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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퍼블릭 뷰] 전쟁고아에서 美상원의원으로…어느 재미교포의 인생유전

    [퍼블릭 뷰] 전쟁고아에서 美상원의원으로…어느 재미교포의 인생유전

    10여년 전 독일에서 근무할 때였다. 어느 교포행사에 한 한국계 미국인이 참석했다. 이름은 신호범.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뒤 고아로 지내다가 미국 가정에 입양돼 미 정계에 우뚝 선 인생 역정을 소개했다.그는 1935년 파주에서 태어나 4살 때 고아가 되어 외삼촌댁에 얹혀 살았다. 외사촌 동생이 먹던 엿을 빼앗아 먹다가 외숙모에게 회초리로 모질게 맞고 뛰쳐나와 무작정 상경했다. 낮에 동냥으로 밥을 얻어 같은 거지 친구와 나눠 먹고 가마니 덮고 자는 삶을 반복했다. 시내를 지나는 미군 트럭을 쫓아다니며 사탕, 초콜릿 등을 주워 먹었고 학교에서 교실 안을 엿보다가 선생님들에 의해 교문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하루는 동냥을 한 후 서울역에 가 보니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단다. 거지 친구가 고달픔을 이기지 못해 달려오던 기차에 뛰어든 것이다. 눈물을 참으며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는 배신자다. 서럽고 살기 힘들다고 그렇게 가면 되냐….”# 초·중학교서 입학 거절… 검정고시로 교수까지 어느 날 시내를 지나가던 미군 트럭이 그를 번쩍 들어 태운 후 동두천의 어느 미군부대로 데려갔다.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힌 뒤 청소와 빨래, 구두닦이 등을 시켰다. 슈사인보이(shoeshine boy)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하루는 고된 생활에 지쳐 눈물을 흘렸다. 한 미군 장교가 ‘미국에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그는 유타주의 어느 치과의사 가정에 입양되었다. 14세 때였다. 양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공부를 하겠다’고 답했다. 양아버지는 나이에 맞게 중학교로 데려갔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해 거절당했다. 이번엔 초등학교로 데려갔다.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했다. 양아버지는 고민 끝에 검정고시를 준비하라고 권했다. 미친 듯이 공부했고 마침내 합격했다. 한글도 깨우쳤다. 그 후 브리검영대를 졸업한 뒤 피츠버그대에서 석사, 워싱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메릴랜드대 교수가 됐다. # 황인종이라 무시하던 유권자를 지지자로 만들다 교수로 일할 때 워싱턴주 하원의원이었던 옛 동료 교수가 지역구를 넘겨주었다.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집집마다 방문하며 지지를 호소하다가 어느 집을 노크했다. 백인 주인이 나와 ‘황인종이 왜 왔냐’며 내쫓으려 했다. 그는 오기가 생겨 따졌다. “나는 전쟁고아로 미국에 와 천신만고 끝에 대학교수가 되었다. 세금 낼 것 다 냈고, 미국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했다. 이제 남은 인생을 국가에 봉사하려고 출마했는데 어찌 이럴 수 있냐”고. 그러자 집주인의 표정이 바뀌더니 ‘돕겠다’고 했다. 그 후 열성 지지자가 되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비를 흠뻑 맞으며 피켓 들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 주었다. 선거에서 승리한 날 신 교수는 입양된 코메리칸들을 안고 엉엉 울었다. 이제 미국 주류사회의 정치인으로 우뚝 선 것이다. 나중에 그는 상원의원까지 됐다. 강연 말미에 그는 한민족의 핏줄임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달픈 삶을 산 교포들의 가슴을 울렸을 게다. # 누구든, 어느 자리든…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 후배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어느 자리든, 누구를 만나든 이렇게 자신이 노력하기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로서 더 단단한 마음과 열정을 가질 것을 권한다.
  • [월드피플+] 어릴적 헤어진 남동생, 60년 뒤 천만장자 돼 재회

    서로의 생사도 모른 채 이역만리 떨어져 살던 남매가 극적으로 만났다. 특히 놀랍게도 남동생은 세계적인 거부로 성장해 누나 앞에 당당히 나타났다.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등 현지언론은 60여년 만에 해후한 이다 와일드(83)와 아스카 파텔(78)의 영화같은 사연을 전했다. 두 남매의 얽힌 사연은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백인 여성인 와일드와 인도인 남성 파텔은 사실 친남매 사이는 아니다. 1947년 당시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파텔의 아버지가 아들을 영국으로 보냈고 와일드의 숙모가 그를 입양한 것이다. 이렇게 와일드와 파텔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한 지붕 아래에서 살게 됐다. 서로 피는 달랐지만 친남매보다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은 그러나 5년 후 이별의 순간을 맞았다. 영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파텔이 인도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에 남매는 글래스고 기차역에서 기약없는 눈물의 이별을 해야만 했다. 와일드는 "동생이 떠났을 때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었다"면서 "동생이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한동안 편지로 연락했지만 우리집이 이사가면서 이마저도 끊겼다"고 회상했다. 동생 파텔도 "연락이 끊긴 후 누나를 몇 년 동안 찾았지만 이사 후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추억 속으로만 남을 것처럼 보였지만 60여년 후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파텔이 페이스북에 게시된 한 가족 웨딩사진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는 누나를 우연히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한 두 사람은 지난 8월 60여년 만에 극적으로 해후했다.   놀라운 점은 이제는 갑부가 된 돌아온 파텔이었다. 인도에서 물류회사를 경영하는 파텔은 인도의 성공한 사업가 톱 100명 중 45위에 오를 정도의 천만장자가 됐다. 2013년 기준 그의 추정 재산만 무려 6억 1500만 달러(약 7000억원). 와일드는 "동생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면서 "60년 전 기차역에서 눈물 훔치던 그 작은 소년이 성공한 천만장자가 돼 돌아왔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마치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진 것 같아 지금도 믿지 못할 정도"라면서 "앞으로는 계속 만남을 이어가기로 했다"며 웃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괴물’이 된 거대 금붕어…캐나다 호수 생태계 위협

