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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키 넴루트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71)

    ◎2,150m 산 정상에 늘어선 거대 석상들/우주를 껴안은 ‘신의 테라스’/기원전 1세기 번성 코마게네왕국 ‘흔적’/로마에 대항했던 파르티아와 소멸 함께/안티오쿠스1세 묘·신상 등 곳곳에/테라스에 비친 빛의 향연 신을 만난듯 터키의 아나톨리아는 수천년 오리엔트 문명이 다양하게 중첩되고 잘 보존된 문명 박물관이다.어디를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히타이트,미타니,오라르투,바빌로니아,아시리아,메데스,페르시아,마케도니아,그리스­로마로 이어지는 일련의 인류문명들이 모두 이 지역을 지나가거나 이곳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다.더욱이 동방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아나톨리아는 동양과 서양이 함께 조화된 독특한 문화의 향기를 가졌다. ○페르시아 그리스 혼합 이러한 대표적인 유적지가 터키 동남쪽 아드야만을 중심으로 기원전후 1세기경 번영을 누렸던 코마게네 왕국이었다.이 왕국의 유적은 특이하게도 2천150m 높이의 넴루트 산 정상에 있는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을 중심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넴루트 유적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세계 8대 불가사이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산 정상에 이룬 정교한 도시문명과 수도 없이 펼쳐지는 10m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들의 존재 때문이다.물론 코마게네 왕국의 수도는 카흐타 마을에서 남쪽으로 50㎞ 지점에 있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사모사타였다.그러나 그곳은 이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었고,그나마 몰아닥친 개발의 열풍에 밀려 영원한 역사의 수수께끼가 된지 오래다. 코마게네 왕국은 기원전 69년에서 서기 72년까지 반짝했던 동서양 혼합 문명국가였다.오히려 이란을 중심으로 한 고대 파르티아 왕국과 로마군단이 대치하고 있는 경쟁의 공백지대에 생겨난 완충국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같다.이런 상황은 동시에 주변 양 강대국의 세력판도에 따라 왕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하였다.코마게네는 파르티아와 연계하여 로마내전의 시기에 집요한 반로마 투쟁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결국 로마가 평정을 되찾자코 마게네 왕국도 다른 수많은 군소국가들과 함께 네로 통치하의 로마제국에 편입되었다. 코마게네 왕가의 출신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다만 기원전 2세기 소아시아의 안티오크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알렉산더의 후계국가 셀루키드 왕조의 후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유프라테스 상류에 자리잡은 코마게네 왕국의 통치권이 셀루키드 왕조와 일치하고 왕의 이름이 안티오쿠스라는 점 등이다.그러나 다방면의 연구결과 코마게네 왕국의 문화적 성격은 페르시아적인 비탕에 그리스적 요소가 가미된 혼합문화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더욱이 소아시아의 수많은 군소국가들이 로마의 점령과 함께 역사무대에서 사라지고 망각되었지만,코마게네는 인간의 눈을 의심케하는 위대한 문명을 남겨놓았다.그것도 2천m가 넘는 험준한 산의 정상에. ○60m 높이에 직경 150m 넴루트 산 아래에 있는 카흐타 마을에서 출발하여 산 언저리에 오르는 시간만 자동차로 한시간 가량 걸린다.우선 산 정상이라 생각되는 자그만 언덕이 눈길을 끈다.이것이 바로 코마게네 왕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안티오쿠스 1세 왕의 거대한 무덤이다.높이 60m,직경 150m 크기의 이 왕묘는 소아시아전역에서 다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형태인데,산 정상에서 하늘로 향하고있는 독특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하늘과 가장 가까이 감으로써 왕 자신이 다시 신으로 부활하리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그들은 이 무덤의 정상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지상의 낙원을 향해 사방으로 돌을 깎아 성벽과 테라스를 만들었다. 특히 동서 테라스에는 거대한 신의 석상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분명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실제로 신을 만나는 감흥이 있다.8∼10m 높이를 가진 신들은 아폴로,행운의 여신 티케,제우스와 헤라클레스등 4개의 신들이 주류를 이룬다.그리고 이 왕국의 최고 통치자인 안티오쿠스가 지상의 인간신으로 그 거대한 불멸의 모습을 남겨놓았다.그들의 수호신인 사자와 독수리의 석상들도 훨씬 커다란 높이에서 그들을 감싸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아폴로 신상의 의미이다.태양신 아폴로는 이 지역전통신인 빛의 신 미트라와 습합(習合)하여 나타난다.조로아스터교의 한 분파인 미트라교는 당시 오리엔트 일대에 크게 성행하여 로마의 종교는 물론 새로 태동한 기독교의 성장과 의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의례에도 영향 넴루트 유적을 감상하는 최고의 시간대는 일출과 일몰이다.동서 테라스에 스며드는 황홀한 빛의 향연은 2000년전 바로 이곳에서 성대하게 행해졌던 종교적 의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코마게네 유적과 유물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넴루트의 동쪽 테라스로 가본다.이곳에는 바위 반석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신들의 모습이 압권이다.아폴로와 미트라 신상이 함께 보이고,풍요의 신인 코마게네 신과 8∼9m 높이의 안티오쿠스 1세의 신상도 열을 지어 서 있다.좌우에는 사자와 독수리 상이 수호신으로 신들을 보호하고 있다. 서쪽 테라스는 신들의 회합장소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많은 석상들이 테두리가 있는 다양한 모양의 모자를 쓰고 한결같이 근엄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다.서쪽 테라스에서 가장 눈길을 크는 것은 여러 신들과 악수하고 있는 안티오쿠스 신상은 물론이려니와 너무나 아름답게 조각된 사자별자리의 부조이다.이 천문도의 역법에 의하면 기원전 109년 7월14일인데 이 날은 바로 안티오쿠스의 부친인 미트리다테스 왕이 대관식을 거행하던 날이었다. 특히 동서 테라스를 연결하는 언덕에 서있는 비문에는 안티오쿠스 1세가 새긴 코마게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당시의 사회관습과 생활상이 구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넴루트 산 정상에 남아 있는 유적은 코마게네왕국의 일부분이다.이 왕국의 실체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는 셈이다. ◎넴루트 가는 길/아드야만시서 차로 3시간/아레세미아모텔 등 깨끗 넴루트 산 정상 유적지로 향하기 위해서는 우선 터키 동남부의 아드야만시로 가야한다.이스탄불에서 1천228㎞,앙카라에서 770㎞ 거리에 있다.이스탄불까지는 서울에서 아시아나 직항편이 있다.아드야만에서 다시 자동차로 1시간30분을 달려 카흐타로 가서,그곳에서 약 100㎞ 거리에 있는 넴루트 정상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카흐타에 코마게네 호텔과 아드야만에 아레세미아 모텔이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원더풀 투어(212­257­2288)와 한국계 윤투리즘(212­257­1361)이 넴루트 전문여행사이다.
  • 터키 히에라폴리스(세계 문화유산 순례:60)

