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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

    ■ 외교통상부 △경상북도 국제관계자문대사 金昌秀 ■ 행정자치부 ◇서기관 승진 △지식행정팀 李恩英△재정정책팀 鄭倫漢 ■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정책본부장 이승훈△무역위원회 상임위원 홍석우△미래생활산업본부장 윤동섭■ 건설교통부 ◇기술서기관 승진 △혁신정책조정관실 고객만족센터장 洪淳年△정책홍보관리실 예산총괄팀 姜周燁△기반시설본부 수자원정책팀 安廷勳△국토균형발전본부 산업입지정책팀 李錫範△부산지방국토관리청 蔣龍燮△부산지방항공청 金春五 ■ 중소기업청 △차장 이기우△정책본부장 나도성■ 한국가스안전공사 △기술안전이사 金在鏞■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융합연구소장 金善昌△IT〃 慶宗旻△복합시스템설계〃 李大吉■ 흥국생명 ◇승진 △전무 李仁晳△기획·마케팅 부실장 申鍾秀△고객서비스팀장 權國憲△복합TM팀장 姜求玉 ◇전보△상품개발팀장 鄭仁坤△순수TM팀장 李準祐■ 금호생명 (본사팀장) △영업기획 李明淵△FC사업 TFT 明京鎬 (지점장)△성동 金瑩敍△금남 李哲△나주 朴千坤△전남 宋東鉉△완주 張馨鐸△상무 尹康燮△영일 金權淳△촉석 李潤泰△AM중앙 河溶柱■ EBS △제작본부장 배종대△기술〃 조병록△콘텐츠사업〃 김영길△시청자참여센터장 손홍석△정책기획〃 임정훈△편성〃 김명세△영상아트〃 이상철△경영지원〃 최운룡
  • [바로잡습니다]

    ●바로잡습니다 9월26일자 29면 한반도선진화재단 28일 창립 기사에서 서울대 이석연 교수를 이승훈 교수로 바로잡습니다.
  • ‘2006 에너지전시회’ 30일까지

    ●바로잡습니다 9월26일자 29면 한반도선진화재단 28일 창립 기사에서 서울대 이석연 교수를 이승훈 교수로 바로잡습니다. 산업자원부가 주최하고 에너지관리공단이 주관하는 `2006 에너지전시회’가 3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태평양홀에서 열린다. 올해로 26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에는 19개국 200여 업체가 참여하고, 세부 주제별로 180여 차례의 세미나도 열린다. 산자부는 국내 참가 업체들에게 수출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코트라와 협약을 맺고 해외 바이어와의 상담을 주선해 준다. 이밖에 퀴즈이벤트, 움직이는 로봇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코너, 지구온난화방지 공연 등 일반관람객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도 열린다.
  • 동심… 젊음… 가을을 부른다

    동심… 젊음… 가을을 부른다

    가을 문턱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다채로운 노래대회를 방송, 눈길을 끈다. MBC는 패기 넘치는 대학생들의 축제 ‘2006 MBC 대학가요제’를 30일 대구 경북대에서 개최한다. 김성주 아나운서와 이효리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대회에는 지난달 27일 2차 예선을 거쳐 선발된 최종 12개 팀이 본선 무대에서 대학생 특유의 새롭고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1977년 첫 회를 시작으로 올해 30주년을 맞은 MBC 대학가요제는 ‘30년의 젊음…죽지 않아!’라는 주제로 다양한 축하공연과 함께 지난 3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된다. 특히 장애인 2명이 멤버로 참여하는 한국재활복지대학 밴드 ‘Z’가 출연, 관심이 쏠린다. 대회 본선에 장애인이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그룹은 1급 시각장애인인 홍득길(드럼)과 2급 지체장애인인 이민호(보컬)를 비롯, 유승현(기타), 서동철(기타), 신동민(베이스), 서민경(건반), 김다솔(보컬)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우리의 공연을 보고 장애인들이 힘을 더 냈으면 좋겠고, 음악계에 장애인들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창작 국악동요를 발굴, 보급하기 위해 마련된 ‘2006 국악동요제’는 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국악동요제는 국악동요 잔치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리는 자리.12개 팀의 창작 국악동요 경연과 함께 역대 수상곡 중 인기곡 모음, 무용계의 신동 이승훈 어린이의 공연, 백운초등학교 널뛰기부 어린이들의 흥겨운 무대 등으로 이뤄진다. 1987년 이후 총 257곡의 수상작을 탄생시켰고,‘뒷산에 올라’‘맑은 물 흘러가니’ 등 8곡이 음악교과서에 실렸다. 후원사인 KBS 1TV에서 추석을 맞아 다음달 3일 낮 12시부터 한시간 동안 녹화 방송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인사]

