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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치광장] 빌라관리사무소, 주거 복지의 새 기준

    [자치광장] 빌라관리사무소, 주거 복지의 새 기준

    바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선 순간, 누구나 큰 위로를 느낀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 삶의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이 제 기능을 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집 주변의 생활환경도 함께 안정돼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실내가 깨끗해도 골목에 쓰레기가 쌓이고 주차 문제로 이웃 간 갈등이 생기면 집은 더이상 온전한 안식처가 아니다. 서울 강북구는 오랜 기간 고도 제한 규제로 개발이 제한되면서 노후한 빌라가 밀집한 곳이 많다. 전체 주택의 약 41%가 빌라다. 20년 이상 된 소규모 공동주택의 비율은 64%를 넘는다. 주거 환경 관리의 사각지대가 많은 만큼 일상 속 불편이 반복돼 왔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행정이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출발한 것이 바로 ‘빌라관리사무소’다. 2023년 3월 번1동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한 이 사업은 어느덧 지방자치단체 주거복지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아파트에는 관리사무소가 있다. 그렇다면 다세대가 모여 사는 빌라촌에도 관리사무소가 필요하다.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신념 아래 민선 8기 핵심 공약 사업으로 빌라관리사무소를 구상했다. 이 사업은 구에서 직접 채용한 빌라관리 매니저가 골목을 돌며 청소하고 공용시설을 점검하는 생활 밀착형 정책이다. 사업 초기에는 실효성에 대한 우려와 낯선 시도에 대한 불안, 그리고 주민들의 의심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을 위한 행정’에 집중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수개월간 담당자들과 소통하며 사업 방향을 조율했다. 주민에게 사업의 취지와 운영 방안을 충분히 알리고자 설명회를 열고 공감대도 넓혔다. 그 결과 번1동 시범 운영 당시 주민 만족도는 94%를 기록했다. 사업 확대를 희망한 응답도 88%에 달했다. ‘이사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정붙이고 살겠다’는 주민의 한마디가 이 사업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단순한 환경 개선을 넘어 삶의 질과 공동체 감각을 회복한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미아동, 송중동, 수유2동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올해는 삼양동, 송천동, 수유1·3동까지 총 7개 권역으로 운영 범위를 넓혔다. 기존 관리 기능을 넘어 방범 조명과 무단투기 단속 폐쇄회로(CC)TV 설치, 무료 법률상담실 운영 등 주민 요구에 맞춘 다양한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주민 만족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빌라관리사무소는 이제 다른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시 모아센터를 비롯해 동작·강서·도봉구 등 서울 내 자치구에서 관련 사업이 운영 중이다. 또한 경기 수원·광명·파주·안성·시흥시와 대전 중구, 광주 서구 등 전국의 여러 지자체가 강북구 빌라관리사무소 현장을 방문하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빌라관리사무소의 철학은 강북구에서 시작됐다. 빌라관리사무소의 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오직 ‘주민의 삶에 힘이 되고 싶다’는 진심에서 출발했다. 주민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결국 삶을 바꾸는 정책이 됐다. 이제는 전국이 주목하는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강북의 골목에서 시작된 이 변화가 앞으로 대한민국 주거 복지의 미래를 바꾸는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이순희 서울 강북구청장
  • [씨줄날줄] 日 문화 오해 풀기

    [씨줄날줄] 日 문화 오해 풀기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선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일본 미술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한다’는 취지에서 도쿄국립박물관과 함께 마련했다. 그동안의 일본 관련 전시회와 다른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 속 일본 미술유산’이 아니라 ‘일본이 보여 주고 싶은 미술유산’을 한데 모았다는 것이다. 문화 전래의 양상이 아니라 일본열도에서 꽃피운 그들의 문화를 볼 수 있다. 도쿄박물관이 선정한 ‘일본 문화의 정수’ 가운데 16세기 조선에서 만든 찻그릇이 포함된 것은 흥미롭다. 일본의 중요 미술품이라는 ‘우라쿠이도라 불린 오이도(大井戶) 찻잔’이 그것이다. 화려하고 값비싼 용구가 유행하던 일본의 다도(茶道)는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소박하고 간결한 찻그릇으로 취향이 바뀌었다. 그렇게 우리가 막사발이라 부르는 조선의 투박한 밥그릇·국그릇이 일본에서는 찻사발로 크게 각광받게 된다. 일본이 임진왜란 때 납치한 도공이 왕실에 최상품을 공급하던 광주 분원 출신이 아니라 막사발을 빚던 지방가마 사기장들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조선도공의 도움으로 명청 교체기 혼란스런 중국을 대신해 단기간에 도자기를 수출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특별전에 출품된 17세기 이마리의 ‘꽃 새 무늬 대접’과 아리타의 ‘매화나무 무늬 접시’에 조선다움은 없다. 이미 일본 특유의 미감을 극도로 끌어올린 모습이다. 특별전은 우리 문화만큼이나 일본문화도 독자성이 넘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일본 문화는 모두 백제시대 이후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버릴 수밖에 없다. 여전히 오해에 사로잡혀 있다면 같은 논리로 ‘한국 문화는 모두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누군가 강변해도 할 말은 없다. 문화는 이웃끼리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게 마련이다. 특별전은 한중일 세 나라가 각각의 독창적인 문화를 고도로 발전시켰음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 이재명 대통령 만난 日총리 하루 만에 “한일 교류 바통 다음 세대까지”

    이재명 대통령 만난 日총리 하루 만에 “한일 교류 바통 다음 세대까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9일 일본에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한국과 일본 협력의 지평을 더욱 넓히면서 지금까지 이어 온 교류의 바통을 다음 세대로 제대로 이어 가자”고 강조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첫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양국 협력의 상징인 이번 행사에 직접 참석하면서 관계 심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날 도쿄 뉴호타니호텔에서 열린 행사에는 이시바 총리를 비롯해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등 전현직 일본 총리와 주요 각료들이 총출동했다. 한국 측에서는 박철희 주일대사와 주호영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포함한 여야 국회의원 10여명이 자리했다. 이시바 총리는 축사에서 이 대통령과의 회담과 관련해 “향후 한일 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서로 생각을 맞추면서 아주 좋은 뜻깊은 논의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산율 저하, 인구 감소 등 양국 공통 과제에 대해 서로의 지혜와 지식을 공유하면서 한일 협력을 넓히자”고 강조했다. 또 “한일을 둘러싸고 있는 전략적 환경이 엄중해진 만큼 서로가 더 손잡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자”고 덧붙였다. 한일 양국이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 더욱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실질적 관계 진전을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한국에서 열린 주한일본대사관 주최 기념 리셉션에 영상 축전을 보내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양국은 함께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파트너”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당시 주요 7개국(G7) 일정이 맞물려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다. 이에 일본 내부적으로는 이시바 총리의 참석이 ‘상호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G7 일정으로 일본 측 리셉션에 이 대통령의 불참이 불가피했고 일정 수준 이상의 전향적인 메시지가 나온 만큼 총리가 직접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건배사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당시 외무대신이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카운터파트너였던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맡았다. 기시다 전 총리는 “한일 양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로서 함께 미래를 위한 협력을 심화하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강한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며 “60주년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더욱 발전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고 했다.
  • 더해봄 노인복지센터, 왕조1동 행정복지센터에 백미 30포 기탁

