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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여기] 안보의 기본과 원칙, 그리고 신뢰/하종훈 정치부 기자

    [지금&여기] 안보의 기본과 원칙, 그리고 신뢰/하종훈 정치부 기자

    3주 이상 세상을 뒤흔든 세월호 참사는 학창시절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1995년 6월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고교생으로 이른 하굣길을 재촉하던 중 불과 70여m 뒤에서 멀쩡히 서 있던 건물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장면을 목도했다. 그 순간 주위를 뒤덮은 흙먼지의 냄새와 함께 잊을 수 없는 기억은 ‘기본과 원칙’이 무너진 사회는 늘 이에 상응하는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교훈이다. 기본과 원칙이 무너진 것은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다. 지난 한 달간 북한 무인기 침투와 핵실험 가능성 등 국가적 안보 위기대응에 나섰던 군 당국도 마찬가지다. 국방부는 지난 3월 말에서 4월 초 잇따라 발견된 무인기가 북한 지역에서 발진했다는 최종 조사 결과를 지난 8일 발표했고 합동참모본부는 9일 북한에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대북 경고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경고는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하는’ 결과로 귀결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무엇보다 지난 한 달간 군 스스로 자신의 신뢰를 허물어뜨렸다는 점이 뼈 아프다. 초보적 수준의 무인기에 우리 방공망이 허점을 드러낸 것은 물론이고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 고가의 무인기 탐지레이더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우왕좌왕하며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군 당국은 세월호 참사 와중에 “4월 30일 이전에 큰일이 일어날 것”, “큰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북한 내부의 비공식 정보까지 이례적으로 공개하는 친절함도 보였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준비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군 당국의 이 같은 발언은 신중치 못했다는 평이다. 오히려 ‘큰 한 방’이 필요한 쪽은 불리한 국면을 상쇄하려는 정부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만 샀을 뿐이다. 군 당국의 무너진 ‘기본’은 세월호 참사 이후 금주령까지 내렸음에도 간부들의 잇단 음주와 성 추문이 적발된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기강(紀綱)이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그물의 형태를 유지하는 중심이 된 ‘벼리’를 의미한다. 기강이 바로 선 조직은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도 희생을 감수하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묵묵히 전쟁 대비에 힘써 임진왜란에서 23전 23승의 업적을 이뤘다. 현재 우리 군은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위기에 대비하고 있을까. artg@seoul.co.kr
  • [씨줄날줄] 공개채용의 함정/문소영 논설위원

    “적선이 오지 않았다. 여러 장수를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우수사 김억추(億秋)는 겨우 만호깜냥이나 될까 대장으로 쓰일 재목은 못되는데도 좌의정 김응남(應南)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억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러고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뿐이다.” 정유재란 중인 1598년 9월 8일(음력)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이렇게 써놓았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면서 선조와 조정을 안심시키던 이순신이었지만 명랑해전을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중앙 정부에서 대장감이 아닌 인사를 전라우수사로 발령하자, 신세 한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억추가 대장감이 아니라는 평가는 8일 뒤 작성한 난중일기에서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여러 장수가 적은 군사로써 많은 적을 맞아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돌아서 피할 궁리만 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물러나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나는 노를 바삐 저어 돌진하여 지자총통, 현자총통 등 각 총통을 어지러이 쏘아대니….” 이순신은 배와 빈약한 병력뿐만 아니라 능력이 모자라는 정실로 발탁된 장수들을 껴안은 채 130여척의 왜군과 싸워 30여척을 격침하는 전과를 냈다. 이순신을 보면 유능한 지도자는 무능하고 부족한 부하들을 데리고도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것이지, 그들의 무능을 탓하며 자신의 무능을 덮지는 않는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용욱 해양경찰청 정보수사국장이 지난 1일 본청의 국제협력관으로 보직 이동됐다. 우선 세모 조선사업부에서 1991~97년까지 일한 이 국장은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로 주목받는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지원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만큼 세월호 구조작업 총괄자로 부적절하다고 지적됐다. 또 1997년 해경의 경정 특채가 특혜라는 의혹도 나왔다. 이 국장은 부산대 조선공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조함 분야에 채용됐지만, 당시 응시자격은 ‘해군 소령 이상, 정부부처 5급 이상, 정부관리업체 차·과장으로 3년 이상 근무한 자’였다. 즉 채용기준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경비함 건조와 관리담당인 조함직으로 들어와 막강한 권한의 정보수사국장직에 오른 것도 논란거리다. 채용부터 승진까지 ‘보이지 않는 힘’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민간인 전문가를 영입해 관료 조직을 자극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던 공개채용에 공무원 출신이 내정되거나, 정실이 개입한 지 오래다. ‘무늬만 공개채용’으로 변질됐다. 권력과 줄 닿은 정실 인사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관행이자 적폐들인데, 어떻게 개혁해 나갈지 걱정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반론보도문] 유병언 전 회장 측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밝혀왔습니다.
  • [길섶에서] 또 다른 슬픔/정기홍 논설위원

    70대의 아파트 경비원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TV를 아예 꺼 놓는다고 했다. 그는 어린 맏아들을 바다에서 잃었다. 둘째아들과 딸이 세계 최고의 미국 기업에 다니지만 먼저 간 아들만 하지 않단다. 세월호가 노년의 그를 수십년 전으로 다시 불러세운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묘사한 유달영의 수필 ‘슬픔에 관하여’가 문득 다가온다. 작가는 그 아픔을 종교로 승화시키려 무던히 애를 쓴다. 이순신도 임진란 중에 막내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통곡했다”고 난중일기에 적고 있다. 자식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고사에서마저 눈이 먼다는 상명지통(喪明之痛)으로 표현할까 싶다. 벗의 죽음을 애달퍼 하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이나 아내와 남편을 잃은 고분지통(鼓盆之痛)과 붕성지통(崩城之痛)에 비할 바가 아닌 듯하다. 깊은 슬픔을 지우기란 수월치는 않다. 하지만 슬픈 기억을 잊는 데는 지난 영웅담 등이 긍정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사업할 때 600억원대 매출을 올린 적도 있어.” 경비아저씨의 성공담이 맏아들을 잃은 기억을 잠시나마 지웠을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구본영 칼럼] ‘각자도생하는 나라’로는 안 된다

