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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아교육 장학정책’ 학술대회

    이영석(李榮碩) 미래유아교육학회 회장은 25일 오후 6시30분 성균관대학교 경영관 소극장에서 ‘한국 유아교육 장학정책의 현황과 방향’이라는 주제로 추계 학술대회를 연다.이 자리에서는 국회 교육분과 위원회 권철현(權哲賢)의원이 ‘지구촌 시대의 교육혁명과 유아교육’이란 제목의 기조강연을 한다.
  • ‘유아교육의 미래’ 춘계학술대회

    이영석(李榮碩) 미래유아교육학회 회장은 24일 오전 10시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조병두홀에서 ‘한국 유아교육의 미래경향’을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한다.
  • 이영석 광주대교수 “분명한 모습의 近代란 없다”

    근대·전근대 구분은 자의적 표시 불과 “근대화는 무조건 좋은것” 인식은 환상 이영석광주대교수 주장 우리가 믿는 ‘우리의 근대’는 제대로 된 모습일까.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 꾸준히 모색해 왔으면서도 명쾌한 답이 제시되지 않은 이 문제에 대해 영국 근대사를 전공한 이영석(50)광주대 외국어학부 교수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근대의 모습을 제시하고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교수는 자신의 저서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푸른역사)에서 “분명한 모습의 근대란 없다.”고 잘라 말한다.“역사 속 근대의 모습은 항상 모호하며 변화와 지속이 혼재한다.”는 그는 “결국 근대적인 것과 전근대적인 것의 구분은 우리의 자의적인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영국 근대사에 대해 일반적으로 ‘혁명적 변화를 통해 진보를 추구한 과정’이라고 이해하려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그는 “영국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근대성의 분명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르네상스와 종교개혁·영국혁명·산업혁명 등 근대산업사회의 결정적 변화를 모두 겪으며 근대의 전범(典範)으로 자리잡은 영국이지만 그곳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근대성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근대를 부정,비하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교수는 ‘근대’와 ‘근대성’에 대한 물음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으면서도 “근대를 이성이나 계몽적 기획같은 추상적 외피로 둘러 싸서 단정적으로 재단하고 규정하려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경향은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밝힌다. 아울러 ‘근대성이 곧 진보’라는 시각을 경계한다.다시 말해 ‘근대화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은 환상이라는 의미다.서구화의 동의어인 근대화가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에 대한 반란인 셈이다. “근대는 분명 해방을 수반하지만 억압성을 동시에 내장하고 있다.”는 그는 근대를 인과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대를 견인하고 지탱한 주체,즉 노동계급에 눈길을 줘 그들이 창조했다고 믿는 근대의 이면을 미시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제자에 “유산관리 해준다”5억 ‘꿀꺽’ 대학교수 구속

    서울지검 형사6부(부장 辛南奎)는 28일 제자에게 유산을 관리해 주겠다고 속인 뒤 5억여원을 가로챈 경기도 안양시 성결대 영문과 교수 이영석(45)씨를 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2000년 12월 동생의 국내 대학 편입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찾아온 제자 최모(여)씨가 부모로부터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주면 서울에 빌라를 지어 그 이익금으로 유학자금까지 마련해줄 수 있다.”고 속인 뒤 빌라 공사비 부족 등을 핑계로 지난해 7월까지 5억 5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서울에 짓기로 한 빌라에 자신의 돈 3억원을 투자했다는 점을 들어 최씨의 돈을 빼앗으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학습지 회사 운영이 어려워지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검찰은 밝혔다. 조태성기자
  • 지식나눔운동/참여인사 명단 - ‘나눌수록 커지는 지식’ 동참 물결

    대한매일의 ‘지식나눔 운동’에 각계 각층의 호응이 잇따르고 있다.지난달18일 명예논설위원과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인사들이 500여명이 넘은 데 이어 한달 사이 1000여명으로 늘어났다.학계에서는 박재윤 부산대 총장,이성호 연세대 부총장을 비롯,전국의 대학과 연구원의 교수들이 대거 참여했다.문화계에서는 시인 고은·문정희씨,소설가 이호철·김주영씨 등이 함께했다.정·관계에서는 유치송 대한민국헌정회 회장,김덕룡·김형오 한나라당 국회의원,조순형·고진부 민주당 국회의원과 이승희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강동석한국전력 사장 등이 동참했다.경제계에서는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강정호 한국선물거래소 이사장,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장,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등이 참여했다.대한매일은 지면 사정상 이번 2차명단에 싣지 못한 분들과 앞으로 참여하는 분들의 명단을 계속해서 지면에 소개할 계획이다. ◆명예논설위원 [2차분] ■학계 ▲강병식 한성대 국제대학원 원장 ▲강석승 경기대 정치대학원 대우교수 ▲강창현 경민대 자치행정과 교수 ▲고상룡 성균관대 법과대학 교수 ▲구병삭 고려대 법대 명예교수 ▲구승회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 ▲권경주 건양대 행정학과 교수 ▲권오윤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권준모 경희대 교육대학원 부교수 ▲권택영 경희대 영어학부 학부장 ▲권택진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 ▲김귀곤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 ▲김동건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동일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김동희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김명섭 강남대 사학과 강사 ▲김문환 서울대 인문대학 교수 ▲김병모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김상국 경희대 산업공학과 교수 ▲김성배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 ▲김수덕 호서대 경제학과 교수 ▲김숙현 한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영수 성균관대 법대 교수 ▲김영식 세종대 교수,교양학부장 ▲김영태 목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용진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과장 ▲김정운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교수 ▲김정호 용인대 교수 ▲김종대 단국대 대우교수 ▲김종범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천봉 전주대 행정학과 교수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한식 국방대 교수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겸임교수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육학과 교수 ▲문봉희 숙명여대 정보과학부 교수 ▲문숙재 이화여대 생활환경대 교수 ▲문용성 동아대 중국사학과 교수 ▲민 진 국방대학교 행정학 교수 ▲박기순 성균관대 신방과 교수 ▲박도순 고려대 사범대학 학장 ▲박명광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박명석 단국대 인문학부 교수 ▲박상순 경민대 연극과 학과장 ▲박상준 국민대 경영학부 부교수 ▲박성익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박순영 연세대 철학과 교수 ▲박완신 관동대 북한학과 교수 ▲박우동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박윤형 순천향대 예방의학교수 ▲박창업 서울대 지질학과 교수 ▲백수경 인제대 보건대학원 교수 ▲서상권 경원대 교육대학원 교수 ▲서일성 경민대 효실천본부장 ▲서정우 연세대 특임교수및 명예교수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소병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송두석 경민대 관광경영학과 조교수 ▲신영상 인하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신장섭 경민대 교양학부 조교수 ▲안 혁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 ▲안병용 신흥대 행정학과 교수 ▲안성호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봉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하청 명지대 법정대 교수 ▲오석홍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원영신 연세대 사회체육과 교수 ▲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교수 ▲유만근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 ▲유석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유철종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홍림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 ▲윤기현 연세대 재료공학부 교수 ▲윤복자 연세대 명예교수 ▲윤용희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경회 연세대 건축도시공학부 교수 ▲이광재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이귀로 KAIST전자전산학과 교수 ▲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이무상 연세대 의대 교수 ▲이민상 협성대 유통경영학과 교수 ▲이병석 경민대 홍보실 실장 ▲이상안 국립경찰대 교수 ▲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성호 연세대 부총장 ▲이승일 연세대 구강생물학 주임교수 ▲이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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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다시 도덕과 정치를 생각한다

