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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염 민 빈라덴 카우보이 모자쓰고 거리 활보했다”

    “수염 민 빈라덴 카우보이 모자쓰고 거리 활보했다”

    국제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이 미국 해군특전단(네이비실)에 사살되기 직전까지 파키스탄에서 9년간 은신할 수 있었던 것은 파키스탄 정부의 무능과 태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가 입수해 8일(현지시간) 웹사이트에 공개한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위원회’의 보고서는 파키스탄 정부와 군대가 무능력한 탓에 빈라덴이 9년간 발각되지 않았으며 미국이 파키스탄의 영토권과 독립성을 무시한 채 빈라덴을 사살하는 ‘전쟁 행위’를 자행하도록 방치했다고 밝혔다. 빈라덴의 사살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2011년 6월 구성된 아보타바드 위원회는 빈라덴의 가족을 비롯해 당시 파키스탄의 정보당국 수장, 고위 관료 등 200여명의 증언과 정부 문서 등을 토대로 이번 보고서를 작성했다. 총 336쪽 분량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중반 파키스탄에 입국한 빈라덴은 북서부 스와트밸리에 머무는 동안 9·11테러 기획자로 알려진 칼리드 샤이크 모하메드와 여러 번 만났으며 하리푸르에서 두 명의 아내와 자녀, 손자들과 2년간 머물렀다. 빈라덴이 2005년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6년간 거주한 아보타바드의 은신처는 주변 주택단지와 다소 떨어져 있고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지역 정부 관계자, 경찰, 정보당국의 어떤 누구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가 전한 빈라덴의 파키스탄 거주 당시 일상생활도 주목할 만하다. 빈라덴은 미국의 감시 위성을 피하기 위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말끔하게 면도를 한 채 집을 나섰으며 기운이 빠질 때는 사과와 초콜릿을 즐겨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빈라덴의 연락책인 아부 아흐마드 알 쿠웨이티의 부인인 마리암은 자신과 남편, 빈라덴이 2002년 또는 2003년에 차를 타고 바자르로 이동하던 중 속도 위반으로 경찰에 걸려 빈라덴이 적발될 뻔했다고 위원회에 증언했다. 마리암은 경찰이 빈라덴을 알아보기 전에 남편인 알 쿠웨이티가 먼저 나서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들이 빈라덴의 은신에 도움을 줬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만난 군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군부 내 과격 이슬람주의자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빈라덴이 파키스탄에서 거주한 기간과 거처를 여러 번 옮긴 점을 고려할 때 그가 일부 파키스탄 정부 인사들로부터 여러 형태의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무슬림 입맛 사로잡은 한국식품

    이슬람 율법이 허락한 음식만 먹는 무슬림 사이에서 한국 식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무슬림들은 할랄 인증을 받은 식품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는다. 할랄은 ‘허용된 것’을 뜻하는 아랍어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 처리, 가공된 식품과 공산품에만 주는 까다로운 인증이다. 한국 식품 기업들은 대표 수출제품의 할랄 인증을 추진하고, 할랄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까지 따로 차리는 등 16억 무슬림의 입맛을 사로잡고자 공을 들이고 있다. 8일 농심은 올 상반기에 할랄 인증을 받은 신라면을 100만 달러어치 수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 증가한 사상 최대 실적이다. 연중 음식 소비가 가장 많이 증가하는 이슬람 최대 명절 라마단을 전후해 판촉을 벌인 덕분이다. 농심은 2011년 4월 부산공장에 할랄 전용 생산라인을 따로 마련하고 ‘할랄 신라면’을 출시했다.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9개 이슬람 국가에 수출한다. 농심 관계자는 “연말까지 수출 200만 달러 달성이 무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CJ제일제당은 지난 3월 말레이시아 이슬람발전부(JAKIM)의 할랄 인증을 획득했다. 즉석밥인 햇반, 조미김, 김치 등 모두 43개 품목이다. CJ제일제당은 전 세계 식품시장의 20% 수준인 6500억 달러(약 750조원)인 할랄 시장에서 연매출을 올해 100억원, 앞으로 5년 내 1000억원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지난 4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국제 할랄박람회에 참가해 현지 바이어와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무슬림 국가의 할인점과 백화점에 입점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 청정원은 인도네시아 할랄위원회에서 할랄 인증을 받았다. 마요네즈는 2010년 12월, 올리브유 재래김은 지난해 1월 인증을 통과했다. 이달 안에 옥수수유와 대두유, 물엿, 쌀엿, 당면 등도 할랄 인증을 받게 된다. 특히 대상은 인도네시아 전용 브랜드인 ‘마마수카’를 만들어 무슬림 시장을 공략해 왔다. 마마수카 마요네즈는 현지 매출액이 2010년 1억원에서 지난해 13억 7000만원으로 껑충 뛰었고, 지난해 8억 2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재래김은 올 상반기에만 7억원어치 팔렸다. 크라운제과는 지난 5월 국내 제과업계 최초로 싱가포르의 할랄 인증을 받았다. C콘칩, 죠리퐁, 못말리는 신짱, 카라멜콘 땅콩 등 4종 과자 300만 달러어치를 이달부터 인도네시아로 수출한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도 지난해 12월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에서 할랄 인증을 받고 무슬림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할랄 인증을 받은 제품은 현지에서 비(非)할랄 제품보다 1.5배 이상 비싸게 팔린다”면서 “지난해 9월 문을 연 싱가포르 지점을 시작으로 동남아와 중동 국가 진출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이집트軍, 무르시 지지파에 발포