    더해봄 노인복지센터, 왕조1동 행정복지센터에 백미 30포 기탁

    순천시 조례동에 위치한 더해봄 노인복지센터가 지난 17일 왕조1동 행정복지센터에 백미(10㎏) 30포를 전달했다. 이번 후원은 더해봄 노인복지센터 직원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마련한 물품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직원들은 무더운 여름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 가정에 위로를 전하고자 뜻을 함께했다. 기탁된 백미는 왕조1동 관내 저소득 가정에 전달될 예정이다. 주치훈 더해봄 노인복지센터장은 “지역사회에 작게나마 힘이 되고자 직원들이 정성을 모았다”며 “수혜자들이 생활의 무게는 덜고, 이웃 간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신혜정 왕조1동장은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마련된 이번 후원이야말로 진정한 지역 나눔의 모범사례다”며 “기탁자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 꼭 필요한 이웃에게 소중히 전달하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편 주치훈 더해봄 노인복지센터장은 순천지역 청년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순천시 청년권익위원회 2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청년 문제 해결에 앞장 서는 등 지역사회 복지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2시간 넘게 비명”… 여친 폭행 살해한 불법체류 30대 중국인

    “2시간 넘게 비명”… 여친 폭행 살해한 불법체류 30대 중국인

    法, 징역 16년 선고 “극도의 공포 속 생 마감” 여자친구를 2시간 넘게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중국인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임재남)는 19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불법체류 신분 A씨에게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월 22일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1시 30분까지 제주시 연동 한 원룸에서 같은 국적의 연인 B(30대)씨를 주먹과 발로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술에 취한 A씨는 B씨가 다른 남자와 교제한다고 의심하고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웃들은 ‘밤 10시쯤부터 싸우는 소리와 함께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여성이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시간 30분동안 비명소리가 이어졌고 소리가 잦아졌을 땐 여성이 기절한 것으로 생각했다’ 등 당시 상황을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B씨가 쇼크 상태로 쓰러져 있는 데도 구호 등 조처를 하지 않고 그 옆에서 잠을 자다가 잠에서 깬 오후에도 B씨가 의식이 없자 한국인 직장동료에게 대신 신고해줄 것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B씨의 사인은 지주막하 출혈(뇌출혈) 등 머리를 크게 다쳐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A씨 측은 법정에서 B씨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살해의 고의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살인죄는 목적이나 계획이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행위로 살인의 가능성이나 위험이 있다고 인식 또는 예견할 수 있으면 살인죄가 성립된다”며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속된 폭행으로 피해자는 비명을 지르며 극도의 공포 속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살인죄는 우리 사회가 수호하는 가장 존엄한 가치를 본질적으로 침해해 영원히 회복할 수 없게 하는 행위로서 그에 상응하는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점, 처음부터 확정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한 것은 아닌 점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앞서 검찰은 A씨에 대해 징역 25년을 구형했다.
  • [사설] 협력 약속한 한일 정상… 이젠 “작은 차이”도 극복해야

    [사설] 협력 약속한 한일 정상… 이젠 “작은 차이”도 극복해야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 캐나다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약 30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두 정상은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더욱 견고하고 성숙한 한일 관계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기로 했다. 북한 문제를 포함한 지역의 여러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한미일 공조를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고 한일 협력도 심화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셔틀외교’ 재개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양국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면서 “작은 의견 차이가 있지만 서로 협력하고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시바 총리도 “양국 간 협력과 공조가 세계를 위해 더 많은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한일이 협력해 국제사회의 중심 역할을 해 나가자는 뚯이다. 이로써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이후 불확실했던 양국 관계는 첫 단추를 단단히 잘 끼웠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두 정상의 합의가 외교적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한일 정상은 총론에서는 협력을 말하면서도 각론에서는 대립 양상을 보였다. 이 대통령이 말한 “작은 차이”도 ‘각론의 이견’을 뜻할 것이다. 이제는 그 작은 차이도 극복해 내야 한다. 이번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는 중점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과거사 문제가 한일 관계의 갈등 요인이 돼선 안 된다는 양국 정상의 공감대는 확인됐다. 독도 영유권과 신사참배,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자 대상 제3자 변제안 등은 모처럼 살려낸 관계 정상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과거사 관련 쟁점들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 파기 여부 등 양국이 호흡을 가다듬어 풀어 가야 할 안보·경제 현안이 많다.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관리할 의지와 장기적으로 국익을 생각하는 자세가 절실한 때다.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사과가 담긴 ‘고노담화’ 등을 계승하고, 한국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변제 해법’ 등 기존 합의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라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잇는 ‘이재명·이시바 선언’도 못할 것이 없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 확고하고 일관되게 양국 신뢰를 다지는 것이 이 대통령이 내건 실용외교의 첫걸음이어야 한다.
  • 李대통령 “앞마당 같이 쓰는 이웃” 이시바 “양국 공조, 세계 도움”

    李대통령 “앞마당 같이 쓰는 이웃” 이시바 “양국 공조, 세계 도움”

