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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우♥승무원 아내, 연예인 이웃주민 만났네

    정태우♥승무원 아내, 연예인 이웃주민 만났네

    정태우 부부가 심은진, 전승빈 부부의 웨딩파티에 참석했다. 27일 배우 정태우의 아내 장인희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난 주 은진언니 승빈형부 웨딩 파티 너무 유쾌하고 행복했던 결혼식이었다. 두 분 지금 처럼 행복하게 알콩달콩 결혼생활 하시기 바래요”이라는 글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한 사진에는 한옥에서 열린 심은진, 전승빈의 웨딩파티에 참석한 장인희씨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어 그는 전진, 류이서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동네에서만 보다 꾸미고 만나니 연예인은 옌예인인 위시티주민들 조만간 우리끼리 뒷풀이 해요. 참! 저 단발로 자른거 아니에유”라는 글을 덧붙였다. 한편 정태우는 지난 2009년 승무원 장인희씨와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이들 가족은 KBS2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2’에 출연 중이다.
  • 美 14세 교내 총기 난사범, 25년 복역 후 가석방 요청했지만…

    美 14세 교내 총기 난사범, 25년 복역 후 가석방 요청했지만…

    25년 전 총기로 무장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3명의 학생들을 살해한 남성의 가석방 요청이 거부됐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현지언론은 켄터키주 가석방위원회가 이날 마이클 카닐(39)의 가석방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초기 교내 총기 난사 사건 중 하나로 분류되는 카닐의 범행은 1997년 12월 1일 벌어졌다. 당시 카닐은 이웃집에서 총기를 훔친 후 켄터키주 히스 고등학교에 들어가 예배 모임 중이던 학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에 동료 학생 3명이 숨졌으며 5명의 학생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카닐은 3건의 살인과 5건의 살인미수 등으로 유죄를 인정받아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았다.이 사건이 미 전역에 충격을 안긴 것은 당시에는 드물었던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이었던 점과 특히 카닐의 나이가 14세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범행 당시 카닐은 학생들 사이에 '왕따'를 당했으며 편집증적 정신분열증을 앓고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기며 기억 속으로 사라진 카닐은 최근 복역한 지 25년 만에 가석방 심사대상에 올랐다. 켄터키주 법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경우 종신형을 받았더라도 25년 후 가석방 심사대상이 되기 때문. 화상을 통해 가석방 심사를 받은 카닐은 "내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악마'의 목소리가 여전히 머릿속에서 들린다"면서도 "다만 이제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는 법을 배웠으며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에대해 가석방위원회 측은 희생자 가족들의 반대와 범죄의 심각성, 예후도 좋지 않다는 점을 들어 가석방 요청을 거부했다. 현지언론은 카닐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앞으로 가석방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 한총리, ‘아베 국장 참석’ 일본行…정·재계 면담

    한총리, ‘아베 국장 참석’ 일본行…정·재계 면담

    한덕수 국무총리가 27일 진행되는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국장(國葬) 참석차 출국했다. 한 총리는 이틀간 ‘조문 외교’를 위해 방일한 각국의 고위급 인사들과 면담하고, 일본 재계 인사들과도 접촉할 예정이다. 한 총리는 한국 정부 대표 조문단 단장 자격으로 일본을 찾는다. 조문단 부단장은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국회부의장)이며, 단원은 윤덕민 주일대사와 유흥수 한일친선협회 중앙회 회장(전 주일대사)이다. 한 총리는 이날 오전 도쿄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먼저 회담한다. 해리스 부통령은 오는 29일 한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할 계획이지만, 이에 앞서 일본에서 한 총리와 만나 회담을 하기로 했다. 한 총리는 회담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첫 방한을 환영한다는 뜻을 전하고, 경제·안보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의 긴밀한 협의를 당부할 계획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 등이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한 총리는 이어 이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무도관에서 진행되는 아베 전 총리 국장에 참석한다. 국장에서는 묵도와 헌화가 진행된다. 국장이 끝나면 아카사카 영빈관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주최하는 환영 연회(리셉션)가 열린다. 한 총리는 이곳에서 기시다 총리와 짧은 환담을 하고, 아베 전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와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저녁에는 주일본 대사관저에서 동포 대표들을 초청한 만찬이 계획됐다. 국장 다음 날인 28일 오전에는 한 총리와 기시다 총리의 정식 면담이 이뤄진다. 한 총리는 이 자리에서 한일관계 복원과 개선을 원하는 한국 정부의 의지를 전달할 전망이다. 한 총리는 지난 23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기시다 총리와 면담에서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중요 사안을 협상하거나 하는 건 아닐 것 같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중요가치에 있어서 생각을 같이 가는 이웃 나라기 때문에, 우리 안보에도 중요하고 경제에도 중요한 국가로서 미래에도 좋은 관계를 하면 좋겠다’ 정도 메시지 전달하는 것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총리는 니콜라에 치우카 루마니와 총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일본 총리와도 면담한다. 방일 기간에는 한 총리와 일본 정계 인사, 경제인과 각각 다자 간담회도 잡혀 있다. 총리실은 “한 총리는 일본 정계 인사와 만남, 스가 전 총리와 면담 등에서 우리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노력을 설명하고 일본 정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 총리는 특히 경제인과의 만남에서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에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한 총리의 이번 방일은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참석에 이어 취임 후 두 번째 출국이다. 사진은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조문사절단 단장인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27일 오전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국장에 한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하기 위해 서울공항을 출발하고 있다. 
  • 현관문에 폰 대고 이웃집 여성 소리 녹음한 40대 최후

    현관문에 폰 대고 이웃집 여성 소리 녹음한 40대 최후

    집 나설 때마다 눈에 띄는 A씨 모습에CCTV 설치 후 범행 포착… 고소장 제출A씨 “이사비 줄게, 성적 흥분돼서” 회유혼자 사는 여성의 집 앞 현관문에 휴대전화를 바짝 갖다 대고 내부에서 나는 소리를 녹음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이 구속됐다. 남성은 피해자에게 생각하면 성적으로 흥분돼서 그랬다며 이사비를 줄테니 고소하지 말아달라고 회유하기도 했다. 법원 “도주 우려” 구속영장 발부 서울동부지법 김인택 부장판사는 26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이달 초 이웃 주민 B씨의 집 현관문 앞에 휴대전화를 갖다 대고 여러 차례 내부에서 나는 소리를 녹음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집을 나설 때마다 A씨가 눈에 띄는 점을 수상히 여겨 폐쇄회로(CC)TV를 설치한 뒤 A씨의 범행을 발견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B씨가 항의하자 A씨는 “이사 비용을 줄 테니 고소하지 말아달라”면서 “당신을 생각하면 성적인 흥분이 느껴져서 그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달 21일 주거침입·통신비밀보호법·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A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며 유치장에 최대 한 달간 가두는 잠정조치 4호도 신청했다. 그러나 이날 구속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잠정조치는 필요성이 없어 기각됐다.
  • 같은 아파트 여고생 납치미수 40대 구속영장 재신청

