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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어려움이 많다 이제 개혁은 끝났다”

    “정말 어려움이 많다 이제 개혁은 끝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개혁은 끝났다.”면서 “기존 정책들을 관리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3일 서울신문을 비롯, 한겨레, 한국일보, 경향신문의 논설위원들과 2시간 40분 정도 청와대 관저에서 오찬을 함께 하면서 “(전반적으로) 정말 어려움이 많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이 자리에는 이병완 비서실장, 송민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 5명이 배석했다. 다음은 일부 신문 보도와 청와대 관계자 등의 전언을 통해 재구성한 현안별 주요 발언요지이다. ●“지지율 요즘엔 고민해” (자신의 지지율과 관련)고민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고민한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결과가 안 좋다. 정말 어려움이 많다. 내 지지율이 낮으니 옳은 정책도 훼손되는 것 아닌가 싶다. 요즘 내 지지도는 전임자들보다는 낫다. 임기가 이제 거의 끝나간다. 국회가 지난 8개월 동안 안 열리고 있다. 그런데 국회를 열라는 여론의 압력도 전혀 없다. 뭔 일을 하려고 해봐야 잘 안된다. 개혁은 끝났다. 내 집권기에 발생한 사안 중 문제는 성인오락실 상품권 문제뿐인데, 그건 성격이 청와대가 직접 다룰 것은 아닌 것 같다. ●“잘 물려줘야겠다.” 전시 작통권 문제와 관련한 비판이 많아 국책연구원에 자료를 만들어 보내라면 틀에 박힌 보고서가 올라온다. 다시 시켜도 소용없다. 지금 국책연구소들은 옛날부터 해오던 연구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요즘 다음에 ‘누가 오든 잘해 봐라.’는 식의 꼬부라진 마음과 잘해서 물려줘야지 하는 펴진 마음이 반반이다. 지금은 잘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다. 정부 관리 통제만큼은 성실히 할 것이다. ●전시 작통권 환수,“노무현이 하니까 문제인 거 아닌가.” 작통권 환수가 잘못이어서가 아니라 노무현이 하니까 문제인 거 아닌가. 이승만 대통령이 전시에 급하니까 준 것이다. 사실상 헌법 위반 사항인데 초법적 통치행위로서 한 것이다.(작통권을)찾아오는 게 당연하고, 안 찾아 오려면 오히려 헌법을 바꿔야 한다. 결국 비상조치를 원상대로 회복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나를 좋아한다.” (부시 미 대통령과 관련),‘현재까지는’ 나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 통해서 들었다.‘기면(맞으면) 기고(맞고) 아니면 아니고 확실해서 좋다.’고 하더라.‘승부사다.’라고도 얘기했다. ●“(언론으로부터) 좌우로 협공 당하고 있다.” 기존의 차선에서 한 두 차선을 왼쪽으로 가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언론은 하늘에 헬기를 띄운 것과 같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내가 왼쪽으로 가면 왼쪽에다 기총소사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쏘아댄다. 어떻게 당하겠냐. 진보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보수쪽에서는 전시 작통권 때문에 공격한다. 좌우로 협공 당하고 있다.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한 뒤 결과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보다 결국에는 언론에 당했고,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세무조사 발표해서 당한 거다. 해도, 안해도 당하니까 나는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다. ●“북핵 관련, 좌절감 느껴” (6자회담에 대해)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좌절감을 느낀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빗나갈 때가 많다. 북한과의 대화는 공식적인 통로가 정확하다. 북한과의 비공식적 통로도 시도해 봤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북한과 접촉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통로다. 중국은 북핵이 없는 걸로 본다. 북한 문제를 놓고 미국에 대해 더 이상 설득하기가 힘들다.9월 정상회담에서도 설득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가면으로 만나는 지구촌 얼굴

    ‘한국 하회탈과 콩고 군주가면, 이탈리아 축제가면이 한자리에 모인다.’ 지구촌민속박물관과 한양대학교박물관은 17일부터 10월15일까지 한양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가면 300여점을 모아 전시하는 특별전 ‘지구촌얼굴’을 개최한다. 세계 여러 곳에서 원시시대때부터 사용,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매개체인 가면은 문화사적 근간을 차지하는 중요한 문화콘텐츠다. 한국을 비롯,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오세아니아·멜라네시아 등 전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쓰임새 면에서는 세계적으로 비슷하지만 모양은 지역적인 차이를 갖는다. 전시회에는 용도에 따라 극예술용 가면, 토템가면, 풍농가면, 축제가면, 치료가면, 장례가면 등으로 분류된 가면 100여점이 선보인다. 또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대륙별 다양한 재질의 가면 200여점도 함께 볼 수 있다. 한양대박물관 관계자는 “세계 각국의 가면을 통해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원하던 문화현상과 함께 문화의 다양성도 보여주고자 한다.”면서 “특히 국제화시대를 맞아 각 민족문화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기간 중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문화체험 행사인 ‘탈 그리기 교실’과 ‘탈 탁본 교실’, 탈과 의상, 민속악기 등을 접할 수 있는 ‘세계문화 체험 교실’도 열린다. 박물관측은 이와 함께 광복 61주년을 맞아 애국지사 등이 애용하던 지팡이 30여점을 전시하는 특별전 ‘애국지사·역대 대통령·각계 원로들의 지팡이’도 같은 기간에 개최한다. 김구·손병희·이범석 등 애국지사로부터 이승만·윤보선·최규하 등 역대 대통령, 손기정·문익환·김기창 등 각계 원로들이 사용했던 지팡이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박물관측은 “광복절을 맞아 지팡이 전시를 통해 나라사랑 의식과 효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02)2220-1394·6.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금강산에 통일 염원 새기고 왔어요”

    대학생들이 동강난 한반도의 허리를 도보로 넘어 광복 61년의 아침, 금강산에 남북통일의 염원을 새기고 돌아왔다. 국민대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국토大장정’에 참여한 140명의 학생들이 12박13일의 장정을 마치고 15일 서울로 귀환했다. 이들은 지난 3일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출발, 임진각∼파주∼가평∼양구∼고성을 통과해 금강산까지 320㎞를 걸어서 다녀왔다. 중간중간 걸을 수 없는 출입제한 구역을 빼고는 모든 일정을 도보로 소화했다. 총학생회와 학교측이 공동으로 연 이번 행사는 학교 설립을 주도한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들의 건학정신을 되새기고 통일의 염원을 확인하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지난해에는 독도까지 국토를 종단하는 행사를 했었다.국민대는 1946년 김구, 이승만, 신익희 선생 등 임정 요인들이 새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자며 서울 종로 창성동에 세운 국민대학관이 모태(母胎)다. 초대 학장은 신익희 선생이었다. 이승구 학생지원팀 과장은 “전체 학생 중 7명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금강산까지 무사히 다녀왔다. 뭔가 해보겠다는 학생들의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지나는 곳마다 많은 주민들이 쉴 자리를 제공하는 등 도움을 줘서 너무나 고마웠다.”고 말했다. 김명연 총학생회장은 “무더위 속에서도 우리의 도전정신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부분 학생들이 북한 땅을 처음 밟아보고 울컥했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씨줄날줄] 하얄리아 부대/이목희 논설위원

