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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檢 엄정 수사하고, 野 대선불복 깃발 자제해야

    검찰이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 개입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트위터 댓글 121만건을 추가로 찾아냈다고 밝히면서 야권이 대여(對與) 공세의 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다. 4·19 혁명과 이승만 정권 퇴진의 도화선이 된 1960년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불법 대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진보 성향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신부들은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미사를 갖기도 했다. 범야권 주장의 수위와 강도가 점점 대선 불복 쪽으로 향하는 듯하다. 우선 민주당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김한길 대표는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처음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대선 개입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집권 연장을 도모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넘어 이 전 대통령 주도론을 제기한 셈이다. “박 대통령이 실상을 모르고 있다 해도…”라는 전제를 달았으나, 사실상 대선 불복을 향한 자락을 하나 깔아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당내에선 이미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앞서 그제는 민주당 소속의원 90여명이 광화문광장으로 나가 벌인 가두행진에선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사상 초유의 조직적 범죄”라는 등의 주장까지 나왔다. 여권이 대선개입 관련 특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새해 예산안 심의 등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욱 힘을 얻는 양상이다. 딱한 노릇이다.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수사와 관련해 여권을 향해 “공세를 자제하고 검찰 수사를 지켜보라”고 했던 민주당이다. 그런 민주당이 대선개입 논란에 있어서는 검찰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3·15 부정선거’를 입에 올리며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여권 수뇌부가 검찰 수사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면서 스스로 장외공세와 특검 요구로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자가당착의 행태다. 민주당은 검찰 수뇌부의 소극적 태도에 일선 수사팀이 집단사퇴하려 했다는 얘기를 특검 추진의 또 다른 근거로 내세웠으나 이는 일방의 주장일 뿐 실체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121만건의 댓글 역시 국정원이 강력 반발하는 등 선거 관련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검 주장에 앞서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할 때인 것이다. 국민적 혼란과 국정 파행을 막으려면 결국 검찰이 엄정해야 한다. 여권발이든, 야권발이든 그 어떤 정치적 외압도 분연히 뿌리치고 제 길을 가는 도리밖에 없다. 그것이 검찰을 살리고, 나라를 지킨다. 정치권, 특히 야권은 검찰 수사가 매듭지어질 때까지 일체의 공방을 자제하고 국회에서 민생을 챙기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새해 예산안 심의 거부로 준예산을 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필연코 역풍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 관동대지진 때 두살배기도 학살 당해

    관동대지진 때 두살배기도 학살 당해

    주일 한국대사관의 이사 과정에서 발견되어 19일 처음 공개된 명부들은 그동안 피해자 규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3·1운동과 관동 대지진 피살자의 신상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이 명부들은 1952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기미년 살상자 수, 일본 관동 진재 희생자, 제2차 대전 시 징용자 및 사상자 수, 왜정하 애국사상운동자로서 옥사자 수 등을 조사 집계하라”는 지시에 따라 만들어졌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953년에 만들어진 명부가 지금 공개된 것은 주일대사관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위치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기록원은 자료를 넘겨받아 3개월 넘게 분석작업을 벌였지만 총 67권의 명부를 모두 분석하지는 못하고 일부 지역을 골라 내용을 파악했다. ‘3·1운동 피살자 명부’는 읍·면 단위로 성명, 나이, 주소, 순국일시, 순국장소, 순국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3·1운동 순국자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이는 총 391명에 불과하며, 지금까지 어떤 명부도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독립유공자로 53명이 포상받았고 8명이 포상 보류됐는데, 이번 명부로 100여명이 새롭게 확인됐다. 충청도 지역은 31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았는데 69명이 이번 명부를 통해 추가로 확인됐다. 독립운동가 박은식은 1920년에 지은 ‘독립운동지혈사’에서 3·1운동 피살자 숫자를 7509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이번 명부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작성된 것으로 북한 등 일부 지역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피살자 숫자가 적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1923년 9월 1일 일어난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290명의 명단인 ‘일본 진재 시 피살자 명부’도 처음으로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 피살자 수는 독립신문이 1923년 11월 6661명으로 보도하고, 독일 자료에서는 2만여명으로 언급됐다. 일본에서의 피살자는 조사하지 못하고, 국내에 연고가 있는 사람만 조사되어 명단은 290명에 불과하나 희생자 이름 외에 본적, 나이, 피살일시, 피살장소, 피살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피살 방식도 피살, 타살, 총살 등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경남 합천군을 연고로 하는 2살짜리 아기 등 이모씨 일가족 4명이 모두 학살당한 사례도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보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일정 시 피징용자 명부’는 피징용자 명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원본 기록으로 추정된다. 국가기록원이 보존하고 있는, 1957년 노동청이 작성한 피징용자 명부에는 28만 5771명이 등재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우리 정부는 약 16만명을 피징용자로 인정했다. 이번에 발견된 명부는 남한 지역만 조사 대상으로 해 1957년 작성된 명부보다 5만 5990명이 적으나 생년월일, 주소 등이 포함되어 피해자 보상심의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기록으로 과거사 증빙자료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유관순 열사 옥중서 타살당해” 3·1운동 희생자 명부 첫 공개

    “유관순 열사 옥중서 타살당해” 3·1운동 희생자 명부 첫 공개

    3·1운동 피살자 명부와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가 최초로 공개됐다. 또 새로운 내용의 ‘일정(日政) 시 피징용자’ 명부도 추가로 발견돼 일제강점기 피해보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은 19일 1953년 이승만 정부에서 작성한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 1권 630명, 일본 진재(震災) 시 피살자 명부 1권 290명, 일정 시 피징용자 명부 65권 22만 9781명 등 67권을 수집하여 분석한 결과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명부는 주일 한국대사관이 이전하는 과정에서 지난 6월 발견되어 8월 국가기록원으로 옮겨졌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1952년 12월 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내무부에 전국적인 조사를 지시해 이번 명부가 작성됐다. 1952년 2월 제1차 한·일 회담이 결렬되고, 1953년 4월 제2차 한·일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되어 주일대사관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 “3·1독립 운동만세로 인하여 왜병에 피검(被檢)돼 옥중에서 타살(打殺)당함”이라고 기록된 ‘3·1운동 피살자 명부’는 217쪽의 습자지로 구성된 1권으로 지역별로 총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최초의 명부다. ‘일본 진재 시 피살자 명부’도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1권 109장으로 구성되었으며, 290명의 명단이 담겼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명부는 전국적인 정부 조사 결과인 데다 주소나 생년월일까지 포함됐을 정도로 세세해 앞으로 피해보상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3·1운동, 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단 최초 발견·공개