    이집트軍, 무르시 지지파에 발포

    8일 새벽 이집트 카이로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복귀를 주장하는 시위대와 이들을 진압하는 군이 충돌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져 최소 42명이 숨지고 500여명이 다쳤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무르시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군이 카이로 공화국수비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친(親)무르시 시위대를 향해 실탄과 최루탄을 발사해 일부 참가자가 머리와 가슴 등에 총탄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사망자 중에는 다수의 여성과 어린이 5명, 6개월 된 아기도 있었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이집트군은 “테러리스트들이 수비대 본부를 습격해 경찰관 2명과 군인 1명이 사망했다”며 책임을 시위대에 돌렸다. 공화국수비대에는 무르시가 갇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야권 인사들은 이날 총격 사태를 강력히 비난했다. 무르시 축출에 가담했던 이슬람 근본주의 ‘살라피스트’ 정당인 알누르당은 이에 반발해 향후 정부 구성 논의에서 빠지겠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폭력이 폭력을 낳고 있다”며 독립수사를 촉구했다. 무르시 축출 이후 이집트 내 여론 분열이 극에 달한 데다 대규모 유혈충돌까지 일어나면서 이집트도 시리아와 같은 내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무르시 타도 이후 불안한 동거를 해 왔던 야권 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세속·자유주의 진영이 과도정부의 총리 후보자 임명 여부를 두고 충돌하면서 내분 조짐이 일고 있다. 알누르당은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과 기업 변호사인 지아드 바하아엘딘이 범야권 단체인 ‘구국전선’(NSF) 소속이라는 이유로 잇따라 퇴짜를 놓았다. 이에 반정부 연합 ‘타마르루드’(반란)는 “알누르당이 협박과 강요를 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8~18세기 이슬람문화의 보물 서울에

    8~18세기 이슬람문화의 보물 서울에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은 가장 먼저 쿠웨이트 알사바 왕실의 유물을 약탈한다. 바그다드로 옮겨진 유물은 ‘쿠웨이트가 과거 이라크의 영토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된다.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이듬해 1차 걸프전이 끝난 후 유물은 반환됐지만 일부는 심각하게 손상된 뒤였다. 지난 2일부터 오는 10월 20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어지는 ‘이슬람의 보물-알사바 왕실 컬렉션’전에선 카펫, 도자기, 유리·보석 공예 등 엄선된 유물 367점이 공개된다. 이슬람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취지에서 걸프전 당시 손상된 미술품까지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이슬람 미술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후사 사바 알살렘 알사바 공주 부부가 소장한 이 유물들은 1983년부터 국가에 영구 대여돼 쿠웨이트 국립박물관 이슬람미술관(DAI)에서 관리하고 있다. 전시품들은 8~18세기까지 1000년에 걸친 것들이다. 지역으로는 아라비아 반도부터 이베리아 반도,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 광대한 지역을 아우른다. 1부는 이슬람 문명의 기원, 성숙기, 전성기 등 시간적인 순서로 배치됐다. 2부는 이슬람 문화의 특성을 서체, 아라베스크 무늬 등의 키워드로 요약했다. 이슬람교에서는 우상숭배가 엄격히 금지됐던 까닭에 예술품에조차 인물, 동물 등의 형상을 새겨 넣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아라베스크 무늬와 기하학적 무늬다. 꽃, 잎사귀 등을 즐겨 사용했고 같은 문양을 반복해 신의 무한함을 찬양했다. 눈에 띄는 전시품도 있다. 길이 9m가 넘는 18세기 이란의 ‘정원 카펫’은 이슬람판 ‘몽유도원도’다. 18세기 이란 지역에서 제작한 것으로 수예문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난해한 아라비아 글씨의 다양한 서체는 동양의 서예와 비슷하다. 또 고려 상감청자와 비슷한 시기인 13세기 이란에서 제작된 이중 투각기법의 도자기는 당시 기술력을 가늠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자국의 문화를 알리고 싶어 하는 후사 공주의 요청으로 성사됐다. 유물의 운임도 후사 공주 쪽에서 부담했다. 유료 관람이란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4000원∼1만 2000원. (02)541-3173.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위클리 포커스] 이집트 사태 ‘아랍의 봄’과 다른 점은

