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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대 남성, 면사무소 침입해 엽총 발사... 공무원 2명 사망

    70대 남성, 면사무소 침입해 엽총 발사... 공무원 2명 사망

    한 70대 남성이 면사무소에서 엽총을 난사해 사무소 직원 2명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1일 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1분께 소천면사무소에 김모(77)씨가 들어가 직원들에게 3~4발의 총을 발사해 6급인 손모(47)씨와 8급 이모(38)씨가 크게 다쳐 닥터헬기와 소방헬기로 병원으로 옮겼다. 손씨는 가슴 명치와 왼쪽 어깨에, 이모(38)씨도 가슴에 총상을 입어 심정지 상태로 안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목숨을 잃었다. 피의자 김씨는 앞서 이날 오전 9시 15분쯤 봉화군 소천면 임기역 인근 사찰에서 주민 임모(48)씨에게도 엽총을 쏴 어깨에 총상을 입혔다. 임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 김씨가 처음 총을 쏜 현장인 사찰과 소천면사무소는 3.8㎞ 거리로 김씨는 1차 범행 후 자신의 차로 면사무소까지 간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면사무소에서 총을 발사한 직후 민원인과 직원 등에 제압돼 경찰에 넘겨졌다. 김씨는 이날 오전 7시 50분쯤 파출소에서 유해조수 구제용으로 엽총을 출고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엽총은 등록된 총기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가 면사무소에 찾아가 총을 쏜 경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김씨는 이웃과 수도 사정이 안 좋아 물 문제, 수도요금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며 “면사무소에는 왜 갔는지 모르겠고 보조금 문제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의 범행 동기에 대해 추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죽음 앞에서 동등…묘지도 도시처럼 설계하다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죽음 앞에서 동등…묘지도 도시처럼 설계하다

    불문학자이자 문학 평론가인 황현산(1945~2018) 선생의 영결식이 열린 건 사흘장의 발인 날 아침이었다. 고려대 교수로 정년 퇴임하셨고 같은 대학 병원에서 투병하셨으니 장소는 고려대병원 장례식장이었다. 기억할 만한 2018년 여름의 태양이 이른 아침부터 새하얗게 내리쬐었다. 평생의 도반 김인환 선생의 조사와 후배 문인, 가족들의 마지막 인사는 빈소 안에서 조용히 이루어졌다. 빈소 밖에는 훨씬 많은 조문객이 모여들었다. 행렬이 영정을 따라 3층의 빈소부터 1층까지 걸어 내려와 정문 옆으로 좁게 난 쪽문을 비집고 나가자, 주차장에 운구차가 트렁크 문을 열고 서 있었다. 바퀴 달린 카트에 실려 온 관이 매끄럽게 올라탔을 때 선생의 사모님은 기사에게 잠시 문을 닫지 말아 달라 부탁하셨다. “아주까리 꽃 그림자 흔들리는 섬 속에 / 하모니카 안타까운 강남달 시절 / 갈매기 울어 울어 해 지는 선창에 / 모자를 흔들면서 떠나던 사람아.” ‘풍각쟁이’ 최은진(58) 선생의 ‘아주까리 수첩’이 울려퍼졌다. 일제강점기의 시인 조명암이 작사하고 목포 사람 이봉룡이 작곡한 1940년대 노래다. 남도 섬의 헤어짐과 기다림을 그린 이 노래를, 황현산 선생은 그로부터 열흘 전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다. (‘아주까리 수첩’은 선생의 다음 책 ‘전위와 고전’이 수록될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하다.) 음반 출시를 앞두고 고향이 전남 신안 비금도인 선생께 먼저 들려드렸을 때 “얼마나 예뻐” 하시더니, 사모님이 따로 청하여 이루어진 무대였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고마웠습니다. 모두 선생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가수 최은진 선생의 마이크 소리에 맞춰 모인 이들이 마지막 인사를 드린 그 장면은, 모두에게 아름답게 기억되었으리라 믿는다.노래의 여운은 짧았다. “자, 다음 발인 못 하고 있거든요. 빨리 나가 주세요.” 상조 회사 옷을 입은 아저씨가 뒤를 몰아쳤다. 운구차와 버스는 화장장으로 떠나고, 각자 타고 온 차들이 줄지어 나가고, 사정없는 햇볕 아래서도 남은 자들의 마음은 눅눅하다. “1990년대부터 갑자기 바뀐 거 같아요. 90년대 초반까지는 입원해 있다가도 임종이 임박하면 집으로 모셨잖아요. 그래서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설계할 때 승강기 구조를 고쳐서 관을 수평으로 운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비좁은 아파트 살던 시절에 부모님 빈소를 마련했는데, 상주도 문상객도 불편하더라고요. 그게 떠올라서 건물 사이에 공간을 많이 비워서 천막을 칠 수 있게 했어요. 거기서 노제도 하곤 하더니, 어떻게 순식간에… 없어졌어요.” 영결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성룡 선생은, 묘지 이야기를 꺼냈다. 스웨덴의 건축가 시구르드 레베렌츠가 조경을 맡은 스톡홀름의 우드랜드 묘지공원(스콕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 이른바 ‘숲의 화장장’부터 시작한다.“시내에서 전철로 갈 수 있어요. 굉장히 넓은 땅인데 전차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정문이 있어요. 들어서면 숨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나요. 멀리 언덕 너머에 소나무 숲이 걸려 있고 거대한 십자가 모양 조형물이 눈에 들어와요. 대개는 정면의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죠. 하지만 안내자를 따라 오른쪽의 ‘양탄자 깔듯이’ 잔디로 조성한 언덕, 느릅나무 있는 곳으로 갔어요. 원래 있던 숲의 일부를 조정해 인위적으로 만들었음을 드러내는 구간이죠. ‘기억의 작은 숲’을 지나 1㎞ 떨어진 ‘부활 교회’까지 긴 길을 걸었어요. 숲속을 걸으면서 죽음과 대화하는 시간이었죠. 레베렌츠가 쓴 짧은 수필이 하나 있는데, 묘지에 수직 구조물을 바라지 않는다, 수평으로 낮은 비석이 근대 시민에게 어울린다고 썼어요. 소나무가 울창한 숲속에, 그런 묘비들이 햇빛을 받으면 보석처럼 반짝이지요.” “스웨덴이 100여년 전에 사회민주주의를 하면서 고민한 제일 중요한 것이 노동자 주거 정책이고 의료, 노숙자, 노인 대책을 열심히 만들었나 봐요. 그중에 하나가 묘지예요.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현상은 유럽 어디나 산업혁명 하면서 겪었고 그러다 보니까 묘지가 난개발이었죠. 이 사람들이 고민하면서 여러 논의를 해 나가죠. 인간이 죽음 앞에서 동등하다, 민주주의 가치에 따른 묘지를 만들자는 논의를 하면서 국제 현상 설계 공모를 해요. 지침부터가 대단히 자세했어요.” 1912년에 스톡홀름 시 의회가 소나무가 무성한 채석장을 확보한 다음에 내세운 공모 지침은 자연 풍경을 훼손하지 말 것, 품위 있게 설계할 것, 디테일까지 예술적일 것, 기존 채석장의 돌을 활용할 것 등이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독일 묘지를 본뜨려고 했어요. 그런데 공모를 하자마자 1차 대전이 터지니까 독일은 전쟁에 빠져들었죠. 그 바람에 젊은 국내파들이 당선된 거예요.” 스웨덴 사람들이 모델로 삼았던 것은 1907년에 설립된 뮌헨의 숲 묘지였다. 뮌헨 지자체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묘역을 조성하는 대신 도시 외곽의 동서남북 네 군데 묘지를 나누어 숲 묘지를 조성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도시”이자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정화해 주는 자연이었다. “군나르 아스플룬드라는 건축가가 건물을 맡고 전체 조경 계획은 레베렌츠라는 사람이 맡아요. 묘지가 완성을 볼 때까지 30~40년이 걸려요. 굉장히 오랜 시간이죠. 아스플룬드하고 레베렌츠가 학교 동창이야. 그런데 두 사람이 약간 달랐어요. 아스플룬드는 성공의 길을 아는데, 레베렌츠는 하기 싫은 건 안 하는 거야. 이 사람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없고 생각을 글로 남기지도 않았어요. ‘숲의 화장장’도 한동안 아스플룬드가 한 거로 알려졌어요.” 숲의 화장장에서 ‘건물과 풍경이 하나’ 되는 작업이 이루어진 것은 레베렌츠의 주도였다. 사업 자체가 워낙 장기화되고 바뀌면서 레베렌츠가 해임되는 일도 있었다. 레베렌츠는 한동안 창문 새시 공장을 운영하면서 다른 공공건축을 해나갔다. 그러나 1940년 아스플룬드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레베렌츠가 마무리 작업을 맡게 된다. 1970년대 들어 재조명되기 시작한 스톡홀름 우드랜드 묘지공원은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레베렌츠의 작업 중 또 하나의 묘지가 1916년에 설계 경기로 당선된, 항구도시 말뫼의 동부 묘지다. “평화롭고 고요한 묘지라면서 좋아들 하지요.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는 도시를 봐요. 스톡홀름의 묘지가 거대한 장묘 단지라면 말뫼 묘지는 도시의 일부 같거든요. 지형에 따라 두 구역으로 구획하고 그 사이 도로변에 방문자센터, 화장장, 기념 교회, 광장, 추념 공간을… 마치 도시처럼 계획했어요. 마지막으로 묘지 입구에 거친 콘크리트로 아주 작은 꽃집(1974년)을 지었어요. 그때 레베렌츠 나이가 89세였어요. 우드랜드나 레베렌츠를 소개하려는 게 아니에요. 결국 우리 문제 말이죠. 일제 때의 묘지 계획 답습하면서, 오히려 그 뒤로 더 나빠졌어요. 우리가 신도시를 계획할 때 묘지를 미리 제대로 숙고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말로는 동방예의지국이니 하면서요. 그래 놓고서 유럽 어디 갔더니 무슨 묘지 멋있더라, 그렇게 감상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닙니다. 도시 계획 자체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봐요. 그랬다면 우리 동네에 대형 화장장, 납골당은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심했을까요. 광화문광장 고치는 문제보다 아파트 단지마다 동네마다, 운구차가 멈췄다 떠날 작은 장소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나.”집에서 관이 나오면, 망자가 살던 마을 어귀에서, 일하던 장터 입구에서도 노제를 하는 것을 불과 20년 전에도 볼 수 있었다. 길바닥에 돗자리 깔고 병풍 치고 꽃상여 걸쳐 놓고서 다시 제를 지냈다. 이웃들은 대개 그 언저리에서 술 한잔으로 먼 길을 배웅한다. 그럴 때 상엿소리를 하거나 풍물을 치거나 살풀이며 종이꽃을 만드는 갖가지 재주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를 잇거나 떼어 주는 일을 맡았다. 이제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예술이 되었다. 그 예술은 우리의 비루한 삶과 죽음 속에서 궂은 기능을 맡지 않는다. 장례식장의 발인장은 주유소를 닮았고 관은 컨베이어벨트처럼 바퀴 위에 실린다. 알지 못하는 301호와 204호 누군가가 십 분 간격으로 기다리는데, 우리는 애틋한 의식의 시간을 나눌 수 없다. “어렸을 때 마을 뒷동산 기슭에 공동묘지가 있었죠. 가면 쭈뼛하죠. 그렇게 죽음이 곁에 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배우죠. 동네마다 조금씩 작은 무덤을, 평화롭게 만들면 좋겠지. 무덤을 가까이 못 두면 아파트 단지 어디에 거기 살다가 죽은 가족을 기억할 작은 숲이라도, 나무 몇 그루라도 둘 수는 없는가. 의식을 하려면 장소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냥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왜 마을 뒤에 싫은 묘지를 두었는가, 그걸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다음 세대에 교육할 때, 우리 삶이 정말 좋아지고 정말 민주 사회가 될 거예요.” 황현산 선생의 영결식은 아름다웠다. 비금도 섬 그림자가, 다도해의 물결이 잠시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사소하지만, 노래 한 곡절로도 우리는 한결 잘 헤어졌다. 죽으면 다 소용없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그렇겠지. 그러나 이 품위는 죽은 사람을 위한 건가, 산 사람을 위한 건가.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 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은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 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 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황현산, ‘소금과 죽음’(한겨레신문 2009년 8월 15일자) 기획 수류산방 조성룡 건축가·도시건축 대표 심세중 수류산방 편집장■ 시구르드 레베렌츠(1885~1975)는 스웨덴의 건축가로 원래는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군나르 아스플룬드(1885~1940)와 함께 29세이던 1914년에 스톡홀름 남쪽 우드랜드 묘지공원 설계 공모에 당선되었다. 이후 한동안 건축을 멀리하다가 말년에 다시 설계를 맡았다. 레베렌츠가 설계한 묘지와 교회, 시립 극장과 노동자 주택 등은 대부분이 공모를 통한 공공 작업이었다. 오로지 건축 현장에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려고 한 드문 근대 건축가이자 조경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1970~80년대에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우드랜드 묘지공원은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세계 유산 목록에 수많은 묘지가 있지만 근대 건축가가 계획한 사례는 유일하다.
  • 中까지 덮친 ‘아프리카돼지열병’… 청정 국내 양돈 지키기 총력