    ‘괴물’이 된 거대 금붕어…캐나다 호수 생태계 위협

    관상어인 금붕어가 서구 몇몇 국가에서는 생태계를 교란하는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캐나다 CBC뉴스 등 현지언론은 앨버타 주 에지워터 연못이 아시아산 금붕어에 장악돼 공무원들이 극단적인 제거 작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게는 어항에서나 키우는 작고 귀여운 금붕어가 제거 대상이 된 이유는 '괴물'이라고 불릴 만큼 몸집을 키워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물 만난' 금붕어는 특유의 번식력을 바탕으로 담수에 서식하는 조류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며 거대하게 몸집을 불린다. 여기에 외래종인 금붕어가 재래 어종과의 먹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다른 물고기의 알을 먹어치우거나 심지어 자신보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아시아산 금붕어가 캐나다 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의 강과 호수도 휘저으며 최대 40㎝까지 커진 금붕어가 잡힐 정도다. 이에 앨버타주에서는 지난 3년 간 금붕어를 제거하기 위해 물에 전기를 흘리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앨버타주 환경부 소속 리아 콩스루드는 "수천 마리에 달하는 괴물 금붕어가 주내 호수 곳곳에 산다"면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도 살아남아 마치 좀비같은 물고기"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화학약품을 연못에 뿌려 금붕어를 제거 중이며 앞으로도 '금붕어와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붕어가 이역만리 캐나다 호수에 사는 이유는 있다. 관상어로 키우던 시민들이 호수와 강 등에 무단으로 방류하면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현지언론은 "금붕어는 원래 가정집에서 주로 아이들이 애완동물로 키우던 것"이라면서 "외래종 어류를 강에 풀어주면 생태계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정숙 여사, 직접 담근 간장게장 동포들에게 대접…고국의 정 나눠

    김정숙 여사, 직접 담근 간장게장 동포들에게 대접…고국의 정 나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직접 담근 간장게장을 20일(현지시간) 뉴욕 이민 1세대 동포들에게 대접했다.김 여사는 이날 뉴욕에 있는 뉴욕한인봉사센터(KCS) 플러싱 한인경로회관을 방문해 교민식당에서 주문한 곰탕 400인분과 한국에서 직접 담가 공수한 김치, 깍두기, 그리고 간장게장 등을 동포들에게 내놨다. 김 여사가 도착해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자 동포들은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라는 말로 역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플러싱은 1960년대부터 뉴욕에 온 이민 1세대들이 모여 한인타운이 자리 잡은 곳으로 뉴욕 최대의 한인 밀집지이자 뉴욕에서도 65세 이상 어르신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는 인사말에서 “두 눈에 가득한 애틋함으로 조국이 잘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눈에 어른거려 워싱턴에서도 시니어센터를 먼저 찾고 뉴욕에서도 플러싱의 어르신부터 뵙고 싶었다”면서 “이역만리에서 근면과 성실로 살아오신 애환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세월이 변하고 한국이 변해도 조국의 안위를 걱정해주시는 어르신들의 마음은 변함없이 한결같아서 늘 고맙다”고 밝혔다.김 여사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뉴욕에 온 만큼 꼭 동포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싶었다”면서 “고국의 정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다가 따뜻한 밥 한 끼가 제일 좋을 것 같아 한국에서 김치와 게장을 담가왔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김 여사가 간장게장을 만들어 온 이유가 동포들이 외국에 살면서 가장 그리워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이면서도 현지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한인봉사센터 플러싱 한인경로회관은 평소에도 어르신들에게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취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동포 어르신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김 여사는 플러싱 한인경로회관을 운영하는 뉴욕한인봉사센터가 우리 동포들을 위한 복지서비스와 직업훈련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며 한인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간장게장 400인분이 대통령 전용기에 실린 이유

    간장게장 400인분이 대통령 전용기에 실린 이유

    제72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동행한 부인 김정숙 여사가 뉴욕 이민 1세대 동포 어르신들에게 직접 담근 간장게장과 함께 한 끼 식사를 대접했다. 김 여사는 20일(미국 동부시간) 뉴욕에 있는 뉴욕한인봉사센터(KCS) 플러싱 한인경로회관을 방문, 교민식당에서 주문한 곰탕 400인분과 한국에서 직접 담가 공수한 김치, 깍두기 등을 내놨다. 김 여사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뉴욕에 온 만큼 꼭 동포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싶었다”면서 “고국의 정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다가 따뜻한 밥 한 끼가 제일 좋을 것 같아 한국에서 김치와 게장을 담가왔다”고 말했다. 김 여사가 간장게장을 만들어 공수해 온 이유는 동포들이 외국에 살면서 가장 그리워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이면서도 현지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음식이 간장게장이기 때문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김 여사가 도착해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자 동포들은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라는 말로 역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김 여사는 인사말에서 “두 눈에 가득한 애틋함으로 조국이 잘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눈에 어른거려 워싱턴에서도 시니어센터를 먼저 찾고 뉴욕에서도 플러싱의 어르신부터 뵙고 싶었다”고 말했다.김 여사는 “이역만리에서 근면과 성실로 살아오신 애환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며 “세월이 변하고 한국이 변해도 조국의 안위를 걱정해주시는 어르신들의 마음은 변함없이 한결같아서 늘 고맙다”고 밝혔다. 전날 문 대통령이 애틀랜틱 카운슬로부터 ‘세계시민상’을 받은 얘기를 꺼낸 김 여사는 “세계가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민주주의 발전에 존경을 표한다”며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표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한국과 교민 사회의 발전을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플러싱은 1960년대부터 뉴욕에 온 이민 1세대들이 모여 한인타운이 자리 잡은 곳으로 뉴욕 최대의 한인 밀집지이자 뉴욕에서도 65세 이상 어르신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뉴욕한인봉사센터 플러싱 한인경로회관은 평소에도 어르신들에게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취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동포 어르신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김 여사는 플러싱 한인경로회관을 운영하는 뉴욕한인봉사센터가 우리 동포들을 위한 복지서비스와 직업훈련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며 한인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외에서 온 편지] 이역만리서 우리말·얼 새기는 원양어선원의 후예들

