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승만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서천군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경험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에너지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천안함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87
  • ‘우리말 지킴이’ 방송인 정재환씨 한글연구로 석사학위

    ‘우리말 지킴이’로 널리 알려진 방송인 정재환(46)씨가 4년 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오는 26일 성균관대 사학과 대학원에서 한글 역사와 관련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6일 성균관대에 따르면 정씨가 쓴 ‘이승만 정권 시기 한글 간소화 파동 연구’라는 석사논문은 1953년부터 2년 동안 이어진 한글간소화 파동을 주제로 삼았다.53년 10월 이승만 정권은 이미 널리 보급된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대신 소리나는 대로 글을 표기하는 옛 철자법을 사용하라고 국무총리 명의의 ‘한글 간소화’ 공포를 했다. 개화기 성경 표기법을 근간으로 한 옛 철자법을 따르면 ‘갔다’는 ‘갓다’로,‘꽃밭’은 ‘꼿밧’이,‘받침대’는 ‘밧침대’가 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계와 국민의 저항이 심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1955년 9월19일 간소화 철회 담화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정씨는 논문에서 “한글학회 표기법이 정해진 33년 이후 해외에서 오랜 생활을 한 이승만 대통령이 표의주의에 입각한 변화된 철자법을 이해하지 못한 데 간소화 파동의 배경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위해 정씨는 당시 신문에 실린 수년치 기사와 관련 문헌을 뒤져보는 것은 물론 미공개 상태에 있던 51년 10월부터 56년 5월까지의 한글학회 이사회 회의록을 발굴해 기초 자료로 삼는 등 온갖 노력을 했다. 정씨는 “말 문제는 역사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주제”라면서 “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계속해 우리말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대통령은 독선 버리고 조정능력 갖춰야 포퓰리즘 혁신없인 정부실패 반복될것”

    ‘바람직한 한국 대통령의 리더십은 무엇인가.’ 한국정치학회와 관훈클럽이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한국 대통령 리더십 학술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을 분석, 평가하면서 “독선을 버리고 조정 능력을 갖춰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차기대통령, 국민통합으로 리더십 위기 극복해야 고려대 함성득 교수는 “앞으로의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동안 악화된 경제적 상황을 일자리 창출을 통해 완화하고, 이념과 지역, 그리고 세대별로 분열된 국민을 통합해 정치적으로 ‘다수파 대통령’이 되어 현재의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정치상황은 ‘안정과 개혁’ 또는 ‘보수와 진보’와 같은 타협이 어려운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낳고 있다.”면서 “이들간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 조화시켜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대통령의 바람직한 리더십의 형성과 발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 교수는 실패한 미국 대통령 리더십의 특징으로 ▲명확한 국정비전의 결여 ▲타협능력의 결여 ▲미숙한 정치적 기술 ▲소통능력의 결여 ▲부정직성 ▲인격의 결여 등을 꼽으면서, 실패한 리더십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법적이고 관리적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입법적·관리적 리더십과 함께 대통령 자신의 성숙된 인격, 또는 정신적 성숙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덕목”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후 파격적인 발언과 행동은 탈권위주의에는 도움이 됐으나 보수층의 실망감과 경멸감을 높이고 국민통합을 위한 대통령 자신의 권위를 실추시켜 부정적인 소수파 대통령으로 남게 돼 사회불안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올 대선, 후보자 품위와 경륜 선호될 듯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2007년 대선은 이전의 대통령 선거와 비교할 때 후보자의 개인적 특성이 강조되는 선거로, 사회적 균열과 같은 구조적 요인보다 후보자의 개인적 속성이 중요하다.”며 숭실대가 지난해 9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진보적 성향’‘품위와 위엄’‘안정적 인물’‘여론 중시하는 민주적 리더십’‘산업화에 공헌’‘도덕성보다 능력’‘경륜 있는 인물’ 등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았다. 강 교수는 “품위나 안정, 경륜 등을 선호하는 것을 볼 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차기 대통령의 원하는 리더십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역대 대통령 평가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다양한 리더십을 분석했다. 명지대 김도종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이 정부 수립과 한반도 안정 등 성과를 이뤘지만 출중한 능력이 독선과 오만으로 나타나 좌·우익 모두를 정적(政敵)으로 만들어 ‘실패한 지도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전주대 이강로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강력한 ‘경제 리더십’이 있었지만 부의 편중, 소외계층 양산 등으로 정치적 반대세력의 도전을 초래해 1970년대 이후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경남대 김용복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은 준비되고 전문적인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권력기반인 청와대와 호남 기반을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한 것이 부정과 비리를 낳은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창원대 안병진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리더십을 현재의 민의(民意)보다 미래과제만 강조하는 ‘토플러주의’와 기득권층과 대립각을 세우는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질적인 혁신 없이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반복되거나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4년연임 개헌’ 정국] “진짜 나쁜 대통령은 자신 위해 개헌”

    노무현 대통령은 10일 3부 요인 및 헌법기관장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나쁜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라면서 “이번 개헌은 나를 위한 개헌이 아니고, 차기 대통령을 위한 개헌”이라고 밝혔다. 전날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논평에 대한 반격이다. 오찬은 노 대통령이 개헌 제안의 취지와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임채정 국회의장·이용훈 대법원장·한명숙 국무총리·고현철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이 참석,1시간55분 동안 이뤄졌다. 개헌 여론 확산을 겨냥한 노 대통령의 첫 여론 수렴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개헌 제안=정략적 의도’라는 주장과 관련,“필요한 것을 반대하는 쪽이 오히려 정략적인 것이지, 필요한 것을 하자는 쪽이 어찌 정략적일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또 “개헌이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당에도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시간적으로야 지금도 (개헌을) 두 번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남아 있다.”면서 “발의하고 3개월이면 되고, 발의 전 준비기간을 합치면 4개월이면 된다.”고 설명했다.“87년 예를 비교하면 두 번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며 시간이 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개헌 제안의 배경에 대해 “임기중 할 일을 안 했다는 심적 부담과 책무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서 “개헌 제안도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털어놨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청와대브리핑에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라는 글을 올려 “공약을 지키려는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이냐.’며 노 대통령의 오찬 발언을 보완하면서 보다 더 강하게 박 전 대표를 비판했다. 이른바 ‘나쁜 대통령, 좋은 대통령론’이다. 글에서 “우리 역사에 정말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 있었다.”고 전제,“자신의 임기를 연장하려는 개헌, 독재를 항구화하고자 한 개헌, 그것을 날치기나 폭력으로 추진하려 했던 대통령이 진짜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또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묻는다.”면서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추진한 이승만 대통령,3선 개헌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유신 헌법을 제정한 박정희 대통령, 단임제이지만 7년 임기를 누릴 수 있도록 개헌한 전두환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이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개헌을 정권이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국민의 공론을 물어 추진한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이라면서 “박 전 대표는 본인이 가진 ‘나쁜 대통령’의 잣대를 다시 한번 점검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시론] 개헌은 필요하다/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헌법학

