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땅 그리스 섬&섬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새로운 시공간을 보고, 또 느끼고 싶은 당신이라면, 신과 인간이 공존하며 살고 있다는 그리스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2004년 100여년 만에 두 번째 올림픽을 치르며 신화가 녹아든 현대의 모습을 갖춘 아테네, 그리스 문명의 모태가 된 미노아 문명과 제우스의 탄생지로 알려진 크레타섬, 그리고 사라진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의 도시로 여겨지는 산토리니섬까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리스를 대표하는 이 세 곳은 여행기간 내내 한 인간에게 주어진 행운의 양이 정해져 있다면 이곳에서 자신의 몫을 다 써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볼거리와 기묘한 이야깃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피레우스 항구에서 배로 9시간 남짓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테네에서 70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피레우스 항구에 도착했다. 항구 주변에는 크레타섬으로 떠나는 페리를 타기 위해 모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저녁 9시. 들뜬 마음만큼이나 요란스러운 승선이 끝난 뒤 ‘페스토스 팰리스’호가 힘찬 기적 소리를 울리며 크레타섬을 향해 출항했다. 밤을 도와 달린 배가 크레타섬에 도착하기까지는 9시간 남짓 소요된다. 맥주 몇 캔으로 여행의 설렘을 달래거나, 체스판 하나로 각국에서 모인 관광객들과 친구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전전반측의 밤이 지나고 오전 6시. 페스토스 팰리스호가 크레타섬의 이라클리온항구에 도착할 무렵, 멀리서 여명이 진군하듯 에게해를 물들이며 달려왔다. 연중 300일 이상 맑은 날씨를 보이는 크레타섬에서 해오름과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다. 그러나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땅에서 만난 해오름 풍경은 어느 곳에서보다 화려하고 장엄했다.
크레타섬은 크기로만 보자면 자매결연을 맺은 우리나라 제주도의 형님뻘쯤 된다. 총면적 8247㎢로, 제주도에 견줘 4.5배 정도 크다. 올림푸스 신들의 왕 제우스의 탄생지로도 유명하다. 현지 가이드는 “제우스와 그의 연인 중 한 명인 페니키아 공주 유로파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들이 크레타섬에서 유럽 문화의 기초가 된 미노아 문명을 이룩했다.”고 전했다. 이런 까닭에 ‘유로파’란 이름이 ‘유럽’의 어원이 된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현재는 화산폭발과 지진 등으로 인해 옛터와 소수의 건물만 남은 상태. 하지만 그 규모는 3700여년의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웅장했다.
●올리브오일 이용한 참살이 요리 유명
크레타섬에서는 사람보다 올리브나무를 만나기가 더 쉽다. 그도 그럴 것이 크레타섬은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올리브나무 재배량이 가장 많다. 품질 또한 세계최고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이라클리온을 둘러싸고 있는 민둥산 곳곳에서 재배되고 있는 올리브나무의 초록빛을 만날 수 있다. 최상급 올리브오일 생산지답게 올리브오일을 이용한 크레타 식단은 참살이 요리로 유명하다. 전체 칼로리 섭취량의 40%가 지방인데도 불구하고 지방 섭취량이 비슷한 미국인과 비교해 암 사망률은 절반, 관상동맥 경화에 의한 심장병 사망률은 20분의1에 불과하다.3분의1 수준으로 지방을 적게 먹는 일본인에 비해서도 전체 질병 사망률이 절반밖에 되지 않으니, 크레타 사람들의 식단 또한 크노소스의 미로처럼 미스터리다. 현지에서 간단한 예약을 통해 크레타 음식을 직접 요리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 ‘산토리니의 명동’ 피라 마을
그리스의 앞바다로 불리는 에게 해에는 아주 작은 초승달이 떠있다. 작지만 전 세계 여행자들의 로망으로 더없이 크고 밝게 빛나는 섬, 산토리니다. 원래 보름달 모양의 섬이었다가 기원 전 16세기부터 시작된 수 차례의 화산폭발로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크레타 섬에서 출발한 쾌속정이 높은 파도를 가르며 3시간여 만에 산토리니에 도착했다. 심한 멀미로 정신이 몽롱해진 탓이었을까. 섬에 발을 딛고 절벽 위 하얀 마을의 모습과 마주한 순간 그리스 출신의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야니’의 ‘산토리니’ 연주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성수기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비수기에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섬에서 나오는 까닭에 겨울철 산토리니는 공허함 이상의 새로운 멋을 만들어 낸다. 이런 산토리니의 모습이 경쾌한 반주와 장엄한 베이스 선율이 흐르는 음악과 함께 머릿속에서 오버랩되고 있었다. 관광버스가 굽이굽이 굴곡진 길을 타고 성큼성큼 올라갔다. 한 고개 지날 때마다 드러나는 아찔한 절벽들과 어두운 옥색바다, 그리고 바다 위를 누비는 크루즈선들이 진풍경을 펼쳐 내고 있다. 저마다의 카메라에서 연신 사진찍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는 빼어난 풍경인 것을.