    3·1운동, 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단 최초 발견·공개

    한국 정부가 1953년에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 공개됐다. 이번에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 강제징병자 세부 명부도 나와 일제강점기 피해보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지 주목된다. 국가기록원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 9781명)’ 등 3가지 명부 67권에 대한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지난 6월 주일대사관 청사 신축에 따른 이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이를 이관받아 명부별 분석작업을 거쳐 이날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1952년 12월 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에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한 명부로 1953년 4월 제2차 한일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원은 밝혔다. ’3·1운동시 피살자명부’에는 1권 217매에 지역별로 모두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으며 읍·면 단위로 이름, 나이, 주소, 순국일시, 순국장소, 순국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동안 3·1운동을 하다 순국한 이들 중 공식적으로 인정된 독립유공자 수는 391명에 불과한데, 이번 피살자 명부 발견으로 그 숫자는 3배 가까이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된 3·1운동 피살자 수는 7509명이다.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는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1권 109매에 모두 290명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 피살자수는 6661명∼2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명부에는 관동대지진 희생자 이름 외에 본적, 나이, 피살일시, 피살장소, 피살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는 지금까지 작성된 피징용자 명부 중 가장 오래된 원본기록으로, 65권에 22만 9781명의 명단을 담고 있다. 이는 역시 1957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28만 5771명의 왜정시 피징용자명부에 비해 5만 5990명이 적지만 기존 명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년월일이나 주소 등이 포함돼 있어 피해보상을 위한 사실 관계 확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록원은 내다봤다. 실제로 경북 경산지역의 경우 피징용자 4285명 중 1000여명이 종전 명부에는 없는 새로운 명단으로 밝혀졌다고 기록원은 설명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과거사 증빙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 명부가 정부수립 직후 우리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됐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기록원은 이번에 수집한 자료를 국가보훈처 등 관련부서에 넘겨 독립유공자 선정과 과거사 증빙자료로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명부별 세부사항을 정리해 내년 초부터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공동체 삶과 비리/정기홍 논설위원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일본 강점기인 1932년 서울 중구 회현동에 지은 유림아파트로 친다. 도요타라는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해 ‘도요타 아파트’로 불렸다. 이보다 몇년 앞서 아파트 형태의 건물이 있었으나 관사로 쓰여 임대 형식의 아파트로는 유림이 처음이다. 지금과 비슷한 단지형 첫 아파트는 1962년 서울 마포 도화동에 지은 마포아파트(현 삼성아파트)다. 10개동에 564가구 규모이니 제법 단지다운 형태를 갖춘 셈이다. 이 아파트는 당시 근대화의 상징이자 생활혁명의 시금석으로 통했다. 아파트의 역사는 비화(?話)도 쏟아냈다. 1960년대에는 서민을 한 곳에 모으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마포아파트의 경우 10평 정도로 작아 ‘영세민 주거지’로 인식됐다. 1958년에 완공한 서울 중구 주교동 중앙아파트 공사 현장에 이승만 대통령이 방문하고, 마포아파트 준공식에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마포아파트는 엘리베이터와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려 했으나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무슨 수세식 화장실이냐’는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70년대 초엔 서울 청계천에서 경기 성남으로 강제이주한 철거민들이 보상에 불만을 품고 시영버스를 탈취해 관공서로 몰려간 적도 있다. 아파트가 ‘제1 자산’이 된 지금 생각하면 금석지감을 느끼게 한다. 아파트는 편리함과 치부의 수단이었지만 만만찮은 문제점도 드러냈다. 콘크리트로 단절된 공간은 남에게 간섭당하지 않는 만큼 남을 간섭하지도 않는다. 내적 자족(自足)의 공간이라고나 할까.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아파트 공간을 ‘공적 냉소와 사적 열정이 지배하는 사회’로 정의한다. 배려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아니라 자폐적인 공간으로, 개인의 삶과 가치만을 추구하는 곳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이 엊그제 ‘아파트 비리 단속’ 결과를 내놓았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관리소장은 불법공사 과정에서 뒷돈(리베이트)을 받은 뒤 지인의 계좌로 돈 세탁을 했고 아파트 관리비로 도박을 하다가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전체 비리 규모도 64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번 수사 대상은 164건에 불과하다.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우리는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에 젖어 아파트의 운영에 대해서는 사뭇 오불관언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가 잠시 머물고 가는 임시거처가 아니라 가족의 삶이 움트는 공간이란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때다. 비리를 감시하는 ‘매의 눈초리’도 물론 있어야겠지만 사람 냄새가 물씬한 ‘함께하는 마을’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내 아버지는 김구… 나는 늘 죽음과 함께 있었다

    내 아버지는 김구… 나는 늘 죽음과 함께 있었다

    조국의 하늘을 날다/김신 지음/돌베개/340쪽/2만 2000원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는 이승만 정권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했다. 혹여 폭동이 일어날까, 상여를 호위하는 경찰에게 권총이 지급됐다. 서울역을 비롯해 주요 길목마다 기관총이 장착된 장갑차도 배치됐다. 계염령 선포나 다름없었다. 백범의 둘째 아들인 김신(91) 전 공군참모총장은 “(정권을 등에 업은) 친일세력은 아버지를 제거하고 한국독립당 사람들을 탄압했다”고 회고했다. 한독당이 친공세력으로 몰린 것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남북협상을 벌였다는 이유에서다. 김 전 총장은 아버지의 사후 경교장 지하에 있던 한독당 조직표와 명단을 가장 먼저 불태웠다. 많은 사람이 혹독한 탄압에 시달릴 것을 우려한 탓이다. 김 전 총장은 회고록 ‘조국의 하늘을 날다’에서 백범과 한독당의 명을 끊은 배후 세력으로 김창룡 전 육군 특무대장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목한다. 백범 사후 서른살 안팎의 청년이 저자를 찾아와 권총 한 자루와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보국 요원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할 때였다. 저자는 “청년은 ‘김일성이 보내 이승만을 암살하러 왔다’고 말했다. 느낌이 이상해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내 신변보호를 요청했는데, 알고보니 김창룡이 꾸민 공작(올가미)이었다”고 전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김 전 총장에게 망명과 다름없는 영국 유학을 권하기도 했다. 1922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백범의 가족이라는 사실은 때론 크나큰 자랑이자 자부심이지만 늘 나와 가족의 어깨 위에 무겁게 드리워진 버거운 숙명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젖먹이 때 어머니(최준례 여사)가 돌아가시고 수차례 중국의 고아원에 맡겨졌지만 이때마다 그를 데리러 온 사람은 할머니 곽낙원 여사였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도 없고, 잠깐 뵐 수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도 별로 없다. 형과 할머니는 중국 땅에서 횡사했다. 그는 숱한 고난 끝에 중국 군관학교에서 공군비행교육을 받았고, 아버지의 권유로 해방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공군 훈련을 마쳤다. 1947년 귀국해 육군 항공대에서 일하며 6·25전쟁 때는 조국의 산하에 폭탄을 투하해야 했다. 책에는 현대사의 비화가 수두룩하다. 6·25전쟁 중 미그 15기를 탈취하기 위해 만주로 급파될 뻔했으나 1953년 북한 공군 장교가 미그 15기를 몰고 귀순하면서 작전은 취소됐다. 공군참모총장 시절 맞은 5·16쿠데타 때 저자는 육군본부에서 박정희 장군을 처음 대면했다. 박 장군은 다짜고짜 “‘백범일지’를 여러 번 정독하고 깊이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주한미군 등 진압군에게 서울 시내가 전쟁터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박정희 정권 때 주타이완 대사와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한·중 수교 당시 막후 비선 라인으로 활동하고 1960년 북한의 핵개발 정보를 입수했던 일화도 전한다. 그는 “늘 죽음이 가까웠지만 아버지와 선열에 대한 자부심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구본영 칼럼] 자성은 하되 자학할 이유는 없다

