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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일상속에서 발견하는 자연 ‘민화’ “어머니,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아들 율곡이 숨가쁘게 달려옵니다. 풀밭에서 산 채로 잡아온 방아깨비를 어머니에게 보여줍니다. 신사임당은 방아깨비의 뒷다리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뒤 놓아줍니다.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는 소박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맛이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스러운 눈길이 묻어나오기 때문이지요. 신사임당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림은 단순히 손재주만으로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뒤 그릴 대상을 꼼꼼이 관찰해야 한다. 실체를 파악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는 그림이 나올 뿐이다.” 그래서인지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를 보고 닭이 와서 쪼아댔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현대판 신사임당’들이 민화를 그리고 있는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지난 7일 강동구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2층의 ‘민화방(民房)’.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민화에 푹 빠진 20여명이 몰려든다. 민화방은 고덕2동 동사무소에서 운영하지만 절반 정도는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온다. 민화방을 이끄는 한국민화작가회 회장 안종혁씨의 개인전 등을 접하고 찾아오는 이들이다. ●취미로 시작… 국내외서 전시회 열어 이날은 민화 경력 19년차인 ‘왕 언니’ 이정순(60)씨가 분위기를 한껏 띄우면서 시작됐다. 전날 저녁 제사 상에 올렸던 인절미를 가져온 것. 대개 이른 시간 집을 나서며 아침을 먹고 오지 않은 터라 인절미에 손이 갔다. 커피를 곁들이면서 이씨는 민화의 매력에 대해 말했다. “민화는 서민들의 생활이 녹아든 과거의 민중 예술이었습니다. 궁중 화원이든, 떠돌이 작가든, 여인네든 민화를 그렸지요. 근대화 과정에서 민화는 무명작가들의 그림이라는 이유로 훼손당했지만 최근 회복되고 있지요.” 중학교 과학교사였던 이씨는 취미삼아 민화를 배웠다가 은퇴한 지금까지도 민화에 빠져 있다. 실력 또한 전문가 수준이다. 지난해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십장생도’ 등의 전시회를 열었으며, 강원 영월의 ‘난고 김삿갓 축제’의 민화 공모전에도 입상하기도 했다. ●일산서 왕복 4시간 걸려 오가기도 민화방의 ‘최고참’ 민춘례(73) 할머니도 거든다. “노인들이 시간을 보낼 게 마땅치 않잖아요. 집에서 잠이 안 오면 민화를 그리면서 잡념을 떨치고 집중할 수 있지요. 수다만 떠는 것은 싫어요. 틈만 나면 이렇게 붙잡고 있답니다.” 이런 열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민 할머니는 민화방이 열리는 매주 화요일이면 꼬박 2시간 동안 서울을 가로지르는 ‘대각선 행진’을 한다. 집이 일산에 있는 탓이다.“민화방까지 오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민 할머니는 “예전에는 관절이 좋지 않아 오래 걷는 게 힘들 정도였지만 이렇게 움직이니까 힘이 난다.”라고 대답했다. 원래 서예와 사군자를 시작한 민 할머니는 서예전에 갔다가 우연히 안종혁 회장의 작품을 접하고 민화방에 오게 됐다. 회원들은 어느새 자리로 가서 제각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각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어서 꽃들을 그린 화훼도(花卉圖), 풀과 곤충이 담긴 초충도(草蟲圖), 꽃과 새를 화조도(花鳥圖),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있는 책걸이(冊架)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가운데 민화방의 ‘청일점’ 박민수(52·남)씨가 단연 눈에 띄었다. 평일 오전 민화방에 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현직 경찰인 박씨는 3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아닐 때 짬을 내서 참석한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주 밑그림을 그린 산수화를 채색하다가 “근무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일찌감치 나서야 한다.”면서 서둘러 민화를 그렸다. ●세월 흐를수록 자연스러운 색감 민화방의 신혜영(50)씨는 지난달 뉴질랜드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지 예술협회와 한국총영사관 등의 후원을 받아 오클랜드 대학 초청으로 신씨의 작품이 이역만리까지 가게 됐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신씨는 미술학도답게 민화의 성격을 분석했다. “민화는 실용예술로 분류되지요. 옛 조상들의 일상 생활의 일부였지요. 방안의 족자, 소반, 병풍 등에 모두 민화가 담겨 있었고, 여인네들이 애장하던 물품이었지요. 민화를 두고 회화인지 아닌지 논쟁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민화가 우리 삶을 다루는 친근한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우영숙(42)씨는 민화의 색감에 대한 예찬론을 폈다. “한지에서 물감이 피어나듯 우러나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맛이 더해지지요. 민화는 돌가루·흙을 염색한 분말을 아교에 개어서 쓰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색감이 아름답게 배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씨는 민화의 이런 매력에 빠져 올해 명지대 전통공예학과 대학원으로 입학하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김숙(49)씨는 신사임당이 즐겨 그린 ‘초화도’만 고집한다. 강아지풀에 오이 줄기가 얽혀 오이가 열려 있는 모습, 달개비꽃과 양귀비꽃 앞에 여치가 뛰어노는 모습, 개구리와 무당벌레가 연못가에서 노는 모습 등 온통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10개월 된 늦둥이를 포대기에 업고 그림을 그린 ‘신입생’ 김정현(40)씨는 오늘 처음 왔다. 신씨는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그리는 ‘까치 호랑이’ 민화에 정성스레 붓질하면서 “다음 민화방 마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안종혁 회장이 말하는 민화 고덕2동 ‘민화방’을 이끌고 있는 안종혁 회장에게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치 대중가요처럼 남을 의식하면 망설여지지만 여흥을 내는 분위기에서는 저명 인사도 대중 가요 한두곡을 불러야 속이 풀리고 일체감을 느끼는 것과도 같지요. 민화야말로 제대로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화는 궁중민화와 민중민화로 나누어지지만, 이런 점에서는 민화의 본질은 민중민화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민화가 민중에 가까워서인지 때로는 민화의 격을 낮춰 보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훈훈한 인정이 넘치며 재주와 기교를 자랑하지 않았고, 그림의 구도·기법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상식과 상상을 뛰어 넘는 파격적이고 해학적인 멋스러움이 배어나온다는 점은 민화만이 갖는 매력입니다.” 민화가 서민들의 소망이 녹아나는 매체라는 점도 독특한 매력 중의 하나이다. “민화에는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감성이 얽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순수하고 소박한 소망을 담아 장수, 부귀, 다남, 화합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고, 이를 곁에 두고 신앙처럼 기원하면서 살았지요. 기복 신앙에서 출발했다고 해야겠지요.” 민화의 소재는 화조(花鳥), 산수(山水), 동물, 인물, 책거리(冊架), 문자 등 다양한데, 각 소재마다 저마다 상징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물고기-다산(多産) ▲호랑이-잡귀를 막아주는 수호신 ▲모란꽃-부귀 ▲연꽃-군자(君子) ▲짝을 이룬 새·동물-부부간의 금실 등이다. 우리 조상들은 딸을 결혼시킬 때 물고기·새·동물 등이 들어간 민화를 혼수품으로 딸려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민화는 고구려 벽화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다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그려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춤하다 1970년대 전후로 다시 조명받기 시작해 1990년대 들어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가장 한국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시대에 걸맞은 창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전승을 위한 재현 작업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대들이 자랑할 수 있는 21세기 문화재를 창출해 나가야 하지요. 세계로 펼쳐가는 한류 열풍에 민화가 단단히 한몫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덕2동의 민화방은 그 밑거름이 될 것이고요.”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데스크시각] 응코시스 시콜레 아프리카!/임병선 국제부 차장

