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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요영화]

    ●형사(EBS 15일 오후 2시) ‘죽도록 사랑해’라는 뜻의 주제곡 ‘신노메 모로’(Sinno Me Moro)로 더 유명한 이탈리아 영화.피에트로 제르미가 감독·주연한 1959년 작품. 비오는 오후,로마 시내의 어느 오래된 고급 아파트에 도둑이 든다.기동경찰대의 인그라발로 형사반장은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를 시작하지만 성직자인 피해자는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알려질까봐 사건을 숨기려 한다.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지오메데는 이웃집 하녀 아순티나의 약혼자로,미국인 여성과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확인돼 풀려난다.결국 범인을 찾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든다. 그러나 일주일 뒤,강도 사건이 발생했던 바로 옆집에서 젊고 매력있는 안주인 릴리아나가 흉기에 찔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경찰은 같은 아파트에서 연이어 발생한 두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의심하게 된다.강도 사건부터 다시 수사하기 시작한 인그라발로 반장은 첫 번째 강도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에서 열쇠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인그라발로는 살해 피해자인 릴리아나와 가까운 사람들,즉 그녀의 유산과 관계된 사람들부터 조사하기 시작한다.먼저 그녀가 정기적으로 돈을 보태주고 있던 의사인 사촌,그리고 무엇인가를 감추고 조사를 피하기만 하려는 남편을 용의선상에 올린다.이런 와중에 인그라발로는 쪽지 하나를 전달받는데,거기에는 ‘살인자는 릴리아나의 남편이니 시간낭비 하지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비진체이 ‘연상의 여인‘ 佛서 72주간 베스트셀러

    “이 글은 젊은 남성들을 위해 쓴 것이며,나이 든 여성들에게 바치는 글이다.젊은 남성과 나이 든 여성의 결합,이것이 바로 내가 다루고자 한 주제이다.”(10쪽).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잡은 듯한 연상 여자-연하 남자 커플.헝가리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망명해 활동한 작가 스티븐 비진체이의 장편 소설 ‘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해냄 펴냄)은 열두 살 소년 안드라스가 스물두 살 청년이 되는 과정을 다룬 성장소설이다.그런데 그 성장의 아픔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다양한 연상의 여인들이고 그들과 사랑하고 아파하는 모습이다.작가는 자칫 선정의 늪에 빠질 수 있는 이 소재를 2차대전과 소련의 팽창주의 등 유럽의 비극적 역사라는 버팀목에 연결시키면서 작품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한다. 사제의 꿈을 키워 가던 안드라스의 삶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예기치 않은 운명으로 빠져든다.군사학교 생도·난민 등으로 떠돌다가 미군 막사에서 현지 주민들과 미군 사이의 성매매를 중계하는 통역자로 일하면서 성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금단의 땅’에 일찍 발을 디딘다.전반부에서 안드라스를 ‘부도덕한 꼬맹이’라 부르며 섹스가 뭔가를 어렴풋이 알려준 S 백작부인,한 명만 사랑해야 한다는 통념을 깨뜨린 이웃집의 마야부인 등을 거치는 과정을 비춘다. 이렇듯 에로틱한 상황을 많이 다루면서도 작품이 자극적인 선정성에 갇히지 않는 것은 두 가지 힘에서 바탕한다.먼저 연상의 여인과의 사랑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내팽개쳐진 소년에게 실존적인 탈출구로,삶과 사랑과 구원의 의미를 알 수 있는 통과의례로 다가온다.다른 하나는 작가만의 문학적 형식으로서 에로티시즘에다 유머와 위트를 접목하거나 아이러니 등 기발한 장치로 성을 묘사해 섹스가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작가의 체험에 힘입어 생생하게 다가오는 소설의 감동은 미국·영국 등 22개국 400만명의 독자를 움직였다.프랑스에서는 72주 동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오늘의 눈] 누구의 잘못인가?/김성곤 산업부 차장

    “2002년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입주를 앞두게 됐습니다.근 1년째 계약금 500만원을 손해보고 팔려 해도 팔리지는 않고,이웃집 엄마가 그렇게 돈을 벌기에 저도 집에 보탬을 주려다가 이 지경이 됐습니다. 계약금을 포기하고 예전의 평범한 주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7월30일이 입주인데 그 이후론 중도금 대출 이자를 내야 한다고 국민은행으로부터 통보가 왔습니다.남편은 월급이 안 나와 제가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밥 먹고 사는데 이자를 생각하니 엄두가 안납니다. 이도저도 안 된다면 아이들과 남편,시부모님의 보금자리인 이 집 전세금은 지켜주고 싶습니다.제가 이혼을 하면 남편이나 아이들에겐 해가 없을까요.도움을 주십시오.” 최근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는 G씨(여)가 본보가 지난 7월20∼22일 3차례에 걸쳐 게재한 ‘주택시장이 무너진다’는 시리즈의 기사를 읽고 기자에게 보내온 이메일 내용이다. G씨는 이웃이 분양권 전매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내는 것으로 보고 경기도 광주의 33평형 A아파트를 단돈 500만원에 분양을 받았다.물론 중도금 무이자에다가 입주시점에 팔면 돈이 된다는 떴다방의 조언도 큰 역할을 했다.그러나 곧이어 분양권 전매가 제한되고,분양경기가 시들해지면서 G씨는 분양권 팔 기회를 잃었다. 입주를 앞둔 G씨는 잔금 4000여만원과 함께 매월 대출금 이자로 50여만원을 내야 한다.중도금은 무이자 대출을 받았지만 입주시점부터는 유이자로 전환돼 당첨자가 이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만약 잔금을 내지 않으면 연리 18%의 연체이자도 물어야 한다.중도금 대출이자도 내지 않으면 역시 연체료가 붙고 최악의 경우 재산이 경매에 부쳐질 수도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G씨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2001년부터 2003년까지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엘도라도라도 되는 양 모든 이들이 부동산 투자에 몰입됐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거의 방치했다.금융위기를 막 벗어난 주택업체들은 이 때다 싶어 중도금 무이자,이자후불제 등 각종 금융기법을 동원해 투자자들을 유혹했다.물론 언론도 한몫했다.돈 있는 사람,돈 없는 사람,직장인,주부 할 것 없이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금 정부는 지난 몇 년간의 부동산 투자 광풍으로 빚어지고 있는 각종 부작용에 대해 투자자의 책임이라며 방관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G씨의 어려움은 G씨만의 잘못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인가.정부나 주택업체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김성곤 산업부 차장 sunggone@seoul.co.kr
  • [꼬불꼬불 뒷골목] 대구 ‘뽕나무 골목’

    [꼬불꼬불 뒷골목] 대구 ‘뽕나무 골목’