    中까지 덮친 ‘아프리카돼지열병’… 청정 국내 양돈 지키기 총력

    아프리카돼지열병 예방에 비상이 걸렸다. 치사율이 30%가 넘는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아직 백신이 없다. 일단 발병하면 살처분 말고는 방법이 없어 자칫 국내 양돈산업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지난 1일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이 확인된 데 이어 지난 14일과 15일 추가 발병이 확진됐다. 바로 옆 중국에서 병이 확산되자 과거 구제역 파동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선 ‘예방만이 살길’이라며 공항·항만 관리 강화, 양돈농가 등을 대상으로 한 방역, 대국민 홍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20일에는 관계기관과 전문가, 생산자단체 등과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해외 발생 동향과 국내 유입 가능성 등을 점검하고 추가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아프리카돼지열병은 원래 1920년대부터 아프리카 지역 돼지에 풍토병으로 존재했다. 2007년 조지아(옛 그루지야)에 있는 한 항구에 아프리카를 경유한 선박이 정박했는데 이 선박에서 나온 잔반을 그 지역 돼지에게 먹이면서 발생해 유럽으로 확산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웃나라인 아르메니아 등을 거쳐 2012년 우크라이나, 2013년 벨라루스, 2014년 발트 3국(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과 폴란드까지 확산됐다. 2017년에는 체코와 루마니아에서도 발병했다. 급기야 지난해 3월에는 러시아·몽골 접경인 이르쿠츠크에서도 발병했다. 이르쿠츠크는 기존에 발병했던 지역과 4000㎞ 넘게 떨어져 있었다. 더구나 이달 초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걸린 돼지가 나타났다. 지난 14일 허난성 도축장에서 발견된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걸린 돼지는 헤이룽장성에서 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헤이룽장성은 북한과 가까운 동북 3성에 속한다. 지난 15일에는 장쑤성 롄윈강시에서도 신고가 들어왔고 88마리의 돼지가 폐사했다. 중국과 한국은 사람과 물자 이동이 활발해서 방역당국으로선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은 전 세계 돼지의 절반이 몰려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각국 정부가 신경을 안 써서 질병이 확산되는 게 아니다.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백신이 없고, 앞으로도 백신을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유전자 크기는 다른 바이러스보다 10배가량 많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유전자가 크다 보니 유전자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단백질 종류도 최대 151개다.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 처지에선 강적을 제대로 만난 셈이다. ●염지 상태 182~300일 생존… 육포 안심 못 해 바이러스는 대체로 열이나 건조한 조건에 약해서 체외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그렇지도 않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생존력이 막강하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매뉴얼에 따르면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냉동고기에서 1000일가량, 심지어 염지(소금 등에 절여 간을 하는 것)된 고기나 건조된 고기에서도 182~300일 이상 생존할 수 있어 육포조차 안심할 수 없다. 백신도 없고 생존력도 엄청나니 일단 발병하면 살처분 말고는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 고열과 식욕 결핍, 유산 등 증상을 보인다. 오순민 농식품부 방역정책국장은 “당장 백신을 기다릴 수도 없는 지금으로선 바이러스 유입을 미리 차단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아프리카돼지열병은 어떤 경로로 옮을까. 유럽식품안전국이 2014년 발간한 자료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돼지 이동과 잔반 사료로 인한 감염이 73%를 차지했다. 이르쿠츠크에서는 약 40마리를 잔반으로 키우는 돼지 사육 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로 바꿔서 돼지에게 먹이는 농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유럽에선 야생 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기는 것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가령 중부 유럽에서 영국이나 독일로 일하러 들어오는 많은 노동자들이 소시지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 같은 음식을 자국에서 가지고 오는데, 이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야생 멧돼지가 먹고 감염되는 사례가 있다. 야생 돼지는 일단 바이러스에 걸리면 평생 바이러스를 배출하는 보균 돼지가 된다. 이 때문에 유럽 각국에선 사냥으로 야생 돼지 개체수를 줄이고, 감염국에서 들어오는 노동자나 여행객에게 음식물 반입 금지를 홍보하는 실정이다. 한국은 당장은 야생 돼지로 인한 발병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아시아 대륙과는 유일하게 북한을 통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과 정보 교류를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북한에 유입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한 예방조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2007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조지아에서 발생하고 반년 뒤 러시아 국경지역에서도 등장한 것에서 보듯 야생 돼지를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경을 넘어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다시 한국으로 옮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질병을 옮기는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사람이다. 외국에서 불법 축산물을 가지고 오다 공항이나 항만에서 적발된 게 해마다 약 2t이나 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들어 있는 불법 축산물이 공항과 항만 단속을 빠져나가면 바로 그 순간부터 축산농가에겐 재앙이 시작되는 셈이다. ●각 시·도에 항원·항체 진단체계 만들어 대응 농식품부에선 유럽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뒤 방역대책을 발전시켜 왔다. 항원·항체 진단법을 2009년 확립하고 사육 돼지와 야생 멧돼지를 대상으로 혈청 예찰을 실시하고 있다. 공항이나 항만에서 압수한 불법 휴대돼지고기와 돼지고기 가공품 항원검사도 2016년 100건, 2017년 112건을 했다. 지난 2월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예방 관리대책도 마련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국가와 관련한 세관 합동검사를 주 2회 실시하고 전담요원도 배치했다. 특히 중국발 항공편 노선에 검역 탐지견을 집중 투입해 검역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혹시라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면 신속히 살처분을 할 수 있도록 긴급 행동지침도 만들 계획이다. 살처분 매몰지도 미리 선정해놓았다. 국내 방역은 국제기구에서 권장하는 유효 소독성분을 포함하는 제품을 사용하도록 관련 규정도 강화했다. 시·도에도 아프리카돼지열병 항원·항체 진단체계를 구축했다. 농식품부 김대균 구제역방역과장은 “시·도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을 검사할 수 있는 실험실과 진단기관이 없는데 관련 전문가도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예방이 최선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유입됐을 때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인적·물적 기반 구축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글로벌 계약서 플랫폼 ‘글로핸즈’… “작성부터 서명까지 한 번에”