    [구본영 칼럼] ‘각자도생하는 나라’로는 안 된다

    거센 조류 속 진도 앞바다에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벌써 보름째다.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 한명의 생존자도 건져내지 못하는 구조작업을 지켜본 국민치고 한없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는 이가 어디 있으랴. 이번 참사로 온 국민은 두 번 절망했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인재(人災)임을 확인하면서, 그리고 구조과정에서 무능력한 국가의 모습을 보면서. 둘 다 리더십의 문제다. 지도력을 뜻하는 영어의 리더십은 ‘리더(leader)+십(ship)’이란 두 단어의 복합어다. 배를 지휘하는 선장은 지도력의 대명사인 셈이다. 사고를 내고도 승객을 버린 세월호 선장이나 구조과정에서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없이 우왕좌왕한 정부에 대해 국민적 원성이 높아진 이유다. 물론 팬티 바람으로 도망친 이준석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은 주범으로 단죄받아 마땅하다. 승객들을 물이 차오르는 배에 팽개친 채 제 한 몸부터 빠져나온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언론은 앞다퉈 우리에겐 왜 제대로 된 선장이 없느냐고 한탄한다. 민간인 승객만 구조선에 태우고 선원 전원과 함께 희망봉 앞바다에서 산화한 영국의 비컨헤드호 선장을 들먹이면서. 소수의 승객만 구했지만, 배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이유만으로 타이태닉호 스미스 선장도 새삼 영웅시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의인 10명이 없어 유황 불벼락을 맞은 소돔과 고모라일 리는 없다. 세월호에도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는데도 자신의 구명조끼까지 어린 학생들에게 입혀주고 구조에 힘쓴 고 박지영씨나 양대홍 사무장 같은 승조원들이 있었다. 외신들도 이들을 ‘살신성인의 영웅들’로 꼽았다. 따져 보면 우리에게도 책임감 있는 선장인들 없었겠는가. 아덴만의 해적과 목숨을 걸고 싸운 석해균 선장도 있었다. 사실 타이태닉이나 비컨헤드호 선장은 사고를 부른 실패한 선장들이었다. 반면 이순신 장군은 수군과 백성들을 사지에 내모는 해전은 최대한 피하려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노심초사한 진정한 리더였다. 하긴 선진국 이탈리아에도 비루한 선장은 있었다. 2012년 지중해에서 여객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좌초했을 때 세티노 선장은 승객들보다 먼저 구명정에 탄 뒤 부두에서 택시로 줄행랑을 놓았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우리와 다른 게 있었다. 선장에게 “배로 돌아가, 이 썩을 놈아”라고 호통을 친 해안경비대장이 있었고, 그래서 인명피해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누가 과연 자신 있게 이준석을 돌로 내려칠 것인가. 월봉 270만원짜리 그 비정규직 선장의 뒤에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세월호를 화물선처럼 활용한 선주가 있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승객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과적을 일삼은 그 해운사의 배후에는 이를 눈감아주는 해수부 관료 마피아가 있었다지 않은가. 끊임없는 반복 훈련을 강조하는 미국인 해난사고 전문가 인터뷰에 달린 댓글을 보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했다간 승객들이 왜 시간 낭비하느냐고 항의하며 난리가 난다”라는 지적에 기성세대로서 피기도 전 꽃봉오리 같은 고교생들을 저 차가운 맹골수도에 수장한, ‘안전불감증 사회’의 공범일 수도 있다는 회한이 밀려왔다. 선·후진국을 가르는 것도 결국 머리카락 한 올 차이다. 개개인이 문제가 있더라도 시스템이 똑바로 굴러가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류현진인들 늘 잘 던질 순 없다. 때로 그가 무너지더라도 중간계투·마무리 등 불펜이 체계적으로 받쳐주는 팀은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 각자도생(各者圖生)을 권하는 나라는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일군들 문명국이라고 할 수 없다. 마침 국가개조론이 거론되고 있다. 개인 윤리를 강조하기에 앞서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국민의식을 내면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참사를 예방하긴커녕 수습에도 극히 무기력했던 관료조직부터 대수술해야 한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시대구분이 가능하도록 우리 안의 안전불감증, 또 그 안의 성급한 욕심을 확실히 걷어내야 할 시점이다.
  • “외국인 카지노 유치 2년 걸려… 인천을 ‘규제 자유 특구’로”

    “외국인 카지노 유치 2년 걸려… 인천을 ‘규제 자유 특구’로”