    [구본영 칼럼] 자성은 하되 자학할 이유는 없다

    지난 주말 저녁 청계천. ‘한성백제 천년의 꿈’이란 테마로 서울 등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물길을 따라 그 옛날 위례성의 가을밤을 거니는 듯 시민들의 표정은 편안하다 못해 그윽해 보였다. 장사진을 친 관람객들 사이에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문득 과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청계천 복원을 공약하면서 벌어졌던 논란이 생각났다. 지금의 민주당인 당시 여당은 막대한 건설비를 들여 환경을 파괴하는 인공하천을 복원해서는 안 된다며 극력 반대했다. 진보적 환경원리주의자들은 한강물을 끌어들여 시멘트 어항을 만들자는 거냐며 더욱 냉소적이었다. 물론 이런 비판적 논리가 100%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 성싶다. 그런 반대 의견도 있었기에 공사를 밀어붙인 측에서도 그나마 환경보전에 더 신경을 쓰고, 그 결과 다수 시민이 즐거워하는 친수공간으로 복원됐는지도 모르겠다. 청계천 복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역사논쟁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진보 학계에서는 교학사의 역사 교과서가 이승만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실제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기술되거나 부풀려진 사료는 고쳐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부터 잘못됐다고 보는 시각까지 납득하긴 어려운 일이다. 나아가 유신과 5공이 드리운 역사적 그늘을 있는 그대로 조명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현대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우리를 보는 외부의 시선을 보라. 우리가 스스로를 폄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아시아의 등불 같은 존재”라고 했다. 특히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최근 한국이 과거 원조 수혜국에서 세계 주요 원조국의 하나로 변모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라고 칭송했다. 사실 1948년 건국 당시 우리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6·25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옥수수 등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온갖 비리와 부정, 그리고 각종 시위로 인한 혼돈이 이어지면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격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그런 한국이 이제 2차대전 후 100여개 신생국 중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올해 무역흑자에서 일본을 앞지르는 등 세계 15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무역협회가 최근 국내외 거주 외국인 대상으로 포커스그룹 인터뷰와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라. 이 조사에서 한국은 세계인들에게 ‘급속히 발전한 국가’라는 이미지로 투영되고 있으며 한국의 경제성장은 ‘저소득 탈식민 국가들의 역할모델’로 평가됐다. 우리의 현대사는 총합적으로는 성공 스토리로 자부해도 좋을 듯싶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인권 유린의 후유증이나 압축성장의 폐해 등 누적된 이런저런 문제는 안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진보와 보수가 과거사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은 불가피한 통과의례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대한민국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로 치부하는 ‘자학사관’은 곤란하다. 이는 피땀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동시대인들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던진 돌직구 언급이 와 닿는다. 대표적 친노 인사인 그가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역사논쟁을 벌이더라도 나만 옳다는 독선은 안 될 말이다. 어느 진영이든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한다. 일찍이 철학자 파스칼은 “피레네 산맥 이쪽의 정의가 저쪽에선 불의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보수든 진보든, 여든 야든 과거사를 놓고 과도하게 반목하기보다는 미래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kby7@seoul.co.kr
  • [이슈&논쟁]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이슈&논쟁]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종북’ 논란을 빚고 있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통합진보당이 이에 강력 반발하는 등 정당 해산 심판 청구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헌재의 심리가 시작되면 논란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정부 조치에 대한 찬반 의견은 확연히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경선 부정과 폭력사태에다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재판에 회부되는 등 통합진보당이 헌법을 파괴하고 국가를 어지럽히고 있는 만큼 정부의 해산심판 청구가 당연하다는 여론이 있는 반면 아직 이 의원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나오지 않은 데다 정당 해산은 국가나 정부가 아닌 국민의 권한이라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제기된 정당 해산 심판청구에 대해 신율 명지대 교수와 이재화 변호사에게 찬반 의견을 들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일러스트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 <贊> 신율 명지대 교수 “헌법적 가치 해할 가능성에 우려… 정부, 국민불안 해소할 의무 있어”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로 정가가 시끄럽다. 일부에서는 정부에 의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가 이루어진 시점이 박근혜 대통령이 외국에 나갔을 때라는 점을 들어 대통령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한 배려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통합진보당이라는 존재가 정치적으로 그만큼 비중 있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은 단지 정치적인 논란의 대상일 뿐이다. 지금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2% 남짓이다. 선거 직후라면 이 정도 지지율을 획득한 정당은 해산된다. 우리나라의 진정한 진보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신당이 해산된 이유도 선거에서 2%의 지지율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정도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정당에 대한 해산 청구를 위해 대통령 외유 시기를 기다렸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 최초의 정당 해산 청구라는 점에서는 정부나 청와대가 부담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의 불안감을 감안하면, 정부나 청와대가 가질 수 있는 부담감이 상당 부분 희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자기가 속한 상임위와 관련된 사안이 아님에도 국방부에 다양한 자료를 요청한 것을 두고 불안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이런 조치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정당 해산 청구가 법에 명문화돼 있는 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 얼마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우리나라의 헌법 체계가 대륙법, 그것도 독일법 체계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즉, 독일도 정당 해산 청구 절차를 명문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와 같이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 헌법체계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가 헌법재판소와 함께 정당 해산 절차에 관한 규정을 두는 것은 그다지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일부는 독일은 나치당까지 그냥 놔두는데 우리는 왜 정당을 인위적으로 없애려고 하느냐는 주장을 편다. 실제 이 주장은 모 종편 방송에서 한 평론가가 한 말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틀린 말이다. 독일은 나치당을 그냥 놔두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지만 독일 기본법(헌법) 1조는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불가침이다”라고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법(헌법)의 근본 정신인 인간의 존엄성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정당 혹은 정치인이 독일 정치에 등장하면 당연히 제재를 받는다. 독일 연방 헌법수호청(Bundes Verfassungsschutz)이 일차적으로 이들 정당을 제지하고 그 다음 정당 해산을 헌재에 청구한다. 실제 2001년 나치의 부활을 추구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독일민족민주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소송이 제기됐었다. 이 청구는 기각됐지만 그 이유가 이 정당이 독일 나치의 부활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독일민족민주당에 첩보원으로 침투했던 독일헌법수호청 직원의 신상공개를 수호청이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정당 해산의 요건은 갖추었지만 그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의 투명성이 문제였다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1990년대 자유노동자당과 민족연맹당은 모두 헌법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행정 절차에 의해 해산됐다. 즉, 독일 정부도 자신들의 헌법적 가치를 해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은 최근까지도 해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라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국가는 0.01%의 위험성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런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스위스가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가의 이런 역할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정부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야 할 시점이지, 정부의 의도를 논할 때는 아니다. ■ <反> 이재화 변호사·민변 사법위 부위원장 “진보당 강령, 국민주권 부정 안해… 헌법상 요건 못 갖춘 청구권 남용”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과 사상, 정당을 수용하는 체제다. 반공주의만을 민주주의로 오인하고, 다른 사상과 의견을 가진 정당을 모두 적으로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전체주의일 뿐이다. 헌법 제8조 제4항의 정당 해산 규정은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에서 신설한 것이다. 1958년 행정처분으로 ‘진보당’을 해산시킨 사건에 대한 반성적 고려로 야당을 보호하기 위해 명문화한 것이다. 정당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고, 헌정 질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때에 ‘최후의 수단’으로 정당 해산을 하도록 규정했다. 53년 동안 유신정권도, 전두환 군사정권도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은 것은 이 조항의 도입 취지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 독일에서 있었던 두 건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1951년 사회주의제국당과 1956년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 이후 60여년간 선진국에서 위헌정당 해산 결정을 한 예는 없다.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적 가치에 다소 반하더라도 선거를 통하여 국민들이 그 정당을 심판하도록 하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유럽평의회 산하기구인 ‘베니스위원회’(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는 2009년 “정당의 금지나 해산은 헌정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적인 추세는 소수 정당을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으로 정당 해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는 헌법의 취지와 세계적인 추세에도 반하는 또 다른 ‘헌법파괴 행위’이다. 정부는 통합진보당 강령 중 ‘민중이 주인이 되는 평등세상 건설’ 부분이 북한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내용이고, 국민주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터무니없다. 민중이라는 용어는 제헌국회 초대 의장 이승만도 사용한 것으로, 북한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민중이 주인이 되는 평등세상’은 기득권 세력에게는 주권을 배제하고 민중들만이 주권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아니다. 국민주권주의를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정부는 통합진보당 당헌에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김일성의 사상을 도입한 것라고 주장하나, 이 또한 궤변에 불과하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김일성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1915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처음 사용하였던 개념이다.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이 개념을 당헌에 규정하였다고 볼 아무런 증거도 없다. 통합진보당 강령에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자주와 평등, 평화와 통일, 민주와 민생, 생태와 평등을 가치로 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민주권주의나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정부는 ‘이석기 의원 등 RO 조직의 활동은 통합진보당의 활동이고, 그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였다’고 주장한다. 내란음모 사건은 현재 제1심 소송 중이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결과를 본 후 관련자를 문책하겠다’고 하면서 내란음모 사건의 재판 결과를 지켜보지 않고 위헌정당 심판을 청구했다. ‘모순’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검사의 공소장에 의하더라도 RO 조직은 통합진보당 조직이 아니고, 그 행위도 통합진보당의 활동이 아니라 일부 당원들의 개별적인 것에 불과하다. 만약 그 조직이 통합진보당의 조직이고 그 활동이 당의 활동이었다면 검사가 이정희 당대표 등 당의 주요 간부들을 기소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중앙당이 RO 조직과 그 활동을 사전승인하거나 사후추인하였음을 인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따라서 정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정부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청구는 헌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명백한 청구권 남용이다.
  • [부고] ‘최장수 외교 수장’ 박동진 전 외무장관 별세