    집권층의 비리 의혹이 연일 신문 머리기사를 장식한다.의혹을 받는 고위 공직자들의 처신을 보면 하나같이 체면이나 염치는 저 멀리 던져버린 것 같다.연말이 다가오면서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몸과 마음마저 얼어붙는 느낌이다.국민의 정부 또한 스스로 변한 것은 없고 오직 개혁이라는 언어만을 앞세웠을 뿐임을 실감한다. 정치에 환멸을 느낄 때 나는 글래드스턴을 머리에 떠올린다.네 차례나 총리를 역임한 글래드스턴은 영국인이 가장존경하는 정치가로 손꼽힌다.그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의 개혁을 열망하였고,현실 정치에서 이 열망을 이루려고 노력한 이상주의자였다.19세기 후반 자유당은 그의 개혁노선에 힘입어 노동자계급에까지 지지기반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글래드스턴을 연상하는 까닭은 그의 탁월한 정치적 능력 때문이 아니다.참으로 기이한 점은 그의 내면 신앙과 도덕적인 삶 자체이다.그는 청년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일기를 썼다.그의 일기는 오랫동안 역사가들의 관심을 끌었지만,정작 전집으로 출판된 것은 1970년대 초의 일이다.그의유족들이 간행을 반대했기 때문에 늦어졌다고 한다. 후손들은 왜 출판을 꺼렸을까.간단한 메모와 단편적인 기술로만 이어진 일기 곳곳에는 ‘엑스’(X)라고 표기된 사람들과의 만남이 적혀 있다.놀랍게도 그 ‘엑스’는 모두 사창가의 여인들이었다.글래드스턴의 후손들은 위대한 인물이 오명을 뒤집어쓸까 두려워 감히 출판을 생각하지 않았던것 같다.일기를 들쳐본 사람은 다시 한번 그 내용에 놀란다.글래드스턴은 공직에 있을 때에도 저녁 무렵에는 평복을하고 사창가를 배회했다.그는 신분을 숨긴 채 버림받고 자학에 빠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그는 거리의 여인들과 만나,자신의 도덕적 열정으로 그들을 교화하고 설득하고자 노력했다.여인이 새로운 삶을 찾기로 약속하던 날의 일기에는 신에 대한 감사와 인간에의 굳건한 믿음으로 가득 차있다.성과가 없는 날의 기록은 회한의 언어만 나타날 뿐이다. 글래드스턴은 나의 한 친구와도 관련된다.역사를 전공하는 그 친구는 지난 십 수년간 글래드스턴에 몰두해 있었다.나는 그가 왜 글래드스턴에 집착하는지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4년 전 선거가 끝난 후에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나는 비로소 그 궁금증을 풀었다.그는 80년 5월 고향 광주에 있었다.상황이 절망적으로 변하던 날 밤에 그는 부모의 눈물어린 배웅을 받으며 몰래 광주를 빠져 나왔다.한 친구와 함께 철길을 따라 5㎞ 가량 곧장 뛰었다고 한다.그리고 유학을떠났다. 내성적인 성격에 평소 학생운동과도 거리를 두었던 그 친구는,그러나 유학시절 내내 가위에 눌리는 아픔을 안고 살았다.역사가는 그의 연구대상에 그 자신의 꿈과 열망을 투사한다고 하지 않던가.그는 글래드스턴에게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모양이다.아마도 그는 고향 출신의 한 걸출한 정치가의 잔영을 글래드스턴의 모습에 덮쳐씌우려고 했던 것 같다.적어도 그에게 그 정치가의 인생역정은 글래드스턴의 도덕정치와 동의어였다. 그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아마 이전의 감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 모른다.지난 4년의 세월은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지만,허나 지금부터라도권력자와 집권층은 다음과 같은 자명한 사실을 숙연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이전의 그 정권 교체는 자신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내 친구와 같은 그 무수하면서도 평범한 개인들의 꿈과 비원과 열망이 한데 모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말이다. ■이영석 광주대교수·서양사
  • [대한광장] 정치를 넘어 문화로

    에든버러 시내에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기리는 유명한 인물들의 조상(彫像)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이들을 훑어보면,월터 스콧에서 존 윌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19세기 영국문화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다.이들 조각은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을 주도한 문화계 인사와 지식인들을기념한 것이다.이상하게도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처음부터 정치보다 문화를 더중시한 것은 아니다.이들 조각은 잉글랜드에 예속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그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문화 속에서 찾으려했던 열망을 반영한다. 실제로 스코틀랜드 지식인이 빅토리아기 영국 문화에 이바지한 정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아마도 그들은 현실정치에서 잉글랜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조국의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초극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들은 현실정치를 넘어서 그들의 전통과 문예 속에서 그들의 자의식을 발현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런 노력이 영국의 새로운 문화전통으로 자리잡기를 열망하였다.에든버러에 가득한 문화적 향기는 사실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다.그럼에도 나는 그 인물 조상들을 연상할 때마다 부러운감정에 젖는다.전통문화와 그 전통에 이바지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는 풍토가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이다. 남의 나라 사례를 빗대는 것이 어색하지만,우리 사회도 정치 과잉의 시대를 이제 그만 벗어났으면 싶다.지난 30여 년간 세 김(金)씨와 그 주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이 사회를 짓눌러왔다.그 잔흔들은 사라질 줄 모르고 끊임없이스스로를 재생산한다.3김 이후라고 해서 달라질 게 있는가. 신문과 방송,주간지와 월간지,모든 매체들이 3김뿐만 아니라 그 후속세대에 관해서 열변을 토한다.어디서나 이야기꾼의 공연은 대성황을 이룬다. 이런 현상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정치가 그만큼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기 때문이 아닌가.정치인들에 대한 비난이 많지만,따지고 보면 그들만큼 부지런하고낙천적이며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낙선한 후에도 다음 차례를 기대하면서 분투 노력하는 그들의움직임을 보라.더욱이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일반인의관심을 끌기 때문에 언론과 방송이 다투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이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으니 공연이 좀 더 시끄럽더라도 용인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렇더라도 나는 이런 이야기꾼의 공연에서 벗어나고 싶다.정치인의 끝없는 변신과 교언(巧言)은 오랫동안 보고들은것만으로 족하다.불투명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정계의 풍경화는 이제 눈을 감아도 뚜렷하게 떠오를 정도다.사람들 모두가 정치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뉴스거리는 호기심을 뒤쫓기보다는 억지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다.오히려 정치 과잉의 분위기가 정치 불신과 정치 혐오로 이어지는 것 같다. 사실 이 다원주의 시대에 정치는 우리 삶의 중요한 영역이기는 하지만,그러면서도 그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정치는 우리 삶 가운데 오직 일부 문제만을 해결해줄 수 있을뿐이다. 우리 주위에서 성황을 이루는 이야기꾼의 공연이 정치를넘어 문화로,삶의 다른 영역으로,정계만이 아니라 다른 생활세계에서 살아가는 좀더 다양한 사람들의 말과 몸짓으로이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대화에서 3김씨와 정치인들에 관한 이야기보다는,삶의 세계와 그 세계에 깃든 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녹아흘렀으면 한다.갑자기 추워진 겨울날 오후에 나는 이런 ‘고상한’ 생각에 잠기며 빙그레 웃는다. 이영석 광주대교수·서양사
  • [대한광장] 민심 흐름과 초심찾기