    [시론] 개헌은 필요하다/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헌법학

    2007년 새해 벽두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개정 제안은 주목할 만하다고 본다. 현행 헌법의 개정이 한국정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4년 연임제의 대통령은 한 번 당선되면 그만인 5년 단임제 대통령과는 달리 국민과 함께해야만 살아 남는다. 국민이 주인 되고 대통령이 머슴이 되는 대통령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처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같은 시기에 뽑아야 정치인이 만들어 내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정치가 자리잡게 된다. 개헌은 해야 하는데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고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 이해타산만을 고려한 구태의연한 발상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불행은 법을 지켜야 하는 헌법이 유린당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한국의 정치와 법의 끝없는 방황도 헌법을 노리개쯤으로 취급해온 정치꾼들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사는 ‘정치세력간의 야합에 의한 정치권력의 변천사’였다. 제헌헌법은 제정 당초부터 헌법안을 기초하는 자(내각제 주장)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대통령제 고집) 간의 야합으로 탄생했기에 매우 기형적인 정부 형태를 갖게 됐다. 속은 내각제고 겉은 대통령제였던 제헌헌법의 전통은 우리 헌정사의 위정자들에게 대통령제, 내각제, 유사 이원집정제 등 온갖 통치 메뉴를 제공했다. 제헌헌법 이후 제1·2차 개헌은 이승만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직선제와 3선 개헌,5·16쿠데타 이후 제6차 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유신쿠데타와 유신체제 개헌, 그리고 5·17신군부 쿠데타와 제8차 개헌은 전형적인 국정유린이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에는 ‘헌법제정 권력’에 의한 헌법제정과 ‘헌법개정 권력’에 의한 헌법개정이 없었다. 현행 헌법인 제6공화국의 제9차 개헌헌법은 1987년 ‘6·10시민항쟁’이라는 저항권 발동과 여야 합의에 의한 헌법개정 논의와 절차로 인해 역대 헌법개정 과정과는 크게 달랐다. 하지만 5년 단임의 대통령제 도입은 당시 1노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사정을 감안한 정치결단의 결과였다. 유신체제와 5공정권의 대통령 독재를 경험한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뽑을 수 있다는 그 자체에 만족해서 더 이상의 변화와 꿈을 접었다. 현행 헌법은 6·10항쟁 국민투쟁의 산물로서 정치참여 욕구가 헌법개정권력의 동인(動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헌과정에서 국민과 전문가의 참여는 상당부분 배제됐다. 21세기 정보화사회의 한복판에 있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 과거 일당독재와 1인 장기집권을 막아준 현행 헌법은 사명과 생명을 다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에 새 헌법이 필요하다. 그 필요성에 모든 정치인과 정당이 공감하고 있다. 언론들도 오래전부터 5년 단임제의 폐해와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역설해 왔다. 이제 국민이 원하는 헌법을 헌정 60년사에 등장시킬 때가 됐다. 정치인이나 언론에 헌법 발의권자인 대통령과 국민의 대화를 가로막지 말 것을 주문하고 싶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헌법학회에서도 4년 중임제와 함께 국민이 뽑지 않은 국무총리의 대통령대행의 불합리성과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부통령제 도입, 결선투표제 등을 담은 헌법개정안을 제안한 바 있다. 많은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전문가들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노 대통령은 모두가 원하는 개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헌법학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풍수지리·주역 대가 장태상 공주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풍수지리·주역 대가 장태상 공주대 교수