    “글로벌 서비스산업의 전진기지로 거듭날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규제 완화 시범특구로 지정해 각종 산업의 시험대로 삼을 수 있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국 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인 송도국제도시와 청라국제도시, 영종지구 사업을 맡고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이종철(54) 청장은 28일 정부의 규제에 대해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썩은 빗장’, 침대 크기에 맞춰 다리를 자르는 ‘야만’이며 스스로에 대한 자해 행위”라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 청장은 감사원 국책과제감사단장 등을 지내다 공모를 통해 선발돼 이곳에 파견된 현직 공무원 신분이다. 그는 “감사원에 재직할 때는 정부 규제가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며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규제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각종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공무원이지만 공직사회의 규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평소 규제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규제 개혁에 대한 철학과 소신은. -규제 개혁은 창조행정이 뒤따르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평소 내 소신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도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표현을 했는데 백번 동의한다. 물론 규제는 국가와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기본 틀이다. 그러나 한번 규제가 만들어지면 그와 관련된 이해관계망이 형성돼 현상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띤다. 즉, 사회는 광속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법령이나 제도는 더디게 변화한다. 사회 발전과 이를 규율하는 법령 간의 차이가 경제, 사회, 문화를 융성하게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규제 개혁과 함께 ‘창조행정’을 강조하는데. -규제의 빗장을 풀어도 창조적인 행정이 없으면 어떤 규제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글로벌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규제가 변화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규제가 없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담당 공무원들이 창조행정으로 그 빈틈을 메워야 한다. 기계적인 행정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잘살게 하겠다는 열정과 영혼이 있는 창조행정이 돼야 온전한 규제 개혁이 가능하다. →경제자유구역이 ‘경제규제구역’이라는 비난이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규제는 어떤가. -인천경제자유구역에는 47개 법률에 따른 450여개의 규제가 작용하고 있다. 중앙 부처가 다수의 규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그 자체가 엄청난 규제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송도의 미분양 아파트 사례를 보면 핵가족화에 따라 아파트는 점점 중소형화돼 가고 있는데 청장 부임 이후 송도에 와 보니 대부분 중대형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개발 초기에는 당시 1인 가구 수를 기준으로 중대형 수요에 맞춰 개발 계획을 짰는데 지금은 1가구당 인원이 줄어들어 중대형을 기피하고 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에 개발 계획 변경 승인을 요청했지만 2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고 있다. 개발 시행사도 힘들고 우리 입장에서도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서 곤란하며 그에 따라 개발 및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다른 규제는 없나. -학교 시설을 짓기 위해 전기, 수도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도로를 굴착해야 하는 상황인데 관련 법에 3년 이내에 건설된 도로는 굴착하지 못하게 돼 있어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규제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적도 있다. 콘도미니엄 분양을 5인 1계좌로 해놓는 규제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외국 대학 유치와 관련해서도 학교가 국내에서 이익을 내면 본국으로 송금을 못 하게 해놓고 손실은 본교가 떠맡게 하는 규제도 있다. 현장의 이 같은 고통을 중앙 부처가 나서서 해결하지는 못할망정 개발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 인력 운용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10년간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인구가 8배나 늘었는데 직원 수는 비슷하다. 또 경제청이 2012년 21억 달러(약 2조 1700억원)의 실적을 달성해 경기도 실적(12억 달러)을 넘어서고 기능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데 인력 증원은 불가능하다는 점은 큰 문제다. 이런 기계적인 행정이 어디 있나. 중국은 경제특구를 만들면서 경제 법령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고 하는데 참고할 만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 복합리조트 투자를 이끌었는데. -처음에 외국인 카지노를 유치한다고 했을 때 경제청 직원 대부분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필요한 핵심 사업이고 시대의 대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서 2년이나 걸렸다. 얼마나 시간 낭비인가. 박근혜 정부 1호 규제 철폐 사례다. →규제 완화와 서비스산업의 전도사로 알려져 있는데. -서비스산업은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보약이다.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필수적인 길이기도 하다. 서비스산업은 집적화의 효과가 큰 만큼 분산형보다는 집적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이런 집적화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인천항, 수도권과 거미줄처럼 연결된 교통망, 우수한 인력 등이 그것이다. 또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의 성격 역시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기획재정부 역시 지난해 4월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글로벌 서비스산업의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내용의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다. 기재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테니 다만 일부 권한이라도 달라고 하고 싶다. 경제청 예산의 국가 지원은 10%도 안 된다. 예산의 90%는 송도 땅을 매립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1년에 5000억~6000억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우리 힘으로 사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상황인데 왜 권한은 중앙 부처가 다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규제 완화 시범특구 지정을 주장하고 있는데. -기존의 규제를 완화하는 데는 정치권 등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이 있을 수 있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시범특구로 지정해 ‘테스트 베드’로 삼자는 것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국토 면적의 0.2%, 전체 인구의 0.4%로서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최적의 규모다. 추후 결과를 평가해서 규제를 원래대로 유지하거나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시범특구 모델을 확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리 병원, 외국인 학교, 외국인 전용 카지노, 투자이민제 등이 실험해 볼 수 있는 현안이다. 규제 완화를 실시할 때 기계적, 획일적인 방식으로 전국적으로 한번에 시행할 것이 아니라 시범적으로 여러 형태를 시행해 봐야 한다. →정부의 규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과 방법이 필요한가. -규제 개혁을 성공으로 이끄는 3대 원칙으로 과감성, 행정 개혁 동시 추진, 사후 평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규제는 시장이 반색할 정도로 과감히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규제를 풀어도 딱 안 될 만큼만 푸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규제를 조금씩 완화하면 오히려 혼란과 부작용이 생기고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또 법령상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행정 개혁도 수반돼야 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것도 행정 개혁의 일종이다. 이를 위해서는 감사원과 여타 감사기구, 사정기구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공무원이 눈치를 안 보고 소신 행정을 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규제는 사전 심사 방식으로 억제하고 푸는 규제는 사후 모니터링 및 평가를 반드시 실시해 부작용과 효과 등을 점검해야 한다. 취임 직후 삼성바이오단지에 대한 허가를 내준 적이 있는데 규제 요건이 많았지만 삼성의 제품 생산 스케줄에 맞춰 최선의 노력을 했다.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투자자의 필요에 맞는 정책을 펴야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이 규제 완화의 모범 지역이 되고 그 힘으로 대한민국의 서비스산업 육성을 이끄는 전진기지가 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이를 위해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았고 미천한 신하는 죽지 않았습니다’(尙有十二 微臣不死)라고 말한 이순신 장군의 심정으로 모든 일에 임할 것이다. 정부 역시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규제 완화 시범특구로 지정하는 문제를 전향적으로 추진해 주기 바란다. 대담 조현석 사회부 차장 hyun68@seoul.co.kr 정리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이종철 청장은 ▲1960년 ▲경남 마산 ▲서울 장훈고 ▲연세대 ▲행정고시 29회 ▲서울대 행정대학원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 대학원 ▲감사원 재정금융감사국 과장 ▲감사원 국책과제감사단 단장 ▲감사원 감사실장
  • “전쟁 중 식량 없는 백성 걱정을” 이순신의 편지

    “전쟁 중 식량 없는 백성 걱정을” 이순신의 편지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4월 1일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인 이순신이 경상우도 순찰사 김성일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순신은 이 편지에서 김성일에게 불화살 등 화공을 사용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반박하며, 전쟁으로 농사를 짓지 못한 백성의 생활이 피폐한 만큼 수군들을 파종 작업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28일 충무공 탄생일을 앞두고 출간한 ‘이순신의 리더십’ 개정판에서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는 이순신의 친필 원본이 아니라 김성일 집안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가 옮겨 적은 전사본(轉寫本)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적은 없다. 경북 안동의 김성일 종가에서 보관하던 것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입수해 자료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순신은 지금의 경남 진해에 해당하는 ‘웅포’에서 7차례나 큰 승리를 거두어 이름을 높인 상태였다. 이에 김성일이 ‘화공을 사용해 왜구를 소탕하라’고 요청했으나, 이순신은 “명나라 군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화공을 쓰더라도 왜구를 소탕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오히려 “백성은 군대와 식량을 하늘로 여기고 있으니 앞으로 큰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노 소장은 “백성의 고충을 늘 생각하면서 전쟁 중에도 농사를 지어 식량을 확보하게 한 이순신의 철저함이 엿보이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단독] 김민종·윤다훈, 안산 단원고에 2000만원 기부

    [단독] 김민종·윤다훈, 안산 단원고에 2000만원 기부

    ‘의리파’ 배우 김민종(왼쪽)과 윤다훈(오른쪽)이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경기 안산 단원고에 1000만원씩 총 2000만원을 기부한다는 뜻을 24일 본지를 통해 밝혔다. 김민종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마음 같아서는 한 생명이라도 구조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너무나 답답하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다훈은 “저 역시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이번 사고를 접하고 너무나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면서 “기적을 바라는 마음과 함께 아픔을 겪고 계신 분들께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종과 윤다훈은 같은 소속사 식구로 오랜 우정을 다져 온 사이이며 의기투합해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김민종은 현재 MBC 예능 프로그램 ‘사남일녀’에서 정감 있는 맏형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윤다훈은 지난해 KBS 주말연속극 ‘최고다 이순신’ 출연 이후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해난, 그 오래된 국가적 과제