    당 태종은 신하들에게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중 어느것이 더 어려운가를 물었다.한 신하가 창업도 힘든 일이나 수성 또한 그보다 용이하지 않다고 말했다.나라가 처음들어선 후에는 사람들이 진정한 휴식과 생업을 바라지만,그러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그들은 더 커다란 불만을 터뜨린다는 것이었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이 유명한 일화는 봉건시대보다 오히려 현대사회에 더 잘 들어맞는 것 같다.집권의 기쁨이나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후 집권자들이 곧바로 비난과 오욕을 뒤집어쓰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서나 흔한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민심이 변화무쌍하며,국민의 지지가 일순간에 비난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오랜 정치생활에서터득했을 것이다.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그는 이전 정권의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그 즈음에 대통령과 정부가 보여준 개혁적인 태도와 의욕은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현 정권의 성적표는 수준 미달이라는 도장이 찍혔다.편중인사에 따른 지역갈등이 더 깊어지고,여러 분야의 개혁조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오히려사회계층과 집단들 사이에 대립과 증오의 분위기만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이 꼬리를 문다.잦은 권력형 의혹사건과 일부 인사들의 부도덕한 행실 때문에 남북문제를 비롯하여그나마 후한 점수를 받아야 할 일들마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현 집권층의 눈으로 보면 한편으로는 억울한 면도 있을것이다.그러나 정부에 대한 국민의 눈초리가 너무나 차가워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선에서 남은 집권기간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의 충고가 이어진다.대부분 비슷비슷한 처방들이다.초심으로 돌아가라.선택과 집중을 통해 몇 가지 사안들의 마무리에만 전념해라.지금부터라도 편중인사를 시정해라.모두 다 옳은 말이다.그럼에도 이런 처방이 공허한 언어로만 들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원래 정치 시스템보다는 특정한 자리에 앉은 권력자들의 품성과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그러나 요즈음 들어 사람 못지않게 시스템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그렇다고 내각제냐,대통령제냐의 문제를여기에서 꺼낼 의도는 없다.다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을 한번은 되짚어야 한다고 본다.대통령은 국가원수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삼권분립제도 아래서 그는 역시행정부의 수반이다.이런 점에서 보면,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행정부가 있다.정부와 청와대비서실이 그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옥상옥이 있는 셈이다.현 집권층도 처음에 청와대비서실을 축소하겠다고 말했다.그럼에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두 개의 행정부가 있다는 것,여기에서행정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정부 각 부처의 장은 다른 눈치를 보는 데 바쁘다.청와대를 단순히 대통령 관저로 운영했으면 한다.대통령에게도 정부청사로 출근하라고 권하고 싶다.그러면 행정부를 직접 장악할 것이고,행정 각부의 장도 수시로 만날 수 있으리라.그만큼 민심과 현실을가감없이 가까이 대할 수 있다. 집권 초기에 김대중 대통령은 2주에 한번 꼴로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그때 나는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현재와 같은 시스템 아래서는 어차피 대통령 주위에 겹겹의 장막이 쳐질 수밖에없다.그 장막을 치웠으면 한다.다음 대통령직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감히 이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출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이영석 광주대교수·서양사
  • [대한광장] 빈곤의 추억과 풍요의 그늘

    지난 추석에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나는 헛간 구석에 밀쳐놓은 낡은 재봉틀을 보았다.어머니는 당신이 사용하던 물건은 쓸모없게 된 다음에도 버리지 않고 한곳에 모아두신다.그 분의 손때가 묻은 그 재봉틀도 이제는 녹슬고 고장난 폐품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재봉틀이 없었다.어머니는 옷가지 재봉질이 필요할 때면 근처 큰댁에 들러서 일을 하셨다. 큰댁에 재봉일을 하러 갈 때마다 한숨을 내쉬거나 속상해하시는 것 같았다.당신의 재봉틀을 마련하는 것이 그분의소원이었다.큰어머니가 애용하던 그 손재봉틀은 돌아가는소리가 나직하고 부드러워서 무척 듣기 좋았던 기억이 난다.어린 나도 심심하면 큰댁에 들러 휘파람을 불면서 큰어머니며 사촌 누나가 손재봉틀을 돌리는 모습을 재미있게바라보곤 했다.아니 그것이 내 중요한 일과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우리 집에 처음 그 재봉틀을들여놓던 장면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방과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낯선 사람들이발재봉틀을 방안에 들여놓고 있었다.어머니는 들뜬 표정으로 재봉틀을 샀다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날부터 어머니와 나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어머니는 그 재봉틀을 몹시도 애지중지하셨다.늘 몸통을 닦고기름칠하며 매만지셨다.원래 손장난이 심했던 나는 기계돌아가는 소리와 작동 원리에 매료되었기 때문에,틈만 나면 어머니의 눈을 피해 재봉틀을 만졌다.이따금 어머니에게 들켜 눈물이 나도록 혼이 나곤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더 이상 재봉틀을 만지지 않으셨다.사실 기성복이 범람하는 오늘날재봉틀은 장식품이라면 모를까 집안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다.혼숫감 목록에서 재봉틀이 사라진 것도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머니가 재봉틀을 멀리하게 된 것은 이런 시대적추세의 영향을 받은 탓이 아니다. 그분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시대의 추세와는 담을 쌓고 살아오셨다. 그 기계가안방에서 골방으로 사라진 것은 순전히 그분의 기력이 쇠잔하고 눈마저 침침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은 결국 산산이 부서진다.그재봉틀은 곧바로 고장이 났고 골방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그러다가 마침내 허름한 헛간 한 구석으로 밀려난 것이다. 어머니의 재봉틀에는 어렵던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 추억과 함께 그분의 쇠잔한 모습과 우리 가족의 역사가무수한 잔영을 만들며 스쳐 지나간다.그 녹슨 재봉틀은 아무래도 이 풍요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어찌 재봉틀 뿐인가. 쇠잔한 어머니의 모습도 더 이상 이 시대와 조화를이루지 못한다. 어머니의 배웅을 받고 고향집을 떠나오면서 나는 오랫동안 상념에 잠겨 있었다.사실 나는 그 재봉틀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그러니까 그 동안 어려운 시절의 삶의흔적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셈이다. 나보다 더 나이어린 세대는 고단함으로 단련된 그런 삶의 분위기를 아예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우리는 풍요의 시대에 너무 친숙해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이 시대에도 때로는 어려운 시절의 기억과 생활을 되새겨볼 일이다.어렵고고단해도 그것을 참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한다.사실 21세기의 사회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이미 수년전에 겪었듯이,우리의 경제와 삶의 터전이 예고 없이 추락할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미래를 위하여 어린 세대에게 참고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하는 일은 아마 우리 세대의 몫이 아닐까 싶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 [대한광장] 이슬람의 부활과 서구문명