    같은 아파트 여고생 납치미수 40대 구속영장 재신청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흉기로 여고생을 위협해 납치하려다 달아났던 40대 남성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9일 A(42)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재범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미성년자 약취 미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A씨에 대해 26일 구속영장을 재신청했다. 경찰은 지난 9일 A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휴대전화 포렌식 작업 등 추가 수사를 벌여왔다. 그 결과 A씨가 올해 야외에서 여성들을 불법 촬영한 점과 성 착취물 등 불법 영상을 소지한 점 등을 추가로 파악해 재신청 영장에 반영했다. A씨는 지난 7일 오후 고양시 한 아파트에서 승강기에 탄 10대 여학생을 흉기로 위협해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강제로 데려가는 등 납치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승강기가 멈춘 꼭대기 층에서 다른 주민과 마주치자 도망갔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피해자 가족과 이웃 주민들은 불안을 호소하며 강력히 반발했고 한국여성변호사회도 법원의 판단에 깊은 유감을 표하는 성명을 냈다.
  • [이용한의 절묘(猫)한 순간들] 잡초 뽑는 고양이/고양이 작가

    [이용한의 절묘(猫)한 순간들] 잡초 뽑는 고양이/고양이 작가

    “할머니 힘드실 텐데 우리가 잡초라도 뽑아 드리자.” “그래그래, 근데 어떤 게 잡초야?” “몰라! 일단 그냥 다 뽑아!” 한 마을에 사는 할머니 댁에 나는 13년째 사료 후원을 하고 있다. 편의상 2호점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할머니가 열댓 마리 고양이에게 밥과 잠잘 곳을 마련해 준 곳이다. 고양이들이 마당의 감나무를 캣타워처럼 오르내리고, 봄꽃 새싹이 올라오는 화단을 마구 짓밟아도 할머니는 한 번도 고양이를 나무란 적이 없다. 고양이들은 봄이면 목련과 벚꽃이 흩날리는 마당에서 온종일 뒹굴며 마당놀이를 즐겼고, 겨울이면 눈이 쌓인 마당에서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그런 풍경이 좋아서 나는 그곳에 사료를 갖다 나르고, 사진도 찍었다.한번은 마당에 사료를 내려놓고 카메라를 꺼내는데, 노랑이 두 마리가 잡초를 뽑고 있었다. 눈을 씻고 봐도 잡초 뽑는 고양이 그 자체였다. 녀석들은 힘드신 할머니를 대신해 마당의 잡초를 다 뽑으려는 듯 진지하게 잔디밭을 돌아다녔다. 설마 고양이가 잡초를 뽑는다고? 사실은 한참 후에야 밝혀졌다. 녀석들에게 다가가 살펴보니 잔디밭에 개미가 여러 마리 돌아다니고 있는 거였다. 그러니까 녀석들은 잡초를 뽑는 게 아니라 개미를 잡아 보려고 앞발을 호미처럼 사용했던 것인데,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잡초를 뽑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언제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2호점에 가면 덩달아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2호점 마당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울먹였다. 뒷집에 사는 현직 경찰관이 고양이들을 총으로 다 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하루는 만취 상태로 한밤중에 덜컥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고양이 밥 주지 말라며 행패까지 부렸단다. 할머니는 이웃 경찰의 협박을 못 이겨 다른 마을로 이사했다. 할머니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건 고양이 이주를 돕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12마리 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한 뒤 새로 이사한 곳으로 이주시켰다(임시창고에서 1개월 적응 기간을 거친 뒤 방사). 이사한 뒤에도 할머니는 지극정성으로 고양이를 보살펴 왔다. 하지만 할머니의 연세가 이제는 80대 후반이 된 데다 얼마 전 고관절을 다치는 바람에 지금은 따님이 대신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 보급로 ‘중추’ 청주성 탈환 왜군에 치명타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보급로 ‘중추’ 청주성 탈환 왜군에 치명타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격렬한 상소로 조정 괴롭히던 선비임진왜란 일어나자 의병 모집 격문동지·문생 1700명 곳곳서 모여들어 승장 영규와 청주성 수복에 큰 공금산성으로 진격하다 왜적에 포위“구차하게 살 수 없다” 항전 끝 순절조헌은 과격한 상소를 일삼는 조정의 골칫거리 선비였다. 하지만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규합해 청주성을 탈환하는 큰 승리를 주도했다. 청주성은 부산에서 한양, 의주를 잇는 가장 중요한 보급로에 자리잡았으니 왜군이 입은 타격은 매우 컸다. 당시 호남의 초입인 금산성으로 진격하다 왜적에 포위된 상황에서는 ‘죽을지언정 국난이 닥쳤는데 구차하게 살 수는 없다’며 북채를 잡고 끝까지 군사를 독려하다 순절했다. 그의 금산성 탈환작전을 두고 무모함의 극치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조헌을 비롯한 ‘무모한 죽음’이 이어지면서 왜군은 곡창 호남을 포기했고, 나라를 지켜 낼 수 있었다.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은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따른 서인이었다. 그는 격렬한 표현을 담은 상소로 조정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율곡조차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큰 뜻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재능은 미치지 못하며 고집이 극심하여 시세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아호는 ‘율곡 정신을 잇는다’는 후율(後栗)이다. 충청도 옥천에 후율정사(後栗精舍)를 지어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공부하고 토론하는 공간으로 삼기도 했다. 그 흔적인 후율당(後栗堂)은 지금도 남아 있다. 조헌은 선조 22년(1589)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무장 야나가와 시게노부와 승려 겐소를 조선에 보내 통신사 파견을 요구하자 ‘청절왜사소’(請絶倭使疎)로 일본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조정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사신들의 목을 베라는 ‘청참왜사소’(請斬倭使疏)가 뒤따랐다. 군제를 개혁하고 일본과의 외교를 끊으라는 상소도 거듭했다. 한양으로 올라와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거든 이 도끼로 목을 치라는 뜻의 지부상소(持斧上疏)가 이어지자 선조는 결국 조헌을 함경도 길주에 유배한다. 정치적 주도권을 동인이 잡고 있던 시절이다. 