    [위클리 포커스] 이집트 사태 ‘아랍의 봄’과 다른 점은

    이집트 군부의 쿠데타로 이슬람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2011년 ‘아랍의 봄’을 통해 민주화 혁명을 이룬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이 또 다른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튀니지, 리비아, 예멘 등 아랍의 봄을 겪은 인접 국가들이 이집트처럼 혼돈에 빠질 가능성은 적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아랍의 봄이 오랜 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압축적인 여망으로 촉발된 것이라면 이번 이집트 사태는 새로 출범한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의 미성숙한 국정 운영 능력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집트 국민 대다수는 무르시가 권력 독점에만 주력하고 경제 악화, 치안 부재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해 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올해 초부터 무르시 퇴진 시위를 벌여 왔다. 이집트 재무부에 따르면 시민혁명 이전 5%를 넘었던 경제성장률은 2010~2011년 1.8%로 추락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2%대 초반을 기록했다. 박 연구원은 “경제난이 계속되면 이집트 국민들의 시위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르시가 물러난 게 끝이 아니라 차기 정권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걸프 지역의 왕정 국가들은 아랍의 봄 때와 같이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국가의 풍족한 사회복지 혜택 덕택에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일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지난 60년간 핵심 권력을 거머쥔 채 실세 역할을 해 온 이집트 군부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아랍의 봄 진원지이자 이집트의 이웃 국가인 튀니지의 경우 벤 알리 전 정권의 장기 독재로 인해 군부 세력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이집트 군부처럼 시위를 주도할 구심점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장 센터장은 “알제리나 예멘은 아직도 군부가 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있기는 하나 이집트에 비해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조직력이 떨어지는 데다 국민들이 군부에 의한 권위주의적인 안정에 기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야권 지도자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71)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과도정부의 신임 총리에 지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궁 언론 담당관은 “아들리 알 만수르 임시 대통령이 임시 총리를 아직 공식 임명하지 않았다”면서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무르시의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이 창당한 자유정의당을 비롯한 이슬람 정당은 엘바라데이를 지명한 데 대해 즉각 반발해 그의 총리 임명이 향후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7일 AP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최근 이집트 군부의 무르시 축출을 ‘부당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는 무르시 실각 이후 이란 정부의 첫 공식 반응으로, 이란 외무부의 압바스 아락치 대변인은 이날 무르시 지지 세력에 무르시의 복권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사설] 민생 외면한 혁명의 末路 보여준 이집트

    2년 전 시민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독재 체제를 종식시키며 ‘아랍의 봄’을 활짝 열었던 이집트가 다시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사상 첫 민선 대통령으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가 취임 1년 만에 군부에 의해 쫓겨나고 아들리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을 임시대통령으로 한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수백만 군중의 반정부 시위로 인해 자칫 대규모 유혈사태로 치달을 뻔했던 상황이 수습 국면에 접어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오랜 독재 체제에서 비롯된 가난과 분열의 적폐(積弊)를 이집트인들이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이 지구촌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군부 쿠데타에 의한 무르시 정권의 퇴진은 이집트가 당면한 총체적 난제의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의 부재, 지도력의 부재가 혼란을 불렀다. 대내외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출범한 무르시 전 대통령은 그러나 집권 후 자신이 속한 강경 이슬람 정파인 무슬림형제단을 등에 업고 이슬람 통치를 강화하는 등 독선적 행태를 이어갔다. 율법을 앞세운 ‘파라오 헌법’을 밀어붙이고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는 등 사회 통합과 거리가 먼 행보로 다른 정파와 시민들의 불만을 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르시 정권에 대한 군부의 반발은 더해만 갔다. 지난 60년간 정치권력과 이집트 경제의 40%를 틀어쥐고 막대한 이익을 누려온 군부는 지난해 민정 이양 후 무르시 정부가 예상과 달리 자신들에게 강경하게 맞서자 야권 정파들을 움직여 무르시 정권을 흔들었고, 결국 뜻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군부와 각 정파의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를 떠나 도탄에 빠진 민생이 무르시 정권을 무너뜨린 직접적 요인이라고 할 것이다. 재정 악화로 인해 빵과 유류에 대해 지급하던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그나마 물량조차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서 민심 이반에 불을 붙인 것이다. 2년 전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내몬 것도 결국 식량위기에 봉착한 성난 민심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번 이집트 사태는 민생을 챙기지 못하는 정권의 말로가 어떠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과거 군사정부의 빛과 어둠 속에서 민주화, 선진화를 이뤄낸 우리로서는 지난 2년여에 걸친 이집트의 혼란이 결코 먼 나라의 얘기일 수만은 없다.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권과 민생을 소홀히 하는 무능한 정부, 그리고 사분오열된 사회가 나라를 어떤 지경으로 몰아넣는지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
  • 10년간 1000여구 시신 수습한 남자