    [부고] ‘최장수 외교 수장’ 박동진 전 외무장관 별세

    우리나라 최장수 외교 수장이었던 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이 11일 별세했다. 91세. 박 전 장관은 대구고등보통학교, 일본 주오대를 졸업한 후 1948년부터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 등에서 근무했다. 1951년 외무부에 입부 후 의전국장, 차관, 주월남 초대 대사와 주브라질·주제네바·주유엔 대사 등을 거쳐 11~12대 국회의원, 국토통일원 장관, 주미대사, 한국전력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1975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외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후 1980년 9월까지 4년 9개월 동안 재직했다. 1979년 10·26 사건과 신군부의 12·12 쿠데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현직 장관으로 대미 관계를 진두지휘했다. 이 기간에 한국 외교는 격동기였다. 1976년 10월 재미 한국인 사업가 박동선씨가 미 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매수 공작을 벌인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 한·미 갈등을 수습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주미 대사관에 근무했던 중앙정보부 소속 김상근 참사관이 미국으로 망명, 한국 정부가 미 정치인과 언론인, 학자 등을 포섭하기 위한 ‘백설작전’을 벌였다는 폭로 사태를 무마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박 전 장관은 도덕주의를 표방한 미 지미 카터 행정부와 유신체제 간의 반목으로 불편했던 한·미 관계를 조율하는 데 기여했다. 정부는 그에게 수교훈장 광화장·흥인장,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했다. 2010년 비밀해제된 미 국무부 외교전문에 따르면 박 전 장관은 1979년 10·26 사건 후 권력을 승계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소극적 인물”이라는 평가를 미국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에는 현민(玄民) 유진오 선생의 딸인 유충숙씨와 1남3녀가 있다. 장례는 외교부장(葬)으로 치러지며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8시.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군부정권땐 ‘권부의 아방궁’… 이젠 주말이면 관람객 1만명… 단풍·국화향 가득한 ‘국민 쉼터’

    [주말 인사이드] 군부정권땐 ‘권부의 아방궁’… 이젠 주말이면 관람객 1만명… 단풍·국화향 가득한 ‘국민 쉼터’