    해방 직후 전라도에서 이승만보다 김구의 인기가 높았다. 이승만은 하와이 망명 시절 박용만을 더 지지했던 교민들을 빗대 “하와이 놈들 같으니….”라고 욕을 했다. 그로부터 하와이는 호남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창군 초기 함경도와 만주군 출신이 군 요직을 장악했다.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이른바 ‘알래스카 토벌작전’이었다. 알래스카는 함경도를 일컫게 되었고,‘알래스카 순대’라는 음식명이 생겼다. 당시 일부 인사들은 평안도를 텍사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 국토가 미국의 지명으로 이렇듯 찢어지게 된 배경과 관련해 다른 설도 있다. 미 군정 시절 미군 첩보부대의 작명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동서 끝에 있는 지역은 플로리다와 하와이다. 그와 비슷하게 한반도 동서쪽을 플로리다와 하와이의 지명을 따서 부르고, 주둔부대 이름을 지었다는 주장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영국인들은 개척한 땅에 고향 지명을 쓰거나 정복자의 이름을 붙였다. 서부개척시대 영토욕이 담겨 있는 작명법이었다. 주한미군이 기지명칭을 붙이는 방법도 비슷했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의 하얄리아 부대.1950년부터 미군전투지원부대가 주둔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대장의 고향이 마침 플로리다 하얄리아였다. 하얄리아 부대터는 1930년대 일본에 의해 경마장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플로리다 하얄리아에도 경마장이 있었다고 한다. 부대장은 자연스레 부대 명칭을 하얄리아라고 지었다. 캠프 레드 클라우드, 캠프 케이시, 캠프 워커 등 많은 미군기지 명칭은 미군 장병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국전쟁 등에서 전공을 세운 이들이다. 하얄리아 미군부대가 오늘 폐쇄식을 갖는다. 일제가 경마장과 군사훈련장으로 강탈했던 역사까지 생각하면 한세기 만에 시민품으로 돌아오게 된다.16만 2000평의 땅이 시민공원으로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맹목적인 반미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제1, 제2 도시 한복판에 미국의 일개 군인이 붙인 명칭을 쓰는 부대가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스스로 미국 지명을 차용해 특정 지역을 깎아내리는 일도 삼가야 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조봉암과 진보당’ /정태영 지음

    7월31일은 47년 전 진보당 당수였던 죽산 조봉암이 ‘진보당사건’으로 사형당한 날이다.1950년대 이승만에 맞서는 거물 정치인으로 대통령 선거에 두 번이나 나섰던 그가 간첩 혐의로 사형된 후 학계에선 정권 사주에 의한 대표적 ‘사법살인’이라고 비판해왔다.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보당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이 이루어지는 등 조봉암과 진보당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문제가 활발히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조봉암의 삶을 재조명한 책 ‘조봉암과 진보당’(정태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이 출간됐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조선공산당을 주도한 핵심인물이었으나 해방후 박헌영과의 논쟁을 거쳐 공산당과 결별하고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인물이다.1956년 ‘반자본’‘반공산’의 중도파 노선을 표방한 진보당을 창당, 제3대 대통령선거에 나서 216만표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대항해 ‘평화통일론’을 내세우며 각종 혁신정책을 내놓았던 그는 간첩 혐의를 받고 1959년 사형됐다. 책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로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조봉암과 진보당의 역사적 실험과 좌절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저자 역시 당시 사건과 관련 조봉암과 나란히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났던 인물. 그는 “여운형을 포함해 진보계열의 정치 지도자 대부분의 명예가 회복되었는데 조봉암은 여전히 대한민국 공식문서에 범죄자로 남아 있다.”며 “조봉암의 억울한 죽음과 불명예가 방치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무슨 민주주의냐.”고 항변한다. 책은 특히 조봉암이 해방정국에서 중간노선을 지향했던 이유와 의미를 강조한다. 친미·친소, 극좌·극우의 양극화를 달리던 상황에서 민중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노선이 무엇이냐는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민족통합을 이루어내기 위한 실사구시적 의미로 한국적 사회민주주의를 꿈꾸었던 조봉암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1만 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美 전시작전권 4년내 반환 제안

