야는 컨테이너선과유조선을 비롯해 53억달러(82척)를 수주해 착공기준으로 향후 2∼3년치의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현대중은 지난해 현대계열사의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손실을 봐 당기순이익이 151억원밖에 안됐지만 영업이익은 7,569억원이나 됐다. 올해 경영전략은 내실경영으로 잡았다.잘 나갈 때 문단속을더 잘 하자는 뜻에서다.수주를 전년 대비 11.8% 감소한 67억7,000만달러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재무구조 안정성과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감안,시설투자는 전년보다 12.2% 줄어든 3,237억원으로 잡았으나 연구개발투자는 31.9% 증가한 1,154억원으로 정했다. “조선분야에서는 따라올 업체가 없도록 못을 박을 겁니다” 2010년까지 300억달러(36조)의 매출목표를 세운 현대중의‘2010비전(장기발전전략)’은 해외영업 강화·기술우위 확보·고객만족 경영이라는 3대 경영전략을 통해 빈틈없이 실천에 옮겨지고 있었다. 울산 주병철기자 bcjoo@. * 삼성重·대우조선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은 지난해 계열사인 삼성자동차의 부채처리와 부실자산 정리 등으로 적자를 보았지만 조선업황자체로는 호황을 누렸다. [삼성중공업] 경남 거제시 신현읍 장평리 거제조선소는 100만평 규모에 3개의 도크를 갖고 있다.1도크는 고부가가치선(여객선·LNG선),2도크는 석유시추선을 중심으로 한 드릴십,3도크는 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일반선으로 전문화돼 있다.초정밀도를 필요로 하는 심해유전개발용 원유시추선(FPSO)을세계 최초로 건조하는 등 특수선 건조에 노하우를 갖고 있다.지난해에는 세계 최대의 7,400TEU급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는저력을 보였다. 올해 수주는 지난해(34억달러)보다 20% 가량 줄어든 27억달러로 잡고 있다.건조척수도 58척에서 29척으로 줄였다.그러나 영업이익 목표는 5,500억원.지난해에도 삼성자동차 부채정리때문에 적자(2,200억원)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3,250억원을 기록했다.제어시스템 소프트웨어 등 성장가능성이 높은 신규 사업분야에서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옥포조선소도활기가 넘치기는 마찬가지다.지난해 10월23일 대우에서 분리독립된 후 옛날의 영광을 되찾자는 분위기가 넘친다. 올해 수주는 지난해 37억달러보다 다소 낮은 34억달러.건조대수도 53척에서 40척으로 줄였다. 그러나올해는 지난해의 적자경영(2,500억원 내외)에서 흑자로 반전시킨다는 계획이다.2,100억원의 영업이익(지난해 2,5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우조선의 특화분야는 LNG선 건조.지난해 해외에서 LNG선6척을 수주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14척 가운데 43%를 점유해이 분야 1위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00만t급의 도크는 한꺼번에 30만t급 유조선 4척을 건조할 수 있는능력을 갖고 있다. 주병철기자. **3社 올해 경영전략. * 한대윤 현대중공업 전무. “건조기술을 짧은 시간안에 고도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한대윤(韓大胤·52)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전무는 “지속되는 호황을 활용하지 못하면 조선업계의 앞날을 장담할수 없다”면서 조선업계의 기술고도화를 강조했다. 그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선건조분야의 기술개발 외에엔진·기계 등 핵심업종 전략화에도 나서고 있다”면서 “올해만 하더라도 엔진·기계,플랜트 등 비조선 분야의 매출액이 3조7,000억원으로 조선분야 3조6,000억원보다 많을 정도로 핵심업종 전략화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매출액만 1조원이 넘는 엔진기계사업부문,해양사업분야 등이 향후 집중투자할 사업분야라고 말한다. “요즘 흔히 쓰고 있는 ‘고부가가치선’이란 용어도 결국이익창출을 위한 것인 만큼 ‘고급선’ 건조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기호 삼성중공업 전무. “국내 조선업계는 중국의 추격에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기호(李起浩·52) 삼성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전무는 국내조선업계가 호황이라는 말에 고개를 내젖는다.그는 “오히려끊임없는 기술축적과 특화가 국내 조선업계의 당면과제”라면서 “삼성중공업은 LNG선 등 고부가가치선은 물론 자동차수송과 레저를 겸하는 호화 페리선,크루즈선 등의 건조에 본격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선박 건조기술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 국내 조선업계의 ‘내부출혈’을 막는 것도 과제다. “그동안 수주물량 확보에만 치우쳐 값싸게 수주해 왔지만앞으로는 제 값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가격경쟁력을높이기 위해 e비즈니스를 통한 부품공동구매 등도 적극 고려해 볼만하다고 제안했다. *송민호 대우조선 전무. ‘가치경영,고객감동 경영,종업원 활력 경영’ 대우조선이 올해 1월1일부터 새출발하면서 내건 모토다. 송민호(宋旼昊·53) 상선생산본부 전무는 “2010년까지 10조원의 매출에 2조원의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재탄생할 것”이라면서 “올해는 적극적인 외자유치를 통해 건실한 경영토대를 마련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는 “기존의 보유기술로 볼 때 대우조선이 갖는 경쟁력은남못지 않다”며 올해 내실경영으로 2,000억원대의 흑자경영을 자신했다. 수주물량 증대에 따른 인력충원은 자제하고 아웃소싱 형태로 운영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잠수함 건조경험을 토대로 해양사업에 적극 투자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 박은식선생 ‘大東古代史論’ 첫 공개