    [해외에서 온 편지] 이역만리서 우리말·얼 새기는 원양어선원의 후예들

    올해는 우리나라의 첫 번째 원양어선 지남호가 출어한 지 60년째 되는 ‘원양산업 60주년의 해’이다. 1957년 6월 29일 부산항에서 출항한 지남호가 참치 조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것을 시작으로 우리 원양어선원들은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참치, 명태, 오징어 등 값진 어획물들을 잡아 돌아와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이곳, 북위 28도 지점의 서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카나리아 군도는 과거 우리 원양어선들이 머물며 조업하던 대표적인 원양어업 거점이다.#북위28도 카나리아군도 첫 출항 60년 1966년 5월 이곳에 우리나라 국적 원양어선 ‘강화 601호’가 입항하면서 원양어업의 대서양 전진기지를 구축했다. 이후 원양어선원을 중심으로 한 한인사회가 만들어져 1970년대 말에는 이곳을 근거지로 하는 우리 원양어선이 250척, 선원을 비롯한 한인사회 동포 수가 1만 1000명에 달했다. 당시 카나리아 군도에서 조업하던 우리 원양어선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현지의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를 증명하듯 카나리아 군도의 중심 도시이자 필자가 근무하는 분관이 위치한 라스팔마스 항구 초입에는 한국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카나리아 군도의 주요 섬인 그린카나리아와 테네리페에는 한국 광장이 각각 조성돼 있다. 또 라스팔마스의 산 라사로 시립묘지에는 한국 어선원들의 유해를 모신 봉안탑과 위령탑이 따로 조성돼 있는 등 곳곳에서 우리나라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역만리 타국에 잠든 원양어선원들의 업적을 기리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양수산부는 해외 원양어선원들의 묘지를 정비·관리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유가족의 신청을 받아 묘지를 한국으로 무상 이장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올해 6월에도 라스팔마스와 테네리페에 매장돼 있던 유골 5위를 한국으로 모셔 와 유가족의 품에 안겨 드렸으며 앞으로도 사업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타국서 잠든 유해, 고국의 유가족 품으로 원양어선원의 후예인 라스팔마스에 정착한 이민 1세대들은 우리 문화와 언어를 가슴에 새기고, 현지인들과 융화하며 모범적인 한인사회를 만들어 왔다. 1974년 영사관이 설치된 이후 1976년에는 동포 자녀의 우리말 교육을 담당하는 한글 학교가 세워졌다. 이후 한인회와 어머니회가 차례로 결성돼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한국 문화 알리기와 현지 주민들과의 유대감 형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 원양어선이 카나리아 군도에 진출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라스팔마스 한국 분관에서 기념행사도 열었다. 반세기 전 우리 원양어선원들이 품었던 만선의 꿈은 오늘날 또 다른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2013년 라스팔마스 공립대학교는 스페인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세종학당을 유치해 한국어와 문화 보급에 힘쓰고 있다. 같은 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한국·스페인 해양수산협력센터를 개설해 수산양식, 해조류 연구 등 해양바이오 산업 부문 등에서 산·관·학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또 해마다 수십명의 교환학생이 한국과 카나리아를 오가며 공부하고 있고, 올해 안에 스페인 해조류은행이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만나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로 하는 등 전문가들의 인력 교환도 활발하다. #라스팔마스대학에 세종학당… 한국어 보급 특히 올해는 한국 국제교류재단의 초청으로 라스팔마스 시장이 한국을 방문해 50년이 넘는 한국사회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한다. 해양조선기자재 등 교류협력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산업 역군’인 원양어선원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에서 그들의 후손들이 한국 문화를 알리며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고 있음을 전한다.
  • 23시간 걸려 전달한 화천의 손길… 흙바닥 쪽방, 미래가 열렸다

    23시간 걸려 전달한 화천의 손길… 흙바닥 쪽방, 미래가 열렸다

    인구 2만 7000여명의 산골마을 강원 화천군이 1억여명, 80여개 부족들이 모여 사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 돕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66년 전 한국전쟁에 참전해 화천군을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당시 에티오피아군은 5차에 걸쳐 6037명이 파병돼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했다. 당시 에티오피아 최정예 황제근위병(칵뉴부대)은 253번의 전투에서 전승하며 유엔 참전국 가운데 가장 용감한 군으로 기억된다. 주로 강원 화천과 철원, 양구, 춘천 등 중부전선에서 활동하며 전과를 올렸다. 덕분에 전쟁 전 북한땅이던 화천군이 자유의 땅이 됐다. 이런 에티오피아를 잊지 못해 화천군이 어려운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9년째 보은의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열흘간 아프리카의 허브로 발돋움하는 에티오피아를 찾아 화천군 장학사업의 실태와 참전용사 후손들의 삶을 돌아봤다.“(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게) 자랑스럽습니다. 잊지 않고 멀리서 찾아줘 감사할 뿐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60㎞ 남짓 떨어진 외딴 산골 아레타 마을에서 만난 참전용사 바컬러다디(86) 할아버지는 목이 메었다. 이역만리에서 비행기로 20시간, 다시 3시간의 비포장길을 달려 찾아 준 데 대해 감격했다. 귀가 어두운 오로모족으로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를 못하는 할아버지는 2중 통역을 통해 집안을 소개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마을 어귀까지 마중 나온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동네에 모여 사는 19명의 가족들이 모두 나와 반겼다. 아름드리 유칼립투스나무 서너 그루를 기둥 삼아 나뭇가지를 엮어 두른 울타리 안에서 소와 개, 양, 닭이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흙바닥에 그릇 몇 개 갖춘 초가집 오두막으로 손을 이끈 게테케베데(70) 할머니는 장학금을 받는 손자 워르크너(14·중1)를 인사시키며 “손자를 위해 장학금을 줘 고맙다”고 감사를 표했다. 화천군은 자치단체의 작은 예산과 십시일반 후원을 모아 244명(올해 29명 추가 선발)에게 연간 8330여만원씩 지급해 오고 있다. 여기에는 화천 지역 군민 10여명의 정기 후원자와 기업, 군부대가 동참한다. 빈곤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희망의 등불이다. 참전용사 회장 멜레세(87)는 “우리는 한국을 사랑하고 슬픔도 같이하는 형제 같은 나라”라고 고마움을 표했다.아디스아바바 도심지역에서 만난 대부분의 참전용사 후손들의 삶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심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인구 밀집지역 골목마다 늘어선 2~3평 넓이의 흙바닥 쪽방에서 단출한 가재도구만 갖추고 서너 명의 가족이 함께 생활했다. 허름한 소파와 작은 텔레비전, 별도의 침실을 갖춘 집은 그나마 형편이 좋은 편이다. 참전용사 데넥에베르(85)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 손자가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 가길 희망한다”며 참전용사 훈장과 당시 사진, 각종 증명서를 내보였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카 갈립요셉(8)의 장학금을 신청한 참전용사 딸 엘리자벳리사(34)는 “장애인 아빠를 두어 생활력이 없는 조카가 장학금으로 학교에 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하소연했다. 흙바닥 단칸방에서 동생과 재봉일을 하는 어머니와 하루하루를 생활하는 루트(9·여)는 가슴 수술까지 했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화천군이 주는 장학금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단비와 같다. 많게는 에티오피아 교사 월급(12만원 정도)의 절반 수준인 6만원까지 지급되기 때문이다. 장학금은 주로 생활비 지원 형식으로 이뤄진다. 학년별·성적별로 차등을 둬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부추긴다. 초·중·고·대학생에게 월 3만~5만원씩 주며 성적에 따라 1만원씩을 더 준다. 함께한 류희상(53) 화천군 의원은 “대학생은 국내 명지대, 한림대와 협의해 1명씩 유학생을 뽑아 학자금은 대학 측에서, 생활비는 화천에서 지원해 준다”고 말했다. 명성교회가 에티오피아에서 운영하는 명성의대에 진학한 후손들에게도 장학금을 지원한다. 명성의대 4학년인 부르크(23)는 “사회에 나가서도 참전용사 후손들을 돕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급된 돈은 생활자금으로 요긴하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국공립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교육의 질이 좋은 사립학교로 옮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있어 장래 참전용사 후손들이 자립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참전용사 장학사업 지부장을 맡은 오태일(54)씨는 “참전용사 후손들의 90%가 극빈층으로 생활하는 마당에 화천군이 지급하는 생활비 지급형 장학금은 후손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자립해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후손들을 돕는 다양한 후원사업들이 있지만 화천군이 추진하는 장학사업은 시작한 지 9년이 넘어가면서 에티오피아 정부뿐 아니라 후손들 사이에서도 가장 모범적이고 장래를 밝히는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화천군은 손자들까지만 혜택을 볼 수 있는 장학제도를 정비해 후손들이 자립할 길도 열어 놓고 있다. 올해 처음 화천지역 고교생 3명과 함께 에티오피아 현지를 찾은 최수명 화천군 교육복지과장은 “위탁 운영을 하면 제대로 장학금이 전달되지 않겠다는 판단에 어려움이 있지만 직접 현지를 찾아다니며 대상자를 발굴, 지급해 오고 있다”면서 “참전용사의 후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열어 놓고 돕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아디스아바바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北도발에도 한·미 공조 굳건… 대화 통한 평화적 해결 할 것”