    ◎BC 180년 건설된 그리스­로마 도시 유적/페르가몬왕국 창건자 아내 ‘히에라’ 위해 건립/아폴로 신전·원형극장·거대한 묘지군 곳곳에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런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대 그리스­로마 도시유적이다.멀리서 보면 하얀 솜으로 덮힌 것 같은 신비스런 언덕위의 도시이다.현재 지명은 파묵칼레이다.‘목화성’이란 뜻이다.가까이 다가가면 산화칼슘에 녹아내린 하얀 석회암 고드름이 늘어진 것 같은 기묘한 풍광을 연출한다.1만4천년간 뜨거운 물줄기에 닳고 녹아 만들어 낸 자연의 조화다.히에라폴리스는 바로 이 하얀 목화성 언덕위에 건설된 도시인 것이다.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의 도시를 최초로 건설한 왕은 기원전 180년쯤 페르가몬 왕국의 유메네스 2세였다.유메네스 왕은 전설의 왕국 페르가몬의 창건자 텔레포스 왕의 아내인 히에라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히에라폴리스는 바로 이웃의 고대도시 라오디케아와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급진적인 발전을 거듭했다.그러나 기원전 133년 페르가몬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가 자신의 왕국을 로마제국에 자진 헌납함으로써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몇차례의 대지진으로 고대도시의 많은 유적지가 파괴되었지만,아직도 2∼3세기 최전성기를 맞았을 때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 ○마치 ‘신전 전시관’ 방불 이 도시의 상징은 신전들이었다.바둑판 모양의 정교한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된 히에라폴리스에는 ‘신전 전시관’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수의 신전이 건립되었다.로마 목욕탕과 원형극장 사이에 아폴로 시전이 남아 있다.아폴로는 이 도시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히에라폴리스의 전성기는 이후 비잔틴 시대까지 계속되었다.그러나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면서 도시의 위상은 새로워졌다.기독교의 대교구가 설치되었다.초대 7대 교회의 하나가 인근 라오디케아에 세워졌다.더욱이 예수의 12제자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 빌립이 순교지이기도 하다.원형극장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사도 빌립이 전교하던 장소에 순교 기념관이 있다. 기독교의 중심지 히에라폴리스는 11세기 이후 셀주크와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자,그 찬연했던 과거의 영광도 함께 묻히고 말았다.역사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는 망각되고,유명한 운천수가 뛰어난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하얀 목화성,즉 파묵칼레로만 세상에 알려졌다.온천을 즐기러 몰려든 관광객들은 언덕 위에 즐비한 고대 유적지를 보고 비로소 잊혀졌던 역사의 숨소리를 듣게 된다. 온천 지대의 특성을 가장 잘 이용한 대표적인 도시 유적은 로마 목욕탕이다.열탕,온탕,냉탕,탈의실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로마식 목욕탕이다.운동을 위한 부속건물과 황제가 연회를 개최하던 대형 홀이 아직도 남아 풍요로 왔던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 온천수는 밖으로 흘러 파묵칼레의 기묘한 옥외 석회암 온천장을 형성했다.섭씨 35도 정도의 온천수는 특히 피부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 있다.얼굴이 못생긴 처녀가 공주가 된다는 등 여러 종류의 토착 전설을 만들어 냈다.그래서 피부가 거칠고,무한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의 필수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온천 수원 ‘악마의 굴’ 유명 이 도시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보존상태가 좋은 원형극장이 으뜸으로 꼽힌다.2세기 하드리안 황제때에 지은 원형극장은 3세기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시대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관중석은 2단으로 되어 있다.약 1만5천명의 인원을 수용했다는 대규모 극장이다.특히 중앙의 무대주변에는 아폴로 신을 주제로 한 정교한 대리석 조각이 매우 아름답게 장식되었다. 도시 북쪽 끝에는 거대한 묘지군인 네크로폴리스가 자리잡았다.시야에 들어 오는 것만 줄잡아 수천개는 됨직하다. 소아시아 반도에서 가장 큰 묘역이라 한다.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석관형,가옥형,봉분형 등 무덤의 다양한 양식과 크기이다.신분이나 빈부의 차이에 따라 그 규모와 장식이 다를 수 있다.그런 가운데 여러 시대가 중첩되면서 혼란스러운 양상을 띠었지만,그것은 오히려 온고지신의 조화로움인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서 멀지 않는 곳에 온천수의 수원으로 알려진 굴 하나가 있다.단순한 굴이라기 보다는 매우 복합적인 문화현상을 지닌 명소다.현지인들이 ‘악마의 굴’로 부르는 굴에서는 연중 유독가스가 품어져 나와 아무도 그 안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지하의 영계인 ‘하데스’로 통하는 입구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그래서 입구에 하계의 신인 플루토를 위한 신전을 짓기도 했다.이슬람이 이 땅을 지배하면서부터 신비주의 수도승들이 호흡조절을 통해 이 굴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자신의 영력을 시험해 보이는 일종의 종교적 수련장이 되기도 했다.당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건립된 성스런 도시,히에라폴리스는 십자군과 셀주크의 공격에도 견뎌왔다.그러나 1334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 ◎여행가이드/카펫·포두주 유명… 모텔­호텔 등 숙박시설 완비 히에라폴리스,즉 파물칼레는 이스탄불에서 지중해에 연한 역사도시 이즈미르 비행기로 가서,자동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다.이즈미르에서 데니즐리까지 약 200㎞를 철도로 간 다음 20㎞거리의 파묵칼레까지는 마을버스를 이용해도 된다.수공예품,특히 수직 카펫이유명하고 질 좋은 포도주가 생산된다.투산호텔,파묵칼레 모텔을 비롯한 여러 개의 호텔이 온천지대에서 영업중이다. 원더풀 투어(212­257­2288)와 한국계 윤투리즘(212­257­1361)이 파묵칼레 전문여행사이다.
  • 터키 카파토키아 암굴 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59)