    독립운동가·언론인이자 대표적인 민족사학자인 백암 박은식(1859∼1925)이 1911년 만주 망명시절 저술한 ‘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이 17일 처음 공개됐다.백암의 저서 가운데 상당수가,특히 만주시절의 저술 대부분이 현전(現傳)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태여서 이번 공개는 주목된다.‘한국통사(痛史)’‘한국독립운동지혈사’로 유명한 백암은 고대사에서도 단재 신채호에 버금가는저술을 남겼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한 일제는 ‘황성신문’‘서북학회월보’ 등 항일언론을 탄압하면서 백암의 저서들을 ‘금서’로 지정,발행과 독서를 엄금했다.이에 백암은 이듬해 4월 국경을 탈출,서간도 환인현 소재 동지 윤세복의 집에 1년간 머물면서 ‘동명성왕실기(實記)’‘발해 태조 건국지’‘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명림답부전’‘천(=연)개소문전’ 등을 썼다.독립기념관(관장 박유철)이 공개한 ‘대동고대사론’도 이 시기에 저술한 사서 가운데 하나다. 이 자료는 그동안 학계 일부에 알려져 왔으나 일반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87년 독립기념관을 개관하면서 도산 안창호 소장자료가 일괄기증될 때 포함된 것이다.총 19쪽의 프린트본으로 한문으로 서술된 이 사서는 저자가 백암의 별명인 박기정(朴箕貞)으로 돼있으며,독립운동가이자 대종교 교주를 지낸 윤세복이 교열자로 돼 있다. 본문은 ▲박기정의 서(序)▲단군조선▲기자조선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백암은 이 책에서 단군 혈통관념을 강조하고 우리 역사의 무대를 만주와 한반도의 통합체로 이해하는 영토관념을 제시했으며,종교와 역사를 강조해 궁극적으로 독립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다. 이같은 역사관은 독립운동의 동지이기도 한 단재의 사관과 유사하다. 그러나 백암이 여진족까지 동족으로 설명한 반면,단재는 부여족을 주족(主族)으로 여진족을 객족(客族)으로 이해한 점이 다르다.숙명여대사학과 이만열교수(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장)는 “백암 선생이저술한 고대사 사서 가운데 드물게 실물이 남은 것으로 가치가 크다”며 “단군을 다룬 까닭은 대종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자료는 올 가을 출간 예정인‘박은식전집’에 전문 수록된다.대한매일은 지난 99년 백범 서거 50주년을 맞아‘백범김구전집’(나남출판)을 출간한 데 이어 금년에는 동방미디어(회장 이웅근)와 공동으로‘박은식전집’(5∼6권 규모 예정)‘양기탁전집’(3∼4권 규모예정)을 출간할 예정이다.두 사람 모두 독립운동가로 큰 족적을 남겼으며,대한매일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에서 논설기자(주필)로 활동하면서 항일언론의 필봉을 날렸다. 지난 15일 구성된 박은식·양기탁전집편찬위원회에는 윤병석(위원장·인하대 명예교수)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신용하(서울대 교수)이만열(숙명여대 교수)김삼웅(대한매일 주필)정진석(한국외국어대 교수)김필자(‘양기탁의 민족운동’저자)씨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평양방문기

    지난 11월28일부터 12월5일까지 7박8일간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초청으로 두번째로 평양을 다녀 왔다.순안비행장에 다시 내렸을 때 바로 이 곳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총칼을 든 인민군의 사열을 받는 엄청난 현실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바라보았던 4개월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고려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나니 안내하는 사람들이 어려워하면서 호텔을 옮길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다.이산가족 북쪽 면회자들이 이 호텔에 모이게 되어 복잡할 테니 조용한 보통강호텔로 옮기자는 것이었다.사정이 그렇다면 협조하지 않을 수 없으려니와 보통강호텔 숙박비가 다소 헐하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 주저없이 옮기기로 했다. 1층 로비로 내려갔더니 과연 말쑥한 신사복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이웅성거리고 있었다.그 중의 한 사람에게 서울에서 왔음을 말하고 가족면회 때문에 왔느냐고 물었더니 스스럼없이 대해주었다. 내 개인의 이번 여행목적은 북쪽 역사학자들과 만나서 남북간의 역사학 교류 문제를 의논하고 고적을 돌아보는 일이었다.북측에 대해미리 박시형·허종호·전형률 등 역사학자들을 만나고 싶다는 청을했었다.그러나 박시형 선생은 노환으로 기동을 할 수 없다했고,전형률 선생은 4년 전에 작고했다고 했다.그래서 현재 역사학회 회장을맡고 있는 허종호 선생과 전 사회과학원 근대사실장 이종현 선생,현근대사실장인 원종규 선생 등 세분의 학자를 만날 수 있었다.특히 허 선생은 그의 학문적 업적이 남쪽에도 많이 알려진 학자인데,집필을위해 다소 먼 곳에 가 있었음에도 우리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나왔다고 했다. 허종호 선생은 단군릉 발굴경위와 북녘 역사학회가 세계 4대 문명발상지 외에 대동강문명을 넣어 5대 문명발상지로 선포했다는 사실을설명했고,1960년대 남북 역사학계가 정열을 쏟은 자본주의 맹아문제등을 비롯한 북녘 역사학계의 최근 동향을 말해주었다.이에 대해 나도 남녘 학계의 최근 동향과 내 개인의 학문적 관심분야 등을 말해주었다.