유배는 7개월 만에 풀렸지만 귀양지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대신들을 꾸짖는 소를 올렸다. 선조는 “조신들을 다 탄핵하고 몇 사람만 찬양하면서 직언(直言)이라 하니 웃을 일”이라면서 “아직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조정을 경멸하여 더욱 거리낌 없이 날뛰니, 다시 마천령을 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곧바로 함경도 변방 유배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였다. 중봉은 청주성을 탈환하고 올린 상소에서도 ‘류성룡이 화친을 주장해 도적을 불러들인 것은 진회보다 심하고, 이산해가 현인(賢人)을 죽이고 나라를 그르친 죄는 이임보와 다름없으며, 김공량이 원한을 쌓고 환심을 산 것은 양국충과 다름없다’면서 ‘바라건대 세 사람의 머리를 베어 의순문 밖에 매어 달고, 김수와 이광의 머리도 한강 남쪽 언덕에 매어 다소서’라고 했다. 동인정권 대신들과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임란 발발 당시 이산해는 영의정, 유성룡은 좌의정이었다. 진회는 중국 남송시대 고종의 재상으로 주전파(主戰派)를 탄압해 금나라와 굴욕적 화친을 맺게 했다는 인물이다. 이임보는 당 현종시대 재상으로 아첨을 일삼으며 유능한 관리를 배척했고, 같은 시대 양국충은 인사를 문란케 하고 백성으로부터 재물을 수탈해 ‘안사의 난’을 불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경상우감사 김수는 동래성이 함락되자 도망다녔다는 비판을 받았고, 전라감사 이광은 삼도근왕군의 용인참패 책임자다. 의순문은 선조가 머물던 의주의 중국사신 객관 의순관(義順館)의 정문이다.조헌의 고향은 경기 김포다. 김포시 감정동 옛집 터에는 우저서원(牛渚書院)이 있다. 서원의 가장 높은 곳 중봉을 기리는 사당 문열사(文烈祠)의 한쪽 마당에는 ‘조헌 선생 유허 추모비’도 세워졌다. 그럼에도 옥천이 조헌을 상징하는 고장이 된 것은 보은현감을 지내다 물러난 그가 이웃한 이곳으로 낙향했기 때문이다. 조헌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중봉은 ‘하늘과 땅의 큰 덕은 생명이니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게 할 것을 생각하라. 귀신과 사람이 미워하는 것은 적(賊)이니 원수를 같이 쳐서 그 고을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자’로 시작하는 격문을 써서 삼도(三道)에 보냈다.금산 칠백의총에는 1603년 세운 ‘중봉 조선생 일군 순의비’(重峰 趙先生 一軍 殉義碑)가 있다. 일제가 ‘반시국적 고적’으로 지목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한 것을 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복원했다. 해평부원군 윤근수가 지은 비문은 ‘이때 공이 옥천 시골집에 있다가 분연히 일어나 피를 뿜으며 격문을 돌려서 의병을 모집했다’고 했는데 ‘순찰사와 수령들이 모두 방해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럼에도 동지와 문생이 앞다투어 모여들어 7월 4일 공주에 깃발을 세웠으니 1700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조헌은 1571년 홍주향교 교수로 재직했다. 1586년에는 공주향교의 제독관으로 부임했다. 제독관(提督官)은 각 도의 행정 중심지에서 지방유생들의 교육에 관한 일을 맡은 벼슬이다. 공주향교 제독관의 지방유생에 대한 영향력은 주변 고을에 두루 미쳤다. 조정에서는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은 중봉이지만 지역의 사족 사이에서는 따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중봉이 공주에서 봉기한 것도 충청도관찰사가 청주에서 벗어나 이곳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지지세력의 중심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청주공성군은 방어사 이옥의 관군, 조헌의 의병, 영규의 의승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순의비는 ‘공이 청주로 진군해 승장 영규와 8월 1일 성 서문 밖을 두드렸다. 공이 친히 화살과 돌팔매를 무릅쓰고 종일토록 독전하니 적이 크게 패하여 마침내 저들의 송장을 태우고 밤에 달아났다’고 적었다. 중봉의 당시 전투 흔적은 청주성의 옛터인 중앙공원에 있는 ‘조헌전장기적비’(趙憲戰場記蹟碑)로 남아 있다. 왜군은 청주성에 빼앗은 군량미를 그대로 버려두고 달아났다. ‘재조번방지’에는 조헌이 이옥에게 쌀 수만 석을 곤궁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소와 말 수백 마리는 마을에 나눠 주어 농사를 짓게 하자고 했지만, 이옥은 “이미 순찰사와 의논해 결정했다. 남겨두었다가 적이 다시 점거할 때 쓰게 해서는 안 된다”며 곡식을 다 태웠다고 했다.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은 청주성 전투의 총지휘자 역할을 했다. 윤선각은 이후 각 고을에 공문을 보내 ‘관군이 마음대로 의병에 참가하면 처벌할 것이니 원대복귀하라’고 했다. 결국 중봉 막하의 관군은 흩어지고 700명 의사(義士)만이 남았다. 윤선각은 중봉이 거병하는 단계에서도 청양현감 임순을 옥에 가두어 관군의 의병진 참여를 막기도 했다. 현감이 지휘하는 관군이 의병진에 통째로 가담해 의병장의 지휘를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조정에는 조헌이 요즘식 표현으로 시한폭탄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만큼 이런 인물이 많은 병력을 거느리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이 윤선각의 우려였다. 선조도 중봉을 가리켜 간귀(奸鬼)라고 표현한 적도 있었다. 윤선각은 의병을 이끌고 근왕하겠다는 조헌을 오히려 위태롭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윤선각이 중봉에게 “근왕에 앞서 금산으로 나아가 호서와 호남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한 것도 선조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조헌이 기병(起兵)한 다음 선조가 내린 교서에는 ‘내가 밝지 못해 물정을 살피지 못하고 충성스런 목소리를 알지 못했다. 나에게 진언하는 자들 중에 국가 존망의 위기가 조석간에 달렸다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내가 비록 그 말을 옳게 여기면서도 실로 깨닫지 못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조헌의 상소가 결과적으로 충언(忠言)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일종의 반성문 성격도 담겨 있는 듯하다. 교서는 청주성 탈환 이전에 작성됐다. 하지만 조헌은 교서를 보지 못하고 금산 전투에 나섰다. 금산 전투의 과정을 되풀이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칠백의총은 의병과 의승이 순절한 자리에 조성됐다. 조헌의 제자들은 전투 나흘 뒤 의병의 유해를 한 봉분 아래 모셨다. 1603년(선조 36)과 1647년(인조 25) 각각 순의비와 사당을 세웠고, 현종은 1663년 사당에 종용사(從容祠)라는 이름을 내렸다. 조헌은 칠백의총에 묻히지 않았다. 동생 조범이 형의 시신을 거두어 오늘날의 옥천 안남면에 장사 지냈고, 인조 14년(1636) 무덤을 멀지 않은 안남면으로 옮겼다. 대청호를 품은 청정고을이다.
  • 안심·안전·안정… 내 이웃은 내가… 소외, 동작 그만

