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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객 유치 팔 걷어붙인 지자체

    관광객 유치 팔 걷어붙인 지자체

    서울과 부산, 경북 등 광역자치단체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고사 상태에 처한 관광업계 살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이 다음달 1일부터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에서 서울 관광 홍보에 나서는 등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친다고 15일 밝혔다. 또 ‘1+1’ 세일과 대규모 케이팝 공연, 역사인물 이벤트 등을 기획했다. 시는 중국과 동남아 관광객들에게 강점이 있는 한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현재 중국판 ‘우리 결혼했어요’의 서울 촬영을 두고 막바지 협의 중이다. 예능프로그램인 ‘런닝맨’을 서울 명동 등 주요 관광지에서 촬영하고 이를 다시 중국과 동남아에 홍보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서울광장에서 케이팝 스타들의 대규모 공연도 추진 중이다. 중국 여행사 등과 조인해 공연을 관광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식 깜짝 이벤트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등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관광객들에게 당시 역사적 이야기 등을 들려주는 거리 이벤트도 연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6월 103만명에 달했던 외국인 관광객이 메르스 사태 여파로 올해 6월에는 64만명으로 반 토막이 난 상태”라면서 “특히 지난달 한국방문 취소 인원이 13만 6000여명을 넘었던 중화권 관광객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부산관광홍보단을 운영하고 있다. 홍보단은 ‘올여름엔 부산 가자’를 주제로 서울, 대전 등지에서 관광로드쇼 등을 펼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서울역과 명동 일대에서, 3일에는 대전 갤러리아백화점과 대구백화점 앞에서 할인 쿠폰북과 홍보물을 나눠 줬다. 유람선과 요트, 부산어묵, 숙박지 등을 한데 묶어 최대 70%까지 할인해 주는 쿠폰북과 여름축제 정보를 담은 소식지 등을 제공했다. 부산관광공사는 1만 5000원인 시티투어 버스 요금을 5000원(14~19일)으로 한시 할인한다. 경북도도 관광객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도는 이날 서울역과 명동에서 여름철 경북 휴가 명소를 소개하는 부채와 홍보물을 나눠 줬다. ‘경북 SNS 친구 맺기’ 이벤트로 기념품을 제공했다. 행사에는 주낙영 행정부지사를 비롯해 전화식 도 문화관광체육국장, 김대유 도 관광공사장, 경북관광협회와 도 지정 전담 여행사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17일과 20일에는 대구 동성로와 부산역 광장·서면 등에서 길거리 캠페인을 펼친다. 도는 현금 지원책도 마련했다. 단체 관광객 유치 인센티브로 1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원 대상 범위도 외국인에서 내국인 단체 관광객 유치 여행사로 확대했다. 체험 관광지 활성화를 위해 유료 관광지만 인정하던 지원 요건도 유료 관광지에 체험 관광지가 포함되면 추가 인센티브를 준다. 강원도도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과 시청, 청계천 주변에서 ‘수도권 BIG캠페인’을 시작으로 관계기관, 업계 합동대책회의와 주요 관광시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또 하반기 추진 예정인 해외시장 마케팅 계획을 모두 7~9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서울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F-16D에 참패했다는 ‘F-35A’를 위한 변명

    [밀리터리 인사이드] F-16D에 참패했다는 ‘F-35A’를 위한 변명

    록히드마틴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 들여다보니 지난주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전투기로 불리는 ‘F-35A’가 큰 화제가 됐습니다. 아니, 화제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록히드마틴의 내부 보고서를 인용한 일부 국내외 언론은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대당 1200억원이나 하는 5세대 전투기가 4세대 전투기 F-16D와의 근접전(dogfighting·도그파이팅)에서 무참히 패배하다니. 특히 우리가 한국형 차기 전투기(KF-X) 개발 과정에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도입하기로 한 바로 그 전투기가 1980년대부터 보급된 ‘구닥다리’에게 패했으니 충격이 컸을 겁니다. ‘참패’와 ‘전멸’이라는 극한 표현이 난무했습니다. 록히드마틴에서 직접 만든 보고서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우리 군도 크게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해명하는 대신 침묵을 지켰습니다. 국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비난여론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정반대의 반응도 많이 나왔습니다. 평소 군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던 다수의 남성들이 F-35A 도입을 비난하기는 커녕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밀리터리 마니아 등 군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은 “뭘 알고 비판하는 건가”, “이런 기사 쓰지 마라”며 언론에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과연 비싸기만 한 F-35A를 잘못 구입하는 것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팩트가 있진 않을까. 차근차근 되짚어봤습니다. 우선 시점을 2013년 11월로 돌리겠습니다. 국방부 발표입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차기전투기(F-X)로 스텔스 기능을 갖춘 미국 F-35A를 선정했다. 전시 작전목표 달성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주변국 스텔스기 확보 등에 따른 안보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차기 전투기 60대가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고성능 스텔스 전투기는 지원전력이 불필요하며, 최소한의 전력으로 은밀하게 침투해 주요 표적을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킬체인의 핵심 전력이다.” ●홍길동의 1차 목표는? 관군 아닌 곳간 털기 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럼 여러분이 잘 아는 ‘홍길동전’과 비교해볼까요. 홍길동은 도적의 소굴로 들어가 우두머리가 됩니다. 허수아비 일곱개를 만들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 팔도를 누비며 못된 벼슬아치와 양반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줍니다. 흉년에는 관아를 털어 굶주린 백성을 살렸습니다. 여기서 홍길동의 1차 목표는 ‘곳간 털기’입니다. 부자와 관아의 곳간을 털어 재물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목적이지, 관군을 모조리 때려눕히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F-35A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촘촘한 방공망을 뚫고 핵시설 등 핵심표적을 정밀 타격한 뒤 무사히 복귀하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북한 전투기를 가까운 곳에서 만나 격파하는 이른바 ‘근접전’을 하려고 도입하는 전투기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네티즌이 이런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력이 뛰어난 저격수를 50m 이내에서 돌격병과 맞붙여 놓고 졌다고 실망하는 꼴”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이번엔 시간을 좀 더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같은 해 9월입니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미국 보잉의 F-15SE를 차기 전투기로 결정하는 안을 상정했지만 심의 결과 부결됐습니다. 보잉은 록히드마틴 등 다른 경쟁사와 달리 유일하게 F-X 총사업비 8조 3000억원 이내로 가격을 써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탈락. 핵심 이유는 ‘스텔스’ 기능이 미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군 전문가와 대다수 언론이 핵심 요건으로 ‘뛰어난 스텔스 기능’을 거론했고, 특수도료를 발라 스텔스 기능을 갖추겠다는 F-15SE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습니다. 역대 공군참모총장 15명이 F-15SE 불가론을 담은 건의문까지 냈습니다. F-15SE는 웬만한 폭격기 수준의 최대 13t의 무기를 실을 수 있지만 공중전 능력은 유로파이터에 밀렸고, 스텔스 기능은 F-35A에 밀렸습니다. 결국 F-35A가 낙점됐고, 여론의 떠받들림 속에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제외하면 단점이 거의 없는 ‘무적의 전투기’ 반열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전투기’는 없습니다. ●F-35A ‘스텔스 디자인’에 숨겨진 비밀 F-35A는 전통적인 전투기의 디자인과는 사뭇 다른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각지고 둔해보이는 외형이 특징인데요. 일본과 중국이 개발하고 있는 스텔스기도 대부분 이런 모양을 채택했습니다. 이유가 있겠죠. 각진 형상은 레이더에서 쏜 전파가 동체에 부딪힌 뒤 되돌아갈 기회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전파 반사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장과 연료통, 전자기기를 모두 내부로 밀어넣다보니 매우 ‘뚱뚱한’ 모양을 갖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런 디자인은 근접전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날렵하지 않은 몸체 때문에 기민성 측면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이 많습니다. F-35A의 장점은 ‘능동전자주사배열(AESA) 레이더’에 집약돼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닙니다. 기체에 장착하는 ‘AN/APG-81 레이더’는 단순히 한 방향으로 전파를 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전파를 수많은 방향으로 쏘기 때문에 정확도는 물론 탐지 거리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입니다. 멀리 있는 지상과 공중의 적, 날아오는 미사일까지 포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의 전자정찰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F-35A는 정찰과 공격을 모두 수행할 수 있고 다른 기체와 표적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기능도 있습니다. 4세대 전투기의 기계식 레이더가 ‘486 컴퓨터’라면 이 레이더는 ‘슈퍼컴퓨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에 스텔스 기능을 더했으니 선제공격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겠죠. 지상의 목표를 원거리에서 타격하기 위한 핵심 기능입니다. 마침 록히드마틴이 비교대상으로 삼은 F-16D도 이 회사가 개발한 ‘형제 전투기’입니다. 짧은 작전반경과 빠른 속도 때문에 고속 기동에 강점이 많은,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기체입니다. 1980년대에 처음 도입됐다고 하더라도 꾸준한 성능 개량이 이뤄졌습니다. 사실상 현재 상용화된 전투기 중 공중 근접전에서는 최강자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따라서 F-35A와는 성격이 다르고, 구닥다리 기체도 아닙니다. ●스텔스 기능 뺀 시제기, 왜 근접전에 나섰나 록히드마틴은 물리적으로 5세대 전투기 F-35A와 4세대 전투기 F-16D를 직접 맞붙여 승자를 가려보기로 했습니다. ‘AF-2’라는 F-35A 시제기를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AF-2에 스텔스 기능을 뺐습니다. 먼 거리의 적기를 탐지할 수 있는 센서도 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파일럿이 고개만 살짝 돌려서 적기를 포착, 무장을 사용하는 화기관제장치도 제외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인데요. 사실상 파일럿이 적기 근처로 직접 전투기를 몰아 눈으로 보고 기관포를 쏘고 성능을 다퉈보라는 지시였습니다. ”F-16D는 보조연료탱크를 달아 더 무거웠다”는 지적은 전투기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해프닝으로 보입니다. F-35A는 작전반경이 1000km 수준이지만 F-16D는 500km에 불과해 동등한 조건을 만들려면 보조연료탱크를 달아야 하기 때문이죠. 결과는 F-35A의 패배였습니다만, 공중전과 근접전에 특화된 전투기와 스텔스 기능과 레이더를 뺀 스텔스기의 근접 대결을 ‘참패’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근본적인 문제인 공기역학 측면에서의 단점과 기민성을 보완하기 위한 시험 비행이라고 해야 옳겠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돌리기 어려운 5억원짜리 대형 헬멧에 대한 문제 지적도 있었는데, F-35A 조종사는 사실 고개를 완전히 뒤로 돌려 적기를 직접 관찰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5세대 전투기는 항공기를 조종사가 직접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프로그래밍에 의해서 움직인다”면서 “근접전에 우수한 기체와 맞붙는 극한 상황을 만들어 어떤 데이터를 뽑으려고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F-16D가 ‘구닥다리’라는 보도도 나왔는데, 사실 이 기체는 선회각이 짧고 기민성이 가장 뛰어난 전투기로 현재는 성능을 따라갈 전투기가 없다”면서 “물리적으로 극한 상황을 설정해 수동으로 기체를 조작하는 조종사의 어려움도 참고하고 프로그래밍을 보완하기 위한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시제기가 아닌 컴퓨터를 활용한 모의 전투비행에서는 4대의 F-35A 편대가 F-16D 편대를 완벽하게 제압했습니다. 스텔스 기능과 원거리 공격 무기를 모두 적용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KF-16은 3개의 편대, 즉 12대가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 F-35A는 1개 편대나 2대만으로도 단독 작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스텔스 전쟁’ 어떤 분은 F-35A에 대해 현존하는 최강의 공격기인 F-22의 ‘보급형 기체’라고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F-22는 잘 아시다시피 미국에서 판매 금지 무기로 지정돼 있죠. 하지만 두 전투기는 각자 강점이 있고 앞으로 가야 할 미래가 다릅니다. F-22는 공중전의 최강자인 반면 폭격용 무기는 빈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F-35A는 최대 2000파운드급 폭탄을 장착할 수 있어 지상 목표 타격 능력이 남다릅니다. 양욱 위원은 “현대전은 정밀 폭격이 가능한 지에 따라 대세가 갈리는데 적의 지휘부를 완벽하게 부수려면 2000파운드 이상의 무기가 꼭 필요하다”면서 “F-35A는 F-22에서 탑재할 수 없는 GBU-31이나 JSOW와 같은 2000파운드급 폭탄을 내부 폭탄창에 수납할 수 있어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4세대 전투기와의 대결 결과가 아닙니다. 주변국들이 스텔스기 개발을 완료했을 때 우리가 과연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일본은 신신(心神), 중국은 J-20과 J31, 러시아는 수호이 T-50(PAK FA)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5세대 전투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기를 제압하는 전투기이다. 4세대 전투기와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곳에서 만날 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4세대 전투기와 동등한 근접전 기능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신 대표는 다만 “모든 주변국이 스텔스기를 개발완료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면서 “스텔스기가 맞붙으면 서로를 식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근접전에 돌입해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부연 설명했습니다. 또 “이럴 경우 전술적 우위를 위해 적기 위로 솟구쳐 아래로 미사일을 내리꽂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만큼 향후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에서는 약점을 최대한 보완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개발 지연과 가격 상승 우려도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 등 세계 각국이 이 기체를 구매할 계획이지만 개발완료 시점이 계속 늦춰지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조차 속이 타는 상황입니다. 미 국방부는 3911억 달러(약 439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으로 모두 2443대의 F-35기종을 도입할 예정이지만 아직 완벽한 기체가 나오지 않았죠. 양욱 위원은 “애초에 해군과 공군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요구했다가 감당이 안되니 기능을 많이 줄였고 결국 미국 정부까지 나섰다”면서 “지금 미국이 가장 속 타는 상황이고, 일정 기능 이상은 하지마라고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밀리터리 인사이드는 핫한 아이템을 가지고 매주 화요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아래 리스트를 보세요. (10)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11)‘태국의 원빈도’ 못 피한 軍입대 제비뽑기 (12)왜 한국 병사의 월급은 왜 ‘세계 최하위’인가 (13)전투복 교체 돌고 돌아 6년…장병복지를 논하다 (14)6·25 전쟁 때 쓰던 수통 지금도 쓰고 있을까
  • ‘얼룩덜룩’ 방치된 남산공원 백범 동상