북녘 학자들과 대화하면서 남북 역사학계가 빨리 서로 가지지못한 자료들을 교환해야 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6월 정상회담에 수행했을 때는 일정이 너무 꽉 짜여서 고적은동명왕릉밖에 못 가봤다.그러나 이번에는 평양시내의 역사기념관과김규식·조소앙 등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애국열사릉,1948년 김구·김주식 등 남쪽에서 간 정치지도자들이 북쪽 지도자들과 남북협상을 했던 쑥섬에 세운 통일전선탑 등을 가보았고 개성 및 묘향산도 가볼 수 있었다.특히 개성은 서울을 떠나기 전에 미처 방문대상 지역에 넣지 못했고,평양에 가서 추가로 넣었기 때문에 북쪽 식으로 말해서 여행을 ‘조직’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지만,흔쾌히 추가시켜 주어 꼭 보고싶었던 선죽교·공민왕릉 등을 볼 수 있었다. 남북 경제협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각 학문 분야의 교류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북녘의 어느 고위층과 만났을 때 좀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남북정부가의논해서 비무장지대에 통일연구소 같은 것을 세우고 남과 북,그리고 해외 동포학자들이 함께 통일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그는 ‘통일을 굉장히 멀리 잡는군요’하고 말했다. 이 짧은 글에서는 길게 말할 수 없지만,북녘은 왜 통일을 서두르고남녘은 왜 그것을 비교적 길게 잡는가,그 이유를 알 것 같은 것이 이번 여행에서 얻은 중요한 성과라 생각되기도 한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성균관대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개그우먼 김미화씨(36)와 결혼정보업체 ㈜선우대표 이웅진씨(35)가성균관대(총장 沈允宗) 2001학년도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김씨는 사회과학계열에,이씨는 인문사회계열에 지원했다. 벤처기업가 및 장기취업자 전형과 자기추천 전형으로 이루어진 이번 모집에서는 제3회 청소년만화페스티벌 대상수상자 김민경양(19),제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최우수상자 백지혜양(19)이 영상학 전공에,뺑소니 교통사고 방지용 발명특허 보유자인 김효관군(18)이 공학계열에 합격했다. 윤창수기자 geo@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6) 孫貞道목사 활동지 吉林

    중국 길림성의 성도(省都) 장춘(長春)에서 ‘장길(長吉)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45분쯤 달리면 길림(吉林)에 도착한다.길림은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만주국 시절일본인들은 길림을 일본의 고도 경도(京都)에 빗대 ‘소경도(小京都)’라고 불렀다.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길림 도심을 ‘S자’로 휘감아 도는 송화강(松花江)은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는다.이는 근처에풍만(豊滿)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겨울철 송화강에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찬공기와 어우러져 강 주변의 나무에 은백색의 얼음꽃을 피우는데 이는 길림의 대표적인 겨울 풍물로 꼽힌다. 길림은 일제강점기 우리 항일투사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곳이기도 하다.특히 정의부 계통의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고참의부나 신민부의 거두들도 이곳에서 활약했다.독립운동가들이 길림에 운집하게 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당시 길림은 북만주 일대에서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국땅을 떠나 만주행에 오른 동포들은 대개 길림선을 통해 만주오지로 들어갔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길림에 주저앉았다. 또 하나는 길림이 심양,장춘,연길 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면서도 남만주철도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외부의 영향이 덜미치는,소위 ‘소왕국’과 같은 곳이었다.길림이 한 때‘비적(匪賊)의 소굴’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게다가 이 지역의 중국 군벌들은일제에 항거하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어서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천혜의 요지’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1924년 11월 만주 길림성 유하현(柳河縣)에서 조직된 정의부의 간부 가운데 상당수는 이곳 길림에서 활동하였다.집행위원회 위원장 현익철(일명 현묵관)을 비롯해 지방부 위원장 김리대,군사부 위원장 이웅,그리고 별동대 대장 이동훈,경무과장 김구(金球)등이 모두 길림에서활동하였다. 길림은 또 1919년 11월 창립된 의열단(단장 金元鳳)의 창립지이자고려혁명당 역시 1926년 4월 이곳 길림에서 창립됐다.의열단의 창립지인 길림성 파호문(把虎門)밖 중국인 농부 반(潘)씨집은 이미 헐린상태며,고려혁명당 창립지인 길림성성(城) 영남반점은 현재 길림시북경로 179번지 길림시건축설계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김이삼(金利三) 기자가 피살된 동아여관은 현재 정춘집단공사 길림시 분공사(分公司,길림시 회덕가 90호 소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길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해석 손정도(孫貞道·1872∼1931) 목사를 들 수 있다.