    글로벌 계약서 플랫폼 ‘글로핸즈’… “작성부터 서명까지 한 번에”

    글로벌 시대가 도래한 만큼, 이웃나라와의 교류가 확대되고 국내 사업자들의 무대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온라인 비즈니스 플랫폼을 통해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돕겠다는 비전으로 전자계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 글로벌의 ‘글로’와 돕다 라는 뜻의 ‘핸즈’의 합성어인 ‘글로핸즈’라는 회사가 바로 그 주인공. 글로핸즈는 전자계약 서비스 플랫폼을 운영 중이며, 개인회원을 대상으로 무료 전자계약 서비스를 확대 운영한다고 밝혔다. 글로핸즈의 전자계약 서비스는 국내외 계약 당사자 간의 대면 없이 온라인에서 계약서 발송부터 본인인증, 서명날인, 계약서 검토 및 번역 등 서비스를 한번에 이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변호사, 노무사 등 전문가를 통해 계약서의 작성과 검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중국어와 영어의 계약서 번역서비스도 제공한다. 글로핸즈와 기존의 전자계약 서비스의 차별점은 계약서 작성부터 검토, 번역, 전자서명까지 계약을 온라인에서 원스톱으로 손쉽게 진행이 가능하며 한국-중국 간 계약체결에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다양한 글자 크기와 글자체로 서명이 가능하며 텍스트, 날짜, 메모 등 문서 계약의 서명필드와 체크박스, 라디오박스, 드롭다운박스 등의 전자계약서를 위한 서명 필드까지 제공하며, 모든 서비스는 모바일과 태블릿에서도 편하게 사용 가능하다. 글로핸즈 최충열 대표는 “이메일도 무료인데 전자서명도 무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과 기업들의 글로벌 계약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절감뿐만 아니라 편의성과 안정성도 높여가겠다“며 ”현재 블록체인을 활용한 문서진본위여부 인증을 적용하고 있으며 중국을 필두로 동남아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순차적으로 업데이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글로핸즈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한 물리적 보안과 파일 암호화 전송을 통해 보안을 강화하였으며, 한-중 양국의 계약 참여자의 개인 신분 인증이 가능하다. 서명 완료 시 계약 체결 시간, IP 기록 등이 포함된 감사추적인증서가 발급돼 법적 효력이 강화된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한편 글로핸즈는 2017년 창업진흥원과 서울산업진흥원의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서울창업허브에서 지원받고 있다. 자세한 서비스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뉴질랜드 여성 장관 임신 42주에 사이클 타고 병원 내원

    뉴질랜드 여성 장관 임신 42주에 사이클 타고 병원 내원

    뉴질랜드의 한 여성 장관이 임신 42주의 몸으로 사이클을 타고 첫 아기를 출산할 병원에 다녀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녹색당 출신 줄리 젠터(38) 교통부 장관으로 오래 전부터 사이클을 즐겨 타고 사이클 예찬론을 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아름다운 일요일 아침”에 동거남 피터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며 사진들을 올렸다. 그녀가 아기를 출산하면 지난 6월 재신다 아르던 뉴질랜드 총리가 임기 중 출산한 세계 두 번째 정상으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임기 중 아기를 세상에 내놓은 정치인 대열에 합류한다. 공교롭게도 아르던 총리가 다니던 오클랜드 시립병원에서 그녀도 진료받고 있다. 녹색당 의원 답게 젠터 장관은 “바로 이런 거죠. 우리에게 행운을 빌어주세요!”라고 적고 “동거남과 난 차 안에 참모들을 태울 만한 충분한 공간이 없어 사이클을 탔다. 하지만 가능한 최고의 몸상태로 병원에 갔다”고 덧붙였다.3개월 동안 출산 휴가를 떠나는 그녀는 전동 사이클을 이용해 “거의 내리막길”이었다며 “아마도 분만하러 가야 하는 마지막 몇 주는 더 많이 자전거를 타야 할지 모른다”고 농을 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젠터 장관은 임신 사실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렸는데 당시도 “자전거에 보조 좌석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은유적 표현을 썼다. 뉴질랜드 의원이 처음 임기 중 아이를 출산한 것은 1970년이었으며 의회에서 모유 수유를 한 최초의 정치인은 1983년 배출됐다. 그런데 이웃 호주 하원에서 모유 수유와 젖먹이를 허용하도록 규칙이 개정된 것은 2016년이었다. 지난해 3월에는 유럽의회의 스웨덴과 이탈리아 의원들이 아기를 팔에 안은 채 표결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기후변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기후변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올여름 폭염으로 전 지구촌이 들끓고 있다. 과거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던 북유럽, 캐나다, 미국 북서부 도시까지도 가마솥으로 펄펄 달아오르고 있다. 북극 기온이 30도를 넘고 있고 필자가 지난달 여행한 캐나다 몬트리올까지도 37도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무더웠다. 7월 24일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의 최고기온은 52.7도까지 올라갔고, 스웨덴은 260년 만에 가장 더운 34.6도로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 달째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려 지난 5월 20일부터 8월 11일까지 3800여명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해 그중 47명이 목숨을 잃었다. 캐나다에서도 최소 89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러한 폭염은 단순한 일시적 기상변화에 기인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 낸 인재인가에 대해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 기상학자는 인간의 과도한 에너지 소비 활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후변화란 장기간 일정하게 유지돼 온 기후 패턴에 변화가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1880년부터 2012년까지 지난 133년간 지표면의 평균 온도는 0.85℃ 상승했으며 이 탓에 해수 온도 상승, 해일, 북극과 남극 빙산 용해, 폭염과 혹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를 토머스 프리드먼이 명명한 ‘검은 코끼리’ 현상이라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 용어는 ‘검은 백조’와 ‘방 안의 코끼리’라는 두 단어를 결합한 합성어인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다른 용어로 ‘기든스 패러독스’라고도 한다. 즉 과학자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기업이나 일반 국민은 기후변화라는 환경 재앙이 눈앞에 닥쳤지만, 당장의 이익에 매몰돼 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16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앞으로 지구온도가 2℃를 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한다는 ‘칸쿤 합의’가 도출됐고, 2015년 파리에서 채택된 파리협정문에서는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는 더 엄격한 조항이 삽입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기후변화라는 환경재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부분의 국내 환경 전문가들은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 기업, 일반국민 모두 선진국과는 달리 소극적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범인 온실가스는 에너지 사용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2017년 현재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6위이며, 온실가스 증가율은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주력 수출산업인 철강, 조선 산업 등이 모두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데다 일반 국민의 과도한 냉·난방으로 인한 에너지 과소비가 이러한 급격한 증가율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환경 선진국인 이웃 일본이나 독일은 온실가스를 줄이고자 중앙정부를 비롯한 전 국가적 차원에서 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2017년 여름에 일본 도쿄 국제환경 콘퍼런스에 환경국책기관 원장으로서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국제회의장 실내 온도가 28℃에 설정돼 있었다. 같은 해 5월에 독일 드레스덴에서 개최된 유엔 환경회의에서도 행사장 내 모든 시설의 냉방이 지열을 사용하고 있었고, 일체의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돼 있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현재 대비 37%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2015년에 발표했지만, 그동안 구체적 실행계획이 미흡해 국제적인 기후변화조직(Climate Action Tracker)으로부터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매우 불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이상 온실가스 감축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벗어나 정부, 기업, 일반국민 모두 에너지 절감 정책에 동참할 때만이 우리 국민은 미세먼지, 폭염이라는 이중고에서 벗어나 국민 행복이라는 삶의 질을 제고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구를 지금 이 시점에서 의미심장하게 되새겨 보아야 한다.
  • 쌀·선풍기·현금 30만원…파주의 ‘얼굴 없는 천사’