    뽕나무만큼 사람에게 유용한 나무도 드물다.잎은 누에의 먹이가 되고 열매는 ‘오디’라 하여 한약재로 쓰이며,뿌리는 ‘상두’라 해서 기침을 그치게 하는 진해제나 이뇨제로 쓰인다. ‘집터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살 먹은 사람이 명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맹자의 말도 있다.조상들은 뽕나무가 잘자라야 나라의 태평성대가 이뤄진다고 믿고 곳곳에 뽕나무를 심곤 했다.뽕나무 골목은 대구시 중구 계산성당에서 동아쇼핑 사이의 좁은 골목이다. 이 골목의 역사는 조선 선조 때로 올라간다.임진왜란 원군으로 조선에 왔다가 귀화한 명나라 무장 두사충에게 선조는 이 일대 4000여평의 땅을 주었다.두사충은 이 땅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며 살았다. 그때 다니던 길이 세월이 흘러 골목으로 변하게 되었고,사람들은 이 골목을 뽕나무 골목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옛날 이 일대가 뽕나무 밭이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뽕나무 한 그루 없다. 인근 한약방 직원에게 “뽕나무 골목을 아느냐?”고 물었다.자신은 이곳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모른다.”고 말했다.40여년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효성슈퍼 주인(72)은 “젊은 사람들 중 뽕나무 골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이상화 시인이 이곳에 살아서인지 몰라도 주민 중에 문인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며 삭막해진 세태를 원망했다.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은 뽕나무 골목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타계한 1943년까지 2년6개월 정도 이곳에서 살았다.이 집에서 시조 ‘기미년’과 수필 ‘나의 어머니’,시 ‘서러운 해조’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1970년대 들어 서울 문인들이 찾아오면서 이상화 고택임이 알려졌다.지금까지 옛 모습이 거의 그대로 간직돼 있다. 그러나 최근 대구 중구청이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키로 해 헐릴 위기에 처했다.이 때문에 문화관련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보존운동본부’가 출범해 시민 50여만명의 서명을 받는 등 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 장군의 옛집도 뽕나무 골목을 지키고 있다.이상정 장군은 1921년부터 23년까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하조직을 결성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다. 뽕나무 골목 입구에는 중장비 소리로 어수선하다.옛 고려예식장 자리에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이 건립되고 있다.고려예식장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풍문으로 한때 지역 예식업계를 평정했으나 대형예식장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경쟁에서 밀려 결국 문을 닫았다. 고려예식장 부지에는 서병조 대륜재단 초대이사장의 집이 있었다.집이 운치가 있어 6·25직후 지역 요인들과 미군장교들의 가든파티장소로 이용되었다.고려예식장 업주 우씨는 예식장 건축과정에서 나온 홍송과 돌,목재 등이 너무 좋아 현재 달서구 월곡공원 옆 단양 우씨 재실인 ‘낙동서원’ 부속재로 사용했다. 주상복합건물 건립으로 서상돈 선생의 옛집이 사라졌다.민족운동가인 서상돈선생은 1907년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장해서 전국운동으로 승화시켰다. 건설업체는 건물 건립과정에 파손 등이 우려돼 불가피하게 서상돈 선생의 집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철거된 집의 자재는 현재 컨테이너 2개에 넣어져 공사장 한쪽에 보관돼 있다.건물이 준공된 후 서상돈 선생의 집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이 건설업체의 구상이다.최근 주상복합건물 시행사가 이상화 고택을 매입,대구시에 기부채납할 뜻을 비쳤다.기부채납이 이뤄지면 대구를 상징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대구시의 입장이다. 이상화,이상정,서상돈 고택이 있는 뽕나무 골목이 대구의 근·현대 역사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날이 멀지 않았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꼬불꼬불 뒷골목] 대구 ‘뽕나무 골목’

    뽕나무만큼 사람에게 유용한 나무도 드물다.잎은 누에의 먹이가 되고 열매는 ‘오디’라 하여 한약재로 쓰이며,뿌리는 ‘상두’라 해서 기침을 그치게 하는 진해제나 이뇨제로 쓰인다. ‘집터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살 먹은 사람이 명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맹자의 말도 있다.조상들은 뽕나무가 잘자라야 나라의 태평성대가 이뤄진다고 믿고 곳곳에 뽕나무를 심곤 했다.뽕나무 골목은 대구시 중구 계산성당에서 동아쇼핑 사이의 좁은 골목이다. 이 골목의 역사는 조선 선조 때로 올라간다.임진왜란 원군으로 조선에 왔다가 귀화한 명나라 무장 두사충에게 선조는 이 일대 4000여평의 땅을 주었다.두사충은 이 땅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며 살았다. 그때 다니던 길이 세월이 흘러 골목으로 변하게 되었고,사람들은 이 골목을 뽕나무 골목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옛날 이 일대가 뽕나무 밭이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뽕나무 한 그루 없다. 인근 한약방 직원에게 “뽕나무 골목을 아느냐?”고 물었다.자신은 이곳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모른다.”고 말했다.40여년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효성슈퍼 주인(72)은 “젊은 사람들 중 뽕나무 골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이상화 시인이 이곳에 살아서인지 몰라도 주민 중에 문인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며 삭막해진 세태를 원망했다.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은 뽕나무 골목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타계한 1943년까지 2년6개월 정도 이곳에서 살았다.이 집에서 시조 ‘기미년’과 수필 ‘나의 어머니’,시 ‘서러운 해조’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1970년대 들어 서울 문인들이 찾아오면서 이상화 고택임이 알려졌다.지금까지 옛 모습이 거의 그대로 간직돼 있다. 그러나 최근 대구 중구청이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키로 해 헐릴 위기에 처했다.이 때문에 문화관련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보존운동본부’가 출범해 시민 50여만명의 서명을 받는 등 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 장군의 옛집도 뽕나무 골목을 지키고 있다.이상정 장군은 1921년부터 23년까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하조직을 결성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다. 뽕나무 골목 입구에는 중장비 소리로 어수선하다.옛 고려예식장 자리에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이 건립되고 있다.고려예식장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풍문으로 한때 지역 예식업계를 평정했으나 대형예식장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경쟁에서 밀려 결국 문을 닫았다. 고려예식장 부지에는 서병조 대륜재단 초대이사장의 집이 있었다.집이 운치가 있어 6·25직후 지역 요인들과 미군장교들의 가든파티장소로 이용되었다.고려예식장 업주 우씨는 예식장 건축과정에서 나온 홍송과 돌,목재 등이 너무 좋아 현재 달서구 월곡공원 옆 단양 우씨 재실인 ‘낙동서원’ 부속재로 사용했다. 주상복합건물 건립으로 서상돈 선생의 옛집이 사라졌다.민족운동가인 서상돈선생은 1907년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장해서 전국운동으로 승화시켰다. 건설업체는 건물 건립과정에 파손 등이 우려돼 불가피하게 서상돈 선생의 집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철거된 집의 자재는 현재 컨테이너 2개에 넣어져 공사장 한쪽에 보관돼 있다.건물이 준공된 후 서상돈 선생의 집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이 건설업체의 구상이다.최근 주상복합건물 시행사가 이상화 고택을 매입,대구시에 기부채납할 뜻을 비쳤다.기부채납이 이뤄지면 대구를 상징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대구시의 입장이다. 