    美 전시작전권 4년내 반환 제안

    미국 정부가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의 한국군 환수와 관련,“한국군이 작전능력을 확보한다면, 오는 2010년 이전에라도 되돌려주겠다.”는 입장을 최근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한·미 군사관계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3∼14일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회의 실무협상에서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측이 우리 군의 작전능력 확보를 전제로 작통권을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을 소극적으로 밝힌 적은 전에도 있었지만,‘2010년 이전’이라는 구체적 시기를 명시하기는 처음이다. 특히 ‘2010년 이전’은 우리 정부의 희망 환수 시기인 2011∼2012년보다도 앞선 때여서 미국측의 돌연한 적극 행보의 배경이 주목된다. 미국측의 제안에 우리측은 일단 “2010년 이전이면 준비가 덜 돼 있을 때인데, 이른 감이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작통권 환수 시기는 추가적인 한·미간 실무협의를 거친 뒤 오는 10월 양국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확정될 전망이다. 향후 한반도 안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밑그림이 점차 뚜렷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3일 미측이 ‘2010년 이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의사’를 밝혔다는 새로운 사실이 결정적 분석의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작통권을 가져갈 테면 가져가보라.’라는 식의 감정적 내지르기로 보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해 득실을 철저히 따지는 미국인과 미국 정부의 속성상, 허언(虛言)이라기보다는 실제 정책의 방향성이 작통권 반환쪽으로 굳어진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작통권 환수 이후에 대비,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대신 2개의 한·미 독자사령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최근 밝힌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할 만하다. 한·미 군사관계 소식통은 19일 “작통권 환수에 거부감을 보이던 미국이 지난 5∼6월을 기점으로 굳이 기존 입장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번 ‘2010년’ 의사 표명으로 미국의 정책방향이 확인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작통권 반환에 따른 영향력 감소를 고스란히 감수하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와 관련, 미국이 작통권 반환에 따른 영향력 공백을 유엔사 강화를 통해 메우려 한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쟁이 나면 미군 위주의 유엔군이 구성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차피 한국군도 실질적으로는 미군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메커니즘을 간파했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가 ‘한반도에 주둔 중인 유엔사령부 소속 회원국가의 군병력 증강과 관련한 연구’를 해달라고 자국 정부에 요구하는 법안을 지난달 22일 통과시킨 것도 이같은 변화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인상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입장에서 작통권 환수는 명분에 그칠 뿐 실질적으로는 미군의 영향을 받는 구도가 유지되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으로서는 작통권 반환을 명분 삼아 주한 미 지상군 감축에 더 쉽게 나설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정책목표에도 탄력을 부여하는 이점도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2010년일까. 외교 소식통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미국이 진정으로 작전권을 반환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의 목표보다 앞선 시점을 제시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제 부담은 우리 정부 쪽이 커졌다. 독자적 작통권 행사를 위해서는 감시·정찰장비 수준이 지금보다 2∼3배가량 향상돼야 하기 때문에 4년 이내에 천문학적인 국방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여기에 미군에 비해 실전 경험이 일천한 지휘관들의 전쟁지휘 노하우는 단기간 내에 축적되기 힘든 사안이라는 점도 고민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전시 작전통제권이란 전쟁 중 행사하는 작전계획 및 작전명령권을 말한다.6·25전쟁 발발 20일 후인 1950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자위권이 미약했던 당시 국군의 작전권을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자진해 넘겼다. 이후 44년 만인 1994년 한국군은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했다. 그러나 진정한 작전통제권이라 할 수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은 아직 주한미군 몫이다.
  •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이 겪은 정치적 격랑은 100년 역사의 신문이 쌓아온 문화적 의미마저 짓눌러왔다.‘총독부 기관지’‘군사정권 선전도구’라는 어두운 역사의 그늘에 가려 서울신문이 한 세기 역사속에 남긴 문화사적 족적마저 축소되고 폄하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초 대한매일신보 시절은 물론 일제 강점기 매일신보, 광복 후 서울신문으로 신문의 맥을 이어오면서 한국 근현대문화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신춘문예 효시가 된 소설 현상공모를 처음 도입했는가 하면 춘원 이광수의 ‘무정’, 정비석의 ‘자유부인’, 김주영의 ‘객주’ 등 연재소설들은 한국문학사의 자양분이 되었다. 또 한글판 서울신문 발간과 한글전용 단행, 최초의 시사종합 월간지인 ‘신천지’와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 등을 창간하며 한국 언론역사에 다양성을 부여했다.1904년 창간 이후 격동의 한 세기를 넘기며 대한매일신보, 매일신보, 서울신문이 우리 근현대 문화사에 남긴 족적과 의미를 살펴본다. 매일신보는 광복과 함께 총독부 기관지란 굴레를 벗고 민족의 공기(公器) 서울신문으로 거듭태어나게 된다. 한국 전쟁 발발전까지 특히 눈에 띄는 행보는 ‘신천지’와 ‘주간서울’ 창간이다. 훗날 한국 잡지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로 남게 되는 신천지는 서울신문과 짝을 이루는 월간 종합시사지로 1946년 2월 창간됐다. 신천지는 창간이래 좌우익 논쟁과 정부수립을 전후한 혼란기에서 6·25 및 휴전 이후에 이르기까지 만 9년동안 통권 68호를 기록했다. 광복 후 6개월동안 100여종의 잡지가 쏟아져나왔으나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거나 기껏해야 5호를 넘기기 어려웠던 당시에 신천지는 ‘잡지 전장(戰場)의 유일한 생존자’로 불렸다. 신천지가 선택한 국판 크기는 뒷날 우리나라 월간지의 대표적 판형이 되며,200여쪽에 이르는 분량도 100쪽 안팎의 다른 잡지를 압도했다. 1948년 10월엔 국내 최초의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을 창간했다. 빈약한 타블로이드 판형의 지면에 정치 기사 일변도였던 일간지들이 일반 독자의 수요를 고루 충족시켜주지 못하던 상황에서 다양한 분야의 관심거리를 다루었던 주간서울은 창간 즉시 큰 인기를 모았다. 악화일로를 걷던 식량사정을 파헤친 ‘국민의 식생활은 안도되는가’, 반민특위 재판으로 서리를 맞은 육당과 춘원의 저서 회수 소동, 국내 음악계 동향과 각종 취미오락 등 각계 각층의 독자 취향을 염두에 두었다. 서울신문은 이후에도 연예주간지 시대를 연 ‘선데이서울’ 창간, 고급 지성지 ‘서울평론 창간’, 최초의 TV연예주간지 ‘TV가이드’, 계간 예술비평 전문지 ‘예술과 비평’ 등 대중과 고급을 아우르며 잡지 트렌드 메이커로서 역할을 해냈다. 잡지 발간과 함께 단행본 출판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광복과 전쟁의 혼란기 전단지 수준의 정치선전물이 주류를 이루었던 상황에서 서울신문 출판물은 단연 돋보였다. 신채호의 ‘단재저작집’과 ‘조선사’, 정인보의 ‘조선사연구’(상하)와 ‘오천년간 조선의 얼’, 홍기문의 ‘훈민정음 발달사’와 ‘조선문법연구’ 등이 대표적이며, 박은식의 역사서도 여러권 출판했다. 연재소설의 맥은 서울신문에서도 꾸준히 이어졌다.1940년대의 암울한 생활고를 그린 주요섭의 ‘대학교수와 모리배’, 무능한 지식인 남편과 자유분방한 아내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그린 최상덕의 ‘새벽’ 등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54년 1월1일부터 8월6일까지 연재됐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전무후무한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완고한 학자 남편과 가정에 권태를 느껴 뭇남성들과 다방, 댄스홀을 드나드는 여주인공의 대담한 행태는 장안의 화제로 번져갔고, 자유부인이란 단어는 곧 바람난 주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회적 파장도 컸다. 특히 교수사회가 발끈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는 대학신문에 ‘작가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비판의 날을 세우자 작가는 서울신문을 통해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황 교수 또한 서울신문 기고를 통해 재반박했다. 서울신문은 논쟁의 당사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황 교수의 재반박 기고를 실어 독자들과 문화계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홍순엽 변호사의 ‘자유부인 작가를 변호함’이란 글, 문학평론가 백철의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자유부인 논의와 관련하여’란 평론이 나오는 등 ‘자유부인’발 문화적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까지 연재한 김주영의 ‘객주’는 서울신문 최장기 연재소설로 ‘자유부인’이래 가장 많은 독자를 모았다. 이 소설은 신문소설사뿐 아니라 한국 문단에 있어서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후기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보부상을 비롯한 백정·기생·천민의 사랑과 애환이 장강처럼 굽이쳐 흐르는 소설이다. 문학 분야와 함께 서울신문이 특히 높은 비중을 두었던 게 한글문화 보급이었다.1956년 10월18일 나온 ‘한글판 서울신문’은 언론사 및 국어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기존의 서울신문과 병행, 석간으로 선보인 한글 전용 지면은 외솔 최현배를 중심으로 한 한글학계는 물론 독자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한글신문 탄생의 기쁨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글판 신문을 별도로 발행했던 서울신문은 1968년 11월22일 전지면의 한글 전용을 단행했다. 국내 일간지로는 유일한 한글 전용이었다. 이후 1970년 1월1일 ‘온국민이 모든 분야에서 한글만 쓰도록 하라’는 대통령 담화가 발표되었고, 국한문 혼용체와 문어체를 고수하던 각 신문사도 한글 전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신문협회도 한글 전용을 위한 연구기구를 설치, 운영했다. 결과적으로 서울신문은 신문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한글문화 보급과 정착에 촉매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책꽂이]