    과거사 언급 없이 미래 협력에 방점국교정상화 60년·무역 공조도 강조대통령실 “과거사 덮자는 게 아닌현재·미래 저해 않도록 잘 관리 뜻”셔틀외교 복원땐 李 일본 방문 차례새달 참의원 선거 이후 재개 가능성 이재명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캐내내스키스에서 열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등 민감한 현안 대신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에 방점을 찍었다.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은 데다 관세전쟁 등 글로벌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 일본과의 갈등을 부각하는 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이 대통령은 양국 관계를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집’으로 표현했다. 양국은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긴밀히 소통·협력해야만 한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신 과거사를 비롯한 갈등 요인에 대해선 ‘작은 차이’, ‘의견의 차이’라고만 표현하며 이를 넘어선 관계 발전에 대한 기대를 거론했다. 이시바 총리도 과거사 언급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어제 그리고 오늘 G7 정상회의에서 논의됐지만 국제 정세는 정말 대단히 엄중해지고 있다고 인식한다”며 협력을 강조했다. 비공개 회담에서도 ‘과거 문제는 잘 관리해 나가자’는 수준의 발언이 오갔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현장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에 대해 “그런 공감을 대체로 이어 갔다”고 설명했다. 과거사 문제를 덮어 두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아니다. 과거 문제는 과거 문제대로 논의하되, 그 문제가 현재나 미래의 협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잘 관리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때도 대일 외교와 관련해 “제가 일본에 적대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며 협력을 강조했다. 두 정상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무역과 경제 협력을 증진하자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또 두 정상이 셔틀외교 재개를 강조하며 이 대통령이 언제쯤 일본을 방문할지도 주목된다. 전 정부에서 복원된 셔틀외교는 지난해 9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의 ‘고별 방한’ 이후 중단됐다. 셔틀외교가 복원되면 이 대통령이 일본을 찾을 차례다. 다만 다음달 참의원(상원) 선거가 있어 빠른 시일 내 재개는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한편 이날 회담에선 양국 정상이 앉은 자리 뒤편에 각각 상대국의 국기가 내걸려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일각에선 의전 실수나 결례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실제 회담장에서 대기하던 이 대통령이 일본 국기 앞에 서 있자 뒤이어 도착한 이시바 총리가 이 대통령과 자리를 바꿨다. 일본 측 관계자가 ‘원래 자리가 맞다’고 하자 두 정상은 다시 위치를 바꾸기도 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정상회담 관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한국이 호스트 국가 역할을 맡았다. 의전상 나란히 앉은 두 정상이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상석이라고 한다. 대다수 호스트 국가는 상석인 오른쪽 뒤편에 자국 국기를 배치한다. 하지만 호스트 국가 정상이 상대국 정상에게 상석을 양보하는 것이 관례라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 ‘미래’ 손잡은 한일

    ‘미래’ 손잡은 한일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첫 정상회담에서 한일 협력을 심화하고 한미일 공조를 발전시키기로 뜻을 모았다. 한일 셔틀외교 재개 의지도 재확인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초청으로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은 이날 캐나다 캐내내스키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양국은) 마치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집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작은 차이들이, 또 의견의 차이들이 있지만 그런 차이를 넘어서서 한국과 일본이 여러 면에서 서로 협력하고 서로에게 도움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국제통상 환경이나 국제 관계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서 가까운 관계에 있고 또 보완적 관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이 많은 부분에서 협력하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시바 총리는 올해 국교정상화 60년을 계기로 한 양국 교류를 언급하며 “양국 간 협력과 공조가 이 지역 그리고 세계를 위해 더 많은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약 30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 문제를 포함한 지정학적 위기 대응을 위해 한미일 공조를 이어 가고 양국 협력도 심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두 정상은 공개 발언에선 과거사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비공개 회담에서) 과거의 문제는 잘 관리해 나가고 협력의 문제를 더 키워서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꾸려 나가자는 말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까지 1박 3일의 G7 순방 강행군 일정을 마치고 19일 새벽 귀국했다.
  • 구로구, ‘온기나눔 자원봉사활동 후원’ 협약식

    구로구, ‘온기나눔 자원봉사활동 후원’ 협약식

    서울 구로구가 지난 17일 구청 르네상스홀에서 구 자원봉사협력단장협의회,어부네와 함께하는 온기나눔 자원봉사활동 후원 협약식을 열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협약은 민·관 협력을 바탕으로 자원봉사 기반을 확대하고, 지역사회 내 나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협약식에는 장인홍 구로구청장을 비롯해 박상택 자원봉사협력단장협의회 회장, 김영배 어부네 대표 등이 참석했다. 어부네는 자사 제품인 코다리조림 밀키트 100개를 매월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후원 물품은 구로구 자원봉사협력단을 통해 동별 취약계층 주민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장인홍 구로구청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민·관이 함께하는 자원봉사 문화를 확산해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 경기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 ‘2025 경기도자원봉사대회’ 참석…자원봉사자 격려 및 지원 약속

    경기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 ‘2025 경기도자원봉사대회’ 참석…자원봉사자 격려 및 지원 약속

    경기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위원장 임상오)는 17일(화) 화성특례시 신텍스(SINTEX)에서 열린 「2025 경기도자원봉사대회」에 참석해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 지원을 약속했다. 이날 대회는 ‘모든 날, 모든 순간 자원봉사자를 기억합니다’를 주제로, 경기도 31개 시군 자원봉사자와 도민 등 1,2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자원봉사 박람회, 아카이브 전시, 시상식, 축하공연 등이 다채롭게 진행됐다. 안전행정위원회에서는 임상오 위원장(국힘, 동두천2)을 비롯해 윤성근 부위원장(국힘, 평택4), 김규창(국힘, 여주2)ㆍ강웅철(국힘, 용인8)ㆍ이영봉(더민주, 의정부2)ㆍ장대석(더민주, 시흥2)ㆍ이은미(더민주, 안산8) 의원 등이 참석했다. 안전행정위원들은 각 시군 자원봉사센터에서 운영한 부스를 차례로 방문해 현장 자원봉사자들과 직접 소통하며 활동 내용을 살펴보고, 노고에 깊은 감사와 격려를 전했다. 임상오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지역사회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해 온 자원봉사자 한 분 한 분의 땀과 마음이 오늘 이 자리를 만들었다”며, “특히 재난·재해 현장과 복지 사각지대, 외로운 이웃 곁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여러분의 헌신은 더없이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발적인 나눔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경기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도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세대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나눔문화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한 정책 기반 마련에 꾸준히 힘써 왔으며, 앞으로도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과 입법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 李대통령 “한일, 앞마당 같이 쓰는 이웃”…한일 정상회담 개최(종합)

    李대통령 “한일, 앞마당 같이 쓰는 이웃”…한일 정상회담 개최(종합)