이상화,이상정,서상돈 고택이 있는 뽕나무 골목이 대구의 근·현대 역사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날이 멀지 않았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남북어린이 그림책 버스 함께 탔으면…”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인 임진각에 평화공원을 조성해야 합니다.그리고 어린이와 어른 등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임진각에 군사시설과 음식점만 있을 뿐 도서관 하나 없는 현실이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조준영(39)씨는 버스도서관 ‘그림책 뚜뚜’를 운행하며 어린이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다.3년전부터 폐차 직전의 버스를 문화공간으로 꾸며 제주·대구·진해·광주·섬진강 등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버스 안에는 각종 그림책과 슬라이드 자료를 갖춰 그야말로 움직이는 아동문화관이다.이 덕에 ‘문화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조씨는 8월14∼1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광장에서 ‘평화도서관 및 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평화한마당’을 개최한다.이 행사에는 한국도서관협회·어린이문화연대·남북어린어깨동무·전교조 인천지부 등이 참여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예정이다.이에 앞서 26일 평화한마당 성공 개최를 염원하는 전야제를 연다.또 8월 이후에는 아예 매월 마지막 주말에 문화행사를 열 계획이어서 임진각의 새로운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조씨는 33인승 버스를 몰고 ‘뛰뛰 빵빵’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사람이 많은 공원에 버스를 세워 ▲좋은 그림책을 전시하는 전시마당 ▲슬라이드를 통한 지역 공연마당 ▲어린이들과 걸개그림 등을 함께 그리는 참여마당 ▲생태살리기를 위한 특별마당 등 4가지 마당을 신명나게 펼친다.이같은 노력으로 최근 원주 토지문학공원에 버스도서관이 들어서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예산 부족만 탓할 수 없습니다.폐차되는 버스를 이용하면 간단합니다.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산책도 하면 그야말로 웰빙공원이 아닐까요.” 조씨는 10년전 아파트벽에 갇힌 어린이 교육에 답답함을 느껴 아이디어를 짜냈다.서울 사당동 자택에 ‘파란나라’라는 ‘그림책 슬라이드 보여주기’ 공간을 만들었다.대학 때의 사진학 전공을 살렸다.소문이 나서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그림책과 슬라이드를 빌려가기 시작했다.자연스럽게 ‘파란 어머니모임’이 만들어졌다.내친김에 공원을 찾아가는 이동 문화공간으로 이어졌다. 조씨는 3년전 통장에서 1000만원을 털어내 폐차 직전의 버스를 구입했다.그런 다음 버스 안을 그림책·도서관·미술전시품 등으로 꾸몄다.혼자 나설 용기가 없어 머뭇거리다가 지난해 9월 뜻을 같이하는 화가동료를 만나면서 정식 개관식을 갖고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조씨는 이외에도 매주 월요일 서울 신월동의 탈북어린이 공부방도 방문한다.놀이터 없이 살아가는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마당도 틈틈이 벌이는 등 숨은 노력 또한 계속하고 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이경형칼럼] 相爭의 말들

    새벽녘 이웃집에 신문을 돌리고는,이따금 운동 삼아 서울 올림픽 공원까지 속보로 간다.야외 조각 공원 초입의 공중 해우소(解憂所) 옆에 ‘네 마음의 자물통,내 마음의 열쇠’(박불똥,1998)라는 제목의 대형 철구조물 설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람의 옆 모습을 형상화한 녹슨 철판을 중심으로 큰 자물통 2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다.얼굴의 뺨 부분엔 ‘YOU LOVE ME’가 글자 윤곽을 따라 뚫려 있고,입은 뭔가를 외치는 모습이다.머리통 가장자리엔 자물통 달린 여러 개의 쇠사슬이 칭칭 감겨져 있다. 이 작품은 내 마음은 열지 않은 채,남더러 나를 사랑하라고 외치는 사람을 풍자한 듯하다.어느 때고 한바탕 싸움을 벌이겠다는,상쟁(相爭)의 말을 내뱉는 모습 같기도 하다. 얼마전 여당의 한 중진은 아파트 원가 공개 문제를 싸고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했다.검찰의 총수는 대검 중수부 폐지설에 대해 “중수부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면 먼저 저의 목을 치겠다.”고 했다.‘계급장’‘내 목’이 사용된 말의 행간에는 사생결단의 전의(戰意)가 넘쳐난다. 요즘 수도 이전 문제로 온 나라안이 시끌뻑적하다.행정 수도 이전이냐,천도냐에서부터 국민투표를 부치네,마네 하면서 야단법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수도권의 과밀화를 막고 지방분권과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 수도의 건설이 불가피하며,관련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마당에 이를 재론하여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한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를 들먹이며 “언론 개혁 문제를 둘러싼 정서적 전선과 일치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 매우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이른바 ‘보수 언론’이 유별나게 행정 수도 이전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더라도,이런 말은 공연한 사족(蛇足)이다.대통령이 뭔가 피해의식에 젖어 수도 이전 문제를 감정적이고 2분법적인 피아개념으로 대응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에밀레종 소리 복원으로 유명한 배명진 숭실대 교수는 최근 노 대통령의 음성 파형과 성문 스펙트럼을 탄핵 기각·총선 승리를 기준 시점으로 조사하여 비교 분석했다.그 결과,총선 승리 후의 대통령 음성은 그 전보다 훨씬 격앙된 어조를 띠고 있다고 한다.여유와 인자함은 줄어들고,대신 근엄함과 스트레스·하소연(억눌림) 측정치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재계 일부가 개혁을 회피하기 위해 경제 위기를 부추긴다.”“보수는 약육강식이고,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것이다.”라는 등의 발언에서도 어떤 억눌림에 의한 사시(斜視)가 묻어난다. 여권의 주요 인사들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관계를 두고,‘젖을 주고,떼는 관계’ 운운하면서 말싸움을 한다.의원들끼리도 “공부 좀 해라.”“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다.”라는 등 독설과 헐뜯기로 말다툼을 한다. 말이 사람 사이에 서로 소통하는 도구가 아니라,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비수로 전락하고 있다.입만 열면 상생(相生)을 외고 있지만,실상은 상쟁을 촉발하고 있다. 엊그제,박불똥씨에게 전화를 걸어 작품명을 ‘내 마음의 자물통,네 마음의 열쇠’로 바꿔야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한번쯤 자신을 성찰할 것 아니냐고 물어 보았다.늘 사회 비판에 풍자적 언어를 구사해온 민중 작가 박씨는 “여기서 ‘네’나 ‘나’는 구태여 구분이 필요 없는 동일한 의미”라고 가볍게 대답했다.지금 우리는 너,나 가릴 것 없이 상쟁의 흙탕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제작 이사 khlee@seoul.co.kr˝
  • [길섶에서] 웃음/손성진 논설위원