    [서동철의 시시콜콜] 해난, 그 오래된 국가적 과제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운항사의 이름이 청해진해운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진도에서 멀지 않은 완도 청해진은 통일신라시대 동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 선단의 모항(母港)이었다. 더구나 진도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승전지가 아닌가. 그럴수록 이번 사고는 한때나마 해양강국이었다는 자부심에도 큰 상처를 내고 말았다. 해난 사고는 조세 제도가 정비될수록 국가의 고민거리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 호남과 서부 경남에서 세금으로 징수한 쌀을 수도인 개경이나 한양으로 운송하려면 뱃길을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조운선(漕運船)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자주 침몰사고를 일으켰다. 가장 위험한 바닷길은 충남 태안반도 안흥 앞바다와 안면도 남쪽 해상이었다. 안흥 앞바다의 마도 근해에서는 고려시대 침몰한 여러 척의 화물선에서 청자가 대량 발굴돼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마도 근해는 통과하기 어렵다는 뜻의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릴 만큼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빨라 해난 사고가 잦았다. 안면도 남쪽의 쌀썩은여도 마찬가지다. 이름처럼 조운선이 물속에 가라앉으면서 세곡은 고스란히 썩어들어갔다. 조선 시대 태안 일대에서 침몰한 세곡선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태조 4년(1395)에는 경상도 조운선 16척이 가라앉았다. 태조 3년(1403)에는 5~6월에만 경상도 조운선 54척이 난파했다. 태종 14년(1414)에는 전라도 조운선 66척, 세조 원년(1455)에도 전라도 조운선 54척이 사고를 당했다. 많을 때는 전체 세곡선의 3분의1이 침몰했다는 것이다. 태안반도 남쪽의 천수만과 북쪽의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굴포운하의 건설은 고려 인종 12년(1134)부터 추진됐다. 조선시대에도 태조와 태종, 세조가 줄기차게 추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중종 32년(1537)에는 승려 5000명을 동원해 안흥에서 가까운 의항운하를 개착하는 데 일단 성공했지만, 둑의 흙이 무너져내리면서 상용화에는 실패한다. 결국 인조 연간(1623~1649)부터 안면도의 북쪽을 육지에서 분리하는 공사를 시작해 17세기 후반 완성한다. 난행량은 어쩔 수 없지만, 세곡선이 쌀썩은여라도 피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과거 세곡선 침몰은 경제 규모 자체가 크지 않던 시절 국가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하지만 세월호의 침몰은 국가 경제보다 국가의 위신과 국민의 자존심에 크나큰 충격을 가했다. 조선왕조는 안면도를 섬으로 만드는 국책공사로 문제의 절반은 해결했다. 박근혜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dcsuh@seoul.co.kr
  • 맹골수도, 머구리 “수경 벗겨질 정도로 조류 세”…국내서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 센 곳

    맹골수도, 머구리 “수경 벗겨질 정도로 조류 세”…국내서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 센 곳

    ‘맹골수도’ ‘머구리’ ‘울돌목’ 세월호가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센 곳인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침몰하면서 수색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9일 오후 1시. 여전히 수색 작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여객선이 침몰한 곳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길이 6km, 폭 4.5km 규모의 수도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곳인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센 곳으로 알려진 이곳의 물살은 최대 6노트(약 11km/h)에 달한다. 이 때문에 세월호 수색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머구리(잠수대원)들이 수색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맹골수도의 조류와 물살이 너무 세 수경이나 산소마스크가 벗겨질 정도라는 것. 조류가 세고 안개 때문에 항만업계 안전운항 규정에 ‘위험항로’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해 3월 LPG 운반선이 조업 중인 어선을 들이받아 배가 침몰하고 선원 7명이 실종됐다. 이를 포함해 지난 2002년부터 10년간 근처 해상에서 모두 58건의 해난 사고가 발생했다. 물살이 세지만 황해로 통하는 주요 항로로 통행량이 많다. 섬 주변에는 암초가 많지만 항로로 이용되는 수로는 깊이 30m 이상으로 암초 등 장애물은 없어 인천 등 황해에서 남해로 가는 여객선, 대형 선박이 주로 이용한다. 전문가들은 조류가 빠른 맹골수도에서 급선회하다가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사 귀환 기원” 자치구 봄 행사·축제도 줄줄이 취소

    서울시와 자치구 행사가 전남 진도 해상에서 일어난 여객선 침몰 사고로 줄줄이 취소됐다. 사고 현장에서 버거운 환경에 맞서 필사적인 수색 및 구조활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축제·이벤트성 행사를 자제하는 게 옳다는 판단에서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업무를 처리하며 사망자를 추모하는 한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17일 시와 자치구는 대책 논의를 위한 긴급 간부회의 등을 열고 예정된 행사를 전면 중단하거나 축소, 연기했다. 이날 외부 일정을 취소한 박원순 시장은 19일 ‘제34회 장애인의 날 행사’와 ‘남산 백만인 걷기대회’, 20일 희망나눔장터 행사 등을 전격 취소했다. 김병하 행정2부시장은 25개 자치구 부구청장과 화상회의를 갖고 주요 시설물 안전관리 및 점검, 근무기강 확립 등을 당부했다. 시는 전날 기획조정실과 소방재난본부, 도시안전실, 복지건강실, 행정국 등 5개 부서로 꾸린 비상지원대책반을 가동했다. 소방헬기 2대, 차량 5대, 현장지원 인력 34명 등을 급파한 데 이어 구조자와 가족들을 위해 심리상담사 등을 추가 파견할 계획이다. 각 자치구도 행사를 자제하고 애도 물결에 뛰어들었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여객선 사고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터에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한 것”이라며 “당분간 구 주관 행사는 최소화·간소화해 경건하게 치르고 민간 주관 행사도 축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선 종로구는 진도에 전화해 위로를 전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19일 열리는 ‘단종비 정순왕후 추모문화제’의 식전후 행사와 주민사랑 음악회를 없앴다. 구로구는 26일 궁동 원각사에서 열려던 ‘산사 음악회’를 취소하고 각 부서에 체육행사 보류, 음주 자제 등 지침을 전달했다. 중구는 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 469주년을 기념해 이날 개최하려던 광화문 동상 친수식과 18일 청계천 모형 거북선 띄우기 대회를 하지 않기로 했다. 서대문구의 경우 19~20일, 26~27일 주말마다 열기로 한 모든 행사를 취소·연기했다. 광진구 또한 25~28일 능동어린이대공원에서 예정된 ‘제3회 서울동화축제’를 가을로 미뤘다. 성동구는 이번 주말부터 다음달 중순까지 잡혔던 부서별 단합대회, 체육대회, 워크숍을 취소했다. 강북구는 18일 추도와 묵념을 넘어 동시대와 호흡하는 축제 개념으로 기획한 ‘4·19혁명 국민문화제 2014’ 전야제 행사를 전면 중단했다. 마포구 역시 이날 창전동 광흥당에서 열려던 개관 기념 작은음악회를 취소했으며 19일 ‘마포연등문화축제’는 축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영등포구도 이날 KBS 전국노래자랑 예선과 19일 본선, 20일로 예정된 제1회 봄꽃길 거리농구대회를 모두 무기한 연기했다. 금천구는 19일 도서관 북 페스티벌, 강서구는 19일 개화산 봄꽃축제를 취소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사고당시 항해사, 세월호 ‘경력 5개월’ 3등항해사