    ●세계의 민속음악(박창호 지음, 현암사 펴냄) 세계민속음악이라고 하면 흔히 월드뮤직을 떠올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월드뮤직은 영미권을 제외한 제3세계의 대중음악을 가리키는 것이다. 세계민속음악은 월드뮤직의 뿌리다. 월드뮤직과 세계민속음악의 관계를 우리 음악에 비유하자면 대중가요와 국악이라 할 수 있다. 인도의 라가, 이슬람의 마캄, 이란의 라디프 등을 세계민속음악으로 다룬다. 라가 음악은 힌두교의 최고 경전인 ‘베다’를 낭송하면서 시작됐다. 켈트족의 풍적(백파이프 혹은 코른뮤즈) 연주, 코르시카의 폴리포니 가창, 그리스의 렘베티카 가창 등도 소개.1만 6500원.●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정주리 등 지음, 고즈윈 펴냄) 신석기시대부터 원시 한인들이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우리말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의 중세 왕조시대를 넘어 일제강점기를 견디며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말에는 우리의 역사가 오롯에 새겨져 있다. 단군신화의 ‘곰’과 ‘고맙습니다’의 관계는? 신라사람 김유신과 백제사람 계백은 말이 잘 통했을까. 구철자법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속사정은? 우리말의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보듬으며 내일을 만들어가는 흥미로운 우리말 교양서.1만 1500원.●한국 역사의 미인-천년의 향기(이수광 지음, 영림카디널 펴냄) 중국 4대 미인 서시·왕소군·초선·양귀비는 각각 침어(沈魚)·낙안(落雁)·폐월(閉月)·수화(羞花)라 불린다. 그들의 미모에 물고기도 가라앉고, 기러기도 떨어지며, 달도 숨고, 꽃도 부끄러워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 역사의 미인은 누구인가.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진정한 미인이란 예나 지금이나 외적인 용모가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 있음을 강조한다.1만 2000원.
  • “우리가 흘린 피 결코 헛되지 않았다”

    미 해병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벽안의 노병(老兵)들이 전쟁 56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다. 6·25 당시 한국 해병대와 도솔산지구 및 펀치볼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제임스 맥모나겔 미 예비역 소장과 인천상륙작전 및 서울 탈환작전에 참가했던 찰리 버진 예비역 중사 등 7명이 그 주인공이다. 맥모나겔 등은 26일 해병대사령부를 방문해 이상로 사령관과 장병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이들은 또 지난 24일에는 해병대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전투로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부터 ‘무적 해병’이라는 칭호를 받은 도솔산 전승 추모제에도 참석, 당시 함께 참전했던 한국군 해병대원들과 재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맥모나겔은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 미 해병 참전용사는 해병대 2사단과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 견학일정 등을 마치고 7월1일 귀국할 예정이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개혁의 두얼굴/우득정 논설위원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직후 한 네티즌은 친노 인터넷 사이트에 참여정부의 개혁 방향이 잘못됐음을 질타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역사적으로 볼 때 진정한 개혁이란 ‘소중한 동지와 가족을 피눈물 나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해 칼날을 겨눈 탓에 참여정부의 개혁이 실패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모든 변화와 혁신은 자기로부터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 것이다. 10여년 전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이 칼국수로 끼니를 때우며 개혁의 선봉에 서자 국민들은 90% 이상의 지지로 화답했다. 하지만 문민정부도 김현철씨로 대표되는 측근들의 부패로 임기 막바지에는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면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국민의 정부 역시 문민정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자고 다짐했으면서도 똑같은 길을 답습했다. 그렇다면 개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잘못된 것일까. 김진경 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이 최근 개혁주창론자들의 실체를 만천하에 폭로했다. 그는 여권의 386들이 개혁을 표방하고 있지만 속내는 중산층에 편입되기 위해 기존 중산층 이상 계층과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벌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자신들이 헤집고 들어갈 틈새를 마련하기 위해 기득권층을 수구반동으로 몰며 쉴 새 없이 생채기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합리화하는 논리가 바로 개혁이다. 김 전 비서관의 폭로는 ‘짝퉁 개혁론자’들에 대한 레드 카드로 볼 수 있다. 올 초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올랐다.‘신돈, 조광조, 정조, 대원군, 고종, 이승만, 김영삼, 김대중, 이들은 모두 국민을 향해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개혁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자기의 정치세력을 확보하고 극단적 이기를 충족시키는 은폐물로 삼아 왔음이 정권 말기에 드러났다.’이처럼 곳곳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으나 권력의 단맛에 취한 386에게는 짜증스러운 소음처럼 들렸으리라. 시인 신동엽은 참여시의 진수라고 불리는 ‘껍데기는 가라’(1967년 발표)에서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고 피맺힌 절규를 했다. 시인이 생존해 있었더라면 ‘개혁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고 또 다른 외침을 쏟아냈을지도 모르겠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씨줄날줄] 토지혁명/한종태 논설위원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토지 개혁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자주 있었다. 토지 개혁을 통해 관련 제도가 정착될 때 새 왕조가 안정기에 접어든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물론 새로운 지배계층에 대한 보상 측면과 세원(稅源) 확보 차원이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조선 시대의 과전법(科田法)이나 고려시대의 역분전(役分田) 같은 것일 게다. 그런 탓에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모두 토지가 봉건체제의 굳건한 버팀목이었다. 20세기 들어 토지 개혁은 지지계층 확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보인다. 국민당 세력을 중국 본토에서 몰아낸 후 대대적인 토지 개혁에 나섰던 마오쩌둥이 대표적 케이스다. 이승만 정권도 토착 지주 중심의 여당인 한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록 유상이긴 하지만 토지 개혁을 이뤄냈다. 몇백년간 이어져온 지주, 소작제를 없앤 것은 평가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요즘 중남미의 볼리비아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시끄럽다. 첫 인디오 원주민 출신인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토지가 없는 빈민들에게 땅을 나눠 주겠다고 밝힌 게 도화선이다. 그는 토지 혁명의 첫 조치로 국유지 2만 4800㎢를 빈곤층 원주민들에게 나눠줄 방침이라고 한다. 모랄레스 정부는 그 다음 수순으로 사유지까지 손댄다는 것이다. 놀리고 있는 사유지나 불법, 혹은 투기 목적으로 취득한 땅이 대상이고 방법은 ‘몰수’라고 한다. 토지 소유주들이 극력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이들은 이미 토지수호 단체 구성을 결의했으며 일부에선 무장 투쟁까지 벼르고 있다. 모랄레스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함께 대표적인 중남미 좌파정부 지도자다. 최근 두 사람이 국제뉴스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예상을 웃도는 좌파 정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랄레스는 노타이 대통령 취임식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더니 얼마 전 천연가스 국유화 조치를 단행해 깜짝 놀라게 했다. 이번엔 사유지까지 몰수해 빈민들에게 나눠준다니, 일단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 싶다. 면밀한 집권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토지 혁명의 성공 여부에 그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볼리비아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그래서일까.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문화마당] 왜 우리 지폐엔 ‘조선 얼굴’만 보이나/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조지 워싱턴, 엘리자베스 2세, 쑨원, 마하트마 간디, 마오쩌둥, 호찌민, 체 게바라, 에밀리아노 사파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베니그노 아키노, 후쿠자와 유키치, 넬리 멜바, 에드먼드 힐러리, 폴 세잔, 그리고 가우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지폐에 얼굴이 실린 인물들이 답이다. 물론 이들은 한 나라가 그 삶을 기리거나 세계에 내세워 자랑할 만큼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기도 하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이끈 워싱턴을, 영국은 입헌군주 엘리자베스 2세를, 타이완은 국민혁명을 이끈 쑨원을, 인도는 영국에 맞서 싸운 간디를, 사회주의 국가 중국·베트남·쿠바는 민중 혁명가들을, 멕시코는 농민을 위해 일어선 사파타를, 칠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미스트랄을, 필리핀은 민주화를 이끈 아키노를, 일본은 근대계몽사상가 후쿠자와를, 호주는 세계적 프리마돈나 멜바를, 뉴질랜드는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발밑에 둔 힐러리를, 그리고 유로화 통용 전 프랑스와 독일은 세계적 화가 세잔과 수학자 가우스를 자국의 상징 인물로 내세웠다. 이처럼 국민국가 시대를 사는 지구마을의 나라들마다 근현대의 시공간을 살다가거나 아직도 살아 있는 국민적 영웅들의 모습을 자국의 지폐에 아로새겨놓았다. 그러나 우리 지폐에 담긴 인물들은 조선시대 사람 일색이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소리글자 한글을 창제했다 해도 세종대왕은 전제군주일 뿐이며, 이황과 이이도 양반지배질서의 사상적 기반을 닦은 유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철지난 봉건시대의 위인들을 주권재민의 공화정을 국체로 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인물로 지폐에 새겨 기리는 것은 세계의 보편적 기준에 합치하지 않는 난센스다. 왜 우리는 근현대를 산 아니 살아 있는 인물들을 지폐에 담아놓고 기리거나 자랑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자주적으로 국민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근대사와 분단·동족상잔·독재로 점철된 현대사의 질곡이 우리 근현대 인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상징하는 엘리자베스 2세와 달리 우리들의 눈에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입헌정치를 요구한 독립협회 운동을 탄압한 전제군주이자 일제에 나라를 앗긴 망국의 군주로 비친다. 워싱턴에 비견되는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도 분단 고착화의 주범이자 독재자로 기억된다. 개화사상가 김옥균, 민족지도자 김성수, 문호 이광수, 애국가를 지은 안익태, 민족의 정서를 담은 가곡을 남긴 홍난파, 그리고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이긴 입지전적 한국화가 김기창 같은 이들도 친일파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인물들로 우리의 지폐를 장식한 이유는 고난의 근현대를 살아오며 갈가리 찢긴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줄 만한 당대인물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잘 찾아보면 세계에 유례가 없는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함께 이룬 우리의 현재를 잘 대변하며, 앞서 남녀동권(男女同權)과 타자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 선각자들이 분명 있었다. 우리가 남북이 하나되는 국민국가 만들기와 아시아와 더불어 살기를 소망한다면, 분단을 막기 위해 애쓴 김구와 동양 삼국 사이의 진정한 평화를 꿈꾼 안중근이 다가설 것이요. 양성 평등 사회를 바란다면, 가부장권에 맞서 내 몸의 주권을 찾으려 한 신여성 나혜석이나 김일엽이 도드라져 보일 것이요. 노동자와 기업가가 함께 사는 세상을 일구려 한다면,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해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 유일한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꽃다운 생명을 바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도 눈에 가득 들어 올 것이다. 우리 지폐에서 이들의 얼굴을 볼 날이 어서 오길 바랄 뿐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 [열린세상]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은 존재하는가/김병식 동국대 부총장