    안심·안전·안정… 내 이웃은 내가… 소외, 동작 그만

    취약층 1인가구·장애인 가구 지역주민들과 일대일로 연결 매달 15일 직접 방문해 살펴 복지 공무원과 비상연락망도 “어르신, 저도 여기 대방동 같은 동네 살아요. 바로 근처니까 무슨 일 생기면 편하게 연락 주세요.”(대방동 주민 김수미씨) “허리가 아파서 친구 만나러도 잘 안 나가는데 동네 산다니 너무 좋네. 고마워요.”(대방동 독거 어르신 이모씨) 지난 21일 오전.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새로 추진한 ‘3안(안심·안전·안정) 세이프넷’으로 취약가구 주민과 일대일 결연을 한 김씨가 84세 독거 어르신 이씨의 집을 찾았다. 그러자 이씨는 대화 상대가 필요했다는 듯 반지하인 이 집에서 지난달 폭우 피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부터 비가 많이 오던 날 어렵게 복지 물품을 받으러 갔던 이야기, 나라가 어려워 청년 세대가 힘들까 걱정된다는 말까지 한바탕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한창 대화를 주고받다 두 사람이 동네 교회 행사에서 마주친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씨는 한층 더 마음을 열었다.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이번 사업에 참여한 김씨는 “코로나19 이후로 대면 봉사활동이 크게 위축돼 돕고 싶어도 방법을 찾기 어려웠는데 동에서 좋은 취지의 사업을 시작해 바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대방동에서 이달부터 시작한 ‘3안 세이프넷’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고독사 등 위험에 놓인 기초수급·차상위 계층 1인 가구와 장애인 가구 등 취약가구를 이웃의 정으로 따뜻하게 보듬고자 하는 지역 안전망이다. 대방동에 거주하는 취약 가구와 사회 봉사를 원하는 지역 주민을 일대일로 연결해 줘 평소 안부를 챙기는 것은 물론 급한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네 이웃을 만들어 준다. 시작 단계에서는 지역 직능단체원과 취약가구를 우선 연결해 주고 이후 사업을 확대해 가며 일반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대상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첫 시행에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구성원들이 함께하기로 했다. 봉사자와 취약가구가 수시로 연락하며 지내고 매달 15일을 ‘안심의날’로 지정해 직접 방문해 얼굴을 보고 안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위기상황 조기 대처를 위해 복지담당자 근무시간 외에도 연락할 수 있는 ‘대방 위기콜’ 비상연락 체계도 마련했다. 이용주 대방동장은 “취약가구 상당수가 가끔 방문하는 타지 사람인 돌봄 인력에게는 마음을 여는 게 쉽지 않다 보니 급한 일이 있을 때 쉽게 연락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지역에 봉사하고자 하는 좋은 주민들과 위기 가구를 연결해 정을 나눌 수 있도록 해 자연스러운 약자 동행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 조정의 골칫거리 선비, 의병 규합해 청주성 탈환하다 [서동철 논설의원의 임진왜란열전]

    조정의 골칫거리 선비, 의병 규합해 청주성 탈환하다 [서동철 논설의원의 임진왜란열전]