    경기 파주시에 지난겨울부터 얼굴 없는 천사가 잇따라 나타나 시민들에게 위로를 안기고 있다. 16일 파주시에 따르면 지난 14일 시청에 쌀 10㎏짜리 50포가 택배로 배달됐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신 써달라는 글만 있었고 보낸 사람을 알 수 없었다. 앞서 이달 1일에는 시청 복지동 입구로 선풍기 10대가 배달됐다. 선풍기 상자에는 “어렵고, 더위에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두고 갑니다. 너무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쓴 메모 1장이 붙어 있었다. 파주시는 부채만으로 지내는 취약계층 10가구에 곧장 전달했다. 쌀은 도움을 잘 받지 못하는 아동·여성 등의 생활시설에 보내기로 했다. 파주에서는 지난 1월 말에도 운정1동 행정복지센터에 익명의 시민이 직접 가꿨다는 쌀 20㎏짜리 40포(160만원 상당)를 기탁했다. 한사코 이름 밝히기를 거절한 시민이 독거노인 등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30만원이 든 봉투를 두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이런 소식에 파주LG디스플레이는 이날 선풍기 100대를 파주시에 기증했다. 시는 독거노인 및 소년소녀가정 등 저소득 가구에 긴급 배포한다. 이미경 파주시 복지정책과장은 “기부하면 현수막을 내걸고 사진을 찍으며 선행을 알리는 게 보통인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해마다 기부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NYT)와 보스턴글로브 등 300여개 신문이 15일(현지시간) 온라인판을 시작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삐뚤어진 ‘언론관’을 비판하는 ‘사설 연대’ 행동에 나섰다.NYT는 이날 ‘자유로운 언론에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온라인판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언론 정책에 저항하는 움직임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했다. NYT는 사설에서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1787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정부 없는 신문)를 택하겠다’고 했다”면서 언론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또 1964년 미 연방대법원이 ‘공공의 토론은 정치적 의무’라고 판결한 판례도 부각시켰다. 이어 “자신이 달가워하지 않은 사실을 ‘가짜뉴스’라고 주장하고 언론인을 ‘국민의 적’이라고 부르는 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다. 사설 연대 행동을 제안한 보스턴글로브도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 가장 위쪽에 ‘언론인은 적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배치했다. 사설에서 “부패 정권이 국가를 떠맡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유 언론을 국영 언론으로 바꾸는 일”이라면서 “미 대통령이 행정부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언론을 겨냥해 ‘국민의 적’이라는 주문을 외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2대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가 ‘언론의 자유는 (국민의) 자유 보장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면서 “미국의 이런 근본적 원칙이 오늘날 심각한 위협 아래에 놓여 있다”며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규정한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스캐롤라이나 페예트빌의 옵저버는 “대통령이 (언론에 대한) 공격을 멈출 것으로 희망하지만 그렇다고 숨죽이고 있지만 않을 것”이라고, 펜실베이니아의 엘리자베스타운 애드보케이트 등은 “미국의 자유 언론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고 강조했다. 1200개가 넘는 방송사와 웹사이트들을 대표하는 라디오·TV디지털뉴스협회도 회원사들에 “언론인은 적이 아니라 정부에 대해 설명하는 친구이자 이웃”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번 ‘사설 연대’에 동참하지 않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칼럼에서 “보스턴글로브의 제안은 사설의 독립성 추구 원칙에 위배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자신에게 반대하는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101회 헌혈왕… ‘피’로 지킨 나라

    101회 헌혈왕… ‘피’로 지킨 나라

    고2 때 시작… 21년간 꾸준히 실천 월 1~2회 50분 이상 혈장 헌혈 견뎌 “생명 구하는 일… 운동하며 몸 관리”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시작했는데 벌써 100회를 넘겼네요.”박인주(37·육군보병학교 전투지휘학과 전술학 교관) 소령은 16일 이렇게 말하며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고등학교 2학년 이후 무려 21년 동안 헌혈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어 주변으로부터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최근 헌혈 100회를 달성해 대한적십자로부터 헌혈 유공 명예장을 받았다. 키 181㎝, 몸무게 87㎏의 건장한 체격인 박 소령은 “그렇게 자주 헌혈하면 어지럼 증상을 겪지 않느냐”는 물음에 “헌혈 전 충분히 검사를 하는 데다 체력을 따져 피를 뽑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이어 “1년여 연애하던 시절 헌혈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집사람 입장에서는 늘 건강한 상태로 통과되니까 더 돋보이고 멋져 보여 결혼에 골인한 것 같다”며 또 멋쩍게 웃었다. 함께 헌혈하러 가도 부인 최경화(36)씨는 ‘약골’이어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아들(7)과 딸 셋(11·10·3)을 둔 박 소령은 헌혈할 때 꼭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자연스럽게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처음엔 식구들이 적잖이 귀찮아하는 듯했지만 위급 상황 때의 의미를 듣고 난 뒤로 좋은 일이라며 선뜻 따라나선다. 박 소령은 “아빠랑 같이 가니까 아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박 소령은 2003년 임관 이후 헌혈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군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 외에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그는 오래 걸리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혈장 헌혈을 하고 있어 의미를 더한다. 일반 헌혈은 10여분 만에 끝나지만 혈장 헌혈은 50분 이상을 견뎌야 한다. 피를 뽑으면 혈장·적혈구·백혈구·혈소판이 나오는데, 이 가운데 혈장 성분만 빼고 모두 다시 몸속으로 넣는 헌혈 방식이다.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혈장이 부족해 외국에서 수입한다는 사실을 알고 힘을 보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한 달에 1~2회씩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박 소령은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 ‘헌혈의 집’에서 기록을 101회로 늘렸다. 그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운동하면서 몸 관리에 애쓰고 있다”며 “명예장 수상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200회, 300회 헌혈에 계속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흐뭇한 헌혈을 떠올려달라는 말엔 “제 피가 누구에게로 가든, 소중하게 쓰일 테니…”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헌혈자는 292만 8670명이다. 전체 국민 대비 5.7%다. 2015년 308만 2918명에서 2016년 286만 6330명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수혈용 혈액도 2013년 462만 3692유닛(300~500㎖), 2014년 442만 7828유닛, 2015년 438만 5554유닛, 2016년 427만 529유닛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글 사진 장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맛있는 독일 맥주의 비결…500년 역사 ‘맥주순수령’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맛있는 독일 맥주의 비결…500년 역사 ‘맥주순수령’