    오늘 우리 모두가 갖는 공동의 이념, 이른바 시대정신은 존재하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물음이 너무 관념적이어서 생뚱맞긴 하지만, 최근 하던 일에서 부딪쳐 나온 생각이다. 봉직하고 있는 대학이 금년으로 창학 100년을 맞았다. 기념행사를 치르면서 숙연함이 있었다. 그 어려운 시절, 학교를 설립했던 선각자들의 바쁘고 격정어린 숨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100년 전인 1905년 일본의 을사늑약, 쇠락해 가던 조선말,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진 시대정신, 그 상황적 편린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근대교육을 시켜야겠다는 구체적 실천으로 풀어 나갔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휘문고를 위시한 명문 사립고, 고종황제의 고려대와 숙명여대 설립, 불교 선각자들의 우리 대학 창립이 그것이다. 이 학교들이 모두 100주년을 맞았다. 이제 새로운 백년을 다시 시작하며 어떤 지표로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나온 생각이다. 최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사안별 생각의 편차는 매우 크다. 미국 및 일본 등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부동산 등의 경제현안, 사학법, 양극화 문제 등 논란이 되는 사회 문제에서 보여준 이견의 폭은 크다. 인터넷 댓글로부터 여러 견해를 접하며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고 놀란다. 이해하려 노력해 보지만 혼란스럽다. 물론, 수학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에 의견이 통일되기는 힘들겠지만 각론이 아닌 총론에서부터 견해가 이렇게 극명히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현대 사회를 ‘해체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데올로기로 대변되는 거대담론을 거부한다. 개인의 욕구와 사고를 우선시하고 작은 담론을 즐겨 한다. 더욱이 인터넷이란 쌍방향 매체로 손쉽게 많은 개인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개진한다. 그래서 개인의 생각은 더욱 나누어지고 그 결과, 사회 해체가 가속화되기 때문에 이른 말일 것이다. 해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의 개념을 꺼내는 것이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안팎의 사정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중국의 국제적 등장과 동북공정, 일본의 우경화와 독도, 미국과의 FTA협상을 중심으로 한 경제 및 정치현안, 그리고 때늦은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논쟁, 다종교 사회 등이 버겁게 느껴진다. 시대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한 시대의 공통된 환경과 문화를 통해 생성된 시대 구성원의 이념’이다. 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면,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각 시대에는 나름대로 시대정신이 있었다. 우리 근대사에서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시대정신은 ‘독립’이었고 독립 후 이승만 정권에서는 ‘건국’이었다.6·25 전쟁을 거치면서 박정희 정권에서는 ‘경제성장’이었으며, 군사독재정권하에서의 또 다른 우리의 시대정신은 ‘민주주의’였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에게 어떤 시대정신이 바른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훗날의 역사가 바른 것이었는지 말해줄 뿐이다. 그러나 국가발전, 민족번영의 목표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큰 그림 속에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건전한 시대정신을 찾고 공감을 얻는 과정에서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 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공동의 시대정신이 진정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세울 것인가. 답은 전문가에게 미룬다. 다만 증폭되는 갈등이 안타깝고, 비판이 과다한 것 같아 절제를 당부하고 싶다. 건전한 정신을 세우는 일에는 바른 의사결정 및 비판이 전제조건이다. 다른 사람의 견해를 비판할 때도 나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의 말이어서 비판할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있었으면 한다. 다른 편이 내는 의견도 시대정신에 부합되면 동조하고 박수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회였으면 한다. 해체의 시대에서, 사회를 통합하는 건전한 시대정신을 기대하는 욕심을 내 본다. 김병식 동국대 부총장
  • [서울의 문화재] (10) 경교장