    ■ 교육인적자원부 ◇고위공무원 △국제교육진흥원장 나종화◇서기관△정책홍보관리관실 김응철△전남대 이연생◇사무관△감사관실 김경호△정책홍보관리관실 이일승△서울대 박태현△충북대 성종석△한국해양대 이익호■ 과학기술부 ◇과장급 승진 △전략기술통제팀장 李性奉△연구개발특구기획단 기획총괄〃 金日煥△국립과학관추진기획단 건설과장 吳圭鎭△소방방재청 전출 金大起 ◇과장급 전보△혁신기획관 金奉守△원천기술개발과장 趙誠贊△원자력안전〃 崔萬燮△우주기술협력팀장 姜秉三 ◇서기관 승진△정책홍보관리실 林耀業△원자력국 趙樂鉉 金鉉洙△국립중앙과학관 丁國奉 ◇서기관 전보△감사관실 高光老△기초연구국 李錫來△과학기술기반국 韓成煥△연구개발조정관실 康建基△기술혁신평가국 盧載翼■ 행정자치부 ◇팀장급 전보 △운영지원팀장 洪性祐△과천청사관리소 운영과장 兪在漢△지방분권지원단 金敏在■ 환경부 △법무담당관 鄭秉喆△토양지하수과장 朴應烈△UNEP 파견 예정 黃啓榮■ 국가보훈처 ◇팀장급 전보 △보훈선양국 현충시설과장 申永敎△제대군인국 제대군인지원센터장 曹夢煥■ 국세청 ◇고위공무원(일반직) 전보△정책홍보관리관 丁炳春 △국제조세관리관 李承宰△법무심사국장 李炳坮△조사〃 吳大植△중부지방국세청 조사3〃 李浚星■ 관세청 ◇부이사관 승진△인사기획관 車斗三△정보기획과장 朴喆九■ 기상청 ◇과장급 전직 △정책홍보관리관실 국제협력담당관 南在哲◇4급 전보△대전지방기상청 예보과 金庸洙◇4급 승진△예보국 예보총괄관실 예보관실 李載屛■ KBS △부산방송총국 시사제작프로젝트팀장 權宗郁■ 한국공항공사 ◇임원 전보 △전략기획본부장 김희선△운영지원〃 함용빈△시설안전〃 위성창△서울지역〃 김충기◇승진△서울지역본부 운영단장(이사대우) 최영철△〃 시설〃(〃) 전동주△〃 항무팀장(1급갑) 조진현△〃 지원총괄〃(〃) 서정만△건설사업추진단장(〃) 유재복△광주지사장(〃) 김옥빈△부산지역본부 운영단장(〃) 주영만◇1급·처장급 전보△미래경영센터장 안광엽△미래경영센터 R&D TF팀장 김병노△비서〃 김종형△기획관리〃 김황용△노무복지〃 장인욱△공항시설〃 이길희△서울지역본부 운영계획〃 박생기△부산지역본부 시설단장 박종화△제주지역본부 〃 문희찬△대구지사장 성종석△청주〃 신종균△여수〃 고갑무△포항〃 최중봉△항로시설본부 지원총괄팀장 김종성△항공인력개발원장 김동훈◇2급 전보△미래경영센터 역량개발TF팀장 남흥섭△혁신전략〃 이미애△조직법무〃 임귀섭△홍보〃 장순자△마케팅〃 박순천△재무회계〃 정덕교△자산관리〃 주민식△외주관리〃 최병기△서비스개발〃 장호상△보안계획〃 오승철△건설사업1〃 정군현△건설사업2〃 권순구△서울지역본부 재무관리〃 최성종△〃 고객지원〃 이효선△〃 보안검색〃 조범행△〃 소방구조〃 권경안△〃 항행정보시설〃 박영진△〃 레이더〃 장세훈△부산지역본부 지원총괄〃 이찬두△〃 재무관리〃 김수봉△〃 고객지원〃 백종은△〃 보안관리〃 최광엽△〃 항무〃 박청하△〃 전기통신〃 이창섭△〃 항행안전시설〃 김명섭△제주지역본부 지원총괄〃 이재훈△〃 재무관리〃 김경화△〃 고객지원〃 염용범△〃 보안관리〃 소금철△〃 항행안전시설〃 현관우△대구지사 운영〃 한규웅△〃 시설〃 황인석△울산지사 운영〃 성기은△〃 시설〃 김한주△양양지사 운영〃 박현재△〃 시설〃 이달주△여수지사 시설〃 윤용호△사천지사장 오성호△사천지사 운영팀장 허상태△목포지사장 강상준△군산〃 이항구△원주〃 지상섭△항로시설본부 시설팀장 김정완△〃 전자〃 고병관△항공인력개발원 교무지원〃 김진천△〃 시설〃 박홍만■ 예금보험공사 ◇부서장 △기획조정부장 申東震△청산지원〃 郭城根△특별조사기획〃 任基淳△자산회수〃 鄭旭鎬△상시감시1팀장 崔孝洵△특별조사1국 부국장 文瀅梧△혁신기획실장 趙顯澈△법무〃 李在二△영남지사장 李炯九△인력개발부(외부파견) 鄭長欽△〃(해외 학술연수) 金丁泰△〃(외부파견) 金光儀 ◇1급 승진△보험정책실장 朴載淳 ◇2급 승진△청산지원부 팀장 鄭大泳△리스크감시2부 〃 權彛勇△적기정리부 〃 趙良翼 ◇3급 승진△상시감시4팀 팀장 金海鐘△정보시스템실 〃 具滋百△금융분석부 〃 尹鍾德△자산회수부 〃 宋官浩 ◇팀장△적기정리부 金炳滿△기금관리부 李鐘薰△기획조정부 林聖烈△리스크감시1부 金光南△기획조정부 孫亨洙△청산지원부 梁二重△국제업무실 朴昞基△자산회수부 韓東錫 張晋榮△보험정책실 金敬鎬△금융분석부 李龍文△조사부 劉仟于△인력개발부(국내 학술연수) 李濟璟■ aT(농수산물유통공사) ◇처장급 전보 △기획실장 許勳茂△수출전략팀장 李光雨△일본마케팅〃 鄭雲溶△유통교육원 유통연구실장 張東秀△수도권화훼단지대책반장 李東赫△서울경기지사장 鄭鎰晩△대구경북〃 金元泰△부산울산〃 南相源◇부장급 전보△인사팀장 尹長根△중장기전략T/F팀 반장 金將來△홍보팀장 李皓善△수출전략팀 가공수출부장 李宗京△수출컨설팅팀장 金浩銅△aT센터운영본부 운영팀장 金鐘完△국영무역1팀 수입관리부장 黃晟夏△품질관리팀장 金洪周△국영무역2팀장 成昌弦△유통교육원 책임연구원 趙道衍△서울경기지사 비축팀장 李廣洙△〃 수출유통〃 金德男△충북지사장 黃亨淵△대전충남지사 관리비축팀장 李昌龍△대구경북지사 수출유통〃 金鍾雄△부산울산지사 관리비축〃 姜璟中△지방이전추진〃 金鍾雄△구미마케팅〃 申賢坤△국영무역1팀 판매관리부장 柳炳烈△정보서비스본부 정보시스템팀장 金桂洙△화훼사업본부 분화팀장 丁信煥△법무팀장 직무대리 田大永■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부속병원장 이강현△부속병원 부원장 김흥태△위암센터장 김영우△유방암〃 노정실△특수암〃 박병규△진료지원〃 이도훈△암예방검진〃 이은숙△진료지원센터 진단방사선과장 김현범△핵의학〃 김석기△진료지원센터 수술실장 정해정△〃 QI〃 험현석△〃 QI실 팀장 김남신△〃 간호과장 유한진(연구소)△기초과학연구부 암유전체연구과장 김인후△호발암연구부 간담췌암연구〃 박중원△특수암연구부장 이승훈(국가암관리사업지원평가연구단)△암등록역학연구부 암등록연구과장·암등록역학연구부장 신해림△〃 암정보연구과장 장윤정△〃 암코호트연구〃 임민경△암관리정책연구부 암예방검진지원연구〃 최귀선(교육훈련부)△교육훈련부장 김선욱(기기획조정실)△기획예산팀장 백승태△정보전산〃 최혁재△정보전산팀 부팀장 윤태식△홍보팀장 정인철△연구지원〃 공인택△기획예산팀 부팀장 이건호(사무국)△경리팀장 박금원△구매〃 조승구■ 서울시립대 △대학원장 민현수△생활관장 김진원△경상대학ㆍ경영대학원 교학과장 장광필△물리학과장 손주혁△교통공학과장 김영찬△국사학과장 구범진■ 서울산업대 △교무처장 孟喜永△기획〃 柳根沃△산학협력단장 李守求△공동실험실습관장 朴翼根■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장 劉載蘭△건국대병원장 李京榮■ 덕성여대 △대외협력처장 朴明淑△교수학습개발센터장 朴成蕙△커리어개발〃 金炅姬△대외협력과장 金成圭■ 성균관대 ◇부장 △산학협력단 연구지원팀 申基昶◇팀장△산학협력단 산학기획팀 崔允漢△〃 산학사업팀 崔元永△대외협력처 국제교류팀 姜權判■ 고려대 △대학원장 최동호△이과대학장 위인숙△의과대학장 정지태△의용과학대학원장 겸 과학기술대학장 김형배△여학생감 신지영■ 서울대 △학생처장 이정재△연구〃 국양△기획실장 김형준△입학관리본부장 김영정△대외협력〃 송호근△기초교육원장 박은정△교무부처장 양호환△학생부처장 박형근△연구부처장 송용상△기획부실장 남익현△기초교육원 부원장 홍종인△서울대발전기금 상임이사 주종남△중앙도서관장 박명진■ 매일경제TV (보도국)△경제부장 류호길△정치〃 최기영△국제〃 정운갑■ 굿모닝신한증권 ◇부장△기업분석 文基熏△투자분석 鄭義錫△IB지원 成基鐵 ◇지점장△강남중앙 金鍾玉△강남 任宗爀△관악 吳星昊△광화문 金起正△구월동 朴熙燮△명동 元鍾湘△목동중앙 金雲培△목동 李相和△방배동 李東勳△서교동 金會三△수내역 金東益△신림 張圭成△안산 金厚根△압구정 白明煜△영등포 柴鈗永△일산 南勇文△창동 金幸哲△구미 李東旭△군산 趙源裁△금정 金智龍△대구동 朱福龍△대구서 金賢起△대구 柳昌坤△동래 陳敬烈△시지 全在光△안동 金潤夏△여천 李成均△영남IB영업부 金聖坤△정읍 金光洙△창원 朴石勳■ KT (전문임원 임용) △신사업추진실장 尹京林■ KTF (전무 전보) △법인사업본부장 이문호△마케팅부문 수도권마케팅본부장 조서환 (상무 전보)△마케팅부문 대전마케팅본부장 홍석관△스포츠단장 노홍내 (팀장 전보)△법인사업본부 사업기획 이명해△〃 솔루션사업 전윤모△〃 솔루션기술지원 이한우△〃 수도권법인마케팅 박홍대△〃 부산법인마케팅 윤문철△〃 대구법인마케팅 김훈구△〃 광주법인마케팅 박주신△〃 대전법인마케팅 권병기△수도권마케팅본부 강남마케팅단 안양마케팅 이상기■ 서울경제신문 (서울경제) △상무이사 겸 광고국장 최관이△편집국장(이사대우) 이종환△경영기획실 실장직대 부국장 겸 백상경제연구원 부원장 김준수△논설위원실 부국장 김인모 이현우△총무국 〃 겸 총무부장 원용범△독자서비스국 부국장 권영화△광고국 〃 김춘식△〃 제작부 부국장대우 차명수△〃 관리부 〃 김인철(㈜서울경제골프컨설팅)△대표이사 사장 김성종
  • 재향군인회장등 취임축하 행사

    김한규(전 총무처장관)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은 21일 오후 6시30분 서울 프레지던트호텔 31층 대연회장에서 이수성(전 국무총리) 새마을운동중앙회장, 박세직 재향군인회장, 김영순 송파구청장, 이승훈 대불대 총장 등의 취임 축하 행사를 갖는다.(02)753-0008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5) 국내최초 서양식 약현성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5) 국내최초 서양식 약현성당