    웃음에 얽힌 이야기 두가지.링컨은 유머를 즐기는 재담꾼이었다.대통령이 되기전 변호사로 일할 때 법정에만 가면 서기에게 우스운 얘기를 들려줬다.서기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번번이 폭소를 터뜨리자 판사가 법정모욕죄로 서기에게 벌금 5달러를 선고했다.그래 놓고는 서기를 불러 링컨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어 듣고 판사 자신도 웃음보를 터뜨렸다고 한다. ‘톰 소여의 모험’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양복을 입기 싫어했다.어느 날 셔츠 바람으로 30분간 이웃집에 갔다 와 부인에게 야단을 맞자 트웨인은 타이와 메모를 보내 이웃을 웃겼다.“조금 전에 타이를 매지 않고 갔다고 호된 꾸지람을 들었기에 보내오니 한 30분 보시고 돌려주십시오.” 웃음은 병도 고친다.희귀병에 걸린 미국의 한 작가는 TV 코미디 프로를 보며 큰 소리로 웃는 치료법을 써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화요일은 화사하게 웃고,수요일은 수수하게 웃고 목요일은 목청껏 웃고…”출근길 지하철역에서 행인들에게 ‘1인 웃기기 캠페인’을 하는 한 아주머니를 보았다.하루에 한번쯤 억지로라도 소리 내 웃어보자.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불만있는 家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데 아내가 집에 없어 홧김에 그만….” 부인이 자주 이웃집에 놀러 나간다는 이유로 부인친구의 집에 불을 지른 40대 남자가 쇠고랑을 찼다. 지난 5일 오후 8시쯤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온 박모(48·마산시 합성동)씨는 부인이 없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부인이 최근 너무 자주 집을 비우고 이웃집에 놀러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취한 박씨는 휘발유 통을 집어들고 이웃 박모(여·60)씨의 집으로 단숨에 달려갔다.박씨가 이웃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시각은 오후 8시30분.집 내부와 가재도구 등을 태워 300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지만,부인과 이웃집 사람들은 급하게 빠져나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박씨의 부인은 경찰에서 “남편이 술만 먹으면 상습적으로 폭행을 하는 바람에 저녁때 함께 집에 있는 것이 무서웠다.”면서 “남편은 평소에는 순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술이 문제”라고 말했다. 박씨도 “계획적으로 불을 지른 것은 아니다.술만 먹으면 실수가 잦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이날 박씨를 현주건조물 방화 혐의로 구속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불만있는 家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데 아내가 집에 없어 홧김에 그만….” 부인이 자주 이웃집에 놀러 나간다는 이유로 부인친구의 집에 불을 지른 40대 남자가 쇠고랑을 찼다. 지난 5일 오후 8시쯤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온 박모(48·마산시 합성동)씨는 부인이 없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부인이 최근 너무 자주 집을 비우고 이웃집에 놀러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취한 박씨는 휘발유 통을 집어들고 이웃 박모(여·60)씨의 집으로 단숨에 달려갔다.박씨가 이웃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시각은 오후 8시30분.집 내부와 가재도구 등을 태워 300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지만,부인과 이웃집 사람들은 급하게 빠져나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박씨의 부인은 경찰에서 “남편이 술만 먹으면 상습적으로 폭행을 하는 바람에 저녁때 함께 집에 있는 것이 무서웠다.”면서 “남편은 평소에는 순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술이 문제”라고 말했다. 박씨도 “계획적으로 불을 지른 것은 아니다.술만 먹으면 실수가 잦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이날 박씨를 현주건조물 방화 혐의로 구속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Funny 머니] 美 ‘야자수 사냥꾼’ 10배이상 받고 되팔아

    남에게는 골칫거리지만 자신에겐 큰 이익이 되는 일들이 많다.미 캘리포니아주 곳곳에 퍼져 있는 카나리아제도 대추야자(이하 대추야자)도 그렇다.대로의 양쪽을 장식하거나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공원,고급 주택가의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지만 개인주택 앞에 우연히 심어진 한두그루는 애물단지일 뿐이다.아프리카 북서쪽 카나리아제도가 원산지인 대추야자는 50년대 스페인 성직자들에 의해 캘리포니아주에 소개되면서 주민들이 ‘작고 귀엽다.’며 앞다퉈 심었다.그러나 40∼50년이 지난 지금,10m가 넘는 키에 최대 12t까지 나가는 ‘괴물’이 됐다. 일년에 15㎝밖에 자라지 않아 종묘소에서는 상업성이 없어 이를 심지 않는다.대신 전문적으로 이를 찾아다니는 신종 직업이 있다.‘야자수 사냥꾼’은 하루에 12시간 차를 몰고 다니며 큰 대추야자를 찾는다.일단 발견되면 집 주인과 협상을 시작한다. 집주인에게는 ‘횡재’다.샌타바버라에 사는 마티 트루질로는 300달러에 집앞 ‘애물단지’를 가져가겠다는 제의에 뛸 듯이 기뻐했다.나무 뿌리가 하수구에까지 뻗쳐 부엌에서 나간 하수가 욕조로 역류하고 있기 때문이다.1000달러 들여 야자수를 파낼 생각까지 했다.종묘소에 도착한 야자수는 손질을 거쳐 건축가에게 6000달러에 되팔렸다. 로미타에 사는 에릭 스토스틴은 앞마당 야자수를 사가겠다는 제의에 뒷마당 야자수도 주겠다고 했다.야자수가 앞마당을 다 잡아먹고 이웃집과 분쟁도 생겼다.나무를 다듬다가 다치기도 여러 번이다.800달러에 팔았는데 종묘소는 9100달러에 되팔았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숫자키 비밀번호 주의

    인천 남동경찰서는 12일 숫자입력방식 자물쇠 번호 중 많이 닳은 번호를 조합,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집 안에 침입해 금품을 훔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로 한모(33·무직)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씨는 지난 3월22일 오후 2시쯤 인천시 남동구 한 오피스텔에 사는 박모(25)씨 집에 들어가 금품을 터는 등 최근까지 이 오피스텔에서만 모두 4차례에 걸쳐 76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다. 경찰조사 결과 이 오피스텔에 사는 한씨는 이웃집 초인종을 눌러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번호입력 자물쇠 번호 중 많이 닳은 번호 4개를 조합,비밀번호를 알아내 집 안에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한씨는 이밖에도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방송통신대에 학생을 가장하고 들어가 금품을 훔치는 등 모두 8차례에 걸쳐 900여만원어치의 금품을 훔친 혐의도 받고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김병준·윤성식·문정인 프로필

    김병준·윤성식·문정인 프로필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력과 함께 보스 기질을 인정받았다.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주면서 친화력과 언변이 좋다.지방분권 문제의 전문가로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등 시민운동에도 참여했다.노무현 대통령과 10년 이상 인연을 맺어왔다.부인 김은영(46)씨와 2녀.▲경북 고령(50)▲영남대 정치학과▲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윤성식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지난해 9월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됐다가 국회 청문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했다.행정학 학사에다 회계학 석사,경영학 박사,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소지한 개혁적 성향의 학자로 꼽힌다.소장하고 있는 클래식 CD가 1000장이 넘을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고 내성적이고 꼼꼼하다는 평.부인 이향진씨와 2남.▲전남 해남(51)▲광주일고▲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윤영관 전 외교장관,서동만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빅 3’ 자문교수다.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던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평양을 방문해 햇볕정책의 전도사역을 맡았다.몸집만큼이나 호탕한 성격에 강의진행이 탁월하다.