    ‘얼룩덜룩’ 방치된 남산공원 백범 동상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조명하고 기념하는 행사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정작 서울 시내에 세워진 독립운동가 동상은 새똥과 쓰레기 등의 각종 오물 속에서 악취를 풍기는 등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현재 서울시 각 공공부지에 설치된 동상은 모두 56개지만 관리 주체는 서울시와 자치구, 시설공단, 문화재청 등으로 쪼개져 있다. 이런 가운데 상당수 동상이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1969년 중구 회현동 남산공원에 세워진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도 곳곳이 부식돼 있다. 미술작품 보존가 권모씨는 “김구 동상의 경우 청동 안에 있는 여러 금속물이 부식되면서 얼룩덜룩 녹이 슨 상태”라고 진단했다. 김구 선생 동상의 관리 주체는 서울시이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수년째 왁스 처리 등 보존 처리가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동상 관리 기준 관련 조례에는 공공용지 내 동상의 경우 연 1회 상태 점검을 하고 시가 직접 관리하는 동상이 아니더라도 동상 관리를 지도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옛 서울역사 앞에 세워진 강우규 의사 동상도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서울역 광장에서 일본인 총독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독립투사로, 2011년 9월 2일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측이 동상을 건립했다. 두루마기 차림에 오른손으로 수류탄을 투척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이 동상은 인근 노숙인들이 남긴 방뇨 자국과 새똥이 묻은 채 방치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서울시가 광화문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소에 있는 세종대왕상이나 이순신 장군상에 대해서는 매년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관리하고 있지만 외진 공원에 있거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동상 관리는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동상의 인물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들인데 관리에는 차별을 두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각의 관리 주체가 예산을 확보해 관리해야 하는데 동상 같은 경우 한번 만들어 두면 영구히 보존된다고 오인해 예산 우선순위 대상에서 밀리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서울 시내 전체 동상에 대해 전문가 점검을 실시해 상황이 심각한 동상부터 예산을 배정해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어서 들어오시게, 내려놓을 것이 있다지?

    어서 들어오시게, 내려놓을 것이 있다지?