    이재명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마치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집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초청으로 캐나다 카나나스키스를 찾은 이 대통령은 이날 한일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우리나라에서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를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작은 차이들이 또 의견의 차이들이 있지만 그런 차이를 넘어서서 한국과 일본이 여러 면에서 서로 협력하고 서로에게 도움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국제통상환경이나 국제 관계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서 가까운 관계에 있고 또 보완적 관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이 많은 부분에서 협력하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총리님과 제가 이렇게 직접 얼굴을 뵙고 만나게 됐는데 오늘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으로 조금 더 나은 관계로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는 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이렇게 직접 만나 뵙는 것은 처음이지만 일본의 TV 방송에서는 매일 나온다”며 “그래서 처음 뵙는 것 같지 않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 뵙는 것은 처음이다”라고 화답했다. 이시바 총리는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지난 16일 서울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열린 리셉션에 이 대통령이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언급하며 “정말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메시지를 주셨다고 저는 보고받았다”고 했다. 이시바 총리는 “어제 그리고 오늘 G7 정상회의에서 논의되었지만 국제 정세는 정말 대단히 엄중해지고 있다고 인식한다”며 “우크라이나에서도 그렇고 중동에서도 그렇고 아시아에서도 그렇다. 이런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모든 공통적인 요소,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고 저는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간사이 엑스포가 개최 중이고 세계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일본을 방문해 주고 계시지만 가장 많은 분들이 한국에서 와 계신다”며 “일본에서도 세계 각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본인 중에서 가장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국가는 한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님과 저 그리고 정부 간 기업 간뿐만 아니라 국민 간 교류도 60주년을 계기로 해서 더 많이 활성화되고 양국 간 협력과 공조가 이 지역 그리고 세계를 위해 더 많은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가 되기를 저는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두 정상은 약 30분간 회담에서 오늘날의 전략적 환경 속에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보다 견고하고 성숙한 한일 관계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자고 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특히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당국 간 보다 활발히 대화를 이어 나가기로 하고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상호 국익을 도모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계속 논의해 나갈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한다. 두 정상은 또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이어 유사한 입장에 있는 양국이 보다 긴밀히 협력을 모색해 나가자고 했다. 북한 문제를 포함한 지역의 여러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한미일 공조를 지속 유지, 발전시키고 한일 간 협력도 심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두 정상은 지난 9일 첫 전화 통화에 이어 이날도 셔틀외교 재개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를 위해 당국 간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 70대女 성폭행·살해한 30대男… 치마에 묻은 DNA로 58년만에 英법정 서

    70대女 성폭행·살해한 30대男… 치마에 묻은 DNA로 58년만에 英법정 서

    DNA 검출 기술 발전으로 미제사건 해결92세 된 범인, 70~80대女 성폭행 전과도 성폭행 후 살해당한 70대 여성의 치마에서 거의 60년 만에 용의자 DNA가 검출되면서 장기 미제였던 사건이 해결 실마리를 보인다고 1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BBC 등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1967년 6월 28일 브리스틀에서 당시 75세였던 여성 루이자 던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는 92세 남성 라일랜드 헤들리가 이날 브리스틀 형사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했다. 당시 30대였던 헤들리는 던의 자택에 침입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현지 경찰에 체포돼 기소됐다. 사건 당일 던의 이웃 여성들은 그가 평소와 달리 집 앞에 나와 있지 않고 집 창문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이웃 중 한 명인 바이올렛 앨런은 다른 이웃 여성들의 도움을 받아 창문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 던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키 163㎝, 몸무게 45㎏ 체격이던 던은 파란색 치마와 카디건 3개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에서 찰과상이 발견됐고 머리 뒤쪽과 오른쪽 허벅지에 멍이 있었다. 누군가가 던의 입을 강제로 막았으며 스카프를 세게 조여 목 뒤쪽 멍이 생겼다고 당시 법의학자는 결론지었다. 피해자의 생식기에 면봉 검사를 한 결과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집 뒤편 창문에서 손바닥 자국을 발견, 몇 주간 수천명의 남성과 소년의 손바닥 자국을 채취했지만 일치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사건은 미제로 남았지만 피해자의 치마는 증거 상자에 담긴 채 오랫동안 에이번·서머싯 경찰 범죄기록보관소에 보관됐다. 그러다 지난해 한층 발전한 DNA 검출 기술로 던의 치마에서 ‘대량의 정액’ 흔적이 발견됐다. 분석 결과 경찰은 DNA가 헤들리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경찰은 헤들리의 DNA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가 1977년 서퍽에서 당시 84세 여성과 79세 여성을 각각 성폭행한 혐의를 인정, 수감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1960년대 후반 유권자 기록을 통해 헤들리가 그의 부인과 던의 집에서 약 2.4㎞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던을 살해한 직후 브리스틀에서 서퍽으로 이사 간 것을 확인했다. 58년간 묻혀 있던 미제사건에서 피해자와 검찰 측을 대변하는 칙선변호사(KC·King’s Counsel) 안나 비가스는 “나이 들고 약한 여성이 자택에서 살해된 사건이다. 경찰은 살인범을 찾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58년 전이든 58일 전이든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누군가의 죽음이 덜 중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 [서울광장] 21세기 영부인 역할론