    세계무역센터 테러와 더불어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이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이 운동은 단순히 반서구 또는 반미를 표방하는 것을 넘어서 기술문명,자본주의,세속화 등으로 표현되는 서구문명을 송두리째 부정한다는 점에서 아주도발적이다. 지난 한 세대에 걸쳐서 이슬람의 종교문화는 놀라울 정도로 역동성을 보여준다.전세계적으로 이슬람 종교인구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오랫동안 기독교 선교사들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아프리카 지역이 회교권으로 바뀌고 있다.이슬람의종교적 세계관을 지향하는 각종 사회단체와 기관들이 사회활동과 여론을 주도한다.이슬람 원리주의운동은 서구 이데올로기가 아닌 이슬람의 종교적 전통으로의 복귀를 주장한다. 이와 함께 이슬람 국가들은 종교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거나강화하는 과정에서 반미 또는 반서구적인 외교정책을 내세운다.이들 국가에서 나타나는 반서구 분위기는 물론 가깝게는유럽의 제국주의 지배,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과 세계지배전략,그리고 중동 산유국의 전통적 지배세력 지원 등에 대한반발에서 비롯한다.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대립도 이러한 정서의 밑바닥에 깔려 있을 것이다. 사실 두 종교의 갈등은 오랜 기원을 갖는다.이미 8세기에기독교 세계는 3개 대륙에 걸쳐서 대제국을 이룩한 이슬람세계에 포위되어 있었다.십자군운동은 이슬람 세계에 대한기독교 세계의 새로운 공세였고,15세기에는 오스만제국이 이슬람세력의 맹주로서 유럽에 압력을 가했다. 다음 세기부터 기독교세계는 지속적으로 이슬람을 구축한다.서아시아지역은 근대화 과정에서 낙후되면서 유럽 여러나라의 제국주의 지배를 받았고,2차대전 후에는 미국의 영향 아래서 고통을 당했다. 오늘날 이슬람의 부활은 서구문명과 서구적 가치의 위축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회교 원리주의자들은 서구문명의 세속화를 비판한다.이슬람의 서구 비판은 기독교 자체보다는 서구의 탈(脫)종교적 가치들에 집중된다.서구의 물질문명은 타락하고 부패했으며 비윤리적이라는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자본주의의 부패와 필연적인 붕괴를 믿었던이전 시대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신념과 비슷하다.일찍이 서방진영에서 사회주의 이론가들을 가리켜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던데 비해 오늘날 이슬람에서 서구의 무신론적 경향을 비판하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있다. 이슬람의 새로운 부활에서 우리는 ‘전통의 창조’를 주목해야 한다.전통이란 단순히 전근대적 사회의 관습이 누적된것이 아니다.그것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복고적문화이다. 그것은 특정한 시대 사람들의 이해와 열망을 반영한다.이슬람의 부활과 회교 원리주의 운동은 바로 이 전통의 창조라는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슬람은 전통의 창조과정에서 현대사회의 새로운 제도와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각종 단체며 사회 및 교육기관이며 매스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복원하고 기독교와 이슬람,물질문명과 이슬람의이원적인 구조를 되살린다. 그동안 우리는 이슬람 세계를 잘 알지 못했다.주로 서구세계의 정보를 통해 이슬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더욱이 우리사회는 서구화에 대한 냉철한비판의 기회가 많지 않았다. 우리의 의식구조 속에 서구지향적인 태도가 지배적이어서 서구적 시각에서 이슬람을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했다.이제 우리는 그러한 편견에서 벗어나 이슬람 부활의 역사적 맥락과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그것은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성찰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영석 광주대교수·서양근대사
  • [대한광장] ‘근대적 시간’의 억압 아래서

    시골 출신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유신시대에 서울에올라와 대학을 다니던 나는 사람들의 분주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당황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서울에서 내가 느낀 인상은 우선 사람들의 행동이 무척 민첩하다는 점이었다.종로거리를 걷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길 가는 사람들이모두 나보다 빨리 걷는 것 같았다. 12년 전 광주에 내려왔을 때 이곳 사람들의 걸음걸이는전혀 달랐다.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무척 느리게 보였던 것이다.서울에서 십수년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나도 모르게 빠른 삶의 분위기에 동화됐던 모양이다.광주사람들의 한가한 발걸음에서 나는 산업화의 지체를 확인했다. 몇해 전에 교육방송에서 근대화의 문제를 강의하면서 사회자에게 이런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그때 사회자가웃으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그의 눈에는 내 모습이 너무나 느리게 보인다는 것이었다.아마도 내가 광주의 생활 스타일에 익숙해진 탓이었을까.지금은 광주의 생활도 분주한편이지만,서울에 비하면 아직도 한가롭다고 할 수 있다. 허나 따지고보면,오늘날 한국인의 정서와 행동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알려진 ‘빨리빨리’ 스타일도 역사가 오래되지 않는다.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전통사회의시간 아래서 삶을 꾸려 나갔다.전통적 사회는 무엇보다도자연의 지배를 받는다.사람들의 시간 또한 자연의 리듬에맞추어져 있었다.자연적 시간은 어둠과 빛,추위와 더위,노동과 휴식 등 서로 대조적인 것의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기다림과 영속의 시간일 뿐이다.그만큼 변화가 적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속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자연적 시간은 산업화와 더불어 해체된다.산업사회의 시간은 이전에 비해 더욱더 짧게 나뉜다.시간의 세분화는 단위 시간에 이루어지는 일의 양이 급속하게 증가하거나 또는 일정한 양의 일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질 경우에 필요하다.현대사회의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단위 시간당 변화가 많다는 의미다. 시간 분할과 함께 사람들의 삶은 지속보다는 변화에,느림보다는 빠름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산업화를 압축적으로경험한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급속하게 시간분할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일을 빨리 해치우려는 경향은 이밖에도 다양한 요인들이 겹친 데서 비롯한다.언론 방송의 선동과 선정주의,군사정권의 대중조작과 동원,일관성 없는 각종 정책 등 모든것들이 서로 작용하면서 사회 전체가 조급하게 효력과 성과만을 기대하는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역시 좁은 국토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극단적인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조건이야말로 우리 머리 위에 드리운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그경쟁풍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빨리 해치우지않으면 안된다.거기에는 체면도,염치도,주위의 눈길도 하찮은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근대적 시간’의 억압에서 해방될 가능성이 낮을수록사람들은 다른 한편으로 해방의 꿈을 찾아 헤맨다.근래에‘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비롯해 시간에 관한 책들이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이런 꿈이 작용한 탓이다. 요즈음 우리의 바람과는 반대로 근대적 시간의 지배는갈수록 더 강화되고 있다.특히 세계화라는 말이 모든 국민의슬로건으로 동원되면서,우리의 삶은 더욱더 빨라지는 것같다.이 억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마음 깊이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때로 해방의 행복한 순간을 머릿속에 그린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 정년퇴직 교원 849명 훈·포장 수여(2)