    한국 최초의 성당을 들라면 많은 이들이 대뜸 명동성당을 꼽는다. 명동성당이 갖는 한국 천주교의 얼굴이자 심장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런데 명동성당보다 무려 6년이나 앞서 세워진 성당이 있다. 서울 중구 중림동 149번지, 서울역 서쪽 맞은 편 언덕에 보일듯 말듯 앉아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약현성당(현 중림동성당, 사적 제252호)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892년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성당으로 건립되어 이후 한국 성당건축의 모델이 된 유서깊은 건물. 한국교회사상 첫 서양식 건축물이란 의미에 더해 1984년 성인 반열에 오른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무려 44위의 성인을 낳은 한국 최대의 순교지인 옛 ‘서소문 네거리’를 품 안에 두고 있는 성지이다. 숭례문에서 서울역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다가 염천교를 건너 바로 산등성이를 오르면 만나게 되는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조의 작은 건물. 성당 초입의 큰 길 표지판엔 ‘천주교 중림동(약현)성당 한국최초의 고딕성당’이라 쓰여 있고 정문의 돌기둥에 ‘약현천주교회’라 새긴 글씨가 또렷하다. 약현(藥峴)은 원래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곳에 위치한 고개였는데, 약초 밭이 많아 약전현(藥田峴)으로 불리다가 지명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성당이 들어선 것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아호 반석)의 집이 있었기 때문. 반석골이라 불렸던 현재의 중림동에서 태어난 이승훈은 중국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해 교회 창설의 주역을 맡았던 인물.‘한국 천주교회의 베드로’로 통하며 본명(반석)대로 교회에서 반석의 역할을 톡톡히 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최필공, 정약종, 홍교만, 홍낙민, 최창현 등과 함께 체포되어 성당 아래쪽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참수당했다. 참수될 당시 남긴 “월락재천 수상지진”(月落在天 水上池盡,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이란 말은 지금도 한국 천주교회의 명언으로 남아 있다. 약현성당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약현 본당은 본래 1887년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Blang)주교에 의해 수렛골(현 순화동)에서 한옥 공소로 출발한 역사를 갖고 있다.1891년 종현(명동)본당에서 분리되어 서울에서 2번째, 전국에서 9번째로 설립된 본당인 셈이다. 당시 명동본당은 4대문 안쪽에 있다고 해서 ‘문안본당’, 약현본당은 ‘문밖본당’으로 불렸다고 한다. 신자 수가 ‘문안본당’ 즉 명동성당보다 훨씬 많아지면서 조선교구가 새로 지은 것이 바로 약현성당이다.1891년 10월 건축을 시작, 착공 1년만인 1892년 공사를 마무리지었다.1898년 종현에 우뚝 섰던 명동성당보다 무려 6년이나 먼저 세워진 셈이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들어선 서양식 성당에서 하루 세번씩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당시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축성식을 집전한 뮈텔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서한을 통해 이렇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이제 서울 문 밖 중심에 성당이 우뚝 솟았다. 그것은 아담하며 또한 성당다운 성당으로서는 한국 최초이고 유일하다.” 건립 당시의 규모는 길이 약 32m, 폭 12m, 종탑 높이 22m, 넓이 120평으로 목조 마룻바닥이었다.1905년 종탑 꼭대기에 첨탑이 올려진 데 이어 1921년에는 성당 내부의 칸막이가 철거되고 벽돌 기둥이 돌 기둥으로 바뀌었다.1974년부터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1977년 국가 문화재(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었으나 1998년 2월 한 행려자가 저지른 방화로 성당 안이 거의 전소되고 지붕이 내려앉는 비운을 맞았다. 벽돌 구조물과 앙상한 잔해만 남았으나 1년 6개월여에 걸친 공사를 거쳐 2000년 9월 옛 모습을 찾았다. 시내쪽인 동측에 정면 출입구, 남북향의 측면 출입구 각 1개씩을 갖춘 성당은 표지판에 적힌 대로 전체적으론 고딕성당이지만 고딕보다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강하다. 몸채에 곁채 2개가 딸린 라틴십자형 삼랑식(三廊式) 구조인데, 요란한 장식들이 없어 오히려 더 장중한 느낌을 받는다. 가운데 두 줄의 돌기둥이 늘어섰고, 기둥 바깥의 양쪽 신자석 창은 둥근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가장 높은 가운데 부분 주위로 점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의 둥근 천장은 성당의 가장 독특한 부분이다. 제대 좌우 신자석 정면에 성 모자상과 성 요셉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좌우 벽에 14처가 걸려 있다. 정면 제대 뒤쪽을 장식하는 3개의 유리화를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가 성전 안을 환하게 비추도록 돼 있는데 이 때문에 교계에서는 ‘전국의 성당 중 가장 밝은 성당’으로 통하기도 한다. 약현성당은 사적 252호로 지정된 성당건물 말고도 서소문순교자기념관, 가톨릭종교음악연구소, 가톨릭출판사 등이 자리잡아 명실상부한 한국 가톨릭문화의 중심지.1991년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세운 서소문순교자기념관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자랑거리이다. 기념관 전면에 1996년 조광호 신부(베네딕토수도회)가 제작한 유해및 위패 봉안실이 들어 있는데, 이곳에는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남종삼, 허계임 등 44위의 순교성인을 비롯해 아직 시성(諡聖)되지 못한 순교자 58위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 현재 약현성당의 신자는 3500여명, 약현본당에서 분리된 본당만 해도 90여개나 된다. 천주교 전체적으로 신자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이 성당의 면모는 사뭇 다르다. 성당이 갖는 역사적 전통 때문인지 몇대에 걸쳐 성당을 다니고 있는 ‘대물림 신자’들이 많은 게 특징. 다른 지역으로 이사간 뒤에도 성당을 옮기지 않고 꾸준히 이 성당을 찾는 신자도 전체의 3분의1이나 된다고 한다. kimus@seoul.co.kr ■ 최대의 순교지 서소문 내려보며 약현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서소문공원 부근, 즉 당시의 서소문 밖 네거리는 신유(1801년)·기해(1839년)·병인(1866년)박해를 거치면서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이 처형을 당한, 한국 최대의 순교지이다.1984년 성인반열에 오른 순교자 103위 가운데 44명이 바로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서울 지역 순교지 중 절두산이 병인박해 때의 집단 처형장소, 새남터가 국사범·지도자급 인물들의 형 집행처였다면 서소문 밖 네거리는 주로 일반 평신도들의 처형장이었다. 포졸들은 처형할 신자들을 태운 우차를 울퉁불퉁한 서소문 언덕길을 내리달려 신자들을 피투성이로 만든 뒤 아래쪽 네거리에서 처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신자들이 순교한 지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현고가도로와 의주로가 교차하는 서소문공원 근처로 추정된다.1984년 한국 순교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해 이곳에 순교자현양탑이 세워졌다. 서소문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1984년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은 1996년 5월 공원을 재개발하면서 철거되었는데, 약현성당이 머릿돌과 동판 석재를 되살려 성당 안으로 옮겼다.
  • [부고]

    ●고홍명(한국 PILOT만년필 대표이사 회장)씨 상배 석주 석자(미국 거주)씨 모친상 박문규(캘리포니아 국제대학 학장)씨 빙모상 고동욱(하이트맥주 마케팅부 대리)승욱(F.N.C.Kolon 중국상해지사 근무)윤정(pinz 대표)씨 조모상 김진표(가수)지영(뮤지컬 헤븐 제작 겸 배우)씨 외조모상 3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 (02)3410-6915●박일근(전 한국가스공사 관리본부장)씨 별세 동희(봄내병원 원장)준희(한국가스기술공사 과장)상희(RE BRIDGE 이사)씨 부친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6시 (02)3010-2237●백현기(한영고 교장)씨 모친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10시 (02)3010-2238●이시자(보문개발 감사·CBA KOREA 감사)씨 별세 최동한(보문개발 회장)동흥(CBA KOREA 사장)씨 모친상 DAVID(K.E.I 워싱턴D.C)씨 조모상 1일 서울대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 (02)2072-2091●김종윤(서울참소아과의원 원장)씨 부친상 이승훈(일산 국립암센터 원장)씨 빙부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 (02)3010-2263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이야기] (1)’한국 천주교의 얼굴’ 명동성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이야기] (1)’한국 천주교의 얼굴’ 명동성당