    [서울광장] 21세기 영부인 역할론

    철이 들고 난 뒤 어머니로부터 종종 들은 얘기가 있다. “너를 낳고 누워 있는 동안 병원 한쪽 TV에서 광복절 행사를 중계하는데 육영수 여사님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걸 봤어. 어찌나 슬펐는지 정신없이 펑펑 울었단다. 국모나 다름없는 분을 그렇게 보낼 줄이야. 지금도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당시 어린 마음에 대통령의 부인, 곧 영부인은 국모와 같은 존재인가 보다 싶었다. 내친김에 자료를 찾아봤더니 16년 군부 장기 집권으로 기억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 여사는 한복을 주로 입고 국민과 따뜻하게 소통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렇게 육 여사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것일까. 투표권을 얻으면서부터 영부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기자가 돼 외교부를 출입하면서 고참 외교관으로부터 들은 20세기 한 영부인 관련 얘기다.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한일 영부인 간 회동도 있었다. 통역을 맡았던 그 외교관은 영부인이 준비한 대화가 없어 상대방과 나눌 얘기가 없음을 알게 됐다. 결국 영부인 간 대화 대신 통역 간 즉흥 대화가 이뤄졌다고 한다. 상대국 영부인에게 한국 문화 등에 대해 전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영부인 외교관’ 역할이 어디 있었겠는가. 물론 그 뒤로 21세기 들어 영부인 회동에서는 K문화 등의 인기 덕분에 할 얘기가 많아졌을 것으로 믿는다. 영부인에 대한 관심은 2014~2017년 미국 워싱턴 특파원 시절에도 이어졌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해 훌라후프를 하며 땀을 흘렸다. 학교 등을 돌며 특강도 자주 했는데 그가 주도하는 ‘비만 퇴치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청바지 등 편한 옷을 입고 훌라후프를 돌리는 오바마 여사의 다양한 일정을 백악관에서 보내는 이메일을 통해 거의 매일 접했다. 미 언론이 ‘FLOTUS’(First Lady of the United States·미 영부인) 일정을 ‘POTUS’(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미 대통령) 일정보다 더 관심을 갖고 다룰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영향력이 상당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이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임기 내내 카리스마가 넘치는 영부인 역할을 했다. 클린턴 전 장관의 영향이었는지 오바마 여사의 대통령 출마설까지 나올 정도였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도, 2기 집권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도 남편의 인기가 떨어질 때 이를 상쇄하는 역할을 했다. 복지와 교육, 보건, 여성, 인권, 환경, 문화 지원 등에서 절제하면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보이며 영향력을 미쳤다. 육 여사 타계 후 반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청와대를 거쳐 간 영부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정도가 인권·복지·평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전후 영부인들은 이렇다 할 역할 없이 여러 의혹으로 논란을 빚거나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지난 3년여간 각종 논란과 의혹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결국 초유의 영부인 대상 ‘김건희 특검법’까지 통과돼 주가조작, 뇌물수수, 공천·인사 개입 등 16개 항목에 대해 특검 수사를 받게 됐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게 월권을 휘두른 결과다. 일각에서는 영부인은 선출된 권력이 아닌데도 ‘비선 실세’가 될 수 있는 만큼 역할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과 프랑스 등은 영부인의 지위와 역할을 법 또는 ‘헌장’으로 명문화했지만 모호하거나 구속력이 없어 논란도 여전하다. 그만큼 영부인의 역할이 크고 중요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대선 캠페인 내내 조용히 비공식 행보를 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부인 김혜경 여사는 “따뜻한 영부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국정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대통령이 다 챙길 수 없는, 대통령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영부인이니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길 바란다. 21세기 영부인은 육 여사의 ‘국모 역할’과 이희호 여사의 ‘자기만의 역할’이 어우러진 새 모델로 거듭나야 한다. 본인과 주변 관리, 도덕성, 책임감은 기본이다. 김미경 논설위원
  • “김정은 최대 약점은 재일교포 생모…北서 감춰진 존재”

    “김정은 최대 약점은 재일교포 생모…北서 감춰진 존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재일교포 출신 생모인 고용희는 삶의 ‘오점’이자 ‘최대 약점’이며, 그가 이러한 억울한 가정사 때문에 부인 리설주와 딸 김주애를 공식 석상에 노출해 왔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 논픽션 저널리스트 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은 출판사 ‘문예춘추’가 오는 20일 펴내는 책 ‘고용희-김정은의 어머니가 된 재일 코리안’에서 이런 견해를 밝힌다. 문예춘추가 공개한 책 일부 내용과 소셜미디어(SNS) 등에 올린 글에 따르면 고용희는 195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시내 코리아타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북한으로 넘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이에서 김정철·김정은·김여정을 낳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고용희 이복 오빠 인터뷰 등을 토대로 고용희 부친 고경택이 일본에서 최소 3명의 여성과 가정을 꾸렸으며, 밀무역 등으로 구속되는 복잡한 삶을 산 탓에 북한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김정철·김여정 등이 어렸을 때 촬영한 가족사진을 보면 북한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도 이들 가족은 해외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그는 고용희가 프랑스 파리에서 유방암 치료를 받았지만 51세에 세상을 떠났다면서 권위적인 북한 체제와 후계 구도 등을 고려해 수술 시기를 놓쳤고 대신 약물 치료를 택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저자는 관계자로부터 고용희의 말년 사진을 입수했다면서 “커다란 흰색 모자를 쓰고 휠체어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병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느껴지는데, 얼굴은 현재의 김정은 위원장과 놀랄 정도로 닮았다”고 주장한다. 북한에서 고용희 관련 언급이 금기로 통하고 김정은 위원장도 공개적으로 모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친이 재일교포였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저자는 고용희에 대해 “북한에 간 재일교포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얄궂게도 가장 감춰진 존재”라고 평가한다. 이는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 생일을 기념일로 제정하지 않는 배경이 고용희에 관한 관심 차단에 있다는 일각의 분석과 맥을 같이한다. 저자는 “과거에 고용희를 ‘조선의 어머니’로 우상화하는 영상을 만들었다가 봉인됐다. 이를 몰래 복사한 판본이 북한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면서 “일본에서 북한으로 귀국한 교포들은 신분이 낮았고 스파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엄격한 감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고용희가 북한에서 생활하면서도 일본 여행을 다녔으며, 1997년과 2000년 프랑스에서 유방암 치료를 받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일본을 은밀히 방문한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고용희가 아이들에게 일본에 관해 이야기했고 일본어도 가르쳤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일본은 ‘천년의 숙적’이 아니라 ‘친족이 사는 이웃 나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김정은 최대 약점은 재일교포 생모…北서 감춰진 존재”

    “김정은 최대 약점은 재일교포 생모…北서 감춰진 존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재일교포 출신 생모인 고용희는 삶의 ‘오점’이자 ‘최대 약점’이며, 그가 이러한 억울한 가정사 때문에 부인 리설주와 딸 김주애를 공식 석상에 노출해 왔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 논픽션 저널리스트 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은 출판사 ‘문예춘추’가 오는 20일 펴내는 책 ‘고용희-김정은의 어머니가 된 재일 코리안’에서 이런 견해를 밝힌다. 문예춘추가 공개한 책 일부 내용과 소셜미디어(SNS) 등에 올린 글에 따르면 고용희는 195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시내 코리아타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북한으로 넘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이에서 김정철·김정은·김여정을 낳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고용희 이복 오빠 인터뷰 등을 토대로 고용희 부친 고경택이 일본에서 최소 3명의 여성과 가정을 꾸렸으며, 밀무역 등으로 구속되는 복잡한 삶을 산 탓에 북한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김정철·김여정 등이 어렸을 때 촬영한 가족사진을 보면 북한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도 이들 가족은 해외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그는 고용희가 프랑스 파리에서 유방암 치료를 받았지만 51세에 세상을 떠났다면서 권위적인 북한 체제와 후계 구도 등을 고려해 수술 시기를 놓쳤고 대신 약물 치료를 택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저자는 관계자로부터 고용희의 말년 사진을 입수했다면서 “커다란 흰색 모자를 쓰고 휠체어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병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느껴지는데, 얼굴은 현재의 김정은 위원장과 놀랄 정도로 닮았다”고 주장한다. 북한에서 고용희 관련 언급이 금기로 통하고 김정은 위원장도 공개적으로 모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친이 재일교포였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저자는 고용희에 대해 “북한에 간 재일교포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얄궂게도 가장 감춰진 존재”라고 평가한다. 이는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 생일을 기념일로 제정하지 않는 배경이 고용희에 관한 관심 차단에 있다는 일각의 분석과 맥을 같이한다. 저자는 “과거에 고용희를 ‘조선의 어머니’로 우상화하는 영상을 만들었다가 봉인됐다. 이를 몰래 복사한 판본이 북한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면서 “일본에서 북한으로 귀국한 교포들은 신분이 낮았고 스파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엄격한 감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고용희가 북한에서 생활하면서도 일본 여행을 다녔으며, 1997년과 2000년 프랑스에서 유방암 치료를 받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일본을 은밀히 방문한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고용희가 아이들에게 일본에 관해 이야기했고 일본어도 가르쳤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일본은 ‘천년의 숙적’이 아니라 ‘친족이 사는 이웃 나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김정은에게 재일교포 생모는 최대 약점”…日 저널리스트 주장