    “역대 대통령을 테마로 한 관광지는 세계에서도 이곳뿐이래요.” 8일 오전 11시 충북 청원군 문의면 신대리 산 26-1 청남대를 찾은 관광객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말했다. 청주 도심에서 자동차로 20여분 달려 도착한 문의면 미천리엔 옛 대통령 전용별장 청남대를 가리키는 큼지막한 이정표가 손님을 맞았다. 10여㎞를 다시 달리니 대저택에나 있을 법한 커다란 철문과 경비초소가 나왔다. 이런 철문을 하나 더 거쳐서야 청남대가 눈에 들어왔다. 1983년 ‘남쪽의 청와대’로 지은 이곳은 최고 권력자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년 세월이 흘러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통큰 결단으로 민간에 문을 활짝 열었다. 338경비부대가 주둔하며 삼엄한 경비를 폈던 ‘권부의 아방궁’은 이제 개방 10년을 맞아 ‘국민 쉼터’로 바뀌었다. 이날 입장객만 6000명을 웃돌았다.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휴게소 또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말엔 1만명을 헤아린다. 올해 9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정부 시절 청남대를 세울 무렵엔 상상도 못했을 모습일 터이다. 대청호를 끼고 나지막이 둘러쳐진 산은 요즈음 물감을 풀어놓은 듯 형형색색 옷을 입고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낸다. 단풍과 국화 향기에 취한 관광객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추억을 사진에 담느라 바쁘다. 신현구 청남대관리사업소 운영팀장은 “이곳 나무들이 대청호의 수분을 빨아들여 내장산 단풍보다도 예쁘다”고 자랑했다. 645개 나무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이르자 대청호반의 조화로운 경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맑은 날씨면 대전까지 볼 수 있다. 일상의 답답함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명소로 꼽힌다. 대통령이 머물렀던 본관 주변 잔디밭과 광장은 아이들 놀이터다. 역대 대통령 6명의 이름을 붙인 산책로는 트레킹을 즐기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대통령 산책로는 11㎞나 된다. 윤진수(42)씨는 “대청호를 보면서 걸을 수 있어 힐링에 최적”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정자(70·여)씨는 “자연의 오묘함을 만끽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면서 “여러 차례 와도 질리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역사문화관 방명록에는 “대통령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아이들의 글이 빼곡하다. 지난달 16일 역사문화관에서 시작해 5일 막을 내린 대통령 주간행사 때 적은 것이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에 이어 열린 행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활동영상과 생전에 쓰던 라디오, 돋보기, 성적표까지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하다 1985년 청남대로 내려온 관리사업소 김찬중씨는 “노 전 대통령 취임 전까지 그 누구도 민간개방을 생각하지 못했다”며 “주둔 군부대에 시설보수 등 업무차 방문하는 사람이 민간인으론 유일했다”고 귀띔했다. 당시 청남대는 대통령 경호 때문에 365일 철저하게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벌컨포와 박격포 진지도 구축했다. 대통령이 내려오면 미리 경호실 직원들과 검측요원들이 건물 등을 수색하고 공수부대가 주변 산에 배치됐다. 대통령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수백명이 경비와 경호에 투입돼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50여개였던 경비초소와 철책은 이제 유물로 남았다. 군 막사는 새단장을 해 관리사업소로 쓰이고 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3년 12월 준공돼 꼬박 20년이나 베일에 싸여 있던 청남대가 전격 개방되자 국민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개방 초기 욕실 수도꼭지가 금으로 만들어졌고, 대통령과 가족들이 묵었던 본관 지하에는 대청호를 잇는 지하터널이 있다는 소문마저 나돌았다. 휴가차 청남대를 방문한 대통령이 낚시를 즐기면 건너편에서 군인이 잠수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 찌에 고기를 물려 줬다는 얘기도 번졌다. 모두 헛말이었지만 청남대는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나 2004년 연간 방문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청남대에서 10㎞ 떨어진 문의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산 뒤 셔틀버스를 타고 와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했지만 외지인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기는 곧 시들고 말았다. 생각보다 소박하고 볼거리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20여년 전에 지어져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역부족이었다. 방문객은 2009년 50만명까지 뚝 떨어졌다. 방문객 급감으로 수십억원의 적자를 내자 의회에서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지역 상인들 사이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주민들은 현직 대통령이 1년에 한 번이라도 청남대를 이용하면 인기를 되찾을 것이라며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도는 각종 개발행위를 제한하는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을 풀어 관광 인프라 구축에 숨통이 트이도록 청남대 일대를 개발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때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청남대 활용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청남대를 방문하면서 기대를 부풀렸으나 경호 등에 문제가 많다는 이유로 역시 물거품이 됐다. 충북도가 청남대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들은 번번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렸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역대 9명의 대통령 사진, 유품 등을 전시하는 대통령 특별전을 추진하자 시민단체들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부패한 인물을 미화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서 생존 대통령은 제외했다. 전 전 대통령이 쓰던 식기 등을 전시하자 한 신부가 1주일 동안 청남대 앞에서 농성을 벌여 전시품들을 철거하는 소동까지 빚었다. 주변에 대통령들의 이름을 붙여 산책로를 만드는 일도 시끄러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문제였다. 현직인 데다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고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충북인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논란 때마다 청남대는 순수한 행사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숱한 우여곡절을 겼었지만 청남대는 야간개장, 승용차 입장, 축제 개최 등 관광객 유치에 머리를 짜내면서 다시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는 76억원을 들여 대통령역사교육관 건립에 나섰다. 양어장 인근 7100㎡에 지하 1층, 지상 2층(건물 연면적 2837㎡) 규모로 내년 10월 완공한다. 지하엔 국무회의 체험장, 도서자료실 등이 갖춰져 대통령 업무와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다. 1층엔 대통령의 업적을 주제로 한 대형 역사기록화를 전시한다. 국내 처음이다. 300호(가로 290.9㎝, 세로 218.2㎝)짜리 서양화를 대통령별로 2점씩 제작한다. 이재덕 청남대관리사업소장은 “현직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전직 대통령은 청남대에서 모신다는 각오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청원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높게 높게… 기지개 켜는 김무성

    높게 높게… 기지개 켜는 김무성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민주당 원혜영 의원,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와 함께 고령화 사회의 복지 대안을 고민하는 초당적 모임인 ‘퓨처라이프 포럼’을 오는 11일 발족한다. 여야 의원 50여명이 참여하는 국회 연구모임을 통해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복지 정책의 큰 틀을 입법 차원에서 공론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의원 측은 “재·보선 입성 전부터 국가재정 건전화와 함께 관심을 가졌던 양대 이슈”라면서 “불필요한 정치적 의미가 부여될까 봐 추진을 미뤄 왔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지난 9월 시작한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교실과 함께 주요 정책 이슈를 선점하면서 당 바깥으로 외연을 조금씩 넓히고 있다. 국정감사 때문에 잠시 활동을 접었던 근현대사 역사교실은 이날 6주 만에 재개됐다. 첫 모임 때 60여명의 현역 의원들이 참석했던 것과 비교해 규모는 다소 줄었지만 당 소속 의원 40여명이 모습을 드러내는 등 관심은 여전했다. 김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는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했고,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독립·건국 과정의 큰 치적에도 불구하고 독재와 부정부패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다른 교과서는 몰라도 국어와 국사 교과서는 (현행 검인정 체제에서) 국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전날 예산결산특위 정책질의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 논의 필요성을 언급한 데 대해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정부 충분한 증거없이 극약처방” “강령·당헌 위헌 소지 충분”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정부 충분한 증거없이 극약처방” “강령·당헌 위헌 소지 충분”

    정부가 5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함에 따라 이 결정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헌법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지만 정부가 충분한 증거 없이 성급하게 위헌 정당 해산이라는 ‘극약 처분’을 내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헌재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결정이 나기 위해서는 우선 헌법 8조 4항의 요건인 진보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는지, 즉 민주주의 파괴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특히 당과 이석기 의원을 중심으로 한 지하혁명조직 ‘RO’와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것과 강령과 당헌이 헌법에 위반되는지가 관건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진보당이 지난해 총선을 치렀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헌법에 위배된다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이제 와서 강령이 위헌이냐,아니냐를 논의하면 정치적 판단이라는 논란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당 해산을 위해서는 당헌이나 강령이 문제가 아니라 이에 맞춰 내란 활동을 했는지를 충족시켜야 한다”면서 “상관관계가 명확하다면 RO의 내란음모 활동이 진보당의 행위로 간주되겠지만 불명확하다면 해산 결정이 쉽게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무부가 시장경제 질서를 부정해 진보당이 해산 사유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독일의 위헌정당 해산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개방성을 저해하고 독재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진보당이 분배 정의를 주장하지만 생산 수단의 사유화를 부정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불법적 행동을 한두 가지 했다고 정당 해산이라는 극약 처분을 내리기는 어렵다”면서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도 정당 차원이 아닌 이 의원 개인의 돌출 행동이라면 정당 해산의 요건은 되지 못하는 만큼 이에 대한 사실관계 판단이 앞으로 헌재 판결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반면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보당 핵심 당원으로 RO를 조직하고 파괴활동을 꾀한 이석기 의원의 행태로 봤을 때 진보당 해산 절차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헌재가 진보당에 대해 해산 결정을 내릴 경우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 유지 여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법률상 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정당 해산 제도가 헌법을 보호한다는 취지를 고려하면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의견과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인 만큼 정당이 해산됐다고 해서 의원 신분을 박탈하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한다는 견해가 엇갈린다. 여기에 국민이 직접 뽑은 지역구 의원은 신분을 유지하되 비례대표 의원의 자격은 상실토록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있다. 김상겸 교수는 “헌법상 정당은 공적 조직이 아닌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는 ‘사적 결사체’로 본다”면서 “우리가 정당제 민주주의를 채택한 이상 해산 청구가 나면 소속 국회의원들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관계없이 자격을 상실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도 “독일은 명문 규정을 두기 전에도 정당이 해산될 경우 의원직을 상실케한 전례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문 규정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해석상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현행 법제 내에서는 무리한 해석”이라면서 “헌재가 이를 판단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 규정은 원래 정당을 없애기 위해 만든 조항이 아니라 이승만 정권이 1950년대 진보당을 대통령 공보실에서 해산시켰듯이 헌법을 통하지 않고는 함부로 없애지 말라는 의미에서 만든 조항”이라면서 “터키처럼 위헌 정당 결정을 하면서 원인을 제공한 의원만 제명하는 방식과 같이 입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지 헌재가 판단할 사항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신평 교수는 “정당 해산의 타당성과 의원직 상실 문제는 별개로 개별 의원의 행위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면서 “정당의 대표성이 높은 비례 대표직도 유지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보다 정당의 상징성이 적은 지역구 의원직은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우리 동네 Secret 스토리] 강북구 북한산 역사 순례길