     조헌은 과격한 상소를 일삼는 조정의 골칫거리 선비였다. 하지만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규합해 청주성을 탈환하는 큰 승리를 주도했다. 청주성은 부산에서 한양, 의주를 잇는 가장 중요한 보급로에 자리잡았으니 왜군이 입은 타격은 매우 컸다. 당시 호남의 초입인 금산성으로 진격하다 왜적에 포위된 상황에서는 ‘죽을지언정 국난이 닥쳤는데 구차하게 살 수는 없다’며 북채를 잡고 끝까지 군사를 독려하다 순절했다. 그의 금산성 탈환작전을 두고 무모함의 극치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조헌을 비롯한 ‘무모한 죽음’이 이어지면서 왜군은 곡창 호남을 포기했고,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다.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은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따른 서인이었다. 그는 격렬한 표현을 담은 상소로 조정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율곡조차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큰 뜻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재능은 미치지 못하며 고집이 극심하여 시세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아호는 ‘율곡 정신을 잇는다’는 후율(後栗)이다. 충청도 옥천에 후율정사(後栗精舍)를 지어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공부하고 토론하는 공간으로 삼기도 했다. 그 흔적인 후율당(後栗堂)은 지금도 남아있다.  조헌은 선조 22년(1589)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무장 야나가와 시게노부와 승려 겐소를 조선에 보내 통신사 파견을 요구하자 ‘청절왜사소’(請絶倭使疎)로 일본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조정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사신들의 목을 베라는 ‘청참왜사소’(請斬倭使疏)가 뒤따랐다. 군제를 개혁하고 일본과 외교를 끊으라는 상소도 거듭했다. 한양으로 올라와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거든 이 도끼로 목을 치라는 뜻의 지부상소(持斧上疏)가 이어지자 선조는 결국 조헌을 함경도 길주에 유배한다.  정치적 주도권을 동인이 잡고 있던 시절이다. 유배는 7개월 만에 풀렸지만 귀양지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대신들을 꾸짖는 소를 올렸다. 선조는 “조신들을 다 탄핵하고 몇 사람만 찬양하면서 직언(直言)이라 하니 웃을 일”이라면서 “아직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조정을 경멸하여 더욱 거리낌 없이 날뛰니, 다시 마천령을 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곧바로 함경도 변방 유배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였다. 중봉은 청주성을 탈환하고 올린 상소에서도 ‘류성룡이 화친을 주장해 도적을 불러들인 것은 진회보다 심하고, 이산해가 현인(賢人)을 죽이고 나라를 그르친 죄는 이임보와 다름없으며, 김공량이 원한을 쌓고 환심을 산 것은 양국충과 다름없다’면서 ‘바라건대 세 사람의 머리를 베어 의순문 밖에 매어달고, 김수와 이광의 머리도 한강 남쪽 언덕에 매어다소서’라 했다. 동인정권 대신들과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임란 발발 당시 이산해는 영의정, 유성룡은 좌의정이었다.  진회는 중국 남송시대 고종의 재상으로 주전파(主戰派)를 탄압해 금 나라와 굴욕적 화친을 맺게 했다는 인물이다. 이임보는 당 현종시대 재상으로 아첨을 일삼으며 유능한 관리를 배척했고, 같은 시대 양국충은 인사를 문란케 하고 백성으로부터 재물을 수탈해 ‘안사의 난’을 불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경상우감사 김수는 동래성이 함락되자 도망다녔다는 비판을 받았고, 전라감사 이광은 삼도근왕군의 용인참패 책임자다. 의순문은 선조가 머물던 의주의 중국사신 객관 의순관(義順館)의 정문이다. 조헌의 고향은 경기도 김포다. 김포시 감정동 옛집 터에는 우저서원(牛渚書院)이 있다. 서원의 가장 높은 곳 중봉을 기리는 사당 문열사(文烈祠)의 한쪽 마당에는 ‘조헌 선생 유허 추모비’도 세워졌다. 그럼에도 옥천이 조헌을 상징하는 고장이 된 것은 보은현감을 지내다 물러난 그가 이웃한 이곳으로 낙향했기 때문이다. 조헌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중봉은 ‘하늘과 땅의 큰 덕은 생명이니 만물이 각기 제 자리를 얻게 할 것을 생각하라. 귀신과 사람이 미워하는 것은 적(賊)이니 원수를 같이 쳐서 그 고을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자’로 시작하는 격문을 써서 삼도(三道)에 보냈다.  금산 칠백의총에는 1603년 세운 ‘중봉 조선생 일군 순의비’(重峰 趙先生 一軍 殉義碑)가 있다. 일제가 ‘반시국적 고적’으로 지목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한 것을 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복원했다. 해평부원군 윤근수가 지은 비문은 ‘이때 공이 옥천 시골집에 있다가 분연히 일어나 피를 뿜으며 격문을 돌려서 의병을 모집했다’고 했는데 ‘순찰사와 수령들이 모두 방해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럼에도 동지와 문생이 앞다투어 모여들어 7월 4일 공주에 깃발을 세웠으니 1700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조헌은 1571년 홍주향교 교수로 재직했다. 1586년에는 공주향교의 제독관으로 부임했다. 제독관(提督官)은 각 도의 행정 중심지에서 지방유생들의 교육에 관한 일을 맡은 벼슬이다. 공주향교 제독관의 지방유생에 대한 영향력은 주변 고을에 두루 미쳤다. 조정에서는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은 중봉이지만 지역의 사족 사이에서는 따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중봉이 공주에서 봉기한 것도 충청도관찰사가 청주에서 벗어나 이곳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지지세력의 중심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청주공성군은 방어사 이옥의 관군, 조헌의 의병, 영규의 의승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순의비는 ‘공이 청주로 진군해 승장 영규와 8월 1일 성 서문 밖을 두드렸다. 공이 친히 화살과 돌팔매를 무릅쓰고 종일토록 독전하니 적이 크게 패하여 마침내 저들의 송장을 태우고 밤에 달아났다’고 적었다. 중봉의 당시 전투 흔적은 청주성의 옛터인 중앙공원에 있는 ‘조헌전장기적비’(趙憲戰場記蹟碑)로 남아있다.  왜군은 청주성에 빼앗은 군량미를 그대로 버려두고 달아났다. ‘재조번방지’에는 조헌이 이옥에게 쌀 수만 석을 곤궁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소와 말 수백 마리는 마을에 나눠 주어 농사를 짓게 하자고 했지만, 이옥은 “이미 순찰사와 의논해 결정했다. 남겨두었다가 적이 다시 점거할 때 쓰게 해서는 안된다”며 곡식을 다 태웠다고 했다.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은 청주성 전투의 총지휘자 역할을 했다.  윤선각은 이후 각 고을에 공문을 보내 ‘관군이 마음대로 의병에 참가하면 처벌할 것이니 원대복귀하라’고 했다. 결국 중봉 막하의 관군은 흩어지고 700명 의사(義士)만이 남았다. 윤선각은 중봉이 거병하는 단계에서도 청양현감 임순을 옥에 가두어 관군의 의병진 참여를 막기도 했다. 현감이 지휘하는 관군이 의병진에 통째로 가담해 의병장의 지휘를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조정에는 조헌이 요즘식 표현으로 시한폭탄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만큼 이런 인물이 많은 병력을 거느리면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른다는 것이 윤선각의 우려였다. 선조도 중봉을 가리켜 간귀(奸鬼)라고 표현한 적도 있었다. 윤선각은 의병을 이끌고 근왕하겠다는 조헌을 오히려 위태롭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윤선각이 중봉에게 “근왕에 앞서 금산으로 나아가 호서와 호남을 지켜야한다”고 설득한 것도 선조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조헌이 기병(起兵)한 다음 선조가 내린 교서에는 ‘내가 밝지 못해 물정을 살피지 못하고 충성스런 목소리를 알지못했다, 나에게 진언하는 자들 중에 국가 존망이 위기가 조석간에 달렸다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내가 비록 그 말을 옳게 여기면서도 실로 깨닫지 못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조헌의 상소가 결과적으로 충언(忠言)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일종의 반성문 성격도 담겨있는 듯하다. 교서는 청주성 탈환 이전에 작성됐다. 하지만 조헌은 교서를 보지 못하고 금산 전투에 나섰다.  금산 전투의 과정을 되풀이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칠백의총은 의병과 의승이 순절한 자리에 조성됐다. 조헌의 제자들은 전투 나흘 뒤 의병의 유해를 한 봉분 아래 모셨다. 1603년(선조 36)과 1647년(인조 25) 각각 순의비와 사당을 세웠고, 현종은 1663년 사당에 종용사(從容祠)라는 이름을 내렸다. 조헌은 칠백의총에 묻히지 않았다. 동생 조범이 형의 시신을 거두어 오늘날의 옥천 안남면에 장사 지냈고, 인조 14년(1636) 무덤을 멀지 않은 안남면으로 옮겼다. 대청호를 품은 청정고을이다.
  • “1초가 급해” 굴착기 몰고 와 불길 속 엄마와 아기 구한 이웃들

    “1초가 급해” 굴착기 몰고 와 불길 속 엄마와 아기 구한 이웃들

    건설업체 직원들의 기지로 불이 나 집안에 고립됐던 엄마와 2살배기 아기가 무사히 구조됐다. 24일 대전소방본부와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쯤 대전 유성구 복용동 2층짜리 건물 1층에 있는 한 자동차 관련 업체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해당 건물 2층 주택에 있던 40대 여성 A씨와 2살짜리 아들이 계단을 타고 올라온 연기로 집안에 고립됐다. 불이 나고 15분가량 뒤 A씨 모자가 고립된 것을 발견한 인근 건설업체 직원들이 즉시 구조에 나섰다. 인근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던 굴착기를 동원해 버킷(굴착기 끝에 붙어 흙을 퍼 올리는 통)을 건물 2층 창문 바로 밑까지 펼친 것이다. 구조에 나섰던 SGC이테크건설 소속 노재동(41)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층 계단 옆쪽에서 불길이 보였고 연기도 계속 났다”며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2층 창문이 열리면서 우왕좌왕하는 어머니와 아이가 보여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노 씨는 “이들을 시급히 구해야 할 것 같아서 사다리를 찾다가 1초가 급하다는 생각에 눈앞에 보이는 굴착기를 몰고 왔다”고 말했다.
  • “밥 600원어치만…” 굶주린 손님에게 온정 베푼 식당 주인 [여기는 베트남]