평남 강서출신인손 목사는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0년 선교사로 만주에파견된 이후 1931년 길림에서 병사할 때까지 일생을 오점없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자다.1912년 선교활동을 벌이던 하얼빈에서 일제가조작한 ‘가쓰라(桂太郞)공작 암살모의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에서 ‘거주제한 1년’의 유배형을 산 손 목사는 1919년 3·1의거에 참여하였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그 해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구성되자 이동녕 초대 의장에 이어 의장에 선출되었으며,21년에는 임시정부 임시국무원 교통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임시정부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치열해지자 이듬해 임정을 박차고 나와 북만주 길림으로 향하였다. 길림시내 우마항(牛馬巷) 서광(曙光)골목에 예배당을 건립한 손 목사는교회를 거점으로 선교사업과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당시 손목사는 길림지역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그의 예배당·자택은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취재팀이 손 목사의 집터와 예배당을 찾았을 때 이들은 모두 헐린 뒤였으며, 일대는 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예배당은 인근에 새로 건립돼 있음)현재의주소로는 길림시 선영구(船營區) 청도가(靑島街) 춘광호동(春光胡洞)일대로 동네이름마저 서광호동에서 춘광호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주민에 따르면,“2년전 서광호동 골목이 헐리면서 동네이름도바뀌었다”고 했다. 손 목사의 길림 시절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 주석이다.당시 손 목사는 ‘소년김성주’의 후견인이자 그를 항일운동의 길로 안내한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1926년평양의 창덕학교(소학교)를 졸업한 김성주 소년은 민족주의 단체인 정의부가 화전(樺甸)에서 설립한 화성의숙(華成義塾)에 입학했다.당시 숙장(塾長)은 천도교도이자 항일운동가인 최동오(崔東旿)선생이었는데 최 선생은 86년 월북한 최덕신(崔德新) 전외무장관의 부친이다.(금년 8·15 이산가족 상봉때 북측 단장을맡은 류미영씨는 최 전장관의 부인이다.)그러나 그해 6월 부친의 갑작스런 별세의 충격으로 학업을 중단한 그는 이듬해 길림으로 건너와 육문(毓文)중학에 입학했는데 그는 당시 부친의 친구인 손 목사의지도와 후원을 받으며 생활하였다. 특히 공산주의 성향의 독서회를 이끌던 그가 중국 군벌에 체포되자손 목사는 감옥으로 사식과 침구를 제공하는 한편 군벌에게 뇌물을주면서까지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였다.그 덕에 그는 감옥에 들어간지 7개월만인 30년 5월초에 출감했다.김 주석은 생전에 남긴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첫머리의 ‘손정도 목사’편에서 “손 목사의 도움으로 제 때에 감옥에서 석방되지 않았더라면 10년쯤 감옥생활을 더 했을 것”이라며 “손 목사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회고했다. 길림시내 송화강변에 위치한 육문중학에는 그가 다닌 옛 육문중학의 구지(舊址)가 신관 뒷편에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길림시는 92년 이곳을 ‘중점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관리하고 있다.350평 규모의 ‘구지’에는 당시의 교사(校舍)·온실 등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다. 마당 한가운데는 92년에 건립한 김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동상 뒷편에 위치한 교사에는 당시 김 주석이 공부하던 교실이 ‘김일성동지독서기념실’로 꾸며져 있다.‘구지’ 관리자인 왕쑹린(王松林·52)주임은 “김일성 동지는 1927∼30년 이곳에서 공부를 했으며 당시 키가 작았던 탓인지 자리가 제일 앞줄이었다”고 말했다.왕 주임은 취재팀에게 “중국에 파견나온 북한 공직자들이 더러 방문하는 예는 있지만 남한 국적자가 방문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손 목사의 후손들은 해방후 김 주석과는 ‘서로 다른 길’을걸었다.장남 원일씨(元一·작고)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으며,3녀인실씨(仁實·작고)는 YWCA 회장,통일원 고문,한국적십자사 부총재 등을 지냈다.길림시절 김 주석과 형제처럼 지낸 차남 원태씨(元泰·86)는 의대 교수출신으로 현재 미국 네브래스카주오마하에 거주하고 있는데,그는 지난 91년 방북해 김 주석과 60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바 있다. 길림(중국) 정운현기자 jwh59@