    10년간 1000여구 시신 수습한 남자

    매일 전쟁터에서 실려오는 시신을 염(殮)하는 남자가 있다. 60여년 전 6·25 전쟁 때의 일화가 아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얘기다. 워싱턴포스트는 4일(현지시간) 지난 10년간 1000여명의 아프간 군인 시신을 염습한 남자의 스토리를 보도했다. 아프간전 최대 격전지인 칸다하르 지역 군병원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일하는 아프간 남성 누룰라 누리(33)의 업무는 탈레반 반군의 공격에 전사한 아프간 군인들을 염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병원으로 실려온 전사자의 몸에 묻은 피와 때를 깨끗이 닦아낸 뒤 이슬람 식으로 향수를 뿌리고 하얀 천으로 덮는 일이다. 이처럼 곱게 ‘단장’된 시신은 유족에게 보내진 뒤 매장된다. 누리의 ‘집무실’은 병원 한 켠의 컨테이너 안이다. 거기에는 침대와 선풍기, 시신을 씻겨낼 고무 호스가 비치돼 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을 보고 만지는 일은 누리에게 고통 그 자체다. 다소 멀쩡해 보이는 시신을 침대에 눕힌 순간 하얀 시트가 순식간에 붉게 물드는 것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그래서 그는 신경안정제 없이는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다. 누리는 “전사자의 시신을 염하는 일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사람을 지치게 한다”면서 “시신 3~4구를 씻기고 나면 탈진해 드러눕고 만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족에게도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 밝히지 못했다. 그는 탈레반 정권 집권기 때 19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청소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전쟁이 터져 탈레반 정권이 쫓겨난 뒤 전사자가 밀려들어오면서 현재의 일을 맡게 됐다. 최근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의 철군이 진행되면서 그 공백을 메우고 있는 아프간 군의 전사자가 급증하고 있다. 매달 400명의 아프간 군인과 경찰이 사망하고 있다. 그만큼 누리의 일도 많아지고 있다. 한밤 중에 자다가 불려나가는 일도 다반사다. 누리는 “나보다 시신을 많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군대가 싸우면 사람은 반드시 죽게 돼 있다”며 직업에서 체득한 ‘인생철학’을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이집트軍, 무르시측 反군부 시위대에 총격

    이집트軍, 무르시측 反군부 시위대에 총격

    이집트 군부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로 시작된 정국 혼란이 무력 충돌로 확산되고 있다. AP통신은 5일 이집트군이 카이로 공화국수비대 본부로 행진하던 수백 명의 무르시 지지자들에게 총을 쐈다고 보도했다. 이 총격전으로 인해 최소한 3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부상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지난 3일 내쫓긴 무르시는 현재 공화국수비대의 한 병영 시설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무르시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 전역에서 ‘거부의 금요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군부에 대한 반(反)쿠데타 시위를 벌였다. CNN은 카이로 외곽에서 무르시 지지자들의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군부가 무슬림형제단과 자유정의당의 지도부 300여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새로운 체제 구축에 나서자 무르시 지지세력의 반격이 거세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위로 인해 혼란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아들리 알 만수르 임시 대통령이 “무슬림형제단은 국민의 일부이며 국가를 재건하는 데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며 회유에 나선 것도 무위로 돌아갔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로 추정되는 세력이 로켓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시나이반도 엘 아리시 지역의 군경시설 4곳을 공격해 군인 1명이 숨졌다. 이 공격으로 인해 이집트 군부는 가자지구로 이어지는 국경을 무기한 폐쇄했고 엘 아리시 지역을 중심으로 군병력을 증강 배치했다고 이집트 현지 국영신문인 알-아흐람이 전했다. 군부에 의해 축출된 무르시는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이 지난 1일 제시한 최후통첩에 “내 시신을 밟고 가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르시는 첫 민선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자기 편에게서도 버림받고 군대와 경찰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군이 제시한 최종 시한이 끝나고 특공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압송에 조용히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군부가 무르시를 몰아낸 데 대해 대부분의 서방 언론들은 “잘못된 쿠데타”라면서 비판적인 기조를 드러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무르시의 많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였다”면서 “군부의 축출은 의문의 여지없이 쿠데타”라고 지적했다. 영국 언론인 사이먼 젠킨스는 가디언에 쓴 칼럼에서 “군에 의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정부 전복은 쿠데타가 분명한데도 서방 정부들이 ‘좋은 의도를 가진 군사개입’과 쿠데타를 구분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에어아시아 유니폼 “너무 섹시해” 논란