    ◇홍조근정훈장▼강원△심인섭 소양중 교장△임양근 강릉여중 교장△김연주 북원여중 교장▼경기△심영섭 능서초 교장△장영배 북내초 교장△최영자 강선초 교장△정정환 선동초 교장△이완녕 범계중 교장△정춘국 일산중 교장△김진강과천고 교장△최성락 백마고 교장△리조훈 송탄고 교장▼경남△문병용 축동초 교장△권정숙 옥종중 교장△이지곤 내서중 교장△박성부 합포중 교장△안석환 서포중 교장△차일효 진해여중 교장△정연수 동진중 교장△김삼홍 동진중 교감△허경열 무안중 교감△공원석 합천중 교장△김정권 진해고 교장△박은욱 단성고 교장△이범순 함양제일고 교장▼경북△박정웅 포항대흥초 교장△김태환 유림초 교감△김동연 안동고 교장△김규병 영천공업고 교장△정준기 영동고 교장△여기창 경북교육청 장학관△박영철 김천중앙고 교장△윤한오상고 교사△김석기 강구상고 교장△최봉현 대도중 교장△이종옥 소수중 교장△안한근 공검중 교장△허진열 영주부석고 교장▼광주△이혜자 광주효광중 교장△오희열 상무중 교장△이정헌 월곡중 교장△김성기 지원중 교장△김문곤 지원중 교감△김기원 각화중 교장△류이열 용봉중 교사△백희동 금남중 교장△박형국 광주기계공고 교감△김옥빈 학생교육원 원장▼교육부△윤영소 국제교육진흥원 교육연구관▼대구△장삼도 대구동덕초 교장△이수문 대곡중 교장△백춘이 덕화여자중 교장▼대전△이종기 동대전중 교장▲교수△황해선 동의대△최재종 경원대△김원중 포항공과대△김동철 순천대△정병수 성균관대△이용훈 한국해양대△현문길 동아대△오진곤 전북대△김명호 덕성여대△변대현 홍익대△전명현홍익대△김상욱 경북대△손병기 경북대△변영수 고려대△김돈균 부산대△김종훈 연세대△이종성 연세대△유공조 경희대△박경호 강원대△이병기 강원대△김수원 계명대△이상옥 서울대△박형석 서울대△안원영 서울대▼부산△정무진 남부교육청 장학관△안영환 용호중 교장△이상원 동항중 교장△고후진 금사중 교장△김성찬 경남고 교장△남호상 대천리중 교장△양화자 천마초 교장△이일영 운송초 교장▼울산△김종우 울산서여중 교감△윤동원 울산여고 교장△강대호 태화초 교장▼인천△정용주 청학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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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로잔의 올림픽 기념관에서

    스위스 로잔을 지나다가 IOC본부에 올림픽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잠깐 들렀다.기념관은 고대 그리스시대에서부터 현대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많은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각종 경기의 기원과 변천을 한눈에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경기를 보여주는 도자기의 문양과 경기장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근대 올림픽은 1회 경기부터 1990년대의 올릭픽에 이르기까지 각 개최국에서 보내온 기념물을 진열해 놓았다.전시관의 한쪽부터 역대 올림픽대회의 전시자료를 훑어보다가 나는 서울올림픽 자료를 보고 너무나 깜짝 놀랐다.전시관에는호돌이 마스코트, 부채,그리고 서울올림픽 경기장 축소모형이 고작이었다. 다른 올림픽의 경우 자료가 넘쳐났다.올림픽에 직접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거리와 개최도시의 이미지를보여주는 자료,심지어는 우승한 선수의 유니폼이나 우승팀이 사용한 공에 선수들이 서명한 것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12년 전의 그때를 머릿속에 떠올린다.그 당시에는 정부와 관련단체가 총력전의 형태로 경기를 준비했다.올림픽이야말로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지름길처럼 여겨졌다.그 몇년간은 정부의 정책과 각종 행사와 공공부문의 투자가 거의 대부분 올림픽을 향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그 모든 기억은 우리의 뇌리에서사라졌다.사실 나는 정부 주도의 그 경기에 열광한 적은 없다.따라서 굳이 기억할 만한 경험도 없다.그러나 정부와 올림픽준비위원회까지 망각의 특혜를 줄 수는 없다.행사 종료와 함께 정부와 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은 아마도 경쟁적으로서울올림픽에 작별인사를 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들이 그 후에 체계적인 올림픽 백서를 냈다는 소식도,평가보고서를 작성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국회에서도 그런 시도를 했던 것 같지 않다. 자주 로잔을 방문했을 한국 올림픽위원회 관계자들이 이 기념관의 자료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사실 우리는 어떤 일에 열광하다가도 그 일이 지나면 순식간에 잊어버린다.일반사람들이야 곧바로 잊어도문제 될 게없다. 그러나 그 행사를 준비하고 주관한 사람들과 단체까지도 이런 태도를 지닌다면,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행사를 어떻게 치르느냐도 중요하지만,그 행사를 치른 후에 어떻게 마무리를 하고 행사의 경험과 기억을 어떻게 형상화하여 다음 세대에까지 전달할 것인가라는 문제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그 관계자들은 이 점을 무시한 것이다.이제는 로잔의 올림픽 기념관에 자료를 더 보태기가 어려울 듯싶다.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때의 자료들은세월이 흐르면서 유실되고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올림픽 경기뿐이겠는가.‘조선왕조실록’과 같은 방대한 기록을 문화유산으로 남겨왔으면서도,오늘날 우리사회는 지난 일들에 관련된 자료를 수합하고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일에 너무 무관심하다.정부의 공문서는 물론이고 개별기업이나 단체에서도 그들의 과거의 활동과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들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분류되어 있지 않다. 이즈음 과거의 공문서와 개별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특히 정부는 이런 일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향적인 태도를 가져야한다.한줌의 자료라도 소중히 하고 보존하며 분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토양이 될 뿐만 아니라,그것 자체가 일종의 문화이다. 우리문화를 널리 소개할 월드컵대회도 얼마남지 않았다.월드컵 준비과정도 중요하지만 행사를 치른 뒤 관련자료와 경험을 남기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 [대한광장] 백조를 바라보며