    “밥 600원어치만…” 굶주린 손님에게 온정 베푼 식당 주인 [여기는 베트남]

    배고픔에 시달리는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베푼 식당 주인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탄니엔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동탑성 까올라인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흐엉(29,여)씨는 누추한 차림의 한 남자 손님을 맞이했다. 남성은 머뭇거리면서 밥 한 그릇에 얼마인지 물었다. 흐엉씨는 “1인분에 2만5000동(약 1500원)”이라고 전하자, 남성은 작은 목소리로 “1만동(약 600원) 어치만 밥을 줄 수 있느냐, 간장만 곁들여 주면 좋겠다”고 물었다.  흐엉씨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고 말하며, 고기반찬까지 얹어서 제공했다. 남성의 사정이 딱해 보여 고기를 얻어다 제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성은 “그렇게는 먹을 수 없다”면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흐엉씨는 하는 수없이 밥과 간장 접시를 내주고 약 600원만 받았다. 이 남성은 고기반찬을 끝내 거절하고, 따끈한 밥에 간장만 찍어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남성은 “너무 배가 고픈데 가진 돈은 1만동이 전부다”면서 “그런데 1만동의 돈이 약간 찢어 졌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었고, 흐엉씨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이 남성은 취업 사기를 당해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본인의 사연을 전하면서 “돈이 없어서 고향인 까지 몇 날 며칠을 걷고, 히치하이크를 해서 이동 중”이라고 말했다.  남성의 딱한 사연을 들은 흐엉씨는 가는 길에 배고프면 먹을 수 있도록 밥과 설탕 차를 싸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은혜를 입었다”면서 설탕 차만 받고, 밥은 끝내 거절했다. 당시 식당 일로 바빴던 흐엉씨는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 남성을 도와주러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에서 약 4km 떨어진 거리에서 남성을 발견했다. 흐엉씨는 차비를 하라면서 주머니에 있던 약 6000원을 건넸다. 남성은 “정말 감사합니다! 이 호의를 갚으러 반드시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흐엉씨는 이번 일을 추억으로 남겨두려고 개인 SNS에 사연을 올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여기저기 사연이 공유되면서 댓글 수 천개와 ‘좋아요’는 6만6000개를 넘기며 큰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남성이 선량한 사람들의 호의를 이용하는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댓글을 올렸다.  이에 흐엉씨는 “그가 사기를 친 거라면 그건 그의 문제다. 나는 지금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도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밤잠을 못 잘 것”이라고 답했다.
  • 후진하다 ‘풍덩’…운전자 구조한 의인 “표창 원하지 않는다”

    후진하다 ‘풍덩’…운전자 구조한 의인 “표창 원하지 않는다”

    한 시민이 물에 빠진 차 안에 있는 운전자를 구하고도 “(표창을) 원하지 않는다”며 홀연히 떠난 사실이 전해졌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1시 45분쯤 중구 안영동 뿌리공원 주차장에 있던 흰색 승용차 1대가 후진해 2.5m 수심의 유등천으로 추락했다. 당시 승용차가 추락하는 모습을 목격한 시민 A씨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A씨는 차 안에 있는 운전자를 구한 뒤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현장을 떠났다. 40대 운전자 B씨는 주차를 연습하던 중 후진기어를 넣은 것을 깜빡하고 가속페달을 밟은 것으로 전해졌다. B씨 차량은 완전히 물에 잠겼지만, A씨의 발 빠른 구조로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전소방본부 관계자는 “구급대원이 시민분께 상장이나 표창을 드리려고 인적 사항을 물어봤지만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떠났다”며 “이웃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민 시민분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 태풍 피해 포항 막바지 도움 봉사 실천한 하나님의 교회

    태풍 피해 포항 막바지 도움 봉사 실천한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포항의 수해가정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하나님의 교회는 23일 “세 차례(18일, 21일, 22일)에 걸쳐 침수가정 4세대에 도배와 장판, 싱크대 교체 봉사를 펼쳤다”고 전했다. 이 교회는 지난달 기록적 폭우로 피해가 발생한 서울과 수원에서도 반지하 등 침수가정의 토사와 오물을 걷어내고 가재도구 세척과 도배, 장판 교체 등을 도운 바 있다. 지난 18일 경북 포항시 오천읍의 가정을 찾은 25명의 신자들은 토사와 오물이 뒤섞인 가재도구들과 곰팡이가 핀 벽면 등을 살핀 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장정들이 손발을 맞춰 싱크대 상판과 상부장, 하부장, 기타 수납장을 떼어냈고 다른 신자들이 바닥을 닦고 약품으로 곰팡이와 악취를 제거했다. 21~22일에는 도배와 장판, 싱크대를 새로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임순덕(56)씨는 “물에 잠긴 물건들이 다 못 쓰게 돼 폐기해야 했는데 우리 가족만으로는 너무 막막했다”면서 “이렇게 자원봉사자분들이 오셔서 제 일처럼 도와주고 철거와 설치까지 다 직접 해주시니 정말 감사하다”고 울먹였다. 오천읍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진옥(51) 씨는 “가게가 침수돼 상품이 유실되고, 안쪽 내실에 있는 석고보드 벽면까지 물에 잠겨 곰팡이와 악취가 심각한 상황이었다”면서 “복구작업이 막막하기만 했는데 봉사하는 분들이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번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은 한목소리로 빠른 일상회복을 기원했다. 하나님의 교회 김영도 목사는 “따뜻한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절망에 빠진 이웃을 일으키는 힘과 용기가 되고 있으니 다 같이 조금만 더 힘내자”고 격려했다.
  • 신생아에게 ‘음주 수유’ 일삼던 20대 母…생후 26일 아기 사망