    제78회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이 열린 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 극장에 낯선 언어 “응코시스 시콜레 아프리카!”가 울려 퍼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초치’의 개빈 후드(42) 감독이 트로피를 든 채 외친 소리였다. 어쩌면 후드는 백인과 영어의 독무대가 되어온 오스카 잔칫상에 으레 등장하던 수상 소감 ‘갓 블레스(God bless)’를 대신하는 아프리카의 자존심을 외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신이여, 아프리카를 돌보소서!”라고 외쳤지만 신이 그 소리를 들었는지, 요즈음 세계 각국은 검은 대륙에 애정 공세를 펴느라 여념이 없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4일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한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서남아프리카 앙골라의 대서양 연안 벵구엘라와 내륙의 광산을 잇는 철도 건설현장에 나타난 ‘친절한 나라’는 과거 포르투갈이나 영국 식민주의자들보다 더 도움이 되고 덜 까다로운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 5억달러(약 5000억원)이나 되는 공사비를 기꺼이 댈 뿐만 아니라 이역만리에서 온 이 나라 노동자들은 낡은 천막에서 먹고 자며 현지인들과 뒹군다. 다름 아닌 중국이다. 중국이 앙골라 기반시설 건설에 제공한 차관은 20억달러(약 2조원)에 이른다. 이 차관은 2개 철도 노선과 정부 건물들, 수도 루안다의 신공항 건설에 투자되고 있다. 중국이 앙골라에 매혹된 이유는 석유와 전략적 광물이다. 중국 국영기업 시노펙사는 지난해 앙골라가 프랑스 정유사 토탈의 채굴권 계약 갱신을 거부했을 때 이를 가로챘다. G8(선진 7개국+러시아)이 최빈국 부채 400억달러(약 40조원)의 탕감을 약속하기 1년 전에 이미 아프리카 국가의 빚 13억달러(약 1조 3000억원)를 털어버린 감각이 눈부실 정도다. 중국이 급성장하는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아프리카 자원에 눈을 돌린 것은 역사가 꽤 됐다.1991년 첸지천(錢其琛) 외교부장의 순방 이후 지금껏 외교부장들은 매년 첫 방문지로 이 대륙을 선택해왔다. 이런 노력은 과거 식민주의의 모델인 영국을 제치고 대륙 전체에서 미국과 프랑스 다음의 교역 상대국으로 중국을 떠오르게 했다. 중국은 앙골라 말고도 나이지리아, 수단, 콩고, 알제리 등에 손을 뻗치고 있다. 짐바브웨 무가베 대통령의 저택을 900만달러(약 90억원)나 들여 직접 지어주고 이권을 챙길 정도로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실천하고 있다. 일본이 1980년대 동남아시아에서 펼쳤던 민심 얻기 전략을 베낀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와 민간의 빈틈없는 공조는 2004년 지진해일(쓰나미) 발생 사나흘만에 수천개의 시신 봉투를 적재한 일본 함정이 태국 해변에 등장하게 했다. 6일 노무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첫 기착지인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교포간담회에서도 이 지역과 중동에서의 중국 드라이브가 화제가 됐다고 한다. 지난달 정부는 이번 순방에서는 에너지 외교에 비중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일본과 중국이 10여년 기울인 노력을 이른 시간에 따라잡을 수 있을지, 또 그만한 여력과 집중력, 민간과의 유기적 네트워크가 있는지 의문이다. 하기야 지청구 늘어놓을 자격은 기자부터 없다.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 접근 방법을 제때 알리지 못한 책임 때문이다. 검은 대륙의 약동을 세밀히 감지해내지 못하고 수십년 되풀이되는 얘기로 평가절하한 결과가 쌓이고 쌓여 중국에마저 추월당하는지 모를 일이다. 영화 ‘초치’는 요하네스버그의 흑인 거주지 소웨토의 19세 갱 단원 초치가 한 여인을 총으로 쏴죽인 뒤 훔친 차 뒷좌석에서 아기를 발견, 부모를 찾아주고 새 삶을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후드 감독이 설파했듯이 영화는 “에이즈, 범죄, 기아 등으로 허덕이는 아프리카가 지금 희망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그 길을 앞당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당장의 에너지, 자원보다 더 멀리, 더 근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뒤처졌다고 무리수를 뒀다가는 정말 큰 망신을 살 수 있다. 임병선 국제부 차장 bsnim@seoul.co.kr
  • [시론] ‘사학법 반대’ 현실 너무 모른다/강명구 아주대 행정학 교수

    [시론] ‘사학법 반대’ 현실 너무 모른다/강명구 아주대 행정학 교수

    2005년 말의 광풍에서 벗어나 이제 차가운 이성의 새해를 맞았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는 아직도 바람 매서운 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개정 사학법을 어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교훈이다. 개정 사학법에 대한 찬반과 시시비비는 익히 알려져 있다. 이제 그 시비곡직을 정파적 분석에서 한발 물러나 상식과 지혜의 관점에서 헤아림이 옳다. 연전에 읽은 미국 경제학자 허쉬만의지혜(번역본 제목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를 빌려 우리 교육 모순의 한 표상인 기러기 아빠 문제를 살펴보자. 차분하게 기러기 아빠의 행로를 추적하다 보면 사학법이 가야 할 길이 더 잘 보일 수도 있다. 조직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제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원상회복시킬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조직에 남아서 개혁을 위해 싸우거나 아니면 조직을 떠남으로써 경고음을 발하는 것이다. 전자는 항의방식이고 후자는 이탈 방식이다. 조직마다 성격과 목표가 다른 연유로 정치·사회적 성격의 조직에서는 주로 항의방식이, 경제적 성격의 조직에서는 주로 이탈방식이 주요한 원상회복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물론 항의도 못하고 이탈도 못하면 자정능력을 잃어 조직은 사멸한다. 만일 한 단계 분석수준을 높여 어느 조직에서 이탈과 항의 두 방식을 동시적으로 작동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문제점 많은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교육소비자에게 비싸지만 보다 나은 사립학교로의 이탈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럴 경우 허쉬만의 분석에 따르자면 공립학교는 사립학교와의 경쟁을 통해 스스로 개혁의 길을 택하기보다는 퇴보의 나락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정부 보조에 기대는 안이함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주된 개혁세력들이 사립학교로 이탈해 가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라는 선택이 없었다면 끝까지 남아서 가장 드높게 개혁의 목소리를 외칠 학부모들이 가장 먼저 공립학교를 떠나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구미 각국에 비하여 사립학교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기러기 아빠는 한국 공교육 문제점에 대한 이탈의 대표적 결과다. 십여년 전만 하여도 흔치 않았던 일이 이제는 계층을 뛰어넘는 일상 풍경이 되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러기 아빠들은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아이들을 비싼 돈 들여 이역만리 타국에 보내놓고 스스로 자초한 외로움을 한 잔 술로 달래는가? 통계치는 없지만 추론은 가능하다. 소수는 이른바 글로벌 엘리트(global elite)에 대한 확신 때문이겠지만 다수는 우리네 공교육에 대한 불만 때문일 것이다. 인성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면서 과외다, 학원이다 하여 돈은 돈대로 들이고 애는 애대로 잡느니 차라리 조기유학이 돈도 덜 들고 마음도 더 편하다는 계산이다. 이러다 보니 조기유학의 행렬이 불어나는 것이다. 그외 다수의 기러기 아빠들은 아이를 보내지 않았으면 남아서 가장 열심히 교육의 방향을 잡아줄 여론 주도층이다. 이런 계층이 이탈방식을 택하니 교육의 문제점을 스스로 치유할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남은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져 이탈 행렬의 끄트머리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닐까?피폐해가는 우리네 농촌모습의 판박이다. 평소 여당이 못마땅한 점이 많지만 여당의 개정사학법을 변호하는 연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투명성 제고와 견제·균형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개정 사학법은 떠나지 않고 남아서 바꿀 수 있는 첫 단추를 꿰어주었기 때문이다. 국가정체성 위기를 들어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박근혜 대표의 논리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다. 강명구 아주대 행정학 교수
  • [열린세상] 한국민과 일본국민이 만나야 할 지점/이덕일 역사평론가

    고이즈미 정권의 3차 내각에 문제성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논란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과 “군대위안부에 강제성은 없었다.”는 망언의 주인공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이 그런 인물들이다. 아베 신조는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33%, 마이니치신문의 여론 조사에서도 28%를 획득해 21%에 그친 고이즈미 총리까지 따돌릴 정도로 일본 국민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만주국 상공대신을 지내다가 종전 후 A급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기사회생해 총리가 된 인물이고,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도 총리직까지 거의 다가갔다가 1991년 췌장암으로 사망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소 다로 외상의 조부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는 1954년 총리 재직시 “다행히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덕을 봤다.”는 망언의 주인공이다. 이처럼 현재 활약 중인 일본 극우 세력들은 과거 일본의 해외침략에 일조했거나 그에 동조했던 선조들의 후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들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도구로 자주 이용하는데, 정작 피폭자 중 약 10%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데서 그런 인식의 자의성은 쉽게 드러난다. 히로시마의 피폭사망자 중에는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의 둘째아들인 이우 공(公)까지 있었다. 일본 국민들의 이런 이중적 역사 인식은 과거의 군국주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946년 1월1일 일왕의 ‘신일본 건설에 대한 조서’, 즉 이른바 일왕의 ‘인간선언’은 ‘신적 권위를 버리고 민주주의 사회·국가의 일원으로 국민과 함께 존재한다.’는 선언이지만 이는 사실상 동아시아와 태평양 일대를 전쟁으로 몰아간 최고 전범에 대한 면죄부였다. 아베 신조의 높은 인기의 배경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처리문제에서 강경론을 펼쳤기 때문이다. 자국민이 납치된 비문명적 야만행위에 대한 그의 분노는 이해할 만하지만 그 분노는 일본의 과거 행위에 대한 반성의 토대 위에 서 있을 때만 동아시아 국민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보통 국민들이 생각해야 할 점은 그 자신들도 과거 군국주의 세력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이다.1940년 12월∼1945년 8월에 이르는 태평양전쟁 동안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도 큰 고통을 받았지만 평범한 일본 국민들도 큰 상처를 입었다.‘태평양전쟁 동안 아국(我國:일본)의 피해종합보고서(太平洋戰爭我國被害總合報告書)’에 따르면 일본 육군은 114만여명이 전사했으며, 해군은 41만여명, 군인군속은 155만여명, 일반국민은 185만여명이 전사했다. 도합 495만여명이니 대단한 피해가 아닐 수 없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수많은 사람들이 점령당한 아시아인들의 저주 속에서 죽어갔다는 점이다. 오늘날 일본의 평범한 국민들이 생각해야 할 점은 왜 자신의 부친과 오빠, 형들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저주 속에 죽어가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을 전쟁의 광기로 내몬 일본 군국주의 세력에 그 모든 책임이 있다. 곧 일본의 군국주의는 아시아의 모든 시민들과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싸워야 할 공동의 적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건강한 시민과 일본의 보통 시민들이 만나는 것, 이것이 현재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우려스러운 진로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일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서재응·김병현·최희섭 키운 광주일고 허세환 감독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서재응·김병현·최희섭 키운 광주일고 허세환 감독