    [우리 동네 Secret 스토리] 강북구 북한산 역사 순례길

    깊은 계곡에서 우려낸 찬 공기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숨을 멈춰야 했던 것은 규모 탓이었습니다. 지난 4일 오후 4시쯤 북한산 이준 열사의 묘역에 올랐습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이랍니다. 근처엔 순국선열의 묘가 제법 있습니다. 의암 손병희, 몽양 여운형, 해공 신익희, 심산 김창숙, 성재 이시영, 가인 김병로, 유석 조병옥에다 중국에서 산화한 광복군 열일곱 분까지. 강북구가 여기에다 ‘근현대사기념관’을 짓고, 순국선열묘역과 그 아래에 자리한 국립4·19민주묘지까지 한데 묶어 ‘역사문화관광벨트’로 만들려는 이유를 헤아릴 만합니다. 이준 열사 묘역엔 묘와 석물만 있는 게 아닙니다. 깨끗한 입구, 예쁜 벽돌이 깔린 긴 진입로, 중간엔 자유평등을 수호하는 동상이 우뚝 섰고, 묘역 보호를 위해 병풍처럼 둘러쳐진 벽도 있습니다. 유해를 묻은 곳은 태극 마크로 봉인해 뒀고, 왼쪽엔 네덜란드 헤이그 묘역을 고스란히 본뜬 묘가 있으며, 오른쪽 벽면엔 헤이그 밀사 파견 때 고종 황제가 준 친필 위임장을 새겨 뒀습니다. 위임장엔 고종이 직접 도장을 찍었을 때만 남겼다는 사인이 뚜렷합니다. 대한제국 말기 일제와 맺어진 각종 조약이 가짜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그 사인입니다. 그 위임장 옆에는 ‘순국대절’(殉國大節) 네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누가 썼을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헤이그에 잠든 열사의 유골을 이렇게 옮겨다 성대히 묻은 사람이 박 전 대통령입니다. 바로 그해 ‘1963년’이라는 글자가 동상, 비, 글씨 등에 남았습니다. 쿠데타 뒤 ‘불행한 군인’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해가 1963년이지요. 그 시절 대대적으로 묘역을 꾸린 배경이 여기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열사 유해와 달리 귀국을 절대 막았던 사례도 있습니다. 대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죠. 4·19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 정부가 무너지니 귀국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왜 막았을까요. 이런저런 자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도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었습니다. 4·19가 없었다면 그 이전에라도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는 것 또한 정설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 쿠데타의 대상, 아니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선 ‘혁명’의 대상이던 이 전 대통령을 ‘건국자’로 불러내고, 모세라는 둥 세종대왕이라는 둥 하는 사람들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일관성은 갖춰 달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요. 열사 묘역에서 가슴 시린 까닭입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대한민국 정당 잔혹사… 유사 사례 살펴보니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뒤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면서 국내외 유사 사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정변과 같은 혼란상황이 아닌 평시에 ‘헌법 절차에 따라 정당해산이 결정된 사례’는 없다. 국내에서 평시의 정당해산 사례는 이승만 정부 때인 1959년 2월 ‘조봉암 사건’으로 인해 ‘진보당’이 해산된 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는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정부가 직권으로 등록을 취소하면서 이뤄진 것이어서 이번 사례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특히 당시 대법원이 진보당 당수 조봉암에 대한 재판에서 ‘진보당의 정강 정책이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결했지만 이승만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정당 해산을 강행한 것이어서 이번 사례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학계의 다수 견해다. 이 밖에도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모든 정당이 해산된 사례와 1972년 10월 유신헌법 선포 직전에 박정희 정부가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활동을 금지한 사례, 1980년 12·12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모든 정당을 해산한 사례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정당 해산들 모두 정변 상황에서 초법적으로 강제된 것이라 참고로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치된 견해다. 외국도 독일, 터키 외에 사례가 드물다. 헌법상 정당해산은 독일과 우리나라 등이 채택하고 있다.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가 1950년대 두 차례 나치 정당을 해산시켰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2004년 정당해산심판제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 당시 터키에서 정교분리 원칙을 위배했다며 빈번하게 이뤄진 정당해산과 관련된 쟁점들을 연구했다. 연구는 “정당해산제도가 해산에 중점이 놓여져 있는 제도가 아니라 반대로 정당의 존속 보호에 중점이 놓여있는 제도”라고 봤다. 학계에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찬성 측은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이석기 의원 활동 사례 등이 해산심판청구의 충분한 사유라고 본다. 반대 측은 정당존속 여부는 정치과정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이정희 “진보당 제거는 유신시대로의 회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 해산 심판청구를 당한 통합진보당은 “헌정 사상 유례없는 정당 해산이란 사문화된 법조문을 들고나와 진보당을 제거하려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유신시대로 되돌리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정희 진보당 대표는 5일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유신독재 공식 선포이자 1979년 해제된 긴급조치들에 이은 ‘긴급조치 제10호’”라면서 “부정하게 정권을 차지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의 후계자가 모여 만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유신의 망령을 부활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대표는 “부활한 유신독재에 모두가 신음하게 될지 모른다”며 “깨어 있는 양심들은 떨쳐 일어나 달라”고 촉구했다. 진보당은 오전 서울 동작구 대방동 당사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연 데 이어 오후 서울광장에서 기자회견과 정당연설회를 잇따라 개최해 이번 조치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새누리당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정부의 결정을 환영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헌법을 무시하고 집행마저 방해하는 정당은 헌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책임 있는 역사의식에 기초한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가 유지돼야 하고 모든 정당의 목적도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국내여행 | 비수구미-길 위에서 평화를 찾다