    4주간에 걸쳐 영국에서 자료 조사를 끝내고 파리에 들렀다.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한 목사님 댁에 머물면서 며칠동안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여름 휴가철에 파리 시민들은썰물처럼 파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여행객들이 그들이 빠져나간 그 공간을 채운다. 거리마다 배낭여행을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로 넘쳐난다.그들은 저마다 유럽여행을 소개한 안내책자를 들고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이제 이런 여행은 한국과 대만 젊은이들의 전매특허가될 것 같다.그들은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돌면서 안내서에적인 관광명소를 찾아다닐 것이다. 한국의 교육 자체가 그러하듯이, 우리 젊은이들의 여행도근본적으로 최소의 투입에 최대의 산출을 노리는 포디즘적성격을 띠는 것 같다.여행의 기쁨과 그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일은 아마도 그것을 넘어,그곳 사람들의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관찰할 때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번잡한 도심을 피해서 파리 근교의 공원이며 보베 지방의 농가들을 둘러보기도 했다.소호공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그곳은 파리에서는 보기 드문 광대한 숲으로 뒤덮여있었다.나는 드넓은 호숫가의 벤치에서 가벼운 여행기를 읽었다.공원을 산책나온 노부부의 웃음과 유치원 꼬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와 배낭을 맨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공원의 정적을 이따금 깨뜨릴 뿐이었다. 유럽의 강과 호수에는 무수한 오리와 백조들이 한가롭게노닌다.특히 유유히 흐르는 물결에 몸을 내맡긴 백조의 우아한 모습은 언제 보아도 새롭다.나는 호수에서 노니는 두마리의 백조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백조 한쌍 바로 옆에 작은 오리새끼가 따라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백조가 그 오리새끼를 돌보는 것으로 착각했다.사실그 새끼는 오리가 아니라 어린 백조였다.나는 백조가 어릴때 오리와 마찬가지로 검을 털로 덮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그들이 성장한 후 털갈이하면서 순백의 깃털로 바뀐다는 것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새끼’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씌어진 모양이다.근처의 노부부가 백조 가족에게빵부스러기를 던지고 있었다.백조 부부와 어린 새끼들이 그 부스러기를 먹느라고 물살을 헤치며 다가왔다.근처의 오리떼도 노부부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때 나는 수컷처럼 보이는 백조가 광포한 소리를 지르며오리떼를 위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오리떼는 백조의위세에 눌려 감히 노부부 쪽으로 접근하지 못했다.백조 가족은 그들이 던져주는 먹거리를 한점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는 역시 허구다.나는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의 이면에 숨겨진 포악한 근성을 엿보았다. 이 사회에서도 이런 일을 자주 본다.우리는 겉으로 드러난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쉽다.겉모습에서 풍기는 인상을 통해 사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즉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젊은이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일도,사람들이 정치인에 표를 찍는 일도 모두 그 깊은 내면의 세계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외모며 말솜씨며 제스처를 통해 결정한다. 노부부는 바게트 빵이 다 없어지자 그 자리를 떠났다.백조가족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가롭게 흐르는 물살에 몸을맡기며 멀어졌다.그들이 떠난 그 자리를 다시 오리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벤치에 몸을 누이고 여행기를 읽었다.파리 근교소호공원의 오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조용한 정적으로 빠져들었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 [대한광장] 기득권이 통하지 않는 세상

    문화의 풍경은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를 직접 눈여겨볼 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그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한다.지난해부터 문화계와 지식인사회에서 ‘문화권력’이라는말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열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그동안 어떤 분야에서 뚜렷한 성취를이루었다고 평가받아온 예술인이나 학자 또는 일부 문예지가 오히려 ‘문화권력’의 주체라는 비난에 휩싸인 것이다. 40여년간 문예비평의 외길을 걸어온 학계 원로가 표절논쟁에 휘말리는가 하면,한국 시단의 대명사로 알려졌던 한저명한 시인은 죽은 후에 그 정치적 행로 때문에 거센 공격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 패권주의가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린 것도최근의 일이다.대형신문들이 언론개혁의 와중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 것도 경우는 약간 다르겠지만,그 근저에는 지금까지의 기득권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려는 요즈음의 분위기와 어느 정도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이같은 일들을 보면서 나는 이 시대가 기존의 모든 권위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변혁의 물살을타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이야말로 탈 중심,탈 권위,탈 권력의 ‘탈 증후군’을심하게 앓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여러 곳에서 비롯하겠지만,특히 젊은세대 사이에 ‘극단적 평등주의’라고 할만한 태도와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우리는 지난 한 세대에 걸쳐서 저명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행태를 무수히 목격해 왔다. 사회적 평판이 그 개인의 사람됨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상식이 되었다.많은 명사들이 때로는 권력에 아부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며,심지어는 거짓을일삼는 사례를 본다. 오죽하면 ‘장’이라는 직함을 지닌사람은 의심할 만하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나왔겠는가. 언젠가 나는 우리사회의 이러한 풍조를 빗대어 ‘사기 사회’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때 그런 표현은 너무 자기비하의 어투가 아닌가 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너무과장된 어법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말이 우리사회의한 단면을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없다. 모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 극단적 평등주의를 어떻게생각해야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환멸을 느낄 것이다. 특정한 분야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쌓아온 평판과 권위를 평등주의라는 이름 아래 깔아뭉개는 이시대의 풍조를 말세라고 개탄할 것이다. 한편 또다른 사람들은 기득권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불공정한 경쟁체제와 불평등 구조를 이번에야말로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그들은 젊은세대의 평등주의적 분위기에서 그런 개혁을 향한 가능성을 확인할 것이다. 사실 평판과 권위에도 진실이 있다.한 사람의 성실함과열정과 참다운 삶을 통해서 형성된 권위가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가식과 위선을 토대로 쌓아올린 평판과 또 그 권위에 기대어 이 경쟁적인 사회에서 무임승차하려는 태도도엿보인다. 문제는 오늘날 다수의 사람들이 뒤의 경우가 더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그들이 어떤 기득권과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도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정서가뿌리깊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분위기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이 시대의 추세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남아있는 약간의 기득권과 권위조차도 냉철하게 다시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이말을 권력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전했으면 한다. ▲ 이영석 광주대교수
  • [대한광장] 인문학의 부활은 꿈인가

    최근 어느 지방대학 당국이 지원자가 없다는 이유로 철학전공을 없애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대학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학부제 시행과 함께 대학의 구조조정을 시장 논리에 내맡기면서 인문학은 거의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느낌이다.인문학은 실용성 없는 학문이라는낙인을 찍힌 채 대학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그러나 정작 대학의 경계를 넘어서면,인문학은 이전보다도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끄는 것 같다.김용옥씨의 TV 강의는새삼 소개할 필요도 없고,참신한 주제와 새로운 문제의식을담은 평이한 인문서적들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인문학의 위기는 대학 강단을 어슬렁거리는 연구자들에게나 해당한다는 지적이 가슴을 때린다.그들이 변화하는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의 인문학이 위축됐다는 것이다. 며칠 전 나는 물리학을 전공한 어느 교수와 인문학에 관해환담을 나누었다.그는 내가 역사전공을 개설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내가 있는 학교에서는 철학이나 역사와 같은 순수한 인문학 전공이 없다.나는 십수년간 교양과정에서 서양사와 관련된 여러 교과목을 가르쳐 왔을 뿐이다. 그동안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상투적으로 이렇게 대답한다.지방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해서무엇에 쓸 것인가.실용성이 없는 학문을 어떻게 학생들에게강요할 수 있는가.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생활하는 데 직접도움이 되지 않는 그 지식체계를 어떻게 감히 배우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이런 자조적인 설명을 되풀이하며 씁쓸하게 웃곤 했다. 미국에서 벤처기업을 꾸린 적이 있는 그 교수는 나의 상투적인 대답에 벌컥 화를 냈다.그의 경험에 미뤄 심지어 컴퓨터 분야에서도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실제로 커다란 성취를 이룬 사례를 많이 보았다는 것이다.디지털 시대에 문자언어와 텍스트 대신에 영상언어와 ‘시각적인 것’의 영향력이 증대될수록,오히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정신과 그 정신에서 우러나오는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돌진하는 과학기술 문명을 보면서이를 제어할 수 있는 인문학적 사유와 성찰이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참으로 부끄러웠다.첨단학문 분야에서 일해온 중견물리학자가 인문학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순간에 나는 패배주의적인 말이나 내뱉고 또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문자언어와 텍스트를 주변으로 몰아내는 디지털 혁명에 부정적이었다.인문학의 위축도 이러한 추세와 관련된다고 생각해 왔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디지털 혁명은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세계를 보여준다.디지털 세계에서는더이상 권력의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사람들은 자유로운 주체다.거미가 자신의 방식대로 그물망을 짜듯이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창조적인 사유다.인문학의 양보할 수 없는 자긍심은 바로 이 점에서 찾아야 한다. 대학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연구자들의 무기력과 직무유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위기는 새로운기회를 낳는다고 한다.인문학연구자들이 구태의연한 태도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문학적 사유와 성찰에 매진하고 그 성찰의 결과를 좀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갈고 닦는다면,인문학의 부활은 결코 몽상이 아닐 것이다. △이영석 광주대교수
  • 영월댐 백지화 1년