    신생아에게 ‘음주 수유’ 일삼던 20대 母…생후 26일 아기 사망

    술에 취해 신생아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20대 베네수엘라 여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 여성은 술을 마신 뒤 아기에게 수유를 해 목숨을 위태롭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경찰은 신생아를 돌보지 않은 혐의로 안드레이나 가르시아(22)를 체포했다. 엄마의 돌봄을 받지 못한 아기는 생후 26일 만에 숨을 거뒀다.  지독한 애주가인 가르시아는 취한 상태로 생활하는 게 일상이었다. 심지어 아기에게 수유를 할 때도 술부터 들이키곤 했다. 경찰은 “아기가 울어도 엄마는 술에 취해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며 “수유를 할 때도 늘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수유하는 여성이 술을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아기에게 사망 진단을 내린 마요병원 의사들은 “술을 마신 상태로 수유를 하면 모유를 통해 알코올이 아기에 전달된다”며 “모유의 알코올농도 어디까지 아기에게 안전한 것인지에 대해선 연구결과가 없지만 아무리 미세한 양이라도 알코올성분은 결코 아기의 건강에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신생아가 매일 알코올을 (음주 수유로 간접) 섭취하면 정신운동이 둔해지고, 함께 취하는 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했다. 아기의 과체중을 유발할 수 있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술독에 빠져 사는 엄마를 만난 아기는 결국 뇌출혈로 사망했다.  아기가 사망한 것도 따져보면 술 때문이었다. 아기는 사망한 날 3시간 넘게 줄기차게 울었지만 술에 취한 엄마는 아기를 돌보지 않았고, 아기는 탈진했다.  마요병원은 “아기가 너무 오래 울다 보니 탈진상태가 됐고, 그래도 울음을 멈추지 않다가 뇌혈관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정말 많이 봤지만 이 사건처럼 황당한 사건은 처음”이라며 “특히 매일 음주 수유를 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기가 사망한 뒤 병원 측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에 따르면 가르시아는 술에 취해 수유조차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웃들은 “2~3시간 아기가 울음을 멈추지 않는 일도 잦았다”며 “걱정이 돼 사정을 알아보면 엄마는 술에 취해 아기 옆에서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한 경찰은 “모든 엄마가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먹이려고 하는데 무슨 생각으로 음주수유를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술의 포로가 된 엄마도 엄마지만 태어난 지 26일 만에 하늘나라로 간 아기가 너무 불쌍하다”고 안타까워했다. 
  • 러 동원령 하룻만에 전장 끌려가는 아빠에 “안녕, 꼭 돌아와!”

    러 동원령 하룻만에 전장 끌려가는 아빠에 “안녕, 꼭 돌아와!”

    아이는 보이지 않고, “아빠 안녕! 꼭 돌아오세요”라고 말하는 소리만 들린다. 영국 BBC가 텔레그램에 올라온 동영상이라고 22일(현지시간) 소개한 것인데 방송은 여러 아이들의 목소리라고 했다. BBC는 러시아 벨고로드 지방 스타리이 오스콜에서 촬영된 것이란 점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했다고 전했다. 한 여성은 이 동영상이 촬영됐을 때 현장에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동영상을 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예비군 부분 동원령을 발령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명령을 받은 남성들이 전장으로 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전세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AP 통신도 사랑하는 이를 전장으로 떠나보내는 러시아인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위터에 올라온 다른 동영상에는 동부 시베리아 도시 네륜그리의 입영센터로 보이는 운동장 건물에서 동원 대상 남성들이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담겨 있다. 남성들은 가족들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놓지 못하다 버스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많은 이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일부는 입을 가린 채 슬픔을 숨기려 했다. 수도 모스크바의 입영센터에서 찍힌 동영상에는 한 여성이 안전을 간절히 기원하면서 가족으로 보이는 남성의 몸에 성호를 긋는다. 이름을 드미트리라고 밝힌 남성은 입영센터에서 아버지의 배웅을 받았는데 아버지는 “조심하거라”는 말만 건넨다. 학생이라고 밝힌 그는 현지 언론 오스토로즈노노보스티에 “아침에만 해도 아무런 얘기가 없었는데 갑자기 동원소집 통지를 받았다. 오후 3시까지 여기(입영센터)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기다렸는데 입영 장교가 나타나더니 당장 떠난다고 한다”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동원 소집 대상이 돼 가족과 생이별하는 이들 못지 않게 동원 통지를 받거나 출국 금지 조치가 취해지기 전에 이웃 나라로 피신하려는 남성들도 늘어 가족과 헤어지는 이들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터키) 등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나라로 이동하는 항공편이 매진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고, 핀란드처럼 육로로 러시아를 탈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조지아와 러시아를 잇는 베르흐니 라르스 국경검문소에 5㎞에 이르는 차량 대기 행렬이 형성됐다는 현지 목격자들의 발언을 전한 BBC는 국경을 통과하는 데만 7시간이 걸렸다는 주민의 증언을 전했다. 이런 상황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공포에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러시아 국민들을 정조준한 동영상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평소 사용하던 우크라이나어 대신 러시아어로 동원 소집에 저항 없이 응하는 러시아인들은 “죽음으로 내던져졌다”고 경고했다. 그는 “6개월 동안 러시아군 5만5000명이 전사했다. 더 필요한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저항하라. 투쟁하라. 도망쳐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군에 항복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당신들은 이미 살인, 고문 등 그 모든 범죄의 공범이다. 그동안 침묵했기 때문”이라며 “이제 선택할 때다. 러시아 남성들은 지금 사느냐 죽느냐, 장애를 얻느냐 건강을 지키느냐의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동원한 예비군에게 장비를 지급하고 훈련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며, 예비군이 전장에 투입돼도 러시아군의 고질로 꼽혀 온 느슨한 지휘통제, 군수 부족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日총리 “향후 尹과 정식회담, 결정된 것 없어”…中과는 개최 의지