    “北도발에도 한·미 공조 굳건… 대화 통한 평화적 해결 할 것”

    “한·미 항구적 평화 정착 뜻 모아”… 대북정책 ‘대화 기조’ 안 변할 듯 “분단 극복하고 통일 이룩한 독일, 한반도 통일 위한 최적의 파트너” 문재인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북한이 여전히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한·미 간 공조는 아주 굳건하고 갈등 요인도 다 해소됐다”면서 “동포 여러분께서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힘을 실어 주시기 바란다. 북핵 문제와 불안에 대한 걱정도 좀 해소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취임 후 첫 다자외교 무대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한·독 정상회담 등을 위해 4박 6일간 독일 순방에 나선 문 대통령은 베를린에 도착한 뒤 첫 일정으로 마련된 동포간담회에서 ‘대화를 통한 평화’를 강조했다. 전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대해 출국 직전 ‘한·미 무력시위’로 맞불을 놨지만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되 대화에 무게를 둔 대북정책 기조는 변화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문 대통령은 미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겨우 60시간 만인 이날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발, 10여 시간의 비행 끝에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에서 “이곳 베를린도 한겨울에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많은 분이 촛불을 들어 주셨다”면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 “무엇보다 한·미 두 나라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뜻을 같이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우리의 주도적인 역할과 대화 재개에 대한 미국의 동의와 지지를 확보한 것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에게 각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역만리 독일의 뜨거운 막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병원의 고된 일을 감당하신 여러분의 헌신이야말로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진정한 애국”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파독 광부, 간호사들을 칭송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또한 6·25 전쟁 직후 한국에 파견됐던 독일 의료지원단 단원과 후손들을 따로 만났다. 독일은 1954년부터 1959년까지 117명의 의료진을 파견, 부산의 ‘서독병원’ 등에서 25만여 명의 한국 국민을 치료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가졌다. 특히 메르켈 총리와 만찬을 겸한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과 화합을 이룩한 독일이야말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최적의 협력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는 북핵·북한 문제, 특히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환경 조성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베를린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文대통령 “한반도문제, 새정부 믿고 평화적 해결에 힘 실어달라”

    文대통령 “한반도문제, 새정부 믿고 평화적 해결에 힘 실어달라”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해 저와 새 정부를 믿으시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힘을 실어주기 바란다”고 5일(이하 독일 현지시간) 말했다.독일을 공식 방문한 문 대통령은 이날 베를린 시내 하얏트호텔에서 재독 동포 200여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북한이 여전히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한·미간의 공조는 굳건하고 갈등 요인도 해소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독일방문 직전에 있던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주 미국 방문은 저의 첫 해외 순방이었는데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특히 “무엇보다도 한·미 두 나라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에 뜻을 같이했다”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주도적인 역할과 대화 재개에 대한 미국의 동의와 지지를 확보한 것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모레(7일)부터 시작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성과가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베를린을 방문한 소감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던 이곳이 평화와 통일의 상징이 됐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라며 “우리의 미래가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냉전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면서 “제 다음 누군가는 통일 한국의 대통령으로 베를린을 방문할 수 있도록 제가 초석을 닦겠다”고 다짐했다. 한·독 관계와 관련해서는 “우리의 우방인 독일과의 협력도 더 공고하게 다지겠다”며 “메르켈 총리와 일자리 문제를 비롯한 경제통상 분야, 사회·문화 전 분야에서 양국의 유대관계를 발전시켜나갈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 동포들이 참석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역만리 독일의 뜨거운 막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병원의 고된 일을 감당하신 여러분의 헌신은 대만힌국이 기억해야할 진정한 애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분의 헌신과 애국이 있었기에 조국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서 “달라진 조국,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다는 다짐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15분쯤 베를린에 도착해 4박 6일간의 독일 방문일정을 시작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 대통령, ‘참전용사 아들’ 펜스 미 부통령과 한국전 참전기념비 참배

    문 대통령, ‘참전용사 아들’ 펜스 미 부통령과 한국전 참전기념비 참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참배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19인의 참전용사 기념비 앞에 헌화했다. 문 대통령은 6·25전쟁 시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역만리에서 달려온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리며 묵념했다. 참배에 동행한 펜스 부통령의 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로 알려졌다. 미 의회에서는 피트 세션스 하원 규칙위원장과 피터 로스캄 공화당 하원의원이 참석했으며, 두 의원의 아버지도 6·25 참전용사로 알려졌다. 이 외에 토마스 스티븐스 한국전참전용사협회 회장, 윌리엄 웨버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이사장,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당시 희생된 미군 장교의 부인 마르시아 보니파스 여사, 줄리엔 바렛 여사 등이 참석했다. 한국 측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등이 함께했다. 한국전 참전기념비는 1992년 착공해 1995년 준공됐다. 착공식에는 조지 H.W.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준공식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참석했다. 건립 비용 1650만 달러는 기업과 단체, 개인 기부로 마련됐고 한국 기업의 현지 법인들도 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주요 구조물은 19인의 용사상과 벽화, 참전국가명비, 회상의 연못 등이다. 19인의 용사는 육군 1개 분대 13명과 해군 의무병, 육군 관측장교, 공군 항공통제장교, 해병대 기관총조 3명으로 구성됐다. 19인의 용사상은 화강암 재질 벽화에 반사되도록 설계됐다. 본래 용사상과 벽화에 반사된 모습을 더하면 ‘38명’이 되는데 이는 38도선과 38개월간의 전쟁 기간을 의미한다. 19인상 정면의 지면에는 ‘전혀 몰랐던 나라,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기린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참전국가명비에는 유엔(UN) 참전국 22개 국가가 영문 알파벳 순으로 새겨져 있다. 회상의 연못 둘레에는 미군 및 유엔군 희생자 수가 기록돼있으며, 우측 화강암 벽에는 6·25전쟁을 대표하는 문구인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가 새겨져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대양 누비던 원양 선원 유골 40여년 만에 고국 품 돌아와