    1898년 서울 목멱 자락인 종현(鐘峴)에 우뚝 세워진 ‘한국 천주교의 얼굴’ 명동성당(중구 명동 2가1, 사적 제258호).60대 후반을 넘긴 세대에겐 지금도 ‘언덕 위의 뾰족집’으로 통한다.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45년 해방 후부터였고 원래 이름은 당시의 지명을 딴 ‘종현성당’.1900년 이전 세워진 건물 중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것이면서 가장 순수한 고딕양식의 이 성당은 ‘뾰족집’이란 별명에 걸맞게 전형적인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고딕은 신성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로마교황의 권력이 증대하고 그리스도교가 융성하던 12세기 프랑스에서 완성된 건축양식. 교회의 승리를 과시하기 위한 앙천(仰天)의 구조가 특징이다. 명동성당 역시 경사지 구릉의 산봉우리를 깎은 정상부에 자리잡아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고 진입로와 성당의 높이가 약 13m의 고도차를 가져 확연히 드러나는 위용을 갖추고 있다. 뾰족한 아치와 궁륭천장, 기둥에 의해 구획되는 6칸의 회중석 공간과 교차부, 두 칸의 익랑(翼廊), 두 칸의 성단(聖壇) 구조의 삼랑(三廊)식 라틴십자형 내부공간이 고딕양식의 전형이라면 단순한 외관과 견고한 벽체의 구조체계와 공법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다. 대부분의 중세 유럽 성당이 서쪽 입구를 둔 동서배치였던 데 비해 정북에서 30.5도 서쪽으로 기울어진 북북서쪽 입구를 가진 남북배치형태는 파격이다. 규모는 건축면적 427.14평, 연면적 612.65평에 외곽길이 68.25m, 외곽 폭 29.02m, 건물높이 23.48m, 종탑높이 46.70m. 그런데 명동성당은 왜 하필 이곳에 세워졌을까. 그것은 성당을 건립한 선교사들이 당시 높은 곳에 교회를 세우는 전통을 고집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인근 명례방이 한국 최초의 순교자를 낸 천주교회의 태동지임을 의식해서였다. 흔히 한국천주교의 특징은 ‘박해와 순교로 점철된 자생적 신앙’으로 요약된다. 한국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이 청나라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한게 1784년. 한국천주교는 이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이승훈은 현재의 명동 부근인 수표교 근방 이벽의 집에서 세례를 베풀고 신앙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이 신앙공동체가 성장해 당시 명동일대인 명례방의 역관 김범우의 집에서 비밀리에 신앙집회가 열렸지만, 집회가 발각되어 김범우는 형벌과 고문끝에 1786년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된다. 이후 100여년간 한국 천주교는 신도 1만여명과 성직자 10여명이 순교하는 고초를 겪었다. 명동성당이 세워진 종현(鐘峴)은 이처럼 한국 최초 교회의 발상지이며 최초의 순교자였던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례방 옆 언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조정에서는 성당터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성당터가 조선왕궁을 내려다보고 있고 특히 조선조 임금들의 영정을 모신 영희전의 주산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정과의 부지 소유권 분쟁이 오랫동안 계속됐지만 결국 교회가 토지소유권을 인정받아 성당 건립이 이루어지게 됐다. 이 사건은 천주교를 적대적으로 대했던 정부가 차꼬를 푼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많은 종교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1898년 축성후 다섯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쳤으며 지금은 외벽공사가 한창이다. 성당 내에는 제구, 가구를 포함하여 많은 고정구조물이 있는데 성당 축성과 함께 마련된 대리석 주제대와 벽돌조의 부제대, 성상과 14처 등을 제외한 모든 게 완공 이후 제작 설치됐다.1920년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 성성 25주년 기념으로 제작 설치된 강대부분은 해체되어 독서대와 목조제단으로 조립되어 사용되고 있다. 닫집은 강대와 같이 철거되어 주교좌 상부에 설치되었다. 파이프 오르간 역시 뮈텔 주교의 주교성성 25주년을 기념하여 전국의 신자들이 모금한 성금 2만원으로 설치됐지만 미국제 전자식 파이프오르간으로 대체된 뒤 현재의 독일 보슈사 파이프 오르간으로 재설치되었다. 복자제대와 79위 복자상본은 1925년 복자시복 때 시설된 것이다. 건립 당초의 14처는 1963년 무렵 다른 작품으로 교체되었으며 원래의 것은 수유리성당에 보관되고 있다. 바닥도 원래 마루바닥에 의자가 없었지만 1950년대 말 장궤의자가 도입되었다. 일제강점기와 정부수립, 전란기를 거치며 현대사의 중심 공간 역할을 했던 명동성당은 1960년대 후반부터 군사정권에 맞선 ‘해방구’가 되어 1987년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명동성당은 다시 태어나려 한다.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한 사제들 사이에 “본연의 신앙 터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주변의 문화시설을 아우르는 문화특구 지정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이창영(45·가톨릭신문사사장) 신부는 “한국 천주교의 심장이랄 수 있는 명동성당은 교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사회적으로 이용된 경우가 많다.”며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기 위해 초기 교회의 신앙을 바탕으로 생명존중과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 명동성당은 어떻게 건립됐나 최초의 순교자를 낸 명례방을 중심으로 창설된 이 땅의 신앙공동체는 처음 북경교구에 소속됐다가 1831년 로마교황청에 의해 조선교구로 설정됐고 교황청은 파리외방전교회로 하여금 이 신설교구의 전교를 맡겼다.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가 성당 부지매입에 나섰고 1887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비준된 뒤 언덕을 깎아 내는 정지작업이 시작됐다. 조정과의 부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기공식은 1892년 5월8일에 가서야 있게 된다.6년간에 걸친 공사 비용은 성당 축성 직후의 독립신문 등 기사를 볼 때 당시 돈으로 약 6만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비는 부지 매수비용을 포함해 대부분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지원에 의한 것이었으나 신도들의 노력봉사와 성금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벽돌은 대부분 조선 정부에서 기와를 굽고 있던, 진흙땅이 있던 용산 한강통 연와소에서 제작해 조달했고 벽돌공과 미장이 목수는 청나라에서 초빙했다. 완공까지에는 인부들의 잇딴 사상과 자금난에, 블랑주교와 설계자인 코스트 신부의 사망까지 겹쳐 수차례 공사가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었다.1890년부터 1932년까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기록한 일기에선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읽혀진다. 마침내 성당이 위용을 드러낸 것은 1898년 5월29일. 주한외교사절과 조선 정부의 고위관리들, 재한 프랑스 선교사들, 한국 신부들과 신자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엄한 축성식이 열렸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글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공직자 재산공개] 8·31대책 주역들 ‘강남·목동맨’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강남 집값 잡기’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행정부 1급 이상 공무원 643명의 절반 이상인 326명은 공교롭게도 강남에 땅이나 집이 있다. 일부에서는 집값 안정 정책이 잘 먹혀들어가지 않는 이유로 들기도 한다. 특히 부동산 투기 근절과 시장 안정을 위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마련했던 주역들이 8·31 대책의 타깃이었던 강남과 목동 등지에 중·대형 아파트를 갖고 있었다.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본인 명의로 양천구 목동에 신고가격 7억 5650만원짜리 47평 아파트와 4600만원짜리 14.6평 오피스텔을 갖고 있다. 재정경제부 김용민 세제실장은 서초구 아파트 등 10억 5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밖에 재산 등록 대상자 가운데 ▲재경부 11명 중 9명 ▲감사원 12명 중 10명 ▲법무부 9명 중 7명 ▲건설교통부 9명 중 5명이 ‘강남맨’이다. 반면 1급이 5명인 농촌진흥청과 3명인 산림청은 강남에 부동산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집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고위공직자는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 박판영 이사장이다. 경기도 용인 수지의 아파트를 비롯, 전국에 주택 13채를 소유하고 있다. 농림부 김달중 정책홍보관리실장은 배우자 명의로만 11곳에 아파트와 상가를 갖고 있다. 중소기업청 이승훈 차장도 배우자가 뉴욕에 각각 12억 7000여만원,5억 6000여만원짜리 고급 주택을 갖고 있다. 재산이 증가한 공직자 526명 가운데 상당수는 급여저축으로 돈을 모았다고 신고했다. 특히 청와대 비서실의 이병완 비서실장을 제외한 8명은 ‘월급’으로만 평균 5000만원 이상을 모았다. 고위직일수록 자기 돈은 쓸 일이 없다는 뜻이라는 해석이다.이밖에 광주과학기술원 나정웅 원장은 말을 4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국무조정실 박종구 경제조정관은 배우자가 1.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와 1.4캐럿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9점의 보석을 소유하고 있다. 박 조정관은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의 동생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사시·행시 여성이 휩쓸었다

    행정고시와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가 22일 발표됐다. 행시 행정공안직과 사시 수석 합격을 모두 여성이 차지해 예년에 이은 여성파워를 과시했다. 정부는 이날 제49회 행시 최종 합격자 287명과 제47회 사시 최종 합격자 1001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행시에서는 조승아(여·23·서울대 중어중문학과)씨와 류대규(27·고려대 기계공학과)씨가 행정공안직과 기술직 수석을 각각 차지했다. 사시에서는 최은경(여·25·서울대 영문학과)씨에게 수석 합격의 영광이 돌아갔다. ☞ 제47회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 바로가기 ☞ 제49회 행정고시 합격자 명단 바로가기 올해도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법무부에 따르면, 모두 2만 1585명이 지원해 1001명이 최종 합격한 올해 사시에서 여성 합격자는 323명으로 32.27%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여성 합격률 24.38%보다 무려 10%포인트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역대 최고기록이다. 모두 1만 1542명이 지원해 40대1의 경쟁률을 보인 행시에서도 여성 합격자는 전체 합격자의 37.8%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앙인사위원회에 따르면, 합격자 287명 가운데 109명이 여성으로, 기술직을 제외한 행정공안직의 여성 합격률은 무려 44%에 달한다. 이밖에 행시 행정공안직의 이승훈(22)씨와 행시 기술직의 이선희(22)씨, 그리고 사시에서는 오대석·전용수(21)씨가 최연소 합격했다. 강혜승 김효섭기자 1fineday@seoul.co.kr
  • [아침을 먹자] 애인 덕분에 동료들도 꿀맛식사

    [아침을 먹자] 애인 덕분에 동료들도 꿀맛식사

    ‘아침은 황제처럼, 점심은 평민같이, 저녁은 거지처럼’ 옛 어른들은 하루 세끼 가운데 아침을 가장 든든하게 먹었다. 아침 일찍부터 논밭을 갈고 힘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귀찮다고, 늦게 일어났다고, 다이어트한다고 아침을 굶는 일이 잦아졌다. 아침식사가 두뇌 회전을 돕고, 비만과 충치를 예방한다는 의학 보고서가 속속 나오는데도 ‘나쁜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서울신문과 CJ가 ‘아침을 먹자’ 캠페인을 열고 아침 먹는 습관을 익히도록 응원하고 있다. 아침을 굶는 사연과 새로운 각오를 홈페이지 게시판(www.seoul.co.kr)에 보내면 목요일에 아침도시락을 무료로 배달해준다. 독자의 반성과 관심이 쏟아졌다. 자신보단 남편을, 가족을, 이웃을 걱정하며 아침도시락을 신청했다. 27일에는 김포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출근하느라 아침을 거르는 남자친구를 위해 아침도시락을 신청한 차수인(25)씨 등 5그룹에게 웰빙두부 ‘백설 행복한 콩’으로 만든 두부샐러드와 두부셰이크 30개가 배달됐다. 서울신문과 CJ의 아침식사 응원은 계속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얼른 결혼해서 아침을 챙겨주고 싶지만….” 회사원 차수인(25)씨는 지난 20일 서울신문 ‘아침을 먹자’ 게시판에 사랑스런 글을 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침도시락을)신청합니다.”라고 시작한 신청글은 3년을 함께한 남자친구 이승훈(27)씨에 대한 걱정과 사랑으로 가득했다. “김포에 사는 오빠가 서울에 있는 회사를 다닙니다. 아침마다 지하철로 1시간 넘게 출근하느라 아침을 챙겨먹지 못해요.” 이씨는 일터인 서울 종로구 당주동 ‘레저시대 회원거래소’에 오전 8시쯤 도착해야 한다. 오전 6시부터 서둘러야 한다. 함께 사는 부모님께 아침을 준비해달라 부탁하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 아침을 먹은 게 손에 꼽힐 정도다. 오전내내 배고프다 보니 점심은 폭식할 때가 많다. 차씨도 “(아침을 굶으니)오빠가 오히려 살이 많이 쪘다.”고 속상해했다.“얼른 결혼해 아침마다 식사를 챙겨주고 싶지만, 아직은 여의치 않다.”면서 “내년에 결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7일 이씨는 쑥스러운 미소로 ‘사랑의 도시락’을 받았다. 레저시대 동료들은 부러움에 “여자친구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느냐.”며 한마디씩 던졌다. 도시락이 5개라 아침을 굶은 동료 직원들과 둥그렇게 모여앉아 아침을 즐겼다. 깍두기 모양으로 자른 ‘백설 행복한 콩’두부와 얇게 저민 야채를 펄프용기에 담아 드레싱을 곁들어 버무렸다. 두부셰이크는 빨대로 저어 거품을 일으켰다. 이씨는 “고소하고 상큼하다.”고 평했다.“셰이크에는 소금 간을 조금더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여자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결혼할 때까지 지금처럼 한결같이 사랑할게. 우리 싸우지 말고 잘 지내자.” 차씨도 화답했다.“조금만 참아. 결혼하면 내가 아침밥 꼭 챙겨줄게.” 27일 두부샐러드와 두부셰이크를 받은 독자 명단 ▲차수인(서울 종로구 당주동)▲차혜경(경기도 동두천시 송내동)▲송지영(서울 성북구 하월곡동)▲김미숙(인천 연수구 동춘동)▲함석미(서울 성북구 상월곡동) CJ㈜가 만든 웰빙두부 ‘백설 행복한 콩’은 인공첨가물인 소포제와 유화제를 첨가하지 않은 자연두부이다. 옛 할머니처럼 콩과 물, 간수만으로 만들어 두부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420g 2700원.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독재시대 침묵 용서를”