    ‘한섬지 천리길’(로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관리공단)이 조성한 걷기 길이다. 한려해상, 섬진강, 지리산의 앞글자만 따서 만든 표현이다. 말 그대로 산과 강, 바다를 잇고, 영남과 호남을 씨줄날줄로 엮는다. 그 길이가 얼추 1000리를 훌쩍 넘는다. ‘한섬지 천리길’을 조성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지역 경제 발전, 둘은 국립공원 탐방객 분산 유도다. 한 해 국립공원을 찾는 탐방객 4700만명 거의 전부가 정상 정복을 노리는 수직탐방형이라고 한다. 이를 평탄한 길을 도는 수평탐방형으로 분산시키겠다는 것이다. ‘한섬지 천리길’ 가운데 경남 남해의 바래길과 전남 구례의 지리산 둘레길 일부 구간을 돌아봤다. ‘한섬지 천리길’은 지리산 국립공원과 섬진강, 그리고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이어 주는 길이다. 새로 만든 길이 아니라 있던 길을 재정비해 조성했다. 관리공단 산하 5개 국립공원사무소와 지자체, 사회단체가 연계해 운영한다. 길은 크게 세 코스로 나뉜다. 지리산 둘레길이 중심이 된 지리산길, 섬진강을 따라 걷는 섬진강길, 그리고 남해 바래길과 이순신 바닷길, 바다백리길 등 남해안 일대에 조성된 길을 이은 한려해상길이다. 현재 조성된 구간은 42개로, 총 52개 구간 조성이 목표다. 거리는 450㎞쯤 된다. 지리산 국립공원 코스가 270㎞로 가장 길고, 경남 남해와 통영 일부를 포함한 한려해상 국립공원 코스가 130㎞, 섬진강 구간이 50㎞ 정도 된다. 개별적으로 ‘한섬지 천리길’을 돌아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좀 더 효율적이다. 프로그램은 10월까지 8회에 걸쳐 운영된다. 지역 예술인의 문화공연, 가이드 해설 등 다양한 이벤트가 곁들여진다. 이번 여정에선 남해바래길 2코스인 앵강다숲길과 지리산 둘레길 화엄사~운조루 구간 중 일부를 걸었다. 앵강다숲길의 들머리는 남해 가천의 다랭이마을(명승 제15호)이다. 논 갈던 소가 한눈팔면 곧바로 바다에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가파른 설흘산 자락 위에 고만고만한 논들이 층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길은 다랭이마을에서 시작해 바닷가를 따라 원천마을까지 14.6㎞ 구간에 펼쳐져 있다. 한데 아직 주변 산길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걷는 데 어려움이 많다. 가급적 구간 정비가 완전히 끝난 뒤 찾거나, 다랭이마을 주변만 돌아보는 게 좋겠다. 구례 화엄사~운조루 구간의 들머리는 ‘지리산에 깃든 꽃’ 화엄사다. 544년 인도 승려 연기가 세운 이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쳐 현재 이른다고 ‘사적기’는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절집 대부분의 가람 배치가 대웅전 중심인 것에 견줘 화엄사는 각황전(국보 제67호)이 중심이다. 그 탓에 ‘국보급’의 규모와 건축미를 가진 대웅전이 ‘여러 전각 중의 하나’로 저평가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면 보제루다. 단청이 없는 소박한 건물이다. 무엇보다 외벽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이채롭다. 하나같이 이리 휘고 저리 굽었다. 리듬에 맞춰 춤이라도 추는 듯하다. 기둥은 키가 작다. 1층의 기둥 높이를 낮게 만들어 탐방객들이 건물 옆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기둥을 높이고 아래 공간을 개방해 대웅전으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여느 절집의 보제루와 사뭇 다르다. 이는 절집의 내밀한 공간을 가벼이 드러내지 않고, 중심 영역인 각황전과 대웅전, 그리고 석탑들이 펼쳐 내는 장엄한 경관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건축적 배려라고 한다. 어느 선인이 이 같은 심모원려의 한 수를 펼쳐 놓았는지 알 길은 없으나, 그의 의중이 적중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보제루를 끼고 돌면 너른 마당이다. 뒤로는 지리산이 너른 품을 벌려 대가람을 감싸고 있다. 마당에는 두 개의 탑이 서 있다. 동쪽 탑 너머는 대웅전이, 서쪽 탑 위쪽엔 각황전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각황전은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물 가운데 최대 규모다. 정면에 매달린 ‘각황전’ 현판은 1702년 중건 당시 숙종이 이름을 지어 하사했다. 건물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안겨 준다. 거대한 규모에서 우러나는 장중함으로 먼저 객을 압도한 뒤, 목조건물 특유의 소박하고 단아한 자태로 객의 놀란 가슴을 어루만진다. 밖에서 보기에는 2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툭 트여 있는 통층 구조다. 이런 양식의 사찰 건물은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 부여 무량사 극락전, 공주 마곡사 대웅전 등 몇 개에 불과할 정도로 귀하다고 한다. 각황전 앞에는 국보 제12호로 지정된 석등이 있다. 높이 6m가 넘는 거대한 석등이다. 각황전 위쪽의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은 수리 중이어서 볼 수 없다. 화엄사를 나와 상사마을을 향해 걷다 보면 ‘쌍산재’란 현판을 내건 솟을대문과 만난다. 대문이라고는 하나 권문세가의 그것처럼 크고 고압적이지는 않다. 늘씬하면서도 단아하다. 멋을 아는 고졸한 선비가 세웠을 법한 자태다. 쌍산재는 현 해주 오씨 주인장의 6대조 할아버지가 처음 터를 잡은 뒤, 보수와 증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고택이다. 햇수로는 200년쯤 됐다. 고조부 때 서당채인 쌍산재가 세워진 이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1만 6500㎡(약 5000평) 남짓한 터에 살림채와 별채, 서당채 등 부속 건물, 대숲, 잔디밭 등이 들어서 있다. 쌍산재 대문 오른쪽엔 당몰샘이란 우물이 있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인 샘으로, ‘지리산 산삼 썩은 물’이라고도 불린다. 가뭄에도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며, 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당몰샘에서 물 한 모금 들이켠 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 보고, 오른쪽에 건너채가 있다. 안채 한편에 있는 뒤주는 이웃에 대한 배려의 흔적이다. 지금은 그리 쓸모가 없지만 예전엔 이웃들이 춘궁기 때 필요한 만큼 곡식을 꺼내 가고, 가을에 수확해 가져간 만큼 되돌려 놓는 식량 창고로 쓰였다고 한다. 물론 이자는 넣지 않았다. 쌍산재 최고의 볼거리는 집터 가장 높은 곳에 숨어 있는 서당채다. 가는 길부터 운치가 남다르다. 안채와 별채 사이의 돌계단을 지나는데, 대숲과 동백숲이 우거져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동백숲 짙은 그늘을 빠져나오면 빛의 세상이다. 오솔길 좌우의 텃밭과 잔디밭이 파란 하늘과 조화롭게 어울렸다. 가정문(嘉貞門)이란 중문을 지나면 놀라움은 찬탄으로 바뀐다. 동백나무가 정돈된 좁은 길 끝에서 서당채가 정갈한 자태로 객을 맞고 있다. 한때 서당으로 쓰였던 건물인데 널찍한 대청마루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대청마루 위에는 쌍산재라 쓰인 현판이 선명하다. 서당채 오른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밖으로 난 작은 문을 나서면 사도지라 불리는 저수지와 만난다. 맑은 날엔 물빛이 푸른 비취빛으로 빛난다고 한다. 저수지로 난 문의 이름도 그래서 영벽문(映碧門)이다. 팁 하나. 구례까지 간 김에 노고단(1507m)도 빼놓지 말고 돌아보자. 천왕봉(1915m)·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대봉으로 꼽히는 곳이다. 구례에서 뱀사골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정상인 성삼재(1090m)에서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7~8월이면 원추리 등이 만개해 천상정원을 이룬다. 글 사진 구례·남해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관리공단은 한섬지 산, 바다 문화주간을 7~8월 중 운영한다. 산은 지리산 달궁야영장, 바다는 거제 학동야영장에서 열린다. 기타 한섬지 프로그램은 홈페이지 참조(www.knps.or.kr). ‘한섬지 천리길’을 총괄 운영하는 곳은 지리산 국립공원 남부사무소다. (061)780-7700. →잘 곳: 관리공단에서 지리산 생태탐방연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연수원에서 운영하는 생태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에만 숙박할 수 있다. 가격도 4인실 5만~6만원 선으로 저렴한 편이다. 화엄사 초입에 있다. 연수원 운영관리부 (061)780-8700. 쌍산재도 모든 건물이 숙소로 꾸며져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다. 개별 화장실과 샤워 시설도 갖췄다. 홈페이지(www.ssangsanje.com) 참조. (061)782-5179, 010-3635-7115.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신의 방패’ 제 노릇 하려면...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신의 방패’ 제 노릇 하려면...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공중위협을 잠재울 수 있는 신의 방패, 이지스 구축함 추가 도입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 : Defense Security Cooperation Agency)은 9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나라가 요청했던 이지스 구축함용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기 및 관련장비의 한국 수출에 대한 국무부 승인이 이루어졌으며 관련 사실을 미 의회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판매를 요청한 무기들은 오는 2023년부터 3척이 전력화되는 세종대왕급 배치(Batch) II 구축함에 장착되며, 2027년 이들 3척이 모두 전력화될 경우 우리나라는 모두 6척의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게 되는데, 새로 도입되는 3척의 이지스 구축함에는 주목할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 -탄도미사일 요격 못하는 '반쪽짜리 이지스함' '이지스'(Aegis)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방패 이름인 아이기스(Αιγίς)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이 방패는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Zeus)가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토스(Hephaestus)를 시켜 만들었으며,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Athena)가 사용했다. 이 방패는 모든 악을 씻어냄과 동시에 모든 창과 방패, 심지어 벼락까지도 막아낼 수 있으며, 방패를 흔들면 천지가 구름에 뒤덮이고 천둥벼락이 치면서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무적의 방패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지스함’이란 AN/SPY-1 계열의 레이더와 이를 통제하는 전투체계를 탑재한 군함을 말하는데, 그 성능이 워낙 강력하여 해상에서는 사실상 무적의 전투함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선진 해군을 꿈꾸는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이지스함을 보유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 해군 역시 1985년 이지스 구축함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여 무려 20여 년 만에 한국해군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을 전력화할 수 있었다. 3척이 건조된 이지스 구축함은 해군의 소유이지만, 단일 무기체계로는 국군이 도입했던 무기체계 가운데 가장 비싸며, 가장 강력한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전략자산으로 분류되어 합동참모본부의 지시와 승인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3척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척당 1조 원에 달하는 고가의 무기체계이고, 우리 군 최고의 전략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취역한지 몇 해 되지 않아 몇 가지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핵심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탑재하지 않아 가지고 있는 잠재 성능을 100%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비용 절감에 지나치게 매달린 나머지 운용 초기 단계에서 적지 않은 애로사항을 겪어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에 따르면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의 평균 가격은 약 9,105억 원에 수준이다. 그러나 배 자체의 가격은 2,600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6,500억 원 가운데 3,500억 원은 배 외관에서 볼 수 있는 8각형 레이더, 즉 AN/SPY-1D(v) 레이더 값이고, 나머지 3,000억 원은 미사일 수직 발사기와 함포 등 각종 무장과 통신장비 값이다. 레이더 가격이 워낙 비쌌기 때문에 해군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공동구매’라는 방법을 찾아냈다. 매년 2~3척의 이지스함을 건조하며 현재까지 80여 척에 달하는 이지스함을 전력화하고 있는 미국 해군은 물론 신형 이지스함 도입을 준비 중이던 일본과도 협력 방안을 타진했다. 그리고 3국이 공동으로 동일한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구매하는 조건으로 제작사가 최초에 제안했던 가격보다 약 2억 7000만 달러, 약 3,0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이 공동구매를 통해 동일한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구입했지만, 전력화 이후의 행보는 달랐다. 미국과 일본은 1척에 2,500억~3,000억 원의 비용을 추가로 들여 BMD(Ballistic Missile Defense) 설비를 갖추는 개량 공사를 실시했다. 이러한 개량을 통해 원거리에서 발사된 탄도 미사일에 대한 탐지·추적은 물론 SM-3 미사일을 이용해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지스함이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격통제시스템와 레이더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이 소프트웨어로 통제되는 수직발사기용 ORDLT(Ordinance Alteration) 개조 키트와 지원 시스템 등 각종 부가 장비를 갖추고 탄도 미사일 요격에 특화된 SM-3 미사일을 탑재해야 한다. 세종대왕급과 같은 시기에 전력화된 미 해군 구축함 일부와 일본 해상자위대의 구축함들은 이러한 개량 사업을 통해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즉각 탐지,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탐지와 식별, 추적과 요격이 모두 가능한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과 달리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탐지와 식별, 추적만 가능할 뿐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이지스 구축함들은 북한이 은하 3호 로켓을 발사했을 때도, 동해상에서 각종 미사일을 발사할 때도 북한 미사일의 궤적만 탐지하고 추적하는 정도의 임무만 수행할 뿐 요격시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척당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써 놓고도 정작 가장 큰 위협인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는 대응할 수 없는 ‘반쪽짜리’ 이지스함으로 써 왔던 것이었다. -진정한 신의 방패로 거듭나기 위한 조건 해군에는 '3직제'라는 개념이 있다. 1척의 군함을 항상 바다에 떠 있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 3척의 군함이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1척이 임무수행을 위해 바다에 나가 있으면 다른 1척은 임무수행을 마치고 돌아와 정비와 휴식을 하고, 나머지 1척은 다음 임무 수행 준비를 위한 훈련과 보급 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3직제 개념을 대입해보면 동해와 서해에 각각 1척의 이지스함을 상시 배치하기 위해 적어도 6척의 이지스함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군이 이지스함 3척 추가 도입을 요구했던 배경도 이 같은 맥락이다. 현재 해군은 12척의 한국형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다. 3,800톤급 크기인 광개토대왕급 3척은 동해와 서해에 분산 배치되어 운용중이고, 4,500톤급인 충무공 이순신급 6척은 3척은 소말리아 해적 퇴치 작전 투입과 복귀, 임휴식 및 정비에 묶여있고, 3척은 서해 NLL 경계 작전 지원에 교대로 투입되기 때문에 독도나 이어도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지스 구축함 3척도 3직제에 따라 1척이 동해나 서해에서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하고, 나머지 2척은 교육훈련과 정비에 투입되기 때문에 긴급 상황이 발발했을 때 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해군은 오래 전부터 이지스 구축함 추가 도입을 추진해 왔고, 지난 2013년 3척 추가 건조가 확정되어 현재 설계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 오는 2023년부터 도입되는 세종대왕급 Batch II 구축함은 Batch I에 비해 10년 이상 늦게 등장하는 만큼 초기에는 어느 정도 장비를 갖추고 어느 정도 수준으로 건조될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지스함을 구성하는 여러 장비 가운데 가장 핵심인 레이더와 관련해서는 현재 세종대왕급이 탑재하고 있는 AN/SPY-1D(v) 레이더가 점차 구식화될 것이고, 조만간 단종될 것이기 때문에 차세대 이지스 레이더인 AN/SPY-6(v) AMDR(Air and Missile Defense Radar)을 구입해 탑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제기되기도 했었다. 실제로 세종대왕급 Batch II 구축함이 등장하는 2023년에 미 해군은 AN/SPY-6(v) 레이더를 탑재한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이 배치되는 시기이고, 이 레이더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해 탁월한 대응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래 중국과 일본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우수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N/SPY-6(v) 레이더 도입론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척당 추가 3000억 원 비용이 관건 그러나 이 레이더의 가격은 세종대왕급이 가지고 있는 AN/SPY-1D(v)의 2배에 달하고, 운용유지비 역시 기존 레이더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세종대왕급 Batch II 사업은 신규전력 확보 사업이 아니라 개량형 도입사업이기 때문에 기존 세종대왕급 대비 성능과 비용이 20%를 초과할 수 없다. 즉, 현재 규정과 예산 범위 안에서는 신형 레이더 탑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신형 레이더 구매와 탑재가 어렵다면 현재 구입이 결정된 장비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어 부족한 성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미국으로부터 구매할 예정인 AN/SPY-1D(v) 레이더와 베이스라인(Baseline) 9 전투체계는 현재 개발된 이지스 전투체계 가운데 가장 최신형으로 몇 가지 개량만 가해지면 현재 세종대왕급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한 성능을 보유해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주변국의 다양한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우선 일본이 신형 아타고급 이지스함 2척을 전력화하자마자 개량사업을 실시해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부여한 것처럼 세종대왕급 Batch II 역시 전력화와 동시에 개량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미 국방안보협력국이 밝힌 판매 승인 내역을 보면 미사일 방어를 위한 BMD 체계 구성요소나 CEC(Cooperative Engagement Capability) 구성 요소는 빠져 있다. 이러한 장비들을 모두 탑재하는 개량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척당 3,000억 원 안팎이다.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이러한 개량을 거치면 세종대왕급 Batch II는 이지스라는 이름 그대로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갖게 된다. 공군의 피스아이와 연계하여 사정거리 400km에 달하는 SM-6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게 되어 부산 앞바다에서도 독도나 이어도 상공에 일본이나 중국 전투기가 얼씬도 못하게 견제할 수 있고,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SM-3 미사일을 이용해 북한 영공에서 요격해 버릴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을 갖추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군 통수권자와 정치권의 의지, 그리고 각 군 사이의 의견 대립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증대됨에 따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지만, 야권에서 “본격적인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추면 미국의 MD에 협력하는 것으로 비춰져 중국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고, KAMD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공군 역시 해군이 이지스함과 SM-3 미사일을 이용해 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추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이지스함을 ‘진정한 신의 방패’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결단을 이번에도 포기한다면 4조원의 비용을 들여 들여오는 3척의 이지스함 역시 제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대한민국 국가 전체를 수호하는 전략무기가 아니라 해군 함대만 보호하는 전술무기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10년 전 세종대왕함을 만들 때 우리는 신의 방패를 가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화되고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 열기가 격화되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일우 군사통신원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신의 방패’ 이지스함 이번에도 반쪽짜리?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신의 방패’ 이지스함 이번에도 반쪽짜리?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공중위협을 잠재울 수 있는 신의 방패, 이지스 구축함 추가 도입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 : Defense Security Cooperation Agency)은 9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나라가 요청했던 이지스 구축함용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기 및 관련장비의 한국 수출에 대한 국무부 승인이 이루어졌으며 관련 사실을 미 의회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판매를 요청한 무기들은 오는 2023년부터 3척이 전력화되는 세종대왕급 배치(Batch) II 구축함에 장착되며, 2027년 이들 3척이 모두 전력화될 경우 우리나라는 모두 6척의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게 되는데, 새로 도입되는 3척의 이지스 구축함에는 주목할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 -대당 1조원 '세종대왕급' 탄도미사일 요격못해 '이지스'(Aegis)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방패 이름인 아이기스(Αιγίς)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이 방패는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Zeus)가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토스(Hephaestus)를 시켜 만들었으며,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Athena)가 사용했다. 이 방패는 모든 악을 씻어냄과 동시에 모든 창과 방패, 심지어 벼락까지도 막아낼 수 있으며, 방패를 흔들면 천지가 구름에 뒤덮이고 천둥벼락이 치면서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무적의 방패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지스함’이란 AN/SPY-1 계열의 레이더와 이를 통제하는 전투체계를 탑재한 군함을 말하는데, 그 성능이 워낙 강력하여 해상에서는 사실상 무적의 전투함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선진 해군을 꿈꾸는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이지스함을 보유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 해군 역시 1985년 이지스 구축함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여 무려 20여 년 만에 한국해군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을 전력화할 수 있었다. 3척이 건조된 이지스 구축함은 해군의 소유이지만, 단일 무기체계로는 국군이 도입했던 무기체계 가운데 가장 비싸며, 가장 강력한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전략자산으로 분류되어 합동참모본부의 지시와 승인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3척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척당 1조 원에 달하는 고가의 무기체계이고, 우리 군 최고의 전략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취역한지 몇 해 되지 않아 몇 가지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핵심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탑재하지 않아 가지고 있는 잠재 성능을 100%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비용 절감에 지나치게 매달린 나머지 운용 초기 단계에서 적지 않은 애로사항을 겪어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에 따르면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의 평균 가격은 약 9,105억 원에 수준이다. 그러나 배 자체의 가격은 2,600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6,500억 원 가운데 3,500억 원은 배 외관에서 볼 수 있는 8각형 레이더, 즉 AN/SPY-1D(v) 레이더 값이고, 나머지 3,000억 원은 미사일 수직 발사기와 함포 등 각종 무장과 통신장비 값이다. 레이더 가격이 워낙 비쌌기 때문에 해군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공동구매’라는 방법을 찾아냈다. 매년 2~3척의 이지스함을 건조하며 현재까지 80여 척에 달하는 이지스함을 전력화하고 있는 미국 해군은 물론 신형 이지스함 도입을 준비 중이던 일본과도 협력 방안을 타진했다. 그리고 3국이 공동으로 동일한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구매하는 조건으로 제작사가 최초에 제안했던 가격보다 약 2억 7000만 달러, 약 3,0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이 공동구매를 통해 동일한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구입했지만, 전력화 이후의 행보는 달랐다. 미국과 일본은 1척에 2,500억~3,000억 원의 비용을 추가로 들여 BMD(Ballistic Missile Defense) 설비를 갖추는 개량 공사를 실시했다. 이러한 개량을 통해 원거리에서 발사된 탄도 미사일에 대한 탐지·추적은 물론 SM-3 미사일을 이용해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지스함이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격통제시스템와 레이더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이 소프트웨어로 통제되는 수직발사기용 ORDLT(Ordinance Alteration) 개조 키트와 지원 시스템 등 각종 부가 장비를 갖추고 탄도 미사일 요격에 특화된 SM-3 미사일을 탑재해야 한다. 세종대왕급과 같은 시기에 전력화된 미 해군 구축함 일부와 일본 해상자위대의 구축함들은 이러한 개량 사업을 통해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즉각 탐지,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탐지와 식별, 추적과 요격이 모두 가능한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과 달리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탐지와 식별, 추적만 가능할 뿐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이지스 구축함들은 북한이 은하 3호 로켓을 발사했을 때도, 동해상에서 각종 미사일을 발사할 때도 북한 미사일의 궤적만 탐지하고 추적하는 정도의 임무만 수행할 뿐 요격시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척당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써 놓고도 정작 가장 큰 위협인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는 대응할 수 없는 ‘반쪽짜리’ 이지스함으로 써 왔던 것이었다. -진정한 신의 방패로 거듭나기 위한 조건 해군에는 '3직제'라는 개념이 있다. 1척의 군함을 항상 바다에 떠 있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 3척의 군함이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1척이 임무수행을 위해 바다에 나가 있으면 다른 1척은 임무수행을 마치고 돌아와 정비와 휴식을 하고, 나머지 1척은 다음 임무 수행 준비를 위한 훈련과 보급 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3직제 개념을 대입해보면 동해와 서해에 각각 1척의 이지스함을 상시 배치하기 위해 적어도 6척의 이지스함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군이 이지스함 3척 추가 도입을 요구했던 배경도 이 같은 맥락이다. 현재 해군은 12척의 한국형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다. 3,800톤급 크기인 광개토대왕급 3척은 동해와 서해에 분산 배치되어 운용중이고, 4,500톤급인 충무공 이순신급 6척은 3척은 소말리아 해적 퇴치 작전 투입과 복귀, 임휴식 및 정비에 묶여있고, 3척은 서해 NLL 경계 작전 지원에 교대로 투입되기 때문에 독도나 이어도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지스 구축함 3척도 3직제에 따라 1척이 동해나 서해에서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하고, 나머지 2척은 교육훈련과 정비에 투입되기 때문에 긴급 상황이 발발했을 때 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해군은 오래 전부터 이지스 구축함 추가 도입을 추진해 왔고, 지난 2013년 3척 추가 건조가 확정되어 현재 설계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 오는 2023년부터 도입되는 세종대왕급 Batch II 구축함은 Batch I에 비해 10년 이상 늦게 등장하는 만큼 초기에는 어느 정도 장비를 갖추고 어느 정도 수준으로 건조될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지스함을 구성하는 여러 장비 가운데 가장 핵심인 레이더와 관련해서는 현재 세종대왕급이 탑재하고 있는 AN/SPY-1D(v) 레이더가 점차 구식화될 것이고, 조만간 단종될 것이기 때문에 차세대 이지스 레이더인 AN/SPY-6(v) AMDR(Air and Missile Defense Radar)을 구입해 탑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제기되기도 했었다. 실제로 세종대왕급 Batch II 구축함이 등장하는 2023년에 미 해군은 AN/SPY-6(v) 레이더를 탑재한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이 배치되는 시기이고, 이 레이더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해 탁월한 대응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래 중국과 일본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우수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N/SPY-6(v) 레이더 도입론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척당 추가 3000억 원 비용이 관건 그러나 이 레이더의 가격은 세종대왕급이 가지고 있는 AN/SPY-1D(v)의 2배에 달하고, 운용유지비 역시 기존 레이더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세종대왕급 Batch II 사업은 신규전력 확보 사업이 아니라 개량형 도입사업이기 때문에 기존 세종대왕급 대비 성능과 비용이 20%를 초과할 수 없다. 즉, 현재 규정과 예산 범위 안에서는 신형 레이더 탑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신형 레이더 구매와 탑재가 어렵다면 현재 구입이 결정된 장비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어 부족한 성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미국으로부터 구매할 예정인 AN/SPY-1D(v) 레이더와 베이스라인(Baseline) 9 전투체계는 현재 개발된 이지스 전투체계 가운데 가장 최신형으로 몇 가지 개량만 가해지면 현재 세종대왕급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한 성능을 보유해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주변국의 다양한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우선 일본이 신형 아타고급 이지스함 2척을 전력화하자마자 개량사업을 실시해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부여한 것처럼 세종대왕급 Batch II 역시 전력화와 동시에 개량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미 국방안보협력국이 밝힌 판매 승인 내역을 보면 미사일 방어를 위한 BMD 체계 구성요소나 CEC(Cooperative Engagement Capability) 구성 요소는 빠져 있다. 이러한 장비들을 모두 탑재하는 개량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척당 3,000억 원 안팎이다.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이러한 개량을 거치면 세종대왕급 Batch II는 이지스라는 이름 그대로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갖게 된다. 공군의 피스아이와 연계하여 사정거리 400km에 달하는 SM-6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게 되어 부산 앞바다에서도 독도나 이어도 상공에 일본이나 중국 전투기가 얼씬도 못하게 견제할 수 있고,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SM-3 미사일을 이용해 북한 영공에서 요격해 버릴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을 갖추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군 통수권자와 정치권의 의지, 그리고 각 군 사이의 의견 대립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증대됨에 따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지만, 야권에서 “본격적인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추면 미국의 MD에 협력하는 것으로 비춰져 중국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고, KAMD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공군 역시 해군이 이지스함과 SM-3 미사일을 이용해 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추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이지스함을 ‘진정한 신의 방패’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결단을 이번에도 포기한다면 4조원의 비용을 들여 들여오는 3척의 이지스함 역시 제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대한민국 국가 전체를 수호하는 전략무기가 아니라 해군 함대만 보호하는 전술무기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10년 전 세종대왕함을 만들 때 우리는 신의 방패를 가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화되고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 열기가 격화되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일우 군사통신원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여수·순천·광양 지역 갈등 ‘점입가경’