부인 김재옥씨와 1남 1녀.▲제주(53)▲연세대 철학과▲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김병준·윤성식·문정인 프로필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력과 함께 보스 기질을 인정받았다.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주면서 친화력과 언변이 좋다.지방분권 문제의 전문가로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등 시민운동에도 참여했다.노무현 대통령과 10년 이상 인연을 맺어왔다.부인 김은영(46)씨와 2녀.▲경북 고령(50)▲영남대 정치학과▲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윤성식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지난해 9월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됐다가 국회 청문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했다.행정학 학사에다 회계학 석사,경영학 박사,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소지한 개혁적 성향의 학자로 꼽힌다.소장하고 있는 클래식 CD가 1000장이 넘을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고 내성적이고 꼼꼼하다는 평.부인 이향진씨와 2남.▲전남 해남(51)▲광주일고▲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윤영관 전 외교장관,서동만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빅 3’ 자문교수다.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던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평양을 방문해 햇볕정책의 전도사역을 맡았다.몸집만큼이나 호탕한 성격에 강의진행이 탁월하다.부인 김재옥씨와 1남 1녀.▲제주(53)▲연세대 철학과▲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개관 10돌 맞은 김석원 전쟁기념관장

    ‘인간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권력을 위해,때론 영광이나 명예를 위해,또 한 때에는 사랑을 위해….’ 얼마전 개봉된 영화 ‘트로이’의 도입 부분 내레이션이다.‘트로이전쟁’은 10년간 계속됐던 기원전 최대의 전쟁으로 예술과 문학사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트로이’는 저 유명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배경이 되고 있다.실재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인간 상상력의 극치다.3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트로이 목마’가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는 역사 이전의 시대부터 숱한 전쟁을 치르고,또 기억하면서 살아왔다.‘전쟁’이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1·2차 세계대전,6·25전쟁,베트남전쟁 등에서 실증적으로 경험했다.이라크 전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그래서 전쟁은 기억하고 싶던 아니던 인간과 더불어 영원히 ‘기념’될 수밖에 없다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1년에 100만명 관람… 분단의 상징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은 민족분단의 ‘상징’이다.해마다 이맘때쯤 가장 붐빈다.‘보훈의 달’이라는 이름아래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올 6월은 더욱 의미가 깊다.10일로 개관 10돌을 맞았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은 예상보다 찾는 이가 많다.연평균 100만명이 이곳을 들른다.이에 10년을 곱하면 그동안 1000여만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계산이다. 며칠전 김석원(64) 전쟁기념관장을 만나기 위해 기념관 ‘전사자명비’ 앞을 막 지나는 순간이었다.백발의 두 노병이 눈에 들어왔다.둘은 손가락을 짚어가며 돋보기를 들이대며 전사자명비를 열심히 살폈다. “연대장님,여기 있네요.이놈이 틀림없어요.” “백마고지,그 김 중사 맞아?” “그렇습니다.연대장님.” 이윽고 둘은 ‘김○○’이라고 적힌 이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놈 참 용감했어.그때 고집만 안 부렸어도 살았을 텐데….” “연대장님,그래도 김 중사가 아니었으면 우리 연대본부는 아마 몰살당했을 겁니다.” “하긴,그래.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로막힌 남북은 그대로야.이놈은 죽어서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하고 말야.살아 있다는 게 덧없을 뿐이야.” “…….” 잠시 침묵이 흘렀다.두 노병의 눈가는 이미 젖어 있었다.시인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문득 생각났다. ‘…나는 죽었노라.스물다섯 젊은 나이에,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때마침 견학온 유치원생 100여명이 그 앞을 시끄럽게 지나가는 바람에 더 이상의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전쟁기념관의 이운세 홍보부장은 “6월이어서 옛 전우의 이름이라도 찾으려는 노병의 발길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전통으로 이름날린 36년 ‘군인의 삶’ “전쟁기념관은 한마디로 전쟁을 단일주제로 5000년 민족사를 조망하고 있지요.그 교훈을 마음으로 새기고 두번 다시 전쟁의 참극을 겪어서는 안되겠다는 실천적 결의를 다지는 호국의 전당입니다.” 김 관장은 예비역 중장이다.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과 제5군단장,군수사령관 등을 지냈다.군 안팎에서는 소문난 ‘작전통’이다.지난 5월10일 관장으로 부임했다.그는 부임한 지 한달밖에 안됐다고 강조했지만 베트남전 참전과 36년 동안 군에 몸담아서인지 전쟁기념관의 중요성과 역할,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르죠.추모의 기능이 있습니다.20만여명의 전사자명비가 있어 추모객들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전쟁기념관은 우리 민족이 겪은 전쟁사가 살아 숨쉬는 국내 최대의 군사박물관이자 아시아 최고의 기념관으로 우뚝 섰습니다.” 김 관장의 목소리가 더욱 빨라졌다.전쟁기념관은 도심속의 시민문화공간이라고 했다.3만 5000여평의 너른 부지위에 연못,분수,녹지공간이 그렇단다.매년 나라사랑 그림그리기 대회,평화사랑 글짓기 대회,청소년 문화교실,호국추모 꽃꽂이 전시회,6·25음식먹기 행사,열린음악회,영화시사회,패션쇼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이용하기에 따라 정말로 유익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어린이연극,청소년연극,도자기체험교실,과학체험교실,호신무예교실,전통예절교실 등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8년 발해건국 1300주년을 맞아 ‘발해를 찾아서’나,2000년의 6·25전쟁 5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2002년의 DMZ특별기획전 ‘갈 수 없는 땅,그러나 가야만 하는 곳’ 등은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 김 관장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대부분 전쟁기념관을 찾을 정도로 중요한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그동안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영국의 앤드루 왕자,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고(故) 살라후딘 말레이시아 국왕,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 30여개국의 VIP들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용산 박물관벨트 중심으로 도약할 것 전쟁기념관에 보유중인 유물만 해도 3만여점에 이른다.