    유지담·윤재식·이용우 등 대법관 3명이 10일 퇴임식을 갖고 6년 임기를 마무리했다. 재임중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유 대법관은 이날 퇴임사를 통해 35년 동안의 법관생활을 되짚어보고 잘못한 점을 사과했다.●“권력에 맞서야 할때 외면” 유 대법관은 “무엇보다 부끄러운 것은 권력에 맞서 사법부의 독립을 외쳤어야 할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 침묵했다.”면서 “사법부에 대한 비평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이를 외면한 채 ‘사법권 독립’,‘재판의 권위’라는 명분으로 동조하고 싶어했다.”고 털어놓았다.유 대법관은 “환송을 받기보다는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라면서도 “그릇된 유산을 청산하고 진정 국민을 섬기는 법원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새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법부를 탄생시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퇴임사를 끝맺었다. 대법관의 퇴임사는 자신의 업적을 소개하면서 후배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곤 했다는 점에서 이날 유 대법관의 퇴임사는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오늘까지 후임대법관 후보자 추천 이날 퇴임한 대법관 3명의 후임 인선을 위한 준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법원은 11일까지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받고 오는 17일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대법원은 강신욱 대법관과 손지열 법원행정처장, 천정배 법무장관, 천기흥 대한변호사협회장, 송상현 한국법학교수회장, 이승훈 대전지법 부장판사 등 법조인사 6명과 권영빈 중앙일보 사장, 김성훈 상지대 총장, 이광자 서울여대 총장 등 비법조 인사 3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대법관 기준으로 전문적 법률지식과 합리적 판단능력을 보겠다고 밝혔다.조무제 전 대법관 이후 지역법관 출신이 없고, 남아 있는 대법관들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출신지역·학교를 안배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수·서열파괴의 폭에도 법조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서울대 출신 후보로는 이흥복 부산고법원장·손용근 법원도서관장·김지형 사법연수원 연구법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또 사법고시 13∼17회 출신인 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이홍훈 수원지법원장·민형기 서울고법 수석부장 등이 후보군에 꼽힌다. 법원 외부 인사 중에는 최병모·문흥수·박시환·박원순 변호사 등이 유력하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WE에서 경품을 펑펑 쏩니다~

    WE에서 경품을 펑펑 쏩니다~

    파란 물감이 뚝뚝 묻어 나올 것 같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언젠가 한번은 날아보리라.’라는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이렇게 행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자면 엄청난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주도 어김없이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비타천플러스를 드립니다. 밑의 작은 그림조각 중 큰 그림과 다른 조각을 찾아 엽서에 붙여 보내주세요. 추첨을 통해 5분께 ‘비타천플러스 1박스’(100병·5만원 상당)를 보내 드립니다. ■ 보내실 곳 (100-745)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25 서울신문사 편집국 We팀(성명, 우편번호를 포함한 주소, 전화번호 반드시 기재) ■ 마감 10월10일 오후 6시 도착 ◆85,86호 당첨자 85호 이은경(서울 양천), 왕도경(서울 금천구), 김윤희(서울 강서), 우현석(서울 송파), 김진형(인천 계양), 박경옥(서울 강남), 강지민(경기 고양)이형경 (서울 광진), 이승훈(서울 동대문)김정기(경기 고양) 86호 최종순(서울 구로), 김미숙(강원 춘천), 한영희(서울 강서)반혜정(경남 양산), 이순주(서울 동작) 결혼이야기 당첨자 ●촬영권은 박광수·김일심씨, 롯데월드 자유이용권 임광욱·시정인씨. 당첨자는 주소와 전화번호를 we@seoul.co.kr로 보내주세요.
  • 산자부 차관보 허범도씨 자원정책실장 오영호씨

    정부는 16일 산업자원부 차관보에 허범도(행정고시 17회) 무역위원회 상임위원을 임명했다. 또 자원정책실장에는 오영호(행시 23회) 차관보를, 무역위 상임위원에는 정준석(행시 19회) 중소기업청 차장을 각각 임명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청 차장(1급)에는 이승훈(행시 21회) 산자부 자본재산업국장을 승진, 임명했다. 허 차관보는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정책국장 및 차장 등을 거쳤다. 오 실장은 산자부 산업기술국장과 주미 대사관 참사관 등을, 정 상임위원은 상공부 국제협력투자심의관과 생활산업국장 등을 각각 거쳤다. 이 차장은 산자부 감사관과 자본재산업국장을 지냈다.
  • 재경·산자부 ‘세대교체’ 돌풍 분다

    재경·외교·행자·산자부 등 4개 부처 복수차관을 포함해 11개 기관의 차관급 인사가 모두 내부 승진으로 이뤄지면서 그에 따른 ‘후속인사’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재경·산자부 등 경제부처는 대폭적인 후속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돼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반면 행자부와 외교부는 소폭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재경부 재정경제부는 권태신 2차관이 행시 19회인 점을 들어 세대교체의 돛이 올려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행시23회인 김석동 차관보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있을 2∼3급 국장급 인사는 크게 젊어질 공산이 크다. 이번 차관급 인사에서 경제부처는 모두 영·호남 출신들이 차지했다. 박병원 재경1차관은 부산, 권 2차관은 경북 영천, 진동수 조달청장은 전북 고창, 유임과 함께 승격된 오갑원 통계청장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영·호남의 구도가 됐다. 윤대희(행시17회)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은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당분간 권 2차관의 업무를 보되 나중에 수석자리를 보장하는 쪽으로 정리됐다는 후문이다. 후속인사로는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파견간 김성진(행시19회) 전 공보관이 1급으로 승진해 국제업무정책관을 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1급인 조성익(행시20회) 경제자유구역단장은 정책홍보관리실장 후보로 거론된다. 이 경우 조 단장의 후임에는 이철환(행시20회) 국고국장이나 농림부에 파견간 장태평(행시20회) 농업구조정책국장이 승진할 가능성이 있다. 장 국장이 국세심판원장으로 갈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행시21회인 김경호 홍보관리관도 1급으로 승진,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후임 홍보관리관에는 김교식(행시23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이 유력하다.●공정위·산자부 공정위는 당초 거론되던 서동원(행시15회) 상임위원이 아닌 강대형(행시13회) 사무처장이 차관으로 승진하면서 예상보다 후속인사의 폭이 좁아졌다. 행시 기수로 따져 승진이 가장 늦은 부처로 남게 됐다며 적지 않은 불만도 나온다. 후임 사무처장에는 서 위원과 허선(행시17회) 경쟁국장, 이병주(행시20회) 독점국장 등이 경합 중이다. 경쟁국장에는 워싱턴 주재관을 지낸 뒤 보직을 받지 못한 김병배(행시20회) 국장이 유력시된다. 산업자원부는 차관 인사에서 ‘무리수’가 없었던 만큼 후속 인사도 무난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중소기업청과 교류 당시 생활산업국장에서 중기청 차장으로 옮긴 정준석(행시19회) 차장이 본부 1급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럴 경우 이재훈(행시21회) 무역투자실장이 자원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길 것 같다. 이 실장은 자본재산업국장 등을 거치며, 자원 및 에너지분야 업무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또 본부 최고참 국장급인 이승훈(행시21회) 자본재산업국장이나 고정식(특별채용) 에너지산업심의관 등의 승진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산자부는 행시 21∼25회가 50여명이나 돼 다른 부처보다 인사 적체 현상이 심한 편이다. 따라서 승진인사가 이뤄지면 1급 진용이 17∼19회에서 19∼21회 중심으로 재편되는 등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행자·외교부 행자부는 복수차관 인선에 따른 후속인사의 폭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 전자정부본부장이 공석인데다, 일부 자치단체 부단체장 인사도 예정돼 있어 인사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우선 문원경 2차관의 임명으로 공석이 된 지방행정본부장에 권혁인(행시19회) 청와대 인사비서관이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이르면 29일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권 비서관이 청와대로 파견가기 전 자치행정국장을 맡아 지방행정 경험이 풍부한데다 행자부 내 1급 가운데 마땅한 적임자가 없기 때문이다. 개방형으로 공모 중인 전자정부본부장(2급)에는 김남석(행시23회)혁신기획관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이동 가능성이 높다. 외부에서 유능한 인물이 없을 경우, 옮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 명예퇴직한 박재택 울산부시장 후임에는 김국현(행시19회) 혁신전략팀장과 배흥수(육사29기) 정부청사관리소장 등 여러 명이 거론되고 있다. 송하진(행시24회) 지방분권지원단장도 민선단체장 출마를 위해 명퇴를 신청함에 따라 인사 요인을 더했다.한편 외교부는 외무고시 7회인 유명환 2차관이 임명됨에 따라 후임인사도 소폭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백문일 조덕현 장세훈기자 hyoun@seoul.co.kr
  • WE에서 경품을 펑펑 쏩니다~