    간밤에 붉은 돼지와 실컷 놀았다. 돼지는 헤어지면서 아쉬운 듯 “내꿈 꿔.”라고 했다. 실실 쪼개며 콧구멍이 벌렁벌렁거리는 모습이 못생겼지만 어찌나 귀여운지…. 정해년 새해가 ‘쨍하니’ 밝았다. 앵무새가 ‘부자 되세요.’라고 쫑알거린다. 어쩌면 올해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돼지해를 맞아 누구나 돼지꿈을 꿀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돼지꿈이 돈된다는 얘기는 아마 한자로 돈(豚), 듣는 어감이 일단 좋지 않은가. 돼지 얘기를 약간 더하면,12지신 중 마지막으로 해(亥)이다. 오행으론 물(水)이며, 방향은 북쪽이다. 계절은 겨울이며, 색깔은 흑색이다. 성질은 지혜롭고, 숫자는 1과 6이다. 계절 중 10월에 해당한다.10월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화합을 하기에 상달로 여겨 예부터 제천의식이 많다. 돼지는 또 다산(多産) 동물이므로 풍년을 기원했다. 이 대목에서 ‘올 한해 운세는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에 솔깃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을까. 특히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 국운이 더욱 궁금해진다. 과연 누가 이 나라를 이끌어갈 것인지, 또 어려워진 경제사정은 좀 나아질 것인지, 집값은 어떻게 될지 등도 매우 궁금하다. 장태상(63) 공주대 교수(풍수지리학 전공)는 풍수지리와 주역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1970년 26세때 육임정의(六任精義)를 집필했고 2000년에는 국내 최초로 본격 현공풍수(玄空風水) 연구서인 ‘풍수총론’을 펴내 명성을 확고히 했다. 서울 양재동 ‘이산학당’에서 장 교수를 만났다. ●“대선까지 여당 곤경 계속”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나라에서 국민들한테 땅장사하고 집팔아먹는 경우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가면 종래에는 망하고 만다.”고 언성을 높인다.“정치인이나 선장(대통령)도 배가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형국”이라면서 이는 잘못된 서울의 터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고사에 따르면 조선 건국때 무학대사와 권중화(權仲和)는 철원이나 신경(新京-현 서울), 신도천(新都川-현 신도안) 등 세곳을 답사하고 신도안을 가장 명당으로 꼽았으나 배극렴, 정도전, 하륜 등 당시 혁명주체 세력들의 주장에 밀려 서울로 정했다. 장 교수는 “문제는 바로 서울에 대궐터를 정할 때였다.”면서 “무학대사와 권중화는 현 사직공원 자리에 유좌묘향(酉坐卯向)을 놓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도전 등은 남향을 우겨 현재의 경복궁터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결국 서울의 터 경복궁은 자리도 가짜, 좌향도 가짜, 용맥도 난립해 정래(正來)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선 500년은 백성이 아닌 정치가를 위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 “엉뚱한 데로 흐르는 정치이념의 배에 동승해 있기 때문에 몇몇 훌륭한 정치가가 있더라도 뱃머리를 바로잡지 못했다.”면서 작금의 나라상황도 조선시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백년도 안돼 두번씩이나 대궐이 전소되는 사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비유했다. 때문에 행정복합도시 자리도 신도안으로 정했어야 마땅한데 이를 놓쳐 결국 국민들만 속인 셈이 됐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신도안으로 정하면 20∼30년내에 일본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된다고 주장했다. 국운에 대해서는 “지난 600년 통계로 보면 주역의 9운 중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8운에 해당하며 9운 다음에 이어지는 1운이 되던 해에 망하게 된다.”고 말했다.20년 기한을 1운으로 치면 180년마다 한번씩 돌게 되는데 오는 2023년까지가 8운이다. 또 2024년부터 2048년까지는 9운, 그리고 2049년부터 20년 동안 1운에 해당하는데 이때 국가의 큰 위기가 닥친다는 것.1864년 경복궁을 지을 당시 1운이었는데 결국 조선이 망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국회건물만 보더라도 아무런 의지처도 없이 덩그렁하게 있어 이상한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당이 굉장한 곤경에 빠지고 민심은 더욱 악화될 운”이라고 했다. 국운을 점치는 주역의 태을수(太乙數)에 따르면 쳐들어오는 쪽이 객(客)이고 방어하는 쪽이 주(主)인데 객산(客算)이 30수로 주산(主算) 5수에 비해 월등히 높아 객산인 야당은 더욱 강해지고 주산인 여당은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당은 바보여서가 아니라 바보짓만 골라서 하는 격이 더욱 많아지며 졸수만 두게 된다고 풀이했다.“손자병법에 보면 ‘패신(敗神)’에 홀린다는 말이 있듯이 올 대선 때까지 여당은 계속 곤란지경에 빠진다.”고 예고했다. ●“강골한 사람이 권좌 오를 것” 대통령 선거 얘기가 나오자 “반드시 객산에서 주인이 나온다.”면서 “현재 박근혜·이명박 두 예상 후보의 위치는 요지부동이며 사주로 봤을 때 박근혜씨가 좀 나은 편”이라고 했다. 또 다음 대통령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많은 표가 나올 것이라고 하면서 모 후보가 얘기하는 운하는 우리의 실정과 맞지 않으며 차라리 한강다리 넓히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낫다고 했다. 많은 국민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울화증에 걸리다시피 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금 거론되는 인물 외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기세는 아니며 노무현 대통령처럼 탁골(濁骨)이라도 강골(强骨)한 사람이 권좌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박근혜씨는 귀골(貴骨). 이명박씨는 기골(氣骨)에 해당된다고 귀띔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주에 있어 극귀(極貴)가 있어 권좌에 오르긴 했지만 2008년이 중요한 고비다. 사주에 의하면 그해에 운이 바닥나면서 2009년에 망하는 운이다.”면서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잘 대처하는 일이라고 했다. 중국의 속셈은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의 땅까지 손에 쥐려는 것이며 2008년이면 이를 더욱 노골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과 타이완이 이루어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사정에 대해서는 “경제난으로 여당이 정치적 공박을 많이 당하며 서민의 주름살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올해는 풍해(風害)와 전염병이 많고 40대 이상인 경우 특히 심장마비를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해년이 황금돼지해라고 한 것은 날조된 것입니다. 오히려 신해년이 황금돼지면 돼지지 정해년은 아무런 상관없지요. 그냥 붉은 돼지해라고 하면 됩니다. 다만 역사 이래 주요 인물들은 돼지띠와 뱀띠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태조 이성계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돼지띠이고 박정희와 케네디가 정사년 뱀띠 출생입니다. 또 예수도 원래는 기사년(己巳年)생 뱀띠이지요.” ●중학생때 ‘풍수의 대가´ 되기로 결심 장 교수가 풍수지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선린중학교에 다니던 15세때. 개구쟁이에다 놀이를 좋아하던 그가 어느날 하숙집에 혼자 귀가하면서 문득 우리나라 최고의 풍수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는다. 초등학교 시절 서당에 다니면서 논어를 익혀 일찍부터 한문에는 매우 밝았다. 19세가 되자 서울 태평로에 있는 한 중국서점에 들러 주역 등의 책을 한보따리 싸고 고향인 공주로 내려갔다. 당시 소문난 송인옥 선생을 찾아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22세때 명리학과 주역을 터득하고 이듬해 ‘역술인’ 간판을 내걸었다.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고 그의 명성이 자자해졌다. 그러던 38세때 처갓집이 미국 뉴욕으로 이민가게 되자 함께 떠났다. 현지에서도 주역강의를 계속했다.1986년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다시 한국에 오게 됐고 2002년부터 공주대 대학원에서 초빙을 받아 강의를 하게 됐다. 현재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 아파트에 큰아들과 함께 사는 그에게 “집 자리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축좌미향, 즉 서남향”이라고 하면서 풍수지리학상 좋은 위치라고 했다. “올 한 해는 그렇게 썩 좋은 운이 아니니 처변불경(處變不驚), 즉 어떤 상황이 닥쳐도 놀라지 말고 담담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아울러 집을 장만하려면 집값에 연연하지 말고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서·동남향인 건좌(乾坐)·해좌(亥坐)이면 좋습니다. 올 한해는 다들 행복한 부자되세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공주 출생 ▲66년 자평명리학 터득 ▲70년 관악산에서 육임정의 집필, 방한암 스님의 수제자 장성해 스님을 만나 풍수지리 수업 ▲80년 경희대 한의대 현무회 회원에게 주역 강의 ▲82년 뉴욕 한국일보 주역 연재. 뉴욕 소재 원각사에서 2년간 주역 강의 ▲88년 김구암 선생의 태을수 전수받음 ▲96년 정신세계원에서 2년간 주역 및 풍수 강의 ▲2000년 국내 최초 현공풍수 연구서 ‘풍수총론’ 출간 ▲01년 퇴계선생 성학십도 역해서 출간 ▲02년 한국전통문화센터에서 주역 및 풍수, 기문, 육효 강의. 현재 국립공주대학교 대학원 교수
  • [이문열 소설 정치성 논란] “주관적 판단 치중… 문학 도구화”