    오대양 누비던 원양 선원 유골 40여년 만에 고국 품 돌아와

    1970~1980년 오대양을 누비다 해외에서 순직한 우리나라 원양어선 선원 5명이 40여년 만에 그리운 고국과 가족 품으로 돌아온다. 해양수산부는 스페인 라스팔마스(3기)와 테네리페(2기)에 묻혀 있던 원양어선 선원들의 유골 5구가 14일 국내로 들어와 이장된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따라 스페인과 사모아 등 7개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 선원의 묘지는 모두 296기가 남게 됐다. 1972~1980년에 사망한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바다로 나가 경제 역군으로 활약하다가 현지에서 순직한 선원들이다. 해수부는 산업화의 초석을 놓는 데 이바지한 선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02년부터 원양어선 선원 해외 묘지관리와 이장 지원사업을 추진해 왔다. 2014년부터 유가족이 원하면 유골을 국내로 무상 이장해 주고 있다. 강인구 해수부 원양산업과장은 “올해가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가 인도양에 진출한 지 60주년이 된다”며 “우리 경제 발전의 숨은 주인공인 원양어선원 알리기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제62회 현충일 추념식…문 대통령 “이념 정치, 편 가르기 정치 청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문 대통령 “이념 정치, 편 가르기 정치 청산”

    6일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추념사를 통해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애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분 한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며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뉘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저는 오늘 이곳 현충원에서 애국을 생각한다. 우리 국민의 애국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며 “식민지에서 분단과 전쟁으로, 가난과 독재와의 대결로 시련이 멈추지 않은 역사였지만 애국이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냈다. 지난 100년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여전하다. 그 부끄럽고 죄송스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다”며 “애국의 대가가 말뿐인 명예로 끝나서는 안 되고 독립운동가 한 분이라도 더, 그분의 자손들 한 분이라도 더, 독립운동의 한 장면이라도 더 찾아내겠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는 동안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찾고자 피 흘렸던 국군이 있었다. 한 구의 유골이라도 반드시 찾아내 이곳에 모셔 명예를 지켜드리겠다”며 “베트남 참전용사의 병과 휴유장애도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채로, 이제 국가가 제대로 응답할 차례이다. 합당하게 보답하고 예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저는 오늘 조국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독립과 호국의 전장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며 “뜨거운 막장에서 탄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석탄을 캔 파독광부, 병원의 온갖 궂은일까지 견뎌낸 파독간호사,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조국경제에 디딤돌을 놓았다. 그것이 애국”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드린다. 재봉틀을 돌리며 눈이 침침해지고 실밥을 뜯으며 손끝이 갈라진 그분들”이라며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그것이 애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노인이 되어 가난했던 조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분들께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의 훈장을 달아드린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의 품속에 있던 태극기가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던 수많은 능선 위에서 펄럭였고, 파독 광부·간호사를 환송하던 태극기가 5·18과 6월항쟁의 민주주의 현장을 지켰다. 서해를 지킨 용사들과 그 유가족의 마음에 새겨졌다”며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새로운 대한민국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제도상 화해를 넘어 마음으로 화해해야 한다”며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저와 정부는 애국의 역사를 존중하고 지키겠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공헌하신 분들께서 바로 그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데 앞장서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며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이념 갈등을 끝내주실 분들이고, 이 나라의 증오와 대립, 세대갈등을 끝내주실 분들도 애국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바로 여러분들”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보훈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가는 길임을 분명히 선언한다”며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회가 동의해주신다면 국가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해 위상부터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며 “애국이, 정의가, 원칙이,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예순 두 번째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거룩한 영전 앞에 깊이 고개 숙입니다. 가족을 조국의 품에 바치신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가유공자 여러분께 충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오늘 이곳 현충원에서 ‘애국’을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의 애국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식민지에서 분단과 전쟁으로, 가난과 독재와의 대결로, 시련이 멈추지 않은 역사였습니다. 애국이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냈습니다. 지나온 100년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킨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신념이었습니다. 항일의병부터 광복군까지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의 신념이 태극기에 새겨졌습니다. 살이 찢기고 손발톱이 뽑혀나가면서도 가슴에 태극기를 품고 조국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가를 키우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나라 잃은 설움을 굳건하게 살아냈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국가의 예우를 받기까지는 해방이 되고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여전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겪고 있는 가난의 서러움, 교육받지 못한 억울함, 그 부끄럽고 죄송스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애국의 대가가 말뿐인 명예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독립운동가 한 분이라도 더, 그 분의 자손들 한 분이라도 더, 독립운동의 한 장면이라도 더, 찾아내겠습니다. 기억하고 기리겠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는 동안, 목숨을 바친 조국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전선을 따라 늘어선 수백 개의 고지 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찾고자 피 흘렸던 우리 국군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짧았던 젊음이 조국의 땅을 넓혔습니다. 전선을 지킨 것은 군인만이 아니었습니다. 태극기 위에 위국헌신을 맹세하고 후방의 청년과 학생들도 나섰습니다. 주민들은 지게를 지고 탄약과 식량을 날랐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철원 ‘백마고지’, 양구 ‘단장의 능선’과 ‘피의 능선’,이름 없던 산들이 용사들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비극이 서린, 슬픈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전우를 그곳에 남기고 평생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오신 호국용사들에게 눈물의 고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백골로 묻힌 용사들의 유해, 단 한구의 유골이라도 반드시 찾아내 이곳에 모시겠습니다. 전장의 부상을 장애로 안고, 전우의 희생을 씻기지 않는 상처로 안은 채 살아가는 용사들, 그 분들이 바로 조국의 아버지들입니다. 반드시 명예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이념에 이용되지 않고 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에게 존경받도록 만들겠습니다. 그것이 응당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경제가 살아났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름에 주저 없이 응답했습니다.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이국의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생긴 병과 후유장애는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채입니다. 이제 국가가 제대로 응답할 차례입니다. 합당하게 보답하고 예우하겠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조국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독립과 호국의 전장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여러분과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1달러의 외화가 아쉬웠던 시절, 이역만리 낯선 땅 독일에서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 되어준 분들이 계셨습니다. 뜨거운 막장에서 탄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석탄을 캔 파독광부, 병원의 온갖 궂은일까지 견뎌낸 파독간호사, 그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조국경제에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에도 감사드립니다. 재봉틀을 돌리며 눈이 침침해지고, 실밥을 뜯으며 손끝이 갈라진 그 분들입니다.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 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이제는 노인이 되어 가난했던 조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 분들께 저는 오늘,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의 훈장을 달아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애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분 한분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품속에 있던 태극기가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던 수많은 능선위에서 펄럭였습니다. 파독광부·간호사를 환송하던 태극기가 5.18과 6월 항쟁의 민주주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서해 바다를 지킨 용사들과 그 유가족의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도상의 화해를 넘어서, 마음으로 화해해야 합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입니다. 저와 정부는 애국의 역사를 존중하고 지키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공헌하신 분들께서, 바로 그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통합하는데 앞장서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이념갈등을 끝내주실 분들입니다. 이 나라의 증오와 대립, 세대갈등을 끝내주실 분들도 애국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무엇보다,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보훈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가는 길임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보훈정책은 꾸준히 발전해왔습니다. 군사원호에서 예우와 보상으로,호국유공자에서 독립, 민주유공자, 공무수행 유공자까지그 영역도 확대되어 왔습니다. 국가유공자로 모시지는 못했지만 그 뜻을 함께 기려야할 군경과 공무원, 의인들을 예우하고 지원하는 제도도 마련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분들의 공적에는 많이 못 미칩니다.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가겠습니다. 국회가 동의 해준다면, 국가보훈처의 위상부터 강화하겠습니다.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습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이 애국심을 바칠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고, 원칙이 보상받고,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 나갑시다. 개인과 기업의 성공이 동시에 애국의 길이 되는 정정당당한 나라를 만들어 나갑시다. 다시 한 번 순국선열, 호국영령, 민주열사의 애국헌신을 추모하며,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6일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 영화] ‘용순’