    사고당시 항해사, 세월호 ‘경력 5개월’ 3등항해사

    여객선 세월호 침몰 당시 조타실을 맡았던 항해사가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박모(26) 3등 항해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항해사는 세월호에 투입된 지 5개월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가 한 달에 8차례 제주와 인천을 왕복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박 항해사의 세월호 운항 경험은 40회 남짓하다. 항해사는 조타실에서 조타수에게 키 방향을 명령하는 역할을 한다. 항해사의 지시 없이는 조타수가 타각을 변경할 수 없다. 그만큼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다. 세월호는 침몰 당시 자동운항이 아닌 수동운항을 했다. 배가 지그재그로 움직였다는 일부 승객들의 증언과 침몰 원인으로 ‘급격한 변침(變針)’이었다는 해경의 결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동항해 때 배가 지그재그로 운항할 수는 없다. 변침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항로 변경이라는 말은 타각을 변경했다는 의미로 항해사와 조타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더구나 사고가 발생한 곳은 맹골수도 해역이다. 이곳은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하다.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 20년 경력의 조타수는 “맹골수도는 물살이 수시로 바뀌어서 타각을 계속해서 변경해야 한다. 아무래도 경력이 짧다면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장 이준석(69)씨도 2급 항해사 면허 보유자로 결격 사유는 아니지만 국내 최대급 규모의 여객선 운항을 책임지는 선장이 1급 항해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도 여객선 승무원 조타수는 경력 1년여의 3등 항해사

    진도 여객선 승무원 조타수는 경력 1년여의 3등 항해사

    ’조타수’ ‘진도 여객선 승무원’ ‘3등 항해사’ 여객선 세월호 침몰 당시 조타실을 맡았던 항해사가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박모(26) 3등 항해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항해사는 세월호에 투입된 지 5개월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가 한 달에 8차례 제주와 인천을 왕복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박 항해사의 세월호 운항 경험은 40회 남짓하다. 항해사는 조타실에서 조타수에게 키 방향을 명령하는 역할을 한다. 항해사의 지시 없이는 조타수가 타각을 변경할 수 없다. 그만큼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다. 세월호는 침몰 당시 자동운항이 아닌 수동운항을 했다. 배가 지그재그로 움직였다는 일부 승객들의 증언과 침몰 원인으로 ‘급격한 변침(變針)’이었다는 해경의 결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동항해 때 배가 지그재그로 운항할 수는 없다. 변침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항로 변경이라는 말은 타각을 변경했다는 의미로 항해사와 조타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더구나 사고가 발생한 곳은 맹골수도 해역이다. 이곳은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 20년 베테랑의 한 조타수는 “맹골수도는 물살이 수시로 바뀌어서 타각을 계속해서 변경해야 한다”며 “아무래도 경력이 짧다면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올해부터 시민들이 직접 충무공 제사상 차린다

    올해부터 시민들이 직접 충무공 제사상 차린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은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을 하루 앞두고 장수들에게 이런 각오로 싸우도록 독려했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격파한 명량해전을 비롯해 옥포대첩, 사천포해전, 당포해전, 노량해전 등 23전 23승의 기록을 세웠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이 오는 28일 탄신 469주년을 맞는다. 중구는 오는 17~28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광화문광장과 청계천,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탄신 기념 축제를 연다고 14일 밝혔다. 올해부터는 주민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을 제사상에 올려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이어가자는 행사에 의미를 더한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의 중구 인현동1가(한성부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다.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초계 변씨의 셋째 아들로, 현재 중구 초동인 옛 명보극장 앞에 그의 생가터 표석이 설치돼 있다. 첫 행사인 친수식은 17일 낮 12시 광화문 충무공 동상 앞에서 갖는다. 충무공이 살았던 충남 아산 옛집 우물인 ‘충무정’과 전사한 장소인 경남 남해 바닷물을 떠와 동상을 목욕시킨다. 최창식 중구청장과 복기왕 아산시장, 정현태 남해군수, 중구 주민대표가 참석한다. 18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청계천 모전교~광통교 구간에서 지역 12개 초등학교 학생 360여명이 모형 거북선을 띄운다. 시민과 청소년들의 꿈을 담은 희망 오색종이배 1000여개도 띄워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임진왜란 당시 수군들이 먹었던 주먹밥과 전통차를 시식하는 체험 코너도 마련됐다. 28일 오전 10시부터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기념 다례식이 손님을 맞이한다. 성균관의 고증과 협조로 전통방식 그대로 진행된다. 15개 동에서 준비한 15종의 제사 음식이 상에 오른다. 구 관계자는 “덕수이씨 13대손과 탄생지인 중구, 성장지 아산, 치열한 전투를 벌인 남해 주민 등이 자리를 함께한다”며 “왕궁 수문장 취타대 거리 공연, 국악연주단 연주 등에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장군님 시원하시죠”

    “장군님 시원하시죠”

    10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서 서울시 직원들이 고압분무기로 동상에 물을 뿌리며 겨우내 묵은 때를 청소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고구려 마상무예 연구가 고성규 씨