김 관장은 “지난 4월 세계적 군사박물관인 프랑스의 앵발리드 박물관과 ‘양해 및 교류협약서’를 맺는 등 앞으로 스페인·영국 등 외국의 박물관과 교류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2005년 국립박물관의 용산이전이 완료되면 기념관 일대는 새로운 박물관벨트로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로 한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관 10주년에 맞춰 국내 최초로 ‘우리나라 전통무기’ 특별기획전이 열립니다.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전통무기를 총망라했지요.국보급·보물급도 많이 선보일 예정입니다.” 김 관장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하면서도 업무추진력만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오자복 현 성우회장과는 각별한 인연을 쌓고 있다.김 관장이 15사단 39연대 작전주임때 오 회장은 39연대장이었다.이후 김 관장은 오 회장의 ‘수제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1940년 경북 영주 출생인 그는 가난한 농가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61년 6월 사병으로 군입대했으나 장교가 멋있어 62년 6월 소위(갑종166기)로 임관했다.이후 위관급때에는 15사단에서,영관급때에는 28사단에서만 근무하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28사단 81연대 2대대장 시절에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연대장,김동진 전 국방장관이 인근 3대대장으로 근무했다. “15사단은 젊은 시절 대부분을 보내 제 마음의 고향입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儒林(11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1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다기망양(多岐亡羊).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양을 잃었다.’는 뜻으로 달아난 양을 찾으려는 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바람에 정작 양은 놓치고 말았다는 얘기다.이는 열자(列子)의 설부(說符)편에 나오는 고사로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양주(楊朱)가 있었다.당시에는 천하의 혼란을 다스리기 위해 ‘모두가 서로 사랑하라(兼相愛).’를 부르짖는 묵자(墨子)의 사상이 대유행을 보이고 있었다.묵자는 ‘남을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하라.’하면서 ‘겸상애’야말로 ‘돌아가면서 서로를 이롭게 하는 교상리(交相利)’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는데,이와는 달리 양주는 극단적인 개인주의,혹은 이기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다. 양주의 개인주의는 ‘내 몸의 터럭 한 개를 가지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터럭 하나도 뽑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묵적,혹은 묵자의 겸애설(兼愛說)과 대비를 보여 ‘양주묵적’이라고 통칭되던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어느 날 양주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그래서 그 집 사람은 물론 양주의 집 사람까지 동원되어 양을 찾으러 나서느라고 안팎이 매우 분주하였다.이 모습을 본 양주가 물었다. “양 한 마리를 찾는다면서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서느냐.” 그러자 하인이 대답하였다. “예,양이 달아난 쪽에는 갈림길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는데,양은 찾지 못했다고 했다.갈림길마다 사람들이 찾아 나섰지만 갈림길에 또 다른 갈림길이 있어서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양주는 갑자기 우울해져서 하루 종일 말도 하지 않았다.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없었다.그래서 맹손양(孟孫陽)이란 제자가 선배인 심도자(心都子)를 찾아가 앞서 있던 일을 말하고 스승인 양주가 입을 다문 이유를 물었다.이에 심도자는 이렇게 대답하여 주었다. “그것은 선생님이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네.곧 ‘큰 길에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듯이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학문이란 원래 근본이 하나인데,그 말단에 와서 이와 같이 달라지고 만 것이다.그러므로 하나의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고는 현실이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면서 입을 다무신 것이라네.” 여기서부터 ‘다기망양’은 학문의 길이 너무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다방면에 걸쳐 지나치거나 지엽적인 것에 얽매이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비유로 쓰이게 되었는데,오늘날에도 선택할 대상이 너무 여러 가지가 있어,어느 것을 택할지 곤혹스러운 경우에도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찔끔찔끔 술을 마시면서 생각하였다. 양주가 걱정하였던 대로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린 것처럼 오늘날 문밖에는 갈림길이 많이 있어 정치가 실종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기독교에서 예수가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양이라 표현한 것처럼 양은 백성을 의미하는 비유일 것이다.정치란 양을 편안히 하고 정치가는 양을 풀밭으로 이끄는 목자(牧者)일 것이다. 양을 풀밭으로 이끄는 길이 정치의 근원이므로 이 길은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단순할 것이다.그러나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정쟁과 편가르기에 의해서 정치의 길은 수많은 갈림길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따라서 오히려 이 수많은 갈림길 때문에 막상 우리가 찾아야 할 잃어버린 양은 찾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성영우의 탄식대로 오늘날 문밖 정가에는 갈림길이 많기도 하여 백성들은 저문 날을 근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儒林(11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다기망양(多岐亡羊).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양을 잃었다.’는 뜻으로 달아난 양을 찾으려는 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바람에 정작 양은 놓치고 말았다는 얘기다.이는 열자(列子)의 설부(說符)편에 나오는 고사로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양주(楊朱)가 있었다.당시에는 천하의 혼란을 다스리기 위해 ‘모두가 서로 사랑하라(兼相愛).’를 부르짖는 묵자(墨子)의 사상이 대유행을 보이고 있었다.묵자는 ‘남을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하라.’하면서 ‘겸상애’야말로 ‘돌아가면서 서로를 이롭게 하는 교상리(交相利)’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는데,이와는 달리 양주는 극단적인 개인주의,혹은 이기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다. 양주의 개인주의는 ‘내 몸의 터럭 한 개를 가지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터럭 하나도 뽑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묵적,혹은 묵자의 겸애설(兼愛說)과 대비를 보여 ‘양주묵적’이라고 통칭되던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어느 날 양주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그래서 그 집 사람은 물론 양주의 집 사람까지 동원되어 양을 찾으러 나서느라고 안팎이 매우 분주하였다.이 모습을 본 양주가 물었다. “양 한 마리를 찾는다면서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서느냐.” 그러자 하인이 대답하였다. “예,양이 달아난 쪽에는 갈림길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는데,양은 찾지 못했다고 했다.