    [서울의 문화재] (10) 경교장

    지난 12일 백범 김구(金九) 선생이 기거하다가 서거한 경교장(京橋莊)을 찾았다. 경교장은 2층 석조 건물로 외부 벽면은 화강암과 타일을 붙이고 슬레이트에 고기비늘형 덮개가 씌워져 있는 일본식 건물이다. ●병원건물로 변신… 역사적 의미 거의 몰라 현재 경교장은 강북삼성병원 건물로 쓰이고 있다. 경교장엔 약국과 간호실, 보호자 대기실 등이 있다. 이날도 수많은 외래환자들이 드나들었다. 하루에 700∼800명이 오간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는 “가끔 학생들이 단체로 오긴 한다. 하지만 개인이 역사적 의미를 알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파란만장했던 역사의 현장에 날마다 수백명이 경교장과 백범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원일을 보기 위해 온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백범이 있던 당시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이곳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한국독립당 재정부장을 지냈고 1948년 백범과 함께 남북정치회담에 참여했던 신창균(작고)씨는 7년 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김구 선생이 돌아온 뒤 경교장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면서 “애국자뿐만 아니라 이광수나 최남선 등 친일파도 선생을 등에 업고 죄를 조금이라도 지우려고 했고 입신과 출세를 위해 온 사람도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단독정부 수립문제로 백범이 이승만과 대립하고 남북협상을 위해 북한에 다녀온 뒤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정치자금을 가져오는 사람들도 점점 줄었다고 한다. 이런 경교장에 1949년 6월26일 수십만의 인파가 다시 몰렸다. 이날 백범은 육군 소위 안두희의 저격을 받고 운명했다. 이날 우리 민족은 국부를 잃었고, 슬픔에 잠겼다. 영결식 날인 7월5일 서울운동장에서 장지인 효창공원까지 인파가 길을 메우고 선생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백범이 서거한 뒤 경교장은 타이완 대사관저로 잠시 쓰이다가 한국전쟁 때는 의료진 주둔지로,9·28수복 후엔 미군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가 이어졌다. 휴전 후 경교장은 월남대사관으로 쓰이다가 1968년 고 이병철 회장의 맏사위가 주인이었던 고려병원이 인수,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서 백범과 경교장의 관계는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다. 건물 앞 구석에 ‘김구 선생이 서거한 곳’이란 작은 푯말이 있을 뿐 방문한 환자들도 전혀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무관심 속에 1996년 경교장은 철거 위기에 처했다. 같은 해 1월 강북삼성병원은 “경교장이 병원 한가운데 있어 병원 건물 신축이 불가능해 이전 또는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김구선생기념사업회 등 관련 단체가 강력 반대운동을 펼쳤다. ●이승만 전 대통령 머물던 이화장과 대조적 이에 병원측은 “경교장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아 철거가 가능하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 시 문화재위원 2명도 “현장 답사 결과 철거나 이전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반발이 빗발치자 서울시는 2일 뒤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경교장이 문화재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김구 선생이 거처하면서 암살당한 사적이기 때문에 ‘경교장 이전 불가’”라고 못박았다. 오랫동안 경교장이 문화재가 못 된 건 심한 내부변형 때문이다.1998년 8월2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 서거 50주기 추모공연준비위원회’와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관계자가 서거 49년만에 처음 암살 현장을 방문해 추도식을 가졌을 때, 그 곳은 이미 오래전에 ‘의사휴게실’로 바뀐 뒤였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동시대에 기거했던 이화장은 대조적이다.1982년 서울시 기념물 6호로 지정됐고 사진과 유품 수천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승만의 양아들 이인수씨의 소유인 이곳엔 평소에도 30∼40명의 관람객이 찾아오고 관리에 필요한 돈은 서울시에서 부담, 보존하고 있었다. 경교장도 결국 2001년 4월6일 서울시 유형문화재 129호로,2005년 6월13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강북삼성병원은 2001년 경교장이 속한 본관의 리모델링 계획서에 암살 현장에 ‘백범기념실’ 설치를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제기된 경교장 복원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 2층엔 백범이 기거했던 방 모습을 재현한 백범기념실이 있다. 이곳엔 그의 흉상과 일생을 다룬 전시물이 있다. 하지만 모두 새 제조물일 뿐 어느 곳에서도 그의 유품은 없다. 또 강북삼성병원은 이미 1996년 10월 2층을 백범의 유품 등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라는 서울시의 권고를 달갑지 않게 생각한 바 있다. 백범 김구는 국민 모두가 독립운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고,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 하지만 경교장과 이화장은 백범을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 세력은 실세했고, 친일파는 득세했다는 뼈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열린세상] 안창호는 왜 좌절하지 않았을까/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요새 도산 안창호 평전을 쓰고 있다. 글의 성격이 평전이기 때문에 도산선생의 실천 마디마디 앞뒤의 정세와 그의 처방을 따져봐야 하는 작업이다. 최근에 발굴된 자료나 연구논문도 가능한 대로 읽어보고 참조해서 쓰고 있다. 도산의 끊임없는 고뇌와 침식을 잊은 실천을 따라가기 바쁘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눈물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 온몸을 던지는 실천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좌절과 실패에 직면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구체적인 독립운동의 조건을 따져 실천했다는 점을 느꼈다. 도산이 동지들의 배신과 모략, 견제와 폄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끝까지 독립운동의 동지로 대하고 섬기고 살려는 자세를 견지한 것은 아무리 독립운동의 대의에 충실한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는 참기 힘든 일이다. 도산을 공산주의자로 모략한 이승만에 대해 독립운동하는 사람 가운데 그런 이가 있을 리 없다며 아예 그가 누구냐를 묻지 않았다. 왕년의 동지들이 주변의 모략과 폄하를 방치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여도 그들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고 그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통일독립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려 애썼다. 섬세하고 치밀한 그였기에 속이 썩어 문드러졌을 텐데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유랑의 길을 다닐 때 혼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거나 신민회 운동이 실패한 뒤 망명에 오르면서 옹진해협의 산꼭대기에서 눈물의 기도를 하거나 대전 형무소를 나와 환대하는 동지의 집에서 ‘동포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나는 죄인’이라며 우는 도산의 모습은 저절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이고, 안타까움과 탄식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잃어버린 옛 나라를 찾아 복된 나라를 만들려는 도산의 지칠 줄 모르는 의지이다. 도산은 상식적으로 보면 실패한 삶을 살았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뛰어들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워보려 했지만, 수구파와 외세의 탄압으로 실패했고, 고향에서 신식교육과 개간사업을 전개했지만 수구파들의 탄압정국 조성으로 지원이 끊어지면서 그만두어야 했다. 할 수 없이 미국으로 건너가 노동을 하면서 공부하려고 했으나 이민노동자들의 무권리상태와 빈궁한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팔을 걷어붙였다. 좌우파를 망라한 민족유일당 건설 호소와 남북만주를 오고간 분투에도 불구하고 좌익모험주의 때문에 허사가 되고 말았다. 도산은 공리공론이나 주체적 역량에 걸맞지 않은 투쟁보다 구체적 현실에 바탕을 둔 실천가능한 방안을 추진했고 그런 작업을 통해 일제와 전면적인 독립전쟁을 치러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기를 꿈꿨다. 경제위기나 양극화에 대한 말싸움만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 수백년 동안 내려온 DNA가 참 끈질기기도 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60평생에 실패를 거듭한 실천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는 항일독립과 혁명을 추구한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알 듯하면서도 확실한 해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물론 힌트는 있었다. 흥사단을 창단하면서 ‘나 혼자라도 동지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든가 ‘만주동포들의 비참한 현실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든지 ‘죄인을 용서해주소서.’라는 기도에 해답이 있는지 모른다. 아마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한반도와 겨레에 대한 사랑,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학살로 죽어간 동지들에 대한 의리, 해외에 떠돌고 있는 동포들의 참상을 방관할 수 없었기에 도산은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 조국의 광복과 혁명을 위해 싸웠던 것은 아닐까. 도산은 미지의 인물이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개량주의, 준비론자, 문화주의자라고 딱지를 붙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도산보다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을 한 애국자가 없는 것 같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 [옴부즈맨 칼럼] 모호한 정치 기사 제목들/김동률 KDI 초빙연구위원 저널리즘