    [김문이 만난사람] 고구려 마상무예 연구가 고성규 씨

    최근 잠시 시들해졌지만 얼마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조랑말은 세계를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춤을 췄다. 가수 싸이의 말춤이다. 전 세계가 삽시간에 ‘코리아표’ 조랑말에 흥분했다. 역사상 말로 세계를 지배한 칭기즈칸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반도에서 시작된 말춤에 세계인들이 열광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마민족의 유전자가 확 폭발하며 빛을 낸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기마전술과 사냥술을 갖고 있다. 그 원류는 고구려의 기마술이다. 특히 호랑이를 잡는 기마 사냥술은 세계 어느 나라도 상상할 수 없는 문화였다. 고분벽화 속의 수렵도에 고스란히 그 흔적이 그려져 있다. ●기마민족 아니었으면 싸이 말춤 성공했겠나 고성규(54)씨는 고구려 기마무예를 20년째 홀로 외롭게 연구하고 있다. 수렵도에 그려진 기마술에 반해 몰두했다. 본인이 직접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창을 던지는 무예까지 스스로 터득했다. 그냥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중심을 잡기 힘든데 그는 전사, 측사, 후사 등 각 방면으로 고난도의 활쏘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기마무예는 물론 말에 대한 이론도 척척박사다. 아시아·유럽 등 세계 각국의 말을 직접 사 들여와 키우며 연구한 결과다. 지난달 27일 경기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집 입구에는 ‘마구간’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잘생긴 하얀 말이 낯선 손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히힝” 인사를 한다. 고씨가 마구간을 안내하면서 말을 일일이 소개한다. 말들이 저마다 표정을 지었기에 마치 말과 인터뷰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안, 미국의 아메리칸 포니 등은 연구용으로 수입해 왔다. 그 뒤를 이어 몽골 말, 내몽골 말, 러시아 아무르강 출신 말, 한라말. 일송정 해란강의 만주 말, 호주 말, 네덜란드 말 등 출신 성분도 다양하다. 모두 23마리를 소개받았다. “칭기즈칸이 유럽까지 원정 가서 싹쓸이하다시피 이긴 까닭을 아시나요. 그건 바로 몽골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덩치는 유럽 말에 비해 작지만 거친 땅에서 자라 공격성이 강하고 아주 민첩하지요. 회전력이 유럽 말에 비해 2~3배 더 빠릅니다. 일제 때 일본 경찰들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호주 말을 타고 왔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조랑말보다 몸집이 더 큰 말을 사용하면서 심리적 공포를 주기 위해 칼까지 차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날쌘 조랑말을 길들여 풀어놨더라면 호주 말들을 모두 쓰러뜨려 역사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20년째 수렵도 속 활쏘기 등 무예 독학 조랑말은 우리의 전통 말인 과하마(果下馬)와 몽골 말의 교배로 태어난 말로 발 뒤차기가 정교하고 민첩한 특징을 지녔다고 고씨는 설명한다. 과하마는 키가 작아 말을 타고서도 능히 과실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고구려와 동예의 특산물이었다. 특히 고구려에서는 시조 주몽(朱蒙)이 타고 다니면서 전승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는 이 같은 사실에 흥미를 느껴 고구려 벽화 속 수렵도를 연구하는 한편 직접 말을 키워 여러 실험을 통해 활쏘기와 창던지기 등의 무예를 익혔다. “수천년 전 고구려의 마사희(馬射戱)라고 하는 살벌한 마상궁술도 ‘희롱할 희(戱)’를 쓸 만큼 ‘놀이’로 즐겼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와서 말을 타고 격구(擊毬) 놀이로 이어졌지요. 또한 윷놀이의 말판도 말을 타고 다니는 형태로 볼 때 우리 민족은 달리고 싶은 욕구를 놀이로 승화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하던 ‘말뚝박기’, 학창 시절 운동회 때의 ‘기마전’도 그런 것이고요. 아이들이 태어나면 걸음마를 할 때까지 목말을 태우고 다니듯 알게 모르게 우린 끝없이 말을 타고 있었지요.” 그러면서 고씨는 “왜 우리 민족에게 ‘빨리빨리’의 습성이 생겼는지 아느냐”고 반문한다. 설명이 그럴듯하다. 말은 속도를 대변하는 동물이며 말을 타고 광활한 북방 대륙을 누비던 우리 민족이 말에서 내려 좁은 한반도에 유배를 당해 살다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빨리빨리’ 서두르게 됐으며 끝장을 빨리 봐야 하는 민족이 됐다는 것이다. 또 반문한다. 싸이의 말춤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나라가 어디인 줄 아느냐고 했다. 그것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호주, 몽골, 브라질 등 말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들이라고 했다. 싸이의 말춤은 요즘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유치한 안무 트렌드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딴죽을 거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신성한 동물인 말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싸이가 각 나라에 가서 인터뷰를 할 때 우리나라가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홍보했더라면 효과가 아주 좋았을 것이란 거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기마문화 콘텐츠를 살려 전통 가치를 계속 유지, 상승시키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기운을 말에게 불어넣느라 고생도 많이 했다. “여기에 있는 말 중 절반 이상은 제 손으로 직접 받고 키워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다 낙마 사고도 많이 당했습니다. 말과 함께 넘어지거나 밟혀 골절상 등 대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요. 어느 말이 마상무예에 적합한지 일일이 교육을 시켜 봐야 하거든요. 서양 말은 긴 창을 이용하기 편하고 동양 말은 활과 창을 다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런 훈련과 함께 2002년 7월 대한청년기마대 발대식을 시작으로 통일염원 승마 국토종주(제주~임진각), 백제문화제 마상 퍼레이드, 충무공 탄신제 마상무예 격구 시연, 서울 하이 페스티벌 마상 퍼레이드, 광개토대왕 추모제 고구려 기마무예 시연 등에 참여해 왔다. 그런 활동들을 통해 기마문화의 우수성을 꾸준히 선보였다. 또한 2011년 주한외교사절단(대사 부부) 50여명을 초청해 고구려 기마무예의 세계화를 위한 행사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고구려 기마 사냥에 쓰였던 활의 크기는 80㎝ 정도였고, 말의 키는 130~150㎝로 작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전투마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날쌨습니다. 고구려 말처럼 작은 말은 이미 13세기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했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고구려는 4~6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마문화를 발전시키고 세계 기마문화사에 큰 획을 그을 정도로 최고의 마필 조교술과 사냥술을 가지고 있었지요.” ●초등 4학년 때부터 승마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 말에 대한 역사, 장점, 고구려의 마상무예 등의 얘기가 거침없이 나온다. 말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짐수레를 끌고 다니는 말을 처음 접했다. ‘언젠가는 저 말을 꼭 타봐야지’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축산고등학교에 입학해 대관령 목장에서 말을 타고 실습을 했다. 축산고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기와 우유를 생산하라고 만든 학교였다. 어쨌거나 드넓은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려 보니 말의 매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말에 대한 자랑을 다시 늘어놓는다. “비너스 같은 몸매와 역동적인 근육, 탄력적인 엉덩이 곡선 등 말은 어느 동물과도 비교되지 않는 신이 내린 몸매를 자랑하지요. 남녀노소, 낙마의 공포감만 없다면 누구나 타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뿐인가요. 인류를 위해 가장 희생한 동물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전장에서 죽은 주인과 함께 순장하기도 했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이 고주몽의 58대손이라고 한다. 다시 그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기아자동차 영업사원 시절이었다. 신문에서 승마를 대중화한다는 기사를 보고 주말마다 파주, 원당, 일산, 포천 등 승마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말 타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10번 정도 타면 되는 줄 알았더니 100번 이상은 타야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무렵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당시 부인은 서울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승마를 함께 배우자는 말에 부인이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같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말 타는 법을 익혔다. 부인은 경희대에서 승마지도자 자격증까지 땄다. 고씨도 그동안 여러 개의 타이틀을 땄다. 대한청년기마대장을 비롯해 전국승마연합회 심판위원, 경기도승마연합회 부회장, 대한기마문화연구회 회장, 고구려기마보존협회 회장 등이 그것들이다. ●고궁에서 마상무예 하는 그날을 꿈꿔요 “영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버킹엄궁전 앞에서 기마대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우리도 광화문 앞에서 고구려 기마문화를 재현하면 외국인들이 많이 오게 돼 있어요. 문화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계속 유지하면 돼요. 창경궁에서 마상무예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일본은 원래 말이 없었는데도 말을 동원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TV 사극을 보세요. 전부 서양 말을 타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고구려 기마무예로 인간문화재로 지정됐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그동안 이렇게 솔직한 얘기를 자주 해 왔으리라. 마구간의 말에게 간다. 무슨 말을 하는지 상상하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마상무예 앞장서는 고성규씨는 >>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축산고 재학 시절 대관령 목장에서 실습을 하면서 말에 매력을 느꼈다. 고교 졸업 후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신문에 난 ‘승마 대중화’ 기사를 보고 본격적으로 말을 타기 시작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무용총 수렵도를 보고 고구려 기마무예를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20년째다. 대한청년기마대 발대식(2002년), 통일염원 승마 국토종주(2002년), 백제문화제 마상 퍼레이드(2002년), 서울하이페스티벌 마상 퍼레이드(2005년), 광개토대왕 추모제 고구려 기마무예 시연(2005년), 월드컵 4강 진출 및 토고전 승리 기원(2006년), 미8군 제2사단 초청 고구려 기마무예 공연(2007년), 서울 중구 충무공 이순신 탄신제 마상 퍼레이드(2008년), 일본 대사관 앞 독도영유권 주장 규탄대회 기마무예소년단 총감독(2008년), 주한 외교사절 대사 부부 초청 고구려 기마무예 세계화추진 공연(2011년) 등의 활동을 펼쳤다. 2012년에는 국무총리표창을 받았고 대한민국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전국승마연합회 심판위원, 대한기마문화연구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 충무공 백의종군길 천안에 기념비