    ‘꿈의 무대’라고 했다. 처음엔 영화나 소설속에서나 접했다. 그래서 먼 나라, 남의 나라 얘기였다.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와도 무척 가깝다. 내로라하는 세계 톱스타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 야구, 언제부터인가 한국 선수들이 야금야금 접수했다.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김선우(콜로라도 로키스)…. 이른바 ‘한국인 빅리거’들이다. ●세명이 50회 청룡기 우승 일궈 잠깐, 여기에서 꼭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미국에 진출한 ‘빅리거 5명’ 중 3명이 같은 고교 출신이라는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같은 고교 출신 3명이 동시에 활약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 흔치 않은 일이다. 주인공은 서재응을 비롯해 김병현 최희섭 모두 광주일고 출신이다. 흥미로운 것은 1995년 6월 제50회 청룡기대회 결승에서 한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일궜다는 점이다. 이때 3학년 서재응은 3루에서,2학년 김병현은 투수로,1학년 최희섭은 1루를 굳건히 지키며 금자탑을 세웠다. 이쯤되면 영화 소재거리가 아닌가. 또 있다. 이들을 키워낸 의지의 한국인 허세환(45) 광주일고 야구감독이다.‘한국인 빅리거의 스승’이라는 찬사가 늘 뒤따른다. 아울러 세 선수 모두가 허 감독의 뛰어난 안목과 지도력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시 북구 누문동 광주일고 운동장.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들이 허 감독의 지시 아래 열심히 연습 중이었다. 수비 위주의 기본기 훈련이었다. 잠시 후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이때였다. 약속이나 한 듯이 선수들은 축구 대형을 갖춘다. 아니 야구선수들이 축구를? 이유를 물었더니 허 감독은 “순발력 향상에는 축구가 더없이 좋다.”면서 다들 축구실력도 훌륭하다고 웃는다. 서재응이나 김병현도 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썩 잘했으며, 최희섭은 농구를 무척 좋아했다고 귀띔했다. 점입가경이다. 이어 허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봐 기다리면 공이 오나. 뛰어, 그래 슛이야 슛!”을 연발했다. 도대체 야구감독인지 축구감독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빅리거를 키워낸 비결이 무엇이냐고 했다. 지체없이 “야구나 모든 스포츠는 기본이 가장 으뜸이 아니냐.”면서 “선수들에게 항상 열심히 하라, 최선을 다하라, 스스로 인성을 길러라.”는 말을 늘 강조한다고 했다. 즉 기본기 체력 인성 등 세 가지를 갖춰야 앞으로 경쟁에서 이겨나갈 수 있다는 정신자세를 심어주는 것이 감독이 할 일이라고 했다. 다행히 선수들도 자율적으로 알아서 열심히 따라준다고 했다.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선배를 본받으려고 한단다. 미국에 진출한 빅리거 트리오도 똑같이 그런 과정과 환경 속에서 스스로 성장을 잘 해줬다고 대견스러워했다. ●TV중계 반드시 챙겨 가족들에 소감전해 허 감독은 이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TV중계를 반드시 본다고 했다. 시합이 끝나면 광주에 사는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소감을 전해준다. 요즘에는 셋 다 경기내용이 좋아 칭찬하기에 바쁘다고 했다. 허 감독은 빅리거 트리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서재응(28·뉴욕 메츠):낙천적이며 아주 외향적인 성격이다. 노래도 잘 부른다. 이역만리 타향에서도 향수병 없이 잘 견디고 있다. 원래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0㎞. 하지만 직구 위주에서 요령껏 구질 개발에 성공했다. 광주 충장중학교 때 3루수였다. 공 던지는 자세가 너무 좋아 광주일고 입학 전부터 투수감으로 점찍었다. 입학 후 본격 조련을 받으며 후배 김병현과 함께 광주일고 마운드를 지켰다. 김병현(27·콜로라도 로키스):악바리다. 내성적이면서도 꼼꼼하고 승부근성이 뛰어나다. 광주 무등중학교에서 유격수였다. 수비능력도 좋고 손목 힘이 뛰어나 유격수로만 쓰기에 너무 아까웠다. 본인도 투수를 원했다. 그래서 투수 연습을 시켜보니 가능성이 있었다. 체구가 작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밤마다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시켰다. 체구가 작고 빨라 수비 반경이 넓었다. 공을 던질 때 손목으로 채는 힘이 좋아서 빠른 공을 잘 던진다. 평소 영화감상을 좋아한다. 최희섭(27·LA 다저스):대인관계가 원만하다. 붙임성도 좋고 순박한 시골총각이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엽기까지 하다. 원래는 서재응과 김병현 졸업 이후 투수로 키울 생각이었다. 우선 큰 체격과 왼손잡이라는 점이 투수로서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타자로 대성할 체격조건과 기량을 발견했다. 그래서 고3 때부터 타자로 바꾸도록 했다. ●선동렬 감독과 동창 유격수로 활동 “이들 셋은 모두 3학년때 팀 주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도 뛰어났습니다. 자랑스럽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만큼 부와 명예를 잘 이루기를 바랄 뿐이죠.” 허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시멘트 부대로 야구 글러브를 만들어 야구를 즐겼다. 광주일고 56회 졸업생인 그는 선동열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고교 동기동창. 광주일고 당시 유격수 출신의 잘나가던 1번타자였다. 선동열과 함께 80년 대통령배 우승의 주역으로 이 대회에서 5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초일류급 고교야구 스타였다. 이같은 실력으로 인하대에 스카우트됐다. 대학 졸업식 때 선후배들과 친선 축구대회를 하다 그만 인대를 다쳤다.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도 있었지만 의사의 만류 등으로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84년부터 실업팀 포항제철에서 8년간 선수생활을 했다. 이후 92년 모교인 광주일고 코치로 부임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당시 광주일고는 이종범(기아)이 활약했던 88년 청룡기 우승 이후 침체된 분위기. 허 감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수들의 정신무장과 팀 정비에 나섰다. 그 결과 부임 2년 반 만에 빅리거 트리오와 함께 95년 청룡기대회의 우승컵을 안았다.98년까지 광주일고를 맡았고, 이후 충장중학을 거쳐 2002년 12월 다시 모교인 광주일고로 돌아왔다. “원래는 체육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야구란 인생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홈에서 출발해 홈으로 돌아오거든요. 남의 도움으로 1루에서 2루로 갈 수도 있고 또 뜻하지 않은 실책으로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기구함의 연속이 아닌가요.” ●부와 명예는 노력에서 얻는 것 광주일고가 어떻게 해서 야구명문이 됐을까. 허 감독은 “광주지역에 초등학교 7개팀, 중학교 4개팀, 고교 3개팀 모두가 전국 상위권”이라고 했다. 풍수지리적인 이유도 있을 법했다. 광주일고 운동장에서 멀리 무등산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허 감독은 무등산의 정기와 학교의 터가 풍수적으로 잘 맞아떨어지면서 좋은 선수를 키워낸다며 웃었다. 이어 운동장 한 편에 있는 학생운동 기념탑을 가리킨다.“바로 저기가 일제시대 때인 1929년 11월3일 발생한 광주학생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연습 전에 항상 탑을 향해 묵념한다고 했다. 예전에도 학교를 여러 차례 이전하려고 했지만 이 탑이 늘 마음에 걸려 옮기지 못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조상들이 광주일고 출신 선수들이 해외에서 국위선양하도록 힘을 보태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허 감독은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아니냐.”면서 선수 각자의 눈물나는 노력이 없다면 오늘날의 명예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빅리거 트리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각자의 인생에서 잠시 자신을 만났을 뿐 스스로가 앞길을 잘 헤쳐가고 있다며 무등산쪽을 바라본다. 이윽고 축구시합을 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움직여. 기다리면 공이 오나.”라고 다시 크게 소리친다. 그에게 “저들 중에 당장이라도 메이저리그에 갈 선수가 있나요.”라고 질문했다.“암요, 있지요 1∼2명 정도는 충분합니다.”라며 자신감에 넘쳤다.“누구냐고 물으면 답을 안 해주겠지요.”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빅리거 탄생이 머지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1년 광주 출생 ▲광주 남초등·동신중·무등중학교에서 야구선수로 활약 ▲81년 광주일고 졸업 ▲84년 인하대 졸업 ▲84년 12월∼92년 12월 포항제철 선수 ▲92년 2∼10월 광주일고 야구 코치 ▲92년 10월∼98년 11월 광주일고 야구감독 ▲99년 광주 충장중학교 야구감독 ▲2002년 12월 광주일고 야구감독 ■ 수상경력 80년 대통령배에서 타격상, 타점왕, 수훈상, 최다안타상, 도루상 수상, 황금사자기 준우승.82년 백호기 우승.93년 광주일고 감독을 맡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 3위 입상.94년 1회 무등기 우승, 전국체전 3위 입상.95년 청룡기 우승(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출전).96년 전국체전우승(김병현 출전).97년 황금사자기 준우승(최희섭 출전).2003년 무등기 우승, 봉황기 준우승.2005년 황금사자기 우승, 봉황기 준우승 등.
  • 마지막 망명객들 돌아온다