    日총리 “향후 尹과 정식회담, 결정된 것 없어”…中과는 개최 의지

    강제징용 배상문제 韓이 선해결 여론 반영시진핑과 회담 의지 재확인…국교 50주년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2일(현지시간) 향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식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현시점에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반면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개최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날 약식으로 만났던 윤석열 대통령과 정식 회담을 열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날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뉴욕 회동 성격에 대해 한국 정부는 ‘약식회담’, 일본 정부는 ‘간담’이라고 규정해 시각차를 보였으나 정식 정상회담이 아니라는 점엔 견해가 일치했다. 기시다 총리의 이날 발언은 정식 회담을 개최하기 위해선 양국 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꼽히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한국이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일본 내 일부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양국 정상은 현안을 해결해 양국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해 외교당국 대화를 가속할 것을 외교 당국에 지시하고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었다. 기시다 총리는 반면에 올해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 대해선 개최 의지를 재확인했다.尹-기시다, 맨해튼서 30분간 회담韓정부는 ‘약식회담’, 日은 ‘간담’ 앞서 윤 대통령과 기사다 총리는 이날 낮 뉴욕 맨해튼 유엔총회장 인근의 한 콘퍼런스빌딩에서 30분간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5월 취임 후 첫 한일정상회담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다자무대에서 의제를 정하지 않고 논의하는 약식회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기시다 총리가 참석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친구들’ 행사장에, 윤 대통령이 찾아가는 방식으로 대면 회담이 성사됐다. 대통령실은 ‘한일 정상 약식회담 결과 서면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은 현안을 해결해 양국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해 외교당국 대화를 가속화할 것을 외교 당국에 지시하고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면서 “두 정상은 정상 간 소통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무성는 보도자료를 통해 ‘간담’이라고 언급하며 “양국 정상은 현재의 전략 환경에 있어 한일은 서로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국가로, 한일 및 한미일 협력 추진의 중요성에 대해 일치했다”고 발표했다.외무성은 또 “양국 정상은 북한 대응에 있어 더욱 협력하기로 일치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재차 지지를 얻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양국 정상은 현안을 해결하고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릴 필요성을 공유하고,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해온 우호 협력 관계의 기반을 토대로 한일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에 일치했다”고 말했다. 한일정상회담은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회담한 이후로 2년 9개월여 만이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다음 달 11일부터 코로나19 사태 이후 도입한 외국인의 하루 입국자 수 상한을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 ‘사랑의 쌀’로 온기…농협 영월군지부 ‘나눔 실천’

    ‘사랑의 쌀’로 온기…농협 영월군지부 ‘나눔 실천’

    농협중앙회 영월군지부가 소외계층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군지부는 22일 영월군청에서 ‘사랑의 강원농산물 쌀나눔’ 행사를 갖고 햅살 200㎏과 라면 10박스를 영월군에 기부했다. 기부한 물품은 영월지역 지역아동센터 12곳에 전달될 예정이다. 앞서 지난 7월 군지부는 ‘생활밀착형 맞춤복지 서비스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한반도농협 농촌현장봉사단과 함께 돌봄 대상 2가구에 폭염 대비 물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매년 농번기에는 인력이 부족한 농가들을 대상으로 한 일손돕기 봉사활동을 집중적으로 벌이고 있다. 한편 올해부터 군지부를 총괄하는 이재순 지부장은 농협 역사상 강원지역에서 나온 첫 ‘여성 지부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 추석 연휴 부산서 숨진 모녀 타살 정황 발견

    추석 연휴 부산서 숨진 모녀 타살 정황 발견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부산의 한 빌라에서 모녀가 숨진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타살 정황을 발견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22일 “부산진구 빌라에서 숨진채 발견되 여성 A씨가 착용 중이던 귀금속이 사라진 점을 확인했다. 현재 전 남편 등 다수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2일 낮 12시 49분쯤 부산진구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거실에서 피를 흘린 채 거실에 쓰러져 있었고, A씨의 10대 딸 B양도 자신의 방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이 상황을 잠을 자고 깨어난 10대 아들 B군이 발견하고, 이웃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수사 초기 출입문 파손 등 외부 침입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자살과 타살 양쪽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타살 가능성을 높이는 정황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경찰은 귀금속이 사라진 사실 뿐만 아니라 집 밖에 버려진 B양의 휴대전화도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모녀에 대한 부검 결과 약물 의심 성분이 나왔다는 소견도 구두로 경찰에 통보했다. 경찰은 빌라 주변 CCTV를 확보하는 등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C군은 다른 친척이 보호하고 있다. 경찰도 피해자 보호팀을 연계해 C군의 안전과 심리 안정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전담반을 편성했고 강력, 형사 4개 팀 30여 명과 부산경찰청 미제수사팀도 지원하고 있다”면서 “신속하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재판 중 피해 여성 스토킹한 50대 현행범 체포

    재판 중 피해 여성 스토킹한 50대 현행범 체포

    주거침입 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 또다시 피해 여성을 찾아가 스토킹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북 안동경찰서는 혼자 사는 이웃 여성 집 문을 두드리며 데이트를 강요하는 등 스토킹한 혐의(스토킹처벌법 위반)로 50대 남성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1일 오후 8시쯤 이웃인 30대 여성 B씨 집 앞에서 현관문 도어락 비밀번호판을 수차례 누르면서 “문 열어라, 데이트하자”며 문을 두드리는 등 30분가량 스토킹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지난 6월 B씨 집에 들어가려다 붙잡혀 현재 재판을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며 “피해자 보호조치는 했다”고 말했다.
  • 잠깐 외출했다 돌아오니...낯선 사람 주검이 내 집에 [여기는 남미]

    잠깐 외출했다 돌아오니...낯선 사람 주검이 내 집에 [여기는 남미]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내 집에서 낯선 사람이 피살된다면 얼마나 깜짝 놀랄까. 추리소설에나 나올 법한 사건이 최근 실제로 벌어졌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자녀들이 외출한 틈을 타 잠깐 남편의 무덤에 다녀오기로 한 여자는 공동묘지에서 딸로부터 다급한 1통의 전화를 받았다.  딸은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 침대 밑에 시체가 있어”라고 말했다. 여자는 “딸이 벌벌 떨면서 말해 농담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여자는 혹시나 아들이 잘못된 것인지 걱정돼 죽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딸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여자는 당장 집으로 달려갔다.  도착해 보니 딸의 연락을 받은 아들이 이미 집에 도착해 있었다. 잠시 후에는 아들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다.  딸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안방 침대 밑에는 낯선 남자의 시체가 누워 있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머리와 등에 각각 1발의 총을 맞고 사망한 상태였다.  여자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남자가 내 침대 아래에 시신으로 누워 있는 걸 보니 소름이 돋았다”며 “너무 충격을 받아 한동안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남자는 대문과 현관을 강제로 열고 집에 들어갔다. 복수의 목격자가 있었다. 그리고 총성을 들은 이웃도 여럿이었다. 집안은 어지럽혀 있었지만 귀중품은 사라지지 않아 남자가 침입한 목적은 추정하기 힘들다. 경찰은 “집에 들어가는 남자를 본 목격자들이 있지만 당시 남자는 혼자였다고 한다”며 남자가 왜 집에 들어갔는지, 누가 남자를 살해한 것인지 아직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튿날 같은 동내에서 발견된 의문의 또 다른 시신이 이 사건과 관련돼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시신은 여자의 집 주변에 있는 한 폐공장에서 발견됐다. 남자에겐 칼로 공격을 받고 누군가 신체 일부를 불로 태운 흔적이 발견됐다.  익명을 원한 수사관계자는 “두 사건 모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라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지만 그럴 만한(연관성을 의심할 만한) 단서가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여자와 가족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여자는 “낯선 사람이 몰래 집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인데 그 사람이 내 집에서 죽었다”며 “가족 모두 공포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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