    정치를 소설에 쓰는 것은 작가의 선택일 수는 있다. 이문열은 소설을 통해 정치를 냉소하는 작업을 쭉 해왔다. 언론개혁을 빗대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같은 소설이 그런 유다. 문학작품을 도구화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나 정치적 견해가 있으면 칼럼을 통해 직접적인 언어형식으로 하면 된다. 소설의 허구성을 빌려 뒤에서 발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조가 냉소적이다. 문학작품이 정치문제를 다룰 수 있다. 그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비굴한 현실에 대한 정치적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호모 엑세쿠탄스’는 눈앞의 현실에 대해 소설적 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주관적 판단을 과격하게 노출하고 있어 작가의 역량을 훼손시킨다. 그의 이전 소설 ‘선택’이나 ‘아가’는 계몽적이고 훈민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몽매한 대중을 고압적으로 훈계하는 것인데 오늘의 현실에서 작가로서 할 방식은 아닌 것 같다. 김수영은 당대의 현실을 풍자하긴 했지만 현실을 직접 풍자하지 않고 알레고리를 써서 이승만 정부를 비판했다. 김지하의 ‘오적’도 마찬가지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씨줄날줄] 下野/이목희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엊그제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비슷한 한탄을 했던 대통령이 과거에도 있었다. 공개석상의 발언이 아니어서 비사(史)로 알려지는 게 다를 뿐이다. 또 중도에 물러난 전직 대통령이 이미 4명이나 된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은 민중혁명, 쿠데타 군부의 압력, 시해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노 대통령의 ‘첫번째’라는 언급은 자의에 의한 하야(下野)를 지칭한 듯싶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 중단이 거론됐던 배경은 둘로 나눠진다. 첫째는 권력강화용이다. 물러날 의사가 없으면서 참모들을 압박하거나 정적을 견제하는 정치기술로 볼 수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5공청산 작업이 한창이던 1989년 말 민정당 핵심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렀다.“친구인 정호용을 사퇴시키려니 인간적으로 못할 짓이다. 하야절차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혼비백산한 당간부들은 “각하, 아니됩니다.”라고 말렸다. 그때부터 여권 인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정씨의 의원직 사퇴를 관철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86년11월 좌익세력 청소를 위한 친위쿠데타를 기획했다고 박철언 전 의원이 회고록에서 밝혔다. 실제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기보다는 검토사실을 퍼뜨려 야당을 비롯한 반대세력을 위협하겠다는 속셈이 깔렸었다고 본다. 둘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는 푸념이 와전된 경우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임기말에 둘째아들이 구속되었다. 자존심에 먹칠을 당하자 의기소침했고, 비공식 자리에서 대통령직의 어려움을 몇마디 털어놓았다. 총리실 일각에서는 “대통령 궐위시에 대비하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를 전해들은 청와대 비서실은 발끈했다.“임기 마지막날까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총리는 고건씨였다. 노 대통령의 언급은 두가지를 섞어놓은 모양새다. 절박한 심정이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공개리에 작심하고 말하는 모습에서 정치의도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너무 자주 임기 관련 발언을 하는 것은 어떤 해명을 붙이더라도 좋게 비치지 않는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부고] ‘서예계 기둥’ 일중 김충현 선생 별세

    한국 서예계의 기둥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이 19일 오후 8시 별세했다.85세.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일중은 38년 중동고 재학 때 조선남녀학생작품전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일찍이 이름을 알려 소전 손재형(1903∼1981) 선생과 나란히 해방후 한국 서예계를 이끌었다. 소전이 전서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 글자체인 ‘소전체’를 발전시켰다면, 일중은 반듯한 해서를 토대로 한 ‘일중체’로 주목을 받았다. 고인은 90년대 말 파킨슨씨병으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주요 비문과 건축물 현판 등 굵직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경복궁의 ‘건춘문’ 현판, 남산의 안중근 동상과 충무공 기념비 글씨, 탑골공원의 3·1정신 찬양 비문,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묘비 글씨, 삼성그룹 옛 로고인 한자 ‘三星’, 아모레퍼시픽의 상표 ‘설록차’ 글씨 등이 그의 작품이다. 고인은 경동고 교사,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 한국서예가협회 이사장을 지내면서 후학 양성과 한국 서예발전에 힘썼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송용순(85)씨, 아들 김재년 코리아에어텍 사장, 딸 단희·봉희씨가 있다. 발인 23일 오전 9시. 빈소 서울대병원.(02)2072-2091.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영호남 정무직이 늘어났다는데…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영호남 정무직이 늘어났다는데…

    참여정부 정무직들의 출신지역별 비율은 어떻게 될까. 역대 정권마다 영남 출신과 호남 출신이 몇 %이고 수도권이나 충청권, 기타 지역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는 늘 관심 대상이었다. 기자가 중앙인사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장·차관(급) 정무직 출생지 자료와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임명됐거나 내정 상태인 국무총리와 장관 등 전·현직 각료 69명의 출신지역을 분석한 결과, 영남과 호남 출신 간의 불균형은 적잖이 해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중앙인사위의 장·차관(급) 정무직 출생지 분석 자료(11월 15일 현재)에 따르면 대상 직책 137개(이북 5도지사 제외) 가운데 영남 출신이 50명으로 전체의 36.5%에 달했다. 호남 출신은 39명으로 28.5%였다. 영호남을 합친 비율은 전체의 65%이다. 대상자 중 3분의2 가량이 영남 또는 호남 출신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수도권이나 충청권 등 기타 지역 출신은 인구 비례로 볼 때 턱없이 적은 편이다. 중앙인사위가 특별관리하는 정무직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보좌관, 감사원 감사위원, 국가인권위원회와 방송위원회의 상임위원 등은 물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와 같은 한시적 기구의 위원장과 상임위원 등도 포함돼 있다. 참여정부 전·현직 각료의 출신지 비율 역시 이와 비슷하다. 지금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인 이재정 통일·송민순 외교통상·김장수 국방부 장관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69명 가운데 영남 출신이 24명으로 전체의 34.8%를 차지했다. 호남 출신은 19명으로 27.5%에 달했다. 영남과 호남 출신을 합치면 전체의 62.3%에 이른다. 역대 정권에서 영·호남 출신 각료 비율이 60%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영·호남 출신 각료 비율은 이승만 정부 27.3%, 박정희 정부 46.4%, 전두환 정부 50.5%, 노태우 정부 47.5%, 김영삼 정부 55%, 김대중 정부 51.6% 등으로 나타나 있다. 참여정부의 영남 출신 비율(34.8%)은 전두환 정부(39.8%)와 김영삼 정부(37%)에 비해 줄었으나 호남 출신 비율이 김대중 정부(25.8%) 때보다 늘어나면서 영·호남 출신비율이 60%를 돌파한 것이다. 영남 출신을 줄이지 않으면서 호남 비율을 늘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참여정부가 영남과 호남출신 간 균형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이기도 하다. 반면 수도권 출신은 10명(14.5%), 충청권 출신은 9명(13%)에 그쳤다. 강원과 제주 출신은 각각 2명,1명이다. 어느 정권이나 고위직의 출신지별 안배는 중요하다. 쓸데없이 지역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동인(動因)이어서다. 한때 출생지를 없애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결국 없던 일이 돼버린 것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여기에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영남과 호남간 불균형을 해소한 것은 인사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영·호남의 비율이 타 지역을 압도한 것은 잘못이다. 인구 비례에 따른 적재적소 배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참여정부가 남은 기간 이 대목에 상당부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이는 곧 국민통합의 실천적 방안일 수 있다. jthan@seoul.co.kr
  • ‘해방전후사 再재인식’ 나온다