    충무공 백의종군길 천안에 기념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원균의 모함을 받아 옥살이한 뒤 백의종군하던 길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28일 아산백의종군보존회에 따르면 지난 27일 충남 천안시 광덕면 보산원1리 마을 입구 지방도 623호 도로변에 백의종군의 길 기념비를 설치했다. 이 기념비는 높이 3.5m, 폭 2.5m 크기로 기단 위에 자연석을 파 만든 것이다. 이곳은 아들의 옥살이 소식을 듣고 전라도에서 올라오다 숨진 어머니의 장례식도 못 치르고 계속 남하하던 충무공이 잠시 쉬면서 자신의 아들 면 등과 만난 터다. 충무공은 1597년 봄 서울에서 전남 순천까지 백의종군했다. 기념비는 민속전통공예 작가 배방남(73)씨가 제작했다. 배씨는 “오래전 충무공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 기념비를 만들었는데 마침 백의종군보존회와 뜻이 맞아 천안시와 협의한 끝에 비를 세우게 됐다”면서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 전에 장군이 좋아했다던 백철쭉을 기념비 주변에 수북이 심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기념비 전면에는 비문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백의종군 중 아들과의 만남 등 보산원리에서 있었던 난중일기 내용을 담았다. ‘후세에 장군의 우국충정 정신을 길이 남기고자 기념비를 세웠다’는 취지문 비석을 따로 설치했다. 아산백의종군보존회는 이 일을 계기로 기념비 설치를 계속 이어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승운(66) 회장은 “서울, 경기, 전남 등의 문화원과 협의해 백의종군 길 곳곳에 기념비를 설치하는 활동을 계속 벌이겠다”면서 “서울에서 전라도까지 백의종군 길 전 구간을 말 타고 가 보고 싶은 개인적인 꿈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벚꽃 보러 진해 군항제 오세요”

    전국 최대 벚꽃축제인 제52회 진해 군항제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일대에서 오는 31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다음 달 10일까지 펼쳐진다. 36만여 그루의 벚꽃이 만개해 시가지를 뒤덮은 가운데 ‘꽃, 빛, 희망’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 벚나무가 우거진 여좌천과 제황산, 안민고개 등에 야간경관 조명을 설치해 벚꽃을 배경으로 밤마다 형형색색 빛을 밝히는 별빛축제가 열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진해루에서는 다음 달 2일 오후 8시부터 40분 동안 밤바다를 배경으로 멀티미디어 불꽃 쇼가 열린다. 다음 달 4~6일 진해공설운동장, 중원로터리, 진해구민회관 등에서 육·해·공군과 해병대 등 모든 군의 군악의장대 12개 팀 600여명이 참가해 절도 있는 의장시범을 보이는 ‘진해 군악의장 페스티벌’이 열린다. 4일 중원로터리 일대에서 열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승전행차도 볼거리다. 행사 기간에 해군사관학교와 해군 진해기지사령부는 아름드리 벚꽃 수천 그루가 우거진 부대를 개방한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亞·유럽 잇는 해협에 세계건설史 새로 쓴다