  • 전경련 회장·고문단 20명 만찬모임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정세영(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등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및 고문단 20명이 6일 저녁 서울 한남동 삼성영빈관(승지원)에서 모처럼 만찬모임을 가졌다. 이 회장과 정 명예회장의 쾌유를 바라는 뜻에서 전경련이 마련한 자리였다. 김각중(金珏中) 전경련 회장을 비롯해 유상부(劉常夫) 포철 회장,강진구(姜晋求) 삼성전기 회장,이준용(李埈鎔) 대림 회장,현재현(玄在賢) 동양 회장,이웅렬(李雄烈) 코오롱 회장,박성용(朴晟容) 금호 명예회장,김석준(金錫俊)쌍용건설 회장,박정구(朴定求) 금호 회장,장치혁(張致赫) 고합 회장,박용오(朴容旿) 두산 회장,강신호(姜信浩) 동아제약 회장,유창순(劉彰順) 전경련 명예회장,김준성(金埈成) 전경련 고문,손병두(孫炳斗) 전경련 상근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건희 회장이 재계 총수들과 공식적으로 만난 것은 98년 말 이후 1년 반만이다. 저녁 7시부터 9시30분까지 2시간30분 동안 이어진 모임에서 재계 총수들은미국에서 치료를 마치고 귀국해 경영에 복귀한 이 회장과 정 명예회장의 건강회복을 축하하면서 환담을 나누었다고 삼성 관계자는 전했다.이들은 이 회장과 정 명예회장의 건강을 기원하는 뜻에서 전경련 회장단과 고문단 공동명의로 ‘금거북이’를 각각 전달했다. 모임에 참석한 재계 관계자는 “와인을 곁들이며 식사하면서 건강얘기를 주로 했으며 특별한 화제는 없었다”면서 “앞으로 이런친목 모임을 자주 갖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육철수기자 ycs@
  • B2B 컨소시엄 출범

    고려대 출신 재벌 2세들이 중심이 된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컨소시엄이 6일 출범했다. 화학 컴퓨터 유통 건설 등 B2B 연합 컨소시엄인 아시아비투비벤처스㈜는이날 서울 조선호텔에서 컨소시엄 조인식을 가졌다.여기에는 이웅렬(李雄烈·45·경영학과 75학번)코오롱 회장,이홍순(李洪淳·42·물리 78학번)삼보컴퓨터 부회장,최태원(崔泰源·41·물리 79학번)SK 회장,정몽규(鄭夢奎·39·경영 81학번)현대산업개발 회장 등 고려대 출신 6명을 포함,10여명의 재벌 2세경영인들이 참여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내온 이들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아들현철(賢哲)씨와 YPO(Young President Organization)란 조직을 결성해 교분을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균기자 windsea@
  • 동아일보회장 차남·삼성회장 차녀 결혼

    김병관(金炳琯) 동아일보 회장의 차남 재열(載烈·32)씨와 이건희(李健熙)삼성회장의 차녀 서현(敍顯·27)씨가 2일 낮 12시 서울 호텔신라 다이너스티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한승주(韓昇洲) 전 외무부 장관(고려대 교수)의 주례로 40여분간 진행된 결혼식에는 양가 가족과 친인척,신랑·신부 친구 외에 이한동(李漢東) 총리,한광옥(韓光玉) 청와대 비서실장,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 장관,손병두(孫炳斗) 전경련 부회장,이웅렬(李雄烈) 코오롱그룹 회장,정몽규(鄭夢奎)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 700여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신랑 재열씨는 미국 존스 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뒤 스탠포드대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마쳤으며 앞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인터넷 관련회사에서 일할 계획이다.신부 서현씨는 서울예고와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이들 신혼부부는 홍콩 등 동남아 일대로 신혼여행을 떠나며 신혼살림은 재열씨의 직장 근처인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차릴 예정이다.두 사람은 서현씨의오빠이며, 재열씨의 서울 청운중학교 동기인 재용(在鎔)씨의 소개로 만나 알고 지내다 재열씨가 지난해 말 미 휴스턴에서 림프절암 치료를 받고 있던 이건희 회장을 병문안하면서 급속히 가까워져 결혼으로 이어졌다. 육철수기자 ycs@
  • 아이투신-미래에셋투신운용 금융감독위 설립 예비인가

    금융감독위원회는 23일 정몽규(鄭夢奎)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이웅렬(李雄烈) 코오롱그룹 회장이 공동 출자로 설립신청한 아이투신운용을 예비인가했다. 아이투신운용은 자본금 158억원으로 정회장이 100억원(지분의 63.3%),이회장이 20억원(12.7%)을 출자했다.대표이사엔 具자삼씨가,사외이사엔 신복영(申復泳) 전 서울은행장과 어윤대(魚允大) 전 국제금융센터소장이 각각 영입됐다. 금감위는 또 E*미래에셋이 자본금(100억원)의 절반을 출자한 미래에셋투신운용도 예비인가했다. 박현갑기자
  • 청량한 우리가락 한마당 무더위 식힌다

    초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한줄 소나기같은 시원한 국악무대가 이번 주말 서울남산과 우면산 주변에서 펼쳐진다. 국립극장은 세계풍물놀이연합회와 공동으로 9·10일 이틀간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과 놀이마당,야외무대 등지에서 ‘풍물축제 한마당2000’을 연다.사라져가는 풍물굿 원래의 놀이적 기능을 되찾고 숨은 예인들의 가락,춤,재담을 통해 모든 풍물인들의 화합과 참여를 이끌어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사물놀이의 명인 이광수,남원 우도농악의 1인자 유명철,진도 북춤의 대가 박병천,그리고 아프리카,베트남,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세계민속놀이까지 풍물의 모든 것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다.첫날(오후7시30분)에는 국내 최고의 명인들이 기량을 과시하는 ‘풍물명인전’이 열리고,둘째날(오후2시)에는 삼도 풍물가락과 춤을 비교하며 즐기는 ‘풍물놀이 마당’‘사물놀이마당’ 등이 펼쳐진다.세계 타악퍼레이드,국악과 재즈의 크로스오버 등으로 구성된 창작풍물마당도 마련된다.(02)2274-1173국립국악원은 10·11일 오후7시 서초동 국립국악원 축제마당에서 ‘둥지찾기,둥지짓기’란 이름아래 국악을 재즈와 현대무용 등 인접장르와 접목시킴으로써 전통의 원형을 되새겨보는 공연을 갖는다.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생황협주곡 ‘풍향’,현악사중주와 만나는 우리 선율 ‘신관동별곡’,퓨전재즈로 재해석한 ‘아쟁산조’‘몽금포타령’등이 감칠맛나게 귀에 와 감긴다. 여기에 영상과 컴퓨터로 재단장한 ‘종묘제례악주제에 의한 컴포지션’,이정희 현대무용단의 ‘둥지 엮는 모듬춤’,전통탈춤인 ‘은율탈춤’등이 색다른 감흥을 전한다.공연장에는 귀소본능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가 이웅근의 작품이 전시돼 주제를 부각시킨다.(02)580-3300. 이순녀기자 coral@