    ◎바위굴 미로속 2만명 살던 지하도시/화산암 뚫고 깎아 거주공간·교회·방앗간·축사 완비/땅속 8층까지 안내… 초기 기독교인의 피난지 추정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남동쪽으로 4시간을 달리면 지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자연경관이 나타난다.카파도키아로 알려진 석굴도시인데 그 중심지가 괴뢰메 마을이다.깔때기를 엎어 놓은 것같은 수백만개의 기암기석들이 갖가지 형태로 계곡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그토록 웅장한 도시와 역사가 어떻게 계곡 암굴속에 숨어 있었을까.그 수수께끼는 돌과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세계 7대 자연경관중의 하나인 카파토키아의 매력이다. 약 3백만년 전 에르지예스산의 화산 폭발로 인근 수백㎞에 걸쳐 거대한 용암층이 형성되었다.그리고 비바람과 홍수에 끊임없이 깎이고 닳아 용암층은 물결의 방향에 따라,또 바람이 부는대로 갖은 모양을 하고 태어났다.도토리 모양,버섯 모양,동물 모양 등 보는 방향은 물론 상상과 기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인간세계에 내려보낸 신의 작품이 카파토키아인지도 모른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의 하나 사람들은 그 뾰족 솟은 카파토키아 응회암 바위를 깎고 뚫어 거주공간을 만들었다.공기에 노출된 응회암은 약간의 단단한 연장에도 쉽게 손질되었다.그래서 사람들은 바깥의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해 서늘하고 습기가 어린 암굴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그 속에는 사랑방과 안방이 있고,창고와 부엌도 마련되었다.아래층에는 소나 노새를 키우는 우리도 만들고,신앙생활을 위해 신성한 약속의 공간도 마련했다.위츠히사르라 명명한 거대한 언덕에는 수백 채의 암굴집이 올망졸망 구멍을 내고 벌집처럼 들어섰다.가까이 다가서면 놀라운 일을 목격할 수 있다.구멍마다에 사람이 살았다.그 속에 훌륭한 집을 꾸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삶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다.비잔틴시대에 기독교화한 여기 사람들은 암굴을 파서 교회를 짓고,벽면과 천장에 프레스코를 그렸다.자신들의 신앙을 마음껏 표출했던 것이다.그래서 4세기 후반 기독교가 이 암굴도시에서 꽃을 활짝 피웠다.콘스탄티노플과 같은 대도시를 피한 수도자들은 인기척이 드문 땅을 찾아 3천개의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으흘라르와 괴레메의 석굴 계곡에는 암굴교회군이 있다.계곡바닥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면 깎아지른 계곡 사이로 수십개의 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12세기경의 성 바라바라교회 벽면에 그린 ‘최후의 만찬’은 단연 수작이다.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다다를 수도 없는 가파른 절벽 가운데 바위를 파서 교회를 지었다. 괴레메의 석굴계곡을 벗어나 남쪽으로 1시간쯤 달렸다.마침내 ‘깊은 웅덩이’라는 이름의 데린쿠유 마을이 나타났다.지나가는 한 목동이 우연히 발견한 지하 대도시가 숨겨져 있는 땅이다.사람의 머리 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구멍 속에 2만명을 수용하는 어마어마한 지하도시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헬멧을 쓰고 허리를 굽힌채 손전등을 비추며 화살표를 따라 가는 지하세계의 탐험이 시작되었다.표시된 방향 이외의 다른 길로 들어서지 말라는 안내원의 거듭되는 경고는 사뭇 섬뜩하게 들렸다.입구로부터 55m나 되는 지하 6층과 7층,8층에서는 일단 통행이 차단되었다. ○6만명 수용 새 유적지 발견 데린쿠유 마을의 무수한 지하통로들은 미로를 통해 복잡하게 얽혔다.빈 공간마다 거주지 흔적이 완연하다.방과 검게 그을린 부엌,방앗간과 창고로 쓴 공간이 있다.중앙에 깊게 파놓았던 공동우물에는 지금도 물이 고였다.모임의 장소로 사용된 듯한 회랑 한쪽 구석에서는 교회나 묘지의 흔적도 보인다.그들은 낮이 되면 지하에서 빠져나와 들에서 밀밭을 가꾸고 포도도 재배했다.항상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충분한 식량과 물을 지하에 저장하고,자기들만이 아는 미로를 통해 바깥세상과 연락을 취했다.미로 중간중간에는 큰 바위문을 두었다.비상시에 사용한 방어시설이었다.수만명 지하주민들이 불을 때어 빵을 구었음에도 연기는 흔적도 없이 분산되어 바깥으로 스며나갔다. 바위를 뚫어 불가사의한 지하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언제부터 이 도시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없다.단지 6천∼7천년전 신석기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바위속에서 혈거생활을 시작한 이래 로마초기에 박해를 피한 기독교인들이 숨어 들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그 후 기독교 시대에는 수도나 평범한 삶의 장소로 바위속을 뚫어 거주공간을 계속 넓혀갔다.13세기에 칭기즈칸의 말발굽이 닿았을 때도 입구를 봉쇄한 지하도시 속에서 완벽한 저항을 계속했다.그 지하도시가 몇층까지 내려가는지도 아직 모른다.어떤 이는 17∼18층은 족히 내려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이 지하유적 이웃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30여개의 지하도시를 더 찾아냈다.발굴중인 외즈코나크 지하 대도시인데,규모는 6만명을 수용한다고 한다.아마도 이 카파토키아 일대의 지하 암굴도시의 실체는 20세기가 밝혀내야 할 문명의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여행 가이드/수도 앙카라서 버스로 4시간… 호텔 10여곳 이스탄불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카이세르에 가서 자동차로 1시간이면 카파토키아의 중심지인 괴레메에 도착할 수 있다.수도 앙카라에서는 버스로 4시간 거리이다.세계적인 관광유적지라 30∼50달러 사이의 깨끗한 호텔이 10여개 밀집해 있다.모든 여행사에서 다양한 카파토키아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카파토키아는 중동에서도 이름난 수직 카페트 산지이기도 하다.한국계 여행사로는 윤투리즘(212­257­1361)과 원더풀 투어(212­257­2288)가 카파토키아 전문여행을 주선한다.
  • 터키 이스탄불 역사지구(세계 문화유산 순례:58)

    ◎동서문명 함께 숨쉬는 ‘옥외박물관’/육상 실크로드의 끝이자 뱃길의 시작/동서양 종교­사상­문명 융화의 용광로/소피아­술탄사원 토프카프 유물 유명 역사학자 토인비는 터키의 역사도시 이스탄불을 일컬어 ’인류문명의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 했다.이스탄불 역사지구의 베야지트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1㎞내에 인류가 이룩한 5천년 역사의 문화유산들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히타이트,앗시리아같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부터 그리스,로마 문화,초기 기독교 문화,비잔틴 문화,그리고 이슬람 문화의 진수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또는 한 거점에서 서로 만나고 있다. ○1㎞ 다리 아시아­유럽 연결 콘스탄티노플이란 옛 이름을 가진 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옛 것과 새것이 절묘하게 조화한 환상적인 미항이다.유럽과 아시아가 1㎞의 다리 하나로 연결되었다.유럽쪽 도시가 이스탄불이고,맞은편 아시아 쪽이 민요에 나오는 유명한 마을 위스크다르이다.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육상 실크로드의 끝이고 해상 실크로드의 시작이었다.북아프리카나 로마에서 실려온 물건들이 이곳에서 동방상인들 손으로 건너갔다.그리고 환락과 사치가 있는 이스탄불로 전세계의 미녀들이 몰려들어 흥청거렸다.피부색이 서로 다른 민족들과,수많은 종교와 사상,신화가 이스탄불이라는 용광로속에서 하나로 융화되었다.이스탄불은 서양의 품안에 요염하게 안기기는 했어도 동양의 자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스의 지도자 비자스는 기원전 7세기 델피신전의 신탁에 따라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새인 보스포러스 맞은편 언덕에 새 식민도시를 건설했다.비자스의 이름을 딴 비잔티움이란 도시였다.그리스 신화를 머금은 풍요로운 도시 비잔티움은 그 뒤 서기 196년 로마제국에 함락되었다.그러다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 도시를 로마의 새 수도로 정하면서 화려한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태어났다.1천년간 종교와 사상의 중심지로서 세계 부의 상징이었던 인구 100만의 콘스탄티노플.이 도시의 문화유산은 인류가 이룩한 가장 눈부신 업적이었다. 그러나 1453년 5월 29일,유럽의 정신적 요람 콘스탄티노플은 동방의 새로운 강자 오스만제국의 손에 함락되었다.정복자 술탄 마호메트 2세는 그리스정교의 심장부인 성 소피아 성당에서 이슬람식 예배를 올렸다.그리고 오스만 군대의 오랜 전통에 따라 3일간 군사들에게 정복자의 특권인 약탈을 허용했다.무질서한 혼란 속에서 서양과 동양은 서로 뼈 아프게 섞이고 만났다.3일후 도시는 새로운 평정을 되찾았으나,이미 콘스탄티노플은 화려한 도시가 아니었다.이슬람의 도시 이스탄불로 바뀌면서,동서양이 조화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갔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만나 어떻게 어룰려 공존햇는지를 교훈으로 남긴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이다.이스탄불 역사지구의 음미하는 발길은 성 소피아성당에서 시작된다.1500년의 역사를 증언하는 성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자 비잔틴 건축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중앙 돔에 수많은 보조돔을 사용한 소피아 성당의 비잔틴 양식은 뒷날 모스크를 비롯한 이슬람 건축술에 지대한 영향을 기쳤다.이 성당은 오스만제국의 이교도 치하에서 500년간이나 이슬람 사원으로 빼앗기는 비운을 격었다.그리고 나서 지금은 박물관으로 선포되어 정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역사 현장이 되었다.아라베스크의 어지러운 코란장식을 하기위해 입혔던 회칠을 벗겨내어 장엄한 기독교 성화들이 다시 찬연한 금빛을 발산하고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의 바로 맞은 편 히포드롬에는 이슬람 건축의 대표격인 술탄 마호메트 사원이 천년의 시차를 두고 우뚝했다.세계 유일의 아름다운 첨탑 6개에서 울려퍼지는 코란낭송을 듣노라면 이스탄불의 주인이 터키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이슬람 문화의 알맹이들은 히포드롬의 이슬람문명 박물관에 잘 전시되었다.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위용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토프카프 왕국박물관을 찾지 않을 수 없다.특히 세계 최대의 에머랄드와 84캐럿짜리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보석관과 귀중한 학습장인 복식관,이슬람의 성물을 전시한 종교관,주방과 화실 등이 당시 궁정의 실제 사용 장소에 따라 배치되었다.금남의 구역이었던 왕실 안뜰의 하렘에서는 한 남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과 사치를 훔쳐볼 수 있다.또세계 3대 컬렉션의 하나로 1만1천점의 각종 도자기를 소장한 도자기관은 우리 문화와 관련해서 흥미를 끄는 전시관이다.왜냐하면 중국이나 일본자기로 분류한 백자와 청자,청화백자들속에 한반도에서 실려온 고려와 조선의 자기들이 섞여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007영화 배경의 지하궁전 로마시대의 히포드롬에는 원형 경기장의 흔적은 사라졌다.그 대신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에서 실어온 오벨리스크와 델피신전에 서 있던 뱀기둥,유스티아누스 대제의 기념비만이 가진 자의 힘을 과시라도 하듯 광장을 메우고 있다.광장을 벗어난 성 소피아 성단의 맞은 편에는 007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지하 저수 궁전이 자리했다.336개의 다양한 석주가 버티고 있는 지하 저수지에는 배가 떠다닐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다.이스탄불 1천만 인구에게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는 실크로드의 대시장인 카팔르 차르시 시장에는 볼거리가 많다.5천여개의 상점들이 거대한 실내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에게해 수편선에 석양이 걸리는 시각,이슬람사원에서 은은한 코란 소리가대성당의 종소리에 섞여 유럽과 아시아로 울려 퍼진다.하루를 마치는 의식이리라.이처럼 이스탄불의 역사지구는 유럽과 아시아,과거와 현재,낮과 방이이어져 하나가 되는 인류문화의 살아있는 희망으로 남아 있다. ◎여행 가이드/서울∼이스탄불 주 4회 직항/물가싸고 가죽·카펫 등 유명 이스탄불은 세계 사람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어하는 도시의 하나다.우리나라에서도 작년에 개설한 터키항공과 아시아나에서 직항편이 주4회 운항하고 있다.터키항공은 최근 경제위기로 취항을 일시 중단했다.호텔,도로,철도 등을 잘 정비한 터키는 우선 물가가 싸다.볼것은 물론 터키석,가죽,카펫,대리석,동판세공 등도 유명하다.한국계 윤투리즘(212∼257∼1361)이나 원더풀 투어(212∼257∼2288)같은 관광사로부터 다양한 패키지 문화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다.
  •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세계 문화유산 순례:57)