처음 도착한 마을은 ‘피라’. 산토리니의 명동쯤 되는 곳으로, 카페테리아와 온갖 상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가 보이는 절벽쪽에는 수영장이 마련된 호텔과 카페들이 즐비하고, 안쪽의 미로처럼 얽힌 길에는 갖가지 기념품 상점들로 가득 차 있다.
접안 시설의 규모가 작아 크루즈선이 정박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소형 선박으로 갈아탄 뒤 섬에 상륙했다. 고만고만한 작은 배들이 정박한 항구에서 마을로 이어진 587개의 계단길은 여행객을 태우고 올라오는 당나귀들의 행렬로 북적거렸다. 구석구석 피라 마을 골목길을 누비다 만난 한 소년은 짐을 가득 실은 당나귀를 끌고 가면서도 들이대는 카메라에 수줍은 미소로 답해 주었고, 갓 잡은 생선을 통째 구우며 관광객들을 유혹하던 식당주인은 상술이라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박해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관광지답지 않은 주민들의 순수한 표정에서 외려 생경한 느낌을 받을 지경이다. 따사로운 햇살에 나른해진 몸을 에게 해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 오는 카페테리아에서 달콤한 파르페 한 잔으로 달래 보는 것도 좋겠다.
● 이아 마을에 서면 누구라도 패션 모델
피라 마을에서 10여㎞ 떨어진 ‘이아’ 마을은 한결 더 조용한 편이다. 하얀 담벼락에 파란 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국내 한 이온음료 광고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친숙해진 곳이다. 마을 집들은 대부분 호텔과 리조트 등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 초입에 있는 한 리조트 개인 풀장에서 일광욕을 하며 노을을 즐기는 연인들이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질투섞인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처럼 이아 마을은 어느 곳을 가든 슬리브리스 원피스와 원색의 챙모자만 써도 모델이 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훌륭한 스튜디오가 되어 준다. 노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이아 마을의 가장 끝, 그리스 국기가 나부끼고 있는 언덕배기다. 이 시간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에게 해에 노을빛이 물들기 시작하면 하얗고 파랐던 이아 마을은 황금빛이 섞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그리스의 밤 풍경
‘밤 문화를 즐긴다.’는 말로 그리스인 특유의 흥을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해가 어스름해질 때부터 그리스의 카페테리아와 레스토랑은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낮잠을 즐긴 후 오후 일과를 마친 사람들은 늦은 저녁을 먹고 그들만의 ‘나이트 라이프’를 즐긴다.
그리스인들이 주로 찾는 곳은 밤이면 바(bar)로 바뀌는 카페테리아와 클럽. 카페테리아는 주로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면서 낮에는 커피와 음식을 팔고 밤이 되면 입장료 없이 큰 소리의 음악과 가벼운 춤을 즐길 수 있는 바로 바뀐다. 반면 댄스클럽과 부주키 클럽(BOUZUKI CLUB) 등으로 나뉘는 클럽은 20~30 유로 정도의 입장료가 있다.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댄스클럽은 테이블이 없는 한국의 클럽과 비슷하다. 반면 부주키 클럽은 모든 연령층이 함께 그리스 음악을 들으며 테이블을 치거나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이다.‘피크 타임’에는 클럽에서 제공하는 꽃과 접시를 뿌리고 깨뜨리면서 더욱 흥을 돋우기도 한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현지의 밤문화와 접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신화와 역사의 땅 그리스를 찾거들랑 하루 정도는 밖으로 나가 그리스인들과 함께 외쳐 보자 .‘야마스!’(건배)라고.
글 사진 아테네·크레타(그리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항공편 인천~아테네 직항이 없기 때문에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터키항공을 이용하면 좋다. 터키항공은 주 3회(월·수·토) 운항하는 인천~이스탄불편을 이용하는 승객에게 호텔 1박을 무료로 제공한다. 터키항공 02)777-7055.
▲날씨 우리나라와 계절은 같지만 약간 따뜻한 편이다. 지중해의 강한 햇빛과 강한 바람에 대비해 선글라스, 바람막이용 점퍼 등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기타 전압은 220V다. 콘센트는 2핀 방식과 3핀 방식 둘 다 사용하기 때문에 어려움없이 국내 가전제품들을 사용할 수 있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이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