    전남 여수시와 순천시, 광양시가 3개 시 발전을 위한 행정협의회를 7년 만에 부활해 놓고도 여전히 다투고 있다. 지역민들은 지자체장들의 ‘보여주기식’ 행태라며 비난하고 있다. 10일 이들 3개 시에 따르면 시장들은 지난해 12월 광양만권의 공동번영과 상생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기로 하고 2007년 중단된 여수·순천·광양시 행정협의회를 다시 구성했다. 이들은 교류·협력에 노력한다는 공동합의문에 서명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이달까지 3개 시 광역 교통망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1년 전부터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아무런 성과가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여수에 짓기로 한 50억원 규모의 ‘장애인 전용 국민체육센터’ 건립 사업에 순천시가 뛰어들었다. 300억원 규모의 도립미술관 유치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날 순천에서 열린 사업설명회에서 전남도 관계자는 “3개 시가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펴 당혹스럽다”며 “지나친 경쟁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협력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할 정도였다. 여수와 광양시는 지역 기업들에 근로자들이 순천에서 출퇴근하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등 인구 빼오기 경쟁도 하고 있다. 여수시가 올 초 공무원들에게 의무적으로 1명을 전입시키는 인구 늘리기 정책을 펴면서 여수산업단지 내 ㈜한화가 순천 지역 거주자들이 이용하는 통근버스를 없앴다. 최근에는 여수광양항만공사 앞마당에 있는 판옥선을 자기 지역으로 옮기기 위해 여수와 광양시가 경쟁하고 있다. 2007년 7억원을 들여 건립된 판옥선은 이순신 장군이 수중전에서 사용하던 실물 크기의 모형 전투배다. 김모(52·순천시 연향동)씨는 “시민들의 바람인 3개 시 통합이 정치인 등 일부 기득권층의 반대로 무산되는 등 지역 이기주의의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태국의 원빈’도 못 피한 軍입대 제비뽑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태국의 원빈’도 못 피한 軍입대 제비뽑기