    WE에서 경품을 펑펑 쏩니다~

    “대∼한민국” 지난 2002년 태극전사를 향해 메아리쳤던 응원의 함성이 다시 서울 광화문에 메아리쳤습니다. 월드컵의 감동을 이어 2006년 독일 월드컵으로 가기 위한 붉은 악마들의 힘찬 함성입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는 역시 시원한 콜라와 따뜻한 팝콘을 빼놓을 수 없죠. 달콤한 팝콘이 생각나시는 분은 아래 틀린 그림을 엽서에 붙여 보내주세요. 모두 20명을 뽑아 콘아그라사의 전자레인지용 팝콘인 액트투(ACTⅡ·5만원 상당)36봉지 1박스씩을 드립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 경품 : 콘아그라사의 팝콘인 액트투(ACTⅡ) 1박스,36봉지 ■ 보내실 곳 : (100-745)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25 서울신문사 편집국 We팀 ■ 마감 : 6월 20일 오후 6시 도착. 당첨자 발표는 6월23일자 신문. ● 70호 당첨자는요 유영희(경기 수원), 한성주(서울 양천), 이승훈(서울 동대문), 김미희(서울 서대문), 최자규(강원 강릉), 이순주(서울 동작), 이은경(경기 안산), 윤지현(서울 성북), 이하은(서울 강남), 이욱원(서울 광진) ★70호 정답 : 2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정감록은 조선후기 한국에 전파된 천주교와도 만났다? 서쪽에서 들어온 새 학문이라 당시엔 서학(西學)으로 불린 천주교와 정감록의 관계에 관심을 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천주교와 정감록의 관계는 쌍방향 교류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에 담긴 ‘해도진인(海島眞人)’이란 관념을 빌려갔다. 또한 ‘정감록’처럼 편년체 예언서 형식을 차용해서 ‘니벽전’이란 천주교신자들만의 예언서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정감록 신앙집단은 ‘요한계시록’에 보이는 말세관에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견했다. 얼핏 생각하면 서로 대립적이었을 것만 같은 정감록 신앙과 천주교 신앙 사이에 양방향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거리가 될 만하다. 알다시피 18∼19세기 한국의 천주교는 일종의 비밀 종교단체였다. 정감록 신앙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천주교회에 호응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민중이었다. 정감록의 경우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양자는 저마다 종교 철학적 출발점은 달랐지만 신앙집단으로서 사회적 구성이 엇비슷했고, 그들이 처한 정치 문화적 배경도 같았다.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조선 후기 천주교와 정감록 신앙은 이를테면 이란성(二卵性) 쌍생아와도 같았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해도진인(海島眞人)으로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이때 정감록과 서학의 미묘한 관계를 증명하는 사건 하나가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청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정감록에서 말하는 해도진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단 이야기다. 알고 보면 이미 1794년부터 주문모 신부는 국내에 잠입해 전교활동을 벌였다. 그 당시 국왕 정조는 천주교를 그다지 심하게 탄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세는 나날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제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유교 국가인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이를 국가체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였다. 1801년 정월, 정조가 세상을 뜨고 나이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올랐다. 섭정을 맡은 정순대비(貞純大妃)는 지배층의 정서를 대변하듯 천주교를 엄금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소동을 겪은 끝에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 100여명이 처형되고 400명가량이 유배되었다. 그 중에는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 지도급 천주교 신자들 및 진보적인 학자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사실 신유박해는 천주교세의 팽창에 불안을 느낀 지배층의 종교탄압인 동시에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의 일부이기도 하였다. 신유박해에 관한 ‘실록’ 기사를 살펴보면 문제의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그 대강을 간추려 보겠다. 당시 체포된 사람 중에 김건순이란 서울 양반이 있었다. 그는 집안도 좋고 재산도 많아 어느 모로나 부족함이 없었는데도 방술(方術)에 관한 책들을 유독 좋아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그는 이를테면 정감록과 같은 비결이나 도술에 관한 책을 늘 끼고 살았다. 자연히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 중엔 천주교 신자들도 끼어 있었다. 신자들의 소개로 그는 주문모 신부를 만났다. 김건순의 눈에는 주문모 신부가 도사 중에서도 출중한 ‘이인(異人)’으로 비쳤다. 늘 주문모를 성심껏 모시던 김건순은 주문모에게 함께 해도(海島)로 들어가자고 간청했다. 섬에 들어가서 무기를 마련하고 큰배(巨艦)를 만들어 중국으로 쳐들어가자고 했다. 병자호란 등 청나라로부터 받은 원한을 씻어보자는 것이었다. 장차 진인이 해도에서 나와 세상을 평정한다는 정감록의 내용에 공명했던 김건순은 이런 제안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주문모는 이를 거절했다. 김건순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주문모에 대한 그의 기대는 사그라지지 않아 결국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당시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 중에서 김건순은 지적 수준으로나 재력 면에서 최상위층에 속했다. 그런 그조차 해도에서 진인이 나와 세상을 바꾼다는 정감록의 예언에 매달려, 주문모를 진인으로 상정해 거사를 꿈꾸었던 것이다. 조선의 관헌 앞에서 털어놓은 말로는 장차 청나라를 공격할 생각이었다고 했지만 정말 그랬을지는 의문이다. 하필 가까운 조선을 놔두고 머나먼 청나라까지 쳐들어간다는 것이 애당초 어불성설이다. 역시 천주교 신자였던 김이백의 언사는 더욱 심했다. 그는 서울 사는 친척 김건순과 천안 사는 천주교 신자 강이천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편지를 전해주곤 했는데, 정감록 풍의 예언을 많이 지어냈다. 예컨대 “바다 가운데 품(品) 자 모양의 섬이 있는데, 그곳에는 군사와 말(兵馬)이 무척 날래다.”고 했다. 이런 말도 했다 한다.“바다 가운데 진인(眞人)이 있다. 진인은 육임(六壬)과 둔갑(遁甲) 즉, 점과 도술에 능하다.” 당국의 조사 결과, 강이천과 김이백은 그런 예언을 이용해 남의 재물을 빼앗으려 한 적도 있었다. 달리 말해, 자기들이 섬에 있는 진인의 군대와 잘 통하므로 미리 군자금을 제공하면 장차 좋은 수가 생긴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강이천이라면 꽤 유명한 선비였다. 일찍이 진사 시험에도 합격한 적이 있는 지식인인데, 그 또한 정감록의 내용과 논리를 빌려 포교의 기회를 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강이천 등은 정감록 비결이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단 점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천주교를 전교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니벽전’, 초기 천주교 지도자 이벽의 예언서 19세기 중엽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을 모방해 일종의 신앙 비결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이벽선생몽회록(李檗先生夢會錄)’이란 이름의 필사본이 문제의 비결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알려주는 책이란 뜻에서 ‘새벽젼’이라 부르기도 하고, 예언자의 이름을 따라 ‘니벽전’이라고도 한다. 알다시피 정감록은 예언자 정감의 이름을 따서 붙인 책이름이다.‘니벽전’은 천주교 신자 정학술이란 선비가 천주교 초기의 거물인 이벽(1754-1786)을 사후 60년만인 1846년 6월 14일 밤 꿈에서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한 대화체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대화체란 점에서도 정감록을 연상시킨다. 비결에 예언자로 등장하는 이벽은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거물급 지도자였다. 그는 1784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은 뒤 서울의 수표교 부근에 셋집을 빌려 천주교 교리 연구와 묵상에 전념하였다. 교리를 깊이 이해하게 된 그는 전도에 앞장서 정약전, 정약용, 정약종 형제들과 서울의 중인층인 김범우, 최창현, 최인길, 김종교 등에게도 천주교를 전했다. 당대의 석학 이가환, 이기양 등과 교리논쟁을 벌어졌을 때도 그들을 압도할 만큼 교리에 능통하였다. 이벽의 천주교 이해는 ‘성교요지(聖敎要旨)’란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마테오 리치를 비롯해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하느님 을 천주(天主)나 천제(天帝)라고 불렀던 것과는 달리 상제(上帝) 또는 상주(上主)라고 불렀다.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울러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 유교적 윤리가 천주교의 교리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이벽이 그리던 하느님 나라는 유교에서 말하는 고대의 성인(聖人), 성군(聖君)의 정치와 일치했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는 하늘의 본성(天命)을 탐구해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룩하는 데 신앙의 목적을 두었다. 이벽의 천주교는 다분히 유교적 천주교였다. 그는 ‘주교요지(主敎要旨)’를 쓴 정약종(丁若鍾·1760-1801)과 더불어 18세기 조선후기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였다. 공교롭게도 ‘니벽전’은 이벽을 예언자로, 정약종을 저자로 설정해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 정약종이 “정유년(1777년·정조1)”에 기록했다고 적혀 있는 관계로, 사람들은 이 책을 정약종이 지은 종교 소설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조사한 바로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1801년 신유박해 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정약종이 어떻게 1846년 정학술이란 사람의 꿈속 일을 기록할 수가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 틀림없다. 하지만 정약종을 저자로 가탁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로 말하면 의금부에 잡혀 가서 심문을 받을 때 “나라에 큰 원수가 있으니 바로 임금이요, 가정에 큰 원수가 있으니 바로 아비다(國有大仇君也 家有大仇父也).”라고 하여, 유교적 사회질서를 한마디로 질타했다. 더욱이 그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다 죽은 사람이므로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위대한 신앙의 모범이었다. ‘니벽전’은 이와 같은 사람의 붓을 빌려 천상선인(天上仙人) 이벽이 천주교 신앙에 관한 말을 남긴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소재를 훑어보면, 우주창조의 원리, 낙원추방과 예수의 구원, 유·불·도의 황당함, 조상제사와 우상숭배의 잘못된 점, 신유옥사와 천주교의 마지막 승리, 하느님의 최후심판이 거론된다. 그런 다음 이벽은 정학술에게 천주밀험기(天主密驗記)를 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말할 것 없이 이 책의 목적은 천주교도들에게 널리 존경을 받는 이벽 같은 인물을 내세워 천주교 박해사건을 예언함으로써, 온갖 박해 속에서도 신자들이 신앙을 더욱 강화하도록 고무 격려하는 데 있었다. 책은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반드시 알아야 될 교리에 대한 설명이다. 둘째, 하느님과 예수를 굳게 믿고 끝까지 제사를 거부하라는 교회의 명령이다. 셋째, 한국천주교회에 닥친 박해와 환란은 미리 예정된 것이지만 이제 곧 끝난다고 예언한다. 신유박해를 비롯해 19세기 전반의 숱한 박해사건을 연대기식으로 적어나가는데, 기록방식이 편년체란 점에서 정감록을 완전히 닮았다. 참고로, 이벽의 입에서 떨어진 마지막 예언은 이러했다.“병오 이후로 다음 세상이 되어 죄 있는 자는 모두 멸망하며 착하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어갈 때가 오느니라.” 여기서 병오년은 1846년을 가리킨다. 이 예언에 따르면,19세기 중엽 세상은 종말을 맞이해 최후의 심판이 열린다. 