    “오늘날 선거는 돈에 의해, 즉 부자들에 의해, 언론 장악을 통한 통제에 의해서만 승리한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시들어 가지만 선거운동원들은 그들만의 승리를 자축하며 축배를 들고 있다.” 2000년 11월7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민주주의의 본산국가인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날린 직격탄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돈이라는 실탄이 없으면 선거를 치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선거철만 오면 현금이 가득 찬 사과상자가 지면에 등장한다. 5·31 지방선거가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신문 정치면은 현금 사과박스에다 강풍, 오풍 등 선거 관련 기사가 넘친다. 본디 언론은 인간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과거에는 정치인을 파악하기 위해 유세장에 가야 했지만 이제는 신문을 뒤적이거나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족적을 캐봐야 한다. 언론은 이제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구성원들에게 판단의 근거가 되는 밑그림을 제공해 준다. 한국의 경우 과거 부모가 담당했던 정치사회화 과정을 이제는 언론이 맡고 있다. 예전에는 박정희가 어떻고, 이승만이가 어떻고를 부모로부터 들었지만, 이제는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강금실과 오세훈을 알게 된다. 그래서 언론을 ‘제2의 부모’라고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언론은 후보자들의 정치적 능력이나 정책보다는 신변잡기적인 보도에 열심이다.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시장직 수행과는 전혀 무관한 후보의 용모, 말솜씨, 심지어는 후보들이 선호하는 색깔 등등에 의미를 부여하고 커다란 지면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 한주 동안 상당량의 선거관련 기사를 정치면에 내보냈다. 많은 경쟁지들에 비해 서울신문의 선거관련 기사는 크게 돋보이지는 않았지만 차분하고 비교적 냉정하다. 물리적으로도 나름대로 균형을 맞췄으며 무엇보다 자극적 제목이나 선동적인 내용으로 독자들을 현혹하려 들지 않아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자극적인 제목이 아니라고 해서 모호한 제목은 곤란하다. 서울신문의 지난 21일자 정치면 톱 기사의 제목은 “‘康,陳 쌍끌이카드 찾기’ 부심”,25일자 정치면 톱기사의 제목은 “與 ‘수도권 3중 정책공조’ 승부수”였다. 비록 부제가 달리긴 했지만 독자들의 눈을 끌기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 사건기사와는 달리 딱 부러지게 달 수 없는 정치기사의 특별한 점을 이해한다 치더라도 제목을 보고 기사의 내용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제목에 등장한 단지 몇 개의 단어들은 독자로 하여금 전체 기사를 읽을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뿐만 아니다. 적절한 제목은 검색을 자주하는 인터넷 사용자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서울신문에 관심을 가질 개연성으로 연결된다. 편집부는 지면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맡고 있다. 그래서 편집국이라고 부르고 편집기자를 최초의 독자라며 의미를 부여한다.“보기좋은 떡, 먹기도 좋다.”는 말은 편집의 중요성을 비유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신문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크고도 무섭다. 보통사람이 정치 현안을 평가하는 방향은 불행하게도 신문이 평가하는 방향과 대체로 일치한다. 신문 제목에 좋게 뽑히면 좋은 것으로 보이고, 나쁘게 뽑히면 나쁜 줄 안다. 물론 지식이나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신문에서 특정기사를 톱기사로 제목을 계속 뽑아대면 정말 중요한 줄로 알게 된다. 게다가 신문은 선거운동 등 실제적인 정치 행위에 대해서도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신문지면을 꼼꼼히 챙겨 읽어서 얻은 정보를 두고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방송보다는 신문을 많이 접하는 사람일수록 주변의 친구나 동료들과 정치토론 등 정치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최초의 독자, 편집기자의 손을 거쳐 등장하는 제목이 더욱 중요하다. 김동률 KDI 초빙연구위원 저널리즘
  • 1억2000만원짜리 ‘V버디’

    석종율(38·캘러웨이)이 4년 만에 우승컵을 안았다. 석종율은 30일 경기도 용인 레이크사이드골프장 남코스(파72·7405야드)에서 열린 GS칼텍스 매경오픈 마지막라운드에서 버디만 5개를 솎아내면서 5언더파 67타를 쳐 합계 17언더파 271타로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이 대회 챔피언 최상호(51·동아회원권)의 제자로 프로 10년차인 석종율은 2002년 익산오픈 우승에 이어 통산 두번째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상금 1억 2000만원을 챙겼다. 17번홀까지 16언더파를 유지, 이미 경기를 끝낸 브라이언 솔터스(미국)와 공동 선두를 달리던 석종율은 18번홀(파4)에서 드라이브샷을 그린에서 70m 떨어진 페어웨이 중간으로 안전하게 보낸 뒤 두번째 샷을 핀과 1m도 안되는 거리에 붙여 버디를 낚아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첫날부터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던 청각장애 골퍼 이승만은 전반까지 선두그룹을 유지했으나 11∼13번홀에서 거푸 보기를 범하면서 무너져 합계 14언더파 274타로 공동 3위에 만족해야 했다. 중학생 국가대표 노승열(15·고성중3)도 당당히 3위그룹에 이름을 올려 프로들을 긴장시켰다. 김대섭(SK텔레콤)은 3타를 줄였으나 합계 13언더파 273타로 6위에 그쳤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뛰는 스콧 헨드(호주)는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공동 7위를 차지했다. 또 3라운드에서 9타를 줄이면서 선두와 3타차 공동 3위까지 올라갔던 J B 홈스는 11번홀(파5)에서만 6타를 잃는 어처구니없는 플레이로 순식간에 무너져 합계 8언더파 280타로 공동 14위까지 밀렸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이승만 매경오픈 2R 단독 선두

    청각장애 골퍼 이승만(26)이 28일 경기도 용인 레이크사이드골프장 남코스(파72·7405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 겸 아시아프로골프 GS칼텍스 매경오픈 2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쳤다.이승만은 중간합계 11언더파 133타로 김상기(21)를 2타차로 따돌리고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미국프로골프(PGA) 2부투어에서 뛰다 2004년부터 아시아 무대로 눈길을 돌린 이승만은 이로써 고국에서 생애 첫 우승을 바라보게 됐다.
  • 고하리 스스무 교수가 본 ‘대통령과 리더십’