    5년 연속 세계 최고 저비용항공사로 선정된 에어아시아의 객실승무원(CA) 복장이 너무 섹시하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중화지 롄허자오바오(聯合早報)가 보도했다. 이는 말레이시아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이크말 히삼 압둘 아지즈 의원으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히샤무딘 후세인 교통장관은 문서를 통해 “국내 모든 항공사의 복장은 말레이시아 국정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앞으로 에어아시아를 포함한 말레이시아의 모든 항공사는 교통부의 인가를 받을 때 당국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어아시아의 객실승무원 복장은 새빨간 재킷에 가슴팍이 열리는 흰색 블라우스, 빨간 미니스커트다. 이는 몸매를 강조한 디자인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남성 승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한편 말레이시아는 국교가 이슬람이다. 따라서 국정에 맞지 않는 항공사의 복장을 노출이 덜한 것으로 변경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통일말레이국민조직은 지난 2007년에도 “노출이 심하다”, “허벅지와 무릎이 보인다”면서 에어아시아 복장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내 시신을 밟고 가라”며 끌려간 무르시, 최대 실수는?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축출된 이유는? 아랍권 위성방송 알아라비야가 5일 보도한 ‘무르시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국가기관의 무슬림형제단화=각료 5명, 대통령실 8명, 주지사 7명, 시장 12명 등 무슬림형제단 출신 득세. ▲사법부와 갈등=검찰총장 해임 명령에 법원, 복직 명령으로 맞서. ‘파라오헌법 선언문’ 추진에 사법부 반발. ▲탄타위 국방장관 해임=무르시에 대한 군부의 불신 초래. 군부에 비판적인 무슬림형제단도 군부와 갈등. ▲언론 탄압=민영 TV 방송국 폐쇄, 언론인 200명 이상 검찰 조사. 대통령실은 언론인 상대 100건 소송. ▲경제재건 실패=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최저임금 인상 등 실패, 필수품 가격 인상으로 집회와 파업 이어져. ▲부적절한 외교 행보=시리아 정권 지지하는 이란 테헤란과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한 것에 대한 비판 제기. ▲무슬림형제단의 월권=국정 관련 주요 정책 발표 등으로 대중에게 부정적 대통령 이미지 형성. ▲부적절한 비상사태 선포=의회 허가 없이 수에즈 운하 인근 3개 도시에 비상사태 선포, 30일간 유지. ▲부적절한 사면권 행사=와디나트룸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22명의 강력범 재소자에게 사면권 행사 논란. ▲야권 지도부 비판 일색=무함마드 엘바라데이, 함딘 사바히, 아므루 무사 등 야권 지도자급 인사들 비방.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쫓겨나면서 이집트 정국이 시계 제로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만간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부와 세속주의자, 무슬림형제단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질 경우 ‘아랍의 봄’을 능가하는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일(현지시간) 오후 9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무르시의 대통령 권한을 박탈하고 이슬람 율법을 강조한 헌법의 효력을 전면 중지한다고 밝혔다. 이집트를 철권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들어선 무르시 정권을 집권 1년 만에, 그것도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 나흘 만에 끌어내린 것이다. 국영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이 발표 직후 무르시는 공화국 경비대에 가택연금을 당했고 그의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MB) 핵심 멤버들은 출국금지 조치와 함께 체포됐다. 조기 대선·총선 실시 방침을 밝힌 군부가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에게 임시 대통령직을 맡기기까지 겨우 반나절이 걸렸다. 군사독재 타도 30년 만에 얻어낸 민주화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오히려 시위대는 군부를 환영하고 있다. 2년 전 과도정부를 세운 군부에 민권 이양을 요구했던 시위대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이번 시위에서 충돌을 빚었던 세속주의 야권과 무슬림형제단의 관계도 변화무쌍하다. 2년 전 힘을 합쳐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했던 두 세력은 대통령이 하야한 뒤에는 서로 비방을 퍼붓더니 무르시가 취임한 이후에는 또다시 유혈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들은 목적이 같으면 허물없는 동지가 됐다가도 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상극으로 바뀔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군부의 권력 이양이 늦어질 경우 내전에 버금가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 이집트를 이끌어 갈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과정도 안갯속이다. 현재의 가장 유리한 세력은 군부다. 초대 대통령 무함마드 나기브를 비롯해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 무바라크까지 네 명의 지도자를 잇달아 배출한 군부는 지금도 이집트 정치·경제·사법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권력 중추인 최고군사위원회(SCAF)와 최상위사법기구인 최고헌법재판소(SCC) 모두 군부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집트 경제의 40%도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60년간 실권을 유지해 온 군부가 이번 시위 과정에서 보여준 결단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1928년 서구 지배와 왕정정치 타파를 목표로 탄생한 무슬림형제단 역시 이집트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이슬람이라는 정신적 코드를 바탕으로 권력 내부의 막강한 네트워크와 지지 세력을 보유한 덕에 역대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2000년대 온건 노선으로 돌아선 무슬림형제단은 급기야 지난해 자유정의당(FJP)을 창당해 제1당에 오르더니 정치 신인인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지금은 수세 국면에 놓여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수백만 지지자와 함께 타흐리르 광장으로 나온 다음 정국 혼란을 틈타 정권을 재차지할 수도 있다. 무바라크 퇴출에 이어 무르시까지 무너뜨린 세속주의 세력 또한 이집트 핵심 권력이다. 야권인 구국전선(NSF)은 아랍의 봄 시위를 주도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추천할 것으로 보인다.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는 “현재 야권 내부에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주의자와 콥트 기독교도 등 각계각층의 세력이 참여하고 있어 정치적인 단결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며 “지난 대선 때처럼 야권 후보가 난립할 경우 군부나 무슬림형제단에 정권을 다시 내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축제 분위기 속… ‘이집트 군부독재’ 악몽 솔솔