갈림길마다 사람들이 찾아 나섰지만 갈림길에 또 다른 갈림길이 있어서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양주는 갑자기 우울해져서 하루 종일 말도 하지 않았다.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없었다.그래서 맹손양(孟孫陽)이란 제자가 선배인 심도자(心都子)를 찾아가 앞서 있던 일을 말하고 스승인 양주가 입을 다문 이유를 물었다.이에 심도자는 이렇게 대답하여 주었다. “그것은 선생님이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네.곧 ‘큰 길에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듯이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학문이란 원래 근본이 하나인데,그 말단에 와서 이와 같이 달라지고 만 것이다.그러므로 하나의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고는 현실이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면서 입을 다무신 것이라네.” 여기서부터 ‘다기망양’은 학문의 길이 너무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다방면에 걸쳐 지나치거나 지엽적인 것에 얽매이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비유로 쓰이게 되었는데,오늘날에도 선택할 대상이 너무 여러 가지가 있어,어느 것을 택할지 곤혹스러운 경우에도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찔끔찔끔 술을 마시면서 생각하였다. 양주가 걱정하였던 대로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린 것처럼 오늘날 문밖에는 갈림길이 많이 있어 정치가 실종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기독교에서 예수가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양이라 표현한 것처럼 양은 백성을 의미하는 비유일 것이다.정치란 양을 편안히 하고 정치가는 양을 풀밭으로 이끄는 목자(牧者)일 것이다. 양을 풀밭으로 이끄는 길이 정치의 근원이므로 이 길은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단순할 것이다.그러나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정쟁과 편가르기에 의해서 정치의 길은 수많은 갈림길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따라서 오히려 이 수많은 갈림길 때문에 막상 우리가 찾아야 할 잃어버린 양은 찾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성영우의 탄식대로 오늘날 문밖 정가에는 갈림길이 많기도 하여 백성들은 저문 날을 근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女백만장자들 검소하며 관대”

    ‘크게 꿈꾸고 실천하는 여성만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많은 여성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하지만 모든 여성이 부자가 될 수는 없다.부자가 된 여성들에게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다.토머스 스탠리는 여성 백만장자 1165명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최근 발간한 책 ‘이웃집 여성 백만장자’를 통해 4가지 ‘비법’을 소개했다. ▲욕심껏 목표를 세우라:대부분의 여성 백만장자는 연·월·주·일별로 목표를 세운 뒤 이에 따른 다양한 결과를 예상하고 대처한다. ▲사소한 것에도 최선을:많은 여성 부호들은 생활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꼼꼼하게 따진다.남편에게 생활을 맡기는 경우는 5%에 불과하다. ▲자신을 팔아라:별볼일 없는 사업을 하더라도 남들에게는 항상 즐거운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다. ▲과거를 돌아보지 마라:80%의 여성 백만장자는 결코 지난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응답한 여성 백만장자의 평균 연령은 49세였고,수입은 41만 4000달러(약 5억원)였다.이들은 아침 5시58분에 기상해 밤 10시32분에 잠들며,1주일에 49시간 일하고 3∼4시간은 운동한다. 여성과 남성 백만장자들의 차이는 뭘까.이 책에서는 관대함과 검소함을 꼽았다.이들은 미국인 평균의 3배인 수입의 7%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고,새 옷을 사는 대신 헌 옷을 기워 입는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길섶에서] 기찻길/우득정 논설위원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항상 고향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에서 시작된다.저녁 무렵 철길 위에서 기다리노라면 이웃 과수원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사과를 쥐어 주곤 했다.또 기찻길은 선로 위에 대못을 올려두면 칼날로 변하는 마법의 대장장이이기도 했다.겨울철에는 형들과 함께 철로를 따라 떨어진 조개탄을 줍는 것이 가장 큰 일과였다. 어느 가을 이웃집 아이가 기차에 치여 죽었던 날,어머니는 기찻길을 지나던 엿장수가 아니었다면 막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철로 위에 서서 기적을 울리며 달려오는 기차를 신기한 듯 바라보던 막내를 엿장수 아저씨가 온몸을 던져 구해줬단다.아이들로부터 그 얘기를 전해 듣고 고마움을 표시하려 엿장수를 찾았더니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는 얘기와 함께. 이름조차 생소한 한 기업이 보낸 사보가 책상에 놓여 있다.고속철 선로로 장식된 표지를 넘기니 하루 서너 차례 굉음을 울리며 마을 앞을 지나던 기차의 사진도 실려 있다.선로 주위를 감싼 아지랑이도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다.갑자기 기적 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효섭 엄마의 孟母리포트] 美명문대 5곳서 합격통지 받은 이효섭군

    ‘초등 홈스쿨링→중학교 입학→민족사관고 입학→중퇴→미 명문대 5곳 합격’ 이효섭(18)군의 우여곡절 학창시절이다.보통 학생들처럼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다.값비싼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고,초등학교 과정은 집에서 엄마에게 배웠다.중학교는 ‘물’ 좋다는 강남 지역도 아니었다.남들이 보내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민족사관고는 1년만에 자퇴했다.하지만 학교를 그만둔 지 1년.효섭이는 미 명문대 5곳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효섭이가 합격 통지서를 받은 대학은 워싱턴 세인트루이스(Washington University in Saintlouis)와 노스웨스턴(Northwestern),터프츠(Tufts),칼튼(Carleton),스워스모어(Swarthmore) 등 모두 5곳.국내에서는 하버드나 옥스퍼드 등 아이비리그 대학만 알려졌지만 미국 내에서는 아이비리그 못지않게 명성이 있는 명문대들이다.효섭이는 현재 워싱턴 세인트루이스대 생의학·화학 복수전공과정 진학을 고려하고 있다.몸과 마음을 다 치료하는 의료선교사가 되고 싶어서다. 원하는 대학에 쉽게 합격했지만 효섭이는 너도나도 앞다퉈 시키는 학원이나 고액과외 등 사교육의 ‘축복’은 받지 않았다.‘무너져가는’ 공교육의 혜택을 받은 것은 중학교 3년이 전부였다.남들이 부러워하는 외국 대학에 진학하게 된 데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아들의 특성을 이해해 재능을 맘껏 펼치게 조용히 뒷바라지한 어머니 윤영(46)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이의 재능은 만들어진다 어떻게 공부를 시켰을까? 윤씨는 “어려서부터 아이의 특성과 재능을 파악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만 만들어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네살 때였다.테이프가 딸린 동화책을 앉은 자리에서 혼자 10차례나 되풀이해 듣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효섭이가 가장 좋아한 것은 책이다.“서점에 갈 때마다 효섭이는 5만∼6만원어치씩 책을 사달라고 졸랐어요.당시 29만원에 불과한 남편 월급으로는 큰 부담이었지요.” 