    마지막 망명객들 돌아온다

    오는 14일부터 17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에 반체제 활동 등으로 입국이 불허돼 오던 해외인사 13명이 참가한다. 독일지역에서 반유신·반독재 운동을 벌인 이영빈·김순환 목사 부부와 프랑스에 거주하는 고 이응로 화백의 조카인 이희세 선생 등이 해외대표단 자격으로 고국을 찾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0일 “유럽과 일본, 캐나다 지역의 입국불허 인사 13명이 해외대표 자격으로 8·15민족대축전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거나 반정부단체로 규정된 범민련에서 활동하는 등 반체제 활동에 관련돼 입국을 하지 못했다. 이번 축전의 유럽대표단 단장을 맡게된 이희세(73·프랑스 도르돈 거주) 선생은 고 이응로 화백의 조카다. 이 선생은 큰아버지인 이 화백이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화가의 꿈을 접었다. 모교인 홍익대 강사로 일하다 1964년 프랑스로 유학간 뒤 41년 만의 입국이다. 이 선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입국하는 것이)하도 오래 된 일이라 덤덤하다. 그러나 남북·해외동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통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가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 선생은 한국을 찾게 되면 마지막으로 살았던 서울 돈암동과 부모님이 묻힌 충남 예산을 찾아가 못다한 효도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영빈(79)·김순환(77) 부부는 지난 1955년 독일로 유학을 간 뒤 ‘민주사회건설회’(민건)와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기통회), 유럽 범민련 활동 등을 하며 반독재,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지난 1988년 고 문익환 목사의 초청으로 통일신학동지회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입국불허자’라는 이유로 4시간 만에 공항에서 쫓겨나 사실상 정식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영빈 목사 부부는 지난달 1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자택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그동안 국가보안법이라는 족쇄 때문에 가고 싶어도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면서 “이역만리 해외에서 남북통일을 위해 애써 왔던 삶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고국방문의 기대를 밝힌 바 있다. 그밖에도 전 범민련 유럽본부 의장을 지낸 최기환(76·스위스 거주) 선생과 전 재일한국학생동맹 문화부장을 지낸 이용(70·스웨덴 거주) 선생 등도 40∼50여년 만에 입국한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테러공장’ 낙인… 난감한 파키스탄

    파키스탄인 다수가 이집트의 샤름 엘 셰이크 연쇄테러 용의자로 떠올랐다는 25일 언론 보도 이후 파키스탄이 새로운 테러 세력의 온상인가를 두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후세인 하리디 파키스탄 주재 이집트 대사는 26일 성명을 내고 “파키스탄인은 지난 23일 샤름 엘 셰이크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이집트 당국의 이같은 결론은 전날 밤 파키스탄 정부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하리디 대사는 이집트 경찰이 파키스탄인 6명을 뒤쫓고 있으나 이는 23일 폭탄테러와는 관계 없이 보안 차원의 관례적인 확인이라고 밝혔다. 전날 언론보도 몇시간 후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도 라호르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영토에서 알 카에다가 작전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은 궤멸됐다.”며 “파키스탄내 조직이 런던과 샤름 엘 셰이크는 물론,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테러를 조종할 여지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라호르 등에서 전투원 700여명을 검거하는 등 자국 내에서 알 카에다의 지휘 및 통신 시스템을 제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그 결과 자국내 조직들은 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만 두 달이 걸릴 정도여서 이역만리에서의 작전을 지휘할 여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서구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이처럼 기민하게 움직인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과 접경 지역인 파키스탄의 와지리스탄을 은거지로 삼고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런던 1차테러에 이어 샤름 엘 셰이크 테러범마저 자국인으로 확인될 경우 새로운 테러의 온상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런던 1차테러 용의자 4명 중 2명은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 지난해 파키스탄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돼 파키스탄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든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 7일 BBC는 파키스탄 정부의 테러조직 단속이 매우 위험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BBC는 당국이 조직원들을 체포하는 대신 다른 조직원과 접촉하도록 한 뒤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며 이것이 원치 않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쿠바 관타나모기지에 수감됐다가 석방된 150여명의 파키스탄인들이 9∼10개월동안 상당히 자유로운 상태로 지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만약 이때 비극적인 연쇄테러의 씨앗이 틔워졌다면 파키스탄은 국제적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자이툰에 부처님 자비를…

    부처님 오신날(15일)을 맞아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12일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 중인 한국군 자이툰부대를 방문, 장병들을 위로했다. 종교 지도자로서 첫 아르빌 방문이다. 법장 총무원장 등 방문단은 C-130수송기편으로 쿠웨이트 알리알살렘 기지를 떠나 이날 오전 아르빌 하울러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방문단은 자이툰부대에서 3시간가량 머물며 황의돈 사단장을 비롯한 부대 관계자들로부터 현황설명을 듣고,‘세계평화’라고 적힌 휘호와 함께 격려금 2만달러를 전달했다. 방문단은 이어 부대원 500여명과 함께 점심공양을 하면서 “여러분이 보고 싶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왔다.”면서 “현지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격려했다. 법장 총무원장은 자이툰법당인 평화사를 방문,“나는 순수하게 종교인으로서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라크인의 재건과 평화를 위해 노고가 큰 우리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다.”면서 “장병 여러분의 정성을 다한 활동이 곧 부처님의 자비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라며 10여분간 법문을 했다. 또 자이툰병원에 입원 중인 이라크인 환자들을 위문했다. 방문단은 법장 원장과 군불교위원장 성광 스님,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 총무원 사회국장 정업 스님, 사서실 사서 명정 스님 등 17명으로 구성됐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주 마곡사 캐나다 출신 ‘파란눈의 비구니’ 자은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주 마곡사 캐나다 출신 ‘파란눈의 비구니’ 자은 스님