    ‘도로 공사로 파헤쳐진 강변,무대책인 행정당국 등등…’ 영월댐 백지화가 발표된지 1년,강원도 정선·영월·평창을흐르는 동강이 방치된채 신음하고 있다.천혜의 자연을 보존,관광자원으로 가꾸겠다는 행정당국의 의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동강 섭새강변을 따라 하류에는 10여채의 민박과 카페 등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미처 건물을 짓지 못한 사람들은 가건물과 천막을 치고 음식을 팔며 호객행위를 하느라 분주하다. 동강 상류 정선군 광하리∼가수리를 잇는 도로는 확포장공사가 한창이다.폭 8m,길이 2.4㎞의 공사현장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강변을 파헤치고 있다.지난달 시작돼 연말까지 완공될 예정이다.환경단체는 “공사로 인해 강폭이 줄어들어 생태계를 위협한다”며 공사중단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영월댐 수몰지역주민 대책위원회 이영석(李榮錫·37) 위원장은“귤암·가수리 주민들의 유일한 도로로 영월댐 수몰예정지역으로 지정 고시된 뒤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태풍이나 상습수해로 비만 오면 주민들이 고립되는 불편을 겪어왔다”며“환경보존도좋지만 그동안 고통받아온 주민들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행정당국의 소신없는 정책도 동강훼손을 부채질 하고 있다.댐건설 백지화 발표 이후 정부와 강원도는 다양한 보존책을 내세웠으나 지금까지 실행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국의 무대책속에 영월·평창·정선군 등 3개 지역 22.7㎢가 해제되면서 민박집들이 생겨나고 있으나 법적규제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강 주변의 동굴 70여개도 도굴꾼들에 의해이미 상당부분 훼손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관련 자치단체들은 댐백지화 이후1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강 보존에 대한 탁상 논의만 하고 있다.지난달 30일 동강관리를 위해 주민자율감시단이 활동에들어간데 이어 오는 15일부터는 동강 일대가 자연휴식지로지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지역주민들과의 충분한 교감없이 진행되면서 반발을 사고 있다.동강보존본부 엄삼용(嚴三容) 사무국장은 “동강을 지키고 가꾸는 주체는 지역주민들인데도공청회 한번 없이 결정된 대책들이 얼마나 신뢰를 갖게 할지 의문”이라며“지금까지 이렇다할 대안없이 표류하는 행정으로 동강과 주민들의 고통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글·정선·영월 조한종기자 bell21@
  • [대한광장] 교육 평등주의와 독점주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교육 전문가라는 농담이 있다. 그것은 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지만,그만큼 교육 현실이 왜곡되어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어느 자리에서건 자녀교육이 화제에 오르면 저마다 문제점과병폐를 지적하는 데 열심이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교육문제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받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상문고 학생들의 집단 전학 소동과 몇몇 사립 대학재단의 전횡이 사람들의 관심을끌더니,그후에는 교실의 붕괴와 교육 이민에 관한 기획기사들이 신문 지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드디어 집권 여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사립학교 관계자들의 반대 성명과 항의가 뒤를 잇는다. 사립학교에서 불거진 여러 사건들은 우리 교육계의 병폐가단순히 교육 투자의 부족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그것은 일부 사학 경영자의 부도덕과 상류층 학부모의왜곡된 교육관, 그리고 교육당국의 근시안적인 정책이 서로맞물려 작용한 결과임을 일깨운다. 이 나라의 학교 교육은 이전의 부정적 요인들과함께 정부의 설익은 교육개혁의 부작용으로 전례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어지고,특히 사학을 비난하는 분노의 소리가 더 거세지는 것 같다.한 마디로 오늘날의 교육은 위기 국면에 놓여 있는 셈이다. 돌이켜 보면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전통적 지배세력이 몰락함으로써 사회 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 과정에서지식과 교육 정도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사회 엘리트로상승하는 데 가장 중요한 힘은 교육이었다. 이 사회에 대학진학의 열기가 특히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에 따라 중등교육도 건전한 민주시민의 양성보다는 대학 진학을 위한예비 과정으로 변했다. 그동안 이 나라의 고등교육은 고급 인력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과 교육을 향한 국민적 열망이 상호 작용함으로써 팽창을 거듭해왔다.그러나 정부는 그 증가분의 대부분을 사학에의존하면서도 국가재정 부족을 이유로 사학 지원에는 인색한 편이었다. 한편 고등교육에 대한 국민 감정은 양극화 경향을 나타낸다.서민들은 고등교육에 관한 한 기회의 평등을 강조한다. 이것은 교육 기회가 적어도 공정한 규칙과 경쟁에 토대를두고 배분되어야 한다는 감정에 토대를 둔다. 그 반면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투자와 학력의 상관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지면서 부유층의 일부는 엘리트교육을 예찬하고 부의 힘으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 교육 기회들을 독점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앞의 것은 교육 기회의 확대,고교 평준화,과외 금지,입시의 국가관리와 맥락을 같이한다.뒤의 것은 강남학군,고액과외,평준화 축소,기여입학제 등으로 나타난다.평등주의와독점주의,이 두 감정의 대립이 교육 병리현상의 심층에 자리잡은 집단 심성의 바탕이다. 전문가들은 교육의 위기에 대해 여러 처방전을 제시한다. 교육재정 확충,예산의 투명성을 전제로 한 사학 지원,교육자와 학부모의 자성,교육관료 정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다 옳은 처방전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이즈음 국가 경쟁력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평등주의적인 관행과 제도를 송두리째바꾸자는 여론이 있다.힘 있는 자 또는 자본의 논리를 대변하는 주장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지금 이 시점에서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육개혁이 평등주의적 제도에 나타난 문제점을 개선해 나간다는 원칙 아래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 [대한광장] 초여름날의 수학여행