  • CEO관련 눈여겨볼 기업들

    ‘CEO를 주목하라’ 현대그룹 3부자 퇴진 발표이후 CEO(경영최고책임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CEO의 경영능력과 전문성 정도에 따라 기업의 성장성이 가늠되기 때문이다.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CEO가 시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코스닥 등록을 앞둔 벤처기업들이 기업설명회를 갖고 CEO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음은 CEO관련 주목할 만한 기업군이다. ■대기업 33개 계열사 가운데 3개사만 오너계 인사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SK그룹,사업부별 대표이사제를 도입해 전문경영인체제를 구축한 삼성전자,전자·정보통신 부문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이 포진한 LG그룹이 있다. ■중견기업 전문경영인이 포진한 두산,오너와 전문경영인이 투톱 시스템을구축한 동국제강·한국타이어·풍산·한일약품·농심·콤텍·팬텍·대웅제약·제일모직·S-Oil·한국포리올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코스닥 벤처기업 지분보유 비중이 높은 경영인이 많지만 이 가운데 전문경영인의 이미지를 구축한 기업으로는 한글과컴퓨터,하나로통신,다음커뮤니케이션,터보테크,삼협전자,한국유나이티드제약,KMW 등이 있다. ■이미지메이킹에 성공한 오너 미래산업의 정문술 사장과 코오롱의 이웅열회장,경방의 김각중 회장,메디슨의 이민화 회장,다우기술의 김익래 사장을 꼽을 수 있다. 강선임기자
  • SBS 문화재단,언론계 해외연구 지원자 선정

    SBS문화재단(이사장 尹世榮 SBS회장)은 올해 언론학 교수 및 언론인 해외연구 지원 대상자 13명을 선정했다.다음은 명단. ■언론학계(5명) ▲최현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조교수 ▲목진자 단국대 방송영상정보학부 부교수 ▲유종원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부교수 ▲이원행 호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조교수■언론계(8명) ▲이하경 중앙일보 기획취재팀 차장 ▲김재목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지영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조정복 한국경제신문 정보과학부기자 ▲박인택 KBS 비서실장 ▲조문배 불교방송 보도부 기자 ▲이웅모 SBS보도본부 부장 ▲방문신 SBS 보도본부 차장대우
  • [밀레니엄 비즈니스 CEO에 듣는다] 羅鍾太 코오롱상사사장

    -”섬유는 가장 창의적 첨단산업” “섬유가 왜 사양산업입니까.가장 크리에이티브한(창의적) 요소가 많은 게섬유입니다” 코오롱상사(주) 나종태(羅鍾太·56) 사장은 “섬유야말로 영원한 첨단”이라고 못박았다.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섬유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대접’받고 있으며,우리 정부가 ‘밀라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 상호’로도 유명한 코오롱은 코리아나이롱의 준말. 1954년 나이롱사를 수입,판매하는 개명(開明)상사로 출발해 오늘날까지 패션·섬유 부문에서 선두자리를 지켜왔다.여세를 몰아 나 사장은 올해를 ‘무차입 경영 원년의 해’로 선포했다.지난해 말 보유하고 있던 신세기통신 지분을 포항제철에 1조691억원에 매각,목표에 성큼 다가섰다.매각대금을 빚갚는데 써 3월 현재 부채비율을 120%대까지 낮췄으며,‘르페’ 등 돈안되는 브랜드와 슈퍼마켓,홈쇼핑사업 등을 과감히 정리했다.BMW 수입차 판매사업(코오롱모터스)도 분리시켰다.그 결과 지난해 1,04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직전연도에 1,079억원의 적자를 냈으니 놀랄 만한 성장 속도다. 71년 (주)코오롱에 공채로 입사,구미공장에서 “실 뽑는 것”부터 배워 지난해 말 CEO(최고경영자)자리에 오른 나 사장의 경영지론은 간단하다.‘팔리는 물건을 만들자’,즉 수익사업 중심의 경영이다. 따라서 21세기에도 코오롱상사의 주력사업은 패션·섬유다.그 중에서도 매년 200억원의 알토란 이익을 내는 ‘헤드’ ‘잭니클라우스’ ‘엘로드’를비롯해 고급 신사복 브랜드인 ‘오스틴 리드’ ‘맨스타’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미국의 ‘갭’(GAP)과 같은 샵브랜드 전문점 사업 진출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신사업 진출을 위해 그는 취임하자마자 사장 직속으로 신사업실을 만들었다.코오롱상사가 최근 ‘O-1 inc’(영국계 디지털금융회사) ‘엔플렛폼’(인터넷투자전문업체) 등 세계 유수 벤처기업에 지분투자를 결정하며 인터넷사업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던 비결이다.오는 6월말에는 국내 최대의 레저 전문사이트인 ‘넥스프리닷컴’(nextfree.com)을,9월에는 B2B(기업간 전자상거래)전문의 ‘섬유포털’과 ‘패션포털’ 사이트를 각각 오픈할 예정이다.기술정보 판매업 진출도 검토중이다. 영어 일어에 능통한 그가 곧잘 인용하는 일본말중에 ‘쇼넨바(正念場)’라는 게 있다.가부키 공연에서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되는 대목’을 일컫는말이다.즉,매사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다.그의 삶의 원칙이자 경영철학이다. 의류·가방 등 대북사업에도 일찍이 진출,대표적인 ‘남북경협 시혜주’로꼽히고 있는 코오롱상사가 목표대로 매년 1,000억원의 경상이익을 내는 초우량기업으로 거듭날 지 주목된다. 전북 김제출신인 나 사장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사우디 제다 사무소장 일본 오사카·미국 뉴욕 지사장 등을 두루 지냈다.이웅렬(李雄烈) 그룹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안미현기자 hyun@