    [새 영화] ‘용순’

    여고생 용순은 어려서 엄마를 잃었다. 3개월 시한부 불치의 병에 걸린 엄마는 옛 애인과 함께 집을 떠났다. 이후 용순은 아빠와 단 둘이 살았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해도 엄마가 늘 그리웠을 게다. 엄마를 그려 넣은 조약돌을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자라면서 가슴 속 빈자리가 커져 가는 용순이가 마음을 내주는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해 온 문희와 빡큐. 그리고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 집에 늦게 들어가볼 요량으로 들어간 육상부에서 난생처음 관심과 칭찬을 받게 된 게 계기였다. 서로 미묘한 관계에 있는 체육 선생님이 그런데, 다른 여자가 생긴 것 같다. 삼총사가 합심해 뒤를 캐보지만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체육 선생님 일 때문에 속상하기만 한데, 아빠는 딸에게 번듯한 엄마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며 몽골에서 여자를 데려왔다. 학교 대항 육상 대회가 다가오며 용순의 비뚤어짐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오는 8일 개봉하는 ‘용순’은 너무 더워 신나게 욕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리워지는, 그렇게 유난히 더웠던 한 사춘기 소녀의 여름을 섬세하게 담은 작품이다. 여느 성장 영화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전혀 자극적이지 않게 담백하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캐릭터들이 통통 튀어 영화 보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첫사랑을 지키려고 앞뒤 재지 않는 당돌한 용순에서부터 이역만리에 시집왔으나 전혀 주눅 든 모습이 없는 몽골 새엄마까지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이 능동적이라 특히 그렇다. 연기자들의 앙상블도 훌륭하다. 사춘기 열병을 크게 앓는 용순을 열연한 이수경을 비롯해 장햇살(문희), 박근록(체육 선생) 등 낯선 얼굴들은 극에 싱그러움을 불어넣고 김동영(빡큐), 최덕문(아빠), 최여진(영어 선생) 등 익숙한 얼굴들이 극에 미더움을 얹는다. 박철민, 김응수의 카메오 출연도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한다.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 작품에 익숙한 영화 관객들에게는 충청도 배경이 신선하게 다가올 듯. 충청도 자연 풍광은 푸근함 그 자체다. 신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자신의 단편 ‘용순, 열여덟 번째 여름’을 장편으로 새롭게 만든 것이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우정과 갈등을 섬세하게 풀어내 호평을 받았던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만든 영화 제작사 아토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독립영화 지원을 위한 대명컬처웨이브상을 받았다. 15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경계인’ 김정남에 대한 기억들/박홍환 정치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경계인’ 김정남에 대한 기억들/박홍환 정치부 전문기자

    이복동생의 화학 테러 살수(殺手)에 당해 이역만리 말레이시아에서 숨을 거둔 김정남 같은 ‘경계인’이 또 있을까 싶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며 애지중지했던 ‘백두혈통’의 적장자에서 한순간에 ‘곁가지’로 쫓겨난 그는 어정쩡한 이방인으로 중국 베이징과 마카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프랑스 파리 등을 오가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2000년대 말 베이징 주재 특파원들은 그의 동선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서우두(首都)공항과 베이징 시내 거처로 알려진 외곽 순이(順?) 지역 고급 빌라촌을 헤매곤 했다. 마카오 L카지노, S바에서 목격됐다며 서둘러 짐을 싸 비행기에 오르는 동료들도 많았다. 만나기만 한다면 세계적인 특종이니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베이징에 올 때마다 한 번은 묵는다는 3원교 부근 K호텔 로비에서 몇 날 며칠 첩보원처럼 잠복했던 기억도 새롭다. 2009년 2월 14일 아버지 김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이틀 앞두고 그는 마카오 인근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와 광저우(廣州)를 거쳐 서우두공항에서 VIP 통로를 이용해 평양행 고려항공에 몸을 실었다. 비공식적으로 확인된 그의 마지막 평양행은 여기까지다. 그해 4월 베이징에서 차량을 이용한 김정남 암살 음모가 있었는데 중국 당국이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화를 모면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설 같은 얘기들만 무성했다. 한국 특파원들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면서 베이징과 마카오를 오가며 생활하던 그는 그러나 일본 특파원들에게는 거침이 없었다. 3대 세습을 비판하고, 아버지의 핵정치를 힐난하는 그에게서 북한 핵심 권력의 모습은 연상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실상의 ‘1호 탈북자’라는 별칭까지 붙여 줬다. 지금 돌이켜보면 궁금했던 대목은 한둘이 아니다. 그는 왜 베이징에 올 때마다 북한 대사관 근처가 아닌 한국 대사관이 지척인 호텔에 여장을 풀곤 했을까.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엔 그토록 관대했던 그는 왜 유독 한국 특파원들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한국 교민들과 술잔을 기울이곤 했던 그는 끝끝내 속마음은 왜 풀어헤치지 않았을까. 며칠 전 실마리를 풀 수 있을 만한 얘기를 지인에게 들었다. 김정남을 두 차례 만난 적이 있다는 그는 그의 사망 소식에 “착한 사람이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자신에게 “기자들이 제발 집앞에서 기다리지 않도록 해 달라며 신신당부하기까지 했다”고 이제야 전했다. 철권통치를 휘두르는 동생 김정은의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한국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없는 경계인 김정남의 타들어 가는 속내가 느껴졌다고 했다. 베이징 K호텔 30층 객실에서 그는 먼발치 아래로 보이는 한국대사관 정문을 뚫어지게 응시했을지도 모르겠다. 호텔 로비에 앉아 있던 한국 특파원에게 살짝 윙크를 건네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김정남과 같은 북한의 경계인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도저도 아닌 자신들의 정체성을 탓하며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한민족 모두 하나가 됐던 3·1절 아침 갑자기 경계인 김정남이 생각난다. stinger@seoul.co.kr
  • “최순실, 정유라 덴마크 체류 몰랐다…딸 둔 어미 심정 어떨까”