    亞·유럽 잇는 해협에 세계건설史 새로 쓴다

    18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자 흑해 입구 양쪽에 우뚝 솟은 콘크리트 교각 2개가 위용을 드러냈다. 터키 ‘보스포러스 제3대교’ 주탑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로 보스포러스 해협에 건설되는 세 번째 교량이다. 이스탄불 외곽고속도로 공사 중 공정이 까다롭고 첨단 토목기술이 필요한 최대 난코스만 떼어내 국내 건설업체에 맡긴 것이다. 왕복 8차로 도로와 왕복 2차로 철길 2164m를 건설하는 교량 공사로 6억 4800만 달러에 수주했다. 현대건설과 SK건설이 6대4의 지분으로 시공하고 있다. 이 다리는 준공과 동시에 교량·토목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 의미가 있다. 세계 최고·최장·복합 타이틀이 동시에 붙는다. 1000m가 넘는 다리 중 세계 최초의 사장·현수교 복합 다리이다. 대규모 교량은 주로 사장교(주탑에서 케이블을 경사지게 늘어뜨린 뒤 케이블이 직접 다리 상판을 끌어당겨 지탱하는 방식) 또는 현수교(주탑과 주탑을 메인 케이블로 연결하고 이 케이블에서 수직으로 늘어뜨린 고강도 강선이 상판을 지지하는 방식)로 건설된다. 통상 현수교 설계는 바람이 불거나 자동차가 지나갈 때 상판이 상하 5~6m, 좌우 20~30m 정도 움직이는 것을 허용한다. 대신 경간(주탑과 주탑 사이)을 넓게 세워 미적 감각을 살릴 수 있다. 국내 이순신대교나 울산대교가 현수교이다. 반면 철도가 지나는 다리는 안전을 고려,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상판 움직임이 적은 사장교로 건설한다. 사장교의 단점은 경간을 1000m 이상 넓게 벌리지 못한다. 그런데 보스포러스 3교는 총길이 2164m이고 중간에 철길도 함께 놓는다. 또 경간이 1408m, 교각의 높이가 332m나 된다. 현수교나 사장교 어느 한 공법만으로는 다리를 건설할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동원된 공법이 ‘사장·현수교’ 복합 교량이다. 전체적으로 사장교 형태로 건설하되 다리 중간 792m는 현수교로 건설하는 기술이다. 사장교의 단점인 경간을 늘리는 동시에 현수교의 단점인 흔들림도 줄여 열차가 안전하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했다. 교각의 높이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사장교 기준으로 경간이 가장 길다. 경간의 길이나 교각 높이는 교량 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경간이 길거나 교각이 높으면 그만큼 바람에 견디는 내풍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현대건설이 최초로 개발, 울산대교 현장에 도입했던 초장대 케이블 가설장비 기술이 있었기에 이 공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공기가 2년 5개월에 불과한 것도 어려운 점이다. 착공 이후 매일 야간작업을 하면서 현장을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다. 나영묵 현대건설 상무는 “복잡한 공법의 다리를 불과 2년 반 만에 짓겠다고 했을 때 모두 ‘크레이지’(미쳤다)라고 외쳤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동원하면 공기를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스탄불(터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이은주 기자의 컬처K] 사투리로 뜬 그대… 다음 작품 고민되네

    [이은주 기자의 컬처K] 사투리로 뜬 그대… 다음 작품 고민되네

    요즘 사투리는 배우들의 이미지 변신에 있어 최고의 명약이다. 고고했던 여배우도, 잘나가는 아이돌 스타들도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도나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예전에는 강한 억양 때문에 이미지 문제로 사투리 사용을 기피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특효약이 됐다. 그래서인지 최근 인기 드라마에서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5일 첫 방송한 SBS 월화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에 출연 중인 조승우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는 단연 화제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전직 강력계 형사 기동찬 역의 그는 맛깔난 사투리로 유쾌하고도 능글맞은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고 있다. 배우 정우는 사투리로 부활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8월까지 KBS 주말연속극 ‘최고다 이순신’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중고신인에 불과했던 그는 두 달 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응사)에서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개성을 부각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로 출연했던 임시완도 극중 부산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열연해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뗐고, 트렌디 드라마 ‘상속자들’로 인기를 얻은 김우빈도 영화 ‘친구2’에서는 거친 경상도 사투리로 무게감을 더했다. KBS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절’에 출연 중인 그룹 2PM의 택연은 데뷔작인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 이어 또다시 사투리 연기에 도전하고 있다. 여배우들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털털한 이미지를 덧입히는 데도 사투리는 제격이다. ‘참 좋은 시절’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김희선도 새침한 만년 캔디 이미지를 벗는 데 성공했고 ‘응사’에서 경남 사투리를 구성지게 구사했던 고아라는 10년간의 부진에서 단박에 벗어났다. 최근 만난 부산 출신 여배우 손여은도 “이제 배우들에게 사투리는 하나의 장기가 된 것 같다. 꼭 사투리 연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투리 연기로 너무 크게 각인된 경우 전작의 그늘을 벗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실제로 ‘응사’에서 해태 역으로 찰진 전라도 사투리를 선보였던 손호준은 요즘 KBS 월화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 출연하고 있지만 전작의 폭발력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다음 달 SBS 새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출연할 고아라와 영화 ‘쎄시봉’을 차기작으로 정한 정우도 이전의 사투리 연기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해당 지역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프로그램이 예기치 않은 시비에 오르기도 한다. 경주가 배경인 ‘참 좋은 시절’의 홈페이지는 요즘 연일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경주 지역의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이 구사하는 극중 사투리가 경주 사투리가 아니다”라며 항의성 지적을 하고 있는 것. 드라마 관계자는 “로케이션 장소가 당초 경남 지역에서 갑자기 경주로 바뀌는 바람에 빚어진 문제”라고 해명했다. 드라마 평론가인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사투리는 캐릭터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에게 긍정적인 요소”라면서도 “하지만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리얼리티 부재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몰입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rin@seoul.co.kr
  •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 인터넷선 내가 제일 잘나가~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예수보다 유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에 소속된 거시연결그룹이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언어의 수와 2008년 초부터 지난해 말까지 클릭 수 등을 종합해 유명도를 산출한 결과 아리스토텔레스가 1위에 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52개 언어로 위키피디아에 소개돼 있었으며 6년간 조회수가 5600여만 회에 달했다. 2위는 플라톤, 3위는 예수였으며 소크라테스와 알렉산더 대왕,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순서대로 4∼6위에 올랐다. 공자는 7위로 동양권에서는 유일하게 10위 안에 들었다. MIT가 ‘판테온’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이 프로젝트의 사이트(http://pantheon.media.mit.edu/)에 접속하면 연대, 직업, 나라 등 다양한 조건으로 유명인 순위를 정렬해 볼 수 있다. 한국인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2위부터 4위까지는 이승만·이명박·김대중 전 대통령이 차지했으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각각 5·6위에 올랐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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