    ◎서양문명의 상징 파르테논신전 우뚝/BC5세기 페리클레스가 아테나연신 위해 건립/인근엔 제우스신전·디오니수스 원형극장 함께 아테네는 로마와 함께 서양에서 대표적인 고대도시 유적일 것이다.도시의 중심에 높다랗게 솟아 있는 파르테논 신전과 그 아래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문명 뿐 아니라 서양문명을 오랫동안 상징하여 온 대표적인 문화재기도 하다. 아테네는 파르네산과 히메투산,펜텔산 아래에 말굽형으로 펼쳐져 있다. 회백색조의 건물들이 짙은 올리브 숲에 박힌 아테네 언덕은 눈이 부셨다. 그 중에 빛나는 기념구역이 아크로폴리스다.이속에서는 가장 그리스적인 완벽하고 아름다운 건축과 조각품을 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기원전 6세기경에 건설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의 거주지역과 구분한 신성한 지역으로 현재의 파르테논 신전이 들어선 바위언덕 일대가 아크로폴리스다. 폴리스(Polis)라는 말은 도시이고 아크라(Akra)라는 말은 상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덩그랗게 높은 도시라는 말이 된다. 언덕의 윗쪽은 기다란 삼각형의 모양을 했다. 그 크기는 너비 270m,길이 156m로 되어 있다. 서쪽은 프로필라이아라고 부르는 건물군의 입구이다.그리고 언덕의 동남편으로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페르시아전쟁때 폐허로 아크로폴리스는 원래 그리스의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성채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케네의 왕이 이 높은 곳에 왕궁을 지었다. 아주 옛날부터 이아크로폴리스는 풍요와 번영,그리고 승리의 여신 아테나가 그 수호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크로폴리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 전쟁이 일어난지 50년 후에 페리클레스가 여신 아테나를 위하여 건축가인 페이디아스의 도움으로 새로운 신전을 짓게 되었다. 그것이 파르테논 신전인 것이다. 신전은 기원전 447년에서 기원후 432년 사이에 지었다. 그리고 나서 서편에 있는 건물군 프로필라이아는 432년에서 437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그이후에 연속하여 아테나 나이키(Athena Nike)가 들어서고 최종적으로 여인상 조각의 기둥이 인상적인 에레흐테온이 들어섰다. 파르테논 신전은 현재 우아한 도리와 지붕 일부,기둥들만이 서 있다. 동서편의 긴쪽으로는 17개의 도리아식 기둥과 남과 북의 짧은 쪽으로는 8개의 기둥이 건물의 외곽에 배치되었다. 이 건물은 아테나여신의 거주처였기 때문에 여신의 위엄과 영광을 재현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건물의 외모에 완벽한 균형미를 나타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건물이 놓여있는 지면이 불균형한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다. 신전의 일부 벽에는 고부조로 된 장식들이 남아 있는데 트로이 전쟁 따위의 전쟁에 관련한 것과 범아테네 행진같은 것이 표현되었다. 지붕아래 도리에 해당하는 벽에는 아테나여신의 탄생과 아테나를 차지하려는 포세이돈을 조각해 놓았다. 아크폴리스의 주위에는 언덕 꼭대기의 신전건물 말고도 북쪽에 디오니수스라는 원형극장이 자리잡았다. 이 원형극장에서는 페리클레스같은 세력가의 후원으로 소포클레스와 에이쉬루스,유리피데스 등의 비극이 상연되었다고 한다. 비극은 극작가 자신들이 직접 연출한 것이 대부분이였다. 기원전 4세기에 지은 디오니수스극장은 그 이후에 약간의 변형과 증축을 거쳤다. 기원전 5세기까지는 목조구조였으나 기원전 4세기에 들어 돌로 다시 개조했다. 이 극장 말고도 헤롯 아티쿠스극장이 있다. 현대음악가인 야니의 음악회를 포함하여 많은 공연들이 지금도 이루어지는 이 극장의 석조건축은 그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리스 최대의 석조건물 제우스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평지에 지은 제우스 신전은 그 규모가 엄청나 길이가 110m가 넘고 폭도 44m에 달했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석조건물이었다는 것이다. 기원전 515년에 착공한 이 신적공사는 한때 중단되었다. 그러다 기원전 174년 시리아의 막강한 권력자 엔티오크스 4세가 자금을 대어 로마의 건축가 코스티우스로 하여금 다시 짓게 했다. 엔티오쿠스 4세가 죽자 공사는 다시 중단되었다. 신전은 기원후 131년경 하드리안황제 시절에 가서야 원래의 설계대로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 제우스 신전에는 104개의 코린트양식의 기둥 가운데 겨우 15개의 기둥이 서 있고 하나는 누워 있다. 하드리안 아치라고 불리는문은 아마도 이신전의 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을 것이다. 그 아치는 오늘날 구 아테네와 신 아테네를 구분하는 경계 구실을 한다. 제우스 신전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판아테니안 스타디움이 있던 자리에 같은 방식으로 지은 스타디움이 근대 올림픽의 기념비적 건조물인 것이다. ◎여행 가이드/편의시설 완비… 렌터카로 단독관광 해볼만 아테네로 가는 항공편은 다양하다. 서울에서 암스테르담이나 츄리히 또는 프랑크푸르트 등의 대도시는 물론 이스탄불에서도 연결된다.국제적인 관광도시여서 호텔 등 편의시설은 잘 구비되었다. 현지의 고 투어스(92­33­166)나 키 투어즈(322­5951)같은 그리스관광회사들도 패키지 버스관광상품을 제공한다. 한국인계 관광회사로 킴스 투어(968­0942),아시아나 트래블(72­22­700)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 아테네 시내는 가이드북을 가지고 렌트카로 단독관광을 해도 어렵지 않다.
  • 도심에 고밀도주거공간 만들자/김석철 건축가·아키반대표(서울광장)