    “최순실, 정유라 덴마크 체류 몰랐다…딸 둔 어미 심정 어떨까”

    최순실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가 딸 정유라씨와 관련한 심경을 묻자 “딸 둔 어미의 심정이 어떻겠느냐”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3일 서초동 자신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취재진과 만나 ‘최씨가 딸의 체포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 공동 변호인이 어제 알려줬다”고 답했다. 최씨는 딸의 덴마크 체류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구치소 수감 이후 정씨와 연락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초·중순 쯤 정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게 마지막이었다고 이 변호사는 전했다. ‘딸의 체포와 관련해 최씨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는 물음에 이 변호사는 “마치 동정에 호소하는 양 또 다른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어 “‘딸 둔 어미의 심정이 어떨까’라고 미뤄서 생각하라”며 최씨의 심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또 “한쪽은 한국의 차가운 감방에 있고 또 하나는 이역만리 떨어진 덴마크 어디 시골 도시에서 체포된 상황에서 어떨 것인가. 그걸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정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신주평씨가 최근 사무실로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는 등 접촉을 시도했으나 “우리하고 연락할 일이 없다. 연락하지 마라”며 거절했다고도 밝혔다. 정 씨의 아버지인 정윤회씨와도 일체 연락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서 미국 입양 가며 헤어진 개 두 마리, 감격 재회

    한국에서 미국으로 각각 입양됐던 개 두 마리가 오랜만에 재회하는 기쁨을 나눴다. 최근 데일리메일 등 해외언론은 지난해 한국땅을 떠나 이역만리 미국으로 입양 간 사모예드종인 켄지와 소피아의 사연을 전했다. 입양견이 서구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두 마리 모두 '보신탕용'으로 개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물단체 '진도러브'의 도움으로 켄지와 소피아는 미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됐지만 이쉽게도 서로 다른 주로 입양되며 생이별했다. 두 마리 개가 개농장에서 가족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관계였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 두 입양견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켄지를 입양한 보스턴에 사는 린제이 골드스테인 덕이었다. 그녀는 "켄지를 보자마자 입양을 결정했다"면서 "사람을 너무나 잘 따르는 사랑스러운 반려견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개농장에서의 기억 탓인지 다른 개들과는 어울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골드스테인은 켄지가 개농장에서 살 때 소피아와 가족처럼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두 마리의 재회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만에 만난 켄지와 소피아는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뛰어가 얼싸안으며 기쁨을 표현했다. 골드스테인은 "두 입양견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이 들었지만 그야말로 기우였다"면서 "아마도 켄지는 소피아가 너무나 그리워 다른 개들과는 어울리지 못한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2016 결산] 울고 웃은 ‘애니멀 스토리’ 톱8

    [2016 결산] 울고 웃은 ‘애니멀 스토리’ 톱8

    올 한해 당신의 눈물샘을 자극한 동물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었나? 병신년(丙申年) 한 해를 정리하며 억울하게 죽은 고릴라 하람비부터 세계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상에서 주목받은 동물 이야기 톱 8을 선정해봤다. - “구해줘서 고마워요” 사람 품에 안긴 곰 밀렵꾼에게 붙잡혀 학대를 당하고 강제로 춤을 춰야 했던 어린 곰 ‘엘비스’. 지난해 초 현지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구조됐다. 당시 생후 8주밖에 안 됐던 이 곰은 코뚜레를 한 채 나무에 묶여 있었고 이빨은 전부 빠져 있었다. 이후 엘비스는 구조 시설에 머물며 상처받은 심신을 치유했다. 엘비스는 많은 사람의 세심한 노력 덕분에 활기를 되찾았고 붙임성도 좋아져 사육사를 비롯한 직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세상 떠난 주인 찾아 매일 병원 헤매는 견공 아르헨티나 지방 리오콰르토에 있는 산안토니오병원에 가면 언제나 만나볼 수 있는 얼룩개 ‘피라타’. 이 견공이 병원을 찾기 시작한 건 주인이 입원한 지난해 11월. 심장질환으로 입원한 주인은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하지만 주인과 함께 병원에 왔던 이 견공은 주인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매일 병원을 찾아 주인이 입원해 있던 병실 주변을 서성인다. 원칙적으로 병원에는 동물이 들어갈 수 없지만, 안타까운 사정을 아는 직원들은 피라타를 쫓아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기후변화의 비극’ 새끼 잡아먹는 북극곰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지난 2월 수컷 북극곰 한 마리가 도망치는 새끼 북극곰을 끝까지 쫓아가 잡은 뒤 결국 이를 잡아먹는 모습이 담긴 충격적 영상을 공개했다. 당시 암컷 북극곰이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애썼지만 힘이 센 수컷을 막을 수 없었다. 영상은 지난해 여름과 가을 사이 캐나다 배핀섬에서 촬영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당시 극심한 먹이 고갈 때문에 발생한 사건으로 분석했다. 캐나다 알베르타대학 생물학자 이안 스터링은 “지난해 늦여름 당시 해당 지역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얼음의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주로 얼음 위에서 생활하는 바다표범의 개체수가 크게 줄었었다”면서 “북극곰이 잡아먹을 바다표범이 없어지자 굶주린 나머지 새끼를 잡아먹는 비극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구해준 환경운동가를 20년간 기억하는 침팬지들 미국의 환경운동가 겸 동물행동학자인 린다 쾨브너. 25년간 실험실 침팬지를 구조하고 이들에게 야생 적응법을 가르쳤다. 1995년 비영리 침팬지 보호시설을 설립한 뒤 계속해서 구조 활동을 벌여온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처음 구했던 침팬지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 거의 20년 만에 침팬지들이 사는 서식지를 방문했다. 그 모습은 카메라에 담겨 미국 PBS 다큐멘터리 ‘위스덤 오브 더 와일드’(The Wisdom of the Wild)를 통해 방영됐다. 영상에는 쾨브너에게 암컷 한 마리가 다가오는 모습이 담겼다. 그녀는 “날 기억하니?”라고 묻자 ‘스윙’이라는 이름의 이 침팬지는 환하게 웃으며 쾨브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 역시 침팬지의 손을 잡고 포옹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이때 ‘돌’이라는 이름의 다른 침팬지 한 마리도 달려와 재회에 참여한다. 쾨브너는 자신을 부드럽게 안아주는 침팬지들의 모습에 눈물을 글썽였다. - 쓸데없는 도움에 안락사 된 아기사슴 지난 7월 미국 콜로라도주(州) 라플라타 산맥을 찾은 관광객 2명이 멀쩡히 잘 뛰노는 아기 사슴을 도와주겠다며 쓸데없이 구해줬다가 결국 안락사시키는 상황에 이르게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들은 아기사슴이 어미로부터 버려졌다고 착각하고 자신들의 차에 태워 약 48㎞ 떨어진 소도시 듀랑고의 동물보호소로 데려갔다. 하지만 그곳은 야생동물을 치료하거나 보호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직원은 자연생태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을 취한 뒤 결국 ‘가장 온정적인 방법’인 안락사를 결정하게 됐다. - 억울하게 죽은 고릴라 하람비 지난 5월 미국 신시내티주 동물원에서 우리로 떨어진 4살 소년 탓에 억울하게 죽은 고릴라 하람비.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위험동물 대응팀은 마취제를 쏘면 오히려 고릴라가 흥분해 아이가 위험할 수 있어 하람비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당시 하람비는 우리에 떨어진 아이를 10분 가량 끌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상황이 실제로 위험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해석이 분분하다. 특히나 당시 촬영된 관람객들의 영상이 공개되면서 하람비가 사람들 탓에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는 의견이 퍼지면서 급속히 추모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다. 한 목격자는 “당시 관람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충격에 빠져있었는데 오히려 고릴라는 아이를 보호해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영상을 본 한 영장류 학자 역시 “고릴라는 작은 생명체를 보호하려 할 때 이런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며 거들고 나서기도 했다. - 네 다리 잘린 ‘한국 유기견’, 미국 입양돼 행복찾다 올해 초 국내 한 지방 도시의 길거리에서 검은 봉투에 유기된 채 발견된 골든래트리버 믹스견 ‘치치’. 주인에게 학대받은 듯 네 다리가 단단히 묶여 힘줄과 뼈가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던 이 견공은 네 다리를 모두 절단하는 큰 수술을 받고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치치는 미국 LA의 한 동물단체의 주선으로 이역만리 떨어진 리처드와 엘리자베스 하웰 가족에게 입양됐다. 지난달에는 외신을 통해 치치의 근황이 공개됐다. 치치는 매일 이들 가족의 정성 어린 보살핌 속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입양 전 한국에서 달고 간 의족이 정확히 맞지 않아 발에 상처가 생기면서 맞춤 의족도 제작해 착용했다. 이제는 상처 없이 다른 개들과 어울리며 뛰어놀 수 있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 쇼핑센터에 살던 ‘세계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 열악한 환경의 중국 수족관에서 사육되던 북극곰 ‘피자’. 세계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으로 알려진 이 동물은 쇼핑객들에게 과도하게 노출된 환경 탓에 동물 학대 논란이 있었다. 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한데다 관람객들이 끊임없는 소음과 사진 촬영 플래시 등에 지친 북극곰 ‘피자’가 힘없이 앉아있거나 벽에 머리를 박는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북극곰 구조 서명 운동’이 진행되기도 했다. 소식이 알려진 뒤 영국의 한 야생공원이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비용 등을 문제로 쇼핑몰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허사로 돌아갔다. 이후 비난이 끊이지 않자 쇼핑몰 측은 개선을 위해 북극곰을 잠시 중국 남부의 해양공원으로 옮기고 공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사를 마친 뒤에는 북극곰을 다시 데려오는 것으로 알려져 또 한 번의 논란이 예상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네 다리 잘린 ‘한국 유기견’, 미국 입양돼 행복찾다