    맥주 만들때 맥아·홉·물 이외 원료 금지 밀맥주 인기에 빵 원료인 밀 부족 사태 식량문제 해결하고 품질 높이기 위해 1516년 바이에른 공국 빌헬름4세 반포 최근 소규모 양조장 발전 제한 비판도 독일은 ‘맥주 천국’으로 불립니다. 독일 전역에 맥주 양조장은 1300개가 넘고, 세계 최대 홉 산지인 할러타우 지역이 있으며 모든 마을에는 주민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는 큰 규모의 ‘비어할레’(독일식 펍)가 존재합니다.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청년 시절 비어할레에서 ‘통일 독일’에 관한 명연설을 한 뒤 독일노동당 지도부에 합류해 본격적인 정치가의 길을 걷게 됐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당연한 말이지만 독일인에게 맥주는 일상 그 자체입니다. 독일에서 맥주를 수입하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독일 맥주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죠. 독일이 맛있는 맥주를 생산해온 비결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500년 이상 지켜진 ‘맥주 순수령’을 꼽습니다. 맥주순수령이란 맥주를 만들 때 맥아와 홉, 물 이외의 원료는 사용하지 못하게 한 법령으로 1516년 4월 23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가 반포했습니다. 효모의 존재가 아직 밝혀지지 않을 때였으니 순수령의 원료에 효모가 들어가진 않았죠. 빌헬름 4세가 맥주순수령이라는 법률을 만든 이유는 우선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맥주는 보리로 만든 술이지만 16세기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밀맥주’가 성행했습니다. 독일식 밀맥주는 보리와 밀을 50%씩 섞어서 에일 방식으로 만든 ‘헤페바이젠’(바이스비어)을 일컫습니다. 당시에도 밀맥주는 보리 맥주보다 목넘김이 부드러워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수요가 많아 너도나도 밀맥주를 생산하다 보니 주식인 빵의 원료 ‘밀’이 부족해지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제빵업자와 양조업자들은 원료인 밀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해야 했고, 양측 간 갈등도 깊어져 사회 문제로까지 커졌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맥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양조업자들은 맥주에 향초나 향신료, 과일 등을 넣거나, 심지어는 빨리 취하게 할 목적으로 독초를 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빌헬름 4세는 맥주순수령에 따라 정해진 원료로만 맥주를 만들게 되면 사람들이 좀 더 건강하고 품질이 좋은 맥주를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빌헬름 4세는 바이에른 일부 지역에서 실시됐던 맥주 관련 규제를 맥주순수령으로 통합해 바이에른 공국 전체로 규제를 확대시켰습니다. 이후 1871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1797∼1888)가 독일을 통일하고 황제가 되었을 때 바이에른 공국은 맥주순수령을 독일 전역에 적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1906년부터는 독일 전역에서 맥주순수령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독일 양조장들은 일정한 품질 이상의 예측 가능한 맛이 나는 맥주를 생산하는 데 강점을 갖게 됩니다. 반면 맥주 원료에 대한 제한이 없었던 이웃 벨기에의 양조장들은 맥주를 만들 때 과일이나 향신료를 부재료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죠. 오늘날 ‘독일식 맥주’, ‘벨기에식 맥주’의 특징이 확연하게 다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500년 이상 맥주순수령이 이어져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맥주순수령에 어긋나는 ‘밀맥주’인 헤페바이젠이 아직까지 독일 남부의 상징적인 맥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밀맥주가 사장되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맥주순수령’을 지키지 않고 맥주를 만들어 마셨던 당시 특권층의 역할이 컸습니다. 맛있는 밀맥주를 계속해서 마시고 싶었던 귀족들은 몰래 밀맥주를 독점해 만들어 팔았고, 밀맥주는 지하에서 그 명맥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맥주순수령은 독일 맥주 정통성의 핵심이며 지금의 독일 맥주를 있게 한 일등 공신입니다. 2016년 열린 맥주 순수령 500주년 기념식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참석해 맥주잔을 기울일 정도로 맥주순수령에 대한 독일인들의 자부심은 매우 강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맥주순수령 때문에 ‘소규모 양조장의 개성을 죽이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맥주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창의성,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크래프트맥주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간 동안 독일의 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활약은 미미했던 것도 맥주순수령이 뿌리 깊게 자리한 환경 탓도 큽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오늘날 ‘맥주 천국’ 독일에서 맥주순수령은 독일 맥주의 강점이자 극복해 나가야 할 대상이기도 한 ‘양날의 검’인 셈입니다. macduck@seoul.co.kr
  • 리아킴 “김종환, 아버지라 부르지 못해..매니저도 몰랐다”

    리아킴 “김종환, 아버지라 부르지 못해..매니저도 몰랐다”

    아름다운 노랫말로 우리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가수 김종환. 그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 리아킴이 2012년 가요계에 데뷔했다. 데뷔 초 대중들에게 편견을 심어줄까 싶어 2년 동안이나 부녀관계임을 철저히 숨겨왔지만 이제는 그 관계를 밝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두 사람. 리아킴은 인터뷰 내내 아버지, 가족에 대한 애정과 화목함을 드러냈다. 한 때는 ‘김종환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는 그는 이제 그 수식어가 감사하다고. 가수 ‘리아킴’으로 당당히 홀로 서고 있는 그가 bnt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성숙하고 여성스러운 콘셉트에서는 리아킴 특유의 여성미와 관능미를 발산했다. 이어 캐쥬얼한 콘셉트에서는 발랄한 매력을 뽐냈다. 그는 아직 대중에게 보여주지 않은 매력이 더 많은 아티스트 같았다.화보 촬영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먼저 그의 근황을 들어 봤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여있는 팀이 있어서 그분들과 함께 환우들의 문화생활을 돕는 병원 봉사 투어를 하는 중이다”라며 방송 활동 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공연을 하고 있는 그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가수의 꿈을 키웠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들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음악 하시는 걸 보고 자랐다. 아버지를 따라 콘서트장에 따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가까워진 것 같다”라며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을 가까이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이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어느 날은 잭슨 파이브의 노래를 듣는데 그 노래들을 내가 직접 불러보고 싶더라. 잭슨 파이브나 카펜터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팝송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았다”라며 남다른 재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아버지와 함께 데뷔하게 된 독특한 사연도 인상적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제의를 거절하고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게 했던 아버지 김종환은 나름의 트레이닝을 시켰다고. “길에서도 시키시고 시장에서도 시키시고 틈만 나면 노래를 시키신 것 같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아이돌 제의가 한 번 더 왔다. 그때는 나에게도 결정할 기회를 주셨다. 고민 끝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쪽을 선택했다. 아버지는 내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프로듀서라고 생각했다”라며 아버지의 프로듀싱으로 데뷔하게 된 사연을 공개했다. 대형 기획사나 유명 프로듀서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는지 속마음을 물었다. “아버지의 음악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버지의 어려웠던 가수 생활을 알고 또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그런 아버지의 곡을 받아서 딸인 내가 부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라며 아버지의 음악으로 활동하는 속 깊은 뜻을 드러냈다. 리아킴은 데뷔 당시 아버지가 김종환임을 숨기고 2년 동안이나 활동했다. 당시에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는지 묻자 “처음에는 매니저도 몰랐다. 정말 철저하게 숨겼다. 물론 어릴 때부터 나를 보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아는 분들은 아셨겠지만 다들 모른 척해주셨다. 무조건 호칭은 대표님, 선배님. 그런데 차에 타거나 집에 오면 바로 아버지로 호칭이 바뀌었다. 밖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나 태도로 실수한 적은 없다. 너무 긴장한 채로 아버지를 대해서. 정말 대선배님이라 생각하고 말도 행동도 조심했다”라며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던 데뷔 시절을 회상했다. 물론 지금도 밖에서는 선배 가수처럼 아버지를 대한다고. 그는 아버지의 존재가 부담으로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분명 ‘누구누구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어린 나에게 상처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데뷔 후에는 아버지의 존재가 감사했다. 아버지가 김종환인 것도 감사하고 이제는 나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감사함과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다”라며 현재는 자신이 김종환의 딸인 것에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담’이라는 본명을 두고 예명을 쓰는 이유도 들어 봤다. “어릴 때는 내 이름을 별로 안 좋아했다. 좀 튀는 이름이라 나도 세 글자의 무난한 이름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데뷔할 무렵에도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패티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한다. 패티김 선생님도 패티라는 영어 이름에 한글 성 김을 붙이셔서 그 영향도 있었다”라며 리아킴이라는 예명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본인 나이에 비해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는 장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도 들어 볼 수 있었다. “내가 깊이 있는 음악을 좋아하고 아버지가 그 분야에는 이름난 분이시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곡이 마침 성인 발라드인 것뿐이지. 그리고 나 스스로 내가 하는 음악을 성인 발라드라고 규정하고 한정하지 않는다”라며 현재 자신이 하는 음악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을 좋아한다는 그는 웅장하고 영화 같은 느낌의 음악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싶은 아티스트를 묻자 “중국 배우 여명. 기교 없이 따뜻한 감성이 느껴져서 정말 좋다. 국내 아티스트는 패티김 선생님을 꼽고 싶지만 이미 은퇴하셔서. 윤복희 선생님과도 음반 작업을 해보고 싶다. 정말 멋있으시다. 남자 아티스트는 임창정 선배님, 차태현 선배님과 해보고 싶다”며 희망을 드러냈다. 전시회나 연극 등 문화생활을 자주 즐기는 SNS 속 사진에 대해서는 “아버지 덕분이다. 어릴 때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이나 전시회에 많이 데려가셨다.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떨어져 살았다.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마다 예술적인 감성을 키워 주시려고 한 것 같아 감사하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친구들과 시간이 나면 전시회나 박물관에 자주 가는 것 같다”라며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친한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묻자 “모델 송해나, 배우 한정원, 2016 한국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 최정민, 나까지 네 명이 서로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다. 네 명 모두 성격이 달라서 서로 배울 점이 많다. 싸운 적도 없다. 다들 천성이 착하고 서로 조심할 부분은 조심하면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라며 친분을 과시했다. 출연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뷰티 관련 프로그램을 꼽았다. “평소에 이쪽에 관심이 많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많은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메이크업을 한다고 하셨다. 지방이나 해외로 공연을 하러 갔을 때 혼자서 메이크업을 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하셔서. 그 말씀을 듣고 그 뒤로 샵에서 해주시는 걸 기억해 뒀다가 집에서 따라 하다 보니 실력이 늘더라”라며 뷰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밝혔다. 앞서 콜라보레이션 하고 싶은 가수로 임창정과 차태현을 꼽았던 그의 이상형 역시 이 두 사람이었다. 이어 “진짜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것이든 한 분야에서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언니는 이미 결혼을 했고 내가 결혼 전까지 아들 노릇을 하고 싶다. 결혼은 일단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을 정도로 내 커리어를 쌓고 2년 후쯤 생각하고 있다”라며 결혼관에서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이 묻어났다. 인터뷰 내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던 그에게 가족의 의미를 물었다. “나에게 가족은 정말 ‘가족’이다. 도덕책에 나올 것 같은 그런 가족. 가족들 간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가족이 떨어져 지냈던 어려웠던 시절에도 외롭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언니나 나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으로 자랐다. 가족들 덕분에 어려웠지만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라며 다시 한번 가족애를 보여줬다. 올해가 가기 전에 아버지에게 자작곡을 보여드리는 게 목표라는 그는 앞으로도 더 따뜻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봉사하러 가서 ‘위대한 약속’을 부르며 손잡아드리고 눈 맞춰드리면 공감해주시고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왜 가수를 해야 하는지 느낀다. 사람들의 차갑고 딱딱해진 마음을 누그러뜨려 줄 수 있는 가수,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라며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바람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들어봤다. “데뷔 초에 항상 ‘위대한 약속’의 노랫말처럼 따뜻한 음악으로 여러분에게 희망을 주고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는 가수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잊지 않고 변치 않고 더 음악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감사하다”라는 인사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반려동물 환경기준 강화… 동물학대 막는다