    우리에게 동남아국가 ‘태국’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관광’일 겁니다. ‘아시아의 진주’로 불리는 푸껫부터 치앙마이, 파타야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춰 전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군사적으로도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주목할 만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군사력 비교 사이트 ‘글로벌 파이어 파워’(GFP)에 따르면 정규군 30만 6000명(한국 62만명)으로 데이터를 취합한 106개 국가 중 20위(한국 7위)에 랭크돼 있습니다. 한 해 국방 예산은 우리나라의 6분의 1인 54억 달러입니다. 남과 북이 대치해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있는 우리와 비교할 수준은 못 됩니다만, 동남아시아 해군 중 유일하게 항공모함(헬기항모)을 보유하고 있고 F-16 전투기도 운용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황태자 피스트 디스퐁사-디스쿨 소장을 사령관으로 육군 3650명, 해군 2485명, 공군 45명을 파병했고 T-50 고등훈련기 등 우리 무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고마운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참 재밌는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징병제 국가이긴 한데 뭔가 다릅니다. 우리는 군 면제자가 극소수여서 ‘신의 아들’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는 군대 가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운을 시험해야 한답니다. 군 면제자를 비난할 여지도 전혀 없습니다. 바로 운을 시험하는 과정이 ‘제비뽑기’이기 때문입니다. ●검정색과 빨강색…그날, 운명이 갈린다 제비뽑기로 군대가는 나라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시죠?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물의 축제 ‘송크란 축제’를 앞둔 4월 초 태국 전역이 들썩들썩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제비뽑기가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체검사는 통과해야 합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하겠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즐거운 표정으로 이 황당한 행사에 참가합니다. 뽑기함에 슬쩍 손을 넣고 종이를 하나 쥡니다. 빨간색 종이를 뽑았다면? 당신은 군대를 가야 합니다. 반대로 검은색 종이는 면제라고 하네요. 색상이 있는 종이 대신 작은 글씨가 씌어 있는 종이나 구슬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아슬아슬할 것 같지만 징집될 확률은 20% 정도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결과는 그 자리에서 통보해주는데요. 오히려 면제 판정을 받은 이들 가운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상당수 남성이 징집 대상이 됐다는 얘기에 두 손을 번쩍들고 기뻐하는데요. 징병담당자를 부둥켜안기까지합니다. 우리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데요.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는 연간 징집 가능 인구가 68만명으로,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군대를 가야 합니다만, 태국은 상황이 다릅니다. 태국에서는 남성이 21세가 되면 징집 대상이 됩니다. 인구 6770만명인 태국은 해마다 징집 대상이 되는 남성이 104만명에 달합니다. 군 복무자의 3배가 넘기 때문에 모두가 나라의 부름을 받을 순 없겠죠. 군의 대우도 좋습니다. 태국의 대졸자 초임은 월 1만~1만 2000바트(33만~40만원) 수준입니다. 가정을 꾸려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가 되는 수입이 1만 5000바트(50만원)입니다. 그런데 군에서 숙식을 제공하면서 월 3200~9000바트(10만~30만원)를 준다고 하니 솔깃할 수 밖에 없겠죠. 병장 기준 17만원을 받는 우리와 비교해도 사병에게는 적지 않은 돈입니다. 아니, 물가를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이 받는 셈이죠. 빨간색 종이를 뽑고도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들도 제비뽑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럼 자원입대하는 게 낫지 않냐”고 말씀하실 분이 있을텐데요. 네. 자원입대도 가능합니다. 단, 복무기간이 짧습니다. 징병되면 2년, 자원입대는 6개월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 중에는 차라리 뽑기를 잘해서 더 오랜 기간 군에서 복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태국은 트랜스젠더가 많은 나라입니다. 트랜스젠더를 만나도 그다지 혐오하거나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성 소수자라기보다는 그냥 일반 여성이나 여성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여성으로 살고자하는 이들이 군 복무를 원할리 없겠죠. 그래서 여성으로 살아왔다는 이력을 증명하면 신체검사 과정에 복무 면제 판정을 받습니다. 2010년까지는 일괄적으로 ‘심리 이상자’로 분류해 군 복무를 하지 않아도 됐는데요. 트랜스젠더 권익 단체가 문제를 제기해 다음해부터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태국은 트랜스젠더를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1형은 외형이 전형적인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 2형은 가슴 수술을 한 사람, 3형은 성기 수술을 한 사람입니다. 3형만 면제이고 1형과 2형은 징병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성기수술은 위험이 따를 뿐만 아니라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형과 2형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트랜스젠더 상당수가 제비뽑기를 해야 하는 것이죠. 결과가 좋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타깝게 빨간색 종이를 뽑아 군 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죠. 수입이 많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군 입대보단 안정적인 활동을 원할 겁니다. 하지만 제비뽑기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관문입니다. 한국 언론엔 보도되지 않았지만 ‘태국의 원빈’으로 불리는 배우 마리오 마우러도 올해 4월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마리오 마우러는 영화 ‘시암의 사랑’, ‘피막’, ‘잔다라 더 비기닝’ 등의 히트작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 결과는 검은색 종이였습니다. 팬들은 물론 징병담당자까지 두 손을 들고 기뻐할 정도였죠. 마우러도 살짝살짝 웃음을 내비치긴 했지만 전반적으론 진지한 표정을 잃지 않았는데요. 속으론 기분이 무척 좋았겠죠? 그룹 2PM의 멤버 닉쿤도 제비뽑기로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잘못 알려졌는데요. 닉쿤은 2009년 군 지원자가 너무 많이 몰려 추첨을 하기도 전에 면제 판정을 받았습니다. 닉쿤이 참여한 제비뽑기 영상은 실제 뽑기 장면을 촬영하지 못한 현지 매체들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이라고 합니다. ●TV 방송국도 보유한 軍…막강한 영향력 태국은 1932년 혁명으로 전제군주 국가에서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정국은 늘 불안했고, 지금까지 군부 쿠데타만 19번이나 일어났습니다. 군 수뇌부는 이 과정에서 모두가 주목하는 엘리트 집단으로 부상했고, 국민들도 그런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군부는 지난해도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주축인 탁신 일가를 권력 중심에서 몰아내는 쿠데타를 일으켰죠. 군부는 지난달 10개월 만에 계엄령을 해제했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불편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방콕시민들은 오히려 “계엄령 때문에 탁신 일가 찬반 시위가 일어나지 않아서 좋았다”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육군참모총장 출신 프라윳 찬-오차 총리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얼마 전 총선 대신 “국민이 원하면 2년 더 집권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군은 해마다 홍수 피해 복구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데다 농민 교육과 치안을 담당해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태국 육군은 놀랍게도 6대 TV 방송국 가운데 시청률이 높은 방송국 1곳(BBTV CH7)을 직접 소유하고 있는데요. 전국의 200여개 라디오 방송국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합니다. 높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인 육군사관학교의 인기도 어마어마합니다. 지난달 치러진 예과 입학시험은 200명을 뽑는데 1만 8000명이 지원해 무려 90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1)“힘들어 죽겠다는” 예비군 훈련장…무슨 일이?(2)군통령들의 꿈의 무대 ‘걸그룹 대첩’ (3)대한민국 육·해·공군 무기의 세계 (4)‘로보캅2’에 등장한 국산총 아시나요 (5)한국 vs 일본 군사력 우위 논쟁…진실은? (6)모르면 간첩? ‘군대리아’ 얼마나 아시나요 (7)‘폭탄 실은 개’ 기상천외한 실패작들의 세계 (8)北 탄도미사일, 정말 바지선에서 발사됐을까 (9)예비군 훈련비 ‘10만원’ 약속, 잊으셨나요? (10)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 [열린세상] 통영함, 그 이름의 의미를 묻다/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열린세상] 통영함, 그 이름의 의미를 묻다/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해군이 최신예 해상 구조함의 이름을 통영함으로 명명해 진수시킨 건 2012년의 일이었다. 통영함이라는 명칭은 6·25 전쟁 때 한국 해군 및 해병대가 최초로 단독 상륙작전을 펼쳐 북한의 공격을 저지한 통영상륙작전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고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붙였다. 통영은 충무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통영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이순신 장군을 떠올린다. 그분의 헌신과 희생으로 나라를 되찾은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통영함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국민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6·25 전쟁일까? 국군의 최신예 구조함일까? 이순신 장군일까? 아니면 국방과 관련된 비리일까? 어쩌다가 천문학적인 혈세를 퍼부으며 국방을 튼튼히 하고 호국 영령과 이순신 장군을 기리려 했던 이름이 ‘부패’를 연상시키는 주체가 되었을까. 해상 구조함으로 전쟁이나 재난에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지녀야 할 군의 함정이 방산 비리의 상징이 됐는지 안타깝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를 가고, 이 뜨거운 여름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모두가 국방을 위해서다. 그러나 학업을 중단하고 군대로 가는 젊은이들만 있다고 나라가 지켜지진 않는다. 그보다 첨단의 무기가 관건인 시대인데, 장비와 무기는 비리로 구멍이 뚫리고 있다. 통영함의 레이더는 정확한 레이더의 군사용이 아닌 1970년대 성능의 어군 탐지기로, 2억원짜리를 41억원에 들여왔다고 한다. 모든 해군을 지휘해 국가를 보호하고 장병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참모총장이 두 명이나 통영함 납품 비리 때문에 구속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이고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가짜 백수오 사건은 어떠한가. 건강에 이롭다는 백수오를 넣었다고 홍보한 제품들의 대부분이 백수오 대신 그와 비슷한 모양의 이엽우피소를 넣었다는 것이다. 무려 3000억원어치의 가짜 백수오가 팔려 나갔다고 한다. 한 달 넘게 그 뉴스가 전국을 술렁이게 하고, 주식시장에까지 충격을 주었다. 식약처가 실시한 백수오 제품 전수조사 결과 전체 207개 중 진짜는 10개였다고 하니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패의 실태이고 현주소다. 국제투명성기구의 평가에서 한국은 지난해 투명성 순위에서 43위를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가운데서는 27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부패가 개선되지는 않고 계속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고 느끼는 국민들의 감정이 국제적인 평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과 부패는 공존할 수 없다. 부패를 떠안은 채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깨끗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며, 나라의 돈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부패를 단호히 없애는 일이 어떤 기술 개발이나 정치적 구호, 혹은 정권 차원의 슬로건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나라가 부패하면 실제의 경제 발전이란 허위와 거짓으로 포장되고, 국가의 재정이 새나가며, 국민들은 불신과 의심으로 괴로워하게 된다. 부패한 나라치고 선진국으로 진입한 역사가 없다. 현재 정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도 부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적폐(積幣)라 하며, 그것을 과거에서 내려온 부담으로 여길 것이 아니다. 그것을 끊어 달라고 지도자를 택한 국민들이 모두 부패의 척결을 염원하고 있다. 대통령의 추상같은 의지와 전문가들의 지혜가 결합돼야 할 듯하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부패의 구조를 밝히고, 끊어 버리는 데는 정치적 지도자의 결단과 현실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들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힘 있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질시하지 않으며, 그들의 노고에 경의도 표하며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게 우리가 그렇게 말로 이야기하는 국격을 높이는 일이고, 국가경쟁력도 높이는 지름길이 된다. 6월은 호국 영령들을 기리는 현충의 달이다. 우리는 그분들의 죽음을 어떻게 기리고 승화시킬 수 있을까. 통영함이라는 이름 앞에 다시금 고개를 숙이게 되는 6월이다.
  • [TV 하이라이트]