    세계 최고의 기업금융도시 맨해튼의 초고층 건축군이 업무공간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주거공간이 더 많다.파리 시내의 옛 건물도 대부분 주거공간이다.우리 도시에서 주거공간은 외곽으로 밀려나 있다. 도시가 확대되면서 도시중심의 주거가 도시 바깥으로 밀려나고 상업공간이 대신 들어섰다.교통의 연옥을 거쳐야 일터에 갈 수 있고 집으로 되돌아갈수 있게 되었다.20만 도시가 100년 사이 1천만 도시로 확대되면서 도시 외곽의 주거단지가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도심 가운데의 집합주거도 필수적이다.사람이 도시 한가운데 살아야 도시인 것이다. ○집·직장 멀어 교통대란 1910년대 처음으로 세계도시에 도시계획법이 적용되기 이전 도시 중심에는 주거공간과 업무공간,공공공간이 함께 있었다.인구의 도시집중에 의해 도시 내부가 상업공간화하고 도시외곽으로 주거공간이 밀려나면서 주거와 업무공간의 분리가 시작되었다.주거공간과 업무공간간의 거리는 도시활동의 중요한 지표다. 주거공간 확대가 도시논리와 시장원리보다 제한된 토지공급과 일방적행정규제속에 이루어지고 주거공간 공급이 종합적 도시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공급에 몰두하다 보니 도시외곽의 아파트단지라는 획일적 주거공간이 등장한 것이다.서울내부의 교통량보다 한강변의 교통량이 더 많고 서울과 인천,경기도를 오가는 교통량은 그보다 더 많다.서울이 당면한 교통대란은 주거공간과 업무공간의 불일치로 생긴 것이다.서울외곽에 5개의 신도시를 건설하였으나 신도시 사람의 3분의2가 서울에 직장이 있어 더 많은 교통량을 유발하고 있다.서울과 경기도와 인천을 오가는 시계교통량이 서울 도심 교통량의 1.5배가 되고 서울 경기 인천을 잇는 지하철 수요만도 하루 5백50만 명에 이른다.도시외곽의 주거단지에 도심기능을 분산시키기는 어려우나 도심에 주거기능을 확대하는 일은 기왕의 도시인프라를 이용한 고밀도 집합주거를 통해 이룰수 있다. 맨해튼 한가운데 IBM,AT&T,ABC본사 곁에 선 고밀도집합주거인 뮤지움타워나 트럼프타워에는 주차장이 없다.주차장이 없는 고밀도주거야 말로 도심 주거공간의 획기적 제안이 될 수 있다.도시중심은 상업공간이고 도시외곽은 주거공간이면 교통대란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산수의 세계인 것이다. 고대도시인 아테네,로마,시안은 물론 천년도시 예루살렘,베네치아,이스탄불 모두 도시의 제1공간인 주거공간과 제2공간인 업무공간이 걸어서 닿는 거리에 있었다.모든 사람은 제1의 공간과 제2의 공간 사이를 이동하면서 살고 휴일에 제3의 공간인 도시의 문화인프라를 찾는다.제3의 공간인 문화인프라는 역사,문화,자연의 공간이 도시 흐름과 이어진 도시의 공공공간이다. 우리도시에서는 제1,제2,제3의 공간이 하나의 어반인프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흩어져 있어 우리 도시에서의 삶은 집에서도 힘들고 집을 나서도 어렵다.인구 10만이면 자족하는 스케일의 도시이다.10만 인구면 제1,제2,제3의 공간이 조화로운 도시집합을 이룰수 있는 규모다.1천만 인구의 도시가 10만 인구도시 100개가 모인 통합기능을 가지면서 하나하나가 소우주인 10만 도시의 집합일 수 있을때 진정한 의미의 거대도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그것은 고밀도 주거형식을 받아들일때 가능한 것이다.이제는 서울 어디에도 새로운 아파트단지를 세울 땅이 없으므로 기존 도시 속에 새로운 주거공간을 창출해야 한다.고밀도집합주거는 일반 아파트단지에 비해 5분의1의 토지부담을 안게되므로 도시 한가운데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다.이 경우 과밀의 문제가 있지만 고밀도속에 얼마든지 아름다운 인간환경을 만들수 있다. ○고대도시 효율성 배워야 천년전에 이루어진 고밀도 도시인 증세의 도시들이 아직 그 틀을 유지한 채 인류의 문화유산으로만이 아니라 현실적 삶의 공간으로 훌륭히 기능하고 있다.천년도시 베네치아가 어느 현대도시보다 효율적인 것은 도시 전체가 주거공간이고 도시 전체가 업무공간이고 도시 전체가 공공공간인데 연유한 것이며 그 핵심공간이 고밀도 집합주거다. ○서울외곽 베드타운 삭막 서울외곽의 주거단지는 삭막한 베드타운이다.강남 한복판 아파트단지도 마찬가지다.로마 외곽의 2만인구의 주거도시 폼페이의 공공공간을 보면 우리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비문명적인가를 알 수 있다.천만도시 서울에서울시민의 문화인프라인 서울광장이 천개는 있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거공간과 업무공간과 공공공간이 걷는 거리 안에 있어야 한다.일상의 기반공간인 제1,제2의 공간은 멀리 떨어져 있고 제3의 공간은 도시 도처에 닫혀 있는 도시는 도시공동체가 아닌 모래알같은 소외의 도시인 것이다.고밀도 집합주거는 걸어서 다닐수 있는 거리에 집과 직장을 함께 있게 할 수 있는 도시구조 개혁의 키워드이다.대도시를 수십 수백의 단위도시로 재조직하여 걸어서 일하며 사는 도시지구의 집합으로 만들려면 기존의 도시인프라를 압박하지 않고 자연과 이웃과 마을공동체가 하나가 된 고밀도 집합주거를 도시 한가운데 만들수 있어야 한다. 비약적 도약없이는 우리 도시를 정상의 도시로 만들수 없다.수평으로만 놓인 도시의 거리를 수직으로 세우고 수직의 거리 사이에 고밀도 집합주거를 기존 도시위에 세울때 우리 도시의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을 찾을수 있게 될 것이다.고밀도 집합주거속에 우리 도시의 미래가 있을수 있다.
  • 현대자 터키공장 준공/엑센트 등 연 6만대 생산 규모

    연산 6만대 규모의 현대자동차 터키 공장이 준공됐다.현대자동차는 20일(현지시간) 터키에서 슐레이만 대통령,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박병재 현대자동차 사장,아심 키바 터키 키바그룹회장 등 3천여명의 두나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현대­앗산자동차사 준공식을 가졌다. 현대자동차와 터키 키바그룹이 각각 50%씩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한 이 공장은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80㎞ 떨어진 이즈밋시 30만평의 부지위에 건설됐으며 올해 1만대를 시발로 내년부터 엑센트와 그레이스 등 연간 6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현대자동차는 터키 내수판매는 물론 구 소련국가들을 대상으로 수출을 확대,생산량을 연간 12만대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4백만대의 차량이 보급된 터키에는 현재 연간 35만대의 신규 수요가 발생하고 매년 15∼20%씩 판매량이 늘고 있는 성장성이 큰 국가이다.현대의 합작공장은 피아트와 르노에 이어 터키에서 세번째로 큰 자동차 공장이 된다.
  • 추석연휴 동남아항공권 매진/주말연결 5일휴무