이후 윤씨는 책을 사는 대신 교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활용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이문열의 ‘삼국지’는 효섭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되풀이해서 읽을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이처럼 효섭이가 ‘책벌레’가 된 데는 윤씨의 결심이 결정적이었다. 텔레비전을 치워버린 것.윤씨는 결혼 1년 뒤 효섭이를 가진 뒤부터 혼수로 장만해온 텔레비전을 시부모께 드렸다.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윤씨는 대신 매일 육아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효섭이는 이같은 윤씨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윤씨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대신 하루종일 효섭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어려서부터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운 효섭이의 호기심은 날로 늘었다.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윤씨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효섭이의 물음에 일일이 답해주느라 목이 하얗게 쉬었다.대답할 때는 어른을 대하듯 정성을 다했다.“오죽했으면 친정 어머니가 ‘쓸데없는 애들 질문에 일일이 대답한다.’며 절 구박했겠습니까.하지만 전 효섭이를 하나의 어른,인격체로 대하고 싶었습니다.” 이같은 교육의 영향인지 효섭이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부모와 ‘말이 통하는’ 신세대다.윤씨는 효섭이가 가끔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지만 용서를 구하며 보내온 앙증맞은 e메일 한 통에 서운함은 눈녹듯이 사라진다고 했다.“여느 수험생 엄마들처럼 저는 맘 고생 한 번 없었습니다.어려서부터 공부보다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집안 청소와 설거지에 효섭이가 빠질 리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말.효섭이네 생활에 크게 변화가 생겼다.효섭이의 아버지 이희명(46)씨가 베트남 합자회사인 ‘비나파이프’의 포스코 대표로 파견됐다.주변에서는 모두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라.’며 남편을 따라가는 것을 적극 말렸다.그러나 윤씨는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가 직접 가르치는 홈스쿨링(Home-Schooling)을 결심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홈스쿨링 발령지인 항구공업도시 하이퐁은 교육시설이 거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외국인학교는 아예 없었다.윤씨는 미리 초등학교 2∼6학년 교과서와 참고서,명화와 디즈니시리즈 비디오테이프 100여개를 한꺼번에 구입해 들어갔다.베트남에서의 홈스쿨링이 시작된 것이다.그는 한국 초등학교처럼 일주일의 공부 시간표를 만들어 효섭이를 가르쳤다.국·영·수는 물론 사회,과학,미술,음악에 도덕까지….교과서를 가르친 뒤 문제집을 풀게 하는 방식이었다.학교처럼 매일 숙제도 냈다.생물학을 전공하고 사범대 교직과정을 이수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음악은 윤씨가 20여년간 교회 오르간 반주를 해온 경험이 있어 직접 가르쳤다.체육은 한 달에 5만원을 들여 태권도와 배드민턴을 가르쳤다. 문제는 영어였다.나중에 국제학교라도 보내려면 영어를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마침 적당한 과외교사가 나타났다.남편 회사에 통역사로 지원했던 베트남 하이퐁 해양대 교수였다.윤씨는 알파벳도 모르는 효섭이에게 대학생들이 회화교재로 쓰는 ‘스트림라인’으로 가르치게 했다.문법은 필요할 때마다 윤씨가 통역을 해서 가르쳤다.매일 2시간씩 매주 4차례 강의에 한 달 강의료는 300달러가 채 들지 않았다.베트남의 싼 물가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발음이 문제였다.발음 교정을 위해 마침 하이퐁 해양대 교수로 와 있던 87세의 미국인 노 교수를 매주 한 차례 집으로 모셔 한 시간씩 발음을 가르쳤다.어린이 영어성경을 읽어주면서 교리 공부까지 하는 방식이었다.윤씨는 “뭐든 말하기를 좋아하는 효섭이가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얘기하는 것을 참을성 있게 들어준 그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면서 “영어를 강요하기보다 흥미를 느끼도록 돕기만 했다.”고 했다. 홈스쿨링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았다.사교성이 떨어질까 걱정이었다.그는 남편과 잠시 헤어져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로 나가 유엔에서 운영하는 국제학교인 ‘유니스’에 효섭이를 편입시켰다.이번엔 집이 말썽이었다.시청 임대아파트가 너무 낡아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일어났다.그는 효섭이를 호치민에 있는 호주계 국제학교인 IGS로 전학시켰고,남편 회사의 도움으로 가족이 합칠 수 있었다.효섭이는 6학년때 학년 대표로 선출될 정도로 적응을 잘 해 나갔다. 윤씨의 노력과 효섭이의 탁월한 언어적 재능,그리고 뭐든 영어로 떠들기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효섭이의 영어실력은 갈수록 향상됐다.하노이 ‘유니스’에 편입하기 전 영어 실력을 평가받기 위해 치른 영어어학원(ESL) 테스트에서는 ‘ESL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4학년때였다. 효섭이의 언어적 재능을 알아차린 윤씨는 프랑스어도 가르치기로 했다.호치민에서 만나 사귄 이웃집 스위스계 여성을 선생님으로 모셨다.타고난 언어능력 덕분인지 효섭이는 불과 여섯달 만에 웬만한 회화가 가능할 수준에 올랐다.윤씨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5학년때 잠시 귀국,친정이 있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청강생 자격으로 시험을 치르게 한 결과 전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윤씨는 “친정 부모님께 잠시 아이를 맡기려고 했지만 학교측에서 ‘이렇게 뛰어난 아이를 우리 학교에서는 맡을 자신이 없다.엄마가 계속 가르치는 게 낫겠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외국대학에 미련 없다 6학년 2학기.효섭이는 5년여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서울 광진구 광장중에 입학한 효섭이는 윤씨의 철저한 홈스쿨링 덕에 학업 공백 없이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했다.성적도 최상위권이었다.한국에서 과외는 받지 않았다.지난해 미 SAT시험을 치르기 위해 화학 개인과외를 1주일 정도 받은 것이 전부였다. 중3때인 어느 날,남편이 원서 한 장을 들고 퇴근했다.민족사관고를 보내자는 것이었다.효섭이는 인문계 특차에 응시했고,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이후 국제계열로 과를 바꿨지만 학교생활은 만족스럽지 못했다.결국 효섭이는 1년만인 지난해 2월 자퇴를 결심했다.윤씨는 “혼자 알아서 공부하는 효섭이와 학생들의 모든 생활을 규제하는 학교 분위기와 맞지 않았고,1년에 최소 1500만원 이상 드는 학비가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됐다.”고 털어놨다.효섭이는 이후 혼자 공부했고,미국 검정고시인 GED에 응시해 합격했다.미 수능시험에서는 SATⅠ 만점,SATⅡ 물리·화학·수학Ⅱ·작문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효섭이와 윤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장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달 16일부터 시작하는 워싱턴대 생의학 계열 여름캠프에 참가해야 하지만 아직 진학을 최종 결정하지 못한 탓이다.1년에 4만3000달러에 이르는 학비도 큰 부담이다.장학생으로 뽑혔지만 통지를 늦게 받아 장학금을 신청하지 못했다. “외국 대학에 보내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습니다.효섭이가 어떤 대학을 가서 어떤 일을 하든 제 스스로 잘 해낼 자신이 있으니까요.” 윤씨는 끝까지 효섭이를 믿고 있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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