    “‘인식’,‘재인식’을 넘어 이제는 ‘재재인식’이다.” 역사비평사가 다음 주 ‘한국 근현대사의 새로운 흐름’(이하 ‘새로운 흐름’)을 시중에 선보인다. 이 책이 이목을 끄는 것은 지난 2월 출간돼 화제를 모았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뛰어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재인식’을 넘어선 ‘재재인식’인 셈이다. 특히 ‘새로운 흐름’은 ‘재인식’이 새로운 역사방법론을 다루는 듯했지만, 결국 뉴라이트의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비판의식 위에 서 있다. “‘재인식’은 ‘인식’ 위에 최근 연구성과를 소화해 냈다기보다, 신자유주의적이고 친자본·친국가적인 성향으로 기울었다.”는 한 편집위원의 언급은 이를 뜻한다.‘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에 대한 비판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재인식’의 비판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권 분량으로 모두 6부로 구성된 ‘새로운 흐름’은 여기에 공감한 신진연구자들이 쓴 28편의 논문을 모았다.‘식민경험과 국민형성’이라는 주제 아래 1권은 ▲식민지와 근대성 ▲친일문제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기 국민국가 형성 문제 등을 다뤘다.‘한국현대사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다룬 2권은 제목 그대로 새로운 역사방법론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여성성·남성성과 미디어의 관점, 문화·담론연구나 사회적 소수자의 시선에서 현대사를 바라본 권보드래(이대)·이임하(덕성여대)·유선영(한국언론재단)·김준(성공회대)·김원(서강대)씨 등의 논문이 대표적이다. 총론 외에도 각 부마다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하는 보론도 덧붙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與 ‘지속가능한 정당’되어야/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헤어짐과 만남, 모임과 흩어짐. 깊어가는 가을에 이합집산의 짝짜꿍이가 한창이다. 바닷가 모래 이야기가 아니다. 뒷산 숲길에 나뒹구는 낙엽 얘기도 아니다. 사람들 얘기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편가르기 장난을 노는 동네 꼬마녀석들이 아니다. 쉽게 삐치고 바로 깔깔대며 풋사랑을 하는 철부지 연인도 아니다. 최고의 정치엘리트인 국회의원, 그것도 대통령과 함께 국정운영을 주도하는 여당,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얘기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현재의 정치판이 계속되는 한 정권 재창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인식과 전망 때문이다. 창당일이 2003년 11월11일이니 딱 3년만이고,17대 총선 압승으로 창당 5개월만에 152석의 과반다수당이 된 때로 치면 대략 2년 반만의 급반전이다. 10% 초반의 수준인 대통령 지지율이나 재보궐선거 0대 40 참패의 기록을 보면, 현 상황에서 당체제 보수와 체질개선을 통해 자체적으로 추동력을 보완하고, 새 동력원을 개발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어쨌든 ‘재창당파’와 ‘통합신당파’간에 나날이 심해지는 분란은 별 어려움 없이 내다보였던 모습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정치평론가들을 꽤나 머쓱하게 만들었을 예정된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과 자유당, 박정희와 공화당, 전두환과 민정당, 노태우와 민자당, 김영삼과 신한국당, 김대중과 민주당. 한결같이 대통령과 여당이 함께 명멸했던 여당사(與黨史)에 비추어 보면 전혀 이례적인 현상은 아니다. 다만 참여정부 출범에서 찾았고 또 기대했던 각별한 정치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보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정치이념과 정책노선에 대한 구구한 평가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진보 성향의 정치세력이 최초로 집권한 것 자체와, 젊고 도덕적 정당성에서 우위에 있던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단숨에 여당 주도세력으로 제도권에 대거 진입한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의 하나였다. 숱한 우여곡절 속에 세기를 넘어, 지천명(知天命)의 중반에 이른 우리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이 함께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정치를 펼칠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가슴 설레면서 건 기대가 적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이 제1의 강령으로 제시한 것도 ‘새로운 정치’였다. 군부 권위주의 정권을 논외로 한다면,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여당과 야당이 ‘정치시장’에서 공정한 자유경쟁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국회와 여당이 독자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제 역할을 하는 파트너로서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만들어 나간 것도 참여정부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민주정치 발전을 위해서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사라지는 대통령’과 관계없이 여당이 ‘지속가능한 정당’으로 남는 것이다. 국정운영의 성패 경험과 그 책임을 공유하면서 재집권 희망을 살려 나가고, 실권의 쓰라림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여당, 당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치철학과 이념, 주요 정강정책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여당의 존재 자체이다. 찰스 디킨스는 소설 ‘피크빅 신문’에서 바람에 벗겨져 굴러다니는 모자를 잡기 위해서는 비상한 판단력이 필요하다면서 그 방법을 친절하게 일러준다. “너무 성급하면 모자가 있는 곳을 지나쳐서 넘어지게 되고, 너무 천천히 가면 모자는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최선의 방법은 추적의 대상인 모자와 가능한 한 일직선상에 머무르면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때를 기다리다가, 서서히 다가가서 잽싸게 손을 뻗쳐서, 모자챙을 잡아채어 머리에 꽉 눌러쓴다. 그러는 과정 중에 계속 웃는 것이 좋다. 구경꾼들과 마찬가지로 모자를 잡기 위한 모든 일에 똑같이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생물인 정치에서도 빠름과 느림, 움직임과 머무름의 조화, 그것이 관건이다. 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 [여의도 in] 후보 유고때 ‘대선 연기법’ 한나라 김정훈의원 추진