    번뇌와 망상,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했다. 태자 시다르타(석가모니)는 마부에게 “지금 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고(苦)에서 해탈할 것을 서원(誓願)하는 뜻으로 삭발을 하겠노라.”며 수행을 떠났다고 전해진다.‘무명(無明)’이란 세속의 번뇌로 진리에 어둡고,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 그래서 ‘삭발’은 수행 출가자의 정신자세이자 청정수행 의지의 표현으로 여긴다. 훌륭한 교수가 되려고 생화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한 캐나다 여인이 어느날 문득 사람들이 왜 평화롭지 못할까 하는 물음에 부딪혔다. 자신의 연구활동에 대한 회의도 생겨났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택했다. 발길을 돌려 머문 곳은 한국땅. 그렇게 이역만리에서 속세의 길다란 무명초를 잘라내고 고행의 길이 시작됐다. ●교도소 실상통해 인간에 환멸감 충남 공주시 산곡면 운암리 마곡사(麻谷寺). 절간 입구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숲속 길따라 연등이 쭉 내걸려 있었다. 새들의 소리도 신이 난 듯 요란했다. 대웅전을 바라보며 산속으로 500m쯤 더 올라갔다. 적막 산속의 ‘은적암’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평화로운 시골집처럼 느껴진다. 뒤로는 신록이 우거진 태화산 품에, 앞마당에는 철쭉 등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래서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고 했을까. 잠시 후 자은(慈隱·비구니·40) 스님과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고 하자 들은 척도 안한다. 그저 차 한잔을 권할 뿐이다. 서울에서 찾아온 속세의 불쌍한 중생이려니 생각했을까. 순간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캐나다에서 어떻게 오게 됐으며 삭발은 왜 했는지, 하필 또 한국일까 등등. “한국에는 왜 오셨나요?” “인연대로.”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면 뭐가 보이나요?” “어깨뿐입니다.” “꽃이 만발한 5월입니다.” “겨울에는 죽은 것 같지만 수행을 시작하면 새 잎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요?” “바로 이 순간입니다. 과거도, 미래도 잡을 수가 없어요.” “화(禍)는 어디에 있나요?” “마음에 있습니다.” “그럼, 가르침은 뭔가요?” “안다는 것은 습관입니다. 많이 알면 배울 수가 없어요. 모르는 상태로 모든 것한테 배워야 합니다.” “스님의 집은 어딘가요?” “내 발밑에 있습니다.” 자은 스님은 아직 한국말조차 능숙하지 못한 데다 밀알처럼 ‘작은 스님’일 뿐임을 강조했다. 인터뷰를 해봤자 소용이 있겠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은 인연도 소중하지 않느냐고 했다.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자신의 수행을 일컬어)씨앗을 뿌리고 이제 막 새싹 하나가 돋아나고 있을 뿐입니다. 나중에 과일이 될지 뭐가 될지 모릅니다. 또한 신맛일지, 단맛일지 알 수가 없어요. 더 멀리 가야 합니다.” 그는 198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캐나다 캘거리에서 1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속가의 이름은 조안 메이슨. 아버지(82)는 선불교에 관심이 많았고, 어머니(77)는 기독교 성향을 가진 집안이었다. 부모는 현재 고향에서 함께 노년을 보내고 있다. 조안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무척 좋아했다. 다섯살 때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오빠(리처드)를 보고 같이 학교에 보내달라며 한참동안 울었을 정도였다. 조안은 퀸 엘리자베스 고등학교에 진학후 1학년때 교회를 다녔으나 곧 그만뒀다. 학창시절에는 과학 수학 심리학 물리학 등에 푹 빠졌다. 지난 83년 앨버타대학에 진학해 생화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도 역시 생화학 분야인 ‘바이러스학’을 전공했다. 대학원 재학때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의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이때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 사건 등을 접하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 같은 것을 처음 느꼈다. 또한 바이러스를 연구하면서도‘이 연구를 통해 인간의 모든 질병을 없어지게 할지라도 고통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몸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아울러 바이러스 자체가 질병의 예방과 치료목적도 있지만 결국 전쟁에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공주대 영어강사로 1998년 한국행 95년 앨버타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조안은 미국 플로리다주립대로 건너가 연구과학자로서 ‘바이러스학’ 연구활동을 계속했다. 이때 불교에 점차 관심을 둔다. 틱낫한 스님의 저서 등 불교관련 책들도 많이 읽었다. 특히 캐나다 출신으로 1950년대에 미얀마에서 출가한 남쟐 린포체를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불교공부와 수행의 방법을 배웠으며, 동방으로의 출가를 권유한 것도 린포체였다. 조안은 인터넷을 통해 동방으로 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공주대학에서 실시하는 영어강사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서 98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출가한 지 2년쯤 됐을 때 캐나다에 갈 일이 있었지요. 그때만 해도 저는 한국생활에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마침 린포체께서 캐나다에 계시더군요. 찾아가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상의했지요. 린포체께서는 웃으시면서 ‘한국에 돌아가 있으라.’고만 하더군요.” 마곡사와 인연을 맺은 까닭은 공주대 강사시절 알게 된 지인들과 함께 마곡사를 찾으면서 시작됐다. 자연스럽게 은적암 암주인 성호 스님도 알게 됐다.99년 봄 성호 스님을 은사 스님으로 머리를 깎게 된 것도 이같은 인연 덕분이었다. “저는 출가하기 전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아는 것이 아주 많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한낱 ‘지식’일 뿐이었어요. 저한테는 지혜가 별로 없었지요. 출가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남의 잘못을 보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봐야 해요. 숭산 큰스님의 가르침도 그랬듯이 모든 것이 ‘only don’t know’입니다.” ●“씨하나 심어 물주고 풀뽑고 있을뿐” 자은 스님은 현재 청암사 승가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다. 요즘에는 방학을 맞아 친정격인 마곡사에서 ‘금강경’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승가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몇년 동안 본격적인 참선 수행을 거친 뒤 포교활동을 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선진국에는 부자나라들이 많지만 마약과 자살사건 등이 많아 결코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평소부터 잘 알고 있던 터였다. 또한 “마음이 부자여야 한다는 것을 불교를 통해서 새삼 깨닫고 있다.”면서 마음속의 평화가 없으면 밖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의 평화는 가족과 이웃, 조국과 세계를 평화롭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리고 싶단다. “한국 스님들은 마음이 넓어요. 저는 이제 씨 하나 땅에 놓고 물주고 풀 뽑고 있을 뿐입니다. 돈오점수(頓悟漸修)라고 할까요.” 출가 전에는 영화관람을 즐겼다. 한국에서 감명깊게 본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집으로’‘공동경비구역 JSA’ 등이다. 아울러 한국의 역사와 문화도 점점 알게 됐다고 했다. 독도를 아느냐고 하자 “한국인은 일본사람보다 따뜻하다. 왜 (일본이)역사왜곡을 하는지 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향의 부모에게는 이메일로 안부를 전한다는 그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올케언니가 한국인”이라면서 “한국과 인연이 깊어졌다.”며 활짝 웃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5년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 출생 ▲83년 퀸 엘리자베스 고교 졸업 ▲87년 앨버타대학 생화학과 졸업 ▲95년 동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 취득 ▲95∼97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 연구과학자 역임 ▲98년 공주대학 영어강사 ▲99년 마곡사 성호 스님 은사로 출가 ▲99년 5월∼2000년 3월 화계사 행자생활 ▲2000년 4월 사미니계(해인사) ▲2003년 청암사 승가대학 입학(현재 3학년 사교반)
  • 다이만부대, 이라크 모래바람을 뚫다

    이라크 평화재건 공수임무를 맡고 있는 공군 다이만부대(제58항공수송단·쿠웨이트 주둔)가 1000시간 무사고 비행기록을 달성했다. 공군은 다이만부대 소속 C-130 수송기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이라크 북부 아르빌 자이툰부대로 물자를 수송하고 쿠웨이트 알리 알 살렘기지로 무사히 귀환, 비행기록 1000시간을 달성했다고 25일 밝혔다. 김준환(38) 소령과 김승현(31) 대위가 조종한 C-130 수송기는 부대장인 강대희 준장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 동맹군 지휘관들의 축하 속에 살렘기지 활주로에 안착했다. 강 단장은 “거센 모래바람과 적대세력의 대공 위협 속에서 이뤄낸 값진 결실”이라며 “태극마크를 달고 이라크 평화 재건을 위해 몸 바친 부대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한호 공군참모총장은 축하 메시지를 보내 “이역만리에서 어려운 작전 환경을 극복하고 이뤄낸 쾌거는 공군 파병사에 크게 빛날 것”이라고 치하했다. 한편 다이만부대는 지난해 10월 25일 작전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연인원 8500여명, 화물 700여t을 공수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징용자유골 100여명 일본서 쓰레기처럼 관리

    “엄마는 매일 걱정한다.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몸 건강히 잘 있거라.” 60여년전 일제에 강제 징용된 아들의 생환(生還)을 염원하는 한 어머니가 애달픈 심정을 담아 일본어로 써보낸 엽서의 일부분이다. 이 어머니는 경남 사천지역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아들 구모(당시 17세)씨에게 엽서를 보냈다. 엽서는 “내년 7월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빌고 있다. 요전에 보낸 편지는 받았는지, 엄마는 매일 걱정한다. 자주 편지 보내거라.”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과 애절한 사연은 아들 구씨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아들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무로란시(室蘭市)의 제철소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1944년 7월15일 숨졌지만 엽서의 소인은 5개월이 지난 12월25일로 돼 있었다. 아들은 엽서를 보내기 5개월 전에 이미 사망했는데도 일제는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일제강제 동원의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 16일부터 22일까지 일본을 다녀온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전기호)의 현지 조사과정에서 확인됐다. 위원회는 홋카이도 무로란시 고쇼지(光昭寺)에 안치된 신원확인이 가능한 3명의 동포 유골을 확인한 결과 이들이 경남 사천·하동지역 출신임을 밝혀냈다. 이중 1명의 유품에서 이 엽서가 발견됐다. 함께 유골이 발견된 정모씨는 경남 하동 출신으로 형을 대신해 노역에 나갔다가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를 다녀온 최봉태 사무국장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숯과 나무,200여명의 유골이 섞여서 쓰레기처럼 관리되고 있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사이타마현(埼玉縣) 곤조인(金乘院)과 홋카이도 혼간지(本願寺) 삿포로 별원(別院) 등 2곳에 각각 101개와 103개의 유골이 화장된 뒤 항아리에 합사(合祀)되고 있다고 실태를 털어놨다. 그는 “이번에 확인된 유골은 억울하게 동원된 우리 조상들이 일본 땅에서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시즈오카현(靜岡縣) 시미즈시(淸水市) 시립화장장 입구에 ‘이역만리 남의 땅, 남의 나라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어 무주고혼이 된 당신들이여, 당신들의 백골도 영혼도 주인이 있고, 조국이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당신들을 데리러 올 그날까지 고이 잠드시라.’고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들은 찾는데 6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답답해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일본의 NHK도 취재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기고] 선열들의 희생정신 되새겨야/박유철 국가보훈처장