    반려동물 환경기준 강화… 동물학대 막는다

    영양·위생·생육 공간 등 조건 명시 감당 못할 정도로 많이 못 키우게 ‘동물보호법 개정안’ 심사 진행 중이른바 ‘애니멀 호더’를 규제하기 위해 반려동물 사육 기준이 강화된다. 애니멀 호더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뜻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규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애니멀 호더는 좁은 우리에 동물을 몰아넣고 위생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동물 학대로 이어지기 쉬운 데다 냄새나 소음 때문에 이웃과 분란이 생기는 경우도 잦아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초 서울 마포구에서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않고 유기견 수십 마리를 한 곳에서 키우던 사람이 이웃의 항의에 10여 마리를 몰래 버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한 사람이 개를 3마리 이상 키우는 것을 금지하고 호주에서는 4마리 이상 키우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등 세계적으로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개정안은 우선 반려동물이 일상적인 동작을 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충분한 사육 공간을 확보하도록 했다. 여러 마리를 키울 때는 전염병이 발생한 동물을 즉시 격리해야 한다. 또 ‘영양이 결핍하지 않도록 사료 등 동물에게 적합한 음식과 깨끗한 물을 공급해야 한다’, ‘쉴 곳, 급수 용기 내 분변·오물 등을 제거해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 등의 규정을 명시한 것도 눈에 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동물보호·복지 의식 조사에서 답변한 가구를 기준으로 전체 가구로 환산하면 반려동물을 다섯 마리 이상 키우는 사람은 23만명, 9만 가구 정도”라고 밝혔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화훼 예술, 세대간 화해 메신저 되다

    화훼 예술, 세대간 화해 메신저 되다

    경기 군포문화재단은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70~80대 어르신들과 청년들이 함께 꽃 작품을 만들며 소통, 공감하는 프로젝트 ‘꽃소동 화훼×화해’를 진행했다고 15일 밝혔다. ‘꽃으로 소통하는 우리 동네’라는 의미의 ‘꽃소동’은 도시 내 세대 간 단절 현상을 개선하고 예술을 통해 새로운 소통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기획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 어르신문화프로그램 ‘어르신&청년 협력프로젝트´의 하나로 군포문화재단, 한국문화원연합회, 밸류브릿지가 주관했다. 이번 달 4회에 걸쳐 진행된 프로젝트에는 소통과 공감의 역량을 갖춘 지역 청년 문화예술 활동가 20명이 참여했다. 퍼실리테이터(조력자) 교육을 받은 청년들과 4곳의 경로당 어르신들은 지역 복합문화공간인 ‘공터’에서 꽃다발, 드라이플라워, 캘리그래피 엽서 등 16점의 꽃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단절된 두 세대는 꽃 예술작품을 함께 만들며 미묘하고 어색한 관계를 소통하고 공감하며 이어 나갔다. 앞서 청년들은 어른들과 소통하는 법, 질문하고 경청하는 법 등 좀더 나은 소통을 디자인하기 위해 공부했다. 어르신들도 꽃 작품 제작 워크숍에 참여해 청년들과 함께하는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했다. 두 세대가 소통하며 함께 만든 작품은 어르신들의 지난날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역할도 했다. 청년들이 꽃 집배원이 돼 어르신들이 희망하는 이에게 꽃과 함께 차마 전하기 어려운 말,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전달하고 답례 영상편지를 다시 전해 끊어졌던 관계 회복을 도왔다. 꽃소동을 통해 어르신과 청년들은 함께 작업하고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세대, 이웃, 친지 간 단절된 관계를 이어 가며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공감해 나갔다. 재단은 다음달 그동안 꽃소동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작품과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가 세대 간 분절 현상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시공동체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큰형 살아있다니 믿기지 않아…처음엔 보이스피싱 의심했다”

    “큰형 살아있다니 믿기지 않아…처음엔 보이스피싱 의심했다”

    20일 이산상봉 앞둔 이수남씨 눈물 황우석씨는 세 살 때 헤어진 딸 만나 “딸 지금 일흔한 살, 소설 같은 얘기”오는 20일부터 시작되는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닷새 앞두고 세 살 때 헤어진 딸을 68년 만에 만나는 황우석(89)씨는 “지금까지 살아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황해도 연백군이 고향인 황씨는 1951년 1·4 후퇴 때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고자 홀로 배를 타고 피란길에 올랐다. 3개월만 피란하고 고향에 돌아가자는 생각은 부모님과 세 여동생은 물론 처자식과도 68년 동안의 생이별로 이어졌다. 황씨는 “고향 떠날 때 세 살이었던 딸이 지금 71세”라며 “내 혈육이라곤 걔 하나 살아서 이번에 외손녀인 자기 딸이 39세인데 데리고 온다는 거예요. 참 소설 같은 얘기”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딸에게 “지금까지 살아 줘서, 살아서 만나게 돼서 감사하다고 얘기를 해야겠다”고 말했다.전쟁 통에 헤어졌던 큰형을 만나는 이수남(77)씨도 “뜻밖의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말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친·인척한테까지도 며칠 동안 얘기 안 하고 있다가 요즘에 와서 이웃에 조금 말한 정도예요. 지금도 자꾸 만나 봐야, 확인을 해야 이런 감정이 가시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68년 만의 생사 확인에 멍한 기분을 전했다. 이씨는 큰형이 살아 있다는 연락을 받고 벅찬 마음에 딸과 며느리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전했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대한적십자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으로 혼동할 정도였다. 이씨의 전화를 받은 둘째 형도 “거짓말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박경서 한적 회장은 지난달 27일 이씨의 자택을 직접 찾아 큰형의 생사확인 회보서를 전달했다. 이씨는 “살아 계시는 게 너무 영광이고 고맙다는 말을 큰형에게 하고 싶다”며 “영구적으로 상설면회소가 생긴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바람”이라며 이산가족의 심정을 전했다. 여동생 선분(73)씨와 남동생 혁동(68)씨를 만나는 박기동(82)씨는 “헤어질 당시 동생들이 여섯 살, 두 살 정도로 너무 어렸기 때문에 형이나 오빠를 잘 모를 거예요. 이산가족 신청을 벌써 수십 년 전부터 했어요. 상봉을 앞두고 밤잠을 많이 못 자고 설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생에게 줄 선물로 속옷과 치약, 칫솔 등 생활용품을 많이 준비했다며 “겨울에 추울 때 따뜻하게 입으라고 겨울 잠바도 샀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남북 군사당국은 지난 7월 16일 서해지구 군 통신선 정상화에 이어 오늘 동해지구 군 통신선도 완전 복구해 모든 기능을 정상화했다”고 밝혔다. 2010년 11월 28일 산불로 인해 완전히 소실된 이후 8년 만의 복구다. 통일부 공동취재단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美 40대 가장, 경비행기 훔쳐 집으로 ‘자살 비행’