    국내여행 | 비수구미-길 위에서 평화를 찾다

    산천에 색이 스며드는 계절이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쾌청하기 그지없고 햇살은 노곤하다. 뚜벅뚜벅 걷는 산길,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이 찾아왔다. 발 아래 땅이, 머리 위엔 하늘이 해산터널을 갓 지나자 비수구미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몇 개의 표지판 뒤로 철망으로 만들어진 높은 문이 입을 꽉 다물고 있었고, 그 옆에 작게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둔 게 보였다. 찾아온 이를 반기지 않는 것 같은 풍경에 첫 발걸음이 조금 무거웠다. 길은 울퉁불퉁, 흙이 다져진 흙길이라기보단 돌이 쌓여 있는 돌길에 가까웠다. 운동화가 아닌 단화를 신었던 일행은 불편하고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엉성하게 묶었던 신발 끈을 다시금 조여매고 천천히 걷기로 했다. 출발 지점부터 비수구미 마을까지는 6.5km, 넉넉히 잡아 2시간이 걸린다. 길을 걷자고 찾아온 곳,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강원도 화천에 자리한 비수구미는 오지 중의 오지로 알려져 있다. 비수구미라는 명칭은 ‘신비의 물이 만든 아홉 가지 아름다움’이라는 이야기와, 조선시대 때 임금에게 진상할 소나무 군락지였던 ‘비소고미’가 발음하기 쉽게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화천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1,190m의 해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파로호를 마주하고 있는 곳. 외로움과 고된 생활에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집은 4가구에 불과하다. 파로호의 물 높이에 따라 길이 잠기기 때문에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선착장에서 마을 주민들의 보트를 빌려 타거나(인원 상관없이 왕복 3만원) 해산터널을 넘자마자 나오는 트레킹 길을 통해서 걸어 내려와야 한다. 트레킹 길은 해산령에서 비수구미 마을 방향으로 내려올 수도, 배를 타고 마을로 들어와 해산령 방향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트레킹에 익숙하지 않다면 내려오는 길을 선택하는 편이 수월하다. 비수구미는 2012년 5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자연휴식년제가 지정돼 출입이 통제되고 취사나 캠핑도 불가능하다. 여느 여행지처럼 편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은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만 되면 사람들이 찾지 못해 안달이다. 트레킹 길 출발지와 선착장에도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조용하던 민박집에는 식사시간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단순히 오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집 한 채 없이 이어지는 산길, 그 위에 자꾸 사람들이 서려는 이유는 오감을 통해 채워지는 평안 때문일 것이다. 비수구미에선 조금만 발걸음을 늦춰도 금방 길 위에 혼자가 된다. 소리라고는 숲이 내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뿐이다. 보물같이 숨어 있는 길섶의 작은 꽃들은 비수구미 길의 숨은 재미다. 풀의 냄새를 실은 바람도 전해진다. 트레킹 길은 계곡을 옆으로 두고 나란히 이어지다 두어 번쯤 작은 물길이 길 위를 넘어간다. 한여름이라면 발을 담구고 쉬었다 가도 좋을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길, 산, 하늘과 물뿐이고 도시에서 찾기 힘든 화려한 색이 물감을 풀어놓은 듯 펼쳐진다. 차를 타고 휙 지나가며 보는 풍경에선 알 수 없는 산천의 숨은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역사의 아이러니를 굽어보다 비수구미 마을과 닿아 있는 파로호는 지금은 잔잔한 물결을 만들며 고요함을 뽐내고 있지만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파로호는 1944년 일제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만든 화천댐 건설로 만들어졌다. 원래 이 지역의 호수는 ‘대붕호’라 불렸지만 일제가 대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화천호’로 불렸다. 수력발전소로 지어진 만큼 6·25 전쟁 때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한국군이 중공군 약 3만명을 물리치며 승리를 거뒀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뜻에서 파로호破虜湖란 이름을 붙이면서 명칭이 굳어지게 됐다. 파로호와 맞닿아 있는 또 다른 댐은 바로 ‘평화의 댐’이다. 80년대 북한 금강산댐에 대응하고자 만들어진 것으로 국민모금운동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1990년에 완공된 댐은 수많은 논란이 일어 결국 감사원의 감사까지 받는 등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현재의 모습은 2000년대 증축을 거친 모습이다. 그리고 화천군에서 2009년 평화의 댐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고 여러 조형물과 비목공원 등을 설치하면서 관광지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공원에는 커다란 종이 자리하고 있다. ‘평화의 종’이 그것인데, 세계 각국의 탄피를 모아 만든 것으로 ‘전쟁과 분란 없는 세계’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한국에서 가장 큰 종이자 세계에서도 3번째 크기라는데 탄피로 만들었다니 그 크기가 도리어 씁쓸하게 느껴졌다. 종의 윗부분에 있는 날개 한 쪽이 잘린 비둘기 모형은 북으로 갈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통일이 되면 날개를 이어 붙일 예정이라고. 1인당 500원을 내면 타종 체험도 할 수 있다. 타종료 500원은 에티오피아 아이들의 교육사업에 사용되는데 2010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총 3,000만원이 에티오피아에 전해졌다고 한다. 전쟁의 기억과 안보 위협을 오롯이 담고 있는 이곳에서 생각하게 되는 평화는 남다르다. 비목공원에 걸린 낡은 철모도 선전으로 시작한 댐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맛으로 느끼는 비수구미 동그랗게 말아 놓은 나물이 식탁에 올라온다. 얼핏 봐도 적은 양이 아니다. 꼭꼭 눌러 뭉쳤으니 자꾸만 옮겨 담아도 여전히 그릇 위에 수북하다. 아주머니는 “남으면 다시 올리지도 못하니까 싸 가요”라며 나물이 남은 테이블마다 비닐 팩을 나눠준다. 고사리, 곰취, 얼레지, 곤드레 등 계절마다 제철에 나오는 나물들로 상이 차려진다. 밥 위에 나물 몇 가지를 올리고 직접 담갔다는 고추장을 넣어 슥슥 비벼 한 입. 자근자근 씹기 시작하자 나물의 향과 고소함이 전해졌다. 질감도 맛도 하나같이 다르다. 상차림에 나오는 7가지 나물 하나하나마다 가장 맛 좋은 방법으로 무쳐내기 때문이다. 손이 많이 가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맛있다. 조미료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쌉싸름한 고추장과 산나물의 조화는 바깥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에 단비와 같았다. 몇달 전, KBS <인간극장>에 나오기도 했던 비수구미 민박은 방송 이후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족히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어 보이는 식당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원래는 노부부가 하던 일을 지금은 아들 내외와 손자손녀들, 손자손녀들의 친구들까지 찾아와 돕고 있다고 한다.☞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travie info 평화의 댐 평화의 댐 주변에는 물문화관, 비목공원, 세계 평화의 종 공원 등이 있다. 물문화관은 물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모형과 영상 등 시각자료를 활용해 보여 준다. 비목공원은 가곡 <비목>의 탄생지로, 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매년 6월6일을 전후로 비목문화제가 열리기도 한다. 평화의 댐 뒤편으로 있는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은 ‘염원의 종’, ‘마음의 종’ 등 여러 의미를 담은 종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소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2922-2 문의 033-480-1532 비수구미 민박비수구미 트레킹 길의 끝과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는 비수구미 민박은 민박과 식당을 겸하고 있다. 숙박할 수 있는 방은 총 8개로 기본적으로 한 방에 4명이 묵을 수 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다. 비수구미 민박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직접 담근 고추장과 제철에 나는 나물들로 만든 산채비빔밥. 직접 기른 닭으로 만든 닭백숙, 닭볶음탕도 맛볼 수 있다. 가격┃숙박 1박에 3만원 음식 산채비빔밥 1인 1만원, 닭백숙과 닭볶음탕 3~4인분 4만5,000원 주소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2리 2715 문의 033-442-0145 물빛누리호 화천댐 주변의 파로호 선착장에서 출발해 평화의 댐까지 운항하는 유람선. 약 24km를 달리며 배 안에서 파로호의 풍경을 담을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과 공휴일에 운항한다. 10인 이상일 때 운항하며 평일에도 30인 이상이면 예외적으로 운항하기도 한다. 승선료 13세 이하는 왕복 9,000원, 14세 이상은 왕복 1만5,000원 주소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1177-3 문의 033-440-2575, 2557
  • 황법무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취지로 보고할 듯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할지를 두고 검토해 온 내용을 5일 국무회의에 보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법무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5일 국무회의에서 시민단체와 탈북자단체가 각각 낸 진보당 해산 청원 2건에 대해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태스크포스(TF)’(팀장 정점식 검사장)가 9월 초부터 검토한 내용을 보고할 예정이다.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황 장관은 별도 보고사항으로 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 청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검토 결과를 설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이 자리에서 심판 청구 시 필요한 부처 간 협조사항 등을 논의한 뒤 박근혜 대통령이 유럽 순방에서 돌아오면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을 국무회의의 정식 안건으로 회의에 올릴 전망이다. 법무부는 “TF팀이 아직 검토 중인 사안”이라며 “(심판 청구) 결론이 나면 그때 결과를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위헌정당해산심판은 헌재의 주요 권한 중 하나로 어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이 정한 민주적 기본질서 등을 인정하지 않으면 정부의 청구에 의해 그 정당을 해산할지를 판단하는 절차이나 헌정사상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거나 받아들여진 사례는 없다. 다만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58년 죽산 조봉암 선생이 이끌던 ‘진보당’이 공보실에 의해 정당 등록이 취소되고 행정청 직권으로 강제 해산된 적은 있다. 헌법상 정당 해산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헌재에 정당 해산 청구를 하고 헌법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 해산 결정이 내려진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진보당 해산 청구안’ 헌정 사상 첫 국무회의 통과…진보당 강력 반발(종합)