    서대문 형무소를 향하는 길은 아직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있다. 멀리서 보이는 건물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그 곳에 들어서는 순간, 잔악한 고문 광경에 민족의 비애를 느끼게 됨은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일 것이다. 지난 8월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된 재 러시아 독립유공자 유족이 “서대문 형무소에 있는 일제의 고문 기구들을 보면서 우리 증조할아버지들이 얼마나 영웅적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힌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립하기까지 조국 광복을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일본의 온갖 잔혹한 고문으로 옥사했거나 이국의 황량한 들판에서 고군분투하다 순국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는 것이다. 17일은 예순다섯 돌을 맞는 ‘순국선열의 날’이다. 지난 세기 초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하에서 비운을 겪고 있을 때, 선열들은 이 나라 동천 하늘의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고 조국을 찾기까지 국내는 물론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풍찬노숙하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순국선열의 날’은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방법은 각기 달랐으나 자주독립을 이루겠다는 염원 아래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하신 선열들의 위훈을 기리는 정부기념일로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제정한 ‘순국선열공동기념일’이 그 기원이다. 의병들은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학생들은 독서회 등을 결성하여 독립운동 역량을 키워나갔다. 온 겨레가 하나되어 일어났던 3·1독립만세운동, 상하이임시정부의 구국활동, 독립군과 광복군의 항일 무장투쟁은 우리 민족에게 자주독립의 의지를 심어 주었다. 지식인들은 계몽활동을 펼쳤고, 교육가들은 학교를 세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박은식 선생이나 신채호 선생 같은 분들은 고난의 망명지에서 생활하면서도 초지일관 민족사관에 입각한 빼어난 역사서를 저술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셨다. 이 두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사’ ‘조선상고사’ 등이 나올 때마다 일제 당국은 금서로 지정했으나 이 분들은 대한인의 자존의지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선열들은 국내외에서 일본의 감시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항일투쟁에 신명을 바쳤다. 거기에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불굴의 의지로 기어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어려웠던 시대를 산 선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삶과 그 순정의 애국혼은 오랜 세월을 넘어 지금 우리들에게 소중한 정신적 가치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라고 한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동암 차이석 선생이 “우리는 권력, 재력, 시간, 환경이 모자라서 독립운동이 부족함이 아니라, 우리 겨레 모두의 단결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하여 모든 독립운동 세력의 단합을 호소한 말씀은, 국민화합이 절실한 오늘날 우리 모두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난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일이야말로 희망찬 내일을 만들어 가는 지름길이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대의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오직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하나가 되었던 선열들의 위국헌신 정신을 되새겨 국가발전의 정신적 원동력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하겠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한국입양홍보회’ 설립한 해외입양인 최석춘씨

    ‘한국입양홍보회’ 설립한 해외입양인 최석춘씨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I am still hungry)….”월드컵축구대회가 ‘중반 열기’를 뿜던 2002년 6월15일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축구 변방국인 한국에 본선 첫 2라운드 진출의 영광을 안긴 뒤 던진 이 말은, 그 뒤에도 많은 이들이 베껴먹은 ‘명언’으로 남았다. 히딩크는 ‘승리’와 ‘우승’에 배가 고팠지만 우리의 많은 이웃들은 사랑과 그리움에 배고품을 느끼고 있다. 지난 11일 만난 스티브 모리슨(48·한국명 최석춘·미국 캘리포니아주 노워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다리를 저는 장애 소년으로 미국 양부모에 입양된 모리슨, 아니 최씨는 1999년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MPAK·Mission to Promote Adoption in Korea)를 설립,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우주항공연구소(The Aerospace Corporation)에서 14년째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차세대 위성항법시스템(GPS)을 적용한 인공위성을 2012년 발사하는 게 1차 목표다. ●묵호 움막집에서 보낸 유년 시절 그는 이역만리 미국의 한 낯선 가정에 맡겨졌지만 양부모에게 한국에서는 그토록 목말라 하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직도 난 사랑에 배가 고프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람 좋은 모습이지만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워낙 오래된 일인데다 구절양장(九折羊腸)과도 같은 삶속에서 네살 때인지, 다섯살 때인지 기억도 아련하다. 가난이라는 표현도 사치스러운, 집도 절도 없던 시절이었다. 강원도 묵호역 근처 ‘굴다리’ 밑 움막이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움막생활도 그에겐 큰 아픔으로 남아 있지 않다. 최씨는 “사랑만 있었어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날의 사건만 없었다면, 늘 술에 찌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주먹을 휘두르지만 않았다면, 지금껏 피붙이들이 어울려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그의 뇌리를 맴돌고 있다. 1960년 어느 날 어머니가 가출했다. 곧바로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경찰서에 붙들려갔다. 낯선 아주머니가 찾아와 두살 아래였던 동생을 데려갔다. 자신은 한 신사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으로 갔다가 62년 당시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던 홀트아동복지회로 옮겨졌다. “아버지, 어머니를 용서한 지 오래입니다. 꼭 뵙고 싶어요. 단 한번이라도…. 그러나 솔직히 동생 대천이가 더 그리워요. 너무 어렸던 녀석이라 어떻게 자라났는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사랑을 준 ‘푸른 눈’의 아버지 14살 때인 1970년 그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미국인 양부모에 입양된 것이다. 친자식 1남 2녀를 둔 양부모는 지금 80세,79세 됐다. 최씨는 위로 누나 둘, 아래로 남동생 둘을 뒀다. 바로 아랫 동생은 한국인과 미국인의 핏줄을 지닌 혼혈 입양아. 그가 털어놓은 새아버지에게 얽힌 에피소드는 입양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가족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잘 가르쳐준다. 그는 세계최초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을 배출한 인디애나주 퍼듀(Purdue) 공대를 나온 뒤 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이어 남가주대학원(USC) 우주항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는 장학금을 약속한 항공업체 휴스(Hughes)에 다니며 공부를 계속했다. “새 삶을 일궈준 양아버지가 심장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술할 날 졸업 시험이 있었지 뭡니까.‘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찾아뵙지 않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이후 졸업장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 갔다. 아버지는 졸업장에 쓰인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가며 눈물을 글썽였다. 양부모가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학자금을 댔다는 사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 최근 우연찮게 들었다. ●입양아 70%이상이 미국인 품으로 “지금은 아주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시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디 제 정신이고서야 나같은 사람을 입양할 마음을 품었겠습니까.” 그는 한창 사춘기 무렵이어서 예민하고 위험할 수도 있는 14세, 그것도 장애인인 자신을 거둬들인 지금의 부모를 생각하면 정치 경제 등 전 분야에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의 저력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움막집에서 지낼 때 다리를 다쳤고 치료를 받지 못해 장애인이 됐다. 얼른 알아채기는 어렵지만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다. 한국에 대해 묻자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생산력이 엄청나며, 높은 교육열 등 장점이 많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정보통신(IT) 강국이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몇 안되는 나라라지만 입양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때문이다. 그가 1999년 11월 한국입양홍보회를 만든 계기는 우리나라의 입양실태와 맞닿아 있다. 국내에서 수많은 사연 속에 버려지는 어린이는 해마다 1만 2000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다른 나라의 새로운 부모에게 안겨지는 숫자는 2400여명이다. 그 중에서도 70% 이상이 미국인 품으로 돌아간다. 반면 생각이 비슷하고 환경이 같은 우리 국민에게 새 둥지를 트는 아이는 1800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해온 것과는 아주 다르다. 해외 입양 자체를 반대하고, 국내 입양이 꼭 바람직하다는 게 아니어서 그렇다. “88서울올림픽 무렵 ‘고아 수출국’이라는 혐오스러운 말이 언론을 통해 지구촌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뒤로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무섭게 번졌죠. 왜 도와주지도 않으면서,‘고아 수출국’이라는 말로 해외 입양까지 막으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영원한 정신적 기둥’ 홀트 어머니, 누나의 일을 본받아 우리나라 안에서 버려지는 아이들을 피부색깔도 다른 나라의 사람이 받아들이는데,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아들은 물론 한인(韓人)과 한국을 위해서라도 이를 고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1995년부터 미국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개인적으로 입양홍보 활동을 하다가 보다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야겠다는 뜻에서 홍보회를 만들었다. 그는 “정작 나 자신이 입양아이면서도 미국 홀트국제아동복지회 이사로 일하며 현실을 깨우치게 됐다.”고 말했다.83년부터 16년 동안 이사로 활동한 경험으로 다른 아이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데 온힘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지난 6일 서울에서 열린 입양 한마당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했다. 입양아들에게 친부모를 공개해야하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제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길러준 사람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치고 일찍 알려줘야만 충격을 견뎌내고 건강하게 자라난다.”는 말도 보탰다. 현재 국내 500여개 입양가정이 가입한 입양홍보회의 취지도 공개입양 절차와 가정끼리의 모임으로 건전한 인식을 심는 데 있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힘으로 버림받은 아픔을 딛고 일어선 그는 지난 14일 “벌써부터 아들 일곱살배기 조지프(한국명 오해성·2000년 입양)과 같은 일곱살인 큰 딸, 다섯살 된 막내딸이 보고 싶어지네요.”라며 가족들이 기다리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최석춘씨는 1956년 강원도 묵호 출생 1962년 홀트아동복지회에 입소 1970년 미국으로 입양 1979년 퍼듀대 우주항공과 졸업 1981년 남가주대학원 석사 1981년 미국 우주항공연 입사 1983∼1999년 국제홀트회 이사 1999년 한국 입양홍보회 창설 2000년 한국인 오해성(3)입양
  • [씨줄날줄] 반달곰 방사/김경홍 논설위원