    축제 분위기 속… ‘이집트 군부독재’ 악몽 솔솔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대와 군부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자 이집트 전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4일 AP통신에 따르면 카이로의 민주화 성지인 타흐리르 광장과 대통령궁 주변에 운집한 수십만명의 반정부 시위대는 축포를 쏘고 “신은 위대하다” “국민들이 마침내 무르시 정권을 타도했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환호했다. 그간 무르시 정권에 대한 염증이 극에 달했던 시위대는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의 사진을 들고 자동차의 경적을 울리면서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면 카이로 나스르시티와 카이로대 주변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던 친무르시 세력은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무르시의 중추 세력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군부의 조치를 “명백한 쿠데타”라고 비난하면서 군부에 대한 저항 집회를 멈추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무슬림형제단의 게하드 엘 하다드 대변인은 3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정세가 바뀔 때까지 거리에서 우리의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평화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저항의 수단으로 폭력을 쓰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집트의 소요 사태와 관련해 주요 국가들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독주하던 무르시가 물러난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복잡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번 사태를 쿠데타라고 규정하면 무르시 대통령 편에 선 것처럼 보이거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정국 안정을 위해 군부가 조속히 민간에 권력을 이양할 것을 촉구하는 선에서 입장을 밝히는 등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영국의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분쟁 해결을 위해 군이 개입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도 쿠데타라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 6월 이집트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는 무르시의 축출 소식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것은 이른바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몰락”이라면서 “정치적 목적 또는 특정 분파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자들은 몰락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만수르, 새 선거법 정비 주도할 듯…엘시시, 청렴·유능한 엘리트 평가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군부의 개입으로 하야하게 되면서 실세로 떠오른 두 인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군부가 내세운 임시 대통령인 아들리 알 만수르(67) 헌법재판소 소장과 군부 내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꼽히는 압델 파타 엘시시(58) 국방장관이다. 이집트 군부는 3일 밤(현지시간)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면서 임시 대통령으로 만수르 소장을 내세웠다. 지난 1일 헌재부소장에서 소장으로 취임한 그는 지금껏 발휘해 온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했지만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시절부터 오랜 기간 민·형사법원, 종교법원 등을 두루 거치며 사법부에 몸담아 왔다. 이집트 군부가 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새 선거법을 정비하는 데 그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만수르 소장은 카이로대학을 거쳐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에서 수학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타렉 마수드 부교수는 미국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만수르가 무르시나 무바라크 같은 대통령으로서의 실권은 갖지 못할 것”이라며 “군부는 헌법적 외양을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엘시시 장관은 지난해 8월 물러난 무함마드 후사인 탄타위 전 국방장관의 뒤를 이어 군부를 무난히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집트 군부가 자국 내에서 비교적 청렴하고 유능한 조직으로 존경받는 엘리트 계층으로 평가받는 것도 그에게는 유리한 부분이다. 현재 군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9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엘시시 장관이 독실한 이슬람 신자라는 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무슬림형제단에 기반을 둔 무르시 대통령이 지나친 친이슬람주의 정책을 시행해 비난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군부를 제외한 야권 지도자로 이미지를 구축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72)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노벨평화상 수상자, 무바라크 정권 시절 마지막 총리를 지낸 아흐마드 샤피끄(71)도 이집트의 차기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오바마 “깊은 우려” 속 ‘쿠데타’ 규정 안해…사실상 묵인

    미국 정부는 이집트 군부의 쿠데타를 묵인하는 분위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은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을 전복시키고 헌정을 중단시킨 이집트 군부의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민간 정부에 투명한 절차를 통해 전권을 신속하게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무르시 대통령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또 이번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지도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군부는 무르시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임의로 체포해서는 안 되고 이집트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면서도 “미국은 이번 사태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있고 이집트의 미래는 궁극적으로 이집트 국민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말해 현 상황을 사실상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이 이처럼 쿠데타를 사실상 방관하는 것은 이슬람형제단보다는 군부 통제를 받는 온건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는 게 국익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미 국방부는 이날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전날과 지난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국방장관과 두 차례 전화 통화했다는 사실을 공개해 양국 군 수뇌부 사이에 교감이 있다는 관측을 불렀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 “이집트, 조기 대선 하라” 軍 “피 흘릴 각오”… 무르시 사면초가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와 군부로부터 전방위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하야 불가 방침을 거듭 밝히면서 이집트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이집트 사태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무르시 대통령에게 조기 대선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르시 대통령이 고립무원의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야권과의 합의 실패 시 무력 개입하겠다는 군부의 최후통첩 시한(현지시간 3일 오후 4시)을 조금 앞둔 3일 오전 무르시 대통령은 생방송 TV에 출연해 “이집트 국민의 자유의지에 따라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만큼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그는 “역사에서 퇴진하느니 나무처럼 서 있다가 죽는 게 낫다”면서 군부도 무력 개입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발표 직후 이집트군 수뇌부는 공식 페이스북에 ‘최종 시간’이라는 성명에서 “테러리스트와 바보들에게 맞서 피 흘릴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해 무르시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군 관계자는 이 메시지는 무르시가 임명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으로부터 나왔다고 전했다. 이집트 관영통신 메나는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이 최후통첩을 거부하는 상황에 대비해 헌법 효력을 정지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적 로드맵을 이미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로드맵에 따르면 군부는 무슬림형제단과 이슬람주의자들이 장악한 슈라위원회(국회)를 전면 해산하고 이들이 통과시킨 헌법을 정지한 뒤 국방장관과 각 정당, 시민단체, 종교기관 대표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과도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CNN은 미국이 이집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르시 대통령에게 조기 대선과 내각 개편을 제안했다고 익명의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무르시 대통령에게 새 총리와 내각을 지명하고 검찰총장을 경질하도록 조언했다”며 “동시에 군부에도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 (연간 15억 달러의) 원조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했다”고 밝혔다. CNN은 또 다른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앤 패터슨 카이로 주재 미 대사와 국무부가 최근 이 같은 방침을 무르시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그런 결정을 내릴 주체가 아니다”라며 해당 보도를 부인했다. 한편 4일째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오전 카이로대학 앞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대와 무르시 지지자 간 시위 도중 유혈 충돌이 발생해 최소 18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다쳤다고 관영 메나통신이 보도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48시간 내 국민 요구 수용하라” 이집트 군부, 무르시에 최후통첩