    ■대단한 레시피(KBS2 밤 8시 55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만들던 특별한 만찬부터 자취방에서 만들어 먹던 초간단 간편식, 생계를 위해 시작한 식당의 소박한 메뉴 등 전 국민 누구라도 나만의 레시피가 있는 사람이라면 잡을 수 있는 상품 출시의 기회가 찾아왔다. 상품 출시를 위해 벌어지는 치열한 경합과 그들의 맛깔스런 요리 미학이 버무려진 단 한 개의 레시피들을 선보인다. ■청춘! 세계 도전기(EBS1 밤 7시 50분) 스무 살 청년 태순은 맥주의 쌉싸래한 맛에 반해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맥주의 천국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맥주 만드는 장인 브루마스터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전 세계에서 유명한 양조학과가 있는 뮌헨 공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디플롬 브루마스터 과정을 밟으며 6년 차 유학생이 된 태순은 맥주처럼 톡 쏘고 샴페인처럼 달콤한 ‘샴페인 맥주’ 브랜드 론칭에 나선다. ■명량(캐치온 오후 1시 25분) 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은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당했던 이순신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한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로 향하는데….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KD건설, 첫 홍보관 오픈한 ‘KD 아람채’ 분양 탄력

    KD건설, 첫 홍보관 오픈한 ‘KD 아람채’ 분양 탄력

    KD건설㈜(구 국제DY)이 지난달 29일 아산 법곡동에서 소형아파트 KD 아람채 홍보관을 오픈해 첫 분양이 탄력을 받고 있다. KD건설㈜은 브랜드 런칭과 함께 처음으로 분양을 시작하는 소형아파트 ‘KD아람채’는 충남 아산시 법곡동 1번지외 16필지 일원에 지하 1층 지상 20층 2개 동 규모로 총 208세대 규모의 소형아파트를 공급한다. 사업지가 위치한 아산 법곡동 인근은 탕정산단, 배미농공단지 등 산업단지가 인접해 있고, 이순신 종합운동장 시설 확충과 과학교육원 경찰종합 행정타운 아산 이전 예정 등 주변개발호재가 근접 영향권에 있는 수혜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전철 1호선 온양온천역과 KTX천안아산역, 온양시외버스 터미널 등 이용이 편리하고 사업지 앞 외암대로 확장공사 등을 통해 주변 교통환경이 더욱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마트, 충무병원 등 편의시설과 온양초, 용화중, 용화고 등 교육시설도 인접해 있다. 이 밖에도 신혼부부와 1~2인 가구가 선호하는 2룸형 구조로 전 세대를 정남향으로 배치해 우수한 일조권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스마트시스템과 빌트인시스템, 리빙아이템 등 첨단 홈 오토시스템을 통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조성하고, 내부는 풍부한 수납공간과 빌트인 시스템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단지 내부 커뮤니티로 지하에 GX, 헬스룸이 만들어 지고, 1층 필로티 공간을 활용해 입주민의 편의를 위한 로프트스타일 가든 데크, 나무 위 다락방, 바람길 그늘집, 샌드비치 놀이터 등 다양한 테마공간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기존 소형 아파트에 비해 넓은 평면과 실용적인 공간배치로 실 거주는 물론 향후 투자가치까지 높게 평가 받고 있다. 분양 관계자는 “풍부한 산업단지 수요와 계속 이어지는 개발호재로 투자가치가 상승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2룸 빌트인 시스템의 주거성과 풍부한 임대수요로 높은 투자상품으로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KD건설은 40여 년의 깊은 역사를 가진 건설회사로 더 높은 꿈, 더 많은 행복을 키우는 건설회사를 이념으로 건실한 성장을 거듭해 온 기업으로 최근 충청지역은 물론 수도권 주요 도시까지 시장을 넓혀 나가고 있다. KD건설이 새롭게 선보이는 소형아파트 ‘KD아람채’ 홍보관은 충청남도 아산시 모종동 567-1번지 농협건물 3층에 마련될 예정이다. ‘KD아람채’는 중도금전액 무이자, 무제한 전매가 가능하다. 분양 문의: 041-548-2112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풍산그룹] “부끄럽지 않은 후손 되자”… 징비록 영역본도 발간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풍산그룹] “부끄럽지 않은 후손 되자”… 징비록 영역본도 발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에 풍산이 대기업으로는 드물게 후원을 하고 있다. ‘징비록’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1592~1598년)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수기로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으로 꼽힌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전투를 이끌었다면 류성룡은 전쟁을 총괄한 사람에 비유된다. 풍산그룹이 이 드라마를 후원하는 것은 풍산그룹의 뿌리가 바로 임진왜란을 극복한 서애 류성룡 선생이기 때문이다. 풍산그룹의 고 류찬우 창업주는 서애 선생의 12대손으로 안동 하회마을에 6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풍산 류씨 가문의 후예다. “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조상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겠다”는 말을 류 창업주는 입에 달고 다녔다. 그는 평소 “선조인 서애 선생의 정신을 알리고 실천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풍산은 1976년 12월 류 창업주를 중심으로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서애가 징비록에서 남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의 뜻을 계승하고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다는 뜻에서다. 1991년 5월에는 서애의 정치·경제사상과 애국애민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서애전서 전4권을 출간했다. 이 같은 지원 사업은 회사를 물려받은 류진 회장 세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001년 7월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서애전서 국역본을 발행했으며, 2003년에는 징비록 영역본도 출간했다. 드라마 ‘징비록’도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통해 자료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 방위산업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후원 활동을 펼쳐 왔다. 대표적으로 육군사관학교 체육관을 증·개축해 기증했다. 육군사관학교 체육관인 ‘서애관’은 풍산그룹이 1980년 건립한 국제 경기장 규모의 종합 실내 체육관이다. 2013년에는 우리 해군의 세 번째이자 역대 최고 성능의 이지스함으로 평가받는 서애 류성룡함에 대한 함내 홍보관 설치를 후원했다. 류 회장은 또 학교법인인 병산교육재단을 통해 병산서원도 운영하고 있다. 하회마을 인근에 자리한 병산서원은 류성룡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하지만 조상들의 애국 정신과 달리 미국 유학 중인 류진 회장의 아들 성곤(22)씨는 2013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국적법상 미국인이 됐다. 풍산의 지주사인 풍산홀딩스는 2014년 류 회장이 직계가족에게 지분을 증여한 사실을 공시하면서 성곤씨의 국적이 변경됐다고 밝혔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新국토기행] 경남 남해군

