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일그러진 의료현실
선진 의료 제도에 비하여 우리네 의료 제도의 모습은 몹시 일그러져 있다.과잉 진료,과잉 처방,소비자의 메디컬 쇼핑,고급 기술 과다 사용,경증질환 서비스 과다 이용 등 왜곡된 행태가 우리네 제도를 압도하고 있다.1인당 국민 소득 34위의 국가에 CT나 MRI와 같은 최신 고가 의료장비의 단위 인구당 보유는 세계 3위로 기록되고 있는 실정이다.그 결과 진료비 증가는 급격하며,의료 이용상의 비 형평은 높고,제왕절개나 치식술 사용,혹은 항생제 과다 처방의 예에서 보듯이 의학적 기술 수준은 높지만 환자에게 다가오는 의료 서비스 질의 문제는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의료 제공자,의료 이용자,그리고 정부는 서로 상대방의 탓만을 지적하고 있다.특정 서비스나 처치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현실에서 책임은 의료 이용자에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소비자의 미흡한 의료 지식을 빌미로 불필요한 처치나 과다한 이용을 유도하는 의료 제공자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는 소비자들,사사건건 정부의 정책을 오해하고 반대만을일삼는 소비자 단체와 의약계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이 삼자는 각자의 논리대로 책임소재를 정하고선 비난의 화살을 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해결을 위한 첫걸음은 무엇보다 의료 서비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에서 출발한다. 다른 재화와는 달리 의료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이 의료 제공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따라서 많은 결정은 제공자인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된다.그런데 의사라고 모든 진단과 처방을 오차 없이 할 수는 없으며,질환 치료에 유일한 치료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러 치료법이 존재할 수 있으며,의사의 모든 치료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의사 결정도 나름대로 한계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의료 서비스는 정보의 비대칭에 ‘가변성’이 매우 큰,그래서 개념적 정의가 어려운 재화에 해당한다.그렇기 때문에 논의의 폭도 넓지만 논란의 여지도 많을 수밖에 없다.이런 가변성이 큰 재화의 이용과 관련한 부분을 간단한잣대를 가지고 통제하거나 조정하기란 매우 어렵게 된다.따라서 정부의 섣부른 규제나 통제는 오히려 제공 행태,이용 행태의 왜곡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정보 비대칭으로 인하여 시장 실패가 있는 보건 의료의 생산 및 배분을 전적으로 시장 기능에만 맡길 수 도 없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어느 나라도 시장 기능만으로 보건 의료문제를 풀어 가는 나라는 없다.즉 규제의 틀은 필요한 셈이다.그러나 ‘가변성’의 특성을 감안할 때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의료 제공자 측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네 의료 현실을 치유할 해법의 모양새는 대충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정부는 시장 실패를 보정하는 차원에서 자원 배분의 큰 틀을 만들어 주고,의료 제공자는 그 틀 안에서 스스로의 행태를 결정하게 하는 형태이다.예를 들어 의료수가를 하나 하나 행위별로 통제할 것이 아니라 지불보상제로 큰 틀을 설정하고서 그 프레임 안에서 제공자 스스로가 행태를 찾아가고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제도적 구성에서 현재와 같은 정책 구사는 소비자,의료 제공자,정부를 모두 패배자로 만들면서 서로 불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OECD 선진국들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도 주치의 제도나 공공 의료제도,그리고 적절한 의료비 지불방법을 제도의 기본 틀로서 만들어야 하며 그럴 경우 현재와 같은 일그러진 모습은 상당 부분 치유될 것이다.
이러한 틀은 현재의 일그러진 모습에서 비롯되는 혼란과 많은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초석이자 필수적 요건임을 우리는 인식하여야 한다.이를 위해 필요한 변화를 점차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수단의 강구에 정부,학계,그리고 전문가는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양 봉 민 서울대 교수 보건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