죄지은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당하고, 착한 천주교 신자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이를테면 지상천국이 열릴 거라고 했다. 이런 천주교 신자들의 예언에서 나는 19세기말에 등장한 동학의 ‘후천개벽설(後天開闢說)’과 비슷한 인상을 받는다. 동학에서도 새 세상이 열리면 동학의 가르침대로 수련을 쌓은 군자(君子)들이 지상천국을 맡아 다스린다고 보았다. ●정감록에 스며든 ‘요한 계시록’ 물론 동학을 설립한 최제우가 말한 후천(後天)의 개념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중국 고대부터 있었고, 우리 역사에서도 이미 고려 인종 때 선천과 후천이 곧 바뀔 거라는 예언이 나오기도 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동학과 고대 중국의 후천관은 차이가 있다. 동양 고대의 선·후천 교대설과는 달리 동학에는 ‘최후의 심판’이란 요소가 감지된다. 이 ‘심판’이란 것은 다분히 기독교적인 것이다. 그래서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전기에 등장한 예언서에도 아직 찾아볼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럼 ‘정감록’은? 내가 보기에 조선후기에 출현한 정감록에는 ‘심판’을 연상시키는 구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감결’에서 이심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돼 있다.“세 사람이 마주하였으니 못할 말이 어디 있겠나. 신년(申年) 봄 삼월, 성세(聖歲) 가을 팔월에 인천(仁川)과 부평(富平) 사이에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하고, 안성(安城)과 죽산(竹山) 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여주(驪州)와 광주(廣州) 사이에 인적이 영영 끊어지고, 수성(隨城)과 당성(唐城) 사이에 피가 흘러 내를 이루고, 한강 남쪽 백리에 닭·개의 소리가 없고, 인적이 영영 끊어질 것이다.” 이번의 신문연재에서 이미 한 두 차례 언급한 구절이라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세에 전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메시지는 다시 강조할 만하다. 이와 같은 비극적 종말은 ‘요한계시록’을 뇌리에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정감록의 저자가 반드시 천주교 신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17세기 이후 한국사회는 직접 간접으로 천주교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고 있었다는 점을 우선 인정해야 하겠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는 비록 소수지만 천주교 신자들이 존재했다. 더욱이 중국에는 서양선교사들이 파견되어 있는 상태였다.18세기 후반엔 한국에도 천주교회가 지하조직으로 운영되었다. 그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최후심판’과 같은 천주교의 기본교리라든가 몇몇 유명한 성경구절은 한국사회에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설사 명확한 증거를 댈 순 없을지라도, 천주교가 정감록이란 민중의 신앙에 끼친 영향은 적어도 논리적인 면에선 개연성이 인정돼야 한다. 요한 계시록이 상정하는 말세의 비참한 모습은 정감록의 여러 곳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감록의 일부라 할 ‘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에도 최후의 상황이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살아 있는 백성들이 달아나 숨으니, 삼강(三綱)이 없어져 끊어졌네. 하늘의 재앙이 계속하여 혹독하니, 벌레의 독을 무엇이라 말하리. 부자가 먼저 죽으니, 아무리 뉘우쳐도 미치지 못하리. 우물 가운데 물이 연하여, 자미(紫微)에 저녁 무지개가 떴네. 다시 들러서 동쪽으로 나뉘니, 나라에 변괴가 있고, 상사가 참혹하네. 남쪽과 북쪽 군사의 조짐이 불과 같이 점점 번져오네. 집 위의 토운(土運)이 하늘의 재앙에 때로 변하네. 옛날에도 드물고 오늘날에는 없는 일, 굶주려서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어, 저마다 서로 짓밟고 있네. 사람의 목숨을 해치니, 산 자가 몇이나 되리. 또 겸해서 흉년이 들어, 쌓인 시체가 구렁을 메우네. 벼락같은 화운(火運)이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네. 먼 방향에서 움직여 화서, 바람과 구름이 어두우니 장차 다시 어찌한단 말인가.” 이처럼 정감록은 ‘최후의 심판’이 행해질 때, 그것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보았다. 전염병, 흉년, 전쟁은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 점은 ‘요한계시록’을 비롯해 신약과 구약의 경우에도 똑같다. 한 가지 나로선 무척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정감록에 보이는 말세의 모습이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불교적 세계관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현재도 도솔천에서 수행 중이라고 전하는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내려와 건설할 용화세계(龍華世界)는 피를 흘리는 전쟁 따위를 전제로 삼지 않는다. 불교의 이상향인 용화세계를 선도할 전륜성왕은 절대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모든 적의 항복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정감록이 기술한 참혹한 말세는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것, 다분히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이다. 좀더 생각해 보면 문화란 결국 상이한 계층, 종교, 언어권의 소통으로 풍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주교와 정감록의 만남은 나쁘게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고, 바로 그런 만남이 있었기에 한국 민중의 문화는 좀더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해야겠다. (푸른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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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관광부 ◇국장 △관광레저도시추진기획단장 趙顯宰 ◇과장 △문화정책국 지역문화과장 金現模 △관광레저도시추진기획단 기획총괄팀장 尹原中 △관광레저도시추진기획단 투자협력팀장 愼重石 ■ 정보통신부 ◇4급 전보△전파연구소 이천분소장 金正起◇4급 승진△기획관리실 예산담당관실 河丙埈△정보화기획실 광대역통합망과 林俊成△정보통신정책국 기술정책팀 李鎭英△정보통신진흥국 통신기획과 徐成一△〃 통신안전과 金龍逸△전파방송정책국 전파방송총괄과 朴東△〃 주파수정책과 金東錫△공보관실 趙容民△정보통신전략기획관실 동향분석담당관실 장한△총무과 鄭千熙△중앙전파관리소 관리과장 姜淳鐵△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 우편물류과 金翰準△〃 금융사업단 예금과 黃圭星△조달사무소 건축1과장 徐春澤△서울체신청 정보통신과장 趙載玉△부산체신청 전파업무2과장 許英泰△전남체신청 회계과장 金卨 ■ 중앙인사위원회 △정책홍보관리관 金明植△정책홍보관리관실 혁신인사기획관 盧炳燦△〃 재정기획관 崔勝鉉△〃 정책홍보협력담당관 曺圭範△성과후생국 직무역량과장 崔寬燮△정책홍보관리관실 재정기획관실 朴淳鍾 金英洙 ■ 관세청 ◇전보△총무과장 金喆秀△감사담당관 朴聖宇△서울세관조사국장 金斗基△대전세관장 金在一△군산〃 金昌洙△제주〃 劉秉贊 ■ 소방방재청 ◇소방정감 승진△중앙소방학교장 黃正淵◇소방감 승진△소방방재청 방호과장 白圭炯◇소방정 승진△울산시 전출 任大淳◇전보△중앙소방학교 연구실장 申海澈 ■ 국무조정실 ◇국장급△심사평가2심의관 許萬亨 ■ 헌법재판소 ◇4급△재판관비서관 崔斗薰 ■ 국민은행 (본부장)△IT개발 姜京旭 (팀장)△IT개발 柳錫興△인프라개발 沈武吉△개발관리 玄晨均△계정서비스 金榮閔△정보서비스 崔善萬△신용감리 李南圭 ■ 한국증권전산 △채권시스템재구축TF팀장 胡明辰 ■ 서울증권 ◇승진(이사)△법인영업본부장 具齊榮△IB영업〃 崔東熙△경영기획〃 姜振淳△지점영업1〃 申相澈△지점영업2〃 李建浩△지점영업3〃 南廷湜△명동VIP지점영업 李晋洙◇전보(지점장)△구의 韓光鍾△대방 宋王根△수원 李東振△분당 崔京奎△울산 尹鉉得△울산옥동 李輔烈△광주 운암동 金裕必 ■ 동양종합금융증권 (부장)△골드센터강남점 李淑喆△금융상품운용 盧平植△금융센터 강남3본부 辛南錫△〃 부산본부 崔憲承△김해 徐都根△논현 金相式 李碩培△동래 梁元錫△리서치팀 鄭一永△리테일기획 金勉植△삼척 表雨燦△업무개선팀 宋泰吉△프로젝트금융 김용대△해남 趙炳洙 ■ 대신증권 ◇승진(실장)△비서실 宋赫 (팀장)△법무 崔禎錫△리스크관리 李文洙△IB2 朴鍾孝△법인자산영업 李鉉植△마케팅 洪大韓 (지점장)△동대문 洪錫珍△역삼 梁乘榮△반포 李秉周△신사 申京植△개포 朴相羽△방배 姜炅坤△사당 南海鵬 △화곡 尹源哲△서산 李炳龍△평촌 金昌彬△오산 林炳完△미금역 李相奉△울산남 金鳳圭△광양 李官哲△화정동 朴東鉉△나주 李 三△홍제동 李洪滿△일도 金聖翊△정자동 曺墉錫△남천동 愼鏞達△강남역 李順男△서대문 金源君△명동 張哲源△상계 崔明鎭△강북 申炳浚△신내 朴晋煥△영동 申仁湜△무역센터 이지열△염창 徐丙久△무거동 林東吉△무등 朴三錫△익산 張鎭宇△운암동 金永煥(영업부장)△동대문 張炫轍△하계 元鍾淵△천호 鄭在雄△신사 沈康泌△사당 李鍾旭△대구 韓應植△부전동 李正華△상계 鄭柄周△중앙청 梁時昌△목동 張碩熙△창동 李判洙△일산 金俊用△주엽 黃炯淳△강남 金進杰△명일 崔興烈△역삼 全明浩△신촌 李國鉉△전자랜드 崔載元△서여의도 張溶秀△천안 朴炳台△창원 최규진△전주 崔東一(부장)△영업 吳勝鎬 (팀장)△감사 朴炯根△기획 金凡哲△회계 李相仁△업무개발 鄭宰重△인재개발 姜光遠△결제업무 芮文熙△전산기획 金完圭△투자전략 羅民昊△기업분석 朱明鎬△국제 盧耀攝△IB전략 曺鍾澈△IB1 劉光祚△상품운용 李炯澈△법인영업1 申暻雨△법인영업2 李昌和△자산영업추진 南基允△고객자산운용 曺湧現△온라인지원 權容範 ■ 신흥증권 △새금융상품팀장 宋錫汶 ■ 대신투자신탁운용 (팀장)△경영지원 金成源(전산회계팀장 겸직)△준법감시 沈成輔(리스크관리팀장 겸직)△채권운용 梁承一 ■ 제일화재 △부산지점장 林明起△호남〃 李貳珩 ■ 대한화재 ◇전보(이사)△북부지점 曺基東△중부〃 李炳圭△강동〃 金建伯△기획조정실·신사총무팀·IT지원팀 담당 李昌吉 (지점장)△대구 金東優△경남 安穆鉉△부산 姜敦植△광주 金東濠△전북 金康漢△인천 朴錫訓△충청 金義澤 (센터장)△북부보상 金南俊△수원〃 黃義一△대구〃 孫東一△중앙〃 宋炯碩△대전〃 李光宰 ■ 우리신용정보 △상무이사 文洪斗 ■ 동양생명 ◇승진(상무)△개인영업본부장 金鎭式△경영지원〃 辛承元 ■ 서울대 △언어교육원장 洪基瑄△대학생활문화원장 金明彦 ■ 한국국방연구원 ◇전보△부원장 郭龍洙△자원관리연구센터장 朴主鉉△기획조정부장 安秉性△연구조정팀장 金鍾泰△행정지원부장 梁又哲△검사역 崔海觀 ■ 국민일보에스피넷 △관리국 부국장 金輝洙△〃 부장 馬亨泰△영업국 〃 韓承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승진△선임연구위원 朴東奎 朴成在 崔正燮△연구위원 宋美玲 李癸姙 鄭敏國△선임관리원 金光鎭△부연구위원 金東元 金倍成 田一松 洪昇志△1급관리원 金炳哲 ■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전보 (2급)△감사실장 李尙哲△건축실장 직무대리 朴求秉△기획예산부장 方敦錫△홍보부장 郭東烈△관리부장 權赫潤(3급)△총무부장 직무대리 柳承綠△경영회계부장 〃 魚允福 ■ 기아차 ◇승진△소하리공장장 부사장 탁원식 ■ ㈜하쿠호도제일 △지원본부장 이재우 ■ 한겨레신문 (이사)△사업기획담당 이사 金炯培(국실장)△판매국장 金泰邑△광고〃 宋宇達△사업기획〃 張昌德△미디어사업단장 직무대행 金玄大△교육〃 〃 姜秉洙△출판〃 〃 李基燮(부국장)△광고국 부국장 黃忠淵(부장)△판매영업부장 禹玄濟△마케팅〃 柳在馨△문화사업〃 직무대행 姜大成△한겨레21〃 高經太△미디어광고〃 李在元△미디어판매〃 劉承九△문화센터〃 李先宰△사장실 〃 朴昌植△주주독자배가캠페인추진팀장 裵坰錄◇승진 (부국장대우)△제작국장석 具滋祥(부장대우)△제작국장석 車承晩 ■ 경향신문 ◇승진 (부국장)△미디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종두(부국장 대우)△논설위원 김철웅△편집국 국제부 정동식△〃 사진부 전문기자 노재덕△〃 섹션편집장 김태관(부장)△논설위원 이대근 조호연△편집국 전국부장 김해진△〃 여론독자〃 이동형△〃 공연문화부 전문기자 배장수△〃 산업부장 박흥신△〃 문화〃 김석종△출판본부 주간국 뉴스메이커부 편집위원 신동호△〃 〃 뉴스메이커부장 유인경△〃 독자관리팀장 이회창(부장대우)△편집국 국제부 홍인표 박용채△〃 정치부 김봉선△〃 사진부 권호욱△〃 전국부 하재천△〃 편집1부 장정현 이동현△경영기획실 기획팀장 이병광△기획팀 박찬식△〃 시설관리팀 이기영△〃 총무팀 김황용 강기두△윤전기술국 기술관리팀장 이재흥△판매본부 판매국 중부〃 서종훈△광고마케팅본부 광고마케팅2국 LK광고〃 박종회△〃 광고마케팅1국 마케팅1〃 이문종△〃 〃 마케팅2〃 김현옥△출판본부 출판판매팀 오경식 ■ 연합뉴스 △논설위원실 고문 朴鉉寀△기사심의실 〃 文永植△논설위원실장 趙洋一△편집국장 金基瑞△외국어뉴스국장 金聖秀△멀티미디어본부장 權快鉉△경영기획실장 박정찬△관리국장 李永成△정보사업국장 洪成杓△논설위원 洪性完△편집국 부국장(정치·민족뉴스·스포츠·문화담당) 成基俊△〃 〃(경제담당) 金昌會△〃 〃(사회·지방담당) 宋炫昇△편집위원 겸 부국장(국제뉴스담당) 劉永晙△멀티미디어본부 부본부장 겸 DB부장 廉周仁△민족뉴스부장 鄭日鎔△경제〃 任善彬△산업〃 金壯國△정보과학〃 金溶洙△증권〃 申鉉台△사회〃 權五然△지방자치〃 兪炳哲△국제경제〃 李瑄根△영상취재〃 崔泰洙△디지털콘텐츠〃 柳泳美△기획〃 權珍澤△인사〃 申乙浩△총무〃 金英燮 ■ 헤럴드미디어 (코리아헤럴드)△편집국 국차장 겸 경제부장 김영한△〃 정치사회〃 황장진△M&B국 매거진팀장 신용배 ■ 제일경제신문 △부국장 겸 사회부장 왕성상 ■ 월간조선 △이사 趙南俊△사원 편집위원 金石圭 ■ 현대해상 (전무)△기업보험총괄 徐泰昌△재경본부장 李喆永△개인보험전략본부장 許正範 (상무)△자동차장기업무담당 林昌植△호남지역본부장 尹禎錦△마케팅 담당 蔡貞錫 (부장)△신채널사업 申有湜△중부지역본부장 朴德容 ■ SK커뮤니케이션즈 △네이트닷컴 사업본부장 이승훈 ■ 비아텍 △대표 전주호
  • [우리동네 이야기] 용산구 보광동