    역대 대통령 선거 때 사망한 후보는 2명이다.1956년 3대 때 민주당 신익희 후보와 1960년 4대 때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그랬다. 민주당은 후보를 다시 낼 수 없었다. 자유당 이승만 후보는 두번이나 내리 쉽게 당선됐다. 현행 선거법도 비슷하다. 정당 후보가 등록 5일 이내에 사망하면 추가 후보 등록이 가능하다.6일 이후에는 안된다는 얘기다. 이 경우 선거를 한달 연기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중도파 ‘푸른모임’ 의원들이 추진 주체로 나섰다.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은 6일 “유력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거 기간에 갑자기 사망할 경우 선거일을 한달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씨줄날줄] ‘11월 3일’의 부활/염주영 논설실장

    1929년 11월3일은 메이지(明治) 일왕의 생일이자 개천절이었다. 명치절 행사에 강제 소집된 광주고보생들은 신사참배를 집단거부했다. 이 일로 일본인 학생이 광주고보생 한 명을 칼로 찌르며 시비가 일었다. 일본경찰은 광주고보생들만을 일방적으로 가해자로 몰아 해산시켰다. 이를 계기로 식민지 교육의 참담한 현실에서 쌓인 분노가 일시에 폭발했다. 광주고보와 광주농업학교의 비밀 학생조직인 성진회와 광주여고보의 소녀회, 광주지역 독서회 등 수천명의 학생이 거리시위에 나서 ‘한국인 본위의 교육 실시’와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등을 외쳤다. 광주학생들의 항일시위는 순식간에 전국과 만주·중국·일본으로 파급됐다. 구호도 ‘약소민족 해방 만세’와 ‘제국주의 타도 만세’로 바뀌면서 점차 전국 단위의 학생독립운동으로 확산됐다.2년간 212개 학교에서 5만 4000여명이 궐기에 참여했으며,1460명이 검거됐다. 때때로 자랑스러운 역사가 정치적 이유 등으로 망각 속에 버려지기도 한다.‘11월3일’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일제치하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이날의 역사는 정부수립 5년뒤에야 ‘학생의 날’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당시 우익 이승만정부하에서 이 운동이 지닌 민족주의적 성격은 이념장벽을 넘지 못했다. 엄연한 ‘학생독립운동’이 성격이 애매한 ‘학생의 날’로 격하되었다. 군사독재정권은 유신 이듬해인 1973년 이마저도 국가기념일에서 제외시켰다. 독재정권에 ‘학생’과 ‘운동’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1929년 11월3일의 거사가 77년만에 제 이름을 찾아 부활한다. 정부는 이날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제정해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갖는다.3일 오전 10시 교육부총리 주관으로 서울 유관순기념관에서 기념식이 개최된다.2일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제정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전야(前夜) 연회도 열렸다. 그러나 행사만으로 역사가 부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이 일은 교육부가 할 일이다. 자신이 나라를 사랑하려면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남이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면 나라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염주영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 드라마 ‘서울1945’ PD·작가 이승만등 死者명예훼손 기소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31일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를 제작한 KBS 윤모 PD와 이모 작가를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 등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윤 PD 등은 이 드라마 34회에서 고 장택상 전 국무총리가 이 전 대통령에게 ‘친일경찰’ 박모씨를 “사건 해결의 최대 공로자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장면을 내보내 이 전 대통령과 장 전 총리가 친일파로서 공산당 지폐 위조 사건인 ‘정판사 사건’을 경찰을 동원해 해결한 것처럼 묘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 드라마는 해방 전후 좌우익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다뤘으며,1월부터 9월까지 방영됐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와 장 전 총리의 딸 장병혜씨는 이 드라마가 허위사실로 두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지난 7월 윤 PD 등을 고소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9일 TV 하이라이트]

    ●인사이드 월드(YTN 오전 10시25분) 지속적인 해외 원조에도 불구하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 볼리비아. 정부와 세계은행이 경제를 살리고 빈곤층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 그 전략은 포괄적 개발을 위한 기본 틀 즉,CDF. 정부는 이 개발 모델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국민들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디어 바로보기(EBS 오후 8시) 차기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앉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 대한 국내외의 언론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과연 반 총장이 앞으로 북핵문제 등의 중요한 사안에서 국제사회의 여론은 물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대변할 수 있을지 박흥순 선문대 국제유엔학과 교수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본다. ●도전! 1000곡(SBS 오전 8시30분) 2집 앨범을 발표하며 팬들에게 돌아온 그룹 파란의 리더 라이언. 그가 코미디계의 대부이자 성대모사의 달인인 남보원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파란과 같이 출연한 남보원은 성대모사의 대가. 이승만 전 대통령, 가수 루이 암스트롱 등 유명 인사들의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한다. ●환상의 커플(MBC 오후 9시40분) 추수를 끝낸 덕구네는 동네 주민들과 막걸리 파티를 한다. 입에 안 맞는 건 못 마신다던 안나는 마실수록 당긴다며 막걸리를 거푸 들이켠다. 철수에게 예전의 사이가 어땠는지 기억이 없어 모르겠다고 말하는 안나. 그러면서 지금은 자신이 좋아서 데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안다고 말한다. ●가치대발견 보물찾기(KBS2 오전 9시45분) 자연의 울림이 좋아 10년 동안 동굴 음악회를 열어왔다는 현행복 교수. 실내 음악홀과 동굴에서 악기를 연주하면 어느 정도의 소리 차이가 날까? 1년에 단 한번만 열리는 동굴음악회의 입장료는 과연 얼마일까? 설렁탕의 현재 가격은 보통 5500원 정도. 그렇다면 이전의 가격은 얼마였을까? ●일요다큐 산(KBS1 밤 12시) 눈이 막 녹기 시작하는 7월의 스팬틱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지대다. 벼랑 끝에 눈과 얼음이 얼어붙어 생긴 불안정한 커니스(눈처마)지형. 거대한 눈사태는 한 순간 모든 것을 휩쓸어 가버리기도 한다.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 C1,C2로 향하는 대원들을 험하게 가로막는데….
  • 대전현충원 최고 명당… 묘역규모 80평