    ‘진보당 해산 청구안’ 헌정 사상 첫 국무회의 통과…진보당 강력 반발(종합)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정부가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심의, 의결했다. 또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원직 상실 결정도 청구키로 했으며 각종 정당활동 정지 가처분신청 절차도 조속히 진행하기로 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무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우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면서 “법무부는 앞으로 관련 절차를 마친 뒤 제반 서류를 갖춰서 신속히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황교안 장관은 또 “(진보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국회의원직 상실 결정 청구 및 각종 정당활동 정지 가처분신청 절차를 조속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보당은 강령 등 그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핵심세력인 RO(혁명조직)의 내란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이번 청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해산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헌법 제8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될 수 있다. 또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의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법재판소에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가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헌정 사상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하거나 받아들여진 사례는 아직 없다. 다만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58년 죽산 조봉암 선생이 이끌던 ‘진보당’이 공보실에 의해 정당등록이 취소되고 행정청 직권으로 강제 해산된 적이 있다. 법무부는 이날 통과된 청구안을 박근혜 대통령이 재가하면 곧바로 헌재에 해산심판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현재 서유럽 순방 중이어서 전자결재로 재가를 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당은 즉각 격렬하게 반발했다. 진보당은 이날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면서 강력히 반발했다. 이정희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헌정 사상 유례없는 정당해산이라는 사문화된 법조문을 들고 나와 진보당을 제거하려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유신시대로 되돌리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영익 아들, 병역기피 이어 특채 의혹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해 논란을 빚었던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의 아들 유모씨가 공공기관 입사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27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를 인용해 “아들 유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진흥원 사무소에 특혜 채용된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진흥원이 제시한 ‘미국 사무소 마케팅 디렉터’ 채용 기본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유씨가 지원자 19명 가운데 1등으로 합격했다는 것이다. 유씨가 합격할 때 유 위원장은 국내에서 연세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긍정적인 면모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기존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는 뉴라이트 주장의 이론적 근거를 탐색하고 있었다. 유씨를 채용한 2006년 진흥원은 당초 마케팅 디렉터의 기본 자격 조건으로 ‘미국 현지에서 엔터테인먼트 관련 마케팅 5년 이상 경력’을 제시했다. 당시까지 유씨는 아리랑TV에서 영어 자막 검수를 하거나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했을 뿐 미국 현지 경력이 없었지만 재공고 절차 없이 채용됐다. 1년 뒤 유씨가 개인 사정으로 퇴사 의사를 밝히자 진흥원은 다시 채용 공고를 냈는데 이때는 ‘7년 이상 미국 현지 경력’을 요구했다. 이어 ‘7년 이상 경력자’를 찾지 못한 진흥원은 면접 절차도 생략한 채 업무 효율을 강조하며 유씨를 재입사시켰다. 안 의원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진흥원이 직원을 뽑으면서 적격자가 없으면 당연히 재공고를 내야지, 기준과 원칙 없이 특정인을 합격시켜서는 안 된다”면서 “이는 명백한 채용 비리이고 유씨는 두 차례나 특혜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유 위원장은 병역 기피를 위해 아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는 의혹에 대해 언어 장애가 있다거나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거짓 해명을 했다”면서 “아들이 한국 국적을 갖고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미국 내 한국 공공기관에서 일한 사실이 드러난 것도 모자라 채용 과정마저 특혜였다는 게 드러났으니 유 위원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日 ‘독도 도발’… 이번엔 동영상 유포

    日 ‘독도 도발’… 이번엔 동영상 유포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인터넷에 유포해 우리 정부가 강력히 항의하고 즉각적인 삭제를 촉구했다. 일본 외무성은 ‘여러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아십니까’라는 해설로 시작하는 1분 27초짜리 동영상을 지난 16일 외무성 동영상 홍보 채널 명의로 유튜브에 올렸다. 제목은 ‘다케시마에 관한 동영상’이라고 붙였으며 외무성 웹사이트의 독도 관련 페이지에도 이 동영상을 링크했다. 동영상에는 ‘17세기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확립하고 이를 1905년 각의 결정을 통해 재확인했다’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이 담겼다. 또 ‘한국이 1952년 ‘이승만 라인’을 긋고 국제법에 반(反)하는 독도 불법 점거를 했다’는 주장과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제안했으나 한국이 거부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외교부는 일본 외무성이 독도 영유권 훼손을 기도하려는 데 대해 일본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이를 즉각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박준용 외교부 동북아국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청사로 구라이 다카시 주한 일본 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담은 구술서(외교문서)를 전달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몰역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도발 행위가 한·일 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요인이 되고 있음을 통감하라”면서 “역사적 과오에 대해 진지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행동으로 보여준 사례들로부터 교훈을 얻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사토 구니 외무성 대변인은 “일본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촉진시키기 위해 계속 정중하게 설명할 것”이라고 말해 동영상을 활용한 독도 영유권 홍보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일본이 ‘일본해’로 부르는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생각을 담은 동영상을 만들어 연말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서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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