    “김정은에게 재일교포 생모는 최대 약점”…日 저널리스트 주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재일교포 출신 생모인 고영희가 ‘최대 약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은 출판사 ‘문예춘추’가 오는 20일 펴내는 책 ‘고영희·김정은의 어머니가 된 재일 코리안’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저자는 2012년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과 주고받은 인터뷰와 이메일 등을 정리한 책 ‘아버지 김정일과 나’를 출간했던 북한 전문 저널리스트다 저자에 따르면 고영희가 195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시내 코리아타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북한으로 넘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이에서 김정철·김정은·김여정을 낳았다고 했다. 그는 고영희의 이복 오빠 인터뷰 등을 토대로 고영희 부친 고경택이 일본에서 최소 3명의 여성과 가정을 꾸렸으며, 밀무역 등으로 잇따라 구속되는 복잡한 삶을 살았던 탓에 북한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저자는 김정철·김여정 등이 어렸을 때 촬영한 가족사진 등을 보면 북한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도 이들 가족이 해외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는 고영희가 1997년과 20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유방암 치료를 받았으나 51세에 세상을 떠났다면서 권위적인 북한 체제와 후계 구도 등을 고려해 수술 시기를 놓쳤고 대신 약물 치료를 택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관계자로부터 고영희의 말년 사진을 입수했다면서 “커다란 흰색 모자를 쓰고 휠체어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병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느껴지는데, 얼굴은 현재의 김정은 위원장과 놀랄 정도로 닮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에서 고용희 언급은 금기로 통하고 김정은 위원장도 공개적으로 모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가 모친이 재일교포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고영희에 대해 “북한에 간 재일교포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얄궂게도 가장 감춰진 존재”라고 평가했다. 저자는 “과거에 고영희를 ‘조선의 어머니’로 우상화하는 영상이 만들어졌지만, 영상은 봉인됐고 몰래 복사한 것이 북한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며 “일본에서 북한으로 귀국한 교포들은 신분이 낮았고 스파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엄격한 감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 북한 금강산에는 고영희 우상화로 보이는 ‘선군조선의 어머님’이라는 표현이 새겨진 비석이 건립된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2019년 12월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지역 안의 만경교 가까운 곳에 설치됐다는 석비(石碑)에는 붉은 글씨로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1997년 10월 12일 ‘선군조선의 어머님’,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와 함께 금강산을 돌아보셨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당시 산케이는 건립 날짜가 적시되지 않은 이 비석에 등장하는 ‘선군조선의 어머님’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김정은 위원장이 이 비석을 통해 자신이 지도자 지위를 승계한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체제 안정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 모친의 신격화에 본격적으로 나섰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고영희가 아이들에게 일본에 관해 이야기했고 일본어를 가르쳤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일본은 ‘천년의 숙적’이 아니라 ‘친족이 사는 이웃 나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김진명 경기도의원, 공보육 대안 ‘가족돌봄수당’ 시행...실집행률 56.3% 그쳐

    김진명 경기도의원, 공보육 대안 ‘가족돌봄수당’ 시행...실집행률 56.3% 그쳐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 김진명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남6)은 2024회계연도 결산 심사에서 ‘가족돌봄수당 지원사업’의 낮은 집행률과 시군 참여 부족을 지적하며, 사업 설계의 구조적 한계와 운영상의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을 요구했다. ‘가족돌봄수당 지원사업’은 2024년부터 경기도가 새롭게 시행한 복지 정책으로, 24~48개월 아동을 양육하는 가정 중 친족이나 이웃으로부터 월 40시간 이상 돌봄을 받는 경우, 월 30만 원을 최대 12개월간 지원한다. 이는 공보육 외 다양한 양육 형태에 대한 공적 지원을 확대하는 제도로, 양육 부담 완화와 돌봄 다양성 보장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결산 자료에 따르면, 총 예산 64억 8,300만 원 중 36억 5,100만 원만이 집행돼 집행률은 56.3%에 그쳤다. 당초 목표였던 7,203명 중 실제 수혜자는 4,298명으로, 달성률은 59.7%에 불과했다. 전체 31개 시군 중 13개 시군만이 참여했고, 인구 상위 10개 시군 중에서는 화성시만이 참여해 정책 확산에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연천군(37.7%), 동두천시(46.3%) 등 일부 지역은 집행률도 저조했다. 김진명 의원은 “가족돌봄수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시군 재정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도비:시비 매칭비율 조정과 인센티브 제공 등 제도적 유인 확대가 필요하다”며 “신청 절차 간소화, 표준 운영지침 마련, 지역 간 우수사례 공유를 통해 제도 운영의 일관성과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의원은 “가족돌봄수당은 공보육 중심의 정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돌봄 방식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며 “그러나 초기 설계 미비와 전략 부재로 인해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제도의 정착과 확대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 수립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윤영미 경기도 여성가족국장은 “가족돌봄수당은 보육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정책으로, 초기에 드러난 한계를 보완해 제도의 정착과 확산을 추진하겠다”며 “시군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양육 공백 가정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했다.
  • ‘보수정권=친일, 진보정권=반일’ 아니었다…  李대통령 실용주의 한일 관계 변곡점 될까[윤태곤의 판]