    [新국토기행] 경남 남해군

    경남 남해군은 남해안의 중심에 있는 섬으로 이뤄졌다. 남해도와 창선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올망졸망한 섬과 높고 낮은 산, 아름다운 해안선 등 한려수도의 비경과 어우러진 풍광이 보석처럼 아름다워 보물섬으로 불린다. 본섬인 남해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주민 대부분이 남해도와 창선도에 산다. 두 섬에 딸린 작은 유·무인도는 모두 79개다. 1973년 6월 남해대교가 건설돼 육지인 하동군과 연결됐다. 고려~조선시대에는 남도의 유배 섬 가운데 한 곳이었다. 절해고도에 갇혀 유배생활을 했던 선비들은 귀양살이의 아픔과 외로움을 글을 쓰며 견뎠다. 자암 김구의 ‘화전(남해 옛 이름)별곡’,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 유의양의 ‘남해견문록’ 등이 탄생했다. 김만중은 노도에서 1689년부터 3년간 유배생활을 하다 1692년 55세로 생을 마쳤다. 남해대교 양편에는 노량(梁)리라는 같은 지명이 있다. 귀양 온 선비들에게 남해와 하동 사이를 갈라 놓은 바다 물결은 이슬방울로 이뤄진 다리처럼 보여 더욱 향수에 젖게 했다. 그래서 노량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에 남해도와 창선도를 잇는 창선교가, 2003년 창선도와 삼천포를 잇는 창선·삼천포 대교가 건설되면서 남해안 관광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 >>볼거리 ●기암괴석 즐비한 금산… 원효대사가 꼭대기에 ‘보리암’ 창건 기암괴석이 곳곳에 솟아 있는 금산(해발 705m)의 절경을 직접 보면 소금강이나 남해의 금강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게 된다. 하나하나 전설을 간직한 천태만상의 기묘한 바위군과 남쪽으로 펼쳐진 바다가 어우러진 비경은 장관이다.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원효대사가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산꼭대기 부근에 보광사(현 보리암)를 창건하면서 유래됐다. 금산이란 이름은 이성계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기 전 보광산을 찾아 임금이 되게 해달라고 100일 기도를 하면서 뜻이 이뤄지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왕이 된 이성계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산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 금산으로 지었다. 금산에는 제1경인 쌍홍문을 비롯해 38경이 있다. 꼭대기에서 보는 일출은 장엄하고 환상적이지만 변화무쌍한 날씨가 구경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3년 동안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정상에 있는 보리암은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3대 기도처로 꼽힌다. ● 육지 관광객들 발길이 절로~ 남해대교와 창선·삼천포대교 설천면 노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잇는 남해대교는 길이 660m로 1973년 6월 22일 개통됐다. 건설 당시 동양 최대 현수교로 1968년 착공해 5년여 만에 완공됐다. 남해군은 육지에서 접근이 편리해지면서 관광지로 빠르게 발전했다. 개통된 뒤 한동안 관광객들이 전국에서 줄을 이었다. 1983년에는 미스코리아 수영복 사진을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당시 미스코리아 진에 뽑힌 임미숙씨는 “남해대교에서 수영복을 입고 사진 찍다 감기에 걸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왕복 2차로인 남해대교는 늘어나는 교통량을 소화하지 못해 옆에 새로운 대교가 건설되고 있다. 남해 창선도와 삼천포 사이 바다에도 길이 3.4㎞의 창선·삼천포 대교가 건설돼 2003년 4월 28일 개통됐다. 단항교, 창선대교, 늑도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 등 각기 다른 모양의 교량 5개가 늑도, 초량섬, 모개섬 등 3개의 섬을 이어주고 있다. 이 다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다. ●하얗고 부드러운 모래사장에 울창한 송림 품은 상주은모래비치 반달형으로 생긴 백사장 길이가 2㎞에 이른다. 수심이 얕고 완만한 데다 물이 깨끗하고 따듯해 어린이들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모래가 하얗고 부드럽다. 뒤쪽으로 금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울창한 송림이 모래밭을 감싸고 있다. 앞쪽 먼바다에 있는 나무섬과 돌섬이 파도를 막아 주기 때문에 해수욕장 물결이 천연호수처럼 잔잔하다. 여름에는 100만명 이상이 찾는다. 겨울에는 전지훈련 온 선수들의 운동 장소로 이용된다. ●비탈진 급경사 100여층 계단을 보는 듯… 가천마을 다랑이 논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 앞 바닷가 비탈 급경사지에 계단처럼 층층이 조성된 논이다. 구불구불하게 생긴 논이 바다에 닿는 곳까지 100여층을 이룬다. 주민들이 한 뼘의 땅도 놀리지 않고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아 농사를 짓는지 보여 주는 농업 현장이다. 2005년 1월 명승 제15호로 지정됐다. 다랑이 논 뒤쪽으로 설흘산과 응봉산이 둘러싸여 있고 앞쪽으론 바다가 펼쳐진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바닷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생긴 것으로 꼽히는 암수 미륵바위(경남도 민속자료 제13호)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혼이 서린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지 고현면 차면리 관음포 앞바다는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곳이라고 해 이락파(李落波)라고 불린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왜군이 쏜 유탄에 맞아 숨을 거두면서 아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적의 기세가 오를 것을 걱정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유언했다.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최초로 육지에 오른 관음포에는 장군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한 유적지(사적 제232호)가 조성됐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 이락사가 있고 충무공유허비와 충무공묘비각 등이 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은퇴 후 안식처로 삼은 독일마을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를 하다 은퇴한 교포들을 위해 군이 삼동면 물건리에 독일풍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교포들은 독일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독일건축 양식으로 빨간 지붕에 하얀 벽으로 된 주택을 지었다. 물건항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34채가 있다. 1960~70년대 가난했던 시절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갔던 광부와 간호사 출신 60~80대 주민 18가구 20여명이 산다. 마을 뒤쪽에는 지난해 6월 문을 연 남해파독전시관이 있다. ●김만중 등 남해 유배객 6명의 작품을 소개한 유배문학관 유배와 유배문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해 놓은 국내 최초의 전시관이다. 남해읍에 있다. 향토역사실, 유배문학실, 유배체험실, 남해유배문학실 등으로 꾸며졌다. 유배문학실에서는 세계 유배의 역사와 문학을 살펴볼 수 있고 남해유배문학실에는 김만중을 비롯한 남해 유배객 6명과 주요 작품 등을 소개해놨다. >>먹거리 ●단단한 육질에 비린내 없는 남해 죽방렴 멸치 바다물살이 센 삼동면과 창선면 사이 지족해협에서 원시어업 방식인 죽방렴을 이용해 잡는 멸치다. 우리나라 최고급 멸치로 생산량이 많지 않아 구하기 어렵다. 죽방렴은 수심이 얕은 바다에 참나무로 된 기둥을 ‘V’자 모양으로 박은 뒤 대나무를 그물처럼 엮어 놓은 고정 어로시설이다. 중간에 설치한 통발 속으로 밀물 때 고기가 들어가고 썰물 때는 입구가 막혀 들어간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 지족해협에 수십개가 설치돼 있다. 명승 제71호다. 죽방렴 어장은 시설과 면허가 제한된다. 죽방으로 잡는 멸치는 그물로 잡는 멸치보다 비늘이나 몸체에 상처가 없어 신선하다. 물살이 센 곳에서 자라 육질이 단단하며 기름기가 적고 비린내가 없다. 삼동면과 미조면 주변에는 멸치회와 멸치쌈밥, 멸치구이 전문 음식점들이 많다. 청정바다 남해에서 갓 잡은 멸치로 요리한 회, 통멸치로 찌개를 끓여 쌈을 싸서 먹는 쌈밥 등을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다. ●최적의 바닷바람과 햇살 속에서 자라 고품질 자랑하는 남해 마늘 남해군은 대표적인 항암식품으로 꼽히는 마늘의 주산지다. 마늘은 강한 냄새를 제외하고는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하여 일해백리(一害百利) 식품으로도 부른다. 하루에 마늘 한 쪽을 꾸준히 먹으면 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늘을 구워도 영양가에는 변화가 없어 먹기에 좋고 소화와 흡수도 잘된다. 남해군 토질은 물이 잘 빠지는 사암이 많고 토양 무기질 가운데 칼슘과 칼륨 농도가 다른 지역보다 높아 마늘을 재배하는 데 알맞다. 토양 산도도 적합해 바닷바람과 햇살 속에서 자란 남해 마늘은 전국 최고 품질로 인정받는다. 남해 마늘은 칼륨과 칼슘, 당도가 높고 조직이 치밀하다. 씨알도 굵고 오래 저장할 수 있다. 남해 마늘로 만든 흑마늘과 흑마늘 엑기스도 인기가 있다. ●부드러운 육질에 지방산·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한 남해 한우 남해군은 오염원이 없는 섬 지역으로 산소량이 많고 오존층이 두껍다. 한우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조건이다. 남해한우는 철저한 족보 관리로 태어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송아지를 사육한다. 남해축산업협동조합과 남해한우영농조합법인은 한우혈통번식우 단지를 운영해 송아지를 생산한다. 수송아지는 거세해 2년간 사육한 뒤 체중 600㎏이 넘으면 출하한다. 고기가 부드럽고 지방산과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한 남해한우는 전국 각종 품평회에서 최고급 한우로 인정받고 있다. ●짙은 맛과 향기 품은 남해 유자, 입맛 돋우고 숙취 해소까지 남해군에선 최고 품질의 유자가 생산된다. 맛과 향기가 짙고 당도가 높다. 가격이 높지만 품질이 뛰어나 인기가 있다. 7300여 농가에서 600여㏊에 유자를 재배, 1년에 700여t을 생산한다. 유자는 비타민C가 레몬보다 3배 많다. 헤스페리딘 성분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한다. 식욕을 돕고 숙취를 풀어주며 기침을 삭이는 효과가 있다. 몸의 노폐물도 내보낸다. 술과 차 원료로 널리 쓰인다. 남해 유자는 11월에 수확한다. 잘게 썰어 설탕에 재어 유자청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인기를 끌면서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유자가 남해 유자로 둔갑하는 사례도 있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류성룡 ‘징비록’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류성룡 ‘징비록’