  • 李雄烈 코오롱회장 “경영권 세습 않겠다”

    이웅렬(李雄烈) 코오롱 회장은 가능하면 아들에게는 무거운 회사 경영의 ‘굴레’를 지우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1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현대사태와 관련해 부(富)의 세습문제를 묻는 질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버님(李東燦 명예회장)의 권유대로 그룹경영을 이어받았지만 외아들(16·고1)에겐 ‘경영굴레’를 씌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말해 3세 경영권 세습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회장은 또 미국의 유명 정보통신기업인 시스코사와 기업간 전자상거래분야의 합작회사를 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구체적 합작 계획을 조만간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디지털카메라와 무선인터넷을 복합한 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상반기중 미국기업과 제휴도 맺을 계획이며,일본에도 벤처 인큐베이팅센터를 설치해 해외벤처에 대한 투자도 늘려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육철수기자 ycs@
  • ‘한국사 2000년’ 디지털화 결실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사의 대표적인 기록물을 모두 CD-ROM으로 제작,학계에 보급해온 한 업체가 ‘사상계’의 CD-ROM 출시로 ‘2천년한국사의 디지털화’의 마무리 작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이 업체는 해적판과 복사판이 기승을 부려 수익성이 거의 없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사의 소중한 기록들을 지속적으로 CD-ROM으로 제작,보급해 학계의 연구활동과 자료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방미디어(회장 이웅근)는 이달 중순 고 장준하 선생이 창간한 시사 월간지 ‘사상계’(총205권)를 6장의 CD-ROM에 담아 출시할 계획이다.1953년 4월창간된 ‘사상계’는 50,60년대 지식인과 학생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당대의 대표적 시사잡지.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저항적·비판적 논조를 펴오던 ‘사상계’는 70년 5월호에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을 게재한 것이문제가 돼 폐간처분의 비운을 겪었다. 이번에 제작된 CD-ROM은 ‘사상계’ 원본을 영인본 형태의 이미지 데이터로구성한 것이다.모두 1만240편의 글에 필자는 3,361명,총 페이지는 6만8,297쪽 규모다.제작진은 “‘사상계’ 원본수집과 낙장 보완을 위해 1년여 동안전국을 뒤졌으며 소유권을 놓고 갈등중이던 유족으로부터 어렵게 양해를 받아내 제작을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이웅근 회장은 “‘사상계’는 해방후 한국의 정치·사회·사상사를 집약한한국지성사의 결정판으로 해방후 한국문학사를 집대성한 ‘창작과 비평’과함께 2000년 한국사의 마무리편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지난 67년 사상계사의 신인논문상 입상을 계기로 폐간직전 잠시 이곳에 근무한 적이 있는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은 “‘사상계’는 민족주의자 장준하 선생의 혼과 사상이 담긴 결정체”라며 “‘사상계’와 같은 정론지가 필요한 시점에 선배지식인들의 글을 모아 CD-ROM으로 출간한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라고말했다. 한편 동방미디어는 95년 조선 태조∼철종까지의 ‘조선왕조실록’을 1장의CD-ROM에 담아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고종순종실록’(98),‘삼국사기’(99),‘창작과 비평’(99·창간호~통권100호)‘고려사’(2000) 등 한국사의 대표적인 공(公)기록물들을 CD-ROM으로 제작해왔다.최근에는 대상을 넓혀 ‘한국식물도감’‘신동의약보감’ 등을 비롯해 조선시대 생원·진사시험 합격자들의 신상명세를 담은 ‘사마방목(司馬榜目)’을 출시한 바 있으며 조선시대법전인 ‘경국대전’과 ‘한국조류도감’‘한국수목도감’‘갯벌생물도감’등 한국학 전반을 CD-ROM에 담을 계획이다. 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은 “방대한 실록을 그동안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읽느라 숱한 세월을 허비했는데 ‘진작 나왔더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한국학 관련 고문헌 자료의 CD-ROM출간을 반겼다. 정운현기자 jwh59@
  • 이번주 小史

    2.21 ◆민주공화당 창당(1963)◆중공(현 중국)군 조종사 미그 19기 몰고 귀순(1986)2.22 ◆충무 앞바다서 해군 YTL함 침몰참사(1974)◆정부,모스크바 올림픽불참결정(1980)◆보사부,국내 첫 에이즈 환자발생 발표(1988)2.23 ◆국무회의,대학교련을 필수로 한 교육법시행령 개정안 의결(1971)2.24 ◆윤보선 전 대통령 등 66명,3·1민주선언 발표(1978)2.25 ◆전두환 대통령,12대 대통령에 당선(1981) ◆북한군 조종사 이웅평 상위,미그 19기 몰고 귀순(1983) ◆노태우 대통령당선자,13대 대통령 취임(1988) ◆제15대 김대중대통령 취임(1998)2.26 ◆강화도 조약(1876)◆미국,제1차 한·미 금융정책회의에서 자본시장개방요구(1990)2.27 ◆정부,독도영유권 성명(1953)◆제9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1973) ◆노총,정치활동 참여 결의(1988)