    최규하 전 대통령의 유해가 안장될 국립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은 어떤 곳인가. 24일 대전현충원에 따르면 26일 최 전 대통령의 유해가 묻힐 국가원수 묘역은 장군 제1묘역과 국가유공자 묘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대통령이 안장되기는 최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고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립 서울현충원에 묻혀 있고 윤보선 전 대통령은 유족들의 뜻에 따라 충남 아산 선산에 안장됐다.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은 2004년 6월 6억 1900만원을 들여 계단과 식재공간 등을 포함해 전체 부지 2925평 규모로 조성됐다. 묘역은 상하단 각각 4기씩 모두 8기 규모로 기당 80평이다. 최 전 대통령은 상단 맨 왼쪽에 묻힌다. 애국지사와 장군 묘역은 기당 각각 8평, 사병은 1평이다. 국가원수는 유족들이 원하면 영부인 합장도 가능하다. 최 전 대통령도 강원도 원주에 있는 홍기 여사 유해를 모셔와 합장하게 된다. 이 묘역은 현충원 중앙의 상단 옥녀봉 밑에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를 통해 정해진 현충원 가운데 최고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은 계룡산과 문필봉, 장군봉이 둘러싸고 있다. 대통령 묘는 지름 4.5m 높이 2.7m의 원형 봉분으로 조성되고 12개의 묘두름돌로 지지한다. 비석, 상석과 향로대, 추모비 등도 갖춰진다. 높이 3.46m의 비석은 전면에 ‘제○대 대통령 ○○○의 묘’라고 새기고 뒷면에 출생일, 출생지, 사망일, 사망지, 사망원인이 기록된다. 좌측에 가족사항, 우측에 주요공적과 경력이 들어간다. 또 비석 상단에 국가원수를 상징하는 봉황무늬 화강암 조각이 올려진다. 노무현 현 대통령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서거후 유족들이 요청할 경우 이곳에 안장될 것으로 예상된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씨줄날줄] 전직 대통령/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대한민국 건국 이래 대통령 직에 오른 분은 모두 9명, 이 가운데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을 뺀 전직 대통령은 모두 여덟 분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민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전직’은 아직 없는 듯하다. 한때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개헌을 거듭하며 장기집권하다 4·19혁명으로 쫓겨났다. 그는 이국땅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타계한 뒤에야 국민의 용서를 받아 환국했다. 내각책임제 하의 유일한 대통령인 윤보선은 재직시 장면 총리와 끝없는 권력투쟁을 벌였다. 그러다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올 것이 왔다.”고 추인했다. 그는 뒷날 박정희를 상대로 반독재투쟁을 벌이지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협력하는 등 불투명한 정치 행각으로 빈축을 샀다. 윤보선을 뒤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업적에 관한 평가가 가장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이다. 경제성장은 공(功)으로 꼽히는 반면 장기집권과 독재적 통치는 어쩔 수 없는 과(過)의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종말과 그에 따른 시국 혼란을 틈타 총칼로 집권한 전두환, 그리고 전두환 세력의 2인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훗날 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 등을 선고받았다. 잇단 감형과 사면으로 자택에서 칩거한 지 오래됐지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노태우의 후임인 YS(김영삼 대통령)는 ‘IMF 사태’를 불러들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직전 대통령인 DJ(김대중)는 필생의 과업인 ‘햇볕정책’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새삼 시련을 맞고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사이의 혼란기에 잠시 대권을 계승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어제 아침 별세했다. 그는 박정희의 종말을 부른 ‘10·26사태’, 전두환의 권력장악 계기가 된 ‘12·12사태’, 그리고 국민의 숭고한 피로 얼룩진 ‘5·18 광주’를 권력의 최상부에서 겪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하야한 뒤로는 증언을 일체 거부한 채 세상을 떴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 없는 현실은 국민의 비극이다. 재직 시에 존경받고, 퇴직 후에도 길이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언제쯤이나 우리 역사에 등장할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최규하 前대통령 별세] 국민장 절차 어떻게

    26일 국민장으로 치러지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영결식 때 최 전 대통령과 2004년 별세한 부인 홍기 여사가 합장될 예정이다. 최 전 대통령 유해는 대전에 있는 국립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되는데, 현재 강원도 원주에 있는 홍기 여사의 묘소를 이장해 영결식날 합장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결식이 오후에 열릴 수도 있다. 국민장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기고 별세해 국민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분으로, 거국적 애도와 경의를 표시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시행된다. 한명숙 국무총리가 장례위원장을,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집행위원장을 맡는다. 국민장으로 치러지면 모든 장례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 아울러 정부는 장례식인 26일 당일에 조기를 게양하기로 했다. 전직 대통령의 영결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중 별세했기 때문에 국장으로 치렀다. 반면 윤보선·이승만 전 대통령은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렀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비둘기집’의 황손가수 이석(1)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비둘기집’의 황손가수 이석(1)