    美 40대 가장, 경비행기 훔쳐 집으로 ‘자살 비행’

    돌진 직전 “엄마와 집에 있어라” 통화 아내·아이들, 추락 전 집 나와 구사일생미국에서 조종사 면허가 없는 항공사 직원이 ‘광란의 비행’을 벌이다 추락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40대 남성이 부부싸움을 한 뒤 경비행기로 자택에 돌진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탈취한 비행기를 이용한 자살 사건이 잇달으면서 미국의 허술한 항공 보안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국 유타주 페이슨에 사는 두에인 유드(45)는 13일(현지시간) 새벽 2시 30분쯤 경비행기를 몰고 자신의 집을 향해 곧바로 돌진했다. AP통신 등 미 언론들은 유드는 현장에서 사망했지만 아내와 자녀들은 사고 직전 집에서 나와 목숨을 건졌다고 전했다. 조종사 면허가 있는 유드는 전날 밤 심하게 부부싸움을 벌이다 아내를 구타한다는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됐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유드는 곧장 자택에서 25㎞ 떨어진 스패니시 포크 스프링빌 공항에 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경비행기를 훔쳐 자택을 향해 비행했다. 그는 범행 직전 자녀들에게 전화해 “엄마와 집에 함께 있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일 오후 7시 32분에는 워싱턴주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서 호라이즌 항공사 지상직 직원 리처드 러셀(29)이 활주로에 계류중이던 자사 여객기 터보프롭 Q400 조종석에 난입해 항공기를 이륙시켰다. 러셀은 관제탑과의 통신에서 1시간 10분가량 횡설수설 대화를 주고받다가 8시 47분쯤 공항에서 64㎞ 떨어진 숲에 추락해 숨졌다. 수사 당국은 이 사건을 자살 충동을 느낀 한 개인의 일탈 행위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유드와 러셀 모두 통제구역인 조종석에 난입해 비행기를 몰 때까지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항의 취약한 보안이 뭇매를 맞고 있다. 미 통계기관 스테이티스타에 따르면 미국 내 민간 비행기는 약 21만 8000여대(상업용 항공기 5000여대 포함)에 달한다. 비행기를 이용한 자살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알래스카주에서는 42세의 변호사가 민간항공 순찰대 소속 경비행기를 몰아 자신의 부인이 근무하던 건물에 추락해 숨졌다. 통제 구역에 대한 접근 차단 못지않게 60만명에 달하는 미국 내 조종사 면허 취득자의 정신감정 등 자살 비행에 대비한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아기 쥐 등에 자라난 한 뼘의 콩 새싹 화제

    아기 쥐 등에 자라난 한 뼘의 콩 새싹 화제

    한 농부가 살아있는 쥐의 몸 안에서 식물이 자라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1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지난 7일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라틀람시에 사는 농부 다타르 싱은 등에서 콩 모묙이 자라는 쥐를 우연히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올해 초 밭에 심은 콩 작물이 잘 자라는지 확인 차 살피던 중 싹이 자라난 쥐를 본 것 이다. 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듯 움직임이 둔했다. 꽤 길게 자라난 싹에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싱에게 몰려들었고, 기이한 현상을 영상으로 촬영하면서 쥐의 모습은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싱은 쥐를 애처롭게 바라보다 집에 데려가 등에 자라난 새싹을 제거해주었다. 그는 “콩 씨앗이 뜻하지 않게 쥐 등에 벌어진 상처 부위로 떨어졌고 거기서 발아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을 본 인근 대학의 생물학 교수 시디퀴도 싱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이는 기적이다. 식물이 쥐의 목덜미 주변에서 생장했지만 뇌손상은 전혀 없었다”며 이상 현상에 신기해했다. 사진=사우스웨스트뉴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여기는 중국] 中 당국, 애완견 목줄 착용안하면 5년 간 사육금지

    [여기는 중국] 中 당국, 애완견 목줄 착용안하면 5년 간 사육금지

    중국이 ‘문명 강국’을 건설하기 위한 일환으로 애견, 애묘인에 대한 공중도덕 관리 강화 방침을 밝혔다. 중국 산시성 시안 공안당국은 최근 ‘문명인과 동떨어진 행위를 하는 자와 해당 행위에 대한 금지 조치 및 협조를 구할 시 이에 응하지 않은 자에 대해 향후 5년간 반려동물 양육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고문을 발표했다. 이는 최근 시진핑 정부가 ‘문명 강국 건설’을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공중도덕 실천을 강조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강력 조치로 풀이된다. 앞서 중국 당국은 대중 교통 승.하차 시 교통질서 지키기,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공공 장소에서 취식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문명 조국 건설 통지’를 도심 곳곳에 부착한 바 있다. 해당 통지문은 버스 정류장,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입출구 등에 게시돼 있는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안 공안당국의 애견, 애묘인에 대한 이번 통지문을 통해 ‘애견, 애묘 허가증을 해당 공안국에 등록하지 않았거나 등록 연장을 하지 않은 자’와 ‘목줄 착용을 하지 않은 채 산책하는 견주’ 등에 대해서도 5년간 시안 시에서의 반려 동물 양육 금지 조치를 적용할 것이라고설명했다. 또, 이달 중 각 지역별로 거리를 배회하는 유기견, 유기묘를 단속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대형 주거 단지마다 구성된 주민자치위원회 등을 통해 목줄 착용을 하지 않은 채 산책하는 견주에 대해 상시 민원 접수를 받을 예정이다.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애견인, 애묘인 사이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단속 사태’라고 지칭되는 상황이다. 반려 동물을 입양해 양육하는 이들 중 일부는 온라인 SNS 위챗(wechat) 등을 통해 각 지역별로 담당 공안이 단속 나올 예정 시일을 공유, 정부의 강력한 단속을 피하겠다는 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같은 정부 당국의 강력한 관리 감독에 대해 찬성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최근 시안시 옌타취(雁塔區) 제1부속병원 일대의 대규모 주택 단지 내에서 목줄을 착용하지 않았거나, 엘리베이터 내에 분뇨를 치우지 않았던 견주 등 50여명을 적발한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시안시 옌타취 지역 주민 마오(34세) 씨는 “그 동안 아파트 단지 내에 cctv 등 폐쇄 회로가 설치돼 있었지만, 견주들이 협조하지 않는 관계로 분뇨를 치우지 않거나 목줄을 하지 않고 산책하던 중 행인을 무는 등의 피해 사례가 있어도 처벌할 수 있는 뾰족한 근거가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번 처벌 기준 강화와 적발 사례가 향후 대규모 주거 단지 내에서의 반려 동물 양육 시 이웃 간의 예절을 지키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장애인 의사소통 OK…마포에선 그림으로 말해요