    모처럼 산으로 들로 나서보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반갑다.가을 들판에서 메뚜기 한마리만 발견해도 어린 시절이 그립고,등산로를 가로지르는 다람쥐 한마리에도 마음이 넉넉해 진다.한마리의 벌레나 작은 동물에도 감동이 느껴지는데 하물며 앞산에는 곰이 살고,뒷산에는 호랑이가 산다면 우리의 정신세계도 얼마나 풍요로워 질까. 건국신화에 곰이 우리의 조상이었듯,반달가슴곰도 과거에는 백두산과 설악산,지리산 등에서 수천년을 살아왔던 토종 동물이었다.그런데 지금 반달곰은 남한지역에서 10∼20마리 정도만 살고있을 것이라고 추정될 뿐이다.아무리 서식환경을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개체수로는 근친교배 문제 등으로 인해 번식이 안 된다는 것이다.따라서 내버려 둘 경우,앞으로 20년 정도 지나면 반달곰은 적어도 우리 땅에서는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지난 1일 러시아에서 반달곰 새끼 6마리가 들어왔다.이들은 야생적응 훈련을 거쳐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쯤 지리산에 방사될 것이라고 한다.환경부나 국립환경관리공단은 지난 2001년부터 ‘지리산 반달가슴곰 종복원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그 해 새끼 반달곰 4마리 ‘막내’ ‘반순’ ‘장군’ ‘반돌’을 훈련시켜 지리산에 방사했으나 두마리는 실패했고,남은 두마리는 절반의 성공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막내는 등산객들만 따라다녀 야생적응에 실패했고,반순이는 올무에 희생됐다.장군이와 반돌이는 두번째 겨울잠까지 성공했으나 농가의 꿀통을 습격하는 등 말썽이 이지 않아 지금은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됐다. 이제 러시아에서 온 반달곰 6마리가 지리산의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가 관심사가 됐다.이들이 성공리에 야생에 정착하면 당국은 2008년까지 30마리를 더 들여와 지리산에 풀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벌써부터 당국에서는 반달곰과 사람들과의 마찰을 걱정하고 있다.한국의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반달곰이 인명사고를 내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기왕 들여온 반달곰이니만큼 이들이 우리 자연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반달곰이 살지 못하게 만든 것도 환경파괴나,밀렵과 남획 등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하지만 유전자가 토종 반달곰과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역만리에서 살던 러시아 반달곰을 지리산으로 옮겨 살게 하는 것도 인간의 이기심이 아닐까.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해외건설 살리자] (3)‘해외건설의 엘도라도’ 이란

    [해외건설 살리자] (3)‘해외건설의 엘도라도’ 이란

    |아살루에(이란) 김성곤특파원| 이란이 해외건설의 ‘엘도라도’로 부상하고 있다.과거 해외건설의 중심지가 사우디아라비아였다면 지금은 이란이 그 자리를 꿰찼다. 가스 매장량 세계2위인 이란은 가스전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각종 플랜트 공사를 쏟아내고 있다.향후 5년간 발주되는 가스 관련 공사가 37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이란 시장이 우리에게 매력적인 것은 발주공사의 주종을 이루는 가스플랜트에 한국 업체들이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살루에는 한국업체들의 독무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1000여㎞ 떨어진 아살루에지역 32만평의 황무지에는 거대한 가스처리시설이 건립되고 있다.아살루에 인근 사우스파스 해상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 모두 25단계로 구성돼 있으며 10단계까지 공사가 발주됐다.각 단계마다 빠짐없이 한국업체가 참여하고 있다.그만큼 한국업체의 경쟁력이 높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1단계는 대림산업이 2억 8000만달러에 사업관리(CM)를 맡아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다.2,3단계는 현대건설이 10억달러에 수주해 2002년 7월 완공했다. 15억 6000만달러짜리 4,5단계 역시 현대건설이 맡아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하고 있다.공사진행이 빨라 발주처인 ENI로부터 4000여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연말에 공사를 끝내면 1억 2000여만 달러를 추가로 받게 된다. 6,7,8단계는 대림산업이 일본업체들과 함께 수주했다.16억달러 규모의 9,10단계는 LG건설이 이란 업체와 함께 따냈다. 15,16단계는 25억달러 규모로 4개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현대건설과 LG건설 등이 컨소시엄을 이뤄 참여했다.대림산업은 일본업체와 함께 참여했다.국내 업체들끼리 경쟁하는 양상이다.결국 시공경험이 풍부한 국내 업체들에 따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낙찰업체는 하반기에 결정된다. 현대건설 이지송 사장은 “이란에서는 한국업체를 배제하고 가스플랜트 공사를 하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면서 “이란정부는 공사가 한국업체에 편중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공능력을 감안해 이를 묵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주에 대한 견제도 이란 가스플랜트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한국업체에 대한 견제심리도 나타나고 있다.사우스파스 해상에서 하나의 가스전을 놓고 이란과 채굴경쟁을 벌이는 카타르의 가스는 사주면서,이란산 가스를 사주지 않는 한국에 대한 섭섭함도 담겨 있다.일각에서는 15,16단계 공사 수주 여부가 한국의 이란산 가스 도입 여부에 달려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지난달 이란의 에너지 담당 장관은 한국을 방문,우리 정부에 가스 도입을 강력하게 권유하기도 했다.물론 이란에서 한국업체가 선전하는 것은 기술력에 따른 것으로 이란이 쉽게 내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림산업 박종국 상무는 “가스 도입 문제가 이란의 공사를 수주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야 하겠지만,우리의 경쟁력이 있으니까 공사를 따내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국제 관계에서 일방적 지원이나 시장 독식은 있을 수 없는 만큼 정부가 이란산 가스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현지 진출업체들은 공사 수주지역을 다각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unggone@seoul.co.kr ■ 아살루에 가스전공사장의 하루 |아살루에(이란) 김성곤특파원| 먼동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아살루에의 아침 6시.공사현장의 스피커에서는 아침체조음악이 흘러나온다.한국에서 건너온 현대건설 직원 500여명은 음악에 맞춰 아침체조를 한다.현대건설이 이란의 동남쪽 끝 아살루에지역에 건설하고 있는 가스처리 플랜트 현장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공사 현장에서는 한국과 인도,태국,필리핀,이란에서 온 1만 4000여명이 일을 한다.언어가 다르고,피부색도 다르지만 이들의 업무에는 한치의 오차가 없다.수십년간 해외에서 쌓은 현대건설의 노우하우 덕분이다. 발주처인 토탈사의 사장이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에게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이질적인 근로자들이 한 곳에서 말썽없이 공사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다. 근로자들이 이동하는 데 동원되는 차량은 무려 1000대나 된다.공사시작 시간은 오전 7시.때로는 시간이 당겨질 때도 있다.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탓이다.이 때쯤이면 아살루에는 차량의 부산한 움직임과 공사소음,이미 준공된 가스처리시설의 가동음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다국적 근로자들만 아니라면 건설현장은 영락없는 국내 공사장이다.이미 2,3단계를 준공하고,현재 4,5단계공사를 진행 중인 현대건설 외에도 LG건설,대림산업의 마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오전 근무는 11시30분에 끝난다.오후 1시30분까지 점심식사를 마친 뒤 40여분 동안 낮잠을 자며 무더위를 식힌다.오후 근무는 5시에 끝나지만 일과는 이후에도 이어진다.곳곳에서 밤 11시30분까지 저녁공사가 벌어진다.안승규 현장 관리소장 등 현대건설 직원 500여명의 일은 이후에도 계속된다.하루의 공정을 점검하고,개별 현장의 안전유무를 점검한다.이들은 새벽 1시나 돼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밤 12시30분.현장 관리를 맡은 현대건설 이형근 상무는 플래시를 들고 마지막 점검에 나선다.숙소로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새벽 1,2시.그는 어느새 ‘밤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이역만리 이란땅에서 해외건설의 제2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sunggone@seoul.co.kr
  • [클릭 아테네 2004 D-13]열정 하나로 우린 간다