    취임 1주년을 맞은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틀째 이어지면서 시위대가 무르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 본부를 공격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였다. 무르시 대통령이 버티는 가운데 장관 5명이 집단 사퇴하고,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하고 나서 이집트 정국은 더욱 요동칠 전망이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가 이어진 가운데 시위대가 카이로에 있는 최대 이슬람 조직이자 무르시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 본부를 공격, 건물 내부에 있던 2명이 다쳤다. 목격자들은 시위대가 무슬림형제단 건물 1층에 화염병을 던져 유리창이 깨지고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고 전했다. 반정부 시위를 이끈 ‘타마로드’(반란)는 이날 무르시 대통령에게 2일 오후까지 퇴진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타마로드는 성명에서 “무르시는 2일 오후 5시까지 사임하라. 그러지 않으면 전면적 시민 불복종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이로 타흐리르광장과 대통령궁 주변에는 전날에 이어 시위대 수백명이 무르시 대통령의 퇴진과 조기 대선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무르시 대통령은 퇴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혀 정국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무르시 대통령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일탈 행위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보통신부와 환경부, 관광부 등 장관 5명이 이날 정치적 혼란에 책임을 지고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이집트 국영TV가 전했다. 이들은 반정부 시위대에 동조하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군부는 이날 국영TV를 통해 밝힌 성명에서 “국민의 요구가 48시간 내 충족되지 않으면 군부가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48시간이라는 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책임을 져야 한다”며 무르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편 이틀간 이어진 시위로 최소 16명이 숨지고 780명 이상이 다쳤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위클리 포커스] 기로에 선 이집트 ‘아랍의 봄’

    [위클리 포커스] 기로에 선 이집트 ‘아랍의 봄’

    ‘재스민 혁명’(튀니지 민주화 혁명) 이후 ‘아랍의 봄’의 성지로 불렸던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이 또다시 긴장에 휩싸였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한 뒤 반세기 만에 이뤄진 민주 선거에서 지도자를 뽑았던 이집트 시민들은 1년 만에 광장으로 다시 나와 무르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제2의 재스민 혁명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무르시 정권 1년에 대한 평가와 향후 이집트 정국을 전망해 본다.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 취임 1주년인 30일(현지시간)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세력 간의 대규모 맞불 시위가 벌어졌다. CNN·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수천명의 시민들은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와 재선거를 요구하며 대통령 집무실까지 행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야권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위대 ‘타마르루드’(아랍어로 반란)는 무르시의 불신임 서명운동에 이집트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달하는 2213만명이 서명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무르시 정권이 자신들을 옹립한 무슬림형제단의 권력 독점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경제난과 치안 부재 등 이집트 내부 문제 해결에는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무르시는 상처 입은 채 궁지에 몰린 사자”라며 “그가 우리를 공격하든 안 하든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공영방송(NPR)이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는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나일 델타 지역의 메누프·마할라, 운하 도시 수에즈, 포트사이드는 물론 무르시의 고향인 자가지그에서도 동시에 열렸다. 이날 이집트 전역의 시위에는 최대 10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시간 반정부 시위대를 규탄하는 맞불 시위를 개최한 무슬림형제단 소속 회원과 친정부 성향의 이슬람주의자들은 “무르시는 역사적인 자유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며, 불황과 종교적 갈등 문제는 현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이번 시위의 배후에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잔재 세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은 이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합법적으로 선출된 누군가를 바꾼다면 그들(시위대)은 또 새로 뽑은 대통령을 반대할 것”이라며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앞서 28일에는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서 무르시 찬반 시위대 간 무력 충돌로 이집트 미 문화원 영어 강사로 일하던 미국인 앤드루 프록터(21)를 포함해 8명이 숨지고 600여명이 부상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전문가 진단] 이슬람·세속주의 충돌… 군부 개입이 관건