    ‘비둘기집’. 그동안 결혼식 축가로 8000회가 넘게 불러 왔다는 이 아름다운 노래의 주인공, 가수 이석(65)씨는 현재 생존해 있는 ‘마지막 황손’이기도 하다.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열한 번째 아들로 41년 ‘사동궁’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이해석, 어릴 때 아명은 ‘영길’로 항상 상궁들에게 둘러싸여 ‘애기씨 마마’, 혹은 ‘사동궁 도령님’이라 불렸던 황손의 후예, 그러나 지금은 대중가요 가수로서의 이석씨를 만나본다. 이석씨에게 있어 황손이라는 신분이 거역할 수 없는 핏줄의 요소였다면, 노래는 이석씨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다. 본래 외교관이 되고 싶어 했던 그는 외국어대 스페인어과에 들어간다. 스페인에는 왕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며 왕실 여인에게 청혼하겠다는 꿈을 꾸었을 만큼 낭만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허나 일제강점기를 지나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시대로 상황이 계속 바뀌어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해 황실 가족의 거처 역시 ‘사동궁’에서 ‘별궁’ ‘칠궁’으로 변했다. 후궁이었던 어머니 남양 홍씨 역시 황실의 몰락과 더불어 명륜동에서 성북동의 별장 ‘성낙원’으로 거처가 옮겨지면서 급기야 이석은 어머니와 세 동생의 생업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신분이 바뀌어져 있었다. 심지어 학비 때문에 학업을 도중하차해야 했을 만큼 생활은 어려워져갔고 때문에 선택한 길이 연예계다. 이미 경동고 3학년 때부터 종로의 음악감상실 ‘뉴 월드’에서 DJ를 보았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가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62년, 당시 미8군 연예회사 ‘화양’의 오디션에 ‘더블A(A+)’로 통과한 뒤 본격적으로 미8군 무대에 서면서부터. 물론 이 당시까지만 해도 주위의 관계자들은 이 가수 지망생이 황손이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한다. 스페인어 전공으로 영어까지 유창했던 그는 미8군 무대에서 가수로 그리고 MC로 활동하다가 TV의 쇼 프로그램 사회자로까지 나서자 그야말로 황실 가족들은 발칵 뒤집혔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 황실이 망했다지만, 이렇게까지 망할 수 있느냐며 개탄해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도 자신만의 삶과 생계수단이 필요하다며 활동을 계속한다. 타고난 재능과 바리톤의 성량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64년, 드디어 첫 음반을 취입한다.‘낭만의 해변(Stranger on the Shore)’을 타이틀로 한 이 음반(베스트레코드사,BL 3001)은 당시 색소폰 연주자로 미8군 쇼 ‘에이트레인’의 단장이었던 강철구 작, 편곡집으로 ‘세상이 그대 눈처럼(Dark Eyes)’ 그리고 창작곡인 ‘그대 위한 노래’ ‘그대 눈동자’ 등이 담겨 있다. 비록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이 음반은 그의 뛰어난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음반이다. 사동궁에서 지내던 창경초등학교 유년시절, 왕족은 절대 뛰어다니면 안 되는 법도 때문에 급한 연락이라도 취하려면 교장선생님이 직접 그에게 달려왔을 정도로 높은 신분이었던 그가 한 시대를 지나면서 노래로 대중들 앞에 직접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늘 두 가지 갈등 속에서 살아왔어요. 현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동시에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등…” 자신은 늘 엇박자의 리듬처럼 살아왔다고 술회한다. 이 무렵 예측할 수 없이 급변하는 정치상황과 맞물려 황실의 몰락은 이미 현실이었다. 깊은 좌절의 나날 속에 그는 마침내 66년 군예대에 지원, 월남에 파병된다. 전투병으로서 군예대 위문공연단의 일원이었지만 공연 차 이동 중에 자동차가 전복되면서 팔에 큰 부상을 당한다. 결국 이 부상으로 전역하지만 왕족의 체면 때문에 원호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69년 ‘상이군인’의 몸이 되어 귀국한 그는 다시 국내 무대에 복귀한다. 이 무렵 발표한 노래가 ‘두마음’을 비롯한 ‘비둘기 집’ 등. 특히 이 ‘비둘기 집’은 발표되자마자 당시 새마을합창단의 지정곡으로 선정되는 등 전국 방방곡곡 메아리치며 어느덧 국민가요로 자리매김한다.(계속) sachilo@empal.com
  • [문화마당] 우리나라 공식국명은 대한민국이 아니다/허동현 경희대 한국사 교수

    한 세기 전 이 땅의 사람들은 일본제국의 신민(臣民)으로 전락하고 만 참담한 실패의 역사를 쓰고 말았다. 그때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국민이 되기를 열망하던 민족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도둑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온 해방의 감격도 잠시뿐 미국과 소련이 펼친 냉전의 덫에 걸려 민족은 남의 ‘국민’과 북의 ‘인민’으로 갈라서고 말았다. 냉전이 깨진 지 오랜 오늘, 통일은 해방처럼 어느 날 눈앞에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둘이 하나 되는 그날이 오면, 아니 지금도 왠지 ‘대한민국’이 풀뿌리 시민사회를 이룬 우리의 현재를 대표하는 국명으로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은 1948년 제헌국회에서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던 새 나라의 국호는 아니었다. 당시 ‘고려공화국으로 하자.’, 아니 ‘조선공화국이 좋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국명이 나쁘다고 독립이 잘 안 되는 게 아니니, 차차 국정이 정돈되고 나서 대다수의 결정에 의해 그때 법으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 이승만 대통령의 설득이 주효해 잠정적으로 대한민국을 국호를 삼았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한지 두 달 뒤에 터진 거족적 독립운동인 3·1운동 이후 나라를 앗긴 황제의 존재는 기억의 저편 망각의 늪에 빠져버렸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웅변하듯, 그때 이미 우리는 왕정복고를 거부하고 공화국을 꿈꾸지 않았었나? 그렇기에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 대한 단절의식을 함축하는 반어적 국명이다. 역설적이게도 제헌국회에서 국명을 논의할 때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해보자.’며 ‘대한민국’을 최초로 제안했던 신승우 의원 말마따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을 계승하는 소극(笑劇)을 연출한다. 대한제국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종속국이 아니라 자주국임을 만천하에 천명한 국호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조선 보호국화 기도를 러시아가 삼국간섭을 일으켜 막은 후 이루어진 러·일 두 나라 사이의 세력 균형 위에 세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았다. 본래 모습보다 크게 보이려 소 앞에서 억지로 배를 부풀리다 소에게 밟혀 죽는 이솝우화 속 개구리를 떠올려 보라. 인간이건 나라건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는 자화자찬은 듣는 이의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법. 대한제국은 외세에 기대어 명맥을 이으려 한 왕조의 유약함을 상징한다. 개구리 배 부풀리기 식의 자대(自大)나 타력을 빌리려는 책략만으로는 덩치 큰 포식자들이 날뛰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돌아온 열강쟁패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덩치 큰 포식자들에 맞서 배 부풀리기를 하는 자대도 아니고, 강자에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는 굴종도 아닐 것이다. 우리의 번영과 생존을 지켜줄 현명한 책략과 견실한 자강, 그리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줄 자긍이 더없이 요청되는 오늘이기에, 허장성세의 대한제국을 연상케 하는 대한민국보다는 제헌국회에서도 제기된 바 있던 고려공화국이란 국명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거란의 침공에 맞서 나라를 지킨 강감찬의 신출귀몰하는 전략과 세치 혀만으로 침략군을 물러서게 한 서희의 협상력에 목마르기 때문이요, 세계제국 몽고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60년 항쟁을 벌여 나라를 지킨 고려인의 불굴의 의지가 그립기 때문이요, 밖을 향해 활짝 열린 국제무역항 벽란도와 남녀 간의 자유연애를 노래한 고려가요의 개방성이 한 마을이 된 지구에서 양성평등사회를 꿈꾸는 우리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요, 세계의 중심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문명이라고 뽐내는 중화(中華)에 맞서 높고 아름답다며 또 다른 문명의 빛임을 자긍한 고려(高麗)의 함의가 오롯이 다가서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대외적 공식명칭 Republic of Korea와 합치하는 고려공화국으로 국호를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허동현 경희대 한국사 교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