  • 99정치권… 3黨의 功過 자체평가

    여야 정치권은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접으면서 나름대로 공과 과를 따져보고있다.올 한해에 대한 각 정당의 자체 평가를 알아본다. [국민회의] 도전과 응전이 계속된 가운데 전체적으로 ‘성취’보다는 ‘고난’이 더 커보였던 한해로 평가한다.‘엉뚱한 사람들이 일을 저지르고 당은수습하느라 1년을 소비했다’는 한 당직자의 푸념에서 올해의 대차대조표를읽을 수 있다. 옷로비 의혹사건,조폐공사 파업 유도의혹사건 등이 전체적 국정운영 능력과 관계없이 불거져 나왔다.여권의 위기관리 능력에 의문도 제기됐다.언론 문건사건도 예외가 아니었다.최근에는 천용택(千容宅)전 국정원장의 ‘실언’이 정국운영의 걸림돌로 떠올랐다. 성과도 있었다.‘내각제 연내 처리문제’가 매듭됐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취임 초 약속했던 ‘1년6개월 내 IMF 졸업’도 현실화됐다. 창당작업이 한창인 ‘새천년 민주신당’도 얻은 것에 속한다.새로운 인재들이 대거 합류하고 있다.자민련과의 합당 불발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려움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많은 민생·개혁법안을 처리해 서민·중산층을 보호하고,개혁작업을 뒷받침한 것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이와 함께 도·감청문제,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등 많은 문제들이 야당에 의해 제기됐지만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많이 사라지고,민주주의가 한층 발전한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리와 박태준(朴泰俊)총재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도와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한 점을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특히 재벌개혁의 ‘속도 조절론’을 주창해온 박 총재가 경제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과시하며,당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새해 벽두부터 1년 내내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을 흔들었던 합당론이 사라진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전국을 순회하며 신보수 대토론회를 개최,보수 정당의 본류로서 위상을 제고한 것도 올해의 성과로 꼽을수 있다. 찬반 양론이 들끓었던 국가보안법 전면 개정에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한 것은 보수 안정 세력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자체 평가다.총선을 앞두고한나라당 이한동(李漢東)고문이 자민련에 합류하기로 한 결정은 취약지역인 수도권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요소로 꼽는다.반면 지난 7월 터져나온 내각제 개헌 유보 선언은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당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파장을 몰고오면서 자민련은 이후 한자릿수의 저조한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용환(金龍煥)의원이 ‘벤처신당’ 창당을 위해 연말까지 탈당키로 하는 등당내 분열 양상이 있는 것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한나라당] ‘실’보단 ‘득’이 많은 한해였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그러나 빈번한 ‘호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지지율은 제자리를 맴돌았다.이는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체제구축에는 성공했지만 정치력이부족했음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었다. 이 총재 체제구축을 가장 큰 성과로 평가한다.지난 대선 패배 이후 위태롭던 당 체제가 이 총재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었다는 평이다. 연초부터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야당에 힘을 실어주었다.옷로비사건과 파업유도사건으로 한시적이지만 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제가 도입된 것도 큰‘득’이 됐다. 그러나 여론의 비난도 그 어느 해보다 많이 받았다.연초에는 연이어 임시국회를 소집,세풍사건에 연루된 서상목(徐相穆)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라는 비난을 받았다.또 언론문건 등 ‘호재’가 발생할 때마다 강력한요구조건을 내걸며 국회를 공전시켜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제정구(諸廷坵)의원이 사망했고 홍준표(洪準杓)의원이 당선무효로 의원직을 상실했다.이상현(李相賢)의원이 자민련으로,이웅희(李雄熙)·강현욱(姜賢旭)의원이 무소속으로 옮겼다.또 내부 분란으로 전국구인 이수인(李壽仁)·이미경(李美卿)의원을 출당시켰다. [강동형기자 박준석기자 김성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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