    고하리 스스무 교수가 본 ‘대통령과 리더십’

    각 장의 마지막에는 각 대통령들로부터의 ‘교훈’까지 정리돼 있다.“권력의 생명은 합법성과 도덕성이다.” (이승만),“지도자의 리더십은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박정희),“권력이 가족주의에 빠지면 반드시 자멸한다.”(전두환),“정책연대가 국가경영의 성패를 가른다.”(김영삼),“국정은 투명해야 한다.”(김대중) 등이 그것이다. MBC가 작년에 제작한 드라마 ‘제5공화국’이 일본의 한 TV채널에서 한창 방영 중이다. 한국 현대사 공부가 될까 해서 매주 빠짐없이 보고 있다. 한국의 현실정치를 일본으로부터 보고 있자면, 그 실상이 ‘정치 드라마’보다도 더 재미있는 ‘또다른 드라마’임을 느끼곤 한다. 그것은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하고 ‘대통령’이라는 시대의 주연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일본처럼 내각책임제하의 총리와 달리, 한국의 경우에는 각각의 대통령 시대가 고스란히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그런 드라마 한편 한편을 책 속의 한장 한장으로 녹여 학문적으로 분석한 것이 이 책의 제2부 ‘대통령과 리더십-권력의 부침과 현대사의 굴곡’이다. 제1부 ‘정치와 국가경영-정치는 국가경영이다’에서는 정치와 리더십에 관한 상세한 이론적 해설과 함께 옛 현인들의 말씀들로 채워졌으나, 이 책의 심장부라고 하면 단연 제2부라 할 수 있겠다. 제2부는 다음의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이승만:가부장적 권위형 ▲장면:민주적 표류형 ▲박정희:교도적 기업가형 ▲전두환:저돌적 해결사 ▲노태우:소극적 상황적응형 ▲김영삼:공격적 승부사형 ▲김대중:계몽적 설교형 ▲승자는 누구인가. 한결같이 전직 대통령들의 리더십 스타일을 제대로 표현하는 타이틀이다. 왜 이러한 리더십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저자는 각 장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저돌적 해결사형’으로 묘사된 전두환을 “그는 장애물이 나타나도 우회할 줄 모르고 성난 들소처럼 정면으로 돌진하는 사람이었다.12·12사태와 5·17이 단적인 사례다.”라고 평했다. 또한 전두환은 “의리를 중시하는 보스형”이자,“독선과 위임의 양면성”을 가졌다고도 저자는 지적한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 등장하는 배우 이덕화씨의 연기를 굳이 보지 않고도 5공 시절을 겪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상상 가능한 전두환의 이미지일 것이다. 게다가 각 장의 마지막에는 각 대통령들로부터의 ‘교훈’까지 정리돼 있다.“권력의 생명은 합법성과 도덕성이다.”(이승만),“지도자의 리더십은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박정희),“권력이 가족주의에 빠지면 반드시 자멸한다.”(전두환),“정책연대가 국가경영의 성패를 가른다.”(김영삼),“국정은 투명해야 한다.”(김대중) 등이 그것이다. 하나같이 전직 대통령들이 가졌던 국가경영상의 약점들을 적확히 꼬집은 거라 하겠다. 이해하기 쉬운 문장표현, 큼직큼직한 활자, 복잡한 주석들을 최대한 간소화한 점 등 독자들에 대한 여러 배려들은 비단 이 책을 연구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일독할 수 있게끔 한다. 단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점이 아쉽다. 각각의 시대를 상징하는 풍경이나 대통령의 얼굴사진 정도만 넣어도 좋았을 법했다. 권위주의야말로 한국정치의 오랜 악폐이나,‘권위’는 대통령이 잃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권위’없이는 국가경영도, 리더십 발휘도 할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은 어떨까요? 이 책의 증보판이 2008년 이후에 나올 경우, 장관을 역임한 관록있는 한 정치학자의 안목으로 그려질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과 교훈이 무엇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일본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 한국사회론)
  • “美 PGA 입성 차곡차곡 준비”

    “美 PGA 입성 차곡차곡 준비”

    “비가 올 때 보청기에 물이 들어갈까봐 조바심이 나지만 그 외엔 다른 골퍼들과 다를 게 없지요.” 티박스에 선 골퍼들은 드라이버를 통해 전해지는 짜릿한 손맛과 청명한 소리에서 희열을 맛본다. 지난 1994년 미여자프골프(LPGA) 메이저대회 가운데 하나인 드 모리어클래식(브리티시여자오픈의 전신) 챔피언은 청각장애 선수인 마사 노스(미국)였다.2년전 청신경을 다쳐 골프를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의사들은 거짓말쟁이였다.”는 말로 우승 소감을 대신했다.‘오감’ 가운데 빠진 하나를 메운 건 재기를 위한 ‘불굴의 의지’였다. 한국프로골프(KPGA)와 대한골프협회(KGA) 소속의 청각장애선수는 현재 20여 명 남짓. 노스와는 달리 대부분 선천적이거나 아주 어릴 때 겪은 불의의 질병 때문이다. 최정규(28)와 권병율(22)도 마찬가지였다. 둘을 만난 건 청담동의 한 골프연습장. 체격은 커 보이지 않지만 귀에 꽂은 보청기만 빼면 시합을 앞둔 여느 프로들과 다를 바 없다.3살때 중이염을 심하게 앓은 뒤 중학교때 장애2급 판정을 받은 최정규는 그러나 교실 맨 앞자리에서 귀를 쫑끗 세워 수업을 받으며 대학까지 마쳤다. 국내 주니어대회에서 6차례나 정상에 오른 뒤 2001년 또 다른 청각장애 골퍼인 이승만(26)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퀄리파잉스쿨을 노크하기도 했다.1차 예선에서 탈락, 쓴맛을 곱씹으며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2년전 일본프로골프(JGTO) 2부투어에 진출, 이듬해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는 지금 나이에 관계없이 차곡차곡 ‘PGA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상금랭킹은 13위.5위 이내에 들 경우 1부투어에 오를 수 있고, 미국무대를 또 겨냥할 요량이다. 권병율 역시 3살때 청각장애로 2급판정을 받았지만 수상스키를 포함, 온갖 운동을 두루 섭렵한 ‘스포츠광’이다. 처음엔 골프장 전동차 소리를 듣지 못해 카트에 치이기도 여러 차례. 그러나 고요를 깨뜨리는 단말마 같은 드라이버 소리가 그의 유일한 낙이다. “귀가 불편할 뿐 집중력이 뛰어나 퍼팅과 쇼트게임 등에서는 오히려 일반인들을 능가한다.”는 게 그를 가르치는 이병용(37) 티칭프로의 말. 어눌하지만 둘이 내는 목소리는 똑같다.“우린 결코 다른 골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PGA 투어 진출이라는 최종 목표 역시 그들과 틀리지 않습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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