    해외언론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보도돼 화제가 된 유기견 치치의 근황이 영국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최근 데일리메일은 네다리가 모두 잘린 치치가 미국 애리조나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새로운 '견생'을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기견 치치에 얽힌 사연은 지난 3월 미국 ABC뉴스 등 현지 보도를 통해 국내 언론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골든리트리버 믹스견인 치치는 올해 초 국내 한 지방 도시의 길거리에서 검은 봉투에 유기된 채 발견됐다. 문제는 주인에게 학대받은 듯 네 다리가 단단히 묶여 힘줄과 뼈가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는 점. 이에 치치는 동물병원에 보내졌고 수의사는 목숨을 살리기 위해 네 다리를 모두 절단하는 큰 수술을 했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치치는 힘겨운 재활 훈련과 의족도 갖게 됐다. 이 모든 과정에 팔소매를 걷어부친 것은 동물보호단체인 '나비야 사랑해'와 서울 청담동 이리온 동물병원. 이후 치치는 미국 LA의 동물단체인 ARME의 주선으로 이역만리 떨어진 리처드와 엘리자베스 하웰 가족에게 입양됐다.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더 좋은 여건을 가진 미국에서 새로운 견생을 누릴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치치의 사연을 처음 페이스북으로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당시 이미 세 마리의 유기견을 입양한 상태여서 여유가 없었지만 치치의 상황을 알고는 마음을 바꿨다"고 밝혔다. 이렇게 입양된 치치를 가족은 매일 보살펴야 했다. 특히 매일매일 새 붕대로 다리를 감싸주는 것은 꼭 필요한 일과. 엘리자베스는 "한국에서 달고 온 의족이 정확히 맞지 않아 발에 상처가 생겼다"면서 "치치가 걷고 뛰기 위해서는 맞춤형 의족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에 가족은 사람의 의족을 만드는 전문가와 상담한 끝에 지난 9월 치치에게 맞는 의족을 제작했다. 우리 돈으로 약 400만원 정도의 가격이지만 이 또한 기부로 해결했다. 엘리자베스는 "지금 치치는 다른 개들과 어울려 뛰어놀 정도로 하루하루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이후 정식 치료견(Therapy dog)으로 키워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서울포토] 아크부대 장병들의 윷놀이 “도개걸윷모~”

    [서울포토] 아크부대 장병들의 윷놀이 “도개걸윷모~”

    해외 파병부대 장병들도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합동 차례와 전통 민속놀이를 하며 이역만리에서 조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15일 합동참모본부는 추석을 맞아 해외에서 평화와 안정·재건 임무를 수행 중인 파병부대 장병들의 추석 맞이 모습을 소개했다. 사진은 아랍에미리트에서 국방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아크부대 11진 장병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외 순직’ 원양어선 선원 묘지 15기 국내로 온다

    해외에서 순직한 원양어선 선원들의 묘지 15기가 국내로 이장된다. 경제가 어렵던 시기 이역만리 바다로 나가 경제 역군으로 활약, 산업화에 이바지한 원양선원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해양수산부는 29일 유가족의 희망에 따라 스페인에서 10기, 아메리칸사모아에서 3기, 타히티와 수리남에서 각각 1기 등 총 15기가 국내로 이장된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2005년부터 원양선원 해외 묘지 관리와 이장 지원사업을 해 왔다. 2013년 7월 원양산업법에서 이장에 대한 법적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까지 진척을 보지 못하다 2014년 1기 등 지금까지 5기(개인 이장 5기 미포함)가 스페인에서 돌아왔다. 해외 묘지 관리와 이장사업은 한국원양산업협회(02-589-1619)가 해수부로부터 위탁받아 무상 지원한다. 현재 스페인 등 7개국에 우리 선원 묘지 317기가 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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