    ◎괌 120% 예약… 여전히 ‘황금노선’ 경기불황에도 불구,올 추석연휴 동안의 단거리 해외항공권이 대부분 바닥났다. 2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인기 여행지로 꼽히는 일본의 도쿄 오사카 나고야 삿포로와 태국의 방콕,괌 사이판 등 동남아 휴양지 항공권이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9월13일부터 100%의 예약률을 보이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9월 13일 출발하는 피지·시드니·파리행 항공권의 예약이 이미 끝난 상태다.일본을 비롯,홍콩 괌 사이판 뉴욕 시드니 취리히 등의 14일 출발 항공권이 동이 났다. 15일부터는 방콕과 하와이 밴쿠버 런던 프랑크푸르트 노선이 매진됐다. 특히 서울∼괌 노선은 대한항공기 추락사고에도 아랑곳없이 9월14일부터 120%의 예약률을 보여 황금노선임이 드러났다. 아시아나항공도 일본과 동남아지역의 예약률이 9월14일부터 대부분 100%를 넘어섰다.브뤼셀과 빈 등 유럽과 이스탄불 등 중동노선도 연휴기간 동안의 예약이 이미 끝났고 12일부터 재개되는 괌 노선도 모두 매진됐다. 항공업계는 나흘간의 추석연휴가 사실상 주말인13일부터 시작돼 5일이나 되면서 지난해보다 해외여행자가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여행사 관계자는 “명절 연휴기간에는 이중 예약이 많아 예약 취소률이 높다”며 “매진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고도를 보존하는 길/김석철 아키반 대표·건축가(서울광장)

    문화유산의 해를 기해 고도보존법을 만든다 한다.우리도시는 대부분 삼국시대부터의 도시다.그러나 천년도시 경주,평양,부여는 말할 것도 없고 개성과 서울도 모두 도시스케일의 기억장치가 소멸된 도시다.우리의 역사도시는 지하에만 실재하는 고고학적 도시이다.옛 도시가 어디였는지,어떤 도시였는지도 모르면서 무엇을 보존할 수 있는가.세계의 천년도시에는 옛 도시와 현 도시가 공존하고 있으나 우리도시에는 옛 도시가 실재하지 않는다.옛 도시의 일부유적이 과거와 단절된채 산재할 뿐이다. 문화재보호법보다 더 근본적 스케일과 내용을 다루는 고도보존법이 입안되려면 옛 도시를 발견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법보다 먼저해야 할 일이 있다.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다.지금 우리가 말하는 고도는 지하에 묻힌 죽은 유기체의 도시다. ○역사지도 먼저 만들어야 지하에 묻힌 옛 도시의 지도부터 만들어야 한다.파리,런던,베를린,베이징등 대부분 역사도시는 지난 천년동안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경주와 함께 동시대의 세계적도시였던 예루살렘,수조우(소주),이스탄불,교토에도 모두 천년의 지도가 있다.물론 당시의 지도가 아니라 역사적 기록과 고고학적 발견을 근거로 하여 후대에 도시적 논리로 재구성한 지도이다.도시문명이 우리역사에 등장한 이후 삼국시대 세 나라의 수도였던 경주,평양,부여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의 역사지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지하에 묻힌 천년도시의 모습을 짐작으로만 알 뿐이다.600년전 동양도시의 기하학적 질서와 자연의 유기적 질서를 하나로 하여 계획된 세계적 스케일의 신도시였던 서울도 근세에 제작된 미술적 지도가 있을 뿐이다.우리의 역사도시에는 천년의 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 백년의 지도조차 없다.해도가 있어야 먼 바다로 갈 수 있고 항법사가 있어야 먼 하늘을 날 수 있듯 옛 지도가 있어야 고도보존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도시스케일의 문화입법인 고도보존법이 이루어지려면 경주와 평양과 부여 그리고 개성과 서울의 역사지도 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도시의 역사지도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현 도시의 위성 사진위에역사적 기록과 고고학적 발견을 입력하여 기본도를 작성하고 도시생태학적 논리로 옛 도시를 재구성하는 도상에서의 복원작업이 고고학적 확인작업과함께 이루어져야 한다.우리문명의 DNA의 집합인 역사도시의 정체를 찾아야 보존을 말할수 있는 것이다. ○생태학적 논리로 재구성 지난번 고속전철의 경주통과 노선을 말할때 대부분 논의는 매장문화재에 관한 것이었다.도시문명이 있었던 곳에는 매장문화재가 있게 마련이다.모든 인간문명의 궤적을 다 보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역사는 문명의 끊임없는 더함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역사도시는 지리적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으므로 보존과 개발의 상충이 일어나게 마련인 것이다.역사도시의 개발과 보존을 매장문화재 차원이 아닌 역사도시 차원에서 본격화하고자 하는 고도보존법은 당연한 일이나 먼저 해야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가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난 100년동안 우리도시는 철저히 과거를 잃었다.우리도시는 백년,천년의 시간과 공간을 버리고 그때그때의 필요에 의해 졸속으로 만들어진 삼류도시다.새로운 2000년은 국가보다 도시가 인간공동체의 기본단위가 되는 도시문명이 인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천년의 시간과 공간을 가진 도시와 잃은 도시는 갈수록 더 큰 문명적 격차를 보일 것이다. ○문화인프라 만드는 혁명 고도보존법이 문화재보호의 소극적 단계에서 나아가 과거를 찾고 이를 미래에 잇는 역사적 문화운동이어야 한다.서둘러 우리의 유일무이한 시공간 공동체인 도시가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을 찾아 나서야 한다.외래문명의 아류가 된 우리도시가 우리문명의 원류에 닿아야 역사와 세계에 남는 도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고도보존법이 역사지도의 제작과 발견을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문화인프라를 구축하는 도시의 문화혁명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그림외교/장윤우 성신여대 교수·공예가(굄돌)

    한국미술창작협회라는 작은 미술단체를 이끌면서 그간에 국내 공모전만이 아니라 해외로 시선을 돌려 심수년간에 걸친 전시행사를 가져오고 있다.공공전으로서는 가뭄에 콩나듯이 하는 문예진흥원 해외순회전,국제 문화규재단 지원등에 목나른 미술인들이 자구의 일환으로 기획,실행함에는 예산,정보부재등의 난제가 걸림돌로서,아예 기대조차 않는 터이기에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보름전에 이스탄불전시를 마치고 돌아왔다. 터키는 아시다시피 동·서양문명의 만남이며 역사적으로도 메소포타미아의 4대문명 발상지로서 한국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미국 다음으로 한국전쟁에 많은 병사를 참가시켜 숱한 사상자를 내었으며 한국전에 참전한 노병들은 영웅시된다.한국화·서양화·서예·공예·디자인 등 170여점을 터키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하여 우의를 다지고 우리 미술의 현주소를 확인시키고자 했다. 교포뿐 아니라 터키주재 대사관에서도 환영해 주었다.권영사의 당부가 잊혀지지 않는다.주재대사관들에는 저마다 미술작품이 걸려,행사때마다 자랑삼는데 비해 한국대사관은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이다.본국의 한국미술협회에 의뢰하여 재료값에 지나지 않는 예산이지만 회원들에게 지급하여 순회전을 가지면서 해당국 대사관에 배정하는데 미흡하다면서 우리 회원작품의 자진 희사가 너무 고맙다는 거였다.그렇다. 당국의 협조없이도 우리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몽골대사관,우즈베키스탄 문화성 및 한국대사관,요르단 문화성및 한국대사관,중국사천성장,인도 델리대사관에 우리 작품을 기증하였다.현지 참가한 선시를 통해서 양국의 미술문화교류의 자리도 굳혔다.외무부와 한국미술협회 등의 요청이나 협조없이도 스스로 해내고 있는 터이다.전시장에서는 태극기를 내걸고,한복을 곱게 차려 입는 등 모두 애국자가 되었다. 남이 알아주건,모르건간에 경제대국보다는 신생국 등에 남들보다 한발 앞서 찾아가고 있다.거창한 구호도 없이­.매스컴의 소개가 없어도 회원들은 뿌듯하다.주재국들에서 받은 감사장만으로도 우리는 보람에 취한다.한사람,한작가가 그림외교사절이니까.다음에는 어디로 정할까에 가슴을설레이면서.
  • 회교권 8국/경제기구 「D­8」 창설/이스탄불 선언 서명