    ‘보수정권=친일, 진보정권=반일’ 아니었다…  李대통령 실용주의 한일 관계 변곡점 될까[윤태곤의 판]

    14년을 끈 한일 국교 정상화 협정우세했던 日 외교 역량과 美 개입밀실 추진에다 日 사죄 반영 미흡60년간 韓 정치·사회 갈등 축으로수교한 박정희 때도 주도권 교차전두환, ‘관제’ 반일과 밀월 병행김대중 시절은 한일 관계 황금기노무현, 日국민들과 솔직 토크도日, 이재명 정부에 우려·기대 교차작은 긍정 신호도 효과 클 수 있어 대한민국과 일본은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국교 관계에 관한 조약’(기본 조약)을 조인함으로써 수교했다. 올해는 그 6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메인 리셉션이 15일 서울에서, 그리고 오는 19일 도쿄에서 각각 열린다. 우리에게 일본은 지난 세기에 국권을 빼앗아 갔던 가해자이자 현재 선진 경제와 민주주의 제도를 공유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과거사와 지리적 인접성, 문화와 경제, 안보와 외교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올해는 게다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자 광복 80년이 되는 해다. ** 광복 후 6년 만인 1951년 말부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국교 정상화 및 전후 보상 문제 논의를 시작했다. 애초에 우리 정부는 일본과 전후 배상 문제를 논의한 연합국 자격으로 참여하길 원했지만 전쟁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연합국 48개국이 일본을 상대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한 이후에야 한일 양국은 별도 협상을 시작했다. 이 조약에 의해 비로소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재산과 청구권에 관한 특별약정 의무를 부담하게 됐다. 6·25전쟁 와중인 1952년 2월 15일 제1차 한일회담 본회의를 시작으로 무려 14년간의 협상을 통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 협정인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일명 청구권 협정)이 체결된 것. 협상 자체는 일찌감치 시작됐지만 광복 이후 민족적으로 공유된 반일 감정, 이승만 정부의 반일 정책 등으로 10여년간은 큰 진척이 없었다. 일본 역시 패전 당시 한반도에서 보유하고 있던 자산 반환, 이른바 역청구권을 주장하며 맞섰다. 식민 지배와 관련해 일본도 손해를 보았고, 더욱이 일본이 한국에 남겨 놓은 자산이 한국이 일본에 청구해야 할 손해보다 더 많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양측 모두 청구권을 포기하자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우리는 줄곧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강력히 요구했고 일본은 미군정과 한국 정부의 ‘적산불하’(敵産拂下·disposal of enemy property) 문제를 제기했다. 1950년대를 돌아보면 한일 양국은 국제법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 외교 역량, 관료의 실력과 총체적 국력 등 모든 면에서 비교 불가의 수준 차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1957년 청구권과 역청구권을 통틀어 양국이 동등하게 모든 청구권을 포기하자는 큰 틀의 합의하에 보상 규모(배상금이 아니라)에 대한 논의가 재개됐다. 일본의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 또한 이때부터 미국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애초에 미국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블록의 형성을 기획하고 있었다. 일본, 대한민국, 대만(당시에는 자유중국) 간의 외교적 관계를 정상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동남아 지역에도 영향력을 행사해 소련 및 중국 공산 진영에 대한 포위망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6·25전쟁에서 같이 피를 흘리며 공산 진영에 맞서 싸웠고 자신들과 상호방위조약까지 맺은, 본격화된 냉전에서 첨병 노릇을 하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 정상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역시 안보(반공)와 경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에 미국의 이런 기획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장기 집권 체제를 출범시켰고 1960년에는 미일 공동 방위의 명문화 등을 골자로 하는 미일안보신조약을 체결한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한일 국교 정상화로 연결돼 한미일 협력의 고리를 만들었으며 이 기본 축이 60년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64년 3월 박정희 정부는 한일 외교 정상화 방침을 발표하며 협상에 가속을 붙였다. 14년을 끌어온 협상이었던 만큼 합의에 임박한 시점의 진통은 심각했다.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며 학생 데모대가 중앙청으로 몰려가고 파출소를 파괴하는 등 4·19 이후 최대로 민심이 이반했다. 정부는 그해 6월 3일 오후 8시 비상계엄령을 전국에 선포하고 경찰들 외에 4개 사단 병력을 서울에 투입했다. 군을 동원하겠다는 박정희의 양해 요구에 미국은 협력했다. 양측 모두 5·16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윤보선 등 야당 지도자 외에 서울대 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 김지하, 고려대 총학생회장 직무대행 이명박,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 김덕룡, 중앙대 구국투쟁위원회 위원장 이재오, 경기고 재학생 손학규 등이 이때 투옥당하며 정치 역정을 걷기 시작한 인물들이다. 당시의 이런 저항을 정서적·민족적 반발로만 볼 수 없는 것이 ‘김종필·오히라 메모’로 상징되는 한일 양국의 밀실 비밀 교섭 속에서 반대 여론을 경청하고 설득하는 민주적 절차가 설 자리가 없었다. 협상 진척 사항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최종 결과물인 협정문에도 일본의 침략 사실 인정과 가해 사실에 대한 사죄는 제대로 포함되지 않았고 어업 문제, 문화재 반환 문제 등에서 우리 측이 크게 양보했다. 특히 청구권 협정에 대한 양국의 해석 차이는 일제강점하 피해자 보상 문제의 갈등 요인으로 남아 있다. 후일 이는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과 그로 인한 한일 무역 분쟁으로 이어졌다. 이는 지금까지 60년간 한국 사회에서 근본적 정치·사회적 갈등의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 사회의 명과 암, 성취와 한계에 대한 인식 차이를 통해 진보와 보수가 갈라졌다. 미국에 대한 인식,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인식은 물론 심지어 기업이나 노동 및 환경 이슈에 대한 인식 차이도 친일과 반일의 대립으로 환원됐다.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식인이나 작가들까지 민족주의자를 자임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경제·안보·사회 거의 모든 면에서 상호 간 교류와 영향은 커졌지만 관계의 진폭은 매우 컸다. 20세기까지 경제와 사회 면에서 보자면 일본의 구심력이 컸지만 정치와 외교, 안보 면에서 보자면 한일 관계는 상당히 입체적이었다. 수교를 밀어붙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육영수 여사 피살, 야당 지도자 김대중 납치(일본에서 한국으로) 등에서 양국의 주도권이 교차했고 냉랭한 시기도 상당히 길었다. 정통성이 약한 전두환 정권 때는 ‘관제’ 반일 드라이브와 한일 밀월 관계가 교차했다. 레이건-나카소네-전두환 삼각 협력 속에서 한국 정부는 공산주의 방파제론을 내세워 거액의 경제협력 차관을 장기 저리로 따내는 나름의 ‘치적’을 쌓았다. 21세기 들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양국 관계는 더 성숙 혹은 복잡해졌다. 보수 진영에 대한 친일 프레임이 강해졌지만 민주당 계열 정부, 진보 정부가 반일 노선을 걸은 것도 아니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소장파 야당 정치인으로서 “한일 관계 정상화는 당연히 추진해야 한다.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에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나라들도 그들을 지배했던 나라와 수교했다. 우리 안보·경제·장래를 생각해서, 또 세계가 하는 관례에 따라 안 할 수 없다. 다만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질타를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 시절은 한일 관계의 황금기였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한일 간 공식 합의 문서에 처음으로 명시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나왔다. 한국은 일본 문화를 개방했고 일본은 남북 대화, 햇볕 정책을 지지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후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솔직하게 직접 대화’라는 일본 민영 방송사 TBS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학생, 주부, 직장인 등 일본 국민 100여명과 솔직 토크를 나누기도 했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 시절 한일 관계가 난항을 겪으며 미국의 노골적 개입을 초래한 것은 꽤 낯뜨거운 일이다. 한일 위안부 협정 타결 시에도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과 종료 유예 논란 과정에서 미국은 한일 양국의 갈등을 ‘감정적 민족주의’라 폄하하며 교통정리에 나섰다. 양국 정치권은 미국의 이런 개입을 거부하기보다는 자국 내 정치적 부담을 줄이는 기회로 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모든 정부들과 달리 한일 관계에 있어서 국내 여론을 거의 개의치 않았다. 여론의 반발을 오히려 자기 정당화의 근거로 삼기까지 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에는 민주당계 정치인 중에서도 일본에 대해 상당히 험한 발언을 거침없이 내놓으며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다 보니 냉온탕 급변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이 대통령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이번 대선 국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 “한미일 협력과 한일 협력은 대한민국의 중대한 과제”라고 반복해 말하며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했다. 서울 사정에 밝은 일본 기업인들이나 외교관들과 대화해 보면 이재명 정부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이 대통령 특유의 실용주의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우려와 다른 모습을 조금만 보여 준다면 반대급부가 훨씬 더 큰, 일종의 기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은 수교 6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그리고 이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캐나다 G7 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보통 때 같으면 양국 정상 모두 미국 대통령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겠지만 이번에는 다를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가 환갑 아닌가. 윤태곤 공공전략컨설턴트
  • (영상) 두바이 67층 건물에 대형 화재 발생...“주민 4000명 대피”