    [우리동네 이야기] 용산구 보광동

    한남대교와 반포대교 사이의 한강변에 위치한 서울 용산구 보광동(普光洞)은 ‘보광’이라는 좋은 이름만큼이나 역사가 오랜 곳이다. 신라 진흥왕이 고구려·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칠보강(현재 임진강)이남의 영토를 차지한 뒤, 당시 이곳에 보광국사가 세운 절이 있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 지금의 보광동이다. 보광동은 면적이 0.73㎢로 용산구의 3.3%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2만 2000명이다. 이곳에는 2007년이면 개교 100주년을 앞둔 오산중·고교가 있다. 역사책에도 자주 오르내리는 오산중·고교는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이 1907년 평안북도 정주에 설립한 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956년 보광동으로 이전했다. 국방부 건물, 미군기지, 전쟁기념관 등 군(軍)이나 무(武)와 연관이 많은 용산구 전체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듯, 보광동에는 무인(武人)과 관련된 두 개의 부군당(府君堂·과거 각 관아에서 신령에게 제사 지내던 집)이 있다. 먼저 ‘웃당’이라고도 불리는 ‘김유신장군사당’이 오산중·고교 옆에 자리하고 있다.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이 마을 사람들을 후하게 대해 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당을 짓고 신으로 모셨다고 한다.‘아랫당’은 무후묘(武侯廟)인데 보광동사무소에서 서쪽으로 5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중국의 제갈공명을 모시고 있다. 옛날 중국의 상인들이 이곳을 지나 중국 장안으로 들어가면서 제갈공명에 대한 ‘전설’을 전해준데서 유래해 사당을 짓고 모시게 됐다고 한다. 보광동은 미군기지 이전과 한강에 접해 있다는 장점 때문에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을 동의 발전기회로 삼기 위해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동에서는 최선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주민과 공무원, 주민끼리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 보광동에서는 ‘우리동네 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이웃 칭찬하기’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동사무소 민원실에 이웃 칭찬하기 소개함을 마련해 두고 동민이면 누구나 친절한 이웃을 추천할 수 있다. 매월 최종 선정된 ‘칭찬왕’에게는 상금·상품 등이 주어지며 동사무소 입구에 사진과 칭찬 내용을 게시한다. 또 보광동에서는 각종 증명서나 문건을 발급받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는 주민들에게 좀더 나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친절 팩스’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기존의 팩스 민원은 주민이 직접 동사무소를 방문해 신청해야 했으나 보광동에서는 전화 신청도 가능하다. 구 관계자는 “보광동의 노력이 비록 작은 것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주민화합’‘행정신뢰’라는 큰 결과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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