    때는 1604년 싸락눈이 날리는 한겨울의 깊은 밤이다. 경북 안동의 유서 깊어 보이는 한 사랑채에서 나이가 지긋한 선비가 일렁이는 촛불에 의지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덧입혀지는 내레이션. “화살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이순신은 직접 나서 싸우다가 날아오는 총탄에 맞고 말았다. 총탄은 가슴을 관통하고 등 뒤로 빠져나갔다.” 현재 KBS에서 주말 밤마다 방송하고 있는 대하드라마 ‘징비록’(懲毖錄)의 첫 회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1542~1607)을 클로즈업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쓰는 글에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내레이션을 통해 들려줌으로써 이 드라마가 류성룡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임진왜란 이야기라는 것을 넌지시 드러낸다. 실제로 ‘징비록’은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물이고 드라마는 바로 류성룡의 이 저작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중종 37년(1542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류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자랑했던 그는 21세가 되던 해 퇴계 이황 밑에서 학문을 사사하게 되는데, 이때 이황이 류성룡을 가리켜 “이 사람은 하늘이 낳은 인물이다. 반드시 뒷날에 크게 쓰일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25세에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온 그는 1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재상의 자리에 머문 인물이고, 당파 간의 다툼이 예사롭지 않았던 선조 대에 남인의 영수라 거론되면서도 한 번도 유배를 가지 않은 인물이다. ‘하늘이 내린 재상’이라고 불릴 뿐 아니라 이순신과 함께 육지에서 임진왜란을 이끈 탁월한 리더십의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할 당시에 그는 좌의정이면서 병조판서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4월 13일 오후에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이 거칠 것 없이 부산, 동래, 밀양을 함락시키며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올라오자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류성룡을 도체찰사로 임명해 군사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선조가 한양을 떠나 피란길에 오를 때 수행 업무를 맡았고 개성에 도착해서는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이후 7년 동안 전란의 한가운데서 진두지휘를 맡았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저술하게 된다. ‘징비록’이라는 책 제목은 중국의 고전인 ‘시경’에서 유래한다. 류성룡 자신이 직접 서문에서 “‘시경’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야말로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고위직에 있으면서 전쟁을 막아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 땅에서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우국충정에서 쓰인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징비록’은 류성룡 개인이 저술한 초본과 나중에 인쇄된 간행본 두 가지가 전해 온다. 간행본에서는 초본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선조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들이 상당 부분 수정되었다. 예를 들면 초본에서는 선조가 주도하여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간행본에서는 그냥 조정 내에서 한양을 떠나자는 논의가 이루어졌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간행본은 다시 16권본과 2권본으로 나누어진다. 16권본은 ‘징비록’ 상·하 2권과 ‘근폭집’ 2권, ‘진사록’ 9권, ‘군문등록’ 2권과 ‘녹후잡기’로 구성되어 있고, 2권본은 ‘징비록’ 상·하 2권과 ‘녹후잡기’로만 구성되어 있다. 현재 출판되어 있는 ‘징비록’의 대부분은 간행본의 2권본을 번역한 것이다. ‘징비록’ 1권(상)은 1586년에 일본 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조선에 온 일부터 시작한다. 통신사 파견을 요구하는 히데요시에게 물길이 험해서 사신을 보내지 못한다고 답장을 보낸 일, 소 요시토시가 다시 사신으로 오고 이에 대해 조건부로 통신사 파견을 수락하는 과정, 통신사의 파견, 일본에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 날로 극성스러워지는 왜적 때문에 뛰어난 장수를 천거하라는 선조의 명에 그동안 세운 공에 비해 진급이 늦었던 이순신을 천거한 일, 그리고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변변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망 다니기에만 급급했던 초기 전황, 선조의 피란, 명나라 원군의 도착과 패전,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군과 의병들의 활약상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2권(하)은 대부대를 이끌고 온 명나라의 2차 원군과 권율의 행주대첩, 일본이 한양을 점령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면서 굶어 죽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백성들의 딱한 상황, 한양 수복, 수군통제사 이순신의 하옥과 원균의 패전, 명나라와의 갈등, 곽재우와 유정의 활약, 이순신의 복귀와 전사 과정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녹후잡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한강의 물이 3일 동안이나 붉은 모습을 띠었다든가 도성 안에 항상 검은 기운이 퍼져 있었는데도 하늘이 간절히 알려준 이상한 기운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임진왜란이 지속된 기간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징비록’은 전쟁 기간 동안 재상과 도체찰사를 겸임한, 요즘 말로 하면 국정 최고책임자였던 류성룡이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당파의 색깔 없이 객관적으로 집필한 저서로서 임진왜란에 대한 그 어떤 기록물보다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역사적인 가치로만 빛나는 건 아니다. 일본 열도를 통일한 뒤 조선과 중국까지 자신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에서 시작하여 그런 히데요시의 야망을 한순간에 꺾으며 장렬히 죽어간 이순신의 죽음으로 책을 마무리한 구성이 마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드라마틱하여 기록 문학으로서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다. 또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말도 있다. ‘징비록’은 책 제목에 드러나듯이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자는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갖고 집필된 책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그때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다시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과 자위대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위지침을 마련한 일본, 그러한 일본을 명실상부한 파트너로 점찍은 미국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정세는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임진왜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자신을 ‘징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역사는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남북분단과 같은 비극으로 되돌아왔다. 또다시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기 전에 ‘징비록’을 썼던 류성룡의 마음을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류성룡은 누구

    ‘선조실록’의 편찬자는 선조 시기 영의정까지 지낸 류성룡의 단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재상으로 그릇이 작다. 붕당에 대한 마음을 떨치지 못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면 용납하지 않았다. 임금에게 바른말을 고하지 못하여 대신다운 풍절이 없었다.” 하지만 선조 시대가 동서남북의 붕당정치가 치열하게 이뤄졌던 시기인 점을 감안했을 때, ‘선조실록’에서 남인의 거두인 류성룡에 대한 기술이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선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가장 조잡하고,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결국 효종 때에 ‘선조수정실록’으로 다시 쓰이게 된다. 어찌 됐든 당시 정치의 중심에 서서 서인, 북인 등과 치열하게 대립했던 류성룡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은 그가 충무공 이순신의 충실한 후견인이었다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이순신과 한동네에서 자랐던 류성룡은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 여러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조에게 권율, 원균 등과 함께 이순신을 명장으로 천거했다. 6년 뒤 이순신이 모함을 당했을 때 그를 끝까지 지킨 것도 류성룡이었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이순신을 천거한 사람이 나이므로 나와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 몹시 공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류성룡은 선조 앞에서 직접 이순신을 변호했다. 이후 선조가 류성룡을 경기 지방에 보내 순찰토록 했는데, 한 달 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이순신은 다시 모함을 받아 죄인이 돼 있었다. 이때 류성룡은 사직을 결심하고 1개월 동안 무려 10여 차례의 사직 상소를 올렸다. 결국 이순신은 류성룡과 이원익, 정탁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참수형을 면하고 백의종군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살아남은 이순신이 복직 뒤 명량해전에서 대활약을 펼쳐 조선을 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新방위협력지침’...전범국 일본 ‘족쇄’ 풀어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최태원 회장 딸 최민정 소위 6월 말 아덴만 청해부대 파견

    최태원 회장 딸 최민정 소위 6월 말 아덴만 청해부대 파견

    재벌가 딸로는 처음으로 여군 장교가 된 최민정(24) 소위가 이번에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우리 상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중동 아덴만 해역에 파견된다. 해군 관계자는 29일 “한국형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4400t급)이 현재 아덴만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왕건함을 대체할 청해부대 19진 파병 함선으로 결정됐다”면서 “충무공 이순신함 승조원인 최 소위도 다른 승조원 200여명과 함께 올해 6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임무를 수행하다 내년 1월쯤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12월 취역한 충무공 이순신함은 세종대왕급 이지스함(7600t)과 더불어 대양해군을 지향하는 해군 기동전단의 핵심 전력으로 평가된다. 2009년과 2011년에도 청해부대로 아덴만에 파병됐던 전력이 있다. 최 소위의 보직은 전투정보 보좌관이다. 이는 함정의 작전관을 보좌하는 직책으로 소말리아 해적과 교전이 벌어지는 긴급한 상황에서 상황 판단력과 체력이 필수다. 최 소위는 “열심히 업무에 적응해 맡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당현천 밝히는 등불 속 시간여행

    노원구는 조선시대 역사적 인물과 조상들의 생활상을 담은 각종 등(燈)을 전시하는 ‘노원구 등축제’를 당현천에서 다음달 1일부터 10일간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우선 1일 오후 7시 20분에는 당현3교 부근 어린이교통공원 당현천 무대에서 ‘개막 점등식’을 연다. 이후 당현1교~당현3교의 400여m 구간에서 매일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축제를 진행한다. 축제에는 전통 등 50점이 전시된다. 세종대왕, 허준, 이순신 등 조선시대 인물과 역사적 유물 등 24점을 공개하고 달밤의 밀회, 수문장, 김장문화 등 생활상을 담은 12점을 전시한다. 어린이를 위한 등도 14점 마련된다. 부대행사도 준비돼 있다. 중계 2, 3동 자치회관 및 장미수공방 수강생들이 만든 등을 축제 기간에 전시하고 한지 등과 전통 연, 대나무 활, 전통 팽이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주민들이 추억을 쌓을 수 있게 큐피트 화살, 천사 날개 등 빛 포토존도 설치한다. 다음달 1일에는 초등학생들이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은 동화 ‘달님은 알지요’를 읽고 동시를 짓는 행사도 열린다. 이외에 지역 예술단체와 연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김성환 구청장은 “등축제가 누구나 편히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될 수 있게 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친환경 생태하천인 당현천에서 전시되는 각종 등을 보며 여유로운 5월을 즐기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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