    ◎터키·애·인니 등 참여 【이스탄불 신화 AFP 연합】 8개 회교권 개발도상국가들은 15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경제·무역협력기구인 D­8그룹 창설을 선포했다. 터키를 비록한 8개국 대통령과 총리 등 정상들은 이날 보스포러스 북쪽 강둑의 옛 오토만제국 궁전에서 술레이만 데미렐 터키 대통령·알리 아크바르 하세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 등이 공동주관한 창설기념식에서 이스탄불선언에 공식 서명했다. 이스탄불선언은 D­8그룹이 개발도상국가들간의 상호협조를 위한 기구를 창설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선언문은 그러나 D­8그룹은 회원국들이 기존의 국제기구 및 지역기구와 체결한 공약엔 아무런 역효과를 갖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이날 이스탄불선언에 조인한 8개국은 방글라데시·이집트·인도네시아·이란·말레이시아·나이지리아·파키스탄·터키이다.
  • 회교3국 15일 첫 정상회담

    【앙카라 QNA 연합】 회교권 8개국(D­8) 정상회담이 오는 15일 이스탄불에서 공식 발족된다고 터키 정부가 발표했다. 터키 외무부는 지난 4일자 성명에서 지난 1월 회교권 개발도상국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창설된 D­8의 첫 정상회담이 15일 열린다면서 D­8이 회원국간 협력 증진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회교권 「D­8」 창설 논의/개도국의 「G7」 대항

    【이스탄불 DPA AFP 연합】 회교권에 속하는 8개국이 4일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새 국제기구인 「D­8」의 창설방안을 논의했다. 「D­8」은 서방선진7개국 정상회의 「G­7」에 대항하기 위해 개도국에 해당하는 회원국간 경제협력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개념으로 「D」는 개도국을 뜻하는 「DEVELOPING」의 약자다. 8개국 장관들은 「D­8」의 공식 출범을 선언하기 위한 회원국 정상회담을 내달 또는 3월께 이스탄불에서 추진키로 했다.
  • 이스탄불 호텔 화재/17명 사망·4명 부상

    【이스탄불 AP AFP 연합】 이스탄불의 한 호텔에서 17일 화재가 발생해 17명이 숨지고 41명이 부상했다고 아나톨리아통신이 보도했다. 7층 짜리로 80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에서 발생한 불은 가스 누출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사망자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 관광객들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 숙대 4년 유소은양 인·애 등 5개국 탐사

    ◎인류 마지막 불가사의를 찾아 「사라진 문명과 인류의 마지막 불가사의를 찾아서」 숙명여대 4학년 유소은양(23·정외과) 등 대학생 30명은 (주)데이콤이 마련한 「세계도전 탐사단」에 선발돼 지난 7월11일부터 20일 동안 인도,영국,그리스,터키,이집트 등 5개국을 여행하며 각종 유적과 유물을 둘러보았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사라진 문명을 더듬어 지금 우리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확신으로 여행에 참가했다는 유양의 여행메모를 재구성했다. 인도 봄베이에서 동쪽으로 4백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잔타」「엘로라」석굴은 화려했던 인도불교문화의 전성기를 보여준다.수백년에 걸쳐 형성된 30여개의 굴은 몇몇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승려,미술가 등이 평생에 걸쳐 수작업으로 파나간 것들이다. 길거리에 가득한 거지와 역주변을 무수히 수놓은 집 없는 사람들.석굴은 이들과 대비돼 인도를 말해준다.생존권마저 위협받는 환경에서조차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인도인의 삶의 철학은 무엇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영국.런던 인근의 솔드베리에 있는 「스톤헨지」는 끝없이 아득한 평야에 세워진 고인돌 모양의 돌들이고 「실버리언덕」은 인공언덕이다.「누가」「언제」「왜」「어떻게」 돌들을 세워 놓고 언덕을 만들었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그 중 「스톤헨지」는 세계 7대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다른 여섯개에 비해 신비감이 떨어진다고 한다.불가사의로 선정된데는 국력의 힘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리스의 산토리니섬은 고대 티라이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화산폭발과 해일로 사라졌다.문명 수준은 매우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크레타섬도 이 지역 문명의 발상지이나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에 의해 사라졌다.고대 그리스의 성격을 나타낸다는 흰색과 파란색.하얀건물이 파란 빛깔의 지중해와 어우러져 그림같은 풍광을 빚어내며 옛 영화를 자랑한다. 터키.이스탄불에서 버스로 약 6시간 떨어진 카나칼레 부근은 트로이 전쟁의 배경인 「트로이아」가 있다.집념이란 무서운 것이다.신화속의 일을 찾아 트로이신화를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낸 슐리만 박사의 스토리는트로이의 목마 그 자체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이집트.한걸음만 걸어도 숨이 막히는 사막 한 가운데 어떻게 피라미드나 신전같은 건축물을 만들었을까.피라미드에 관한 여러가지 불가사의가 있지만 직접 와보니 이런 날씨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절대권력이란 무엇인가.수많은 일꾼들의 희생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 어린이 성학대(외언내언)

    어린이 매춘 등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반인륜적 행위를 뿌리뽑기 위한 국제회의 「세계어린이 성학대 대책회의」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려 지난주 말 폐막됐다.세계 1백26개국 정부와 50개 민간단체 대표등 1천여명이 참석한 이 회의는 어린이 성학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대규모 국제회의로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도 지적했듯이 『어린이에 대한 성적 착취 문제에 있어 비난을 모면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측면에서 우리도 관심을 기울였어야 할 회의였다. 지난 5∼6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2차 유엔주거회의에서도 도시화에 따른 어린이 매춘 문제가 지적된바 있다.이 회의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에 수천만명의 어린이 매춘부가 있으며 해마다 5세에서 15세 사이의 소녀 2백만명이 매춘시장에 팔려가고 있다.최근 벨기에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어린이 연쇄납치 성폭행·인신매매 사건은 어린이 매춘이 태국 필리핀등 아시아나 몰락한 동구권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어린이 매춘이 성행하는 이유는 인면수심의 어른들 때문이다.그들은 색다른 섹스를 원하면서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깨끗한 어린이를 찾아 그 어린이들을 병들게 만든다. 한국은 아직 어린이 매춘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진 않고 있다.그러나 한국성폭력 상담소에 의하면 청소년·어린이 대상 성폭력 건수가 「폭발적인 증가추세」로 신고된 성폭력 건수의 30%나 된다고 한다.「영계」를 찾는 남성들을 위해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퇴폐업소도 부지기수다. 스톡홀름 대회에서는 어린이 성학대에 대한 강력한 입법과 처벌강화를 촉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선언문을 채택했다.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두번이상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자에게는 「자발적 성기 절단이나 화학적 거세」를 선택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왜곡된 남성 우위문화로 성범죄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우리도 스톡홀름 선언의 정신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이라크군,아르빌시서 철수/유엔,석유수출 허용계획 연기