    (영상) 두바이 67층 건물에 대형 화재 발생...“주민 4000명 대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초고층 주거용 타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주민 약 4000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 뉴욕포스트 등 외신은 14일(현지시간) “전날 두바이의 부유한 지구로 꼽히는 마리나 지구의 67층짜리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밤 9시 30분쯤 마리나 지구의 피나클 빌딩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고, 불길은 순식간에 건물 중심부를 휘감으며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SNS를 통해 공개된 영상을 보면 67층에 달하는 초고층 건물의 90% 가까이가 불길에 휩싸인 것을 볼 수 있다. 22층에 사는 한 주민은 “우리 건물이 불타고 있다는 이웃 주민들의 소리를 듣고서야 대피를 시작했다. 아내에게 아이를 데리고 곧장 비상구로 가라고 말했다”면서 “우리 가족은 연기가 자욱한 계단을 손으로 짚어가며 대피했고 때로는 앞 사람을 어깨를 붙잡으며 건물을 내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행히 이 건물에 거주하던 주민 3820명이 모두 안전하게 대피했으며 부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 불길은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잦아들었다. 현지 소방당국은 소방관들이 무려 6시간 동안 화재와 싸워야 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번 화재가 건물 상층부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확실한 화재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두바이 마리나의 상징 중 초고층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5년 47층 세대의 주방에서 화재가 발생해 역시 주민 수천 명이 대피하는 등 혼란이 빚어졌따. 한편 화재가 발생한 건물이 있는 두바이 마리나는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건축물과 조형물, 조경이 자리잡은 해안 지구로, 세계최대 인공 운하 도시 중 하나다. 사막을 파내 페르시아만의 물을 끌어들여 조성됐으며, 3㎞에 걸쳐 고층 빌딩과 호화 호텔, 고급 주택 단지, 다양한 레저 시설이 밀집해 있다.
  • (영상) 67층 건물 전체가 ‘활활’…“주민 약 4000명 대피, 부상자는 0명” [포착]

    (영상) 67층 건물 전체가 ‘활활’…“주민 약 4000명 대피, 부상자는 0명” [포착]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초고층 주거용 타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주민 약 4000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 뉴욕포스트 등 외신은 14일(현지시간) “전날 두바이의 부유한 지구로 꼽히는 마리나 지구의 67층짜리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밤 9시 30분쯤 마리나 지구의 피나클 빌딩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고, 불길은 순식간에 건물 중심부를 휘감으며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SNS를 통해 공개된 영상을 보면 67층에 달하는 초고층 건물의 90% 가까이가 불길에 휩싸인 것을 볼 수 있다. 22층에 사는 한 주민은 “우리 건물이 불타고 있다는 이웃 주민들의 소리를 듣고서야 대피를 시작했다. 아내에게 아이를 데리고 곧장 비상구로 가라고 말했다”면서 “우리 가족은 연기가 자욱한 계단을 손으로 짚어가며 대피했고 때로는 앞 사람의 어깨를 붙잡으며 건물을 내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행히 이 건물에 거주하던 주민 3820명이 모두 안전하게 대피했으며 부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 불길은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잦아들었다. 현지 소방 당국은 소방관들이 무려 6시간 동안 화재와 싸워야 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번 화재가 건물 상층부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확실한 화재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두바이 마리나의 상징 중 초고층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5년 47층 세대의 주방에서 화재가 발생해 역시 주민 수천 명이 대피하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한편 화재가 발생한 건물이 있는 두바이 마리나는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건축물과 조형물, 조경이 자리 잡은 해안 지구로, 세계 최대 인공 운하 도시 중 하나다. 사막을 파내 페르시아만의 물을 끌어들여 조성됐으며, 3㎞에 걸쳐 고층 빌딩과 호화 호텔, 고급 주택 단지, 다양한 레저 시설이 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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