    장애인 의사소통 OK…마포에선 그림으로 말해요

    서울 마포구는 ‘AAC존’ 사업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운영한다고 13일 밝혔다. 입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사진이나 그림 등으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보완·대체 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시스템이란 의미를 담은 사업이다. 지역 언어치료 센터인 ‘사람과 소통’에서 개발을 맡았다. 마포구는 마포장애인복지관과 이웃한 성산1동 주민센터와 협력해 현재까지 이곳 동네 일대에 자리한 도서관, 경찰 지구대, 음식점, 편의점 등 10곳에 AAC존을 시범적으로 만들었다. AAC존에서는 그림이나 글자로 된 의사소통판을 볼 수 있다. 장애인들은 이 소통판을 손으로 가리켜 본인의 의사를 자유로이 표현하게 된다. 또 스마트폰 QR코드를 통한 의사소통판 다운로드로 언제든 소통이 열려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원하는 표현을 클릭하면 음성도 지원된다.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AAC존을 벤치마킹하거나 견학하러 온 방문객만 올해 350명이나 된다”면서 “AAC존 가능 업종을 우체국과 병원, 약국, 은행 등으로 확대하고 보급 지역도 점차 늘리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깜깜이 재판’ 대신 ‘깐깐한 조정’… 소액 갈등 70% 당일 합의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깜깜이 재판’ 대신 ‘깐깐한 조정’… 소액 갈등 70% 당일 합의

    서울신문이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연재를 통해 지적한 사법 현실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사재판의 7할 이상을 소액재판으로 분류해 ‘덤핑’ 처리하고, 상고심의 7할 이상을 심리 없이 심리불속행 처리하며, 그나마 심리한 사건 판결문마저 소송 당사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현실. 분쟁 해결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믿고 법원을 찾은 국민들을 배신한 사법 체계들이다. 사법부 내에서도 자성 움직임은 없지 않았다. 소액 분쟁 해결의 질을 높이기 위해 조정 활성화를 꾀했고 제약 없이 판결문을 열람할 컴퓨터 4대를 대법원에 설치했다. 활용한 이들에게서 호평이 나오지만 더이상 확산되지 못한 채 ‘예외적인 경우’로 남아 있는 이 제도들을 취재했다.제대로 작동한다면 ‘조정’은 판결의 약점을 보완할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소액재판에서 그렇다. 판결은 태생적으로 한쪽이 진다는 것을 뜻한다. 2·3심까지 진행되면 당사자들의 시간과 비용을 축낸다. 반면 양보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 조정이 이뤄진다면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된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소액사건은 총 20만 9745건으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0만 1300여건이 조정에 넘겨졌다. 법원까지 오느라 상할 대로 상한 감정의 골을 객관화하고,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확인한 뒤 스트레스가 심한 분쟁을 빨리 끝내는 일. 서울중앙지법 김학균·유광희 소액사건 총괄조정위원의 업무다. 이들은 “감정 개입이 많은 소액사건의 특징에 맞춰 조정이 당사자들과 대화하고 앙금을 풀어 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중개수수료 분쟁은 감정싸움이 재판으로 확대되는 대표적인 경우다. 서울시 기준 상한 요율인 0.9%로 부동산 매매 중개수수료 계약서를 썼다가 막상 낼 때가 되자 줄여 달라고 요청했다 거절당한 계약자가 “법대로 따져 보자”며 소송을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당사자들을 달래고 중재하다 보면 0.4~0.5% 선에서 합의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유 총괄위원은 “조정은 흐트러진 인간관계를 복원해 준다”면서 “판결이 절대 해 줄 수 없는 영역”이라고 자부했다. 3분 남짓 만에 이유도 모른 채 승패가 결정되는 소액재판과 다르게 조정위원들이 1시간 이상 쌍방의 이야기를 들어 준 뒤 설득하면 웬만해선 서로 웃으면서 법원을 떠난단다. 유 총괄위원은 “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사건들은 판사가 직접 하고 부동산 중개수수료나 임대차 계약금, 이웃 간 분쟁 등 소액사건은 조정으로 처리하면 심리가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소액사건 전담 판사가 재판 중 내려보내는 ‘즉일 조정’ 성공률은 매년 70% 안팎으로 높다. 조정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화~금요일 매일 2~3명씩 조정실에서 대기하는 조정위원들이 아무런 사건도 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판사들이 조정에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소법원 조정’ 빈도가 많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수소법원 조정’은 판결을 내리는 법원이 직접 하는 조정을 일컫는다. 이 조정에서는 당사자들이 양보할 수 있는 폭을 좀처럼 노출하지 않아 합의가 잘되지 않는다. 김상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의 90~95%가 조정으로 끝나는 영·미와 다르게 우리는 판사가 모든 것을 다하려는 게 (하급심 사건 부담과 황폐화의) 문제”라면서 “판결에서 독립한 조정이 이뤄져야 조정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에서 독립된 조정 기구로 이미 설치한 고법 산하 상설조정센터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죽부인과 사랑방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죽부인과 사랑방

    111년 만에 찾아왔다는 폭염이 연일 기승이다. 이럴 땐 사방이 탁 트인 누마루, 거기에 평상 놓고 죽부인을 앉고 낮잠 잔다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죽부인을 대나무로 엮어 만드는데, 형태는 연통과 같다. 안은 비어 있고, 바깥은 원형으로 반질반질하다. 여름에 이불 속에 팔과 무릎을 쉬게 하는 까닭에 죽부인이라 한다”고 썼다. 죽부인을 다름 말로 죽궤라고도 한다. 옛날에 죽부인은 무더운 여름 최고의 피서용품이었다.고려 때 문신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죽부인을 이렇게 시로 썼다. “대는 본래 장부에 비할 것이고, 참으로 아녀자의 이웃은 아니다. 어찌하여 침구로 만들어서 억지로 부인이라 지었나. 내 어깨와 다리를 안온하게 펴고, 내 이불 속으로 찐하게 들어온다. 눈썹과 나란하게 밥상 드는 일은 못 하나 다행히 사랑을 독차지하는 몸은 되었다. 고요한 것이 가장 내 마음에 드니, 어찌 아름다운 서시(고대 중국의 유명한 4대 미녀 중 하나)가 필요하랴.” 어찌 이보다 죽부인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한낱 공예품에 불과한 궤를 죽부인이라 했을까. 중국의 한무제가 무더운 여름날 감청궁이란 곳으로 피서를 갔다. 황후를 비롯해 천여 명의 후궁들이 따라갔으나 정작 황제의 더위를 식혀 주지 못했다. 이를 몹시 송구스럽게 여긴 황후는 장인을 시켜 대나무 궤를 만들어 황제에게 바치고 이름을 죽부인이라 했다 한다. 죽부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고려 말 대유학자 이색의 아버지 이곡이 쓴 ‘죽부인전’ 덕이다. 그는 죽부인을 이렇게 찬양했다. “부인의 성은 죽씨로, 이름은 빙이고, 은사 운의 딸이다. 그의 조상은 음률을 잘 알아 황제가 그를 뽑아 음악을 관장하는 일을 하도록 했다. 선대부터 사관으로 대대로 내려오다 진나라 때 분서갱유로 한미해졌다. 부인은 처녀 때부터 아름다운 자태가 있어 뭇 남자들의 유혹이 있었으나 뿌리쳤다. 18세 위인 송공(소나무)에게 시집갔으며, 성품이 날로 온후하고 아름다워 호사가들이 몰래 그려서 간직했다. 남편이 신선이 돼 떠나갔지만, 굳은 절개를 지키며 수절을 해 나라에서 절부의 직함을 주었다. 그런데 후사가 없으니 하늘이 무심탄 말이 헛말이 아니구나.” 이 소설은 당시 음란하고 타락한 궁중과 절개를 지키는 부인이 드문 것을 한탄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남자들이 죽부인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이유인즉슨 죽부인은 요란하게 치장도 않고 성품까지 온화하니 얼마나 좋은가. 애인이나 첩을 둬도 질투하지 않는다. 또한 필요 없어 내 물리쳐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때가 되면 소리 없이 물러난다. 거기에다 절개는 굳기가 이를 데 없고, 조상 대대로 정절을 지키며 남에게 몸을 굽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한마디로 남정네가 좋아하는 점을 다 갖췄다. 첩을 대물림 않듯 죽부인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태워 버린다. 죽부인이 기거하는 곳은 다름 아닌 사랑방이다. 죽부인과 사랑방은 중세부터 남자의 전유물이요 공간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주거 형태가 서구식으로 변하면서 사랑방이 없어져 졸지에 아버지의 공간도 사라졌다. 사랑방의 소멸은 단순히 죽부인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들도 쫓겨난 것과 다름없다. 사랑방은 그야말로 부권의 마지막 보류요 상징이었다. 사랑방이 없어졌다는 것은 곧 부인에게 모든 것을 싸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백기를 든 것과 다름없다. 이젠 얄팍한 봉급마저도 모두 온라인으로 들어가 버리니 그 알량한 남자의 위세마저 차압당한 심정이다. 이 더위에 남편의 공간인 사랑방은 마련해 주지는 못하지만, 죽부인이라도 선사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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