    [전문가 진단] 이슬람·세속주의 충돌… 군부 개입이 관건

    2011년 2월 아랍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이집트는 장기 군부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 정권을 창출했다. 하지만 새 정권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대다수 이집트인들이 원했던 형태가 아니라 이슬람주의를 주창하는 정권이었다. 그 중심에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MB), 자유정의당(FJP)이 있었다. 30일은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1년 동안 이집트는 4900여 차례 파업과 22차례의 대규모 시위 등 수많은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이집트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주체는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 군부다. 내부의 역학구도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대립, 이슬람 세력과 군부의 갈등, 기득권 세력과 일반 대중의 갈등으로 형성돼 있다. 30일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 세력은 지난 4월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타마르루드’(Tamarrud) 운동이다. 이는 무르시 정권에 대한 불신임, 불복종 운동으로서 세속주의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운동은 지난 대선 후보자였던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등 야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운동은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와 조기 대통령 선거를 요구하고 있으며, 1500만명 이상의 지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반면 친 무르시 지지자들은 6월부터 ‘타자르루드’(Tajarrud)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공평과 공명정대, 합법성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이슬람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운동은 무르시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합법적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반(反)무르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반헌법적이고, 미국과 시온주의자(유대 민족주의자)들의 사주를 받은 무모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대중들은 지난 30년 동안 축적됐던 부패와 타락을 해소하기 위해 1년은 너무 짧은 기간이기 때문에 4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치적으로 1년 만에 무르시를 몰아내면 더 큰 혼란이 닥쳐 이집트의 정치는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양 진영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30일 반정부 시위 이후 이집트 사회의 미래가 여전히 불안한 것은 이슬람주의자들과 세속주의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대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군부는 위기 때마다 정치에 개입할 공산이 크고, 이슬람은 이집트의 전통적·현대적 가치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 여성 1명 없는 사우디 ‘여성 콘퍼런스’ 사진 화제

    여성 1명 없는 사우디 ‘여성 콘퍼런스’ 사진 화제

    여성 관련 콘퍼런스에 여자는 한명도 없네? 중동 지역에서 소셜네트워크(SNS)를 타고 번진 사진 한장이 최근 영미권 언론에도 보도돼 눈길을 끌고 있다. 화제의 사진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카심 대학에서 개최된 여성 관련 콘퍼런스에서 촬영된 것으로 현지 신문에는 평범한(?) 소식으로 보도됐으나 서구의 시각으로는 매우 이색적인 뉴스가 됐다. 총 15개국 학자들이 참가한 이 국제 콘퍼런스의 주제는 다름아닌 ‘사회에서의 여성’(women in society). 그러나 놀랍게도 이 행사장 내에는 단 1명의 여자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 1명 없는 여성 콘퍼런스가 된 것은 사우디가 엄격하게 샤리아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에서는 여성들의 복장은 물론 공개된 장소에서의 행동도 규정되어 있어 서구의 시각에서는 여성 인권 침해로 판단한다. 이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사용자는 “너무나 터무니 없는 광경으로 한마디로 황당했다” 며 “중동 국가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진”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글로벌 시대] 엘리자베스가 보여준 통치철학/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글로벌 시대] 엘리자베스가 보여준 통치철학/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오늘날 전 세계 국가들 중에 한반도와 국토 및 인구 규모가 가장 유사한 나라는 영국(UK)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영국으로 하여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건설’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역사상 위대한 통치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롤 모델이 되고 있는 지도자는 단연 엘리자베스 1세(1533~1603)가 아닐까 싶다. 영국 의회와 국민들로부터 최고의 추앙을 받았던 여왕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미혼으로 통치권자에 올랐다.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 순탄하지 못한 노정도 경험했다. 당시 유럽 국왕들과 혼사를 기피하면서 그녀가 자주 했던 말은 “자신은 영국과 결혼했다”였는데, 조국에 대한 사랑과 충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의 진정한 위대함은 44년간의 오랜 재임 동안 영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 달성에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영국을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시킨 것이다.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고, 세계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해 전 세계 무역루트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여왕이 이토록 강력한 성취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국내 정세 안정에 있다. 영국과 유럽 전역은 신교와 구교 간의 참혹한 종교전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교도였지만 가톨릭 신도와 의례를 탄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과의 ‘통합과 소통’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일궈냈다. 정치적 안정 없이 어떤 성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또 그녀의 뛰어난 통치스타일은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국정운영을 맡겼던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윌리엄 세실 경을 중심으로 측근들이 여왕을 보좌했고, 여왕은 그들을 신뢰하고 존중했다. 세실 경은 여왕 즉위 해부터 재임 말기(1598)까지 무려 40년간 최고행정관으로 보좌했다. 그는 종신총리에 가까운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았다. 정치의 지속성과 안정성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다. 그녀는 “보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I see, and say nothing)는 원칙을 고수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일이 챙기는 것이 아니라 측근들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들의 협력과 경쟁이 국정의 활력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여왕은 국익을 위해 ‘실용주의적’ 외교정책을 견지했다. 강한 군대를 육성했지만 섣불리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이슬람국가와도 협력했다. 교황청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오스만튀르크와 무역협정(15 80)을 맺은 것이 그 한 예다. 무엇보다 통치자로서 여왕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에게 엄정했고 잘못에 솔직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최측근이라도 잘못하면 처벌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죽기 2년 전에 가진 의회연설에서 정부의 특혜정책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지지를 확보했다. 위기를 솔직함으로 헤쳐 나간 셈이다. 필자를 포함해 누구나 직면하는 문제는 말과 행동, 의지와 능력이 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시간은 늘 사람의 말을 희미하게 만든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여왕이 남긴 “셈페르 에아뎀”(Semper Eadem, 항상 같기를)이라는 모토가 시대를 초월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국민행복 시대’를 선언한 박근혜 대통령 역시 초심을 잃지 않고 늘 의지와 각오가 한결같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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