    ◎친이란 쿠르드족 축출/술라이마니야 포격은 3일째 계속 【바그다드·이스탄불 외신 종합 연합】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걸프전이후 최대규모의 군사작전을 펼쳐 유엔이 선포한 쿠르드족 안전지대인 이라크북부 아르빌시를 침공,친이란계인 쿠르드애국동맹(PUK)을 축출한뒤 2일 군대를 철수시켰으나 쿠르드반군의 최후거점도시 술라이마니야에 대한 포격을 계속하고 있다. 두바이에 있는 PUK의 한 관계자는 술라이마니야지역에 대한 이라크군의 포격이 3일째 계속되고 있다고 이날 AFP통신에 밝혔다. 그러나 아르빌에 주재하는 한 유엔구호관리는 2일 전화통화에서 『모든 이라크군이 아르빌을 떠났으며 더이상 탱크나 차량,야포들을 볼 수 없다』면서 『그들은 현재 이곳에서 5㎞ 떨어진 곳에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국영 TV방송은 전날 후세인 대통령이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을 침공한 정부군에 돌연 작전을 종료,철수토록 지시했다고 보도했었다. 한편 이라크군 탱크들은 술라이마니야를 향해 이동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터키에있는 이라크 반정부세력인 이라크민족회의(INC)측이 밝혔다. PUK지도자인 자랄 탈라바니는 이라크군이 지난달 31일 PUK를 제거하기 위해 탱크 4백50대와 3만여 병력을 동원,아르빌로 진격한뒤 대포·미사일로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고 말하고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쿠르드의회 의원 96명도 이라크군에 의해 처형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유엔은 1일 이라크가 인도적 구호물자를 구입할 수 있도록 석유수출을 허용하려던 계획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또 유엔이 2일 이번 사태에 관한 긴급회담을 열 가능성이 있다고 외교관들이 말했다.
  •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영화 초대석)

    ◎터키의 인권탄압 고발한 미 영화/70∼80년대 국내 정치상황 여파 “금수딱지”/실화 바탕… 철저한 미국시각 접근이 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실화를 바탕으로 70년대 터키의 인권탄압을 고발한 미국 영화.지난 78년 제작돼 그해 아카데미 각본·음악 등 두 부문 상을 탔으며,구미 각국에서 문제작으로 널리 인정받았다.그러나 70∼80년대 국내 정치상황 때문에 그동안 수입하지 못하고 비디오로만 소개됐다. 1970년 21살의 미국 청년 윌리엄(빌리)헤이스가 마약 2백g을 갖고 터키 이스탄불공항을 빠져나가려다 체포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빌리는 마약밀매혐의로 종신형을 구형받지만 미리 변호사를 통해 돈을 쓴 덕에 4년 징역형에 그친다.다시 열린 재판에서 30년형을 받은 빌리는 절망에 빠져 교도소 안에서 첩자노릇을 하는 터키인을 살해하고 정신병동으로 이감된다.그동안 한차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탈옥을 뜻하는 속어)를 시도하지만 실패한 그는 76년 애인의 면회에 자극받아 결사적으로 탈옥해 미국으로 되돌아온다는 줄거리. 자유를 속박당하고인권을 철저히 짓밝힌 한 인간이 자유를 찾아 온몸을 내던지는 모습이 충격적으로 전달된다.알란 파커 감독은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 「미시시피 버닝」 「버디」를 만든 거장다운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또 올리버 스톤 감독이 각본을,「88올림픽 주제가」를 만든 조르주 모로더가 음악을 맡아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본질적인 독소가 숨어 있다.철저히 미국적인 시각·가치관에 따라 만든 점이다.가령 사건의 계기가 된 빌리의 「마약밀매」에 대한 해석이 그렇다.우리 기준으로도 마약을 소지하고 출국하려는 행위는 마약밀매로 볼 수 있으며,마약사범에 대해 중형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영화는 그같은 행위가 「철부지의 소행」이고(마약이 널리 퍼진 미국의 기준일 뿐이다),따라서 빌리에게 중형을 내린 것을 「터키의 미국에 대한 도전」쯤으로 여긴다. 또 빌리가 공적공간에서 만난 터키인이 모두 부패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해도 영화는 그 차원을 넘어 모든 터키인을 야만인으로,터키문화를 야만적이라고 경멸한다.사악한 정치체제나 집단은 있지만 사악한 국민·문화는 있을 수 없다.문화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적 가치관만으로 다른 나라를 재단하는 오만함이 이 영화에는 배어 있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원초적 갈망」이라는 숭고한 주제를 담았고,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난 데도 불구하고 씁쓰름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이다.31일 개봉.
  • 갈리 유엔총장 재선 길 “험난”

    ◎“개혁에 안어울려” 미 출마포기 종용에 곤혹/안보리 상임이사국 전원찬성 조건 “걸림돌”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의 재선 길이 사실상 막혀버렸다.클린턴 미 행정부가 갈리 총장의 재선에 공식반대입장을 밝히고 안보리에서의 거부권행사 위협으로 출마포기를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최근 이스탄불에서 열린 유엔 「인간정주회의」에 참석하고 독일을 방문중인 갈리 총장은 재선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미 행정부와의 「재선싸움」을 불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갈리 총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유엔의 개혁추진에 적합치 않는 인물이라는 점.갈리총장이 유엔의 비효율성,예산낭비등을 제대로 바로 잡지 못해 「새로운 인물,강력한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논리다. 클린턴행정부가 출범초기부터 갈리 총장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온 것도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갈리 총장은 92년 취임 초기에는 유엔개혁과 대이라크 제재조치등에 찬성하는등 미국의 입장에 동조해왔으나 그후아프리카나 제3세계 국가들과의 보조 맞추기에 더욱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70년대 이집트·이스라엘간의 평화협정체결의 막후 역할을 한 이집트 부총리 출신이다. 임기 5년의 유엔사무총장은 안보리 이사회의 추천(5개 상임이사국의 전원찬성과 비상임이사국 10개국중 4개국 이상의 찬성)을 받아 유엔총회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선출된다.상임이사국의 한나라라도 찬성을 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선출될 수 없게 돼있다.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최근 출마설을 강력 부인한 로빈슨 아일랜드 대통령을 비롯,그로 할렘 브룬틀란트 노르웨이총리,일본 출신의 오가타 사다코 유엔고등판무관,자안타다나팔라 주미 스리랑카대사,가나출신의 고피 아난 유엔사무차장(PKO담당),게리스 에반스 전 호주외무장관등이다.〈유엔본부=이건영 특파원〉
  • 범아 송유관(외언내언)

    지난 3월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합의한 사항중 우리의 관심을 강하게 끈 것중 하나는 아시아횡단철도건설문제였다.한국과 북한,중국,인도차이나를 거쳐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아시아횡단철도는 궁극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유라시아철도망의 전단계다. 아시아와 유럽은 이미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그중 하나가 중국의 동해안 항구인 연운에서 출발,네덜란드의 로테르담까지 장장 1만1천여㎞에 이르는 철도망이다. 지난 90년 중국과 카자흐스탄을 잇는 철도가 중국 신강 위구르자치구의 알라산코우라는 작은 마을에서 접궤됐다.엄격한 의미로는 이것이 최초의 유라시아횡단철도다.이 철도는 북쪽으로는 모스크바를 거쳐 가며 남쪽으로는 타슈켄트,테헤란,이스탄불,부다페스트,베를린을 거쳐 로테르담에 이른다.ASEM이 합의한 유라시아철도는 이보다도 훨씬 남쪽을 지난다. 중국이 최근 일본,한국,중국,러시아,중동지역 등을 연결하는 범아시아 가스및 송유관건설을 각국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신화사통신이 보도해 새로운 관심을 끌고있다.아시아대륙을 연결하는 이 오일브리지의 구상이 나온 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에너지협력이라는 단순한 차원은 아닐것이다.얼마전에는 시베리아가스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수송하는 가스파이프라인 건설얘기가 심심찮게 등장되기도 했다.철도와 오일브리지가스관 등은 모두가 아직 실행단계에까지는 가 있지 않다.그러나 이들 산업인프라에 관한 아이디어들이 계속 나오고 잇는 것을 보면 아시아와 유럽을 포용하는 거대지역에 새로운 산업매개체에 의해 하나로 묶여질 날이 그리 멀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번 범아시아오일브리지를 제안한 중국이 유라시아횡단철도에도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중국의 지정학적위치 때문이다. 결국 아시아 단독으로 유라시아 연결망이든 철도나 석유·가스 등이 중국대륙을 통과할 수 밖에 없다.〈양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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