    ‘이역만리에서 흘린 땀과 눈물,아테네 신화의 밑거름이 되리라.’ 국가대표선수들 가운데 일부는 장기간 해외전지훈련만 고집하다 곧바로 아테네로 향한다.해외훈련이라고 부러워하지 말라.비인기종목의 설움이 흠씬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사이클의 기대주 양희천(22·한체대)은 지난해 11월부터 스위스에서 혈혈단신 맹훈련을 해왔다.세계사이클연맹이 유망주들만 모아 실시한 ‘올림픽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당초 한 달에 800만원 이상 드는 비용이 버거워 참가를 포기하려 했다.그러나 사이클연맹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직접 상대하지 않고서는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판단,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기로 했다.나머지는 개인몫.결국 양희천의 아버지는 빚을 내 아들을 스위스로 보냈다.하루 8시간이 넘는 지옥의 레이스를 참은 결과 기록은 일취월장했고,지난달 월드컵에서는 11위에 올랐다. 12년 만에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 승마대표팀은 2001년 4월부터 3년 넘게 독일에 머물러 왔다.우정호 손봉각 주정현 황순원(이상 삼성전자)으로 이루어진 승마팀이 국내에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말이 없기 때문. 올림픽에 출전할 만한 기량을 갖춘 말 한 필의 가격은 40억∼70억원에 이른다.연습용 말을 빌리는데도 한 달에 7000여만원이 든다.승마팀은 말 대여비로만 70억원 이상을 썼다.이들은 지난 6월 폴란드에서 열린 삼성네이션스컵대회에서 유럽강호들을 체치고 우승했다.세계 승마계는 요즘 한국을 ‘다크호스’로 꼽는다. 지난 5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따내 근대5종의 존재를 알린 이춘헌(24·상무)도 지난 3개월 동안 헝가리에서 땀을 흘렸다.수영 육상 사격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내는 이춘헌은 그동안 유럽선수들을 상대로 펜싱의 불안감을 털어버리고,다양한 말을 타며 승마 적응력을 높였다. 하루에 5종목을 모두 치르는 근대5종의 우승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직접 메달을 걸어준다.올림픽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라는 뜻이다.이춘헌은 이런 ‘특별 대접’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8월 22일 아테네에 입성한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신채호(申采浩·1880∼1936)

    |다롄 노주석·박지윤특파원|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세상을 떠돌게 했을까.또 그렇게 외치던 조국광복의 날을 보지 못하고 이역만리 차디찬 옥사의 바닥에서 세상을 등지게 했을까. 중국 다롄시 뤼순 감옥,신채호 선생이 옥사한 곳이다.뤼순 감옥에 관한 우리의 기억은 대개 안중근 의사의 투옥과 순국이 이곳에서 이뤄졌다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단재의 원혼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뤼순감옥은 다롄시에서 47㎞ 떨어진 뤼순구에 있다.감옥에는 안중근 의사가 감옥살이를 한 감방과 처형당한 건물,신채호 선생이 병들어 숨진 의무계 건물이 잘 보존돼 있다.최근 중국 공안당국은 외국인의 뤼순항 접근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뤼순으로 향하는 도로와 역 등지의 길목에서 검문검색이 이뤄지고 있었다.해군기지의 노출을 막으려고 미개방지로 지정,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다롄대학 한영 교수는 “최근 다롄시 관광국장이 외국인 바이어와 함께 들어가려다가 쫓겨났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취재진은 뤼순 감옥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단재의 흔적은 주로 베이징에 남아 있다.1918년 한국사 연구에 전념하면서 날카로운 논설을 중국 신문에 발표해 문명을 날린 동화시북리 숭문동 보타암터,1920년 4월 상하이에서 돌아온 선생이 박자혜 여사와 결혼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를 보낸 서성구 부성문내대가 금시방가의 거주지,1923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머문 서성구 신문화가 석등암,1924년 독립운동에 좌절한 선생이 머리를 깎고 수도승 생활을 한 동성구 방가호동 관음사,1920년대 거주한 서성구 취화골목이 그곳이다.만주 환런현 정양가도 서관가 민족백화점부근 동창학교터,러시아 연해주 신한촌 등 곳곳에도 짙은 민족향과 함께 남아 있다. joo@seoul.co.kr˝
  • 유족 “AP문의 묵살 책임자 처벌”

    ‘다음 세상에는 추악한 전쟁과 테러가 없는 평화의 땅에서 태어나기를 빕니다.’ 고 김선일(33)씨 빈소가 차려진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의료원 영안실과 분향소가 마련된 부산 동구 사회복지관,경성대학 등에는 전날에 이어 24일에도 김씨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잇따랐다.선일씨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기라도 하듯 이날 부산지역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조문객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처참하게 피살된 선일씨의 영정 앞에 엎드려 명복을 빌며 실의에 빠진 유족들을 위로했다.이날 오후 5시 현재 정·관·학계 인사,시민단체 대표,시민 등 600여명이 고인의 빈소를 다녀갔다. 동부산대학에서 한국어 어학코스를 밟고 있는 일본인 아사리 유키(28·여) 등 일행 3명은 빈소를 찾아 “지난 4월 일본인들이 이라크 무장단체에 억류됐을 때보다 더 슬펐고 경악했다.”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빈소를 찾아 영혼을 위로했다.”고 말했다. ●한편 선일씨 부모 등 유족들은 “시신이 빠른 시일내 유족에게 인도돼야 한다.”면서도 “시신이 훼손됐다.”는 보도를 접하고 크게 상심했다. 누나인 옥경(38)씨는 “AP통신이 이달초 동생이 나오는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신원 및 사실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는데도 이를 묵살한 게 사실인지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씨줄날줄] 思母曲/손성진 논설위원

    어머니.듣기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말이다.어머니란 존재는 뭘까.산통을 견디고 낳아 오직 자식을 위해 희생을 다하는 어머니.고난과 역경 속에서 어머니는 가정과 사회를 지탱해온 힘이었다.힘들었던 시절,자식에게는 따뜻한 밥을 먹이고 자신은 찬 보리밥 한술로 끼니를 대신했던 어머니다. 오매불망 남쪽의 어머니를 그렸던 북한의 오영재 시인은 몇해전 ‘아,나의 어머니’를 어머니께 바쳤다.살아 계신 어머니가 아니라 영전이었다. 여자로서 어머니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부모 공양과 남편 뒷바라지에 몸이 둘이라도 모자랐다.그러면서도 자식에게는 늘 다정하고 자상하던 어머니였다.포근한 안식처였다.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고려속요 사모곡(思母曲)이다.아버지를 호미에,어머니를 낫에 비유해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보다 더 깊다는 뜻을 담았다. 훌륭한 자식은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나온다.조선시대에 25세에 과거에 합격하고 가평군수,흡곡현령을 지낸 석봉(石峯) 한호(韓濩)의 어머니가 아들과 암중(暗中) 시합을 한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 옮긴 맹모(孟母)나 일곱 남매를 저마다 훌륭하게 키워낸 신사임당도 훌륭한 어머니상이다.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자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말했다.“이제 집안일은 하인들에게 시키고 편하게 지내십시오.”그러자 어머니는 “무슨 말입니까?대통령의 어머니라고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그러고는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했고 더 가난하게 살았다.동네 사람들은 ‘대통령보다 더 훌륭한 어머니’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기밀누설죄로 복역하다 풀려난 로버트 김의 모친 황태남 여사의 영결식이 8일 열렸다.이역만리에서 감옥에 갇힌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으랴.애타는 모정은 아들이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게다.상주 노릇을 육성 테이프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로버트 김의 사모곡이 심금을 울린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2003 사건속 인물](5)수지김 유족들 배상판결 이후

    넉달 만에 만난 김옥경(46·여·서울 강동구 둔촌동)씨의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자국이 남아 있다.17년 동안 ‘간첩 가족’이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온 통한의 세월이 배상판결 하나로 위로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며칠 전 김씨는 마침 집을 찾은 여동생 옥희(36·충북 충주시)씨와 함께 언니 수지김(본명 김옥분)에 대한 기억을 되새겼다. 김씨는 집에서 쉬고 있는 남편 등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웃 ‘반찬가게’에서 밤늦게까지 고된 일을 하고 돌아왔다.올해 달라진 것이 있느냐고 묻자 “정부의 무신경이 역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홍콩의 언니 무덤으로 데려가 실컷 울게 해준다던 정부와 국정원이 지난 8월 배상 판결 이후 아무 말이 없어요.몇 차례 독촉했지만 ‘알았다.’고만 할 뿐이에요.” 그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당장이라도 홍콩으로 가고 싶지만,무덤이 군사지역 안에 있어 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진솔한 사죄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돈 받고 떨어지라.’는 식의 반응에 화가 치민다.”며 울먹였다. 수지김의 둘째 동생인 그는 가족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지난 8월14일 승소,42억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았다.국민들은 살인자와 야합한 국가기관에 뒤늦게나마 책임을 인정한 데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김씨는 “언니의 원한을 풀고 법원의 판결이 좀더 떳떳해지려면 ‘공소시효’가 폐지돼 사건을 은폐·조작한 책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김씨는 “언니와 같은 사건이 또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가족이 공소시효법 하나는 바꿔 놓았어야 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김씨의 여동생 옥희씨도 “국가기관에 살인 면죄부를 주는 악법을 없애지 못하고 한해가 지나가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말했다.김씨와 동생들은 올 한해 국회의사당을 밥 먹듯이 찾아가는 등 공소시효폐지 운동을 벌였지만,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김씨는 풍비박산난 가족 생각이 간절하다.이역만리 타향에 누워 있는 언니,사건 당시 안기부에 끌려가 욕설과 구타를 당한 뒤 홧병으로 숨진 어머니,술로 화를 삭이다 교통사고로 숨진 오빠,그리고 정신병을 앓다 숨진 큰 언니.김씨는 “오는 24일 충북 청주 창용사에서 기일이 비슷한 언니와 아버지,어머니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기로 했다.”면서 “가족 대부분이 사건 후유증으로 이혼을 당하거나 집에서 쫓겨나는 등 피폐한 삶을 살아 왔지만,이날만큼은 모두 모여 새해 새로운 삶을 기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반인권적인 국가범죄는 올해로 막을 내렸으면 한다.”면서 “새해에는 인권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받은 42억원 중 일부를 인권옹호를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적당한 사용처를 궁리 중이다. 이영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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