    고단한 생활에 지쳐 있다가도 문득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을 때가 있다.장년의 나이에 이를수록 유년의 기억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그것은 메마른 일상을 적셔주는 한줄기 시원한 청량음료와 같다. 지난 겨울에 나만의 내밀한 추억을 되새기며 섬진강 상류의 옥정호 주변을 찾았다.그 호수는 내가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곳이다.지난 60년대에 궁벽한 산촌에서 학교를다닌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겠지만,그때 우리는 ‘수학여행’이란 단지 도회지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일로만 여겼다. 6학년 초에 아마 담임선생님이 처음 수학여행 이야기를 꺼내셨던 것 같다.오십명 남짓 되던 우리들 모두는 다같이 좋아서 날뛰었고,그 다음날부터 학교생활 자체가 여행계획을중심으로 짜여졌다.방과후에 뒷산에 올라 싸리나무를 베던일,그 나무들을 한데 묶어 빗자루를 만들던 일,그리고 인근면소재지의 장이 열리면 교대로 나가서 내다팔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드디어 6월 어느날 이른 아침에,우리는 그동안 모은 돈을밑천삼아수학여행을 떠났다.말이 수학여행이지 그건 하루종일 산길을 걷는 도보여행이었다. 몇 봉우리의 산을 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어쨌든 저녁무렵에 칠보 수력발전소에 이르렀으니 무척 많이 걸었던 모양이다.그 다음날 버스를 타고 넓은 호수를 구경했다.마침이전 댐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새로운 댐을 건설하고 있었다.공사감독의 배려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케이블카를 타는행운도 누렸다.원래 계획으로는 그날 버스편으로 돌아와야했다.그러나 때마침 쏟아진 장맛비로 도로가 막히면서 공사판을 떠날 수 없었다. 우리는 공사판 근처의 허름한 음식점에서 함께 기숙했다. 그렇게 사흘을 머물렀다.식사 때마다 우동과 자장면을 번갈아 시켜먹는 것이 무척 신이 나기도 했다.식사가 끝나면 빗발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널따란 방에서 끼리끼리화투를 치며 놀았다.비가 그친 후에 마을로 돌아오기는 했지만,예상치 못한 비용 때문에 우리는 얼마씩 돈을 더 거두어야 했다. 일부는 담임선생님이 부담하셨다고 들었다.이것은 가난하고 고달팠던 한 세대 전의이야기다.나는 졸업 후에 곧바로고향을 떠났으므로,그 선생님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삶이 고달플 때,또 요즘처럼 주위를 둘러보아도 답답한 일들만 가득차 있을 때,가끔 그 수학여행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는다.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눈물이 깃들어있다.눈물을 글썽이는 순간 사람은 순수해진다고 한다.그순수한 마음으로 그 시절의 교육을 생각한다.그 당시에도도회지 학교에 비해 ‘뒤처진’교육을 받았겠지만,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내게는 황금기였던 모양이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선생님을 생각한다.아무래도교육자로서 나의 자질은 그 분보다 뒤떨어지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분은 자신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무언가를 가르쳐주시지 않았나 싶다.그 시절에는 그런 분위기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가난한 농투성이 아이들에게 진솔한 사랑을 베풀어주시던 모습이 눈물과 함께 어른거리곤 한다. 하나,느리게 살아가던 학교생활과 농군 복장을 하고 틈만나면 막걸리를 마시던 선생님의 모습과 그리고 모두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 친근했던 친구들이 요즘 들어 더욱더 선연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것은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향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도대체 교육이란 무엇인가.삶 자체를 배우는 것 말고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교육의 황폐화와 교실붕괴를 개탄하는기획기사들이 신문지면에 가득한 지금 다시 한번 되묻고 싶다.도대체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영석 광주대교수
  • [대한광장] 중년, 그리고 삶의 쓸쓸함

    지난 연초에 모처럼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끔 만나는 친구들 말고도 30여 년만에 처음 보는 동창도 있었다. 주최측의 말로는,IMF 불황 이후 새로 얼굴을 내미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면,아무래도 꿈보다는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1970년대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을보면,대부분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시골에서 낯선 서울에 올라와 뿌리를 내리기까지 한눈팔지 않고 생업에 전념해온 사람들이다.크게 돈을 번 녀석도 없는 편이니,고도성장기에 그 흔한 재주도 요령도 별로 피워보지 못했나보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실직했거나 실업의 불안에 시달리는친구들의 신세타령을 여러 차례 들었다.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지만,이미 명예퇴직을 하고서 뉴질랜드며 캐나다로 이민을떠난 경우도 여럿 있었다. 그 친구들의 딱한 사정을 접하면서 나는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사실 3년 전 고용조정법이 통과된 이후,모든 매스컴에서 실업대책을 촉구하고 정부도 갖가지 방안을 마련한다고 부산하게 움직인 적이 있다.그후 정부가 IMF 불황을 벗어났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부터 실업문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어느새 사라졌다.이제 다시 경제 침체라고 아우성이다.정부는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구조조정을 채근한다.인력 감축만이만병통치약이라는 논조다. 돌이켜보면, 지난 고도성장기에 우리사회는 심각한 사회적실업을 경험한 적이 없다.실업에 대해 정부는 어떠한 정책을수립하고, 실업자와 그 주변 사람들은 또 어떻게 대응하며,나아가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런 문제들에 관해서 우리는 깊이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IMF 불황 이후 그런 기회가 찾아왔음에도 우리는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그러니 우리 나름의 절실한 교훈을 얻었을 리가 없다.지금 다시 실업이 관심사로 떠오르고있다.정부는 여전히 3년 전의 대책 발표를 되풀이한다.그러나 일자리를 떠난 사람들의 애환이나 상처를 고려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지난 20여년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던 그 중년의 친구들은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대부분 화이트칼라 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선량한 시민으로,충실한 가장과 믿음직한 동료와 성실한 조직원으로 이 사회에 기여해온 사람들이다.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직장을 떠난 것이다. 술자리에서 쓴 소리를 내뱉는 그 몇몇 친구들의 모습에는분명 삶의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믿었던 사회며 정부며 직장에 대해 어느 한순간에 밀려오는배신감으로 일종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들 개인의 상처와 정신적 박탈감은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다. 그 상처 앞에서는 어떤 정책도,어떤 통계도 공허한 수사에지나지 않는다. 이전에는 새로운 기술혁신이 일어나면 기존 노동자들의 기능을 흡수하면서도,다른 한편으로는 그 혁신의 보급 및 응용과 관련된 새로운 직종을 만들었다.혁신은 반드시 노동의 대체만을 뜻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술혁신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부문이면 어디서나 노동자들을 내쫓는다.정보화와연결된 일련의기술혁신과 정교한 소프트웨어 기술들에서 우리는 사람의 노동이 필요 없는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느낀다.이런 변화의물결에 익숙하지 못한 중년 직장인들이 구조조정의 첫 번째과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간 언론에서도 고학력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실태를 여러번 보도하면서 중산층의 몰락을 경고한 바 있다.이제 정부는 실업의 단기처방에만 급급해서는 안된다.경기 호전을 기다리고 실업통계에 집착하고 단기적인 구호대책만을 마련할것이 아니라,일할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겪는 정체성의혼란과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이해하고 쓰다듬을 것인가를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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